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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월 북한 함경북도 새별군의 한 주택. 당시 24세 예비 신부였던 한기복 씨(53)는 약혼식을 마치고 돌아와 아버지를 한없이 원망했다. 국군포로 출신인 아버지는 딸의 약혼식에 못 갔다. 조선노동당 간부 집안인 예비 시가가 국군포로 출신 사돈의 약혼식 참석을 막은 탓이다. 한 씨는 “아버지 때문에 내가 괄시당한다”며 설움을 쏟아냈다. 그날 밤, 아버지는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향 땅을 밟고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죽는구나….”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국군포로의 딸’이란 주홍글씨 6·25전쟁 당시 17세였던 한 씨 아버지는 경기 양주에서 국군에 투신했다가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다. 이후 북한 동북 끝자락인 새별군 탄광으로 끌려가 40년 가까이 강제노역을 하며 한 맺힌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북한에서 태어난 딸이 상처받을까 봐 신분을 숨겨왔다. 한 씨는 중학교 3학년 때에야 진실을 알았다. 학교 성적이 좋고 반장을 도맡았지만 끝내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한 씨가 억울해하자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한에서 온 국군포로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 후 아버지가 손으로 쓴 자서전 성격의 글을 읽고 자신의 뿌리가 남한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 씨 고향인 새별군에는 국군포로가 모여 살며 탄광 등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늘 감시를 받는 국군포로는 2명 이상 모일 수 없었고 생일에 친구조차 집에 못 불렀다. 한 씨는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남조선 출신 국군포로 딸’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져 동네사람들과 시가에서 박대당했다. ‘고난의 행군’ 여파로 먹고살기도 점점 힘들어졌다. 한 씨는 2004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중국에 13년 머무는 동안 남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옅어졌고 남한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혈육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갔다. 그는 지난해 10월 제3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았다.○ 53년 만에 만난 남한의 혈육 한 씨는 올 2월 하나원에서 나오며 양주에 터전을 잡았다. 혈육을 찾으려고 알아보니 아버지 고향은 현재 행정구역상 의정부시 용현동이었다. 한 씨는 용현동 관할 주민센터를 찾아가 아버지 이름과 생년월일을 댔지만 아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씨의 신변 보호를 맡은 방혜경 양주경찰서 경사(42)는 3월 한 씨 사연을 듣고 국방부에 도움을 청했다. 국방부와 경찰청은 한 씨 아버지의 인적사항과 군번 등을 토대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추려 일일이 확인했다. 두 달 뒤 한 씨 아버지의 여동생이자 한 씨의 큰고모를 찾아냈다. 큰고모는 한 씨 집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5월 한 씨는 큰고모와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큰고모는 죽은 줄 알았던 오빠의 딸을 붙들고 오열했다. 미국에 살던 한 씨 작은아버지는 한달음에 한국으로 왔다. 한 씨 아버지에게는 남동생 1명과 여동생 4명이 있었다. 한 씨는 이들에게 평생 남한의 가족을 그리워했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국방부는 유전자(DNA)를 비교해 이들이 모두 혈육인 걸 확인하고 한 씨에게 국군포로 가족지원금을 지급했다. 한 씨는 고령의 혈육들을 돌보기 위해 곧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딸 예정이다. 한 씨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약혼식 날 철없이 한 모진 말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이 컸다”며 “아버지 동생들을 잘 모셔서 마음의 빚을 꼭 갚겠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경찰청에 ‘법질서와 경찰 공권력 엄정 확립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공개 지시했다. 최근 불거진 유성기업 노동조합의 임원 집단 폭행 사태 등에 경찰이 무기력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확산된 데 따른 특별 조치다. 김 장관은 경찰청에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엄정한 법적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김 장관은 또 경찰청의 공권력 확립 대책을 경찰위원회에서 안건으로 논의하여 심의·의결해 달라고 긴급 요청했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 임명제청 동의 건을 제외하고 경찰위원회에 경찰청 안건을 다루라고 요청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행안부는 “최근 일련의 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해 국민의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는 현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위원회는 3일 정기회의를 열고 경찰청과 함께 공권력 확립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유성기업 노조의 집단 폭행 사건을 수사하는 충남 아산경찰서는 4일부터 폭행에 가담한 노조원 11명을 순차적으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이 30일 경찰의 현장 진입을 막은 노조원 조모 씨 등 5명에게 출석을 요구했는데 이들이 변호사를 통해 출석을 늦춰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조동주 djc@donga.com / 아산=이기진 기자}
1일부터 한 달 동안 전국에서 전 좌석 안전띠를 매지 않은 차량을 겨냥한 일제 특별단속이 시행된다. 경찰은 올해 9월 28일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후 2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쳤다. 전국 어디서든 전 좌석에서 안전띠를 안 맸다가 적발되면 운전자가 과태료 3만 원을 내야 한다. 13세 미만 어린이가 안전띠를 안 맸다면 과태료 6만 원이 부과된다. 경찰은 자가용과 택시, 시외버스,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 통근버스와 어린이 통학버스까지 모두 단속할 예정이다. 휴게소에 정차한 버스에도 경찰이 탑승해 전 좌석 안전띠 착용 의무를 알린다. 자전거 음주운전도 단속 대상이다.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인 상태에서 자전거를 몰다 적발되면 범칙금 3만 원을 내야 한다. 측정에 불응하면 범칙금 10만 원이 부과된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경찰 고위직인 현직 경무관이 인사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2만 경찰 중 경무관 이상은 0.09%(110명)에 불과해 ‘경찰의 별’로 불린다. 민갑룡 경찰청장 취임 후 첫 정기 인사에서 벌어진 전례 없는 사건에 경찰 내부가 들썩였다. 정부가 치안정감 3명과 치안감 4명의 승진 인사를 단행한 29일, 고배를 마신 송무빈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54·경찰대 2기)은 ‘부당한 승진 인사’라며 언론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송 부장은 “탄핵 관련 촛불집회를 평화적으로 관리한 유공자를 치안감 승진에서 배제한 현실에 절망감을 느낀다”며 “현 정부의 경무관 이상 고위층 승진 인사에 대한 국정조사를 벌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구호를 빌려 “(이번 인사에) 기회가 평등했는지, 과정은 공정했는지, 결과는 정의로웠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송 부장은 서한을 보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직접 밝혔다. 