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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통영의 딸’ 신숙자 씨를 반드시 구해내야 하는가. 첫째, 신 씨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 씨는 낯선 땅에서 외화를 벌어 가난한 조국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던 1960년대 파독(派獨) 간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셋째, 신 씨는 아이들의 아빠와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 북한 공작원에게 속아 가족을 데리고 입북한 남편 오길남 씨가 해외 유학생을 포섭해 데려오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떠나기 전에 “당신이라도 탈출하라. 탈출에 성공하면 우리를 빼내라. 그렇게 되지 않을 땐 우리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결연한 당부로 또 다른 국민의 희생을 막았다. 25년 회한의 세월을 보내온 오 씨는 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아내를 구하는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어제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구출! 통영의 딸 100만 엽서 청원운동’에서 오 씨는 주소도 알 수 없는 아내와 두 딸에게 엽서를 보냈다. 1986년 북한을 나올 때 두 딸 혜원과 규원의 나이는 7세와 10세였다. 지금은 32세와 35세로 성장했을 두 딸과 69세의 아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청원운동을 주도하는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는 고려대 학생회장이던 1991년 북한 체제를 찬양하며 박성희 성용승 등 두 대학생을 평양에 보내는 결정을 주도했다. 그는 지금 속죄하는 심정으로 신 씨 송환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27개 시민단체가 참가한 이 청원운동은 국민 100만 명의 엽서를 모아 대한적십자사와 유엔에 전달할 계획이다. 그제 미얀마 독재정권이 미국 유럽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정치범 300명을 석방했다. 유엔을 통한 압력이 신 씨 모녀 구출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북한은 미얀마보다 더 악독한 정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햇볕정책을 펴면서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한꺼번에 북한으로 돌려보내고도 단 한 명의 납북자도 구해내지 못했다. 인권은 좌우의 이념을 떠나 그 이념이 서있는 토대일진대 한국의 자칭 진보 세력은 납북자나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발의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발목잡기를 계속하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북한 눈치를 보면서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고 있다. 신 씨 모녀 구출 운동은 납북된 우리 국민 약 500명을 자유의 땅으로 데려오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큰 발걸음의 시작이 돼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용훈 사법부에서 잇따라 나온 ‘튀는 판결’을 비판했다. 그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튀는 판결과 소신 판결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면서 “대법원 판결은 법 해석의 통일 기준이기 때문에 하급심은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폭력 사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유죄로 바뀌었다.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은 1심에서 재판부에 따라 유무죄로 갈려 혼선이 빚어졌으나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이 났다. 똑같은 법률의 적용을 받고, 증거 인정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법관의 법률해석 논리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니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판사는 상급심에서 자신의 판결이 깨지는 것을 수치로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법관은 영미권 법관과는 달리 선례(先例) 구속의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래서 판례 변경을 시도하기 위한 소신 판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누가 봐도 상급심에서 파기될 것이 뻔한 판결을 한다면 그건 독단이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양심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인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법관도 공유할 수 있는 양심을 말한다. 헌법이 양심 앞에 헌법과 법률을 놓은 것은 법질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판사는 국민이 선출한 입법자(立法者)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이 판사 스스로 생각하는 정의와 다르다고 해서 입법적 법률해석을 하는 판사는 법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검사가 유죄 취지의 기소를 했으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불이익이 따른다. 판사 역시 자신의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집히면 상응한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대법원장이 법관 인사권을 활용해 튀는 판결을 통제하는 것이 곧 법관의 독립성 침해는 아니다. 양 대법원장의 말처럼 판결은 운동경기가 아니다. 운동경기는 승패가 엇갈릴 때 관중의 흥미를 더 끌 수 있지만 판결은 결론이 엎치락뒤치락하면 불신을 받는다. 양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이 1년에 100∼200명씩 큰 기업 신규직원 채용하듯 법관을 채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판사가 된 사람 중에는 세상 공부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튀는 판결을 막으려면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을 막 나온 신출내기보다는 변호사 경력을 쌓은 법조인을 중심으로 법관 충원을 늘려나가야 한다.}
