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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저녁 아제르바이잔 바쿠. 제8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가 시작된 지 이틀째 날, 아제르바이잔 문화부 장관이 주최한 만찬이 열렸다. 아직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등재(5일)가 결정되기 전이라 한국대표단은 다소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데 세계 정부 관계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리랑’을 연주하는 게 아닌가. 지난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깜짝 쇼였다. “벅차오르던 감동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표단 모두 일어나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했어요. 참석자들이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왠지 아침 담벼락에서 까치를 마주한 기분이랄까요. 순간 ‘아, 김장문화도 별 탈 없겠다’ 싶었어요.”(박희웅 문화재청 국제교류과장·50)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박 과장과 홍진욱 외교부 공공외교정책과장(47)은 잠시 회상에 젖은 듯 먼 곳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아리랑과 올해 김장까지 등재 현장에서 발로 뛴 주역이다. 당시 상황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처음 위원회 심사에 올라간 등재명칭이 ‘퇴짜’를 맞았기 때문. 한 위원국이 ‘김치를 먹는 문화가 한국만 있느냐’며 국가(in the Republic of Korea)를 표기하길 요구했다. 이번에 함께 등재된 ‘중국의 주산(珠算)’과 ‘일본의 와쇼쿠(和食)’처럼. “요청국은 중국으로 추정됩니다. 이전부터 조선족을 근거로 김장문화 단독 등재를 주시해 왔거든요. 우린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미 이의 제기를 예상하고 바로 수정 절차를 진행했거든요. 그 대신 ‘김장’은 한국의 김치 담그는 문화라고 박아버렸잖아요. 다른 나라에서 김치 담그는 건 김장이 아닌 셈입니다.”(홍 과장) 게다가 이번 위원회는 무형문화유산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자리기도 했다. 이미 알려졌듯 한국과 중국, 일본은 1997년 협약 채택 때부터 적극 참여해 발언권이 세다. 중국과 일본은 정치·역사적 역학관계 탓에 서로 견제도 심하고 다른 나라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호응이 좋다. 한국은 인도와 함께 ‘조정국’ ‘중재국’ 대접을 받는다. “2014년은 한국에 길한 해가 될 겁니다. 현재 정부간위원회 위원국(22개국)인 중국, 일본이 내년 임기가 만료되거든요. 6월 선거에서 (2008∼2012년 위원국이던) 한국이 다시 위원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지 분위기만 보자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한 자리는 우리가 차지할 겁니다.”(박 과장) 두 사람은 앞으로도 정신없이 바쁠 것 같다. 한국은 무형문화유산에서 내년 ‘농악(풍물놀이)’, 2015년 ‘제주해녀문화’와 ‘줄다리기’ 등재를 노린다. 한 해 1국가 1유산이 원칙이나 줄다리기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와 공동등재라 비켜갈 수 있다. 홍 과장은 “등재 노하우가 적은 세 나라는 일종의 공적개발원조(ODA)라며 고마워한다”며 “우리 등재도 소중하지만 해외 유산의 등재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나선화 ‘생명과 평화의 길’ 상임이사(64·사진)가 신임 문화재청장으로 내정됐다. 청와대는 24일 “나 이사는 전문성과 경험이 뛰어나고 관련 인사들과의 교류 및 소통도 활발해 각종 현안을 원만히 해결해 나갈 적임자로 기대돼 신임 청장으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전임 변영섭 청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청장이다. 나 내정자는 숙명여고와 이화여대 사학과를 나와 1976년부터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실장을 30여 년간 지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도자사(陶瓷史) 연구자로 1985∼86년 경기 광주시 조선백자 가마터 발굴에 참여했다. 전남 영암군 구림리에 있는 옹기가마를 발굴해 당시 민속품으로 치부되던 옹기를 도자미술사의 연구 대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 내정자는 1992∼99년 한-러 공동 발해문화유적 조사단 책임연구원을 지내며 연해주 지역 고고학 발굴에 오랫동안 참여했다. 2005∼2013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한국큐레이터포럼 회장과 한국박물관학회 이사, 인천시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현장에서는 ‘여걸’로 불릴 정도로 강단을 지녔으면서도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나 내정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요새 문화재계가 상당한 진통을 겪었는데 국민이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되찾고 관련 종사자들이 활력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즘 세대는 기린이라면 ‘런닝맨’에 나오는 배우 이광수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체구가 아프리카 초식동물(giraffe)을 닮았다고 생긴 별명이다. 원래 기린은 목이 긴 짐승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동양에서 기린(麒麟)은 머리에 뿔이 나고 오색 빛깔 털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다. 