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이승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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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승헌 부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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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11-04~2024-12-04
칼럼100%
  • [오늘과 내일/이승헌]한동훈 현상으로 곱씹어보는 법무장관이란 자리

    요새 한국 정치의 ‘핫 피플’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화제성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이재명 이준석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주 대구-대전-울산 연쇄 방문에서 보여준 행보는 한동훈 현상이 얼마 못 갈 것이란 기성 정치권의 예상을 비웃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동훈의 총선 파급력을 놓고 국민의힘 내에서도 “확장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주로 민주당을 상대로 한 대야(對野) 전투력에 기반한 평가였는데 한동훈이 유권자들을 접촉하면서 드러낸 퍼포먼스는 정치 아마추어 이상이었다. 이 같은 한동훈의 본격적인 정치화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새삼 한국의 법무장관들은 왜 이리 정치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훈은 건국 후 69대 법무장관이다. 역대 장관 목록을 보니 민주화 이후 법무장관이 자주 정치적 화제에 올랐다. 그만큼 임기가 길지도 않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5년간 8명의 법무장관이 나왔다. 그중 한 명은 ‘옷 로비 의혹’에 연루됐던 김태정 장관이다. 충성 메모 파동으로 임명된 지 43시간 만에 물러난 안동수 장관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부터 법무장관은 본격적으로 대통령의 색깔을 반영했다. 강금실 장관은 노무현의 검찰 개혁 메시지였다. 천정배 장관은 첫 수사지휘권을 휘둘러 김종빈 검찰총장과 갈등했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에선 ‘미스터 국보법’ 황교안 법무장관이 통진당 해산을 주도한 뒤 총리에 대통령권한대행까지 하며 정권의 또 다른 아이콘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조국 추미애 박범계가 잇따라 법무장관을 맡아 검찰 개혁을 밀어붙였으나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그 후임인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의 명운을 가를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유니콘이 되려는 듯하다. 이쯤 되면 법무장관이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서는 건 보혁과 무관하게 한국적 현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게 ‘K정치’의 역동성이라기보단 비정상이라는 데 있다. 대통령의 최고 법률 참모로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하고 언행이 얼음처럼 차가워야 하는 자리에, 정권을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뜨거운 인사가 잇따라 임명되는 걸 정상이라 할 수 있나. 26년간 멈춰 있어서 그렇지 법무장관은 사형 집행을 명령하는 사람이다. 민주주의 역사와 전통이 다른 만큼 수평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미국 법무장관의 역할은 많은 걸 시사한다. 미국에서 장관은 대통령의 ‘비서(Secretary)’라고 부르지만 법무장관만이 비서가 아니라 ‘어토니 제너럴(Attorney General)’로 불린다. 머리글자를 따 흔히 AG라고도 하는데 법률 집행의 수장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통령과 임기를 상당 부분 함께하며 정권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대변한다. 미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인 재닛 리노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8년간 임기를 함께했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법무장관인 에릭 홀더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5년간 일하며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 흑백 갈등 사태의 중재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미 정치의 문턱을 넘은 한동훈 현상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정권의 첨병이 아닌 법무장관의 온전한 역할에 대해 여야 가릴 것 없이 우리 사회가 한 번쯤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법무장관 한동훈에 열광할 때 반대편에선 그만큼의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전 조국 추미애는 말할 것도 없다. 법무장관마저 진영으로 찢겨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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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경찰 출신 이철규가 왜 尹 정부서 잘 나갈까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승승장구하던 경찰이 수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 두 번 구속됐다. 두 번 다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결국 경찰 옷을 벗어야 했다. 정치를 시작했으나 그 영향인지 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검찰이라면 이가 갈릴 법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검찰 출신을 빼고선 가장 잘나가는 정치인 중 한 명이 됐다. 명실공히 친윤 핵심인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 이야기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로 여당 사무총장에서 물러났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년 총선 인재 조달을 총괄할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돌아오자 여권 안팎의 시선은 온통 이철규에게 쏠리고 있다. 이철규 복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도대체 왜 경찰 출신 이철규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아래에서 잘나가는지 궁금해한다. 여권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우선,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것이다. 친윤이라면 질색하는 여권의 한 중진은 “이철규는 정말 사람을 많이 안다. 별의별 사람과도 연락을 주고받더라”라고 했다. 여권의 마당발 하면 전국 주요 사찰 스님 연락처를 꿰는 주호영 의원 정도가 꼽혔는데 못지않다고 한다. 국회의원이라면 사람을 많이 알 것 같지만 ‘아웃사이더’들도 적지 않다. 특히 판검사, 관료, 학자 출신이 많은 보수진영엔 자기 분야 밖으로 인맥을 확장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정치인이 사람을 많이 안다는 건 선거판에선 조직력으로 연결된다. 또 하나는 정보를 다룰 줄 알고 대통령 측근으로서 ‘장난’을 덜 친다는 평가가 많았다. 몇몇 인사들이 “이게 대통령의 뜻”이라며 주요 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다 용산과 틀어졌다는 소문이 몇 개월 전부터 돌더니 “앞으로 윤심을 읽으려면 이철규 입을 보라”는 말이 나왔다. 이철규는 경찰 시절 정보통이었다. 경찰대가 아닌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경찰청 정보국장을 지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핵심 정보를 파악해서 이슈화하고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역량은 대체 불가다. 용산 참모 중에선 김태효 안보실 1차장과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대통령과 관련해 정보 갖고 장난쳤다는 말은 아직 안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철규가 잘나가는 이유를 듣다 보면 대부분 정치 기술 분야다. 윤 대통령과 철학을 오래 공유했다거나 친노 친이 친박처럼 정치적 친족이라기보다는 2021년 대선 캠프에서 처음 만나 선거를 치르다 여기까지 왔다. 한동훈 이복현 등 특수통 검사 출신들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가 아니라 ‘선거용 테크노크라트’에 가깝다. 사회 연결망 이론에서 말하는 친족 간의 ‘스트롱 타이(strong tie)’가 아니라 일하다 만나 서로 돕고 성과를 창출하는 ‘위크 타이(weak tie)’인 것이다. 실제로 이철규는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고 ‘윤핵관 시즌2’라고 보는 게 맞다. 여당 내 친윤들은 권성동 장제원 윤한홍 이철규의 4인방으로 시작했다가 역할이 분화되면서 시즌1은 권성동 장제원 투 톱이었다. 권성동이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고 장제원이 3월 전당대회 이후 행보가 잦아들면서 사무총장이 된 이철규가 자기 차례가 와서 ‘친윤의 신데렐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철규가 지금의 위치를 계속 지킬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윤핵관 시즌3’를 물려줄지는 내년 총선 후 여권 정치 지형을 가늠할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듯하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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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이렇게 할 바엔 한동훈 조기 투입이 낫지 않나