우리 군의 최고 작전책임자인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비롯한 대장급 4명이 교체된다. 합참의장에는 정승조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이 내정됐다. 해군 참모총장에는 최윤희 해군 참모차장, 연합사 부사령관에는 권오성 합참 합동작전본부장, 1군사령관에는 박성규 육군교육사령관이 각각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해 임명된다.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이 추진 중이고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앞두고 있어 이번 인사에 대한 군 안팎의 관심이 크다. 군 수뇌부 교체는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의 대비 태세와 대응능력 강화에 도움이 돼야 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1년(11월 23일)을 앞둔 한반도 안보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북한은 천안함 포격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전면 전쟁’을 들먹이며 대남(對南) 협박을 거듭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그제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심리전 본거지에 대한 직접 조준격파 사격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임의의 시각에 실전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지난해와는 다른 형태의 도발을 할 가능성도 크다.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탈북자 독살 시도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은 요인 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를 노린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로 강화됐던 우리 사회의 대북(對北) 경계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풀어지고 있는 징후가 보인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둔 선거 바람에 휩쓸려 대북 유화론이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은 조금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지난해 북한이 처음으로 우리 영토에 대한 포격 도발을 했음에도 우리 군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연평도 현지 부대는 우왕좌왕했고 합참의장은 강력한 응징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신임 합참의장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해올 경우 철저하게 보복한다는 결전의 태세를 군 전체에 심어줄 책임이 있다. 지휘관이 결기를 보여야 수하 장병이 싸워 이길 수 있다. 정 합참의장 내정자는 자이툰부대 사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미국통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상존하고 중국 세력이 지속적으로 팽창되는 안보 환경에서 강력한 안전판인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 박원순 변호사의 대형 사진 현수막이 서울 안국동 옛 참여연대 건물에 내걸렸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서울시장 선거 범야권 후보가 된 박 변호사의 선거사무실이 이곳에 마련됐다. 여의도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정당정치의 수호를 역설하면서 나경원 후보 지원을 선언하고 나섰다.SNS 정치와 시민단체의 한계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도식에서 보면 정치그룹(political group)이나 정당(political party)도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선거권이 급속히 확대됐다. 후보자가 잘 아는 소수의 유권자 대신 잘 모르는 다수의 유권자를 상대하게 되자 단순한 정치그룹 대신 조직력과 자금력을 갖춘 정당이 등장했다. 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그때부터 싹텄다. 독일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정당이 애초 시민사회에서 나왔음에도 권력 체계에 포섭됐다고 보고 새로운 시민운동을 구상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신사회운동이고 그 대표적 조직이 시민단체다. 그러나 서구에서 시민단체는 대체로 정치의 일원이 되는 것을 자제하고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데 만족했다. 물론 정당을 만들어 직접 정치에 뛰어든 경우도 없지는 않다. 독일에서 환경운동단체가 녹색당을 창당해 정치권에 진입했지만 아직은 군소정당으로 기민당 대 사민당의 구도를 깨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 변호사는 녹색당 대표와 무소속 등으로 여러 차례 대선에 출마했지만 공화당 민주당 양당 구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스웨덴 독일 등에서 ‘해적당’의 새로운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 미미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정당이 유례가 없는 시민단체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당이 다른 정치 결사체를 앞서는 힘은 조직력에 있다. 박 변호사는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대결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조직력의 한계를 극복했다. 박 변호사는 SNS의 힘을 빌려 이제 한나라당의 나 후보까지 꺾을 기세다. 그의 선거캠프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때 SNS의 숙달 정도를 체크한다. 디지털의 시각으로 보면 정당의 조직력이라는 것은 19세기에 기원한 아날로그적인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지지자를 더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면 정당의 조직력은 왜 필요한가. SNS는 정당정치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예고하고 있다. SNS 정치에서 결정적 역할은 정당의 당협위원장이 아니라 유명인이 한다. 트위터에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조국 서울대 교수나 소설가 공지영, 혹은 김제동 김여진 같은 연예인들이 누구를 지지하냐가 중요하다. 그들이 트위터를 통해 인증샷을 요구하면 팔로어들은 충성스럽게 투표소로 달려간다. 정당정치에서 당협위원장 몇 명이 하는 역할을 유명인 한 명이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명사(名士)정치라고나 할까. 서양에서 정당정치가 뿌리내리기 전 명사들이 선거를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있었다. 당시 유권자들은 정당의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명사들을 따라 투표를 했다.범야권 주도권 잃은 민주당 그러나 명사정치는 한계가 있다. 명사들은 선거가 없으면 활약할 여지가 적어진다. 정당은 한 선거와 다음 선거 사이에서는 국민의 의견을 정책으로 집약해 국정에 반영하는 역할도 한다. SNS 정치로는 그 일을 해내기 어렵다. 박 변호사가 진다면 정당정치 위기론은 육지에 상륙한 열대성 저기압처럼 소멸할 것이지만 그가 이긴다 해도 결국 정당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다만 박 변호사의 민주당에 대한 승리는 더는 민주당이 범야권의 보스를 자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박 변호사는 스스로 “미래에 탄생할 더 큰 민주당의 당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민노당 쪽으로 확 끌려간 야당이 출현할 수도 있다. 그때 사라지는 것은 정당이 아니라 중립을 외쳐온 시민단체의 정체성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는 컴퓨터로 주고받는 e메일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문자메시지는 철자나 문법, 구문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편하고 빠르게 써서 보낸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다. 할머니에게 ‘오래 사세요’라고 보내야 할 문자를 ‘할머니 오래 사네요’라고 보내기도 하고,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사줬다가 ‘고마워 자기야. 사망해∼♡’와 같은 문자를 받기도 한다. ▷주어를 빼고 쓰다 보니 의미가 헷갈리는 때도 있다. 이동관 대통령언론특보가 박지원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가 그렇다. 이들 문장의 의미는 두 번째 문장의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천지차이다.