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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꽤 좋게 나왔던데 세부 데이터 좀 구할 수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내년 4·10총선을 300일 앞두고 실시한 수도권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된 뒤, 한 야권 인사는 통화에서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평가 결과가 눈에 띄더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모두 긍정 평가가 40%대를 기록했지만,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김 지사의 성적표가 유독 괜찮았다는 의미다. 여기에 김 지사는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 주자 평가에서도 약진했다. 지금 여의도의 관심은 채 1년도 남지 않은 22대 총선에 쏠려 있지만, 물밑에서는 2027년 대선을 향한 경쟁도 이미 시작된 상황. 자연히 인구 약 1361만 명(5월 말 기준)으로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의 도정을 관할하는 김 지사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 지사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주축 세력인 친명(친이재명)도, 친문(친문재인)도,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도 아닌 독특한 정치적 위치를 갖고 있다.● 김동연, 중도-보수 유권자층에서도 ‘긍정’이 높아동아일보가 실시한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에서 김 지사는 긍정 평가 48.5%, 부정 평가 19.5%를 기록했다. 오 시장은 긍정 평가(44.2%)와 부정 평가(41.4%)가 오차범위 내를 기록했고, 유정복 인천시장은 긍정 평가(41.9%)가 부정 평가(33.9%)보다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5%포인트. 응답률은 서울 경기 9.0%, 인천 9.6%.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유일한 야당 소속 수도권 광역단체장인 김 지사가 가장 낮은 부정 평가를 기록한 것. 특히 김 지사는 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물론이고 중도,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도 후한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이념 성향이 ‘중도’라고 답한 경기도민의 50.3%는 김 지사의 도정 운영에 대해 긍정 평가를 내렸다. 보수 성향의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긍정(39%)이 부정(32.4%)보다 높았다.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도 김 지사는 안방인 경기도에서 가장 선전했다. 경기도민 8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31.3%), 한동훈 법무부 장관(15.3%), 오 시장(12.1%), 홍준표 대구시장(7.2%) 순이었다. 그리고 5위 김 지사(6.0%), 6위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5.1%)로 집계됐다. 서울, 인천, 경기 지역 조사에서 김 지사가 5위권 내에 입성한 건 경기가 유일했다. 이에 대해 야권 관계자는 “큰 격차는 아니지만 경기 지역 유권자들이 김 지사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 민주당 입당 1년 만에 ‘대안’ 부상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차기 대선 여론조사 추이 등에 대해서 큰 신경을 쓸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김 지사의 투자 유치 등 성과나 안정적 도정 운영, 공직사회 혁신 노력에 대한 평가와 기대치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지사 주변에서는 “각종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 김 지사가 야권 정치인으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16일부터 17일까지 실시한 조사 결과 ‘이 대표의 대안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김 지사는 이 전 대표,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과 각축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인 김 지사는 사실 민주당 소속이 된 지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지도 채 2년이 안 됐다. 반면 행정 관료로 살아온 세월은 훨씬 길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그는 1982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경제기획원(현 기재부) 사무관부터 경제부총리까지 오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보수, 진보 정권이 교차하는 동안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경기도지사 취임 1년을 맞아 진행된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공직 생활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제가 대통령을 여섯 분 모셨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모셨다. 노무현 정부 때는 기재부 국장을 하면서 ‘비전2030’을 만들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을 하면서 2주에 한 번씩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제가 경제부총리를 했으니 (대통령) 여섯 분을 모신 셈이다.” 경제부총리를 끝으로 공직을 떠났지만, 선거 때마다 여의도에서는 ‘김동연’이라는 이름이 회자됐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경제 전문가도 찾기 어렵지만,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 출신으로 부총리까지 오른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겠나”라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 지사 출마설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제3의 길을 택했다. 2021년 9월 ‘새로운물결’을 만들어 대선 도전을 선언한 것. 다만 독자 노선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 지사는 지난해 3·9대선 직전 이 대표와 단일화를 선언했다. 이후 새로운물결은 민주당과 합당했고, 그는 지난해 6·1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가 당선됐다. 경기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 지사는 지난해 3월 도지사 출마 선언에서 “제 인생의 절반을 광주, 성남, 과천, 안양, 의왕에서 살았다. 공직과 대학 총장을 하며 20년을 경기도에서 일했다. 누구보다 경기도를 잘 알고,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출마 선언을 경기 성남시 단대동에서 한 것도 유년 시절 청계천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성남으로 강제 이주돼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김동연, ‘징크스’와 ‘금기’ 깰 수 있을까“말 그대로 혈투 끝에 당선됐지만, 김 지사가 경기도를 택한 건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이 됐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스스로 경기를 떠나 인천으로 향하면서 경기도가 무주공산이 됐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경기 지역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59석(21대 총선 기준)으로 전국 시도 중 가장 규모가 큰 경기도의 맹주가 없는 상황에서 김 지사가 도정을 이끌게 됐다는 의미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출신인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경기 출신의 차세대 주자군으로 꼽혀 왔다. 남 전 지사는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에서만 내리 5선에 성공했고, 경기도지사까지 지냈다. 하지만 그는 2019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경기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이 대표의 몫이 됐다. 이 대표는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2018년 남 전 지사를 꺾고 경기도지사가 될 때까지 성남을 떠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도지사 재임 기간 동안 수원에 있는 경기도청과 경기도지사 공관을 기반으로 대선 도전을 위한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 이를 토대로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 자리까지는 거머쥐었지만, 이 대표도 ‘경기지사 징크스’를 넘지 못했다. 1995년 민선 도지사 시대 개막 이후 임기 1년 만에 구속된 임창렬 전 지사를 제외한 모든 경기도지사는 대권에 도전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전 지사에 이 대표까지 더해 5명이 고배를 들었다.‘경기지사 징크스’ 극복을 위한 또 다른 과제로는 당내 지지 기반 구축이 꼽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사실 김 지사가 경제부총리로 일할 때도 청와대, 민주당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한 건 아니었다”며 “내년 총선에서 경기 지역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친김동연’ 세력 구축에 나서려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여의도 경험이 없었던 이 대표도 경기 지역 의원들이 주축이 된 ‘7인회’를 통해 세 확장에 나서고 대선 후보 자리까지 차지했다. 다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김 지사가 기존의 정치 문법과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김 지사는 대선 도전을 선언하며 ‘정치개혁’을 앞세웠다. 이 대표와의 단일화 발표 당시에도 “경제부총리까지 하면서 아무리 올바른 경제정책을 만들어도 정치가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체험했고 그게 정치에 뛰어든 계기였다”고 했다. 또 그는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년의 성과로 가장 먼저 “돈 버는 도지사”를 꼽았다. 그간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 정치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김 지사는 “진보는 경제 성장에 유능하지 않다는 관념을 깨려고 했는데, 실제로 시장 원리에 맞게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내외 투자를 많이 유치했다. 약속한 대로 (임기) 4년 동안 100조 원 이상의 투자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통상 퇴임한 경제부총리들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거나 경제단체장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김 지사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정치에 뛰어들기 전 ‘대한민국 금기 깨기’라는 제목의 책을 냈던 김 지사는 실제로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행보를 꿈꾸고 있다. 김 지사가 징크스와 각종 금기를 깨뜨릴 수 있을지, 아니면 도전 끝에 좌절을 겪게 될지는 3년 후엔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에 설치 근거가 명시된 헌법기관이다. 국회, 법원, 대통령실 등도 헌법기관이다. 만약 헌법기관을 없애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반면 법무부, 외교부 등 정부 부처는 헌법이 아닌 정부조직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 수시로 부처 개편 등이 가능하다. 대다수 헌법기관의 수장은 출근을 한다. 국회의장은 국회로, 대법원장은 대법원으로,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출근한다. 상근(常勤)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시간 동안 근무하는 게 상근이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선관위로 출근하지 않는다. 현직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선관위원장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헌법기관장 중 비상근인 건 선관위원장뿐이다. 중앙선관위처럼 각 지역의 선관위 역시 관할 지역 법원장이 비상근으로 겸직한다. 대법관 본연의 업무에 더해 선관위원장 일까지 해야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소쿠리 투표’ 논란이 벌어졌던 지난해 3월 5일, 당시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 없었다. 다른 선거도 아니고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투표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조직의 수장이 출근조차 안 한 것. 이런 선관위를 두고 여권 관계자는 “매일매일이 이른바 ‘무두절(無頭節)’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전직 선관위 고위 인사도 “위원장은 밑에서 올린 대로 결재만 할 뿐 조직 운영, 업무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다. 자연히 조직은 직원들의 마음대로 돌아갔다. 선관위 직원이 정식 경력 채용 공고가 나기도 전에 자녀에게 채용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자녀는 지원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고 쓰고, 아버지의 동료 직원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아빠 찬스’ 논란에 더해 ‘형님 찬스’까지 벌어졌지만 당초 선관위는 중립성, 독립성을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했다. 그런데 앞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가 선관위 상임위원이 되고, ‘내로남불’ 문구가 담긴 현수막은 걸 수 없다고 한 건 과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결정이었나. 여론의 압박에 결국 선관위는 ‘아빠 찬스’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로 했다. 이어 출범 60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국정조사도 앞두고 있다. 선관위 설립 이후 가장 큰 위기 상황이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대대적인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 역시 선관위에 대한 질타를 뛰어넘어 선관위가 더 확실하게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선관위원장을 상근으로 전환하고, 선출 방법도 손봐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선거다. 우리 국민은 보통·평등·비밀·직접선거가 갖는 투표의 힘을 믿고, 그 결과도 인정한다.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져 선거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선관위가 달라져야 한다.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에 설치 근거가 명시된 헌법기관이다. 국회, 법원, 대통령실 등도 헌법기관이다. 만약 이들 헌법기관을 없애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반면 법무부, 외교부 등 정부 부처는 헌법이 아닌 정부조직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 수시로 부처 개편 등이 가능하다. 헌법기관의 위상이 더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일한 비상근 헌법기관장, 선관위원장 대다수 헌법기관의 수장은 출근을 한다. 국회의장은 국회로, 대법원장은 대법원으로,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출근한다. 상근(常勤)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시간 동안 근무하는 게 상근이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선관위로 출근하지 않는다. 현직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선관위원장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헌법기관장 중 비상근인 건 선관위원장뿐이다. 중앙선관위처럼 각 지역의 선관위 역시 관할 지역 법원장이 비상근으로 겸직한다. 대법원장이 지명한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는 관행이 계속돼온 것. 대법관 본연의 업무에 더해 선관위원장 일까지 해야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소쿠리 투표’ 논란이 벌어졌던 지난해 3월 5일, 당시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에 없었다. 다른 선거도 아니고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투표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조직의 수장이 출근조차 안 한 것. 이런 선관위를 두고 여권 관계자는 “매일매일이 ‘무두절’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조직의 최고 책임자와 권력자가 매일같이 자리를 비우니,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전직 선관위 고위 인사는 “위원장은 밑에서 올린 대로 결제만 할 뿐 조직 운영, 업무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다. 선관위 내부 인사가 승진 임명되는 사무총장, 사무차장을 두고 “실질적인 선관위의 1, 2인자”라고 부르는 것도 법적인 1인자인 선관위원장이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도 받지 않아 왔다. 견제 받지 않는 조직이 썩는 건 당연한 일. 선관위 직원이 정식 경력 채용 공고가 나기도 전에 자녀에게 채용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자녀는 지원서에 “아버지가 선거 관련 공직에 계신다”고 쓰고, 아버지의 동료 직원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무총장이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등으로 사퇴했는데, 또 다른 ‘아빠 찬스’의 당사자였던 직원들이 승진해 후임 사무총장, 사무차장을 맡는 기막한 일도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신임 사무총장, 사무차장의 자녀가 선관위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은 전혀 몰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관위 조직 전체가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을 우습게 여긴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했다. ● 2006년에도 상근직 논의했지만 불발 이런 ‘아빠 찬스’ 논란에 더해 ‘형님 찬스’까지 벌어졌지만 당초 선관위는 중립성, 독립성을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했다. 