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구독 1

추천

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4-10-02~2024-11-01
칼럼43%
인사일반14%
경제일반11%
미국/북미7%
국제일반7%
국제경제4%
국제인물4%
여행4%
기획4%
문화 일반2%
  • 이역만리 독일땅에 숨죽인 조선유물 3000점

    투구 앞뒤에는 용과 봉황이 금빛으로 새겨졌다. 붉은 털 머리 장식에는 푸른 보주(寶珠)와 화염무늬가 강인함을 드러냈다. 4개의 발톱을 가진 용 조각이 어깨에 올려진 융(絨)으로 짠 갑옷에는 당시 장수의 용맹한 기상이 생생하게 배어 있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보면 이 박물관은 조선 19세기 갑주(甲胄·갑옷과 투구 일체)를 12점이나 갖고 있다. 당대의 갑주는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30여 점 정도만 파악될 정도로 희귀한 유물이다. 박물관은 조선의 당시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국의 민속유물을 3000여 점도 소장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이 민속박물관이 어떻게 이만한 유물을 소장하게 된 걸까. 여기에는 ‘조선에서 벼슬을 한 최초의 서양인’이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1848∼1901)와의 인연이 숨겨져 있다. 고종의 정치·외교 고문을 지냈던 묄렌도르프는 다양한 정치 활동과 별개로 학술 방면에서도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독일은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커 제3세계 민속자료 수집에 적극적이던 시기. 박물관 유물은 상당수가 당시 묄렌도르프가 직접 현장을 뛰며 모은 것이다. 묄렌도르프가 1883∼1884년 박물관과 교환한 서신들을 보면, 모두 15개 항목으로 나눠진 목록표가 등장한다. 항목에는 무기류나 필기구는 물론이고 주거용품 화장용품 주방기구 심지어 아이들 장난감도 올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임소연 학예연구사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시장 좌판을 싹 쓸어가거나 아예 공방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유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갑주 일체를 내의와 투구싸개, 보관함까지 ‘풀세트’로 갖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그 덕분에 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유물 가운데는 현재 국내에선 찾을 길 없는 독특한 유물도 하나 있다. 19세기 서민이 발화도구로 썼던 인광노(引光奴)다. 기다랗고 얇게 자른 나무 끝에 백색 유황을 바른 성냥의 일종이다. 이익(1681∼1763)이 집필한 성호사설에는 “밤에 급하게 등불을 켤 때 즉시 불꽃이 일어나게 했다”며 인광노를 설명한 대목도 나온다. 일제강점기 공장제 성냥이 들어오며 자취를 감췄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1950년대 북한 유물도 1000점가량 된다. 과거 동독이었을 때 북한 정부가 교류 차원에서 보내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공산품이라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당시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사료들이다. 박물관의 디트마 그룬트만 동아시아 유물담당 큐레이터는 “다양한 한국 유물을 소장해왔으나 그간 기초 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며 “문화재연구소와의 교류를 통해 의미 있는 학술연구가 이뤄진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창녕 관룡사 관음보살벽화 등 불교문화재 7건 보물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13일 원효 대사(617∼686)가 화엄경을 설법한 곳으로 유명한 경남 창녕군 관룡사의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사진)를 비롯해 불교 문화재 7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 관음보살 벽화는 인도 남쪽 바다에 떠 있다는 상상의 산인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서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에게 법을 청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관음이 유희좌(遊戱座·한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다른 다리는 가부좌로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조선 18세기 불화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 △경북 청도군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봉은사 목조여래삼존불좌상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서울 청룡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서울 화계사 목조지정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이 함께 목록에 올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붓대신 쇳조각으로 그린 동양화

    왠지 개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별밤에 지친 두꺼비가 울음을 멈추면, 타박타박 호리병을 품에 찬 술벗이 찾아올까.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조환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56)의 개인전은 묵향(墨香)을 흩뿌리는 한 편의 동양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송림과 연꽃, 매화 그리고 굵은 산줄기. 하지만 한 걸음 다가서면 작품 22점은 관객에게 새로운 질감을 선사한다. 잎사귀 하나하나 산세 고개고개를 그려 내는 것은 먹이 아니라 조각조각 붙여 놓은 쇳조각이다. 작가는 6, 7년 전부터 붓과 벼루를 버리고 쇳조각을 집어 들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철의 차고 드센 성질이 달빛 같은 조명을 받으니 은은하고 따스하게 살아난다. 백미는 반야심경 260자를 쇠로 다듬은 작품 ‘무제’(2013년). 행초체(行草體·행서와 초서가 섞인 글씨체)로 휘갈긴 글씨가 물안개 틈을 부유하는 것처럼 벽과 바닥을 수놓았다. 그 곁을 푸른 기운을 머금고 흘러가는 나룻배.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극락정토로 갈 때 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장소 선택이 탁월했다. 한옥의 나무 서까래와 들보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이 작품들과 근사한 앙상블을 빚어 냈다. 가을날 고택 사랑방에 앉아 바깥 소리에 귀를 세웠더니, 은근슬쩍 창호 문살에 비치는 화초의 그림자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탁한 막걸리보단 감칠맛 도는 청주 한잔이 그리워졌다. 뭣보다 현대미술에 익숙지 않아도, 구석구석 놓인 한자가 생경해도 개운하게 감상할 수 있다. 다음 달 9일까지. 02-720-1524∼6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 古미술 연구 영문서, 美 하버드대서 펴내

