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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은 질주였다. 후반 추가시간 5분 44초. 주세종이 한국의 오른쪽 페널티 지역 앞 6m 지점에서 공격에 가담한 독일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의 공을 빼앗은 뒤 독일 골문을 향해 길게 찼다. 공은 선수들의 머리 위로 긴 포물선을 그리며 독일 골문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의 궤적을 바라본 손흥민의 전력 질주가 시작됐다. 경기 종료 직전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손흥민의 스피드는 폭발적이었다. 숨 막히는 질주는 관중의 함성 속에 골로 마무리됐다.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약 50m를 달린 뒤 골을 터뜨리는 순간 국제축구연맹(FIFA) TV 해설자는 “환상적 움직임을 보여준 손흥민이 독일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멕시코전에서 강력한 중거리포로 골을 넣은 데 이어 대회 2호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월드컵 통산 3호골로 ‘레전드’ 박지성, 안정환(이상 3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골이 ‘독일의 조기 탈락을 선고했다’고 표현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는 “환상적이다. 손흥민의 플레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손흥민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홈페이지에는 “손흥민이 한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경기 후 골 상황에 대해 손흥민은 “역습을 노리고 있었다. 세종이 형이 (노이어의) 볼을 빼앗은 뒤 내게 줬는데 그 패스가 워낙 좋았다. 잘 빼앗아서 잘 줬다. 난 골키퍼도 없는 데 넣기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경기에 대해 “우리가 이길 만한 경기였다. 우린 이 승리를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 챔피언을 이겼다”는 그는 “독일과 경기하는 것이 인생의 꿈이었다. 독일에서 꿈을 키웠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나 이겨 보는 게 소원이었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모두 한 것이다”라고 감격했다. 또다시 눈물을 흘린 그는 “선수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너무 컸다. 내 역할을 잘하지 못해서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한국의 16강, 스웨덴-멕시코전의 결과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우린 경기에만 집중했다. 다른 경기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팀을 운용한 신태용 감독에 대해서는 “내가 감독님을 잘 안다.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거는 기대와 믿음이 항상 많았는데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수비수 2명 이상이 마크했음에도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5개의 슈팅을 기록했다. 이날 손흥민이 기록한 활동량은 1만383m. 독일의 공격 전개를 막기 위해 최전방에서부터 부지런히 압박을 가했다. 그만큼 헌신했다. 경기를 앞두고 조별리그 2경기에서 2패를 떠안은 한국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세계 최강’과의 일전을 앞두고 설상가상 주장 기성용의 부상까지 겹쳤다. 이날 주장으로 나선 손흥민의 골 세리머니는 주장 완장에 키스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주장 완장을 달았지만 성용이 형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에 나선 선수와 안 나선 선수 모두에게 고맙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는 말도 했다. 선수들도 운동장에서 다 쏟아붓자는 말도 했다. 선수들의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손흥민의 모습에 앞으로 손흥민이 명실상부한 대표팀의 주장으로 ‘캡틴 손’ 시대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구자철은 “손흥민이 자신의 재능을 그라운드 위에서 꾸준히 보여주는 동시에 기성용 등 그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주장들의 장점을 잘 받아들이면 좋은 주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월드컵에서 리더십까지 검증받은 손흥민의 남은 검증 단계는 병역이다. 손흥민의 득점 순간 한 외신은 “병역법이 손흥민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아시아경기 금메달 등을 통해 손흥민이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다면 손흥민을 향한 ‘빅클럽’의 구애도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카잔=정윤철 trigger@donga.com / 김배중 기자}
정규시간이 끝나고 이어지던 후반 추가시간 3분. 김영권의 슛이 골망을 흔들었을 때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지자 독일 관중은 환호했지만 러시아 관중은 한국 관중과 함께 야유를 보냈다. 한국 선수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헤드셋을 통해 비디오판독 심판과 얘기를 나누던 주심은 경기장 밖으로 걸어가 비디오판독을 실시했다. 공이 독일 선수에게 맞고 김영권 앞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오프사이드 판정은 취소됐다. ‘전차군단’을 격침시킨 한국의 결승골은 이렇게 힘겹게 만들어졌다. 이후 독일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까지 공격에 가담하는 총공세를 펼쳤다. 한국은 이 틈을 이용해 손흥민이 후반 추가시간 6분에 하프라인 근처부터 50m가량 질주한 후 골키퍼가 없는 독일의 빈 골대에 쐐기골을 터뜨렸다. 경기 후 녹초가 된 한국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졌지만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한국은 27일 독일과의 경기에 4-4-2 전형으로 나섰다. 수비라인은 왼쪽부터 홍철-김영권-윤영선-이용이 섰고, 미드필드는 문선민-정우영-장현수-이재성으로 꾸렸다. ‘투톱’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손흥민과 현재 독일에서 활약 중인 구자철이 나섰다. 골키퍼는 1차전부터 신임을 받은 조현우가 맡았다. 이날 스타팅 멤버 중 눈에 띄는 점은 수비라인에서 있던 장현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옮긴 것이다. 장현수는 멕시코전 때 중앙 수비수로 나서 페널티킥의 빌미를 주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날 다시 선발로 나서며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가졌다. 독일은 4-2-3-1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미드필드 라인에는 토니 크로스와 메수트 외질 등 독일이 자랑하는 ‘황금 미드필더’가 총출동했다. 경기 초반 독일은 예상외로 공을 뒤로 돌리며 느슨하게 공격에 나섰다. 한국이 어떻게 나올지를 염탐하는 듯했다. 중앙 미드필더 크로스의 조율 속에 좌우 사이드로 볼을 빼고 날개 마르코 로이스 등이 크로스를 띄우는 전략을 썼다. 하지만 패스 불안과 몸을 내던지며 막는 김영권과 윤영선 등 한국 수비수들에게 막혀 골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윤영선은 월드컵 첫 경기였지만 안정적인 대인 방어 능력을 보여줬다. 수비형 미드필더 장현수도 이날은 패스 미스를 줄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등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중앙 수비 라인의 분전과 함께 한국은 골키퍼 조현우가 후반 3분 결정적인 선방을 했다. 독일 요주아 키미히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띄운 크로스를 골 지역 정면에서 레온 고레츠카가 헤딩한 것을 몸을 날려 막아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팀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인 독일은 예상보다 강하지 않았다. FIFA 랭킹 1위로 한국(57위)과는 무려 56계단이나 차이가 나는 독일이었지만 이날 플레이에는 힘이 없었다. 멕시코에 0-1로 패한 독일은 2차전에서 스웨덴에 2-1로 진땀승을 거두며 체력이 많이 떨어진 듯 보였다. 한국은 점유율에서는 독일에 밀렸다. 전날 신태용 감독은 “경기 주도권은 가져올 수 없지만 몇 차례 안 되는 기회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독일은 공격 전개가 느리고 패스 정확도가 떨어져 문선민 등 한국 미드필더들에게 볼을 차단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날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경기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에 유리한 상황이 올 것이다. 많은 골을 넣고 승리해야 하는 독일인 만큼 심리적으로는 우리가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후반 들어 독일은 무리한 패스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틈을 노려 한국은 끊임없이 역습을 시도했다. 결국 초조해진 독일의 집중력이 떨어진 후반 추가시간에 연달아 골을 터뜨리며 값진 승리를 낚았다.카잔=정윤철 trigger@donga.com·양종구 기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생각으로 독일과의 경기를 준비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은 독일과의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둔 절박한 심경을 표현했다. 2패로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린 한국은 27일 오후 11시 카잔 아레나에서 독일과 맞붙는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한국 57위)은 1차전에서 멕시코에 덜미를 잡혔지만 2차전에서 스웨덴에 역전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독일도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 요아힘 뢰프 독일 감독도 “오직 한국전 승리만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총력전을 예고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독일 선수 전체의 몸값은 1조1432억 원에 달한다. 한국 선수 전체 몸값은 1099억 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그래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 한국이 독일에 1점 차 승리를 거두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2점 차 이상으로 꺾거나, 한국이 독일에 2점 차 이상으로 승리하고 동시에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기면 한국과 멕시코가 16강에 진출한다.○ 공격의 선봉 ‘황손 콤비’ 한국은 스피드를 갖추고 역습에 능한 ‘황손 콤비’ 황희찬과 손흥민 투톱을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독일의 민첩한 중앙 수비수 제롬 보아텡이 스웨덴전에서 퇴장당해 한국전에 결장한다. 