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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개관한 LG아트센터가 내년 10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새롭게 문을 연다. 그간 이곳을 찾은 관객은 450만 명. 작품 867편, 공연 횟수 6300회를 기록한 LG아트센터는 ‘기획공연 시즌제’ ‘초대권 없는 공연’으로 국내 공연 문화를 선도해 왔다. ‘회전문 관객’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심우섭 LG아트센터 대표는 20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관객과 함께 가는 공연장’을 지향점으로 내세우며 “지금껏 예술가와 관객이 저희에게 보여준 사랑이 마곡의 LG아트센터에서 잘 피어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식물원 내에 위치한 LG아트센터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4년 6개월에 걸쳐 약 250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건설된다. 현재 1100석 규모의 극장보다 더 큰 1335석 대극장과 함께 365석 규모의 가변형 블랙박스 극장 한 곳이 들어선다. 현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뮤지컬 ‘하데스타운’이 내년 2월 공연을 마치면, 3월부터 본격 이전을 시작해 시범 운영 기간 6개월을 거친 뒤 10월에 공식 개관할 계획이다. LG아트센터는 개관 이래 줄곧 세계 공연계를 선도하는 거장의 작품을 소개했다. 피나 바우슈, 매슈 본, 로베르 르파주, 이보 판 호버, 레프 도딘, 피터 브룩,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등 유명 연출가와 아티스트의 작품이 공연됐다. 클래식, 재즈는 물론이고 국내 예술가들과 협업한 기획공연 시리즈도 LG아트센터의 강점으로 꼽힌다. 2001년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9개월 동안 공연하는 장기 대관 공연을 처음 시도해 국내 뮤지컬 시장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인들은 아쉬움과 함께 기대감을 표했다. 연극 ‘오이디푸스’를 공연한 배우 박해수는 이날 공개된 영상을 통해 “이 공간이 제게는 극장이 아니라 전쟁하러 가는 곳이었다. 배우로서 제 시작점이자 깨질 수 있던 곳”이라고 했다. LG아트센터를 즐겨 찾던 박찬욱 감독은 “에든버러 페스티벌 수준의 공연이 1년 내내 펼쳐질 만큼 최고의 예술성을 가진 공간에서 어마어마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며 “더도 말고 해오던 대로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현존 러시아 최고의 극 연출가로 꼽히는 레프 도딘은 이곳에서 ‘세 자매’ 등을 선보였다. 그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LG아트센터의 훌륭한 프로그래밍에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독보적 위상만큼 극장 이전에 대한 우려도 컸다. 이현정 공연사업국장은 “새 공연장도 대중교통 접근성이 괜찮은 편이며 기존 관객 거주지를 살펴보면 서울 강남권에만 몰려있지 않다. 관객 유치에 대한 고민은 많지만, 결국 믿고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방법뿐이다”라고 말했다. 단관 공연장의 한계에서 벗어난 LG아트센터는 주변 소음과 진동의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설계한 대극장과 가변형 블랙박스 극장에서 더욱 실험적이고 예술적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 프로 레슬링을 호령하던 노령의 스타 헐크 호건이 다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2012년 링 밖에서였다. 미국 언론사 ‘고커(Gawker)’가 그의 섹스 비디오를 공개하면서 한물갔던 스타는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호건은 사생활 침해 및 정신적 피해 보상을 이유로 이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에서조차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게 결코 쉽지 않던 2007년. 고커는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억만장자인 피터 틸이 동성애자라는 폭로를 자사 블로그에 올렸다. 고커라는 공통분모 외에 전혀 다른 삶의 궤도를 살아왔던 호건과 틸은 2016년이 되고 나서야 한 배를 탔음이 밝혀진다. 플로리다 법정이 고커로 하여금 호건에게 1억40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가장 기뻐했던 이 중 하나는 틸이었다. 그는 과거 동성애자 폭로로 입은 자신의 피해에 보복하기 위해 10년 넘게 호건에게 소송 비용을 은밀하게 지원해 왔다. 유명인의 위선과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사회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던 고커는 결국 배상금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을 신청한다. ‘컨스피러시’는 한 자산가가 어떻게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는 음모를 꾸몄는지 그린 책이다. 저서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를 집필한 칼럼니스트이자 기업의 마케팅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고커 소송 이면에 도사린 음모를 파헤쳤다. 법의 허점을 이용한 틸이 거대 자본을 무기로 언론·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위배했다고 봤다. 국내에도 이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까지 국회에서 공회전하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자유를 침해할 독소 조항을 안고 있다. 자본가, 기업에 의해 ‘입막음용 소송’이라 불리는 전략적 봉쇄 소송도 가능케 할 위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틸의 순자산에서 0.3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돈이면 언론사를 쫓아낼 수 있다”고.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쇼케이스 및 시범공연 수준까지 만든 공연을 상업 공연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새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팬데믹으로 침체된 공연계엔 반가운 소식이다. 서울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가 기획한 ‘창작뮤지컬어워드 넥스트(NEXT)’는 우승자에게 작품개발비 2000만 원을 지원하고 2022년 2월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무대에 오를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선정 후 지원금만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평가단이 참여해 우승자를 가리는 일종의 경연 형태로 기획됐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9일 열린 ‘창작뮤지컬어워드 넥스트(NEXT)’에서는 뮤지컬 ‘앨리스 스튜디오’가 최종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은 주인공 로라가 드랙퀸(여장남자)인 앨리스가 운영하는 앨리스 스튜디오에 방문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수자로 살며 사회 편견에 맞서는 이야기를 풀어내 관객심사위원단과 전문심사위원단이 참여한 현장 투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앨리스 스튜디오와 경합을 펼쳤던 다른 두 작품 ‘바이칼 로드: 세 개의 시간’과 ‘보이즈 인 더 밴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창작뮤지컬어워드 넥스트(NEXT)는 시범공연 단계까지 도달했지만 공식적인 상업 공연으로 이어지지 못한 창작 뮤지컬을 경연을 거쳐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초기 기획 및 제작 단계부터 제작비를 지원하는 사업은 그간 여러 기관, 단체에서 여러 차례 기획했으나 어느 정도 완성된 작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공연계에서 드문 편이다. 