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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차은택 게이트’로 의혹의 한가운데에 선 문화체육관광부가 “의혹을 다 털고 투명한 문체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반성과 명쾌한 해명도 없이 A4용지 1장짜리 보도자료만 내놓아 ‘면피용 발표’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30, 31일 이틀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최순실, 차은택 게이트로 논란의 중심이 된 문체부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했다. 문체부는 31일 “외부 개입에 의해 추진된 의혹이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법령 위반 및 사익 도모 여부를 점검해 문제가 확인되면 과감한 정리 등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차 씨와 최 씨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문체부 사업은 문화창조융합벨트, 국가브랜드 선정, 문화융성, 늘품체조, 해외 국가이미지 홍보사업, 미르재단 사업 등 20여 가지에 이른다. 문체부는 “콘텐츠산업, 관광산업, 겨울올림픽 성공적 개최, 문화융성 등은 국가적 과제로 존속시키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1일부터 국회에서 진행되는 2017년 예산안 심의에서 대규모 예산 삭감이 예상돼 긴급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 4대 기조의 하나로 내놓았지만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근본적인 실태조사와 함께 문화예술 관련 예산의 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문체부의 내년도 예산은 5조9104억 원으로 올해보다 7.6%(4156억 원) 증가했다. 특히 최 씨와 차 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내년 예산은 1278억 원으로 올해(903억 원)보다 41.5%나 증액됐다. 한편 문체부는 이날 광고회사에 지분을 넘기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은 송성각 콘텐츠진흥원장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 씨와 CF 감독 차은택 씨가 현 정부의 국정기조인 ‘문화융성 프로젝트’의 계획안 수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7일 TV조선이 입수한 2014년 6월 작성된 ‘대한민국 창조문화 융성과 실행을 위한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 융복합을 위한 아카데미와 공연장 설립 △한식 사업과 킬러콘텐츠 개발 등의 기획안이 담겨 있었다. 또한 표절 논란을 빚은 국가브랜드 사업에도 바이럴 홍보와 해외문화관 사업 등 6개 분야에 모두 140억 원을 투입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보고서에는 최 씨의 필체와 비슷한 빨간 펜글씨로 자구 하나하나를 첨삭한 흔적이 나오기 때문에 ‘문화융성’ 안의 초기 계획안부터 최 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제안서는 최 씨의 수정을 거친 후 같은 해 8월 ‘문화융성위원 차은택’이라는 이름으로 문화부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융복합 아카데미, 한복과 한식 홍보를 위한 사업 등은 실제로 현 정부에서 예산까지 배정되고 거의 그대로 진행됐다. 한편 2년 동안 개발된 ‘코리아체조’가 무시되고 갑자기 ‘늘품체조’가 국민체조가 된 배경에도 최 씨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공개된 화면에서 최 씨는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과 함께 늘품체조 시연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입었던 연두색 운동복 상의를 고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러나 박영국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확인 결과 차 씨 명의로 제출됐다는 보고서는 문체부에 접수된 적이 없다”며 “또한 보고서를 첨삭했다는 필적이 최 씨 것인지도 불확실해 견강부회가 심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오방색 천으로 뒤덮일 뻔한 숭례문거대한 굿판이 될 뻔한 대통령 취임식#.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 8명에도 포함되지 않은 일개 한복 디자이너가 왜 취임식 준비를 좌지우지하는지 전혀 몰랐죠. 그 때는...."#.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측근인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씨(53)가 국보 1호 숭례문 전체를 오방색 천으로 감싸는 행사를 기획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오방낭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 비단을 사용해 만든 전통 주머니입니다. 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기운을 가져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죠.최근 최 씨의 PC에서 '오방낭' 사진이 담긴 파일이 발견돼 최 씨가 취임식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취임식 행사 총감독을 맡았던 뮤지컬 '명성황후' 연출가 윤호진 씨(홍익대 교수)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를 증언했습니다. "오방낭 행사는 김영석 씨가 기획했다. 숭례문 전체를 대형 오방색 천으로 감싼 뒤 제막식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윤호진 교수#. "복원 공사가 완벽히 끝나지 않아 소방방재 시설도 없는 숭례문에 천을 씌우면 화재 위험이 있다. 김진선 당시 취임식 준비위원장도 김 씨의 제안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윤호진 교수#. 급기야 김진선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끝에 겨우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오방낭' 복주머니에 국민들의 소망을 담는 행사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영석 씨는 정식 취임식 준비위원 8명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물. 그는 '최순실 측근' 자격으로 이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곳곳에서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통령 측근의 측근'이죠.#.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을 340만 원짜리 한복을 제작했고, CF 감독 차은택 씨와 함께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르재단 이사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순실 씨 전남편 정윤회 씨와 함께 박 대통령 팬클럽이 주최한 2014년 독도 콘서트에도 나타났죠.#. "취임식 행사를 준비하며 수많은 개입과 마찰을 겪었다. 앞으로 이 정권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실세의 말을 거스르고 행사를 진행해 그런 듯하다"-윤호진 교수#. "최순실 씨와 김영석 씨가 오방낭 행사를 직접 챙긴 건 취임식을 '거대한 굿판'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문화계 한 인사#. '대통령 비선실세의 측근'은 도대체 무슨 직책일까요?왜 이런 민간인이 정부 공식 행사를 좌지우지했을까요?최순실 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요?