그 빈틈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1, 2차전에서 황희찬의 전력 질주 최고 속도는 시속 33.3km(한국팀 내 1위), 손흥민은 시속 31.97km(3위)였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2010∼2013년), 레버쿠젠(2013∼2015년·1군 기준)에서 뛰었던 손흥민은 독일 수비수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 멕시코전에서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해 골 감각도 회복한 상태다. 손흥민은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죽기 살기로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를 밝혔다. 황희찬은 멕시코전에서 빠른 측면 돌파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상황에서 슈팅 대신 패스를 하며 득점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황희찬은 “멕시코전 실수를 생각하면 아쉽고 화도 난다. 독일전에서는 반드시 골을 넣고 싶다”고 말했다. ○ 기성용 빠진 중원은 ‘영철 콤비’ 한국 미드필드의 문제는 주장인 미드필더 기성용이 왼쪽 종아리 부상으로 독일전에 나설 수 없다는 점이다. 독일은 토니 크로스, 메수트 외질 등 세계적 미드필더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크로스는 1, 2차전 평균 94%의 높은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전차군단의 엔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멕시코전에서 기성용-주세종이 나섰던 미드필드진은 ‘영철 콤비’ 정우영과 구자철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8년간 독일에서 뛴 구자철은 공격형, 수비형 미드필더를 모두 경험해봤기 때문에 공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정우영은 상대의 돌파를 차단하는 수비 센스와 상대 수비 뒤 공간으로 롱패스를 연결하는 능력이 있다. ○ 어게인 ‘김&장’ 혹은 ‘스리백’ 독일은 최전방 공격수 티모 베르너와 측면 공격수 토마스 뮐러를 중심으로 한 공격이 매섭다. 2017∼2018시즌 소속팀에서 21골(9도움)을 넣은 베르너는 스피드와 침투 능력이 뛰어나다. 신 감독은 중앙 수비수 장현수의 선발 기용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한국 중앙 수비수의 핵심 조합은 김영권-장현수였다. 그러나 장현수가 2차전에서 페널티킥 실점의 빌미를 주고 팬들로부터 집중적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또다시 그를 선발로 내세우기가 쉽지 않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장현수는 실력보다는 컨디션이 문제일 것이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일 텐데 면담을 통해 컨디션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무리해서 출전시키면 더 무서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장현수를 대체할 후보선수로는 윤영선 오반석 정승현 등이 거론된다. 장현수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스리백을 구사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김영권 오반석 윤영선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국은 수비 상황에서 좌우 윙백까지 수비 진영으로 내려와 실제로는 총 5명의 수비수가 포진하는 ‘5백’ 전형을 구사한다.카잔=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비바람이 몰아친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온은 15도까지 떨어졌다. 2연패로 팀 분위기도 가라앉은 상황.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날 여러 악조건을 뚫고 회복훈련을 겸한 5 대 5 미니게임을 했다. 멕시코와의 2차전에서 선발로 나서지 않은 선수들만 참가한 가운데 상주 상무(국군체육부대) 소속 병장 홍철(28)은 수차례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이며 감각을 다듬었다. 동료들은 “(홍)철아! 잘했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홍철은 멕시코전에 교체 투입돼 12분을 뛰었다. 같은 시간에 멕시코전 선발로 84분을 뛴 일병 김민우(28·상주)는 숙소에서 함께 선발로 나섰던 동료들과 웨이트트레이닝, 수영을 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대표팀은 27일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과 맞붙는다. 왼쪽 측면 수비수인 동갑내기 홍철과 김민우는 독일 ‘공수의 핵’ 요주아 키미히(23·바이에른 뮌헨)를 막아야 한다. 키미히는 요아힘 뢰프 독일 감독의 ‘황태자’로 불린다. 뢰프 감독은 “최근 10년간 독일이 배출한 선수 중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키미히다”라고 칭찬한다. 선수층이 두꺼운 독일이지만 키미히는 유럽 예선(10경기)과 월드컵 조별리그 2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한 ‘붙박이 주전’이다. 키미히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이지만 개인기와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측면을 허문다. 또 바나나처럼 휘어지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통해 공격을 이끈다. 스웨덴과의 2차전(2-1 독일 승)에서 그는 1만1584m를 뛰어 독일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여줬다. 패스 성공률은 91%였고, 크로스도 8번 시도했다. 수비에서는 ‘커버 플레이’(동료가 전진하면서 생긴 빈 공간으로 들어가 수비하는 것)에 능하다. 스웨덴전에서 독일은 중앙 수비수 제롬 보아텡이 퇴장당하자 키미히를 중앙 수비수로 이동시켰다. 홍철과 김민우 중 누가 선발로 나올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측면 공격수들과 함께 키미히를 봉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철은 “키미히는 절대 일대일로는 막을 수 없는 선수다. 같은 측면에 위치한 공격수와의 협력 수비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키미히의 적극적인 공격 전개는 한국이 공략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키미히의 볼을 빼앗으면 독일의 측면 뒤 공간이 뚫리는 허점이 드러나기 때문. 멕시코가 1차전에서 독일을 1-0으로 꺾은 것도 이 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키미히가 전진한 뒤 비어 있는 공간에 빠르게 침투한 왼쪽 측면 공격수 이르빙 로사노가 결승골을 뽑아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키미히는 오버래핑 후 윙어(측면 공격수)와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그가 수비적인 역할을 못할 때 생기는 빈 공간을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꼽히는 키미히는 예상 이적료만 7640만 유로(약 993억 원)에 달한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현재 키미히의 주급은 8만5000유로(약 1억1054만 원)다. 한 달을 4주로 보면 월급이 4억 원이 넘는다. 병장 홍철의 월급은 40만5700원, 일병 김민우는 33만1300원이다. 군 복무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월급만으로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하지만 “전쟁에 나간다는 심경으로 월드컵에 왔다”는 홍철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려면 독일을 꺾고, 같은 시간에 열리는 스웨덴-멕시코전의 결과를 봐야 한다. 홍철은 “불가능은 없다. ‘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1%의 희망을 잡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말했다.상트페테르부르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한국은 27일 오후 11시 러시아 볼가강 중류에 위치한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세계 최강 독일과 러시아 월드컵 F조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한국은 카잔 아레나(사진)에서 독일 선수들을 상대하며 다시 한번 더위와 싸워야 한다. 24일 멕시코와의 경기가 열린 로스토프나도누는 섭씨 30도가 넘었는데 경기 당일인 27일 오후 5시(현지 시간) 카잔도 30도를 웃돌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카잔에는 비 소식도 있어 습도까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카잔의 습도는 40%. 24일 로스토프나도누의 습도가 28%였으니 훨씬 높은 것이다. 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으면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크다. 대표팀이 훈련하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14도인 점을 감안하면 태극전사들은 한마디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경기를 치르는 셈이다. 대표팀 관계자는 “어떤 지역을 가더라도 선수들이 생활하는 실내 공간의 온도는 25도를 유지하게 하고 있다. 더운 지역에서는 에어컨을 사용하고 선수들이 수분을 많이 섭취하도록 의무팀에서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선수들이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해 훈련 후 반드시 온욕 샤워를 하고 있다. 대표팀 관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선수들이 외출을 할 때 훈련복 외에 패딩조끼를 착용했다. 아직까지 감기에 걸린 선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똑같은 날씨에서 싸운다. 하지만 열세라고 평가받는 한국으로선 한 발 더 뛰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체력에 영향을 주는 더운 날씨가 더 부담스럽다. 게다가 한국은 앞선 두 경기에서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기에 이 같은 날씨가 더 신경 쓰인다. 카잔=양종구 yjongk@donga.com /상트페테르부르크=정윤철 기자}