그는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이 숨진 민중총궐기 시위 당시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3년째 승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1월 경무관 승진 이후 치안성과 평가에서 4년 연속 최우수(S) 등급을 받았는데도 정치적 이유로 승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송 부장은 경찰 고위직의 인사 시스템이 출신 지역과 입직 경로 안배에 치우치지 말고 성과 위주로 이뤄지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무관 이상은 청와대에서 뽑고 싶은 사람을 뽑아 예측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인사 시스템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며 “원칙과 기준이 없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승진 경쟁에 뛰어들어 과열 양상이 벌어진다”고 주장했다. 송 부장은 이날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한편 경찰의 2인자로 꼽히는 서울경찰청장에는 원경환 인천지방경찰청장(57·간부후보생 37기)이 내정됐다. 강원 평창 출신인 원 신임 서울경찰청장은 평창고와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경찰청 감찰담당관, 청와대를 경비하는 서울경찰청 101경비단장, 경찰청 수사국장 등을 거쳤다. 과묵한 성격으로 감찰과 경비 업무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월 고향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렸을 때 강원지방경찰청장을 맡아 국제적 행사를 원활하게 치러냈다. 다음은 치안정감과 치안감 승진 및 전보 인사 명단. ◇경찰청 <승진> ▽치안정감 △부산지방경찰청장 이용표 △인천〃 이상로 ▽치안감 △생활안전국장 김진표 △사이버안전국장 김재규 △교통국장 노승일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조용식 <전보> ▽치안감 △보안국장 이준섭 △외사국장 박화진 △경찰인재개발원장 박기호 △중앙경찰학교장 정창배 △대구지방경찰청장 이철구 △대전〃 황운하 △울산〃 박건찬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차장 김재원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 최해영 △충남〃 박재진 △경북〃 김기출 △경남〃 김창룡 △경찰청 경무담당관실(공로연수) 이재열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서울 구로구 경인중학교 교무실에는 28일 낮 12시부터 젊은 여성들의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남학생들이 숙명여대 대자보를 훼손했다” “남학생들이 여대에 불법 침입했다”는 취지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팩스로도 항의문 수십 장이 쏟아졌다. 교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빗발치는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사실상 마비됐다. 29일에도 전화와 팩스로 항의가 이어져 교사들이 곤욕을 치렀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여대생 “한국 남자 죽인다” vs 남중생 “지×” ‘여대생 전화 폭탄’은 28일 오전 10시경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 경인중 ‘캠퍼스 탐방대’ 41명(남학생 24명, 여학생 17명)이 찾아오면서 비롯됐다. 경인중이 구로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 탐방을 신청했고, 숙대생 4명이 봉사활동 차원에서 대학 탐방 안내를 맡으면서 성사됐다. 남학생들은 숙대 명신관 앞을 지나다 ‘숙명인들의 탈-브라 꿀팁!!을 적어주세요’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발견했다. 여대생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방식을 적어 공유하자는 취지로, 페미니즘 운동의 하나다. 이 대자보에 일부 여대생이 남성 혐오성 글을 썼고, 이를 본 남학생들이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적으면서 문제가 커졌다. 여대생이 ‘정답: 한국 남자를 죽인다’라고 쓴 글에 남학생은 ‘지×’이라고 적었다. ‘사람들도 제 가슴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 관심 갖는 사람은 가랑이를 쭈차삐세요(차버리라는 뜻)!’라고 적은 글에는 ‘응 A(가슴이 작다는 의미)’라고 조롱하는 댓글이 적혔다. ‘한국남자 못생겼다’라고 쓴 글에는 남중생이 ‘니도 못생김’이라고 반박했다. 한 숙대생이 댓글이 적혀 있는 대자보를 촬영해 내부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경인중 교무실 전화번호가 퍼졌고 항의전화가 빗발치게 된 것이다. 경인중 측은 전교생을 전수 조사해 대자보에 낙서를 한 남학생의 신원을 파악하는 한편 조만간 숙대에 공식 사과할 예정이다.○ 한국사회 젠더 갈등 ‘적색경보’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대생과 남중생이 극한 대립을 한 이 사건은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20세대에선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적 사고로 대립하며 서로를 ‘그 성별’이라 부르며 맹비난하는 세태가 자리 잡고 있다. 29일 만난 숙대생 6명 중 5명은 ‘교무실 전화 폭탄’을 해도 될 만큼 남학생의 잘못이 크다고 했다. 지모 씨(22)는 “여성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자는 ‘탈코르셋’ 운동이 어린 남중생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건 한국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나라인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모 씨(24)는 “탈코르셋을 조롱하고 대자보를 훼손한 학생에게 피드백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미성년자가 쓴 낙서에 과민반응을 한다는 반론도 소수 있었다. 김모 씨(23)는 “낙서를 한 학생에게 자필 반성문을 쓰라고 요구하고 교무실에 항의 전화 공세를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며 “남중생에게 대자보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학자인 이인숙 전 건국대 교수는 “항상 정답 고르기에 연연하는 교육제도가 학생의 사고를 옳고 그름으로만 구분 짓게 만들었다”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단편적 사고가 젠더 갈등의 핵심 원인”이라고 진단했다.조동주 djc@donga.com·김자현 기자}
서울 구로구 경인중학교 교무실에는 28일 낮 12시부터 젊은 여성들의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남학생들이 숙명여대 대자보를 훼손했다” “남학생들이 여대에 불법 침입했다”는 취지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팩스로도 항의문 수십 장이 쏟아졌다. 교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빗발치는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사실상 마비됐다. 29일에도 전화와 팩스로 항의가 이어져 교사들이 곤욕을 치렀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여대생 “한국 남자 죽인다” vs 남중생 “지x” ‘여대생 전화 폭탄’은 28일 오전 10시경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 경인중 ‘캠퍼스 탐방대’ 41명(남학생 24명, 여학생 17명)이 찾아오면서 비롯됐다. 경인중이 구로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 탐방을 신청했고, 숙대생 4명이 봉사활동 차원에서 대학 탐방 안내를 맡으면서 성사됐다. 남학생들은 숙대 명신관 앞을 지나다 ‘숙명인들의 탈-브라 꿀팁!!을 적어주세요’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발견했다. 여대생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방식을 적어 공유하자는 취지로, 페미니즘 운동의 하나다. 이 대자보에 일부 여대생이 남성 혐오성 글을 썼고, 이를 본 남학생들이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적으면서 문제가 커졌다. 여대생이 ‘정답: 한국 남자를 죽인다’라고 쓴 글에 남학생은 ‘지x’이라고 적었다. ‘사람들도 제 가슴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 관심 갖는 사람은 가랑이를 쭈차삐세요(차버리라는 뜻)!’라고 적은 글에는 ‘응 A(가슴이 작다는 의미)’라고 조롱하는 댓글이 적혔다. ‘한국남자 못 생겼다’라고 쓴 글에는 남중생이 ‘니도 못생김’이라고 반박했다. 한 숙대생이 댓글이 적혀있는 대자보를 촬영해 내부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경인중 교무실 전화번호가 퍼졌고 항의전화가 빗발치게 된 것이다. 경인중 측은 전교생을 전수 조사해 대자보에 낙서를 한 남학생의 신원을 파악하는 한편 조만간 숙대에 공식 사과할 예정이다.