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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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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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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도 가끔은 ‘애착인형’이 필요하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직장인 유진수 씨(37)는 아직도 ‘사돌이’를 잊지 못한다. 사돌이는 유 씨가 다섯살 때 가지고 놀던 사자 인형의 이름이다. 사돌이는 잘 때나 밥 먹을 때 늘 유 씨 옆에 있었다. 하도 오랫동안 가지고 놀아서 솜이 다 죽고 꼬질꼬질해 못생긴 인형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부모님이 낡아서 볼품 없어진 사돌이를 유 씨 몰래 갖다 버렸다. 당시 부모님은 새 사자 인형을 여러개 사다주며 낙담한 유 씨를 달래봤지만, 세상에 사돌이를 대신할 사자 인형은 없었다.‘다 큰 어른이 웬 인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애착 인형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는 것은 물론이고, 귀엽고 보들보들한 인형을 사모으는 어른이 적지 않다.실제로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서 부드러운 천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plush’를 검색하면 봉제 인형 관련 게시물 수백만 개가 나온다. 대부분 성인들이 수집하고 있는 인형들이다. 영유아용 애착 인형으로 알려진 영국 인형 브랜드 ‘젤리캣’은 어른들에게 더 인기가 많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서카나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봉제 인형 시장 규모를 약 120억 달러(약 17조2300억 원)로 추정하며, 2030년까지 연평균 8%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성인이 인형에 열광하는 이유를 단지 키덜트(kid·어린이 + adult·어른, 어린이 감성을 소비하는 어른) 문화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장난감 중에 봉제 인형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촉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부드럽고 포근한 촉감이 주는 심리적 위로 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어린시절엔 인형 벗삼아 독립 연습어렸을 때 특정 인형이나 이불에 유난히 집착하던 경험이 있다면 잘 알 것이다. 꼬질꼬질해진 인형이나 이불을 세탁하는 날은 마르기도 전에 달라고 떼쓰는 통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낡아서 보기 싫다는 이유로 부모가 몰래 인형이나 이불을 버린 적이 있다면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그렇다고 인형이나 이불에 집착하는 모든 아이가 애정 결핍은 아니다. 영국 소아과 의사이자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콧은 1951년 발표한 연구에서 아이들이 잠들 때나 분리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인형, 담요같이 부드러운 애착 대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낮추고 안정감을 찾으면서 독립을 연습한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성을 낮춰가는 발달 시기에 과도기적으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본 것이다.30년간 아동과 부모의 애착 관계에서 애착 이불(인형)의 역할을 연구해 온 리처드 패스먼 미국 밀워키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도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형성됐더라도 아이가 인형이나 이불에 집착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불안정한 아이일수록 애착 물건이 주는 안정 효과가 더 강력한 것은 맞다.● 포근한 품 찾는 것은 생존 본능인간의 이런 특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이 힘들 때 포근한 대상을 찾도록 진화해 왔다. 여러 신경생물학, 지각(知覺)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기분이 안 좋을 땐 뇌에서 촉각 자극을 추구하고, 기분이 좋으면 시각 자극을 선호하도록 환경에 적응했다.이는 생존 본능과 관련이 있다. 아기나 새끼 동물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 이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보호자 품에 안기면 평소보다 더 큰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낀다.미국 심리학자 해리 헬로우가 1958년 발표한 ‘사랑의 본질’이라는 고전적 심리학 연구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어미와 헤어져 분리 불안을 겪는 새끼 원숭이가 철사로 만든 어미 모형과 천으로 만든 어미 모형 중 어느것을 더 선호하는지 살펴봤더니, 천으로 만든 모형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철사 모형에는 젖병이 달려 있어 먹이를 먹을 수 있었음에도 불안한 새끼 원숭이는 먹이보다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더 좋아했다. 실험 시작 전에는 새끼 원숭이가 당연히 먹이를 주는 철사 모형에 더 애착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후 실험에서는 천으로 만든 어미 모형에서 철사 못 같은 뾰족한 물체가 튀어나오는 다소 잔인한 장치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새끼 원숭이는 피를 흘리면서도 천 모형 어미를 떠나지 못했다. 접촉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이런 특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불안과 슬픔을 느끼거나 우울한 상태에서 부드러운 촉각을 경험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아무 위협도 없고 기분이 좋은 상황에서는 포근한 촉각이 주는 위로 효과가 떨어진다. 오히려 이때 우리 뇌는 환경을 탐험하며 활력을 주는 시각적 자극을 찾는 것을 더 선호한다.위협이 있을 땐 촉감에 민감해져 안정을 추구하고, 위협이 사라지면 시각 자극에 더 예민해져 주변을 탐험하고 싶어지는 일종의 균형 시스템으로 발전한 셈이다.● 촉각의 위로…어른을 위한 인형 개발촉각이나 신체 접촉 관련 연구 상당수는 아동 발달에 관심을 뒀다. 사회가 점차 각박해지고 개인의 외로움, 우울증, 자살, 고령화 같은 현대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서 연구자들은 어떻게 하면 성인도 촉각을 활용해 심리적 안정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특히 세계 각국에서는 불안과 우울감을 해소하고 안정감을 주는 특수 인형 개발에 힘쓰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공동 연구팀은 특수 제작된 숨 쉬는 쿠션을 개발해 성능을 검증했다. 처음부터 숨 쉬는 쿠션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쿠션, 자고 있는 고양이처럼 ‘푸르르르’하며 진동을 내는 쿠션, ‘푸르르르’ 떨림과 숨 쉬는 움직임이 같이 나타나는 쿠션, 무지개 조명이 나오는 쿠션 등도 후보군이었다. 사전 실험을 진행해 보니 이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게 숨 쉬는 쿠션이었다. 이어진 실험에서는 실험참가자 129명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조장하기 위해 수학 시험을 보겠다고 공지했다. 시험은 필기도구로 종이에 푸는 게 아니라, 남들 앞에서 화면에 뜬 문제를 보고 정해진 시간 내에 구두로 설명하는 압박 방식으로 이뤄졌다.실험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고 시험을 치르기 전에 어떻게 하면 불안을 낮출 수 있는지 알아봤다. 첫 번째 그룹은 쿠션을 꼭 껴안고 있으라고 했다. 이 쿠션은 부드러운 재질의 하늘색 천으로 만들었고, 안에 동력 장치를 넣어 마치 쿠션이 숨 쉬는 것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했다. 두 번째 그룹은 명상 전문가가 녹음한 명상법을 따라했다. 세 번째 그룹은 혼자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수학 시험을 보기 전후로 심리 검사를 통해 각각 불안 수준을 측정했다.심리 검사 점수를 분석해 보니, 쿠션을 껴안고 있던 사람들은 전문가 지도에 따라 명상을 한 사람만큼이나 시험 전 불안이 감소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쿠션 덕에 ‘진정됐다’ ‘편안했다’ ‘위안을 얻었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연구진은 “긴장한 참가자들이 쿠션 움직임에 따라 호흡 속도가 느려지고, 부드러운 촉감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람과 소통하며 촉각 자극하면 더 큰 안정감부드럽고 폭신한 인형은 혼자 사는 노인의 우울감이나 외로움을 더는 효과도 있다. 일본 연구진은 스마트폰으로 통화할 때 상대방 음성에 맞춰 진동하는 인형 ‘허그비’를 개발했다. 60대 여성 18명 가운데 절반은 허그비를 껴안고 통화하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은 스피커폰으로 각각 15분씩 통화했다. 대화 상대는 연구진이 고용한 남자 대학생들이었다.통화 전후 노인들의 혈액과 타액을 채취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살펴본 결과 허그비를 안고 있던 사람들은 다른 그룹보다 코르티솔 수치가 훨씬 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일반 스피커 기능으로 통화한 노인들도 코르티솔 수치가 일부 감소했다. 사람과 상호 작용하며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낮추는 효과가 있어서다. 이에 더해 연구진은 허그비가 부드러운 촉각에만 반응하는 인간 신경섬유인 C 섬유를 자극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뇌 편도체의 활성화 정도를 낮춘 것으로 분석했다.덴마크 오르후스대에서도 60대 이상 남녀 참가자 29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 봤더니, 허그비를 안고 통화한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안 지수가 훨씬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허그비를 마치 어린 아이나 강아지, 펭귄같은 동물에 빗대어 설명하면서 사물이 아닌 인격체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다만 남성 노인들은 남자가 인형을 안고 있다는 것 자체를 다소 어색해 하기도 했다.● 포근한 잠옷·소파로 포근한 환경 만들면 도움촉각의 위로가 반드시 인형 같은 천 소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댄 킹 싱가포르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크리스 제니제프스키 미 플로리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로션을 바를 때의 부드러운 느낌도 기분이 별로인 소비자 정서를 환기하는 힘이 있었다. 로션의 부드러움 덕에 기분이 좋아진 소비자들은 로션을 사는 데 돈을 더 많이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폭신한 인형을 종류별로 사 모으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연구진이 의도적으로 같은 로션에 물을 타서 로션을 바를 때 부드러운 느낌을 상쇄시키자, 소비자들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로션을 사겠다는 의사를 철회했다.이런 특성에 주목해 더 나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휴식 공간을 꾸밀 수도 있다. 환경에서 느끼는 감각과 지각이 감정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책 ‘조이풀’을 쓴 디자이너 잉그리드 페텔 리는 “어릴 적 애착 인형처럼 의미가 있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어른 역시 힘들 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소품을 통해 얼마든지 휴식 공간을 꾸밀 수 있다”고 강조했다.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무심코 만진 부드러운 소파, 쿠션, 무릎 담요 등이 건네는 위로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잠자리에 촉감 좋은 베개 또는 이불을 두거나 포근한 소재 잠옷을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반대로 이런 소품들은 회의실이나 작업공간, 교실처럼 지적 탐구 능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활력이 필요한 공간에는 안정감을 주는 부드러운 질감보다 화려한 패턴이나 색상을 활용해 시각을 자극하는 것이 좋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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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도 ‘애착 인형’이 필요할 때가 있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에서 부드러운 천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plush’를 검색하면 봉제 인형 관련 게시물 수백만 개가 나온다. 각종 동물부터 눈 코 입 달린 사물 인형까지 다양하다. 귀여울 뿐 아니라 촉감도 보들보들해 보여 만져 보고 싶게 생겼다. 인기 많은 브랜드 한정판 제품은 중고 사이트에서 100만 원 넘는 가격에 팔린다. 영유아용 애착 인형으로 알려진 영국 인형 브랜드 ‘젤리캣’은 어른들에게 더 인기가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형 게시물을 올리는 것도 대부분 성인이다. 신상품을 종류별로 수집하는 애호가도 많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서카나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봉제 인형 시장 규모를 약 120억 달러(약 17조2300억 원)로 추정하며, 2030년까지 연평균 8%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 큰 성인이 인형에 열광하는 이유를 단지 키덜트(kid·어린이+adult·어른, 어린이 감성을 소비하는 어른) 문화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장난감 중에 봉제 인형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촉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부드럽고 포근한 촉감이 주는 심리적 위로 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마음이 힘들 땐 보드라운 것을 찾도록 진화했다 어렸을 때 특정 인형이나 이불에 유난히 집착하던 경험이 있다면 잘 알 것이다. 꼬질꼬질해진 인형이나 이불을 세탁하는 날은 마르기도 전에 달라고 떼쓰는 통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낡아서 보기 싫다는 이유로 부모가 몰래 인형이나 이불을 버린 적이 있다면 큰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형이나 이불에 집착하는 모든 아이가 애정 결핍은 아니다. 영국 소아과 의사이자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콧은 1951년 발표한 연구에서 아이들이 잠들 때나 분리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인형, 담요같이 부드러운 애착 대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낮추고 안정감을 찾으면서 독립을 연습한다고 설명했다. 30년간 아동과 부모의 애착 관계에서 애착 이불(인형)의 역할을 연구해 온 리처드 패스먼 미국 밀워키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도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형성됐더라도 아이가 인형이나 이불에 집착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불안정한 아이일수록 애착 물건이 주는 안정 효과가 더 강력한 것은 맞다. 인간의 이런 특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이 힘들 때 포근한 대상을 찾도록 진화해 왔다. 여러 신경생물학, 지각(知覺)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기분이 안 좋을 땐 뇌에서 촉각 자극을 추구하고, 기분이 좋으면 시각 자극을 선호하도록 환경에 적응했다. 이는 생존 본능과 관련 있다. 아기나 새끼 동물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 이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보호자 품에 안기면 평소보다 더 큰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 1958년 발표한 ‘사랑의 본질’이라는 고전적 심리학 연구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어미와 헤어져 분리 불안을 겪는 새끼 원숭이가 철사로 만든 어미 모형과 천으로 만든 어미 모형 중 어느것을 더 선호하는지 살펴봤더니, 천으로 만든 모형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철사 모형에는 젖병이 달려 있어 먹이를 먹을 수 있었음에도 불안한 새끼 원숭이는 먹이보다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더 좋아했다. 이런 특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불안과 슬픔을 느끼거나 우울한 상태에서 부드러운 촉각을 경험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아무 위협도 없고 기분이 좋은 상황에서는 포근한 촉각이 주는 위로 효과가 떨어진다. 오히려 이때 우리 뇌는 환경을 탐험하며 활력을 주는 시각적 자극을 찾는 것을 더 선호한다. 위협이 있을 땐 촉감에 민감해져 안정을 추구하고, 위협이 사라지면 시각 자극에 더 예민해져 주변을 탐험하고 싶어지는 일종의 균형 시스템으로 발전한 셈이다.● 어른을 위한 ‘마음 안정 인형’ 촉각이나 신체 접촉 관련 연구 상당수는 아동 발달에 관심을 뒀다. 사회가 점차 각박해지고 개인의 외로움, 우울증, 자살, 고령화 같은 현대 사회 문제가 불거지면서 연구자들은 어떻게 하면 성인도 촉각을 활용해 심리적 안정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는 불안과 우울감을 해소하고 안정감을 주는 특수 인형 개발에 힘쓰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공동 연구팀은 특수 제작된 숨 쉬는 쿠션을 개발해 성능을 검증했다. 실험을 위해 모집한 성인 129명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조장하기 위해 수학 시험을 보겠다고 공지했다. 시험은 필기도구로 종이에 푸는 게 아니라, 남들 앞에서 화면에 뜬 문제를 보고 정해진 시간 내에 구두로 설명하는 압박 방식으로 이뤄졌다. 실험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고 시험을 치르기 전에 어떻게 하면 불안을 낮출 수 있는지 알아봤다. 첫 번째 그룹은 쿠션을 꼭 껴안고 있으라고 했다. 이 쿠션은 부드러운 재질의 하늘색 천으로 만들었고, 안에 동력 장치를 넣어 마치 쿠션이 숨 쉬는 것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했다. 두 번째 그룹은 명상 전문가가 녹음한 명상법을 따라 했다. 세 번째 그룹은 혼자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수학 시험을 보기 전후로 심리 검사를 통해 각각 불안 수준을 측정했다. 심리 검사 점수를 분석해 보니, 쿠션을 껴안고 있던 사람들은 전문가 지도에 따라 명상을 한 사람만큼이나 시험 전 불안이 감소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쿠션 덕에 ‘진정됐다’ ‘편안했다’ ‘위안을 얻었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연구진은 “긴장한 참가자들이 쿠션 움직임에 따라 호흡 속도가 느려지고, 부드러운 촉감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드럽고 폭신한 인형은 혼자 사는 노인의 우울감이나 외로움을 더는 효과도 있다. 일본 연구진은 스마트폰으로 통화할 때 상대방 음성에 맞춰 진동하는 인형 ‘허그비’를 개발했다. 60대 여성 18명 가운데 절반은 허그비를 껴안고 통화하도록 했고, 나머지 절반은 스피커폰으로 각각 15분씩 통화했다. 대화 상대는 연구진이 고용한 남자 대학생들이었다.통화 전후 노인들의 혈액과 타액을 채취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살펴본 결과 허그비를 안고 있던 사람들은 다른 그룹보다 코르티솔 수치가 훨씬 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허그비가 부드러운 촉각에만 반응하는 인간 신경섬유인 C 섬유를 자극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뇌 편도체의 활성화 정도를 낮춘 것으로 분석했다. 덴마크 오르후스대에서도 60대 이상 남녀 참가자 29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 봤더니, 허그비를 안고 통화한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안 지수가 훨씬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이 필요한 곳엔 화려함 대신 포근함을 촉각의 위로가 반드시 인형 같은 천 소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댄 킹 싱가포르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크리스 야니셰프스키 미 플로리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로션을 바를 때의 부드러운 느낌도 기분이 별로인 소비자 정서를 환기하는 힘이 있었다. 로션의 부드러움 덕에 기분이 좋아진 소비자들은 로션을 사는 데 돈을 더 많이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폭신한 인형을 종류별로 사 모으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런 특성에 주목해 더 나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휴식 공간을 꾸밀 수도 있다. 환경에서 느끼는 감각과 지각이 감정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책 ‘조이풀’을 쓴 디자이너 잉그리드 페텔 리는 “어릴 적 애착 인형처럼 의미가 있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어른 역시 힘들 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폭신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소품을 통해 얼마든지 휴식 공간을 꾸밀 수 있다”고 강조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무심코 만진 부드러운 소파, 쿠션, 무릎 담요 등이 건네는 위로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잠자리에 촉감 좋은 베개 또는 이불을 두거나 포근한 소재 잠옷을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대로 이런 소품들은 회의실이나 작업공간, 교실처럼 지적 탐구 능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활력이 필요한 공간에는 안정감을 주는 부드러운 질감보다 화려한 패턴이나 색상을 활용해 시각을 자극하는 것이 좋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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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성격 ‘톱3’에 드는 이 사람…어떻게 대해야 할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20대 직장인 이주아(가명) 씨는 처음엔 입사 동기 A가 좋았다. 먼저 다가오는 A의 성격 덕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싸한 느낌이 들었다. A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신나서 하다가도 주제가 이 씨 이야기로 바뀌면 관심이 뚝 떨어졌다. 회사에서 이 씨가 상사에게 칭찬을 받으면 A는 질투하며 심술을 부렸다. 심지어 이 씨가 낸 업무 아이디어를 자기 생각인 것처럼 회사 안에서 말하고 다녔다. 이 씨가 싫은 티를 내자 A는 다른 동료들에게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이 씨는 다른 입사 동기에게 억울함을 호소해 봤다. 하지만 “A 성격 좋은 것 같던데 왜?”라는 반응이 돌아와 놀라울 뿐이었다.매력적으로 다가와서는 자기 위주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 관계에서 자신이 돋보이지 못하면 질투에 불타올라 상대를 깎아내린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까지 포섭해 상대를 자기 멋대로 통제하려 든다.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영문 모르고 당하기 쉽다.나르시시즘은 사이코패스, 마키아벨리즘(남을 착취하는 성향)과 함께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어두운 성격의 3요소(dark triad)’로 꼽힌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해서 전부 ‘왕자병’ ‘공주병’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모습으로 교묘하게 괴롭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아보자.● 나르시시스트는 모두 성격 장애?자기애성 성격 특성은 ‘있다’ ‘없다’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애가 매우 부족한 수준부터 병적인 정도까지 나타나는 스펙트럼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병적 수준의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에 속한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 따르면 진단 기준은 △근거 없는 자만심(오만불손) △특권층과만 어울려야 한다는 착각 △무한한 권력, 성공, 지능, 외모에 대한 환상 △무조건적 존경심 요구 △특권 의식 △타인 착취 △공감 능력 결여 등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악성 나르시시스트는 사이코패스와 같다고 보기도 한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는 일반 인구의 1% 수준으로 나타난다.