24일 한국과 멕시코의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이 열린 로스토프 아레나는 멕시코의 안방처럼 보였다. 챙이 넓은 멕시코 전통 모자 ‘솜브레로’를 쓰고, 멕시코 대표팀의 녹색과 흰색 유니폼을 착용한 3만 명 넘는 멕시코 팬들은 소문대로 광적인 응원을 펼쳤다. 그들은 경기장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이미 세계 최강 독일을 꺾었다”고 외쳤다. 호세 가르시아 씨(28)는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러시아행 비행기 값을 마련했다. 그는 “꼭 갖고 싶은 오토바이를 살 돈도 모두 투자해서 멕시코 대표팀을 응원하러 왔다. ‘엘 트리(El Tri·3색 국기를 뜻하는 멕시코 대표팀 애칭)’가 우승한다면 가난해도 좋다”며 웃었다. 멕시코 팬들은 자국 선수가 득점했을 때는 “멕시코!”를 연호했고, 한국이 공격에 나서면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멕시코 관중석의 응원 소리를 휴대전화 소음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최대 100dB(데시벨)까지 올라갔다. 전동 톱 소리와 맞먹는 크기의 소음이다. 이들이 멕시코 공식 응원가인 ‘시엘리토 린도’를 부를 때는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멕시코가 한국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줘서인지 관중석은 줄곧 축제 분위기였다. 멕시코 팬들은 응원가 후렴구나 상대 골키퍼가 킥을 할 때 동성애 혐오 등의 내용이 담긴 ‘푸토(puto)’라는 욕설을 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독일과의 1차전에서도 이 욕설이 나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멕시코축구협회에 벌금 1000만 원을 부과했다. 한국전에서는 단체로 푸토를 외치지는 않았다. 대규모 멕시코 응원단에 맞서 한국 응원단 1000여 명은 ‘일당백’으로 맞섰다. 한국 응원단 붉은악마 회원 우용만 씨(37)는 “멕시코의 응원이 잠잠해질 때마다 적극적으로 우리 응원가를 불렀다. 숫자는 적지만 기세는 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80명의 붉은악마 회원들은 현지에서 합류한 교민들이 쉽게 응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생소한 응원곡 대신 ‘오! 필승 코리아’와 ‘아리랑’ 등 평소 익숙한 곡을 사용했다. 한국 팬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임금님 의상을 입거나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모자를 쓰고 응원전을 펼쳤다. 일부 러시아인들은 한국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카레아! 카레아!”라고 외치며 한국을 응원한 것이다. 붉은악마 회원들이 경기 전 가로 14m, 세로 12m 크기의 대형 태극기를 펼치는 데 애를 먹자 러시아 관중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러시아 축구팬 모르가체바 엘리자베타 씨(21·여)는 “월드컵을 통해 응원의 재미에 푹 빠졌다. 열정적인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응원을 해보니 더욱 신난다”고 말했다. 주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는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인들은 매스게임을 제외하고는 집단적 응원 등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월드컵을 계기로 러시아인들이 응원 등으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며 러시아 민족에 대한 자부심도 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로스토프나도누=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정말 아름답고, 막을 수 없는 골이었다.” 달라진 손흥민(26)이었다. 앞선 경기에서 단 한 개의 슈팅도 날리지 못했으나 두 번째 경기에서는 대표팀 슈팅의 절반 이상을 날리며 이번 대회 한국의 첫 번째 골을 뽑아냈다. 24일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 한국-멕시코 경기. 후반 48분(추가시간 3분). 멕시코 진영 오른쪽을 드리블로 파고들던 그는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을 날렸다. 대각선으로 약 22m를 날아간 대포알 같은 슛은 멕시코 골대 왼쪽 상단에 꽂히며 그물을 흔들었다. 이번 대회 ‘거미 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멕시코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가 몸을 날렸지만 워낙 빠르게 구석으로 날아간 공을 막지는 못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이 골을 ‘선더볼트’(벼락)라고 표현했다.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구역에서 터진 환상적인 골이었다. 손흥민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페널티박스 좌우측 45도 부근에서 하루에 각각 200번이 넘는 슈팅 훈련을 반복하면서 감각을 키웠다. 국제축구연맹(FIFA) TV 해설자는 “아름답고 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날 한국 최다인 9개의 슈팅(대표팀 전체 17개)을 시도했다. 공이 전달되지 않을 때는 하프라인까지 내려가 공수의 연결고리가 됐다. 영국의 BBC는 “한국 팀에서는 오로지 손흥민만 빛났다”고 했다. BBC는 “이 골이 손흥민의 빛나는 재능을 다시 상기시켰다”고 평했다. 그러나 “한국이 스웨덴전 때와는 무척 달라졌지만 조직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손흥민에게 너무 의존했다”고 평했다. 손흥민 김신욱 황희찬이 나섰던 스웨덴과의 1차전 4-3-3 ‘스리톱’ 전형에서는 세 선수 간의 패스가 총 3차례에 불과했다. 손흥민과 이재성이 투톱으로 나선 4-4-2 포메이션의 멕시코전에서는 손흥민과 이재성이 주고받은 패스가 15회로 크게 늘며 전방 공격이 활기를 띠었다. 골을 넣었지만 손흥민은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눈이 부어오르도록 울었다. “선수들은 정말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너무나도 많은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흥민은 문재인 대통령이 라커룸을 방문했을 때도 말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굵은 눈물을 흘려 ‘울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보다 어린 선수들도 있어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위로를 해줘야 하는 위치니까…”라던 그는 “정말 잘 준비해도 부족한 것이 월드컵이다. 아직도 (월드컵 무대가) 겁이 난다.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전문가의 기대’란 제목으로 “남은 독일전에서는 우리 선수들에게 근성과 투지의 축구를 강요하지 말자”라며 “그냥 맘껏 즐기라고 해주자”고 적었다. 그러면서 “체력이 좋은 전반에 수비가 좀 허술해지더라도 과감하게 포백 라인을 끌어올리며, 중원에서 경쟁하고, 손흥민이 더 많은 슛을 날리는 경기를 보고 싶다”며 구체적인 전술 의견을 내기도 했다. 손흥민은 이제 독일전(27일) 각오를 다지고 있다. 손흥민은 16세였던 2008년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으로 독일로 가 함부르크(2010∼2013년)와 레버쿠젠(2013∼2015년·이상 1군 기준)에서 뛰었다. 손흥민은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정말 죽기 살기로 해야죠.”로스토프나도누=정윤철 trigger@donga.com / 황인찬 기자}
스웨덴을 맞아 생애 첫 월드컵 경기에 나선 그는 상대 진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렸다. 전력질주 최고 속도는 시속 32.4km.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 중 가장 빨랐다. 재빠른 문전 쇄도로 관중의 환호를 받기도 했지만 마무리가 아쉬웠다. 골 기회에서 그의 머리에 맞은 볼은 골문을 한참 벗어났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긴장을 하지 않는 타입인데…. 월드컵은 참 쉽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 러시아 월드컵 2차전 멕시코전을 앞두고 황희찬(22·잘츠부르크)은 ‘성난 황소’로 변했다.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슈팅 1개에 그쳤던 그는 멕시코전에서 명예 회복을 노린다. 스웨덴전에서 그는 중앙이 아닌 측면에 위치해 수비 역할까지 한 탓에 공격에 집중하지 못했다. 황희찬은 “최전방에 위치했을 때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는 강한 압박을 시도하는 팀이기 때문에 수비 라인이 한국 진영으로 전진했을 때 수비 뒤 공간이 엷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이를 공략하기 위해 황희찬이 손흥민(토트넘)과 함께 최전방 투톱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황희찬의 장점 중 하나는 원터치 패스에 능해 동료 공격수들과 연계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손흥민 이승우(베로나) 등 침투 능력이 좋은 동료들과 평소에도 전술적 움직임에 대해 자주 얘기를 나누며 호흡을 맞췄다. 그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손흥민과, 월드컵 국내 소집 훈련 당시 대구에서는 이승우와 룸메이트였다. 황희찬은 “서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대화를 했다. 창의적인 동료들과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겠다”고 말했다. 황희찬 등 한국 공격수들이 넘어야 할 벽은 멕시코의 ‘정신적 지주’ 라파엘 마르케스(39·아틀라스)다. A매치 146경기를 뛴 마르케스는 독일과의 1차전에 교체로 출전하면서 역대 세 번째로 월드컵 5회 연속 출전의 대기록을 세웠다. 마르케스가 첫 A매치를 치른 1997년에 황희찬은 한 살이었고, 이승우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5위 멕시코는 자신들보다 객관적 전력이 약한 한국(57위)을 상대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공격에만 집중하다 역습을 허용하면 실점 위기를 맞을 수 있어 멕시코는 경기 조율과 안정적 수비 능력을 갖춘 마르케스를 중용할 것으로 보인다. 마르케스는 멕시코가 스리백을 사용하면 중앙 수비수로, 포백을 사용하면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다. 그는 볼을 차단하기 위한 위치 선정 능력과 후방에서 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민첩성은 전성기에 비해 떨어졌다는 평가다. 한국 공격진은 적극적인 돌파로 마르케스의 약점을 노려야 한다. 마르케스가 멕시코의 구심점이긴 하지만 훈련장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여느 동료들과 다르다. 그의 훈련복에는 멕시코 대표팀 후원사인 미국 음료업체 ‘코카콜라’의 로고가 없다. 마르케스가 마약 조직의 돈세탁을 도운 혐의로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과 은행 등은 마르케스와 거래를 할 수 없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동료들처럼 미국 브랜드의 음료를 마실 수 없고,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도 미국 맥주업체 ‘버드와이저’가 후원을 맡은 경기의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될 수 없다.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멕시코 감독은 “마르케스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다. 그의 리더십은 우리 팀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칭찬했다. 마르케스는 “한국은 빠른 축구를 구사한다. 스피드가 좋은 그들을 봉쇄해 독일전 승리의 상승세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패배의 아픔을 안은 ‘신태용호’가 베이스캠프에서 다시 훈련을 시작한 19일 오후. 이날 베이스캠프가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비가 내렸다. 먹구름이 끼고 기온이 15도까지 떨어졌다. 선수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지 않았다. 선수들이 조깅을 마친 뒤 빗줄기가 굵어졌다. 손흥민 기성용 장현수 김영권 등 스웨덴전에서 풀타임을 뛴 선수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체력을 소모한 뒤라 안정과 컨디션 보호를 위해서였다. 고요한을 비롯해 스웨덴전에서 뛰지 않은 선수들과 교체 멤버들은 빗속에서 훈련을 계속했다. 연이어 슈팅을 날렸다.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면 문전으로 쇄도하며 마무리하는 훈련이 이어졌다. 한국 팀의 운명을 가를 멕시코전을 앞둔 대표팀에 필요한 점은 거칠고 집요한 수비다. 