    미국 하버드대가 한국 문화재 전문가 5명의 연구 성과를 모은 영문서 ‘한국 고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신라에서 고려까지(New Perspectives on Early Korean Art·사진)’를 최근 발간했다. 이번 하버드대의 학술총서에는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와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김연미 미 예일대 미술사학과 교수, 장남원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주경미 서강대 연구교수가 집필에 참여했다. 불교회화와 불탑, 고려청자, 신라 공예품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정우택 교수는 세계 최고인 ‘고려불화’가 지닌 도상학과 표현기법을 다뤘고, 이주형 교수는 국보 제81, 82호인 경북 경주시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을 통해 불상의 형식과 의미를 정리했다. 주경미 교수는 신라 장신구의 남북방 문화 영향을, 김연미 교수는 7세기 불교문화의 성격을 소개했다. 장남원 교수는 10세기 고려청자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기획은 하버드대가 2011년 한국 문화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해당 학자들을 직접 초빙해 강의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다섯 교수의 하버드 강의가 좋은 반응을 얻자 이 내용을 보완 확장해 엮은 것이 이번 결과물이다. 하버드대는 향후 최신 한국 문화재 관련 연구 현황을 담은 출판물을 지속적으로 펴낼 예정이다. 이주형 교수는 “이번 출간을 계기로 국내 연구 성과를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추기경의 역할과 임무는… 교황 보좌하는 가톨릭 최고위 성직자

    추기경(樞機卿·Cardinalis)은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보좌하는 최측근이자 최고위 성직자다. 라틴어 명칭은 ‘Sacrae Romanae Ecclesiae Cardinalis’로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 교회의 추기경”이다. 이 용어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540?∼604) 때 교회법 공식 용어로 채택됐다. 추기경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가톨릭은 “사제 서품을 받은 이 가운데 신심과 학식, 품행을 갖추고 업무 처리 역량이 특출한 이를 교황이 자유로이 선발한다”고 밝혔다. 교황의 뜻에 따라 대주교나 주교가 아닌 일반 신부도 임명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교황이 후보자를 거명하면 추기경단이 토론하고 동의하는 절차가 있었으나, 현재는 형식적 절차로 남아 있다. 실질적으로 교황에게 전권이 부여돼 있다. 추기경의 신분상 직위는 종신직이나 80세가 되면 법률상 모든 실질 직무는 종료된다. 추기경의 가장 큰 권한은 교황 선출이다. 추기경 중에서 80세 미만의 추기경이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conclave)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뽑게 된다. 현재 전체 추기경은 199명. 이 가운데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07명이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19명 중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6명으로 다음 달 서임되면 교황 선출권이 있는 추기경은 123명으로 늘어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죽음 만물박사들 가라사대…