병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애 양상을 다양하게 드러내며 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나르시시스트가 더 많다. 이는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과대형 나르시시스트(외현적·外現的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전형적이다. 거만하고 특별 대우를 바라며, 권력 지향적이고 외적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트로피처럼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그럴듯한 배우자, 연인, 자녀를 원한다. 리더십이 있는 것처럼 보여 기업 임원 등에 많다.취약한 나르시시스트(내현적·內現的 나르시시스트)는 내향적이고 소심해서 눈치채기 어렵다. 이들은 늘 불안하고 과민하며 고집 세다. 주목받기는 싫어하지만 특별 대우를 바라는 건 똑같다. 소극적 성격 탓에 현실에서 눈에 띄게 성공하지는 못하는데, 이때 남 탓을 하며 짜증을 부린다. 은밀하게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 중에 많다.봉사와 헌신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려는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관계적 나르시시스트) 유형도 있다. 이들은 사회나 조직에 이바지하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니라, 헌신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과시형 나르시시스트의 속마음·여러 사람에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한다.·권력 의지가 강하다.·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몸매(체격)를 과시하기 좋아한다.·다른 사람보다 더 유능하다고 느낀다.·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다른 사람을 설득해 뭐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자료: 자기애성 성격 검사·NPI◆취약한 나르시시스트의 속마음·겁이 많고 소심하다.·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살핀다.·비판받을 때 쉽게 굴욕감을 느낀다.·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잘 대해 주길 바란다.·사람들이 왜 내 장점을 더 알아주지 않는지 의문이다.·기회만 된다면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할 수 있다.·다른 사람이 자기 문제로 내 시간을 요구하거나 공감해 주길 바라면 괴롭고 귀찮다.자료: 내현적 자기애 척도·CNS● 나르시시스트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진다나르시시스트는 양육 환경에 의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유아기에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느끼며 살아간다. 대부분 성장하면서 겪는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나는 공주(왕자)가 아니라 보통 존재’라는 것을 저절로 경험한다.부모의 과잉보호 등으로 인해 성숙에 필요한 좌절 경험을 못 하고 성장하면 성인이 돼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혹은 정반대로, 어렸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을 겪으면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완벽한 모습으로 칭송받는 자신을 상상하며 자기애를 키울 수도 있다.극단적으로는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나 부재 등도 영향을 미친다. 나쁜 양육의 결과로 다시는 누구에게 의존하기 싫은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싹튼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춘 인간이라고 점점 믿게 된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불안에 떠는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은 무능하고 모자란 존재라고 평가절하하며 자기를 더 돋보이는 존재로 인식한다.어린 시절 특출난 재능을 보이거나, 탄생 자체가 가족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아이도 나르시시스트가 되기 쉽다. 어렸을 때부터 특별 대우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주변 칭찬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그런데 칭찬받지 못할 때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부모가 좋아하는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과장된 자기상(像)을 키워 나간다. 이런 상상이 고착하면 과도한 자기애가 생길 수 있다.나르시시스트 부모를 둔 자녀도 자기애성 성격으로 자라기 쉽다. 이렇게 자란 사람은 ‘너는 완벽하다’며 오냐오냐해서 자녀를 길러 나르시시스트로 키우기도 한다. 학교 교사에게 자녀를 특별 대우하라고 요구하며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고 주장한 학부모 사례도 이런 선상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자녀를 마치 자신을 빛나게 해줄 트로피 같은 도구로 여겨서 ‘성공해야만 내 자식’이라는 자세로 상처를 주는 나르시시스트 부모도 있다. 이들은 자녀가 성공해야만 사랑을 주고 실패하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사소한 일에도 “무시 당했다”며 바르르나르시시스트의 깊은 내면 세계는 사실 빈약할 뿐 아니라 열등감으로 차 있다. 누가 자신을 무시하는지 항상 날이 서 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복수에도 능하다. 자기애와 분노, 공격성과 관련한 연구 437건을 분석해 보니 성별이나 국적, 나이와 관계없이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신체적, 언어적 폭력 성향이 두드러진 것은 물론이고 사이버 공간에서도 공격성을 보였다.특히 취약한 나르시시스트는 복수의 화신이다. 즐라탄 크리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208명에 대해 나르시시즘 검사를 한 뒤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을 과대형 또는 취약한 나르시시스트 유형으로 나눴다.이어서 참가자들에게 미각 관련 실험이라고 속인 다음 평소에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조사했다. 이후 역한 맛의 야채즙 또는 일반 차(茶) 중 하나를 무작위로 주면서 “당신과 짝꿍인 참가자가 당신 취향을 고려해 선택한 음료”라고 설명했다. 야채즙은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도 자기를 무시했다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나르시시스트를 도발하기 위한 장치였다. 야채즙을 받은 나르시시스트들은 ‘(짝꿍에게) 분명히 좋아하는 맛을 알려줬는데도 짝꿍이 (나를) 무시해서 이상한 음료를 줬다’고 여길 가능성이 컸다.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이어진 실험에서는 반대로 짝꿍에게 줄 음식 소스로 보통 맛과 엄청 매운맛 중에 선택할 기회를 참가자에게 줬다. 참가자 대다수가 보통 맛 소스를 주겠다고 했지만, 야채즙을 마신 취약한 나르시시스트 유형 참가자 대다수는 엄청 매운맛을 선택했다. 심지어 이들은 짝꿍이 아니라 제삼자에게 줄 소스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도 엄청 매운맛으로 결정했다. 사소한 한 번의 ‘도발’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공격성이 뻗친 것이다. 작은 도발에도 바르르 떨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준비가 되어 있는 나르시시스트 특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팀보단 내가 우선…팀워크 방해물조직에 속한 나르시시스트는 혼자 주목받는 걸 원하기 때문에 팀워크에 해롭다. 나서는 걸 좋아해 초반에는 리더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팀의 성과보다는 자기가 돋보여야 하는 욕심이 앞선다.에밀리 그리할바 미 버팔로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공동 연구팀은 스포츠 경기에서 나르시시스트 선수의 활약이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아봤다. 2013~2014년 미국 프로농구(NBA) 2460경기를 분석했다. 당시 선수 391명이 각자 트위터(현 X) 계정에 올린 사진, 글 4731건을 분석해 자기애 점수를 매겼다. 예를 들어 “거울을 보면서 무슨 생각하냐고? 위대함(What do you think when you look in the mirror? Greatness)” 같은 글을 쓰거나, 자신의 근육질을 과시하는 노출 사진을 올린 선수에게 자기애 점수를 높게 줬다. 그리고 이들의 경기당 어시스트 수와 승패를 살펴봤다. 어려워서 확률이 낮은 슛을 넣어 성공을 혼자 만끽할 것인지, 동료에게 패스해 팀 전체의 득점 기회를 높일 것인지 보기 위해서다.그 결과 자기애 점수가 높은 선수는 어시스트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팀 성적도 저조했다. 평균 자기애 점수가 높은 팀일수록 전체 어시스트 수가 적었고 팀 성적도 안 좋았다. 자기가 돋보이는 게 중요한 나르시시스트가 많을수록 팀 성과가 저조했다.이런 팀은 함께 뛴 경기 경험이 쌓여도 선수들이 서로 협력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경기에서 합을 맞춘 시간이 늘어날수록 경기력은 늘어나기 마련인데, 자기애 점수가 높은 선수들이 많은 팀은 시즌 막바지로 가도 팀워크가 개선되지 못했다. 반면 자기애 평균 점수가 낮은 팀들은 상대적으로 서너 경기 더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 ‘손절’만이 답? 이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일명 ‘회색 돌’ 기법이란 것이 있다. 20년 이상 자기애 관련 연구를 한 키스 캠벨 미 조지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회색 돌 기법에 대해 “특별한 방법은 없고, 그저 당신 일을 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만만한 대상으로 하여금 화, 슬픔, 죄책감, 미안함 같은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게 해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려고 한다. 이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최대한 감정 동요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 반응도 없이 튀지 않으면서 배경에 스며드는 회색 돌처럼 말이다. 필요한 말만 하고 거리를 두다 보면 가지고 놀기에 재미없는 사람이라 느껴 나르시시스트가 알아서 떠나간다.하지만 한집에 사는 사이라면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건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할 때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 문제’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전문 유튜브 채널 ‘토킹닥터스’를 운영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원은수 원장은 “상대가 나를 공격하며 흔들어대도 그 말에 곧이곧대로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며 “저 사람이 나를 협박해서 통제하고 싶어 하거나 화풀이하고 싶어 한다는 것같이 상대에게 원인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르시시스트마다 자기애 특성이 드러나는 방식과 수준이 천차만별이므로 ‘손절’ 내지는 무작정 사랑으로 포용하기 같은 절대적 대응 방법이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원 원장은 “심각하게 폭력적이고 반(反)사회성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 반면, 본인이 먼저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며 “중요한 점은 스스로 인지해서 바뀌려고 노력하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주변 사람들과의 대인관계 문제가 자꾸 불거지고,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누군가 한 적이 있다면 혹시 내가 나르시시스트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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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껏 조종하고 숨어서 괴롭히는 그는… 나르시시스트[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20대 직장인 이주아(가명) 씨는 처음엔 입사 동기 A가 좋았다. 먼저 다가오는 A의 성격 덕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싸한 느낌이 들었다. A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신나서 하다가도 주제가 이 씨 이야기로 바뀌면 관심이 뚝 떨어졌다. 회사에서 이 씨가 상사에게 칭찬을 받으면 A는 질투하며 심술을 부렸다. 심지어 이 씨가 낸 업무 아이디어를 자기 생각인 것처럼 회사 안에서 말하고 다녔다. 이 씨가 싫은 티를 내자 A는 다른 동료들에게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이 씨는 다른 입사 동기에게 억울함을 호소해 봤다. 하지만 “A 성격 좋은 것 같던데 왜?”라는 반응이 돌아와 놀라울 뿐이었다. 매력적으로 다가와서는 자기 위주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 관계에서 자신이 돋보이지 못하면 질투에 불타올라 상대를 깎아내린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까지 포섭해 상대를 자기 멋대로 통제하려 든다.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영문 모르고 당하기 쉽다. 나르시시즘은 사이코패스, 마키아벨리즘(남을 착취하는 성향)과 함께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어두운 성격의 3요소(dark triad)’로 꼽힌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해서 전부 ‘왕자병’ ‘공주병’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모습으로 교묘하게 괴롭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아보자.● 나르시시스트는 모두 성격 장애? 자기애성 성격 특성은 ‘있다’ ‘없다’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애가 매우 부족한 수준부터 병적인 정도까지 나타나는 스펙트럼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병적 수준의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에 속한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 따르면 진단 기준은 △근거 없는 자만심(오만불손) △특권층과만 어울려야 한다는 착각 △무한한 권력, 성공, 지능, 외모에 대한 환상 △무조건적 존경심 요구 △특권 의식 △타인 착취 △공감 능력 결여 등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악성 나르시시스트는 사이코패스와 같다고 보기도 한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는 일반 인구의 1% 수준으로 나타난다. 병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애 양상을 다양하게 드러내며 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나르시시스트가 더 많다. 이는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과대형 나르시시스트(외현적·外現的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전형적이다. 거만하고 특별 대우를 바라며, 권력 지향적이고 외적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트로피처럼 자신을 빛나게 해주는 그럴듯한 배우자, 연인, 자녀를 원한다. 리더십이 있는 것처럼 보여 기업 임원 등에 많다. 취약한 나르시시스트(내현적·內現的 나르시시스트)는 내향적이고 소심해서 눈치채기 어렵다. 이들은 늘 불안하고 과민하며 고집 세다. 주목받기는 싫어하지만 특별 대우를 바라는 건 똑같다. 소극적 성격 탓에 현실에서 눈에 띄게 성공하지는 못하는데, 이때 남 탓을 하며 짜증을 부린다. 은밀하게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 중에 많다. 봉사와 헌신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려는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관계적 나르시시스트) 유형도 있다. 이들은 사회나 조직에 이바지하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니라, 헌신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나르시시스트는 길러진다’ 나르시시스트는 양육 환경에 의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유아기에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느끼며 살아간다. 대부분 성장하면서 겪는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나는 공주(왕자)가 아니라 보통 존재’라는 것을 저절로 경험한다. 부모의 과잉보호 등으로 인해 성숙에 필요한 좌절 경험을 못 하고 성장하면 성인이 돼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 혹은 정반대로, 어렸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을 겪으면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완벽한 모습으로 칭송받는 자신을 상상하며 자기애를 키울 수도 있다. 어린 시절 특출난 재능을 보이거나, 탄생 자체가 가족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아이도 나르시시스트가 되기 쉽다. 어렸을 때부터 특별 대우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주변 칭찬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그런데 칭찬받지 못할 때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부모가 좋아하는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과장된 자기상(像)을 키워 나간다. 이런 상상이 고착하면 과도한 자기애가 생길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둔 자녀도 자기애성 성격으로 자라기 쉽다. 이렇게 자란 사람은 ‘너는 완벽하다’며 오냐오냐해서 자녀를 길러 나르시시스트로 키우기도 한다. 학교 교사에게 자녀를 특별 대우하라고 요구하며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고 주장한 학부모 사례도 이런 선상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사소한 일에도 “날 무시하네” 나르시시스트의 깊은 내면 세계는 사실 빈약할 뿐 아니라 열등감으로 차 있다. 누가 자신을 무시하는지 항상 날이 서 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복수에도 능하다. 자기애와 분노, 공격성과 관련한 연구 437건을 분석해 보니 성별이나 국적, 나이와 관계없이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신체적, 언어적 폭력 성향이 두드러진 것은 물론이고 사이버 공간에서도 공격성을 보였다. 특히 취약한 나르시시스트는 복수의 화신이다. 즐라탄 크리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208명에 대해 나르시시즘 검사를 한 뒤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을 과대형 또는 취약한 나르시시스트 유형으로 나눴다. 이어서 참가자들에게 미각 관련 실험이라고 속인 다음 평소에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조사했다. 이후 역한 맛의 야채즙 또는 일반 차(茶) 중 하나를 무작위로 주면서 “당신과 짝꿍인 참가자가 당신 취향을 고려해 선택한 음료”라고 설명했다. 야채즙은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도 자기를 무시했다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나르시시스트를 도발하기 위한 장치였다. 야채즙을 받은 나르시시스트들은 ‘(짝꿍에게) 분명히 좋아하는 맛을 알려줬는데도 짝꿍이 (나를) 무시해서 이상한 음료를 줬다’고 여길 가능성이 컸다.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이어진 실험에서는 반대로 짝꿍에게 줄 음식 소스로 보통 맛과 엄청 매운맛 중에 선택할 기회를 참가자에게 줬다. 참가자 대다수가 보통 맛 소스를 주겠다고 했지만, 야채즙을 마신 취약한 나르시시스트 유형 참가자 대다수는 엄청 매운맛을 선택했다. 심지어 이들은 짝꿍이 아니라 제삼자에게 줄 소스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도 엄청 매운맛으로 결정했다. 사소한 한 번의 ‘도발’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공격성이 뻗친 것이다. 작은 도발에도 바르르 떨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준비가 되어 있는 나르시시스트 특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직 내부 나르시시스트는 팀워크를 갉아먹는 주범이다. 에밀리 그리할바 미 버펄로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2013∼2014시즌 미국프로농구(NBA) 2460경기를 분석한 결과 나르시시즘 점수가 높은 선수가 많은 팀일수록 다른 팀원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하는 어시스트 횟수가 적었고 팀 성적도 좋지 않았다. 자기가 돋보이는 게 중요하다 보니 팀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자기애 점수가 낮은 팀들은 이 팀들에 비해 평균 서너 경기를 더 이긴 것으로 분석됐다.● ‘손절’이 답? 이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명 ‘회색 돌’ 기법이란 것이 있다. 20년 이상 자기애 관련 연구를 한 키스 캠벨 미 조지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회색 돌 기법에 대해 “특별한 방법은 없고, 그저 당신 일을 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나르시시스트는 만만한 대상으로 하여금 화, 슬픔, 죄책감, 미안함 같은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게 해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려고 한다. 이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최대한 감정 동요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 반응도 없이 튀지 않으면서 배경에 스며드는 회색 돌처럼 말이다. 필요한 말만 하고 거리를 두다 보면 가지고 놀기에 재미없는 사람이라 느껴 나르시시스트가 알아서 떠나간다. 하지만 한집에 사는 사이라면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건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할 때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 문제’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전문 유튜브 채널 ‘토킹닥터스’를 운영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원은수 원장은 “상대가 나를 공격하며 흔들어대도 그 말에 곧이곧대로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며 “저 사람이 나를 협박해서 통제하고 싶어 하거나 화풀이하고 싶어 한다는 것같이 상대에게 원인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르시시스트마다 자기애 특성이 드러나는 방식과 수준이 천차만별이므로 ‘손절’ 내지는 무작정 사랑으로 포용하기 같은 절대적 대응 방법이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원 원장은 “심각하게 폭력적이고 반(反)사회성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 반면, 본인이 먼저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며 “중요한 점은 스스로 인지해서 바뀌려고 노력하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주변 사람들과의 대인관계 문제가 자꾸 불거지고,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누군가 한 적이 있다면 혹시 내가 나르시시스트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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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대세이자 정답” 다른 사람도 다 내 마음 같을 거라는 착각[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그렇게 생각하는 바보가 어딨어?”내 생각엔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살다 보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바보’와 만날 때가 있다. 심지어 매우 자주, 곳곳에서 맞닥뜨린다. 가족 친구 동료 같은 가까운 사이부터 온라인 기사 댓글로 싸우는 상대 진영 지지자까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로 무장한 상대 주장에 대화를 포기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돌아선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정말 내 생각은 다 옳고, 상대는 다 틀렸을까.