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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더-마인호프 콤플렉스’라는 독일 영화가 있다. 1970년대 독일 사회를 뒤흔든 극좌 테러조직 적군파(RAF)를 다룬 2008년 영화다. 영화는 1967년 서베를린에서 팔레비 이란 국왕 방문 항의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젊은이가 당시 26세의 베를린자유대 학생 베노 오네조르크다. 그 이름을 다시 접한 것은 이듬해인 2009년이다. 오네조르크가 죽은 지 42년이 지나 총을 쏜 서독 경찰관 카를하인츠 쿠라스가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첩자였던 사실이 슈타지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서독 곳곳에 침투한 동독 간첩 동독 간첩의 총 한 방은 역사의 물꼬를 바꿔놓았다. ‘우파정부의 주구(走狗)인 경찰이 죄 없는 학생을 죽였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과격한 조직이 안드레아스 바더라는 청년과 울리케 마인호프라는 여기자가 만든 적군파였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1967년부터의 독일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독 간첩이 서독 곳곳에 침투한 사실은 ‘연방 슈타지 문서보관소’가 1990년 통독후 슈타지 문서를 조사한 후에야 밝혀졌다. 슈타지는 서독에 3만여 명의 고정 간첩을 두고 국회의원 각료 정보기관원은 물론 의원보좌관과 대학생까지 포섭했다. 1973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수행비서 귄터 기욤이 슈타지 요원으로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검찰은 그제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왕재산 서울지역책 이모 씨는 민주당 소속의 임채정 전 국회의장 비서관을 지내며 정치권 정보를 수입해 북한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에도 수사대상자가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사회에서 간첩이란 단어를 진지하게 말해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라. 가물가물할 것이다. 간첩단 사건은 1999년 ‘주사파 대부’ 김영환이 연루된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총책 황인오의 동생으로 역시 간첩죄 선고를 받은 황인욱은 비슷한 해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녀 개인적으로 잊어버릴 수 없다. 1996년 강릉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을 취재하러 다닐 때 만난 등명낙가사 주지 스님의 증언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는 “잠수함이 좌초한 지점 해안 절벽에서 한밤중 바다 쪽으로 전조등을 비춰주던 자동차를 봤다”며 “고정간첩이 한 짓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1997년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 씨가 간첩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살해된 후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생전의 이 씨와 통화를 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통화기록이 남아 경찰이 탐문수사 차원에서 전화를 해온 것이다. 창작속에 미화되고 희화화된 간첩 1999년은 영화 ‘쉬리’와 ‘간첩 리철진’이 나온 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간첩(정확히는 간첩수사)만 사라진 게 아니라 간첩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간첩은 ‘쉬리’의 ‘이방희’(김윤진 분)처럼 아름답거나 ‘리철진(유오성 분)’처럼 우스꽝스러워졌다. 문학에서 간첩은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됐다. 2006년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에서 평양외국어대 영어과 출신 주인공 김기영은 1984년 남파된 이후 민족해방(NL)계 운동권 여학생과 결혼해 영화수입업자를 하며 여느 386세대와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편안해진 간첩의 이미지는 안방까지 들어왔다. 현재 방영되는 TV 드라마 ‘스파이 명월’의 여간첩 한명월(한예슬 분)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창작은 자유다. 그럼에도 미화되고 희화화된 간첩의 이미지는 현실의 간첩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창작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도록 환기시키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것이 국정원이고 검찰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나가수(나는 가수다)’를 모르면 요즘 화제에 끼어들기 힘들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나가수에 나와 부른 ‘뜨거운 안녕’이 가슴을 찡하게 때리는 바람에 누가 불러도 진부하게 들렸던 그 노래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김윤아는 경연에서 꼴찌를 하고 말았다.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의 나가수 코너 연출자 신정수 PD(41)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서 몰아치기로 나가수 전편을 훑어봤다. 임재범 같은 명가수가 대중이 환호하는 무대의 뒤편에 서 있었다는 것이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신 PD는 나가수는 한마디로 ‘가수의 재발견’이라고 정의했다. 뮤지션 아티스트 같은 멋진 말로 포장된 가수가 아니라 노래만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가수 그 자체의 발견이라는 설명이다.왜 나가수 열풍인가? 본보에 ‘가인열전’을 연재 중인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씨는 “시청자들이 음악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인이 있다. 나가수는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같은 신인들의 서바이벌 게임과는 달리 프로 가수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다.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 나와 떨어지는 것과는 긴장감의 차원이 다르다. 가수 중에서도 노래를 잘한다는 가수들이 탈락자가 되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노래를 부르니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은 스포츠와 달리 등수가 중요하지 않고 개성이 중요한데 왜 가수들이 이런 경연에 응할까. 강 씨는 “2000년 이후 대중음악이 한류다 뭐다 하면서 아이돌 가수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음반이나 콘서트 문화가 사라졌고 실력 있는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며 “이런 위기감이 가수들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응하게 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그에게 나가수 최고의 노래를 하나 꼽아달라니까 주저 없이 박정현이 부른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꼽으면서 “두 달이 지나갔는데도 아직도 노랫소리가 귀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나가수 제작으로 1주일에 3, 4일씩 밤을 새운다는 신 PD를 MBC 일산 드림센터의 제작현장에서 만났다.―가수를 탈락시킨다는 구상이 쉽지 않았을 텐데….“나가수의 포맷은 전임자인 김영희 PD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그는 코미디 PD를 주로 했기 때문에 가요계를 잘 몰랐다. 오히려 가요계를 잘 몰랐기 때문에 가수들을 경쟁시킨다는 구상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세시봉 콘서트’를 기획한 신 PD는 음악 PD로 쭉 일했다.“음악 PD라면 가수를 탈락시키는 구상을 절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 PD가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상상력의 확장이 가능했다.” ―가수들이 섭외에 잘 응했나.“물론 쉽지 않았다. 검투사들의 실력이 출중해야 명승부가 벌어지고 관객도 흥미를 느낀다. 정말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이 나와야 나가수가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한 사람을 뚫자고 결정했다. 그 사람이 이소라였다. 이소라가 나오면 다른 가수들도 나올 마음이 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많은 분이 거절했다. 노래에 대한 철학이 달랐다. YB밴드의 윤도현도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지만 ‘어느 방송에서 록밴드가 가족들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나와 연주할 수 있느냐’며 설득했다.”