참담합니다.원본: 전승훈 기자·김정은 기자기획/제작: 하정민 기자·이고은 인턴}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희망이 열리는 나무’(오방낭 복주머니) 제막식 행사가 당초에는 국보 1호 숭례문 전체를 오방색 천으로 감싸는 대형 행사로 기획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취임식 행사 총감독을 맡았던 뮤지컬 ‘명성황후’ 연출가 윤호진 씨(홍익대 교수)는 26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최 씨 PC에서 발견된 ‘오방낭’ 프로그램은 대통령 취임식 한복을 디자인했던 김영석 씨(53)가 기획했던 것”이라며 “김 씨는 당초 화재로 불탔다가 복원된 숭례문 전체를 대형 오방색 천으로 감싼 뒤 제막하는 행사를 하겠다고 고집했다”고 밝혔다. 윤 씨는 “아직 복원공사가 완벽히 끝나지 않아 소방방재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숭례문에 천을 씌울 경우 화재 위험이 있어 반대했다”며 “김진선 당시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도 김 씨의 제안에 곤혹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또 “결국 김 위원장이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끝에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오방낭’ 복주머니에 국민들의 소망을 담는 행사로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방낭은 청, 황, 적, 백, 흑의 오색 비단을 사용해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든 전통 주머니다. 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기운을 가져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공개된 최 씨의 PC에서 ‘오방낭’ 초안 사진이 담긴 파일이 발견되면서 대통령 취임 행사에 최 씨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교수는 “취임식 행사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개입과 마찰을 겪어 이 정권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며 “적당히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김 위원장과 내가 ‘실세’들의 말을 듣지 않고 행사를 진행해 그런 듯하다”고 말했다. 취임식 행사 준비에 참가한 한 문화계 인사는 “당시 한복 디자이너인 김영석 씨에 대해 왜 다들 어려워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최 씨라는 든든한 실세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정식 취임식 준비위원 8명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김 씨는 비선 실세 최 씨의 측근으로 취임식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이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곳곳에서 행적이 드러났다. 김 씨는 최 씨로부터 주문을 받아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을 340만 원짜리 한복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후 CF 감독인 차은택 씨와 함께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미르재단의 이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김 씨는 또한 2014년 8월 최 씨의 남편이었던 정윤회 씨와 함께 박 대통령의 팬클럽이 주최한 독도콘서트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화계에서는 비선 실세들이 ‘오방낭’에 집착한 것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 인사는 “최 씨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등 중요 행사 때마다 입을 옷 색깔도 직접 골라줬다고 한다”며 “최 씨와 김 씨가 오방낭 행사를 직접 챙긴 것은 취임식을 ‘거대한 굿판’으로 만들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부친인 최태민 목사의 영향을 받은 최 씨가 우리 전통의 색깔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본보는 김 씨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승훈 raphy@donga.com·김정은 기자}
“한식을 홍보하려면 프랑스에 한식 전문 교육기관을 세워야지, 왜 한국에 프랑스 요리학교를 세운데요?” 지난해 12월 초 파리 특파원으로 일할 때 잘 알고 지내던 한-프랑스 문화교류 기획사인 E사의 이모 대표가 화가 난 듯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미르재단과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한-프랑스 문화교류에 대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던 이 씨는 2013년부터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진행해 온 에콜 페랑디 한식 홍보행사를 대행해왔다. 3년간의 노력 끝에 페랑디 학교 정규수업 시간에 한식조리 과정을 넣고, 우수한 프랑스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식연수를 시키는 사업이 막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된 미르재단이 갑자기 나타나 ‘한국의 집’에 에콜 페랑디 한국분교를 짓겠다는 MOU를 체결해버린 것이다. 이 씨는 당시의 심경을 프랑스의 교민신문 ‘한위클리’에 털어놓았다. 당시 페랑디 측은 “미르재단이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없이 무조건 MOU에 사인만 해달라고 사정한다. 미르재단이 도대체 어떤 곳이냐”고 이 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페랑디 측은 “우리는 국가 산하기관이라 정치적인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고 미안해했다고 한다. 결국 이 씨는 3년간 공들여 온 페랑디와 aT의 협력관계를 모두 포기해야 했다. 이 씨는 “상도의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허탈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페랑디와의 MOU 체결’을 미르재단의 성과라고 치하했다. 그러나 미르재단이 중간에 끼어들면서 오히려 페랑디의 교육과정에 한식을 포함시키는 사업은 흐지부지돼 버렸다. 반면 페랑디는 설립 100년을 앞두고 첫 해외 분교 설립에 기뻐하고 있다. 한식을 홍보한다며 대기업 돈을 모은 재단이 결국은 프랑스 음식의 글로벌 진출만 도운 꼴이다. ‘창조경제’ ‘한류 확산’을 내건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사업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최순실, 차은택 씨 등 권력을 등에 업은 비선 실세의 ‘갑질’은 염치도 눈치도 없었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이 2년간 공들여 온 ‘코리아체조’가 한 달 만에 개발한 ‘늘품체조’로 뒤바뀌고, 밀라노 엑스포도 개막 5개월을 앞두고 갑자기 총감독이 교체됐다. K스포츠재단은 아예 최 씨가 딸의 승마 훈련을 위해 사유화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창조경제를 통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해 내기는커녕 남의 밥그릇 뺏기에 바빴던 것이다. ‘문화 융성’을 내건 현 정부의 문화정책도 마찬가지다. 