최명준 충무아트센터 공연사업팀장은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침체돼 흥행작을 무대에 올리기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대형 작품과 일부 소극장 인기작으로 시장이 크게 양분한 상황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는 작품이 많다”고 했다. 이어 “초기 제작 단계부터 지원하는 사업은 여러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만큼 충무아트센터는 시범 공연 단계까지 완성한 작품을 그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공공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경연은 짧은 시간에 여러 작품을 공연해야 하는데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으로 낭독공연 형태로 이뤄졌다. 앞서 충무아트센터는 5월부터 경연에 출품할 작품을 공모했다. 전문 심사위원 6명이 세 차례에 걸쳐 33개 작품을 평가했고, 최종 3개 작품이 관객 평가를 받을 경쟁작으로 선정됐다. 지난달 중순에는 공개 모집한 60여 명의 관객심사위원단도 직접 우승작 투표에 참여했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1 대한민국 SNS 대상’ 공공부문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네이버TV,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5개의 온라인 채널 및 소셜네트워서비스(SNS) 를 운영 중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다양한 문화예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 조회수 및 노출수가 가장 높았던 네이버 블로그 및 포스트에서는 ‘아르코 온라인극장’ ‘슬기로운 문화생활’ ‘창작산실/창작공연’ ‘공공미술/작은미술관’ 등 여러 문화예술 소식을 정기적으로 전하고 있다. 가장 성과가 좋은 네이버 블로그는 누적 방문자가 817만 명으로 조회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00만회를 넘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게시된 콘텐츠 조회수도 지난해 각각 345만 회, 195만 회로 나타났다. 한국소셜콘텐츠진흥협회가 주최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인플루언서산업협회가 후원하는 2021 대한민국 SNS 대상은 올해로 11회를 맞는다. 공공기관과 기업의 SNS 활용 현황을 평가해 시상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같은 여성으로서 마리 퀴리라는 인물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의 집념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음악관에서 열린 제5회 동아뮤지컬콩쿠르 본선 경연 및 시상식에서 대학·일반부 금상을 수상한 김윤지 씨(24·이화여대 졸업)는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 중 ‘또 다른 이름’을 불렀다. 그는 “작품 속 마리 퀴리의 이야기를 알면 알수록 빠져들었다. 이 곡으로 나중에 실제 공연 무대까지 오르는 게 목표”라며 환하게 웃었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연기가 부족하고 노래만 잘할 것’이라는 편견을 깰 수 있어서 이번 수상이 더 뜻깊다”고 말했다. 이날 본선 경연에서는 여성 참가자들이 강세를 보였다. 금상을 배출하지 못한 고등부를 포함해 부문별 금·은·동상은 모두 여성 참가자 8명에게 돌아갔다. 중등부 금상은 ‘위키드’의 ‘마법사와 나’를 부른 김하랑 양(13·심석중 1학년)이 수상했다. 김 양은 “이 곡을 알게 된 뒤로 꼭 동아뮤지컬콩쿠르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등부에서는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에서 ‘호프’를 노래한 허찬화 양(18·대구 구암고 3학년)이 은상을 받았다. 허 양은 “감정이 북받쳐 표현이 격해진 점이 아쉽지만 제 실력에 맞는 좋은 성과를 얻은 것 같다”며 기뻐했다. ‘비틀쥬스’의 ‘Dead Mom’을 불러 동상을 받은 홍승희 양(17·부산여자상업고 2학년)은 “함께 음악을 공부했던 친한 언니가 부산 여러 시장을 뒤져가며 구한 원단으로 경연 의상을 만들어줬다. 좋은 성과로 이어져 뿌듯하다”고 했다. 본선 심사는 이성준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교수, 홍유선 안무가, 김정한 연출가, 성두섭 류수화 배우가 맡았다. 이성준 심사위원은 “여성 참가자들의 섬세한 표현력, 연기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중등부 참가자들이 일반부와 견줄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한국 뮤지컬의 미래가 밝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김정한 심사위원은 “고등부의 경우 예년 금상 수상자만큼 뚜렷하게 실력을 드러낸 참가자가 없어 아쉬웠다”면서도 “전반적으로 참가자들의 노래 표현력, 발성, 무대 장악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올해 동아뮤지컬콩쿠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이 마스크 착용 후 입장, 자가진단표 작성, 발열 검사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치러졌다. 시상식을 포함한 모든 과정은 무관객으로 진행됐다. 본선 채점표와 참가자들에 대한 개별 심사평은 동아뮤지컬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musical)에 이달 중 게시될 예정이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대학·일반부 △금상 김윤지 △은상 이은지(단국대 4학년) △동상 김은아(서울예대 3학년) △장려상 이승민(단국대 1학년) 양요한(서경대 3학년) 유건우(서울대 졸업) 송유진(국민대 2학년) 김보람(명지대 졸업) 염동언(경희대 졸업) 정예은(단국대 3학년) 한지희(서울예대 3학년) 서재홍(동국대 2학년) ▽고등부 △은상 허찬화 △동상 홍승희 △장려상 김도영(가정고 3학년) 성낙용(서울공연예술고 3학년) 송태희(대전괴정고 2학년) 이온유(성사고 3학년) 윤소민(서울 중앙여고 1학년) ▽중등부 △금상 김하랑 △은상 양수현(경기 광주 신현중 3학년) △동상 장소연(경기 고양 중산중 3학년) △장려상 유수민(국립전통예술중 1학년) 이지은(언주중 1학년) 김태이(경기 광주 신현중 3학년)김기윤 기자 pep@donga.com}
《UFC 정찬성 선수의 유튜브 채널 ‘코리안 좀비’와 카카오TV는 ‘파이트 클럽’ 시리즈를 함께 내보내고 있다. ‘배틀 로얄 실사판’을 표방하는 이 콘텐츠는 4일 1화를 업로드한 뒤 일주일 만에 두 채널을 합쳐 조회수 280만 회를 기록했다. 11일 공개된 2화는 공개 10시간 만에 100만 회를 넘겼다. 파이트 클럽은 14명의 참가자가 일주일 동안 합숙하며 총 1억 원을 걸고 일대일 격투를 통해 생존 경쟁을 벌이는 콘텐츠다. 승리한 자는 한 단계 위로 승급하거나 상대의 상금을 빼앗을 수 있다. 최고 등급에 오른 참가자가 다른 최고 등급의 참가자와 싸워 이길 경우 지금껏 모은 상금을 챙겨 파이트 클럽을 떠날 수 있다. 간단한 규칙과 혈투만이 존재하는 이 콘텐츠에 시청자들은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현실”이라며 열광하고 있다.》 극한으로 치닫는 생존 경쟁이 2021년 콘텐츠 업계를 휩쓸고 있다. 예능, 드라마, 유튜브 콘텐츠 등 장르와 플랫폼도 다양하다. 파이트 클럽을 비롯해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등 올해 시청자에게 ‘먹힌’ 콘텐츠는 공통적으로 ‘생존’이라는 코드를 갖고 있다. 특수부대 간 대결을 통해 우승자를 가린 채널A의 ‘강철부대’, 약 4억8000만 원의 상금을 두고 속고 속이는 심리전을 펼친 유튜브 콘텐츠 ‘머니게임’까지. 이 흐름을 타고 MBC와 웨이브는 생존 서바이벌 ‘피의 게임’ 10월 방송을 앞두고 있다. 2021년 우리는 왜 이토록 생존에 목매는가.① 공정한 규칙? 기계적 평등, 보상, 자발성으로 포장…사회에 던지는 비판적 메시지 ‘규칙만 따르고 우승하면 누구든지 상금과 영예를 얻는다.’ 생존 게임 콘텐츠들은 공통적으로 이 전제 조건을 갖는다. 참가자들 모두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전해 듣고, 주최 측이 마련한 판에서 승리하면 달콤한 보상이 따른다. 목숨까지 한번 걸어볼 만큼. 그런데 판을 열어 보면 생존 경쟁은 결코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다. 동일한 시공간에서 같은 종목의 게임을 벌이는 수준의 기계적 평등에 가깝다. 파이트 클럽에서는 통상 격투기에서 따지는 체급 차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부상자는 오히려 더욱 집요하고 가혹하게 괴롭힘 당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강철부대‘는 부대별 다른 주특기를 보유하고 있기에 미션에 따라 임무 수행 능력에 큰 편차가 발생한다. 