나가수는 올 3월 가수 7명 중 청중 평가단으로부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1명을 탈락시킨다는 원칙을 깨고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줘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김 PD가 물러나고 나가수가 한 달가량 중단됐다. ―휴지기 한 달을 사이에 두고 나가수는 어떻게 달라졌나.“그 사건이 없었으면 나가수가 지금과 같이 긴장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누리꾼을 중심으로 한 시청자들의 반발이 제작진과 가수들을 긴장시켰다. 제작진은 어차피 예능 프로그램인데 규칙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경쟁의 생명은 공정(公正)이었다.”신 PD는 “녹화 현장에 있어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운을 뗀 뒤 “경연에서 누군가가 탈락했을 때 녹화 현장에서는 가수와 제작진과 청중 사이에 정서적으로 견디기 힘든 분위기가 흐른다”고 전했다. 강 씨는 “제작진은 김건모가 꼴찌를 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가수와의 관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김건모를 재도전시키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가수에서 제작진의 ‘쿠데타’가 실패하고 시청자 ‘반란’이 승리하고 난 뒤 임재범이 새로 합류했고 본격적인 나가수 열풍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방송 포맷을 외국에서 주로 수입할 뿐 수출하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나가수 포맷에 대해서는 중국과 일본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신 PD의 전언이다. 정치권에서는 나가수식 경쟁을 활용해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개혁위원장인 나경원 최고위원은 “내년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중 3분의 1은 국민 추천을 거쳐 나가수처럼 서바이벌 투표 방식으로 선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같은 숨은 인재들이 발탁된다면 한국 정치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신 PD가 와서 새로 바뀐 것은 무엇인가.“청중 평가단 500명은 본래 1인 1표를 행사했는데 1위 한 사람에게 표가 너무 많이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2위부터는 남아 있는 상대적으로 적은 표가 돌아가고 순위가 낮을수록 변별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나가수를 새로 시작했을 때 1인 1표를 1인 3표로 늘렸다. 새로 음악감독을 둔 것도 변화다. 이후로 음악의 사운드가 좋아졌다. 그리고 임재범이 나왔다.”―임재범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임재범이야말로 나가수에 가장 적합한 출연자였다. 가수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데 일반인은 잘 몰랐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는 먹고살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고 부인의 암 치료로 고생했다. 성격도 강해 섭외가 쉽지 않았다. 나가수 시작 때부터 그를 접촉했으나 탈락자가 몇 명 나온 다음에 두고 보자는 얘기만 들었다. 나가수가 새로 시작됐을 때 그가 절실히 필요했고 집요하게 설득해 승낙을 얻었다.”신 PD는 1970년생에 1989학번이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다녔으나 행정학은 취미였고 가요가 사실상 전공이었다. 그는 팝송에 미친 마지막 세대이자 한국 가요에 빠져든 첫 세대에 속한다. 팝송만 듣다가 록밴드 ‘들국화’의 곡을 듣고 나서 ‘한국에도 들을 만한 노래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단다. 파고다극장의 시나위 부활 등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러 다녔다. 그때 임재범이란 사람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한국 음악은 뭐가 있나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송창식 등 통기타 세대의 음악을 접했다. 이 모든 것이 세시봉 콘서트를 기획하고 김건모 파동 이후 위기의 나가수를 맡아 성공시킨 밑거름이 됐다.―왜 전문가가 아니라 청중이 평가하는가.“대중가요니까 전문가의 평가보다 대중의 평가가 정확하다고 봤다. 다만 산술적 정확성은 아니고 경향적 정확성이라고 하겠다.”나가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는 열혈 팬이 꽤 많다. 안병균 씨(63·기업인)도 그런 사람이다. 안 씨는 “김범수는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남진보다 더 잘 불렀고, 김윤아는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송창식보다 더 잘 부르더라”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 옛적 ‘초원의 집’을 운영하며 이주일 씨 등 코미디언과 가수를 키워 대중문화를 보는 안목이 남다른 편이다. “김건모는 실력은 있지만 성의 없이 노래해 탈락했다” “임재범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온 힘을 다해 노래해 김건모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앞으로 송창식 같은 가수도 데려와야 한다”는 식으로 끝없이 얘기를 이어갔다.―청중 평가단은 어떻게 구성되며,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청중 평가단은 신청자 중에서 연령대별로 고루 뽑는다. 현재도 청중 평가단이 되겠다고 40만 명이 대기하고 있다. 신청했다고 무조건 뽑는 것은 아니다. 전화 통화를 해 음악에 대한 관심도를 점검한 뒤 평가할 만한 소양이 있다 싶어야 뽑는다. 청중 평가단은 원칙적으로 한 번의 경연만 평가한다. 다만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20% 정도는 남겨두고 한 번에 80%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청중 평가단을 바꾼다.”―김윤아가 혼자만 잘난 체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얘기가 인터넷에서 와글와글 하던데 노래 외적인 판단도 청중 평가에 들어갈 소지가 있나.“청중 평가단이 보는 것은 오직 노래 부르는 장면뿐이다. 대기실에서 출연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나 행동은 TV를 통해서만 방영된다. 따라서 김윤아가 대기실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청중 평가단은 알지 못한다. 다만 김윤아가 첫 번째 경연에서 ‘고래사냥’을 불러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경우 지난번에 1등을 했으니까 ‘뜨거운 안녕’에는 좀 낮은 등수를 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청중 사이에 형성될 수 있다.”― 나가수는 주로 누가 보나.“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많이 본다. 나가수 출연 가수들이 지금은 TV 밖에서도 많은 공연을 한다. 중장년층의 대중음악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나가수가 이런 시장을 만들었다고 자부한다.”―나가수는 따지고 보면 신자유주의식 무한 경쟁이 아닌가.“경쟁이 꼭 신자유주의적인 경쟁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등 승자만이 좋은 평판을 얻고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볼 수 없다. 나가수의 탈락자들은 루저(loser)가 아니다. 끝까지 살아남든 중도에 탈락하든 사력을 다해 열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는 그동안 몰랐던 그들의 진짜 실력을 알게 됐고 그들에게 보상하고 있다. 실제 김연우나 정엽 같은 가수들은 탈락했지만 그들의 콘서트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탈락 이후 이들은 음원 판매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나가수가 ‘모두 승자가 되는 경쟁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사회문화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 달 25일 퇴임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양승태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새 대법원장은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되지만 임기가 6년이기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새 대통령과 4년 6개월을 함께 일한다. 차기 대법원장은 이 대법원장이 이끈 사법부 6년의 혼선을 바로잡으면서 사법부의 좌표를 바로잡을 책무를 지니고 있다. 양 대법원장 후보자가 이런 자질을 갖춘 인물이라는 평가와 함께 국회의 인준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대법원장 재임 시 사법부 판결 중에는 판사가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을 과잉 해석해 개인적인 소신이나 편견에 따른 판결로 논란을 부른 사례가 많았다. 일부 판사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폭력, 전교조 교사의 ‘빨치산 교육’, MBC ‘PD수첩’의 광우병 왜곡보도에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졌다. 