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박 의원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가 될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내가 박 의원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가 될 수도 있다. 생략이 화근(禍根)이다. ▷이 특보는 박 의원이 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들먹인 데 대한 항의로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박 의원은 발끈해 국정감사장에서 이를 공개했고 이 특보는 ‘내가’라는 말이 빠져 오해가 생겼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주고받았다고 볼 수 있는 메시지를 공개한 박 의원이나 주어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메시지를 확인도 없이 성급하게 보낸 이 특보나 모두 잘한 게 없다. 전화로 했더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을 문자로 보내다 보니 생긴 일이다. ▷문자메시지는 음성 통화와 달리 기록으로 남는다. 불륜 관계에서 은밀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가 배우자에게 들통 나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은 간통했다는 물증이 없더라도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사랑해’ ‘헤어진 지 이틀 됐는데 보고 싶어 혼났네’ 등의 문자를 주고받았다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이동통신사업자는 문자메시지를 보관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곳은 사용자의 휴대전화뿐이다. 결국 제때 삭제하지 않은 쪽의 책임이 크다. 때로는 망각이 기억보다 낫듯이 음성처럼 사라지는 것이 문자처럼 남아 있는 것보다 나은지 모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월가)에서 3주 전부터 벌어진 시위가 지난 주말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워싱턴으로 번졌고 캐나다 등 외국으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애초 이 시위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목표도 분명치 않았다. 처음에는 일자리 없는 젊은이와 학생들이 월가 근처 공원에 모여 얼굴 페인팅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모임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 사이에 극심한 빈부격차와 월가의 카지노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점차 시위대로 변한 이들은 “월가를 점령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시위대는 “미국인의 상위 1%가 하위 90%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있다” “은행가들은 잘나갈 때는 자기 배만 채우더니 파산 직전에 몰리면 정부에 빚더미만 지우고 국민을 실직자로 만들고 있다”며 분노를 키웠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배우 수전 서랜던 같은 유명인과 거대노조 운동가들이 찾으면서 시위대는 지난 주말 뉴욕에서만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월가 시위는 프랑스와 영국의 이민자 폭동, 그리스의 복지병(福祉病) 시위, 아랍 국가의 민주화 시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민자 폭동과는 달리 약탈이 없고, 복지병 시위 같은 격렬한 가두투쟁도 없었다. 민주화 시위처럼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지도 않는다. 단지 보행자 통로로 다니라는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차도를 행진했다는 이유로 시위대 700여 명이 연행됐을 뿐이다. 월가 시위는 세계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위대가 주장하는 반(反)시장주의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은행과 기업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세상의 불신과 불만을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은행은 리스크만 사회에 돌리고 이익은 혼자서 챙기지 않았는지, 기업은 직원들을 배려하기보다는 경영진과 대주주의 배만 불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라고 월가의 시위대는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한 쌍이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점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스스로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변신했다. 1930년대 대공황은 케인스식 경제와 베버리지식 복지로, 1980년대 인플레이션에는 대처와 레이건식 경제로 위기를 극복했다. 세계 각국의 정부 기업 은행 자본가들은 이번 월가 시위에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북한 김정일의 손자이자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귀고리와 목걸이를 한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외국인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 밑에는 둘이 나눈 ‘사랑한다’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김한솔은 마카오에 있는 연국(聯國)국제학교를 다녀 영어에 능통하다. 현재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학교 고교 과정에 입학허가를 받고 준비 중이다. 1년 학비가 3000만 원이 넘는 학교다. 김한솔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반가운 생각보다 기이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가 북한 주민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젊은이 중에는 올봄 아랍 국가에서 민주혁명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컴퓨터는 있지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평양을 벗어난 곳에 살고 있는 주민은 헐벗고 굶주림에 지쳐 있다. 김한솔은 연국국제학교 동창인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를 상대로 ‘민주주의인가 공산주의인가’라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하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떠돌고 있는 자유분방한 김정남의 아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북한 체제의 혜택을 받고 자란 왕족(王族)이 그런 얘기를 하니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김씨 왕조국가다.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세습한 아들 김정일과 손자 김정은만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과 동복 형 김정철은 권력에서 밀려났다고 하지만 왕조시대 대군(大君)처럼 해외를 유람하며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남은 중국과 마카오를 오가며 돈을 여유롭게 쓴다. 김정철은 에릭 클랩턴의 해외 공연에 여자친구들과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김정일은 공산주의 치하의 동독에서 잠시 유학한 경험밖에 없지만 그의 아들들은 모두 스위스 학교에서 공부했다. 김정일 자녀의 서구 경험은 아직까지 북한에 어떤 변화의 미풍(微風)도 가져오지 못했다. 중동 국가의 왕족들도 서구에서 공부했지만 자기 나라를 민주화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민중 주도의 민주화 시위를 맞고 있다. 북한 주민의 삶과 유리된 채 서구 사회를 경험한 김정일의 아들과 손자들은 북한 체제가 붕괴된 후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스스로도 불안할 것이다.}