1974년부터 40여 년간 연극 무용 문학 등 순수예술을 지원해 왔던 문화예술진흥기금이 2018년에 완전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 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융복합 콘텐츠’를 지원한다는 문화창조융합본부는 연간 1000억 원대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한 중견 뮤지컬 연극 연출가는 “가서 보면 공연 수준은 허접하기 그지없는데, 무대에 영상 틀고 ‘융복합’이란 제목만 달면 엄청난 지원을 받는다”고 개탄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문화 권력으로 득세하는 사이, 문화체육계의 조직과 예산은 ‘차은택의 놀이터’ ‘최순실의 쌈짓돈’이 돼 버렸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전통연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갈등과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 화합하자는 의미에서 페스티벌의 주제를 ‘화락(和樂)’으로 정했습니다.” 21∼23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 평화의 공원 별자리 광장에서 ‘2016 전통연희 페스티벌’이 열린다. 김승국 예술감독(64·수원문화재단 대표·사진)은 “‘뛸판, 놀판, 살판’으로 정한 슬로건처럼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의 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과 노래, 춤, 극, 놀이의 요소가 어우러진 연희(演희)는 서민들의 문화와 애환을 담은 한국 종합문화예술의 뿌리”라고 말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줄타기’를 비롯해 각 지역에서 전승돼 온 판소리, 농악, 탈춤, 북춤, 전통 민속놀이, 재주 부리기, 무예 등을 망라하는 개념이다. 김 감독은 이번 축제에서 가장 눈여겨볼 공연으로 22일 오후 6시에 공연되는 ‘산대(山臺·공터 등에서 펼쳐지는 조선시대 거리축제)’와 ‘채붕(綵棚·가설 누각무대 공연)’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가 자랑할 만한 고유의 무대 공연인데 아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220년 전 채색본 ‘정리의궤’에 근거해 ‘채붕’을 복원한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첫날 개막 공연 직전 열리는 ‘기지시 줄다리기’도 야심 찬 기획이다. 김 감독은 “충남 당진 기지시리에서 전승되어 온 이 줄다리기는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전통유산”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길이 50∼60m, 지름이 최대 1m가 넘는 줄에 사전 신청을 한 400여 명이 매달려 겨루기가 진행된다. 또한 전통연희를 소재로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창작연희 작품 공모 선정작도 공연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악·가·무 연희극으로 제작한 극단 거목의 ‘만복사저포기’, 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를 소재로 제작한 창작인형극 광대생각의 ‘문둥왕자’, 논버벌 퍼포먼스 타악극인 놀이마당 울림의 ‘세 개의 문’이다. 그는 “전통 공연과 현대적 감각으로 창작한 공연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음악, 게임, 캐릭터, 방송, 문화기술(CT)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콘텐츠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2016 K콘텐츠 페어’가 15, 16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린다. ‘콘텐츠, 그 이상의 콘텐츠’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축제에서는 K팝 콘서트와 한류 가수들의 미니 콘서트, 크리에이터들의 특별한 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16일 코엑스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융합, 공연, 체험, 기술, 전시 등 5가지 즐거움을 뜻하는 ‘오락(五樂)캠프’라는 주제 아래 5개의 테마관과 2개의 특별관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융복합 문화콘텐츠를 선보이는 ‘K컨버전스’ △홀로그램, K팝 콘서트, 온라인 생방송을 관람할 수 있는 ‘K쇼’ △가상현실(VR) 기술과 다양한 장르의 게임 체험이 가능한 ‘KVR’와 ‘K플레이’ △최신 문화기술을 접목한 교육전문 콘텐츠를 다룬 ‘K투모로우’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담은 문화상품을 전시하는 ‘K리본 실렉션’ △애니메이션, 드라마, 캐릭터 등을 전시한 ‘K드림’ 등이 선을 보인다. 전시관 내에 설치된 특별무대에서는 NCT, 틴탑, 에릭남, 김필 등 인기 가수들의 미니 콘서트가 펼쳐지며, 고전 ‘햄릿’을 각색한 뮤지컬 ‘라비다’의 음악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 공연과 논버벌 ‘탈 퍼포먼스’ 등 색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또한 라뮤끄와 라임튜브, 울산큰고래, 채채TV, 유준호 등 인기 크리에이터가 진행하는 MCN(다중채널 네트워크) 방송과 융복합 뮤지컬 갈라쇼, 아트 액션 퍼포먼스도 쉴 새 없이 펼쳐질 예정이다. 개막일인 15일에는 코엑스 동문광장에서 3시간 동안 K팝 콘서트도 열린다. 이 콘서트에는 샤이니를 비롯해 NCT, 세븐, 크레용팝 등 한류 스타 10팀이 참여한다. 이번 공연은 엠넷(Mnet)의 ‘M-슈퍼콘서트’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송성각 원장은 “대한민국 최대 쇼핑관광축제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와 연계해 열림으로써 외국인 관광객 포함 1만2000여 명의 국내외 관람객들의 방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 씨(47·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는 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유명 CF·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그는 홍익대 대학원 시절 은사인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외삼촌인 김상률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 광고업계에서 인연을 맺은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 이른바 ‘차은택 사단’을 통해 문화 권력을 휘둘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차 씨가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와 가까운 사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주장도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문화계에서 차은택에게 줄을 서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 달 전부터 웹드라마를 제작하느라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차 씨는 최 씨와의 관계에 대해 “그분(최순실)에 대해선 저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차 씨는 또 “한 번도 박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 대해서는 “제자인 제가 어찌 장관에 추천하느냐. 답답하다”며 “저를 아꼈던 스승이었는데 관련 의혹이 나오자 저를 멀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미르재단과 관련해 “(연세대 박사 과정에서 알게 된) 스승 김형수 연세대 교수가 이사장이 돼 그분과 일할 수 있는 이사 몇 분을 추천드린 것일 뿐인데 일이 커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차 씨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감정적인 표현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저라는 존재가 주변 분들에게 피해만 주고 있어 정말 괴롭다”며 “문화계에서 저같이 미약한 인간이 이런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죽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김정은 kimje@donga.com·전승훈 기자}