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라고 큰소리쳤을 때, 정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 생각을 지지해 줄 것인가. 내 생각이 정답이자 기준이라고 여기는 것부터가 큰 착각일 수 있다.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는 인지 오류를 허위 합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고 부른다. 합의 착각 효과 또는 거짓 합의 효과라고도 한다. 내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고, 반대 의견은 비정상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싸움 같은 일상적 순간부터 요즘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 말이 맞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누군가 얼굴이 떠올랐다면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한번 살펴보자.● 나와 생각 다르면? ‘이상한 사람’ 낙인허위 합의 효과라는 말이 낯설어 보이지만 학계에 알려진 지는 꽤 오래됐다. 리 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1977년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여할 학생 104명을 모집해 이들에게 커다란 광고판을 들고 30분 동안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광고판에는 ‘조스(샌드위치 가게 이름)에서 식사하세요’ 같은 홍보 글귀가 쓰여 있었다.104명 가운데 광고판을 들고 학교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한 사람은 52%, 싫다고 한 이는 48%였다. 대략 반반이었다. 아마도 절반은 이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창피해서 거절했을 것이다.그런 뒤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결정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광고판을 들고 돌아다니겠다고 한 학생들은 61% 정도가 제안을 수락했을 거라고 예상했다. 제안을 거부한 학생들은 70%가 제안을 거부했을 거라고 봤다. 모든 학생이 스스로가 다수 의견 쪽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재미있는 사실은 광고판을 들고 다니겠다고 한 학생과 거부한 학생이 각각 어떤 성격일지 예상해 보라는 후속 질문에서 드러났다. 학생들은 자기와 반대 의견을 낸 사람들을 괴팍하고 비협조적이며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봤다. 본인과 같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자신과 같은 결정을 내릴 거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비정상적인 성격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편은 다수, 상대 편은 소수?정치 종교같이 주요 신념과 관련된 주제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 다른 주제보다 내 가치관을 방어하고 정당화하려는 동기가 강해서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널리 퍼져있다고 생각하면 사회적 안정감이 생길 뿐 아니라 ‘내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 덕에 자존감도 높아진다.정당 지지자 간 허위 합의 효과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당시 쟁점이던 테러방지법 찬반 의견을 알아본 연구가 있다. 20~50대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해당 법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 ‘매우 반대’(26.3%), ‘약간 반대’(17.2%), ‘잘 모르겠다’(6.9%), ‘약간 찬성’(27.1%), ‘매우 찬성’(22.5)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제외하면 반대 43.5%, 찬성 49.6%로 양쪽이 비슷했다.추가로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 몇 % 정도가 테러방지법을 찬성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해당 법안을 ‘매우 반대’하는 이들은 28.6%가, ‘약간 반대’하는 이들은 36.9%만 찬성할 거라고 예상했다. 전체 찬성 의견(49.6%)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반대로 ‘매우 찬성’하는 이들은 65%가, ‘약간 찬성’하는 이들은 50.6%가 찬성할 거라고 예상했다.특히 매우 반대하거나, 매우 찬성하는 사람들에게서 허위 합의 효과가 더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념이 강할수록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다.● 상대 의견에 귀 닫을 수록 착각 심해져이런 경향성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이 미국 성인 유권자 16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총기 규제, 사형제 등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했더니, 각 정책을 강력히 찬성 또는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의 비율이 실제 비율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예측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인들과 해당 이슈에 대해 토론하거나, 온라인에서 찬반토론을 하면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실제로 부딪히는 경험을 하고난 뒤에는 이런 과다 추정이 완화됐다. 반대자들과 토론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자각하고, 자기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그런데 문제는 자신만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듣기 싫어한다는 점이다. 위 연구에서는 연구진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찬반 토론에 참여하긴 했지만…, 현실에서는 반대 의견에 귀를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위협적이고 불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똑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 편끼리만 어울리면서 ‘우리가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때 불리한 정보는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도 이를 부추긴다.● “하느님도 내편” 정말일까?이 같은 경향은 심지어 신의 뜻을 유추할 때도 나타난다. 각자가 믿는 신의 뜻을 해석할 때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 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긴다. 남들도 다 나에게 동조할 거라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신의 영역까지 확대되는 셈이다.니컬러스 에플리 미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종교가 있는 922명에게 낙태,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그리고 각자가 믿는 종교의 신은 찬반 중 어느 쪽일지, 일반 국민은 찬반 중 어느 쪽이 많을지 예측해 보라고 했다.그 결과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해당 법안에 찬성하면 찬성하는 대로, 반대하면 반대하는 대로 신도 자기 생각과 똑같을 거라고 여겼다. 이런 경향성은 나와 의견이 같은 일반 국민 비율을 예측한 것보다 더 강하게 나타났다. 반면, 종교를 믿지 않는 77명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더니, 자기 생각과 신의 생각이 같을 거라고 보는 경향성은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내 의견을 말할 때와 신의 뜻을 추측할 때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에플리 교수 연구진은 종교가 있는 17명에게 안락사 합법화 같은 논쟁적 주제에 대해 자신, 각자가 믿는 신, 일반인 의견은 각각 어떨지 차례로 생각하고 답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뇌 활동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했다.그 결과 뇌 내측 전전두피질 등 내 의견을 답할 때 활성화된 부위와 신의 뜻에 대해 생각할 때 활성화된 부위가 똑같았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 의견을 답할 때 활성화된 뇌 부위도 일부 겹치기는 했지만 신의 뜻을 생각할 때 더 높은 일치율을 보였다. 연구진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신의 뜻을 추론하는 과정과 자기 신념을 생성하는 과정의 뇌 활동이 상당히 유사했다”며 “신의 뜻을 추론할 때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토끼굴’ 가두는 알고리즘이 위험하다이렇게 오류를 범하기 쉬운 우리의 습성은 내 취향을 반영하는 디지털 알고리즘과 만나면 더 강력해진다. 편향된 정보만 보며 고정관념이 더 강화될 수 있어서다. 또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들 의견을 대세론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특정 취향 맞춤형 정보만 보는 ‘필터 버블’,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된 SNS 게시물에 더욱 빠져드는 ‘토끼굴 효과’ 등도 이를 잘 나타낸다.알고리즘은 소수 의견도 보편적 주장인 것으로 속게 만든다. 극소수가 제기한 음모론에 빠지기도 쉽다. SNS 팔로어들이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우리 편’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상승효과가 난다. SNS 같은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허위 합의 효과를 연구하는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SNS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은 원래 자기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SNS 효과까지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개인의 생각 차이를 존중하기보다 집단 내 동질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징도 일부 영향을 미친다. 같은 집단 내에서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단합하려는 경향이 있기에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다양성의 가치는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교수는 “일단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태도를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며 “우리 모두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듣기 거북하더라도 반대 의견을 들어 보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된다. 나 교수는 “구미에 맞지 않는 정보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만 만나기보다 반대되는 사람도 골고루 만나고, 미디어를 이용할 때도 양쪽을 대변하는 미디어를 고루 이용하는 게 좋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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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들 나처럼 생각할걸?’… 내 생각이 대세라는 착각[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그렇게 생각하는 바보가 어딨어?” 내 생각엔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살다 보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바보’와 만날 때가 있다. 심지어 매우 자주, 곳곳에서 맞닥뜨린다. 가족 친구 동료 같은 가까운 사이부터 온라인 기사 댓글로 싸우는 상대 진영 지지자까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로 무장한 상대 주장에 대화를 포기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돌아선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정말 내 생각은 다 옳고, 상대는 다 틀렸을까.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라고 큰소리쳤을 때, 정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 생각을 지지해 줄 것인가. 내 생각이 정답이자 기준이라고 여기는 것부터가 큰 착각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는 인지 오류를 허위 합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고 부른다. 합의 착각 효과 또는 거짓 합의 효과라고도 한다. 내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고, 반대 의견은 비정상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싸움 같은 일상적 순간부터 요즘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 말이 맞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누군가 얼굴이 떠올랐다면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한번 살펴보자. ● 나와 생각 다르면? “이상한 사람” 허위 합의 효과라는 말이 낯설어 보이지만 학계에 알려진 지는 꽤 오래됐다. 리 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1977년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여할 학생 104명을 모집해 이들에게 커다란 광고판을 들고 30분 동안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광고판에는 ‘조스(샌드위치 가게 이름)에서 식사하세요’ 같은 홍보 글귀가 쓰여 있었다. 104명 가운데 광고판을 들고 학교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한 사람은 52%, 싫다고 한 이는 48%였다. 대략 반반이었다. 아마도 절반은 이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창피해서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 뒤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결정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광고판을 들고 돌아다니겠다고 한 학생들은 61% 정도가 제안을 수락했을 거라고 예상했다. 제안을 거부한 학생들은 70%가 제안을 거부했을 거라고 봤다. 모든 학생이 스스로가 다수 의견 쪽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광고판을 들고 다니겠다고 한 학생과 거부한 학생이 각각 어떤 성격일지 예상해 보라는 후속 질문에서 드러났다. 학생들은 자기와 반대 의견을 낸 사람들을 괴팍하고 비협조적이며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봤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은 수가 더 적을 뿐 아니라 성격도 비정상적이라고 바라본 것이다.● 반대 의견 들으면 불쾌… 끼리끼리 어울려 정치 종교같이 주요 신념과 관련된 주제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 다른 주제보다 내 가치관을 방어하고 정당화하려는 동기가 강해서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하면 사회적 안정감이 생길 뿐 아니라 ‘내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 덕에 자존감도 높아진다. 정당 지지자 간 허위 합의 효과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당시 쟁점이던 테러방지법 찬반 의견을 알아본 연구가 있다. 20∼50대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해당 법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 ‘매우 반대’(26.3%), ‘약간 반대’(17.2%), ‘잘 모르겠다’(6.9%), ‘약간 찬성’(27.1%), ‘매우 찬성’(22.5)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제외하면 반대 43.5%, 찬성 49.6%로 양쪽이 비슷했다. 추가로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 몇 % 정도가 테러방지법을 찬성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해당 법안을 ‘매우 반대’하는 이들은 28.6%가, ‘약간 반대’하는 이들은 36.9%만 찬성할 거라고 예상했다. 전체 찬성 의견(49.6%)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반대로 ‘매우 찬성’하는 이들은 65%가, ‘약간 찬성’하는 이들은 50.6%가 찬성할 거라고 예상했다. 특히 매우 반대하거나, 매우 찬성하는 사람들에게서 허위 합의 효과가 더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념이 강할수록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다. 자신만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듣기 싫어한다. 위협적이고 불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똑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 편끼리만 어울리면서 ‘우리가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때 불리한 정보는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도 이를 부추긴다.● “오, 하느님도 내 생각과 같을걸?” 이 같은 경향은 심지어 신의 뜻을 유추할 때도 나타난다. 각자가 믿는 신의 뜻을 해석할 때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 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긴다. 남들도 다 나에게 동조할 거라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신의 영역까지 확대되는 셈이다. 니컬러스 에플리 미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종교가 있는 922명에게 낙태,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그리고 각자가 믿는 종교의 신은 찬반 중 어느 쪽일지, 일반 국민은 찬반 중 어느 쪽이 많을지 예측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해당 법안에 찬성하면 찬성하는 대로, 반대하면 반대하는 대로 신도 자기 생각과 똑같을 거라고 여겼다. 이런 경향성은 나와 의견이 같은 일반 국민 비율을 예측한 것보다 더 강하게 나타났다. 반면, 종교를 믿지 않는 77명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더니, 자기 생각과 신의 생각이 같을 거라고 보는 경향성은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내 의견을 말할 때와 신의 뜻을 추측할 때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에플리 교수 연구진은 종교가 있는 17명에게 안락사 합법화 같은 논쟁적 주제에 대해 자신, 각자가 믿는 신, 일반인 의견은 각각 어떨지 차례로 생각하고 답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뇌 활동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뇌 내측 전전두피질 등 내 의견을 답할 때 활성화된 부위와 신의 뜻에 대해 생각할 때 활성화된 부위가 똑같았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 의견을 답할 때 활성화된 뇌 부위도 일부 겹치기는 했지만 신의 뜻을 생각할 때 더 높은 일치율을 보였다. 연구진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신의 뜻을 추론하는 과정과 자기 신념을 생성하는 과정의 뇌 활동이 상당히 유사했다”며 “신의 뜻을 추론할 때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 자기중심성 부추기는 알고리즘 이렇게 오류를 범하기 쉬운 우리 습성은 내 취향을 반영하는 디지털 알고리즘과 만나면 더 강력해진다. 편향된 정보만 보며 고정관념이 더 강화될 수 있어서다. 또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들 의견을 대세론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특정 취향 맞춤형 정보만 보는 ‘필터 버블’,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된 SNS 게시물에 더욱 빠져드는 ‘토끼굴 효과’ 등도 이를 잘 나타낸다. 알고리즘은 소수 의견도 보편적 주장인 것으로 속게 만든다. 극소수가 제기한 음모론에 빠지기도 쉽다. SNS 팔로어들이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우리 편’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상승효과가 난다. SNS 같은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허위 합의 효과를 연구하는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SNS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은 원래 자기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SNS 효과까지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교수는 “일단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태도를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며 “우리 모두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듣기 거북하더라도 반대 의견을 들어 보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된다. 나 교수는 “구미에 맞지 않는 정보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만 만나기보다 반대되는 사람도 골고루 만나고, 미디어를 이용할 때도 양쪽을 대변하는 미디어를 고루 이용하는 게 좋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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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회…우린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사장님과 오늘 들어온 맛있는 원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강아지 산책길에 자주 마주치는 아주머니와 요즘 좋아하는 산책 코스는 어딘지 이야기한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과도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며 짧은 인사를 건넨다. 회사에서는 오랜만에 우연히 마주친 다른 팀 동료와 그동안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이들 중 누구도 우리 삶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은 없다. 어쩌면 있으나 마나 한 인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날은 생각보다 마음이 허전할 수 있다. 의미 없는 얕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일지라도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나의 일상적 행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가까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를 ‘강한 유대(strong ties)’라고 한다면, 서로 잘 모르는 관계는 ‘약한 유대(weak ties)’라고 한다. 각박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다 보면, 때로는 약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무례해지기 쉽다.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이라도 걸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자리를 피하기 바쁘다. 하지만 최근 많은 연구에 따르면 약한 유대 관계를 많이 맺을 수 있는 사회 환경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때로는 약한 유대도 강한 유대만큼이나 강력할 수 있다.● 실수로 고독을 추구하다원래 약한 유대라는 용어는 마크 그라노베터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가 1973년 ‘약한 유대의 힘’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는 취업 정보 같은 알짜 정보를 가까운 사이에서 듣기보다, 얕고 넓게 아는 사이에서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아는 사람도 비슷하고 삶의 반경이 겹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내가 모르는 다양한 인맥, 환경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정보를 알 가능성이 커서다.그러다 점차 약한 유대 관계가 우리 삶에 어떤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지로 관심이 확대됐다. 니컬러스 에플리 미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약한 유대 관계와 관련해 ‘실수로 고독을 추구하다’라는 재미있는 연구를 발표했다. 