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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5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를 등재하기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김장문화는 이미 10월 24일 무형유산위 산하 심사소위에서 만장일치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등재가 확실시됐다. 무형유산위는 이날 회의에서 “한국인의 일상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은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연대감과 정체성, 소속감을 증대시킨 매개체”라며 “김장문화 등재는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식습관을 가진 다양한 세계 공동체들의 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한국인의 생활 유산인 김장문화가 등재돼 국제무대에서 한국문화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당초 한국이 신청했던 등재명은 최종 회의에서 약간 수정됐다. 기존 명칭에 ‘한국의(in the Republic of Korea)’라는 대목이 추가됐다. 현지에 파견 나간 박희웅 국제교류과장은 “김장이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김장문화의 등재 확정으로 모두 16건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등재된 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처용무 △가곡,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서정적 노래 △대목장 △매 사냥술, 인간문화유산 △줄타기 △택견 △한산모시 짜기 △아리랑이다. 한편 무형유산위에서는 31개가 최종 등재 신청 목록에 올랐다가 김장문화를 포함해 25개의 등재가 결정됐다. 중국이 신청했던 ‘중국의 주산, 주판셈 지식 및 활용’과 일본이 제출한 ‘와쇼쿠(和食), 일본의 전통 식문화’도 등재가 확정됐다. 이번에 등재된 또 다른 먹거리 문화로는 조지아의 ‘고대 조지아 전통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과 터키의 ‘터키 커피 문화와 전통’이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화재청은 올해 은관문화훈장 서훈자로 이강백 강릉선교장 관장(65)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윤세영 중앙문화재연구원 이사(80)는 보관문화훈장, 고 조창수 전 미국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 학예관은 옥관문화훈장 서훈자로 뽑혔다. 또 제10회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수상자는 보존·관리 부문에서 한병문 중요무형문화재 장도장(粧刀匠) 명예보유자(74)와 홍성표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76), 봉사·활용 부문에서 김종서 한국방송 PD(43)와 해반문화사랑회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1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흙을 달아 흙삼이냐, 돌을 달아 돌삼이냐, 바람 따라 들어오는 바람삼이냐. 인간이 몰라서 일을 저질러 삼이 섰으니, 떠오르는 일월성신(日月星辰)님 삼을 낫게 해 주시오.” 흔히 ‘눈에 삼이 섰다’고 말하는 삼은 눈에 희거나 붉은 좁쌀만 한 수포가 생기는 질환. 북한 포격의 상흔이 여전한 인천 옹진군 연평도는 이렇게 삼이 섰을 때 ‘당지기 할머니’를 찾아갔다고 한다. 여기서 당지기란 임경업 장군(1594∼1646)을 모시는 사당인 충민사(忠愍祠)를 돌보던 이를 일컫는다. 할머니는 새벽녘 환자가 해를 보고 서게 한 뒤 팥을 한 움큼 헝겊에 싸서 눈을 문지르며 이 가락을 흥얼거렸다. 그러고는 이 팥을 하나씩 물그릇에 떨어뜨리며 삼이 낫기를 빌었다. 민속학에서 ‘민속의료’는 흥미로운 주제다. 전통사회 구성원들이 이어온 예방 및 치료체계는 당대의 생활상을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현대의학도 놀랄 정도로 적확한 치료법이 있는가 하면 황당한 주술요법에도 그 시대의 사회적 함의가 담겨 있다. 최근 김형우 안양대 교수와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을 포함해 5명이 공동 연구해 발표한 ‘서해 5도 민속의료 현황과 지역적 특성’은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에 전승된 민간의술을 통해 현지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포착했다. 연평도의 삼 퇴치법도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햇빛의 정화작용과 팥의 소염작용을 이용하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겼다. 한때 연평도에 머물렀던 임경업 장군의 위엄을 빌려 마음의 안식을 주는 효과도 얻었다. 섬에서만 전해지는 민간요법은 이뿐이 아니었다. 방광염이나 요도염으로 오줌이 자주 마려운 오줌소태에는 ‘목대’라 부르는 목탁가오리를 최고로 쳤다. 옥수수수염을 약으로 썼던 내륙과 달리 바닷가다운 처방이다. 공동 연구자로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를 수료한 이인혜 씨는 “‘동의보감’에도 소변보기 힘들 때 가오리가 좋다고 나오니 근거가 없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대청도는 목대를 고아 그 물을 마시되 여성은 숫목대, 남성은 암목대를 써야 제 효능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임신 출산과 관련된 민속의료는 섬에서 20세기 후반에도 이어졌다. 1960년에야 백령도에 첫 병원이 들어섰고 대청도와 연평도는 그 뒤로도 한동안 산파가 출산을 관장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산후조리에 쑥을 달여 요강에 넣고 김을 쏘이거나 양초나무(산부추) 잎을 달여 먹이면 임신을 돕는다고 여긴다. 특히 세 섬은 불임치료에 육모초(익모초)가 탁월하다는 믿음이 큰데, 단오 이전에 채취해 말린 것을 달여서 마셨다. 재밌는 것은 섬 주민들의 종교적 성향이다. 국내 기독교계에선 충남 서천군 마량진을 ‘한국 최초의 성경 전래지’로 꼽는다. 1816년 영국 해군이 처음으로 성경을 전파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옹진군청 사료에 따르면 같은 해 영국 해군이 백령도에도 성경을 나눠줬다는 것. 1832년 영국 런던 선교회가 선교활동을 벌였던 곳도 백령도를 포함한 주위 섬들이었다. 이 때문인지 현재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주민의 80% 이상이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다. 장 학예관은 “세 섬의 민속의료가 다른 섬들에 비해 굿과 같은 주술이 매우 미미한 것도 이런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라며 “일부 남은 미신적 색채도 예부터 내려오는 토속적 전통으로 받아들여 조화를 유지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국립민속박물관은 4일부터 기획전시실Ⅰ에서 열리는 특별전 ‘종가(宗家)’를 준비하면서 영문 소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종가를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문구는 ‘존경받는 씨족 가문의 우두머리 집안(the head family of a respected clan)’으로 선정됐다. 이건욱 학예연구사는 “독특한 종가문화를 정의하기엔 한참 부족하다”며 “김치처럼 종가도 하나의 고유명사로 세계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종가는 우리말로도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단순히 명문가나 본가와는 다른 질감을 지녔다. 종가를 보여주는 전시도 자칫하면 난해해지기 쉽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전시가 종전에 있었으나 족보나 서책만 나열해 꽤나 지루했다. 하지만 이번 민속박물관의 종가특별전은 그런 우려를 해소하려는 고심이 엿보였다. 전체적으로 나무 살로 기와지붕을 형상화해 천장에 설치하고 곳곳에 종갓집의 대청마루와 사랑방, 장독대를 재현해 편안한 분위기를 살렸다. 그래픽디자이너들과 협업해 3차원(3D)으로 입체감 있게 종갓집 어른과 손님상, 제사를 표현한 것도 흥미로웠다. 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의 주제를 ‘적선애일(積善愛日)’로 삼았다. 밖에서는 선행을 쌓고 안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뜻이다. 이번에 전시된 영천 이씨 농암 이현보(1467∼1555) 종가의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보물 제1202호)’을 보면 90세가 넘은 부모를 위해 농암이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또 귀천에 상관없이 주민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21세기 권문세가들이 종가라 불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7월 일본에서 환수된 조선불화 ‘쌍림열반도(雙林涅槃圖)’가 지금까지 발견된 가로로 그려진 우리나라 불화 중 가장 오래된 것임이 밝혀졌다.