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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칼럼94%
사설/칼럼3%
문학/출판3%
  • [횡설수설/송평인]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

    민주당 추천의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가 그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폭침이 누구 소행인가”라는 질문에 “북한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소행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인가”라는 보충 질문에서는 “정부 발표를 받아들이지만 직접 보지 않아 확신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확신’이란 단어를 사용한 질문에 당황했는지는 모르지만 ‘직접 보지 않아’라는 단서를 단 답변은 조 후보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살인죄를 선고하는 법관은 없다. 직접 보지 않아도 증거를 놓고 경험과 논리로 판단하는 것이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다. 다만, 누군가를 유죄로 선고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남아있지 않아야 하나 그것이 모든 가능한 의심이 배제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 근거가 없는 의심을 일으켜 어떤 증거를 배척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천안함 폭침 현장에서 북한 어뢰 추진체라는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발견됐다. 그런데도 ‘직접 보지 않아’ 어쩌니 하는 것은 재판관이 될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다. ▷조 후보는 사법연수원을 나온 이후 줄곧 변호사로 일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씨에 이어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 회원이며 참여연대에서 2008년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바도 있다. 참여연대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조사 결과를 낸 단체다. 민주당 몫의 헌재 재판관이니 이런 경력이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격성에 문제가 있으면 민주당이 후보를 바꿔야 한다. ▷조 후보는 4차례의 위장전입을 했다. 조 후보는 청문회에서 “추천된 이후 이 문제가 결격사유가 될 수 있어 후보자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위장전입이 드러나고도 청문회를 거쳐 공직을 맡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속한 ‘민변’은 과거 위장전입 후보자에 대해 공직자 자격이 없다는 논평을 낸 적이 있다. 스스로 후보자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으면 끝까지 고사했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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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킬링필드 재판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에서 1975∼79년 집권한 급진 공산정권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가 주민을 집단 학살한 장소를 말한다. 킬링필드는 한 군데가 아니다. 미국 예일대 조사팀은 약 2만 곳의 공동묘지를 조사했으며 거기서 138만6734명의 희생자를 확인했다. 캄보디아인 기자 디스 프란은 크메르루주에 잡혔다 태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시체 썩은 물로 가득한 킬링필드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그의 체험이 책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킬링필드의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크메르루주는 집권하자 자본주의와 연루된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자 했다. 안경을 썼다거나 손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지식인으로 지목돼 처형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크메르루주는 어른은 자본주의에 오염돼 있다고 보고 어린이를 새 세상의 주역으로 내세웠다.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격리해 수용하고, 크메르루주에 불복하는 사람은 적이라고 세뇌시켰다. 아이들에게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 방법을 가르친 뒤 어른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데 동원했다. ▷미국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 놈 촘스키는 크메르루주를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학살은 정부가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 복수심에 가득 찬 농민, 통제를 벗어난 군인들의 만행”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크메르루주가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크메르루주의 2인자 누온 체아(85)를 비롯해 키우 삼판(79), 이엥 사리(85) 이엥 티리트(79) 부부 등 4명의 반(反)인륜 범죄에 대한 재판이 그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시작됐다. 독일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가장 주목받는 재판이다. 크메르루주의 1인자였던 폴 포트는 1998년을 전후해 투항했으나 캄보디아 정부의 묵인 아래 재판도 받지 않고 죽었다. ▷킬링필드 재판은 학살로부터 30년 이상 지나서 열리고 있다. 반인륜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시위하는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북한 김정일은 가슴이 뜨끔할 것이다. 북한에는 지금도 20만 명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언젠가 꼭 열려야 할 세기적인 재판에 대비해 증거를 차곡차곡 모아놓을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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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한류, 코리안의 자신감 키웠다

    3세기경에 쓰인 중국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한국은 가무(歌舞)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기록돼 있다. 옛 중국인의 관찰처럼 한국인의 유전자(DNA)에는 남다른 예능인의 끼가 흐르는 것 같다. 한국 드라마, 케이팝(K-pop), 영화가 중국 일본 및 동남아를 넘어 중동으로 중남미로, 나아가 유럽에까지 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우리 자신도 모르고 살았던 재능을 새로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한류 열풍이 다른 분야로 확산돼 경제 분야에서는 한국산 제품을 보는 눈까지 바꾸고 있다. 5, 6년 전부터 한류 바람이 분 중동 중남미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의 수출 증가가 뚜렷하다. 중동에서는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중남미에서는 페루 멕시코 브라질로 수출이 크게 늘면서 지난해 수출 물량이 50%가량 증가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한류가 확산되는 유럽에서는 아직 경제적 효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에서 한류와 그 경제적 효과 사이에 몇 년간의 간격이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유럽에서 수출 증가도 기대해볼 만하다. 한류 확산은 한국산 제품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삼성 현대 등 한국의 세계적 대기업들은 굳이 한국 회사임을 밝히지 않고 외국에 수출했다. 한국 회사임을 밝히는 게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삼성 현대라고 하면 일본이나 중국 회사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반면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는 독일 자동차임을,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는 프랑스 가방임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한국산 제품은 국가 이미지가 높지 않아 상품 가격에서도 손해를 본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 소비자가 독일제 프랑스제 미제 일제를 선호하고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는 것은 그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적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이다. 서방 언론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는 남북한 대립, 격렬한 노동자·학생 시위, 의회의 폭력이 주를 이뤘다. 서구가 이제 한국 드라마 ‘풀하우스’를 보고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고 한국 영화에 상을 주고 있다. 문화 한류를 타고 뻗어나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을 통해 세계인들은 자유롭고 역동적이고 세련된 한국을 재발견하는 인식의 상승작용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201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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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6·25 전쟁觀 ‘커밍스의 앵무새’ 이제 사라져야

