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미국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규모도 큰 캘리포니아주의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조9000억 달러(약 5460조 원)다. 미국, 중국, 독일, 일본에 이은 세계 5위로 인도, 영국, 프랑스 GDP보다 많다. 천혜의 자연환경, 실리콘밸리, 할리우드, 스탠퍼드와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같은 명문대를 두루 갖춘 덕이다. 이런 캘리포니아주가 인재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2022, 2023년에만 69만1000명이 떠났다. 테슬라 오라클 HP 팰런티어 등 쟁쟁한 기업도 본사를 다른 주로 옮겼다. 치안 불안, 과도한 규제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강요, 높은 세금과 비싼 생활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많은 이가 그 시발점으로 2014년 주민투표로 통과된 ‘47호 법안’을 거론한다. 이 법안은 초범일 경우 950달러 이하의 절도, 단순 마약 소지 등을 경범죄로 다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감시설 부족, 주 재정 악화 등이 이유였지만 통과됐을 때부터 “범죄만 조장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이후 10년간 주 곳곳에서 약탈과 마약이 판을 쳤다. 사상자만 발생하지 않으면 생계형 경범죄로 처리되니 범죄자 입장에선 거리낄 게 없다. 설사 붙잡혀도 보석금 없이 곧 풀려나는 사람이 태반이다. 시민 불만이 치솟았고 못 견딘 사람은 주를 떠났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47호 법안이 경범죄로 규정한 범죄를 다시 중범죄로 분류하자는 ‘36호 법안’을 발의했다. 5일 대선과 같은 날 실시된 이 법안의 주민투표는 69%의 지지로 통과됐다. 법이 죄를 벌하긴커녕 조장하는 현실에 넌더리를 낸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이 결과에서 보듯 미 진보 진영의 본산 겸 민주당 텃밭이던 캘리포니아주의 민심이 변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고향인 이곳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보다 20.5%포인트 높은 지지를 얻었다. 2016년과 2020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캘리포니아주 지지율은 트럼프 당선인보다 30.1%포인트, 29.2%포인트 높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며 정치 활동도 해온 해리스 부통령이 캘리포니아주에 연고가 없는 두 사람보다 훨씬 적은 표를 얻은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등을 지낼 때 경찰 예산 삭감 등을 거론했다.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파 유권자를 의식해 화석에너지 등 일부 정책에서 ‘우클릭’을 시도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뼛속까지 진보 성향 정치인, 즉 ‘캘리포니아 리버럴’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국 득표율, 대통령 선거인단 확보 숫자에서 모두 패했다. 민주당 역시 상하원,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에 완패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패배 요인은 여러 개이고 모조리 그의 책임만은 아니겠으나 한 가지 시사점은 얻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 리버럴’이 진보 성향의 일부 지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미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기술 강국’ 한국과 ‘자원 부국’ 겸 지정학적 요충지인 중앙아시아는 서로에게 최고의 협력 파트너입니다. 양측의 민관 교류를 강화할 상설 협의체 신설이 시급합니다.”7일 열린 ‘2024 한반도-북방 문화 전략 포럼: 강대국 경쟁 귀환 하 초국적 연대의 모색’에 참석한 한국과 중앙아시아 주요국 인사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다.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오키드룸에서 열린 이날 포럼에는 왕윤종 국가안보실 3차장, 타메르 살리흐 무랏 주한 튀르키예 대사, 수흐벌드 수헤 주한 몽골 대사, 압두살로모프 알리쉐르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 아르스타노프 누그갈리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 키롬 살로힛딘 주한 타지키스탄 대사, 이스마일로바 아이다 주한 키르기즈공화국 대사, 하사노프 라민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 파파스쿠아 타라쉬 주한 조지아 대사, 강영신 외교부 동북중앙아시아 국장, 한석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김지성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 사무총장, 정태인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사 겸 외교부 외교사료편찬위원,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 겸 HK+국가전략사업단장 등이 참석했다.기조 연설자로 나선 왕 차장은 “한국의 혁신 역량과 중앙아시아의 잠재력을 연계해 유라시아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겠다”며 중앙아시아 등 북방 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하자고 촉구했다. 