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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격적인 ‘장성택 숙청’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유일지배체제가 공고화되는 모양새이지만 권력 구도를 흔들 수 있는 각종 억측과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밑에 잠겨 있던 북한 내부의 동요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확산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 관계에도 당분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 ‘장성택 라인’의 연쇄 망명 시도 가능성 북-중 접경지역 등지의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장성택의 최측근이 해외로 망명했다는 설이 퍼지고 있다. 북한 탈출을 시도한 고위 인사가 노동당 행정부 소속으로 인민군 상장이라는 식의 구체적인 신상 관련 정보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측근 망명설에 대해 “그런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라인의 한 당국자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는 게 없다”면서도 “피의 숙청이 예고된 상황에서 위협을 느낀 인사가 망명을 시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장성택의 측근들이 11월 초중순경 평양 보통강 인근에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각에서 파티를 벌이며 “장성택 만세” “만수무강” 등의 구호를 외친 것이 숙청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미 처형된 이용하와 장수길을 비롯해 이 파티에 참석한 장성택의 측근은 25명에 달한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살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암투가 심화되거나 내부의 중요 기밀들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내부 동요를 우려한 듯 북한도 장성택의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10일 노동신문에 등장한 주민들은 장성택을 ‘쥐새끼 무리’ ‘인간오작품(불량품)’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은 또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강화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만 썼던 ‘위대한 영도자’라는 호칭을 최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북한은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 김정일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에 대해서는 ‘경애하는 원수님’으로 구분해 불러 왔다.○ 온건파 장성택 숙청은 남북 관계에도 악재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의 전자출입체계(RFID) 도입 공사는 11일부터 예정대로 시작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RFID 공사 협의나 군 통신 분야 등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현재로서는 원만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북한의 대남 정책은 더 강경해질 개연성이 크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게재한 전면 사설에서 “장성택 일당은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 책동에 편승한 만고의 역적무리”라며 ‘적대세력’을 언급했다. 북한 매체의 기존 논조로 볼 때 대외적으로 한국이나 미국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내부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당장 급격한 대남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장성택 숙청 이후 후속 조치들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대남 긴장 분위기를 조성할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년에는 미중 관계도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개연성이 있어 정부가 대북 전략을 운영할 여지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2월 3차 핵실험을 반대한 대표적 인물인 장성택이 제거되면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북한 내 브레이크’가 사실상 사라진 점도 남북 관계를 어렵게 만들 요인 중 하나다. 장성택은 당시 “이미 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핵실험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만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폈던 것으로 전해져 왔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철중 기자}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 사실을 9일 공식화함에 따라 장성택 측근들의 망명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 안보당국에 의해 장성택의 실각설이 알려진 3일 이후 장성택 측근이 해외로 망명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6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아는 바 없다”며 사실 여부에 대해 함구했다. 외교부와 통일부 등 관련 부처 역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장성택이 해외 투자 유치나 중국 등에서 이뤄진 현지 이권사업을 주로 맡아왔다는 점에서 해외에서 관련 업무를 관장했던 그의 측근들이 망명에 나설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장성택의 측근이 망명을 시도할 경우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섣불리 그 신병을 넘겨줄 수 없겠지만 한국 정부는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 때처럼 한국행을 이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장성택의 핵심 측근이 망명을 시도해 현재 한국과 중국 보안당국의 공동 보호 아래 있으며 이에 대해 미국과 중국 최고위층 사이에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미확인 보도가 흘러나온 상황이다. 김정은의 이복형제인 김정남과 그의 아들 김한솔의 운명도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일면식도 없는 김정남이 중국의 보호 아래 목숨을 부지해 온 데에는 장성택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성택이 숙청된 상황에서 더이상 중국이 김정남을 돕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은 이번 숙청을 통해 ‘가족이라도 충성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알린 셈이다. 언제라도 라이벌이 될 수 있는 김정남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철중 tnf@donga.com·조숭호 기자}