● 한국사회 젠더갈등 ‘적색경보’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대생과 남중생이 극한 대립한 이 사건은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젠더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1020세대에선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적 사고로 대립하며 서로를 ‘그 성별’이라 부르며 맹비난하는 세태가 자리 잡고 있다. 29일 만난 숙대생 6명 중 5명은 ‘교무실 전화 폭탄’을 해도 될 만큼 남학생의 잘못이 크다고 했다. 지모 씨(22)는 “여성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자는 ‘탈코르셋’ 운동이 어린 남중생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건 한국이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나라인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모 씨(24)는 “탈코르셋을 조롱하고 대자보를 훼손한 학생에게 피드백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미성년자가 쓴 낙서에 과민반응을 한다는 반론도 소수 있었다. 김모 씨(23)는 “낙서를 한 학생에게 자필 반성문을 쓰라고 요구하고 교무실에 항의 전화 공세를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며 “남중생에게 대자보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학자인 이인숙 전 건국대 교수는 “항상 정답 고르기에 연연하는 교육제도가 학생의 사고를 옳고 그름으로만 구분 짓게 만들었다”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단편적 사고가 젠더 갈등의 핵심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조동주 기자djc@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25일 오후 8시경. 동아일보 취재팀은 서울 종로구 KT혜화타워 1층 출입구 옆에 있는 경비실 앞을 걸어 지나갔다. 경비원은 출입구를 통해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은 신원을 확인했지만,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은 제지하지 않았다. 출입구를 지나 30m가량 걸어 들어가니 차량용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다른 절차 없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수 있었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40분 동안 지하 1층∼지상 6층을 훑어봤지만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틀 연속 뻥 뚫린 국가보안시설 취재진은 먼저 6층 글로벌통신서비스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5G Core 통신시설’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KT가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을 상용화하기 위해 마련한 차세대 통신망 장비다. 경찰청 PGW(Packet Data Network Gateway) 장비도 놓여 있었다. PGW는 통신망의 데이터 송·수신을 담당하며 단말기에 인터넷주소(IP) 등을 할당해주는 핵심 통신장비다. 국제방송시설, 국제교환시설, 국제응용시설, 국제전송시설을 다루는 장비도 있었다. 이외에도 타워 곳곳에 통신망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장비들이 설치돼 있었지만 취재진이 접근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혜화타워는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사들을 오가는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분산시키고, 국내와 해외 인터넷을 연결시켜 주는 허브 역할을 한다. 강홍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한민국 인터넷 전체가 걸려 있는 혜화타워가 파괴되면 국내외 인터넷 연계뿐 아니라 기업의 클라우드망까지 멈추게 돼 인터넷 관련 기반시설이 모두 멈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근무자들이 모두 출근한 26일 낮 12시 반경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취재진은 전날처럼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사무실 건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 철문을 열자 경보음이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출동하지 않았고 취재진은 20분 동안 건물 내부를 돌아보고 나왔다. KT에 따르면 국가보안시설인 혜화타워에 출입하려면 내부 직원과 사전에 약속을 해야 한다. 출입구에서 이름과 소속, 연락처, 출입시간을 적고 서명한 뒤 방문증을 받고 직원을 불러내 함께 들어가도록 돼 있다. 하지만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이런 절차 없이 건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KT 측은 “25일은 아현지사 화재로 인해 고위급 임원들이 회의를 했고, 26일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간담회가 예정돼 있어서 출입 통제가 다소 느슨했다”고 해명했다. ○ “백업망 있어도 파괴되면 피해 막심”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한민국 통신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혜화타워는 △한국과 해외의 통신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하고 △서울 일대 통신망을 책임지며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 등 주요 정부시설 통신망을 총괄한다. 이 때문에 만에 하나 혜화타워에 외부인이 들어가 불을 내거나 테러를 저지른다면 KT 아현지사 화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실제 2013년 5월 서울의 한 종교시설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모임에서는 한 참석자가 “통신의 경우 가장 큰 곳이 혜화국이다. 몇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송천 KAIST 명예교수는 “혜화타워가 파괴돼 인터넷이 마비되면 금융 전기 수도 가스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도 잇따라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KT는 혜화타워가 파괴되더라도 KT 구로지사에 상당 부분 백업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큰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혜화타워가 떠맡던 트래픽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면 전체 통신망 속도가 마비 수준으로 느려져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혁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과학기술사이버안전센터장은 “혜화타워처럼 규모가 매우 크고 핵심 관문 역할을 하는 시설은 이중화, 삼중화돼 있다 해도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윤다빈 empty@donga.com·조동주 기자}
지난해 11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북한병사 오청성 씨(26)는 20일 모처에서 사회복지사 A 씨를 만나 괴로움을 토로했다. 오 씨가 ‘한국군은 군대 같지 않은 군대’라고 언급했다는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가 보도된 지 3일 뒤였다. 오 씨는 A 씨에게 “북한군은 복무기간이 10년이고 한국군은 2년이라는 차이를 말한 것뿐인데 악의적으로 왜곡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보도 이후 악플에 괴로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그에게 A 씨는 김밥을 건넸다. 하지만 오 씨는 김밥을 끝내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 “매일 어머니의 환영 보여 고통” A 씨는 21일 모처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2시간 동안 인터뷰하며 5개월간 오 씨의 ‘대한민국 정착기’를 들려줬다. A 씨는 7월 초 막 하나원에서 나온 오 씨를 사회복지기관에서 처음 만난 이후 매주 1, 2차례씩 만나며 어머니처럼 돌봐주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오 씨는 매일 ‘어머니의 ’환영(幻影)‘이 보인다’고 토로할 만큼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북한에 있을 때도 8년 동안 군대에서 복무해 가족을 거의 만나지 못했던지라 그리움이 더욱 컸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 20대 청년 오 씨가 전혀 다른 체제의 한국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가혹했다. 