혼자가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일 수 있다는 얘기다.연구진은 미 일리노이주에서 통근 열차를 타고 시카고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105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미션을 줬다. 첫 번째 그룹에는 옆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가벼운 인사를 먼저 건네고, 최대한 길게 대화해 보라고 했다. 두 번째 그룹에는 아무런 소통도 하지 말고 혼자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마지막 그룹은 평소 하던 것처럼 자유롭게 행동(전화 통화, 업무 처리 등)하라고 주문했다.아마도 세 그룹 중 옆 사람에게 말 거는 미션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괴로웠을 것이다. 일단 딱히 할 말도 없을 뿐 아니라, 상대방이 귀찮아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거절할 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험 참가자의 86%가 ‘평소 낯선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실험 참가자 대다수가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경험이 매우 불쾌할 거라고 예상했다. 반면 고독을 즐기거나, 평소처럼 행동할 땐 출퇴근길 만족도가 높을 거라고 봤다.●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생각보다 유쾌”그런데 각 그룹이 출퇴근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답변한 심리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예상과 정반대였다. 옆 사람과 대화한 그룹의 행복도가 세 그룹 중 가장 높았다. 이들은 옆 사람과 평균 14분 정도 대화했고, 대화 상대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답했다. 물론 옆 사람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라고 답한 예도 있었지만, 상당히 소수였다. 이와 반대로 고독한 출퇴근을 한 사람들의 행복도는 세 그룹 가운데 가장 낮았다. 평소대로 행동한 그룹은 고독한 출퇴근자들보단 행복했지만, 처음 예상보다 행복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이런 결과는 실험 참가자들의 외향성이나 내향성 등 성격 요인을 통계적으로 배제하고 결과를 분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즉,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는 의미다.연구진은 예상과 반대 결과가 나타난 가장 큰 이유로, 우리가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큰 오해를 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곧 예의라고 오해하고, 말을 걸면 당연히 거절할 것으로 오해하고, 낯선 사람과는 공통 관심사가 전혀 없다고 오해하고, 타인 또한 주변에 무관심할 것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친해졌을 뿐인데…박사 과정 대학원생이었던 한 여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로 매일 큰 자괴감에 시달렸다. 자신이 좋은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그러다 우연히 연구실 건물 앞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친해졌다.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친근한 인사를 건넸다. 흥미롭게도 여학생은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친해진 뒤 정붙일 곳 없던 학교에 작은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영국 서식스대의 심리학자인 길리언 샌드스트롬 박사는 자신의 대학원생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같은 작은 인연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실험 참가자 대학생 58명, 25세 이상 성인 41명을 각각 모집해 연구용 기록장치를 나눠 줬다. 그리고 하루 동안 가족, 친구 등 친한 사람들과 상호 작용한 횟수와 어쩌다 마주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상호 작용한 횟수를 각각 기록하도록 했다. 친한 사람의 기준은 서로 잘 알고, 문제가 있으면 털어놓을 수 있는 정도의 사이를 말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은 서로 잘 모르고, 제한적인 주제의 대화만 가능한 정도의 사이로 정했다. 참가자들은 총 6일 동안 이를 기록하고, 그날 느낀 행복감과 소속감에 대한 질문지에 답했다.당연히 친한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사람은 평균 수준보다 높은 행복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신기한 것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평소보다 더 많이 대화한 날에는 행복감, 소속감이 유독 더 높아졌다. 이 역시도 외향성, 내향성 등 성격 요인과 관계없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안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할 때 더 큰 사회적 소속감을 느꼈다.● 대인관계에도 분산투자가 필요하다?이런 결과에 대해 샌드스트롬 박사는 분산투자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투자 포트폴리오가 다양할수록 자산 운용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듯이, 얕든지 깊든지 대인 관계 포트폴리오가 다양할수록 삶에 안정감과 만족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샌드스트롬 박사는 “가벼운 지인 관계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카페 바리스타, 직장 동료, 반려견을 키우는 이웃 등과 잡담하는 것이 가까운 친구, 가족과의 대화만큼 의미 있는 행복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대인관계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사람들이 진짜로 더 행복한지 5만 명을 대상으로 알아본 연구도 있다. 미 하버드대 연구진이 미국과 프랑스에서 조사된 자료를 분석해 봤더니,가족, 친구, 동료, 지인, 낯선 사람 등 대인관계를 다양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도, 행복, 주관적인 건강 지표들이 더 좋게 나타났다. 이 역시도 평소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한 주에는 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이와 같은 맥락의 샌드스트롬 교수의 다른 연구에서는 스타벅스 카페에서 실험참가자들이 바리스타와 눈을 마주치거나, 미소를 짓거나, 간단한 대화를 나누도록 했더니, 아무 말 없이 커피만 사 간 사람들보다 더 큰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는 결과도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 튀르키예 대학 셔틀버스 기사에게 인사하는 탑승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그래서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가 돼 정부에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한 영국에서는 실제로 낯선 사람과 잡담하는 것을 외로움 해결의 한 방법으로 홍보하기도 한다. 자살 예방 캠페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람에겐 막 대해도 된다는 착각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과 같이 집단주의적인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는 약한 유대 관계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 가족 등 강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만 ‘우리 편’을 형성하고, 나머지는 내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는 ‘남의 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은 ‘남의 편’일 확률이 높고, 그러다 보니 무관심하고 무례할 때가 많다.행복에 관해 연구하는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양질의 사회적 환경이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안타깝게도 한국과 같이 유교적, 수직적,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는 전반적인 행복감이 낮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 편’인 가족에게 정서적 에너지를 다걸기(올인)하는 경향이 너무 강한 것도 안 좋게 작용한다. 서 교수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 편의점에서 일하는 점원 등에게 양질의 사회적 경험을 나누고 관심을 줄 에너지가 남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래서 어쩌면 한국 사회에 약한 유대 관계의 힘이 더 필요한지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말 걸고, 도와주며, 친절한 것이 행복의 절대 기준은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가 실종된 사회에서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 경험이 유쾌하고 행복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나이, 성별, 지역, 이념 등으로 계속해서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혐오 분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이때 서로 친절과 감사를 주고받는 호혜성의 회복이 중요하다. 서 교수는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에 대한 감사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사회의 호혜성 원칙이 깨졌다고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친절을 베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진부할 수 있지만,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기보다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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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몰 토크’ 강자 김 대리가 행복한 이유[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사장님과 오늘 들어온 맛있는 원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강아지 산책길에 자주 마주치는 아주머니와 요즘 좋아하는 산책 코스는 어딘지 이야기한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과도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며 짧은 인사를 건넨다. 회사에서는 오랜만에 우연히 마주친 다른 팀 동료와 그동안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이들 중 누구도 우리 삶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은 없다. 어쩌면 있으나 마나 한 인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날은 생각보다 마음이 허전할 수 있다. 의미 없는 얕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일지라도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나의 일상적 행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를 ‘강한 유대(strong ties)’라고 한다면, 서로 잘 모르는 관계는 ‘약한 유대(weak ties)’라고 한다. 각박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다 보면, 때로는 약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무례해지기 쉽다. 하지만 최근 많은 연구에 따르면 약한 유대 관계를 많이 맺을 수 있는 사회 환경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때로는 약한 유대도 강한 유대만큼이나 강력할 수 있다.● 실수로 고독을 추구하다 원래 약한 유대라는 용어는 마크 그래노베터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가 1973년 ‘약한 유대의 힘’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는 취업 정보 같은 알짜 정보를 가까운 사이에서 듣기보다, 얕고 넓게 아는 사이에서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아는 사람도 비슷하고 삶의 반경이 겹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내가 모르는 다양한 인맥, 환경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정보를 알 가능성이 커서다. 그러다 점차 약한 유대 관계가 우리 삶에 어떤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지로 관심이 확대됐다. 니컬러스 에플리 미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약한 유대 관계와 관련해 ‘실수로 고독을 추구하다’라는 재미있는 연구를 발표했다. 혼자가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미 일리노이주에서 통근 열차를 타고 시카고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105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미션을 줬다. 첫 번째 그룹에는 옆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가벼운 인사를 먼저 건네고, 최대한 길게 대화해 보라고 했다. 두 번째 그룹에는 아무런 소통도 하지 말고 혼자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마지막 그룹은 평소 하던 것처럼 자유롭게 행동(전화 통화, 업무 처리 등)하라고 주문했다. 아마도 세 그룹 중 옆 사람에게 말 거는 미션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괴로웠을 것이다. 일단 딱히 할 말도 없을 뿐 아니라, 상대방이 귀찮아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거절할 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험 참가자의 86%가 ‘평소 낯선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실험 참가자 대다수가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경험이 매우 불쾌할 거라고 예상했다. 반면 고독을 즐기거나, 평소처럼 행동할 땐 출퇴근길 만족도가 높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각 그룹이 출퇴근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답변한 심리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예상과 정반대였다. 옆 사람과 대화한 그룹의 행복도가 세 그룹 중 가장 높았다. 이들은 옆 사람과 평균 14분 정도 대화했고, 대화 상대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답했다. 물론 옆 사람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라고 답한 예도 있었지만, 상당히 소수였다. 이와 반대로 고독한 출퇴근을 한 사람들의 행복도는 세 그룹 가운데 가장 낮았다. 평소대로 행동한 그룹은 고독한 출퇴근자들보단 행복했지만, 처음 예상보다 행복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실험 참가자들의 외향성이나 내향성 등 성격 요인을 통계적으로 배제하고 결과를 분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즉,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예상과 반대 결과가 나타난 가장 큰 이유로, 우리가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큰 오해를 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곧 예의라고 오해하고, 말을 걸면 당연히 거절할 것으로 오해하고, 낯선 사람과는 공통 관심사가 전혀 없다고 오해하고, 타인 또한 주변에 무관심할 것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친해졌을 뿐인데… 박사 과정 대학원생이었던 한 여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로 매일 큰 자괴감에 시달렸다. 자신이 좋은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그러다 우연히 연구실 건물 앞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친해졌다.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친근한 인사를 건넸다. 흥미롭게도 여학생은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친해진 뒤 정붙일 곳 없던 학교에 작은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 영국 서식스대의 심리학자인 길리언 샌드스트롬 박사는 자신의 대학원생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핫도그 가게 아줌마와 같은 작은 인연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실험 참가자 대학생 58명, 25세 이상 성인 41명을 각각 모집해 연구용 기록장치를 나눠 줬다. 그리고 하루 동안 가족, 친구 등 친한 사람들과 상호 작용한 횟수와 어쩌다 마주친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상호 작용한 횟수를 각각 기록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총 6일 동안 이를 기록하고, 그날 느낀 행복감과 소속감에 대한 질문지에 답했다. 당연히 친한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사람은 평균 수준보다 높은 행복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신기한 것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평소보다 더 많이 대화한 날에는 행복감, 소속감이 유독 더 높아졌다. 이 역시도 외향성, 내향성 등 성격 요인과 관계없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안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할 때 더 큰 사회적 소속감을 느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샌드스트롬 박사는 분산투자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투자 포트폴리오가 다양할수록 자산 운용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듯이, 얕든지 깊든지 대인 관계 포트폴리오가 다양할수록 삶에 안정감과 만족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샌드스트롬 박사는 “가벼운 지인 관계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카페 바리스타, 직장 동료, 반려견을 키우는 이웃 등과 잡담하는 것이 가까운 친구, 가족과의 대화만큼 의미 있는 행복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들과 짧은 인사나 대화를 나눈 손님들이나, 튀르키예 대학 셔틀버스 기사에게 인사하는 탑승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우리 편’에만 국한된 친절, 때론 독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과 같이 집단주의적인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는 약한 유대 관계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 가족 등 강한 유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만 ‘우리 편’을 형성하고, 나머지는 내가 아무렇게나 대해도 상관없는 ‘남의 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은 ‘남의 편’일 확률이 높고, 그렇다 보니 무관심하고 무례할 때가 많다. 행복에 관해 연구하는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양질의 사회적 환경이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안타깝게도 한국과 같이 유교적, 수직적,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는 전반적인 행복감이 낮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 편’인 가족에게 정서적 에너지를 다걸기(올인)하는 경향이 너무 강한 것도 안 좋게 작용한다. 서 교수는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 편의점에서 일하는 점원 등에게 양질의 사회적 경험을 나누고 관심을 줄 에너지가 남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어쩌면 한국 사회에 약한 유대 관계의 힘이 더 필요한지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말 걸고, 도와주며, 친절한 것이 행복의 절대 기준은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가 실종된 사회에서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 경험이 유쾌하고 행복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나이, 성별, 지역, 이념 등으로 계속해서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혐오 분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때 서로 친절과 감사를 주고받는 호혜성의 회복이 중요하다. 서 교수는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에 대한 감사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사회의 호혜성 원칙이 깨졌다고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친절을 베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진부할 수 있지만,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기보다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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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 선행에도 상 줘서 모두의 착한 마음 일깨우고 싶어”

    GKL사회공헌재단은 이웃에게 선행과 사랑을 실천한 사람을 선발해 17일 시상식을 열고 ‘이웃사랑실천상’과 ‘사회공헌상’을 시상한다. 올해 처음 시작한 이번 시상에 전국에서 총 93명이 지원해 이웃사랑실천상에 73명이 선발됐고, 이 가운데 공로를 인정받은 7명은 사회공헌상을 함께 받게 됐다. 그동안 여행 관련 사회공헌 활동을 주로 해온 GKL사회공헌재단에서 어쩌다 지역사회에 숨어 있는 천사들에게 관심을 두게 된 걸까.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GKL사회공헌재단에서 정진섭 이사장을 만나 들어봤다. GKL사회공헌재단의 지원 사업은 관광 취약계층 여행 기회 제공, 관광산업 고도화 지원, 사회공동체 건강성 기여 등 3개 축으로 돌아간다. 이 가운데 이웃사랑실천상·사회공헌상과 관련한 것이 사회공동체 건강성 기여다. 정 이사장은 “일반 소외계층을 도와 지역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양심 냉장고’를 떠올렸다”고 했다. 1990년대 MBC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개그맨 이경규가 진행했던 코너로,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 양심적으로 교통 법규에 따라 건널목 정지선을 지켜 차를 멈춘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데서 착안했다. 핵심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세상을 살 만하고 따뜻한 곳으로 만드는 사람을 찾아보자’는 데 있다. 정 이사장은 “많은 사람에게 ‘저 정도로도 상을 받을 수 있나? 나도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영웅처럼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에 상을 줘서 평범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일깨우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이웃사랑실천상은 공용 도로 눈 치우기, 분실물 찾아주기 등 작은 선행을 실천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동아일보에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이웃을 소개하는 ‘따만사(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기사도 영감을 줬다. 정 이사장은 “‘따만사’에서는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남을 돕는 데 힘쓰는 사람들이 많이 소개된다”며 “우리 또한 이렇게 숨어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을 찾아 명예를 높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GKL사회공헌재단은 2014년 설립된 이후 관광 취약계층 지원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다문화 가정, 장애인, 한부모 가정, 탈북민, 여성 이주 노동자, 고려인 등 관광 기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모두의 행복 여행’ ‘한민족 여행 테라피’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일례로 관광이 어려운 시각 장애인을 위해 전남 담양군과 함께 대나무숲을 후각, 촉각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 밖에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지역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관광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해외 지원 사업을 없애고, 국내 지원 사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도 큰 변화다. 돈이 많이 드는 해외 사업을 정리하니 이웃사랑실천상과 사회공헌상처럼 여러 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정 이사장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지역사회에서 발휘되지 않은 선한 마음을 일깨우기 시작한다면 다른 기업들에서도 사회공헌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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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증권, ‘코퍼레이트 파이낸스 세미나’ 개최