정치국 확대회의는 김일성 주석 시절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기구로 활용됐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이후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김정일이 사망 직전인 2011년 6월에 당 조직을 정상화하고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로 약 30년 만에 부활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정치국 확대회의는 당 조직 정비, 지도부의 임명·해명 등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개최돼 정책 결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왔다. 정치국은 상무위원 4명, 정위원 15명, 후보위원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치국 내 핵심 위원인 상무위원에는 김정은과 북한 내 2인자로 떠오르고 있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들어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9일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을 보도한 것은 북한 역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조치다. 장성택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라는 점에서 장성택에 대한 공개 비판을 자제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완전히 깬 파격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이뤄졌던 숙청과 비교해도 차이가 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한층 강화됐음을 시사한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은 지도부를 해임할 경우에 그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장성택 숙청 이전에 해임 사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경우는 2차례에 불과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이뤄진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의 해임을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열고 이영호를 신병(身病)관계로 정치국 상무위 위원, 정치국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당의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해임 사유를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동신문 등 다른 매체를 통해 이를 추가로 보도하지도 않았다. 이승호 내각 부총리의 경우에도 사유 없이 해임 사실만을 알렸다. 반면 장성택의 경우에는 A4용지 4쪽, 200자 원고지 16.5장(3300자)에 달하는 분량으로 마약 도박 여자 문제 등 개인적인 비리까지 죄명을 일일이 열거하며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였다. 북한 매체는 대대적인 보도에 나섰다. 이날 노동신문은 1면에 같은 내용을 그대로 전했고, 조선중앙TV에서는 정치국 확대회의 도중 장성택이 끌려가는 모습까지 방영했다. 또 장성택을 직무에서 해임하는 동시에 칭호를 박탈하고 당에서 제명시키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이미 장성택이 처형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돼 안보당국이 확인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 숙청과 관련해 ‘일당’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영호 등 최근에 숙청된 인사들은 개인 비리나 신상의 이유 등에 국한됐다.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는 수차례 ‘장성택 일당’이라고 명명한 뒤 이들에 대해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라고 비난했다. 정치국 회의를 통해 당의 인사를 결정하는 것은 김정은 집권 이후 나타난 새로운 행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영호 숙청 당시에는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들이 참석했다. 이번 확대회의의 경우 김정은이 직접 주재하고 도당위원회, 무력기관 간부들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사건은 북한 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으로 장성택 이외에도 유례없는 숙청 작업과 공포정치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북한이 7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이 삭제된 기록영화를 방영한 것은 장성택 실각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모습을 담은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제1부: 선군의 한길에서’를 재방영했다. 이 기록영화는 10월 7일 처음 공개된 이후 10월 말까지 수차례 재방영된 바 있다. 한 달여 만에 다시 방영된 7일 영상에서는 장성택의 모습이 모두 사라졌다. 8일 통일부 정세분석국에 따르면 총 17군데에서 화면을 자르거나 확대 또는 다른 화면으로 대체하는 방법으로 장성택의 흔적을 없앴다. 과거 영상에는 김정은이 군부대 시찰 중 이병철 공군사령관과 악수할 때 뒤편에서 박수를 치는 장성택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7일 방영분에서는 뒤편에 서 있는 사람 중 장성택을 아예 지웠다. 북한은 과거에도 주요 간부를 숙청한 뒤 언론 보도나 영상물에서 이들의 ‘흔적’을 없애는 작업을 해왔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모인 김성애. 그는 한때 김정일의 정치적 라이벌로 여겨졌다. 하지만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된 뒤 권력투쟁에서 밀려났고 그와 관련된 사진과 기록들은 자취를 감췄다. 화폐개혁 실패로 2010년 3월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도 기록물에서 삭제된 경우다. 박남기는 같은 해 2월까지 방영된 기록영화 중 김정일이 평안북도 태천군 동봉협동농장을 둘러볼 때 함께 등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중순 재방영된 화면에서는 그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이 콩 다발을 클로즈업한 장면으로 대체됐다. 북한에서 사진 등 기록물이 대거 삭제된 인물이 재기에 성공한 적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장성택 역시 다시 권력을 잡기 어렵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관측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남한 정보당국으로부터 실각설이 나온 시점에 굳이 과거 영상을 편집해 재방송한 것은 장성택이 단순히 2선 후퇴한 게 아니라 상당히 큰 죄목으로 숙청됐다고 예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성택의 실각을 확인한 한국 정부와 주변국들은 북한 내부 정세를 예의주시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8일 이도훈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이 미국으로 떠났다. 이 단장의 이번 방문은 지난달 22일 방미 이후 한 달도 안 돼 갑자기 이뤄진 것이어서 ‘장성택 실각 이후 북한 상황’에 대한 한미 간 긴급 협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경희와 장성택은 별거 중이며 김경희가 (장성택을 위해) 더이상 나서지 못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철중 tnf@donga.com·권오혁 기자}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설 이후 북한의 권력 구도 개편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친위부대로 떠올랐다. 두 기관은 장성택 측근들을 처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29일 김정은이 핵심 측근들과 가졌던 ‘양강도 삼지연 대책회의’에서도 그 면모가 드러난다. 안보당국에 따르면 이날 김정은은 참석자들에게 장성택 실각 이후의 내부 통치 지침을 내렸고, 다음 날인 11월 30일 장성택이 맡고 있는 8개 직위를 모두 박탈하며 사실상 제거 작업을 완료했다. 이 자리에 국가안전보위부에선 김원홍 보위부장이, 조직지도부에선 황병서 부부장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원홍이 김정은과 함께 지방까지 찾아간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황병서 역시 지난달 보도된 김정은의 시찰(7회) 중 6회나 동행하면서 달라진 위상을 보였다.○ 김씨 일가 보위 충성경쟁 조직지도부는 당 중앙위원회의 핵심 부서다. 