독일전에서 보여준 멕시코의 빠른 역습을 차단할 적극적인 몸싸움이 필요하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역할을 해줄 선수로 고요한과 장현수가 예상되지만 변수는 많다.○ “내 앞에서는 누구나 고요해지리라” 대표팀의 ‘자물쇠’로 불리는 고요한의 월드컵 각오는 “내 앞에서는 누구나 고요해지리라”다. 그는 여러 차례 악착같은 수비로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측면 수비수 외에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는 그는 지난해 11월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득점왕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전담 마크해 무득점에 그치게 만들었다. 한국은 2-1로 이겼다. 신 감독은 스웨덴전에서는 고요한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도가 느린 스웨덴과 달리 멕시코는 빠른 공격 전개 속도를 갖췄다. 이 때문에 멕시코의 템포(경기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고요한에게 맡길 수 있다. 멕시코 핵심 선수인 오른쪽 미드필더 엑토르 에레라는 중앙으로 이동해 수비와 역습 양쪽에 가담하며 중원 전체를 책임진다. 고요한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 에레라의 패스로부터 시작되는 멕시코의 공격 전개를 막을 수 있다. 고요한은 ‘선발 무패’라는 독특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신 감독 체제에서 고요한은 선발로 6경기를 뛰어 5승 1무를 거뒀다. 선발 경기당 평균 승점은 2.67점이다. 고요한은 “패스 루트를 정확히 예측하고 강한 몸싸움을 통해 상대가 편안한 상태에서 공을 잡지 못하게 막겠다”고 말했다. ○ 장현수는 다시 기용될 것인가 중앙 수비수 장현수는 생애 첫 월드컵 경기였던 스웨덴전에서 최악의 경기를 펼쳤다. 그는 수비진을 리드하며 패스를 통해 후방에서부터의 공격 전개를 이끈다. 하지만 스웨덴전에서 장현수의 전진패스 성공률은 69%에 그칠 정도로 실수가 많았고, 문전에서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장현수는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장현수의 대표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장현수는 “지금은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장현수가 스웨덴전에서 패스 정확도가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수비적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럽 축구통계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장현수는 19일 기준으로 월드컵 출전 선수 중 ‘클리어’ 순위 6위(8회)를 기록 중이다. 클리어는 혼전 또는 위기 상황에서 수비가 볼을 안전하게 걷어내는 것을 뜻한다. 멕시코전에 출전이 예상되는 김영권과의 호흡도 중요한 문제다. 중앙 수비수 중에는 김영권과 장현수가 가장 오래 호흡을 맞췄다. 대표팀 중앙 수비수 중 장현수의 A매치 경험이 52경기로 김영권(54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다음으로는 윤영선(6경기) 정승현(6경기) 오반석(2경기) 등이다. 다시 한 번 장현수의 출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변수는 그의 수비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지 여부다. 이런 점에서 장현수의 심리적인 부분도 중요한 요소다. 워낙 많은 비난을 받고 있어 동료들이 그를 걱정하고 있다. 장현수가 멕시코전에 나설 수 있으려면 안정과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구자철은 “현수는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선수다. 비난이 있을수록 내부적으로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상트페테르부르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러시아 월드컵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훌리건(폭력 축구팬) 난동 사태가 재발할 것인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러시아 당국이 가장 신경 쓰는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이 훌리건 대책이다. 러시아에는 주로 극우 성향의 축구팬으로 이루어진 악명 높은 훌리건들이 있다. 이들은 인종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기 때문에 경기장 안팎의 폭력 사태는 물론이고 인종차별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이번 대회를 위해 러시아 정부는 훌리건 대책을 포함한 안전 관리 예산으로만 4700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훌리건들은 월드컵을 앞두고 유튜브에 자신들의 무술 연마 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잉글랜드 팬들을 학살하겠다”는 위협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 훌리건들이 잉글랜드 팬들을 지목한 건 이들이 대대로 악연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영국 역시 훌리건들로 골치를 앓고 있다. 영국 훌리건들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잉글랜드 대표팀을 따라다니며 각종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러시아와 영국 훌리건들은 유로 2016 대회 때 대규모 유혈 사태를 일으킨 전례가 있다. 당시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조별리그에서 러시아와 잉글랜드가 맞붙어 1-1로 비겼을 때 두 팀 팬 수백 명이 충돌해 경기장 안팎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프랑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가스로 진압했다. 프랑스가 극렬 러시아 훌리건들을 붙잡아 징역형을 선고했고 이 사태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외교 문제로도 번졌었다. 이때 잉글랜드 팬 30명이 다치고 2명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중 한 명은 신체 일부가 마비됐다. 목격자들은 “러시아 훌리건들이 글러브와 마우스피스 같은 장비까지 갖추고 왔다”고 진술했다. “유로 2016 때 당한 것을 갚아줘야 한다”는 훌리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영국 경찰은 최근 훌리건으로 분류된 1312명의 출국을 금지했다. 영국에서는 훌리건들이 국제대회에서 행패를 부릴 경우 5000파운드(약 730만 원) 이상의 벌금이나 징역 6개월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는 잉글랜드 팬 1만 명 이상이 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월드컵에서 “최고의 러시아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훌리건 난동 사태를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러시아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애쓰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게 훌리건 단속은 중요한 일이다. 러시아 훌리건들은 잉글랜드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 팀 팬들을 상대로도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러시아는 이미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을 개최하면서 훌리건 단속 모의고사를 치렀다. 경기장에 악명 높은 훌리건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이번 월드컵에도 러시아 정부는 폭력적인 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경호 인력들은 주기적으로 이 리스트에 있는 훌리건을 찾아 집에 머물 것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 ‘자택 감금’을 종용하고 있다. 과거 폭력을 주도했던 훌리건들은 삼엄한 감시는 물론이고 전화 도청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도 수천 명의 경찰과 군인이 추가로 파견되는 등 경기장과 훈련 장소 주변의 순찰이 강화되고 있다. 18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멕시코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 부근 유노스트 호텔 근처에 멕시코 축구팬들이 운집하자 군인들이 호텔을 둘러쌌다. 멕시코 의상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에 접근도 하지 못하게 막았다. 패한 독일 팬들과의 싸움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는 테러 및 훌리건 사태를 막기 위해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일종의 ‘축구 신분증(팬ID)’ 제도를 만들었다. 경기를 보려면 표를 산 뒤 별도의 팬ID를 발급받아야 한다. 월드컵이 개막한 지금 곳곳에서 이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키트로프 알렉 씨는 “(푸틴) 대통령도 팬ID를 발급받았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신분증만큼 중요한 것이 팬ID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스웨덴전이 열린 18일 경기 장소인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의 니키틴 호텔에서 만난 스웨덴 팬들은 전세버스가 시동을 건 뒤에도 한참 동안 출발하지 못했다. 일부가 호텔 방에 팬ID를 놓고 왔기 때문이다. 한 스웨덴 팬은 “과거에는 표만 있으면 자유롭게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팬ID를 신분증처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게 너무나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불편보다는 안전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엄격한 팬ID 제도와 강력한 보안검색을 받아들이고 있다. 경기장에 들어가려면 10분 이상 걸리는 보안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런 강력한 조치로 이번 월드컵에서는 훌리건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극우주의자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러시아 훌리건들은 주로 러시아 프로축구 팬클럽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러시아 당국은 팬클럽 리더들을 만나 수시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와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훌리건 사태는 언제나 의외의 상황과 장소에서 터지곤 했다. 러시아 훌리건들이 영국 훌리건들에 대한 폭력을 예고한 상태에서 19일 잉글랜드가 튀니지와 첫 경기를 치렀다. 이날은 폭력사태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잉글랜드 팬들의 입국이 늘면서 러시아 당국도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정윤철 trigger@donga.com / 모스크바=양종구 / 임보미 기자}