모든 게임이 공정하다 믿었던 오징어게임 안에서도 의사 출신의 참가자는 비밀스러운 거래를 통해 게임을 미리 파악하는 편법을 쓴다. 이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겉은 공정해도 속은 불평등한 현실 세계와 똑같다”며 분개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불합리, 불공정은 자발성에 의해 전부 정당화된다. 생존 게임에 참여한 모든 이는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 있다’는 룰에 동의했기 때문.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이 투표를 거쳐 과반수 의견을 따라 게임을 한 차례 중단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게임이 싫으면 스스로 포기하라”는 시청자의 반응도 많다. 실제 부상이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게임을 중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언제든 ‘싫으면 그만해도 된다’는 게임 특성상 모든 과정에는 개인의 자발적 의지가 포함돼 있고, 게임은 정당한 듯 보인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생존을 다룬 콘텐츠는 ‘룰은 공정하다’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 2030이 늘 공정을 외치듯 게임과 사회의 룰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② 극한 상황 속 적나라한 인간 심리 묘사 2009년 CJ ENM이 선보인 ‘슈퍼스타K’ 시리즈가 성공한 이후 한국 콘텐츠 업계는 10년 넘게 오디션에 골몰해왔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참가자를 ‘생존’ 아니면 ‘탈락(죽음)’이라는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는 프로그램이 현재 생존 코드의 콘텐츠다. 극한으로 내몰린 인간 군상은 천차만별이다. 위기를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인간 심리, 본성에 대한 묘사는 콘텐츠의 묘미로 꼽힌다.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르기 힘든 입체적 캐릭터들은 몰입도를 높인다. 시청자들은 “승진 경쟁을 앞두고 처절하게 싸우는 우리 직장 상사들 같다”거나 “역시 사람은 믿을 수 없다”며 공감한다. 오징어게임에서 명문대 출신의 조상우(박해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차비를 건네는 아량을 베풀다가도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엔 그를 배신한다. 늘 팀을 먼저 생각하던 성기훈(이정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결국 상대 오일남(오영수)을 속인다. 머니게임은 인간의 ‘바닥’ ‘악’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양변기도 없고, 물도 나오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참가자들은 몸싸움하고 욕설을 마구 내뱉는다. 파이트 클럽 참가자들은 약한 상대를 택해 쉽게 돈을 챙기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파이터가 약자만 골라 싸운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고심한다. 주로 팀 대결로 진행된 강철부대 안에서는 승부보다 뒤처진 팀원을 챙기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동료를 거칠게 몰아세우며 “네가 계속 이러면 다 같이 망한다”며 나무라는 모습도 보였다.③ 왜 이렇게까지? “바깥은 더 지옥” ‘오징어게임이 존재한다면 참가하겠습니까?’ 근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런 설문조사 글이 다수 올라왔다. 여러 설문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456분의 1 확률에 베팅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의견이 다수지만, ‘참가하고 싶다’고 응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드라마처럼 극한으로 몰린 상황에 놓여 있다면 한번 걸어볼 만하다”는 의견이다. 오징어게임 속 어떤 캐릭터와 내가 닮았는지 측정하는 ‘성격 테스트’ 콘텐츠까지 나왔다. 가상의 생존 게임이 시청자를 고민에 빠지게 할 만큼 몰입감이 높은 이유는 각 인물에게 현실적이면서도 충분한 서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과거 ‘배틀 로얄’ 등 데스 게임 부류의 콘텐츠에서 참가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게임을 하며 서로 죽이고 죽는 내용과도 차이가 있다. 생존 게임에 참여하는 주된 현실적 이유는 돈이다. 생존 위협, 빚, 도박, 주식 손실, 생활고 등 각자의 이유로 나락으로 몰린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이 한 방에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은 게임이 유일해 보인다. 강철부대, 파이트 클럽에서는 돈뿐만 아니라 명예와 자존감도 이들이 게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참가자들은 “상대를 눌러야 내가 산다”며 승리를 정당화한다. 고된 현실에 지친 시청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의 서사에 열광하고 있다. 이들이 고난을 극복했을 때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생존 게임 콘텐츠를 즐겨 본다는 자영업자 이한준 씨(34)는 “목숨을 건 게임을 하다 끝내 난관을 극복한 우승자를 보고 울컥했다”고 했다. 오징어게임을 시청한 직장인 이성민 씨(32)는 “현실을 매력적으로 그린 ‘계급 우화’ 같다”고 평했다. 결국 생존 게임 콘텐츠가 이토록 각광받는 건 처절한 경쟁에 처한 우리 현실을 빼다 박은 듯 치밀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영미 평론가는 “삶은 지옥이고 삐끗하면 다 죽는다. 살얼음판 걷듯이 조심조심 가는 우리의 모습이 콘텐츠에 녹아들었다”고 분석했다. 오징어게임 속 오일남의 대사는 이를 한마디로 여실히 보여 준다. “여기(현실)가 더 지옥이야.” 김기윤 문화부 기자 pep@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5회 인촌상 시상식이 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유지를 이어 나가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용훈)와 동아일보사는 인촌 선생의 탄생일인 10월 11일에 맞춰 매년 시상식을 열고 있으나, 올해는 대체공휴일인 관계로 8일에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날 수상자는 △아주자동차대학(교육) △박세은 발레리나(언론·문화) △이종화 고려대 정경대학장 겸 정책대학원장(인문·사회)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부 교수(과학·기술)로 각각 상장과 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 이용훈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올해로 탄생 130주년을 맞은 인촌 선생은 ‘국권을 빼앗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천하셨다”며 “이 자리의 주인공들도 남다른 열정과 신념으로 사회에 이바지한 분들이다. 인촌상 수상이 더 큰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작은 격려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안병영 인촌상 운영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운영위원회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후보군을 추린 뒤 7, 8월에 수차례 회의를 열고 최종 수상자를 확정했다. 충남 보령시 아주자동차대학은 ‘세계 수준의 자동차 특성화 대학’을 목표로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기술인들을 26년간 양성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박병완 총장(62)은 “근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 인재 양성으로 민족 자강을 성취한 인촌 선생의 뜻을 기려 세계적 전문가를 배출하도록 열심히 달리겠다”고 했다. 박세은 발레리나(32)는 세계 최정상급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단(BOP)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최고 등급 무용수인 ‘에투알(Etoile·별)’로 올해 6월 지명됐다. 