    “인간의 운명은 죽음으로 귀착된다. 내게 닥칠 일이 통상적이며 내 운명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같다면 무엇 때문에 슬퍼해야 한단 말인가.”(중국 도교서 ‘열자’ 중에서) “나는 작품 덕분에 불멸에 도달할 마음이라고는 없습니다. 그저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에 도달하고 싶을 따름이라고요.”(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 죽음은 참 애매하다. 잘났건 못났건, 잘살건 못살건 누구에게나 공평하나 막상 자신이나 주위에 다가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기야 현실에서 ‘정말’ 모두 죽음 앞에 평등한가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어쨌든 대놓고 영원을 욕망하기도 멋쩍지만 선각자처럼 덤덤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짐짓 모른 체하다가도 가끔은 스멀스멀 불안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저자들은 스윽 회피하며 살던 고개를 부여잡고 정면을 응시하라고 눈을 부라린다. 캐나다 퀘백대 생화학과 교수와 분자의학연구소 종양과 연구원인 두 학자는 “인간은 무지 때문에 죽음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이 생겨난다. 죽음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호언장담하는 이들치고 사기꾼이 많은데. 마음 한구석 답답함을 풀 수 있다니 속는 셈치고 따라가 보자. 근데 이 양반들, 뭔가 위로나 안식을 주는 말은 하나도 없다. 그냥 말 그대로 죽음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늙거나 병들어 죽고,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독이 퍼져 죽고, 자살 혹은 처형당해 죽는 여러 죽음의 방식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심지어 벼락사까지 거론한다. 끝내는 사망한 뒤 인간의 육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부패하는지도 덧붙였다. 뭐야, ‘여러분은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죽습니다’. 죽음 백과사전이라도 쓸 기세다. 그런데 이 담담한 과학적 탐구 속에서 묘한 메시지가 아지랑이처럼 가슴을 휘감는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 세포 번식을 통해 진화해왔다는 건 누구나 알 터. 한데 만약 최초의 세포가 자신의 에너지를 번식 능력이 아니라 본인 생명 연장에 몽땅 써버렸다면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생물의 삶이 이어진 건 초기세포가 자손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을 일구는 밑거름이었다. 죽음 인지능력이 생물적 본능이란 대목도 흥미롭다. 돌고래나 침팬지, 코끼리는 숨진 동료 곁을 며칠씩 지키며 ‘애도 기간’을 갖는다. 이런 본능이 최상위 동물인 인간에게 사후세계를 고민하게 했고, 결국 종교의 탄생을 이끌었다는 것. 터키에 있는 인류 최초의 사원 ‘괴베클리 테페’가 인류의 첫 도읍보다 1만2000여 년 앞서 세워졌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인류는 삶보다 죽음을 먼저 지각했을지도 모른다. 암에 대한 시각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사실 암은 각기 다른 200여 종의 질병을 뭉뚱그려 부르는 명칭. 이들은 모두 세포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공통점을 지녔다. 흔히 암을 ‘싸워 무찔러야 할 질병’으로 표현하지만 암세포 입장에선 원초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인체 시스템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어쩌면 환자가 암을 의지로 극복했다는 식의 미담은 실체적 본질은 놓친 채 인간의 정신을 너무 과하게 상찬하는 부조리를 낳고 있는 게 아닐까. 죽음과 관련한 소소한 상식들도 알차다. 요즘 보톡스로 각광받는 ‘보툴리누스균’은 생명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이라 함부로 즐길 게 아니다. 목을 매달면 폐로 주입되는 공기가 차단되는 게 아니라 뇌와 다른 신체를 잇는 혈관에 치명적 손상을 입어 목숨을 잃는다. 또 암 질환 가운데 약 15%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시작된단다. 물론 저자들처럼 죽음 만물박사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 여정을 걷다 보면 죽음을 혐오나 기피 대상으로 여기던 선입견이 차츰 옅어진다. 하긴 삶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죽음인 것을. 저자들이 마지막 장을 ‘죽음과 유머’로 채워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음을 제대로 바라봐야 삶의 어떤 순간도 낭비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는 죽음이 아니라 삶”(프랑스 소설가 앙리 밀롱 드 몽테를랑)이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나선화 문화재청장 “반구대 암각화, 투명 차단막 그대로 추진”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해 정부 차원에서 카이네틱 댐(투명 차단막)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딱히 대안도 없이 뭔가를 바꿀 상황은 아니에요. 일단은 합의안대로 추진해야죠. 다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 의견을 수렴해 해결하겠습니다.”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한 나선화 문화재청장(65)은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다 함께 상의해서”와 “합리적으로”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울산에 있는 국보 제285호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월 변영섭 전 청장이 첫 간담회에서 반구대 사진이 새겨진 명함을 돌렸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 청장은 “모든 문화재 보존의 원칙은 자연 상태에서 백년 가는 문화유산을 지혜를 모아 300, 400년 가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며 “기상학자든 누구든 다양한 전문가와 소통해 효율적인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숭례문을 비롯한 문화재 관리 지적에 대한 대응도 서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나 청장은 “현재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일부 사안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지금 입장을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나 청장은 이화여대 박물관 학예실장을 30년 넘게 지냈다. 도자사(陶瓷史) 권위자로 손꼽힌다. 변 전 청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청장이다. “어제 정진석 추기경을 뵈었는데 학교에 있던 사람이 행정을 어떻게 이끌지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행정 없이는 안 돌아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지금까지 여러 일을 해왔지만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정성을 갖고 마음을 열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나 청장은 그런 뜻에서 문화재청 안팎 문화재 관계자들의 ‘사기 진작’을 가장 신경 써야 할 대목으로 꼽았다. 그는 “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이 밝고 건강해야 결과물도 좋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나 청장이 처음으로 문화재청 직원들에게 한 얘기가 ‘나는 여러분을 믿는다’였다”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통소나무로 깎아 빚은 비천상 33점

    아름다웠다. 바람이 휘감은 구름을 닮은 천의(天衣)가 나뭇결을 따라 하늘거릴 줄이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목조각가 허길량 씨(61)의 두 번째 개인전 ‘소나무 비천이 되어’는 수는 많지 않으나 작품마다 쉬이 지나칠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다. 불교 도리천 서른셋의 하늘에 맞춰 33점을 조각한 비천상들은 모두 지름 80cm 이상의 통소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2002년 통은행나무를 깎은 관음상 33점을 선보였던 첫 개인전과 닮은 듯 다르다. 허 씨는 “소나무는 송진이 많고 성질이 급해 훨씬 다루기 힘들었다”며 “두께 3mm의 옷자락까지 칼로 다듬어 표현하느라 개인전 준비가 10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사실 허 씨는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제108호)으로 지정됐다가 송사에 휘말리며 2003년 인정 해제되는 굴곡을 겪었다. 그런 탓일까. “조각상 하나마다 대화를 나누며 불심(佛心)을 닦았다”는 작품은 왠지 모를 애잔함도 묻어난다. 배경을 몰랐다면 비천상의 미소를 편안하다 느꼈을까. 감상은 보는 이의 몫이다. 16일까지. 무료. 02-580-13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 기술로 라오스 세계문화유산 2월 복원

    ‘100% 한국의 자본과 기술로 라오스의 11세기 유적을 되살린다.’ 무너진 외국의 문화유산을 우리 힘으로 되세우는 기념비적인 복원사업이 다음 달 첫 삽을 뜬다. ‘한국 문화재 ODA(공적해외원조)의 복원 제1호’로 선정된 유적은 라오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참파삭 문화지역의 홍낭시다 사원(사진)이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7일 “라오스 정부와 3년간의 준비 작업을 마치고 홍낭시다 사원 복원 사업을 위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다”며 “최근 현장사무소가 완공됐으며 다음 달 초 발굴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현장 실측조사를 해왔던 양국은 지난해 11월 추말리 사야손 라오스 대통령이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복원 준비에 속도를 냈다. 한국은 2008년 문화재청과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이 베트남 후에 황성을 3차원(3D) 디지털로 복원한 적은 있으나 실물 복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다 공주의 방’이란 뜻의 홍낭시다 사원은 11세기 크메르 왕국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라오스 남부 참파삭 주의 주도(팍세) 인근 왓푸 사원에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으로 이어지는 ‘고대길(Ancient Road)’의 출발점에 자리해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 한국 정부는 홍낭시다 사원 복원에 5년간 60억 원 이상 투입할 계획이다.비엔티안·팍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구선 1970년대, 日은 1991년부터 본격 참여