이른바 진보 성향의 판사모임으로 사조직 논란을 부른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이 대법원장의 미온적 대처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에 우리법연구회 같은 단체가 있어선 안 된다”고 답변해놓고 정작 취임한 뒤에는 “우리법연구회를 해체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원론적으로는 누가 대법원장이 되느냐에 따라 판사 개개인의 재판 성향이 바뀌는 것은 법치주의 정신에 맞지 않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정치적 성향이 판결에 개입하는 헌법재판소가 따로 있다. 헌법이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대법원장의 임기를 6년으로 정해 그 임기가 서로 어긋나게 해놓은 것도 대법원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한 원로 헌법학 교수는 “헌법적 법률적 직업적 양심이 아니라 개인적 양심을 내세우는 일부 판사들에게 휘둘린 것이 이 대법원장이 이끈 사법부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판결은 판사가 독립해 하는 것이므로 대법원장이 개별 사건 판결에 일일이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인사권을 바탕으로 법원의 전체 분위기를 다잡아가는 것은 대법원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대법원장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하고 도덕적으로도 결함이 없어야 한다. 대법원장과 사법부는 인권 보장과 헌법적 가치의 최후 보루다.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사법부를 바로 세울 도덕성과 역량, 가치관을 갖추고 있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베레(b´eret)는 프랑스어다. 베레는 본래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피레네 산맥의 양치기들이 쓰던 모자였다. 산악지대의 추운 바람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주는 실용적인 모자였다. 이 모자를 주로 쓰는 바스크족은 검은 베레를 선호한다. 지금도 유럽 도시에서 바스크 국기를 내건 식당에 들어가면 베레모를 쓰고 서빙하는 바스크족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베레모는 후에 멋쟁이들의 패션 아이템이 됐다. 오늘날의 스타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고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던 19세기 후반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베레모를 쓴 초상이 유명하다. 1968년 미국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원제 ‘보니 앤드 클라이드’)에서 여주인공 보니 역을 맡은 페이 더너웨이가 중간 길이 스커트에 베레모를 쓰고 나와 이른바 ‘보니룩(bonnie look)’을 유행시켰다. 붉은 별이 그려진 검은 베레모를 쓴 쿠바의 혁명운동가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1960년대 남미 혁명운동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영미권 군대에서는 ‘그린 베레(green beret)’가 특수부대의 상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특수훈련 과정을 마친 영국군이 녹색 베레모를 착용해 ‘그린베레’로 불렸다. 영국군과 함께 작전을 벌이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영국군을 보고 부러웠던지 군 당국의 금지 규정을 어겨가며 베레모를 쓰기 시작했다. 미군의 베레모 착용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뒤늦게 추인을 받았다. 우리나라 특전사는 ‘검은 베레’, 유엔평화유지군은 ‘블루 베레’를 착용한다. ▷육군 전체 52만 명이 올해 국군의 날(10월 1일)부터 전투모 대신 베레모를 쓸 예정이었으나 모자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차질을 빚고 있다. 주먹구구식 납품 계약 때문에 40만 개 이상 베레모의 납기를 맞추지 못할 상황이다. 군 당국의 일처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육군은 지난해 말 “강인한 이미지를 주고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야구모자 모양의 기존 전투모 대신 베레모를 도입하기로 했다. 특전사의 검은 베레와 구별하기 위해 색깔은 흑록색으로 정해졌다. 모자만 바뀔 것이 아니라 육군 전체의 전투력이 특전사 수준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1963)는 숱한 명연설을 남겼다. 그의 연설은 쉽고 편하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이제 횃불은 젊은 세대에 넘어왔습니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미국 역대 대통령 연설 중 최고로 꼽히는 케네디의 1961년 대통령 취임 연설문의 한 대목이다. ▷미국 언론인이자 변호사인 리처드 토펠은 케네디 연설에 대한 치밀한 취재와 분석 끝에 “취임 연설문 51개 문장 가운데 케네디가 직접 작성한 것은 9개 문장뿐”이라고 주장했다. 케네디 연설문의 많은 부분은 그의 특별보좌관이던 시어도어 소런슨(작년 10월 사망)이 썼다. ‘조국이 당신을 위해…’ 부분은 케네디의 학창 시절 교장 선생이 자주 말했던 “학교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 묻지 말고 너희가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를 흉내 낸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소런슨이 썼건, 교장 훈화를 패러디했건 그 명연설은 케네디의 것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그제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가운데 ‘공생발전’이라는 새 화두는 박형준 대통령사회특보가 주로 개발한 개념임을 청와대 측과 박 특보 본인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혔다. 국민은 대통령 연설을 듣자마자 그것이 참모의 아이디어임을 알게 된 것이다. 박 특보는 언론을 통해 “생태계(ecosystem)란 개념에 발전(development)을 접목했다”며 공생발전의 개념과 어원을 복잡하게 설명했다. 이 대통령과 박 특보가 졸업한 대학의 어느 원로 교수는 이번 연설문에 대해 “논문도 아니고, 대통령 연설로는 곰삭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대통령의 연설은 연설 그 자체로 완결성을 보여야지, 비서들이 나와서 긴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잘된 연설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 연설문 기안자는 대필작가(ghostwriter)와 같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대통령이 직접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국민도 잘 안다. 그러나 연설문 작성자는 유령(ghost)처럼 뒤에 있어야 한다. 대통령 연설이 끝나자마자 연설문 작성자가 등장하니 대통령도, 참모도 가벼워 보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광복절인 어제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는 온종일 좌우의 깃발이 나부끼고 함성이 울렸다. 아침 일찍부터 광화문으로 향하는 도로 주변에는 노동단체들의 이름이 쓰인 차량이 즐비했다. 민주노총 소속 등 노동자 3000여 명은 오전 11시 ‘광복 66년 한반도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15 범국민대회’를 열고 ‘대북(對北) 적대정책 폐기’를 외쳤다. 민노당 이정희, 진보신당 조승수,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도 참석했다. 태평로 왕복 12차로를 점거하고 거리행진에 나선 시위대를 경찰은 차벽을 설치하고 막았다. 시청과 광화문 일대 교통이 한때 마비돼 모처럼 휴일 도심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을지로 무교로 소공로 일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고엽제전우회 회원을 태운 차량이 모여들었다. 오후 2시부터 서울광장에서는 ‘종북세력 척결 및 교육 바로세우기 8·15 국민대회’가 열렸다. ‘6·25 국가유공자회’ ‘전몰군경유족회’ ‘학도의용군회’의 깃발이 나부끼고 참가자들은 “종북세력 박살내자”고 외쳤다. 오후 4시가 되자 꽹과리와 북소리에 맞춰 대학생들이 청계광장 주변으로 모였다. 전국등록금네트워크와 한국대학생연합이 주도한 ‘8·15 등록금 해방 결의대회’가 열렸다. 광복과 등록금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는 대회의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청계천, 광화문 광장, 경복궁을 찾은 시민과 이쪽저쪽 시위대가 뒤섞여 광화문 일대는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영문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검도 시범을 보이는 청년들도 있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취지의 서명운동을 벌이는 일행도 있었다. 그들은 광복과 건국의 의미를 시민에게 전하려고 애썼으나 인파에 묻혀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공생발전’을 강조했지만 식장 밖 풍경은 공생과 거리가 있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집권을 전후해 시작된 이른바 진보 보수 간의 광복절 거리집회 대결 양상은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두 세력 사이에 충돌이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하고 말 것인가. 66년 전 오늘 우리나라는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고, 3년 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진정한 독립국가를 세웠다. 이것이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이룬 바탕임을 되새기고 온 국민이 경축해야 할 날이 바로 광복절이다.}