    6·25전쟁이 발발 61주년을 앞두고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를 다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한의 17일(17 Days of Winter)’의 촬영 준비가 한창이다. 국립극장에서는 6·25전쟁 때 남자는 죽거나 떠나버린 산골 과부마을을 배경으로 한 차범석의 연극 ‘산불’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한때 반공극(反共劇)으로 폄하되기도 했지만 인간 애욕을 세밀히 묘사한 사실주의의 교과서적 연극으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소설가 복거일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어 뮤지컬 ‘장진호 전투’도 공연되고 있다. 6·25의 문화적 기념은 전후세대가 전쟁의 비극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의미도 크다. 학계에서는 6·25전쟁 연구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최근 ‘역사와 지식과 사회-한국전쟁의 이해와 한국사회’란 책을 냈다. 박 교수는 이 책에서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얼버무린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를 비판했다. 한때 커밍스에 심취했던 박 교수는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라며 “1990년대 소련 중국의 문서자료가 발굴 공개되면서 6·25가 남침임이 명백해졌다”고 밝혔다. 학계에서야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지만 진보성향의 학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던 터라 박 교수의 솔직함이 돋보였다. 이른바 진보로 포장한 일부 세력은 여전히 ‘남침인지 북침인지 모르겠다’ ‘내전이다’ 운운하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부 교사는 학생들에게 왜곡된 6·25 전쟁관(觀)을 심어주기까지 한다.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김정일 집단을 두둔하는 세력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6·25는 미국의 남북전쟁 같은 내전이 아니라 스탈린의 지원과 마오쩌둥(毛澤東)의 동의하에 북한 김일성이 저지른 국제전 성격의 남침 전쟁이라는 사실이 사료로 명백해진 지 이미 오래다. 커밍스는 국군과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학살은 간략하게 다루는 ‘편향의 오류’도 범했다. 이제 이 땅에서 ‘커밍스의 앵무새’들이 사라질 때도 됐다. MBC TV는 25일 6·25 특집으로 ‘노근리는 살아있다’를 방영할 예정이다. 6·25전쟁 때 인민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은 도외시하고 국군과 미군의 학살만 부각시키는 것은 아닌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세계 13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미증유의 6·25 국난을 극복했기 때문임을 젊은 세대도 알아야 한다.}

    • 20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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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검경 수사개시권 다툼, 집단행동 자제해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대해 결론을 내릴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전체회의가 오늘 열린다. 이를 앞두고 검경 대립이 치열하다.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평검사 150여 명은 어제 회의를 열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유지하되 경찰에 수사개시 및 진행권을 준다’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중재안에 반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장차관 국정토론회에서 검경의 수사권 갈등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질타했지만 평검사들은 회의를 강행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내부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이유로 김 총리 중재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국회 사개특위의 논의가 시작된 후 수차례 간부들에게 “수사권 조정에 자신의 직위를 건다는 자세로 임하라”고 지시했다. 경찰관들이 정치권을 향해 ‘13만 경찰표를 잊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자 의원들은 “경찰 편을 들지 않으면 내년 선거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김 총리가 “국민이 아닌 조직만을 위해 직위를 거는 것은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검경 양쪽 다 귀를 닫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오로지 자기 조직의 집단이익을 추구하기에 바쁘다. 검경의 수사권 배분은 영미법계와 대륙법계가 다르고, 또 같은 법계라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결국 그 나라의 실정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수사지휘권,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는 마당에 현실적으로 이미 관행화한 경찰의 수사개시를 법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해준다고 해서 경찰에 독립된 수사권을 넘겨주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찰과 경찰은 설혹 자기 조직에서 다소 잃는 것이 있더라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대승적으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선거만 의식하거나 어느 쪽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국민 편익, 범죄 소탕, 인권 보호라는 대원칙에서 수사개시권 조정문제를 매듭짓기 바란다.}

    •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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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박카스와 비아그라