    한국은 올해 라오스의 홍낭시다 유적을 시작으로 해외 유적 복원사업에 역사적 첫발을 내딛는다. 서구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추진한 것을 고려하면 뒤늦은 출발이다. 한국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는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해외문화유산복원 원조를 하지 않은 국가였다. 이웃 일본만 해도 1991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복원에 나서며 일찍이 유적 복원에 뛰어들었다. 라오스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왓푸 사원 주신전 배수로 복원과 박물관 건립을 진행했다. 김광희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국제교류팀장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동남아가 입은 피해를 보상한다며 적극 나서 현지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홍낭시다 사원이 있는 참파삭 문화경관지역에서도 이미 여러 나라가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왓푸 사원의 주신전 아래에 위치한 남궁전은 2001년 프랑스, 북궁전은 2009년부터 인도가 복원 중이다. 주신전의 회랑 옆 ‘난디홀(Nandi Hall)’은 정확한 용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탈리아가 복원하다 중단된 상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돌더미가 된 ‘공주의 방’… 돌 하나하나 완벽복원 해야죠”

    《 “‘공주의 방’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원이지만 (붕괴 뒤) 손댈 엄두도 못 냈습니다. 현지에서 기술력으로 명성 높은 한국이 나서줘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비엥케오 숙사바티 라오스 문화유산국 부국장) 지난해 12월 29일 라오스 남부 참파삭 주의 주도 팍세 인근 홍낭시다 사원 앞. 현지 문화재관리 총책임을 맡은 비엥케오 부국장은 함께 사원을 둘러보며 연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으로 치면 문화재청장인 그가 수도에서 남동쪽으로 500km 이상 떨어진 지역(자동차로 12시간 이상 소요)까지 동행한 것부터 이를 입증했다. 》                팍세에서 2시간가량 차를 달려 도착한 사원은 쾌청한 날씨와 달리 최악의 상태였다. 기단과 기둥 몇 개를 제외하면 그냥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듯 보였다. 15세기 이후 대지진으로 무너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2009년 태풍으로 쓰러진 거목까지 덮쳐 손상을 입혔다. 분랍 컨캉나 참파삭세계유산관리사무소 부소장은 “명확한 설계도면이 전해지지 않아 돌 하나까지 정확하게 발굴 연구해야 복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장 복원을 맡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자신 있다는 표정이었다. 한국의 해외복원유물 제1호인 만큼 3년 동안 준비를 착실히 해왔기 때문이다. 김광희 재단 국제교류팀장은 “현장사무소 건립조차 라오스 정부와 유네스코가 세세하고 상의해 명확한 규정 아래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지 관계자들은 ‘한국이 너무 꼼꼼한 거 아니냐’는 불만 아닌 불만을 전할 정도였다. 이날 마지막 현장점검은 더욱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재단은 그간의 실측조사를 놓고 수정 및 변동사항을 일일이 되짚었다. 사원 바닥이 경주 감은사 금당지처럼 지표면과 떨어져 있는데, 오랜 세월 그 틈으로 토양이 어떤 식으로 퇴적됐는지를 놓고 라오스 측과 한참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백경환 재단 연구원은 “홍낭시다 사원은 라오스 유적이기도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 ‘대충’ 복원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장 담당자들의 안전 문제도 필수 체크 사항이었다. 현재는 건기라 다소 덜했지만 우기에는 밀림에서 해충이나 야생동물의 출현이 잦다. 방문했던 날에도 발목까지 자란 수풀 속에서 뱀이 여럿 튀어나왔다. 지뢰나 불발탄도 위험요소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왔다 갔다 하자 관리소 직원들이 아연실색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라오스는 1968∼72년 인도차이나전쟁 때 300만 t의 폭발물이 쏟아져 아직도 미확인 폭발물이 8000만 개 정도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 다행히 초기부터 문화재청과 협력해온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은 팔을 걷고 나섰다. 김수권 대사는 “지속적으로 라오스 정부와 협의해 폭발물 제거 활동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현장 문화재담당자들에게 준외교관 신분을 보장해주는 것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새벽부터 시작한 현장점검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자 마무리됐다. 다음 달 초 착수할 본격적 복원사업은 △보존과학조사 및 고증연구 △해체조사 △건축설계 및 시공 순으로 진행된다. 관리사무소의 또 다른 부소장 우돔시 커삭시는 “일요일에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벌써부터 왓푸 사원의 주신전 복원도 (한국이)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종진 재단 이사장은 “그만큼 신뢰관계가 형성됐다는 의미에서 고마운 말”이라면서도 “첫술에 배부르기보단 한 계단씩 차분하고 확실하게 밟아나가겠다”고 말했다.팍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지원창구 통일해 복원사업 차질없게 할 것”