스웨덴전 패배로 벼랑 끝에 몰린 한국이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려면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세계 1위를 꺾은 팀(멕시코)’과 ‘세계 1위 팀(독일)’이다. 조별리그 F조 1차전 상대 스웨덴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4위. 2차전 상대 멕시코(15위)는 스웨덴보다 전력이 강한 데다 독일을 꺾고 상승세를 탔다. 신태용 감독은 “멕시코는 빠르고 기술이 좋은 팀이다. 버거운 상대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멕시코전(24일 0시)까지 남은 기간 대표팀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짚어봤다. ○ 세밀하고 정교한 역습 한국은 스웨덴전에서 점유율 48%(스웨덴 52%)를 기록하며 수비적인 경기를 했다. 스웨덴은 유럽 예선에서 평균 47%의 점유율을 보인 팀이지만 한국이 수비적으로 나서자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멕시코는 북중미 예선에서 평균 61%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공격 성향이 강한 멕시코를 상대로 한국은 수비에 중점을 둔 뒤 역습으로 득점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스웨덴전처럼 무딘 역습으로는 골을 터뜨릴 수 없다. 축구통계 전문사이트 ‘인스탯’에 따르면 한국은 5개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유효 슈팅은 0개였다. 한국은 총 16번의 역습을 시도했는데 슈팅 등으로 마무리된 것은 2번에 불과했다. 중앙 공격수에 장신 김신욱(196cm·전북)이 기용되면서 기동성이 떨어진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빠른 발로 상대 수비 뒤 공간을 허무는 데 능한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잘츠부르크)은 측면에 위치하면서 수비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멕시코전에서는 손흥민과 황희찬을 최전방에 세우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골은 가운데에서 터진다. 중앙에 위치한 공격수가 측면과 같은 스피드로 침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손흥민과 황희찬이 조금 더 정교하고 세밀하게 경기를 한다면 (상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패스 마스터’ 기성용의 전진 배치 스웨덴전에서 한국의 패스 성공률은 79%였다. 하지만 전방에서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키 패스’ 성공률은 29%에 불과했다. 상대 장신 공격수들을 의식해 미드필더 기성용(189cm)이 후방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면서 전방에서의 패스를 통한 공격 전개에 애를 먹었다. 평균 신장이 185.7cm에 달했던 스웨덴과 달리 멕시코는 179.2cm다. 한국의 평균 신장은 182cm. 기성용에게 수비 부담을 덜어주고, 그를 전진 배치해 공격에 집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 상대의 신장이 작은 점을 이용해 세트피스를 통한 득점을 노려야 한다. 기성용의 날카로운 킥과 중앙 수비수 김영권 장현수 등의 적극적인 세트피스 가담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표팀이 비공개로 준비해 온 세트피스는 스웨덴전(9차례 시도·성공률 0%)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기성용이 공격적인 역할을 할 경우 그의 중원 파트너로는 압박 능력이 뛰어난 정우영(빗셀 고베)이 선발로 투입될 수 있다. ○ “고개 숙이지 마라” 본선 첫 경기에서 무기력하게 패하면서 대표팀은 침체됐다. 월드컵과 유럽 무대 경험이 있는 주장 기성용과 손흥민을 중심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둘은 스웨덴전에서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준 김민우(상주)를 위로했다. 기성용은 페널티킥 판정 후 고개를 숙인 김민우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손흥민은 경기 후 김민우를 안아줬다. 손흥민은 “(김민우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들라고 했다. 그는 좋은 모습을 보이려다 실수를 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A매치 103경기를 뛴 기성용은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달성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과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겪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모두 경험했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대표팀이 좋았던 때와 안 좋았던 때를 모두 경험한 것이 기성용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성용은 “아직 2경기가 남았기 때문에 절대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동료들의 정신적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 기성용은 “우리 팀 선수 중에는 멕시코, 독일 같은 강한 상대를 만나본 경험이 없는 선수도 있다”면서 “1차전 패배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스웨덴전 승리에 ‘올인’을 선언하며 꽁꽁 숨겨왔던 신태용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48)의 ‘트릭(속임수)’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신 감독은 18일 스웨덴과의 러시아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4-3-3 전형’을 사용했다. 상대 수비수들의 평균 신장이 186.6cm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해 장신 공격수 김신욱(196cm·전북)을 최전방 원톱으로 배치했다. 당초 신 감독은 볼리비아와의 평가전(7일) 이후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신욱을 선발로 내세운 것은 ‘트릭’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공개 기자회견이 아닌 자리에서는 “선발로 김신욱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었다. ‘이중 트릭’을 쓴 셈. 김신욱을 가운데에 놓은 스리톱 전술은 대표팀이 소집된 이후 외부에 공개된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신 감독은 본선 직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이 전술을 실험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신 감독이 비공개 평가전이었던 세네갈전(11일)에서 김신욱을 원톱으로 4-3-3 전술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김신욱은 전방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체격이 좋은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는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좌우 측면 공격수와도 유기적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신 감독은 후반 22분에 김신욱을 정우영(빗셀 고베)과 교체하며 전술 변화를 시도했다. 상대가 두 명의 최전방 공격수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중앙 수비수 2명을 배치한 포백 수비를 내세운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 수비진은 올라 토이보넨, 마르쿠스 베리로 이뤄진 스웨덴 투톱과의 숫자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포백 대신 스리백을 사용할 경우 중앙 수비수 3명과 두 명 윙백이 수비에 가담해 수적 우위를 가져올 수 있다. 이날 스웨덴은 토이보넨이 헤딩으로 떨어뜨린 볼을 베리가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 위력적이었다. 투톱을 상대하느라 지친 수비진은 전방으로 부정확한 롱패스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신 감독이 강조하는 ‘패스 축구’가 실종되면서 한국은 득점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은 이날 유효슈팅 0개를 기록했다. 신 감독의 용병술 중 유일하게 빛났던 것은 골키퍼 조현우(27·대구)의 활약이었다. 전반 20분 스웨덴 미켈 루스티그가 문전으로 보낸 낮고 빠른 패스가 기성용의 발에 맞고 흘렀다. 이를 토이보넨이 다시 앞으로 밀어준 것을 베리가 왼발 슈팅으로 연결했다. 두 발짝 정도면 조현우가 서 있던 자리일 만큼 가까운 위치였다. 하지만 ‘달구벌 데헤아’로 불리는 한국의 선발 수문장 조현우는 이를 오른발로 막아냈다. 그의 애칭은 스페인 대표팀의 골키퍼 다비드 데헤아(28)에 빗댄 표현이다. 날렵한 몸놀림과 반사신경, 머리 스타일이 데헤아와 닮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앙 수비수가 상대 투톱을 놓치면서 슈팅을 허용하는 등 위기 상황이 많았지만 조현우의 ‘선방쇼’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조현우가 상대의 슈팅을 막을 때마다 3만여 명의 스웨덴 응원석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조현우에게는 이날 경기가 7번째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다. A매치 33경기를 뛴 골키퍼 김승규의 선발이 유력했지만 신 감독은 조현우에게 골문을 맡겼다. 비록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내주긴 했지만 조현우는 안정적인 수비로 한국의 실점을 최소화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숨기고 싶었지만 서로의 ‘에이스 카드’를 감출 수는 없었다. 한국의 손흥민은 등번호를 계속 바꿔왔다. 7번, 19번, 13번으로 바뀌는 그의 번호에 대해 스웨덴 관계자는 “속을 줄 알았겠지만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은 한국의 비밀 훈련을 몰래 촬영해 ‘도둑 촬영’ 논란까지 일었다. 스웨덴의 신경은 손흥민에게 집중돼 있다. 스웨덴도 자신들의 에이스인 에밀 포르스베리(27·RB라이프치히)를 한국 관계자나 취재진의 눈앞에 드러내놓지 않고 있다. 포르스베리는 대부분의 선수가 지나다니는 공동 취재구역에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역시 포르스베리 분석에 집중해왔다. 서로를 첫 1승의 상대로 여기는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과 스웨덴의 대결은 손흥민과 포르스베리를 둘러싸고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팀은 18일 오후 9시(한국 시간)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맞붙는다. 월드컵이 32개국 체제로 바뀐 1998년 이후 16강에 진출한 80개 팀 중 1차전에서 승리했던 팀이 51개에 이른다. 한국도 16강 진출에 성공한 2002 한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모두 1차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48)은 “스웨덴전에 ‘올인’한다는 각오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예리한 칼’ 손흥민 vs ‘마법사’ 포르스베리 신 감독이 스웨덴전에 사용할 포메이션은 베일에 싸여 있다. 플랜A로 생각해왔던 4-4-2 전형 혹은 스웨덴의 투톱을 겨냥해 중앙수비수 3명을 둔 3-5-2 전형이 사용될 수 있다. 이때 손흥민은 투톱 공격수 중 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국은 손흥민을 중심으로 한 역습으로 골을 노린다. 스웨덴 수비진은 평균 신장이 186.6cm에 달하지만 민첩성은 떨어진다. 손흥민은 한국 공격의 시작이다. 그는 투톱 파트너로 유력한 황희찬(22·잘츠부르크)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 뒤 공간으로 파고드는 방식을 연습했다. 오른발 감아차기 프리킥과 코너킥을 통해 세트피스 키커로 나설 준비도 마쳤다. 