신분이 드러날까 봐 하나원 동기들, 극소수의 탈북자 외에는 친구들을 사귀기도 어려웠다. 정착 초기 오 씨는 한 탈북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A 씨에게 “이해가 된다”고 말했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오 씨의 어머니뻘인 A 씨는 힘들어하는 오 씨를 보며 아들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A 씨는 “같이 종교시설을 갔는데 오 씨가 한참을 펑펑 울며 괴로워하는 걸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처음엔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는데 이젠 많이 이겨낸 상태”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오 씨는 매달 생계비 50만 원과 주거급여 10만 원 등 총 60만 원을 받는 게 주된 수입이라고 A 씨는 전했다. 이 돈으로 영구 임대아파트 월세 13만 원과 관리비, 식비 통신비 등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다. A 씨는 “하나원에서 나올 당시 영구 임대아파트와 정착금 400만 원을 받았을 뿐 별도의 큰 후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과 다르다. 남한에선 노력하면 성공한다” 판문점에서 ‘사선(死線)’을 넘어온 청년 오 씨는 대한민국에서 노력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A 씨에게 자주 밝혔다고 한다. 오 씨는 A 씨에게 “북한에선 내가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데 남한에선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이니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당장 생계비가 급했던 오 씨는 지인 소개로 종종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A 씨는 “하루 일하면 이틀을 쉬어야할 만큼 총상의 여파로 몸이 완전치 않았지만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려고 고된 일을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오 씨가 스스로 노력해서 꼭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나길 바랐다. 오 씨가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서 집을 구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일상을 알아가길 원했다. 오 씨는 매달 2만 원씩 납입하는 청약통장을 만들겠다고 A 씨와 약속하며 자립 의지를 밝혔다. A 씨는 한국의 평범한 가정을 보여주고 싶어 남편과 함께 오 씨를 만난 적도 있었다. A 씨는 “오 씨는 내 남편을 처음 만나자마자 허리 숙여 인사할 만큼 예의바른 청년”이라고 말했다. 오 씨는 목숨을 살려준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A 씨에게 종종 비췄다고 한다. A 씨는 “오 씨가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아주대가 있는 경기 수원에 집을 얻고 싶어했다”며 “한국에 와서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이 교수에게 그만큼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꼭 성공해 자서전 내겠다” 그렇게 한국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홀로서기에 매진하던 오 씨에게 거센 시련이 찾아왔다. 오 씨가 한국군은 군대 같지 않은 군대‘라고 말했다는 산케이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것이다. 악플이 쏟아졌고 오 씨를 다시 북한에 보내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오 씨는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왜곡해서 보도했다. 정정보도를 신청하겠다”며 산케이에 항의했다. 산케이는 ’미안하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이미 오 씨의 가슴엔 커다란 상처가 남은 뒤였다. 그 이후 오 씨는 식사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게 A 씨 전언이다. 오 씨가 하나원에서 나온 뒤 차량 2대를 구입했다는 논란에 대해 A 씨는 “오해에서 불거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A 씨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오 씨 사연을 접한 지인이 ’필요할 때마다 내 차를 타라‘며 호의를 베풀어 오 씨가 그 차를 종종 빌려 탔다”며 “지인이 중간에 차를 바꿨고 그 후 오 씨가 바뀐 차를 종종 빌려 타서 주변에선 차량이 2대라고 오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는 “오 씨가 자존심이 매우 강해 주변에서 ’남한 와서 돈은 많이 받았느냐‘ ’돈은 얼마나 버느냐‘ 같은 질문을 하면 늘 아무 얘기를 안 해 더욱 오해를 키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 씨는 한국 사회에 나온 후 5개월 동안 단맛보다는 쓴맛을 훨씬 많이 봤다. 그래도 오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벗어나 홀로 우뚝 서겠다‘는 A 씨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다. 오 씨는 대학에 가는 걸 목표로 공부 중이라고 한다. 오 씨는 A 씨와 처음 만났을 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오 씨가 한국에서 성공해서 자서전을 내자는 것. A 씨는 “오 씨가 나와의 약속을 꼭 지킬 수 있게 쭉 옆에서 돕겠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전 세계 경찰 공조를 총괄하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수장으로 김종양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선출됐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87차 총회 마지막 날인 21일(현지 시간) 진행된 선거에서 김 신임 총재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프로콥추크 인터폴 부총재를 누르고 당선됐다. 인터폴은 범죄 혐의자가 해외로 도피할 경우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회원국 간 공조 수사와 외교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역할을 한다. 회원국은 194개국으로 본부는 프랑스 리옹에 있다. 김 총재는 당선 직후 “우리 세계는 공공의 안전이나 안보와 관련해 전례 없는 큰 도전과 변화에 맞닥뜨리고 있다”며 “공동의 목표인 ‘안전한 세상’을 위해 함께 가자”고 소감을 밝혔다. 멍훙웨이(孟宏偉·64) 전 총재가 부패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돼 사임하면서 지난달부터 총재 권한대행을 맡은 김 총재는 코소보 회원 가입 문제 등을 원만히 처리한 데다 총재 출마 연설에서 “정치적 편향이나 개입을 차단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소외된 회원국의 치안력 격차 해소를 지원하겠다”고 말해 개발도상국들의 지지를 얻었다. 인터폴 총재 임기는 원래 4년이지만 전임자였던 멍 전 총재의 잔여 임기만 채워야 해 김 총재는 2020년 11월까지 2년간 재직한다. 김 총재는 1985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29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92년 고시 특별채용(경정)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주재관, 경찰청 핵안보기획단장, 경찰청 외사국장 등을 거친 경찰 내 대표적 ‘외사통’으로 평가된다. 경남지방경찰청장이던 2012년 인터폴 아시아 집행위원을 맡았고 경기지방경찰청장이던 2015년 인터폴 부총재로 선출됐다. 