    “라오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솜팍(Sompak)’이란 요리가 있습니다. 배추를 발효시킨 음식인데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김치와 상당히 비슷해요. ‘배려와 나눔의 문화’가 배어 있는 양국의 문화적 동질감이 이번 복원을 성공으로 이끌 겁니다.” 지난해 12월 27일 만난 보생캄 봉다라 라오스 정보문화관광부 장관은 뜬금없이 김치 이야기를 꺼내는가 싶더니 이를 복원사업으로 연결지었다. 한국문화에 박식하단 걸 보여주며 은근히 서로를 함께 높이는 화술. 괜히 타박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한국은 해외문화재 복원이 처음인데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떠봤다. “문화재 분야는 그렇지만 라오스에 대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처음이 아닙니다. 대형건설사업도 수차례 진행했죠. 그때마다 한국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어요. 뭣보다 근면성실한 자세로 귀감이 됐죠. 이번 복원에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지에서 한국의 홍낭시다 복원은 대단한 화젯거리다. 지난달 라오스 유력 신문 ‘참파마이’가 1면 톱으로 대서특필했다. 현지 방송사들도 2001년부터 여러 차례 보도했다. 물론 여기에는 관광산업이 살아나길 바라는 속내도 담겼다. “그걸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홍낭시다 사원을 비롯한 참파삭 유적은 세계적 문화유산입니다. 이를 방치하는 건 세계적 손실 아닐까요.” 보생캄 장관은 제반 지원 창구를 문화유산국으로 통일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으로선 세부사항마다 일일이 지자체나 관계당국을 상대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는 “양국 대통령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라오스에서는 이번 복원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비엔티안=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00년만에 돌아온 ‘석가삼존도’

    야음을 틈타 강탈당했을 불화는 장황(裝潢·표구)조차 남질 않았다. 서둘러 배접(褙接)으로 끝자락을 다듬었으나 화기(畵記)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입술을 앙다문 석가 존안도 덧칠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도 이리 돌아온 게 어딘가. 일제강점기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조선불화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7일 “미국 버지니아 주 허미티지박물관이 소장하던 ‘석가삼존도(釋迦三尊圖)’를 환수했다”고 밝혔다. 석가모니 좌우로 보현과 문수 양 보살이 시립한 불화는 가로세로 318.5×315cm 크기로 큰 사찰의 대웅전 후불탱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 활약한 화승 의균(義均)의 화풍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기존에 이런 대형 작품이 없진 않았으나 고려·조선불화에서 처음 발견된 독특한 도상(圖像)이 눈길을 끈다. 석가 정면에 그 십대제자(十大弟子)의 대표 격인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난타(阿難陀)가 앉아 있다. 흔히 가섭·아난존자라 불리는 둘은 불화에 즐겨 등장하나 이리 중앙에 배석한 경우는 없다. 게다가 미소를 머금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조선 풍속화의 잔향이 짙다. 안 이사장은 “중국 일본불화에서도 이런 해학적 형태를 본 적이 없다”며 “보물 이상 지정문화재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석가삼존도에 화기가 없는 까닭에는 이 불화가 겪은 모진 세월이 배어 있다. 1910년대 누군가 사찰에서 훔치며 출처를 감추려 뜯어버린 것. 명확한 주인을 모르는 불화는 손쉽게 일본으로 밀반출됐고, 이를 사들인 고미술거래상 야마나카상회(山中商會)가 미국으로 가져갔다. 이리저리 떠돌던 불화는 1944년 결국 허미티지박물관에 팔렸다. 전시장소가 협소한 박물관은 오랫동안 불화를 둘둘 말아 수장고 천정에 매달아 놓았다. 해외 박물관 소장 문화재를 ‘기부와 기증’ 방식으로 되찾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 5월 버지니아박물관협회가 공개한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서 불화를 발견한 재단은 매매를 꺼리는 박물관을 공들여 설득했다. 수장고에 묵히지 말고 국내에서 제대로 전시 대접하자고 권했다. 게다가 후원업체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박물관에 기부금을 내고, 박물관은 별도로 한국에 기증하는 모양새로 명분도 살려줬다. 최영창 활용홍보실장은 “앞으로 운영자금이 취약한 해외 박물관들과 적극 협의해 더 많은 문화재를 환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집모양 가야 家形토기 출토

    4세기 중엽 가야 유물로 추정되는 집 모양의 가형토기(家形土器·사진)가 경남 창원시에서 출토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야 가형토기 가운데는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평가된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원장 신용민)은 6일 “창원시 석동∼소사 도로 개설 구간에 있는 덧널무덤(木槨墓)에서 맞배지붕에 누각 형태를 지닌 토기 1점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정면과 측면 2칸씩으로 이뤄진 토기는 네 면 모두 섬세하게 묘사됐고 앞쪽에는 출입문도 새겨져 있다. 용도는 물이나 술을 담는 주전자로 짐작되며 약 350mL를 담을 수 있다. 이해수 책임연구원은 “토기를 구울 때 하부 기둥이 틀어졌으나 보존 상태가 양호해 당시 집 모양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봄 되면 새롬-희망이와 같이 인사할게요”

