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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막하는 국립극단 신작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에는 독특한 인연의 두 배우가 한 무대에 선다. 권력욕에 눈이 먼 변호사이자 극우 백인 보수주의자인 ‘로이’ 역의 박지일(61)과 드래그퀸(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여장 남자)이자 흑인 간호사로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벨리즈’ 역의 박용우(32)다. 극단에 선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들은 부자(父子) 관계. 71년 역사의 국립극단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연습실에서 두 배우가 서로 내색을 하지 않아 이들의 관계를 몰랐던 동료가 많았단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인터뷰한 두 배우는 “이번 작품을 하기 전에는 각자 작품 활동에 지장을 줄까 봐 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야외에서 만나 안부를 전했다. 이 작품 덕에 요즘 연습실에서 매일 가족을 만나 즐겁다”며 웃었다. 2003년 연극 ‘서안화차’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박지일은 연극을 비롯해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박용우는 현재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활약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극작가 토니 쿠슈너의 대표작으로 1991년 미국에서 초연됐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반(反)동성애 사회 분위기에서 심리적 압박과 멸시를 버틴 동성애자들의 삶을 은유적 서사로 풀어냈다. 초연 당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을 수상한 신유청 연출가가 한국 초연을 맡았고, 배우 정경호는 이번 작품으로 연극에 처음 도전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 공연을 따라다니던 박용우는 고교 3학년 때 아버지에게 배우가 되겠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이후 연기 스승을 자처했다. 박용우는 “순간적 충동에 의지해 연기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긴다”고 말했다. 공연이 임박한 요즘 두 사람은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느라 서로에게 큰 관심을 쏟지는 못한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간단히 조언할 뿐. 소수자를 탄압하고 죄의식조차 없는 악인을 연기하는 박지일은 “가장 정이 안 가는 캐릭터다. 그런 인간마저 따뜻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데 작품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박용우는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던 드래그퀸 역할을 맡았다며 기뻐했다.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태우고 머리는 밝게 염색했다. 그는 “남성 중심, 이성애 중심의 서사가 대부분이다. 고정관념을 깰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극중 상대편을 끌어안는 간호사를 연기하기 위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관용을 표현하려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26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3만∼6만 원. 19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광풍의 시대. 근로소득에 대한 냉소가 커지고, 그중에서도 육체노동의 가치는 더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꿋꿋하게 현장으로 향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공사장, 제조공장 등 일감이 있다면 어디든 간다. 그리고 본인의 노동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주변에서 “힘들게 조금씩 벌어서는 답이 없다” 해도 이들의 메시지는 투명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할 뿐.”○ “건강하게 번 돈, 가치 있게 쓸 것” 유튜브 채널 ‘심사장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심준섭 씨(26·한국외국어대 휴학 중)는 평일엔 경기 화성의 한 반도체 공장에서 전기·배관 설비 공사를 한다. 공장 숙소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심 씨는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근처 다른 공사장에 나간다. 창업자금을 벌기 위해 올해 초 육체노동에 뛰어든 그는 촬영이 허가된 현장에서 휴대전화로 본인이 일하는 모습을 촬영한다. 2월부터 일당 빠르게 올리기, 현장 적응법 등의 영상을 업로드해 왔다. 심 씨는 “코인이나 주식은 요행을 바라는 것 같다. ‘제로베이스’에서 땀 흘려 번 돈을 더 가치 있게 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공장 콘텐츠를 올려 구독자 1만5000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노가더 HooN’의 운영자 임상훈 씨(33)는 11년 차 현장 베테랑이다. 3∼6개월 단위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전기 공정이나 설비 노동 콘텐츠를 제작한다. 3∼6명이 함께 생활하는 숙소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부터 일하는 모습, 식사 순간까지 자유롭게 담는다. 대기업 공장별 장단점, 주의사항, 월급, 퇴직금 같은 정보도 공개한다. 임 씨는 “속칭 ‘노가다’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바꾸고 건강하게 일하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6월부터 공장 콘텐츠를 올려 구독자 1만5000명을 보유한 ‘청년일꾼 일꾼킴’ 채널의 운영자 A 씨(31)는 부사관 전역 후 투자 실패로 큰돈을 잃었다. 2019년부터 경기 이천과 용인, 충남 아산의 여러 공장을 오가며 일을 익힌 경험을 토대로 좋은 숙소 고르는 법, 실업급여 받기, 좋은 안전화 구매법 등의 영상을 올린다. 그는 “현장 일을 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관련 정보 찾으러 유튜브로 가는 MZ세대 육체노동 현장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은 웃고 즐기는 채널에 비해 구독자 수는 적지만 구독자들의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조회수 100만 회를 넘긴 영상도 종종 있다. 특히 심리적 진입장벽이 높은 육체노동의 특성상 일을 시작하기 전 정보를 얻으려는 이들이 많다. A 씨는 “자영업자, 휴학생, 여성 등 다양한 분들이 어떻게 일을 시작할지 몰라 적응법, 유의사항에 대해 묻는다”고 전했다. 댓글창에는 응원도 가득하다. 임 씨는 “‘덕분에 건물이 지어졌다’며 고마워하는 댓글을 보면 힘이 난다”고 했다. 심 씨는 “‘이런 자녀를 둔 부모님은 뿌듯하겠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동년배 사회 초년생들이 질문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최근 직접 나선 중소기업도 있다. 철근 조립업체 ‘금성철근’이 자체 유튜브 채널에 올린 ‘토목공사 갈고리 돌리기 초급편’의 조회수는 600만 회를 넘었다. 황세연 금성철근 대표는 “팬데믹으로 공장에 외국인 노동자가 줄면서 국내 젊은층의 유입이 늘고 있다. 유용한 콘텐츠를 추가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연계에 ‘리어왕’ 바람이 불고 있다. 한동안 국내 공연계에서 뜸했던 셰익스피어의 이 고전은 올해 초부터 영상, 연극, 창극 등 다양한 형태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장 대관 일정, 제작진의 작품 선택, 배우 캐스팅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공연의 특성상 리어왕 소재 작품이 유독 올해 쏟아져 나온 건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무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현실 사회의 리더십 갈증 속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려는 관객들로 리어왕이 나타나는 공연장은 늘 북적댄다. 연극 ‘리어왕’을 본 한 관객은 “내가 바라는,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올해 가장 먼저 국내 관객과 만났던 리어왕은 3∼5월 국립극장의 ‘NT Live’ 상영을 통해서였다. 