선재성 전 광주고법 부장판사가 친구 변호사를 법정관리기업에 소개하고 투자이익 형태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선 판사가 파산재판부 재판장이었을 당시 법정관리인에게 친구 변호사를 소개한 것이 조언이나 권고에 불과하지 알선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파산재판부의 감독을 받는 법정관리인이 재판장의 권고를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처지였는지 의문이다. 선 판사의 부인이 남편 명의의 통장에서 2억 원의 투자자금을 빼내갔는데도 부인의 투자여서 몰랐다는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도 상식에 비춰 논란의 소지가 있다. 뇌물 혐의이든 알선이든 소개의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처벌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논리다. 검찰 수사가 선 판사의 혐의를 입증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수사 초기에 선 판사와 친구 변호사 등에 대해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11건을 기각해 그때부터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이 재판에 안이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다. 선 판사는 21년 법관 생활 중 19년 동안 대부분 광주지법 판사로 근무한 향판(鄕判·지방판사)이다. 광주지법이 선 판사의 재판을 맡을 판사의 부담을 고려해 검찰에 다른 법원으로 관할을 옮겨 재판하는 방안을 권고했는데도 검찰은 그대로 뒀다가 지금 와서 “법원에 자정(自淨)능력이 있을 줄 알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선고를 내린 형사2부 재판장 김태업 부장판사는 선 판사의 서울대 법대 후배로 올 초 광주지법에서 잠시 함께 근무했다. 그는 공판에서 선 판사에게 ‘피고인’이란 호칭 대신 ‘선재성’ 또는 ‘선 부장판사’라고 불렀다. 지법 부장판사가 휴직 중인 현직 고법 부장판사를 재판한 사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무죄 선고가 내려지니 판사는 법 위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방 법조계의 고질적 문제도 되짚어봐야 한다. 선 판사는 법정관리업체 관리인이나 감사로 친형이나 친구, 운전사를 선임해 물의를 빚고 광주고법과 대법원의 진상조사 끝에 징계를 받았다. 향판은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지연 학연으로 지역사회와 얽히기 쉽다. 사법부는 이번 기회에 향판 인사제도도 손을 봐야 할 것이다.}
실화소설을 영미권에서는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 1965년 트루먼 카포트의 ‘냉혈’이 현대 팩션문학의 시조로 꼽힌다. 그는 살인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고 많은 관련자들을 취재해 이 소설을 완성했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의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6대에 걸친 자신의 가계를 추적해 완성한 ‘뿌리’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TV 시리즈 ‘뿌리’를 보고 눈물을 흘린 시청자도 많았다. ‘밤의 군대들’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쓴 노먼 메일러도 대표적인 팩션 작가다. ▷최근 세간에 충격을 던진 영화 ‘도가니’의 원작이 바로 2009년 공지영이 낸 동명 소설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실화소설로 2000년부터 4년 동안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에 앞서 공지영은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많은 사형수와 인터뷰한 뒤 2004년에 완성했다. ‘우리들의…’는 실화소설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때부터 제대로 된 실화소설을 쓸 준비를 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팩션은 문학이면서 저널리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지영은 소설가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셈이다. 그것도 기존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미시적 권력관계에서의 비리’를 폭로한 훌륭한 저널리스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같은 소설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체험기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작가가 중량감 있는 사회비판 작가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공지영의 정치의식은 공정하지 못하다. 공지영은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첫 재판에서는 법정 구속으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검사는 3년을 구형했는데 죄질이 워낙 나빠 5년이 된 거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얼마 가지 않아 촛불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사이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난 거다. 시위에 가려 기사 한 줄 나지 못했던 거다”고 말했다. 공지영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1심이나 2심이나 사법부는 이용훈 사법부로 동일하다. 재판받은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인권을 외치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걸친 2000∼2004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강물을 저장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협곡과 유사한 지역에 저수지 형태로 물을 저장하는 댐(dam), 강바닥에 개폐식 수문을 설치해 물을 저장하고 흘려보내는 배리지(barrage), 수중보처럼 물이 일정 수위를 넘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도록 만든 위어(weir) 등이 있다. 우리나라 토목용어사전은 barrage(배리지)는 보로 번역하고, 댐과 위어는 영어 표현 그대로 쓴다. ▷잠실 신곡 등 한강수중보는 말로만 보라고 하지 개념적으로는 위어에 해당한다. 위어는 하천관리 방법 중에서 가장 친(親)환경적이다. 서울시장 야권후보로 나선 박원순 변호사가 보와 위어 사이의 개념적 차이를 무시한 채 “보는 한강을 일종의 호수로 만드는 건데 없애는 것이 자연적인 강 흐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잠실보를 철거하면 수위가 낮아져 서울시민의 식수원을 공급하는 취수탑을 옮겨야 한다. 수조 원의 예산이 들고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하다. 장마철을 제외한 시기에는 한강이 바닥을 드러내 모양도 흉하고 하수만 흘러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신곡보를 철거하면 김포평야 일대에 물 확보가 어려워지고 밀물 때 소금기 섞인 물이 올라와 수질이 탁해질 위험이 있다. ▷금강 등 4대강에 설치되는 16개 보에 대해서는 4대강 개발 비판론자들은 보로 해석하려 하고 찬성론자들은 위어로 해석하려 한다. 4대강 보는 규모가 크긴 하지만 물이 일정 수위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어에 가깝다. 