    컴퓨터 이래 인류가 만든 최고 발명품은? 비아그라라는 말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이던 2008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탈레반 반군들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활용한 뇌물이 비아그라였다. “4알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60세 부족장의 태도를 바꿔놓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원청업체의 나이 든 간부에게 저녁 식사 대접을 한 뒤 비아그라를 선물하면 약효가 그만”이라고 했다. ▷대한약사회가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비아그라를 약국에서 팔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르면 8월부터 박카스를 동네 슈퍼에서 살 수 있게 하는 데 대한 반격이다. 박카스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통틀어 매출 1위를 달리는 약국의 보물단지다. 작년 생산액이 1493억 원으로 국내 매출액 387억 원인 비아그라의 3배 규모나 된다. 하지만 비아그라를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게 되면 박카스를 추월할지 모른다.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데 병원 가서 이름 적고 처방받아야 하는 쑥스러움을 면할 수 있어 반색하는 남성이 많다. ▷박카스를 만드는 동아제약 측은 썩 달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라고 광고할 만큼 박카스는 일반 음료와는 다른 ‘약품’임을 강조했다. 약사들도 “박카스 세 병을 한꺼번에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며 부작용을 겁주고 있다. 그런 약사들이 비아그라에 대해선 “2층을 혼자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대조적이다. 의사들은 “비아그라 잘못 먹으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있다”고 소리를 높인다. ▷앨빈 토플러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구별이 희미해지는 프로슈머(prosumer)가 가장 활발하게 전개될 분야로 의료를 꼽았다. 의료기기와 의약품의 발달로 환자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가 가능해 의사와 환자의 구별이 희미해지는 분야가 늘고 있다. 발기부전을 진단하는 데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부작용을 약사가 충분히 경고할 수 있다면 약국 판매를 못 할 것은 없다. 다만 남성들이여, 다음의 오래된 경구를 새겨들을 일이다. “약 좋다고 남용 말자.”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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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이 대통령 ‘천신일 실형’ 무겁게 새겨야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게 어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과 추징금 32억1060만 원이 선고됐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측근이 기소돼 실형이 선고된 것은 처음이다. 천 회장은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워크아웃 조기 종료와 세무조사 무마 같은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죄가 인정됐다. 천 회장은 고려대 교우회 회장으로 2007년 정치후원금 기탁과 선거운동을 통해 이 대통령의 당선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천 회장과 이 대통령은 고려대 61학번 동기생이다. 그는 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금융계는 물론이고 국가정보원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결문에 드러났다. 그가 친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에 자족하고 자중했더라면 이런 수모와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주변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날 때 그를 말리지 않은 권력 주변의 인사뿐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도 책임이 있다. 재판부는 “혈연 지연 학연과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고 죄질도 가볍지 않다”고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권력형 비리의 척결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짐했지만 측근 비리가 천 회장 하나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최근 현 정부의 대통령정무1비서관을 지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이 비서관 재임 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측근 비리는 임기 초에는 숨어 있다가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는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꼬리를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은 진보든 보수든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대통령 혼자 깨끗하다고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착각에 빠져 집안과 주변 단속을 소홀히 해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야 명예만으로 살 수 있다지만 주변 사람들은 명예 대신 검은 실속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집권 후반기의 화두로 제시했지만 남은 임기 1년 8개월 동안 대형 게이트가 터지면 공정사회는 물 건너가고 대통령의 권위도 추락할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들과 측근의 비리로 임기 말에 식물 대통령처럼 됐던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은 ‘측근 비리는 곧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으로 50년 지기(知己)인 천 회장에 대한 법원의 실형 선고를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 201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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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여학생의 치마 가림판

    일본 여학생들이 유행처럼 짧은 교복 치마를 입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고갸루’ 세대부터다. 고(高)는 고등학생을 줄인 말이고 갸루는 영어 gal(girl의 비속어)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대체로 1980년대 전반에 태어나 풍요 속에서 1990년대에 중고교를 다닌 여학생을 지칭한다. 오키나와 출신의 1977년생 인기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들의 교복은 미니스커트와 루스 삭스(loose socks·헐렁하고 긴 양말)가 특징이었다. 성인 남성들과의 원조교제를 사회문제로 등장시킨 세대다. ▷고갸루 교복 패션은 한국에도 흘러들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일부 여학생에게 국한됐던 이 패션이 최근 10년 사이 인기를 더 얻어 루스 삭스만 빼고 한국에서도 유행이다. 일본 여학생의 교복인 세일러복은 긴 양말이 기본이다. 일본 여학생은 짧은 치마를 입기 시작하면서 더 많이 노출된 다리에 악센트를 주기 위해 루스 삭스를 신기 시작했는데 루스 삭스의 유행은 2000년대 들어 일본에서도 시들해졌다. ▷한국에서 여학생의 치마 길이가 10년간 평균 10∼15cm 짧아졌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에서는 지방별로 여학생 교복의 평균 치마 길이를 조사한 결과 니가타 현이 가장 짧았다. 니가타 지역 교사와 학부모 모임은 2009년 여학생의 치마 길이를 늘리기 위한 캠페인으로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공부도 치마도 늘릴 수 있다’라는 포스터를 제작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올 2월 후쿠시마의 여학생들이 추운 겨울에 모포로 치마를 두르고 다니면서도 미니스커트를 고수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에서는 여학생 교복을 치마에서 바지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우리 학교나 가정에서도 여학생의 치마 길이를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여학생들은 별 생각 없이 유행처럼 입는다지만 수업시간이면 교사들은 민망하다. 강원도교육청이 올 4월 8억2000만 원을 들여 여학생 책상에 치마 가림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영국 BBC는 당시 이 소식을 화제기사로 보도했다. 여학생들은 치마를 허리춤에서 접어 올려 짧아 보이게 입는다.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길게 내려 입는다면 세금 들어가는 가림판이 필요 없을 텐데….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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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安息年과 골프년