박세은은 “겸손하게 뒤에서 남의 공로를 드높여 주신 인촌 선생을 본받아 상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예술인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시즌 공연 중인 박세은을 대신해 시상식에는 모친 최혜영 씨가 참석했다. 이종화 교수(61)는 인적 자본과 경제 성장의 상관 관계를 연구한 거시 경제학 분야의 대표 석학이다. 이 교수는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경제학자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다.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연구와 사회봉사로 인촌 선생의 뜻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2차전지 양극 소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선양국 교수(60)는 “제 작은 노력과 연구가 우리 후손과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진하겠다. 과학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키라는 격려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수상자 4명과 이 이사장, 안 위원장,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정진택 고려대 총장 등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 형식으로 열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진짜 힘들어서 죽고 싶어요. 내가 왜 이 큰일을 벌이겠다고 했는지….” 배우 윤석화(65)의 입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하소연에는 몇 달 내내 품고 있던 근심과 부담감이 짙게 묻어났다. 구성, 연출, 출연을 전부 도맡아 관객 앞에서 홀로 그려 나갈 그의 ‘자화상’에 대해 “해봤던 작품들이지만 채우고 고쳐 나갈 게 많다”며 너덜너덜해진 두툼한 대본을 보여줬다. 연기는 물론이고 그간 제작자, 연출가로 활동하며 공연엔 도가 튼 베테랑에게도 “관객과 동료들에게 항상 확인받고 싶다”는 열망엔 변함이 없었다. “연극은 참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연기 인생 46년을 맞은 윤석화가 그의 ‘연기 고향’인 소극장 산울림으로 돌아온다. 20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그가 산울림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엮은 아카이빙 공연 ‘윤석화 아카이브Ⅰ―자화상’로 관객과 만난다. 윤석화의 30대를 밝게 빛냈던 세 작품 ‘하나를 위한 이중주’(1988년) ‘목소리’(1989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년)를 엄선했다. 4일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에서 만난 윤석화는 “다행스럽게 산울림에선 지금도 ‘젊은 연극’이 올라오고 있지만, 이를 꾸준히 유지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안다”며 “연극계 선배로서 산울림에 고마움을 표하고, 역사성을 되새길 방법을 고민하다 판을 벌였다”고 했다. 이어 “공연계가 어렵고 제작비가 부족하다 해도 저 혼자 들고 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짓일 줄 몰랐다. 죽음의 골짜기를 걷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이번 공연은 윤석화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세 작품의 명장면을 엮었다. 과거 공연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안무, 노래를 곁들여 작품을 재해석했고, 그의 과거와 현재 연기 장면을 중첩해 보여주는 영상도 곁들인다.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 안에 완전히 다른 세 캐릭터를 밀도 있게 선보이는 셈. 실컷 넋두리를 늘어놨어도 밑줄이 잔뜩 그어진 대본을 넘기는 순간 그의 눈망울이 다시 빛났다. 특히 영국의 유명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가 집필해 산울림에서 세계 초연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올리자 눈시울도 붉어졌다. 1992년 3월부터 약 9개월간 장기 공연의 신화를 써내려간 작품이다. 단 한 번의 암전 없이 90분 동안 윤석화가 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연기를 펼친다. “기립박수가 흔치 않은 시대였어요. 어느 날 무대 제일 앞줄에서 휠체어를 탄 관객 한 분이 조금이라도 일어서려고 팔에 힘을 주고 들썩거리던 모습을 잊지 못해요.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늘 저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침체된 시기 “극장을 찾는 관객은 다 예뻐 보인다”는 그는 작은 이벤트도 기획 중이다. “가진 재산은 사람뿐”이라며 원로인 박정자 손숙부터 박상원 최정원 전수경 배해선 송일국 이종혁 박건형 박해수 등 배우 20여 명에게 산울림의 일일 하우스 매니저를 부탁했다. 이들이 공연 시작 전 직접 책자를 관객에게 나눠주고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예정이다. “유명 배우들 덕분에 제 부족한 연기도 조금은 상쇄될 것 같다”며 웃었다. 산울림에서 이번 공연을 마치면 윤석화는 서울 예술의전당, 대학로에서 다른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아카이브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옛 기억을 되살려 내는 것보단 끝없는 도전에 목말라 있는 듯했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니까요.” 전석 4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진행한 월드투어 콘서트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미국, 유럽, 아시아를 거친 투어는 해외 언론으로부터 “다감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곡 ‘Epiphany’에서 빛과 조형물을 활용해 시공간의 역행을 표현한 장면, ‘Singularity’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듯 왜곡된 공간감을 표현한 무대, ‘Dionysus’에서 12m 대형 표범 동상을 앞세워 빛, 불꽃과 함께 펼친 군무가 압권으로 꼽혔다. 음악, 춤, 영상, 세트가 어우러진 투어에서 명장면을 연출한 이는 ‘장면술사’로 불리는 유재헌 유잠스튜디오 대표(47·사진). BTS에 앞서 서태지, 넬, 비, 싸이, 블랙핑크 콘서트부터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서 화제가 된 ‘인면조 인형’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공연, 전시, 콘서트 등 놀이판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 그가 국립정동극장 신작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무대·영상 아트디렉터로 참여한다. 그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그저 공연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장면 속으로 스며드는 개념으로 작업했다. 미디어아트 기술을 과하게 부각하지 않으면서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신작은 1902년 근대식 극장 원각사(圓覺社)에서 첫 유료공연을 펼친 ‘소춘대유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감형 콘텐츠다. 팬데믹으로 공연을 올리지 못하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원들 앞에 100년간 공연장을 지킨 백년광대와 오방신(극장신)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초연 당시에도 ‘호열자(콜레라)’로 공연이 중단돼 팬데믹이 덮친 오늘날 시대상과도 닮았다. 옛 원각사를 계승한 무대가 국립정동극장이기에 의미도 남다르다. 멀티 프로젝션, 매핑, 홀로그램, 딥페이크 등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실제 배우들의 연기와 100년 전 옛 광대놀음을 함께 구현한 게 특징이다. 지금까지 대형 미디어아트를 주로 선보인 그는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무대를 맡았다. 그는 “규모는 개별 작품의 특징일 뿐이다.