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동악미술사학회에서 “불화를 구입한 전북 군산시 동국사 의뢰로 감정한 결과 쌍림열반도는 유일한 가로형 불화로 알려졌던 일본 게조지(華藏寺) 소장 조선불화인 석가탄생도(1692년 작)보다 앞선 16세기 중반의 조선 전기 불화”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조선 불화는 각각 160여 점. 대부분 세로로 그려졌고, 가로로 그려진 작품은 이번 쌍림열반도를 포함해 2점뿐이다. 가로 세로 224.5×87.0cm의 쌍림열반도는 석가모니가 사라쌍수 숲에서 열반하는 장면을 담은 불화. 세종 때 수양대군이 한글로 불경을 엮은 ‘석보상절(보물 제523호)’에 수록된 석가팔상도(釋迦八相圖) 중 마지막 열반도의 형식을 따랐다. 정 교수는 “염료를 활용한 이중채색법이나 금가루를 활용한 방식이 1553년 석가설법도나 1568년 삼장보살도의 제작 방식과 동일하다”며 “그림에 등장하는 승려의 복식이나 표정도 조선 특유의 양식을 잘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 불화는 그간 고려불화에서만 발견됐던 복채법(伏彩法)으로 그려져 고려에서 조선으로 불화 제작기법이 계승됐음을 증명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복채법이란 그림의 색을 앞면에서 칠하지 않고 비단이나 삼베 뒷면에서 반복해서 칠해 자연스러운 질감을 연출하는 기법이다. 정은우 동아대 석당박물관장은 “17세기 조선불화와는 전혀 다른 채색법과 화풍을 보여주는 걸작”이라며 감탄했다. 회화적인 측면에서는 기존 양식을 벗어난 파격을 보여줬다. 불화 왼편에 나오는 다비식(茶毘式·화장 뒤 유골을 수습하는 의식) 장면은 대다수 열반도에 등장한다. 그런데 이 불화처럼 볏섬에 사리를 넣어 봇짐처럼 나르는 장면은 중국이나 일본 불화에서조차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는 “기존 도상에 얽매이지 않고 정형화를 거부한 놀라운 불화”라고 평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숭례문? 그 정도로 눈에 쌍심지 켤 상황 아닙니다. 석굴암도 안 무너져요. 팔만대장경 상태도 비교적 나쁘지 않아요. 제발 국민들 가슴 그만 덜컹거리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무슨 얘긴가. 최근 문화재계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조차 ‘원전(原電) 비리’와 동급에 놓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경북 김천시 직지사 주지 흥선 스님(57·문화재청 동산분과 문화재위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흥선 스님은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래선 어떤 문제도 해결 안 된다”며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그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불교중앙박물관장, 문화재위원을 여러 차례 지낸 대표적인 불교계 문화재 전문가다. 특히 최근 논란이 인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긴급안전점검단에도 참여했다. 》―점검단으로 직접 갔으니 석굴암, 팔만대장경 얘기부터 들려 달라. “(지난달) 15일 전문가 10명이 석굴암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 맞다, 균열 있다. 하지만 10년 내에 생긴 게 아니다. 그간 심각해진 것도 없다. 심지어 창건 당시 생긴 균열도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 전문가들도 꼼꼼히 살폈지만 숨긴 것 없더라. 팔만대장경도 마찬가지다. 일부 경판에 문제가 있지만 최근에 악화됐다고 보는 점검단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장경각 뒤쪽 배수로는 좀 손봐야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숭례문은 복원 5개월 만에 단청이 떨어져 나갔다. “앞서 얘기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과장하지 말라는 거지. 숭례문도 마찬가지다.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문화재 관계자들을 몽땅 비리집단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그 사람들, 박봉에도 자긍심 하나로 일한다. 그런 식으로 논란만 일으켜서는 진짜 본질적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본질이라니? 숭례문 논란에 다른 측면이 있다는 얘긴가. “단청부터 보자. 일단 단청장을 포함해 관련자들 다 잘못했다. 전통기법은 실전(失傳)됐는데 경험도 없으면서 서둘렀다. 단청이 떨어진 것은 나무가 문제였을 수 있는데 그건 아무도 안 짚는다. 제대로 안 말린 나무를 써서 수축현상이 일어나 단청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기둥도 쪼개지지 않았나. (문화재)청이 서두르고 지원을 제대로 안 했다고? 그것도 차차 따져봐야겠지만 그럼 대목장쯤 되는 사람이 왜 그때는 침묵했나. 시스템이 엉망이니까 서로 책임만 떠넘긴다.”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일단 현장 목소리가 반영이 안 된다. 숭례문도 완공 시기나 방식에 대해 수십 년간 이 일에 종사한 ‘쟁이’들의 얘기를 들어야지. 먹물이랑 정치권이 왜 감 놔라 배 놔라 하나.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하는 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논란으로 문화재청장이 경질된 것 봐라. 명색이 한 기구의 수장인데 상의도 없이 위에서 뚝딱…. 처음에 임명할 때도 문화재계 의견은 전혀 수렴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제라도 생색내기 관두고 솔직히 까놓고 일처리를 해야 한다. 괜히 국민 눈높이만 올려놓지 말고.” ―어떤 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다는 얘긴가. “냉정하게 말하자. 숭례문 복원 부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현재 한국 수준이 딱 그 정도다. 문화재가 시대를 앞서갈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해야 문화재도 바뀐다. 그렇다고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다. 반대로 보면 개선하고 나아질 여지도 있다는 뜻이다. 숭례문도 하나씩 고쳐 나가면 된다.” ―이번 논란들이 문화재계 자성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제 그런 추상적인 얘기는 관두자. 관련법을 손보면 된다. 위에서 탁상공론을 접고 관련 전문가들과 심도 있게 논의해 법부터 바꾸자. 적절하게 처우 개선하고 일벌백계하면 잡음도 없어진다. 지적도 신중해야 한다. 문제 제기야 언제든 환영이지만 사실만 갖고 얘기하자.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겨누는 칼이 된다.” 흥선 스님은 2시간을 넘기며 열변을 토하더니 “하도 답답해 인터뷰를 자청했다. 국민도 알 건 알아야지”라며 그제야 찻잔을 들었다. 무엇이 평정심을 지향하는 불제자의 마음을 이리도 흔들었을까. 매서운 겨울바람이 코끝을 아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혹시 대중가요가 떠오르는가.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를 떠올렸다면 요즘 세대는 아닐 터. 사실 이 철학적 질문은 프랑스 화가 폴 고갱(1848∼1903)이 그린 작품 제목이다. 타이티 섬을 배경으로 인간의 삶을 향해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걸작이다. 하버드대 석좌교수로 ‘통섭’ ‘개미’를 집필해 국내에서도 지지층이 상당한 세계적 생물학자인 저자가 고갱의 이 그림을 화두로 삼은 이유는 자명하다. 여든네 살의 노학자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인간의 근원을 이제 결론짓고 싶어 한다. 인류는 어떻게 진화했고, 왜 이 땅을 지배하는 정복자가 되었는지를. 진화생물학에서 인간이 현 문명을 이룬 것은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이었다. 지구에는 인류 이전에 번성했다가 사라져 간 생물 종이 무수히 많았다. 호모사피엔스보다 앞선 여러 영장류도 상당 수준 진화했다가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서지 못했다. 이 지극히 낮은 확률 탓에 종교는 신이 인간을 선택했다는 논지를 펴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제로에 가까웠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최상위로 진화할 수 있었던 요인이 숨어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훨씬 먼저 고도의 사회 조직을 이룬 개미나 벌들은 작은 덩치 탓에 불을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인간은 모든 정상적 구성원이 번식 능력을 지녔고, 이를 위해 경쟁하는 체제를 이뤘다. 