용, 거북, 봉황과 함께 사영수(四靈獸·신령한 네 동물)로 꼽히는데, 태평성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길한 동물로 여겨졌다. 기린이 기린이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 명나라 영락제(1360∼1424) 때 동아프리카를 다녀온 환관 정화(鄭和)가 이 동물을 황제에게 바치며 처음 기린이라 소개했다. 성군이 나라를 다스려 기린이 나타났다는 ‘아부’였던 셈. 엄청난 돈을 쓴 항해가 쓸데없진 않았다는 면피용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기린이란 명칭은 일본에서 쓰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이시카와 지요마스라는 동물학자가 정화의 고사를 인용해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지금도 한국 일본 대만은 기린이라 부른다. 그런데 막상 근거를 제공한 중국에서는 이 동물을 ‘장경록(長頸鹿·목이 긴 사슴)이라 부른다. 신화 속 기린도 성품이 온화하다. 중국 옛 문헌 ‘시경(詩經)’이나 ‘광아(廣雅)’에는 “짐승은 보통 발 있으면 차고 뿔 있으면 부딪치려 하나, 기린만은 어진 성품으로 그렇지 않다”거나 “인을 머금고 의를 품어 걸음걸이가 법도에 맞다”고 묘사했다. 유교 사상에서는 기린을 공자(孔子)에 빗댄다. 공자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위대한 현인의 출현을 예고했다고 한다. 진짜 기린은 결코 예능 프로그램처럼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다. 물론 배우도 실제 성격이야 다르겠지만.(자료: ‘한자의 모험’(비아북)·한국문화재보호재단)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화재청은 20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서울 공간사옥’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공간사옥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해 1971년 착공됐다. 문화재 등록을 위해 앞으로 30일간 의견수렴 및 검토 과정,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치게 된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 순간,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단지 삶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울음도 나오질 않는다. 좀 더 찾아뵐 것을, 좀 더 잘 모실 것을. 하물며 속 썩인 일이 잦았다면 죄책감은 몇 곱절로 커진다. 하물며 저자는, 어머니가 죽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자에 알코올중독자였다. 미국 일간지 뉴스데이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1997년 퓰리처상도 받았던 저자는 문득 자신이 치러야 할 ‘전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목숨을 걸고 분쟁지역을 뛰었지만 어쩌면 그건 타인의 싸움이었다. 한때 누구보다 사랑했으나, 또 한때 누구보다 미워했던 엄마.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응어리는 목 끝까지 차 있었다. 그 씻김굿을 위해 저자는 엄마의 요리책을 꺼내 들었다. 왜 하필 부엌이냐고? 그곳은 저자에게 어머니와의 사랑이 차올랐던 공간이자 그 애정이 사그라진 장소였다. 아들은 엄마가 정성껏 차려낸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만끽했다. 허나 불지불식간 찾아온 병은 엄마를 부엌에서 내몰았다. 흥미도 재능도 순식간에 지워졌다. 차갑게 식어버린 냄비. 모자 관계도 얼어붙었다. 죽음이 일상인 전쟁터를 전전한 것도 그 결핍이 자신을 극한으로 내몬 결과였던가. 저자가 엄마의 요리 레시피를 쫓아간 건 바로 그 상실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나는 엄마를 되찾아올 한 가지 방도를 찾았다. 당장 내 집 부엌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 엄마의 돼지갈비, 초콜릿 크리스피, 딸기 아이스크림…. 어쩌면 그 음식들이 내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내가 잊고만 싶어 했던 과거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어줄지 모른다.” 물론 쉽지 않았다. 처음엔 엄마의 방식을 무조건 지키려는 강박관념에 요리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당시 저자는 아내와 아기를 가지려 간절히 노력 중이었다. 그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음식을 만들며 그는 천천히 변화한다. 사랑하는 이 앞에 식탁을 차려 내는 게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그 옛날, 엄마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참 애잔한 책이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회한이 읽는 내내 가슴을 저민다. 어머니의 정신병은 저자의 인생과 가족 모두를 엉망으로 휘저어 놓았다. 그 감당할 수 없던 현실은 감수성 예민한 10대의 분노를 엄마에게 쏟아 붓게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안다. 그게 왜 엄마 탓인가. 따지고 보면 가장 힘든 건 엄마였을 텐데. 그런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어떤 전투보다 치열하고 애달팠다. 신파로 흐를 수 있었던 레퍼토리를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저자는 현 시점 얘기는 과거형으로 쓰면서 옛 추억은 현재형을 고수한다. 명확한 의도야 알 수 없으나, 꽈리처럼 뒤섞여 서로를 지탱하는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어느 순간 저자는 깨닫는다. 