국립국어원(원장 송철의)이 5일 국민참여형 개방형 웹사전인 ‘우리말샘’을 비롯해 ‘한국어기초사전’,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 등 3종 12개 사전을 개통했다. ‘우리말샘’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돼 있는 50만 어휘와 새로 구축한 일상어 지역어 전문용어까지 더해 총 100만 개의 어휘가 수록된 사전이다. 예를 들어 일상어로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꽃청춘’ ‘힐링하다’ ‘그루밍하다’ 등의 단어가 포함돼 있다. ‘우리말샘’은 일반 참여자와 사전 전문가의 협업으로 끊임없이 다듬어지는 ‘위키피디아’ 방식의 사전이다. 일반 사용자가 첨삭한 정보는 표현·표기 감수를 거쳐 ‘참여자 제안 정보’로 표시되고, 이 정보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검토한 후에는 ‘전문가 감수 정보’로 표기된다. 또 이 결과는 다른 사용자가 재수정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와 함께 ‘한국어기초사전’ ‘국립국어원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도 내놓았다. ‘한국어기초사전’은 한국어 학습에 기본이 되는 5만 어휘가 실린 한국어 학습사전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습자를 위해 쉬운 뜻풀이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예문을 제공한다. ‘한국어-외국어 학습사전’은 미래 한류의 동력이 될 10개 언어(영어 러시아어 몽골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아랍어 프랑스어 등)로 ‘한국어기초사전’을 번역한 이중 언어화 사전이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국어사전 진흥 공모전인 ‘함께 만들어 가요, 우리말 사전’의 수상작 18점에 대한 시상식을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졌다. 수상작은 9일 제570돌 한글날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2016 한글문화큰잔치’에서 전시한다.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우리말샘’이 우리 사회의 소통과 문화 콘텐츠 생산의 보물창고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다음번엔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밀정’에서 송강호가 읊은 대사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부로서 독립군의 밀정 역할을 맡게 된 그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감동을 느꼈다. 영웅주의, 애국주의가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치열한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21세기 현대인에게도 계속되는 고민의 주제다. ‘밀정’은 1920년대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의열단의 경성 폭탄반입 사건이 배경이다. 황옥 경부(영화 속 이정출)를 비롯해 김시현(김우진), 김원봉(정채산), 현계옥(연계순) 등 영화 속 주인공의 모델도 실존 인물들이다. 황옥 경부는 과연 의열단이었는지, 일제의 밀정이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당시 발간됐던 동아일보를 뒤져 봤다. 당시 경찰에 압수된 물품에는 폭탄 36개, 폭탄장치용 시계 6개, 권총 5자루, 실탄 155발, 뇌관 6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문’ 900여 장이 들어 있었다. 1923년 7월 동아일보는 “이 사건에서 경기도 경찰부 경부 황옥이 함께 체포된 것은 가장 괴이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공판에서 김시현은 황옥의 도움으로 폭탄을 싣고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황옥은 최후진술에서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면 경시까지 승급을 시켜 줄 것으로 믿고 한 일”이라며 눈물을 흘리며 읍소했다. 이에 방청객에선 비웃음이 쏟아지고, 의열단 단원들이 분함을 참지 못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그러나 결국 재판장은 김시현과 함께 황옥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내린다. “의열단원 황옥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호자식(虎子式) 병법’을 내세웠지만 법관의 안(眼)으로 보면 중대한 정치범인이 명백하다”는 이유였다. 독립운동가를 잡아넣던 황옥이 의열단 사건에서 유죄를 받자 조선 민중들의 시각은 크게 달라졌다. 동아일보 지면에는 “철창에 갇힌 ‘의열단원’ 황옥의 처와 굶주린 아이를 돕고 싶다”며 백미 대두 한 말, 또는 돈 일원을 보내왔다는 독지가들의 성원이 연일 답지했다.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에서 독립운동가가 아닌 일제 총독부의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유와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파브리스 비르질리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교수는 나치 점령기 독일군과 관계를 맺었던 프랑스 여성이 낳은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멸시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는 “감추려고만 했던 우리 내부의 비극적 역사를 직시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힘겨운 현실에서 우리는 점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서로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자신의 생각을 확인할 뿐이다.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실망했던 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실제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희망사항을 그린 영화였기 때문이다. 일제의 보호하에 있던 영친왕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 망명을 시도하고, 덕혜옹주가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한글학교를 세우고…. 안타까운 역사를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허탈한 자기 위로일 뿐이다. 당시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영화에서처럼 왕정 복귀를 바라지 않았다. 임시정부 헌법에도, 동아일보 창간사에도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글귀가 선명하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한때는 ‘미국인 2명 중 1명은 한세실업 옷을 입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미국 인구보다 더 많은 옷을 판다’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한세실업 관계자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미국 인구가 대략 3억2400만 명인데 한세실업이 지난해 수출한 옷의 수량이 3억4900만 장이니 맞는 말이다. 1982년 11월 창립한 한세실업은 ‘한국과 세계를 잇는다’는 사명(社名)처럼 세계 유명 의류 브랜드들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글로벌 의류수출 전문기업이다.