그러나 둑의 높이가 높아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넘치지 않고 수문을 개폐해서만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면 보의 기능을 한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4대강 보는 정확히는 보와 위어의 절충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달 24일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금강 세종보가 4대강 16개 보 가운데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다음 달 6일에는 금강 백제보, 8일 영산강 죽산보, 15일에는 한강 여주보와 강천보, 낙동강 구미보가 차례로 개방될 예정이다. 4대강 보는 위어의 특징이 많이 가미돼 전형적인 보인 배리지보다는 훨씬 환경친화적으로 설계돼 있다. 이제 누구든지 직접 가서 4대강 보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의 탄생 120주년(10월 11일)을 맞으며, 그가 교육자 언론인 기업가 정치인으로서 한국 근현대사에 남긴 큰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학술대회가 어제 열렸다. 인촌은 일제 식민치하의 엄혹한 현실에서 민족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기반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경성방직, 중앙학교(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전신)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 동아일보를 통해 국부(國富)의 초석을 다지고, 인재를 양성했으며, 정부를 대신해 민중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인촌이 세운 경성방직을 “오늘날 선진 한국경제를 만든 기업들의 선구자”로, 한용진 고려대 교수는 인촌이 인수한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독립국가 건설에 이바지한 인재의 도량”으로,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인촌이 창간한 동아일보를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깨우친 등불”로 평가했다. 학자들은 “동아일보는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애국자들의 투옥과 석방 등에 관한 소식을 소상하게 전해 민족에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는 “일제 치하 국내에서 애국계몽운동을 통해 실력을 배양하고 국외에서 무력 독립을 준비하는 이중노선은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공유한 생각이었다”며 “좌파든 우파든 어떤 독립운동가도 인촌에게 친일의 잣대를 들이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애국활동보다 국내에서의 민족자강, 국권회복 노력이 더 가시밭길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촌은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조선인민공화국에 속지 않고 임시정부를 봉대(奉戴)했다. 또 신탁통치 결정 이후 김일성의 정치 선동에 이용당한 김구의 남북협상론 대신 이승만의 단정론을 지지했다.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은 좌파 사학자들이 인촌을 부당하게 분단세력으로 몰아가는 근거가 된 건준과 조선인민공화국은 무늬만 좌우합작이었으며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 결정은 졸속이었다고 지적했다. 진덕규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장은 “인촌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의 권력욕에서 빚어진 정치 행태를 바라보면서도 건국이 민족 최대의 과제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를 감내했다”고 말했다. 인촌은 이승만이 영구집권을 획책하자 주저 없이 부통령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당시 불온문서로 취급받아 언론에 실리지 못한 인촌의 부통령 사임서를 복사해서 읽었다”고 회고했다. 인촌은 힘든 시대에 선각자적인 혜안과 뛰어난 현실인식, 겸허한 인품으로 중론(衆論)을 모으고 몸소 실천했다. 우리가 새삼 인촌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오늘날 국정의 난맥과 이념적 혼란이 인촌의 시대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광복절 임진각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이 오케스트라는 유대인 지휘자 바렌보임과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팔레스타인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1999년 문명 간 공존과 평화를 호소하기 위해 만든 관현악단이다. 이스라엘 출신 단원과 함께 그와 적대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이란 등 중동 국가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주 북한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남북한 연주자들로 이뤄진 합동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 지휘자 밑에 남북한 연주자 동수로 구성된 교향악단의 구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6월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이자 서울에서 열리는 ‘린덴바움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인 샤를 뒤투아가 평양을 방문해 남북한 청소년 50명씩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구성에 대해 북한 측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었으나 통일부의 불허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뒤투아에게 선수를 뺏길 뻔했던 정 예술감독의 마음이 바빴나 보다. 자크 랑 프랑스 하원의원의 도움을 얻어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고 왔다. 랑 의원은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해 조만간 문을 열 프랑스의 평양 상주사무소 개설에 물꼬를 텄다. 그는 문화부 장관 재임 시 정 감독을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 감독으로 초빙했던 만큼 둘 사이는 각별하다. 두 사람의 노력으로 한국판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가 탄생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웨스트이스턴 디반은 ‘서동(西東)시집’으로 번역되는 독일 문호 괴테의 작품 이름이다. 괴테가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은 뒤 영감을 얻어 쓴 시집으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디반은 평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무지에 대항하는 프로젝트”라는 바렌보임의 말에 공감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잘한다고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같이 앉아 연습하고 연주하다 보면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꼭 10년 전인 2001년 9월 17일. 당시 이석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과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시민운동이 싹 튼 지 10년이 흐른 뒤였다. 한 해 전인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낙천낙선운동이 벌어졌고 이를 둘러싸고 경실련과 참여연대가 대립했다. 