엄마의 방식을 더이상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요리법은 재료 몇 g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시켜 먹거나 외식도 괜찮다. 진짜 핵심은 우리 앞에 마주 앉은 그들,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엄마로부터 그 마지막 선물을 건네받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영구대여 형식으로 국내에 환수된 ‘겸재정선화첩’을 주제로 특별강연회를 연다. 27일 이태호 명지대 교수를 시작으로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내년 1월 3일)와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10일), 박정애 중앙대 강사(17일)가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박물관 강당에서 강연을 펼친다. 02-6902-0756■국립중앙도서관은 20일 오후 2시 서울 반포동 도서관 지도자료실 내 세미나실에서 ‘대한제국칙령 제41호 속 석도(石島)는 독도(獨島)다’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연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의 ‘도서관 소식―행사 안내’에서 신청하면 된다. 무료. 02-590-0505}
임신 9개월차에 접어든 회사원 이모 씨(30)는 요즘 고민이 크다. 예정일이 내년 설날쯤인데 먼 일가친척까지 내년이 ‘청(靑)말띠’라고 성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다니는 병원에 제왕절개를 해서라도 말띠는 피하겠다는 산모가 여럿”이라고 말했다. 2014년은 갑오년(甲午年) 말의 해다. 벌써부터 ‘청말띠’라고 시끌시끌하다. 여성이 말띠면 팔자가 세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중 푸른 말은 유독 드세다는 입소문이 자자하다. 12간지의 일곱 번째 동물인 말이 띠가 되면 여성은 정말 그리도 박복할까. 이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우리 전통적 가치관과도 맞지 않다. 20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국제융합학술대회 ‘한중일 문화 속의 말’에서 발표하는 천진기 관장의 글 ‘백마 탄 초인이 있어’에 따르면 이 속설은 일본에서 들어온 습속이다. 실제로 한국과 중국 문헌이나 사료에는 이런 구절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조선왕조를 보면 말띠 왕비가 수두룩하다. 정현왕후(1462∼1530)와 인열왕후(1594∼1635), 인선왕후(1618∼1674), 명성왕후(1642∼1683·조선 현종의 비)는 모두 말띠였다. 대한제국 순정효황후(1894∼1966)도 마찬가지다. 천 관장은 “당시 그런 속설을 믿었다면 사주팔자를 엄격히 따졌던 왕실에서 간택했을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이 고약한 속설은 일제강점기에 전해졌다. 일본은 말해에 태어난 사람은 기질이 세다고 여겼다. 특히 말띠 여성은 시집가면 남편을 깔고 앉는다고 혼약을 꺼리는 풍조가 만연했다. 이것이 20세기 초 한반도에 퍼지며 마치 우리 고유의 통념인 것처럼 여겨지게 됐다. 물론 한국에서도 말은 강인한 생동감의 상징이었다. 경북 영천시 어은동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을 보면 마형대구(馬形帶鉤)가 눈에 띈다. 팽팽한 체구에 갈기를 세워 말의 활동성을 잘 표현했다.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이 문화재를 보면 한반도에서 말을 얼마나 오래전부터 영물로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기’ 조선전에는 위만조선이 말 5000필을 중국 한나라에 보내려 한 대목이 나와 이미 가축으로도 친숙했음을 보여준다. 세시풍속에서도 말은 치성의 대상이었다. 음력 정월 첫 ‘말날’ 상오일(上午日)은 말에게 제사를 지내고 숭상하는 날이었다. 이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는 풍속도 있다. 천 관장은 “맛있다의 ‘맛’과 말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서 유래됐다”고 설명했다. 시월상달(10월) 말날에는 붉은 팥떡을 해 마구간에 차려 놓고 고사를 지냈다. 말을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지금도 이어진다. 승용차 브랜드를 보면 ‘포니(조랑말)’ ‘갤로퍼(질주하는 말)’ ‘에쿠우스(말을 뜻하는 라틴어)’처럼 말을 상징하는 게 꽤 된다. 말표 고무신이나 운동화도 추억하는 이가 많다. 천 관장은 “활력과 건강의 상징인 말띠는 자랑스러워할 일이지 나쁠 게 없다”고 강조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한국사회학회(회장 정진성 서울대 교수)는 20, 21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서 ‘한국사회의 변화와 사회학의 대응’을 주제로 후기사회학대회를 연다. 각 사회학 분과를 아울러 총 1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며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 학자들도 발표와 토론에 참석한다. 한국사회학회는 또 후기사회학대회에 맞추어 사회학 총서(다산출판사)를 출간한다. 02-722-8747■ 소설가 신경숙, 은희경, 김연수와 시인 이병률, 문학평론가 이형철이 태풍 하이옌으로 고통받는 필리핀 어린이 돕기에 나선다. 이들은 20일 오후 7시 이화여대 교육문화홀에서 열리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주최 ‘살라맛뽀(필리핀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뜻)’ 낭독회에 참석해 자신의 작품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유니세프 홈페이지에서 3만 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이 초청 대상이다. 02-735-2315}