행정부 소속 감사원이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를 감사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게 선관위의 주장이다. 다만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선관위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스스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만 봐도 선관위는 각종 정치적 논란을 초래하는 결정을 내렸다. 현직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가 선관위 상임위원이 되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탐이 하면 불륜)’ 문구가 담긴 현수막은 걸 수 없다고 한 건 과언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결정이었을까. 어쨌든 여론의 압박에 결국 선관위는 ‘아빠 찬스’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로 했다. 이어 출범 60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 국정조사도 앞두고 있다. 선관위 설립 이후 가장 큰 위기 상황이지만, 이번 기회를 계기로 대대적인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 역시 선관위에 대한 질타를 뛰어넘어 선관위가 더 확실하게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선관위원장을 상근으로 전환하고, 선출 방법도 손봐야 한다. 선관위원장을 상근직으로 전환하려는 논의는 2006년에도 있었다. 당시 “폭주하는 선관위의 업무량과 위상에 맞춰 비상근 위원장을 상근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사학법 개정 등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이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상근직 전환 논의가 처음도 아닌 만큼, 선관위와 여야가 다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선거다. 우리 국민은 보통·평등·비밀·직접선거가 갖는 투표의 힘을 믿고, 그 결과도 인정한다.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져 선거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선관위가 달라져야 한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매 총선마다 수도권 대다수 지역구에서는 거대 양당의 치열한 맞대결이 펼쳐지지만 서울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처럼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공고한 지역도 수도권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하지만 각 당의 텃밭이라고 해서 갈등의 불씨가 없는 건 아니다. 특정 정당의 강세 지역구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생각으로 치열한 내부 전투가 예상되는 상황.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절대 우세 지역’으로 분류하는 지역구의 공천은 결국 정당 내부의 역학 관계가 고스란히 반영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⓷ 서울 동작을(현역 의원: 민주당 이수진)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은 전통적으로 동서 지역의 표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동쪽의 ‘강남 3구’는 국민의힘의 강세 지역이었고 금천부터 구로, 영등포, 관악구로 이어지는 서부 지역은 민주당이 우세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동작구가 있다. 동작구 중에서도 동작을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판사 출신 여성 후보 간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서는 당시 현역인 나경원 후보가 나섰고, 민주당은 부장판사 출신의 이수진 후보를 내세웠다. 투표 결과 이 후보가 52.16%를 얻어 45.04%를 얻은 나 후보를 제쳤고, 민주당은 17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동작을을 탈환했다. 내년 4·10총선을 앞두고 이 지역구에 다시 관심이 쏠리는 건 두 사람의 ‘리턴 매치’가 성사될 것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자리에 후보로 거론되던 나경원 전 의원은 장관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비교적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나 전 의원은 1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나 전 의원은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준비했다. 그러나 친윤(친윤석열) 진영 의원들은 나 전 의원의 불출마를 압박하는 연판장을 돌렸고, 대통령실까지 ‘나경원 찍어내기’에 동참했다. 고심하던 나 전 의원은 결국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나 전 의원의 공천 여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당대회 불출마 뒤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나 전 의원은 지역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나 전 의원이 우선 국회에 복귀한 뒤 다음 행보를 모색하기로 결심했다”며 “특정 진영이나 인사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력으로 국회에 진출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봉사단체인 ‘나봉이(나랑 함께 봉사단)’ 출범을 알리며 지역 봉사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이 당의 주류인 친윤 진영과 갈등을 빚었다면, 경쟁자였던 이수진 의원은 민주당의 핵심이 된 친명(친이재명) 진영 쪽으로 다가갔다. 이 의원은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의 모임인 ‘처럼회’의 멤버다. 검찰 개혁과 판사 탄핵에 앞장섰던 그는 강성 지지층의 지원을 믿고 지난해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컷오프(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고성 질의’ 등으로 논란이 됐던 것도 컷오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또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강경 지지층인 ‘개혁의 딸(개딸)’과 손잡은 처럼회는 비명(비이재명) 진영으로부터 해체 요구까지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야당 의원은 “나 전 의원과 이 의원의 공천 여부는 여야의 총선 전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며 “동작은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중도층 표심까지 고려해 공천을 결정하지 않겠느냐”고 했다.⓸ 경기 성남 분당갑(현역 의원: 국민의힘 안철수)‘천당 아래 분당.’ 과거 여권에서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를 두고 이런 말이 나왔다. 1기 신도시의 대표 지역인 분당은 ‘경기도의 강남’으로 불리며 보수 표심의 강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분당갑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단독 선거구로 신설된 이후 국민의힘의 강세가 계속됐다. 민주당이 분당갑에서 승리의 깃발을 꽃은 건 2016년 20대 총선 한 번뿐이었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에 내주긴 했지만, 국민의힘은 21대 총선에서 곧바로 분당갑을 탈환했다. 분당갑에 당선됐던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지난해 6·1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면서 의원직을 내려놓았고, 안철수 의원이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처럼 국민의힘의 텃밭인 분당갑이 주목받는 건, 여권의 내부 권력 지형과 직결된 곳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안 의원의 재출마 여부다. 이미 여권 내부의 갑론을박은 시작됐다. 몸은 대구에 있지만, 여의도의 각종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훈수를 두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3월 대구시청 출입기자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분당갑은 원래 안 의원 집이 아닌 셋집이라 원주인인 김은혜가 달라고 하면 내줘야 한다”고 했다. 내년 4·10총선에서는 김은혜 홍보수석이 다시 분당갑에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홍 시장은 안 의원에 대해서는 “갈 데는 (안 의원의 옛 지역구인) 노원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분당갑 지역에 재출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안 의원은 8일 MBC 라디오에서 “재·보궐선거로 들어온 사람이 또 지역구를 바꾸는 것은 주민에 대한 예의나 도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분당갑이 논란이 된 건 국민의힘 3·8전당대회도 영향을 미쳤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안 의원은 친윤 진영과 대통령실의 집중적인 견제 속에 결국 결선투표도 가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와 관련한 한 중진 의원이 말. “전당대회에서 그렇게 안 의원을 몰아세우더니, 공천까지 안 준다면 유권자들이 우리 당을 어떻게 보겠나? 김 수석도 만약 총선에 나간다면 차라리 이웃한 분당을로 가서 민주당 후보를 꺾겠다고 해야 명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권 내에는 전혀 다른 기류도 있다. “안 의원이 한 말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의 진단.“전당대회 과정에서 안 의원이 여러 차례 ‘당이 원하면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당 대표가 안 됐다고 안전한 분당갑에 또 나가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또 여느 초·재선 의원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안 의원은 대권을 꿈꾸는 사람 아니냐. 만약 안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험지에 나가 생환하면 확실한 여권의 차기 주자로 떠오를 수 있다.” 결국 여당의 분당갑 후보 공천은 친윤 진영의 영향력, 차기 대선 구도 등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⓹ 인천 계양을(현역 의원: 민주당 이재명) 분당이 여당의 강세 지역이라면, 인천 계양은 민주당의 텃밭이다. 1995년 구(區)로 독립한 계양구는 2000년 16대 총선부터 독립 선거구가 됐고, 2004년 17대부터 계양갑·을로 나뉘었다. 민주당은 2010년 당시 송영길 의원의 인천시장 출마로 치러진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잠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내준 걸 제외하면 20년 넘게 계양 지역을 독식해 왔다. 특히 계양을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아성을 구축한 곳이다. 송 전 대표는 16대 총선을 시작으로 계양을 지역에서만 5차례 당선됐다. 송 전 대표는 지난해 6·1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았고, 계양을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지역구가 됐다. 결국 계양을 지역이 주목받는 건 여야의 대결 구도가 아닌 민주당 내부의 권력 관계, 더 좁혀 말하면 이 대표의 향후 정치적 행보 때문이다. 내년 총선 공천권 등을 둘러싼 친명(친이재명)과 비명(비이재명) 진영 간 힘겨루기가 시작된 상황에서 이 대표 측은 “계양을에 다시 출마하겠다”, “출마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 등의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계양을에서 재선에 도전하면서 ‘총선 핵심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를 진두지휘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비명 진영의 기류는 다르다. 한 비명 진영 의원의 말. “이 대표가 지난해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할 때도 수도권 지방선거 챙기겠다고 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나?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이 대표가 계양을에 나선 것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이 대표 본인은 국회에 입성했지만, 다른 수도권 선거는 참패했다. 내년 총선에는 차라리 험지로 뛰어드는 게 더 명분이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여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계양을은 당에서도 어려운 지역으로 보기 때문에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나서면 맞대응 카드로 ‘빅 매치’를 만들어 볼 필요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는 이 대표에게 패하긴 했지만 44.75%를 얻었다. 2010년 보궐선거를 제외하면, 2000년 이후 계양을에 출마한 보수 정당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후보의 선전은 곧 이 대표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며 “이 대표가 출마한다면 우리도 중량급 후보를 내세울 경우 파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대표의 행보에 따라 계양을이 앞으로 더 뜨거워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121석.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을 기준으로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지역의 의석수다. 총선마다 “수도권의 승패가 곧 전체 총선의 승패”라는 말이 나오는 건 수도권 의석이 비례대표를 포함한 전체 300석 중 40.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도권의 표심 흐름이 전국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 정당은 수도권 승부에 사활을 걸고 있다.내년 4·10총선까지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합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총선 승패를 결정할 수도권 중에서도 관심 지역 5곳의 상황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⓵ 서울 종로(현역 의원: 국민의힘 최재형)종로를 표현하는 가장 오래된 수식어는 ‘정치 1번지’다. 서울의 한복판, 과거 권력의 중심이었던 청와대가 있는 지역구이기 때문. 여기에 전국 253개 지역구(21대 총선 기준) 중 대통령을 두 명(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배출한 지역구는 종로가 유일하다.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매번 선거 때마다 여야 거물 정치인들이 종로에 출격했고, 종로의 승자는 정치적 무게감이 한층 더 커졌다. 대표적인 예가 정세균 전 국무총리다. 고향인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 세 차례 당선됐던 정 전 총리는 19대 총선부터 종로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홍사덕 후보,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를 연거푸 꺾었다. 한 야권 인사는 “정 전 총리가 계속 전북에만 머물렀다면 국회의장, 국무총리는 물론이고 대권 도전까지 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21대 총선 역시 종로에서는 여야의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당 대표 간 맞대결이 벌어졌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황교안 전 대표와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승부에서는 이 전 대표가 승리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대표직과 의원직을 연이어 내려놓으면서 종로는 공석이 됐고, 지난해 3·9대선과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이 당선됐다. 감사원장을 지낸 최 의원 역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한 바 있다.이처럼 매번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출전했던 종로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아직까지는 고요한 상황이다. 현재 국민의힘에서는 최 의원 외에 종로에 나설 마땅한 후보군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최 의원 역시 재선에 무게를 두고 지역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실제로 내년 4월에 ‘최재형 대 곽상언’의 승부가 펼쳐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분위기다. 각 당이 총선 선거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정치 1번지’인 종로의 공천을 다각도로 신중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모든 지역구가 그렇지만, 특히 전국 지역구 중에서 종로는 출마하고 싶다고 나설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라며 “우리 당도, 국민의힘도 상대 당의 후보군을 살펴보고, 전체 선거 판세 등까지 고려해 공천을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종로 공천을 받는 후보의 면면을 보면 각 당의 총선 전략을 읽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⓶ 서울 마포갑(현역 의원: 민주당 노웅래)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장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간발의 차로 내줬지만,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뒀다. 당시 민주당은 서초, 강남, 송파 등 ‘강남 3구’와 중랑구를 제외한 21개 구청장 선거에서 이겼다. 이 선거를 시작으로 민주당은 10여 년 동안 서울 풀뿌리 조직을 장악했다. 2011년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까지 내준 국민의힘은 2014년,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을 탈환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6·1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을 포함한 서울 17곳의 구청장을 차지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마련했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에서 서울을 둘러싼 진짜 승부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그 대표적인 전장(戰場)이 은평, 서대문, 마포로 이어지는 서울 서북부권이다. 