영국 국립극단이 2018년 런던에서 공연한 작품을 영상화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 역할을 맡았던 영국 출신의 대배우 이언 매캘런(82)이 극 중 리어왕과 같은 여든 살의 나이에 무대에 올라 화제였다. 권력 투쟁, 배신과 음모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연기가 호평을 받았다. 7일 동안 진행한 상영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지금 가장 뜨거운 리어왕은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이순재표’ 리어왕이다. 이순재(86)는 3시간 20분이 넘는 원전 분량을 그대로 살리며, 23회 차 전 공연에서 홀로 역할을 책임진다. 최근 인기에 힘입어 공연 8회 차를 연장해 12월 5일까지 특별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순재는 “극의 핵심은 최고 권좌에 있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가난한 사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리더십은 군림하는 게 아니라 밑바닥과 같이 어울리는 것임을 작품이 말하고 있다”며 “진정한 리더는 쓴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16일 개막해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드레서’에도 리어왕이 등장한다. 극 중 선생님 역으로 노배우의 모습을 연기하는 송승환(64)이 극중극 형태로 리어왕을 선보인다. 지난해 진행한 공연은 팬데믹으로 예정보다 일찍 막을 내렸다. 극 중 리어왕은 “나 오늘 밤 이 피투성이 세상을 짊어져야 한다”고 울부짖기도 하며 “대체 내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느냐”고 왕의 고뇌를 내비친다. 송승환은 “리어왕은 우리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박진완 국립정동극장 홍보마케팅팀장은 “여러 공연 단체가 비슷한 시기에 리어왕을 재조명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관객 반응도 뜨겁다”고 했다. 내년에도 리어왕은 계속된다. 국립창극단은 우리의 소리로 리어왕을 재해석한 창극 ‘리어왕’을 3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고전 중 하나를 택해 창극으로 풀어내려던 제작진은 논의 끝에 리어왕을 택했다고. 작품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이름과 명예만 챙겨 호기롭게 물러나겠다던 리어왕은 결국 권력을 놓지 못해 갈등의 씨앗을 남긴다”며 “리더가 물러날 때를 알고 물처럼 흘러가야 하는데 이를 거부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연계 ‘리어왕’ 바람이 불고 있다. 한동안 국내 공연계에서 뜸했던 셰익스피어의 이 고전은 올해 초부터 영상, 연극, 창극 등 다양한 형태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장 대관 일정, 제작진의 작품 선택, 배우 캐스팅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공연의 특성상 리어왕 소재 작품이 유독 올해 쏟아져 나온 건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무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현실 사회의 리더십 갈증 속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으려하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려는 관객들로 리어왕이 군림하는 공연장은 북적댄다. 연극 ‘리어왕’의 한 관객은 “내가 바라는, 사회가 바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어때야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올해 가장 먼저 국내 관객과 만났던 리어왕은 3~5월 국립극장의 ‘NT Live’ 상영을 통해서였다. 영국 국립극단이 2018년 런던에서 공연한 작품을 영상화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간달프 역할을 맡았던 영국 출신의 대배우 이언 맥캘런이 극 중 리어왕과 같은 여든 살의 나이에 무대에 올라 화제였다. 7일 동안 진행됐던 상영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지금 가장 뜨거운 리어왕은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이순재 표 리어왕이다. 이순재는 3시간 20분이 넘는 원전 분량을 그대로 살리며, 23회차 전 공연에서 홀로 역할을 책임진다. 최근 인기에 힘입어 공연 8회차를 연장해 12월 5일까지 특별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순재는 “극의 핵심은 최고 권좌에 있던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비로소 가난한 사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며 “진정한 리더는 쓴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리더십은 군림하는 게 아니라 밑바닥과 같이 어울리는 것임을 작품이 말하고 있다”고 했다. 16일 개막해 내년 1월 1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드레서’에도 리어왕이 등장한다. 선생님 역으로 노배우의 모습을 연기하는 송승환이 극 중 극 형태로 리어왕을 선보인다. 지난해 예정됐던 공연은 팬데믹으로 일찌감치 막을 내렸다. 극 중 리어왕은 “나 오늘밤 이 피투성이 세상을 짊어져야한다”고 울부짖기도 하며 “대체 내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느냐”며 고뇌를 내비친다. 송승환은 “작품 속 리어왕은 한 사람 그리고 우리 인생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박진완 국립정동극장 홍보마케팅팀장은 “마치 사전에 함께 논의라도 한 듯 여러 공연 단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리어왕을 재조명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관객 반응도 뜨겁다”고 했다. 내년에도 리어왕은 계속된다. 국립창극단은 우리의 소리로 리어왕을 재해석한 창극 ‘리어왕’을 내년 3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고전 중 하나를 택해 창극으로 풀어내려던 제작진은 논의 끝에 리어왕을 택했다. 작품을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리어왕은 이름과 명예만 챙겨 호기롭게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결국 권력을 놓지 못해 갈등의 씨앗을 남긴다”며 “리더가 물러날 때를 알고 물처럼 흘러가야 하지만, 그걸 거부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고 했다. 이어 “작품은 넓게 보면 세대갈등과 인간 존재가 소멸하는 이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극장 홍보를 담당하는 차경연 PD는 “권력 뒤에 가려진 인간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그리는 작품이다. 여러 ‘리어왕’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건 간접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저 하나쯤은 무의미한 아름다움을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때론 의미 없는 것들이 우릴 구원하니까요.” 꽃을 사랑하는 극작가 배삼식(51·사진)이 창작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로 돌아왔다. 12일 개막해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은 서울예술단이 6년 만에 재공연하는 작품. 우리 인생을 매화의 아름다움에 빗대 흘러가듯 유려하게 펼쳐낸 옴니버스 극이다. 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 인근에서 만난 배 작가는 “작품이 6년 만에 다시 빛을 볼 줄은 몰랐다”며 “배우들이 그저 무대에서 즐겁게 뛰놀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이어 “요즘엔 모두가 작품 안에 강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그리는 극이 하나쯤은 있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약 30년 전 그가 매화를 마주했던 찰나의 순간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작품으로 이어졌다. 대학생 시절 배 작가가 한국식 정원으로 유명한 전남 담양군 소쇄원 인근을 여행할 때였다. 잔설 위 부슬비가 내리던 대숲 사이 푸르게 꽃받침이 올라온 청매화를 봤다. 그는 “겨우내 움츠렸다가 봄까지 견뎌낸 싹을 보고 덧없는 아름다움, 희망, 안타까움을 느꼈다.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늘 빨리 지나가 버리더라. 글로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작품의 미덕은 ‘느슨함’이다. 