2008년 어느 날, 민속학자인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는 농협농업박물관에 찾아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포천에 엄청난 물건이 있으니 얼른 가보시게. 그리 완벽한 ‘겨리쟁기’(사진)는 생전 처음 봤네.” 겨리쟁기란 경기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던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다. 대부분 소 한 마리가 끌던 호리쟁기를 썼기 때문에 겨리쟁기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부리나케 포천을 찾았던 김재균 농업박물관장은 당시 입을 다물지 못했단다. 100년 넘은 겨리쟁기가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 하지만 소장자는 “선친이 땅을 일구던 땀이 밴 유품”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로부터 5년. 농업박물관 1층 홀 중앙에 전시된 겨리쟁기를 볼 수 있다. 오래도록 정성을 들인 박물관에 감읍해 소장자가 이달 초 기증했다. 박물관은 그 뜻을 높이 사 이 겨리쟁기를 박물관의 ‘농업보물 제1호’로 지정했다. 17일부터 서울 중구 충정로 농업박물관이 개최하는 특별전 ‘농기구, 보물이 되다’에 전시되는 농기구 50여 점은 농촌에선 흔한 물건이라는 선입견 탓에 저평가돼 온 것이다. 막상 전시장에 가보면 생각이 바뀐다. 세월의 향취가 그득한 농기구들의 자태는 웬만한 문화재 못지않다. 특히 박물관이 자체 선정한 농업보물 10점은 쉽게 보기 힘든 ‘작품’이다. 강원 산간마을에서 김치나 감자를 보관한 ‘나무 독’이나 나무가 휘어진 모양새를 자연스럽게 살린 세 칸짜리 ‘구유’는 미술품 같다. 내년 3월 30일까지. 무료. 02-2080-5727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 △운영지원과장 이영열 △출판인쇄산업과장 정향미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파견 이선영 ◇산업통상자원부 ▽원장 △국가기술표준 성시헌 ▽국장 △표준정책 안종일 △제품안전〃 김정환 △적합성〃 이상진 ▽과장 △전자전기 심진수 △지원총괄 최광국 △표준정책 유동주 △제품안전〃 전민영 △시험인증〃 김동호 △기술규제〃 임헌진 △국제표준 정기원 △전자정보통신〃 박인수 △기계소재건설〃 박주승 △에너지환경〃 최철우 △문화서비스〃 김용주 △제품시장관리 장금영 △제품안전정보 정승희 △전기통신제품안전 송양회 △생활제품안전 정의식 △적합성평가 정민화 △인증산업진흥 김영찬 △계량측정제도 최미애 △무역기술장벽협상 윤종구 △기술규제조정 이석우 △기술규제협력 최철호 ◇산림청 △산림이용국장 최병암 △산지관리과장 이종건 △국유림관리〃 박원희 △산림환경보호〃 김용관 ◇한국감정원 ▽처실장 △미래정보전략 한숙렬 △감사 정덕양 △연구개발 박기석 ▽지역본부장 △경기 김원식 △호남 김병복 ▽지점장 △중부 윤일채 △동부 조주현 △성남 박동준 △일산 장종권 △강릉 김남수 △청주 최기연 △사상 최규성 △울산 김종휘 △진주 손형배 △제주 정상규 △동부지점장 권우상 ◇한국원자력의학원 △경영기획본부장 최원영 ◇한국석유관리원 △경영기획처장 김동길 △경영관리〃 정충섭 △사업기획〃 신성철 △사업관리〃 류승현 △석유기술연구소장 하종한 △감사실장 송흥옥 △수도권본부장 김중호 △수도권북부〃 이병길 △호남〃 오영권 △영남〃 김진우 △대구경북〃 강동수 △직무감찰팀장 도재정 ◇한국저작권위원회 △종합민원센터장 강대오 ▽팀장 △기획홍보 현영민 △등록 주성훈 △법제연구 김찬동 △교육연수 김정묵 △원격교육 박인기 ◇동서발전 ▽1직급 을 △인재경영실 조동준 △건설처 강수진 △국내사업실 노용균 △해외사업실 경석영 △당진화력 정필식 △동해화력 박정순 △EWP RC 권기범 ▽2직급 △기획처 김낙교 △경영지원처 김만복 △인재경영실 김승현 △감사실 신정국 은성호 △동반성장센터 강용주 △자원전략실 조영권 △발전처 김태규 이갑주 △건설처 이준우 △국내사업실 김용대 △안전품질실 송하경 △당진화력 이철홍 △울산화력 권혁만 장봉익 △STX전력 이상훈 △동부발전당진 전기종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 △CS사업부문 총괄 부사장 김지연 △뉴비즈 전략실장 박종백 △경영지원실장 이태종 △CS사업 1본부장 이영미 △〃 2본부장 이제욱 ◇서강대 △융합소프트웨어연계전공주임 정성원 △한국발전과국제개발협력연계전공주임 김동택 △영미어문학전공주임 유원호 △서강대-㈜케이엠더블유산학연구소장 윤상원 ◇한림대 △기획처장 전호성 ◇한국기자협회 △총괄본부장 김용만 △대외협력본부장 이영재 △행정담당 부국장 이원희 △편집국 부국장 김미정 △기획부장 김동기 △편집국장 직무대행 김성후 ◇아시아타임즈 △편집국 생활경제부장 권태욱}
매사냥 장면을 담은 ‘곤명전렵도(昆明전獵圖·사진)’는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소중한 우리 문화재다. 하지만 환관 출신 서화가 이병직(1896∼1973)이 일제강점기인 1937년 서울에서 경매에 내놓은 이후에 행방이 묘연했다. 이 그림이 이역만리에 있는 미국 플로리다대 ‘새뮤얼 한 박물관’에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6·25전쟁 때 미8군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1998년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박물관에는 오원 장승업(1843∼1897)의 ‘고사아집도(高士雅集圖)’와 고려 청자상감버들무늬매병 같은 보물급 여럿이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세계 각지에 산재한 한국문화재가 15만 점이 넘는 것으로 파악한다. 해외 박물관 소장 유물만 5만 점 가까이 된다. 독일 함부르크민속박물관의 3500여 점을 필두로 미국 스미스소니언국립자연사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각각 3000점 내외를 소장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3, 1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이를 어떻게 더 잘 관리하고 더 많이 알릴 수 있을지 고심하는 자리였다.