경쟁은 다툼도 야기하지만, 연대와 동맹도 양산한다. 이는 절대적 위계질서와 혈연관계로 이뤄진 개미와 달리 유동적 구조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전략과 상황에 따라 속임수와 배신은 물론이고 호혜와 이타성도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저자는 인간의 본질을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흔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온 유전자의 진화만으로는 인간의 번영은 불가능했다고 설파한다. 종족을 퍼뜨리려는 유전자의 개체적 본능과 사회공동체의 집단적 협력이 상생 작용을 일으킨 덕분에 인류는 여타 생물들을 제치고 왕좌에 오를 수 있었다. ‘지구의 정복자’는 엄청나게 논쟁적인 책이다. 그것도 핵폭탄 급이다. 동의하건 안 하건 누구나 이 정도 주장은 펼칠 수 있지 않나 싶겠지만, 그게 다름 아닌 에드워드 윌슨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 유전자의 단일적 관점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혈연선택’의 주창자다. 1975년 ‘사회생물학’이란 책으로 진화생물학의 토대를 이뤄 낸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돌연 학계에서는 ‘집단선택’이라 부르는 유전자와 집단의 상호 영향을 강조하는 학설로 돌아선 것. 비유를 하자면 교황이나 추기경을 지낸 분이 여든 넘어 불교나 이슬람으로 개종하겠다고 선언한 충격과 진배없다. 그런데 그의 제자로 책을 감수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에 따르면 저자의 전향(동료에겐 변절)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커밍아웃’이었던 모양이다. 1994년 ‘자연주의자’ 출간 때부터 윌슨 교수는 유전자의 혈연 선택에 불편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2005년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학회에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드러내더니, 급기야 2010년 ‘초협력자’를 쓴 마틴 노왁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와 함께 네이처에 혈연선택을 공격하는 논문을 게재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표적 진화학자 156명이 반박 논문을 발표했고, 지난해 나온 ‘지구의 정복자’는 그 재반격을 총정리한 책이다. 솔직히 책의 주장이 썩 와 닿지는 않는다. 인용 사례들이 전작에서 익숙한 데다, ‘그게 아니니 이게 맞지 않나’라는 식의 몇몇 추론도 거슬린다. 이미 대세로 굳어져서가 아니라, 유전자 진화론의 견고한 논리를 깨뜨리는 결정적 근거도 약해 보인다. 그렇다고 윌슨 교수의 열정까지 폄훼할 수는 없다. 이미 일가를 이룬 대가가 업적과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열악한 이단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평생의 학문적 성과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결의는 경이로울 정도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현재 도달한 결과로만 승부하려는 학자적 자세도 존중해야 한다. 어쩌면 윌슨 교수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쓴 건 아닐까. 사실 진화론이 혈연선택으로 기울며 반대파, 특히 종교와는 만날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 버렸다. 하지만 집단선택을 통해 진화가 유전자로만 결정된 게 아니라고 하면, 다시금 소통할 여지를 되살릴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닐지…. 나이가 지긋해지면 옳은 게 항상 다 옳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처럼. 속내야 알 수 없으나 이제 고민은 그만의 몫이 아니다. 이미 밥상은 엎어졌다. 학자들은 한판 붙건, 다시 상을 차리건 또다시 치열한 시대를 맞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자못 흥미진진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인이 처음 말한 사자성어가 중국 사전에 등재돼 있다는 걸 아세요?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입니다. 1988년 (인질범) 지강헌이 한 말이죠. 25년이 지난 현재, 정의는 얼마만큼 진보했을까요? 사마천이 던진 ‘천도(天道)는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연관시켜 고민해 봅시다.”(홍승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8일 오후 7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청운관. 요즘 말로 ‘불금(불타는 금요일)’이건만 강의실에선 수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40여 명의 수강생 중엔 머리가 희끗한 이가 많았다. 경희대의 교양 수업 과정인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들이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문명을 만드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만든 단어 후마니타스. 이 단어를 딴 이 과정의 교수들은 매월 1, 2회씩 모여 이런 워크숍을 연다. 학생에게 가르칠 내용을 함께 점검하고, 다른 전공 분야도 배울 기회를 갖자는 취지다. 교수 2, 3명이 주제를 발표하고 집단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5∼6시간을 훌쩍 넘긴다. 이날도 도시락을 먹으며 토론에 한창이었다. “이건 약과죠. 지난해까지는 토요일 하루 종일 했어요. 가족의 원성이 하도 자자해 시간대를 옮긴 겁니다.”(유원준 사학과 교수)‘취업 준비생’이 아닌 ‘학생’ 길러 내는 인문학 교육 경희대는 2011년 1학기부터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문사철’을 가르쳐 취업준비생이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하는 ‘학생’을 길러 내겠다는 계획이다. 신입생들은 1, 2학기 필수과목으로 이 과정을 들어야 한다. 수강생 중 최소 10%는 F학점을 받는다. 도정일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은 “배우려 하지 않는 선생은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며 교수 워크숍을 강조했다. 교양은 전공만 파고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인문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까지 망라하는, 영역 없는 교양을 연구하는 교수가 되자는 것이다. 인문학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고 믿었다. 갓 입학한 신입생에게 해나 아렌트나 루쉰(魯迅)을 가르치는 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였다. 하지만 1학기가 지나자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린애 같던 말투가 바뀌고 어휘가 풍부해졌다. 삼삼오오 독서 모임도 만들었다. 요즘 세대는 책과 인문학을 싫어한다는 건 틀린 말이었다. 제대로 된 접근법을 몰랐을 뿐이다. 유재홍 후마니타스 행정실장은 “학생들이 만든 ‘아레테(Arete)’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최대 성과”라고 말했다. 그리스어로 탁월함을 의미하는 아레테는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생긴 해 가을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교양 수업 수강생들의 모임이다. 혼자서는 벅차니 함께 공부하자고 모이기 시작해 지금은 수백 명이 참여하는 동아리가 됐다. 지난해부터는 교육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원금도 받는다. 요즘 아레테는 ‘감시와 처벌’(미셸 푸코)과 ‘나쁜 사마리아인’(장하준), ‘관촌수필’(이문구) 등을 읽고 토론한다. 도 학장은 “교수가 학생에게 씨앗을 뿌렸다면, 이제 학생에게서 교수들이 과실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자발성이 선생들에게도 인문학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다. 전공 중심을 외치던 교수들도 점차 마음을 열었다.시대정신 고민하고 동시대인의 감성 이해하고 상아탑에서 인문학을 지키려는 노력은 다른 곳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산대엔 20년 가까이 이어진 연구 모임이 있다. 1995년 3월 시작한 ‘인문학담론모임’이다. 