민주당은 2010년부터 2018년 지방선거까지 12년 동안 은평, 서대문, 마포 구청장을 놓지 않았다. 지역 권력의 장악은 총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은평갑을, 서대문갑을, 마포갑을 등 6석이 있는 서울 서북부권에서 민주당은 19대 총선(2012년)에서 4석을 차지했고 20대(2016년), 21대(2020년) 총선에서는 6석을 모두 가져갔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서대문구청장, 마포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0년 넘게 이어진 서북부권의 민주당 강세를 끊어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했다. 이런 서북부권에서 벌써부터 달아오르고 있는 곳은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갑이다. 그간 노 의원은 “대(代)를 이은 마포의 강자”로 꼽혀왔다. 노 의원의 부친인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은 마포에서만 국회의원을 5차례 지냈고 이어 민선 1, 2기 마포구청장으로 일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포에서 정치를 시작한 노 의원은 18대 총선에서만 패했을 뿐 17대부터 21대 총선까지 총 네 차례 당선됐다. 2016년 총선에서는 ‘국민 검사’로 불린 안대희 전 대법관을 여유 있게 꺾었다. 이처럼 부자(父子) 정치인이 대를 이어 지역구를 굳건히 지켜온 수도권 지역구는 마포갑이 유일하다.그러나 노 의원이 지난해 수천만 원의 뇌물과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 생명 최대의 위기를 맞은 노 의원은 검찰 수사에 대해 “노골적인 정치 수사, 기획 수사”라고 반발했고, 노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현재 진행 중인 1심 재판에서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노 의원은 내년 총선 출마 의지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아직 1심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노 의원의 공천 문제를 언급하기엔 이르다”며 “다만 노 의원이 버티고 있어 다들 조용히 있지만, 만에 하나 마포갑이 공석이 되면 당내에서 적잖은 인사들이 뛰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18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마포를 탈환하겠다는 각오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에서는 전·현직 의원들이 마포갑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는 18대 총선에서 노 의원을 꺾었던 강승규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다. 한 여당 의원은 “강 수석이 출마 지역을 두고 마포와 자신의 고향인 충남 예산-홍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비례대표인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도 일찌감치 마포갑 출마를 결심하고 당협위원장 신청까지 한 상태다. 여기에 여권 내부에서는 아예 “대표적인 친명(친이재명)계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을과 마포갑을 한데 묶어 ‘마포 벨트’ 공천을 전략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마포 출마를 고심하는 중량급 인사들이 적잖은 것으로 안다”며 “민주당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방탄 정당’을 성토하는 전략을 펼치면 마포 탈환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4월 10일 전까지 여야 의원 200명으로부터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서명을 받아 정치개혁을 실현하겠다.”(2월 1일 김진표 국회의장) “5월 중순까지는 (선거제 개편)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4월 14일 김 의장) “6월 말 전에 (선거제 개편) 안이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5월 22일 김 의장) 내년 4·10총선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한 김 의장의 발언들이다. 선거제 개편 목표 시점이 4월도, 5월도 넘겨 6월까지 늦춰진 것. 이대로라면 “7월에는 선거제 개편을 마무리 짓겠다”는 다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물론 선거제 개편이 늦춰지는 걸 두고 김 의장을 탓할 순 없다. 김 의장은 선거제 개편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정작 선거제도를 의결할 국회의원들이 선거제 개편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 의장이 이끄는 국회 사무처는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4월 김 의장은 여야를 강하게 압박해 19년 만의 국회 전원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나흘 동안 진행된 전원위에서는 100명의 여야 의원이 선거제 개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밝혔다. 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500명의 시민참여단을 꾸렸고, 시민참여단은 2주간의 숙의 과정을 거쳤다. 선거제 개편에 대한 의원들과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모두 나온 셈이다. 이제 남은 건 의원들의 결정, 현실적으로는 여야의 담판뿐이다. 선거제 개편은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표결해야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다급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대표끼리 밥 먹자는데 거절했다” “차라리 정책 토론을 하자” 등의 신경전은 오가도 “빨리 선거제 개편 논의를 마무리 짓자”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선거제 결정이 늦어질수록 현행 제도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큰 폭의 변화가 도입되면 현역 의원들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거제 개편이 계속 미뤄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다당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위성정당이 다시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했던 여야가 또 꼼수를 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건 여야가 하루빨리 선거제 개편 담판에 나서는 것뿐이다. 중대선거구제 등 큰 의제가 이견이라면 의원 정수 문제, 위성정당 폐지 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합의하고 시작하면 된다. 이번에도 선거제 개편에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정치권과 유권자 간 불신의 벽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4월 10일 전까지 여야 의원 200명으로부터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서명을 받아 정치개혁을 실현하겠다.”(2월 1일, 김진표 국회의장)“늦더라도 5월 중순까지는 (선거제 개편)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4월 14일, 김 의장)“6월 말 전에 (선거제 개편) 안이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5월 22일, 김 의장) 내년 4·10 총선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한 김 의장의 발언들이다. 선거제 개편을 마무리 짓는 목표 시점이 4월도, 5월도 넘겨 6월까지 늦춰진 것. 이대로라면 다음 달 중 김 의장이 “7월에는 선거제 개편을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원칙대로라면 총선 선거구 획정은 내년 총선 1년 전인 4월에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선거제 개편 논의가 하릴 없이 미뤄지면서 선거구 획정 역시 늦춰지고 있다. 내년 총선이 어떤 제도로 치러질지, 내년 총선의 지역구는 어떻게 정해질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 선거제 논의 지연에도 느긋한 與野 김 의장의 말로 시작했지만, 선거제 개편이 기약 없이 늦춰지는 걸 두고 김 의장을 탓할 순 없다. 김 의장은 선거제 개편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정작 선거제도를 의결할 국회의원들이 선거제 개편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 의장이 이끄는 국회 사무처는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 19년 만의 국회 전원위원회가 출범한 건 김 의장이 여야를 강하게 압박했기 때문이다. 나흘 동안 진행된 전원위에서는 100명의 여야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선거제 개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밝혔다. 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역별, 성별, 연령별 인구 분포를 감안해 500명의 시민참여단을 꾸렸고, 시민참여단은 2주간의 숙의 과정을 거쳤다. 500명이 모여 논의하는 모습은 지상파를 통해 생중계됐다. 선거제 개편에 대한 의원들과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모두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의원들의 결정뿐이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개별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여야 지도부의 담판이 이뤄져야 한다. 선거제 개편은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표결을 해야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다급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대표끼리 밥 먹자는데 거절했다” “차라리 정책 토론을 하자” 등의 신경전은 오가도 “하루빨리 선거제 개편 논의를 마무리 짓자”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야는 “정개특위에서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자”(국민의힘), “전원위원회 소위원회를 꾸려 선거제 개편 논의를 이어가자”(민주당)는 상반된 주장만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 “선거제 개편 늦어질수록 현역에게 유리” 여야가 선거제 개편에 미온적인 이유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선거제 결정이 늦어질수록 현행 제도를 최대한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제 개선 등 큰 폭의 변화는 이뤄지지 못하고 현행 소선거구제의 틀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경우 현역 의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앞서 정개특위에서 결의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나 개방명부식 대선구제는 총선 지형을 뒤흔드는 변화다. 1988년에 도입돼 30년 넘게 지속된 소선거구제가 바뀌면 현역 의원들의 생존을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전직 의원은 “결국 여야 현역 의원들의 목표는 선거제 개편을 최대한 늦게 결정해 2020년 총선 제도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선거제 개편이 계속 미뤄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다당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위성정당이 다시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켰던 여야가 또 한 번 꼼수를 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 전직 의원은 “연말까지도 선거제 개편 논의가 진척을 보이지 못한다면 슬그머니 ‘선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이번에도 2020년 총선 제도로 치르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며 “여야 모두 한 석이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 위성정당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야가 하루빨리 선거제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뿐이다. 중대선거구제 등 세부적인 방법에 대해 이견을 좁혀가야 한다면 의원 정수 문제, 위성정당 폐지 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합의하고 시작하면 된다. 19년 만의 전원위원회 개최와 사상 최초로 도입된 500인의 시민참여단 등에도 불구하고 선거제 개편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여야 정치권과 유권자 사이의 불신의 벽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정말 출마할까요?”얼마 전 만난 국민의힘의 한 원외(院外) 인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자 즉각 반응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더불어민주당 일이니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이라며 운을 뗀 뒤 이렇게 털어놨다.“마음 같아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도, 조국 전 장관도 다 하나의 깃발로 뭉쳐 총선에 나왔으면 좋겠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당에서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마음일 거다.”여권 인사들의 이런 인식은 세 사람의 총선 출마가 수도권, 중도 유권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론’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번에도 거대 양당 간 맞대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면 자연스럽게 국민의힘이 표를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 “민주당, ‘조국의 강’ 이어 ‘남국의 바다’에서 허우적”실제로 최근 국민의힘은 ‘이재명-김남국-조국 트리오’를 함께 묶어 공격해 전선(戰線)을 끌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민주당을 탈당한 김 의원은 “곧 돌아오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상황. 여기에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해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는 조 전 장관까지 한데 묶어 공세를 펼치겠다는 의도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의 19일 원내대책회의 발언이 대표적이다.“민주당은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국민적 분노가 임계점을 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중략) 그런데도 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과 강성 지지자들은 ‘조국 수호’에 이어 ‘남국 수호’ 모드에 돌입했다. ‘조국의 강’도 건너지 못한 민주당이 이제 ‘남국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이런 움직임에 대해 한 여권 인사는 “김 의원이 ‘친이재명’ 그룹과 ‘친조국’ 그룹의 대표적인 교집합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던 김 의원은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불현듯 정치권에 등장했다. “조국 교수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기도하면서 잔다”고 했던 그는 ‘조국 키즈’로 불리며 민주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다.이후 2021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국면에서 김 의원은 ‘이재명 수호대’로 변모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 의원 그룹인 ‘7인회’에서 막내인 그는 경선 당시 이 대표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수행실장을 맡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 의원이 변호사가 된 뒤 서울대 대학원에 다녔고, 거기서 조 전 장관과 교류하게 됐다”며 “이 대표와는 중앙대 선후배라는 접점이 있어 김 의원이 자연스럽게 친명 그룹의 핵심이 됐다”고 전했다.여기에 여권 내부에는 만약 세 사람이 내년 총선에 나설 경우 선거의 프레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사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다”며 “다만 세 사람이 모두 출마한다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심판 선거’ 등으로 판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여권의 이런 관측에는 “지난해 6·1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가 또 한 번 재연될 수 있다”는 기대도 깔려 있다. 당시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출마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민주당에 내줬지만,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뒀다. 6·1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 66개 시·군·구청장 중 46곳(69.7%)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시 중도층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이 대표가 계양을 후보로, 계양을 국회의원이었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것에 대한 반감이 엄청났다”며 “상징적이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1, 2개 지역구의 공천이 수도권 전체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전체 승부까지 좌우하는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與 내부에서도 “쇄신 노력 없이 반사이익만 노리나” 우려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상대방의 헛발질에만 기대하는 무책임한 정치로 어떻게 총선을 이길 수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소속인 한 전직 의원의 지적.