    개인적으로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보다 더 충격적인 건 선거 후 국민의힘 행보다. 선거 수개월 전부터 떠돌았던 수도권 위기론의 실체를, 더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던 중도층의 이반을 확인하고서도 실질적으로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총선에선 공천이 절대적인 만큼 사무총장 인선만이 참패 후 여권의 변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다른 임명직 인선이나 ‘민생에 주력하겠다’류의 선언은 별 의미 없다. 그런데 그 중차대한 사무총장에 경찰 출신 친윤 이철규 의원에 이어 경찰 출신 친윤이자 대구경북 지역구인 이만희 의원을 임명했다. 이만희 의원은 올해 2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친윤 그룹이 어떻게든 최고위원으로 만들려 했으나 컷오프됐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전당대회 컷오프가 정치인의 전부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대중 정치인으로서 부족하다는 얘기다. 필자는 강서구청장 보선 후 대통령실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김기현 대표 체제는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이유를 이만희 사무총장 인선을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김기현-이만희 라인을 통해 내년 총선 공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처럼 공천을 전횡할 수는 없겠으나, 친윤 후보들을 최대한 많이 공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공천하는 것과 본선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최근 주요 선거를 보면 판세는 공천과 몇 명의 키 플레이어가 어떤 메시지를 내고 어젠다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에선 메신저 자체가 메시지이다. 유감스럽게도 공약이나 정책 대결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각 당에서 대개 엇비슷하게 수렴되기 때문이다. 대선은 후보, 총선은 당 대표와 선대위원장의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에 좌우되기 십상이다. 지난 대선에서 무엇이 기억에 남는가. △윤 대통령의 김종인 이준석 극복기와 정치인으로의 성장 스토리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의혹을 둘러싼 후보 간 공방 △선거 막판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정도가 결정 변수였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친윤 공천 후 김기현-이만희 라인을 전면에 내세워 어떤 메시지를 내 국민을 설득하려 하는가.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여당의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선거 중립 의무로 대통령의 직접 메시지 발신은 제한적이다. 인지도와 대중 영향력 기준으로 최근 보수정당 총선 지도부 중 최약체가 검찰을 상대로 산전수전을 겪으며 ‘진흙탕 내공’을 쌓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상대로 선거전을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이 벌써 여권 주변에서 적지 않다. 그 때문에 김기현 대표 체제를 정 유지하고 싶다면 내년 총선 역할론이 꾸준히 나오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어떤 식으로든 조기 투입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천한 정치 경험과 국회에서 보여주는 검사 특유의 고압적 자세로 인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을 제외하고 현 여권에서 메시지 발신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메신저가 한 장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장관은 아직 총선 출마나 정치 참여 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아끼고 있다고 한다. 정무직 장관으로서 이미 정치를 하고 있으니 벌써 발을 담글 이유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강서구청장 보선으로 정치 시계가 확 달라졌다. 윤 대통령이나 한 장관이나 내년 총선을 이기겠다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형제의 연’이라는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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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민주당에서 ‘민주’를 지울 건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후 민주당 주류인 친명계는 비명계를 상대로 공개 사냥을 벌이고 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비명계 설훈 의원이 가결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후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설훈 의원 스스로가 격앙돼 ‘내가 이재명을 탄핵한 것’이라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라디오에서 말한 것이다. 이는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에선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장면들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친문 성향의 고민정 최고위원은 표결 후 “다음 총선에서 저의 당선을 막겠다는 당원들의 문자가 쇄도한다”며 “저는 부결표를 던졌다. 제가 이런 말을 한들 제 말을 (당원들이) 믿어주시겠느냐”고 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경제학 박사인 어기구 의원은 비밀투표 원칙을 어기고 자신이 부결표를 던졌다고 아예 ‘인증샷’을 공개했다.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은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반응을 SNS에 올렸다고 한다. 개딸들은 가결표를 던졌다고 여기는 비명계 의원들의 지역구에 찾아가 고성을 지르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했다. 체포동의안 가결 후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며 오래전 중국의 문화대혁명(문혁)이 오버랩된다. 마오쩌둥이 자신의 정치적 재기를 위해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 전역에서 주도했던 문혁은 표현 자체에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실체는 사회문화 전반의 파괴였다. 마오의 지시를 받은 홍위병들은 반대파를 자본주의 색채를 가진 사람들이라 숙청하고 옛날 풍습으로 보이는 건 없앴다. 이 반달리즘으로 4000년 중화 문명 상당수가 사라졌다. 공자와 관우의 사당이 훼손되기도 했다. 지금 친명계가 주도하는 비명계 사냥과 문혁의 공통점은 반대파 색출 과정에서 자신의 핵심 자산에 자해 행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마오와 홍위병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류의 문화유산을 때려 부순 것처럼, 이 대표와 친명계는 자신들의 당권과 총선 공천권을 위해 68년 민주당의 소중한 정치적 유산인 ‘민주’를 무너뜨리고 있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새천년민주당 때부터 20년 넘게 민주당 사람들을 취재하고 만나고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민주당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보수 인사들이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토론과 설득이 몸에 배어 있고 그런 정치적 훈련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민주당이 지켜 온 ‘민주’의 요체였다. 진보진영이 도덕적 우윌감을 주장하는 것도 단순히 운동권 출신이라는 걸 넘어 이런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민주당에서 비민주적 광풍이자 자신의 자산과 정체성을 파괴하는 정치적 반달리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친명계가 느끼는 압박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용산과 검찰에 대고 “대선도 끝났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 밀리면 내년 총선에서 우수수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 보니 무리수를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이 이재명 없는 민주당을 긴장하며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민주당 스스로 간과하고 있다. 총선은 196일 남았고, ‘포스트 이재명’ 체제로 혁신 경쟁을 벌일 시간도 있다. 개혁과 혁신은 원래 민주당이 강한 영역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정체성을 포기하고 사교 집단을 방불케 하는 극단적 사당화를 택한다면, 총선 승리 가능성은 고사하고 그토록 강조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언급할 자격조차 걷어차는 것이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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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 대통령은 왜 지금 이념 전쟁을 하고 있나 [오늘과 내일/이승헌]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이념 지향적인 사람이었나?” 최근 광복절 경축사부터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주고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정치에서 이념은 좌파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21세기 보수 대통령인 이명박 박근혜는 이렇다 할 이념이랄 게 없었다. MB는 국정에 비즈니스를 접목한 실용주의를 추구했다. 박근혜는 지금도 그 정확한 정의를 알기 힘든 창조경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지향점 자체가 불분명했다. 이전 노무현 대통령이 워낙 이념 과잉이라 그 반작용으로 탈이념을 추구한 면도 있었겠지만, 둘 다 국정의 철학적 골간은 부족했다. 지지층이 공유하는 핵심 이념도 없었다. 정치권에선 두 대통령 모두 정권 초기에 휘청거린 배경을 여기서 찾는 사람도 있다. 각각 광우병 괴담 파동과 세월호 사건이라는 외부 충격에 이념적 연대감 없는 지지층이 순식간에 흔들렸다는 것이다. 아파트로 치면 이념이라는 축대와 철근이 빠지거나 약한 ‘순살 정권’ 같은 것이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전후로 이념을 강조하는 건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학습 효과 같은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비극은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며 5년 내내 지지층만 보고 정치한 것처럼, 윤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처럼 이념적 갑옷 없이 물렁물렁하게 국정 운영했다가 좌파들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사실 윤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이념을 강조했다. 그 정치적 텍스트와 의미를 처음엔 잘 몰랐지만, 국정을 운영하며 구체적인 조치들이 더해지면서 광복절 경축사 전후로 또렷해지고 있다. 처음엔 자유민주주의, 인권 이런 것이었는데 요즘 들어 공산주의, 야당이 부분적으로 배경에 있는 이권 카르텔 등으로 타깃이 구체화되면서 본격적인 충돌음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념 드라이브를 통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내려는 것일까. 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섣부른 포용이나 어설픈 타협보다는 확실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조국 추미애를 거쳐 이준석 김종인 유승민 홍준표를 지나 이재명까지 경험하면서 이 시점 한국 정치에서 포용이나 협치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내년 총선에서 표로 연결될 전망이 분명치 않은 호남권에 대한 구애나 중도층 공략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지지층을 넓히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미 윤 대통령은 민노총과의 정면 대결, 친일파 논란을 감수한 한일 관계 복원 이니셔티브, 문재인 정권의 친중 노선 지우기 등 집권 후 몇 가지 이념적 이슈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국정 수행 지지율은 이슈마다 널뛰었지만 지지층은 긍정 평가했다. 지금의 이념 드라이브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대상과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전통적인 총선 전략으로 보면 역대 보수 정권은 이념의 틀을 넓힐 때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많다. 1996년 총선에서 김영삼 정권이 이재오 김문수 등 강성 운동권을 영입해 외연을 확장했고, 2012년 총선에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당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채택해 과반을 일궈냈다. 물론 세상과 유권자는 그때와 같지 않고 무엇보다 용산 대통령실의 생각이 다르다. 윤 대통령의 이념 드라이브는 계속될 것이다. 그 성패는 총선일인 내년 4월 10일, 앞으로 217일 후면 알게 된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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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캠프 데이비드의 ‘자리값’은 다르다