원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등을 보유한 중앙아시아 주요국과 한국의 발달한 정보기술(IT) 산업이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강 교수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 등으로 다자주의 협의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며 “한반도 안정과 평화 구축을 위해서도 중앙아와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아시아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국내 연구자 육성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엘도르 아리포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산하 전략지역연구소 소장 겸 전 외교차관은 양측이 협력할 구체적인 분야로 기후위기 및 인구위기 대처를 꼽았다. 심각한 기후 변화로 중앙아시아 곳곳이 사막화와 수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수자원을 성공적으로 개발한 한국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급속한 노령화와 경제인구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 또한 중앙아시아의 젊은 숙련 노동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옛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진 고려인의 존재 또한 양측 협력을 가속화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알루아 졸드발리나 카자흐스탄 대통령 산하 전략연구소 부소장 역시 △도시계획 △e스포츠 △금융증권 거래 △문화창조 산업 등을 양국의 주요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중앙아시아 주요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몇몇 대도시에 살 정도로 인구 과밀화에 따른 각종 문제가 심각한데 세종, 송도 등에 스마트시티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한국이 도시계획에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 또한 실크로드 시절부터 전세계 주요 물류 수송로였던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한반도-북방 문화 전략 포럼’은 북방 정책 계승을 위해 2021년 출범했으며 매년 포럼을 열고 있다. 올해 포럼 주제는 ‘새로운 시대에의 직면: 강대국 경쟁 귀환 하 초국적 연대의 모색’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1월 5일 미국 대선의 승패는 주요 경합주 중 가장 많은 선거인단(19명)이 걸린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이곳은 미 50개 주 중 천연가스(셰일가스 포함) 생산 2위, 석탄 생산 3위인 화석에너지의 메카다. FTI 컨설팅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주(州) 경제가 가스 산업에서 얻는 이익만 400억 달러(약 54조 원)다. 민주당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1992년부터 2012년 대선까지 내리 6번을 모두 이겼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에게 0.7%포인트 차로 졌다. 4년 후엔 이곳에서 태어난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고향 프리미엄’을 앞세워 1.2%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현재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트럼프 공화당 후보 또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한때 민주당 텃밭이던 펜실베이니아주가 경합주로 바뀐 것은 물, 모래, 화학약품 등을 섞은 액체를 고압으로 분사해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수압파쇄법, 즉 프래킹(fracking)을 둘러싼 민주당 행정부의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출범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내수를 부양하고 중동산 원유 및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을 낮추기 위해 셰일가스 업계를 전폭 지원했다. ‘셰일 혁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곳곳에서 프래킹 붐이 일었다. 그러나 프래킹 과정에서 뒤따르는 지하수 및 대기 오염, 지진 유발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편두통, 비강염, 피로, 천식, 유산 등에 시달린다는 보고서도 속속 발표됐다. 친(親)환경을 표방한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연방정부가 보유한 토지에서는 프래킹 등 모든 신규 시추를 금한다”고 했다. 미국의 에너지 시추는 대부분 민간 소유 땅에서 이뤄진다. 에너지업계와 환경단체의 반발을 동시에 무마하려는 나름의 선택이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해리스 후보는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프래킹을 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 8월 29일 CNN 인터뷰에선 “프래킹을 금하지 않고도 청정에너지를 달성할 방법이 있다. 