현재 강명관(한문학) 곽차섭(사학) 오경환(일문학) 윤애선(불문학) 김혜준 교수(중문학)가 주축이 되어 끌어가고 있다. 이 모임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마주할 한국 사회가 갈수록 첨예한 경쟁 사회로 변질되니, 인문학 교수들이 모여 고민을 나눠 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인문학에 내재된 ‘통섭’의 정신을 살리면 더욱 심도 깊은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분위기는 자유로웠지만 내용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인문학은 물론이고 예술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천문학에 심지어 양자역학도 주제로 삼는 ‘끝장 토론’이었어요. 1년에 8번 정기적으로 모였지만 평소에도 수시로 논쟁을 펼쳤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싸우는 줄 알았을 거예요. 거친 분위기에 적응 못 해서 떨어져 나간 교수들도 생겼습니다.”(강명관 교수) 하지만 2007년 6월 100회 모임을 가진 뒤 모임은 발전적 해체를 선언했다. 12년 정도 했으니 충분히 성과를 거뒀다는 자평도 있었지만, 순수연구모임을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총장 선거가 다가오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가 적지 않았다. 3년 정도 휴식기를 가진 모임은 2011년 다시 시작됐다. 강 교수가 올해 초 펴낸 ‘침묵의 공장’(천년의상상)에서 갈파했듯 대학이 “학문은 국가에 시들고, 공부는 자본에 지치며 인문학이 굴종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특히 인문학이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세태에 대해 교수들이 함께 고민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인문학 서적이 잘 팔린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계발이나 힐링에 초점을 맞춘 ‘타깃형 인문서적’이 팔리는 겁니다. 기업 역시 이윤을 내기 위해 인문학을 이용하고 싶다는 바람이고요. 하지만 인문학의 생명은 비판성입니다. 기존 학문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냉철하게 비판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강 교수) 이 모임은 최근 ‘배의 침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여기서 배는 인문학이거나 한국 사회거나 세계 자본주의 체제일 수도 있다. 인류가 몸을 싣고 있는 기존의 그릇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강 교수는 “현대사회의 소비 지향적 흐름은 인문학의 부재 혹은 몰락과 무관치 않다”며 “정부와 사회, 대학이 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대의 인문학 프로젝트 ‘감성인문학사업단’은 학내 호남학연구원 인문학자들이 주축이 돼 2008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진흥사업 지원을 받아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올해 그 첫 성과물인 ‘우리 시대의 슬픔’을 책으로 엮어 냈고, 지난달 두 번째로 ‘우리 시대의 분노’를 출간했다. 내년 2월 세 번째 ‘우리 시대의 사랑’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들이 감성과 인문학의 결합에 주목한 이유가 뭘까.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인 인문학이 시대의 감성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출발점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감성을 소홀히 다룸으로써 인문학의 위기를 유발했다는 자성이었다. 한순미 전남대 HK연구교수는 “감성을 인문학 이론으로 판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이런 감성을 학문의 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라며 “기존의 틀을 깨지 않으면 인문학이 동시대인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감성 중 하나인 분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상이 돼 버렸다. 정치나 산업 현장뿐 아니라 미디어와 인터넷에서도 분노가 넘쳐 난다. 하지만 이런 분노를 생산하는 사회의 물적 토대라든가 현실에 스며든 분노가 어떻게 자기 파괴를 일삼는지는 관심 밖이다. 이 사업단은 이런 감성을 확대하거나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인문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한순미 교수는 “교수들의 세미나를 바탕으로 학생이나 일반 시민을 위한 기획 강좌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다”며 “인문학이 시대정신을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인문학은 강력한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26일 오후 2시경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이의상 석장(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이 손을 들자 월주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과 박성일 전북도 행정부지사, 이한수 익산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광목천을 당겼다. 탑 기둥 받침돌인 1.2t의 심초석(心礎石)이 서서히 움직여 탑 터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1915년 일제가 콘크리트로 땜질한 지 약 100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의 부활을 알리는 서막이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흐린 날씨에도 백제 무왕(600∼641)이 창건한 삼국시대 최대 사찰 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서탑(西塔)에 해당하는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터만 남은 채 보수공사 가건물이 들어섰다. 주위엔 탑을 해체하고 나온 돌 부재 2500여 개(총 중량 1800t)가 끝도 없었다. 최종덕 문화재청 정책국장은 “해체 전 높이 14.6m, 너비 12.5m의 규모였다”며 “국내 현존하는 최고(最古), 최대 석탑의 위용을 실감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심초석을 놓는 정초식(定礎式)은 1999년 해체 보수가 결정된 지 14년 만에 닻을 올린 복원의 첫발이었다. 긴급 보수가 이뤄진 일제강점기 이후 미륵사지 석탑은 몸체 절반을 콘크리트로 발라 다소 흉물스러웠다. 무너지기 직전인 탑을 당시로서는 최신이던 시멘트 공법으로 형태만 잡아놓은 것. 하지만 1998년 안전검사에서 붕괴 우려 판정을 받고 대수술에 들어갔다. 2001년 10월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체는 10년 넘게 걸리는 대공사였다. 오랜 세월 석탑과 눌어붙은 콘크리트를 제거하는 게 가장 까다로웠다. 문화재청은 일일이 정으로 쪼아서 떼어내는 수작업을 선택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의 김영철 사무관은 “탑 부재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다시 쌓는 일도 만만치 않다. 기단 계단과 2층 옥개석(屋蓋石·석탑 지붕돌) 정도만 새로 만들고 나머지는 해체 직전 6층 무너진 형태로 돌아간다. 관건은 불완전한 탑을 유지하는 접착 소재였다. 연구 끝에 치아 시술 재료로도 쓰는 티타늄 합금을 사용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콘크리트보다 접합 강도가 높고 조형미도 살리려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건립 당시 9층으로 추정되는 탑을 6층으로 복원하는 이유는 뭘까. 탑 전체의 정확한 형태를 알 근거가 없는 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2015년 등재를 기대하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핵심인데 과도한 복원은 치명적 감점 요소가 될 수 있다. 각계각층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제 막 초석을 놓은 석탑은 이르면 2016년 8월 말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이날 인근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는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특별전’이 개막했다. 2009년 1월 해체 도중 발견된 사리장엄(舍利莊嚴) 일체를 내년 3월 30일까지 전시한다.