배우들은 느린 박자를 타고 천천히, 유려하게 움직이며 꽃이 됐다가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찬란한 순간순간과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배 작가는 “매화라는 소재 하나만 딱 붙잡고 작품을 느슨하게 써 나갔다. 작가가 할 말이 너무 많으면 춤, 연기는 들러리가 되기 쉽다. 극에 빈자리를 남기려 계속 비워냈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그는 꽃을 노래했다. 국립극단의 70주년 기념작 ‘화전가’에서는 6·25전쟁을 앞둔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꽃놀이를 하며 노래를 부르던 여인들의 삶을 묘사했다. “고통스러운 전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 너무 뻔할 것 같았다”고 했다. 집 마당에 여러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지켜봤다. 2007년 동아연극상 희곡상(‘열하일기만보’)에 이어 2009년에도 동아연극상 희곡상(‘하얀앵두’)을 수상한 그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제가 쓴 대사 없이 무용수가 그저 고요히 무대를 지나는 장면이 가장 좋다”며 “저는 평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 말하기 위해 말이라는 도구를 쓰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2만∼5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44년생 고(故) 황광수와 1976년생 정여울. 32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두 저자의 우정은 문학에 대한 사랑이라는 탄탄한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올 9월 29일 암 투병 끝에 별세한 황광수는 끝내 자신의 마지막 책을 보지 못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글들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은 두 작가의 우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은 서로에게 스승이자 벗이던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와 인터뷰 글, 황광수의 에세이를 추려 엮었다. 황광수는 20년가량 출판사에 몸담으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끝까지 쓰는 용기’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을 쓴 정여울은 “선생님이자 친구와 나눈 이야기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당초 함께 책을 펴내기로 했지만 황광수의 별세로 기획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씁쓸함과 애도를 담은 정여울의 추도사가 추가됐다. 책은 심심한 대낮에 전화로 주고받았을 법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죽음, 역사, 인간, 민주주의에 대해 나눈 대화까지 온갖 주제를 다룬다. 정여울이 “선생님, 혹시 100년 전에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려면 어떻게 갔을까요?”라고 묻는가 하면 황광수는 “우주인처럼 무겁고 느리게 뒷동산을 걸어볼 참”이라며 일상을 담담히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핵심은 문장에 대한 이들의 깊은 사랑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장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하다. 투병 중이던 황광수가 “요즘엔 세상 모든 피조물이 슬프게 보일 때가 많다”고 털어놓자 정여울은 “꿈속에서 제가 선생님에게 빌린 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황광수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정여울은 “그곳은 많이 춥지 않으시냐”는 안부로 시작해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마지막 편지’를 쓴다. 이별했지만 이별하지 않은 이들의 우정은 그래서 먹먹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어쩌면 현대인은 각자의 삶과 소명이라는 내림굿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샤먼(무당)의 굿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의 삶을 몸짓으로 그려낸 국립무용단의 신작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가 11일부터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 48명이 한바탕 춤으로 풀어내는 굿판을 통해 관객은 각자의 인생을 반추한다. 이 작품은 제작진 명단이 공개됐을 때부터 기존 국립무용단 작품은 물론이고 여느 무용과도 사뭇 다른 무대가 예견됐다. 10일 사전 시연, 11일 본 공연 개막을 앞두고 4일 국립극장에서 주요 제작진 3인을 만났다.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콘셉트 작가로 참여한 윤재원(연출·미술감독), 이날치의 장영규(음악감독),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손인영(안무)은 “굿의 연희적 특성을 강조한 전형적인 굿판이 아니라 굿이라는 의식이 갖고 있는 일상성에 초점을 맞췄다”며 “기존 무용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총체예술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 분야에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세 사람은 샤먼의 의미에 대해 각자의 해석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손 예술감독이 ‘이 시대 샤먼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고, 윤 연출가가 큰 뱡향성을 제시했다. 윤 연출가는 “샤먼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시대까지 분명 존재하는 직업인데 우리는 무당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비슷한 모습으로만 늘 묘사해 왔다”며 “샤먼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직업인으로 조명하고 나아가 그 안에 깃든 우리의 모습과 삶을 비추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 제목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는 소명을 받아들여 인생을 사는 개인들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에 가깝다. “샤먼은 쉽게 말해 이별을 다루는 직업인 것 같아요. 이별, 관계의 단절, 해결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샤먼을 찾아요. 그때 샤먼이 하는 역할은 곁에서 얘기를 들어주고 ‘잘 가라’ ‘어서 오라’ 인사를 대신 건네주죠. 필연적으로 이별을 다룰 수밖에 없죠.”(윤재원 연출가) 작품의 음악은 이날치의 수장이자 영화 ‘곡성’ ‘부산행’ 등에 참여한 장영규가 맡았다. 그는 “극한의 에너지로 사람을 몰아가는 굿 음악은 가장 어려운 장르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간 피해 오기만 했다”며 “이번 기회에 굿에 대한 제 해석을 덧붙일 수 있게 됐다. 주로 굿 음악에 쓰이는 독특한 리듬을 차용했다”고 말했다. 공연에는 가사가 있는 노래도 등장하는데 윤 연출가가 가사를 쓰고 장 음악감독이 멜로디를 입혔다. 이날치 멤버가 직접 부른 노래를 녹음했다. 손 예술감독을 필두로 4명의 무용수인 김미애 박기환 조용진 이재화가 조안무자로 참여했다. 손 감독은 “춤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존 무용과 달리 이번 작품은 마치 영화,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일부 장면에서 무용수들이 몸짓을 자제할 때도 있다”며 “국립무용단의 신선한 무용 실험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2만∼7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유럽 인구 절반을 앗아간 페스트와 지난한 백년전쟁을 겪은 15세기 프랑스 파리. 재해와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잿더미 위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다가올 천년엔 더 나은 삶과 사랑이 가득하리라 믿으며. 새 시대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담고 있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인기 넘버 ‘대성당의 시대’. 시적인 노랫말과 중독적 선율로 1998년 첫 공연 이래 23개국 1500만 명 관객 앞에서 불리던 이 노래가 17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울려 퍼진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했던 공연이 다시 찾아오는 것. 17일 공연에 앞서 13일 경기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서 관객과 만나며, 서울 공연 이후엔 대구, 부산을 거친다. 