내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프래킹을 규제하지 않고 어떻게 청정에너지를 실천할 건지, 달라지지 않은 본인의 가치가 뭔지 모호하다. 상당수 유권자가 “발언의 진정성을 못 믿겠다. 전형적인 말 바꾸기”라고 비판한다. FTI 컨설팅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프래킹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펜실베이니아 주민은 12만1000명. 이들의 연봉은 다른 직군보다 훨씬 높은 평균 9만7000달러(약 1억3100만 원)다. 프래킹을 허가한 토지 소유주가 받은 돈은 60억 달러, 세수(稅收) 또한 32억 달러에 이른다. 싫든 좋든 프래킹을 금하면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두 후보 중 누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이길지 모른다. 다만 ‘재집권 시 에너지 규제 철폐’를 외치는 트럼프 후보에게 당당히 맞서려면 해리스 후보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고 본다. “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해 보니 많은 유권자의 생계가 걸린 프래킹을 무작정 도외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입장을 바꾼 건 ‘말 바꾸기’가 아니라 ‘민생 챙기기’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새크라멘토, 오스틴, 탤러해시, 올버니, 해리스버그…. 미국 50개 주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뉴욕,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州都)다. 오스틴을 제외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텍사스주의 최대 도시 역시 오스틴이 아닌 휴스턴이다. 나머지 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 지역에서 주도와 최대 도시가 다르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도농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균형 발전이 이뤄졌다면 작은 도시에 주 정부와 의회를 굳이 둘 필요가 없다. 또한 정보기술(IT)의 발달에도 도농 격차가 쉽게 해소되지 않으며 때론 기술 발달이 격차를 키운다는 점도 알려준다. ‘지방 소멸과 강남 불패의 주요 원인은 KTX 도입’이란 말이 있듯 983만 km²의 광대한 국토를 보유한 미국에서도 전국적으로는 일자리와 인프라가 풍부한 동서부 해안 대도시, 각 주 내에서는 최대 도시로 사람이 몰린다. 도농 격차는 대선에도 영향을 끼친다. 영국 시사매체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6년 미 대선 당시 인구밀도 하위 20% 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의 득표율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보다 32%포인트 높았다. 2020년 대선 때도 해당 지역 내 트럼프 후보의 득표율은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35%포인트 앞섰다. 즉,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화가 덜 된 곳에 사는 미국인일수록 공화당 후보를 찍을 확률이 높고 그 경향성도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00년 당시 미 농촌 유권자의 51%는 공화당, 45%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올 4월 기준 농촌 유권자의 60%는 공화당을 지지하나 민주당 지지자는 35%로 줄었다. 24년 전 6%포인트였던 양측 격차가 4배 이상 많은 25%포인트로 벌어졌다. 올 6월 코넬대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농촌 유권자의 공화당 쏠림은 백인에게만 나타난다. 흑인과 라틴계는 거주 지역과 지지 정당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 하지만 백인은 ‘시골 거주=공화당 지지’, ‘도시 거주=민주당 지지’가 뚜렷하다. 이 같은 현상이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고 우려했다.트럼프 후보는 23일 하루에만 올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스미스턴, 키태닝, 인디애나를 찾았다. 각각 2020년 기준 인구가 351명, 3921명, 1만4044명에 불과한 도시들이다. 그가 펜실베이니아주 주민조차 잘 모를 듯한 3곳을 괜히 누볐겠는가. 현재의 대선 방식으로는 스미스턴 주민 351명의 가치가 공화당 텃밭 텍사스주 주민 351만 명,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주 주민 351만 명에 맞먹거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스미스턴은 인구의 99.1%가 백인이고 14.6%가 빈곤층인 전형적인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다. 천연가스로 운영되는 발전소도 있다. 과거 환경 오염 등을 이유로 “프래킹(Fracking·셰일가스 수압파쇄 추출법)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최근 화석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펜실베이니아주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말을 바꾼 비(非)백인 여성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에게 여러모로 불리한 곳이다. 