    휴가차 머물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번 주 18일 열릴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먼 발치에서 지나쳤던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에서도 의미가 독특하다. 우리로 치면 대통령이 휴가철에 머무는 저도, 청남대 같은 곳이 아니다. 백악관에서 헬기로 30분 떨어진 이곳의 또 다른 명칭은 secluded presidential retreat, 즉 대통령의 은밀한 휴양지다. 백악관 오벌 오피스와 달리 힐링하고 사색하는 공간. 백악관은 관광객 투어 프로그램이 있고 밖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지만, 캠프 데이비드는 해병대가 경호하는 시설이라 일반인 접근은 불가능하다. 역대 많은 미 대통령들이 이곳을 즐겨 찾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가족 모임을 했고, 아프간 철군을 지휘했으며, 자신의 혈통인 아일랜드 하키팀의 승리를 축하했다. 올해만 공식적으로 8번 갔다. 전임 트럼프는 딸 이방카의 결혼 10주년 파티를 했다. 지미 카터 시절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중재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 등 많은 외교적 대화가 가능했던 것도 공간이 주는 특별함 덕이 컸을 것이다. 그런 곳을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한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2008년 조지 부시와 골프 카트를 탔던 이명박 대통령 이후 15년 만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이다. 그만큼 이례적인 이벤트라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외교가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회담에 참가하는 3개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곳은 중국이다. 바이든이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3각 축을 만들려 캠프 데이비드를 개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 정부 내 흐름을 비교적 정확히 전하는 국무부 산하 미국의소리(VOA) 최근 보도를 보면 바이든의 ‘캠프 데이비드 초대 청구서’ 내역을 짐작할 수 있다. 한미일 정상회담 정례화, 군사정보 공유 강화보다 필자는 대만 관련 대목을 주목한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조정관은 VOA 인터뷰에서 “미국은 무력 사용을 통해 대만 현상 유지를 변경하려는 어떠한 노력에도 반대한다는 문구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성명에 포함되길 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머스 싱킨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북핵 등) 한반도 유사시 문제와 대만해협 문제는 완전히 분리된 사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만에서 군사적 사태 발생 시 주한미군 투입 가능성을 논의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중국과 불편해도 베이징이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를 한미일 정상회담의 합의문 형태로 공식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 때문인지 대통령실 관계자도 사전 브리핑에서 “한미일이 중국을 적대시한다든지, 중국 때문에 이렇게 (공조)한다는 식의 표현은 (이번 성명에)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 몇몇 정상회담이 용산의 기대와는 조금씩 달리 돌아간 것을 기억하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이라기보다 실제 정상회담이 준비 과정과 100%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캠프 데이비드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미일 정상과 만나는 윤 대통령이 여전히 중국 대만 관련 이슈에 강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바이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중국 문제에 더욱 맞장구를 칠 것이다. 서방 진영의 핵심 국가로 공인받을 기회이자, 미국 주도의 대중 제재 노선에 더욱 합류할지 결정해야 할 도전. 윤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 방문의 의미를 잘 새기고 회담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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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내년 총선 관전법(2)-‘정치 무간지옥’ 피하려면

    요새 정치권에서 사라진 것 중 하나가 어록이다. 막말은 넘쳐나지만 인사이트가 담긴 언어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요즘 접하는 정치 언어는 대개 이런 것들이다. “서울로 달려간다고 (수해 피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윤석열 대통령 우크라이나 순방 중 귀국 여부에 대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답변) “대통령이 입시에 대해 수도 없이 연구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수능 논란에 대한 이주호 교육부총리의 답변) “조국과 민족 운명을 궁평 지하차도에 밀어 넣는 일”(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민주당 김의겸 의원 발언)…. 3김이 살아있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정치 언어가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때도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욕을 먹었으나,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들이 있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고 박상천 의원이 장외투쟁을 놓고 벌인 논리와 위트의 대결을 예능 프로그램처럼 지켜본 기억이 여전하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같은 중진들이 담배 연기를 뿜어가며 기자들과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인 ‘봉숭아 학당’도 일상이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정치가 원래 그렇지 뭐” 식의 반응은 도움이 안 된다. 헌법과 국회법을 고친다면 모를까 그전까지 정치인들은 여전히 우리 삶과 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대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들이 어떤 수준의 말을 쓰느냐는 그들이 제공할 정치·정책 서비스 수준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저열한 정치 언어에 노출되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들의 공감 능력이 역대 최악이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딱 네 마디다. 네 마디만 알면 적어도 끔찍한 실수를 피할 수 있는데 그게 작동하지 않는다. 발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시뮬레이션도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수해를 당한 국민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서울 달려간다고…” “궁평 지하차도에 밀어 넣는…” 유의 발언은 있을 수 없다. 용산이 아니라 수험생을 생각했다면 “대통령에게 진짜 많이 배운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순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공감 능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건 게을러서다. 상황에 맞는 정치적 언어를 구사하려면 상대방의 처지를 알아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말을 하려면 민생 속으로 자주 가고 반대 목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여야는 지금 서로 만나지도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대화도 안 하는데 무슨 공감 능력이 생기겠나. 필자는 다양한 기회로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을 접하지만 요새 듣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년 총선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 여부, 그리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것들이다. 결국 정치에 어떤 사람들이 충원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가뜩이나 AI를 통한 허위 조작 뉴스가 범람하고, 유튜브가 진영 충돌의 플랫폼이 된 상황. 내년 총선을 앞두고 코인 거래를 밥 먹듯 하면서도 식언하고, 가짜 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어내는 사람들이 또다시 밀려들면 그야말로 정치 언어의 무간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 정치권은 선거구제 개편이나 의원 정수 증가 여부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 그 전에 공천 과정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최소한의 검증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면 이준석이 도입했던 공직 후보 시험 같은 걸 국회 차원에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각 당에만 공천을 맡기면 우리 정치는 절망을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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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내년 총선 관전법(1)―친윤그룹의 불출마 카드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 목표를 과반인 170석으로 잡았다는 말이 나오자 민주당이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하는 등 정치권의 신경은 온통 총선에 집중되어 있다. 핵심은 공천, 그러니까 누굴 영입하고 누굴 내칠지라는 데 이견은 없다. 정치권에서 성공적인 공천 사례를 꼽을 때 자주 거론되는 게 1996년 15대 총선의 신한국당 공천이다. 당 총재를 겸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 등을 정치권 밖에서 영입했다. 사람마다 호불호는 있겠으나 이들은 오랜 시간 정치권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젊은 인재 수혈에 적극적이었다. 동교동계가 여권의 헤게모니를 잡은 상황에서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등 80년대 학생 운동권의 주류가 영입됐다. 이들에 대한 평가를 떠나 원내대표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지내면서 20년 넘게 민주당 계열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후부턴 총선에서 누굴 발탁했는지가 별 기억이 없다.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주호영(5선) 안민석(5선) 나경원(4선) 정도를 제외하고 여야에서 다선이 되거나 전국구급 활약을 보인 의원은 찾기 어렵다. 사람을 키우기보다 누굴 쫓아내는지가 전 국민적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의 친박계 낙천, 2016년 친박계의 유승민 등 비박계 솎아내기가 대표적이다. 민주당 진영에선 2016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해찬 노영민을 낙천시켜 이슈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쳐져도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복귀했다. 결과적으로 새 사람 영입만 제대로 못 한 것이다. 내년 총선은 어떨까. 여야에서 공천에 관여할 게 확실시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어느 그룹이나 누군가를 꼭 영입하겠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여당에서 나오는 영입론이라고 해봐야 한동훈을 키로 하는 이른바 ‘검사 공천’ 여부와 그 폭이다. 야당은 이재명 대표를 축으로 친명 vs 비명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 수혈론은 언감생심인 상황이다. 그만큼 총선 공천의 포인트는 어느 때보다 누가 안 나오냐에 쏠리는 형국이다. 특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안팎에선 친윤 핵심들이 여차하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계 은퇴도 아니고 재·보선이나 다른 공직으로 얼마든지 컴백할 수 있음에도 “권력자들이 희생했다”는 것 이상의 캠페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아무리 격이 떨어졌다지만 정치 서비스의 수요자인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상품으로 다가가는 게 정상이다. 한국 정치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 기후변화 등 새로운 입법 수요는 넘쳐난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인재가 정치권에도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당이라는 점포의 매대에서 누구를 빼낼 테니 더 이용해 달라고 읍소나 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인사들을 만나보면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도 극에 달해 직업으로서 매력이 줄어드는 점도 없지 않다. 오죽하면 박지원 천정배 최경환 등 여야의 올드보이들이 다시 출마를 저울질할까. 그럼에도 헌법이나 국회법을 고치지 않는 한 국회의원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공직 중 하나다. 총선 시작도 하기 전에 새 사람을 찾는 노력보다 상대적으로 손쉬운 낙천 전략만 넘쳐난다면 한국 정치의 추락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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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V골프의 승리가 尹 외교라인에 주는 교훈[오늘과 내일/이승헌]