이석연은 “시민단체의 직접적 정치참여는 시민운동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박원순은 “(참여연대가) 정치세력과 유착됐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석연은 낙천낙선운동에 대해서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시민운동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반면 박원순은 “당대에 불법이었던 운동이 후대에 합법화될 수 있다”고 맞받았다.법 중시와 법 경시, 우파성과 좌파성 세상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철수 돌풍이 박원순 변호사(55)를 들어올려 서울시장 후보 선두자리에 앉혀놓더니 이번에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57)이 대항마로서 출마 의지를 밝혔다. 10년 전 정치참여를 놓고 공방을 벌이던 두 사람이 함께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둘 다 현재로선 정당 입당을 꺼리고 있지만 박원순의 민주당, 이석연의 한나라당 친화성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두 살 차이인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시민운동단체에 둥지를 틀었다. 이석연은 1994년 경실련에, 박원순은 1995년 참여연대에 들어갔다. 이석연은 1989년 생긴 경실련에 뒤늦게, 박원순은 사실상 참여연대 창립 회원으로 들어갔다. 경실련의 영문 이름은 Citizen's Coalition이고 참여연대는 People's Solidarity이다. 박원순은 “Citizen보다는 People로 써서 민중적 관점을 더 드러내려 했다”고 어느 책에 쓴 적이 있다. 두 사람의 맞수 관계는 이미 그때부터 시작됐다. 앞서 질풍노도의 1980년대를 이석연은 법률 분야 공직자로, 박원순은 인권변호사로 보냈다. 이석연은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행정고시,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94년 변호사로 개업하기까지 약 15년간 법제관과 헌법연구관으로 일했다. 시위로 서울대를 중퇴한 박원순은 1979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법원 일반직 시험을 거쳐 등기소장으로 근무하다 1980년 사시에 합격했고, 1981년 검사를 잠깐 하다가 1982년 변호사로 개업해 시국사범 변호를 많이 했다. 노무현 집권 이후 이석연과 박원순은 색깔을 분명히 했다. 박원순은 아름다운가게 등 새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른바 진보진영과의 연대에 힘썼고, 이석연은 행정수도 이전 위헌소송을 주도했고 이명박 정부 초대 법제처장을 맡았다.시민운동의 피날레 보여주는 그들 한국의 시민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 대 반(反)민주로 진영을 나누는 민주화운동이 호소력을 갖지 못하고, 1990년 옛 소련의 붕괴 이후 계급 중심의 민중운동이 힘을 잃은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등장했다. 초창기 시민운동은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언론도 학계도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시민운동단체와 정권의 칸막이가 무너졌고 시민운동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들은 더 젊은 세대가 조직을 장악하면서 과격해지고 좌경화했다. 시민운동 내의 이념적 분화가 일어나고 바른사회시민회의 같은 뉴라이트(신우파) 성향의 시민운동 단체도 생겼다. 한국의 정치는 원내에서는 정당끼리, 원외에서는 시민운동단체끼리 판박이 하듯 대립한다. 어떤 시민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은 사실상 장외(場外) 정치인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오늘날 시민운동의 현실이다. 이석연과 박원순이 인물로서야 기존 정치인보다 신선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약발은 딱 한 번이다. 이들의 정치참여는 이미 파탄 난 시민운동의 피날레와 같은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를 줄여서 ‘알바’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바이토’라고 한다. 그냥 일을 뜻하는 독일어 아르바이트를 시간제 노동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은 일본인들이고 그 말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아르바이트에도 최저임금제가 적용된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4320원, 일급 8시간 기준으로는 3만4560원이다. 그러나 실제 아르바이트에는 최저임금조차 잘 지켜지지 않고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는 저임금의 단순 노동을 맥잡(McJob)이라 부른다. 패스트푸드점 맥도널드에서 하는 허접한 일을 뜻한다. 미국 사회학자 아미타이 에치오니는 1986년 워싱턴포스트에 “맥잡은 아이들에게 나쁘다”는 기고를 했다. 그는 기고에서 “미국 고등학생의 3분의 2가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그런 일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해야 하는 신문배달이나 가격 흥정을 경험해보는 레모네이드 판매와는 달리 교육적으로 배우는 게 없다”고 썼다. ▷그래도 학생들은 부모에게 용돈 부담이라도 덜어주겠다고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 유명 커피전문점이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주휴수당(주6일 근무 후 하루 쉬면 나머지 하루를 보상하는 수당)을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고발이 접수돼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기준으로 커피전문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국산 원두 10g(한 잔 분량)의 수입 원가는 123원에 불과한데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은 3500∼4000원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원가보다 30배가량 비싸게 팔면서도 주휴수당을 주지 않았다니 심하다.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씨가 상임이사로 있는 희망제작소가 올해 3월 무급인턴 논란에 휘말렸다. 희망제작소가 인턴에게 하루 점심값 5000원만 주고 정규 연구원에 준하는 힘든 업무를 시켰다는 것이다. 인턴은 단순히 일을 돕는 수준이 아니라 정규 업무를 책임졌고 경력을 인정받기 위해 주5일씩 5개월간 일했다. 물론 인턴경쟁률은 무급임에도 10 대 1이나 됐고 인턴활동에서 보람을 느꼈다는 반응이 많았다. 박 씨가 설립한 재단에는 자원봉사도 많지만 기왕 ‘인턴’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상징적으로라도 임금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어제 끝난 국회의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후보자의 이념적 성향이 쟁점이 됐다. 헌법재판도 아닌, 후보자의 과거 대법관 시절 판결을 놓고 이념적 성향을 따지는 것이 다소 무리이긴 하지만 대법원장이 전국 법관 2500여 명의 인사 및 보직권과 대법관 전원에 대한 제청권을 지닌 만큼 이념적 성향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도 어렵다. 양 후보자는 “난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고 답변했다. ▷24일 퇴임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지명했다. 이용훈 사법부는 법원 중심의 일륜(一輪)사법부를 주장하다가 검찰과 갈등을 빚었고, 일부 판사의 비상식적 판결을 통제하지 못해 불신을 초래했다. 양 후보자는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사법부의 급격한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보수적 견해를 밝혔다.