손흥민은 “잠들기 전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말했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조별리그 탈락)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던 그의 각오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남다르다. “내가 (여러분을) 웃게 해준다고 했지!” 한국은 첫 경기에서 흰색, 스웨덴은 노란색 유니폼(상의 기준)을 입는다. 손흥민은 ‘노란색 킬러’로 불린다. 2017∼2018시즌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터뜨린 18골 중 6골을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팀으로부터 뽑아냈다. 그는 “스웨덴의 노란 유니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의 공격은 ‘마법사’ 포르스베리의 발끝에서 시작된다. 2016∼2017시즌 19도움(8골)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도움왕에 오른 그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교한 패스 능력을 가졌다. 플레이메이커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아스널(잉글랜드), AC밀란(이탈리아) 등 명문 구단들이 영입을 노리고 있다. 포르스베리의 주 포지션은 왼쪽 미드필더. 한국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 이용(전북)과 맞붙는 자리다. 하지만 측면에만 있지 않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신 감독은 “포르스베리는 경기의 80분가량을 중앙에서 뛴다”고 말했다. 포르스베리가 중앙으로 볼을 운반하면 마르쿠스 베리(183cm), 올라 토이보넨(192cm) 두 명의 장신 공격수가 헤딩으로 마무리한다. 베리와 토이보넨이 헤딩으로 떨어뜨린 볼(세컨드 볼)을 포르스베리가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방식도 선호한다. 한국 중앙 수비수인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과 장현수(FC도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김영권은 “상대의 세컨드 볼을 이용한 득점 상황에 대해 코칭스태프와 함께 철저히 분석했다”고 말했다. ○ ‘득점 골든타임’을 깨워내라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한국이 스웨덴을 상대로 0-0으로 70분(후반 25분)까지 버티면 스웨덴이 먼저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신태용호’의 ‘득점 골든타임’과도 연관이 있다. 신 감독 체제에서 치른 18경기에서 한국은 23골을 터뜨렸다. 득점 시간대별로 가장 많은 골이 나온 것은 후반 16∼30분(8골)이다. 역대 한국의 월드컵 기록을 살펴봤을 때도 31골 중 최다인 10골이 후반 16∼30분에 터졌다. 상대의 집중력이 떨어진 이 시기에 세트피스 등을 활용한 득점을 노릴 수도 있다. 한편 24골을 내준 대표팀이 가장 많은 실점을 한 시간대는 후반 31∼45분(추가시간 포함·7골)이다. 수비진의 리더 장현수는 “경기 시작과 끝나기 전 5∼15분에 실점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니즈니노브고로드=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스웨덴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것이 없을 것이다. 어떤 선수가 경기에 나올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전력을 노출시키지 않겠다.”(신태용 한국 감독)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것들만 잘 수행하면 된다. 스웨덴만의 기초와 강점에 집중할 것이다.”(얀네 안데르손 스웨덴 감독) 양 팀 사령탑은 평소 자신이 추구해온 스타일대로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신 감독(48)과 안데르손 감독(56)은 17일(한국 시간 18일 오후 9시)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 나서는 각오를 밝혔다. 신 감독은 탄탄한 수비를 통해 스웨덴을 꺾겠다고 했다. 그는 “스웨덴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팬들의 응원까지 더해진다면 아르헨티나와 비긴 아이슬란드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도 베스트 11 등 대표팀 전술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신 감독은 “우리의 선발 라인업은 경기가 시작해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평가전에서 선수들의 등번호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스웨덴 기자의 질문에 신 감독은 “짧은 식견이지만 유럽 사람들이 동양인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스웨덴 팀에 조금이라도 더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라고 답했다. 경기 당일 스웨덴 팬 3만 명 이상이 오는 데 비해 한국 팬은 1500명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감독과 주장으로서 기자회견 함께 나선 기성용은 “우리 선수들도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고 큰 경기 경험이 많아 별문제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데르손 감독은 사실상 4-4-2 전형의 사용을 예고했다. 스웨덴은 이날 15분간 공개된 훈련에서 그라운드 위에 선수들의 조끼를 4-4-2 전형으로 내려놓았다. 안데르손 감독은 “최종 라인업은 결정됐다. 부상도 별로 없고 첫 경기 준비는 완벽하다. 우리가 숨겨놓은 트릭은 없다. 평가전에서는 수비에 집중해 득점이 적었지만 한국전에서는 공격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스웨덴 에이스인 에밀 포르스베리의 수비에만 집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이 스웨덴 전체의 조직력을 대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선수 중에는 “기성용 손흥민 등 빠르고 기술적인 선수들이 있다”면서 “특정 선수에 집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웨덴은 한국이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전지훈련을 할 때 전력분석관을 파견해 비공개 훈련을 관찰했다. 안데르손 감독은 “훈련이 비공개인 줄은 몰랐다.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스웨덴의 슈퍼스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빠진 데 대해 신 감독은 “그가 빠지면서 스웨덴 조직력이 더 좋아졌다”고 분석했다. 안데르손 감독은 “그는 이미 은퇴했으며 국가대표팀과는 관계없다”고 말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월드컵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나와 동료들 모두 경기장 안에서 자기 자신의 강점을 표현해야 한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주장 기성용(29)은 스웨덴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첫 경기(18일 오후 9시·한국 시간)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말수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로 동료들의 투지를 끌어올린다. 기성용은 “월드컵 무대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결과가 잘못됐을 때 발생하는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동료들이) 한 번쯤은 영광스러운 월드컵 무대를 밟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스웨덴전 준비는 90% 정도 끝났다고 했다. 나머지 10%는 정신력과 컨디션 관리라고 했다. 그는 “진짜 중요한 것은 본선 첫 경기다. 자신 있다.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기성용에게 스웨덴과의 첫 경기가 남다르게 여겨지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 시즌까지 클럽 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어제의 동지’와 적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식이 열렸을 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완지시티의 기성용과 마르틴 올손(30·스웨덴)은 영국에서 함께 조 추첨식을 보고 있었다. 기성용이 올손에게 말했다. “아마도…. 우리가 같은 조에 편성되지 않을까?” 예감은 적중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7위 한국이 월드컵 본선 F조에 스웨덴(FIFA 랭킹 24위)과 함께 속하게 된 것. 올손에 따르면 조 편성이 끝난 뒤 기성용은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우리는 더는 얘기를 나누면 안 돼. 이제 우리는 적이야.” 스완지시티의 측면 수비수인 올손은 EPL 경기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인 기성용과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함께 수비진을 이끌었다. 기성용은 현재 스완지시티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새 팀을 물색 중이다. 다음 시즌부터 적으로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기성용과 올손은 월드컵 무대에서 먼저 적으로 만나게 됐다. 올손(A매치 43경기 5골)은 스웨덴의 왼쪽 측면 수비수다.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 진영의 빈 공간에 침투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린다.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 능력도 갖췄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과감한 오버래핑을 즐기는 올손은 스웨덴의 에이스인 미드필더 에밀 포르스베리(RB라이프치히)의 움직임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15일 올손은 스웨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은 기성용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성용은 양발로 정확도 높은 패스를 한다. 그가 볼을 잡고 있는 모습은 정말 편안해 보인다”고 말했다. 평소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둘이지만 맞대결을 앞둔 최근에는 연락을 끊었다. 올손은 “한국과의 경기가 끝난 후에 기성용과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올손은 한국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토트넘과 경기를 할 때 손흥민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그가 내게 ‘여름(월드컵 기간)을 기다리고 있어라. 우리가 쉽게 승리할 것이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고 말했다.상트페테르부르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한달간 둥근 꿈… 러 월드컵 개막, 한국 18일 스웨덴과 첫 경기 단일 종목 세계 최대 축제인 2018 러시아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대륙별 예선을 거쳐 32개국 736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이번 대회는 15일 0시(한국 시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과 함께 32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결승전은 7월 16일 열린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18일 오후 9시 스웨덴과 F조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 뒤 멕시코(24일), 독일(27일)을 잇달아 상대한다.