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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인 시놀라 시계의 미국 내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르 슬리프 프랑세’ ‘코뮌 드 파리’ 등 프랑스산임을 내세운 브랜드가 불티나게 팔린다. 이탈리아와 일본에서도 ‘메이드 인 이탈리아’ ‘메이드 인 저팬’ 부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진국들이 사양산업으로 외면했던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산비 절감을 이유로 해외로 이전했던 공장을 자국으로 들여오는 리쇼링(reshoring) 현상도 뚜렷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비교우위가 낮은 제조업이라고 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은 무너진 경제를 일으켜 세울 전략으로 제조업 부활을 선택했다. 비영리단체 ‘리쇼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2015년 6년간 미국으로 돌아온 제조업체는 818개, 이 덕분에 ‘귀환한 일자리’도 12만4852개나 된다. 미 소비자들의 국산품 선호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모닝컨설트’ 조사에서 ‘미국산이라면 사고 싶어진다’는 답이 84%였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물산장려운동이 민족자본을 키우자는 약소국들의 저항운동이었다면 ‘21세기 물산장려운동’은 선진국들의 일자리 지키기 캠페인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제조업을 굴뚝산업으로 폄하했고, 이명박 정부는 금융허브를 하겠다면서 리먼브러더스가 망하기 두 달 전에 산업은행이 인수를 검토했다”며 “그때 인수했다면 함께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제조업은 아직도 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파리=전승훈 기자}
“요즘 프랑스는 ‘메이드 인 프랑스’에 대한 향수와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프랑스 경제일간 레제코는 최근 프랑스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이 각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에서도 제조업 부활 움직임이 뚜렷하다. 정부는 해외 이전 기업들을 불러들이고 고부가가치 제조업 창업을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국산품 애용 운동으로 호응한다.○ 스마트폰도 양말도 ‘메이드 인 프랑스’ ‘신(新)메이드 인 프랑스’ 붐을 이끄는 브랜드의 특징은 창업주들이 20, 30대 젊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에게서 배우고 들었던 프랑스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48가지 색상의 ‘100% 메이드 인 프랑스’ 양말을 판매하는 ‘아르쉬듀셰스’는 실 염색부터 제품 생산까지 모두 프랑스에서 한다. 한국의 패셔니스타 지드래곤이 착용해 유명해진 액세서리 브랜드 ‘라몸비주’도 100% 프랑스산을 강조하고 있다. 브랜드에서부터 프랑스산을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 ‘코뮌 드 파리’는 2009년 생겨난 패션 브랜드다. ‘르 슬리프 프랑세’는 2011년 창업한 속옷 전문 브랜드로 지난해 매출액이 359만7400유로(약 46억3800만 원)로 전년보다 221%나 늘었다. 파리 11구 지역에 매장을 둔 ‘프렌치트로터스’는 니트 브랜드로 매장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해 운송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다. 패션뿐 아니라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메이드 인 프랑스’가 선전(善戰)하고 있다. 2012년 5월 한국계 입양인 출신 플뢰르 펠르랭이 중소기업디지털경제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시작한 ‘프렌치테크’ 정책이 계기가 됐다. 정보통신 분야를 비롯해 환경과 바이오 등에서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랑스의 저가(低價) 스마트폰 ‘위코’는 2011년 마르세유에서 창업한 이후 3년 만에 프랑스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며 프랑스 ‘국민폰’으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 언론은 “위코는 세련된 디자인과 애국주의 마케팅에 힘입어 돌풍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2015년 창립된 공기정화기 제조회사 ‘테코야’는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서 제품을 만든다. ‘프랑스에서 만든 깨끗한 공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수출 물량의 절반이 중국에 팔린다.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메이드 인 프랑스’ 육성이 화두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초대 산업장관이던 아르노 몽트부르는 취임 직후부터 프랑스 삼색기를 배경으로 프랑스 제품 이용을 촉구하는 홍보전을 벌였다. 2009년 프랑스산 제품에 공식 라벨을 붙여 주는 ‘100% 메이드 인 프랑스’를 설립한 로맹 다비뇽은 “중국산 저가 제품에 프랑스의 패션, 구두, 자동차 등 모든 산업이 위태롭다”며 “프랑스에서 만든 질 좋은 제품을 인증해주는 것은 마케팅에 도움이 되고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로 돌아온 아디다스 독일에서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귀환 발표가 화제다. 아디다스는 1993년 생산 라인을 아시아로 옮겼다. 내년부터는 독일에서 제품을 생산하기로 하고 지난해 말부터 독일 자동차부품 및 의료기기 제조회사와 손잡고 로봇을 이용해 운동화를 생산하는 생산시설 ‘스피드 팩토리’를 갖췄다.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는 취임 후 ‘일자리 법안’을 통해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넓히면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브랜드를 부흥시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규모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2년 3500만 유로(약 460억 원)에 불과했지만 3년 만인 지난해엔 7500만 유로로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의 경우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통해 규제를 줄이고 국가전략특구를 만들며 제조업 기반 복원에 앞장섰다. 여기에 일본은행을 동원해 무제한 돈을 풀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자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 회장은 지난해 “생산 현장 인력의 질은 일본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내 생산 비율을 현재 40%에서 60%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파나소닉도 가전제품의 국내 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도 앞다퉈 일본 내 생산을 늘렸다. 혼다는 지난해 9월 중국에서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현으로 오토바이 생산기지를 옮겼고, 도요타와 닛산도 미국 유럽 등에서 만들던 차량을 일본 안에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5월 제조업 국내 회귀를 다룬 기사는 매달 100건 이상 쏟아져 전년보다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사회적으로도 ‘모노즈쿠리(장인정신)를 되살리자’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지난해 방영된 TBS 드라마 ‘시타마치(변두리) 로켓’은 일본 중소기업이 로켓 핵심 부품을 만드는 스토리로 연간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아베 총리도 올해 시정연설에서 이 드라마를 거론하며 “제조업 강국 일본을 만들어 낸 것은 이런 중소기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가 신흥국 경제 둔화와 이에 따른 엔화 가치 급등이라는 암초를 만나 대기업들의 고민이 적지 않다.파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올해 ‘알파고’에 이어 ‘포켓몬고’ 게임 열풍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였을 때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담론이 팽배했다. 머지않아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에 식욕까지 없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과 게임을 접속한 ‘포켓몬고’ 열풍은 즐겁기 그지없다. ‘증강현실(AR)’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가득 찬 분위기다. 무엇보다 포켓몬고는 게이머들을 은둔의 골방에서 해방시켰다. 몬스터를 잡고, 부화시키려면 하루에 몇 km씩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피트니스 게임’으로 불린다.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외신 보도도 들린다. 한 게이머는 “어머니가 20년 동안 내가 밖에서 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는데, 포켓몬고는 이걸 하루 만에 해냈다”며 놀라워했다. 포켓몬고는 관광산업도 크게 바꾸고 있다. 포켓몬고를 즐길 수 있는 속초, 울릉도는 지역경제가 들썩일 정도다. 독도에서도 한국인이 첫 포켓몬 체육관을 개설했다는 인증샷이 올라왔다. 영화 ‘반지의 제왕’ ‘아바타’의 촬영지로 유명한 뉴질랜드는 호빗 마을에서 피카추 잡기, 눈 덮인 산에서 아이스몬 잡기를 관광상품으로 내놓았다. 게임은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심리학, 사회학 등 각종 학문과 신화, 스토리 등의 콘텐츠가 결합된 상업적인 예술작품이다. 구글맵에 몬스터를 뿌려 하루아침에 전 세계를 사냥터로 만들어버린 포켓몬고야말로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다. 그러나 포켓몬고가 히트하자 국내에서는 “우리는 왜 ‘한국형 포켓몬고’를 먼저 만들지 못했느냐”는 질타가 거세다. 알파고가 충격을 던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형 알파고’를 만든다며 AI 육성 예산안을 부랴부랴 만들더니, 이번에도 국산 캐릭터를 이용한 ‘뽀로로고’ 개발 계획이 발표됐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게임산업을 진흥시키겠다며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제한을 4년 만에 풀겠다고 나섰다. 