이명박(MB)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정사회를 집권 후반기 화두로 내세운 지 1년이 됐다. 동아일보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공정사회 추진 80대 과제의 이행도를 점검한 결과 그 점수는 평균 C학점이었다. 이들은 “공정이란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를 바라보게 된 것은 달라진 풍경이지만 국민의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천명한 직후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각각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물러났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 특채사건이 불거져 사퇴하고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했다. 일각에서 공정사회가 인사의 도덕적 잣대를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 대통령의 인사를 지켜보면 꼭 그렇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후보자도 많고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사도 계속됐다. 정부는 전관예우 금지를 강화한 공직자윤리법 개정 같은 성과를 이뤘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공정사회가 추진되는 한가운데서도 공직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국토해양부 직원의 연찬회 향응 파문에 이어 지식경제부 공무원이 산하기관으로부터 ‘룸살롱 업무보고’를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빈부격차 해소, 학력 차별 개선 등 더욱 실감할 수 있는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공정해졌는지 의문이 든다. 공정사회는 좋은 말이지만 너무 거창한 구호다. 명백하게 불공정한 것은 굳이 공정사회를 거론하지 않아도 걸러진다. 현실에는 무엇이 공정한지 애매한 게 많다. 단지 공정이란 말로는 기회의 공정을 말하는지, 결과의 공정까지 포함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현대사회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정부가 공정사회를 밀어붙여도 기업이나 시민사회가 앞장서야만 효과가 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정부는 얼마나 기업과 시민사회의 공감을 끌어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공정사회가 이 정부의 국정철학을 일관성 있게 꿰는 화두인지 애초부터 회의가 있었다. 이 대통령 취임 초 친(親)기업을 외치다가 공정사회 깃발을 들면서 여당에서도 대기업 때리기가 시작됐다. 대기업에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강요하기보다는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공정사회 구호가 혼탁한 세상사를 다 집어넣고 돌려 깨끗하게 빨아낼 수 있는 드럼세탁기는 아니다. 구체적 정책과 실적으로 승부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지금은 첨단 유행의 거리로 통하는 영국 런던 노팅힐은 1950년대 자메이카 등 카리브 해 국가에서 온 흑인 이주민이 최초로 정착한 곳이다. 영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인종 폭동도 1958년 노팅힐에서 일어났다. ‘테디 보이스(Teddy Boys)’로 불리는 당시 신세대 백인 청년들과 흑인 이주민 청년들이 충돌했다.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노팅힐 카니발은 이런 인종 충돌을 문화적으로 승화시킨 노력의 결과로 1999년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노팅힐’의 배경이 됐다. ▷인종 폭동은 노팅힐 이후 남(南)런던의 브릭스턴 등으로 옮겨가 1981년, 1985년, 1995년에 일어났다. 브릭스턴 역시 카리브 해 출신 흑인들이 정착한 곳이다. 세 차례 모두 백인 경찰의 범죄 혐의자 추적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가 원인이 됐다. 이번 런던 폭동은 1995년 폭동 이후 가장 규모가 크다. 폭동이 시작된 북(北)런던의 토트넘 역시 흑인이 많이 산다. 범죄 혐의를 받던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게 원인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의 이미지를 구긴 2005년 파리 교외 폭동 역시 북아프리카계 소년이 경찰 추격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원인이 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 때까지 ‘영광의 30년’이라는 경제호황기에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들로부터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였다. 독일도 ‘손님노동자(Gastarbeiter)’라고 해서 터키 등으로부터 이주민을 받아들였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진 세 나라는 지금 이주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런던 폭동은 버밍엄 맨체스터 리버풀 등 다른 대도시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아시아(주로 파키스탄 지칭)계 이주민도 가담하고 있다. 영국 백인 극우세력은 흑인과 힘으로 맞설 만큼 완력도 세다. 노팅힐 폭동처럼 인종 충돌로 비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도 경기 안산시 원곡동,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관악구 봉천동, 광진구 동일로 등에 이주민 근로자의 거리가 형성돼 있다. 노팅힐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배려와 지혜에 따라 폭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고 카니발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하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구로우파란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구로구 주민에게 양해부터 구해야겠다. 사실 이 말은 실제 서울 구로구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강남좌파의 대칭개념으로, 중산층 내에서 상대적으로 하위권 소득그룹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평우파도, 관악우파도, 금천우파도, 강서우파도 구로우파와 비슷하다.민주당의 꼼수를 심판할 구로우파 구로구는 더 이상 예전의 구로구가 아니다. 구로의 이미지를 만든 구로공단은 정보기술(IT)기업이 상주하는 구로디지털단지로 변했다. 신도림역과 구로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당연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면면도 바뀌었다. 강남좌파들처럼 유학 가거나 고시에 붙지는 못했지만 회사원으로 혹은 자영업 창업자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구로우파의 생활이 이제는 넉넉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40대 가장이 한 달에 세금 제하고 400만∼500만 원을 벌어도 저축을 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런 가정의 주부가 주민투표일을 정확히 기억했다가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든 주민투표장까지 찾아가 한 달에 5만∼6만 원짜리 공짜 급식을 거부하는 데 표를 던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구로우파가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표를 던진다면 그건 작은 기적이고 한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 구로우파는 왜 자신에게 당장 이익이 될 수 있는 무상급식에 반대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민주당이 지난해 지방선거용으로 들고 나와 재미를 본 전면 무상급식 공약이 정치적 ‘꼼수’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3+1 복지공약’ 중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과 달리 무상급식은 복지의 족보에도 없다. 유럽 복지국가의 전형인 프랑스 독일 영국에도 없고 복지 남발로 나라가 휘청거리는 ‘돼지들(PIGS)’ 국가, 즉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도 없다. 전면 무상급식은 처음 도입한 곽노현 교육감만 생색을 낼 수 있고, 이후의 교육감에게는 그가 진보든 보수든 부담으로만 남는다. 해가 지나고 관심이 시들해지면 무상급식은 예산 증가가 식자재비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반드시 음식의 질 저하가 일어난다. 