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는 전통 공연이야말로 현대적 표현 방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스튜디오를 차린 뒤 콘서트를 비롯해 오페라, 무용극, 뮤지컬에 이어 김연아의 아이스쇼 무대까지 진출했다. “예전에는 제 일을 ‘세트 디자인’으로 불렀는데 요즘에는 ‘시닉(scenic·무대장치)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관객은 시각, 후각, 청각을 구분해 장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 순간을 기억하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대표는 상품성보다 경험을 우위에 두고 창작한다. 그는 “BTS는 팬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그룹”이라며 “그만큼 팬덤과 아티스트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팬의 경험에 집중해 작품을 연출한다”고 설명했다. 온갖 장르를 섭렵한 그가 고수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매뉴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해왔던 매뉴얼이 아닌 매번 새로운 시도가 필요해요.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사실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늘 모든 감각과 시야를 열고 고민할 뿐입니다.” 22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전석 4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구독자가 약 28만 명인 유튜브 채널 ‘Cafe Juseyo’를 운영하는 멕시코인 리비에르 고메스(31)는 한국에서 벌어진 범죄, 치안, 경찰 수사에 관한 콘텐츠를 제작한다. 스페인어로 제작하는 영상은 남미 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댓글에는 “밤에도 자유롭게 밖에 다닐 수 있는 한국 사회가 부럽다”는 반응이 많다. 멕시코 법무부에서 근무했던 고메스는 치안이 좋은 한국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됐고 얼마 뒤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현재 경기대에서 범죄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케이팝, 드라마, 영화 등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폭발하는 한류 전성시대. 외국인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며 관련 유튜브 콘텐츠도 급증하고 있다. 과거 일부 외국인 유튜버들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을 칭찬하는 식으로 인기를 끌었다면 최근에는 자국인을 상대로 한국의 다양한 면모를 비추는 경우가 많다. 우수한 치안부터 정겨운 시골, 일반인들의 평범한 라이프스타일까지, 외국인 유튜버들이 느낀 한국의 매력은 다양하다. 이들은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같은 특정 키워드를 주제로 영상을 만들면 조회수가 잘 나온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풍부한 한국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고메스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멕시코에 비해 범죄 발생 비율이 낮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치안 수준을 유지하는 한국의 비결이 궁금했다. 멕시코에선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사이버 범죄, 폭력에 대해 한국 경찰은 풍부한 수사 노하우도 갖고 있다. 이를 영상으로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고국에 돌아갔을 때 멕시코가 더 안전해지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인 바트 판 헤뉘흐턴(29)은 한국의 시골에 꽂혔다. ‘한국의 낯설고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찾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을 표방한다. 구독자 약 9만 명의 유튜브 채널 ‘iGoBart’에서 그는 자전거를 타고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는 영상을 올린다. 네덜란드에서 회사를 다니던 그는 스페인 여행 중 한국인을 만나 한국에 호기심을 느꼈고, 한국에 왔다가 매료돼 2019년 아예 정착했다. 최근에는 약 두 달 동안 홀로 2000km 정도를 다녔다. 그는 “지리학을 전공해 한국 사회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남들과 다른 교육적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한국 시골의 아름다움과 주민들의 따뜻함을 알리는 보람도 있다”고 밝혔다. 잠시 네덜란드에 귀국했을 때는 이웃에 사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만나 인터뷰도 했다. 일제강점기 흔적이 남은 한국의 유적지도 찾았다. 그래서인지 채널 구독자 중엔 한국인 비율도 30∼40%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도 모르고 살았던 한국의 역사까지 전해줘 고맙다”는 댓글을 남긴다. 구독자 11만 명을 보유한 채널 ‘Jake the Korean Dream’을 운영 중인 프랑스 출신의 제이크는 자신의 ‘서울살이’를 유쾌하게 전한다. 특히 한국 직장생활을 꿈꾸는 외국인들을 위해 자신이 몸담았던 스타트업이나 직장 생활 이야기를 자세히 전한다. 구독자 43만 명의 유튜브 채널 ‘Oh, My friend!’를 운영 중인 브라질 출신의 아만다는 한국 사람들의 인생, 인간관계, 패션 등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룬다. 제이크는 “케이팝이나 영화뿐 아니라 한국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한국의 매력을 더 많이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진행한 월드투어 콘서트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미국, 유럽, 아시아를 거친 이 월드투어는 해외 언론으로부터 “다감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음악, 춤, 영상이 어우러진 이 월드투어에서 수많은 장면을 관객 눈앞에 찍어내듯 펼쳐낸 이는 ‘장면술사’로 불리는 유재헌 유잠스튜디오 대표(47)다. BTS에 앞서 서태지, 넬, 비, 싸이, 블랙핑크의 콘서트부터 평창올림픽 개회식서 화제가 된 ‘인면조 인형’ 쇼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공연, 전시, 콘서트 등 놀이판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 그가 이번에는 22일 개막하는 국립정동극장 신작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에 무대·영상 아트디렉터로 참여한다. 유 대표는 4일 인터뷰에서 “관객이 그저 공연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장면 속으로 스며든다는 개념으로 작업했다. 미디어아트 기술을 과하게 부각하지 않으면서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은 한국에서 일반 관객을 상대로 선보인 첫 근대 유료공연 ‘소춘대유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감형 콘텐츠다. 팬데믹으로 공연을 올리지 못하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원 앞에 100년 동안 공연장을 지키며 살아온 백년광대와 오방신(극장신)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공연이 펼쳐졌던 근대식 극장 원각사(圓覺社)를 계승한 무대가 현재 국립정동극장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멀티프로젝션, 맵핑, 홀로그램, 딥페이크 등 기술로 실제 배우들의 무대와 100여 년 전 옛 광대의 놀음을 컴퓨터그래픽(CG)처럼 함께 구현한 게 특징이다. 여러 공연, 전시에서 대형 미디어아트를 선보인 그가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무대서 작품을 만든다. 그는 “규모가 줄어든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개별 작품의 특징일 뿐”이라며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는 전통공연이야말로 현대적 표현방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연은 호흡과 같다. 제가 만든 공간에서 관객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에너지를 돌려받으면서 저 역시 유기적으로 호흡한다”고 설명했다. 