이처럼 우리는 늘 유행에 따라 구호만 앞선다. 정부는 최근 국가 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발표했다. 그러나 ‘다이내믹 코리아’ ‘코리아 스파클링’ ‘창조경제’ ‘하이 서울’ ‘I·Seoul·U’까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브랜드가 난무해 혼란을 가중시킨다. 마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같은 정권 슬로건처럼 여겨진다. 이러니 국내 최대 굴지의 게임회사인 넥슨이 창조적 게임 개발보다는 권력에 줄을 대는 게임에만 골몰하지 않았을까. 한국도 AI, AR, 가상현실(VR)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포켓몬과 같은 ‘킬러 콘텐츠’의 부족이다. 강력한 콘텐츠는 장기간의 지식재산권(IP) 육성에서 나온다. 비디오 게임으로도 성공한 적이 없는 뽀로로 캐릭터를 서둘러 AR 게임으로 내놓았다가는 졸속 복제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패스트 팔로어’ 전략과 조급하게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번 주말 포켓몬고의 공식 서비스를 앞두고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과 같은 관광 명소, 박물관 등지에서 포획한 포켓몬 인증샷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판, 영국판 포켓몬고’를 만들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도 포켓몬고가 나오면 그냥 즐기자. 지루한 자책은 이제 그만, 설익은 ‘한국형 포켓몬고’도 더 이상 필요 없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정부가 게임산업 진흥을 위해 청소년들의 심야시간대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18일 오전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등이 참여하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청소년보호법에 규정돼 있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게임 마이스터고 설립 등을 골자로 한 ‘게임문화 진흥계획안’을 심의 의결했다. 문체부가 보고한 이번 안에 따라 2012년부터 여가부가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심야시간대(자정∼오전 6시)에 인터넷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4년 만에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체부는 그 대신 부모가 청소년 자녀의 게임 이용을 요청하면 게임 접속 제한을 풀어주는 ‘부모 선택제’로 바꾸기로 했다. 부모 선택제가 시행되면 16세 미만의 청소년이라도 부모의 허락 절차를 거쳐 당국에 신청하면 미성년자의 ID로도 심야시간대에 온라인 게임에 접속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성희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은 “부모 선택제의 세부적인 신청 절차는 현재 여가부와 함께 논의 중”이라며 “그러나 심야시간대 청소년의 PC방 출입은 또 다른 법안에 따른 규제이기 때문에 당장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와 여가부는 막판 협상을 거친 후 20대 국회에서 부모 선택제를 내용으로 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도 과도한 게임 몰입에 대한 사회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시류에 따라 국가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청소년 보호 단체들은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건강을 지키는 수면권을 보장해 주고, 게임으로 인한 부모와 아이들 간 갈등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실태 조사를 한국경제연구원이 종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제도 시행 이후 게임 과몰입군의 비중은 전년(2.50%) 대비 67% 줄어든 0.82%로 낮아졌다. 과몰입위험군 비중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였다. 헌법재판소도 2014년 셧다운제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소송에서 “청소년들의 높은 인터넷 게임 이용률과 게임 과몰입에 따른 부정적 결과 등을 고려할 때 과도한 규제라고 보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윤태용 문체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이번 진흥계획안에 대해 “포켓몬 고, 알파고 열풍에서 보듯 게임은 디지털시대의 보편적 여가문화이자 주요한 콘텐츠 산업”이라며 “‘게임은 마약’이 아니라 ‘게임은 문화’로 보는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게임업계 측은 “셧다운제가 게임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켜 한국의 게임산업 발전을 크게 위축시켜 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희범 공교육 살리기 학부모연합 사무총장은 “게임산업 진흥과 청소년과 가정의 보호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포켓몬 고, 알파고와 같은 세계시장에 내놓을 게임을 개발하려면 콘텐츠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지 심야시간대 게임을 하는 청소년 유저를 늘린다고 해서 과연 가능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교육부총리를 지낸 황우여 전 의원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청소년 관련 법안은 ‘게임산업의 진흥’이라는 측면에서만 봐선 안 되며 청소년 보호와 교육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전문가들이 위험성을 인정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청소년 보호라는 국가적 임무를 부모의 선택에 떠넘기기보다는 국가가 법률로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학교 교육에도 게임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선 2019년까지 게임 관련 직업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게임 마이스터고가 설립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17∼2018년 게임 관련 맞춤형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초등학생의 방과후 학교, 중고교의 자유학기제·자율동아리활동과 연계해 게임을 활용한 창의성 교육 및 진로개발 프로그램을 확대할 예정이다.전승훈 raphy@donga.com·이지은 기자}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영국에서 두 번째 여성 총리 탄생이 유력시되고 있다. 영국 차기 총리를 정하는 보수당 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59·사진)이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올랐다. 모두 5명의 후보가 출마한 5일 경선에서 메이 장관은 총 329표 중 과반수인 165표를 얻었다. 이어 ‘EU 탈퇴파’ 여성 후보인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차관(53)이 66표로 2위를 차지했다. 이 구도대로라면 최종 후보 2명 모두 여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메이 장관은 1차 투표 후 “당과 나라를 통합하고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에서 최선의 합의를 얻어 모든 사람을 위한 영국을 만들어야 하는 커다란 임무가 있다”며 “세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메이 장관은 지난달 23일 치러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에서 ‘EU 잔류’를 지지했지만 적극적으로 투표 운동에 나서진 않았다. 메이 장관은 경쟁 후보들이 ‘신속한 EU 탈퇴’와 ‘이민 통제’를 내세우며 영국의 고립주의 우려를 키우는 것과 달리 EU 탈퇴 속도 조절과 균형론을 내세워 불안감을 잠재우는 리더십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연내에 EU 회원국의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해선 안 되며 사전에 충분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메이 장관은 옥스퍼드대(지리학과)에 다니던 시절 보수당원으로 활동하다가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소개로 지금의 남편인 필립 메이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영국지불교환협회에서 일하다 1997년 메이든헤드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인 2002∼2003년 보수당의 첫 여성 의장으로 활약했고 2010년부터 5년 넘게 내무장관직을 맡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치적 배신이 난무하는 영국 정계에서 메이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정치인”이라며 “시끌벅적하고 흥분하기 쉬운 공립학교 남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에서 침착하게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여교장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메이 장관을 지지하는 가이 오퍼먼 보수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메이는 강인하고, 친절하고, 성실하다. 때때로 지독하게 어려운 여자지만 최고의 총리가 될 것”이라고 올렸다. 독일 TV평론가인 볼프람 바이머는 “메이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초연하고 냉정한 태도로 일을 한다. 그러나 항상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남성들의 정치적 잿더미에서 여성들이 부상하고 있다”며 보수당뿐만 아니라 노동당에서도 여성 리더십이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의 불신임을 받은 제러미 코빈 당수의 후임으로 앤절라 이글 부당수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 린 우드 웨일스 민족당 대표 등 영국을 통치하는 지도자들이 모두 여성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벌일 영국 차기 총리를 뽑는 보수당 대표 경선이 두 여성 정치인의 맞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여성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영국의 보수당 의원 331명은 5일 대표 후보 5명을 놓고 1차 투표를 했다. 