약 두 달간의 한국 투어다. 지난해 이 작품의 프로듀서 샤를 탈라르가 타계한 뒤 ‘노트르담 드 파리’ 사단을 이끄는 이는 프로듀서이자 그의 아들인 니콜라 탈라르(48). 2000년 프로덕션에 합류해 유럽, 미국, 아시아로 작품을 진출시킨 일등공신이다. 미국 브로드웨이 한복판에서 이례적으로 프랑스어 공연이 이어질 만큼 원어의 맛을 잘 살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8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그는 “2005년 한국 첫 공연 당시 ‘내가 비틀스를 데려왔나’ 싶을 정도로 환호가 대단했다”며 “지난해는 팬데믹으로 객석의 함성은 들을 수 없었지만 마스크 너머로도 환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현장에서 관객의 반응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관객들이 올려주는 반응을 계속 챙겨보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의 응원을 느낀다”고 했다. 올해 공연에도 최고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다. 1998년 초연부터 참여한 원조 ‘프롤로’ 다니엘 라부아를 비롯해 음유시인 ‘그랭구아르’ 역의 리샤르 샤레스트, 대성당 종지기 ‘콰지모도’ 역의 안젤로 델 베키오 등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예술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예술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는 철학을 배웠다. 지금도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할 때 이 철칙만큼은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올해 저와 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두 한마음이다. 감격스럽고 무대가 소중하다”고 했다. 1998년 초연 이래 무대에 숱하게 작품이 올랐고, 국가별 여러 언어 버전의 공연도 제작됐다. 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의 원작은 크게 흔들리지 않기로 유명하다. 니콜라 탈라르는 “시간이 흘러도 원작에 크게 손을 대지 않는 게 원칙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불멸의 감정인 ‘사랑’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울림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극이 담고 있는 시의성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25년이 지났지만 극에 담긴 사회 투쟁적 이슈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극을 처음 선보인 1998년 프랑스에서도 불법 체류자. 이민자 문제가 있었죠. 지금도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나라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잖아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던 그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공연계로 뛰어들어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 샤를 탈라르는 프랑스 문화계 저명인사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독립 음악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 훈장도 받았다. 또 1973년 프랑스 파리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단 파리 생제르맹(PSG)을 재건하는 데 참여했다. 199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 제작에 집중했으며 ‘태양의 아이들’ ‘돈 주앙’ 등 작품을 남겼다. 니콜라 탈라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일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일종의 ‘내부자’의 관점에서 문화계와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좋은 공연’에 대해 “정답은 없다”고고 단언했다. 이야기, 특수효과, 안무 등 표현수단이 다양해지면서 관객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좋은 공연의 요소도 다양해졌다는 것.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관객이 근심 걱정을 완전히 잊고 러닝타임 내내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인지 늘 돌아본다”고 했다. 작품의 총괄 책임자가 된 그는 한국 첫 공연 당시 객석의 독특하면서도 열광적 반응을 잊지 못한다. “2005년 첫 공연 때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극이 끝날 때까지 정적만 흘렀어요. 하지만 커튼콜 때 모든 감정이 폭발하며 기립박수를 받았죠. ‘제2의 고향’ 한국의 관객과 다시 만날 순간을 기다렸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1월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이 시작되면서 얼어붙었던 공연계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앞서 10월 공연 매출액은 1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300억 원대를 돌파했다. 연말을 앞두고 대작 공연들이 잇달아 개막해 공연 매출은 당분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공연 취소와 연기를 숱하게 치른 제작사들은 방역의 고삐를 조이며 기쁘면서도 초조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8일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월간 공연 매출액은 약 303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약 405억 원이었던 공연 매출액은 팬데믹이 악화하면서 2월 약 210억 원으로 급감한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올해 1월 약 37억 원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반등했다. 팬데믹 재확산으로 잠시 주춤했던 7, 8월을 제외하고는 2월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국내 공연장에서 바이러스 확산·전파 사례가 비교적 적었고 백신 접종률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억눌려 있던 문화생활 수요와 맞물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흐름 속에 공연 단체들은 최대 공연 성수기인 11, 12월을 맞아 여러 흥행작을 내놓고 있다. 뮤지컬의 경우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하데스타운’ ‘지킬앤하이드’ 등을 비롯해 ‘노트르담드파리’ ‘레베카’ ‘프랑켄슈타인’ 등이 공연을 앞두고 있다. 연말 공연의 대명사 격인 발레 ‘호두까기 인형’도 관객맞이 준비 중이다. 내년 1월엔 3년 만에 뮤지컬 ‘라이온킹’의 공연도 예정돼 있어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검증된 흥행작들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공연계 매출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그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오후 10시까지였던 공연장 영업시간 제한도 1일부터 해제됐으며 판매 가능 좌석 수도 늘어났다. 백신 접종자만 관객으로 받는다면 산술적으로는 객석 전체를 가동할 수 있게 된 것. 상황 변화에 맞물려 공연계는 백신 접종자 대상 할인 이벤트도 발 빠르게 도입 중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하데스타운’ ‘메리 셸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토록 보통의’와 연극 ‘인사이드’ ‘작은 아씨들’ ‘보도지침’ ‘리어왕’ 등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공연계에는 기대감과 우려가 공존한다. 그간 객석의 70%를 가동하며 손해를 겨우 면하던 상황을 회복하려면 위드 코로나 체제에서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공연 취소와 재개를 반복했던 학습효과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도 마냥 낙관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노민지 클립서비스 PR전략팀장은 “관객이 극장을 많이 찾지 않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없앴던 공연 팸플릿, 전단도 다시 만들어 공연장에 비치하기 시작했다. 