집안에 음악가가 많아 어려서부터 음악을 많이 듣는 동시에 순수미술도 접해온 그는 2000년 스튜디오를 차린 뒤 서태지, 싸이, 빅뱅, 2NE1, 아이유 등 여러 가수들의 콘서트 무대를 맡았다. 오페라, 무용극, 뮤지컬은 물론 김연아의 아이스쇼까지 놀이판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예전엔 제 일을 ‘세트 디자인’으로 불렀는데 ‘시닉(Scenic) 디자인’이란 말이 생겼어요. 관객은 시각, 후각, 청각을 구분해 장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 순간을 기억하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설명합니다.” 유 대표는 상품성보다는 경험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창작한다. 그는 “BTS 이후로 팬덤과 아티스트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BTS는 팬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팀인데 팬이 느끼고 경험하는 내용에 집중하도록 연출을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장르에서든 가상과 현실을 결합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건 익숙한 풍경이 됐다”고 덧붙였다. 온갖 장르를 섭렵한 그가 끝까지 고수하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매뉴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해왔던 공식, 매뉴얼이 아닌 매번 새로운 시도가 필요해요.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사실 규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늘 모든 감각과 시야를 열고 고민할 뿐입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리얼리즘 미술, 리얼리즘 문학은 있는데 리얼리즘 음악도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으로도 리얼리즘 구현이 가능하다는 게 서울대 작곡과(이론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설명이다. 책에선 방탄소년단(BTS)이 2017년 발표한 ‘봄날’을 사례로 언급한다. 느리게 반복되는 서정적 선율,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가사 등 곡이 가진 느낌과 음향은 듣는 이로 하여금 추모의 감정이 느껴지게 한다. BTS가 이 곡에 대해 ‘세월호 추모’에 관한 내용이라고 콕 집어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곡을 듣는 이라면 현실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을 머릿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재현해낸다. “음악은 결국 사회를 품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클래식부터 현대음악까지 여러 곡이 가진 아름다움과 그 의미에 대해 풀어냈다. 이를 음악미학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철학의 한 분야인 미학과 음악학이 만나는 학문이다. 대중에게 익숙지 않은 이 개념에 대해 저자는 드뷔시의 ‘달빛’, 슈베르트의 ‘송어’ 등 익히 알려진 클래식부터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BTS의 ‘봄날’을 사례로 들며 이해를 돕는다. 예시로 든 곡들이 귀에 익다고 해도 독자에게 책은 다소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다. 휴대전화 속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접하는 시대에 “적절한 연주가 음악적 의미를 만든다” “음악이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거나 “회화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할 수 없지만 음악은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철학적 사유는 우리가 늘 듣던 음악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곱씹게 한다. 아도르노, 니체, 루소 등 유명 철학자들이 음악의 가치에 대해 평가한 내용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음악의 미래 변화에 대해서도 짚었다. 앞으로 음악은 어떻게 진화할까. 인류가 축적한 음악 이론을 스펀지처럼 빠르게 흡수하는 인공지능(AI) 작곡가가 등장하는 시대. 저자는 “아직 인간의 작곡법을 모방하는 수준”이라면서도 “AI가 대중화되면 음악 창작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최고의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확신한다.” 제6대 제임스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53·사진)는 그의 007 시리즈 은퇴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9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출연진과 감독이 국내 언론의 질문에 답한 영상이 이날 공개됐다. 크레이그를 비롯해 조연 라미 말렉, 레아 세두, 러샤나 린치, 케리 후쿠나가 감독이 참여했다. 크레이그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내가 출연한 007 시리즈 중 역대 최고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6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첩보 액션영화 007 시리즈에서 그는 여섯 번째로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 ‘카지노 로얄’(2006년)을 시작으로 ‘퀀텀 오브 솔러스’(2008년), ‘스카이폴’(2012년), ‘스펙터’(2015년)에 출연했다. 이번 편은 전체 시리즈 중 25번째로 크레이그의 다섯 번째 출연작이다. 그는 “2015년 ‘스펙터’를 연기한 뒤 ‘이 정도면 007로서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출연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했다. 재밌고 훌륭한 생각들을 점점 발전시켜 작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출연작 중에선 제임스 본드를 처음 연기한 ‘카지노 로얄’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덧붙였다. 후쿠나가 감독은 “이번 작품은 크레이그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다”며 “‘카지노 로얄’을 다시 보면서 마지막 챕터를 어떻게 구상할지 고민했고 지금의 007이 있게 된 과정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크레이그 역시 “007 시리즈에선 액션이 이야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개를 훌륭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이 잘 표현됐다”고 강조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최고의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확신한다.” 제6대 제임스 본드이자 역대 배우들 중 가장 오래 본드 역을 연기한 대니얼 크레이그(53·사진)는 그의 007 시리즈 은퇴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9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007 노타임 투 다이’의 출연진과 감독이 국내 언론의 질문에 답한 영상이 이날 공개됐다. 크레이그를 비롯해 조연 라미 말렉, 레아 세이두, 라샤나 린치,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참여했다. 크레이그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내가 출연한 007 시리즈 중 역대 최고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6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첩보 액션영화 007 시리즈에서 그는 여섯 번째로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 ‘카지노 로얄(2006)’을 시작으로 ‘퀀텀 오브 솔러스(2008)’ ‘스카이폴(2012)’ ‘스펙터(2015)’에 출연했다. 이번 편은 전체 시리즈 중 25번째로 크레이그의 다섯 번째 출연작이다. 그는 “2015년 ‘스펙터’를 연기한 뒤 ‘이 정도면 007로서 할 만큼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다시 출연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했다. 