함께 근무했던 경찰 관계자들은 김 총재를 수수하면서도 적극적인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 경찰청 간부는 “수수했고 아랫사람에게 열려 있는 성격이었다”며 “늘 부하 직원들에게 사무실에서 복장이나 자세를 편하게 하라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경찰 내부에서는 김 총재가 LA 주재관으로 있을 때 교민들과의 관계가 좋아 경찰의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다른 경찰관은 “외사 업무를 하면서 만난 직원들에게 ‘상대국 측과 만나 봤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적극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전국 지방경찰청에 김 총재의 당선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걸라고 지시하며 한국 경찰의 쾌거를 축하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김 총재 당선을 계기로 국제적 인재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터폴 분담금 기여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거 초반에는 프로콥추크 부총재가 우세하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인터폴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과 국제인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김 총재를 지지해 전세를 뒤집었다. 프로콥추크 부총재는 러시아 내무부 관료 출신으로, 2011년부터 러시아 인터폴을 이끌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1980년대 옛 소련의 정보기관 KGB 해외정보국에 근무하며 유럽과 미국 학생들을 포섭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주요국들은 프로콥추크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선거 하루 전날 김 총재에 대한 공식 지지 의사를 밝혔고, 러시아와 긴장 관계인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인터폴 탈퇴 검토를 선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1일 “우리 후보가 당선되지 못해 유감이지만 선거 결과에 동의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면서 승복 의사를 밝히면서도 “이번 선거는 전례 없는 압력과 개입 속에 치러졌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총재 선출 직후 트위터에 “국민들과 함께 축하를 보낸다. 아주 자랑스럽다”고 적었다.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조동주·홍석호 기자}
지난해 11월 판문점을 넘어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 씨(24)가 최근 인터뷰를 한 일본 산케이신문을 상대로 정정 보도를 신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군에 대해 “군대 같지 않은 군대”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산케이가 왜곡 보도했다는 취지다. 공안 당국은 기초생활수급자인 오 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상당한 금액을 받고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일 공안 당국에 따르면 오 씨는 지난주 일본으로 출국해 산케이와 인터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상태다. 인터뷰가 보도된 17일 이후 오 씨의 한국인 지인이 “한국군이 목숨을 걸고 구해줬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묻자 오 씨는 “한국군 비하 발언을 한 적이 없는데 일본 언론이 왜곡했다. 정정 보도를 요청하겠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오 씨는 인터뷰 보도 이후 한국에서 비판 여론이 일자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 씨는 6월 하나원을 나온 뒤 새 이름으로 살며 평범한 탈북자처럼 별도 경호 없이 일선 경찰서 보안과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오 씨의 신변보호관은 오 씨가 일본으로 출국할 것이란 소식을 전해 듣고 ‘위험할 수 있다’며 만류했지만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오 씨는 경찰이 강하게 만류하자 아예 한동안 경찰 연락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은 오 씨가 일본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할 예정이란 건 몰랐다고 한다. 오 씨는 산케이로부터 항공권과 숙박비 등 체재비 일체를 지원받아 일본에 다녀왔고, 인터뷰 대가로 상당한 금액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오 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월 50만 원가량을 받는다고 한다. 하나원에서 나온 이후 시민단체에서 간간이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북한 관련 단체에서 안보강연을 한 것 외엔 별다른 수입이 없었다고 한다. 대학에도 다니지 않는다. 오 씨는 국가에서 지급되는 정착보조금과 각계 단체들로부터 받은 후원금 대부분을 이미 써버렸다고 한다. 하나원에서 나온 뒤 차량을 2대 구입하는 등 돈 관리를 제대로 못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 씨 지인이 “돈을 그렇게 낭비하면 한국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없다”고 타일렀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오 씨는 최근 생활고가 심해져 차량을 판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 당국은 당초 부모가 북한에 있어 언론 노출을 극구 꺼렸던 오 씨가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자 긴장하고 있다. 오 씨는 대한민국 국민이라 정부가 해외 출국을 막을 수 없고 출국 기록을 일일이 통보받지도 않는다. 탈북자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 소지가 있어 행적을 자세히 캐묻기도 어렵다. 공안 당국 관계자는 “오 씨의 생활고가 더 심해지면 어떤 돌출 행동을 할지 우려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이재명 경기도지사 부인 김혜경 씨(51)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된 19일 이 지사와 경찰총수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8시 40분경 경기도청에 출근하며 “경찰 수사가 네티즌수사대보다 판단력이 떨어진다”며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고 독설을 했다. 그로부터 3시간여 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수십 차례 압수수색을 거쳐 최선을 다해 결론 내렸고 곧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 “해당 계정과 김 씨 SNS 연관성 깊어” 경찰은 19일 김 씨가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08__hkkim)을 이용해 지난해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 올 4월 경기도지사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전해철 후보 등을 허위로 비방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수원지검에 넘겼다. 경찰은 2013년부터 이 계정이 올린 글 4만여 건을 전수 조사한 끝에 계정 주인이 김 씨라고 결론 냈다. 경찰은 해당 트위터 계정과 김 씨의 카카오스토리, 이 지사의 트위터가 상당히 연관돼 있다는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 지사가 2013년 5월 18일 트위터에 올린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 영정 사진을 다음 날 낮 12시 47분경 해당 계정이 리트윗했다. 그로부터 13분 뒤 김 씨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이 리트윗을 캡처해 올렸는데, 캡처 화면 속 시간이 12시 47분이었다. 경찰은 김 씨가 해당 계정에 트윗을 올린 직후 이 화면을 캡처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 지사는 “경찰이 제시한 증거는 아내가 오히려 계정 주인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한 사람이 트위터와 카카오스토리에 사진을 올리고 싶다면 사진 원본을 각각 올리는 게 합리적인데 굳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캡처해 카카오스토리에 다시 올릴 리 없다는 것이다. 다른 증거에 대해선 “아내가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비슷한 것 몇 개를 끌어모았다. 