“명색이 집권 여당인데, 유권자가 야당이 싫어져서 여당 찍어 주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집권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면 반성하고 쇄신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당 지지율도 도토리 키 재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 대결은 몇 달째 30%대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직전인 3월 첫째 주에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 등으로 두 당의 지지율 차가 10%포인트까지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후 여당 최고위원들의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시 접전으로 돌아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의원회 홈페이지 참조).이에 따라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여름까지도 당 지지율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당 쇄신의 포문을 여야 중 누가 먼저 여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또 최근 국민의힘이 당정 협의회를 연이어 열고 정책 주도권을 쥐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한 여당 의원은 “다음 달 초에는 새 최고위원이 뽑히고, 비로소 지도부를 둘러싼 문제도 수습될 것”이라며 “이제는 정책적인 면은 물론이고, 정무적인 면에서도 득점하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당진 1박 후 청주발 비행기로 제주. 제주 호남향우회 행사에도 내일 14일 참석합니다. 2월부터 현재까지 전국 초청 강연 30회 이상 … 앞으로도 미래를 위해 방송 강연 운동에 정진하겠습니다.”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13일 페이스북에 이같이 알렸다. 국회의원들이 트위터를 즐겨 사용할 때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 직접 나섰던 박 전 원장은 최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강연에 나서고, 유권자 및 정치인들과 만나는 일정들이다. 이런 박 전 원장의 행보를 두고 야권 관계자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재기를 노리겠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내년 4·10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감지되는 여야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올드보이(OB)’들의 귀환 움직임이다. 과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정치인들이 22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 복귀를 시도하고 있는 것. ●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최경환…몸 푸는 與野 중량급 인사들1942년생으로 팔순을 넘긴 박 전 원장은 지난해부터 강연은 물론이고 라디오 등 방송 출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4선 의원 출신으로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등을 지낸 그는 페이스북 정치에도 열심이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적극 엄호하는 식이다. 이런 그의 행보와 관련해 호남 지역의 한 야당 의원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아직 ‘현역 정치인’이라는 점을 알려 내년 총선에 나서겠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이미 지역에서는 박 전 원장이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14대 총선에서 전국구(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박 전 원장은 18대 총선을 시작으로 전남 목포에서 내리 세 차례 당선됐다. 21대 총선에서도 목포에 출마했지만 민주당 김원이 의원에게 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고향인 진도가 있는 해남-완도-진도 지역구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에서 박 전 원장이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면, 광주에서는 천정배 전 의원의 행보가 관심사다. 5선 의원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 전 의원은 자신의 옛 지역구인 광주 서을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총선에서 광주 서을에 출마했던 천 전 의원은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양향자 의원에게 패했다. 그러나 양 의원의 탈당으로 이 지역구가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면서 벌어진 경쟁에 천 전 의원도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전북 정가에서는 정동영 전 의원의 5선 도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정 전 의원은 15, 16, 18, 20대 총선에서 당선됐고 통일부 장관, 집권 여당 대표 및 대선 후보를 거쳤다. 21대 총선 패배 이후 잠시 주춤했던 정 전 의원에 대해 전북 지역의 한 정치권 인사는 “전주병 지역구에서 현역인 민주당 김성주 의원과 정 전 의원 간의 세 번째 맞대결이 유력한 분위기”라고 했다.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선후배인 두 사람은 20대, 21대 총선에서 맞붙어 나란히 1승 1패를 기록했다. 세 사람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극심했던 친문(친문재인)-비문(비문재인) 갈등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 당시 문 전 대통령과의 결별을 택한 이들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손잡고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호남을 석권했고, 세 사람 모두 국회에 입성했다. 21대 총선에서는 나란히 고배를 들었던 이들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대규모 복당을 수용하면서 다시 민주당 당적을 보유하게 됐고,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다.이런 OB들의 귀환 채비는 여권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17대부터 20대 총선까지 경북 경산에서만 네 차례 연이어 당선된 최 전 장관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으로 꼽혔다. 그러나 2018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3월 문 정부의 마지막 특사에 포함되면서 사면·복권됐다. 국민의힘의 한 전직 의원은 “아직 최 전 장관 본인은 출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년 총선에서 경산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與野 “전체 총선에 미칠 영향은…” 떨떠름한때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들이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명분과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OB들의 생각은 쉽게 말해 ‘내가 김남국보다 못할 게 뭐냐’는 거다. 자신들이 김남국 의원을 포함해 어지간한 초선 의원들보다 국회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정말 김 의원이 OB들보다 잘하는 건 코인 투자, 그거 하나 아닌가?”실제로 21대 국회의 여야 초선 의원들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의정활동으로 존재감을 보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고, 오로지 재선 생각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의원이 속한 민주당 강경파 초선들의 모임인 ‘처럼회’는 민주당 내에서도 “해체라하”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여당 초선들 역시 ‘친윤(친윤석열) 충성 경쟁’에 함몰된 지 오래다. 여기에 일부 지역구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초·재선 의원보다 거물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OB들이 다시 몸을 푸는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는 OB들의 귀환 채비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분위기다. 지역구 1석이 아닌 총선 전체를 봤을 때 ‘수십 년째 활동하는 인물’들의 등판이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 여야의 대선 후보가 모두 ‘0선’이었다는 점은 국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새 인물 영입 경쟁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OB들이 등장하면 유권자들이 좋아할 리 없다”고 했다. 특히 OB들이 재기를 다지는 지역이 모두 여야의 텃밭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정치를 더 해야 할 정도로 실력과 경험이 출중하다면 격전지인 수도권에 나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이 그저 안전한 영호남에서 국회의원 4년 더 해보겠다는 욕심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한 야권 인사 역시 “내년 총선 승부를 가를 젊은 유권자들이 OB들의 귀환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이 문체부 장관으로 일하며 김대중 정부의 ‘소통령’으로 불렸던 때가 1999년이다. 그 이듬해인 2000년에는 천 전 의원, 정 전 의원이 신기남 전 의원과 함께 ‘천신정’으로 불리며 집권 여당의 개혁에 앞장섰다. 최 전 장관이 친박의 핵심으로 꼽히기 시작한 건 200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다. 그리고 내년 총선의 유권자 중엔 2006년생도 있다. 지난해 대선부터 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조정되면서,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은 2006년 4월생도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일꾼을 처음으로 뽑는 2006년생 유권자들은, 과연 OB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일반 국민 여론조사가 10%만이라도 반영됐다면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국민의힘 3·8전당대회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월 초, 한 여권 인사는 전당대회 양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친윤(친윤석열) 인사들이 앞장서 나경원 전 의원을 결국 주저앉히고,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안철수 의원에게 날 선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지난해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당 지도부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아예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2004년부터 18년 동안 실시해온 국민 여론조사를 없애고 오로지 당원 투표로만 당 지도부를 뽑기로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것이었지만, 모두가 아는 속내는 따로 있었다. 2021년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 여론조사의 압도적인 지지를 토대로 승리한 이준석 전 대표처럼 비윤(비윤석열) 후보가 승리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 “일반 여론조사를 없애면 민심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친윤 진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 우려는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부터 현실이 됐다. 3월 8일 전당대회 이후 두 달여 동안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이 촉발한 논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숱한 논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극우’와 ‘대통령실’이다. 여당의 이번 전당대회를 짓누른 단어들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반 여론조사가 없어지면서 전당대회 후보들이 오로지 당원, 그중에서도 극우 성향이나 강경 지지층만을 염두에 둔 선거운동에 매달렸다”며 “예상과 달리 태 최고위원이 4위로 지도부에 합류한 게 대표적”이라고 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태 최고위원은 제주4·3사건에 대해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했고, 거센 반발에도 사과하지 않고 버틴 태 최고위원에게 일부 극우 성향 당원의 표가 쏠렸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최선임 수석인 정무수석비서관이 나서 안 의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압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조차 “정무수석이 저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해도 되나 싶었다”고 했고, 한 초선 의원은 “저런 분위기에서 누가 대통령실에 대해 쓴소리나 조언을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자연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은 대통령실이 공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위축됐고, 이런 상황에서 태 최고위원의 육성이 담긴 녹취록에도 공천이 등장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 “급조된 ‘당원 투표 100%’ 룰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당 지도부는 윤리위원회 징계를 통해 ‘최고위원 리스크’를 수습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집권 여당의 발목을 잡았던 문제의 근본 원인을 끝내 외면한다면 위기는 쉽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일반 국민 여론조사가 10%만이라도 반영됐다면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월 초, 한 여권 인사는 전당대회 양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친윤(친윤석열) 인사들이 앞장서 나경원 전 의원을 끝내 주저앉히고,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안철수 의원에게 날 선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지난해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후 여당 지도부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아예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2004년부터 실시해온 국민 여론조사를 없애고 오로지 당원 투표로만 당 지도부를 뽑기로 했다. 2004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보다 먼저 전당대회에 국민 여론조사를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민심을 잡지 못하면 10년 넘게 야당 노릇만 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8년 뒤,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규칙 개정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것이었지만, 모두가 아는 속내는 따로 있었다. 2021년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 여론조사의 압도적인 지지를 토대로 승리한 이준석 전 대표처럼 비윤(비윤석열) 후보가 승리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 이 전 대표는 대선 기간 내내 친윤 진영과 충돌했고, 대선 승리 이후에도 이른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은 이 전 대표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다만 “일반 여론조사를 없애면 민심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친윤 진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 우려는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부터 현실이 됐다. ● 예견됐던 ‘최고위원 리스크’ 3월 8일 치러진 전당대회의 결과는 친윤이 바라던 대로 됐다. 전당대회 투표 전, 일각에서는 “결선투표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지만 김기현 대표는 과반을 얻어 2위인 안 의원을 큰 격차로 눌렀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비윤 진영은 전멸했다. 이른바 ‘천아용인’이라고 불렸던 천하람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당 대표 후보), 허은아 의원, 김용태 전 최고위원, 이기인 경기도의원(이상 최고위원 후보)은 모두 낙선했다. 이런 결과에 친윤 진영은 한껏 고무됐지만, 축포는 오래가지 못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3월 12일 논란의 문을 열었다. 그는 극우 성향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한 예배에 참석해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던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全文) 수록에 반대 뜻을 표했다. ‘최고위원 리스크’의 시작이다. 이후 두 달여 동안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이 촉발한 논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숱한 논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극우’와 ‘대통령실’이다. 여당의 이번 전당대회를 짓누른 단어들이다. 전당대회 선거 운동과 관련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반 여론조사가 없어지면서 전당대회 후보들이 오로지 당원, 그중에서도 극우 성향이나 강경 지지층만을 염두에 둔 선거운동에 매달렸다”며 “예상과 달리 태 최고위원이 4위로 지도부에 합류한 건 제주 4·3사건의 발언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선거운동 기간 태 최고위원은 4·3사건에 대해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했고, 이런 태 최고위원에게 일부 극우 성향 당원들의 표가 쏠렸다는 분석이다. 또 전당대회에서는 대통령실의 최선임 수석인 이진복 정무수석비서관이 나서 안 의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압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를 두고 여당의 한 중진 의원조차 “정무수석이 저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해도 되나 싶었다”고 했고, 한 초선 의원은 “저런 분위기에서 누가 대통령실에 대해 쓴소리나 조언을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반응에 의원들은 즉각 움츠러들었다. 