    누구도 예상 못 한 시나리오였다. 지난 1년간 세계 스포츠계의 핫이슈였던 PGA투어와 LIV골프 간의 갈등이 갑작스러운 합병 발표로 일단락됐다. 으르렁거리던 양 진영 수장이 아무도 모르게 물밑 협상을 했던 것이다. 미 언론은 대체로 LIV골프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오일머니가 배후인 LIV골프가 107년 전통의 PGA를 어떤 식으로든 병합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와 함께 손해를 감수하고 PGA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로리 매킬로이는 “희생양이 된 기분”이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않았다. 필자는 두 조직의 갈등과 봉합 과정을 국제 정치 질서의 프레임으로 관찰하곤 했다. PGA가 전통과 연대를 중시하는 가치 동맹이라면 LIV는 돈이 기준인 이익 동맹. 호불호를 떠나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정글과 같은 국제 정치 지형에서 실질적 국익보다 가치, 신념을 관계 설정의 스탠더드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외교 정책과 철학은 PGA투어와 LIV골프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 한미동맹은 군사 동맹으로 시작해 경제 안보, 사이버, 우주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지만 핵심은 여전히 군사 동맹이다. 4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한미는 민주 진영이라는 가치 연대에 기반해 북핵 억지를 위한 워싱턴 선언을 도출했다. 하지만 IRA나 반도체법 등 한국 기업을 옥죌 수 있는, 돈이 직접적으로 걸린 이슈에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부족했다. 중국이 미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제재를 가하자, 미국은 삼성 SK 등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시장 확대를 초장에 제어하려 했다. ‘가치 동맹으로서 중국 문제는 함께 희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 달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한일 관계 정상화도 한미일 3각 축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이뤄진 측면이 크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죽창가 식 반일 정책은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우리가 강제징용 해법 제시라는 ‘통 큰 결단’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라는 이니셔티브를 던진 후 어떤 실질적 이익을 얻었는지 냉철하게 점검해 볼 때가 됐다. 싱하이밍 중국 대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앞에서 조선 말기의 위안스카이 같은 언행을 보이고 대통령실까지 정면 대응에 나설 정도로 지금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대적 대일 정책이 윤 정부에선 대중 정책으로 치환된 듯하다. 어느 때보다 험악한 미중 관계는 여기에 기름을 부어 여권에선 “이참에 중국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 “싱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혹 미국에 기대서 이런 ‘차이나 배싱’을 한다면 이는 위험천만할 수도 있다. 물밑에선 대중 관계를 최악으로 몰지 않으려 고민하는 게 워싱턴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빠르면 18일 베이징을 방문해 친강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한다. 왜 그럴까. 미중 관계 파탄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급 교류가 끊긴 한중 관계와는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다. 요새 외교가 원로들을 만나면 “큰 방향은 좋은데 우리가 어떤 이익을 취할지에 대한 디테일이 아쉽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외교는 형이상학적 가치와 명분을 내세워도 국익 외에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 민주 진영 내에서 위상 강화, 바이든과의 스킨십 그 어떤 것도 이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용산 대통령실이 조만간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하반기 외교를 대비했으면 한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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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여권에서 한동훈 불출마론이 나오는가[오늘과 내일/이승헌]

    화려한 외교의 시간이 일단 막을 내리고 다시 현실의 시간이다. 정치적으로는 내년 4월 총선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부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주변에서 전에 없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내년 총선 불출마 가능성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중진 A 의원은 “한동훈이 총선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한 장관의 총선 출마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동훈 출마는 불변의 상수였다. 지역구일지 비례대표일지, 지역구라면 어디에 나갈지가 관심이었다. 정치권에선 서울 강남-서초 라인 출마설부터 마포 등 ‘한강 벨트’ 출마 가능성이 나왔다. 한 장관이 송파에 관심 있다는 말도 있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잠시 한동훈 당 대표론이 나온 것도 그의 총선 출마가 전제였다. 아직은 소수설이지만 여권에서 한동훈 불출마 가능성이 꾸준히 언급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필자는 크게 두세 가지 배경이 있다고 본다. 우선 현시점에서 한동훈 없는 윤석열 내각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호불호를 떠나 한동훈만큼 존재감을 보여주는 국무위원이 없기에 대체재를 찾기 쉽지 않다는 현실론이다. 친윤계인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한 장관 취임 1년 됐다고 법무부 앞에 지지자들이 꽃 보낸 것을 봐라. 최근 어느 국무위원이 그런 적 있나”라고 했다. 또 하나는 내년 총선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진행될 것인 만큼, 윤 대통령의 정치적 페르소나인 한동훈이 전면에 나서는 게 과연 유리할지를 놓고 여권에서 이전보다 다양한 의견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한국갤럽 발표 기준으로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이 37%, 부정이 56%였다. 김남국 코인 논란에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32%, 더불어민주당은 33%였다. 현 선거구제가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국민의힘(114석)이 1당이 되려면 민주당(167석)에서 27석 안팎을 빼앗아야 한다. 영호남은 지난 총선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전제하에 충청권의 변화를 감안해도 20석 이상을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서 더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19일 갤럽 조사를 보면 서울의 윤 대통령 지지율은 38%, 인천·경기는 35%다. 국민의힘은 서울 28%, 인천·경기 31%로 민주당의 서울 35%, 인천·경기 36%보다 각각 7%P 5%P 낮다. 외교에서 성과를 내자 대구·경북이나 충청권에선 지지율이 올라가지만, 정작 의석이 몰려 있는 수도권의 중도층을 공략하려면 인물이든 국정 운영이든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한동훈의 강점인 대야(對野) 전투력에 대한 평가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 장관이 김의겸 김남국 등 야당 의원을 박살 내면 팬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중도 확장성을 고민하는 보수층에선 “경량급 상대로 싸움만 할 거냐”며 피로감을 느낀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로선 한동훈 불출마론은 소수 의견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여권에서 전국적 인지도를 갖고 선거판을 치어리딩할 수 있는 인물이 안철수 나경원 외엔 한동훈밖에 없다. 하지만 전에 없던 한동훈 불출마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만큼 총선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여권 내 그룹이 생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 장관이 정치에 뜻이 있다면 이런 점도 미리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곧 여름 가을 지나 공천 판이 벌어진다. 선거의 시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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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생각을 외신을 통해 아는 게 정상인가[오늘과 내일/이승헌]