조직지도부는 당의 하부조직부터 중앙당에 이르기까지 조직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당원들의 정치 동향뿐 아니라 사생활 등을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고권력자 김정은을 제외하고 최고위층을 포함한 모든 당원의 인사를 결정하는 핵심 참모 부서로 통한다. 특히 197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앙당 조직지도부를 관할하는 당 조직비서로 임명된 뒤 그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졌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에 조직지도부를 통해 후계자인 김정은을 보필하도록 지시했으며, 김정일 사후에는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가 조직지도부를 관리해 왔다”고 말했다. 장성택 실각을 주도한 또 다른 세력으로 지목된 국가안전보위부는 호위사령부, 인민보안부와 함께 김씨 일가의 세습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권력기관이다. 1998년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오른 뒤에는 국방위원회 직속으로 편제돼 김씨 일가 비방사건 색출 작업에 주력했다. 이후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시를 받아 사전 절차 없이 용의자를 구속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 김씨 일가의 잠재적 위협을 솎아내는 ‘파수견’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다.○ 피바람 속에서 떠오르는 인물들 두 기관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는 김정은 집권 이후 계속된 고위 인사의 숙청과 북한 관리들의 부패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7월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의 경질이나 장성택 측근들의 처형 당시 두 기관을 활용해 이들의 비리를 캐냈다고 한다. 또 김정은이 도를 넘어선 북한 지도층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체제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기관에 힘을 실어 이른바 공안통치를 펼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성택이 완전히 실각하면 두 기관의 힘은 더욱 막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장성택이 이끌던 당 행정부는 원래 조직지도부에 속했다. 2007년 당시 조직지도부 1부부장이었던 장성택이 보위부와 인민보안부 등 사법·감찰 기관들을 관리하는 행정 부문을 독립시켜 행정부를 만들었고 자신이 부장을 맡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행정부가 아예 해체된다면 행정부의 기능이 다시 조직지도부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몸이 좋지 않은 김경희를 대신해 조직지도부를 운영하는 조연준 제1부부장이 향후 실세로 주목받는 이유다. 김원홍 보위부장도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당초 장성택의 추천을 받아 보위사령관에서 2011년 군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 밑에서 일하며 신임을 얻었다. 이후 지난해 4월 ‘운구 7인방’ 중 한 명이던 우동측 전 보위부 제1부부장이 숙청되자 바로 보위부장 자리를 꿰찼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북한이 최근 들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유일 영도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는 지난달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측근인 이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처형한 뒤 자칫 동요할 수 있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 노동신문 “신념에서 탈선하면 절대 용서치 않아” 북한 노동신문은 남한의 안보당국이 장성택의 숙청설을 제기한 다음 날인 4일 ‘혁명적 신념은 목숨보다 귀중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A4 용지로 13쪽 분량의 장문의 글로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특히 당원으로서의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노동신문은 김정일의 말을 인용해 “지난날 아무리 오랜 기간 당에 충실하였다고 하여도 오늘 어느 한순간이라도 당에 충실하지 못하면 충신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충신은 99%짜리란 있을 수 없고 오직 100%짜리만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는 충신과 간신을 가르는 시금석과 같은 귀중한 가르침”이라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와 주민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도 엿보인다. 노동신문은 “신념이 없는 인간은 그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든 추호도 용서치 말고 준엄한 심판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인류양심의 목소리”라며 “신념에서 탈선하면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원칙이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고 경고했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김정은을 직접 언급하며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원수님과 심장의 박동을 함께하지 않고 행복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 말로만 일하고 시간을 쪼개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혁명의 동행자라고 할 수 없다”고 썼다. 이어 “김정은 원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 인민들 모두의 혁명적 신념을 억년 흔들리지 않게 받들어주는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장성택 측근들이 처형된 11월 중순 이전부터 이미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기 위한 작업도 진행돼 왔다. 10월 15일 노동신문은 1면 사설에서 “우리는 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선군사상을 튼튼히 틀어쥐고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열어주신 선군혁명의 길을 따라 곧바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 주요 인사에 대한 숙청을 앞두고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 장성택 숙청 이후 체제 결속 강화돼 김정은 일가에 대한 찬양보도는 장성택의 숙청, 김정일 사망 2주기(12월 17일) 등과 맞물리며 강도가 높아졌다.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일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과 사진으로 1∼3면을 모두 채웠다. 1면에 실린 사설에서는 “온 나라가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흠모의 정으로 세차게 끌어 번지고 있다”며 “‘강성국가 건설’이라는 ‘유훈’을 관철시키려면 모든 부문과 단위에서 힘차게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김정일을 찬양하는 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간부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간부들은 김정일에 대한 추모와 함께 “이 땅 위에 태양의 역사가 영원히 줄기차게 흐르게 하신 분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라며 충성을 다짐했다. 2일에는 김정은의 찬양가인 ‘내 조국강산에 넘치는 노래’의 가사와 악보를 노동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김정일에 대한 그리움을 부각시키고 영웅화하려는 의도와 동시에 그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 체제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조치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간담회에서 “북한이 김정일 사망 2주기를 앞두고 추모분위기와 유일적 영도체제 확립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러한 보도들이 장성택의 위상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고 밝혔다. 