소수 경합주의 시골에 사는 몇몇 유권자가 3억3000만 명 미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 대통령을 결정하는 듯한 모양새가 얼핏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 다만 대선 체계를 바꾸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한데 공화당은 현 체계가 유리하니 개정을 반대한다. 민주당 또한 농촌의 저소득 백인 유권자를 사로잡으려는 노력에 소홀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고 비백인 인구가 훨씬 적었던 20세기의 선거에서는 마냥 불이익만 받은 것도 아니니 지금 와서 바꾸자고만 하긴 어렵다. 시골의 백인 미국인은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 중 누구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지지할까. 정확히 40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승자가 여기에 달렸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적인 매력이 뿜어 나와 세상을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한다. 능력에 비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사회생활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자신이 주위에 어떤 매력을 풍기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능력만 갈고닦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매력을 키워 세상에 알리고 사람이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다. 이 책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매력 발산 비결을 30가지로 정리해 알려준다. 호감을 주는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매력 교과서’ 겸 ‘성공 인생 지침서’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지지율 상승세를 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이 11월 5일 대선에서 승리할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진다면 크게 두 원인이 꼽힐 것 같다. 우선 그의 빈약한 말솜씨와 언론 대응 능력. 2021년 1월 취임한 그는 같은 해 6월 7일 중남미 과테말라에서 가진 기자회견과 같은 날 현지에서 실시한 NBC방송 인터뷰로 큰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이는 그가 이후 3년간 언론 노출을 꺼리고, 지난달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를 사퇴한 후 후보직을 넘겨받은 뒤에도 기자회견을 마다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부통령인 그에게 해결이 어려운 불법 이민 의제를 맡겼다. 전권을 줬다지만 사실상 ‘욕받이’ 용도다. 사태 해결을 위해 첫 해외 순방지로 과테말라를 택했지만 당시 회견에서 해법이라고 한 말은 “미국에 오지 말라(Do not come to US)”. 자메이카계 부친과 인도계 모친을 둔 이민 2세이면서 “오지 마”만 외치는 그를 두고 민주당 지지층조차 “저 말밖에 할 게 없냐”고 비판했다. 레스터 홀트 NBC 앵커와의 인터뷰는 ‘폭망’이었다. 홀트 앵커가 ‘남부 국경을 방문할 계획이 있냐’고 묻자 그는 “우리는 국경에 가 봤다(We’ve been the border)”고 했다. 당시 그는 국경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조만간 가겠다” 정도로 답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안 갔으면서 갔다고 우겼다. 또 질문은 “‘당신’이 언제 갈 거냐”인데 정체불명의 ‘우리’를 내세워 “우리는 갔다”고 했다. “미 2인자의 인터뷰 실력이 처참하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이 장면은 아직도 그를 비판하는 ‘밈(meme·인터넷 유행어)’으로 쓰인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런 그가 다음 달 10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와의 첫 TV토론에서 이길 수 있을지 우려한다. 그가 부통령 후보로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주의 조시 셔피로 주지사가 아닌 ‘민주당 텃밭’ 미네소타주의 팀 월즈 주지사를 고른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미 대선은 직선제와 간선제를 혼합한 독특한 구조다. 50개 주별로 승패가 갈리고 승자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그래서 승패가 이미 결정된 양당의 ‘고정 텃밭’ 말고 주요 경합주를 이겨야 전체 538명 선거인단의 과반(270명)을 확보하고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 민주당은 21세기 들어 치러진 6번의 대선에서 2004년 대선을 제외하고 다섯 차례 모두 전국적으로 공화당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런데도 2000년과 2016년 대선에서 졌다. ‘전체 득표’는 앞섰지만 주요 경합주에서 패해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대선의 승자 또한 결국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미시간, 애리조나, 위스콘신, 네바다주 등 7개 경합주가 결정한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에는 7개 주 합계 선거인단 93명의 20.4%인 19명이 걸려 있다. 