당내에서는 “전당대회에 저렇게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대통령실이 내년 총선 공천을 그냥 지켜만 보겠느냐”는 반응이 나왔고, 의원들은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태 최고위원의 육성이 담긴 녹취록에도 공천이 등장했다. ● 다음 전대에도 ‘당원 100%’ 유지할까 두 최고위원의 설화는 두 달 내내 집권 여당의 발목을 잡았다. 수석 최고위원이 4월 한 달 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고, 태 최고위원의 공천 녹취록 파문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3월 방일, 4월 방미, 5월 한국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등을 소화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당에서는 온통 두 최고위원을 둘러싼 나쁜 뉴스만 나왔다”며 “이게 해당(害黨)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했다. 결국 김 대표도 결단을 내렸다. 두 최고위원의 문제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빠르게 당 윤리위원회를 구성한 것. 김 대표가 4일과 8일 연거푸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당 관계자는 “두 최고위원이 공개석상에서 언론에 노출되는 일을 아예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당 윤리위도 1일 징계 개시 절차 시작 이후 8일까지 세 차례 회의를 열었다. 윤리위는 10일 두 최고위원의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중징계를 통해 ‘최고위원 리스크’에서 벗어나겠단 당 지도부의 의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당원 투표 100%’라는 룰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당 안팎의 지적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한 여당 의원은 “국민 여론조사가 아예 반영되지 않으니 중도층 유권자들의 민심이 전당대회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은 대가”라며 “문제는 당 지도부가 문제를 촉발한 근본 원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닥친 위기만 모면하려 들고 있다”고 했다. 만약 김 대표를 포함한 현 지도부가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다음 전당대회는 2025년 3월 열리게 된다. 후임 지도부는 당의 명운이 달린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지나, 정권 재창출 여부가 달린 선거를 앞두고도 과연 국민의힘은 ‘당원 100%’로 전당대회를 치르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이번에 누가 될 것 같아요?” 3월부터 4월까지, 여야 국회의원들은 사석에서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의원들조차도 새 원내대표에 누가 당선될지 선뜻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7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8일 임기 1년의 원내대표를 뽑았다. 정치를 업(業)으로 하는 의원들에게 사실 선거는 일상이다. 일단 총선에서 이겨야 국회에 입성할 수 있고 지방선거, 대통령선거도 당의 일원으로 치러야 한다. 총선, 지방선거, 대선 등에 앞서 치러지는 당내 경선도 있다. 원칙적으로 2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 역시 선거다. 이처럼 선거에 이골이 난 의원들이지만, 유독 원내대표만큼은 “결과 예측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중진 의원은 “지금까지 원내대표 선거를 10번 넘게 했지만, 결과가 내 예상대로 나온 적은 몇 번 없다”고 했다. 이번 여야 원내대표 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갑내기인 윤재옥 원내대표와 김학용 의원의 양자 대결로 치러졌던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는 “팽팽한 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65표를 얻은 윤 원내대표가 44표를 얻은 김 의원을 여유 있게 제쳤다. 선거 뒤 여당 의원들 대다수는 “스무 표 이상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3주 뒤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의원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4파전으로 치러졌던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상당수 야당 의원들은 “그래도 결선투표까지는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박광온 원내대표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는 열리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2위와의 격차가 꽤 벌어졌다”고 전했다. ● 院內 업무 총괄하는 당의 2인자 원내대표 선거의 예측이 어려운 건, 오로지 의원들만 참여하는 무기명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통상 전당대회의 경우 친윤(친윤석열), 비윤(비윤석열), 친명(친이재명), 비명(비이재명) 등 계파 대결 양상으로 치러지지만, 원내대표 선거는 다르다. 개별 의원의 친분 관계, 당 운영에 대한 개별 의원의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 원내대표 선거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들었던 한 야당 의원의 회고.“선거 운동 기간 동안 의원 명단을 펼쳐놓고 체크를 한다. 확실하게 나를 찍을 것 같은 의원들은 동그라미, 중립이면 세모, 경쟁 후보를 찍을 게 확실하면 엑스(×) 표시를 하는 식이다. 문제는 결과를 보니 나를 찍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의원 중에 경쟁 후보를 찍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거다. 차마 면전에 대고 ‘당신 못 찍겠다’는 말을 못 하니 내 앞에서는 나를 지지하는 척했던 것이다.” 여기에 서로 경쟁 계파에 속해 있더라도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쉬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 등 상임위원회 인선을 약속 받고 표를 찍어주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예측 불허의 선거전이고, 너무 적은 표를 받으면 공개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내대표를 희망하는 의원들은 매년 속출한다. ‘현역 의원들의 반장’ 격인 원내대표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원내대표는 3김(金) 시대만 해도 ‘원내총무’로 불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왕적 총재였던 3김의 지시를 받드는 참모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3김이 퇴진하고, 원내 정당 강화 움직임이 불면서 2003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이 원내대표로 명칭을 바꿨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도 곧바로 동참했다. 원내대표는 통상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맡지만, 원내교섭단체(20석)를 꾸리지 못하는 정당의 경우 재선 혹은 초선 의원이 맡는 경우도 있다. 원내대표로 명칭이 바뀌면서 위상도 당 대표에 이은 ‘넘버2’로 높아졌고, 권한도 세졌다. 당직 인선, 후보자 공천 등 당의 사무는 당 대표에게 결정권이 있지만 상임위 배치, 여야 입법 협상, 정부 예산안, 인사청문회 등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 원내대표의 소관 사항이다. 원내대표가 ‘원내 사령탑’, ‘원내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이유다. 여기에 당의 2인자로서 당무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최고위원회의 일원으로 주요 당무에 관여할 수 있고 당 대표가 임기 만료 전 물러나면 당 대표 권한대행은 원내대표가 맡는다. 특히 4년의 회기 중 총선 직전인 마지막 해 원내대표의 정무적 힘은 더 강하다. 여권 관계자는 “본인이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한 현직 원내대표가 공천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며 “게다가 공천 과정에서 원내대표는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각 당 최고위원들의 위상이 달라진 것도 원내대표의 인기가 높아진 배경으로 꼽힌다. 한 야권 인사는 “최고위원은 통상 중진들의 몫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여야 모두 초·재선들이 최고위원을 맡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며 “중진 의원들이 정치적 체급을 키울 수 있는 길은 원내대표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 ‘윤재옥-박광온’ 체제의 국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달 여야는 나란히 원내 사령탑을 새롭게 뽑았다. 1년 동안 원내 협상을 벌이게 될 윤 원내대표와 박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 별다른 교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출신인 윤 원내대표는 대구에서만 내리 세 차례 당선됐다. MBC 기자 출신인 박 원내대표는 고향인 전남 해남에 출마해 한 차례 고배를 든 뒤 경기 수원에서 세 번 이겼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도 있다. 신중한 언행으로 동료 의원들의 신망을 받아왔고, 오랜 국회 경험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2선에서 활동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로 꼽히는 윤 원내대표지만, 다른 윤핵관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장제원, 권성동 의원이 전면에 나서 활동했던 ‘윤핵관’이라면 윤 원내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은 공개 행보 대신 뒤에서 조용히 할 일을 했던 ‘윤핵관’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 역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친문으로 꼽혔지만, 친문 핵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기에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도운 탓에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자연스럽게 비주류로 분류됐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에서 패한 뒤 박 원내대표는 1년 동안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선거 운동을 벌여왔다”며 “차분하고 적을 잘 만들지 않는 박 원내대표의 성품 때문에 친명 의원 중에도 박 원내대표를 찍은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런 두 원내대표의 특징은 원내대표단 인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내대표 간 담판에 앞서 여야 물밑 협상을 진행하는 원내수석부대표에 윤 원내대표는 이양수 의원(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을, 박 원내대표는 송기헌 의원(강원 원주을)을 임명했다. 이 의원과 송 의원 모두 내부는 물론이고 상대 당 의원들로부터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다. 비슷한 성향의 두 사람이 여야의 원내 사령탑이 되면서 국회에서는 “대화를 통한 타협의 정치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야의 극한 대치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당의 직회부와 정부 여당의 거부권 대결로 인해 여야의 상호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두 원내대표는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전부터 서로를 향한 견제에 나섰다. 윤 원내대표는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원내대표를 향해 “숫자의 힘으로 일방적인 국회 운영을 하고 있는 입법 폭주를 멈추고, 저와 함께 의회 정치 복원에 힘쓰자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21대 국회 내내 이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끝내자는 당부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이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거부권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엔 대통령의 권한”이라면서도 “국회에서 심의를 거쳐 통과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심사숙고해야 하고,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간호법 등 민주당이 직회부를 통해 의결한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고 수용하라는 압박이다. 새롭게 꾸려진 여야 원내 지도부에 대변인단이 강화된 것도 “내년 총선까지 펼쳐질 여론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두 원내대표의 뜻이 반영된 조치다. 윤 원내대표는 원내대변인에 장동혁 전주혜 의원을 임명했다. 두 의원 모두 21대 국회에서 원내대변인을 지냈지만 윤 원내대표가 다시 한 번 대(對)언론 창구 역할을 맡긴 것. 박 원내대표도 김한규 이소영 원내대변인에 더해 원내경제대변인을 신설하고 홍성국 의원을 발탁했다. 또 ‘넘버2’의 한계로 두 원내대표 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여야가 ‘윤석열 대 이재명’이라는 대립 구도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원내대표가 실타래를 풀어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 한 여권 관계자는 “전임 원내대표였던 주호영, 박홍근 의원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며 “문제는 여야 수뇌부가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의식한 강경책을 고수한다면 두 원내대표가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총 301건. 국민의힘이 지난달 10일 ‘김기현 체제’가 출범한 뒤 23일까지 발표한 당 공식 논평 중 ‘이재명’이 포함된 논평의 숫자다. 휴일을 포함한 45일 동안 하루 평균 6.7건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관련 논평을 낸 것. 당연히 긍정적인 내용이 아니라 이 대표를 성토하는 내용이 담긴 논평들이다. 이런 기류는 새 지도부가 출범한 뒤 첫 최고위원회가 열린 3월 13일부터 감지됐다. “이 대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와 조폭의 그림자, 마치 영화 ‘아수라’처럼 등골이 오싹하고 섬뜩하다”는 김기현 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김재원 김병민 조수진 최고위원과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등 전당대회 당선인들은 처음으로 참석한 최고위 공개 발언에서 이 대표를 맹비난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을 연일 비판하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기-승-전-이재명’이라는 흐름으로 매일같이 이 대표를 성토하고 있다. 공세의 수위와 집요함을 보면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정말 그럴까.● 국민의힘 “이재명 사퇴 안 할 거 알지만…”“같은 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 꿈쩍도 안 하는데, 우리가 이야기한들 (사퇴를) 하겠느냐.”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정말 이 대표의 퇴진을 바라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논평을 발표하는 당 대변인단은 물론이고 여당 의원들도 입버릇처럼 이 대표의 사퇴를 말하고 있지만, 현실화되지 않을 걸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왜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사퇴를 목 놓아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한 여권 인사의 설명. “우리도 야당 해봤지만, 야당은 매일같이 장관과 대통령 참모들에 대해 ‘물러나라’, ‘사퇴하라’고 외치는 게 일이다. 물론 그렇게 외쳐도 안 물러날 거 안다. 하지만 유권자들에게 ‘문제적 장관’, ‘귀 닫은 집권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야당은 매일같이 외치는 거다. 이 대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가 버티고 있습니다’라는 걸 유권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여권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 거 알고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민주당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다. 대선 이후에도 여전히 이 대표가 민주당의 간판으로 활동하고 있고, 자연히 이 대표 사법리스크는 계속 수면 위에 떠 있다. 민주당은 우리에게 ‘친윤(친윤석열) 일색’이라고 하는데 그럼 뭐 민주당은 대선 지고 나서 바뀐 게 있나? 여전히 ‘친명(친이재명) 체제’ 아니냐. 지난해 대선에 이어 내년 총선도 ‘윤석열 대 이재명’의 구도가 된다면 우리에겐 결코 나쁘지 않다. 그럼 우린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문제점만 계속 지적하면 되는 거다. ”● 여야의 ‘누가 더 못하나’ 경쟁 이런 여권의 기류와 기대는 14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 동안 여실히 드러났다. 14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27%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3주차 이후 25주 만에 다시 최저치를 기록한 것. 정당 지지율 역시 민주당 36%, 국민의힘 31%를 기록하며 격차가 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의 연이은 논란 등이 고스란히 여론조사에 반영된 것. 이 결과에 대통령실은 “항상 민심에 대해 겸허하게 보고 있다”고 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당장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의원들도 술렁이기 시작한 것. “당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커졌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핵심은 “민주당의 ‘돈봉투 의혹’이 이번 조사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된 것 같으니 지켜보자”는 것. 