    안식년(安息年)은 유대인의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집트를 탈출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유목 민족이었던 유대인의 농경 민족화를 뜻한다. 유대인의 신 여호와는 농경 사회의 특징을 잘 모르는 유대인에게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일곱째 되는 해에는 땅을 갈거나 씨를 뿌리지 마라. 거기에서 무엇이 저절로 자라거든 너희 백성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라”고 명령한다. 땅에 휴식을 주어 황폐화를 막는 지혜였다. 동시에 유목 사회의 통합이 농경 사회의 빈부 격차로 깨질 것을 염려한 조치이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연구와 재교육을 위한 장기간의 휴가를 지칭하기 위해 그 말이 사용된다. 안식년이 있는 대표적인 기관이 대학이다. 미국 대학은 교수들에게 자동적으로 안식년을 주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잘 수립한 연구계획서를 제출한 교수에게만 학장의 권한으로 안식년을 허가한다. 안식년 휴가를 떠난 교수는 반년은 월급의 전부, 나머지 반년은 월급의 반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 대학에서는 교수 대부분이 안식년 휴가를 떠난다. 총장 직선제 이후 후보들이 앞다퉈 교수 전원 안식년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제도로 자리 잡았다. 교수 전원이 안식년 혜택을 받는다면 어느 대학이든 교수 7명 중 1명은 안식년 휴가를 떠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미국과 달리 안식년이라도 교수에게 한 해 월급을 다 지불한다. 대학이 안식년에 쓰는 비용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안식년을 연구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상당수 교수가 안식년 휴가를 떠나서는 연구보다 골프와 여행을 즐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안식년이 꼭 1년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구 목적에 따라 안식년(sabbatical year)을 주거나, 안식학기(sabbatical term)로 준다. 독일에서는 연구학기(Forschungssemester)라고 부르는데 한 학기가 원칙이다. 수원대는 안식년을 안식학기로 바꾸는 등의 예산 절감 노력을 통해 지난 3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다. 등록금 인하를 하자면 국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대학과 교수들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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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정치는 종교 이용 말고, 종교는 정치와 거리 두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慈乘) 스님은 어제 정부·여당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지원예산 삭감을 계기로 조계종이 정부·여당 인사의 사찰 출입을 봉쇄하고 국고 지원 수령을 보류한 갈등이 6개월여 만에 공식적으로 풀렸다. 여권은 내년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조계종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했을 것이다. 조계종으로서도 각 사찰의 문화재 보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불편이 컸다. 정부·여당과 조계종의 불편한 관계는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이 직접적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쌓여온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불신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4월에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공인으로서는 부적절하게 무릎 꿇고 통성기도(通聲祈禱)하는 모습을 보여 비(非)신자와 타 종교인들의 불만을 샀다. 소망교회 출신이 집권 초부터 이례적으로 중용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눈총이 따갑다. 이 대통령이 과거와는 달리 불교계에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기는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전시회를 직접 찾았고 부인 김윤옥 여사는 뮤지컬 ‘원효’를 관람했다. 불교는 종교를 떠나 우리 전통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대통령은 불교계가 보다 진정성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계종도 승가(僧家)의 위엄을 지켜야 한다. 정부·여당과의 관계 정상화를 무슨 큰 선물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고 대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사찰 관련 규제 법령이 크게 완화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려 해서도 안 되고, 종교가 정치권력을 만들기 위해 옷소매를 걷어붙이거나 정치권력에 기대어 특혜를 받으려 하는 것도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다.}

    • 201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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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한국계 주한 미국대사

    돈을 받고 공직을 주는 엽관제(spoils system)가 21세기 미국에 엄연히 존재한다. 엽관제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공직이 대사 자리다. 존 루스 주일 미국대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유세를 위해 50만 달러를 모아준 캘리포니아 출신 변호사다. 씨티그룹 부회장을 지낸 루이스 서스먼 주영 미국대사는 민주당에 25만 달러를 기부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을 위해서 따로 5만 달러를 기부했다. 살로먼브러더스 애널리스트 출신의 찰스 리브킨 주프랑스 미국대사 역시 오바마를 위해 50만 달러 이상을 모아줬다. ▷주한 미국대사 자리는 골치만 아프지 돈 주고 살 정도로 좋은 자리는 아닌 모양이다. 1980년 이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사람들은 대부분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현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 이전의 알렉산더 버시바우, 크리스토퍼 힐, 토머스 허버드,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등이 그렇다. 도널드 그레그와 제임스 릴리 대사는 중앙정보국(CIA) 출신이었고 리처드 워커 대사는 동아시아 전공 학자 출신이었다. ▷성 김 미 국무부 6자회담 특사가 새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다. 미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최초의 한국계 대사가 된다. 한국 이름이 김성용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로스쿨을 나와 검사 생활을 하다 직업 외교관으로 변신했다. 한국인 여성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주중 미국대사에 중국계 게리 로크 상무장관을 임명했다. 그 역시 최초의 중국계 대사로 상원 인준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계는 아직 주일 미국대사에 임명된 적이 없다. ▷김 내정자는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유창하고 우리 역사와 정서를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평화봉사단 활동을 한 스티븐스 대사도 한국어로 일상적인 대화는 했지만 토론이 깊어지면 통역을 이용한다. 한미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김 내정자는 엄연히 미국 외교관이다. 미국이 중국에 더 이로운 일을 할 주중 미국대사를 임명할 리가 없듯이 한국에 더 이로운 일을 할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할 리 없다. 김 내정자가 양국의 이익이 충돌할 때 한국을 도울 수 있다는 기대는 금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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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모래시계 검사들의 流轉