    윤석열 대통령은 줄곧 국내 언론이 아니라 외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당선 후 첫 인터뷰를 워싱턴포스트와 했고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했다. 지난달 방미 전후로는 NBC 워싱턴포스트 로이터를 통해 12년 만의 미국 국빈방문에 임하는 생각을 공개했다. 이전 대통령도 외신과 인터뷰를 했지만 이 정도로 일방적이진 않았다.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대통령 주변의 말을 종합하면 메시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내보내기 쉬울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까칠한 질문을 던질 국내 언론보단 메시지 컨트롤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은 외신을 통해 윤 대통령의 생각을 충분히 잘 알고 있나. 대통령실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방미 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나온 ‘일본 무릎’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외신 인터뷰 일변도의 메시지 전달에 3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국민이 모국어로 대통령 생각을 접하지 못한다. 인터넷 번역 프로그램이 있다지만 주요 사안에 대한 미세한 뉘앙스와 호흡까지 전할 수 없다. 한 글자 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외교안보 이슈는 더욱 그러하다. 윤 대통령이 방미 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처음 밝힌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은 러시아와의 관계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국민들은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재번역해 접했다. 둘째, 대통령의 깊이 있는 답변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외신 기자들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한국 언론만큼 대통령을 관찰하고 감시할 수는 없다. 워싱턴에 파견된 한국 특파원들이 밤낮으로 일해도 뉴욕타임스 같은 현지 언론보다 백악관 정보가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다. 외신들도 무슨 일이 터지면 한국 언론을 통해 대통령과 주변을 취재한다. 셋째가 가장 심각한데, 국내 여론과 대통령 간에 간극이 생기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이 다루는 대통령 말은 일방적으로 쏟아낸 회의 발언이 대부분이다. 권력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대표적인 메시지 실패 사례인 ‘69시간 근로’ 논란, 워싱턴선언의 NCG(핵협의그룹)가 사실상 핵공유인지를 놓고 감지된 한미 간 온도 차도 언론을 통한 충분한 대국민 소통이 부족한 것과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국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국정 현안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맞다.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비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까칠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국내 언론과 제대로 된 인터뷰를 계속 피하는 건 윤석열답지 않다. 이번에 만난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8년간 함께하며 형제로 부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17년 1월 퇴임 기자회견 한 대목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이런 게 글로벌 스탠더드 언론관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여러분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권력과 언론) 관계의 본질이다. 여러분은 아첨꾼(sycophant)이 아니라 회의론자(skeptics)여야 한다. 나에게 거친 질문(tough questions)을 던져야 한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던져야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우리도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중략)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기 정부에서도 집요하게 진실을 끄집어내서 미국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달라.”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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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워싱턴의 4월 봄날에 취하지 말라[오늘과 내일/이승헌]

    4월의 워싱턴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백악관 주변의 벚꽃도 절정이다. 원래 살던 사람도 설레는데, 나라의 손님으로 이곳을 찾는다면 말할 것도 없다. 봄의 도시,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 어느덧 2주 앞으로 다가왔다. 12년 만의 미국 국빈 방문인 만큼 요새 윤석열 대통령의 신경은 온통 방미 준비에 쏠려 있다고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열린다. 어느 때보다 낭만적이고 화려한 표현이 넘쳐날 것이다. 지난해 5월 1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계가 발표될 수 있다. 한미 양국이 애용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의 ‘(한미 간에) 한 치의 빛 샐 틈이 없다(no daylight)’를 대체할 캐치프레이즈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한미 간의 당면 이슈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북핵에 대비한 실질적 확장억제 방안, 우리 기업을 압박하는 인플레이션완화법(IRA)과 반도체법의 디테일을 놓고 어느 때보다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도발에 핵우산을 제대로 펼지 모르는데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은 안 된다고 한다. 반도체 보조금 지원 조건을 보면 우리가 알던 미국이 맞나 싶기도 하다. 회담을 해봐야겠지만 지금 조 바이든 행정부를 보면 윤 대통령이 12년 만의 국빈 방문에 걸맞은 수준으로 두 이슈에 대한 성과를 챙길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으로부터 강제징용 해법에 상응하는 호의적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윤 대통령은 미국에서 반전을 노릴 것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 출마키로 한 바이든이 노동자 표를 잃어가며 IRA나 반도체법에서 한국 편을 넉넉하게 들어줄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런 미국을 보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업가 출신 대통령이 만든 ‘아메리카 퍼스트’가 바이든까지 이어져서 한국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파원 시절부터 10여 년 워싱턴을 관찰해 온 필자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게 미국의 원형질이라고 생각한다. 인디언을 몰아내고 피의 내전을 치러가며 지금의 USA를 만든 미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나라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그만두고 중국과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는 패권 국가로서의 욕망을 더 이상 감추지 않는다. 미 정보당국의 한국 등 우방국에 대한 감청 스캔들도 이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이 시점에 윤 대통령이 워싱턴 한복판에서 “미국은 형제이니 달라야 한다”고 외쳐야 할까. 그보다는 한미동맹 70주년 행사와 국빈 환대와는 별개로 회담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이 존 미어샤이머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의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를 방미 전 일감하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세력 균형을 넘어 패권을 노리는 국가의 속성을 규정한 것으로, 현시점에서 국제 정치 질서와 미국의 세계관을 이것 이상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2017년)에서 최명길 역의 이병헌이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이 없다”고 한 대사와도 일맥상통한다. 공교롭게 미어샤이머는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이니 김 차장이 전문가다. 4월의 워싱턴이 윤 대통령에게 잔인한 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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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 단임 대통령의 새 승부처 [오늘과 내일/이승헌]