경찰이 정말 불공평하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지사가 사건을 정치공세로 규정한 것에 대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김 씨 휴대전화 압수 안 한 경찰 경찰은 7개월 동안 수사하며 핵심 단서인 김 씨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한 번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기업인 트위터가 한국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거부해 수사에 난항을 겪었는데도 김 씨 휴대전화를 확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검경에 따르면 경기남부청은 김 씨 송치를 코앞에 둔 16일에야 김 씨 측에 “쓰던 아이폰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건을 넘겨받을 준비를 하던 수원지검이 핵심 단서인 휴대전화를 압수한 기록이 없자 수사 지휘를 내린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이 김 씨에게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 씨 측은 경찰에 “4월에 번호와 기기를 변경한 상태라 이전에 쓰던 아이폰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며 거부했다. 검경 내부에서는 경찰이 ‘드루킹 사건’ 수사 당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려다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고 여론의 반발이 거셌던 점을 의식해 이 지사 부인의 휴대전화를 압수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민 청장은 “우리도 왜 (김 씨 휴대전화를) 살펴보고 싶지 않았겠느냐”며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절차에 따른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조동주 jc@donga.com·전주영 기자 / 수원=이경진 기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47·구속)이 ‘리벤지 포르노’(보복성 음란물) 같은 불법 음란물을 유통해 떼돈을 버는 이른바 ‘웹하드 음란물 카르텔’을 주도하며 70억 원의 불법 수익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6일 국내 1, 2위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필터링 업체 뮤레카의 실소유주로 밝혀진 양 회장에게 음란물 유포 등 10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에 따르면 양 회장은 2013년 12월∼올 9월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를 차명으로 운영하며 불법 음란물 5만2500여 건과 불법 저작물 230여 건을 유통시켜 70억여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 회장이 유통한 음란물 중에는 국내외 일반 여성들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찍은 리벤지 포르노 영상도 100여 건 있었다. 양 회장은 음란물을 대거 올리는 헤비업로더들을 보호해주며 카르텔을 공고히 했다. 양 회장은 헤비업로더가 매달 30개 이상 음란물을 올리면 ‘으뜸 회원’ 자격을 부여하고 수익의 최대 18%를 나눠줬다. 경찰에 적발된 헤비업로더 5명은 음란물로만 각각 3700만∼2억1000만 원을 벌었다. 양 회장은 웹하드의 음란물을 검열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필터링 업체까지 차명으로 운영했다. 뮤레카는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에 ‘DNA 필터링’(영상의 고유 정보를 추출해 필터링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방식)을 적용하지 않아 음란물을 방치했다. 음란물을 찾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 ‘나를 찾아줘’를 운영하며 또다시 수익을 냈다. 경찰은 양 회장과 웹하드 업체의 명목상 대표와 임직원, 헤비업로더 등 음란물 카르텔과 관련해 81명을 입건해 여죄를 수사 중이다. 또 경찰은 양 회장이 2015년 전직 직원을 무차별 폭행한 것 외에 다른 폭행 피해자 2명을 더 밝혀내 상습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대마초를 임원들과 나눠 피우고 미허가 도검과 활로 닭을 잔혹하게 죽인 혐의도 추가됐다. 경찰은 이 혐의들과 관련해 10명을 추가 입건했다.조동주 djc@donga.com / 수원=이경진 기자}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책토론회를 열어 자치경찰제 특별위원회의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을 공개했다. 자치경찰이 내년에 서울 등 5개 지역에서 출범하고 경찰청 소속인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가 자치경찰 소속으로 바뀌는 내용 등이 골자다. 방안에 따르면 자치경찰제는 ‘경찰권의 민주적 설계와 정치적 중립성 확보’ 등의 원칙 아래 내년부터 서울 세종 제주 등 5개 지역(2곳은 추후 공모로 결정)에 자치경찰 업무의 약 50%만 시범 도입된다. 2022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자치경찰 업무가 전면 시행된다. 최종적으로 전체 국가경찰 11만7617명의 36%인 4만3000명이 자치경찰로 전환된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되면 광역자치단체에는 자치경찰본부가, 기초자치단체에는 자치경찰대가 신설된다. 본부장과 대장은 시도경찰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시도지사가 임명한다. 자치경찰은 현 경찰 업무 중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교통, 지역경비 등 주로 민생치안 분야의 수사를 맡는다. 국가경찰은 일반 형사사건과 광역범죄사건을 비롯해 정보 보안 외사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단,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사건의 경우 분야에 상관없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모두 초동 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치분권위는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후 소관 부처가 세부 실천계획을 수립해 관련 입법과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자치분권위는 자치경찰제가 도입될 경우 지자체와 자치경찰이 범죄예방 정보 등을 공유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치안활동을 벌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의 당사자인 검찰과 경찰에서는 일부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일선 경찰들은 자치경찰이 되면 국가직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자치경찰은 분권, 안전, 정치적 중립성, 재정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은 고차방정식”이라고 평가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국가경찰에서 자치경찰로 넘어가는 수사 권한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자치경찰제 전면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경찰이 일반 형사사건부터 국익 범죄 등 주요 수사 권한을 그대로 가지면 권한 분산 효과가 없다. 자치경찰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방안은 예산 낭비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자치경찰제가 시범 도입되는 지자체로 거론된 서울시는 이날 “기대한 정도의 완전한 진전은 아니지만 자치경찰제 시행 예산을 국가 부담 원칙으로 명시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권기범 kaki@donga.com·정성택·조동주 기자}
현재 고1 학생이 대학입시를 치를 때부터 경찰대 신입생 정원이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어든다. 줄어든 50명은 2023년부터 현직 경찰 25명과 일반 대학생 25명 등 총 50명을 3학년으로 편입시켜 메운다. 그동안 모든 학비를 전액 국비로 지원받아온 경찰대 학생은 이르면 2021년부터 1∼3학년 과정 학비를 자비로 내야 한다. 경찰대학 개혁추진위원회는 2021학년도부터 경찰대 신입생을 절반으로 축소하는 방안 등을 담은 16개 개혁과제 추진계획안을 13일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신설되는 편입 제도는 4년제나 전문대, 학점인정제도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독학학위제를 통해 65∼70학점 이상을 이수하면 지원할 수 있다. 현직 경찰은 3년 이상 근무자여야 하고 징계 중이지 않아야 지원할 수 있다. 경찰대에 편입한 현직 경찰은 퇴직하고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다. 신입생 입학 연령 제한은 21세에서 41세로 완화되고 편입생도 43세까지 입학할 수 있다. 내년 신입생부터는 경찰대생이 졸업 후 의무경찰 소대장으로 일하면 군 복무로 인정해줬던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의경이 2023년부터 공식 폐지되는 데 따른 조치다. 