억눌린 문화생활 욕구가 연말 매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업계 기대감은 분명하다”면서도 “그간 팬데믹 확산으로 여러 혼란을 겪었던 만큼 조심스럽게 상황을 주시 중”이라고 했다. 신시컴퍼니의 홍보를 담당하는 최승희 실장은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마냥 장밋빛으로 보기는 힘들다. 공연장 예매 시스템상 백신 접종자만 별도로 체크해 전석을 개방하기는 쉽지 않다”며 “공연계서 가장 중요한 연말 시즌인 만큼 더 보수적으로 접근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설명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부모를 잃고 쓰러진 아기 늑대. 이를 발견한 양(羊) 부부가 천적을 보고 도망치려던 것도 잠시. 평생 자식을 간절히 원했던 부부는 쓰러진 늑대를 자식으로 거두어 양부모(養父母)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늑대에게 말한다. “넌 이제부터 양이야.” 양의 탈을 쓰고 자란 늑대의 삶은 어떨까. 지난달 29일 개막해 21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더 나은 숲’은 늑대 퍼디난드의 삶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그렸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설립 1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독일 극작가 겸 소설가인 마틴 발트샤이트가 쓴 이 작품은 2010년 독일 청소년 연극상을 받으며 유럽 전역에서 20차례 이상 공연됐다. 국내 첫선을 보이는 무대는 영국 청소년극 분야 대가인 연출가 토니 그레이엄(70)의 손을 거쳤다. 1일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레이엄 연출가는 “청소년극이 일반 연극이랑 다를 게 없죠?”라고 되물으며 “억지로 교훈적 메시지나 가르침을 담아선 안 된다. 청소년도 우리처럼 모든 걸 다 알고 느낀다. 그저 고민을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 그레이엄은 “독일 작가가 쓴 작품을 영국 연출가가 한국에서 공연하는 상황”을 즐거워했다. “기생충, 오징어게임에서 한국 사회가 민감하게 다룬 불평등, 계층 문제가 세계에서도 통했어요. 좋은 연극도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통해야 합니다. 한국 관객들이 제 작품 속 문제의식을 어떻게 바라볼지 기대됩니다.” 늑대, 양을 비롯해 곰, 여우 등을 인간 군상에 빗댄 작품은 많은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다. 동물처럼 행동하는 배우들을 보고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이들의 고민은 꽤 묵직하다. 관객 각자 경험에 따라 극은 다르게 읽힌다. 그레이엄은 “누군가는 입양을, 다른 누군가는 이민자나 난민을 떠올릴 수 있다. 한국에선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특정 집단이 아니라도 인간은 누구나 정체성을 고민한다”고 했다. 첫 공연을 포함해 9일 공연분까지 1차 판매한 티켓은 매진됐다. 청소년보다 성인 관객 비중이 더 높다. 팬데믹으로 청소년이 극장을 쉽게 찾지 못하는 점도 있겠으나 “좋은 청소년극은 어른에게도 좋은 극”이라는 그의 철학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는 “작품을 평하기엔 이르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배우, 제작진이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결말은 열려 있다. 자신의 삶을 찾아 양부모 곁을 떠난 주인공이 더 행복한지, 불행한지 말하지 않는다. 퍼디난드와 함께 유년기를 보낸 양 친구들은 그가 늑대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다. 그리고 객석에 반문한다. “왜 늑대가 양으로 살면 안 되느냐”고. 그레이엄은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제목 ‘더 나은 숲’처럼 더 나은 곳이 있다는 희망은 청소년극에서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20대에 교직 생활을 하다 30대부터 연출가로 나선 그는 영국 국립청소년극단 유니콘 시어터에서 14년간 예술감독을 맡았다. 앞서 ‘타조 소년들’ ‘노란 달’을 국내에 선보여 호평받기도 했다. 교훈과 가르침을 최대한 덜어내려 했던 이번 작품에서도 여러 배우들은 핵심을 관통하는 ‘교훈적’ 대사를 말한다.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어디로, 누구와 함께 가느냐입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AI)이 나타나고,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떠나는 시대. 찰나에 사람 눈을 속이는 마술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빼앗아 뒤흔들 수 있을까. 25년째 마술 한길을 걸어온 최현우(43)는 이렇게 답했다. “21세기가 되면 사라질 직업 8위로 마술사가 꼽혔어요. 하지만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마법 같은 순간을 늘 꿈꾸는 인류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믿어요.” ‘마법사가 되고픈 마술사’ 최현우가 다음 달 3일 개막하는 매직쇼 ‘더 브레인’으로 관객과 만난다.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데뷔 후 처음 크리스마스 때 ‘강제 휴식’해야 했다. 그는 “잠시 제 삶을 돌아본 시간이었지만 결국 현장 공연에 대한 간절함과 관객에 대한 감사함만이 남았다”며 “역시 빨간 날에는 일해야 한다”고 웃었다. ‘더 브레인’은 심리학, 뇌과학, 행동과학 등을 접목한 ‘멘털매직(Mental Magic)’ 쇼다. 카드,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관객 심리와 생각을 맞히고 다음 행동을 예언한다. 착시를 이용한 시각 마술도 곁들인다. 따라서 관객 참여는 필수. 최현우는 “신체 접촉을 없애고, 최대한 대화를 통해 마술을 풀어내도록 방식을 변형했다. 마술도 ‘위드 코로나’로 진화 중”이라고 했다. 공연 말미엔 그가 쇼에서 선보였던 마술의 비밀을 전부 공개한다. 그는 “공연마다 비밀을 공개하는 순간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다. 다만 모든 걸 털어놔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멘털매직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은 진화한다. 언뜻 현실과 동떨어진 채 저 너머에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현실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는 “남성 마술사를 둘러싼 미녀나 호랑이가 등장하는 무대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마술이 현실 속 페미니즘과 동물복지 운동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사 역시 계속 변해야 한다. 최현우는 한때 후배 마술사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이던 ‘쇼트폼 마술’에 대해 마술을 가벼워 보이도록 만들고, 비밀 공개에만 집중한다는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도 공연장으로 끌어오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현재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최현우’에서 마술을 알리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최근엔 틱톡도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1996년 한 대학 축제서 손을 벌벌 떨며 처음 마술을 선보인 이래 무대 밖에서도 그는 스타였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마술을 선보였고, 데이비드 코퍼필드처럼 하늘을 나는 마술을 준비하다가 추락해 팔이 으스러지는 사고도 겪었다. 2015년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맞힌 건 지금까지 회자된다. “조작 방송이냐”는 항의 전화 수백 통을 받았고 “당첨 번호 알려 달라”는 얘기는 지금까지도 듣는다고. 그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모두 마술”이라며 미소 지었다. 꿈에 나타난 최현우가 불러준 번호로 로또 2등에 두 번 당첨됐다는 한 팬의 사연도 화제였다. 최현우는 이 팬에게 “제가 꿈에 또 나오면 꼭 저에게도 번호를 알려 달라”고 직접 연락했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는 “살면서 마술에 한 번도 싫증 난 적이 없다”고 했다. 슬럼프도 딱히 없었다. “마술에 제 영혼을 갈아 넣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마술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는 그가 앞으로 답해야 할 질문이자 과제다. “설명 필요 없이 제가 하는 마술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고 싶어요. 