    “That’s the beauty of one-term presidency.”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하러 가기 직전 미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5년 단임 대통령이니까 이 정도의 강제징용 해법을 갖고 한일 정상회담이라는 승부수를 보란 듯이 던졌다”는 얘기다. “재선에 도전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 같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카드”라고도 했다. 한일 간의 화해를 권했던 미 정부 인사의 말이라 의외였다. 정상회담 후 벌어지는 풍경은 그의 반응처럼 복잡하다. 여권은 “윤석열식 결단”이라고 치켜세우지만,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이완용”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맹비난한다. 일본 측은 회담에서 독도, 위안부 합의 이행 등이 거론됐다고 주장하며 뒤통수를 치고 있다. 회담 후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가 완연하다. 윤 대통령은 물러설 기색이 없다. 21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당을 “반일 외치며 정치이득 취한 존재”로 규정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주변에는 “지지율이 한 자리로 떨어져도 한일 문제는 해결하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윤 대통령에게 궁금해하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일 관계를 풀려는 속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는 교과서적 답변 말고 실존적인 진짜 이유 말이다. 필자는 전직 외교관에게 힌트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단임제 특성상 역대 대통령은 돌고 돌아 외교안보 이슈에서 자기만의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처럼 지지층이 반대하는 결정으로 지금까지 평가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자원외교, 원전 수주 등 나라 밖에서 승부를 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허상이었지만 집권 내내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매달렸다. 단지 대통령 직무의 한 축이 외치라서 그랬을까. 그에 못지않게 진영 논리가 첨예하게 갈리고 협치 가능성이 사라져가는 정치 환경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로 여야 간 대화가 막혀 내년 4월 총선 전까지는 입법을 통해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정치 입문 전 외교안보 분야 경험이 거의 없던 윤 대통령이 이 분야에서 중대한 모멘텀을 맞이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숙명적인 요소도 있다.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러 일본에 간 것도, 4월 미국 국빈 방문도 공교롭게 12년 만이다. 5월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히로시마를 찾아 한미일 정상회담을 할 듯하다. 3-4-5월로 이어지는 릴레이 외교 행보는 국내에 미칠 파장이 직접적이다. 특히 한일 정상회담 성과가 채 마무리되지 않을 시점에 미국을 찾는 윤 대통령은 실질적 확장억제 강화와 반도체법 등 한국 기업을 조여 오는 바이든판 ‘아메리칸 퍼스트’ 대처라는 2개의 중차대한 숙제를 받게 된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권의 적폐를 갈아엎고, 이재명 대표를 사법적으로 응징하는 것이 윤 대통령의 사명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에겐 시대를 뛰어넘는 성과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한 진영의 정치적 축배에 그칠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윤 대통령은 새로운 승부처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2023년 봄 미국과 일본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윤석열 정권 상반기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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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尹 대통령의 ‘정치 페르소나’는 누구인가

    오랜만에 “정치는 생물”이라는 격언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말이다. 누구는 결과에 분노하고, 어떤 사람은 환호했지만 직업상 여의도와 용산을 관찰해 온 필자에겐 한국 정치의 다이내믹스가 여전함을 재확인시켜 줬다. 정치권에서 ‘가장 어려운 선거는 국회의원을 상대하는 선거’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훔치는 선거에는 다들 고수라서 결과를 예상하기도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과정에서 폭발하듯 드러난 민주당 내 반명 세력의 규모에 여야는 물론 대통령실도 깜짝 놀라고 있다. ‘2·27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파동’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 내내 수면하에 있던 정치의 시간이 다시 열리고 있다. 민주당은 당장 친명 대 반명 간 권력 투쟁이 시작됐다.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까지 마치면 여야 모두 내년 4월 총선을 정조준하며 유동성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창당, 탈당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이합집산 가능성이 열려 있다. 혹자는 경제 위기에 윤 정부의 3대 개혁을 위한 여력도 없는데 무슨 정치 투쟁이냐고 하겠으나 국정과 정치는 늘 각자의 동력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이는 당선 1주년을 맞는 윤 대통령의 정무 참모 역량도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 대통령실에서 최선임 수석비서관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지난해 국정 난맥상이 속출하자 뒤늦게 신설한 자리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정무 참모 역할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정무라인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엔 정무수석 산하 비서관 두 명을 전격 교체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많은 정부에선 정무수석이 최선임이었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무수석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국회와 대화가 절실하니 주호영 이재오 고흥길 의원을 정무 전담 특임장관으로 잇따라 기용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첫 번째 정무수석으로 유인태를 발탁해 필요하면 자신에게 직언토록 했다. 정무수석은 검찰 수사처럼 당장의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몇 달간 의원들을 만나도 법안 하나 통과 못 시킬 수도 있다. 지금처럼 여소야대 상황의 정무수석은 더 처지가 어렵다. 하지만 그럴수록 계속 만나고 대화하고 인내하면서 국정 이슈를 수면하에서 조율해 나가는 게 정무 참모들의 역할이다. 이진복 정무수석만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현 정부 들어 야당 인사들이 정무수석 라인을 통해 대통령의 스킨십을 느꼈다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윤 정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장제원 한동훈 이복현 정도다. 윤 대통령의 페르소나다. 특징은 밀어붙이는 것. 이 사람들을 앞세워 전대를 치르고 사법 이슈에 대응하고 관치라는 말까지 들으며 금융권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파동에서 보듯 정치는 가변성이 심하다. 당장은 민주당이 혼란스러워 보이고 국민의힘은 안정되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혼란을 내부 혁신을 위한 동력으로 연결해 총선을 앞두고 환골탈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건 리걸 마인드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이제 윤 대통령의 ‘정치 페르소나’로 불릴 만한 실세형 정무 참모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워낙 지난 1년간 정치라는 밭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윤 대통령과 검찰 출신 측근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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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親尹, 최소한의 격은 갖춰라