최저 득표자를 1명씩 걸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7일과 12일 추가로 투표를 해 최종 후보 2명을 정한다. 이후 당원 15만 명이 참여하는 우편투표를 통해 9월 8일 새 총리를 선출한다. 현재 보수당 내 의원들의 지지에서는 EU 잔류파에 속하는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59)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탈퇴파의 여성 후보인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차관(53)이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 두 후보는 영국의 EU 탈퇴 협상 속도를 놓고 맞서고 있다. 메이 장관은 “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EU 회원국의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조약 50조’를 연내 발동하지 않을 것이며 사전 협상을 충분히 한 다음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레드섬 차관은 “내가 총리가 되면 브렉시트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라며 “이르면 내년 봄 영국이 EU를 떠날 수 있는 ‘패스트 트랙(fast-track)’ 일정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남부 이스본에서 태어난 메이는 옥스퍼드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뒤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에 들어갔다. 이어 민간기업에서 금융컨설턴트로 12년간 일했으며 1997년 하원에 입성했다. 메이는 1998년 예비내각에 기용된 이래 교육, 교통, 문화미디어, 고용연금 담당과 원내총무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0년 보수당이 정권을 탈환한 후 내무장관에 기용된 이래 최장 내무장관직 재임 기록을 유지해 오고 있다. 워릭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레드섬 차관은 바클레이스은행과 자산운용회사 등 금융업계에서 25년간 일했다. 2010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13년 재무부의 경제담당 차관을 지낸 뒤 2015년 에너지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BBC 집계에 따르면 6일 현재 메이 장관은 전체 331명의 의원 중 115명을, 레드섬 차관은 40명을 지지 세력으로 확보했다. 이어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26명, 스티븐 크래브 고용연금장관 23명, 리엄 폭스 전 국방장관 9명 순이다. 118명의 의원은 아직 누구를 지지할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EU 탈퇴 캠페인을 이끌었다 최근 경선 불참을 선언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경선 하루 전인 4일 레드섬 차관 지지를 표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존슨의 레드섬 지지는 약속을 어기고 경선 출마를 발표한 고브 장관에 대한 보복이라고 전했다. 존슨은 측근인 고브 장관의 배신에 결국 총리 꿈을 접었다. 존슨의 지지를 받는 레드섬 차관이 2위로 올라설 경우 고브 장관이 최종 2인에 들어갈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다. 보수당 소속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메이 장관을 지지하고 있지만 결선투표가 두 여성 후보 대결로 갈 경우 팽팽한 대결이 예상된다. 의원 지지에선 메이가 압도적이지만 일반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레드섬에 대한 지지가 메이에 뒤지지 않는다. 실제로 보수당 지지 활동가들이 만든 웹사이트 ‘컨서버티브홈’이 4일 1214명을 조사한 결과 레드섬 지지율은 38%로 오히려 메이(37%)보다 앞섰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기업들의 ‘탈(脫)영국 러시’에 대응해 법인세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이 브렉시트 충격에서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20%인 법인세율을 15% 이하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영국이 법인세를 15% 수준으로 내리면 런던을 대체할 금융허브 중 하나로 꼽히는 아일랜드 더블린(12.5%)보다 약간 높아지게 된다. 더블린이 유럽에서 최저 법인세율을 내세워 기업들의 절세 안식처로 각광받는 것처럼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를 통해 브렉시트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25%다. 오즈번 장관은 법인세 인하 외에도 △중국발(發) 투자 유치 확대 △은행 대출 지원 확충 △잉글랜드 북부 지방 친기업화 투자 △영국 재정 신뢰도 개선 등 5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그는 다른 국가들과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며 중국을 방문해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플랜도 밝혔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은행 임원들의 ‘보너스 상한선’에 대한 EU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점도 글로벌 금융회사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법인세 인하는 세수 감소를 초래해 영국 국민들이 부담하는 소득세와 상속세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 찬성에 따른 재정 부담이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영국이 떠나려는 기업을 붙잡기 위해 법인세 인하라는 당근책을 검토하는 사이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 아일랜드 더블린 등 유럽 도시들은 브렉시트 이후 약화될 런던의 금융허브 지위를 뺏어 오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캠페인을 주도하며 영국의 차기 총리 ‘0순위’로 거론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52)이 지난달 30일 전격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국민투표 때 늘어놨던 ‘공약(公約)’들이 빈껍데기 ‘공약(空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존슨 전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동료들과 논의했고, 의회 여건을 고려해 내가 총리가 될 사람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선언은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49)이 경선 참여를 깜짝 발표한 지 9시간 만에 나왔다. 옥스퍼드대 시절부터 30년 친구이자 브렉시트 캠페인 동지로 총리 경선에 러닝메이트로 나서기로 한 고브 장관은 막판에 존슨 전 시장이 자질이 부족하다며 비판하고 등을 돌렸다. 영국 언론들은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처럼 고브 장관이 존슨 전 시장의 정면에서 칼을 찔렀다”고 표현했다. 고브 장관은 “EU 탈퇴가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이라고 주장해온 존슨 뒤에서 팀을 이뤄 돕기를 원했지만 그가 리더십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다. 고브 장관은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의 자유를 끝낼 것이다. 호주의 포인트 방식(일정한 점수를 쌓아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음)의 제도를 도입해 이민자 수를 낮출 것”이라고 공약했다. 존슨 전 시장이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남발했던 ‘장밋빛 포퓰리즘’이 ‘대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나자 보수당 내에서도 ‘보리스 빼곤 다 좋다(Anyone but Boris)’란 말이 나왔다. 그는 이민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공약과 EU에 지출했던 주당 3억5000만 파운드(약 5330억 원)의 분담금을 국민보건서비스(NHS)로 돌리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최근 일간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독립 영국의 비전’이란 칼럼에선 ‘영국이 EU를 탈퇴한 뒤 EU 회원국 국민의 영국 이주를 제한하면서도 EU의 단일시장에 잔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EU 외교관들로부터 비웃음만 샀다. 보수당 원로 헤슬타인 경은 BBC에 출연해 존슨 전 시장이 “영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헌법적 위기를 불러왔으며 보수당을 찢어놓은 인물”이라며 “마치 병사를 전쟁터에 진군시켜 놓고 전쟁터를 떠난 치욕스러운 장군과 같다”고 비판했다. 존슨 전 시장은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59)에게 자신이 이번 보수당 당수 후보에서 사퇴하는 대신 2020년 경선에서는 자신에게 총리직을 양보해달라며 뒷거래를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았다고 더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존슨 전 시장의 낙마로 ‘제2의 마거릿 대처’ ‘영국의 메르켈’로 불리며 영국인들의 신임을 얻어 온 메이 장관이 유력한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영국 여성 총리를 노리는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를 반대했지만 지난달 30일 출마를 선언하면서 “재투표는 없다”며 국민의 뜻인 브렉시트를 진행할 뜻을 밝혔다.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뜻한다”며 “국민이 결정을 내렸다. EU 잔류를 위한 시도는 없어야 하고, 뒷문을 통해 재가입하려는 시도도 없어야 한다. 제2의 국민투표도 없다”고 일축했다. 고브 장관, 메이 장관에 이어 리엄 폭스 전 국방장관(54), 스티븐 크랩 고용연금장관(43), 앤드리아 리드섬 에너지부 차관(53) 등 모두 5명의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고 총리 자리를 놓고 경합하고 있다. 이 중 고브 장관, 폭스 전 장관, 리드섬 차관 등 3명은 EU 탈퇴 운동에 적극 나섰던 후보들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3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서 지역별 최고의 찬성률(61.3%)로 탈퇴를 지지했던 잉글랜드 북동부 공업도시 선덜랜드. 