아이들은 건강권을 빼앗길 것이다. 강남좌파처럼 이 구실 저 구실 만들어 병역을 면제받은 적도 없고, 강남우파처럼 부동산 투기를 위해 위장전입을 해본 적도 없는 구로우파야말로 이런 꼼수를 심판해야 할 세력이다. 전면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일부가 아니다. 의무교육을 가장 먼저 실시한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지금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해본 적이 없다. 영국이 보어전쟁 때 영양 상태가 부실한 신병(新兵)이 많은 것을 보고 1906년 무상급식을 도입했지만 의무교육 차원에서 그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면 무상급식을 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고 영양부족이 우려되는 아이들에게만 제공하면 충분한 것으로 여겼다. 의무교육의 역사도 살펴보지 않고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이라는 거짓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이 이 나라 지식사회의 수준이라면 선진국이 되기도 어렵다.아이들 점심 값 세금으로 청구될뿐 스웨덴 등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 전면 급식이란 게 있기는 하다. 스웨덴은 사회민주당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개량주의로 전환해 1930년대부터 집권했지만 집산주의 이념을 많이 간직한 나라다. 여성의 취업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일하게 하는 대신 아이들의 급식은 나라가 책임지는, 공산주의와 유사한 노동복지정책을 쓴 것은 그런 연유다. 스웨덴의 전면 급식은 주부들이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지, 주부의 도시락 싸주는 수고만 덜어주려는 게 아니다. 세계에서 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인 스웨덴에서 급식비는 세금에서 충당되니까 정확히는 무상도 아니다. 급식은 전면적이 되는 순간 더는 무상일 수 없다. 고지서가 모든 사람에게 세금으로 청구될 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남성 성기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박경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고려대 교수)이 이번에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여성 성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세상의 근원’을 올리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박 위원이 비판받는 것은 방통심의위원 9명 가운데 박 위원을 제외한 8명이 음란물 판정을 내리고 삭제 조치를 취한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행동 탓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문제인 것처럼 교묘히 논점을 흐리고 있다. ▷‘레드 헤링(red herring)’이란 말에는 ‘훈제 청어’란 뜻 외에 ‘사람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훈제 청어는 냄새가 독하다. 사냥감을 쫓던 개가 그 냄새를 맡으면 혼란을 일으켜 사냥감을 놓치기 쉬워 도망자들이 갖고 다니던 생선이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레드 헤링은 논리학에서 엉뚱한 데로 사람의 관심을 돌려 논점을 흐리는 것을 지칭한다. ▷레드 헤링에는 다양한 수법이 있다. 인신공격이 그중 하나다. 가령 기독교 교리가 논점인데 갑자기 목사의 비윤리적 행동을 거론하며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는 경우다. 박 위원은 병역 기피를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스스로 밝힌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민주당이 방통심의위원에 추천한 것에 대해 말이 많다. 그렇다고 성기 사진 논란을 놓고 그의 이런 경력을 꺼내 비판한다면 그것은 인신공격성 레드 헤링에 해당한다. 미국 국적자가 한국의 민감한 이슈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권리가 있는지는 별론(別論)에 속한다. ▷너무 광범위해 논의해봐야 쉽게 결론이 나기 힘든 논점으로 바꿔치기하는 ‘허수아비(straw man) 공격의 오류’도 레드 헤링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맥주에 대한 법을 자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중독성 물질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을 허용하는 사회는 망한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박 위원 문제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위원회에서 자신이 반대했던 사안이라도 다수 결정이 내려지면 승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한 문제다. 방통심의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하면 일단 위원직부터 그만두고 내려와 논쟁을 시작하는 게 순서일 듯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나흘 만에 비가 그친 어제 전국 각지의 수해 현장에서 복구의 삽질이 분주했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는 군, 경찰, 소방관, 시구청 공무원 등 1만8000여 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 작업을 벌였다. 자원봉사자 3000여 명도 빵과 물을 들고 달려왔다. 다음 주초 다시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다. 지금은 만사 제쳐놓고 수해 복구와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수해 책임을 둘러싼 정치공세를 펴느라 바쁘다. 민주당은 이번 수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권 욕심에 사로잡혀 전시(展示) 행정에 치중한 결과 빚어진 인재(人災)라고 비판했다. 전시 행정의 사례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거론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쓰이는 돈보다는 전면 무상급식 지원에 드는 돈이 훨씬 많다. 최소한 토목 사업 예산을 깎아 복지 예산을 마련하자고 주장한 민주당이 할 소리는 아닌 듯하다. 민주당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료를 근거로 오 시장이 수해방지 예산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여 화를 자초했다는 주장을 폈으나 서울시 수해방지 예산은 오히려 매년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채소값 폭등의 원인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경작지 감소라고 주장했다가 4대강 주변 채소밭 면적이 미미하다는 자료가 나와 창피를 당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이번 수해는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천재지변과 산사태 위험 간과 등 인재의 요소가 결합돼 있다. 그러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과학적 객관적으로 밝히는 일은 복구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숙려(熟慮) 기간을 가져야 좋은 대책이 나온다. 서울지하철이 과거 침수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지하철역 입구 계단을 50cm 높이고 ‘침수 피해 매뉴얼’을 만들어 반복 연습한 결과 이번 폭우에는 큰 침수 피해가 없었다. 산사태로 16명이 숨진 서울 서초구 주민이 진익철 구청장을 보는 눈이 곱지 않다. 진 구청장이 임기 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우면산 생태공원 정비를 서두르면서 지난해 비 피해의 복구공사는 늑장을 부렸다는 것이다. 오 시장에 대해서도 재난안전을 위한 투자보다는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같은 도시의 외모 바꾸기에 치중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전시성 성과에 매달리느라 도시기능 정비를 소홀히 한 점이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가입 교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한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과 동아닷컴에 각각 3억4000만 원과 2억7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전교조 가입 여부가 드러나면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노조를 탈퇴하거나 노조 가입을 꺼려 노조의 단결권을 침해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법원의 판결이 형식논리에 치우쳐 전교조를 둘러싼 현실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명단 공개 시 단결권 침해란 주로 사용자 측으로부터 가해지는 불이익을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조는 조합비 일괄 공제를 위해 사용자 측에 조합원 명단을 넘긴다. 전교조도 마찬가지다. 조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넘겨받은 명단도 그런 명단이다. 