익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구대여 형식으로 국내에 환수된 조선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겸재정선화첩’ 21점이 사실상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25일 “화첩을 연구한 총서 ‘왜관수도원으로 돌아온 겸재정선화첩’을 발간하며, 26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화첩 진본을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겸재정선화첩은 그간 몇몇 그림이 전시됐으나 21점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내년 2월 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특별전에서는 일주일에 1점씩 진본을 소개하고, 나머지 20점은 영인본으로 전시한다. 묶여진 화첩을 한꺼번에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총서에서는 대표작으로 꼽힌 ‘금강내산전도’와 ‘만폭동도’ ‘구룡폭도’ 이외의 그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특히 ‘함흥본궁송도’(사진)와 ‘연광정도’는 실재 경관을 그리는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창시자인 겸재가 직접 풍경을 보지 않고 그린 드문 케이스다. 함흥본궁송도는 태조 이성계가 고향집에 심었다는 소나무를, 연광정도는 당시 평양성에 있던 연광정(練光亭)을 그린 그림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18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지하 2층. 피에르 캉봉 수석학예연구원이 ‘한국(Cor´ee)’ 이라고 적힌 수장고 문을 여는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를 중심으로 고려청자와 조선목기, 민화들이 즐비했다. 한국 언론에 첫 공개한 수장고에는 한국 유물 1000여 점을 소장했다는 기메 박물관답게 휘황찬란한 보물들이 빼곡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이내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수장고 방문 직전 둘러본 한국 전시실에는 100여 점만 전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1년 한국실을 세 배(360m²)로 확장해 늘어난 것이었다. 일반 관객이라면 나머지 900여 점은 파리에 가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캉봉 연구원은 “1만5000여 점씩 있는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소장 유물 대비 전시실이 매우 넓은 편”이라고 설명했지만, 위로가 되진 않았다. 》사정은 제3세계 유물로 명성 높은 게브랑리 박물관이나 프랑스가 자랑하는 관요(官窯)의 중심 세브르 도자기전당도 엇비슷했다. 각각 700여 점, 250여 점의 한국 문화재를 소장했지만 전시 수량은 겨우 3점과 30여 점이었다. 19일 방문한 파리시립 체르누치 아시아유물박물관은 이응로 화백(1904∼1989)의 작품을 120여 점이나 갖고 있지만 전시관에는 단 1점도 걸려 있지 않았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조만간 이런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한류를 타고 프랑스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진 덕분이다. 특히 2014년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많은 프랑스 박물관들이 너도나도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메 박물관이나 세브르 도자기전당은 물론이고 한국과 딱히 연관성을 찾기 힘든 파리 장식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14일 만난 올리비에 가베 장식박물관장은 “한국의 전통장식 공예가 1, 2명은 이미 섭외가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의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전시로 파리 시민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지속성이었다.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중국과 일본은 이미 한때의 트렌드를 넘어 엄연한 문화사조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소장 문화재를 산술적으로만 따져 봐도 기메 박물관은 15배 이상 차이가 났다. 세브르 도자기전당도 양국 유물을 수천 점씩 갖고 있었다. 18세기 중국, 19세기 일본풍(風) 유행이 불었던 것을 감안해도 상대적 격차가 컸다. 세브르 도자기전당의 다비드 카메오 총관장은 “한국 특별전이 성공하고 관심이 증폭된다면 한국 유물 전시 대우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전시들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깔린 발언이었다. 이런 우려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13일 세브르 도자기전당 수장고를 찾았을 때 담당 학예사는 유물들이 어느 시대 것인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방습, 방진 시설도 갖추지 못한 캐비닛에 여염집 부엌 찬장처럼 문화재가 쌓여 있었다. “한국 유물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말은 립 서비스로 들렸다. 700여 점이나 소장한 게브랑리 박물관은 구한말 것으로 짐작되는 여성 저고리 3점만 상설 전시했다. ‘가장 오래된 한국 유물은 뭔가’라는 질문에는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이런 만큼 한국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파리1대학(팡테옹 소르본) 문화재보존복원학과의 정수희 박사는 “수교 130주년이란 좋은 기회를 맞은 만큼 학술 교류를 통해 공동 보존연구를 확대해야 한다”며 “일본이나 중국이 정부 기업의 지원을 바탕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음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리스틴 시미지 체르누치 박물관장도 “오히려 1970년대까지는 다양한 교류가 지속되다가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뒤에) 네트워크가 끊겼다”며 “프랑스 문화계도 최근 악화된 경제 상황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만큼 틈새를 공략하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이 10∼20일 프랑스에서 진행한 ‘KPF 디플로마-문화재 보존과 복원’ 연수과정을 통해 취재가 이뤄졌습니다.파리·세브르=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고려청자의 진수를 담은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이 26일 1년의 준비 끝에 재개관한다. 박물관 측은 “기존 벽과 진열장 색상을 모두 교체하고 조명기구도 유물 본연의 색을 최대한 감상할 수 있도록 바꿔 청자의 진면목을 충분히 맛볼 수 있도록 개편했다”고 밝혔다. 기존 청자실은 60여 점 정도만 전시가 가능했으나 이번 리노베이션으로 국보 11점과 보물 6점을 포함해 모두 160여 점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 뚜껑 향로(靑磁 獅子形蓋 香爐)’, 제96호 ‘청자 구룡형 주전자(靑磁 龜龍形 注子)’, 제114호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靑磁 象嵌牡丹菊花文 瓜形 甁)’ 등이 추가 전시된다. 이번 전시실 개편의 핵심은 고려청자의 ‘비색’과 ‘상감’을 좀더 세밀하게 살필 수 있도록 유물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비색에 초점을 맞춘 ‘색과 조형’, 상감기법에 집중한 ‘장식과 문양’으로 2개의 방을 따로 만들었다. 장성욱 미술부 학예연구사는 “일부 중첩되기도 하지만 색을 중시했던 시기와 상감에 관심을 쏟았던 시기가 고려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며 “순차적으로 관람하면 고려인의 청자에 대한 미의식의 흐름이 변화하는 과정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고종황제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제작한 황제지보(皇帝之寶)를 미국에서 되찾았다. 문화재청은 21일 “미국 국토안보부 수사국(HSI)이 18일 황제지보를 비롯한 조선과 대한제국 인장 9점을 미국 소장자로부터 압수했다고 알려 왔다”고 밝혔다. HSI는 공식 몰수 절차가 끝나는 대로 이르면 내년 6월 한국으로 반환할 예정이다. 이번에 되찾은 인장에는 고종의 자주독립 의지가 담긴 황제지보 외에도 1907년 순종이 고종에게 태황제(太皇帝) 존호를 올리며 만든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 시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한제국 황실 서적에 설명이 수록된 유서지보(諭書之寶·지방관리 임명장에 사용)와 준명지보(濬明之寶·왕세자 교육 담당 관리에게 내리는 교지에 사용)도 포함돼 있다. 