    여권 내 친윤들이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문득 대통령의 정치적 친족을 자처했던 세력들이 스쳐 지나갔다. 필자는 친노부터 시작해 친이 친박 친문을 거쳐 친윤까지 직접 취재하거나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노는 취재할 당시엔 매우 거칠었으나 지금 보면 로맨티시스트적인 기질도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국가적 과업을 두고 서로 물고 뜯고 싸웠다. 지금은 사라진 토론이란 게 있었다. 시끄럽지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이는 MB를 중심으로 뭉친 용병 집단이었다. 정치에는 서툰 일 중심 조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아쉬운 대로 보수의 건전성이 유지된 마지막 시기였다. 친박과 친문은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이 무언가 홀린 듯 외부에 귀를 닫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독단적이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게 모든 걸 말해준다. 친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친노 친이 친박 친문과는 또 다른 독특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겐 충성스러울지 몰라도 특히 전당대회 국면에서 내년 총선 공천권에 눈이 먼 부정적인 모습이 도드라지고 있다. 크게 3가지 정치적 특징으로 압축된다. 첫째, 폐쇄성이다. 친박 친문보다 정도가 더하다. 정치라는 생태계는 주변과의 교류를 통한 변화와 성장, 더 나아가 확장이 기본인데, 친윤은 외부와의 차단을 고집한다. 이런 집단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확장성을 이야기한 것 자체가 지금 보니 부질없는 짓이었다. 둘째는 취약한 대표성이다. 보수 세력을 대표할 만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친윤들이 나경원 안철수를 잇달아 찍어내는 장면에 사람들이 짜증 내는 이유 중 하나는 ‘뭐 하던 사람들인데 저렇게 설쳐대느냐’는 것이다. 친이만 해도 이재오 정두언 임태희 박형준 등 당시엔 보수 인사라 할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요새 전대 국면에서 실명으로 등장하는 친윤 인사는 장제원 김정재 이철규 박수영 이용 의원과 이진복 대통령정무수석. 이 중 유권자들에게 정치하는 이유나 스토리가 알려진 경우가 있나. 안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의 오만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저들을 보면서 대통령 옆에 있다 벼락출세한 사람들이 완장 찼다고 여기는 것이다. 셋째가 가장 위험한데, 그 미약한 정치적 권위를 가리기 위한 폭력성이다. 민주화 이후 정치권의 폭력성은 해산된 통합진보당 등 원래 진보 진영에서 자주 발견됐다. 그런데 친윤이 들어선 뒤 그야말로 칼춤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편이었다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쳐낸 사람만 이준석을 시작으로 김종인, 나경원, 안철수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쳐진 사람도 잘못이 있지만, 군사 정권 이후 정치권에서 이렇게 집단 린치가 집중적으로 자행된 건 본 적이 없다. 집권세력이라면 최소한의 격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을 이끄는 세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민심이 폭발하기 전에 윤 대통령이 이들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이걸 방치하면, 설령 김기현 의원이 대표가 되더라도 그 후폭풍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런 환경에서 몸과 머리가 얼어붙어 친윤 외 어느 누가 제대로 움직이겠나. 21세기 한국 정치에서 처음 보는 이 비정상을 윤 대통령은 바로잡아야 한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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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윤 대통령에게 장제원은 어떤 존재인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여권에선 한 가지 오래된 퀴즈가 있었다. 국민의힘 권성동, 장제원 의원 중 누가 더 실세냐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라 친윤 그룹이 권핵관과 장핵관으로 나뉘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퀴즈의 답은 달라졌다. 지난해 7월 권성동이 윤 대통령에게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노출해 파문이 일자 “권성동은 이제 끝났다”고들 했다. 실제로 그해 9월 원내대표에서 조기 퇴진했다. 그렇다고 장제원이 계속 잘나간 것도 아니다. 지난해 8월 대통령실 인적개편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측근들이 잇따라 물러난 뒤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2선 후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아무튼 둘 다 잠시 권력투쟁에서 밀리는가 싶더니 국민의힘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시즌이 다가오자 지난해 말부터 다시 기지개를 켰고, 최근에는 권성동보단 장제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권성동이 당권 레이스에서 조기 낙마하는 과정에서 윤심(尹心)이 전달됐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용산에서 마음을 두고 있는 김기현 대표 구상을 나경원 전 의원이 과욕이라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흔들자, 김기현과 손잡은 장제원이 최근까지 융단폭격을 퍼붓는 걸 보며 이런 해석은 더 힘을 얻고 있다. 누가 봐도 윤 대통령이 장제원의 나경원 저격을 결과적으로 묵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장제원이 친윤의 핵심임을 다시 확인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이런 해석에 “정말?” “과연?”과 같은 반응을 내놓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장제원의 언행, 행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충성스럽고 순발력 있지만 동시에 과격하고 위험한 측면이 있다는 건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대개들 공감한다. 일부는 안철수와 단일화를 해낸 그의 뚝심을 평가하지만, 일부는 가벼운 처신에 혀를 찬다. 김기현이 갑자기 “김장연대는 철 지났다”며 뒤늦게 장제원과 거리두기를 하려는 것도 이런 흐름을 감안한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이 지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대통령에게 도대체 장제원은 어떤 존재냐는 것이다. 이 질문은 단지 한 정치인의 미래가 궁금해서 하는 게 아니다. 벌써 여권에선 김기현 대표 체제가 될 경우 장제원이 사무총장을 맡아 정치 지형에 적지않은 변화가 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이야 사무총장을 별것 아닌 당직으로 인식하지만, 대통령이 대표를 겸하던 시절에는 당의 인사권 재정권을 휘두르며 무소불위의 파워를 자랑한 사무총장들이 많았다. 당의 2인자였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장제원이 사무총장을 맡으면 공천에 적극 관여하는 실세형 총장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을 곁에 두는지 보면서 그의 정치적 역량이나 그릇, 더 나아가 국정 방향을 짐작한다. 한동훈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한 뒤 검찰 수사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장제원이 당의 핵심이 되면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장제원을 어떻게 여기고 쓸지는 그에 대한 세간의 복잡한 평가를 떠나 온전히 대통령 몫이다. 나중에 역사가 평가할 정치적 선택이다. 때문에 차라리 장제원이 대통령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제라도 분명히 밝혀두는 게 그나마 향후 불필요한 혼란이나 윤심에 대한 오독(誤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찐윤 공인 마크’를 받은 최측근인데도 주변 시선을 의식해 괜히 아닌 척해서 대통령실과 여의도를 바라보는 관가, 특히 애꿎은 기업인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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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尹이 원하는 건 1당인가, ‘윤핵관 월드’인가

    집권 세력은 이번 정기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을 보면서 한 가지를 절감했을 것이다. 차기 총선에서 과반이나 최소 1당이 되지 못하면 진정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인세 종부세 인하를 공언했지만 거대 야당에 막혀 법인세는 누더기 인하에 그쳤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예산안을 처리하기도 전에 다음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는 당 대표 선출 룰부터 바꾸려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금은 신경이 온통 차기 총선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한 가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꼼수라는 비판에도 밀어붙인 당원 100% 선출과 결선투표제로 윤핵관 당 대표가 뽑히면 차기 총선에서 유리한가. 다음 총선에서 과반이나 최소한 1당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최소 1당은 가능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1당이 되면 좋겠지만 안 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자. 우선 첫 번째 답. 윤핵관 대표 체제로 2024년 4월 총선에서 1당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윤핵관도 양심이 있다면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현재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169석, 국민의힘 115석.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때문에 몇 석이나 잃을지 알 수 없지만, 두 당의 증감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로 국민의힘이 25∼30석 안팎은 더 얻어야 1당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지역적으로 국민의힘은 영남당이다. 서울 49석 중 9석, 경기 58석 중에선 7석뿐이다. 윤핵관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이 지역에서 의석수를 추가해야 1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윤핵관 후보는 권성동(강원 강릉), 김기현(울산 남을) 의원이다. 수도권 민심을 꾸준히 경청하고 그 여론 변화를 따라갔다고 보기 어렵다. 수도권에서 경쟁력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겸 기후환경대사로 발목이 묶여 있다. 물론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이 수도권에서 표를 더 얻을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집권 세력이 하도 룰을 고쳐가며 윤핵관 대표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윤핵관 후보들의 수도권 경쟁력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주변에선 두 번째 답, 그러니까 1당보다는 원만한 당정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말썽 없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측의 배경엔 이준석 학습 효과가 있을 것이다. 1당을 포기할지언정 제2의 이준석은 용납할 수 없다는 윤핵관들의 인식 말이다. 이준석이 쓸데없이 선을 넘었으니 아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요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일부 조사에서 40%를 넘는 만큼 1당이 아니더라도 ‘작지만 강한 정당’으로 국정을 주도할 수 있다는 자강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기 총선이 열리는 2024년 4월 즈음의 정치적 환경을 감안한다면 이런 구상은 나이브하고 허망하기까지 하다. 지금이야 정권 초반이고 야당도 국정 발목 잡기라는 비판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내후년에도 1당이 아니라면 윤석열 정부는 상상할 수 없을 수준과 속도로 국정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윤핵관들끼리 뭉치기는커녕 서로 책임론을 물어 분열하고, 윤석열 책임론까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묻는다. 윤심(尹心)은 시끄럽고 고단하더라도 정치적 감동을 줘 1당에 도전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윤핵관 월드’를 만들어 안주하겠다는 것인가.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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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론, 尹에게 도움 안 된다