제가 잘 살고, 잘 버텨야죠.” 12월 3일∼2022년 1월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5만5000∼9만9000원, 7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AI)이 나타나고,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떠나는 시대. 잠깐 사이 사람 눈을 속이는 마술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빼앗아 뒤흔들 수 있을까. 25년째 마술 한 길을 걸어온 최현우(43)는 이렇게 답했다. “21세기가 되면 사라질 직업 8위로 마술사가 꼽혔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마법 같은 순간을 늘 꿈꾸는 인류의 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믿어요.” ‘마법사가 되고픈 마술사’ 최현우가 다음달 3일 개막하는 매직쇼 ‘더 브레인’으로 관객과 만난다. 1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는 공연을 앞두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공연이 취소되며 데뷔 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때 강제 휴식해야 했다. 그는 “잠시 제 삶을 돌아본 시간이었지만, 결국 현장 공연에 대한 간절함과 관객에 대한 감사함만이 남았다”며 “역시 빨간 날에는 일해야 한다”고 웃었다. 이번 작품 ‘더 브레인’은 심리학, 뇌과학, 행동과학 등을 접목시킨 ‘멘탈매직(Mental Magic)’ 쇼다. 카드, 스마트폰 등 소품을 활용해 관객 심리와 생각을 맞추고 다음 행동을 예언한다. 착시를 이용한 시각 마술도 곁들인다. 때문에 관객 참여는 필수. 최현우는 “신체 접촉하는 과정을 없애고, 최대한 대화를 통해 마술을 풀어내도록 방식을 변형했다. 마술도 ‘위드 코로나’로 진화 중”이라고 했다. 공연 말미엔 그가 쇼에서 선보였던 마술의 비밀을 전부 공개한다. 그는 “공연마다 비밀을 공개하는 순간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다. 다만 모든 걸 털어놔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멘탈매직의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언뜻 마술 무대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저 너머에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현실과 긴밀히 연결돼있다. 그는 “남성 마술사를 둘러싼 미녀나 호랑이가 등장하는 무대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마술이 현실 속 페미니즘 운동, 동물복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술사 역시 계속 공부하고 변해야 한다. 후배 마술사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선보이던 ‘숏폼 마술’이 마술을 가벼워 보이도록 만들고, 비밀 공개에만 집중한다는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도 공연장으로 끌어오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현재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최현우’에서 마술을 알리는데 누구보다 열심이다. 최근엔 틱톡도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1996년 한 대학 축제서 손을 벌벌 떨며 대중에게 처음 마술을 선보인 이래 무대 밖에서 그는 스타였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서 마술을 선보였고, 데이비드 카퍼필드처럼 하늘을 나는 마술을 준비하다 추락해 팔이 으스러지는 사고도 겪었다. 2015년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맞춘 건 지금까지 회자된다. “조작 방송이냐”는 항의 전화 수백 통을 받았고 “당첨번호 알려 달라”는 얘기는 지금까지도 듣는다고. 그는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모두 마술”이라며 미소 지었다. 꿈에 나타난 최현우가 불러준 번호로 로또 2등에 두 번 당첨된 한 팬의 실화도 화제였다. 이 팬에게는 “제가 꿈에 또 나오면 꼭 저도 번호를 알려 달라”고 직접 연락했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는 “살면서 마술에 한 번도 싫증난 적이 없다”고 했다. 슬럼프도 딱히 없었다. “마술에 제 영혼을 갈아 넣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마술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는 그가 앞으로 답해야할 질문이자 과제다. “구체적 설명 필요 없이 제가 하는 마술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고 싶어요. 제가 잘 살고, 잘 버텨야죠.”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제42회 서울무용제가 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다. 대표 시리즈 ‘무.념.무.상(舞.念.舞.想)’이 개막 무대를 장식하며, ‘춤판 시리즈’ ‘명작무극장’ ‘4마리 백조 페스티벌’ 등에서 중견·신진 안무가와 일반인들이 흥겨운 춤판을 선보인다. 시·도립무용단을 이끄는 예술감독 4인은 무용수로 ‘무.념.무.상Ⅰ’(12일) 무대에 오른다. 정혜진 서울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김혜림 제주도립무용단 예술감독, 이정윤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성용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관록의 춤을 선보인다. 초청공연으로는 ‘무.념.무.상Ⅱ’(14일)와 ‘명작무극장’(17일)이 마련됐다. ‘무.념.무.상Ⅱ’는 이재우 박예은(사진), 안근남 박휘연, 정보경 그르메 등 무용계 스타들이 듀엣 무대를 장식한다. 국내 작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명작무극장’에선 5개의 산조춤을 만날 수 있다. ‘춤판 시리즈’(13∼18일)는 젊은 무용가와 안무가가 꾸미는 ‘열정춤판’을 비롯해 중견 무용가들의 무대인 ‘남판여판춤판1, 2’로 구성됐다. 일반인들이 경연을 벌이는 ‘4마리 백조 페스티벌’(5일)과 무용 전공생들의 ‘대학무용축제’(8일)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경연 부문(19∼26일)에는 LDP, 고블린파티 등 한국을 대표하는 8개 무용단이 신작을 선보이며 경쟁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서울대 작곡과 교수인 저자가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해 쓴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이다. 이번 수업의 주인공은 주세페 베르디와 리하르트 바그너. 오페라의 대가로 꼽히는 두 작곡가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비롯해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친 당대 철학 사조와 주변 인물과의 일화 등을 쉽게 풀어썼다.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문답 형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 출신인 베르디와 바그너는 모두 1813년에 태어났다. 두 동갑내기 음악가는 활동 시기도 거의 같다. 서로의 존재는 알았지만 평생 한 번도 마주친 일이 없다. 저자는 오히려 두 사람이 상대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하는 사이였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음악 스타일과 작품 내용이 크게 달랐던 만큼 세상은 둘을 끝없이 비교하고 견주었다. 저자는 “베르디가 흙냄새 나는 민중의 보호자였다면 바그너는 독선적 탐미주의자”였다고 설명한다. 책에는 주요 곡 관련 설명에 QR코드를 덧붙여 오페라 음악과 영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달랐던 두 사람은 인류사에 길이 남는 오페라 걸작을 만들었다. 그들이 만든 오페라 곡은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오늘날 뮤지컬 등 공연예술에도 짙은 향기를 남겼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밤새워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귀엽고 끔찍한 영화입니다. 이 훌륭한 배우들은 다 어떻게 찾으셨나요?” 28일 제6회 충무로영화제의 ‘쌀롱 드 씨네마: 감독이 감독에게 묻다’ 행사에서 봉준호 감독이 장편영화 ‘소리도 없이’로 주목받은 신예 홍의정 감독에게 건넨 질문이다. “묘한 뉘앙스가 가득한 재미난 영화”라며 작품을 칭찬하던 봉 감독은 여러 촬영현장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과 고충도 털어놓았다. 홍 감독은 “신경 썼던 작은 부분들까지 물어봐주셔서 감사하고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이날 봉 감독은 미국 시카고에 체류 중인 홍 감독과 화상으로 즐거운 영화 수다를 벌였다. 