    6일 신년 기자회견은 지난해 3월 4일 여야 정치권에 정부조직법 개정을 촉구하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던 청와대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을 비판하며 웃음기란 찾아볼 수 없는 굳은 표정으로 담화문만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80여 분간 이어진 기자회견 초반에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인 탓에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중반을 넘어가며 점차 여유로워졌고 손동작과 농담도 곁들여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짙은 청록색 재킷과는 달리 이날 화사한 연분홍색 재킷을 입었다. 립스틱도 재킷 색상에 맞춰 분홍색이었다. ‘불통’ 이미지를 벗고 부드러운 여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패션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한 기자가 퇴근 후 관저 생활을 물으며 ‘국민들이 다 아는 보고서 본다는 것 외에 다른 말씀을 해 달라’고 말하자 “다른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데 실제로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며 웃음을 띠었다. 박 대통령은 “제가 하는 방식을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취미 따로 있고 국정 따로 있고 이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며 “모든 열정을 담아 자나 깨나 국정 생각을 하고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서울 삼성동 주민들이 선물한 진도개를 언급하며 “새롬이와 희망이가 제가 나갈 때와 다시 들어올 때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며 “따뜻한 봄이 되면 같이 나와서 기자 여러분에게 인사하는 시간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동정민 ditto@donga.com·정양환 기자}

    • 2014-01-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자본과 국가의 통제 벗어난 대안사회

    “다중이 자치 기술을 배우고 영속적인 민주적 사회조직 형태들을 발명하는 과정이 바로 ‘군주 되기’(Becoming-Prince)이다. 다중의 민주주의는 오로지 우리 모두가 공통적인 것을 공유하고 공통적인 것에 참여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하다.” 자, 뭔 말인지 알아먹겠는가. 매를 먼저 맞자면, 기자는 이해는커녕 단어조차 한글인가 싶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미국 듀크대 교수인 마이클 하트. 두 저자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이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여기서 편을 갈라야 한다. ‘제국’(2001년 한국 출간) ‘다중’(2008년)과 같은 전작을 접해 본 독자인가 아닌가. 전자라면 열광하겠으나, 후자라면 얼른 책을 덮으시라. 그래도 아쉬우니 위의 문장이 무슨 얘긴지나 알아보자. 저자들은 21세기 들어 새로운 세계질서가 찾아왔다고 봤다. 바로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전(全) 지구적 권력인 ‘제국(Empire)’이다. 자본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보면 되겠다. 거대한 제국화는 다수의 세계시민을 이에 대항하는 ‘다중(Multitude)’이란 세력으로 변모시킨다. 이런 다중이 자본의 지배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안적 사회를 제안하는 방식과 상태를 ‘공통체(Commonwealth)’라 정의한다. 공동체가 아니라 굳이 공통체로 번역한 것은 민영화나 국영화와 달리 자본과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함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왠지 어디서 들어봄직한 구도 아닌가. 맞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상당히 흡사하다. 실제로 이에 뿌리를 둔 저자들의 사상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공산당선언 2.0’이라 평했다. 슬라보이 지제크도 “현재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파산한 상태다. 두 학자는 새롭게 도래할 세상을 예견했다”고 극찬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념과 상관없이, 국가도 자본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만큼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너무 선언적인 데다 해외에선 2008년에 나온 책이라 다소 타이밍이 안 맞는 대목도 보인다. 이 책의 후속작인 ‘선언’은 이미 지난해 국내에 출간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선왕릉 숨겨진 이야기들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에 있는 동구릉(사적 제193호)에는 9능 17위, 즉 9명의 왕·왕비와 17명의 후비가 안장돼 있다. 이 가운데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왕 현종(1641∼1674)과 비 명성왕후(1642∼1683)의 능을 일컫는다. 특히 이곳 정자각은 조선 왕릉에서 유일하게 팔작지붕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2011년 보물 제1742호로 지정됐다. 능침 주위 유물도 빼어나다. 문석인(文石人)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고, 무석인(武石人)은 절도가 넘친다. 망주석(望柱石·무덤 장식 돌기둥)과 석양, 장명등(長明燈)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 석물들 상당수가 ‘재활용’된 것이란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달 발간한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4, 5권에 따르면 숙종은 1674년 숭릉을 조성하며 어머니 명성왕후의 뜻을 받들어 효종(1619∼1659)의 옛 영릉(寧陵) 터에 있던 석물을 재사용하도록 명했다. 원래 영릉은 동구릉 내 건원릉(健元陵·태조의 능) 서쪽에 있다가 1673년 현재의 경기 여주시로 옮겨진 상태였다. 당시는 천릉한 영릉에 다시 효종의 비 인선왕후(1618∼1674) 능을 조성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 재활용은 ‘백성들이 너무 곤궁해지니 재정 지출을 줄인다’는 의도였다. 옛 영릉에 썼던 석물은 이미 땅 속에 파묻힌 상태였으나 이를 꺼내 개보수해서 사용했다. 재활용 선례가 생기자 이후 다른 여러 왕릉도 이를 따랐다. 1731년 장릉(長陵)을 옮기거나 1856년 인릉(仁陵)과 1864년 예릉(睿陵)을 조성할 때도 옛 석물을 사용했다. 연구소의 황정연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는 “왕릉 규정은 조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벌어지는 대상이라 쉽게 바꿀 수 없다”며 “백성을 걱정한 왕실의 마음이 석물 재활용이란 독특한 전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동구릉 안에 있는 목릉(穆陵)은 독특한 배치로 눈길을 끈다. 목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한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이웃한 세 언덕에 왕릉이 만들어졌다. 선조(1552∼1608)와 정비 의인왕후(1555∼1600), 계비 인목왕후(1584∼1632)가 함께 모셔졌다. 마찬가지로 선례가 없던 왕과 왕비 2명의 능이 한 곳에 조성된 까닭이 뭘까. 한마디로 선조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왕릉 옆에 어느 왕비 혹은 후비가 안장되는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다. 당대 세력의 역학관계가 작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선조는 쉰 살 나이의 자신에게 열여덟 나이로 시집온 인목왕후를 아끼는 마음에 교묘한 정치력으로 이를 관철시켰다. 목릉은 역사적 상징성도 크다. 의인왕후가 승하했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여서 국가 운영에 여력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전 상·장례를 참고할 의궤를 전부 소실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당시 실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1601년 편찬한 ‘(의인왕후)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는 능 조성 의식 절차를 담은 현존 의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여주시로 천릉한 효종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도 독특한 배치로는 빠지지 않는다. 조선 유일의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다. 양옆이 아니라 위아래로 배치됐단 뜻이다. 황 학예사는 “효종 옆자리가 풍수지리적으로 혈(穴)이 너무 나빠 격론 끝에 이런 독특한 구조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는 2006년 시작돼 2009년 첫 보고서를 내놓았다. 2015년까지 8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입시, 목숨 걸고 공부해도…