당시에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돈봉투 의혹’이 막 불거진 참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21일, 한국갤럽의 4월 3주차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1%로 반등했다. 5% 포인트까지 벌어졌던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32%로 같아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돈봉투 의혹’에 대한 관심은 커졌는데 당 지도부나 송영길 전 대표 등이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 “서로에게 힘이 되는 국민의힘-민주당” 이처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번갈아 자책골을 기록하며 서로의 지지율을 다시 하향 평준화하는 상황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두 당이 나란히 상대방만 믿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상 거대 양당 체제가 고착화된 국회 현실을 이용해 ‘누가 더 못하나’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 그렇다고 여야가 매번 이런 양상만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대선을 앞뒀던 2021년 여야의 모습은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다.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은 ‘30대·0선 당 대표’를 뽑는 파격을 선보였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확실한 변화를 선보여 지긋지긋한 전국 선거 연패를 끊어내고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도였다. 민주당 역시 2021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12명의 의원들에게 탈당을 권유하는 초강수를 둔다. 또 무기명 의원 투표를 통해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 방향과 다르게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과 대상을 줄이는 방안을 채택한다. 4·7 재·보궐선거 참패로 인해 “이대로라면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야 모두에게 절박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쇄신 경쟁은커녕 “그래도 저쪽보다 우리가 좀 더 낫다”는 자기 합리화에만 빠져 있다. 이런 여야를 유권자들이 외면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2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은 3·9대선 이후 최고치인 31%까지 늘어났다. 언제쯤 여야의 무책임한 현실 안주 경쟁이 끝이 날지, 유권자들은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10일부터 시작된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구구절절한 반성문을 읽었다.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자신들 지지세력만 듣기 좋아하는 주제로 경쟁에 몰두한다.”(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 “지금의 정치는 지속 불가능한 정치다. 막장까지 온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국민의힘 조해진 의원) 극우 진영과 헤어지지 못하는 국민의힘, 이른바 ‘개혁의 딸(개딸)’이라고 불리는 강성 지지층을 두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민주당의 상황을 의원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20년 만에 전원위가 열린 건 이런 상황을 반성하고, 타협과 협치가 가능한 국회를 만들기 위한 선거제도를 찾아보겠다는 취지였다. 반성에서 중요한 건 말이 아닌 행동이다. 그러나 나흘간의 전원위는 말 그대로 100명의 의원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에 그쳤다. 토론도, 논쟁도, 질문도 없이 개별 의원들이 단상에 나서 자신의 주장을 읊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정신을 더 잘 담을 수 있는 선거제도를 찾아보자는 거창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전원위는 그 어떤 접점도 찾지 못했다. 오히려 현재 300명인 의원정수 축소 여부,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수 조정, 소선거구제 및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을 두고 여야는 물론 개별 의원들의 이견만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런 전원위를 두고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은 “전원위는 실패했다. 진지한 숙의 과정이 아니라 남는 것 없는 말잔치로 끝나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 개편을 두고 미적대는 사이, 정작 여야는 다른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합을 척척 맞췄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여야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기준을 낮추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예타 조사 기준이 1000억 원으로 상향되면 각 지역의 선심성 사업은 더 쉽게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튿날인 13일에는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두 사업의 사업비는 2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손잡고 자신들의 텃밭인 대구·경북, 광주의 숙원 사업을 하루 만에 통과시킨 것. 그동안 여야가 법안 협치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두 특별법을 하루 만에 처리하는 열정으로 선거제도 개편에 나서면 좋겠지만, 여야는 전혀 그럴 뜻이 없다. 공직선거법상 국회는 선거일 1년 전인 10일까지 내년 4·10총선의 선거구를 획정해야 했다. 이미 획정 시한을 넘겼지만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다급한 기색이 전혀 없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개편 폭은 줄어들고, 이는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선택적 협치’를 이어가는 여야 의원들에게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의 규칙 제정을 맡기는 게 맞는지, 유권자들의 의구심은 커져만 간다.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자신들 지지 세력만 듣기 좋아하는 주제로 경쟁에 몰두한다.”(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지금의 정치는 지속 불가능한 정치다. 막장까지 온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국민의힘 조해진 의원) 10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처럼 구구절절한 반성문을 읽었다. 극단적인 진영 논리가 판을 치고, 공천에 눈이 멀어 당 지도부의 눈치만 보는 여야의 현실을 의원들도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극우 진영과 헤어지지 못하는 국민의힘과 이른바 ‘개혁의 딸(개딸)’이라고 불리는 강성 지지층을 두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민주당의 상황은 닮은 구석이 있다. 두 당 모두 친윤(친윤석열)과 친명(친이재명) 진영이 주류가 되면서 비주류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묻히고 있다. 자연히 여야 온건한 목소리는 국회에서 설 자리를 잃었고, 타협과 협치는 이제 정치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 됐다. 20년 만에 전원위가 열린 건 이런 상황을 반성하고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자는 의도였다. ● 100명의 의원이 펼친 ‘백가쟁명’ 전원위반성에서 중요한 건 말이 아닌 행동이다. 그러나 나흘간의 전원위에서는 말 그대로 100명의 의원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벌어졌다. 토론도, 논쟁도, 질문도 없이 개별 의원들이 단상에 나서 자신의 주장을 읊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정신을 더 잘 담을 수 있는 선거 제도를 찾아보자는 거창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전원위는 그 어떤 접점도 찾지 못했다. 이를 두고 한 여당 의원은 “(전원위를 처음 제안한) 김진표 국회의장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100인의 쇼’”라고 혹평했다. 오히려 전원위에서는 현재 300명인 의원정수 축소 여부,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수 조정, 소선거구제 및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을 두고 여야는 물론이고 개별 의원들의 이견만 여실히 드러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의원정수 축소 여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섰고, 소선거구제 및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내에서도 의원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대도시에서는 중대선거구제, 농어촌에서는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도농복합 선거구제를 주장하며 “국가 균형 발전의 정치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은 당 소속으로 역시 부산이 지역구인 안병길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는) 출마자의 인지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라며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를 주장했다. 이런 전원위를 두고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은 “전원위는 실패했다. 진지한 숙의 과정이 아니라 남는 것 없는 말잔치로 끝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대다수 의원들은 전원위가 이렇게 백가쟁명으로 끝날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한 야당 의원은 “1인당 7분씩 단상에 나가서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방식으로는 100명이 아니라 200명, 300명이 발언해도 아무 결론도 안 난다”며 “진짜 선거구제 개편을 성사시킬 의지가 있다면 전원위가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당의 한 원외 인사 역시 전원위를 두고 “여야가 손잡고 공통의 알리바이를 만든 것”이라며 “현역 의원들은 지금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에 크게 손볼 생각이 애초부터 없다”고 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전원위라는 요식 행위를 통해 “노력은 했지만 잘 안됐다”는 핑계를 만들고, 21대 총선의 규칙을 조금만 손봐 내년 총선을 치르겠다는 의도라는 것.● 텃밭 숙원 사업에는 ‘일사천리’ 합심한 與野여야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 개편을 두고 미적대는 사이 정작 다른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합을 척척 맞췄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여야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기준을 낮추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예타 기준이 1000억 원으로 상향되면 각 지역의 선심성 사업이 더 쉽게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예타 기준이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당장 내년도 예산안 추계 때부터 적용된다. 총사업비 1000억 원 미만 사업은 예타를 거칠 필요가 없어 내년도 예산안을 짤 때부터 관련 예산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는 것. 국회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지역 숙원 사업 예산을 반영했다’는 현수막을 걸고 싶은 여야 의원들의 경쟁이 불을 뿜을 것”이라고 했다. 여야의 합심은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여야는 13일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쌍둥이법’으로 불리는 두 특별법은 지금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그러나 여야는 13일 두 특별법을 위한 ‘원포인트’ 법사위를 열고, 곧바로 본회의 표결까지 끝냈다. 그동안 여야는 본회의 법안 표결을 놓고 매번 표 대결을 벌였지만 두 특별법에는 200명이 넘는 의원들이 일제히 찬성표를 던졌다. 두 사업의 사업비는 2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손잡고 자신들의 텃밭인 대구·경북, 광주의 숙원 사업을 하루 만에 통과시킨 것. 그동안 여야가 법안 협치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두 특별법을 하루 만에 처리하는 열정으로 선거 제도 개편에 나서면 좋겠지만, 여야는 전혀 그럴 뜻이 없다. 공직선거법상 국회는 선거일 1년 전인 10일까지 내년 4·10총선의 선거구를 획정해야 했다. 이미 획정 시한을 넘겼지만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다급한 기색이 전혀 없다. 여야 모두 “이달 말까지 끝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기한 연장 등을 포함해 앞으로 협상을 해볼 것”이라는 태도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개편 폭은 줄어들고, 이는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선택적 협치’를 이어가는 여야 의원들에게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의 규칙 제정을 맡기는 게 맞는지, 유권자들의 의구심은 커져만 간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일부 언론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조선 제일검(第一劍)’이라고 평가하는데 저는 ‘조선 제일혀’라고 생각한다.”(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한 장관의 말과 처신을 보면 마음은 콩밭이 아니라 ‘여의도밭’에 와 있다.”(민주당 박범계 의원) 야당 2년 차가 된 민주당 의원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국무위원은 한 장관이다. 당의 공식 논평에서도 한 장관에 대한 성토가 줄을 잇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아닌 대정부 질문에서도 야당 의원들은 한 장관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3일 열린 정치·외교·통일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한 장관에게 “애창곡이 있느냐”(민주당 김회재 의원)는 질문까지 나왔다. 1973년생인 한 장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 검찰에 발을 들인 이후 20년 넘는 공직 생활 대부분을 검찰에서만 보냈다. 선거 출마 경험도, 특정 정당의 입당 경험도 없다. 국무위원이 되기 전까지는 국회에 출석할 일도 별로 없었던 한 장관에게 야당 의원들의 공세가 집중되는 건, 한 장관이 윤 대통령의 자타공인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한 장관은 평검사 시절부터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에이스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총장에 오른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에 한 장관을 추천할 정도로 그를 아꼈다. 지난해 4월 13일 당선인 신분이던 윤 대통령은 한 장관을 포함한 내각 인선 발표를 직접 했다. 이런 한 장관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집중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공세 이어가지만 野 내부에서도 “존재감만 키워줘” 우려 “민주당 분들이 저한테 너무 관심이 많은 게 신기하다.” 한 장관은 7일 부산고검에서 열린 정책간담회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김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한 장관을 집중 포격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이어진 ‘구원(舊怨)’이다. ‘문재인의 페르소나’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수사로 결국 공직에서 물러났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주도했던 검찰의 ‘조국 수사’는 문재인 정부 몰락의 시작이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단어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당이 기를 쓰고 밀어붙였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역시 마찬가지. 민주당은 위장 탈당이라는 극한의 꼼수까지 동원하며 검수완박 입법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한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는 법의 시행령을 고쳐 일부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등에 대해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법 결정이 나온 뒤 황운하, 김용민 의원 등 야당 강경파 의원들이 “일개 법무장관이 국회 입법 권력에 정면 도전했다”, “탄핵이 답”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야당 의원들이 한 장관을 벼르는 건 언쟁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는 한 장관의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 검찰 내의 대표적인 달변가로 꼽혔던 한 장관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선뜻 굴하지 않는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직설적으로 야당 의원들의 발언에 응수한다. 5일 대정부질문을 위한 국회 출근길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을 ‘조선 제일혀’로 비판한 김 의원을 향해서는 “덕담으로 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저에게) 덕담하셨으니 저도 덕담을 해드리자면, 거짓말이 끊기 어려우시면 좀 줄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야당 의원들이 자신의 화법을 ‘초등학생 화법’이라고 비판한 것을 두고는 “국회에서는 자기 잘못을 지적받으면 호통치고 고압적으로 말을 끊고 그냥 넘어가자 이러시더니, 끝나고 나면 라디오에 달려가서 (제가) 없는 자리에서 욕하고 뒤풀이하시는 것이 요즘 민주당의 유행인가 보다”라고 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인 출신도 아닌 장관이 저렇게 국회 밖에서까지 야당 의원들과 말싸움을 벌인 경우를 보지 못했다”며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한 장관을 감정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건 맞는데, 한 장관도 똑같이 맞대응하니 계속 시끄러운 것”이라고 했다. 