현재 북한은 공식 매체를 통해 장성택과 관련된 보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김정일의 유훈, 김정은에 대한 충성 등을 강조하는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 대북 전문가는 “장성택 측근들의 처형은 이미 북한 권력층은 물론이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을 것”이라며 “일련의 보도는 이들의 비리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4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역대 장관 중에는 처음으로 귀환 납북자들을 직접 만났다. 이날 류 장관은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열린 전후(戰後) 납북자와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간담회에는 1972년 납북됐다가 올해 9월 귀환한 전모 씨(67)를 포함해 납북자 6명이 나왔다. 이들은 납북된 후 북한에서의 생활, 국내로의 귀환 및 정착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또 아직 북에 남아있는 납북자들에 대해 정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주기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류 장관은 “귀환 납북자들이 남한에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납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휴전 이후 납북된 인원은 총 3835명이다. 현재까지 3319명(86.5%)이 남한으로 돌아왔지만 516명은 여전히 북한에 억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이자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은 향후 북한의 세력 구도를 뒤흔들 메가톤급 변수다. 김정은을 대신해 사실상 섭정을 해온 ‘2인자’까지 내친 ‘피의 숙청’은 북한 내 권력 지형을 극심하게 요동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북한의 향후 대남, 대외 행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친인척 척결? ‘2인자’들의 권력 암투? 북한이 장성택을 숙청한 표면적인 이유는 그의 핵심 측근들이 저지른 비리다. 장성택의 심복인 이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부정부패 등 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11월 군 당국이 적발해 ‘반당(反黨) 혐의’로 공개 처형했고, 장성택까지 책임을 물어 쳐낸 것으로 보인다는 게 안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의 사법·검찰·공안기관을 모두 지도하는 노동당의 핵심 부서인 행정부는 장성택을 따르는 심복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평양 내 10만 가구 건설 등 비자금 조성이 가능한 대형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부서이기도 하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의 측근 인사들이 단순히 뇌물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나름의 ‘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에 처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숙청되면서 당 행정부는 향후 기능이 무력화할 개연성이 크다. 장성택의 전격 해임은 집권 2주년을 앞두고 김정은의 ‘가신그룹’ 정리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사안의 성격이나 비중으로 볼 때 이번 숙청은 김정은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라며 “김정은이 자신의 정적, 아버지 김정일의 공신을 차례로 정리한 이후 친인척 관리에 나선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최근 북한에서 40, 50대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를 중심으로 한 ‘김정은 신진 세력’이 부상하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자기 사람들’을 새롭게 심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친인척과 그 세력을 제거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탈북자 출신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북한의 1인 지배체제가 공고히 됐다는 뚜렷한 반증”이라며 “2인자가 없다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켜 김정은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지도부는 공개 처형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주위로 전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당국 관계자도 “공개 처형 사실이 믿을 만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2인자’ 자리를 놓고 장성택과 또 다른 핵심 실세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권력투쟁을 벌인 결과라는 관측도 있다. 최룡해는 항일 빨치산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로 ‘혁명 1세대’의 핏줄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아 왔다. 장성택과 최룡해는 지난해 말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3차 핵실험 과정에서 견해차를 보이며 충돌했고 이후에도 불협화음이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 숙청’으로 북한의 대내외 행보 흔들 전문가들은 장성택의 실각이 숙청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온 김씨 일가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1950, 60년대 연안파 숙청 등으로 권력을 공고화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1997년 ‘심화조 사건’ 등을 지휘하며 숙청의 칼날을 휘둘렀다. 김정은의 경우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에 군부의 ‘(김정일) 운구 4인방’으로 불리던 권력 핵심을 대부분 숙청했다. 군의 최고 실세였던 이영호 총참모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모두 숙청됐거나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고위 인사가 아닌 경우에도 김정은의 직접 지시로 공개 총살형이 집행되는 등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정은을 보위하는 양대 축 중 하나였던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북한 내부는 크게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당국도 최근 김정은에 대한 절대 충성을 강요하는 사상 교육을 부쩍 강화하는 등 후폭풍을 어떻게 차단할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이 최근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세상 끝까지 김정은과 운명을 함께하자’고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움직임으로 보인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이 장성택이라는 강력한 협조자를 잃은 상황에서 체제 불안정성이 크게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일이 또 다른 권력투쟁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향후 대남, 대외 정책이 더 강경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통이던 장성택이 밀려나고 군부의 인사권을 장악한 최룡해가 실세로 권력을 틀어쥐게 되면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내부 동요가 발생하면 내부단속 목적으로 대외 긴장을 높이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며 “한반도 정세가 다시 악화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최근 시도해온 각종 경제개혁 조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지난해 8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나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 관리위원회 설립에 합의하는 등 북한의 특구 개발 및 외자 유치를 주도해온 인물로 알려져 왔다. 그런 장성택이 실각한 만큼 북한이 최근 추진해온 경제개발구 설립이나 6·28 개혁 조치 등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철중 기자}