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은 첫 경기 스웨덴전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특급 조커(joker)’를 찾아라. 스웨덴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첫 경기를 앞두고 있는 신태용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48)은 13일 교체 투입을 대기 중인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특히 강조했다. “어느 누가 나가더라도 100% 이상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과 스웨덴의 경기를 앞두고 조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조커의 사전적 의미는 ‘대신 쓸 수 있는 카드’다. 하지만 축구에서의 조커는 교체 투입돼 경기 흐름을 바꿀 히든카드의 의미로도 쓰인다. ○ ‘스웨덴통’ 문선민 ‘고공폭격기’ 김신욱 한국의 첫 상대 스웨덴은 월드컵 예선에서 후반전에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 평균 점유율은 48%였지만 후반전은 44%였다. 또한 체격 좋은 수비수가 많지만 후반에 체력이 떨어졌을 때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예선에서 9실점을 한 스웨덴은 이 중 3골을 후반 16분 이후에 내줬다. 후반 조커 투입을 노려볼 만한 이유다. 한국의 ‘조커 1순위’로는 문선민(26·인천)이 꼽힌다. 문선민은 “조커로 나서게 된다면 전방 압박과 민첩한 움직임으로 활력을 불어넣겠다. 스피드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시즌 K리그1에서 돌파력을 앞세워 6골(개인 득점 5위)을 기록 중이다. ‘스웨덴통’으로 불리는 문선민은 인천 입단 전에 스웨덴 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다. 그는 “대표팀 동료와 코칭스태프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스웨덴의 특징 등에 대해 설명했다”고 말했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그가 조커로 투입되면 순간적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A매치 데뷔전인 온두라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였다. 하지만 긴 볼 터치 등 실수도 많아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문선민은 “(평가전에서) 긴장을 하다 보니 실수가 나왔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경기하겠다. 감독님도 경기 때마다 ‘여유 있게 네 장점을 모두 보여주고 와’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196cm·전북)도 조커로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의 월드컵 예선 실점 패턴을 보면 9골 중 3골을 헤딩으로 내줬다. 김신욱은 국제축구연맹(FIFA)과의 인터뷰에서 “헤딩은 나의 전문 분야다”라고 말했다. 김신욱의 소속 팀인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김신욱 사용법’에 대해 조언했다. 김신욱의 헤딩을 바라고 무조건 공을 올리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 감독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측면에서 경기를 풀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승점 안긴 역대 특급 조커들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조커의 활약으로 값진 승점을 챙기곤 했다.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챙긴 1986 멕시코 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투입된 김종부가 후반 26분 동점골을 넣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서정원이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후반 14분 교체 투입됐다. 무더위 속에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인 스페인의 수비진을 휘저은 그는 후반 45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뒤 포효했다. 안정환은 2002 한일 월드컵 미국전과 2006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교체 투입돼 골을 터뜨렸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 후반 11분 투입된 이근호(강원)가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낚았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은 조커가 골을 터뜨린 경기에서 1승 4무를 기록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조커로 나서서 성공을 거둔 비결은 선발로 나서지 못해 아쉬워하기보다 ‘(출전 시)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오겠다. 내 능력을 모두 발휘하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2018 월드컵 개최국 러시아가 개막전을 대승으로 장식했다. 러시아는 15일 오전 0시(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5-0으로 이겼다.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러시아는 스몰로프를 원톱으로 내세웠고 사우디는 4-5-1 포메이션 최전방에 알 살라위를 배치했다. 초반 탐색전을 펼치던 두 팀의 분위기는 전반 12분 러시아의 선제골이 터지면서 급격하게 러시아 쪽으로 기울었다. 러시아가 날린 코너킥이 사우디아라비아 골대 정면에서 볼 경합 도중 왼쪽 측면으로 흘러 나왔고 러시아가 이를 다시 대각선 방향으로 띄워 올렸다. 페널티박스 오른쪽에 있던 가진스키가 솟구치며 이를 헤딩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진은 밀집 수비를 펼쳤지만 대인수비에 허점을 보였다. 헤딩 슛 순간 가진스키를 마크하는 수비수가 없어 손쉽게 골을 내줬다. 러시아는 이어 전반 43분 체리세프가 강력한 왼발 슛을 터뜨리며 두 번째 득점했다. 후방에서 길게 찔러준 볼을 사우디아라비아 수비가 놓치면서 러시아의 오른쪽 측면 돌파를 허용했다. 오른쪽에서 반대편으로 넘어온 공을 받은 체리세프는 간결한 볼터치로 수비수 두 명을 제친 뒤 자신의 주 특기인 왼발슛을 날리며 추가골을 터뜨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좀처럼 러시아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선수들의 투지도 빈약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패스미스도 잦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러시아는 후반 16분 주바가 세 번째 골을 터뜨린데 이어 후반 추가시간에 체리세프와 골로빈이 각각 골을 더하며 5-0 완승을 거두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끝까지 해봐! 더 해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한국 축구대표팀의 훈련장에 울려 퍼진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말수는 적지만 힘껏 박수를 치며 후배들이 고된 훈련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한다. 선수들의 분위기를 조율하는 대표팀의 ‘빠따(몽둥이) 코치’ 김남일 코치(41)다. 그는 대표팀 합류 당시 “마음 같아서는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빠따’라도 치고 싶다”고 말해 이런 별명을 얻었다. “준비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굉장히 고단했고 부담감도 많았다. 언론에 기사 하나만 나와도 선수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굉장히 컸던 것 같다.” 카리스마 넘치는 김 코치지만 그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선수들의 예민한 심리상태다. 사실 훈련장을 벗어나면 부드러운 ‘빠다(버터) 코치’로 변한다는 것이 선수들의 설명이다. 그는 “굉장히 예민한 시기다. 모든 게 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선수들의 부담감이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첫 경기 할 때는 심리적인 문제가 클 것 같다. 선수들이 이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2006년, 2010년을 되돌아보면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런 힘든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결국은 본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혼자만 부담을 갖는 것보다는 동료 선후배와 그런 것을 좀 나누고, 또 동료 선후배들이 그런 점을 이해해 준다면 좀 더 편안한 심리상태로 경기장에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시간을 투자해서 내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했다.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기를 바라기는 신태용 감독 및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들도 마찬가지다. 코치들의 지도 스타일은 다르지만 결전을 눈앞에 둔 선수들에 대한 배려와 격려 및 진솔한 당부는 한결같다. 차두리 코치(38)는 김 코치와는 좀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선수들과 코치들이 훈련을 겸해 함께 족구를 할 때 차 코치는 오버헤드킥을 날리며 현역 선수 못지않은 운동신경을 과시했다. 선수들에게 다가가 농담도 툭툭 던진다. 함께 운동하는 동료 혹은 형 같다. ‘요즘 기성용 표정이 안 좋다’는 말에 차 코치는 “폼 잡는 것이다. 주장은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며 웃었다. A매치 데뷔전(세르비아전·지난해 11월)을 앞둔 골키퍼 조현우(대구)에게 다가가 “앞으로 100번은 더 A매치를 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데뷔전을 잘 치러라”라고 말하며 긴장을 풀어준 것도 그였다. 최근까지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함께 뛰어본 선수들이 있다 보니 선수들이 편하게 다가가서 걱정을 얘기하는 대상이 차 코치다. 이런 차 코치 역시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김 코치와 차 코치 등 한국인 코치들이 선수들의 긴장 완화 및 자신감 심어주기 등 심리적인 면에 주력하고 있을 때 외국인 코치들은 선수들의 체력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들은 한편 좀 더 거친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펼쳤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문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의 코치였던 토니 그란데 코치(71·스페인)는 선수들이 훈련할 때면 뒷짐을 지고 묵묵히 지켜본다. 말이 없지만 풍부한 경험과 경기 데이터를 지니고 있는 그는 대표팀의 ‘브레인’ 역할을 한다. 상대의 약점을 찾고, 상대 주축 선수를 막을 우리 선수를 찾는 일도 한다. 