한때 전교조가 탄압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다. 조 의원이 명단공개를 추진할 당시 전교조는 스스로 자발적 명단 공개 의사를 밝힌 바도 있다. 법원은 “헌법 31조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보장한 것을 고려할 때 교사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보다 학부모의 알권리가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상당수 전교조 교사들은 중립적이지 않은 이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이 헌법이 규정한 정치적 이념적 중립을 준수했다면 학부모들이 굳이 알권리를 요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법원은 이해당사자인 학부모 학생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지만 교육과 무관한 국민은 거의 없다. 지금은 학부모가 아니라도 과거에 학부모였거나 미래에 학부모가 될 사람들이다. 전교조 교사는 일반 노동자와는 다르다. 교사는 공무원법, 교육법,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등의 보호와 규제를 받고 있다. 시장에서 소비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조하는 노동자와 미래세대 교육을 맡은 교사를 같이 볼 수 없다. 교육서비스의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권리가 결코 전교조 교사들의 단결권보다 하위(下位)에 있는 개념은 아닐 것이다. 조 의원은 법원의 명단 공개 금지 가처분 명령에 불복했다가 이행강제금 약 1억 원을 내고 있고 다시 3억4000만 원의 손해배상금도 내야 한다. 전교조는 승소 뒤 “조 의원에게 동조해 홈페이지에 명단을 공개한 김효재 김용태 진수희 정두언 장제원 박준선 정진석 정태근 차명진 의원에 대해서도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참교육을 하겠다고 출범한 전교조가 왜 다른 교원단체와 달리 명단 공개를 한사코 기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교조가 벌인 이념 교육, 정치 투쟁에는 법을 고의로 무시하는 불법이나 탈법행위가 많았다. 그러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법을 이용한다. 전교조는 이번 승소를 기뻐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노르웨이 테러 사건을 계기로 다(多)문화주의가 논란에 휩싸였다. 유럽 국가는 미국과 달리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호황기에 이주민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다문화주의를 일부 수용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잇달아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했다. 토르비에른 야글란 유럽의회 사무총장은 “다문화주의 탓에 국가 안에 별개 사회가 성장하고 있다”며 “이 중 일부는 위험하고 급진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주의 쇠퇴로 힘을 얻고 있는 것이 동화(同化)주의다. 프랑스가 남녀평등을 내세워 학교 등교 시 머리에 두건을 두르는 히잡, 거리에서 눈만 내놓고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동화주의의 한 사례다. 동화주의에는 유럽의 자신감 상실과 이슬람 인구 급증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다. 물론 동화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남녀평등은 어떤 종교이건 모두 인정해야 하는 가치다. 그런데도 동화주의의 지나친 강조는 이슬람 배척으로 나타날 수 있어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의 균형이 필요하다. 지난해 말 스위스에서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이 금지됐을 때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 간 균형이 깨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즈음 스웨덴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무차별 총격으로 10여 명이 죽고 다쳤다. 이번엔 노르웨이에서 이슬람 이민자의 대량 유입과 다문화주의가 유럽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100명에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한국을 ‘대규모 이민자 유입 없이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 ‘단일문화권 국가로서 매우 살기에 안전한 나라’로 꼽은 것이 좋게만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급속한 이주민 유입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은 올 1월 약 12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 수준이다. 그러나 그 절반가량은 중국 조선족이어서 한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매우 동질적인 나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유럽 국가와 처지가 다르고 다른 문화, 다른 인종, 다른 종교에 열린 태도를 취해야 글로벌 시대에 역동적인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異)문화를 혐오하는 발언이 인터넷에서 쏟아지고 있어 우려된다. 이민역사가 오랜 유럽의 실패와 성공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불교 유교의 평화로운 공존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다문화주의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각계 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서울시가 여성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지하철에 ‘여성 전용칸’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 혼잡한 출근시간대 지하철은 성추행범의 천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하철경찰대에 따르면 지난해 붙잡힌 지하철 성추행범은 1192명으로 2009년 671명에 비해 77%가 늘었다. 그렇다고 ‘여성 전용칸’을 도입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여성 전용칸 도입으로 일반칸은 더 혼잡해지고 전체적으로 성추행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되레 ‘피해 안 보려는 여성은 전용칸으로 가라’는 무언의 압력을 주는 ‘여성 역차별’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같은 사안을 놓고 완전히 관점(觀點)을 달리하는 쟁점일수록 양쪽 다 반쪽의 진실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안에서 어느 한쪽을 쉽게 택할 경우 다른 쪽의 부작용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차별을 낳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흑인과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확립돼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특별대우를 한다는 것 자체를 차별로 보는 경향이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7년 취임 이후 아랍계 학생들을 우대하기 위해 소수자 우대조치를 도입하려 했으나 인종 종교 성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을 내세운 반발에 밀려 포기했다.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서구 대도시의 지하철에는 여성 전용칸이 없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006년 지하철에 여성 전용칸 도입이 추진됐으나 여성단체들이 남녀평등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헌법에도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와 흐지부지됐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2000년대 들어 성추행을 막기 위해 도시 지하철과 전철에 여성 전용칸을 널리 도입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여성 전용칸 도입 이후 성추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대만에서는 2006년 타이베이 부근 전철에 여성 전용칸이 도입됐다가 3개월 만에 폐지됐다. 스마트폰 시대에 여성들은 치한퇴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말없이 지하철 노선, 역명, 칸의 대략적인 위치를 112로 전송할 수 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지하철 성추행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미국 홈쇼핑 채널 QVC는 최근 베트남전 반대 운동으로 유명한 미국 여배우 제인 폰다의 신간 ‘프라임 타임’을 홍보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그의 반전운동 경력을 비판하는 시청자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폰다는 당시 베트콩의 대공포 위에 앉아 웃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미국 참전 용사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폰다는 나중에 여러 차례 실수를 인정했지만 전쟁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최근 다시 연예인의 사회참여가 주목받은 것은 여배우 김여진 씨의 반값 등록금 1인 시위부터다. 