정부는 3일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8·28 전월세 대책’에 대한 후속 보완책을 내놓는다.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내일 회의에서 8·28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을 평가하고 발표한 대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수석은 “현 시점에서 대책을 어떻게 보완할지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8·28 대책은 전세로 집중된 주택 수요를 매매로 돌리기 위해 연리 1%대의 장기 대출을 포함해 세제, 금융 지원을 총망라한 조치다. 대책 발표 이후 집값이 하락세를 멈추고 소폭 반등했다. 하지만 취득세 영구인하 등 후속 입법이 지연되면서 대책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 수석은 “지금도 법안 통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주택 거래를 미룬다는 전망이 나온다”면서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고 전세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관련 법안이 연내에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이르면 금주 중 개성공단 전자출입체계(RFID) 구축을 위한 공사가 시작되고 인터넷 연결을 위한 남북 간 후속 실무 논의도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의 오랜 숙제인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와 관련한 실질적 조치 마련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들은 “남북 관계의 실낱같은 ‘생명선’이자 ‘리트머스 시험지’인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진전된 조치가 어떻게든 올해 안에 있어야 한다는 데 남북한 당국 모두 공감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1일 “3통 문제에 침묵하던 북한이 이와 관련된 논의에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며 “RFID 공사 시작일을 비롯해 인터넷, 휴대전화 연결 등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곧 북측과 다시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남북한은 지난달 28일 개성공단 공동위 산하 3통 분과위에서 RFID 구축 공사에 합의했다. 9월 북한의 일방적인 회의 연기 이후 두 달 넘게 진전이 없었던 3통 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된 셈이다. 3통 문제의 해결은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핵심적인 선행 조치로 거론돼 왔다. 이는 북한이 외자 유치 목적으로 추진 중인 13개 경제개발구 설립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북한으로서도 그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도 3통 문제의 실질적 진전 없이 올해를 넘기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8월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 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개성공단’을 강조했던 정부로서는 그나마 개성공단에서라도 발전적 정상화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으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한 해 농사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시점에 발생한 개성공단 입주 기업 직원의 사망 소식이 향후 북한과의 논의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1일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7시 25분경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섬유업체 ‘아트랑’의 직원 추모 씨(54)가 현지 숙소에서 숨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했다. 정부 당국자는 “남측 숙소 내에서 자다가 숨진 추 씨에게서 특별한 외상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아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철중 기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설정 사태가 1주일을 지나면서 방정식이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미일 국방 당국은 중국의 ADIZ로 사전 통보 없이 군용기를 출격시키는 ‘무시 전략’으로 공동 행동에 나선 모양새다. 중국은 미일에는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한국에는 ‘대화로 풀자’는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이어도 공역을 중국 ADIZ에서 제외하라’는 한국 요구는 면전에서 거절했다. 한국은 이번 ADIZ 사태를 통해 언제든지 강대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는 지정학적 취약성을 노출했다. 반면 중-일이 서로 한국에 구애 공세를 펼친 데서 보듯 전략의 묘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한국)는 고슴도치가 돼야 한다. 중-일 모두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장기 전략 없는 ‘일방적 편들기 외교’는 위험 ADIZ 사태는 중국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시작됐다. 그렇다고 한국이 중국에 맞서는 카드로 미일과의 협력 강화를 택하는 건 위험한 카드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일본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협력을 내세우며 한국에 먼저 접근하는 게 기본 전략”이라며 “지금도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일본과의 협력은 역사 및 독도 문제로 국내 여론의 지지를 받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미일이 갑자기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한국만 외톨이 신세가 된다.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일본은 해양순시선을 들이받은 중국 선장을 ‘영해 침범 혐의’로 형사 처벌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맞서자 ‘사법 주권 포기’라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선장을 풀어준 바 있다. ADIZ 문제도 일본이 언제, 어떻게 태도를 바꿀지 알 수 없다. 