애리조나주(선거인단 11명)와 네바다주(6명)를 모두 이겨도 이 한 곳과 비교할 수 없다. 도농 격차가 심한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대도시 주민은 민주당, 농촌 유권자는 공화당을 주로 지지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내 탄광촌 스크랜턴이 고향이어서 도시와 농촌을 아우를 수 있는데도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1.2%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또 다음 달 TV토론은 주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열린다. 여러모로 셔피로 주지사가 안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부통령 후보군 면접 당시 셔피로 주지사가 야망을 드러내 ‘팀플레이’를 외친 월즈 후보에게 밀렸다고 전했다. ‘야심가 2인자’는 부담스럽다. 그래도 일단 백악관에 입성한 후 고민할 사안이고 제어 수단도 많다. ‘만만한 2인자’를 골라 대선에서 지면 무슨 소용일까.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져야 한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곳곳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공격이 발생해 전 유럽에 비상이 걸렸다.23일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졸링겐에서 괴한의 흉기 공격으로 최소 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하루 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전 세계 무슬림을 위한 보복으로 IS 군인이 공격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에 관한 별도의 증거 및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25일 독일 경찰은 25일 2022년 12월 독일로 온 시리아계 26세 남성을 용의자로 체포했다. 이 남성은 당국에 자신의 범행을 자수했다. 다만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dpa통신 등에 따르면 23일 오후 9시 45분경 졸링겐의 프론호프 광장에서 열린 도시 설립 650주년 기념 축제에 칼 등 흉기를 든 남성이 난입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로 인해 50대 남성 1명, 60대 남성 1명, 50대 여성 1명 등 총 3명이 숨졌다. 경찰은 “범인이 일부러 희생자들의 목을 노리고 공격했다”고 밝혔다.쾰른 인근의 졸링겐은 인구 약 16만 명의 소도시다. 중세부터 칼 제작으로 유명했고 현재도 칼 제조시설 여럿과 칼 박물관 등을 두고 있다.24일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인근 그랑드모트의 ‘베트야코브’ 유대교 회당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인근에 주차된 차량 2대가 불탔고 이 중 1대가 폭발했다. 차량 폭발로 현장의 경찰관 1명 또한 다쳤다.당국의 초기 수사 결과, 폭발은 차 안에 있는 휘발유 병에서 시작됐다. 특히 이날 당국이 검거한 용의자는 범행 당시 팔레스타인 국기와 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는 유대계를 노린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그는 ‘X’에 “테러 가해자를 찾고 예배 장소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며 반(反)유대주의 공격을 엄벌하겠다고 밝혔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삼권분립, 특히 사법부 독립은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거듭난 주요 원동력으로 꼽힌다. 특히 9명의 연방대법관에게 종신직을 부여해 소신 판결을 보장한 것이 주효했다. 그 뒤에는 자신의 뜻과 달라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 역대 대통령, 물러날 때를 알고 자진 사퇴한 몇몇 대법관의 현명한 결단도 존재했다. 다만 입맛대로 사법부를 좌우하려는 최근의 전현직 백악관 주인, ‘용퇴(勇退)’를 모르는 대법관이 넘쳐나는 요즘 상황을 보노라면 이 아름다운 전통 또한 수명이 다한 듯하다. 우선 조 바이든 대통령.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인 현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갈아엎겠다며 대법관의 임기를 18년으로 줄이는 법안을 발의할 뜻을 밝혔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굳이 공론화한 것은 대법원의 낙태권과 소수계 우대정책 폐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내려진 잇따른 유리한 판결에 반발하는 진보 성향 유권자를 11월 대선 전에 결집시키려는 목적이 크다. 이 시도는 ‘내로남불’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와 민주당은 진보 법관이 지금보다 많았을 때는 딱히 종신제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 놓고 대선 석 달 전 건국 후 248년간 유지됐던 제도를 갑자기 바꾸려 들면 누가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까. 트럼프 후보 또한 내로남불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2016년 2월 보수 성향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숨지자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을 새 대법관으로 점찍었다. 트럼프 후보는 “임기 마지막 해의 대통령이 웬 종신직 임명이냐”며 결사반대했다. 