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자개발생산(ODM)을 전문으로 해온 한세실업은 글로벌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한세실업은 나이키·언더아머·갭·핑크·H&M·Zara·아메리칸이글 등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유명 브랜드와 월마트·타깃 등 대형 할인매장의 자체상표(PB) 의류 등을 생산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약 13억 달러어치의 의류를 수출하며 1조5865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한국 본사(700명)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5개국 13개 해외법인에 총 3만6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역성장과 적자를 경험한 적 없는 한세실업은 동남아와 중남미에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연구개발(R&D) 경쟁력을 갖춰 매년 10%에 가까운 고성장을 지속해 왔다. 한세실업은 현재 미국 외에 유럽을 대표하는 3대 SPA 브랜드인 H&M, ZARA, Primark과 거래하고 있으며, 2014년부터 일본의 MUJI 무인양품과도 거래를 시작했다. 한세실업의 R&D 본부에는 본사 인원의 10%에 이르는 70명의 디자이너와 연구 인력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 명문 디자인학교 출신으로 변화하는 글로벌 패션 트렌드에 맞게 창의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나이키, 갭과 같은 세계 유수의 바이어들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경쟁력 때문이다. 최근 ‘애슬레저룩’(운동복처럼 편하고 활동성이 있는 일상복)이 글로벌 트렌드로 떠올랐다. 한세실업은 3년 전부터 이 같은 흐름을 감지하고 나이키, 언더아머, 가이암 등 스포츠웨어 브랜드와 거래하며 애슬레저룩 디자인과 원단을 개발해왔다. 한세실업은 중미의 니카라과, 과테말라 법인을 운영함으로써 미국 시장에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통한 무관세 혜택으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지난 해 10월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소나피 섬유공단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내년부터 아이티에 직원 4000명 규모의 공장을 가동해 중미를 동남아에 이은 차세대 생산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한세실업은 지난 2013년 초 베트남 염색공장 C&T Vina를 인수했다. 이 회사에서는 면 원단에서 합섬원단까지 생산범위를 확장시켜 하루 생산량을 현재 6만kg에서 향후 20만kg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한 2014년 3월에는 원단중개업을 하는 칼라앤터치를 설립해 C&T Vina에서 생산한 원단을 타 OEM, ODM 회사에도 판매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국내 패션회사 엠케이트렌드의 주식 40%를 인수하여 최대 주주가 됐다. 이 회사는 중국 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미국 프로농구 NBA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의 브랜드 사용권을 보유하고 있어 중국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한세실업은 원단 사업, 패션 브랜드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형상화한 ‘승리의 V자’.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왕두(王度·59)는 이달 초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에 설치된 7m 높이의 자신의 조각품 ‘빅토리(Victory)’를 꼼꼼히 살폈다. 지난해 설치된 뒤 시민들의 촬영 명소가 된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의 대표작이다. 왕두는 “뼈만 남은 손가락은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희생과 상처, 승리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왕두는 올해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에 초청돼 20년 지기인 한홍수 화백(57·재불현대화가협회 소나무회 대표)과 함께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1992년부터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 거리에서 초상화 화가로 10년간 일하면서 만나 우정을 쌓았다. 늘 경찰에 쫓겨다니는 가난한 이방인 화가였던 두 사람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거리가 우리의 아틀리에(작업실)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온 두 사람은 지난해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유네스코 창립 70주년 특별전 ‘제3의 현실’에 함께 초청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체제 비판적인 작품 활동을 해왔던 왕두는 1989년 6월 중국 톈안먼 사태 당시 9개월간 감옥에 갇혔다가 국제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망명했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해외 망명 중국작가 21명의 ‘후(後)89 예술’ 특별전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1세대 작가로 떠올랐다. 이번 전시회에서 두 사람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위기로 고조된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폭력과 죽음의 문화를 생명과 창조의 이미지로 극복하는 예술작품을 선보였다. 왕두는 전시장 한쪽에 신문지로 만든 미사일을 설치했고, 반대편 벽면에는 여성의 신체 뒷모습이 그려진 한 화백의 에로틱한 유화 작품이 전시됐다. 왕두의 ‘신문지 미사일’은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 출품된 이후로 꾸준히 만들어 온 시리즈 작품. 왕두는 “코소보 전쟁 당시 르몽드, 르피가로,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의 신문들이 전쟁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시키는 것을 보고 ‘미사일보다 더 공격적인 미디어’라는 의미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걸 보고 북한 핵과 미사일,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등을 느끼는 것은 관람객의 자유”라고 말했다. 한 화백은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1931∼32년 아인슈타인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전쟁과 폭력, 테러 등을 억제하기 위해선 삶의 순수하고 창조적인 에로틱한 욕망을 더 키워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았다”며 “왕두의 미사일이 ‘타나토스’(죽음의 본능)를 상징한다면 내 작품 ‘기관 없는 신체’는 에로틱한 욕망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영국의 설치미술가 애니시 커푸어가 베르사유 궁전에 여성의 성기를 은유한 작품을 전시해 논란이 벌어진 것도 테러와 전쟁의 시대에 죽음의 문화를 에로틱한 생명의 창조적 에너지로 극복하려는 예술적 노력”이라고 덧붙였다. 