중국이 미일을 상대로 먼저 태도를 바꿀 개연성도 있다. 2010년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당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통해 “남중국해가 중국의 핵심적 이익”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맞받으며 베트남과 연합 군사훈련에 이어 핵 협력 의지까지 보이자 놀란 중국이 먼저 물러섰다. ○ 중간자의 전략적 가치를 중재자의 역할로 활용을 한국이 미중일처럼 상대국에 물리적 위협을 통해 의견을 관철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일 3국 갈등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이 어려워지는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전략적 가치도 높아진다”며 “한국의 이런 위치를 지렛대(레버리지)로 잘 활용하면 우리가 힘이 없다고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 한국은 품어야 할 동맹이고 일본도 한미일 공조 차원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중국도 한국을 대립 관계인 미일의 편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려는 전략적 이해가 있다. 한국은 이런 중간자의 위치를 사태 해결의 중재자 역할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특히 ADIZ와 관련해 가장 할 말 많은 국가가 한국인 만큼 미중일 3국을 상대로 ‘ADIZ를 재설정하자’고 적극 주문할 수도 있다. 3국과 달리 한국의 ADIZ는 외국군(미군)이 6·25전쟁의 혼란 속에 설정한 것이고 마라도와 홍도 인근은 명백한 한국 영공임에도 다른 나라 ADIZ의 침범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는 “한국은 중-일과 싸울 의도가 없으며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방적인 ADIZ 선포가 유엔해양법 협약과 충돌할 수 있고 ‘ADIZ를 침범하면 민간 항공기에까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중국의 위협도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신창훈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법상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비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민항기 문제부터 푸는 것도 방법”이라며 단계적 해법 마련을 주문했다. 중국이 왜 이 시점에 ADIZ 카드를 꺼냈는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부 내 한 중국 전문가는 “집권 첫해에는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중국 지도부의 관례”라며 “시진핑(習近平) 취임 초기 초강경 외교 행보를 보이는 것은 중국이 보시라이(薄熙來) 사태와 부정부패 근절에 따른 내부 불만을 밖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조숭호 shcho@donga.com·김철중 기자}
《 방공식별구역(ADIZ·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이 낯선 용어가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고 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미국이 한국의 ADIZ를 설정했을 때는 그 뜻대로 방어(Defense)의 목적이 컸다. 항공기들이 영공에 진입하기 전에 식별해 충돌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3년 11월 23일 중국의 일방적 ADIZ 설정은 한국 일본 미국 등에 ‘심각한 도발’로 받아들여진다. 본보는 3회 시리즈를 통해 ADIZ 논란, 그로 인해 촉발된 동북아 패권 다툼, ‘고래(강대국)들’ 사이에 낀 한국의 과제와 전략을 살펴본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설정에 따른 한중, 중-일, 미중 갈등 양상과 동북아 정세 불안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부터 우려해온 ‘동북아 패러독스’의 생생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경제 사회 문화 교류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역사 및 영토분쟁 등 외교 안보 갈등이 촉발되면 지역 전체가 긴장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1무역국, 일본은 제2무역국이다. ○ ADIZ 대립으로 분출한 해상통제권 갈등 “바다의 갈등이 공중으로 분출됐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당국자는 ADIZ 논란의 핵심을 이같이 표현했다. 그동안 태평양이라는 바다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간의 기싸움과 갈등이 ADIZ 설정을 통해 공중으로 옮아간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한 국력을 군사력으로 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경제대국’에서 ‘군사대국’으로의 변모를 가속화해 왔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이 해군 창설 60주년 연설에서 “근해해군에서 벗어나 대양해군으로 거듭나자”고 공식 선언했다. 매년 2척 이상의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는 중국은 2012년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까지 갖게 됐다. 2015년까지 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島鍊線·island chain)’, 2020년까지 괌∼사이판을 연결하는 ‘제2도련선’의 해상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이에 따라 △영해기선 선포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尖閣 열도) 영해 순찰 상설화 △ADIZ 선포 등 대외 조치의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 미일은 대중(對中) 봉쇄전략 추구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2011년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공식 외교라인으로 채택했다. 2020년까지 현재 대서양과 50 대 50으로 양분된 태평양 미군 전력을 6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도 정했다. 미국은 호주 주둔 미군을 현재 250명에서 1100명으로 크게 늘리고 호주 해군은 주일미군 항모전단의 일부로 작전토록 했다. 또 △미군의 필리핀 재주둔 추진 △말레이시아 사상 첫 항모전단 기항 △인도네시아 미얀마와의 군사협력 강화 △태국과 첫 공동비전 성명 등의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내년에는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미-아세안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다. 아시아 지역 군사훈련 강화를 위해 1억 달러(약 1060억 원) 예산도 추가로 배정했다. 사실상의 중국 봉쇄정책인 셈이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6월 아시아 지역 대비태세 재조정에서 미일 군사 유대의 ‘본질적 진전’을 언급했고 이후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본도 △센카쿠 국유화 △자위권 확보 위한 헌법 재해석 △주일미군의 인력 및 장비 보강 협조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 한국, 러시아 5년간 64차례 침범해도 안일 대응 한국은 미중일의 태평양 제해권 경쟁에서 비켜서 있었다. 한때 ‘바다로 세계로’라는 구호로 대양해군을 표방했던 한국 해군은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연안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무슨 대양해군이냐’며 움츠러들었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방어에도 허점을 드러내왔다. 이어도가 KADIZ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 마라도와 홍도 인근 영공이 일본 ADIZ와 겹친다는 원초적 문제의 미해결 상태가 계속돼 왔다. 올해 러시아가 KADIZ를 침범한 사례만 18건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침범은 무려 64차례. 사실상 KADIZ 무력화 시도인 셈이다. 올해 중국도 3차례, 일본은 1차례 KADIZ를 침범했다. 한국 정부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중국의 ADIZ 설정으로 한국의 외교가 테스트 받게 됐다”며 “한미동맹, 한중관계 모두 중요한 한국이 미중 양국으로부터 ‘누구 편이냐’의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김철중 기자}