    삼성증권이 국내외 주요 상장·비상장 기업의 재무와 인사 분야 담당자를 대상으로 개최하는 ‘코퍼레이트 파이낸스 세미나(Corporate Finance Seminar)’가 4일 서울 서초구 삼성금융캠퍼스에서 열린다. 세미나는 법인자금 운용 담당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자금 조달 방안, 자산별 운용 전략, 외환시장 동향 등에 대한 특강으로 이뤄진다. 세미나는 분기별로 1회 개최된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2025년 글로벌 자산시장 전망’을 주제로 한 특강을 진행한다. 김은기 삼성증권 글로벌채권팀 수석연구위원과 박주한 채권상품팀장의 ‘2025년 글로벌 경제 및 채권시장 전망’과 ‘법인자금의 채권 운용 전략’ 특강도 마련돼 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시장 제도 변화 및 자금 조달 방안’ 등을 비롯해 2025년 주총을 대비한 주총 트렌드 분석 특강을 준비했다. 그동안 세미나에 참여했던 고객들은 특강을 통해 경제 전망과 자금 운용 전략, 최신 기술 동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세미나 후에는 맞춤형 재무 솔루션에 대한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삼성증권은 주요 상장 법인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하는 ‘CEO·CFO 포럼’과 향후 기업을 이끌어 갈 경영 2세를 위한 ‘넥스트 CEO 포럼’, 스타트업 설립자 대상 ‘파운더스 클럽(Founder’s Club)’까지 전체 법인의 주요 임직원을 대상으로 법인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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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라호텔 바 ‘더 라이브러리’, 아시아 톱 100 선정

    서울신라호텔은 태국 방콕에서 열린 ‘태틀러 베스트 오브 아시아 2024 어워드(Tatler Best of Asia 2024 Award)’에서 ‘더 라이브러리’가 바(Bar) 부문 톱100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태틀러’는 영국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으로, ‘태틀러 아시아’에서는 매년 400명 이상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아시아 지역의 호텔, 레스토랑, 바를 100곳씩 선정해 발표한다. 한국 영업장이 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서울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는 고객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벽난로와 각종 책이 있는 ‘더 라이브러리 바’, 남산 전망과 라이브 음악을 즐기는 ‘라운지 바’,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커뮤널 바’, 프리미엄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더 디스틸러스 라이브러리’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라이브 재즈 공연’과 오감으로 위스키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인 ‘더 디스틸러스 라이브러리’가 태틀러 선정단의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프랑스 관광청이 발표하는 세계적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La Liste)’에 서울신라호텔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4곳이 모두 선정되기도 했다. 한식당 ‘라연’은 한국 레스토랑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톱200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 ‘라 리스트’ 톱200에 오른 이후 6회 연속이다.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 일식당 ‘아리아께’는 6회 연속으로, 중식당 ‘팔선’은 3회 연속으로 톱1000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렸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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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감독해도 너보다 잘하겠다!”…큰소리치고 싶을 때 알아야 할 것들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지난해 미국에서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타고 있던 비행기에서 “여러분, 현재 두 조종사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항공 교통 관제소의 도움을 받아 이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 있는 승객이 있습니까?”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직접 나서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 있을 것 같은지 묻는 조사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성인 2만63명이 답한 결과 이들 중 32%가 ‘자신 있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는 46%가 ‘자신 있다’고 답했다. 남성 절반 정도가 비행기 조종에 자신을 보인 것이다. CNN은 이를 보도하면서 착륙에 필요한 속도 유지, 관제 통신, 교통 규정 준수, 역 추진력 계산 등 복잡한 지식이 필요하기에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여객기를 성공적으로 착륙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응답자 상당수가 비행기 조종이 아닌 자동차 운전쯤으로 쉽게 생각한 걸까. 복잡한 비행기 조종에 대해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면, 그냥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무지로부터 오는 자신감은 우리 생활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나타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안 드는 스포츠팀 감독을 향해 “내가 감독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고 외쳐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주식 초보자가 나름대로 몇 가지 정보를 취합해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해당 분야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으면서 자신이 전문가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 거라고 믿는 어리석은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 뭘 모르는지 모르는 ‘무지에 대한 무지’이런 현상은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의 영향을 받는다. 인지 편향은 여러 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을 모아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기보단,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어림짐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고,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더닝 크루거(Dunning-Kruger) 효과는 인지 편향 가운데 하나다. 데이비드 더닝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와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의 1999년 연구에서 이름을 따왔다. 특정 영역에서 지식, 기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 평가하는 능력도 부족하기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문법이나 맞춤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쓴 문장이 얼마나 틀렸는지 모른 채 글을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물론 남이 쓴 문장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더닝 교수 연구진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참가자 84명을 모집해 문법 시험을 보고, 점수순으로 상위·중상위·중하위·하위 4개 그룹으로 나눴다. 이들에게 실제 점수를 알려주지 않고, 자신이 몇 문제를 맞혔는지, 상위 몇 %에 해당할지 예측해 보라고 했다.그 결과 하위 그룹은 실제 평균 점수가 하위 10%에 해당했지만, 상위 33%에 해당할 거라고 예측하며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반면, 상위 그룹의 평균 점수는 상위 11%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28% 정도에 수준일 거라고 더 낮게 예측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쉬웠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자기 실력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 것이다. ●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연구진은 몇 주 뒤에 상위 그룹과 하위 그룹만 실험실로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를 살펴보고,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일지 다시 예측해 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눈으로 확인하면, 상대적인 내 위치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하위 그룹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보고도 자기 예측 점수를 그대로 유지했다. 오히려 일부는 더 상향 조정했다. 문법 실력이 없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의 답안지를 봐도 뭐가 틀렸고, 뭐가 맞았는지 구분할 수 없어서다. 반면, 상위 그룹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를 보고 자기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닫고, 실제 점수와 비슷하게 자기 예측 점수를 상향 조정했다.연구진은 비슷하게 설계한 또 다른 실험에서 자기 성적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에게 100달러(약 14만 원)를 주겠다고 상금을 걸어봤다. 돈을 걸면 내가 잘했다고 믿고 싶은 욕망이 조금은 줄어들고,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할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런데 돈과 관계없이 하위 그룹은 여전히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짜로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더닝 교수와 저스틴 크루거는 이 논문을 발표한 후에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그노벨상(Ig Novel Prize)을 받았다. 이후에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25년간 이들의 논문을 인용한 횟수는 1만 회가 넘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결과가 과장됐을 수 있다는 반박 연구들도 나오면서 학계에서 논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닝 크루거 효과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는 피식하며 누군가를 떠올릴 만한 단서를 제공해 줬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좁은 지식과 편향된 생각으로 목소리만 큰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으니 말이다.● 지적 겸손 부족하면 ‘셀프 과대평가’ 심해져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 부족할 때도 객관적인 자기 수준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지적 겸손은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하물며 알고 있는 것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지적 겸손함이 부족하면,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대평가하기 쉽다.이고르 그로스먼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202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nature review)에 그동안 진행된 지적 겸손과 관련한 전 세계 연구를 분석한 결과를 게재했다. 해당 연구에서 지적 겸손을 위협하는 3가지 요소로 △자기 지식의 과대평가 △모르는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 △편향된 정보 탐색을 꼽았다. 특히 막연하게 안다고 여기는 지식의 과대평가가 두드러진다. 예일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진행한 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온실효과가 나타나는 이유 또는 헬리콥터가 공중에 떠오르는 원리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자, 상당수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하지만 직접 설명해 보라고 했을 때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무지의 실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막연한 자신감이 앞섰다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비행기 조종 설문조사와 비슷하다.● 나의 부족함을 바라보는 메타인지 키워야다행히도 지적 겸손을 기를 방법이 있다. 단지 지적 겸손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가 증가한다.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성인 140명을 모집해 절반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는 지적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기사를 읽도록 했다. 나머지 그룹에는 이와 반대로 자기 확신의 중요성에 관한 기사를 읽게 했다. 그런 다음 공간 추론 문제를 풀게 한 다음, 틀린 문제를 공부한 뒤 다시 도전할 의향을 물었다.그러자 지적 겸손에 관한 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85%가 공부 후에 재도전하겠다고 답했다. 자기 확신에 관한 기사를 읽은 이들의 64%만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단지 문제 풀기 직전 어떤 기사를 읽었는지에 따라 틀린 문제를 다시 배우려는 태도에 차이가 생긴 것이다.지적 겸손 자체에 대해 알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나의 부족함을 바라보려는 메타인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메타인지란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인지 능력이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자신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능력이 생기면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되면, 더 배워야겠다는 의지로 이어진다.그렇다고 지적인 측면에서 메타인지가 낮다는 것이 지능이 낮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특정 영역에서의 지식이나 기술,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 즉, 누구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착각하며 실수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을 기르면 어떨까. 특히 누군가의 실력을 함부로 비난하기 전에 더닝 크루거 효과와 지적 겸손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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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겹살 받고, 치킨 더블로 가!”면 큰일…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면 안되는 이유[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취업 준비생인 A 씨(23)는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다니려다 급하게 휴학을 결정했다. 당장 취업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그동안 쌓은 스펙도 보잘것없이 느껴지고, 취업 면접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오후 9시만 되면 허기가 몰려 왔다. 처음엔 스트레스 풀이로 매운 떡볶이를 주로 배달해 먹었다. 점점 성에 차지 않아 삼겹살, 치킨, 마라탕, 만두, 피자, 짜장면까지 배달 음식 수가 늘어갔다. 디저트 가게에서 10일 연속으로 티라미수를 배달 시킨적도 있다. 폭식이 습관이 돼버리자 어느새 10kg 가까이 쪘고, 친구들과 약속도 피하게 됐다.‘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우스갯말처럼 심리적으로 지쳐있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나는 때가 있다. 마음을 위로하는 특별한 음식을 뜻하는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기분 전환을 이유로 건강을 해칠 정도로 폭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급격한 체중 증가로 신체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 심리적 고립 문제로도 이어진다. 많이 먹는 자기 모습이 싫어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쉽다. 의지로 멈출 수 없는 폭식,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얼마나 먹을지 자제 못 해반복적 폭식으로 식이 조절에 문제가 있는 경우 급식 및 섭식 장애(Feeding and Eating Disorders)의 하나인 폭식장애에 해당할 수 있다. 폭식장애는 폭식 습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얼마나 먹을지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특징을 보인다. 음식을 자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체중인 경우가 많다.단지 과식이 잦다고 해서 다 폭식장애는 아니다. 음식에 자제력을 잃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진단 기준이 있다. △정상적인 수준보다 음식을 빠른 속도로 먹어 치우고 △속이 불편할 때까지 많은 양을 먹거나 △많이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서 혼자 있을 때 먹고 △배고프지 않아도 먹거나 △먹고 나서는 심한 자책감 또는 자기혐오, 우울감에 빠지는 등 5가지 증상 중에 3개 이상이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이런 증상이 일주일에 1회,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폭식 장애로 진단한다.그렇다고 폭식 장애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체중에 아예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음식을 많이 먹고 나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극단적인 소식을 시도한다. 그렇게 꾹꾹 눌러 식욕을 참다가 어느 순간 배고픔을 못 이기고 자신도 모르게 폭주하고 만다. 그러면 또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 굶어보려다 실패해서 또 폭식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단순 폭식보다 위험한 ‘먹토’폭식 자체도 건강에 해롭지만, 살찌는 게 두려워서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이른바 ‘먹토’는 더욱 몸에 해롭다. 폭식장애 증상은 많이 먹는 데서 그치지만, 이보다 심각한 신경성 폭식증이나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환자들은 폭식으로 인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음식을 토하거나 설사약, 관장약, 이뇨제 등 약물을 사용한다. 또 열량 소모를 위해 혹독한 운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두 질환 역시 급식 및 섭식 장애에 속한다.신경성 폭식증은 폭식 후 죄책감을 덜기 위한 구토, 약물 복용 등 보상 행동이 뒤따른다는 데서 폭식장애와 차이가 있다. 체중 관리에 집착하면서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참다가 갑자기 폭주하는 경우가 많다. 거식증으로 더 많이 알려진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이미 저체중인데도 불구하고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서 음식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거식증이라고 해서 음식을 아예 안 먹는 것은 아니다. 거식증 환자의 절반 정도가 이따금 폭식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마찬가지로 음식을 토하고 약을 먹어 억지로 배출하려고 애쓴다. 폭식증과 거식증 환자 모두 체중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자꾸 억지로 먹은 음식을 토하는 이유도 먹고나면 살찔까 봐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다가도 토하고 나면 불안감이 사라져서다. 잦은 구토는 식도 손상, 위 파열, 위산으로 인한 치아 손상 등 다양한 부작용을 부른다.자신이 실제보다 뚱뚱하다고 믿는 거식증 환자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결론은‘몸’에서 찾는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사랑받으려면 날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마른 연예인들을 추앙하며 다이어트를 ‘평생 숙제’처럼 여기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일에서 실패하면 자신이 뚱뚱한 탓이라고 돌린다. 실패의 원인을 바꾸기 어려운 능력, 성격 등에서 찾는 것보다 바꾸기 쉬운 몸에서 찾는 게 훨씬 충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 우울하고 화날 때, 폭식 ‘경고등’배고플 때만큼 폭식에 위험 신호가 켜지는 순간은 기분이 나쁠 때다. 우울하고, 화나고, 불안하고, 짜증 날 때 음식으로 도망치면 잠시나마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어서다. 노르웨이 베르겐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폭식 증상으로 치료받는 실험참가자 11명과 일반인 12명을 각각 모집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우울한 음악을 들려주며, 최근 겪은 괴로운 일을 떠올리게 해서 일부러 침울한 기분을 유도했다. 그런 뒤 음식, 사람의 신체, 풍경이 나온 3종류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고, 이때 나타나는 심박수 변화와 기분 상태, 음식에 대한 갈망 수준을 검사했다. 그 결과 폭식 증상으로 치료받는 실험 참가자들은 실험 전보다 우울한 기분을 느낀 후에 음식 사진을 볼 때 심박수가 줄어들었다. 심박수가 줄었다는 것은 뭔가에 강하게 집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음식에 대한 갈망 정도도 실험 전보다 훨씬 올라갔다. 연구진은 “기분이 나빠지면 음식을 조절할 수 있는 인지 과정이 약화하고, 음식에 대한 갈망과 집중력은 높아진다”라고 분석했다. 