헌종이 서화에 찍었던 향천심정서화지기(香泉審定書畵之記)와 조선 왕실 인장인 우천하사(友天下士), 쌍리(雙(리,이)), 춘화(春華), 연향(硯香)도 함께 되찾았다. 이 인장들은 6·25전쟁 당시 미군 해병대원이 덕수궁에서 훔쳐 갔던 것들로 최근까지 그 후손인 미국인 A 씨가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HSI는 A 씨가 한 문화재 관련 단체에 인장들을 내다팔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9월경 한국 정부에 제보했고,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인장임을 확인한 정부가 수사를 요청하면서 압수가 성사됐다. 한미 양국은 2010년 수사 당국 간 상호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불법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하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토록 서슬이 퍼런 책을 만나는 게 얼마 만인가. 표지부터 붉은 이 책은 참 손 안 가는 모양새를 지녔다. 무슨 1980년대 불온서적도 아니고…. 제목도 어찌나 자극적인지. 솔직히 심한 두통거리 하나 껴안게 생겼다 싶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생각이 달라졌다. 이 책이 얼마나 날카롭고 매서우며 짜릿한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짝 투덜거리며 이 책을 맡았는데, 읽고 나서는 책의 향기 팀장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명하다. 세계 어디에서건 정부의 긴축은 죽음에 이르는 처방이라는 주장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학자인 스터클러와 미국 스탠퍼드대 예방연구센터 교수인 바수는 공중보건 전문가들. 불황이 인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해 봤더니, 경기가 좋고 나쁜 건 그다지 문제가 아니었단다. 핵심은 정부 재정을 탄탄하게 만든답시고 긴축정책을 펴며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축소한 것이 국민의 건강을 해쳤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런 방식은 경기 부양에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고 지적한다. 실례를 들어 보자. 한국도 포함됐던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살펴보자. 당시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하지만 선택은 엇갈렸다. 세 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자금을 요청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친 반면, 말레이시아는 사회보장비용을 줄일 수 없다며 다른 길을 갔다. 결과는 알고 있는 대로다. 태국은 자살률이 60% 증가했으며, 유아 사망률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감염률도 수직 상승했다. IMF 요구대로 공중보건 지출을 해마다 9∼15%씩 줄여 나간 결과다. 한국은 빈곤율이 1997년 11%에서 이듬해 23%로 치솟았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반면 보건 및 빈곤구제 지출을 늘린 말레이시아는 모든 건강 지표가 좋아졌으며, 경제 회복도 가장 빨리 이뤄 냈다. 다행히 한국은 극단적 긴축은 피하며 이후 회복세를 보였지만,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위기를 벗어났다고 말하기 힘들다. IMF는 당시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실제로 20세기 초반 미국이 대공황을 겪었을 당시, 정부의 뉴딜정책을 받아들여 돈을 풀었던 주와 그러지 않았던 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손에 쥐게 된다. 이제는 짐작 가능하겠지만, 긴축을 지지했던 주는 국민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다. 소련이 붕괴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않고 급속한 자본주의를 시도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은 모두 장기 경제 침체와 함께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점진적인 개혁을 표방하고 기존 복지정책을 유지했던 벨라루스는 충격을 최소화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8∼2009년 엇비슷하게 경제 위기에 직면한 아이슬란드와 그리스를 보라. 아이슬란드는 현재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그리스는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차이는 긴축정책을 폈는가, 아닌가다. 저자들은 말한다. 긴축, 정확히는 사회보장비용 축소가 경제적으로 옳고 그른지는 논외로 하자. 하지만 사회구성원의 건강을 해치고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국민 생명까지 담보로 하면서 그런 정책을 밀어붙여야 할 명분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지금 당장 모든 국가는 긴축정책을 백지부터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목소리는 현재 정부 정책이나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판에서는 주류의 시각이 아니다. 그리스는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국민의료시스템을 갖췄던 영국조차 최근 긴축을 내세우며 비용 절감을 외치고 있다. 눈앞에 위기가 닥쳤으니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건 어쩌면 본능적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본능이 수많은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의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협약 선포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최고의 모범 유산(The Best Model Case)’에 뽑혔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7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가 최근 세계유산의 핵심정신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장 잘 구현한 26개 사례 가운데 하나로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가 뽑은 26개 모범 사례를 모은 안내서 ‘세계유산, 인류를 위한 혜택’ 한국어판을 이날 출간했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과 경주시 양동마을은 14∼15세기에 조성된 한국의 대표적 씨족마을. 2010년 등재 당시에도 ‘문화전통 혹은 문명의 독보적 증거로 예술성이 담긴 축제나 행사가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세계유산의 보존과 개발이라는 요구를 다 충족시키기 위해 어떻게 인간과 유산이 조화를 이루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극찬했다. 최고의 모범 유산 선정은 유네스코가 1972년 선포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이 지난해 40주년을 맞아 세계 160여 나라에 산재한 981점의 세계유산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특히 유네스코에 가입한 전체 회원국과 유네스코 산하 세계 전문가 집단의 학자 및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 반영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하회와 양동은 지역 및 중앙정부와 주민의 협력 아래 무형적 가치까지 통합적으로 전승한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다”며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떠오른다.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져가고 범인은 오리무중. 지금 숭례문이 딱 그런 처지다. 처음엔 단청이 벗겨지더니, 이제는 기둥 나무가 쪼개진다. 다음은 뭐가 문제일까. 헌데 자기 탓이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런 사태를 누군들 바랐을까. 2008년 화마로 무너진 국보 제1호는 올해 5월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그간 많은 이들이 애썼다는 것을 무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숭례문은 5년 공사를 마친 뒤 겨우 5개월이 넘었건만, 최악의 문화재 복원 사례로 기록될 처지에 놓였다. 