    대학입시. 이쯤 되면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도 싶다. 수십 년째 폐해를 부르짖었지만 그다지 바뀐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경주마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도 늦단 소리가 나온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졌다. 입시생을 둔 가족의 고통이 거론되면 이젠 무뎌지다 못해 그러려니 모른 척하게 된다. 허나 눈 감는다고 세상이 바뀌랴.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라는 강박관념이 무슨 사회적 정의인 것처럼 판을 친다. 심지어 이런 교육을 벗어나자는 취지인 대안학교마저 입시 준비에 소홀하면 학부모의 지탄을 받는단다. 웬만했으면 대형 사교육업체 회장이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이라고 개탄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럴수록 더 속살을 파헤쳐야 한다고 외친다. ‘망국병’이니 ‘신도 못 고친다’는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입시가족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농업농촌사회 분야 민간연구소인 ‘지역아카데미’에서 이사로 활동하는 저자는 프랑스 파리5대학에서 가족사회학을 전공한 학자.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가 있는 ‘중산층’ 스물네 가족에 현미경을 들이댄 심층 인터뷰를 벌였다. 이 책에서 설정한 중산층이란 개념은 의미심장하다. 절반가량이 ‘노원구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서울 중계동과 하계동에 사는 가족들. 나머지는 강남과 서울 근교가 뒤섞여 있다. 저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크게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할 일이 없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과 교육적 열정을 가진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중산층을 정의하는 개념을 너무 단순화(어쩌면 상향화)했다는 논쟁거리를 던져주지만, 그 때문에 입시생 가족의 얽매임 없는 계층적 욕망을 내밀하게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뭣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입시가족’이란 명제에서 기계적으로 떠오르는 뻔한 구도를 지양한다. 크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는 교육제도를 맞닥뜨려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폈다. 예를 들어, 지방 농촌사회 혹은 서울이라 해도 20세기 가치관 속에서 자랐으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부모는 불가피하게 이중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자식 교육에 모든 걸 거는 옛 가족 구조를 꺼리면서도 현실에서 경쟁에 뒤처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재생산 구조가 경제는 물론이고 학력까지 장악한 시대에 반발과 수긍을 동시에 품은 셈이다. 이런 인식은 당연히 자녀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목적의식을 갖고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안전망으로 보이는 테두리에서 도태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모순적 인식을 배우게 된다. “부모들이 자녀의 대학 진학 문제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나온다. 욕망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소망이라는 말로 순화해볼 수 있겠지만 모든 부모들이 인생에 있어 끝내 ‘실현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소망이기에 결국 이것은 욕망이다. 명문대 출신의 최고 학력자의 삶의 궤도 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향연을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으로 내면화한 욕망인 것이다.” 물론 이 욕망은 당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추정컨대 이 땅에 너무나 급박하게 뿌리 내린 자본주의가 잉태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훨씬 더 기형적 구조의 자본주의가 만개한 중국 사회를 보면 입시교육의 폐해가 이루 말로 못 한다. 게다가 책에서도 언급했듯 안정적으로 보였던 서구사회조차 최근 만성적 경기불황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입시 경쟁이 점차 과열되고 있다. 이제 ‘학력 자본’을 향한 전 지구적 혼란은 이미 제어할 수단을 잃어버린 듯한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자면, 이런 극단적 치달음이 무쇠처럼 견고했던 벽을 깨뜨리는 창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근사한 학력을 쌓아도 사는 데 별 소용이 없으니까. 이미 주위에서 명문대를 나와도 백수의 절망에 빠져 사는 젊은이는 쉽사리 발견된다. 이런 갈등이 켜켜이 쌓인다면 새로운 성찰의 시대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그동안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할 입시생과 가족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부제인 ‘중산층 가족의 입시 사용법’은 결단코 틀린 얘기다. 지금 시대는 ‘입시의 중산층 가족 사용법’이 더 맞는 소리다. 어쩌면 저자는 언젠가 그들에게 다시 사용 권한이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걸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월경 중의 속옷은 악귀도 쫓는다?