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장 지명 때 1순위로 고려되는 것은 이념적 성향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자기 성향에 따라 지명했다고 해서 그 대법원장이 꼭 같은 성향을 따라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3번이나 지낸 얼 워런을 보수주의자라 믿고 대법원장으로 지명했으나 정작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역사적으로 리버럴한 판결을 이끌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나중에 그의 지명을 “일생의 최대 실수”라고 말한 바 있다. 역시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은 은퇴한 워런 대법원장의 뒤를 이어 워런 버거 대법원장을 임명했다. 닉슨 대통령은 버거가 워런 시대의 선례를 뒤집어줄 것을 기대했으나 버거는 그 선례를 보다 확대했다. ▷양 후보자는 청와대의 인사검증 요청 당시 이를 거부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의 존 뮤어 트레일로 산악도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나는 개인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격하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한다”고 말해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도 내비췄다. 이용훈 사법부에서 진보 성향의 ‘5형제’로 불린 박시환 이홍훈 김지형 김영란 전수안 대법관 가운데 남은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이 11월, 전수안 대법관이 내년 7월 퇴임한다. 양 후보자가 국회 임명 동의를 통과한다면 당장 11월 대법관 제청에 관심이 쏠릴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MBC가 PD수첩 광우병 편의 3가지 허위보도 내용에 대해 자사 방송과 주요 일간지를 통해 사과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사과이긴 하지만 문안을 자세히 보면 이전에 마지못해 하던 사과와는 달리 성의가 담겼다. PD수첩 광우병 편은 2008년 3개월 동안 서울 도심을 마비시키다시피 했던 촛불시위의 발단이 된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목숨을 걸고 미국 쇠고기를 먹어야 하느냐’며 PD수첩의 허위보도를 확대 재생산했던 시민운동단체들이 사과할 차례다. 촛불시위에 앞장섰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는 1840개가 넘는 단체가 가담했다. 그중 핵심 단체는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민주노총 전교조 등이다. 날조된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뒷받침한 전문가와 지식인들도 사과해야 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명색이 전문가임에도 PD수첩의 오류를 지적하기는커녕 세계적으로 소멸 추세에 있는 광우병을 과장하는 데 앞장섰다. 광우병 전문가도 아닌 진중권 씨는 미국산 쇠고기가 99.9% 안전하다는 주장에 “그럼 0.1%의 위험은 있다는 이야기인데 (한국) 인구 4500만 명의 0.1%면 4만5000명”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촛불시위 때 ‘청와대로 가자’고 선동했던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천안함 조사 결과를 부인하는 서신을 유엔에 보냈다. 광우병 선동을 반성하기는커녕 또 다른 거짓을 이어가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판단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을 선동해 촛불시위 참여를 독려한 교사들도 사과해야 한다. 학생들을 광우병 공포에 떨게 하고 “왜 우리가 젊어서 죽어야 하느냐” “나도 대학 가 결혼하고 애 낳고 싶어요”라고 외치게 만든 것이 그들이었다. “미친 소 대신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발언으로 학생들을 자극한 김민선 같은 연예인이 갑자기 김규리로 이름을 바꾼 이유도 궁금하다. 청소년들의 시위 참여를 부추긴 백낙청 씨 같은 지식인도 한마디 사과 정도는 하는 게 예의다. 촛불시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국회의원들도 의회 내에서 진실을 찾기보다 거리에서 거짓의 확산을 방조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광우병 보도는 허위가 아니라고 판결한 1심 법원의 문성관 판사는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이른바 진보좌파 세력은 거짓 선동으로 사실상 정권 불복종 운동을 펼친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인터넷 괴담에 들썩이는 우리 사회의 부박성(浮薄性)은 아직도 완전히 극복됐다고 보기 어렵다.}
대가성 입증이 중요한 범죄가 있다. 뇌물수수죄가 대표적이다. 전국청원경찰협의회(청목회)로부터 쪼개기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들에게 법원이 조만간 판결을 내릴 예정인데 이들이 받은 돈이 입법로비에 대한 대가인지, 진짜 정치후원금인지가 판결의 관건이다. 지난해 ‘스폰서 검사’ 수사에서 건설업자에게 돈을 받아 그랜저 승용차를 샀으나 나중에 찻값을 돌려준 검사에게 대가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성매매 사건에서도 성행위 후에 대가가 지불되지 않았다면 성매매가 성립하지 않는다. ▷선거법의 후보자 매수죄는 뇌물수수죄와 구조가 비슷하다. 대가성 입증이 중요하고 돈을 준 쪽이나 받은 쪽이 모두 처벌된다. 뇌물수수죄의 사전수뢰와 사후수뢰처럼 후보자 매수죄도 사퇴 전 매수죄와 사퇴 후 매수죄로 나뉜다. 선거법상 사퇴 전 매수죄는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에게 금전 직위를 제공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는 것’, 사퇴 후 매수죄는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로 후보자였던 자에게 금전 직위를 제공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는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선거에서는 공정성을 위해 대가성 뒷거래를 불허해야 하지만 선거 이후는 또 다른 생활의 시작”이라며 선거만 끝나면 더 이상 대가성 뒷거래는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법의 공소시효 조항은 선거일 후 행해진 범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6개월이라고 규정해 선거일 후에도 선거범죄가 행해질 수 있음을 예상하고 있다. 후보 사퇴에 대한 대가가 선거 이후에 제공되면 사퇴 후 매수죄에 해당한다. 사퇴 후 매수죄는 사전 약속이 필요하지도 않다. ▷곽 교육감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준 2억 원은 후보 단일화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궁박한 생활을 보다 못해 선의(善意)로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5일 곽 교육감 소환을 앞두고 검찰은 이 돈의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사든 판사든 곽 교육감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결국 돈이 오간 정황을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수뢰죄에서도 대가성이 있었다고 순순히 대답하는 피의자는 거의 없다. 수뢰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보면 대가성은 쌍방간에 특수한 사적 친분관계가 있는지 여부, 금품의 다과, 금품을 받은 경위와 시기 등 제반 사정이 그 판정 기준이 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요즘 검찰은 수사력이 약해져 잡은 고기도 놓친다는 말이 나온다.