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해외에 있는 문화재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해외 기관들과 공동연구, 보존관리를 진행해 체계적인 정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옛날 얘기 하나. 한 아이가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웠다. 첫 글자 하늘 천(天)이 나오자 질문을 쏟아냈다. 하늘은 왜 파란지, 왜 태양은 뜨고 지는지…. 끊임없이 묻고 훈장은 대답했더니 10년이 지났다. 드디어 배우게 된 땅 지(地). 아, 청소년이 돼도 습벽은 바뀌질 않았다. 또 한번 강산이 바뀌었다. 스승은 걱정이 컸다. “천자문을 언제 다 배우누?” 이미 청년으로 장성한 제자는 웃었다. “하늘과 땅을 깨쳤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전래동화의 한 자락이지만 교훈은 깊다. 글을 배운다는 건 세상의 이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하물며 한문은 한 자 한 자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녔다. 실제로 화담 서경덕(1489∼1546)은 벽에 글자를 붙이고 골똘히 사색한 뒤 다음 글자로 넘어갔단다. 요즘 시절이라면 요령이 부족하다며 질타 받을 일이겠다. 허나 글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진지하다 못해 경이롭다. 한학자 청명 임창순(1914∼1999)이 개창한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의 연구원인 저자는 이런 자세가 맘에 들었나 보다. ‘봄 춘(春)’부터 ‘풀이할 역(譯)’까지 한자 22개를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때로는 그 한자의 생김새와 연원을, 때로는 글자에 얽힌 역사와 문화 혹은 신변잡기를 능수능란하게 이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은 ‘한자의 모험’보다 ‘한자의 유랑’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저자의 뒤춤을 졸래졸래 따라나서 보자. 알다시피 한문은 원래 바탕이 상형문자다. 글자에 사물의 모양새가 담겼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春도 고자(古字)를 보면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과 닮았다. 그런데 그 속엔 둔 또는 준으로 읽히는 屯이 들어있다. 이 글자는 준비한다거나 어렵다는 뜻도 있다. 봄을 맞는다는 건 새로운 출발을 대비하는 일이며, 뭔가를 시작하는 건 힘들다는 속내가 배어 있다. 글자 풀이도 재미있지만, 문자에 담긴 역사성도 흥미롭다. 임금 제(帝)가 그렇다. 황제란 칭호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진시황이다. 왕과 제는 천양지차다. “왕이 현실적 권력관계의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을 가리키는 반면, 제는 하늘의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그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올라 권력을 누리려 했다. 그런 시황은 중앙권력 강화를 도모하며 ‘한문의 통일’도 주도했다. 당시 한자는 지역마다 중구난방으로 달랐다. 하지만 일사불란한 정부 시스템을 갖추려면 명령을 전달하는 용어가 일관돼야 한다. 결국 진 제국이 글자의 표준화를 도입함으로써 한자는 “사물과 이어지던 탯줄을 잘리고” 언어의 추상성을 획득하게 됐다.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왕희지(307∼365)의 이름 중간에서 따온 ‘복희씨 희(羲)’자로 풀어낸 한중일 한자 삼국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왕희지는 종이에 붓으로 글을 쓰는 후한 시대 글씨를 예술로 승화시킨 핵심 인물이다. 중국에서도 서예는 왕희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왕희지의 기풍은 한국에선 석봉 한호(1543∼1605), 일본의 오노노 도후(小野道風·894∼966)로 이어져 꽃을 피웠다. 복희는 고대 중국의 시조 중 하나이니, 중국의 한자가 동아시아로 퍼져 각자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는 씨앗이 됐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참고로 오노노는 빗속에서 개구리의 몸부림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인물. 화투의 비광이다. ‘한자의 모험’은 참 색다른 책이다. 그저 보아 넘기던 글자 하나를 두고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겨우 10년 한자 공부 했을 뿐”이라지만, 그 공력이 여간 아니다. 다만 배움이 얕아서인지 쉽게 쓴 것 같은데 뭔 소린지 멍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저자는 다 아는 얘기겠지만 살짝 눈높이를 낮춰줬더라면 어땠을까. 이제 보니 왜 유랑이 아니라 모험인지 알겠다. 이 행군, 녹록지 않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숭례문 기둥 일부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는지를 내사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산 금강송을 썼다면 현재 복원된 숭례문의 일부 기둥처럼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제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숭례문 시공사와 문화재청으로부터 복원 공사에 쓰인 자재의 반입 반출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다. 