두 감독의 만남을 네이버TV 생중계로 지켜본 팬들은 “오랜만에 봉 감독님 얼굴 봐서 좋다” “최고 거장과 최고 신예의 조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홍 감독은 지난해 10월 개봉한 그의 첫 장편 ‘소리도 없이’로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백상예술대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작품은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이 유괴된 열한 살 소녀 ‘초희’(문승아)를 억지로 떠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괴, 인신매매 같은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정작 영화 속 인물들은 천연덕스럽고 해맑게 그려진다. 지난해 상영관에서 작품을 봤다는 봉 감독은 “스토리를 압축하면 한 페이지 안에 모든 게 담기는 앙상한 영화가 있는 반면 이 작품은 뉘앙스가 너무도 풍부하다”며 “알록달록한 색채로 칠해진 화면에서 선악의 경계를 해맑게 넘나드는 이들 사이로 기묘한 서늘함이 흐른다. 그 서늘함이 이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자신이 보고픈 것만 보려는 세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당장 우리 눈앞에 안 보이는 끔찍함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봉 감독은 영화의 세 축을 이루는 주연 배우 유아인, 유재명, 문승아는 물론 조연 배우들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았다. “이 배우들을 어떻게 알고 섭외했느냐”고 물으며 “감독에게 좋은 배우만큼 힘이 되는 존재가 없다. 놀라운 앙상블 캐스팅”이라고 칭찬했다. 특히 유재명이 홀로 긴 대사를 내뱉는 장면이 NG 없이 한 번에 촬영된 사실을 듣고 “와!”라고 감탄했다. 유아인에 대해선 “짧은 머리에 그을린 피부 톤까지 스스로 연출해 냈을 것 같다. 표현력이 풍부한 배우”라고 했다. 홍 감독이 “영화 ‘기생충’에서 물탱크에 통째로 세트를 짓고 촬영한 감독님에 비하면 저는 소소한 수준”이라고 말하자, 봉 감독은 “영화란 게 좋게 말하면 마술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인 것 같다”며 웃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대한민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74)이 대중문화 분야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8일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윤여정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은관문화훈장이 가장 높은 단계의 수훈이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금관문화훈장이 주어졌다. 문체부 관계자는 “윤 배우의 올해 해외 수상은 의미가 있다고 특별히 판단해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금관을 수여하게 됐다”며 “윤 배우의 수상으로 한류 콘텐츠 주목도가 높아졌으며, 국내 대중문화 산업계 전반에 혜택이 돌아갔다. 향후 후배 연기자들의 해외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물론이고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도 높아졌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인상적인 할머니 연기로 올 4월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미국배우조합상(SAG), 영국 아카데미상 등을 휩쓸었다. 현재 영화 촬영차 미국에 체류 중인 그는 사전 녹화 영상을 통해 “이 훈장을 받아도 되나 고민이 많았는데 오래 열심히 일해서 받는 상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다”며 “대중문화 분야에서 금관문화훈장은 제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앞으로 많은 영화인들이 함께 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대중문화예술상은 한 해 동안 대중문화 분야에서 국내외 활동과 사회 공헌도, 인지도 등을 종합해 뛰어난 공적을 보인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정부 포상이다. 올해 대중문화예술상은 가수, 배우, 희극인, 성우, 방송작가, 연주자 등을 통틀어 문화훈장(6명), 대통령 표창(7명), 국무총리 표창(7명),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9명) 등 총 29명에게 수여됐다. 은관문화훈장은 1970년대 포크 붐을 일으킨 1세대 싱어송라이터 이장희와 한국 영화계의 부흥기를 이끈 영화제작자 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받았다. 배우 박인환, 배우 고 송재호, 드라마 작가 노희경은 보관문화훈장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통령 표창은 배우 김영철과 정우성, 가수 김연자와 이적, 김태호 PD, 드라마 ‘빈센조’의 작가 박재범, ‘달려라 하니’ 성우인 최수민이 받았다. 국무총리 표창은 배우 이정은과 한예리, 가수 웅산, 피아니스트 정원영, 음악감독 김문정, 성우 안경진, 예술감독 김설진에게 돌아갔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은 NCT DREAM, 오마이걸, 배우 이제훈과 오정세, 희극인 안영미, 성우 최덕희, 베이시스트 서영도,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모델 최소라가 수상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대한민국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74)이 대중문화 분야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받는다. 28일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을 개최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배우 윤여정이 금관문화훈장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대중문화 분야서는 지금까지 ‘은관문화훈장’이 가장 높은 단계의 수훈이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윤 배우의 올해 해외 수상은 의미가 있다고 특별히 판단해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금관을 수여하게 됐다”며 “윤 배우의 수상으로 한류 콘텐츠 주목도가 높아졌으며, 국내 대중문화 산업계 전반에 혜택이 돌아갔다.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도 높아졌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대중문화예술상은 한 해 동안 대중문화 분야서 국내외 활동과 사회 공헌도, 인지도 등을 종합해 뛰어난 공적을 보인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대중문화 분야 최고 권위를 가진 정부 포상이다. 아울러 올해 대중문화예술상은 가수, 배우, 희극인, 성우, 방송작가, 연주자 등을 통틀어 문화훈장(6명), 대통령 표창(7명), 국무총리 표창(7명),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9명) 총 29명에게 수여된다. 은관문화훈장은 1970년대 포크 붐을 일으킨 1세대 싱어송라이터 이장희와 한국 영화계의 부흥기를 이끈 영화제작자 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받는다. 배우 박인환, 배우 고 송재호, 드라마작가 노희경은 보관문화훈장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통령 표창은 배우 김영철, 배우 정우성, 가수 김연자, 가수 이적, 김태호 PD, 박재범 드라마 ‘빈센조’ 작가, 최수민 ‘달려라 하니’ 성우가 받는다. 국무총리 표창은 배우 이정은, 배우 한예리, 가수 웅산, 베이시스트 정원영, 김문정 음악감독, 안경진 성우, 김설진 예술감독에 돌아간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은 NCT DREAM, 오마이걸, 배우 이제훈, 배우 오정세, 희극인 안영미, 최덕희 성우, 베이시스트 서영도,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모델 최소라에게 주어진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6시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 유튜브 및 ‘더케이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약 1년 만에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팬들과 만났다. 방탄소년단은 24일 오후 6시 반 서울 송파구 잠실주경기장에서 온라인 콘서트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를 열어 전 세계 팬클럽 아미와 만났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는 ‘기쁨의 축제’. 공연명과 같은 노래 ‘퍼미션 투 댄스’의 노랫말처럼 누구나 함께 춤추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메시지와 기쁨을 전했다. 