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고객 예금 수조 원을 흥청망청 쓴 사건임에도 배후의 정관계 인물 하나 밝혀내지 못했다. 퇴출을 막기 위해 로비자금을 뿌린 혐의를 받고 있는 박태규 씨가 뒤늦게 입국해 수감됐지만 수사 진척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박 씨는 로비자금 자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버티고 있는데 로비스트의 입 하나에만 매달리는 수사가 보기 안쓰럽다. 돈 받은 사람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모처럼 대검 중앙수사부가 나선 수사가 이번에도 건지는 게 없으면 검찰의 체면이 구겨질 것이다. 국회는 중수부를 없애겠다고 으르렁거렸다. 검찰총장은 그동안 중수부 해체 압력을 의식해 한화 비자금 수사처럼 중수부가 맡아야 할 수사도 지검으로 내려보냈다. 중수부장 중에는 수사를 한 건도 하지 않은 채 개점휴업으로 임기를 마친 사람이 적지 않다. 중수부 인력 60여 명은 그저 지켜만 보고, 지검들이 조직도 적고 경험도 일천한 상태에서 힘에 부친 수사를 하다 보면 서부지검의 한화 수사처럼 낭패를 보기 쉽다. 선거와 시위 범죄를 다루는 공안부, 권력층 비리를 다루는 특수부는 일선 검찰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이지만 정권 교체에 따라 부침을 많이 겪었다. 공안통이나 특수통으로 기억되겠다는 검사는 드물어지고 공안부와 특수부를 경력관리용으로 1, 2년 거쳐 가는 부서로 여기는 검사가 많다. 검찰총장이 새로 임명되면 동기가 일제히 사퇴하는 낡은 관행도 검찰 간부의 연령 저하와 경험 부족을 초래하면서 수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최근 52세의 한상대 검찰총장이 임명되자 사법연수원 동기 검사장 5명이 모두 옷을 벗었다. 검사장급이 20년 이상 검찰에 근무하면서 쌓은 수사 노하우를 한창 일할 나이에 사장(死藏)시키는 것은 수사력의 큰 손실이다. 수사 환경도 예전과 다르다. 법원이 깐깐해져 검찰은 구속영장을 발부받기도 어렵다. 공판중심주의로 법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보듯이 검찰에서 돈을 줬다는 진술을 한 피의자가 법정에서는 밥 먹듯 뒤집어버린다. 법관은 ‘9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할지 모르지만 검사는 ‘죄인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처벌받게 해야 한다’는 신조를 관철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검찰은 오로지 수사로 말해야 한다. 곽노현 사건 역시 그렇다.}
아브라함 카위퍼는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 목사였다. 그는 영혼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 교회를 비판하고 1879년 기독교 정당인 반혁명당(ARP)을 창당했다. ARP가 한 원류를 형성한 기독민주당(CDA)은 지금도 집권 정당이다. 독일 이탈리아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정당의 도전에 대응해 기독교 정당이 등장했다. 독일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은 현재도 독일 최대 정당이고, 이탈리아의 기독민주당(CD)은 1994년까지 최대 정당이었다. ▷한국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신교 정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신교가 장로 출신 대통령 정권에서도 불교 천주교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는 피해의식에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좌로 기울고 있다는 불만이 겹쳐 개신교 정당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국민운동본부’(대표회장 최병두 목사)는 30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정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 헌법의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이 종교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종교 정당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2002년 불교계로 자처한 호국당이 대선 후보까지 냈으나 이후 해산됐다. 통일교 평화통일가정당이 2008년 총선 때 거의 전국에서 후보를 냈지만 지지율 저조로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2007년 창당된 개신교의 ‘기독사랑실천당’이 현존하는 유일한 종교정당이지만 국회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불교계 창가학회가 세운 공명당(公明黨)이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과는 비교된다. ▷한국 개신교는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불교 조계종은 총무원이 있어 종단을 대표한다. 천주교도 주교회의를 통해 교계 의사를 결집할 수 있다. 반면에 개신교는 진보와 보수가 한국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으로 나뉜 데다 어느 쪽도 조계종 총무원과 천주교 주교회의에 상응하는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수쿠크법 제정 시도를 좌절시킨 데서 보듯이 개신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개신교가 정당을 만들면 타 종교도 정당을 만든다고 나설 수 있다. 종교 간 갈등이 다시 불거질까 걱정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같은 좌파 진영 교육감 후보로 나섰다가 중도 사퇴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선의(善意)로 2억 원을 줬다”고 밝혔다. 검찰이 박 교수가 돈을 받고 후보직을 사퇴한 혐의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진 후 침묵하다가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자 뒤늦게 내놓은 해명이다. 선거에서 곽 교육감을 위해 후보를 사퇴한 사람에게 거금 2억 원을 주고도 선의로 줬다니 도무지 믿기 어렵다. 지난 선거에서 곽 교육감의 득표율은 34.3%였다. 2위를 차지한 우파 성향의 이원희 후보에게 1.1%포인트 차로 이겼다. 다른 우파 성향의 김영숙 남승희 후보는 합쳐 24%를 득표했다. 우파 후보에게 표를 던진 서울시 유권자들이 전체의 과반을 넘는 57.2%를 차지했다. 우파 후보들은 분열되고 좌파 후보들이 단일화를 해서 곽 교육감이 이길 수 있었다. 직전 교육감 선거에도 출마했던 박 교수는 지명도에서 곽 교육감에게 뒤지지 않았으나 선거를 보름 앞두고 갑자기 후보를 사퇴해 배경을 놓고 의혹이 일었다. 곽 교육감은 “취임 이후 선거와 무관하게 그분의 딱한 사정을 보고 선의의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뇌물죄에도 사후(事後) 뇌물이라는 것이 있다. 법대 교수 출신으로 법을 잘 아는 곽 교육감이 선거가 끝난 ‘사후에’ 500만 원이나 1000만 원도 아닌 2억 원을 주었는데 누가 이것을 후보 사퇴의 대가가 아니고 순수한 선의라고 보겠는가. 후보자 매수는 민의를 왜곡하는 선거범죄다. 교육감은 미래세대의 교육을 맡고 있는 자리다. 후보자 매수 의혹을 받고 있는 교육감이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곽 교육감은 취임 후 교육비리와 부패 척결을 내세웠다. 뒷전으로 후보자를 매수하고 입으로 교육비리와 부패 근절을 외쳤다면 위선이다. 곽 교육감의 남은 임기는 약 2년 10개월이다. 그가 ‘선의’ 운운한 것은 법정투쟁을 벌여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가서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곽 교육감은 즉각 사퇴한 뒤 수사를 받는 것이 올바른 도리다. 돈 준 사실을 시인하면서 검찰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검찰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영장 청구 등 공개수사를 하지 않고 기다린 것은 이해할 만하다. 검찰은 공정한 법절차와 증거에 입각한 철저 수사로 정치보복 논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