다만 총선이 다가오면서 야당 내에서는 한 장관을 향한 공세의 수위를 조절하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문재인 정부 때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대통령 사이에 불거졌던 ‘추-윤 갈등’의 기억 때문이다. 한 친문(친문재인) 진영 의원의 말.“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당시 추 전 장관이 더 정교하게 ‘추-윤 갈등’을 다뤘다면 정국은 달라졌을 것이다. 추 전 장관의 거친 공세에 결론적으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존재감만 커졌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 장관을 너무 몰아세우면 ‘정치인 한동훈’의 길을 야당이 나서서 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헌재 결정 이후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던 ‘한동훈 탄핵론’이 별다른 당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도 상당수 야당 의원이 이런 인식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 공천’ 우려 등에 與도 언급 자제“야당의 공세에 굴하지 않고 핵심을 꿰뚫어 맞받아치는 능력은 솔직히 어지간한 현역 의원들보다 훨씬 낫다.” 여권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한 장관에 대한 평가다. 실제로 친윤(친윤석열)-비윤(비윤석열) 구분 없이 상당수 여당 의원은 국회 인사청문회와 상임위, 대정부질문 등에서 보여준 한 장관의 모습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상황. ‘표가 모이는 곳’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여당 의원들이 한 장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지난해 8월 열린 국민의힘 워크숍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만찬에는 윤 대통령은 물론 장차관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거 참석했다. 당시 만찬장 상황에 대한 한 여당 의원의 설명.“만찬이 끝나고 윤 대통령과 사진을 찍기 위해 의원들이 길게 줄을 섰다. 대통령과 사진을 찍고 난 의원들은 곧바로 한 장관에게 향했다. 나도 기다렸다가 한 장관과 나란히 서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이런 한 장관을 두고 여권에서 “내년 총선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친윤 진영의 박수영 의원은 지난달 28일 “73년생 한 장관은 ‘X세대’의 선두 주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분이 나와서 기존의 586, 소위 운동권 세력을 물리치고 영호남 지역갈등까지도 전부 없애버리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했다. 정작 당사자인 한 장관은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하겠다”며 출마설에 거리를 뒀지만, 정작 여권 내에서는 “험지에 나서야 한다”, “아니다. 안전한 지역에 출마해 당의 전체 선거를 이끌어야 한다” 등 한 장관의 예상 출마지역을 둘러싼 설왕설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 장관을 둘러싼 기류도 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말, 한 친윤 핵심 의원은 여당 의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 ‘한 장관을 끌어들이는 건 자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3·8 전당대회를 거치며 ‘김기현 체제’가 출범한 상황에서 한 장관의 총선 역할론을 언급하기보다는 김기현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여당 의원들이 더 이상 공개적으로 한 장관 관련 발언을 내놓지 않는 것도 이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굳이 여당이 나서지 않아도 민주당 의원들이 알아서 한 장관을 적극 홍보해 주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한 장관이 내년 총선에 나서지 않고 계속해서 내각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 ‘검사 공천’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위기감도 한 장관 관련 언급을 자제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한 장관 등 검사 출신 인사 수십 명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인위적인 물갈이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 대표도 10일 “내년 총선과 관련해 ‘검사 공천’ 등 시중에 떠도는 괴담은 근거 없는 것이다. 특정 직업 출신이 수십 명씩 대거 공천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당 대표인 제가 용인하지도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처럼 여당이 잠시 한 장관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총선이 다가올수록 한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의 갑론을박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재 당내는 물론이고 여권 전체에서 한 장관을 능가하는 ‘슈퍼스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장관은 지난달 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11%를 얻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20%)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한 장관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해 여권 핵심 관계자가 전한 지난해 당선인 시절 윤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의 한 장면. 당시 회의에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한 장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윤 대통령은 한 장관에게 “당신도 이제 정무직이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검찰 조직에서만 일해 왔지만, 앞으로는 국무위원으로 정부 업무 전반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추고 일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한 장관이 과연 ‘정무직’을 넘어 ‘정치인’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는 내년 총선에서 총력전을 벼르고 있는 여야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최고위원회의는 △당직자 임면에 대한 의결 △국회의원 등 공직 후보자 의결 △당무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의 처리 등의 기능을 갖는다.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인사·예산·공천 등에 대한 결정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 최고위원회는 당 대표, 원내대표, 6명의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등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런 당 지도부 구성을 놓고 홍역을 앓았던 국민의힘은 3·9전당대회를 통해 비로소 정통성을 갖춘 온전한 최고위원회를 꾸렸다. 새 지도부가 친윤(친윤석열) 일색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오히려 여권 내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인사들로 꾸려졌으니 최고위를 둘러싼 잡음이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 ‘김기현 체제’가 출범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당 지도부로 인한 문제가 불거졌다.● 김재원·태영호의 입, 끝나지 않은 갈등 전당대회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던 지난달 12일, 김재원 최고위원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관한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당의 공식 행사도 아닌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 최고위원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넣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한다”고 했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당초 진보 진영에서 제기했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던 사항. 그런데 집권 여당의 수석 최고위원이 대통령의 공약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한 것. 또 당시 예배에서 전 목사가 “(헌법 전문 게재가) 전라도에 대한 ‘립서비스’ 아닌가”라고 하자 김 최고위원은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게 정치인 아닌가”라고 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전 대표는 물론이고 윤 대통령까지 호남 표심을 얻기 위해 공을 들여왔던 행보를 한 번에 부정해버린 것. 윤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광주, 전남, 전북 등 3개 지역 합산 득표율 12.8%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보수 정당 대선 후보 중 가장 높은 호남 득표율이다.대통령실까지 나서 유감을 표하자 김 최고위원은 잠시 머리를 숙이는 듯했지만,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또 한 번 설화를 일으켰다. 지난달 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김 최고위원은 전 목사에 대해 “우파 진영을 천하통일했다”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전 목사를 거듭 치켜세운 것. 논란이 된 최고위원은 또 있다. 75주년 제주도4·3사건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태영호 최고위원은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앞서 태 최고위원은 2월 전당대회 선거운동 당시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4·3사건은 명백히 김일성 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했다. 당시 제주 시민단체 등이 태 최고위원의 발언을 두고 “4·3을 폭동으로 폄하해 온 극우의 논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즉각 사과하고 최고위원직 후보에서 스스로 사퇴하라”고 했지만 태 최고위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태 최고위원은 3일 “어떤 점에서 사과가 되는지 아직까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제가 지난번에 한 발언은 그분(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고자 한 발언”이라고 했다. ● TK 출마 노리는 김재원, 강남 사수 나선 태영호정치인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자연히 두 최고위원의 ‘문제적 발언’도 무의식 중에 나온 실언이 아니다. 먼저 김 최고위원은 왜 두 차례나 전 목사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그의 정치 궤적부터 봐야 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연거푸 합격한 김 최고위원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경북 군위-의성-청송에서 당선돼 여의도 활동을 시작했다. 친박(친박근혜)계였던 그는 18대 총선에서는 ‘친박 대학살’로 인해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 19, 20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3선 고지에 올랐지만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또다시 공천에서 배제됐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 중랑을 지역구로 옮겨 출마하려 했지만, 경선에서 패해 끝내 출마가 좌절됐다.와신상담을 노리던 그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구 지역에서만 세 차례 출마 채비를 했다. 김 최고위원은 2022년 1월 곽상도 전 의원의 의원직 사퇴로 치러졌던 대구 중-남 보궐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당 안팎의 만류로 접었다. 지난해 3월에는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고, 두 달 뒤 홍준표 대구시장의 지역구였던 대구 수성을 보궐선거에 도전했지만 역시 경선에서 탈락했다. 이런 행보와 관련해 한 여권 인사는 “김 최고위원이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구에 출마하려 한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전 목사로 대표되는 극우 진영의 확실한 지원을 받아 이번에는 반드시 공천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최고위원 역시 YTN 라디오에서 “당선이 유리한 지역의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망언을 하더라도 당선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며 “김 최고위원이 당의 최고위원으로서 역할을 하기보다는 본인의 공천과 본인의 당선만을 위해서 이런 발언들을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태 최고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태 최고위원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노이즈 마케팅’의 효능을 제대로 경험했다는 점이다. 당초 최고위원 선거에서 태 최고위원은 당선 안정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주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이목이 집중되면서 극우 성향의 표가 몰렸고, 결국 ‘깜짝 당선’됐다. 두 번째는 태 최고위원의 지역구는 서울 강남갑이다. 여긴 보수의 ‘텃밭 중의 텃밭’ 같은 곳이라 노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 신인을 전략 공천해도 당선은 확실하다. 따라서 극우 표심을 기반 삼아 재선을 노리겠다는 의도다.”실제로 태 최고위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강남은 어차피 모든 사람이 탐내는 곳이기 때문에 공천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무조건 (지역구를) 사수할 것”이라고 했다.● 與 내부에서도 “본인만 살자는 것” 부글부글여권 내에서는 두 최고위원의 연이은 구설에 부글대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을 탈환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도권 지역의 승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한 여권 인사는 김 최고위원의 5·18 발언을 두고 “정말 무릎이 팍팍 꺾인다”고 했다. 수도권에는 호남 유권자가 적지 않고,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몇 년째 뛰어 왔지만, 김 최고위원의 발언 한 번에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 이 인사는 “두 최고위원이 대구경북이나 강남에서 또 당선된다고 해도, 정작 수도권에서는 문제의 발언 때문에 낙선하는 후보가 속출할 수도 있다”며 “명색이 당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본인의 당선만 생각할 뿐 당의 전체적인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한 원외(院外) 인사는 “극우 진영에만 매달리면 일부 지역구에서 승리할 순 있어도 전체 선거에서는 지는 것”이라며 “만약 저런 발언이 총선 직전에 터졌으면 정말 수도권 선거는 해보나 마나 였을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경고까지 했으니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당원들의 투표로 뽑힌 최고위원을 징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은 김 대표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았고, 당 지도부는 태 최고위원의 4·3 추념식 참석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 최고위원의 참석으로 또 한 번 논란이 일면 정국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반발이 계속되면서 갈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태세다. 이런 당내 상황을 두고 한 여당 의원은 “진짜 문제는 총선이 아직 1년이나 남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앞으로 당 지도부의 구설이 한 번만 더 터진다면 당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지, 아니면 기우에 그칠지에 따라 여권의 내년 총선 성적표도 결정된다는 점을 여당 지도부는 과연 알고 있을까.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현행 소선거구제는 전국을 254개 선거구로 나눠 한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 1명을 뽑는다. 9∼12대 총선을 제외하면 1948년 제헌국회부터 21대 총선까지 이 제도로 총선이 치러졌다. 단순하고, 유권자들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총선이 거듭될수록 소선거구제로 인한 문제가 커졌다. 1등만 뽑는 탓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완전히 굳어졌다. 또 각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한 선명성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도·온건 성향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친윤(친윤석열) 일색의 국민의힘과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이 장악한 민주당이 그 단적인 예다. 또 2020년 총선에서 실시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손질이 불가피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위성정당’이라는 초유의 꼼수를 선보이면서 정당의 실제 득표율을 의석수에 반영한다는 애초의 취지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이 커지자 국회는 30일부터 299명(전북 전주을 제외)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국회의원 전원(全員)이 참여해 토론을 벌이고 의결하는 전원위는 2003년 3월 이라크 파병 논의 이후 20년 만이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전원위가 막을 올리기 전부터 이미 회의적이다. “의원들의 생사(生死)가 달린 문제인데 몇 번 토론한다고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실제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각 당은 물론이고 개별 의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원위는 양당의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의 한 원외 인사는 “여야가 ‘전원위까지 했지만 결론을 못 냈다’며 현행 제도에서 조금만 손보는 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전원위에서 격론 끝에 결론을 내린다 해도 선거제도와 선거구, 의원정수 등을 모두 국회의원들이 ‘셀프 결정’하는 게 맞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각 선거구의 경계, 시도별 선거구 수 등을 정한다. 