원했던 ‘EU 탈퇴’를 손에 쥐었지만 개표 후 일주일도 안 돼 주민들 사이에서 후회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 보도했다. 일본 자동차회사 닛산이 브렉시트로 인해 선덜랜드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닛산은 선덜랜드에 영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 공장을 두고 생산 차량(연간 47만6589대)의 55%를 EU 회원국들에 수출하고 있다. 닛산이 38억5000만 파운드(약 5조9721억 원)를 투자한 이 공장은 7000여 명의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 닛산이 철수할 경우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선덜랜드 주민들은 브렉시트가 가결되더라도 닛산이 철수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탈퇴 쪽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한다면 다른 EU 회원국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불가능해 닛산으로선 영국 철수 또는 대규모 인원 감축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닛산 공장에서 근무하는 30대 남성 스티븐 씨는 “안 그래도 정리해고의 두려움에 떨고 있던 공장 인부들 사이에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졌다”며 “지난 국민투표에서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결정을 후회하는 이른바 ‘리그렉시트(Regrexit)’ 여론이 영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후회(Regret)’와 ‘브렉시트(Brexit)’를 합친 신조어다. 특히 청년층에서 후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은데 노년층이 우리의 미래를 함부로 결정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시위대의 맹렬한 분노는 정치인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EU 탈퇴 캠페인을 이끈 정치인들이 국민투표 이후 말 바꾸기를 하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앨릭스 샐먼드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제1장관은 28일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때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670쪽짜리 공약집을 준비했다”며 “그런데 브렉시트 진영은 국민투표 후 어떤 계획도 없이 정쟁에만 몰두했다”고 비판했다. 유럽 금융의 허브인 ‘시티오브런던’에 본사를 둔 은행과 투자회사들은 엑소더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엔 영국 내 금융사들이 예전처럼 EU 국가 고객들에게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팔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28일 EU 정상회의가 열린 브뤼셀에서 “영국은 앞으로 유로화 거래 청산(clearing)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CNN머니는 28일 프랑크푸르트, 룩셈부르크, 파리, 더블린, 베를린, 암스테르담, 에든버러 등 EU 역내 7개 도시가 새로운 세계 금융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향후 투자 전망도 깜깜하다. 영국의 관리자협회가 최근 회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분의 1 이상이 브렉시트 때문에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응답자의 4분의 1은 영국에서 신규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답했고, 22%는 일부 사업을 영국 이외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27, 28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3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영국이 경기 침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29일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닷새 만인 28일(현지 시간) 영국에선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하는 ‘리그렉시트(Regrexit·후회를 뜻하는 regret와 exit의 합성어)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연일 급락하고, 글로벌 기업들의 ‘영국 엑소더스(대탈출)’ 움직임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브렉시트 캠페인을 이끈 정치인들은 ‘장밋빛 공약’에 대한 말 바꾸기로 난타를 당하고 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국민투표 가결을 위한 선동에만 몰두했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선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경제적 독립’을 내세워 신(新)고립주의 무역정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최근 트럼프의 상승세가 주춤하고는 있지만 미국 역시 백인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불만이 팽배해 있어 연말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긴 쉽지 않다.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브렉시트의 한국판’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극화 심화에 따른 불만과 분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세대의 생존 불안 등 각종 사회 갈등 요인이 대선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국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공약 경쟁으로 치닫거나 국가 명운과 관련된 안보 현안을 놓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편 가르기 공약이 판을 치고 유권자들이 이에 현혹돼 그릇된 선택을 할 경우 브렉시트 못지않은 ‘코렉시트(Korexit·Korea와 exit의 합성어)’의 길로 빠져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2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13년 말 ‘안녕들하십니까’와 같은 대자보 한 장에 사회 전체가 동요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취약하다”며 “내년 대선은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로 극대화될 수 있는 시점”이라고 우려했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브렉시트는 정치인들이 국가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포퓰리즘 선동을 통해 자신들의 단기적 이해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의 광풍’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그렉시트는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 선동과 편 가르기로 공멸할 것인지, 희생과 통합으로 재도약에 나설 것인지를 묻고 있는 셈이다.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 /세종=손영일 기자}
영국 내에서 브렉시트 결정을 후회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가운데 재투표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진행할 브렉시트 협상의 내용과 일정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28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막한 EU 정상회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의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처음 열리는 것으로 영국의 EU 탈퇴 협상 문제를 집중 논의한다. 현직 각료인 제러미 헌트 영국 보건장관은 27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탈퇴를 위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곧바로 발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민자를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국경통제권을 놓고 EU와 새로운 협상이 보장된다면 재국민투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영국해협을 오가는 자유통행 규정에 관한 합리적인 타협과 함께 단일 시장에의 완전한 접근권을 주는 ‘노르웨이플러스’ 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유명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크먼은 브렉시트가 실제 벌어질 경우 영국과 EU 모두에 큰 피해가 예상돼 양측이 재투표에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래크먼은 덴마크와 아일랜드 역시 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거부했다가 EU로부터 양보를 얻어낸 뒤 재투표에서 가입조약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CNN,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브렉시트에서 다시 ‘탈출(exit)’하는 방법으로는 △영국 정부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지 않아 EU와 협상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방안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 의회가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안 △조기총선 공약에 국민투표 결과를 포함시켜 총선에서 재심판을 받는 방안 등이 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지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영국이 EU 탈퇴 협상 개시를 머뭇거리면서 ‘시간 끌기’ 작전을 펼치자 EU 중심국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 정상이 27일 베를린에 모여 “영국이 탈퇴신청서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협상도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28일 