김기덕 감독과도 친분이 있는 왕두는 한국의 대중문화에도 관심이 크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한중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데 대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일본과의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 일본산 차량을 불태우고, 대대적인 반일시위를 벌였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며 “중국의 공산주의 교육과 집단적 애국주의 때문에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이지만, 개개인은 그런 감정이 없어 우려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베테랑 광역수사대와 유아독존 재벌 3세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다룬 영화다. 한번 꽂힌 것은 무조건 끝을 보는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을 비롯해 겁 없고 못 잡는 것 없는 특수 강력사건 담당 광역수사대. 오랫동안 쫓던 대형 범죄를 해결한 후 숨 돌리려는 찰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만난다. 의문의 사건을 쫓던 서도철은 조태오가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직감한다.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 한 영화다. 누적 관객 수 1341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영화 3위에 올랐다.}
“엄마, 나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지난주 벌초를 다녀오면서 고교생 조카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깜짝 놀라서 귀를 기울이니 어느 대학에 들어갈지, 어떤 직장에 취업할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고민이란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더. “헬조선에서 살기 싫어요.” 인터넷에서 유행한다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이란 신조어를 조카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다니…. 취업난을 겪는 20, 30대 청년세대들이 쓰던 말을 이제는 10대 고교생들도 “역시 헬조선은 안 돼” 하면서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형국이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에 불과 10∼20%를 살아보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하는 것은 충격적이다. ‘헬조선’은 2010년 1월 디시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에서 친일 성향의 누리꾼들이 쓴 ‘헬조센’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한다. 처음엔 ‘조센징’ ‘엽전’ ‘민도(民度)가 낮다’ 등 일제가 조선인을 비하했던 말을 연상시켜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면서 ‘헬조선’이 점점 설득력을 얻더니 이제는 영화 소설 등 대중문화 전반의 코드로 자리 잡았다. 1200만 관객 기록을 눈앞에 둔 영화 ‘부산행’은 달리는 KTX에 수백 명의 좀비가 달려드는 아비규환 같은 지옥도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영화 ‘터널’도 세월호 사고로 무너져 내린 재난 같은 한국사회를 은유했다. 반면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군인들을 그린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국뽕’(과도한 애국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출판시장에서도 젊은이들은 더 이상 ‘멘토’를 찾으러 다니지 않는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20대 여주인공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국을 아예 떠난다. 주인공은 자신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한테 늘 잡아먹히는 톰슨가젤 같은 존재”라며 “잡아먹히기 전에 도망치고 싶다”면서 호주로의 이민을 선택한다. 3년간의 파리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가 두 달 정도 지났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묻는 것은 비슷했다. “지옥으로 돌아온 기분이 어때요?” “아이는 유럽에 두고 왔나요?”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하면 “왜 그랬느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도 옛날의 유럽이 아니다. 현재 유럽의 청년 4명 중 1명이, 그리스는 2명 중 1명이 실직 상태다. 프랑스 대학생들이 한국에 취직하고 싶어 한국어 강좌에 몰려든다는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눈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청년들은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파리에서는 잇따른 테러 위협에 시내 곳곳에서 몸수색을 당해야 하는 불안감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유럽에선 ‘헬프랑스’나 ‘헬그리스’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테러 때마다 온 도시가 대형 국기의 물결로 뒤덮인다. 우리 같으면 ‘국뽕’ 논란이 벌어질 상황이다. 과연 세계에서 어느 나라가 더 지옥일까. 절대적 기준은 없을 것이다. 경제적 통계보다는 사회적, 심리적 요인이 더 커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기 비하’ 세대에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당시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쳤던 젊은이들의 함성이 왜 그토록 빨리 사라지고 ‘헬조선’이 득세하게 됐는지 정치권은 먼저 깊이 반성해야 한다. “특혜만 있고 책임을 지지 않는 천민적인 지도층이 헬조선을 만들었다”는 송복 교수의 말처럼 사회 지도층부터 도덕성 회복과 희생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노숙인을 볼 수 있다. 함께 지내는 개의 목걸이에 ‘배고파요’라고 쓰인 팻말을 걸어 놓고 동정심을 유발하는가 하면, 낚싯대에 컵을 매달아 행인들이 주는 동전을 낚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르몽드지를 읽고 철학 논쟁을 즐기는 인텔리 노숙인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장마리 루골도 20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다. 그는 어느 날 저녁 샹젤리제 거리에서 구걸하던 중 자전거를 타고 와서 쇼핑을 하려던 한 남자에게 자전거를 지켜주겠노라 제안한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던 이 사람은 헌법재판소장 장루이 드브레였다.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돈독한 신뢰와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노숙인의 삶을 통해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싶었던 드브레는 그에게 책을 쓸 것을 권한다. 맞춤법도 잘 모른다는 루골에게 드브레는 단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충고한다. ‘아무것도 감추지 말 것!’