당시 공화당도 의회 다수당 지위를 앞세워 오바마 전 대통령의 뜻을 꺾었다. 그랬던 트럼프 후보는 퇴임 넉 달 전인 2020년 9월 ‘진보의 아이콘’ 루스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숨지자 냉큼 당시 48세의 젊은 보수 대법관 에이미 배럿을 그 자리에 앉혔다. 몇몇 대법관의 처신 또한 볼썽사납다. 9명 중 최선임인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수 차례의 향응, 아내 버지니아의 2020년 대선 결과 부정 논란 등으로 대법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33년간 대법관이었고 여러 구설에 오른 76세 대법관에 굳이 종신을 보장해줘야 하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또한 2020년 대선 불복의 상징 ‘거꾸로 된 성조기’를 자택에 걸어 정치 편향 논란을 일으켰다. 양성 평등 판결 등으로 생전 칭송받았던 긴즈버그 전 대법관 또한 용퇴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사후에도 받고 있다. 그는 2014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퇴를 권유하자 거부했다. 진보 진영은 이런 그가 하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숨지는 바람에 배럿 대법관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고 대법원의 보수화 또한 가속화했다고 불만이다. 일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젊은 진보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진보 대법관 셋 중 최연장자인 70세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지금 사퇴해야 한다”고 외친다. 미국인의 기대 수명이 38세에 불과했던 건국 당시 채택한 대법관 종신제를 시대 변화에 발맞춰 바꾸자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권력자가 이를 정파적 목적으로만 이용하려 들고 대법관 개개인 또한 ‘지혜의 아홉 기둥’에 걸맞게 처신하지 않는다면 임기를 줄인들 무슨 소용일까.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곳이 현 연방대법원인 것 같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조청(造淸) 전문업체 대흥식품이 사단법인 벤처기업협회가 유망 기업에 부여하는 ‘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했다고 25일 밝혔다. 그간 정보기술(IT) 기업이 주로 선정됐으나 국내 식품회사 중 3번째로 인증에 성공했다.곡식을 발효해 만든 한국의 전통 감미료 조청은 설탕, 화학 당분 같은 ‘단당류’ 혹은 ‘이당류’가 아니라 ‘다당류’에 속해 우리 몸에 이로운 당분으로 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설탕 소비를 줄이려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 힘입어 각광받고 있다. 조청 같은 대체 당분을 활용한 잼, 시럽, 캔디, 버터 등도 큰 인기다.1962년 설립된 대흥기업은 2016년 토마토를 활용한 ‘토마토 조청 잼’을 개발했다. 이후 ‘베러댄슈가(better than sugar)’ 브랜드로 다양한 조청 과일 잼을 선보이고 있다. 설탕, 방부제, 첨가제, 색소가 없는 ‘4무(無) 식품’으로 꼽힌다. 이 외 ‘제로칼로리 시럽’ ‘비건 버터’ ‘방탄 스프레드’ 등 다양한 건강 식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이달 7일로 9개월을 맞았다. 전쟁 당일 납치된 240여 명의 이스라엘 인질 중 절반만 풀려났을 뿐 나머지 120여 명은 아직 생사 여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인질 가족 또한 애타는 마음으로 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 지난달 23~27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인질 가족 2명을 만났다. 미국 반도체장비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의 이스라엘 지사에 근무하며 한국을 최소 15차례 방문했다는 예후다 코헨 씨(55),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일본에 23년간 거주하며 한국을 수 차례 찾았다는 에프랏 마치카와 씨(56)다. 병역 의무를 수행 중이던 코헨 씨의 군인 아들 님로드(20)는 전쟁 당일 가자지구 근처 나할오즈 군기지에서 하마스에 납치됐다. 마치카와 씨의 고모부 가디 모제스(80) 씨는 인근 니르오즈 키부츠에서 납치됐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인질 귀환에 적극 협력해 달라는 두 사람의 애끓는 사연을 소개한다.①아들 귀환 기다리는 예후다 코헨 씨“님로드가 풀려날 때까지 나의 투쟁을 멈추지 않겠습니다.”지난달 27일(현지 시간) 텔아비브 예술미술관 앞 ‘납치자 광장(Kidnapped Square)’에서 만난 예후다 코헨 씨의 말이다. 이곳은 전쟁 발발 후 매주 토요일 인질 귀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져 일종의 시민 성지(聖地)로 부상했다. 인질 가족을 돕는 각종 단체 또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코헨 씨는 부인 비키 씨와의 사이에 요탐(23), 님로드와 로미 남녀 쌍둥이(20)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님로드의 납치 후 가족 전체가 생업을 버리다시피하고 님로드의 귀환에 매달리고 있다. 코헨 씨는 인질 복귀를 호소하는 민관 합동 대표단에 소속돼 미국 캐나다 영국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을 방문했다. 