EU 정상회의 개막을 수시간 앞두고 “영국은 조속히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영국이 공식적으로 EU를 떠나고 싶다고 통보해 올 때까지 어떠한 비공식 비밀 협상도 금지한다”고 못 박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7일 하원 연설에서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없다”며 “결정 이행 과정은 시작돼야 한다”며 재투표 불가 입장을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이 자리에서 EU 탈퇴 후속 절차를 진행할 새로운 정부 부처를 만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당초 10월로 알려졌던 영국의 EU 탈퇴 협상 개시는 9월 초로 한 달가량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가 10월 사임 발표와 함께 탈퇴 협상 개시 결정권을 후임 총리에게 넘기겠다고 밝힌 이후 EU 국가들이 “신속하게 협상을 개시하라”고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영국에서도 새 총리 인선 시기가 9월 초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브렉시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27일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EU 지도자들에게 책임 있고 전략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케리 장관은 “침착하지 못하거나 보복적인 전제를 깔고 일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케리 장관은 영국 런던으로 이동해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굳건한 미국과 영국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EU 의장국인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 의회 답변에서 “영국이 EU를 빨리 떠나도록 강요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영국에 시간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이혼 절차(divorce process)’를 논의하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영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줄줄이 낮췄다. 28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EU 정상회의에서 대면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EU 27개국 정상들은 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언제 시작하느냐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7일 영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두 계단 낮췄다. S&P는 성명에서 “(브렉시트로) 영국 정부의 재정 능력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도 이날 영국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계단 낮췄다. 브렉시트 논의를 위한 EU 정상회의 참석차 브뤼셀을 방문한 캐머런 총리는 28일 첫날 만찬 연설을 통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혼란상과 향후 대책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탈퇴 협상 개시 시기를 밝히라’는 EU 정상들의 요구에는 “(영국의 EU 탈퇴를 공식 선언하는) 리스본조약 50조 발동은 후임 총리가 결정할 일”이라고 맞섰다. 영국은 EU 탈퇴 협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EU와의 비공식 협상을 통해 포괄적 자유무역협정(FTA)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반면 EU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8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사전협상도, 어떤 예외특권도 (영국에) 허용해 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어 향후 영국과의 탈퇴 협상에서 좋은 것만 골라 취하려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원칙은 배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내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재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재투표 요구 청원서에 서명한 사람이 390만 명을 넘어섰고, 27일에는 제러미 헌트 영국 보건장관이 “공식 탈퇴서를 내기 전에 우선 EU와 협상을 한 후 그 결과를 두고 다시 국민투표를 하거나 총선 공약 형식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투표 번복은 없다”며 재투표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 정상들이 ‘포스트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대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을 응징하려는 일부 회원국의 자제를 당부하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합을 향해 달려온 ‘EU호(號)’에 균열을 남긴 영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감정이 앞서지만 지금은 브렉시트 충격을 최소화하고 사태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에서다. 당장 28,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28개 회원국 정상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를 비롯한 강성 회원국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에도 EU 탈퇴 협상 개시를 머뭇거리고 있는 영국을 성토하고 있다. 10월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정상회의에 참석하지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는 28일 만찬에서 다른 국가 정상들로부터 영국을 EU 탈퇴로 몰고 간 책임을 추궁당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 둘째 날인 29일에는 캐머런 총리를 제외한 27개국 정상이 모여 영국과의 ‘이혼 절차’를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를 갖는다. 회의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참석해 세계적인 브렉시트 충격 최소화 및 유럽-미국 간 공조 등 대응 방침을 논의한다. 당초 케리 장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논의를 위해 이탈리아 로마를 찾으려 했으나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브렉시트 해법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EU의 삼두마차 중 하나였던 영국의 이탈 이후 더욱 무거운 짐을 지게 된 독일과 프랑스는 모든 회원국 정상이 총출동하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견 해소에 나섰다. 메르켈 총리는 26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한 데 이어 27일 베를린에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까지 포함한 독-프-이 3국 정상회의를 갖고 브렉시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 협상 개시 시한에 대해서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25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 등 EU 대표들은 “영국은 조속히 떠나라”며 신속한 협상을 촉구했다. 영국의 신속한 EU 탈퇴에 대해선 프랑스가 가장 강경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은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영국과 유럽 금융시장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며 “가능한 한 빨리 투명한 절차를 통해 탈퇴 협상이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의 EU 탈퇴를 특별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즉각적인 이탈을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르켈 총리가 독일 산업계의 요구를 주의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독일의 대(對)영국 수출은 830억 달러(약 97조1100억 원)로 영국의 대독일 수출 규모의 두 배에 가깝다. 독일 산업계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더라도 별도의 무역협상을 통해 관대한 조건의 파트너십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 정상이 26일(현지 시간) 전화 회담을 하고 영국에 EU 탈퇴 협상 일정을 명백하게 밝힐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로 했다. 프랑스 엘리제궁(대통령 집무실)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30분간 통화를 통해 “브렉시트 후속 조치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다”며 “불확실성을 피하고 최선의 투명함을 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어 27일에도 독일 베를린에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만나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EU는 내부 결속 차원에서 “영국은 당장 나가라”며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브렉시트를 무위로 돌리겠다면 받아들이겠다는 ‘화전양면(和戰兩面)’책을 구사하고 있다. 28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는 EU 28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는 영국의 EU 탈퇴 협상 일정을 논의하고 ‘도미노 이탈’을 막기 위한 EU 개혁안의 방향이 결정된다. EU 정상회의에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참여할 예정이다. EU는 영국과 브렉시트 관련 비공식 협상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에 명확한 책임을 묻고 압박하기 위해서다. 