다만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 3, 4개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1971년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이래 국내에서 두 번째로 발굴된 지석(誌石·무덤 주인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돌)이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내년 1월 26일까지 ‘7세기 신라 귀족무덤-경주 용강동 6호 돌방무덤(석실묘)’ 부장품 40여 점을 전시한다. 1991년 발굴된 이 무덤은 불교의 영향으로 이전 시대 무덤보다 규모도 작고 부장품도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한강 유역을 확보하며 중앙집권화와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신라의 7세기 초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무덤 속 인골의 머리맡에 놓여 있던 지석은 놓치기 아깝다. 글자가 대부분 소멸돼 판독이 어렵지만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나온 희귀한 사료다. 이전까지 유일했던 무령왕릉 지석은 국보 제163호로 지정돼 있다. 바둑돌로 추정되는 자갈돌 무더기도 눈길을 끈다. 신라는 효성왕 2년(738년) 바둑을 뒀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윤온식 학예연구사는 “이 무덤의 바둑돌이 나오며 신라의 바둑 도입 시점이 1세기 이상 앞당겨졌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유약을 입힌 녹갈색 귀항아리나 비파형 허리띠 연결걸쇠도 인상적이다. 무료. 054-740-75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992년 미국의 전국역사교육연구소(NCHS)가 만든 ‘역사표준서’는 당시 교육계를 넘어 정치·사회적 분란을 촉발했다. 표준서는 정부 차원에서 역사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는데, 너무 편향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일례로 매카시즘과 쿠클럭스클랜(KKK)은 17∼19차례 거론해 비판하면서도 토머스 에디슨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란 설명도 뺐다. 많은 정치가와 학자들은 “소수자 시각에 치중한 나머지 자유민주주의라는 건국 가치를 소홀히 했다”며 비난했다. 개관 1주년을 앞두고 13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관장 김왕식)이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 ‘세계 각국의 역사논쟁-갈등과 조정’은 여러모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박물관은 “올해는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논란과 교과서 파동으로 유독 역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며 “해외 역사논쟁 과정을 통해 공론을 모으고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경희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하는 ‘미국 역사표준서 개발을 둘러싼 쟁점과 그 함의’는 논란을 해결하는 미국 상원의 역할을 조명했다. 18개월가량 지속된 공방은 상원이 수정 결의안을 채택하며 NCHS의 표준서 수정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상원은 정파나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았다. 공화당 52석, 민주당 48석이었지만 수정안은 99 대 1이란 압도적 표차로 통과했다. 교육은 당리당략의 대상이 아니라는 대전제 아래 지속적인 대화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정 위원은 “한국 현대사 논쟁은 엘리트주의와 결합돼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변질되며 각자의 입장을 사회 전체에 강요하려는 시도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송충기 공주대 교수가 발표하는 ‘과거사 정책의 타협: 1960∼70년대 서독 연방의회의 시효 논쟁’도 정치권의 조정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1965년 종료될 예정이던 나치 범죄 기소 시한을 두고 10년 넘게 이어진 논쟁은 결국 1979년 시효 자체를 폐지함으로써 마무리됐다. 송 교수는 이 과정에서 2가지 점에 주목했다. 정치인들이 단기적 해결에 매달리지 않고 제도적 정책 마련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 다소 가벼운 죄는 시효 만료를 인정하는 타협을 이끌어 찬성과 반대 진영이 서로 부담을 덜었다. 또 대중은 시효 종료에 찬성하는 입장이 우세했으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다. 송 교수는 “정치권이 국제사회와 여론의 반응을 꾸준히 청취하면서도 올바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애썼다”고 평가했다. 당장의 소요를 우려해 논쟁을 비켜 가려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황보영조 경북대 교수는 ‘스페인의 과거사 논쟁’을 통해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정권 시절 희생자 관련 역사논란을 예로 들었다. 1970, 80년대 스페인은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침묵협정’을 맺어 관련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았다. 이는 국가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줬지만 본질적 문제는 잠복된 상태였다. 결국 1990년대부터 기억회복운동이 벌어졌고 지금까지 혼란을 겪고 있다. 정치권은 좌우로 갈려 소모적 공방만 일삼았고, 국민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불교나 유교에 비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의 도교에 초점을 맞춘 유물전이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10일부터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한국의 도교 문화-행복으로 가는 길’을 개최한다. 