북한이 김정은 정권 유지를 위해 ‘지도층 달래기’에 적극 나서면서 소수 특권층의 과도한 사치가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북한 당국이 특권층의 부정부패를 눈감아주고 오히려 이들의 과소비를 방치하면서 북한 사회의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10만 달러(약 1억 원) 이상을 가진 부유층은 북한 전체 인구(2500만 명)의 약 1%인 2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당정군의 고위 간부들로 대부분 평양에서 198∼231m²(약 60∼70평)의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외제차와 해외명품을 쓰는 등 남한 사회 못지않은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 소식통은 “이들은 액정표시장치(LCD) TV 등 한국의 삼성 LG 가전제품을 갖추고, 집안에 사우나 시설까지 있다”며 “개당 1000달러(약 106만 원)가 넘는 수입 화장실 변기까지 설치한 집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특권층의 씀씀이가 더욱 커졌다는 게 최근 북한을 다녀온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평양의 특권층은 점심 한 끼 식사에 500달러씩 지불하며, 대동강변에 있는 커피숍에서 핸드드립 커피와 와플을 즐긴다. 평양의 대학생들은 한 대에 200∼300달러인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여느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판매점 앞에 줄을 선다고 한다. 북한 당국도 특권층의 소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대형 쇼핑센터와 고급 레스토랑을 잇달아 개설하고 있다. 5월 초 평양 대동강변에 문을 연 상업시설 ‘해당화관’은 사우나 이용료가 15달러, 마사지 이용료는 45∼70달러이다. 외화로 요금을 받고 있으나 이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설명했다. 이러한 행태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민간이 보유한 자금을 양성화하려는 북한의 정책과 맞물려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올해부터 기업소와 주민들이 주택을 짓거나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고 기업들의 외화 사용도 공식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 내 주택건설 경기가 상승했으며, 자금난을 겪는 관영 상점이나 식당의 경우에는 개인이 직접 투자해 운영하는 곳도 많아진 것으로 전해졌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22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식당.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마주앉은 외교안보 분야의 원로 전문가들에게서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한 우려와 제언이 쏟아졌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과 통일원 차관을 지낸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주중 한국대사를 역임한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 등 정부의 국가안보자문단으로 활동하는 고위관료 출신 원로. 김 실장이 최근의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싶다는 취지로 편하게 만든 저녁식사 자리였다고 한다. 북핵 문제는 물론이고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 및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외교안보 분야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국가안보실 수장의 고민이 묻어있는 ‘암행 자문’인 셈이다. 이날 이야기의 주제는 일본 문제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문위원은 한일 관계의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중일 3국의 역사 교과서 공동 발간이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다음 달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방한, 내년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예정된 만큼 그 이전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반면 또 다른 자문위원은 “과거 일본의 패턴으로 볼 때 한국과의 관계 개선 제스처를 취하다가도 몇 달 뒤에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강행하며 한국 정부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지금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마른 나뭇가지를 껴안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라는 강경한 표현도 나왔다.金실장 “朴대통령, 한일관계에 신경” 김 실장은 이런 이야기들을 묵묵히 경청했다고 한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며 청와대의 생각과 대응 방향을 설명했다. 한 전문가는 “김 실장이 국가안보자문단은 물론이고 다른 민간전문가들의 의견도 계속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가 겉으로는 대일 강경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나름의 해법을 찾기 위한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남한에서의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북한의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정부는 22일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지만, 오히려 북한은 학생 노동자 등 북한의 각종 사회단체까지 앞세워 대남 비방전을 확산시키고 있다. 23일 북한의 학생단체인 조선학생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악랄한 진보민주세력 말살 책동과 유신독재의 부활을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대중적 투쟁이 날로 격렬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학생위는 “남조선에 악명 높은 유신독재가 되살아나게 되면 청년학생의 소중한 꿈과 앞날에 대한 희망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근로자 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도 22일 한국 정부의 반박 성명 직후 대변인 담화를 내고 “조선의 각계각층은 낡고 부패한 독재정치를 갈아엎고 인민의 새 정치를 안아오기 위한 정의로운 항쟁에 나서야 한다”고 선동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시험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면 옆자리에 앉은 소중한 친구가 경쟁자가 됩니다. 학교는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각자 꿈꾸는 인생 항로를 안내해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서울 동작중학교를 찾아 이같이 말했다. 학교 방문은 ‘자유학기제’의 운영 현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뤄졌다. 자유학기제란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시험 부담을 주지 않고,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형 수업’을 통해 진로탐색 기회를 주는 교육과정으로 올해 2학기(9월)부터 동작중 등 일부 학교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날 1학년 과학 수업을 참관한 박 대통령은 학생 4명과 한 조를 이뤄 ‘이쑤시개를 활용한 교량 하중 실험’을 함께 했다. 