이와 반대로 일반인들은 우울한 기분을 경험한 이후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이 외에도 섭식 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 중에 폭식 증상이 있는 140명을 조사해 봤더니, 만성 분노가 쌓여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표현하지 않고 더 억압하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분노를 올바르게 해소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치우는 데 그 에너지가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식사를 할 때보다 폭식하기 직전에 더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 우울증 등 정서 문제 함께 다뤄야그래서 폭식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식단 관리뿐 아니라 우울, 불안, 분노 등 정서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폭식 행동은 우울증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심리학과 연구팀은 폭식 습관이 있고, 우울증이 있는 14~23세 여성 145명을 모집했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만 우울증 완화를 위한 인지행동치료(CBT)를 실시했다. 인지행동치료는 부정적 정서와 부적응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왜곡된 인지 과정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접근법을 사용한다. 우울증 치료에 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연구진은 인지행동치료를 위해 실험 참가자들을 10명 안팎의 그룹으로 짝지은 다음 서로 친해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우울한 기분을 낳는 비합리적인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그 생각들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고쳐나가는 방법을 공유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치고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나는 완전한 실패자’라고 생각해 우울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이를 바꿔 ‘성적이 내 능력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또는 ‘이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등 좀 더 합리적인 생각으로 대체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식이다. 연구진은 이같은 치료를 총 4주 동안 진행했다.그 결과 우울증을 치료받은 그룹은 치료받지 않은 대조 그룹보다 치료 직후 우울증은 물론 폭식 증상도 함께 개선됐다. 우울한 기분이 나아지자, 폭식 충동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런 효과는 6개월 뒤 추적 조사에서는 효과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폭식 증상은 재발이 그만큼 쉽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그렇기 때문에 식사법 관리는 필수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식사로 배고픈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원푸드 다이어트 등 지나치게 식단을 제한하는 것도 좋지 않다. 배고픔에 지친 상태가 되면 폭식 욕구가 올라왔을때 제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식단 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루 동안 먹은 식사와 간식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고, 먹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당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를 기록한다. 기록을 통해 폭식과 연관된 정서적 패턴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완벽주의, 강박적 성향, 낮은 자존감, 대인관계 문제 등 폭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개인마다 다양할 수 있다. 개인적 특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 전문가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 약물을 복용하는 방법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먹는 것 외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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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퀴벌레 잡아주시면 2만 원 드려요” 하찮은 벌레가 왜 이리 무서울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바퀴벌레 공포증이 있는 직장인 김아영 씨(28·가명)는 집에 방역업체를 수시로 부른다. 어릴 때 얼굴로 바퀴벌레가 날아와 부딪힌 경험 이후로 바퀴벌레만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택배 상자에 바퀴벌레가 숨어 들어올 가능성에 대비해 택배는 무조건 현관문 밖에서 뜯고 내용물만 가지고 들어온다. 자는 동안 바퀴벌레가 입이나 귀에 들어가거나, 온몸에 기어다니는 상상을 하면 끔찍해서 잠이 안 온다. 자취를 시작한 이후 바퀴벌레가 나온 날은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적도 있다.벌레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집에서 벌레가 발견되면 ‘얼음’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기도 한다. 실제로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는 ‘바퀴벌레 잡아주실 분’을 구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보통 출동 1건당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맨손으로 벌레를 때려잡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유난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들에겐 진지한 얘기다. 꼭 벌레뿐 아니라, 새, 쥐, 뱀, 개 등 공포 대상이 다양할 수 있다. 특정 상황에 놓이는 것을 무서워하는 고소공포증이나 폐소공포증 등도 마찬가지다. 피해 다니면 그럭저럭 살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해 일상생활이 불편하거나, 직업적 방해를 받는 정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특정 대상·상황에 비합리적 공포 느껴특정 대상 또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과장되고 비합리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을 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이라고 한다. 공포 대상이나 상황을 무조건 피하려고 하고,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 물론, 이들도 자신의 두려움이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사람마다 특정공포증이 생긴 이유가 다르기에 두려움의 대상과 상황도 전부 다르다. 원래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이 각인되면서 두려움을 ‘학습’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김 씨가 어렸을 때 날아다니는 바퀴벌레가 얼굴에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바퀴벌레=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대상’이라고 학습한 것과 같다. 또 누군가가 특정 대상을 두려워하고, 피해 다니는 것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공포증이 생기기도 한다. 바퀴벌레 공포증이 있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경우 그 자녀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이때도 ‘바퀴벌레=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대상’이라는 학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특별한 경험이 없더라도 원래 공포를 잘 느끼는 기질을 타고났을 수도 있다. 특정공포증은 공포의 대상과 상황에 따라 몇 개의 하위유형으로 나뉜다. 엘리베이터나 비행기, 밀폐된 공간(폐소공포증)을 무서워하는 상황형이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는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고소공포증), 천둥·번개를 두려워하는 자연환경형, 피나 주사, 상처를 무서워하는 혈액-주사-상처형, 뱀이나 새, 벌레를 두려워하는 동물형 순으로 많다. 두 가지 유형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특정공포증의 유형·동물형뱀, 곤충, 박쥐, 새, 쥐, 벌레, 고양이, 개, 거미·자연환경형천둥, 번개, 폭풍, 물(수영장·호수 등), 높은 곳·상황형비행기, 엘리베이터, 지하철, 좁고 밀폐되거나 어두운 공간·혈액-주사-상처형혈액, 바늘, 칼 등 날카로운 물건, 치과, 의사●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특정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공포 대상과 맞닥뜨리거나 특정 상황에 놓이면, 끔찍한 해를 당할 것이라는 상상 때문에 강렬한 두려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동물에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개나 쥐한테 물리거나, 새 또는 바퀴벌레에게 공격받는 상상을 한다. 또 비행기나 엘리베이터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타고 있던 도중 공중에서 추락하는 상상을 하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혼절해 균형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두려워한다.그렇다고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무서워한다고 해서 전부 공포증 진단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정 대상, 상황에 노출됐을 때 극렬한 두려움을 느껴 도망치려고 하고, 이런 행동이 6개월 이상 지속돼 사회적 활동이 제약되거나 직업에 방해가 될 때 진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벌레가 무서워 야외 활동을 극도로 꺼리거나, 비행기를 타지 못해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못 가는 경우가 해당한다.특정공포증의 평생 유병률은 10~11%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은 이보다 낮은 5~6% 정도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특정공포증 증상을 겪는 사람은 많지만, 적극적으로 진단받고 치료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여성이 남성보다 2배 많이 경험한다.● 점진적으로 서서히 노출하면 공포 완화특정공포증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행동치료다. 이 가운데 노출 치료(exposure therapy)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치료 기법의 하나다. 두려운 대상이나 상황에 노출되는 경험을 통해 상상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원리다. 노출 치료는 한 번에 강한 자극과 직면하는 홍수법(flooding)과 단계별로 서서히 노출 강도를 높여가는 점진적 노출법이 있다. 때에 따라 실제 상황에 노출하는 방법과 상상으로 노출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호주 그리피스대 응용심리학과 연구팀은 거미 공포증이 있는 성인 46명을 모집해 점진적 노출법을 활용해 공포증 치료를 시도했다. 이들에게 멀리서 거미를 보여주기 시작해 점차 강도를 올려 마지막 단계에서는 어깨에 올리는 것까지 시도했다. 물론 참가자가 원할 때 언제든 치료를 중단할 수 있었다. 총 16단계로 잘게 쪼갠 노출 방법은 다음과 같다.1. 거미에서 3m 떨어진 곳에 선다.2. 거미에서 2m 떨어진 곳에 선다.3. 거미에서 1m 떨어진 곳에 선다.4. 닫혀 있는 거미 우리에 손을 얹는다.5. 거미 우리에 손을 얹고 얼굴을 50cm 내로 가까이한다.6. 거미 우리 문을 열고 거미를 본다.7. 막대기로 거미를 조심스럽게 건드린다.8. 권투 글러브를 끼고 거미를 만진다.9. 권투 글러브 위에 거미를 올린다.10. 라텍스 장갑을 끼고 거미를 만진다.11. 라텍스 장갑 위에 거미를 올린다.12. 맨손 검지로 거미를 만진다.13. 맨손 위에 거미를 올린다.14. 옷 입은 팔 위에 거미를 올린다.15. 맨살이 드러난 팔에 거미를 올린다.16. 맨살이 드러난 어깨에 거미를 올린다.출처: 행동치료 및 실험 정신의학(Journal of Behavior Therapy and Experimental Psychiatry)연구진은 위 치료를 진행하기 전에 실험참가자를 A, B, C 세 그룹으로 나눴다. 1단계에서 16단계에 이르기까지 A, B그룹은 노출 치료를 한 장소(예: 심리 치료실)에서만 진행했다. 반면, C그룹은 서로 다른 세 장소(예: 심리 치료실, 욕실, 야외 테라스)를 옮겨 다녔다. 치료 결과 1명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가 노출 치료를 통해 16단계까지 성공했다. 치료가 끝난 직후 이들이 거미를 대했을 때 느끼는 주관적 고통 수준, 심장박동, 도망치고 싶은 정도를 검사했더니, 세 그룹 모두 치료 전보다 지표들이 월등히 완화됐다. ● 장소 바꿔가며 시도해야 효과그러나 노출 치료의 즉각적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꽤 많다. 치료실을 나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공포 대상과 만나면, 다시 얼어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그래서 연구진은 치료받을 때부터 장소를 바꿔가며 노출을 진행하면 공포가 덜 재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C그룹의 치료를 서로 다른 3곳에서 진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상대로 C그룹에서 치료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진은 치료 1주와 4주 뒤에 이들을 불러서 거미 공포증을 다시 검사했다. 조건별로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A, B, C 그룹에 각각 다른 조건을 할당했다.·A그룹: 한 장소에서 치료받고, 같은 장소에서 공포증 후속 검사·B그룹: 한 장소에서 치료받고, 새로운 두 장소에서 공포증 후속 검사·C그룹: 세 장소에서 치료받고, 새로운 두 장소에서 공포증 후속 검사한 장소에서만 치료받은 A그룹은 치료받은 같은 장소에서 거미 공포증 수준을 검사했다. 역시 한 장소에서만 치료받았던 B그룹은 이번에는 낯선 장소 두 곳에서 거미 공포증 검사를 받았다. 장소 세 곳을 바꿔가며 치료받은 C 그룹도 낯선 장소 두 곳에서 후속 검사를 했다.검사 결과 치료 효과가 가장 잘 유지된 그룹은 C그룹이었다. 애초부터 치료를 다양한 환경에서 진행했기에 추후 다른 상황에서 거미를 보더라도 예전보단 훨씬 덜 무서워했다. 반면, 가장 치료 효과가 낮게 나타난 그룹은 B그룹이었다. 치료실 외의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거미를 보자, 공포감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A그룹은 치료 효과가 잘 유지되긴 했지만, 만약 B그룹처럼 장소를 바꿔 후속 검사를 했다면, 그 효과가 줄어들었을 것이다.연구진은 “다양한 맥락에서 거미를 접한 사람들은 거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데다, 다루는 법도 알게 됐다”며 “치료 장소를 다양화했더니, 공포를 이겨내는 경험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일반화가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즉, 두려운 대상과 상황에 단계적으로 조금씩 수위를 높여 노출하되, 장소를 다양하게 해야 효과가 오래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자 시도해 봐도 좋겠지만, 두려움이 심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행동치료 전문가와 함께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외에도 특정공포증이 없는 다른 사람이 공포 대상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을 보면서 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다른 사람이 대상을 다루는 법을 관찰 학습해 공포증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또 공포 반응으로 인해 각성된 교감신경계의 활성화 정도를 낮추기 위한 심호흡 등 이완훈련도 치료 방법의 하나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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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명 암인 것 같은데…” 자체 진단하며 병에 집착, 없는 병 만드는 불안이 문제[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40대 주부 A 씨는 몇 달째 자신이 갑상샘암에 걸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턱 밑에서 미세한 통증이 느껴지면서부터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갑상샘암 증상과 가장 비슷해 보였다. “암이 확실해….” 그때부터 A 씨는 마음속으로 자체 암 선고를 내렸다. 그런데 초음파나 혈액 검사는 정상이었다. 그럴리 없다는 생각에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구강내과, 한의원 등을 돌았지만 여전히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배와 옆구리 통증이 있었던 작년에는 대장암, 췌장암, 신장암 등을 차례로 의심하며 괴로워했다. A 씨는 “가족들도 공감해 주지 못하고, 병원도 못 믿겠다”며 “밤새 인터넷 검색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다”고 토로했다.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아프면 마음도 괴롭다.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아 조바심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각종 검사 등 충분한 의학적 조치를 취하는 것도 당연하다.하지만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 걱정이 과도하다면 또 다른 문제다. 갖가지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와도 미세한 증상에 집착하며 ‘병원 쇼핑’을 다니는 경우가 그렇다. 자신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우울해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건강한데도 건강 때문에 불안하다면,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의사가 병명을 또 못 찾았네” 불신심리적 원인으로 다양한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신체 증상 및 관련 장애(Somatic Symptom and Related Disorders)라고 하는데, 건강염려증(질병불안장애)도 이 가운데 하나다. 작은 증상만으로 자신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집착하고,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크게 아팠거나, 주변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건강염려증 증상은?·건강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질병을 두려워한다.·몸 어딘가에 심각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몸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자주 알아차린다.·여러 가지 통증 때문에 괴로워한다.·사람들이 자신의 질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의사가 건강에 대해 ‘걱정할 게 없다’고 말해도 믿기 어렵다.·대중매체나 아는 사람을 통해 어떤 병에 대해 알게 되면 그 병에 걸릴까 봐 걱정된다.자료: 건강염려증 척도(Whitely Index·WI) 이들은 작은 증상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특정 질병명에 꽂혀 여러 병원을 드나든다. 그렇다고 막상 의사가 문제가 없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유튜브, 블로그, TV 건강 프로그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건강 정보를 찾아보면서 본인이 자체 진단한 질병명을 ‘연구’하는데 몰두한다. 민간요법, 건강보조식품을 과신하는 경우도 많다. 아예 반대로 병원을 피하는 유형도 있다. 진짜 심각한 질환이 발견될까 봐 무서워서다. 건강에 대해 걱정한다고 전부 건강염려증 환자는 아니다. 정식 진단을 받으려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집착 △신체적 증상이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그 정도가 경미 △계속해서 두려워하는 질병이 바뀜 △건강에 대한 불안이 높음 △질병 집착이 6개월 이상 지속 △과도하게 병원을 찾거나, 아예 가지 않는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건강염려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만3972명이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50, 60대였다. 건강염려증 증상은 있지만,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병원 방문 환자 중 4~9% 정도가 건강염려증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감각 증폭해 과도하게 해석건강염려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신체감각을 증폭해서 지각한다. 두통, 기침, 피로, 심장 두근거림 등 흔히 나타나는 증상도 심각한 질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면 더 아픈 것 같고, 진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한다.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도 문제다. 집요한 검색으로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정보만 끌어모은다. 특정 질병이 자신의 증상과 일치하는 것만 기억하고, 불일치하는 내용은 무시한다. 그러다 보면 암이나 뇌경색, 간경화 등 왜곡된 해석을 내놓게 된다.사소한 일이 비합리적으로 과장돼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사고도 작용한다. 기침이 나면 폐암부터 떠올리는 식이다. 이에 더해 ‘건강=아픈 곳이 단 한 곳도 없는 상태’라는 비합리적 기준이 있어 작은 증상에도 건강이 크게 상했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상실감, 버림받은 느낌이 원인?이 외에도 건강염려증의 원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몸이 아프면 주변의 애정과 관심을 얻고, 고통스러운 의무와 책임은 피하는 반복적 경험이 건강 집착을 키울 수 있다. 자연스럽게 원하는 바를 이루기 쉬운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꾀병이 아니라, 진짜 아프다고 느끼기에 이 모든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건강염려증이 과거에 상처받고, 실망하고, 버림받은 경험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기도 한다. 이때 상실감이나 분노, 자기 비하 등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직접 느끼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우니 대신 몸이 아프다고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현대 이상심리학’에서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보다는 신체적 이상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견딜 만하기 때문에 신체적 건강에 집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건강 때문에 만성 스트레스…오히려 수명 짧아질병에 대한 집착은 만성 스트레스로 이어져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 스웨덴 카롤리스카 정신의학 연구센터의 데이비드 마타익스-콜스 임상 신경과학부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건강염려증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과 비교해 사망률이 84%나 높았다. 연구팀이 1997년~2020년 사이 건강염려증을 진단받은 환자 4129명과 일반인 4만1290명의 사망 원인을 추적한 결과다. 건강염려증 환자는 특히 순환계, 호흡계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4.14배나 높았다. 연구진은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기능 장애, 만성 염증, 알코올이나 약물 남용, 진료 회피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높은 자살률은 몸과 마음에 대한 적절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 정작 건강에 진짜로 중요한 운동, 건강한 음식 먹기 등 기본적인 것을 놓아버리는 것도 문제다.● 어떻게 완화할까?건강염려증을 완화하려면, 아픈 원인이 100% 신체에 있다기보다 심리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게 관건이다. ·‘폭풍 검색’은 그만의학 정보를 찾아보면서 불안감이 심해지면 통증이 더 크게 느껴지고, 통증이 커지면 불안감도 커진다. 그러다 보면 다른 심각한 질병도 다 나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도한 의학 정보 검색은 불안감만 높일 뿐이다.·객관적으로 증상 살펴보기의심되는 질병명과 내 증상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객관적으로 다시 따져보면 도움 된다. 예를 들어 복통으로 인한 췌장암이 의심된다면, 췌장암 증상 중에 나에게 나타나지 않은 증상(황달, 체중 감소 등)은 무엇인지 따져본다. 편향된 관점을 벗어나 현실적 해석을 시도해 보자. ·의료진에게 자세한 설명 듣기짧은 진료 시간에 간략한 설명을 듣고 오면 오히려 불신과 의심이 증가할 수 있다. 