그 전에 홍익대 청소용역 노동자 농성장을 방문하는 활동을 할 때만 해도 김 씨는 기성 언론이 소홀히 한 분야에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 시위 이후 한진중공업 파업 사태 등 곳곳에 얼굴을 비치면서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뉴스 현장에 더 자주 나타나는 배우’라는 비아냥거림을 받는다. ▷MBC가 “사회적 쟁점에 대해 특정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한 경우 고정출연을 제한하는 새 심의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에 따라 김 씨의 라디오 고정패널 내정이 취소됐다. 즉각 조국 서울대 교수, 소설가 공지영 이외수 씨가 반발해 MBC 출연 거부를 선언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MBC는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 그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그런 발언을 공정성을 지켜야 하는 공영방송에서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연예인뿐 아니라 교수 의사 등에도 해당하니까 연예인을 특별히 차별대우하지도 않았다. ▷판단력이 흐린 청소년들에게 연예인의 발언은 파급력이 크다. 광우병 파동 때도 몇몇 연예인이 비과학적 선동으로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사적(私的)으로 제작되는 영화나 공연과는 달리 공적(公的) 성격의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에 정치적 편향을 막는 장치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참여 연예인이라는 뜻으로 소셜테이너(socialtainer)란 말이 한국에서 유행한다. 영어에도 없는 국적 불명의 말이다. 우리처럼 국내의 정치적 이슈만 따라다니는 연예인이 아니라 수단 다르푸르 평화 활동을 펴는 조지 클루니 같은 진정한 사회참여 연예인을 보고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의 배후 세력으로 조직폭력배가 드러나면서 조폭이 우리 사회에서 어디까지 마수를 뻗고 있는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승부조작에 돈을 댄 전주(錢主)와 전주 측 브로커는 대부분 조폭이거나 조폭과 연계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승부조작에 돈을 댄 전주는 축구선수들이 약속을 안 지켜 돈을 떼일 경우에 대비해 선수를 협박할 조폭을 끼워 넣었다. 조폭이 스스로 전주를 겸업하거나 전주의 청부로 협박에 가담한 사례도 있다. 폭력조직 북마산파 출신 김모 씨는 스스로 전주가 돼 선수 매수자금 1억7000만 원을 투자하고 단 한 번의 승부조작으로 11억3000만 원의 배당금을 탔다. 조폭 세력과 연계된 한 브로커는 승부조작에 실패하자 가담한 선수를 협박해 8000만 원을 뜯어냈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은 범죄의 공모자이면서 조폭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대부분 선수들은 출신 고등학교나 구단의 선후배 관계 때문에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전주와 연결된 조폭에게서 승부조작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다음 경기에서도 승부조작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에게 승부조작은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려고 해도 더 깊숙이 빠져드는 수렁과 같았을 것이다. 범죄의 유혹에 넘어간 선수들을 두둔할 수는 없지만 운동만 하느라 세상 물정에 어둡기 쉬운 선수들이 간악한 조폭의 먹이가 된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조폭은 주로 유흥업소와 마약 매춘 도박 고리대금업 등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이번에 새로운 업역(業域) 개척에 나섰다가 마수가 드러난 셈이다. 약 5개월 사이에 열린 K리그 경기 중 15개 경기에서 승부조작이 이뤄졌다. 공정한 스포츠맨십이 발휘돼야 할 스포츠 경기를 어지럽히고 선수들을 범죄로 끌어들인 사악한 조폭 범죄다. 축구의 정직함을 사랑해 경기장을 찾은 팬도 조폭 범죄의 피해자다. 현재까지 구속되거나 달아난 조폭 혹은 조폭 연계자 5명은 모두 북마산파에 속한다. 검찰은 전국적으로 4개의 폭력 조직이 승부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다른 폭력 조직도 반드시 검거해 다시는 축구계에 승부조작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엄단해야 한다.}
인터넷 무료백과사전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는 북한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주장들이 실려 있다. “1960년대 말부터 추진하던 박정희의 핵개발에 자극받은 김일성이 핵미사일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김정일이 옛 소련의 붕괴를 목격하고 개방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누가 봐도 북한을 편들고 남한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결점이다. 개방성 때문에 누군가 악의적으로 정보를 입력할 수 있어 정확성과 공정성이 종종 논란이 된다. 그럼에도 위키피디아는 단순 나열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지성을 통해 정보를 한 차원 높은 지식으로 전환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브리태니커 등 전통 사전에 비해 시사 항목을 풍부히 담고 있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위키피디아 영어판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은 사정이 다르다. 항목 수가 영어판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어판에 비해서도 5분의 1 수준이다. 일본 인구가 우리보다 2.5배 정도 많은 점을 고려해도 한국어판의 항목은 적은 편이다. 한국의 누리꾼들은 짧은 댓글을 다는 데만 익숙하고, 정보를 가공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지식의 축적보다는 단순 정보 전달이나 유희를 위주로 발달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식검색을 자처하지만 거기서 파편적인 정보 외에 체계화한 지식을 얻기 어렵다. 위키피디아에 글을 올리는 누리꾼의 정치적 편향도 문제다. 386세대에 의해 기초가 닦인 한국 인터넷 문화는 정치적 편향이 특히 심하다. 2008년 광우병 시위 때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가 홍위병처럼 누리꾼 선동에 앞장선 것은 ‘디지털 마오이즘(Maoism)’이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었다. 당시 누리꾼들이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mad cow disease(광우병)’ 항목에 나오는 미국 소에 대한 설명만 참고했어도 그런 시위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항목 수가 2005년 1만 개를 돌파한 이후 6년 만인 2011년 16만 개를 넘어섰다.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의 저열한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위키피디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식인들은 잘못된 정보와 정치적 편향에 의한 왜곡이 판치는 위키피디아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할 수 있는 값진 기부이자 지식의 사회 환원이다.}
독일 서부, 룩셈부르크와의 국경지대 인근에 트리어라는 도시가 있다. 허브(Hub)공항이 있는 프랑스 파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거리가 멀어 아시아 관광객은 작심하지 않고는 쉽게 찾아가지지 않는 도시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트리어에는 그의 생가가 보존돼 있다.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09년 트리어를 찾은 적이 있다. 마르크스의 생가에 유별나게 중국 관광객이 많아 놀랐다.“재정적자 국가에서 봉기 시작” 선동 북적거리는 중국인들로 한적하던 마르크스 생가가 깨어난 것처럼 1990년 소련과 동유럽권 공산주의 붕괴 이후 소멸하는 듯이 보였던 마르크스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지난주 프랑스 외교부 초청으로 파리에 갈 기회가 있었다. 소르본대 인근의 대형서점 지베르 조제프를 찾았다. ‘자본론’ ‘독일 이데올로기’ 등 마르크스의 저서와 관련 서적을 모아 철학 코너 한가운데에 진열하고 있었다. 일간 르피가로의 자매지 르푸앵이 권외 특별호로 낸 ‘마르크스 특집’도 눈에 띄었다. 저자 중엔 에티엔 발리바르, 미셸 아글리에타 등 1980, 90년대 한국의 사회과학도에게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보수주의 철학자 뤼크 페리의 ‘CD로 듣는 마르크스 해설집’도 새로 나왔다. 과거에는 없었던 이 코너를 보고 있자니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전남편인 철학자 라파엘 앙토방이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에서 방송한 마르크스 사상 소개 시리즈가 생각났다. 2008년 미국 뉴욕 월가의 금융위기로부터 마르크스의 부활이 시작됐다. 