    “모래시계 검사는 없다. 오직 슬롯머신 사건 수사 검사가 있을 뿐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모래시계 검사’란 말에 보인 반응이다. ‘모래시계’는 1995년 초 방영된 SBS의 인기 드라마이다. 박상원이 강우석 검사, 최민수가 조직폭력배 박태수, 고현정이 재벌 딸 윤혜린으로 나와 열연했다. 강우석 검사의 실제 모델이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홍준표 의원이다. 김종학 SBS PD와 송지나 작가는 “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며 홍 검사에게 조언을 부탁했고 홍 검사는 제작팀에 자신의 성장 과정과 수사 에피소드를 소개해줬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태풍이 몰아쳤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 등은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일 씨와 그를 비호한 조직폭력배, 정치인, 검찰의 커넥션을 파헤쳤다. 6공(노태우 정부)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 엄삼탁 전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L 전 대전고검장 등이 구속됐다. 이런 수사를 평검사들 몇몇이 해치웠다고 볼 수는 없고 검찰 고위층의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서울지검 강력부에는 당시 조직폭력팀과 마약팀이 있었다. 홍 검사(사시 24회)는 같은 조직폭력팀의 김홍일 검사(사시 24회)와 함께 사건 수사를 주도했다. 정선태 검사(사시 23회)는 마약팀이었으나 조직폭력팀에 가세해 수사기록 정리를 도왔다. 이 세 사람은 요즘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사시 30회)도 막내로 이 모임에 더러 끼었다. 그는 강력부 소속은 아니었지만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어 계좌추적을 돕기 위해 수사팀에 가세했다. ▷홍 검사는 이후 수사로 얻은 명성을 살려 1996년 국회에 입성했다. 김 검사는 대검 중수부장 자리에 올랐다. 정 검사는 2006년 서울고검 검사로 밀려나 끝인가 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으로 임용됐다. 은 검사는 2004년 검찰을 나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위원이 됐다. 저축은행 비리로 모래시계 검사들의 인생 유전(流轉)이 시작됐다. 김 중수부장은 부산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은 전 감사위원을 구속했고 정 처장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거악(巨惡)과 싸웠던 검사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가 민망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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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원전, 獨佛의 엇갈린 길

    프랑스와 독일은 이웃 나라이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프랑스는 벌판의 나라, 독일은 숲의 나라다. 프랑스는 수학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독일은 신비적 요소를 중시한 낭만주의가 성했던 나라다. 프랑스는 가톨릭 우위에도 불구하고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나라지만 독일은 종교세(稅)를 걷는 개신교 국가다. 원전에 대한 태도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프랑스는 전력의 75%를 원전으로 생산하는 나라인 반면 독일은 전기를 프랑스에서 사 쓸지언정 원전을 기피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은 원전 폐쇄의 길을 택했다.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끈 좌파 연정 당시 2021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뒤이어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해 원전 가동시한을 12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폐쇄 방침으로 돌아갔다. 반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ERP라는 안전성이 강화된 신형 원전을 무기로 세계 원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이다. 위기가 기회인 셈이다. 프랑스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서 한국에 패한 이후 ERP 원전에 대해 ‘안전하기 때문에 비싸다’는 홍보를 강화했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직후에도 세계 각국이 원전 정책을 조정했다. 원전 산업의 압도적 선두였던 미국이 이 사고로 주춤한 사이에 프랑스 일본 한국이 뛰어들어 선두그룹에 진입했다. 세 국가 중 후쿠시마 원전의 피해 당사자인 일본이 한발을 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와 한국이 앞으로 원전 시장의 양강(兩强)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와 한국은 독일이나 일본과는 처지가 다르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대에 있다. 독일인의 환경관은 숲에 대한 경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극우파인 나치당원도, 극좌파인 녹색당원도 원자력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독일 우파 정당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다시 중단으로 돌아선 것은 무엇보다 정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합리주의에는 인간이 원자력도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가 강하다. 각국의 원전 정책도 그 나라의 자연환경,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 국민의 수용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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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스페인 온실농업의 재앙