    아직 예산안도 처리하지 못했지만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인사들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내년 3월로 예상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다. 여의도, 용산 어디 가나 전대 이야기다. 여기서 뽑히는 당 대표가 내후년 4월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는 만큼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권한도 막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대 이야기의 핵심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하더라도 한 장관의 차기 총선 출마설이 나왔는데 전대가 임박하니까 당 대표 차출설로 바뀌었다. 얼마 전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라디오에 나와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해 불을 지피더니, 최근 두 차례 관저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같은 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현재 거론되는 대표 후보군에 대해 “성에 안 찬다”고 한 게 기폭제가 됐다. 주 대표는 이 말을 하며 황교안 나경원 전 의원과 김기현 윤상현 조경태 권영세 의원뿐 아니라 윤핵관인 권성동 의원을 거론했다. 그렇다 보니 신중한 성격의 주 대표가 ‘윤심’을 두 차례 듣고 한 말인 만큼 자연스레 “다음 대표는 한동훈인가?”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권에서 한동훈 대표론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오죽 대표감이 없어 답답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면서도, 한국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대선보다 몇 배는 복잡한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스스로 어떻게 정치를 이렇게 쉽게 여기느냐는 것이다. 한동훈 대표론이 현실화될 경우 거론될 수 있는 리스크와 우려는 대충 잡아도 크게 3가지다. 우선 정치 경험이 없는 절친한 검사 선후배가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가 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 미칠 영향이다. 일사불란한 당정 관계를 넘어 당정대 협의는 따로 할 것도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대통령실에 대한 여당의 건설적 견제는 지금보다 어려워진다. 정치 생태계가 검사라는 특수 직역이 절대 우세종이 되면서 인재풀의 다양성이 더욱 파괴된다. 둘째, 여야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한 장관이 대표가 되면 안 그래도 협치의 씨가 마르고 정면충돌만 하는 상황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 협치가 안 되는 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탓도 크지만 한 장관이 여당 대표가 되면 민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명분을 스스로 제공하는 측면도 있게 된다. 셋째, 차기 총선 공천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누구는 정치권에 빚이 없는 한 장관이 당선 가능성만 보고 시스템 공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윤심을 아니까 공천 잡음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천은 온갖 요소가 씨줄과 날줄로 얽히는, 고도의 정무적 감각이 필요한 정치 이벤트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친박들이 감별사 운운하면서 공천을 주무르더니 결국 선거 패배와 탄핵으로 이어졌다. 공천은 법무장관이 검찰국장 도움받아 하는 검사 인사 발령과는 다른 것이다. 총선 전략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게 엉키면 아무리 뒤늦게 책략가를 데려오고 이미지 메이킹을 해도 소용없다. 지금 거론되는 당 대표 주자들이 한 장관보다 더 낫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권이 차기 총선을 이겨 윤 정부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도모하고 싶다면 한동훈은 다르게 쓰여야 한다. 법무장관이나 다른 장관을 더 거쳐 공정과 상식 회복의 키맨으로 활약하거나 정치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당 대표보단 총선에 직접 후보로 나서는 게 순서다. 아무리 한 장관이 똑똑해도 정치, 하물며 당 대표는 머리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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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과 국민의힘, 이대로는 500일 후 총선 망한다[오늘과 내일/이승헌]

    성급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 2022년인데 511일 뒤인 2024년 4월 10일 총선 이야기를 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정치의 시간은 빠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윤봉길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게 엊그제 같지만 505일 전의 일이다.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총선은 그 구심력 때문에 달력보다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국민의힘이 14일 전국 당원협의회를 대상으로 당무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무감사는 다음 총선에서 누구를 공천하고 누구를 솎아낼지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차기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에도 중요하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는 정권의 성패를 가른다. 현재 국회 의석은 전체 299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169석으로 안정적인 과반이다. 국민의힘은 115석, 정의당 6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 무소속 7석이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시해도 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라면 이재명의 민주당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 당 대표 주자들은 자기가 되어야 다음 총선에서 과반을 점하고 윤석열 정부의 식물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 중요하다는 차기 총선을 앞둔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의 현 상태는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수준으로는 다음 총선에서 집권세력은 망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대통령실과 내각의 헐렁함. 참모들과 장관들은 그 나름으로 최선을 다한다 하겠지만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출범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도 한심한 상황의 연속이다. 한덕수 총리의 농담 외신 회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실언 릴레이, 대통령실 수석들의 국감 중 ‘웃기고 있네’ 논란은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업무 집중도, 직무 윤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열심히 해도 몇 가지 허물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게 공직자들의 숙명이다. 이걸 억울해한다면 아마추어다. 허물을 뒤덮을 무언가를 몇 배로 보여주어야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가 뭔가 하는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몇 명을 빼고는 정권을 성공시키겠다는 절실함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목을 걸고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단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대로는 윤 정부를 상징하는 국정 어젠다 하나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이미 국민들의 평가와 역사적 소명이 끝난 윤핵관들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좀비처럼 다시 서성이는 것도 총선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자중하겠다던 장제원 의원, 체리따봉 문자 파동 이후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권성동 의원은 기회 될 때마다 ‘나 여기 살아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요새는 대통령을 후보 시절 수행하던 이용이라는 초선 의원도 나서 비윤 그룹을 저격하고 있다. 다음 총선 승부처는 서울·수도권이라고들 한다. 현재 서울 49석 중 국민의힘은 8석뿐이다. 1석이라도 더 얻으려면 중도층, 2030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은 수십 년간 선거를 통해 입증됐다. 전당대회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윤핵관의 재등장은 2016년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촉발한 진박감별사의 데자뷔다. 국민들은 권력자와 가까운 사람들의 희생과 피에서 감동을 받는 걸 모르는가. 차기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다. 집권세력이 500여 일 후 국정 대혼란을 피하고 싶다면 지금처럼 하면 안 된다. 몇 명 갈아 치우는 인적 쇄신을 넘어 대통령부터 말단까지 전면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출발은 현 상태로는 망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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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승헌]어쩌다가 한동훈 어록까지 등장하게 됐나

    요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어록이 화제다. 주요 현안마다 내놓는 특유의 ‘똑 부러지는’ 화법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다. 24일에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특검 주장에 대해 “수사 당사자가 쇼핑하듯 수사 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민주 국가 중 없다”고 했다. 관련 기사의 댓글창은 팬클럽을 방불케 한다. 아무리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해도 정치인이 아닌 부처 장관이 이런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은 별로 기억에 없다. 그런데 필자는 이 현상을 보면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의 실종, 더 나아가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민주 국가에서 말은 원래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의 본령이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가 언어로 시대정신과 어젠다를 설정하면 국가의 각 조직이 움직이고 민간이 반응했다. 우리도 정치가 살아 있을 땐 그랬다. 공과가 있지만 3김은 다양한 어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이끌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나회를 척결하며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표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효한 정치 철학이다. 김종필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이라면서도 늘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을 이야기하며 산업화가 있었기에 민주화도 가능했다고 설득했다. 3김까지는 아니더라도 6공 시절 김윤환(민정당)-김원기(평민당) 원내대표는 여백과 인내의 언어로 5공 청산 등 정치 협상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금은 어떤가. SNS 등을 이용해 훨씬 다양한 채널로 유권자와 소통할 수 있고 정치적 행보를 할 수 있는데도 299명의 국회의원 중 누구도 좋은 의미의 화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한동훈이라는 5개월 차 국무위원이 독점적으로 국민의 귀를 잡아끄는 현 상황에 대해 여야를 떠나 정치권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검찰의 대장동 수사가 본격화되자 눈물까지 흘려가며 ‘침탈’ 운운하는 이재명 대표를 위시해 일부 초선 의원의 ‘음주 빙의 질문’ 동영상이 돌고 있는 민주당은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치자. 국민의힘에선 무언가를 해보려는 대신 한동훈 효과를 기대하며 그를 2024년 총선의 대표 주자로 내세우자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있다. 국정을 주도해도 시원치 않을 집권여당으로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 115명의 소속 의원이 지금까지 유권자 귀를 붙잡는 말 하나 양산하지 못한 건 여권이 제대로 된 국정 어젠다를 설정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국민의힘 주변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상징적 브랜드가 없다며 용산 대통령실에 손가락질을 하곤 한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윤석열 표 이슈를 발굴했더라도 현재 국민의힘은 제대로 된 대국민 설명 한마디 못 했을 것이다. 검사만 했던 윤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정치 실종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든 걸 서초동 방식으로 처리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에 더해 정치의 영역이었던 말까지 검사 출신 장관에게 내어주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여권 원로는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지금처럼 실존적 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며 “이런 수준의 정치인들이 개헌 같은 고차원의 정치 이슈를 토론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한동훈 현상의 이면엔 정치의 종말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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