그는 얼마 전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이 배우려는 자세가 좋고 장점도 많지만 ‘악바리 근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에 입성하기 직전 한국 기자들에게 “축구는 물론 신사적인 스포츠여야 하고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경기가 그렇지는 않다. 상대가 거칠게 나오고 비신사적으로 나오는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우리 선수들도 더 강하게 거칠게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자신의 발언 취지를 설명했다. 그란데 코치는 “첫 경기를 이기려면 어떻게 싸워야 하나?”라는 질문에 “몇 달째 스웨덴의 경기 진행 방식을 충분히 파악했고, 그런 부분을 감독, 코치에게 보고했다. 그것을 토대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첫 경기를 이기지 못한다고 16강 진출 꿈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첫 경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스웨덴을 깰 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상트페테르부르크=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F조에서 우리는 최약체다. 하지만 어떻게든 첫 경기 상대인 스웨덴을 잡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상대에게 밀려도 결과(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신태용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48)은 평가전과 전지훈련은 월드컵 본선을 위해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모든 초점은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스웨덴전(18일 오후 9시)에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12일 그는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결산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러 논란에도 신 감독은 “전지훈련 성과에 만족하며 90점 정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이날 끝난 세네갈과의 비공개 평가전에서 0-2로 졌다. 월드컵 본선을 앞둔 대표팀의 마지막 평가전이었다. 이로써 대표팀은 오스트리아에서 치른 두 차례 평가전(볼리비아, 세네갈)에서 1무 1패의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월드컵 본선 H조에 속한 세네갈은 사디오 마네(리버풀) 등 정예 멤버를 출전시켰다. 대표팀은 상대 프리킥 상황에서의 자책골(김신욱)과 페널티킥 골을 내줬다. 신 감독은 “개인기가 좋은 세네갈 선수를 일대일로 마크하는 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세네갈의 측면 돌파를 막는 과정이 스웨덴전을 준비 중인 수비진에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2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친 공격력은 러시아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해 보완할 방침이다. 이날 대표팀은 주전 공격수 황희찬(잘츠부르크)이 허벅지 근육통으로 인해 결장했다. 신 감독은 “러시아에서도 스웨덴전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득점 루트를 잘 만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대표팀은 전술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평가전에 ‘위장 선발’을 내세우거나, 세트피스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신 감독은 세네갈전에서도 세트피스 전술을 모두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비공개 평가전이지만 경기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세트피스만 시도했다”고 했다. 그는 “세트피스는 틈틈이 훈련을 하고 있다. 장신 수비수가 많은 스웨덴을 상대로 어떤 세트피스를 사용해야 할지를 생각 중이다”고 덧붙였다. ‘평가전을 실험으로 낭비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대비해 상대에게 맞춘 선수 활용과 선수별 최적의 출전시간, 교체 타이밍 등을 확인했다. 실험이 아닌 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고 반박했다. 세네갈전에서 측면 수비수 이용(전북)은 부상으로 전반 37분 만에 교체 아웃됐다. 이날 이용은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가격을 당해 이마가 찢어져 7cm를 꿰맸다. 이용은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크로스가 장점이다. 신 감독은 “이용의 월드컵 출전에는 문제가 없다. 길면 4일, 짧으면 2, 3일 정도 무리하지 않고 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 감독과 선수들은 이날 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본격적인 스웨덴전 준비에 들어갔다. 신 감독은 “스웨덴의 경기 영상을 10경기 정도 보면서 상대의 공격 패턴 등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그들이 잘하는 플레이를 못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에이스는 창의적 패스 능력을 갖춘 미드필더 에밀 포르스베리(RB라이프치히)다. 그는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한다. 신 감독은 “90분 경기에서 포르스베리가 측면에 있는 것은 10분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80분은 중앙에서 경기를 하는 만큼 효율적인 수비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레오강=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 손흥민, 월드컵 빛낼 스타 37위 ▼ 한국 축구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이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이 선정한 2018 러시아 월드컵 톱50에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ESPN은 손흥민을 37위로 꼽으며 “한국이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 속한 F조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하려면 손흥민의 골 결정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ESPN은 또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눈물을 흘리며 떠난 손흥민이 이번에는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위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차지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2위, 네이마르(브라질)가 3위에 올랐다.}
“우리 집처럼 편안한 곳이다. 세밀한 훈련과 휴식을 병행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신태용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의 전지훈련을 마친 대표팀은 12일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최종 준비에 돌입한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를 앞당기기 위해 1703년부터 네바강 하구의 늪지대에 짓기 시작한 도시다. 200년 동안 제정 러시아 수도였고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혁명의 도시’다. 소련 정권은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름도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을 따 레닌그라드(레닌의 도시)로 바꿨으나,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옛 이름을 되찾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향이 상트페테르부르크다. ○ 훈련 집중도 향상+전력 노출 차단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수단이 사용할 숙소인 ‘뉴 페테르고프 호텔’은 도시 외곽에 있어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다. 대표팀 관계자는 “호텔 구조가 선수 숙소와 관광객 숙소가 분리돼 있어 선수들이 독립적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텔에는 미팅룸, 치료실, 휴게실 등이 있다. 호텔 측은 채소, 고기 등의 식재료를 준비한다. 대표팀 관계자는 “김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식당을 통해 조달한다”고 전했다. 숙소 옆에 호수와 공원이 있어 산책으로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다. 신 감독은 “단기전에서는 호텔에서만 생활해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월드컵은 장기전이다 보니 선수들이 산책도 하면서 부담감을 떨쳐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안이 철저한 훈련장 환경도 베이스캠프 선정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팀이 사용할 스파르타크 연습장은 주위에 고층 건물이 없고, 군사 시설로 둘러싸여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어렵다. 대표팀 관계자는 “전력 노출의 위험이 낮아 세부 전술 훈련에 적합하다. 숙소에서 훈련장까지의 이동 시간도 차로 15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와의 경합 끝에 베이스캠프로 낙점됐다. 모스크바는 숙소가 공항 인근 비즈니스호텔이어서 산만한 분위기가 감점 요소로 꼽혔다. ○ 모스크바보다 먼 비행 거리?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경기 도시까지의 비행시간은 니즈니노브고로드(1차전)가 1시간 30분, 로스토프나도누(2차전)가 2시간 15분, 카잔(3차전)이 1시간 50분이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할 때보다 30∼40분 더 걸린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모스크바는 교통체증으로 인해 공항까지 이동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린다. 이 때문에 전체 이동 시간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김대업 협회 국가대표지원실장은 “경기 이틀 전에 이동한다고 가정했을 때 비행시간 30∼40분은 컨디션 유지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또 다른 이름은 ‘백야(白夜)의 도시’다. 월드컵이 열리는 6,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후 11시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 숙면을 위해 대표팀은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예행연습’을 해왔다. 대표팀 관계자는 “오스트리아도 저녁이 밝은 경우가 많아 선수들의 숙소 커튼을 암막 커튼으로 모두 바꿨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용할 숙소에도 모두 암막 커튼이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레오강=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