내년 신입생부터는 일반 대학생처럼 육군 등에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신입생의 12%로 제한했던 여학생 비율을 폐지하고 기혼자도 입학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한다. 경찰대의 최고 장점으로 꼽히던 학비와 기숙사비 전액 국비 지원 제도도 폐지된다. 경찰은 내년 안에 법을 개정해 2021년부터는 1∼3학년에게 연 350만 원가량의 학비를 부과할 방침이다. 국비 지원 폐지를 보완하기 위해 국립대 수준의 장학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다만 경찰 임용을 앞둔 4학년은 학비와 기숙사비를 국비로 지원받고 일정 금액의 수당도 받는다. 또 한 학년 평균평점이 2.3 미만인 학생은 유급시키고 2회 유급하면 퇴학시키는 등 졸업 요건을 강화한다. 그동안 경찰대는 학사경고가 누적되면 퇴학시키는 조항이 있었지만 유급 제도는 없었다. 2020년부터 1∼3학년은 합숙과 제복 착용 의무도 사라진다. 현재 치안정감이 맡고 있는 경찰대학장 자리를 개방직 임기제로 전환해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된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경기 고양시가 일산동구 식사2구역 개발을 두고 최근 이해당사자들을 불러 중재 의사를 밝힌 지 이틀 만에 기습적으로 아파트 건설 승인을 내줘 논란이 일고 있다. 고양시의 중재대로 합의를 준비하던 일부 이해당사자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식사2구역은 410m²(약 124평)짜리 필지를 241명이 쪼개서 나눠 가짐으로써 특정 건설사가 조합을 장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고양시는 지난달 31일 경기 고양시청에서 식사2구역 도시개발사업조합장과 조합 지분을 가진 신안건설산업, DSD삼호 관계자를 불러 ‘3자 회동’을 주선했다. 삼호가 토지 지분 쪼개기와 명의신탁으로 우호 조합원 수를 늘려 조합을 장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조합 결성 10년이 다 되도록 지지부진한 개발 사업을 중재하기 위한 자리였다. 식사2구역은 일대 토지를 가진 신안과 삼호 등이 조합을 만들어 22만7000m² 부지에 2775채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1∼3블록으로 나눠 짓기로 계획한 지역이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선 신안이 그동안 조합에 내지 않았던 사업분담금과 보상비를 완납하고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하는 등 조합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면 새로운 조건의 환지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당초 고양시는 지난해 6월 조합의 신청을 받아 1, 3블록은 삼호가, 2블록은 신안과 삼호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환지계획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조합은 올 3월 1, 2블록을 삼호가, 3블록을 신안이 개발하는 새로운 환지계획 변경 인가를 시에 냈다. 이에 시는 7월 신안이 작년 6월 승인한 최초 환지계획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면 조합이 새로운 환지 계획을 추가로 내는 조건으로 조건부 승인했다. 이에 신안 측은 “쪼개기와 명의신탁으로 우호 조합원을 늘린 삼호가 조합을 장악해 단지 규모가 가장 크고 입지가 좋은 2블록을 독식하고 가치가 낮은 3블록을 떼줬다”며 반발했다. 삼호는 7월 나온 새로운 환지계획대로 2블록에 아파트를 짓겠다며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신안 측은 작년 6월 승인된 당초 환지계획안대로라면 아파트 개발 지분을 삼호 등이 60%, 신안이 40%를 갖는데 7월 승인된 변경안대로면 삼호 등이 78%, 신안이 22%로 바뀌게 된다고 주장했다. 고양시 측은 “신안과 삼호의 이권 다툼이라 시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지만 논란이 커져 원만한 해결을 도모했는데 회동 직후 합의가 깨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실무진 회동 직후 삼호 고위층에서 합의에 반대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고양시 관계자는 “조합이 3월에 낸 새로운 환지계획안이 조합원의 80% 이상의 승인으로 가결돼 시가 건축 허가를 안 내줄 명분이 없다”고 해명했다. 시는 분양 승인 전에 조만간 다시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3자 회동을 추진할 예정이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수능 합격! 꼭 되길 바랄게. 이거 보고 힘내! http://oa.to/’ 15일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면 스미싱(Smishing) 범죄를 의심해야 한다. 문자에 포함된 인터넷주소(URL) 링크를 누르면 휴대전화에 악성코드가 심어지고 금융정보를 포함한 각종 개인정보를 탈취당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로 소액결제가 이뤄져 금전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모르는 번호에서 온 수능 응원 메시지에 담긴 URL은 절대 클릭하지 말고 메시지를 삭제해야 한다. 경찰청은 8일 수능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를 노리는 스미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스미싱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메시지 속 URL을 클릭하면 휴대전화에 자동으로 악성코드를 심는 범죄 수법이다. 경찰은 휴대전화 보안설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앱 설치를 금지하고, 통신사 고객센터를 통해 소액결제 한도를 제한·차단해야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수능이 끝난 후 들뜬 수험생들이 컴퓨터, 휴대전화 같은 전자제품이나 의류, 콘서트 티켓 등을 인터넷에서 많이 구입하는 걸 노린 인터넷 사기도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대형 사이트와 흡사한 가짜 사이트로 유인해 결재를 유도하는 방식이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네이버페이의 원래 URL은 ‘pay.naver.com’인데, ‘pay.naver.pege13.com’처럼 유사한 URL에 네이버페이와 똑같은 모양의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소비자를 속인다. 또 경찰은 수험표를 가진 수험생를 대상으로 각종 할인 이벤트가 많이 열리는 점을 노려 수험표를 사고파는 경우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경찰청과 한국CSI학회가 공동 주관하는 ‘제4회 국제 CSI 콘퍼런스’가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렸다. 미국 캐나다 중국 네덜란드 등 해외 과학수사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번 세미나에선 4차 산업혁명과 과학수사의 미래를 주제로 증강현실과 3차원(3D) 법과학, 국내외 경찰의 드론 기술 활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대통령 표창을 받는 제14회 대한민국 과학수사대상은 전북대 의과대 법의학교실, 한국법보행분석 전문가협의체, 서울지방경찰청 정훈성 경위가 각각 수상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올여름부터 웹하드에선 ‘중노(중국인 노모자이크)’ ‘중국 야동’ 같은 키워드가 달린 음란물이 대거 유포됐다. 대부분 중국이나 대만 여성이 성관계하는 장면을 몰래 찍은 영상이다. 정부가 ‘국산 야동’ 등의 키워드 검색을 막고 한국인이 등장하는 불법촬영물 단속을 강화하자 웹하드 업체들은 수익이 줄어들었다. 이에 정부의 단속을 피해 한국 여성과 외형이 비슷한 중국계 여성의 영상을 수익 대체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음란물 카르텔’을 수사하는 경찰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47)의 핵심 수익원인 국내 1, 2위 웹하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에서 중국산 불법촬영물이 대거 유통된 정황을 수사 중인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웹하드 업체들이 불법촬영물에 집착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음란물 카르텔’의 구조가 드러난다. 웹하드에 음란물과 불법저작물을 무더기로 공급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헤비 업로더(인터넷에 대량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와 콘텐츠 공급업체는 음란물 카르텔의 핵심 공범이다. 이들은 토렌트나 해외 사이트에서 무료로 내려받은 음란물과 불법저작물을 웹하드에 올려서 거액을 벌어들인다. 황모 씨(23·무직)는 지난해 12월부터 웹하드 23곳에 음란물 23만여 건을 올려 9개월 만에 6000만 원 가까운 현금을 만졌다. 