재밌고 훌륭한 생각들을 점점 발전시켜 작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출연작 중에선 제임스 본드를 처음 연기한 ‘카지노 로얄’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덧붙였다. 후쿠나가 감독은 “이번 작품은 크레이그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다”며 “‘카지노 로얄’을 다시 보면서 마지막 챕터를 어떻게 구상할지 고민했고 지금의 007이 있게 된 과정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크레이그 역시 “007 시리즈에선 액션이 이야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개를 훌륭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부분이 잘 표현됐다”고 강조했다.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와 대결하는 악당 사핀 역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연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라미 말렉이 맡았다. 그는 “본드에게 가장 공격적이고, 괴로운 행동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본드걸’ 매들린 스완 역을 연기한 레아 세이두는 “여성 캐릭터도 진화했다. 단순히 본드를 돕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연기인생 65주년을 맞은 대배우가 동료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 있었다. “이제 더 하고픈 작품이 뭡니까?” 이순재(86)는 그때마다 연극 ‘리어왕’을 꼽아 왔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 최고령 리어왕에 등극했다.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리어왕’의 기자간담회에 주연 배우이자 예술감독으로 참석한 이순재는 “종종 ‘늙은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연극은 역시 리어왕 아니겠느냐’고 말하던 게 공론화돼 무대까지 서게 됐다. 연기인생 중 해본 적 없는 작품”이라며 “만용이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필생의 마지막 대작이라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기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런 기회가 제게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입에서 대본이 녹아나고,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 익히고 있다”며 웃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작품을 맡은 이현우 연출가(순천향대 영미학과 교수)도 참석했다. 그는 여러 셰익스피어 작품의 연출, 번역을 맡아 국내에서 ‘셰익스피어 대가’로 통한다. 이 연출가는 “유럽에 흑사병이 만연하던 시기, 셰익스피어는 집에 격리된 상태에서 리어왕을 집필했다. 원전에도 소수자, 가난한 자에게 흑사병이 더 큰 피해를 끼치는 시대적 상황이 나온다. 현 시대 관객에게도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 이순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였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져 미치광이 노인으로 변하는 리어왕을 선보인다. 이순재는 모든 것을 걷어낸 정공법을 택했다. 3시간 20분이 넘는 원전 분량을 그대로 살리며, 23회차 전 공연에서 리어왕 역할을 홀로 책임진다. 그는 “그간 여건상 원전을 생략한 리어왕 무대가 많았다. 이번엔 원전 그대로 의상, 분장까지 재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극단 관악극회와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무대는 최종률 박용수 김인수 임대일 등 중견 배우들을 비롯해 소유진 이연희 오정연 등도 출연한다. 이순재는 “셰익스피어 극의 핵심은 언어다. 복합적 용어, 수식어구가 많아 어렵지만 젊은 배우들과 원전의 대사를 정확하게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역동적으로 신나게 준비해서 제대로 완주해 보겠다”고 답했다. 10월 30일부터 11월 2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4만∼9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물랑루즈’(사진)가 제74회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0개 부문을 석권했다. 공연계 최고 권위를 가진 토니 어워즈는 아카데미상, 에미상,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4대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약 1년 연기돼 2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윈터가든 시어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물랑루즈는 올해 뮤지컬 분야 13개 부문 중 10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연출·안무·오케스트레이션(편곡)·남우주연·남우조연·무대디자인·음향디자인·조명디자인·의상디자인 부문이다. CJ ENM이 글로벌 프로듀서로 참여해 토니 어워즈를 수상한 건 2013년 뮤지컬 ‘킹키부츠’에 이어 두 번째다. 물랑루즈는 1890년 프랑스 파리의 클럽 ‘물랭루주’의 한 가수와 젊은 작곡가의 사랑을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마돈나, 엘턴 존, 비욘세, 레이디 가가, 아델, 리애나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곡을 더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2019년 7월 뉴욕에서 공식 개막한 물랑루즈는 코로나19로 브로드웨이 공연장들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공연을 중단했다가 24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물랑루즈는 토니 어워즈에 앞서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외부 비평가상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며 큰 기대를 모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CJ ENM이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뮤지컬 ‘물랑루즈’가 제74회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0개 부문을 석권했다. 공연계 최고 권위를 가진 토니 어워즈는 아카데미상, 에미상,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4대 시상식 중 하나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약 1년 연기돼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윈터가든 시어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물랑루즈는 올해 뮤지컬 분야 13개 부문 중 10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연출·안무·오케스트레이션(편곡)·남우주연·남우조연·무대디자인·음향디자인·조명디자인·의상디자인 부문이다. CJ ENM이 글로벌 프로듀서로 참여해 토니 어워즈를 수상한 건 2013년 뮤지컬 ‘킹키부츠’에 이어 두 번째다. 물랑루즈는 1890년 프랑스 파리의 클럽 물랑루즈의 한 가수와 젊은 작곡가의 사랑을 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마돈나, 엘튼 존, 비욘세, 레이디 가가, 아델, 리한나 등 세계적인 팝스타의 곡을 더해 대중성과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2019년 7월 뉴욕에서 공식 개막한 물랑루즈는 코로나19로 브로드웨이 공연장들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공연을 중단했다가 24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물랑루즈는 토니 어워즈에 앞서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외부 비평가상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며 큰 기대를 모았다. 