문화재청이 ‘숭례문 종합점검단’을 꾸려 원인을 규명하겠다니 일단 그 결과를 기다려보자. 다만 책임자들의 해명이 영 찜찜하다. “시간이 부족했다.”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해당 기관이 일을 키웠다.” 그런데 그전엔 왜 이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했을까. 중요무형문화재에다 무슨 장(匠)이라는 분들이 누구 눈치를 본 것은 아닐 테고…. 혹시 이미 이런 우려를 표했는데 우리가 놓쳤나? 5월 복원 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여러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를 찾아 살펴봤다. “숭례문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나무는 한겨울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닌 끝에 찾아낸 것들이다.” “국민 모두 자기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문화유산을 내 것같이 아껴야 해요. 주인의식을 갖고 ‘잘못된 점’은 정부에 말할 수 있어야 하고요.” “화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전통적인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 이번 숭례문 복구의 가장 큰 의의다.” “전통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소 고생스러울 수 있으나 ‘역사적인’ 의미도 있고 미학적으로도 훨씬 아름다워요.” 이제 정부 얘기를 들어보자. 7일 논란이 들끓자 ‘문화재청의 입장’이 나왔다. “전통 재료의 개발과 보급, 전통 기법의 계승을 위해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겠다. …종합 학술조사 시행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등 맞춤형 지원 육성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정확하고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겠다.”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까지 안 했다는 게 더 놀랍다. 하나 더, 장인들의 주장과는 뭔가 어긋난다. 시간도 예산도 불충분해 일을 키웠다는데, 앞으로는 정확하고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숭례문 복원 때 시민들은 몇 대(代)에 걸쳐 키운 나무를 기증하고 해외 동포들은 성금을 모아 보냈다. 서로 발뺌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최근 숭례문 복원의 부실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보 제24호 ‘석굴암’의 본존불에 25개 정도의 미세균열(사진)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7일 “석굴암의 본존불과 좌대(座臺)에서 표면 박리나 변색을 포함한 미세균열이 지금까지 25개 정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석굴암 미세균열은 천장과 벽체, 기둥에도 24개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1996년부터 정기적으로 석굴암 안전점검을 실시해 석굴암 전체에서 지금까지 도합 50개의 미세균열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약 50%가 본존불과 본존불을 받친 좌대에 집중돼 있다. 최병선 문화재청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석굴암 균열은 1996년 정기 점검을 시작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도 있어 어느 시기에 생긴 것인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며 “아직은 전체 구조물에 시급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향후 조금이라도 균열이 심각해지면 곧바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석굴암은 1997년 문화재관리국 시절에도 미세균열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어 한 차례 구조안전진단을 실시한 바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선시대 유교 사회를 이처럼 탁월하게 보여주는 씨족마을이 있을까. 생산과 생활, 의식이 전통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놀라운데, 21세기에도 잘 이어지고 있는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아마레스와르 갈라 덴마크 코펜하겐 국제종합박물관연구소 이사) 상찬도 이런 상찬이 있을까. 하지만 더 기쁜 것은 그의 말이 결코 립 서비스가 아니란 점이다. 유네스코는 전 세계 981개의 세계유산 가운데 3%도 안 되는 모범사례를 뽑으며 한국의 역사마을인 하회와 양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살아있는 유산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보호’의 구현이라고. 갈라 이사는 실제로 하회와 양동 마을 평가보고서의 주 집필을 맡았던 전문가. 그는 “지역사회의 인식과 지식이 유산 보존은 물론이고 문화적 체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두 마을 주민들이 외부의 무분별한 문화 유입을 막고 마을의 문화를 관리하고 지키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인류는 한국의 세계유산으로부터 사회적 문화적 혜택을 얻었다는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다. 특히 많은 해외 전문가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매력은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이 통합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1984년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와 제189호로 지정된 두 마을은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충효당(보물 제414호·이상 하회마을), 무첨당(보물 제411호)과 향단(보물 제412호), 관가정(보물 제442호·이상 양동마을) 같은 진귀한 유형유산을 다수 지녔다. 게다가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비롯해 전통적 유교 문화와 관습도 잘 이어져 내려왔다. 유네스코가 평가서에 “옛 가옥의 공간적 배치가 잘 유지됐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학문적, 철학적 전통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살아있다”고 쓴 이유다. 유네스코가 또 하나 하회와 양동의 강점으로 주목한 포인트가 있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유네스코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금을 유치하고 투자했으며, 지역사회는 주인의식을 갖고 마을 공동체로서 지역사회 발전을 활성화시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하회마을이 엄격하고 실질적인 ‘보존관리 종합계획’을 가동하고 있고, 양동마을도 하회마을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리계획을 수립했다는 걸 높이 샀다. 이번 모범 사례 선정에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의 약진이 크게 눈에 띈다. 중국의 ‘카이핑(開平) 댜오러우(雕樓) 건축물과 마을’은 농촌 사회의 전통과 외국 문화를 통합했다는 점에, 일본의 ‘시레토코(知床)’는 흰죽지참수리 같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의 중요한 번식지가 인류의 어업과 조화를 이룬 점에 큰 점수를 받았다. 김귀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커뮤니케이션팀장은 “한중일은 최근 유네스코에서 가장 주목받으며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나라”라면서 “이번 선정에서도 이런 점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모범 사례 선정을 기념해 26개 사례를 모은 안내서 ‘세계유산, 인류를 위한 혜택’(사진) 3000부를 일반에 배포한다. 홈페이지(www.unesco.or.kr)에서 신청하면 포장 및 배송료(5000원)만 받고 보내준다. 