키를 쥔 메르켈 총리는 27일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일을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이 문제를 장시간 미해결의 현안으로 놔두는 것은 양쪽 경제의 이익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U 정상들이 브렉시트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영국에서는 국민투표 재검토 요구가 빗발쳤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는 국민투표 결과를 무효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의회 청원에는 사흘 만에 35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 이런 가운데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심각한 분열상을 보였던 영국 보수당의 원로들은 27일 총리 선출을 위한 경선 일정 논의를 시작했다. 당론으로 잔류를 밀었음에도 브렉시트 저지에 실패한 제1야당 노동당 역시 제러미 코빈 대표의 리더십에 반대하는 노동당 예비내각 11명이 이날 한꺼번에 자진 사임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이 주요 회원국인 영국 탈퇴(브렉시트)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신속하게 체제 정비에 착수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통과 이후 EU 지도부와 주요국들은 영국에 대해 “10월까지 탈퇴 협상을 기다리지 말고 EU를 빨리 떠나라”고 촉구했다. EU 창설을 주도했던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6개국 외교장관들은 “브렉시트로 생긴 금융 혼란과 정치적 불안정이 장기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도 “영국이 보수당 내 파벌 싸움에 유럽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난하며 조속히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EU는 다음 달 1일까지 영국 없는 EU 체제를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해 ‘운명의 1주일’ 동안 릴레이 회의를 연다. 가장 주목받는 회의는 28, 29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참석하는 EU 정상회의다. EU는 첫 탈퇴국인 영국에 대해 ‘본때’를 보이겠다며 벼르고 있다. 아울러 각국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유연화 개혁을 통해 브렉시트가 방아쇠를 당긴 ‘이탈 도미노’를 사전에 차단하기로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EU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강화뿐만 아니라 치안과 국방, 이민자들에 대한 국경 단속,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우리는 EU를 좀 더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 없이도 EU는 견딜 수 있다”며 EU가 외연을 확장하는 ‘더 많은 유럽’보다 개혁 조치를 동반한 ‘단단한 유럽’으로 향해 나아갈 뜻을 분명히 했다. 영국인들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재투표를 요구하는 의회 청원에 30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 영국 하원은 10만 명 이상이 서명한 안건에 대해 논의 여부를 검토해야 하지만 캐머런 총리가 재투표는 없다고 못 박아 재투표 가능성은 높지 않다. 런던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EU에 합류해야 한다’는 청원에 16만1200여 명이 서명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지금처럼 투표 결과를 되돌릴 마법을 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슬로바키아의 극우 정당이 ‘슬렉시트’ 투표를 주창하고 나선 것을 비롯해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에서 분열 움직임이 거세다. 영국도 350년 만에 ‘리틀 잉글랜드’로 전락할 위기에 빠졌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EU에 남기 위한 즉각적인 협상 개시를 추구할 것이며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재실시를 위한 조치도 취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함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이 주도했던 전후 세계 질서에 균열이 가고 ‘신(新)고립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사설에서 “EU는 패배했다. 안으로 약해졌으며 밖으로도 쇠퇴하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논평했다. 런던=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 유권자들이 23일(현지 시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서 전 세계 지도자와 동맹국의 잔류 바람을 저버리고 EU와의 결별을 선택했다. 영국이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의 일이다. 갑작스러운 영국의 EU 탈퇴 결과에 전 세계 증시가 요동치는 등 충격이 전방위로 확산됐다. 잔류의 뜻을 이루지 못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전격적으로 사퇴를 선언했다. EU 내에서 국내총생산(GDP) 2위, 인구 3위인 영국이 ‘EU 탈퇴’라는 지도에도 없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면서 세계 질서에 대격변이 예상된다. 군사 강국이자 외교 강국인 영국을 놓친 EU도 나머지 27개 회원국이 동요하지 않도록 균열을 조기에 수습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제니 왓슨 영국 선거관리위원장은 24일 오전 “영국은 EU를 떠나기로 투표했다”고 선언했다. 이날 영국 382개 투표센터에서 개표를 완료한 결과 탈퇴가 51.9%, 잔류가 48.1%인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투표율은 1992년 총선 이후 가장 높은 72.2%였다. 국민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는 52∼54%가 잔류를 지지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탈퇴가 126만 표를 더 얻으며 승리했다. 특히 저소득층과 저교육층에서 탈퇴 의견이 쏟아져 이민자로 인한 일자리 상실 우려가 표심의 향방을 갈랐다. EU 잔류 진영을 이끌었던 캐머런 총리는 이날 오전 총리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월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은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고 EU 탈퇴 협상은 새 총리 아래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의 ‘10월 퇴진’ 발표로 영국의 EU 탈퇴 협상 개시는 상당 기간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아울러 누가 후임 총리가 될지도 관심사가 됐다. 탈퇴 진영을 이끌어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꼽히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이날 “전 세계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며 “EU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EU가 27개 회원국의 통합을 유지하는 한편 더 이상의 EU 탈퇴를 막겠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중 캐머런 영국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브렉시트 이후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EU 순회의장국인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총리 등 EU 고위 관계자들은 24일 긴급회의를 했다. EU 정상들은 28일 회담을 갖고 브렉시트 대책회의를 연다.런던=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 독립의 새로운 새벽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총을 쏘거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24일 오전 4시(현지 시간·한국 시간 24일 정오) 브렉시트 국민투표 ‘탈퇴(Leave)’ 캠페인 본부가 있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국회의사당) 밀뱅크타워.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가 “EU는 이제 끝났다. EU는 사망했다”고 말하자 지지자들이 “아웃! 아웃! 아웃!”을 외쳐댔다. 이날 아침까지 국회의사당 광장에 몰려든 탈퇴파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환호하며 “지긋지긋한 브뤼셀이여 안녕!”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환호했다. 반면 런던 템스 강 건너편 사우스뱅크의 로열페스티벌홀에 있는 ‘잔류(Remain)’ 캠페인 본부는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TV 스크린을 보고 있던 지지자들 중 일부는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머리를 감싸기도 했다. 잔류에 투표한 줄리어스 벨트람 씨(39·여)는 “EU를 떠난 영국이 앞으로 어디로 갈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당황해했다. 여론조사 예측은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했다. 잔류 진영은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 경제가 망가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에 맞서 탈퇴 진영은 이민자 통제와 영국 주권 회복을 외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투표 일주일 전인 16일 발생한 조 콕스 하원의원(잔류 지지) 피살 사건 이후로는 잔류 의견이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 보니 ‘콕스 효과’는 없었다. 결과는 콕스 의원이 염원했던 잔류와 통합이 아닌 ‘탈퇴’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막판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은 핵심 이슈는 ‘대량 이민’에 대한 통제권 확보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이번 국민투표는 지난 43년간 EU 단일시장과 자유무역에 대한 대가로 ‘자유로운 이동권’을 받아들였던 것에 대해 영국인들이 과연 행복했나를 묻는 투표가 됐다”고 지적했다. UKIP는 콕스 의원의 사망 직후 난민 행렬 사진에 ‘한계점(Breaking Point)’이라는 문구를 적은 포스터로 반(反)이민 정서를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탈퇴파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임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주택난까지 불러오고 있다며 이민자 이슈를 힘껏 부각시켰다. 