이다. 그렇게 루골은 2년여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두꺼운 공책 세 권에 써내려갔다. 드브레와 루골은 몇 달 동안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누며 공동 교정 작업도 해나갔다. 프랑스에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헌법재판소장과 노숙인이 함께 TV 토크쇼에도 출연하는 등 화제를 낳았다. 루골이 들려주는 파리의 거리 생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유머가 넘친다. 그는 쇼핑하는 사람들에게 주차 단속이 뜰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고, 자전거도 지켜주면서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제법 잘 알려졌다. 그는 거리에서 만났던 가장 끔찍했던 사람이 배우 알랭 들롱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차갑게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뭘 원하는지 알아. 하지만 난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야.” 이 책에서는 거리에서 만나는 행인들로부터 당한 모욕과 욕설, 경멸, 혐오, 무례, 차별의 경험도 민낯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거리의 생활에 대해 “자유롭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는 책을 출간한 후 인세를 받고 유명해졌지만 다시 거리로 돌아온다. 노예처럼 구속된 삶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 초 평소 잘 아는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지인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기저기서 수십억, 수백억 원씩 중국 자본을 투자받고 지분을 내주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과연 받아도 문제없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2013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대박을 친 후 차이나 머니의 공습이 본격화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알리바바로부터 355억 원, YG엔터테인먼트는 텐센트로부터 357억 원, ‘뉴(NEW)’는 중국 화처미디어로부터 535억 원, 키이스트는 소후닷컴으로부터 150억 원….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올해 상반기에 한 국내 투자 중 70%가 한류 연예산업 분야였다. 중국 자본이 한류 콘텐츠 확보에 나선 이유는 엄청난 수익률 때문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16부 누적 시청 횟수가 총 25억 뷰가 넘었다. 이 드라마는 중국의 한 동영상 사이트가 45억 원에 구입해 1000억 원 이상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 ‘별에서 온 그대’ ‘런닝맨’ ‘나는 가수다’ 등의 수익률도 비슷하다. 한류 콘텐츠의 헐값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SM, YG, JYP 등 3대 기획사는 중국 시장의 매출 비율이 현재 20∼30%대인데 5년 후엔 50%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중국 의존도 심화는 한국이 ‘제2의 대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대만은 ‘판관 포청천’ ‘꽃보다 남자’를 제작한 아시아의 드라마 강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자본에 잠식되면서 대만의 제작 노하우를 갖춘 PD, 작가 등 고급 인력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스타들도 중국 활동에만 매달렸다. 결국 대만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고 문화산업이 붕괴했다. ‘쯔위 사태’에서 보듯 현재 대만은 중국에 문화적 주권을 빼앗긴 속국으로 전락했다. 중국은 한국에서도 드라마와 예능 PD, 작가, 배우 등의 제작 인력을 끌어들여 자체 제작능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이 자동차, 휴대전화 시장에서 약진했듯이 국내 지상파 방송에서 중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 날도 머지않았다. 중국이 저작권을 쥐고 있고 한국 배우, 작가, PD들이 만든 드라마가 국내 전파를 탄다면 콘텐츠 수출입 시장은 역전되는 것이다. 요즘 SBS의 주말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시청률은 5∼6%대에 머물고 있다. 경쟁 프로그램인 KBS의 ‘1박2일’ 시청률(13∼14%)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 그러나 중국 TV에서 리메이크한 ‘달려라 형제’가 SBS에 큰 수익을 낳고 있기 때문에 ‘런닝맨’은 폐지될 가능성이 없다. 이제는 국내 TV채널의 편성권도 중국이 쥐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한 중국이 한류 제동 걸기에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중국 자본에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는 한류 산업의 글로벌 다각화 전략을 재추진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은 미국의 팝 문화, 일본의 아이돌 문화, 유럽의 최신 음악 등 글로벌 문화를 한국 특유의 창의성 있는 스토리로 융합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 50% 이상 의존하게 된다면 한류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매력은 떨어질 위험이 크다. 언젠가부터 중국인으로 가득 찬 제주도의 신비한 매력이 감소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명품 기업은 구매력을 갖춘 중국 소비자들을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매장에 중국인 고객만 보이는 현상을 막기 위해 고심한다. 문화는 다양성이 생명이다. 사드 보복을 위한 중국의 ‘한류 제재’가 장기적으로는 위기만이 아닌 이유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최근 영국은 51.9%의 득표로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중대한 국가적 사안을 결정했다. 탈퇴파가 과반수를 넘기긴 했지만, 나머지 48.1%의 민의를 모두 ‘사표’로 만들었다. 심지어 1987년 한국 대선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불과 36.6% 득표율로 당선됐다. 나머지 63.4%의 의견은 사장이 된 것이다. 다수결이 실제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일까? 일본의 경제학자인 저자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하는 다수결의 원칙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특히 다수결은 양자 대결이 아닌 다자 대결에서 벌어지는 ‘표의 분산’에 무척 약하다. 다수결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1순위 지지 후보에게만 투표할 수 있을 뿐, 2순위나 3순위 후보에게는 전혀 표를 줄 수 없다. 이 때문에 모든 유권자를 잡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쓸수록 불리해진다. 이기기 위해선 일정 유권자에게만 1순위로 지지를 받기만 하면 된다. 결국 다수결 선거에선 소수 집단을 위한 정치, 대립과 분열의 정치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보편성을 결여한 ‘막말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백인 서민층의 열렬한 지지로 공화당 대선 후보에 오른 것도 같은 이치다. 