물량을 다 소진할 경우에는 향후 전자책으로 제작해 공짜로 제공할 계획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김장철에 배추 값이 오르면 ‘김치가 아니라 금치’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미 조선시대부터 김치는 중국 황제에게 진상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이런 김치가 서민적 반찬이 된 것은 비싸고 귀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대중적 열망의 산물이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55)는 5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심포지엄 ‘김치,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김치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윤 평론가는 “조선 초기 최고급 중국산 배추를 수입해 만든 김치는 왕실이나 최고위층 양반만 맛볼 수 있는 요리였다”고 설명했다. 세종실록에는 중국 사신이 새우젓으로 담근 김치 두 항아리를 요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겨우 김치 두 단지가 황제 진상품 목록에 오를 정도로 진귀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당시 김치의 주 재료인 배추는 종자 한 되가 하인의 몇 달치 월급과 맞먹을 만큼 비쌌다. 왕실에서도 국가 제사에 쓰기 위해 배추밭을 따로 관리할 정도였다. 또 다른 재료인 젓갈도 비슷했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젓갈로 담근 김치처럼 호화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18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먹었던 ‘젓갈 김치’는 전국적으로 유명했지만, 워낙 비싸고 수급이 어려워 내륙에서는 웬만한 집안이 아니면 김치 재료로 쓸 엄두도 못 냈다. 이리도 귀한 김치가 대중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까닭은 뭘까. 역설적으로 그만큼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입맛에 맞는 고급 요리를 찾는 이들이 상류층을 필두로 늘어났고, 농민들은 김치를 담가 팔면 수익이 커지니 앞다퉈 배추를 심었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대량생산의 불씨를 댕겼고, 공급이 늘어나니 가격도 하락했다. 18세기 중반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기 시작한 것도 향신료인 후추나 산초 가격이 워낙 비싸 대안으로 각광을 받은 것이다. 지역마다 김치 맛이 달랐던 것도 이런 경제적 요인이 작용했다. 어업이 활발한 삼남 지방은 젓갈 수급이 용이해 맵고 짠 김치를 담가 먹는 문화가 일찍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장 자체가 영남의 8분의 1 수준이던 함경도는 비싼 젓갈을 구할 유통 경로가 부족해 싱겁고 담백한 김치를 주로 먹었다. 윤 평론가는 “단지 기후 탓에 김치 맛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도식적인 구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며 “당대 김치 재료의 가격과 유통 구조가 제조 방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최근 국내에서는 ‘떠먹는 요구르트’가 꽤 화제였다. 건강에 좋다며 애들에게도 열심히 먹였던 이 제품들이 알고 보니 당이 가득했다는 얘기다. 콜라나 초코파이보다도 설탕이 많이 들어 있다는 자극적인 비교도 쏟아졌다. 그러데 알고 보면, 이 식품업체들이 그간 딱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떠먹는 요구르트 겉면에 버젓이 ‘당 함유량’이 표시돼 있다. 그저 몸에 좋은 유산균이 풍부하다고, 먹어 보면 맛있다는 측면만 강조해서 광고한 죄밖에 없다. 각설탕이 네댓 개쯤 들어간 것은 별 일 아니라서 대놓고 외치진 않았나 보다. 왠지 속은 기분이 드는가. 하지만 ‘배신의 식탁’을 쓴 저자였다면 아마 이렇게 코웃음 쳤을 것이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그건 빙산의 일각도 안 돼요. 당신이 먹고 있는 음식들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안다면 까무러칠 겁니다.” 대놓고 책날개에 ‘스타 기자’라고 써 놓은 것은 어이없지만, 실제로 저자인 마이클 모스는 이쪽 계통에서 경력이 화려하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을 거쳐 뉴욕타임스에 재직 중인 그는 201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현지에서도 올해 출간된 이 책은 기자의 직분을 잘 살려 미 식품업계를 샅샅이 뒤진 탐사보도의 전형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책은 크게 ‘설탕으로 배신하다’와 ‘지방으로 배신하다’ ‘소금으로 배신하다’ 3부로 돼 있다. 부제들이 너무 번역 투라 어색하긴 해도 의도하는 바는 자명하다. 설탕과 지방, 소금이 당신의 식탁을, 우리의 위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식품업계는 이미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신나게 장사하느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책에 등장하는 1999년 4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보자.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식품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기업의 수장 11명이 비밀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업체 대표가 그들이 이 세 가지 재료를 얼마나 듬뿍 쓰고 있는지,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지 장시간에 걸쳐 설명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이를 개선하자는 뜻에서 한 말일 텐데, 반응은 한마디로 정리됐다. “소비자는 변덕쟁이다.” 이러쿵저러쿵해 봐야 수시로 관심과 기호가 바뀌니, 업체는 그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반박이었다. 한마디로 기업은 선택권을 줬으니 책임은 소비자가 져야 한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먼저 설탕을 짚어 보자.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22스푼의 설탕을 먹고 있다. 딱히 먹은 기억도 없겠지만, 설탕은 그저 커피믹스나 청량음료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떠먹는 요구르트에서 보았듯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는 당이 들어간다. 특히 ‘정제 탄수화물’이 심각하다. 탄수화물로 표기되지만 체내에 들어가면 바로 설탕으로 바뀐다. 하지만 시리얼이나 콜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업체들은 수십 년간 누가 더 설탕을 많이 넣을까 경쟁해 왔다. 왜? 더 맛있으니까, 더 많이 팔리니까. 소금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진짜 무서운 건 지방이다. 설탕이나 소금은 시민단체나 학계로부터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공격이라도 받는다. 지방은 ‘소리 없는 암살자’다. 나쁜 건 알겠는데 어떻게 먹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비계만 골라낸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자 칩이 바삭한 이유, 식빵이 촉촉하게 살아 있고 통조림 요리에 윤기가 도는 까닭…. 다 지방이 들어가 있어서다. 더 놀라운 건 지방은 설탕이나 소금 맛을 순화시켜 더 많은 섭취를 유도하고,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한 가지 더. 모두가 완벽한 음식이라 여기는 치즈(여기서는 가공 치즈를 일컫는다)도 무조건 믿지 말길. 다른 의미로 완벽한 지방 덩어리니까. 이 책은 무서운 책이다. 단순히 설탕 지방 소금 3형제의 위험성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 관련 업계가 이를 사용하는 데 도덕적으로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일러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종 식품업체를 담배업체와 비교하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파급력 면에서 따지자면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게 없다. 특히 아이들을 맛으로 길들이는 이들의 치밀한 전략은 경이로울 정도다. 다만 너무 역사를 두루 살피는 통시성까지 갖춘 탓에 살짝 산만한 느낌이 없지 않다. 독자를 박력 있게 끌고 가지 못한다고나 할까. 이 정도인가 하며 놀라다가도, 뻔한 잔소리를 듣는 듯 푹 퍼지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다가 오히려 콜라가 당긴 적도 있었다. 어쩌면 그들 말이 맞다. 소비자는 변덕쟁이다. 배신을 당했는데 어떻게 보복해야 할지 모르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