    오늘날 유럽인의 식탁에 올라가는 값싼 농산물은 대부분 스페인에서 온 것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맨 동쪽에 위치한 알메리아는 구글 항공사진으로 보면 비닐하우스로 덮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닐하우스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1986년 스페인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무역자유화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 겨울철에 여름 채소를 재배하는 하우스 농업이다. 현재 알메리아의 농산물 가운데 70%가 유럽으로 수출된다. ▷3주일 전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슈퍼 박테리아’ 공포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감염으로 숨진 사람만 11명이다. 약 1200건의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에서도 15건의 감염 사례가 있었다. 이들 환자는 북독일을 방문한 사람들이다. 감염된 사람은 모두 북독일에서 구입한 오이 토마토 상추 등을 날것으로 먹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알메리아 등에서 출하된 농산물이 오염원이라고 지목했다. ▷알메리아는 본래 스페인 50개 주 가운데 가장 빈곤한 지역이었다. 같은 안달루시아 지방이라고 해도 그라나다는 비도 오고 날씨도 서늘하지만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사이에 두고 바다 쪽에 위치한 알메리아는 건조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 또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 등은 이슬람 유적이 많아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알메리아까지 오는 외국 관광객은 드물었다. 그런 알메리아가 1970년대부터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것이 하우스 농업이다. ▷하우스 농업은 물 공급이 관건이다. 면적이 약 320km²에 이르는 알메리아 비닐하우스에 물을 공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지하 암반수를 이용해 왔으나 사용량이 유입량을 훨씬 지나쳐 염분이 증가하고 있다. 농가에서는 채소를 세척할 물이 없어 집에서 쓴 하수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2005년 하수로 세척한 스페인 채소를 먹은 북유럽 사람들이 감염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오염된 물을 사용하면서 대장균과 유사한 박테리아가 살아남아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에게 재앙이 역습하는 두려운 세상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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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유혹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에 하나 더해 유혹의 나라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파리 특파원을 지낸 일레인 사이올리노 기자는 ‘유혹, 프랑스인이 삶의 게임을 하는 방식’이라는 책에서 유혹을 프랑스의 ‘비공식적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프랑스 여성은 집 앞에 바게트를 사러 갈 때도 옷을 차려입고 나선다. 미국 여성인 사이올리노 기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08년 부하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을 때 그의 부인은 “정치인은 유혹할 줄도 알아야 한다”며 넘어갔다.▷사이올리노 기자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일이다. 그녀가 책의 집필 계획을 설명하자 대통령은 말리면서 “프랑스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미국인을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이올리노 기자는 눈앞에서 대통령이 여자 보좌관의 등 아래 부분을 두 번이나 쓰다듬는 것을 보면서 눈을 비볐다. 프랑스 여자는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예쁘다는 찬사를 늘어놓거나 휘파람을 불어대도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 미국식 페미니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유혹은 감질나게 하는 노출이다. 프랑스 여성 속옷 디자이너 샹탈 토마는 “미니스커트든 가슴이 파인 블라우스든 하나만 입어야지 둘 다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미국 여성의 감각은 정반대여서 드러낼수록 좋다는 주의다. 학교 체육관의 여학생 탈의실에 가보면 누드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여학생은 벗고 떠들지만 프랑스 여학생은 그렇지 않다. 철학자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부인인 영화배우 아리엘 동발은 “아내는 남편 앞에 옷을 다 벗고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관절염이 걸리기 전까지는 배우자 외에 애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프랑스인이다. 욕망이 큰 만큼 충족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유혹의 기술이 발달한다. 미국의 남녀 관계는 효율적인 정복이다. 유혹의 복잡한 게임을 하지 않는다. 스트로스칸이 호텔 여직원을 성폭행하려고 했다면 유혹에 실패한 것이다. 자유를 존중하는 프랑스인이라면 유혹에 실패했을 때 물러날 줄도 안다. 성폭행은 유혹하지 않고 정복하려는 데서 나온다. 스트로스칸은 프랑스인답지 않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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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송평인]역사 뒤집기