기왕 병원을 찾았다면, 증상의 속성과 의심되는 질병과의 관련성에 대해 최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추후 병원 방문 횟수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도움 청하기질병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심리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도 몸에 문제가 없다면,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주변에서 꾀병이라고 오해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심해질 수 있으니, 가족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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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 갈까 말까…오늘도 ‘갓생’ 다짐뿐인 당신에게 필요한 건 무엇?[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아 왠지 몸이 아픈 것 같은데….”직장인 이진수 씨(40·가명)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극심한 갈등에 시달린다. 오후 6시만 되면 ‘주 3회 운동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희미해진다. 괜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고, 더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운동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매달 꼬박꼬박 알람을 맞춰놓고 구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 회원 등록 기간에 맞춰 온라인 등록을 한다. 기존 회원 등록 기간을 놓치면 제한 인원이 차버려 운동을 다닐 수 없어서다. 사실 지난달에는 딱 한 번밖에 못 갔지만, 이달도 어김없이 회원 등록을 완료했다.누구나 한 번쯤 운동 앞에서 주저앉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의지와 실천은 한 세트가 아니다. 새해 다짐 단골 레퍼토리인 다이어트, 영어 공부, 독서 등이 몇 년째 지켜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말로만 그친 허튼 다짐은 얼마나 많단 말인가. 부지런하고 모범적으로 사는 ‘갓생(God+生, 신 같은 삶)’이란 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의지는 충만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왜일까. 운동이나 공부같이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은 일에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도전해 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나도 이번만은 ‘파워 J’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꾸만 패배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전략을 짜야 한다. 비교적 쉽게 시도해 볼 수 있으면서 효과가 좋은 방법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 세우기다. 헐렁한 계획보다 깨알같이 치밀한 계획이 있을 때 생각보다 성공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이때 이른바 ‘파워 J’가 필요하다. MBTI 성격유형 검사에서 판단(Judging)형을 의미하는 J 성향은 얼마나 계획적이고 질서정연한가의 수준을 나타낸다. 미리 대처하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성격일수록 J 성향 점수가 높다. 하기 싫은 일을 습관으로 만들 때 ‘나는 이번만큼은 강한 J 성향이다!’라고 마음먹으면 도움이 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구체적 계획 유무 여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목표 달성과 자기 통제에 관해 연구를 많이 한 피터 골비처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s)라고 명명했다. 쉽게 말해 목표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천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예를 들어 ‘저녁때 운동하겠다’보다는 ‘월요일 퇴근하고 오후 7시가 되면(언제), 회사 옆 A 헬스장에 가서(어디서) 30분 동안 러닝머신에서 뛰겠다(어떻게)’는 구체적인 계획이 훨씬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받겠다’보다는 ‘매일 오전 8시 출근할 때, 차 안에서 사과 한 알을 먹겠다’ ‘이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B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겠다’로 바꾸면 좋다.● ‘모든 것이 나의 통제 속에 있다’는 만족감계획 세울 시간에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실행 의도와 관련한 세계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성공률은 확연히 다르다.특히 길들이기 어려운 습관인 운동을 주제로 진행한 연구를 보자. 영국 베스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48명을 A, B, C 그룹으로 나눴다. 이들 중 A, B 그룹에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 심장질환의 치명적인 위험과 운동의 예방 효과에 대한 교육 자료를 나눠줬다. 운동 의지를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그리고 B 그룹에만 실행 의도에 관한 추가 교육을 했다. ‘운동하겠다고 다짐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실행 의도를 구체화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운동할 건지 바로 계획을 세워보라고 했다. C 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런 교육도 하지 않았다.그다음 주에 실제로 하루에 2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몇 차례 했는지 조사했다. 운동하겠다는 의지가 커진 상태에서 구체적 계획을 세운 B 그룹 학생들이 가장 운동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B 그룹의 91%가 실제로 운동했고, 이들 중 97%는 애초 계획대로 움직였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을수록 ‘내가 계획대로 상황을 통제한다’는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는 행동으로 옮기는 데 좋은 영향을 준다”고 봤다.반면 운동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A 그룹은 35%만 운동했다. 아무 교육을 받지 않은 C 그룹(38%)과 비슷했다. 이들 중 운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바빠서’ ‘잊어버려서’라고 답했다. 특정 시간과 장소 등을 못 박지 않아 운동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기억에서 사라진 탓이다.이 외에도 구체적 계획의 힘을 확인한 연구 결과는 많다. 연구진은 입원 치료를 받다 퇴원을 앞둔 약물 중독 환자들에게 퇴원 전까지 구직활동에 필요한 이력서를 쓰라고 요청했다. 이들 가운데 이력서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쓸 건지 계획을 세운 환자의 80%가 정말로 이력서를 쓰고 병원 문을 나섰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은 환자들은 퇴원할 때까지 아무도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보고서 제출하기, 재활운동 하기, 숙제하기, 가족과 갈등 해결하기 같은 주제에 관한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실제 행동으로 옮긴 비율이 훨씬 높았다.● “뭘 실패했지?”… 스스로 숙제 검사계획을 행동에 옮겼는지 자신이 모니터링하는 것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스스로 숙제 검사하듯 수시로 상황을 점검하면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음에 할 일을 상기할 수 있어서다.다이어트처럼 식사, 운동, 체중 변화 등 두루 살펴야 하는 일이 많을 때 자신이 기록하며 관찰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미 오하이오주 볼링그린주립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살을 빼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비만 성인 40명을 모집해 21주 동안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식이요법 교육과 운동 처방에 더해 참가자들에게 매일 먹은 음식과 식사량, 운동시간, 체중 등을 적는 ‘다이어트 일기’를 쓰도록 했다.21주 뒤에 살펴보니, 놀랍게도 다이어트 성패를 가른 기준은 얼마나 일기를 꾸준히 썼는지였다. 다이어트 일기를 거의 매일 쓴 사람들은 체중이 평균 10.5kg 줄었지만 일기를 쓰다 말다 한 사람들은 이에 절반 수준인 평균 5.5kg만 감량할 수 있었다. 또 일기를 매일 쓴 사람들은 일주일 평균 3시간 운동했지만, 꾸준히 쓰지 않은 사람들은 1시간 30분 정도만 운동했다.연구진은 “모니터링을 열심히 한 사람들은 무엇이 체중 감량에 걸림돌이 되는지 알게 되면서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 조절 필요성을 더 잘 알게 됐고, 다이어트를 상대적으로 덜 어렵게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상이 기다리면, 반복이 쉬워진다공부나 운동을 하고 난 뒤 보상을 주면, 하기 싫은 일의 문턱을 조금 낮춰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외적 보상과 주관적으로 느끼는 내적 보상이 동시에 따를 때 효과가 더 크다. 외적 보상은 물질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 칭찬 같은 요소들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칭찬은 혼자 있을 땐 보상으로 받기 쉽지 않으므로,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 장치를 만들면 도움 된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 30분을 채울 때마다 ‘해외여행 가기’라고 이름 붙인 통장에 일정 금액씩 저축하는 것은 외적 보상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때그때 원하는 걸 사거나, 먹는 방법도 있다.내적 보상은 성취감, 즐거움, 뿌듯함 같은 것이다. 미 뉴멕시코주립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주 3~6회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 266명을 대상으로 어쩌다 운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조사해 봤더니, 많은 이들이 외적 보상보다는 운동 후 쾌감이나 성취감같이 주관적인 만족감을 꼽았다. 행동 후에 느껴지는 내적 보상이 무엇인지 찾아내 인식해 보려고 연습하면 더 몰입해서 즐길 수 있다.● 할까말까 고민할 시간을 주지 말 것실천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저항 요소를 미리 제거해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것도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헬스장은 무조건 집과 가까워야 한다. 거리가 멀거나 가는 길이 복잡하면 딴 길로 새거나 아예 포기하기 쉽다. 운동복이나 신발을 담은 운동 가방을 현관에 미리 싸놓는 것도 방법이다. 준비 과정을 최대한 단축해서 망설일 틈을 주면 안 된다. 여러 습관 연구를 진행한 탁진국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명예교수(지아미라이프코칭센터 대표 코치)는 “새로운 행동이 습관으로 정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저항 요인이 뭔지 파악해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초기에 성공 경험을 몇 차례 쌓고 나면, 계속 반복하도록 만드는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이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한 번 쓱 밀면 자동결제가 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원리와도 같다. 유통 기업들은 결제 과정이 복잡하면 소비자가 물건을 사려다가도 귀찮아서 포기할 수 있으니, 최대한 쉽게 돈을 쓸 수 있도록 장애물을 없애 놓는다. 물론, 이런 원리를 거꾸로 뒤집어 안 좋은 습관을 고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최대한 장애물을 많이 설치하고 번거롭게 만들어서 도중에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관련 기사: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일정 시간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갓생’ 문턱은 조금 낮출 수 있을지라도 왕도는 없다는 의미다. 탁 교수는 “일부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음식 먹기, 물 마시기, 운동하기 같은 습관이 형성되는 데 평균 66일 걸렸다”며 “좋은 습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주 이상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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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도 공부도 ‘갓생’ 다짐만 무한 반복… 벗어나고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직장인 이진수(가명·40) 씨는 구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 회원 등록 기간에 매달 알람을 맞춰놓고 꼬박꼬박 온라인으로 등록한다. 기존 회원 등록 기간을 놓치면 제한 인원이 차버려 운동을 다닐 수 없어서다. 매달 열심히 등록하고 돈까지 냈지만 실제 운동하러 가는 날은 한 달에 많아야 2, 3일 정도다. 퇴근이 늦어서, 피곤해서, 약속이 있어서…. 운동하러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난달에도 한 번밖에 못 갔지만 이달도 어김없이 회원 등록을 완료했다. 누구나 한 번쯤 운동 앞에서 주저앉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의지와 실천은 한 세트가 아니다. 새해 다짐 단골 레퍼토리인 다이어트, 영어 공부, 독서 등이 몇 년째 지켜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말로만 그친 허튼 다짐은 얼마나 많은가. 부지런하고 모범적으로 사는 ‘갓생(God+生·신 같은 삶)’이란 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의지는 충만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왜일까. 운동이나 공부같이, 하고 싶지만 하기 싫은 일에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도전할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파워 J’가 필요한 순간 헐렁한 계획보다 깨알같이 치밀한 계획이 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이른바 ‘파워 J’가 필요하다. MBTI 성격 유형 검사에서 판단(Judging)형을 의미하는 J 성향은 얼마나 계획적이고 질서 정연한가의 수준을 나타낸다. 미리 대처하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성격일수록 J 성향 점수가 높다. 하기 싫은 일을 습관으로 만들 때 ‘나는 이번만큼은 강한 J 성향이다!’라고 마음먹으면 도움이 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구체적 계획 유무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목표 달성과 자기 통제에 관해 연구를 많이 한 피터 골비처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s)라고 명명했다. 쉽게 말해 목표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천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녁때 운동하겠다’보다는 ‘월요일 퇴근하고 오후 7시가 되면(언제), 회사 옆 A헬스장에 가서(어디서), 30분 동안 러닝머신에서 뛰겠다(어떻게)’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훨씬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받겠다’보다는 ‘매일 오전 8시 출근할 때, 차 안에서 사과 한 알을 먹겠다’ ‘이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B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겠다’로 바꾸면 좋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계획 세울 시간에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실행 의도와 관련한 세계 많은 연구에 따르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성공률은 확연히 다르다. 특히 길들이기 어려운 습관인 운동을 주제로 진행한 연구를 보자. 영국 배스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48명을 A, B, C 세 그룹으로 나눴다. 이들 중 A, B그룹에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 심장질환의 치명적인 위험과 운동의 예방 효과에 대한 교육 자료를 나눠줬다. 운동 의지를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B그룹에만 실행 의도에 관한 추가 교육을 했다. ‘운동하겠다고 다짐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실행 의도를 구체화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운동할 건지 바로 계획을 세워 보라고 했다. C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런 교육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주에 실제로 하루에 2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몇 차례 했는지 조사했다. 운동하겠다는 의지가 커진 상태에서 구체적 계획을 세운 B그룹 학생들이 가장 운동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B그룹의 91%가 실제로 운동했고, 이들 중 97%는 애초 계획대로 움직였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을수록 ‘내가 계획대로 상황을 통제한다’는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는 행동으로 옮기는 데 좋은 영향을 준다”고 봤다. 반면 운동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A그룹은 35%만 운동했다. 아무 교육을 받지 않은 C그룹(38%)과 비슷했다. 이들 중 운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바빠서’ ‘잊어버려서’라고 답했다. 특정 시간과 장소 등을 못 박지 않아 운동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기억에서 사라진 탓이다. 이 외에도 구체적 계획의 힘을 확인한 연구 결과는 많다. 연구진은 입원 치료를 받다 퇴원을 앞둔 약물 중독 환자들에게 퇴원 전까지 구직활동에 필요한 이력서를 쓰라고 요청했다. 이들 가운데 이력서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쓸 건지 계획을 세운 환자의 80%가 정말로 이력서를 쓰고 병원 문을 나섰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은 환자들은 퇴원할 때까지 아무도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보고서 제출하기, 재활운동 하기, 숙제하기, 가족과 갈등 해결하기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보다 실제 행동으로 옮긴 비율이 훨씬 높았다.● “뭘 실패했지?”… 스스로 숙제 검사 계획을 행동에 옮겼는지 자신이 모니터링하는 것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스스로 숙제 검사하듯 수시로 상황을 점검하면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음 할 일을 상기할 수 있어서다. 다이어트처럼 식사, 운동, 체중 변화 등 두루 살펴야 하는 일이 많을 때 자신이 기록하며 관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미 오하이오주 볼링그린주립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살을 빼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비만 성인 40명을 모집해 21주 동안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식이요법 교육과 운동 처방에 더해 참가자들에게 매일 먹은 음식과 식사량, 운동 시간, 체중 등을 적는 ‘다이어트 일기’를 쓰도록 했다. 21주 뒤에 살펴보니, 놀랍게도 다이어트 성패를 가른 기준은 얼마나 일기를 꾸준히 썼는지였다. 다이어트 일기를 거의 매일 쓴 사람들은 체중이 평균 10.5kg 줄었지만 일기를 쓰다 말다 한 사람들은 절반 수준인 평균 5.5kg만 감량할 수 있었다. 또 일기를 매일 쓴 사람들은 일주일 평균 3시간 운동했지만 꾸준히 쓰지 않은 사람들은 1시간 30분 정도만 운동했다. 연구진은 “모니터링을 열심히 한 사람들은 무엇이 체중 감량에 걸림돌이 되는지 알게 되면서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 조절 필요성을 더 잘 알게 됐고, 다이어트를 상대적으로 덜 어렵게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상은 높이고, 저항은 줄이고 공부나 운동을 하고 난 뒤 보상을 주면 하기 싫은 일의 문턱을 조금 낮출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외적 보상과 주관적으로 느끼는 내적 보상이 동시에 따를 때 효과가 더 크다. 외적 보상은 물질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 칭찬 같은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 30분을 채울 때마다 ‘해외여행 가기’라고 이름 붙인 통장에 일정 금액씩 저축하는 것은 외적 보상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때그때 원하는 걸 사거나, 먹는 방법도 있다. 내적 보상은 성취감, 즐거움, 뿌듯함 같은 것이다. 미 뉴멕시코주립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주 3∼6회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 266명을 대상으로 어쩌다 운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됐는지 조사해 봤더니, 많은 이들이 외적 보상보다는 운동 후 쾌감이나 성취감같이 주관적인 만족감을 꼽았다. 행동 후에 느껴지는 내적 보상이 무엇인지 찾아내 인식해 보려고 연습하면 더 몰입해서 즐길 수 있다. 실천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저항 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것도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헬스장은 무조건 집과 가까워야 한다. 운동복이나 신발을 담은 운동가방을 현관에 미리 싸놓는 것도 방법이다. 거리가 멀거나 준비 과정이 길면 마음의 문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일정 시간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갓생’ 문턱은 조금 낮출 수 있을지라도 왕도는 없다는 의미다. 여러 습관 연구를 진행한 탁진국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명예교수(지아미라이프코칭센터 대표 코치)는 “일부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음식 먹기, 물 마시기, 운동하기 같은 습관이 형성되는 데 평균 66일 걸렸다”며 “좋은 습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주 이상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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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일찍자기 실패” 단지 알고리즘 탓만은 아니다…나쁜 습관 고치는 방법[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습관의 심리학“10분만 보다 자야지.”자기 전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각종 사건 사고 기사부터 연예인 가십, 지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데이트 소식까지 확인할 게 많다. 아뿔싸! 무심코 쇼츠 영상을 누르고 말았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 준비된 유혹적인 알고리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10분은 너무 짧다. 20분만 더, 30분만 더…. 어느새 눈이 말똥말똥해져 버리고 말았다. ‘꿀잠’은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내일도 피곤한 하루가 예약됐다.할까말까 고민하게 되는 유혹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온다. 식사 후 ‘단짠단짠’의 유혹 앞에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음료에 눈이 간다.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도 보인다. 출출한 밤 치킨과 라면의 야식 유혹도 치명적이다. 금주·금연 실패 사례는 우리 주변에 셀 수 없이 많다. 왜 몸과 마음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은 습관들은 하나같이 즐거울까.