40대 젊은 총리의 ‘위험한 도박’은 완전한 통합을 꿈꾸던 EU뿐만 아니라 영국 사회를 완전히 갈라놨다. 이번 국민투표는 지역별, 소득별, 교육 수준별, 연령별로 쪼개진 영국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선 지역별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탈퇴’가 각각 53.2%와 51.7%로 우세했고, 런던과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는 ‘잔류’가 많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체제에서 자유무역의 이점을 고스란히 누려온 런던 스코틀랜드 등 부유한 지역은 EU 단일시장 ‘잔류’를 지지한 반면 경제가 침체된 옛 산업지대인 북부와 중부 도시는 ‘탈퇴’로 기울었다”고 분석했다. 세대별로도 표심이 크게 갈렸다. 투표 직후 현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24세까지의 젊은층은 잔류 지지가 많았다. 하지만 65세 이상은 61%가 탈퇴를 지지했다. 가디언이 투표구별로 유권자들의 소득과 학력 수준을 분석한 결과 영국의 EU 탈퇴를 이끈 중심 세력은 저소득층과 저교육층이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주민이 35% 이상 있는 투표구의 주민은 거의 모두 잔류 성향을 보였다. 반면 고등교육을 받은 주민이 35% 미만인 투표구에서는 탈퇴 성향이 눈에 띄게 높았다. 잔류가 무려 75%에 육박한 런던의 금융가 ‘시티 오브 런던’ 투표구는 고등교육 주민의 비율이 70%에 육박했다. 소득을 보면 연봉 중간값이 2만5000파운드(약 4000만 원)를 넘어서는 투표구에서 잔류 성향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소득자 비율이 전국 최고인 웨스트민스터는 잔류가 69%를 차지한 반면 고소득자 비율이 가장 낮은 블랙풀은 탈퇴가 67.5%였다. 특히 청년실업이 33%에 이르고 가장 궁핍한 지역인 잉글랜드 동부의 표심이 투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영국의 EU 탈퇴는 지난 4개월간의 브렉시트 탈퇴 캠페인 때문이 아니라 영국 내에서 40년간 쌓여온 ‘유럽 회의주의’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하는 스코틀랜드의 투표율은 65.7%로 다른 지역보다 낮았다. 그러자 EU 잔류 진영인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집권당인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이 스코틀랜드 독립을 다시 추진하려는 속내로 국민투표 캠페인에 소극적이었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실제로 앨릭스 새먼드 전 SNP 대표는 “영국의 브렉시트로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 투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운명을 가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23일 오전 7시(한국 시간 23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됐다. 영국 전역에서 등록 유권자 4649만9537명이 참여하는 이번 국민투표는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부 일대에 천둥과 번개, 비바람을 동반한 악천후 속에 실시됐다. 국민투표는 지역에 따라 맑았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이날 오후 10시(한국 시간 24일 오전 6시)까지 이어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투표율이 낮으면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날씨가 투표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오전 7시 런던의 버킹엄 궁 인근에 있는 빅토리아 도서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우산을 든 유권자들이 긴 줄을 섰다. 개를 데리고 온 유권자도 많아 트위터에는 투표소의 반려견 사진이 속속 게시됐다. 유권자들은 투표소에서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EU를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 아래 적힌 ‘잔류(Remain)’와 ‘탈퇴(Leave)’ 단어 중 하나를 선택했다. 투표소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찬반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잔류’에 투표했다는 변호사 크리스토퍼 씨(30)는 “일자리를 원하는 젊은이들은 세계화 시대에 더 이상 ‘섬’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탈퇴’에 투표한 앤드루 마크 씨(36·자산관리 회계사)는 “EU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연합”이라고 밝혔다. 투표 당일까지 현지 언론의 반응도 엇갈렸다. ‘탈퇴’를 옹호하는 더선은 1면에 지구 저편에서 동이 트며 영국이 환하게 빛나는 이미지와 함께 영화 ‘인디펜던스데이’를 패러디한 ‘독립기념일: 영국의 재기’라는 문구를 달았다. 반면 더타임스는 ‘청산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EU 잔류를 옹호했다. 개표는 투표 마감 이후 곧바로 진행돼 이르면 24일 오전 3시(한국 시간 24일 오전 11시)쯤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초박빙’일 경우엔 개표가 끝나는 24일 오전 7시(한국 시간 24일 오후 3시)나 돼야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브렉시트 여론은 막판까지 ‘대혼전’이다. 여론 조사 결과들은 막판까지도 살얼음 판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브렉시트땐 파운드화 폭락 불보듯” 英 환전소 북적… 환전액 74% 급증 ▼투표 당일인 23일 영국 석간신문인 이브닝스탠더드가 여론조사회사 입소스 모리에 의뢰해 발표한 조사에서 잔류 지지자(52%)가 탈퇴(48%)보다 4%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21일부터 투표 전날인 22일 오후 9시까지 조사한 것이다. 또한 22일 유고브가 발표한 여론조사(더타임스 의뢰)에서도 잔류가 2%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같은 날 오피니엄 온라인 조사와 TNS 온라인 조사에선 탈퇴가 잔류보다 각각 1%포인트, 2%포인트 앞섰다. 영국의 EU 잔류와 탈퇴를 놓고 유권자들의 표심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부동층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기관의 예측이 적중할지는 미지수다.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와 지난해 총선에서 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베팅업체들은 부동층에 주목하며 잔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10% 정도의 부동층은 일반적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탈퇴보다는 잔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되자 일부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 때 파운드화 폭락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파운드화를 유로화나 달러화로 바꿨다. 영국 우체국의 경우 21일 환전액이 지난해 같은 날보다 74% 늘었다. 워털루의 국제 환전거래소에서 일하는 대니얼 프리오리 씨는 “평소보다 많은 손님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사람들이 투표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파운드화 가치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22일 오후 5시 28분 기준으로 파운드화 환율은 전날보다 0.9% 급등한 파운드당 1.4844달러였다. 이는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행여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파운드화 환율은 파운드당 1.35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2일 오후 버밍엄대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일자리, 경제, 아이들의 미래, 나라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자”며 잔류 지지를 호소했다. 반면 대표적인 브렉시트 찬성파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이날 오전 4시부터 헬리콥터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리가 민주주의와 이민정책에 대한 주권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라며 탈퇴에 표를 던질 것을 요구했다. 영국 주변 EU 국가 정상들은 “이번에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며 최후통첩을 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영국 유권자들은 국민투표 이후에 어떠한 형태의 재협상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EU에서 나가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말했다. 런던=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이틀 전인 21일 0시 무렵에 찾아간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시티 오브 런던은 하루 2조 달러(약 2300조 원) 규모의 유로화가 거래되는 세계 최대 유로화 거래시장이다. 탈퇴로 결론이 난다면 유럽 금융의 허브로 불리는 이곳에는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금융권 위상도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클래식한 석조 건물과 최신식 유리 건물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티 오브 런던은 자정이 다 됐는데도 대부분의 금융회사 건물이 불을 환하게 켜고 있었다. 넓이가 1.12제곱마일(약 2.9km²)에 불과한 시티 오브 런던에 영국 중앙은행(잉글랜드은행)을 비롯해 로열증권거래소, 스코틀랜드왕립은행, HSBC, JP모건, 도이체방크, 로이드보험그룹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몰려 있다. 국민투표 당일인 23일부터 24일 새벽까지는 직원들이 회사와 호텔방에서 대규모 철야근무 계획을 세웠다. 