    세계적 명성을 가진 극좌파 지식인들이 2009년 5월 영국 런던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 알랭 바디우, 슬로보예 지젝, 테리 이글턴, 토니 네그리, 장뤽 낭시, 자크 랑시에르, 왕후이(汪暉) 등 우리나라 잡지 ‘창작과 비평’에 자주 언급되는 철학자와 문학평론가가 모였다. 회의에서 발표된 글은 주제와 같은 제목으로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됐다. 미국 월가발(發) 금융위기로 세계 자본주의가 타격을 받자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보였던 공산주의를 들고 나왔다. 당시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고 케인즈주의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들은 신자유주의건 케인즈주의건 ‘자본-의회주의(자본주의와 의회주의의 합성어)’일 뿐이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디우와 지젝은 회의를 이끈 두 주인공인데 바디우의 ‘세계사 뒤집기’가 인상 깊었다. 그는 공산주의 운동이 후퇴하기 시작한 것은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부터라고 썼다. 상식적으로는 스탈린의 개인숭배가 공산주의 일탈이고, 후루시초프가 그걸 수정하려 한 것으로 보는데 바디우는 오히려 후루시초프를 일탈로 봤다. 그에게는 후루시초프적 일탈의 끝이 고르바초프였고 소련과 동구 현실 공산주의의 붕괴였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역사 뒤집기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는 게 아닌가’라고 한국의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소심한’ 역사가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바디우는 푸코·데리다·알뛰세르 세대와 끈이 닿는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의 마지막 철학자다. 그는 혁명정치학에서 고유명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혁명은 익명의 대중이 일으키는 것이지만 그 이름없는 대중은 스스로 동일시하는 하나의 이름을 갖는다. 그 고유명사가 스파르타쿠스요 로베스피에르요 레닌이요 마오쩌둥(毛澤東)인 것이다. 후루시초프는 스탈린이라는 고유명사의 중요성을 깎아내려 공산 진영의 힘을 약화시켰다는 게 바디우의 비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의회주의의 대안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제시했다. 애초에는 의미가 다소 애매모호했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인민민주주의라는 허울 속의 수령(首領)독재라는 것이 스탈린에 이르러 명확해졌다. 바디우의 고유명사는 다른 말로 하면 ‘수령’이다. 수령은 북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특수성은 단지 그 수령이 세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령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세습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종북(從北)주의를 취하는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배경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민노당은 최소한 논리적이긴 하다. 북한에 내재적으로 접근하면 결국 수령론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당과 대학과 언론과 전교조 안에 있는 비논리적이거나 솔직하지 못한 좌파들이다.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려고 할 때 한 가지 선택해야 할 전제가 있다. 수령론을 받아들이고 그 수령이 저지른 잘못까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북한을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은 소련과 동구의 공산정권처럼 역사에서 사라질, 애초부터 등장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볼 것인가. 후자라면 남한에서나마 ‘자본-의회주의’를 세우려 했던 노력, 북한의 침략을 가까스로 막아낸 한미동맹, 이런 것들을 인정해야 한다. 수령론과 같은 궤변을 전제로 깔아야만 가능한 역사 뒤집기는 세계사에서도 한국사에서도 인정할 수 없다.송평인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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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반세기 맞은 5·16

    오늘은 5·16이 일어난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3공화국과 4공화국 헌법에는 5·16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그 이후 5공화국 헌법부터는 5·16 언급이 빠졌다. 그 삭제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분명 5·16은 후진국에서 흔히 보는, 합법정부를 무너뜨리는 군사쿠데타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집트 나세르의 쿠데타처럼 혁명이라 부를 만한 요소도 없지 않았다. 50년 전 실제 그렇게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당시 미국 방첩대(CIC)가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쿠데타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봤더니 10명 중 4명은 찬성, 2명은 찬성하지만 시기가 이르다, 4명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면 총리는 회고록에서 사임을 결정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쿠데타를 지지하는 윤보선 대통령의 태도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당시 새뮤얼 버거 미국대사는 “4·19로 이승만을 몰아낸 학생들은 장면 정부에 압력을 가할 목적으로 매일같이 시위를 벌였고 장면 정부는 전국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데 실패해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급속히 사라졌다”고 군사쿠데타의 배경을 분석했다. ▷대중 사이에서 역대 대통령 중 부동의 인기 1위는 박 대통령이다. 봄철 보릿고개를 아는 세대에는 단군 이래 최초로 먹는 문제를 해결해 준 박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다. 4·19 이후 학계에 민족경제론이 유행할 때 수출지향 산업화로 세계 자유무역 확대 흐름에 올라탄 것은 박 대통령의 혜안이다. 사회 전체로 보면 박정희의 공(功)은 경제개발이요, 과(過)는 민주주의 억압이라는 절충론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진국에서 경제개발과 민주주의 억압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가. 한편에서는 산업화는 박정희의 리더십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그것이 권위주의 지도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독일 일본 등 전후 부흥을 일으킨 국가는 의회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그렇게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화의 기초가 닦여지지 않은 후진국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아니었다면 산업화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놓고 5·16을 평가하는 것은 민주화로만 5·16을 평가하는 종전보다 진일보한 태도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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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정치인 초대하지 않은 부처님오신날

    대한불교 조계종은 오늘 서울 조계사에서 개최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이례적으로 정치인을 초청하지 않았다. 해마다 이 법요식에는 여야 정당 대표 등 주요 정치인이 참석했다. 초청 대상에는 정치인 대신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가정 등 소외계층과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 원불교를 대표하는 종교인이 들어 있다. 정치인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막지는 않겠지만 단상에는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겠다는 게 조계종의 방침이다. 불교는 지난해 말 이후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불만을 표시하며 한나라당 정치인의 사찰 출입을 금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특정 정당을 지목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불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조계종은 앞으로 정치인이 절을 찾아와서 하는 개인적인 활동은 막지 않겠지만 축사 기회를 주는 것 같은 별도 의전은 베풀지 않기로 했다. 이 다짐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 이어지면 좋을 것 같다. 종교와 정치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계종에서 신망이 높은 도법(道法) 스님은 한나라당 불자회 회원과의 만남에서 “서로가 불편해진 것은 각자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처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정치를 마다하고 출가 사문(沙門)이 됐다. 예수는 “가이샤(카이사르)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했다. 부처는 가족으로부터, 예수는 제자로부터 집요하게 정치의 유혹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종교와 정치의 갈등이 어느 정권 때보다 심했다. 천주교계는 주교회의 이름으로 4대강 사업을 비판했다. 개신교계는 이슬람채권(수쿠크)법안에 반대해 입법을 유보시켰다. 종교인도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지만 4대강이나 이슬람채권은 종교인이 개입해야 할 분야라고 보기 어렵다. 종교가 사회의 목탁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물신화하는 세속을 꾸짖는 것은 본연의 일이다. 그런 경우가 아닌 한 종교는 종교의 길을,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는 게 마땅하다.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지낸 혜국(慧國) 스님은 본보 인터뷰에서 “종교까지 정치화하면 큰 손실”이라며 “서로 본분을 지켜야 갈등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인과 정치인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종교가 화합과 치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이 줄어들 수 있다.}