    ‘월경(月經) 중인 아녀자가 깔고 앉은 빗자루는 도깨비가 된다.’ ‘월경하는 여인네 속옷은 악한 귀신도 쫓는다.’ 경북 지역에서 주로 전해지는 이 민담들은 얼핏 여성의 월경에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사실은 요즘이라면 법적 제재를 가해도 될 만한 불쾌한 속내가 배어 있다. 도깨비가 나타날 정도로 부정하니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거나 너무 불결해 혼령마저 줄행랑친다는 악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월경을 낮춰보는 시각이 정설인 양 퍼져 있었다. 왜 굳이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까지 폄하해야 했을까.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학술지 ‘민속학연구’ 제33호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백민정 위촉연구원이 게재한 논문 ‘월경 경험과 여성의 정체성 인지’에 따르면 이런 풍조는 월경이 남성우월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였다. 백 연구원은 2011년 3∼12월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마을에서 68∼91세 여성 19명을 심층 인터뷰해 근대사회 월경의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봤다. 소산마을은 안동김씨 집성촌으로 유서 깊은 반촌(班村). 전통 사회를 들여다보기에 적절한 대상이었다. 그런데 연구 대상들은 고령임에도 하나같이 월경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초경부터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초경을 겪은 여성들은 초경혈을 “엉덩이가 깨져서 나는 피”로 착각했다. 이들은 병인 줄 알고 끙끙 앓았으며 숨기려 들었다. A 씨는 장작불에 피를 말리려 했고, B 씨는 지혈에 효험 있다는 술을 들이켰다.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적 없으니 신체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처녀로 성장해도 월경은 크나큰 고민거리였다. 경제적 이유로 1960년대까지는 생리대 서너 개로 버틴 이들이 많았다. 불편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보관도 골치였다. 보통 뒷간 쪽 멍석에 숨겼는데 쥐가 흩뜨려놓아 혼쭐이 나곤 했다. 월경대가 타인 눈에 띄면 무조건 관리 소홀로 비난받았다. 누가 알까 봐 씻는 것도 눈치를 봤다. 백 연구원은 “가부장제가 월경을 강박관념처럼 감춰야 하는 족쇄로 만들었다”며 “앞으로 월경도 당당한 학술적 연구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신체적 성숙이라는 긍정성을 되찾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희웅 과장 “아제르바이잔 만찬서 아리랑 깜짝연주… 등재 확신”

    3일 저녁 아제르바이잔 바쿠. 제8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가 시작된 지 이틀째 날, 아제르바이잔 문화부 장관이 주최한 만찬이 열렸다. 아직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등재(5일)가 결정되기 전이라 한국대표단은 다소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데 세계 정부 관계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리랑’을 연주하는 게 아닌가. 지난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깜짝 쇼였다. “벅차오르던 감동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표단 모두 일어나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했어요. 참석자들이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왠지 아침 담벼락에서 까치를 마주한 기분이랄까요. 순간 ‘아, 김장문화도 별 탈 없겠다’ 싶었어요.”(박희웅 문화재청 국제교류과장·50)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박 과장과 홍진욱 외교부 공공외교정책과장(47)은 잠시 회상에 젖은 듯 먼 곳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아리랑과 올해 김장까지 등재 현장에서 발로 뛴 주역이다. 당시 상황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처음 위원회 심사에 올라간 등재명칭이 ‘퇴짜’를 맞았기 때문. 한 위원국이 ‘김치를 먹는 문화가 한국만 있느냐’며 국가(in the Republic of Korea)를 표기하길 요구했다. 이번에 함께 등재된 ‘중국의 주산(珠算)’과 ‘일본의 와쇼쿠(和食)’처럼. “요청국은 중국으로 추정됩니다. 이전부터 조선족을 근거로 김장문화 단독 등재를 주시해 왔거든요. 우린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미 이의 제기를 예상하고 바로 수정 절차를 진행했거든요. 그 대신 ‘김장’은 한국의 김치 담그는 문화라고 박아버렸잖아요. 다른 나라에서 김치 담그는 건 김장이 아닌 셈입니다.”(홍 과장) 게다가 이번 위원회는 무형문화유산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자리기도 했다. 이미 알려졌듯 한국과 중국, 일본은 1997년 협약 채택 때부터 적극 참여해 발언권이 세다. 중국과 일본은 정치·역사적 역학관계 탓에 서로 견제도 심하고 다른 나라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호응이 좋다. 한국은 인도와 함께 ‘조정국’ ‘중재국’ 대접을 받는다. “2014년은 한국에 길한 해가 될 겁니다. 현재 정부간위원회 위원국(22개국)인 중국, 일본이 내년 임기가 만료되거든요. 6월 선거에서 (2008∼2012년 위원국이던) 한국이 다시 위원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지 분위기만 보자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한 자리는 우리가 차지할 겁니다.”(박 과장) 두 사람은 앞으로도 정신없이 바쁠 것 같다. 한국은 무형문화유산에서 내년 ‘농악(풍물놀이)’, 2015년 ‘제주해녀문화’와 ‘줄다리기’ 등재를 노린다. 한 해 1국가 1유산이 원칙이나 줄다리기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와 공동등재라 비켜갈 수 있다. 홍 과장은 “등재 노하우가 적은 세 나라는 일종의 공적개발원조(ODA)라며 고마워한다”며 “우리 등재도 소중하지만 해외 유산의 등재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