런던 지하철 ‘뱅크역’에서 만난 외환거래 트레이더 앤서니 씨(36)는 “브렉시트가 결정될 경우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 아시아의 외환시장에서 어마어마한 돈이 이동할 것에 대비한 전략을 짜기 위해 컨설팅팀들이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 탈퇴파 “독립기념일 될것”… 잔류파 “反난민 증오 프로젝트” ▼도이체방크 채권팀의 한국계 직원인 이용락 씨도 “영국에서 브렉시트에 가장 우려하고 있는 지역이 시티의 금융권”이라며 “조 콕스 의원 피살사건 이후 잔류 의견이 높아졌지만 박빙의 승부에서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어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 금융회사 스프레덱스트레이딩그룹의 애널리스트인 코너 캠벨은 “23일 국민투표 결과가 어떤 쪽으로 나더라도 트레이더들에겐 가장 바쁜 날이 될 것”이라며 “만일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피바다가 된 주식시장을 걸레로 닦아내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만일 EU에 잔류하더라도 그동안 빠져나갔던 투자자가 한꺼번에 들이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시티 오브 런던에 있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업 활동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EU 국가로 옮기겠다고 공공연하게 경고해왔다. JP모건체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다이먼은 “브렉시트가 될 경우 영국에서 일하는 1만6000명의 직원 중 4분의 1(약 4000명)을 다른 EU 국가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HSBC도 브렉시트가 될 경우 직원 1000명을 프랑스 파리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23일 오전 7시(한국 시간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같은 날 오후 10시에 마감되는 이번 투표의 결과는 개표를 거쳐 24일 오전 7시(한국 시간 오후 3시)경 발표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탈퇴(45%)와 잔류(44%)는 불과 1%포인트 차다. 투표일이 임박해서도 초박빙 판세가 지속되면서 누가 웃고 울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브렉시트 찬반 진영은 막판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1일 집무실 앞에서 예정에 없던 긴급 연설을 자청해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했다. 캐머런 총리는 “여러분의 자녀와 손주들의 희망과 꿈을 생각해 달라”며 “탈퇴를 선택한다면 되돌릴 수 없다. 영원히 유럽을 떠나 다음 세대는 그 결과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EU 탈퇴 주요 지지층인 장·노년층을 겨냥한 발언이다. EU 탈퇴 진영은 선거 기간 동안 고위급 정부 관료가 공적인 자리를 이용해 특정 진영에 유리한 발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을 총리가 어겼다며 비난했다. 21일 저녁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BBC 주최 브렉시트 찬반 토론은 방청객 6000여 명이 몰려들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전·현직 런던 시장을 포함한 찬반 진영 패널 6명은 각각 탈퇴해야 하는 이유와 잔류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며 격돌했다. 탈퇴 진영을 이끄는 보수당 출신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브렉시트가 확정된다면 그날은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존슨 전 시장은 특히 “지난해 EU로부터 유입된 이민자가 18만4000명이고 그중 일자리 제안도 없이 들어오는 사람이 7만7000명이라고 한다면 명백히 통제를 되찾아야 할 때”라고 이민 문제를 부각했다. 이에 노동당 출신 사디크 칸 현 런던 시장은 존슨 전 시장의 ‘난민 위협’을 내세운 브렉시트 캠페인을 “증오 프로젝트”라 불렀다. 그는 “존슨 전 시장이 이민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면서 터키가 곧 EU에 가입할 거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탈퇴 진영(39%)이 잔류 진영(34%)보다 더 토론을 잘했다고 답했다.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21일 오전(현지 시간) 의회 민주주의 발상지로 자부하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국회의사당) 인근 의회광장. 16일 극우주의자의 손에 피살된 조 콕스 하원의원(42·노동당)의 미소 띤 사진 한 장이 꽃다발에 둘러싸인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놓고 영국이 찬성과 반대로 양분됐지만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정치적 주장을 잠시 접은 채 기도하고 촛불을 켰다. 초등학생들을 인솔해 온 교사 루크 씨는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하루 전 이곳 의사당에선 여야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콕스 의원을 추모하는 특별회기를 열었다. 하원 의원석은 가득 찼으나 주인을 잃은 한 자리만 비었다.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그녀를 살해한 증오에 맞서 오늘 그리고 영원히 단합하자”고 강조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증오와 분열을 자극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영국 시민들은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23일 실시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영국 사회에 ‘증오의 먹구름’을 몰고 온 것이다. 이날 런던 시내를 둘러보니 아파트 발코니의 유리창에 ‘탈퇴(Leave)’ 또는 ‘잔류(Remain)’ 구호가 걸려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외신들은 이를 ‘발코니 전쟁’으로 표현했다. 한 주민은 ‘떠나는 데 한 표를(Vote Leave)’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고, 바로 옆집 주인은 ‘만일 당신이 노동자의 권리를 깎아내리고 싶다면(…if you want to cut workers‘ rights)’이라는 현수막으로 잔류 지지 의사를 밝혔다. ▼ 50代 “EU는 규제 많아” 20代 “탈퇴 땐 자유이동 제약” ▼브렉시트 찬성과 반대 진영은 이날 부동층을 잡기 위해 시내 곳곳에서 홍보물을 나눠 주며 총력전을 펼쳤다. 공무원인 앤드루 길츠 씨(50)는 기자를 붙잡고 “EU는 규제가 너무 많다”며 “영국 경제를 좀먹는 이민 문제도 EU 탈퇴를 원하는 이유”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러나 정보기술(IT) 업종에 종사하는 숀 씨(22)는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EU 잔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한다면 자유롭게 다른 나라를 오가는 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세대도 갈라놓았다. 소득, 학력 수준, 지지 정당보다 브렉시트 의견이 명확하게 갈라지는 건 바로 청장년층과 중년층이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달 18일 조사한 결과 18∼24세, 25∼34세 청년층은 각각 86%, 78%가 ‘EU 잔류’를 지지한 반면 55∼64세, 65세 이상은 각각 51%, 72%가 ‘탈퇴’에 찬성했다. 노령층이 탈퇴를 지지하는 이유는 이민자 증가 때문에 은퇴 후 연금 수령에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청장년층은 영국의 실업률(5%대)과 성장률(2%대)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선방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만약 EU 탈퇴로 경제 혼란이 가중되면 그나마 확보해 놓은 경제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이 적지 않다. 양분된 여론에 신이 난 건 베팅업체다. 가디언은 20일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영국 정치 이벤트 사상 최다 판돈을 끌어모은 종목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최대의 베팅업체 베트페어에 따르면 지금까지 베팅 금액만 무려 4050만 파운드(약 690억 원)에 이른다. 막판 표심은 잔류 쪽에 무게추가 좀 더 실리는 분위기다. EU 탈퇴 이후 경제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잔류를 외치다 숨진 콕스 의원에 대한 동정 여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기관 ORB가 20일 발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적극 투표층의 경우 잔류가 53%로, 탈퇴(46%)에 7%포인트 앞섰다. 13일 같은 조사에서는 탈퇴가 49%로 잔류보다 1%포인트 앞섰었다. 사회연구조사기관 냇센이 20일 발표한 온라인과 전화 여론조사 결과도 잔류가 53%로, 47%에 그친 탈퇴보다 6%포인트 높았다. 베트페어는 국민투표 결과가 EU 잔류로 나올 가능성을 75%까지 끌어올렸다. 이 같은 잔류 여론 상승에 힘입어 영국 파운드화는 런던 외환시장에서 사흘째 오름세다. 특히 20일 하루 사이 파운드화 가치가 2.4%나 급등했다. 이는 2008년 12월 이후 하루 상승폭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축구 영웅’ 데이비드 베컴과 ‘해리 포터’ 시리즈 작가 조앤 K 롤링이 브렉시트 반대 입장을 밝혀 잔류파에 힘을 실어 줬다. 베컴은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활기차고 접속된 세상에 살고 있다. 여기선 함께하면 강해진다”며 잔류 투표를 촉구했다. 하지만 21일 발표한 FT 여론조사에서는 EU 잔류와 탈퇴 응답이 44% 동률로 나왔고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타임스 의뢰로 조사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EU 탈퇴(44%)가 잔류(42%)를 앞서 섣부른 예측은 어려운 상황이다. 국립사회연구소의 수석연구원 존 커티스 씨는 FT에 “여론조사 결과들이 초박빙이라 한쪽이 우세를 보여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콕스 의원을 추모하는 기금이 100만 파운드(약 17억 원·20일 오후 8시 반경)를 넘어섰다. 3만5000명이 모금에 참여했다. 브렉시트 이후 다시 하나 된 영국을 만들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그 속에 숨어 있는 듯했다. 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