방탄소년단은 “대면 공연은 아니지만 함께 파티를 열어보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준비해 찾아뵐 수 있어 큰 영광이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연습 중 종아리 근육 부상을 입은 멤버 뷔는 “큰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재밌게 공연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안무를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함께 무대를 꾸몄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팬데믹 전까지 세계 무대를 누비던 한국 공연 예술인들이 해외 초청 공연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부터 초청 공연이 중단된 지 약 1년 반.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던 ‘K공연’은 9월부터 러시아, 영국, 벨기에 등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로 무대를 확대하고 있다. 현지에서 공연 관련 방역 기준을 완화함과 동시에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라별로는 러시아의 초청이 가장 많다. 지난해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공연들이 연기됐다가 올해 다시 마련됐기 때문. 김재덕 안무가가 이끄는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은 이달 8,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체호프 국제연극제의 폐막 공연작으로 ‘다크니스 품바’를 공연했다. 무용수, 제작진 12명이 함께한 공연단은 몇 달 전부터 백신 접종과 항공편 예약을 마쳤다. 하지만 공연 5일 전 항공사가 이유 없이 항공편을 취소하면서 모든 게 틀어졌다. 모던테이블의 이미진 PD는 “추가 비용을 내고 시간이 몇 배 더 걸리는 경유 비행기에 하루 먼저 탑승했다. 공연 성사가 이토록 불투명했던 때가 없다”고 털어놨다. 추가 비용은 체호프국제연극제 측이 지불했다.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후 연극제 측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관객들이 이토록 좋아할 줄 알았기에 행사를 취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거문고, 판소리를 곁들인 컨템퍼러리 국악 그룹 ‘블랙스트링’도 지난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3회 공연을 마쳤다. 이달 말에는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공연을 위해 떠난다. 거문고 명인이자 블랙스트링 리더인 허윤정은 “해외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자율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할 만큼 객석은 안정된 분위기지만 여전히 무대는 긴장된다”며 “관객층이 젊어졌고 매회 기립박수가 나오고 있다. 한류 콘텐츠와 공연에 대한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현대무용 안무가 허성임과 무용단 ‘시나브로 가슴에’도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공연을 마쳤다. 컨템퍼러리 국악 그룹 ‘첼로가야금’과 ‘악단광칠’은 각각 유럽, 미주 투어를 앞두고 있다. ‘안은미컴퍼니’는 지난달부터 이달 말까지 유럽 8개 도시에서 공연 중이다. 해외 공연은 초청 국가의 방역 기준은 물론 귀국 후 국내 방역지침도 따라야 하기에 공연 외적으로도 신경 쓸 일이 많다. 출국 전 수시로 받는 유전자증폭(PCR) 검사는 기본. 72시간 내 PCR 진단검사 음성 확인서와 백신 접종 증명서도 필수다. 방역지침, 출국시점, 공연일자가 하나라도 바뀌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를 감수하고서도 해외로 향하는 건 무대에 대한 갈증이자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 허윤정은 “세계에 우리 음악을 알리는 책임감과 자긍심은 그대로다. ‘우리를 잊진 않았을까’ 걱정도 되지만, 한류 열풍이 무르익은 상황에서 우리 공연을 마주할 관객 반응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고 답했다. 공연단이 귀국 후 한국에서 자가 격리할 비용까지 지불하겠다고 밝힌 주최 측도 많다고 한다. 악단광칠의 천재현 대표는 “한류 콘텐츠 사랑이 공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공연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이정은 공연예술유통팀장은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처럼 한국 아티스트와 공연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뜨거워져 내년엔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극단 학전이 1994년 처음 선보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온라인 공연이라는 새 무대로 들어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네이버는 공연계에서 상징적 위상을 지닌 이 작품을 자체 플랫폼인 네이버TV로 송출하기 위해 2018년부터 학전과 접촉했다. 하지만 김민기 학전 대표는 저작권 침해를 우려했고 공연의 현장성을 영상에 제대로 담을 수 없다며 고사했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작품이 관객과 만날 기회가 줄어들면서 상황도 달라졌다. 2021년 7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 초청받은 ‘지하철 1호선’은 처음으로 네이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김 대표도 마음을 바꿨다. 저작권 침해 우려가 큰 녹화 중계보다는 실황 중계를 택했다. 학전 측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고민하던 끝에 대표님도 온라인 송출에 동의하셨다”고 했다. 팬데믹 중 현장 공연의 대체재로 급성장한 온라인 공연이 새 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공연을 있는 그대로 촬영해 송출하는 데 급급했다면, 최근에는 여러 첨단 카메라, 과학 장비를 동원해 보다 섬세한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배우의 표정을 잡아내는 클로즈업, 배우들 사이를 휘젓는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 고화질 영상은 새로운 보는 맛을 선사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난달 28일부터 네이버TV를 통해 선보인 ‘아르코 온라인 극장’에는 작품별로 평균 4000명의 관객이 몰려든다. 특히 지난달 30일 선보인 연극 ‘너를 만난다’는 온라인 공연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감염병이 창궐한 미래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은 8월 서울 서초구 소극장에서 3일간 공연을 마쳤고 이를 촬영하고 가공해 한 달 뒤 온라인 관객과 다시 만났다. 프로젝션 매핑, 레이저 파사드 같은 신기술을 결합한 무대, 조명 연출이 카메라에 오롯이 담겼다. 관객 참여형 공연을 표방한 작품의 매력을 담기 위해 중계 카메라는 현장 관객이 고민하는 표정까지도 담아내 재미를 더했다. ‘아르코 온라인 극장’은 이 밖에도 40편의 연극, 무용, 뮤지컬, 전통 공연을 매주 2회씩 네이버TV를 통해 송출할 예정이다. 온라인 공연의 질적 향상은 관객의 인식 전환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몇몇 공들여 찍은 영상은 ‘생각보다 볼만하다’는 인식이 퍼졌고, 아예 유료 온라인 공연을 기획한 공연제작사도 생겨났다. 공연 실황, 비하인드 영상을 무료로 공개하던 게 관행이었으나 “온라인 공연을 누가 돈 내고 보냐”던 인식도 차츰 변화했고, 온라인 공연에 열광하는 관객도 생겨났다. 제작사들도 고가의 촬영 장비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EMK엔터테인먼트, CJ ENM 등이 선보이는 인기작의 경우 온라인 유료 공연 2, 3회로 1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공연 제작사 신스웨이브가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보였던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147개국의 관객 3만5000여 명을 끌어모았다. 곽기영 한국영상연합 대표는 “지난해에 비해 유료 온라인 공연이 세 배가량 늘었다. 제작사도 온라인 공연과 현장 공연을 병행하는 방법을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온라인 공연이 수익을 내는 건 소수의 대형 뮤지컬에 국한되고 있다. 장르별 편차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최정호 아르코예술기록원 공연 영상화 사업 총괄담당은 “온라인 공연이 현장 공연과는 또 다른 장르로 거듭났다. 특히 연극, 무용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더욱 공들인 영상을 제작해야 한다. 플랫폼 다각화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