국보 6건과 보물 3건을 포함한 유물 300여 점을 모아 도교문화 전반을 살피는 대규모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이번 특별전에서 소개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19세기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뒤쪽에 ‘해반도도(海蟠桃圖)’가 그려져 양면이 회화인 유일한 궁중 장식화다. 해반도도는 도교에서 최고 여신으로 여기는 서왕모의 과수원에서 3000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는 복숭아 ‘반도’를 그린 것으로 왕의 불로장생을 축원하는 뜻을 지녔다. 두 그림 모두 도식적이지 않고 세련미가 넘쳐 당대 최고의 궁중 화가가 그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도 처음 선보인다. 주역참동계는 주역 64괘를 이용해 수련하는 원리와 과정을 담은 책으로 ‘포박자’ ‘황정경’과 함께 도교 3대 서적으로 꼽힌다. 16세기 조선 관료 신언식(申彦湜·1519∼1582)의 무덤에서 출토됐다. 1441년(세종 23년)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라는 금속활자로 찍어 간행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서를 찍어냈던 시기보다 42년 앞선다. 국보 제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와 국보 제139호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도 쉽게 만나기 힘든 작품이다. 금동대향로는 불교 의식에 쓰던 유물이지만, 신선들이 산다는 신산(神山)을 표현한 조각들은 도교적 세계관이 뚜렷하다. 군선도는 소를 타고 도덕경을 든 노자처럼 도교에서 신선으로 추앙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내년 3월 2일까지. 02-2077-90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는 사람됨이 독실하여 만 사람이 막더라도 나아간다는 뜻을 지녔다. 비록 대인(大人)이라 할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숙종실록) 벼슬에 뜻이 없어 평생 재야에서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 수양을 닦는 학문)에 매진했다. 왕이 세자를 가르치는 서연관(書筵官)으로 명했으나 이마저 고사했다. 마지못해 잠시 지방관리를 지냈을 땐 ‘현세의 부자(夫子·공자)’라 칭송받았다. 이만한 인물이라면 한 번쯤 듣기라도 했을 터지만 지포 박심(芝浦 朴심·1652∼1707)이란 이름을 대면 웬만한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박심은 조선 양명학 계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양명학의 선구자인 정제두(1649∼1736)의 막역지우로 함께 사상적 체계를 세운 숨은 공로자였다. 6·25전쟁 때 그가 지은 문집들이 모두 소실돼 지금까지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 최근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논문 ‘숙종조 박심 선생에 대한 재고찰’을 발표하며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당대만 해도 박심은 여러 대가들이 주목했던 학자였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1676년 유배 갔을 때 박심은 귀양지까지 찾아가 스승으로 섬기길 청했다. 우암은 주위 눈도 꺼리지 않던 그를 “참으로 두려운 친구”라며 놀라워했다.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그의 대성을 기대하는 마음이 짝사랑과 같아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박심의 학문은 남달랐다. 정제두의 ‘하곡집(霞谷集)’에는 박심에게 경전의 해석을 놓고 여러 차례 질문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쉽게도 박심의 글은 남은 게 없으나 ‘매옹한록(梅翁閑錄)’은 그가 저술하다가 아들 박양한(1677∼1746)이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심은 암행어사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박문수(1691∼1756)의 종조부이기도 하다. 백성을 아끼는 마음은 이 집안의 전통이었을까. 박심은 홍천 현감(47세)과 영천 군수(54세)를 지내며 배곯는 주민이 없도록 전력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리좀, 나의 삶 나의 글’(북드라망)을 쓴 김해완 저자는 처음부터 사람을 연신 놀라게 했다. 고등학교 중퇴의 중졸 백수가 인문비평서를 썼다는 것부터 감이 오질 않았다. 게다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 설명서라니.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뒤엔 더 입이 쩍 벌어졌다. 1993년생 스무 살. 생일이 며칠 남았다니 굳이 따지면 아직 열아홉 살인 앳된 여성이었다. “솔직히 아쉬움이 커요. 더 편하게 풀어야 했는데, 글이 울퉁불퉁해요. 아직 여물지 못한 탓입니다. 같은 또래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담았는데, 너무 어렵게 썼어요.” 뜨끔했다. 동년배는 둘째 치고 마흔 넘은 기자도 읽다 머리를 싸맸다. 공력이 약해 글이 난해해졌다? 노장 학자에게서나 듣던 말을 ‘애’한테 들을 줄이야. 게다가 이 조숙한 말투는 대체 뭔가. “중3 시절에 잠깐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사춘기였던지 인간관계 고민을 자주 올렸죠. 그런데 엇비슷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아요. 쓰는 어휘도 한정됐고…. 뭔가를 전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대로 글 쓰고 싶단 욕망이 공부에 집중하는 원동력이 됐어요.” 