그 이듬해 인터뷰조차 좀처럼 하지 않던 프랑스 극좌파 철학의 거두 알랭 바디우가 TV 토론에 얼굴을 드러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크메르루주의 문화혁명에 찬동했던 바디우는 지금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와 함께 ‘공산주의의 이념’이란 주제의 세미나를 런던 베를린 뉴욕 등을 돌아가면서 열고 있다. 같은 해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을 취재하기 위해 갔을 때 옛 동독 지역 훔볼트대 앞에서 누군가가 나눠준 전단을 아직도 갖고 있다. 훔볼트대 건너편 광장은 좌파들의 단골 시위 장소다. 이 전단은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그리스이며, 이 나라에서부터 봉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었다. 그 약한 고리가 지금 포르투갈로, 스페인으로, 이탈리아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에서 얼마 전 귀갓길에 버스를 탔다가 ‘맑시즘 2011, 변혁이냐 야만이냐’는 제목의 광고지 하나를 우연히 발견해 읽었다. 다음 주 나흘간 고려대에서 열리는 마르크스주의 연속 강연회를 알리는 내용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트로츠키파 정치이론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유럽연구센터 소장인 그는 지난해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영국 대학생들의 시위를 지지하고 나섰다.이념의 磁場 바꾸는 최악의 景氣 마르크스주의 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자체 때문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그 자체로 오늘날의 세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자장(磁場) 속에 태어난 케인스 경제학과 베버리지식 복지의 영향력 강화다. 자유사회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소련 공산주의와 체제경쟁을 벌이면서 그 체제로부터 시장에의 국가 개입과 보편적 사회보장을 일부 배웠다. 1980년대부터는 자유주의의 자장이 힘을 발휘해 케인스주의를 밀어내고 복지제도의 개혁을 이끌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었다. 그러나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은 지금 다시 마르크스주의의 자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 장하준류의 경제학이 먹히고 복지 확대 요구가 거센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 우리는 이념의 자장이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전면 무상급식’이냐 ‘단계적 무상급식’이냐를 가릴 서울시 주민투표가 8월 말 실시될 예정이다. 서울시가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부를 검증한 결과 주민투표 청구에 필요한 서울의 유권자 5%(41만8005명) 이상의 서명이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주민투표청구심의회가 유권자 5%의 정족수를 채운 것을 확인하게 되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를 발의하게 된다. 2004년 주민투표법이 제정된 이후 전국에서 세 차례의 주민투표가 실시됐지만 모두 시군 통합이나 폐지,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입지 선정 등 국가 사무에 대한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주민투표는 자치 사무에 관한 것으로는 처음이고 투표 결과가 전면 무상급식뿐만 아니라 우리 복지정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주민투표는 지방자치의 중요한 부분이다. 전면 무상급식처럼 지방정치인들이 극한적으로 대립해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을 주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주민투표가 남발되는 것은 문제지만 지나치게 억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마구잡이 주민투표를 막기 위해 일정한 주민투표 청구 정족수를 요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현행 주민투표법처럼 일률적으로 5%를 요구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보통 정족수 비율을 지방자치단체 규모에 따라 달리 한다. 서울 같은 거대 도시에서는 5% 정족수를 채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서명 요청인의 범위를 너무 제한해 어디에 가서 서명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많았다. 선진국에서는 주민투표를 자치단체가 직접 관리하지만 우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한다. 선관위가 주민투표를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처럼 관리해 주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민투표가 성립하려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주민투표가 발의되면 활발한 토론과 선거운동으로 참여를 유도한다. 선관위는 선거운동 관리는 엄격히 하되 유권자가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막지는 말아야 한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주민투표를 무산시키려 한 것은 전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정당으로서 있을 수 있는 전략이다. 그러나 일단 주민투표가 발의되면 유권자의 참여를 독려해 투표로 의사를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의 태도다. 찬성이든 반대든 주민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자치다. 이번 주민투표를 민주와 자치정신이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검찰 경찰 수사권 조정 내용이 담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이 막판에 강력하게 반발한 ‘검사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검찰은 이 조항을 문제 삼아 김준규 총장이 사퇴를 예고했고 검사장급인 대검찰청 부장 5명 전원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이제 대의(代議)민주주의의 주체인 입법부가 재석의원 200명 중 17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법을 확정한 만큼 검찰은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집단 사의를 거둬들이는 것이 옳다. 검찰과 경찰은 얼마 전 청와대의 중재로 만나 수사 세부 규칙을 법무부령으로 만들기로 합의했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최종안 확정 과정에서 법무부령을 대통령령으로 바꿨다. 검찰은 법무부령으로 수사 세부 규칙을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정할 경우 준(準)사법기관인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무부령은 검찰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고 대통령령은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수사개시권이 경찰에 주어진 만큼 경찰도 수사 세부 규칙을 정하는 데 참여할 권리가 있다. 수사개시권에 관한 세부 규칙을 검찰이 속한 법무부나 경찰이 속한 행정안전부의 부령이 아니라 관련부서의 합의가 필요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검찰 수뇌부의 집단 사의 표명은 대통령과 국회에 압력을 넣어 조직 이익을 관철하려는 행동으로 국민 눈에 비칠 것이다. 검사들이 김 검찰총장이나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당초 안을 고수하지 못했다고 항의성 행동을 하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임기가 한 달 반가량 남은 김 총장이 할 일도 사표를 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안정시키는 일이다.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씨앗은 남아 있다. 검사의 수사지휘에 관한 대통령령을 만들 때 검경 사이에 다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경찰과 검찰은 조직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부여된 수사개시권과 지휘권을 국민의 관점에서 행사하고,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와 기소로 정의를 바로세우는 방안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요즘 우리 사회는 이익집단의 업권(業權) 투쟁이 도를 넘어 국민의 편익이나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찰마저 경찰에 수사개시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오로지 조직 이익만 관철하기 위해 행동한다면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민의 신뢰로부터도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