이번에 연출상을 받은 알렉스 팀버스는 올해 7월 한국에서 개막해 호평 받은 뮤지컬 ‘비틀쥬스’의 세계 첫 라이선스 공연의 연출가이기도 하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서울 중구 회현역 인근 서울로7017부터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까지. 나 홀로 길을 걸으며 1930년대 경성을 관람하는 공연이 관객과 만난다. 팬데믹 시대에 맞춰 탄생한 맞춤형 1인 이동식 공연이다. 국립극단은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코오피와 최면약’을 서울로7017과 국립극단 일대에서 선보인다. 서울로7017 안내소에서 출발한 관객은 각자 휴대전화와 이어폰을 활용해 준비된 음향을 들으며 국립극단 방향으로 걷는다. 목적지인 국립극단 내 백성희장민호극장에 도착한 관객이 가상현실(VR) 기기를 활용한 한 편의 가상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끝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총 소요 시간은 약 50분. 국립극단이 주변 문화시설과 연계해 기획한 이번 작품은 다원예술가인 서현석 작가가 구성하고 연출했다. 그는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다른 시대를 살던 사람은 같은 장소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고 상상하며 1930년대 경성과 현재의 서울을 중첩해 표현했다. 공연은 소설 ‘날개’ 속 주요 배경인 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서울역 일대를 거닐었을 이상 작가의 흔적과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서 작가는 앞서 장소특정형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여의도, 세운상가 등에서 여러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팬데믹으로 인한 무력감, 심화하는 폭력성, 사회 균열이 공존하는 시대 속에서 답답한 일상의 틀을 뛰어넘게 만드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이 가능하다. 평일은 오후 1시 반부터 9시까지, 주말엔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한다. 3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18년 한 유튜버가 권총으로 실험을 했다. 헬리콥터를 타고 100m 상공으로 올라간 뒤 장전된 권총들을 자유 낙하시킨 것. 다른 총들은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격발되거나 망가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글록사의 ‘글록19’ 모델은 달랐다. 땅에 떨어져 튕겨 오른 뒤에도 고장이 나거나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총을 주운 사격수가 방아쇠를 당기자 그제야 총구가 화염을 뿜었다. 글록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보여준 이 영상은 미군 특수부대가 왜 이 총을 채택해 주요 무기로 사용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등을 거친 기자 출신의 저자는 ‘미국의 권총’이 된 글록의 탄생 배경과 확산 과정을 풀어냈다. 글록의 변천을 좇다 보니 책은 자연스레 20세기 미국 총기 시장의 흐름을 짚는 역사서 성격을 지닌다. 사회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전후 미국엔 사냥을 위한 소총 생산의 비율이 높았으나, 급격한 도시화로 사냥이 줄었다. 사람들은 휴대가 편한 권총을 선호했고, 권총에 강점을 보였던 글록사의 인기는 치솟았다. 책은 끔찍한 총기 사고, 정치권 로비 뒷이야기를 포괄한 논픽션이기도 하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을 사살한 조승희를 비롯해 많은 총기난사범들이 글록 총기를 사용했다. 미국 경찰도 허리춤에 글록 권총을 찬다.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면 총기 반대 여론이 격화한다. 제조사인 글록은 당연히 전미총기협회(NRA)처럼 총기 규제에 강경히 반대할 것 같으나 실상은 다르다. 저자는 글록이 “NRA와 총기 옹호론자를 방패막이 삼아 실속을 차리며 총기 규제를 무력화한 흑막”이라고 묘사한다. 중도적 입장에서 교묘하게 총기 규제 운동을 억누른다고 보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글록을 창립한 가스통 글록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철도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중년의 나이에 총을 만든 그가 총기를 팔아 대성공을 누린 일화는 한 편의 영화 같다. 글록이란 새 키워드로 바라본 미국 사회, 정치가 새롭게 읽힌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카이(본명 정기열·40)만큼 다채로운 색을 머금은 뮤지컬 배우가 또 있을까. 사랑에 사무친 베르테르를 연기하다가 복수에 미친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한을 노래한다. 고귀한 황태자부터 신을 향해 울부짖는 벤허, 나아가 인간이 빚어낸 괴물 연기까지. ‘이 배우는 언제 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쉼 없이 무대에 서는 그는 여러 배역을 맡아도 ‘기복이 없다’ ‘믿고 본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빼어난 가창력과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배우가 지닌 올곧은 색깔 때문인지 모르겠다. “뮤지컬의 정석이 되고 싶다”는 그는 지금껏 이뤄낸 것보단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을 먼저 꺼내놓았다. “죽을 때까지 제 무대엔 만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겸손한 말과 함께. 이번엔 또 새 모습이다.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엑스칼리버’에서 카이는 주인공 ‘아더’를 연기한다. 풋풋한 모습을 지닌 소년부터 분노, 배신을 딛고 끝내 희망을 노래하는 캐릭터다. 2019년에 초연 무대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다. 14일 만난 그는 “이상하게 이번 작품이 재밌다. 왜 그런지 고민해 보니 팬데믹을 겪으며 ‘오늘 무대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라며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무대를 더 기쁘게 누리기로 했다”며 웃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새 지평을 연 이 작품은 6세기 영국, 색슨족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아더왕 신화를 재해석했다. 평범한 소년이 왕으로 거듭나는 여정을 그렸다. 김준수, 세븐틴 도겸, 비투비 서은광이 함께 아더를 맡는다. 덜컹거리는 서사를 다듬었고 극에 개연성을 더했다. ‘지킬앤하이드’로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 음악에 화려한 무대 연출이 백미인 작품. ‘아더왕’의 넘버 2곡도 추가됐다. 카이는 “대형 창작뮤지컬에 참여해 자부심을 느낀다. 아직 부족해도 끊임없이 정답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아더는 굴곡이 많은 캐릭터다. 출생의 비밀, 왕이 될 운명, 친구의 배신, 실연 등 여러 사건이 몰아친다. 심장을 쥐어짜는 왕관의 무게도 견뎌내야 한다. 카이는 “‘분노’는 노래를 더 크게 부르거나 동작을 크게 하는 등 표현할 도구가 많다. 하지만 ‘희망’이란 감정을 연기하기란 정말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마저도 그만의 올곧은 방식으로 풀어냈다. “결국 악보, 대본에 모든 답이 있어요. 음표와 박자가 가진 감정, 느낌을 그대로 표현해요.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수입니다.” 농익은 아더 연기로 관객과 만나는 그는 슬슬 다음 작품도 시동을 걸려고 준비 중이다. 11월부턴 3년 전 호평을 받았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1인 2역을 선보일 예정이다. “배우로서 한계에 도전하는 작품”이기에 애정이 더 크다고 했다. 올해로 뮤지컬 데뷔 11년을 맞은 그는 “이제야 무대가 조금은 편안해졌다. 다만 ‘주인공 역할이 벼슬’이라는 태도나 ‘당치도 않은 오만함’을 끝없이 경계한다”고 했다. 배우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는 ‘과잉 감정’ ‘연기를 위한 연기’를 꼽았다. 최근에야 새롭게 깨달은 점도 있다며 귀띔했다. “상대역을 노래, 연기로 이기려 해선 안 됩니다. 상대를 빛내는 게 결국 제가 가진 힘이자 캐릭터를 확고하게 드러내는 방법이라 믿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