하지만 그가 선택한 공부는 남과 달랐다. “또 다른 구속이 존재하는” 대안학교를 고교 1학년에 때려치우고, 2008년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 들어갔다. 지금은 그 모임에서 분화된 ‘남산강학원’ 연구원으로 있다. “대입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할 만큼 정신없이 읽고 쓰고 토론했다. ‘리좀…’은 그 치열했던 5년에 하나의 방점을 찍는 작업이었다. 그에게 가장 큰 충격과 지침을 줬던 책이 ‘천개의 고원’이었으니까.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을 ‘도구로 써 달라’고 당부했다. 저자는 그 인문학적 개념을 사용해 삶과 세상과 조우하는 길을 찾고 싶었다. “10대는 누구나 미래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천개의 고원’은 말하죠. 자신을 표피로 규정짓지도 말고, 일상의 심층을 깨달으라고. 뭣보다 ‘살기는 쓰기’라고 일러줘요. 쓰기란 자신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제게 이 책은 어렴풋한 불안을 잠재우고 한 발짝 내딛는 힘을 주는 매개체였습니다.” 읽는 즐거움에 푹 빠진 어린 학자에게 추천도서를 물어본 건 실수였다.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는 짱짱한 명제로 자기 주체를 변환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단다. 니체와 루쉰의 글들은 자기비하나 연민에 빠지지 않게 도와줬고, 사마천의 ‘사기’는 시대와 인간을 어떻게 조망하는지를 알려줬다. 프랑스 역사학자 에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의 중세 미시사 ‘몽타이유’와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세계종말전쟁’도 끝내준단다. 좀 쉬운 책은 없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어떤가요? 끝자락에 나오는 뫼르소의 일갈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었죠.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는 이것밖에 없다.’ 실존의 고민은 다른 이의 판단이나 기준이 내 삶을 보장하지 않음을 깨닫게 하죠. 인간은 고정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 자체니까….” 졌다. 기자도 읽긴 했는데, 같은 책 맞나. 살짝 머쓱해졌다. 일단 ‘리좀…’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은 어디로 나아갈까.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다만 청년학도여, 너무 속도는 내지 말길. 서두르면 빨리 지치니.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5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를 등재하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김장문화는 이미 10월 24일 무형유산위 산하 심사소위에서 만장일치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등재가 확실시됐다. 무형유산위는 이날 회의에서 “한국인의 일상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은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연대감과 정체성, 소속감을 증대시킨 매개체”라며 “김장문화 등재는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식습관을 가진 다양한 세계 공동체들의 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한국인의 생활 유산인 김장문화가 등재돼 국제무대에서 한국문화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당초 한국이 신청했던 등재명은 최종 회의에서 약간 수정됐다. 기존 명칭에 ‘한국의(in the Republic of Korea)’라는 대목이 추가됐다. 현지에 파견 나간 박희웅 국제교류과장은 “김장이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김장문화의 등재 확정으로 모두 16건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등재된 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처용무 △가곡,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서정적 노래 △대목장 △매 사냥술, 인간문화유산 △줄타기 △택견 △한산모시 짜기 △아리랑이다. 한편 무형유산위에서는 31개가 최종 등재 신청 목록에 올랐다가 김장문화를 포함해 25개의 등재가 결정됐다. 중국이 신청했던 ‘중국의 주산, 주판셈 지식 및 활용’과 일본이 제출한 ‘와쇼쿠(和食), 일본의 전통 식문화’도 등재가 확정됐다. 이번에 등재된 또 다른 먹거리 문화로는 조지아의 ‘고대 조지아 전통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과 터키의 ‘터키 커피 문화와 전통’이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6세기 신라인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묻힌 나무관(목관·사진)이 경북 경주시에서 출토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최영기)은 5일 경주시 교동 천원마을에서 덧널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 관을 짜서 넣은 무덤)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신라·가야지역에서 덧널무덤은 자주 발견됐으나 목관 부재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인골과 목관 형태가 거의 온전해 당시 장례습속이나 인골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라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