하지만 정작 국회 입법 과정에선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이 아닌 여야가 입맛대로 바꿔버린 안이 처리된다. 시험 방식에 해당하는 선거제 역시 오로지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의 뜻만 담아 결정된다. 오죽하면 여야 젊은 정치인들의 모임인 ‘정치개혁 2050’도 “플레이어(국회의원)들만이 게임 규칙을 정하는 이 구조를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할 정도다. 말로는 “국민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현역 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리도 없고, 밥그릇을 선뜻 줄일 리도 없다. 그러나 수험생 격인 의원들이 시험 범위는 물론이고 시험 방식까지 정하다 보니 총선 규칙과 관련된 논란은 4년마다 반복되고 있다. 만약 선거제 개편이 이번에도 땜질 처방에 그친다면, 이런 국회의원들의 ‘셀프 결정’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국회법 63조 2항에 명시된 ‘전원위원회’는 현재 대다수 국회의원들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제도다. 말 그대로 국회의원 전원(全員)이 참여해 안건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의결하는 전원위는 2003년 3월 이후 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원위는 ‘정부 조직에 관한 법률안, 조세 또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률안’을 대상으로 한다. 2003년에는 이라크 파병이 전원위의 의제였다. 당시 반미(反美) 여론이 높던 상황에서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파병이 될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여야는 물론 당시 여권 내에서도 이견이 일었고, 결국 전원위까지 소집됐다. 20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전원위의 의제는 외교·안보 분야가 아닌 국내 정치 문제다. 내년 4월 열리는 22대 총선 선거제도 개편이다. 사실상 ‘파병을 하느냐 마느냐’는 양자택일이었던 파병 논의와 달리 선거제도 개편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비례대표 규모와 선출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300명인 국회의원을 늘릴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맞물려 있다. ● 299명 머리 맞대면 ‘고차 방정식’이 풀릴까전원위에서는 일단 △소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3가지 안을 두고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4, 5차례가량 토론을 벌인 뒤 다음 달 중으로 최종안을 의결한다는 목표다. 총선 때마다 논란이 됐던 선거제도 문제가 전원위까지 향하게 된 건 “어떻게든 지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의 기본은 소선거구제다. 전국을 254개 지역구로 나눠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 1명을 뽑는 방식이다. 1948년 제헌국회부터 8대 총선까지 실시됐고, 1988년 13대 총선에서 재도입됐다.그러나 재도입 이후 30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소선거구제는 “극단의 정치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1명의 후보만 뽑는 탓에 다른 후보에게 던진 표는 사표(死票)가 되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만 살아남는 양당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두 당 모두 강경 지지층에 휩쓸리고 있다는 것. 소선거구제에서 5차례 당선된 김진표 국회의장도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도 때문에 양대 정당의 극한 대립을 만들고, 지역 불균형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47석의 비례대표 역시 손질이 불가피하다. 21대 총선에서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부 연동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위성정당이라는 초유의 꼼수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손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여야 의원들 모두 전원위에서 결론이 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각 당은 물론 개별 의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만약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 광역시·도의 지역구를 1개씩 줄인다고 하면 해당 지역 의원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게다가 수도권 의원들과 지방 의원들의 생각도 다르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개별 의원들의 생사(生死)가 달린 문제인데 몇 번 토론한다고 결론이 쉽게 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원위는 양당의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권의 한 원외 인사의 말.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전원위까지 했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며 현행 제도에서 조금만 손보는 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어느 한 정당만 비판받는 상황은 피하면서도 현역 의원들의 밥그릇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원위가 책임 회피를 위한 여야의 알리바이에 그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시험 범위는 물론 방식까지 정하는 국회의원만약 전원위에서 격론 끝에 결론을 내린다 해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또 있다. 바로 국회의원의 끝없는 ‘셀프 결정’ 문제다. 선거 방식도, 선거구 획정도 모두 국회의원이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규칙 제162호에 따르면 총선의 선거구를 정하기 위해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선거구획정위)가 운영된다. 각 정당의 당원이 아닌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는 각 지역구의 경계, 광역시·도별 선거구 등을 결정한다. 문제는 선거구획정위가 정한 안이 실제 선거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구획정위는 입법권이 없기 때문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구획정위의 안을 토대로 입법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야의 입맛에 맞게 바뀌게 된다. 과거 선거구획정위에서 활동했던 한 교수는 “선거구획정위의 안은 참고자료일 뿐, 결국 여야 간 담판으로 결정된다”며 “시험 범위를 수험생 마음대로 정하는 격”이라고 했다. 선거제 개편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제 개편은 입법 사항이기 때문에 국회 논의 사항이 맞다. 문제는 선거를 치러야 하는 당사자인 의원들만이 선거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여야 초당적 청년 정치인들의 모임인 ‘정치개혁 2050’도 이 문제와 관련해 “플레이어(국회의원)들만이 게임 규칙을 정하는 이 구조를 더는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내년 총선의 규칙을 정하는 문제가 전원위까지 가게 된 건 그동안 이 문제를 이해 당사자인 의원들의 손에만 맡겨 놨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리도 없고, 밥그릇을 선뜻 줄일 리도 없다. 하지만 4년마다 수험생이 되는 의원들이 시험 범위는 물론 시험 방식까지 정하다 보니 매번 ‘일단 이번만 넘기고 보자’는 식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만약 선거제 개편이 이번에도 땜질 처방에 그친다면, 국회의원의 이런 ‘셀프 결정’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내년 4월 22대 총선을 1년여 앞둔 지금, 여야를 관통하는 공통된 고민은 ‘간판’이다.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과연 어떤 간판으로 당의 명운이 걸린 총선을 치를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는 것.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없지만, 특히 22대 총선은 여야 모두에 그야말로 물러설 수 없는 승부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진정한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도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을 뒤집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중점 국정 과제들은 임기 말까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승리해 다시 정권 탈환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실패해 원내 제2당으로 내려앉는다면 민주당은 행정부에서도, 입법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수 야당’의 신분으로 돌아간다. ● ‘선거의 여왕’도 ‘어퍼컷 세리머니’도 없는 與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진영은 2000년대 초반을 우울하게 맞이했다.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연거푸 패했기 때문이다. 이때 보수 진영을 구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2004년 총선을 불과 22일 앞두고 당의 수장이 된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역풍과 ‘차떼기당’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121석을 지켜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06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도 승리로 이끌었다.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 되면서 ‘선거의 여왕’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은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 ‘선거의 여왕’이 사라진 새누리당은 2014년 지방선거를 사실상 무승부로 끝냈고 2016년 총선에서는 원내 제1당 자리까지 내준다.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보수 진영이 길고 긴 패배의 터널에 들어서는 동안 숱한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이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패배를 끊어내지 못했다. 여권 관계자는 “4, 5년 동안 보수 진영을 하나로 추스르면서 중도 표심까지 얻어낼 ‘스타’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국민의힘을 연패의 늪에서 끌어낸 ‘스타’는 당 바깥에서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역시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내년 총선 유세에서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일 수 없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김기현 대표 ‘원톱’으로만 치르게 될까. 3·8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의 경쟁자였던 안철수 의원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안 의원은 “수도권 한 지역구 사거리에서 김기현 의원이 유세하면 사람들이 김 의원을 알겠나? 표가 오겠는가?”라며 김 대표의 낮은 인지도를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한 여당 의원은 “안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패배했지만, 안 의원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총선까지 ‘김기현 체제’가 유지되겠지만, 총선 유세를 총괄할 또 다른 ‘간판’이 김 대표를 돕는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계속 고전한다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여당 의원들은 6일 김 대표와 나경원 전 의원 간 회동에서 나왔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김 대표는 나 전 의원에게 “내년 (총선)도 말할 것 없고, 앞으로 우리 당을 이끌 가장 큰 지도자”라며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도록 지평을 열고 바닥을 깔아드려야겠다는 책임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서는 “김 대표가 나 전 의원의 ‘총선 역할론’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전당대회 불출마를 택하긴 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만만치 않은 힘을 보여줬던 나 전 의원이 내년 총선 유세의 간판으로 나설 수도 있다는 것. 또 여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차출론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간판’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2일 발표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한 장관은 11%를 얻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20%)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 여권에서 한 장관보다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한 장관이 입당해 본인의 지역구 승리만을 노릴 게 아니라 김 대표와 함께 전국 유세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앞으로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 당의 선장을 놓고 갑론을박 중인 野 민주당의 간판 고민은 ‘김 대표 혼자서 될까’라는 국민의힘 고민과 결이 다르다. 민주당의 지금 고민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치를 선장을 누가 맡느냐”다. 바로 이 대표의 거취 문제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이 불러온 후폭풍의 핵심이다. 비명(비이재명)계는 “이재명 체제로는 내년 총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른바 ‘총선 필패론’이다. 비명계의 이상민 의원은 아예 공개적으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당 전체에 먹구름을 끼치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에서 이 대표의 사퇴 이후 당을 빠르게 추스르면 내년 총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비명 진영의 주장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3%였고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34%, 민주당이 33%였다.반면 친명(친이재명)계는 “이 대표가 아니면 누가 당의 간판이 돼 총선을 치를 수 있느냐”는 분위기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77%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고, 각종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 대표가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 특히 민주당 내 최대 규모의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는 “이 대표가 불신 해소와 혁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며 사실상 이 대표 사퇴 불가 태도를 밝히며 친명계에 힘을 실어줬다. 친명 진영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퇴진해 또 전당대회를 분열로 치르면 정말 공멸”이라며 “게다가 이 대표를 대신해 당을 이끌 만한 마땅한 인사도 없는 게 현실 아니냐”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차기 또는 차차기 주자로 꼽혔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모두 현실 정치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낙연 전 총리,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한국에 없다. 게다가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 퇴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길어지면서 또 다른 갈등 전선을 낳고 있다”고 우려한다.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다.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17일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자꾸 무슨’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역시 문 전 대통령을 만난 박용진 의원은 20일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 이야기를 안 했었다”고 했다. 당의 내분이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경남 양산으로 내려간 문 전 대통령까지 소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야권 내에서는 “어떻게든 빠른 수습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깊어지면, 아무는 데도 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 야당 의원은 “당의 내분이 길어지니 불필요한 갈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결국 이 대표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매듭짓지 못하기 때문에 이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하든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여야가 나란히 안고 있는 이 ‘간판’ 고민을 남은 1년 동안 어떻게 해결하고 마무리 지을지가 내년 총선을 둘러싼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