    • 201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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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강용석 의원만 제명감인가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강용석 의원의 ‘제명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징계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강 의원은 발언 후 한나라당에서 출당 조치를 당한 뒤 현재는 무소속이다. 그가 제명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 시절 정치탄압으로 제명된 이후 42년 만의 첫 제명이자 윤리문제로 제명되는 희귀한 사례가 된다. 강 의원 징계는 윤리특위 전체회의가 남아있고 본회의까지 가더라도 제명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강 의원의 징계절차가 시작됐다고 해서 국회가 비로소 정치윤리 회복에 나섰다고 믿기는 어렵다. 국회에는 의원의 품위를 심하게 떨어뜨려 사법적 처벌까지 받고도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있는 의원이 수두룩하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국회 사무총장실 탁자에 올라가 ‘공중부양 활극’을 벌이며 국회의장실 문을 발로 차고 경위의 멱살을 붙잡고 폭행해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문학진,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국회 외교통상위 회의장 출입문을 망치로 부수고 의원 명패를 깨는 폭력을 행사해 각각 200만 원과 5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런 의원들이 강 의원보다 먼저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견해에 일리가 있다. 1966년 김두한 의원은 한국비료 밀수 사건과 관련해 국회에 출석한 정일권 국회의장 등을 향해 인분을 뿌렸다가 제명을 당했다. 망치와 전기톱을 휘두르고, 공중부양을 하는 의원들이 그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1991년 설치된 국회 윤리위에는 14대 국회부터 이번 18대 국회까지 의원으로서의 품위 손상, 부적절한 언행 등으로 150여 건이 제소됐지만 단 한 건도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의원들은 평소에는 여야로 갈려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윤리위 제소 건이 터지면 형제처럼 서로 감싼다. 강 의원이 초선이 아니고, 여야당에 든든한 울타리를 둔 의원이었더라도 나 홀로 징계의 대상이 됐을까. 선진국에서는 의원의 폭력 행위를 제명 감봉 등 중징계로 엄격히 다루고 있다. 우리 국회는 의원의 폭력행위는 명시적인 징계사유가 아니라는 핑계로 이번 회기에도 징계 처리를 하지 않았다. 국회법은 회의장의 질서문란 행위를 징계사유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권위를 세우고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의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징계권을 행사해야 한다.}

    • 201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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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작전 암호 제로니모

    “그들은 체로키 땅 전부를 가져갔네. 우리를 이 보호구역에 처박아 두고…우리의 언어를 빼앗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네….” 미국 팝송 ‘인디언 보호구역’에 나오는 가사다. 체로키어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게는 대단히 쓸모가 있었다. 미군은 체로키족을 동원해 체로키어로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때 동원된 인디언을 ‘코드 토커(code talker)’라고 한다. 독일군은 체로키어를 아는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면서 인디언 언어를 배워오도록 인류학자 30여 명을 미국에 보냈다. ▷인디언이 코드 토커로 동원된 다른 사례는 2차 세계대전 때 나바호족이다. 나바호족의 언어는 매우 복잡해 배우기가 어려웠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나바호어를 구사하는 비(非)나바호족은 30명도 채 되지 않았고 특히 일본인 중에는 없었다. 미군은 나바호족을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에 동원했다. 일본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준 이오지마 전투에서 6명의 나바호족 코드 토커가 약 800개의 메시지를 착오 없이 주고받아 미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코드 토커는 적군에게 체포될 위험에 놓이게 되면 암호 노출을 막기 위해 미군이 사살할 수 있었다. ▷최근 9·11테러의 배후조종자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의 암호로 ‘제로니모’가 사용됐다. 제로니모(1829∼1909)는 미군과 멕시코군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설적인 아파치족 전사다. 제로니모가 빈라덴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지자 인디언 사회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제로니모의 증손자 할린 제로니모는 “모든 정부기록에서 작전 암호 제로니모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악인을 필요로 한다. 그 악인이 오늘날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이고 냉전 종식 전에는 소련 스파이였으며 초창기 서부 영화에서는 인디언이었다. 하지만 빈라덴과 제로니모는 다르다. 제로니모에 대해서는 미국인도 외경(畏敬)의 양가(兩價) 감정을 지니고 있다. 미군 공수부대원은 낙하훈련을 할 때 ‘제로니모’를 외치는 전통이 있었다. 그만큼 제로니모는 용감함의 상징이다. 미군 501공수대대와 509연대 1대대는 제로니모를 부대의 별명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흐르더라도 미군이 부대의 별명으로 빈라덴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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