수의사가 되는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는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평생 일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실력이 처음에는 비슷해도 나중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수업 참관 후 학부모 교사 학생들과 간담회를 했다. 박 대통령은 “교육은 주입식으로 넣는 게 아니라 원래 타고난 것을 잘 끌어내주는 것이라고 볼 때 자유학기제는 의미가 매우 크다. 자유학기제를 교육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실 소속 행정관 한 명이 민간 기업으로부터 상품권을 받고 골프 접대를 받은 사실이 본보 보도로 드러나면서 청와대의 공직기강 확립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한 달 전쯤 경제수석실 행정관 3명이 교체됐다. 그중 한 명이 소액의 상품권을 받았고 청와대에 오기 전에 골프와 관련된 일이 있었다”며 “청와대는 특수한 곳인 만큼 일반 부처보다 도덕적인 잣대를 굉장히 엄격히 적용해 해당 부처로 복귀를 시켰다”고 본보 보도 내용을 인정했다. 그는 “나머지 두 명은 문제가 있어서 나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원대 복귀된 행정관은 10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해외 순방기간에 대통령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진행한 내부 감찰 때 서랍 속에서 상품권이 발견돼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본보 보도가 나간 뒤 일부 수석들과 긴급회의를 갖고 “사실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발표하자”고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석들은 “명확히 시인하지 않고 갈 경우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고 특히 공직기강은 확실히 다잡는다는 기조하에 수시로 내부 감찰을 해 왔다”며 “연말을 맞아 청와대뿐 아니라 고위공직자 등 공직사회 전반으로 대대적인 감찰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정부 각 부처에서도 연말을 맞아 자체 감찰을 강화하며 공직 기강 확립에 나서고 있다. 공직비리 감찰을 담당하는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직원 30여 명이 제보를 토대로 상시 감찰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말에는 세종시 2단계 청사 이전이 예정돼 있어 공무원의 업무 태만, 근무지 이탈에 대한 감찰 수위를 더 높일 계획이다. 공직복무관리관실 관계자는 “연말과 설 연휴 등을 앞두고 첩보 수집과 현장 감찰을 크게 강화해 업무량이 지난해보다 2, 3배로 늘었다”면서 “관행에 의한 사소한 것일지라도 직무와 연관성이 있다면 적발해 엄히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도 11월부터 연말까지 경찰청 본청 감찰 인력 24명을 총동원해 집중 감찰을 벌이고 있다. 감찰 대상도 본청, 부속기관, 지방경찰청, 전국 일선 경찰서 등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동정민 ditto@donga.com·김철중 기자}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놓고 여야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 가고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20일에도 ‘특검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 원내대표는 최고위원·중진 의원 연석회의에서 “수사 중,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한 특검 요구는 국론 분열과 정쟁의 확대·재생산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국정원 국회 특위 수용안에 합의한 뒤 정국 정상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특검 도입이 여야 대치 정국을 푸는 열쇠임을 재차 강조했다. 김한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진상을 규명하겠다면서 특검은 안 된다는 대통령의 뜻은 ‘갈증을 해소해 주겠다면서 물은 못 주겠다’는 억지와 같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개혁 국회 특위 수용을 여야 대치 정국을 타개할 카드로 내놓은 뒤 수차례 여야 원내대표단의 물밑 접촉이 이어지고 있지만, 특검에 막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대치 정국은 감사원으로 불똥이 옮아 붙고 있다. 민주당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거취와 연계했기 때문이다. 다음 달 중순까지 황 후보자의 임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감사원의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 구성이 무산된다. 현재 감사위는 감사원장 대행인 성용락 위원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다음 달 15일로 성 대행의 감사위원 임기(4년)가 끝나면 감사위 구성 요건(5명 이상)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날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을 놓고 여야가 또다시 설전을 이어갔다. 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은 매일 상황보고와 심리전 내용을 국방부 장관에게 제출했고 이 내용은 청와대에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안규백 의원은 국정원의 심리전 지침이 특수정보 보고서인 ‘블랙북’ 형태로 국방부 장관을 통해 청와대에 직보됐다고 가세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부인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이 “군의 (정치) 개입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선 개입을 기정사실화하자 정홍원 국무총리는 “임신 중인 사람에게 애가 어떻게 생겼냐고 하는 것과 같다. 수사 결과를 보고 말해 달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은 “정치권의 의혹 확대로 사이버사령부가 희생양이 됐다”며 “사이버사령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전수 조사한 결과 정치 관련은 3.6%(259건), 대선과 관련된 것은 1.3%(91건)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장관은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과 관련해 “우라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북한 플루토늄이 아닌 우라늄 핵무기 개발 능력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이 재가동한 것으로 알려진 영변 원자로에 대해서도 “시험가동을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본격 가동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진균 leon@donga.com·김철중 기자}
영토 및 역사 분쟁 갈등이 계속되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평화지수’ 순위가 일제히 하락했다. 반면 북핵 위협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악영향을 주는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안정돼가면서 평화지수 순위가 10계단이나 상승했다. 18일 세계평화포럼(이사장 김진현)이 통계수집이 가능한 143개국을 대상으로 △국내정치 △군사외교 △사회경제 등 3개 부문을 종합 분석한 ‘세계평화지수 2013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화지수 순위는 42위(78.5점)로 지난해(41위)보다 한 계단 떨어졌다. 일본(24위)은 경기 침체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의 여파로 전년 대비 5계단 하락했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와 남중국해 등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112위)도 3계단 떨어졌다. 올해 1위는 독일(92.1점)이 차지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