저자는 다수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보르다 투표법’이다. 1위에 3점, 2위에 2점, 3위에 1점을 주는 식으로 점수를 매기고 그 합계로 전체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투표법에서는 극단적인 세력이 일부 점수를 얻더라도 합계에서는 높은 순위가 되지 못한다. 저자는 ‘사회계약’ ‘일반의지’ ‘인민주권’ ‘시민적 자유’ 등 근대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념이 무엇이고, 어떻게 투표에 반영되는지를 설명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화가 나지만 화난 표정이 아닌, 어리고 여린 소녀지만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는 눈빛…. 2011년 12월 14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어느덧 온 국민이 지켜 주고 싶어 하는 ‘국민 여동생’이 됐다. 수많은 사람이 소녀상의 맨발에 양말을 신겨 주고, 비올 때는 우산을 씌워 주고, 추울 때는 목도리를 둘러 준다. 이 책은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김운성 부부 조각가가 들려주는 소녀상 이야기다. 처음에 두 사람은 일본대사관 앞에 세울 수요집회 100회 기념비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기념비를 세우지 말라고 압력을 넣는 데 분개한 두 사람은 기념비는 물론 소녀상과 의자까지 형상화해 냈다. 작가는 소녀상에 담겨 있는 상징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소녀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잘려 있는 것은 그리운 가족과 고향 땅과의 인연이 무참히 끊겨 나간 것을 나타내고, 맨발의 소녀가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지 못하고 앉아 있는 것은 전장에 끌려가서도,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차가운 시선에 불안하게 살아온 할머니들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다. 소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자유와 해방, 평화의 상징이고, 그림자에 표현된 나비는 아픔을 겪은 할머니들의 ‘환생’을 뜻한다. 소녀상은 이후 국내의 공원과 학교는 물론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 세워져 수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소녀상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일본 정부는 위안부 재단에 10억 엔을 내놓는 대신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떼쓰고 있다. 그러나 13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꿈을 잃은 소녀’로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길원옥 할머니는 이렇게 외친다. “일본을 다 준다고 해도 용서할 수 있을까? 내 인생 돌려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희 공방에서 이기철 시인의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의 시 구절을 프린트하고, 벚꽃을 자수로 놓는 수업을 하려고 합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싶습니다.”(프랑스 자수 공방을 하는 이소 씨) 바야흐로 ‘1인 창작시대’를 맞아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웹툰, 게임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된 저작물의 융·복합화가 가속화되는 글로벌 환경에서 음악, 영상, 뉴스 등을 허가 없이 함부로 사용했다간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저작권 정보를 온라인에서 쉽게 검색하고 저작권 이용 허락 계약도 체결할 수 있는 ‘디지털저작권거래소(KDCE)’가 인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07년에 도입한 이 온라인 저작권 거래 시스템은 8개 분야(음악, 뉴스, 영화, 방송, 이미지 등) 약 1904만 건의 저작권 이용 허락 계약 서비스를 하고 있다. 최근 경기 안산시 관광과는 홈페이지 배경음악으로 가수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이용하기 위해 전송권 음악감상형 계약을 체결했으며, 김한백 씨는 유치진의 산문 ‘토막’에 대한 이용 계약을 체결해 지난해 충남문화재단 신진예술가 선정 공연에 활용했다. 이처럼 그동안 개인 법인 정부기관이 맺은 저작권 이용 계약 건수는 총 2만2606건에 이른다. KDCE의 홈페이지(kdce.or.kr) 게시판에는 복잡한 저작권에 대한 상담도 이뤄진다. “인터넷 광고 배경음악으로 노래를 10초 정도 사용하려는데 저작권료가 발생하는지요?”(전성기 씨) “흔히 ‘10초 이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아무리 짧아도 음원을 이용할 때는 저작권 이용 허락이 필요합니다.”(한국저작권위원회) KDCE 관계자는 “기존에는 저작권 이용 계약을 하려면 사무실까지 찾아와야 했다”며 “온라인 계약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저작권 활용이 대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여자들 사이에도 우정(友情)이 있을까?”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3년 개봉)에 나온 두 여주인공의 우정을 생각한다면 요즘 세상에 이런 소리 하면 몰매 맞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 서구 역사의 첫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정에 관한 기록은 오직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경쟁심과 질투심이 강한 여성은 우정을 나누기엔 부적합한 존재로 여겨졌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는 1906년에 “남자들의 무리에 여자들이 끼어드는 것은 우월한 정신적 대화를 오염시켜 ‘우정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라고 썼다. 그러나 ‘유방의 역사’ ‘아내의 역사’를 쓴 저자는 “역사는 펜을 쥔 자의 것이고, 여성이 배제된 우정의 역사도 그와 다르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성서부터 신화, 중세 수녀원의 편지 등 수많은 역사와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문헌을 일일이 뒤져 가며 ‘여성의 우정’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았다. 17세기 영국의 문학 서클과 프랑스의 살롱은 여성이 주도하는 문화와 우정이 꽃피우기 시작한 계기였다. 또한 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수전 앤서니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간의 일생 동안 변치 않은 깊은 우정은 ‘자매애(sisterhood)’의 상징처럼 남았다.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면 우정이 남성의 일이라는 과거의 생각은 역전된다”라고 진단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남을 배려하고, 다정하기 때문에 우정에도 더 적합한 존재라는 것이다. 최근 김혜자 나문희 등이 출연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홀로된 노년의 여성이 남성보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훨씬 잘 살아 갈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