특히 불법촬영물은 웹하드 업체, 헤비 업로더 모두에게 핵심 수입원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공개한 웹하드 업체 직원 A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불법촬영물은 다운로드 수가 많아 일본 성인물(AV)보다 수익이 13∼15배 높다. A 씨는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에게 “웹하드 업체가 헤비 업로더들에게 콘텐츠를 더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전용 서버와 아이디를 주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웹하드는 반드시 필터링 업체에 검열을 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불법촬영물 등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양 회장처럼 웹하드 업체가 차명으로 필터링 업체를 세운 뒤 자기 웹하드에 대한 검열을 맡기면 속수무책이다. 경찰에 따르면 웹하드와 결탁한 필터링 업체는 음란물 검색어 제한을 해지해주거나 불법 저작물을 눈감아준다. 콘텐츠 저작권자나 ‘리벤지 포르노’(보복성 음란물) 피해자, 정부가 웹하드 업체에 일일이 삭제를 요구하기 전까진 사실상 방치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웹하드 업체가 실소유주인 필터링 업체는 인터넷에 떠도는 리벤지 포르노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와 결탁해 수익을 낸다.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가 ‘웹하드 영상을 지워달라’고 요구하면 필터링 업체가 특정 디지털 장의사를 소개해주고 금전적 대가를 챙기는 방식이다. 피눈물을 흘린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의 돈이 영상을 유포한 웹하드 업체로 돌아가는 구조인 셈이다. 국내 최초 디지털 장의사인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는 “웹하드 업체가 필터링 업체와 결탁해 ‘인터넷에서 특정 동영상을 자동으로 삭제해주는 기술을 제공할 테니 삭제 의뢰가 들어온 리벤지 포르노 원본을 달라’고 요구해 와 거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조동주 djc@donga.com·이지훈 기자}
‘웹하드계의 큰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47)이 정체가 불분명한 콘텐츠 공급업체들에서 음란물을 포함한 불법 영상을 대거 공급받아 자신이 운영하는 웹하드에 올린 정황을 경찰이 파악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경찰은 콘텐츠 공급업체들이 사실상 양 회장 소유인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양 회장이 콘텐츠 공급업체 4, 5곳과 계약을 맺고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에 음란물을 대거 유통한 정황을 파악했다.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는 국내 1, 2위 웹하드 업체다. 콘텐츠 공급업체들은 웹하드 수익을 양 회장과 나누는 방식으로 제휴를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이 등장하는 ‘몰카’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이 업체들은 중국 여성 등 외국인이 등장하는 불법 촬영물을 집중적으로 공급했다고 한다. 양 회장은 2011년 저작권이 있는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를 무단으로 웹하드에 유통시킨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불법 업로드 업체를 따로 만들어 저작권이 있는 영상들을 무단으로 웹하드에 올리도록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저작권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수사를 집중했었는데, 이번 경찰 수사는 음란물 유포 구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양 회장에게 음란물을 제공한 업체들은 대부분 파일공유(P2P) 프로그램인 토렌트나 해외 사이트 등에서 무료로 음란물을 내려받은 뒤 양 회장의 웹하드에 유통해 수익을 내왔다고 한다. 경찰은 양 회장이 불법 영상 ‘헤비 업로더’(인터넷에 대량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에게는 혜택을 제공하며 불법 업로드를 독려해온 혐의도 포착했다. 웹하드 회원이 영상을 내려받으면 그 영상을 올린 사람에게 일정 포인트가 지급되는데, 헤비 업로더들이 이렇게 모은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꿀 때 수수료를 깎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은 양 회장이 음란물을 유통하는 동시에 자신의 웹하드에 올라오는 불법 영상을 걸러주는 필터링 업체까지 운영하며 ‘셀프 검열’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웹하드 영상물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반드시 필터링을 거쳐야 하는데, 이 업체마저 자신이 직접 운영하며 검열 여부를 좌우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양 회장이 필터링 업체를 운영하며 자신의 웹하드에 올라오는 불법 영상물을 고의로 방치했다고 보고 있다. 양 회장은 음란물 유포나 저작권법 위반 방조죄로 처벌되는 것을 우려해 측근을 회사 대표에 앉히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 양 회장 대신 형사처벌을 받은 측근에게는 직위나 금전으로 보상을 해줘 불만을 달랬다고 한다. 2011년 양 회장이 구속됐을 당시 함께 입건된 명목상 회사 대표 2명 모두 과거 저작권법 위반 방조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조만간 양 회장을 소환 조사하고 음란물 유포 혐의와 직원을 구타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2015년 4월 양 회장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전 직원 강모 씨는 3일 경찰에 출석해 5시간가량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조동주 djc@donga.com·이지훈·홍석호 기자}
웹사이트 제작자 황모 씨(45)는 2014년경 집에 있는 반려동물을 생중계해주는 사이트에 등록한 자신의 IP카메라가 해킹됐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이 사이트는 중국산 IP카메라를 팔면서 구매자에게 생중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고급 프로그래머라 자부했던 그는 사이트의 취약점을 찾아내 회원들의 카메라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하나씩 빼내기 시작했다. 황 씨의 모니터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독거녀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매일 생중계됐다. 4년 동안 관음증에 빠져 지내던 그는 올해 9월 더 많은 여성을 훔쳐보기로 결심했다. 이전까지는 개별 카메라 정보를 일일이 빼냈지만 이번엔 사이트에 담긴 모든 회원정보를 통째로 빼내기로 한 것이다. 그는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이트에서 빼낸 전체회원 1만5854명의 개인정보에서 1만2215대의 IP카메라 접속정보를 훔쳤다. 이 정보로 IP카메라에 침입한 뒤 주인이 여자면 계속 관찰했다. 성행위 등 은밀한 사생활이 찍히면 녹화했다. 황 씨의 그릇된 관음증이 불러온 범죄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에 한 달도 채 안 돼 덜미가 잡혔다. 경찰이 황 씨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그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에는 클릭 한 번이면 여성들의 IP카메라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설치돼있었다. 경찰은 그가 해킹한 정보로 IP카메라 264대에 침입한 물증을 확인했다. 실제 그의 손을 거쳐 간 IP카메라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황 씨처럼 IP카메라를 해킹해 남의 사생활을 엿본 이모 씨(33) 등 남성 9명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이 인터넷에서 얻은 IP카메라 접속 정보는 47만 건에 이른다. 이 중 4912대의 카메라에 3만9706번 무단 접속해 동영상 2만7328개를 녹화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계속 보다보니 중독 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IP카메라를 구입하면 반드시 비밀번호를 재설정하고 IP카메라를 안 쓸 때는 전원을 끄거나 화면을 가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