안 좋은 줄 알면서도 자꾸 반복하는 나쁜 습관들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기에 상당히 중독적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유익하고 건설적인 행동만 하며 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의지와 관계없이 습관에 끌려다니며 수면 부족, 체중 증가 등 부작용에 힘겨워한다면 얘기가 좀 다르다. 의지박약의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끊어버리고 싶은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살펴보자.● 참는 데도 에너지가 쓰인다마음먹은 대로 한순간에 딱 끊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쁜 습관을 없애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미국 듀크대 연구진에 따르면, 하루 일상 행동의 약 45% 정도는 습관적으로 일어난다. 자잘한 일에 들어가는 뇌의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주의를 많이 쏟지 않도록 자동화된 덕분이다. 그래서 습관을 깨기 위해서는 원래 쓰지 않던 에너지를 들이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심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의지력과 습관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그런데 아직도 인간의 의지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다. 이 가운데 의지력 연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의지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보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의지력과 관련해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자기 통제(self control)와 관련한 의지력을 많이 쓸수록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돼 다른 일에 쓸 힘이 모자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우마이스터 교수가 의지력이 유한하다고 주장한 여러 연구 중에 초콜릿과 무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대학생 67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두 그룹 학생만 갓 구운 초콜릿 쿠키 냄새로 가득한 실험실로 초대했다. 사전에 한 끼를 굶고 오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연구진은 학생들 눈앞에 초콜릿 쿠키와 무가 각각 담긴 접시를 놔뒀다. 그리고 얄궂게도 한 그룹 학생들에게만 쿠키를 먹으라고 했다. 나머지 한 그룹 학생들은 눈앞의 달콤한 쿠키 대신 무의 쓴맛만 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 음식도 없는 공간에 따로 불렀다.그런 다음 종이에서 연필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기하학적 모형을 한 번에 그려 완성하는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 풀이 결과를 살펴보니, 세 그룹 중 무를 먹으며 쿠키를 향한 욕망을 꾹 눌러 참았던 학생들만 문제 풀이 의지가 크게 떨어졌다. 이들은 단 8분 만에 포기해 버렸다. 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19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학생들이 평균 21분을 도전한 것과 비교된다. 문제 풀이 시도 횟수에서도 차이가 났다. 무 그룹 학생은 평균 도전 횟수가 19회에 불과했지만, 초콜릿 그룹은 평균 34회,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그룹은 평균 33회 였다. 연구진은 “무를 먹은 학생들이 쿠키의 유혹을 참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써버려 문제 풀 여력이 없었다”고 봤다.자아 고갈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억지로 참는 의지만으로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 참을 때마다 에너지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마침 에너지가 부족한 날엔 절제에 실패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의지력이란 마치 근육과 같아서 일정 시간에 쓸 수 있는 힘이 한정돼 있다”고 했다.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인간의 의지력을 너무 단순한 구조로 바라봤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자기 의지력을 과신할수록 유혹에 잘 넘어간다는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오히려 ‘내 의지력엔 한계가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도움 된다. 로런 노드그렌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고 ‘나는 유혹에 끄떡없는 사람’이라고 과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배고픔이나 금연 중 흡연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유혹을 잘 견디는 독한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이 실험에서 주목할 점이 또 있다. 쿠키의 존재를 몰랐던 세 번째 그룹 학생들은 쿠키를 먹은 그룹과 비슷한 수준으로 끈기 있게 문제 풀이에 도전했다. 즉, 애초부터 유혹이 없으면 심리적 에너지를 쓸 일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유혹을 잘 참는다기보다 애초부터 참아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빌헬름 호프만 독일 보훔 루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어떤 사람들이 나쁜 유혹에 잘 넘어가는지 살펴봤다. 여기서 나쁜 유혹이란 다이어트나 금연, 금주 다짐 등을 흔드는 상황을 말한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05명을 모집해 일주일 동안 실험용 호출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알람이 울릴 때마다 당시에 가장 유혹적인 욕구는 무엇인지, 잘 참아 냈는지, 어떤 상황에 누구와 있었는지 기록하도록 했다.자료를 분석해 보니 원래 유혹을 잘 참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유혹적인 상황에 놓이면 심하게 갈등했다. 그런데 유혹에 굴복한 횟수가 적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이들은 애초부터 유혹을 느낄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 기회를 원천봉쇄하기유혹을 차단해 놓으면, 갈등을 겪을 일도 없다. 연구진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강인한 통제력을 가졌다기 보단 유혹에 노출되지 않도록 상황을 선택하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예를 들어 이들은 다이어트 중에는 집에 있는 과자를 전부 버리거나, 먹음직스러운 디저트가 전시된 카페에 가지 않는다. 반면,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은 집에 여전히 과자가 널려 있고,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지나가면서 사 먹을까 말까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들은 유혹을 이겨내 보려고 심리적 에너지를 훨씬 많이 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그래서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유혹에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게 훨씬 도움 된다. 의지력은 순간을 잘 모면하는 것뿐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적인 능력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 가게를 멀리 돌아서 가야 하고, 살을 빼려면 퇴근 길에 치킨, 아이스크림 등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가면 안 된다. 또 스마트폰 의존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자주 접속하는 SNS 앱 알림을 끄거나 삭제해 버리면 도움 된다. 침대에 눕기 전 쉽게 손이 닿지 않는 먼 발치에 스마트폰을 두고 오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뭘 원하는가?습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혹을 원천 봉쇄하는 것만큼 추천하는 다른 방법은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핵심은 나쁜 습관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살펴보는 데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는 것이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습관이 ‘신호→반복적 행동→보상’ 순서로 이어진다고 봤다. 특정 환경은 습관을 부르는 신호로 작동하고(예를 들면 ‘밤늦게까지 TV를 본다’), 습관 행동이 따라오면(‘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는다’), 그에 따른 보상(‘일탈감’)을 얻게 된다. 마지막에 보상으로 얻는 것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다.브래드 듀프린 미 서던미시시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원리를 이용해 손톱이 거의 다 없어질 때까지 병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학생을 치료한 과정을 ‘손톱 물어뜯기 치료의 기능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소개했다. 그는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학생이 혼자 있거나 TV를 보며 지루할 때(신호) 손톱을 물어뜯고(반복적 행동), 신체적 자극을 느끼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보상)’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보상은 유지한 채 다른 행동으로 손톱 물어뜯기를 대체해 보기로 했다. 손톱을 물어뜯고 싶을 때마다 얼른 주먹을 꽉 쥐거나 물건을 손에 잡는 습관으로 바꿨더니 손톱을 훨씬 덜 물어뜯게 됐다.자, 그러면 보상은 유지한 채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꿔 보자. 우선 어떤 상황에서 욕구가 올라오는지 신호를 파악하고, 나쁜 습관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게 뭔지 골똘히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워 자기 직전 스마트폰을 보고 싶을 때, 이때 얻는 보상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자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이완되고 싶다거나, 자유 시간을 즐기고 싶은 게 진짜 목적이라면 명상이나 독서, 음악 감상 같은 좋은 습관으로 바꿔 볼 수 있다. 또 점심을 잘 먹고도 오후에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는 습관이 있다면, 이로 인해 잠을 깨고 싶은 건지, 쉬고 싶은 건지, 진짜 배가 고픈 건지 살펴보자. 목적에 따라 바람 쐬기, 커피 마시기 등 뱃살 걱정 없이 대체할 행동이 얼마든지 있다. 진짜 배가 고픈 거라면 건강한 음식으로 바꿔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 그렇다고 꼭 무를 먹을 필요는 없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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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샘 쇼츠-라면 야식… 의지의 문제일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10분만 보다 자야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각종 사건 사고 기사부터 연예인 가십, 지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데이트 소식까지 확인할 게 많다. 아뿔싸! 무심코 쇼츠 영상을 누르고 말았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 준비된 유혹적인 알고리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10분은 너무 짧다. 20분만 더, 30분만 더…. 어느새 눈이 말똥말똥해져 버리고 말았다. ‘꿀잠’은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내일도 피곤한 하루가 예약됐다. 왜 몸과 마음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은 습관들은 하나같이 즐거울까.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식사 후 커피와 함께 생각나는 케이크의 유혹은 다이어트 다짐을 흔들리게 한다. 출출한 밤 치킨과 라면의 야식 유혹도 치명적이다. 금주·금연 실패 사례는 우리 주변에 셀 수 없이 많다.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자꾸 반복하는 나쁜 습관들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기에 고치기 쉽지 않다. 물론 우리가 항상 유익하고 건설적인 행동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다만 의지와 관계없이 습관에 끌려다니며 수면 부족, 체중 증가 등 부작용에 힘겨워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의지박약의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끊어버리고 싶은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살펴보자.● 억지로 참는 데도 에너지가 들어간다 마음먹은 대로 한순간에 딱 끊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쁜 습관을 없애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심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의지력과 습관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그런데 아직도 인간의 의지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다. 이 가운데 의지력 연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의지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보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의지력과 관련해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의지력을 많이 쓸수록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돼 다른 일에 쓸 힘이 모자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우마이스터 교수가 의지력이 유한하다고 주장한 여러 연구 중에 초콜릿과 무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대학생 67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두 그룹 학생만 갓 구운 초콜릿 쿠키 냄새로 가득한 실험실로 초대했다. 사전에 한 끼를 굶고 오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연구진은 학생들 눈앞에 초콜릿 쿠키와 무가 각각 담긴 접시를 놔뒀다. 그리고 얄궂게도 한 그룹 학생들에게만 쿠키를 먹으라고 했다. 나머지 한 그룹 학생들은 눈앞의 달콤한 쿠키 대신 무의 쓴맛만 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 음식도 없는 공간에 따로 불렀다. 그런 다음 종이에서 연필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기하학적 모형을 한 번에 그려 완성하는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 풀이 결과를 살펴보니, 세 그룹 중 무를 먹으며 쿠키를 향한 욕망을 꾹 눌러 참았던 학생들만 문제 풀이 의지가 크게 떨어졌다. 이들은 단 8분 만에 포기해 버렸다. 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19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학생들이 평균 21분을 도전한 것과 비교된다. 연구진은 “무를 먹은 학생들이 쿠키의 유혹을 참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써버려 문제 풀 여력이 없었다”고 봤다. 자아 고갈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억지로 참는 의지만으로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 참을 때마다 에너지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마침 에너지가 부족한 날엔 절제에 실패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의지력이란 마치 근육과 같아서 일정 시간에 쓸 수 있는 힘이 한정돼 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인간의 의지력을 너무 단순한 구조로 바라봤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자기 의지력을 과신할수록 유혹에 잘 넘어간다는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오히려 ‘내 의지력엔 한계가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도움 된다. 로런 노드그렌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고 ‘나는 유혹에 끄떡없는 사람’이라고 과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배고픔이나 금연 중 흡연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길 수 없으면 피해라 이 실험에서 주목할 점이 또 있다. 쿠키의 존재를 몰랐던 세 번째 그룹 학생들은 쿠키를 먹은 그룹과 비슷한 수준으로 끈기 있게 문제 풀이에 도전했다. 즉, 애초부터 유혹이 없으면 심리적 에너지를 쓸 일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유혹을 잘 참는다기보다 애초부터 참아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빌헬름 호프만 독일 보훔 루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어떤 사람들이 나쁜 유혹에 잘 넘어가는지 살펴봤다. 여기서 나쁜 유혹이란 다이어트나 금연, 금주 다짐 등을 흔드는 상황을 말한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05명을 모집해 일주일 동안 실험용 호출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알람이 울릴 때마다 당시에 가장 유혹적인 욕구는 무엇인지, 잘 참아 냈는지, 어떤 상황에 누구와 있었는지 기록하도록 했다. 자료를 분석해 보니 원래 유혹을 잘 참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유혹적인 상황에 놓이면 심하게 갈등했다. 그런데 유혹에 굴복한 횟수가 적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이들은 애초부터 유혹을 느낄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중에는 집에 있는 과자를 전부 버리거나, 먹음직스러운 디저트가 전시된 카페에 가지 않는다. 반면,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은 집에 여전히 과자가 널려 있고,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지나가면서 사 먹을까 말까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들은 유혹을 이겨내 보려고 심리적 에너지를 훨씬 많이 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유혹에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게 훨씬 도움 된다. 의지력은 순간을 잘 모면하는 것뿐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적인 능력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 가게를 멀리 돌아서 가야 하고, 스마트폰 의존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자주 접속하는 SNS 앱 알림을 끄거나 삭제해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습관 바꿔치기의 열쇠 습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혹을 원천 봉쇄하는 것만큼 추천하는 다른 방법은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과연 말만큼 쉬운 일일까. 핵심은 나쁜 습관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살펴보는 데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는 것이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습관이 ‘신호→반복적 행동→보상’ 순서로 이어진다고 봤다. 특정 환경은 습관을 부르는 신호로 작동하고(예를 들면 ‘밤늦게까지 TV를 본다’), 습관 행동이 따라오면(‘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는다’), 그에 따른 보상(‘일탈감’)을 얻게 된다. 마지막에 보상으로 얻는 것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다. 브래드 듀프린 미 서던미시시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원리를 이용해 손톱이 거의 다 없어질 때까지 병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학생을 치료한 과정을 ‘손톱 물어뜯기 치료의 기능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소개했다. 그는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학생이 혼자 있거나 TV를 보며 지루할 때(신호) 손톱을 물어뜯고(반복적 행동), 신체적 자극을 느끼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보상)’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보상은 유지한 채 다른 행동으로 손톱 물어뜯기를 대체해 보기로 했다. 손톱을 물어뜯고 싶을 때마다 얼른 주먹을 꽉 쥐거나 물건을 손에 잡는 습관으로 바꿨더니 손톱을 훨씬 덜 물어뜯게 됐다. 자, 그러면 보상은 유지한 채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꿔 보자. 자기 직전 스마트폰을 보면서 얻는 보상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자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이완되고 싶은 게 진짜 목적이라면 명상이나 독서 같은 건설적인 습관으로 바꿀 수 있다. 또 점심을 잘 먹고도 오후에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는 습관이 있다면, 이로 인해 잠을 깨고 싶은 건지, 쉬고 싶은 건지, 진짜 배가 고픈 건지 살펴보자. 목적에 따라 바람 쐬기, 커피 마시기 등 뱃살 걱정 없이 대체할 행동이 얼마든지 있다. 진짜 배가 고픈 거라면 건강한 음식으로 바꿔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 그렇다고 꼭 무를 먹을 필요는 없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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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 5년 연속 최우수 분석기관 선정

    한국환경공단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전 세계 먹는 물과 수질 분야 검사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제숙련도 평가에서 최우수 분석기관으로 선정됐다고 10일 밝혔다. 먹는 물과 수질 분야의 총 44개 검증 항목에서 모두 ‘만족’ 평가를 받아 5년 연속 최우수 분석기관으로 선정됐다. 세계적인 숙련도 평가 운영기관인 미국 환경자원협회는 환경 분야 기관의 숙련도를 평가하는국제숙련도 시험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 시험을 통해 전 세계 분석기관의 시험능력이 검증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증 대상은 수질, 토양, 대기, 악취 등 다양한 환경 분야가 포함된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올해 2, 3분기에 먹는 물 분야에서 암모니아성질소(NH3-N)와 염소이온(Cl) 등 20개 항목에 대한 시험능력 검증에 참여했다. 또 수질 분야에서는 총질소(T-N) 등 24개 항목에 참가했다.국가 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 관계자는 “이번 평가로 5년 연속 최우수 분석기관으로 선정돼 국제적 수준의 수질분석 기술력을 입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한국인정기구(KOLAS)로부터는 먹는 물, 미생물, 수질오염도, 수처리제, 표준재료시험 등 5개 분야 570항목에 대한 공인 시험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아시아태평양인정기구(APAC) 및 국제시험소인정협의체(ILAC)에 가입된 109개국에서 상호 인정되는 국제 공인 성적서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2019년 물 관련 수질 분석뿐 아니라 수도기자재에 대한 역학시험까지 가능하도록 먹는 물, 표준재료시험 등 8개 분야 173종 329대 장비를 도입하는 노력을 해왔다. 이를 입주 기업의 기술 검증 수행과 기술 개선에 활용하고 있다. 이제원 한국환경공단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 단장은 “미국 환경자원협회가 주관하는 숙련도 평가에서 공단의 측정분석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물 관련 전문 분석기관으로서 정확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물 기업의 연구개발에 고품질의 시험 및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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