올해 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만났지만 “우리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고만 주장할 뿐 ‘귀환’이라는 성과를 못 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코헨 씨는 “아들이 납치되기 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네타냐후 총리가 빨리 사퇴하고 누가 됐든 새 총리가 인질 귀환 협상을 지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지난 9개월 동안 성과를 못 냈다는 것은 네타냐후 총리로는 인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인질 귀환 및 휴전을 촉구하는 각종 시민 집회에 열심히 참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15일 20세 생일을 맞는 님로드를 ‘조용하고 수줍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가족 안에서도 ‘평화 중재자(peacemaker)’ 역할을 담당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해외에서 인질 귀환 촉구 연설을 하던 중 딸 로미가 “내가 큰 오빠랑 싸울 때 늘 님로드가 중재자 역할을 해 줬다”고 말했는데 님로드가 가족 내에서도 ‘평화 중재자’인지 자신도 몰랐다며 아들을 그리워 했다. 그는 대학에서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반도체 제조 과정의 이미지 프로세싱 작업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1999~2022년까지 한국을 15회 이상 방문했다. 그는 “한국을 찾았을 때 이태원도 자주 갔다”며 “2년 전 압사 참사 때 세 자녀의 부모로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 2년이 흐른 지금 나 또한 고통받는 부모가 됐다”고 했다.②고모부 귀환 촉구하는 마치카와 씨“이산가족의 아픔이 있는 한국 사회가 인질 가족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것으로 믿습니다.”지난달 23일 ‘납치자 광장’ 인근에서 만난 에프랏 마치카와 씨의 말이다. 그의 고모부 가디 모제스 씨는 전쟁 당일 거주하던 니르오즈 키부츠에서 납치됐다. 고모인 마르갈릿 씨도 같은 날 납치됐지만 최근 풀려났다. 80세 고령이며 시력도 좋지 않은 모제스 씨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지난해 12월 하마스가 부쩍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공개한 것이 전부다.마치카와 씨는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일본식 성(性) 또한 남편을 따랐다. 그는 1990~2011년, 2022~2023년 두 차례를 통해 23년 간 일본에 거주했다. 당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강사, 도쿄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의 문화 담당관(attaché) 등으로 일했다. 그는 “일본에 사는 동안 한국을 수 차례 방문했고 일본에 온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도 자주 가르쳤다”며 분단 역사와 이산가족의 아픔 등 한국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빔밥 또한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마치카와 씨는 “고모부는 10대 시절 내게 수학, 과학 등을 직접 가르쳐줄 정도로 자상한 인물”이라며 “내게는 단순한 가족을 넘어 ‘스승’”이라고 했다. 아시아 사회에서 스승의 의미가 얼마나 큰 지 잘 알지 않느냐며 또렷한 일본어로 ‘센세’라고 했다.이어 “수자원 전문가인 고모부는 인근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폐수를 농업용수로 바꿔 사용하는 법을 가르친 인물”이라며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왜 납치되어야 하느냐”고 했다. 이어 “ 이산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국인이야말로 인질 가족의 아픔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며 “고모부의 납치 후 온 가족이 9개월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마치카와 씨는 “전 세계가 인질 귀환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통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을 인질로삼는 것을 용인한다면 다른 ‘악의 세력’에게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제든지 민간인을 인질로 삼아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격”이라고 강조했다.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0.8에 불과한 한국의 출산율을 우려합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5일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포럼의 연설자로 등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 시 재집권설이 도는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경제사회적으로 강한 복원 능력을 보유했으며 그 비결이 3.0에 달하는 출산율이라고 했다. 정반대에 있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조앤 윌리엄스 미 샌프란시스코 법대 명예교수 등 한국의 저출산을 걱정하는 유명인은 많았다. 서울에서 8000km 떨어진 텔아비브에서도 같은 말을 들으니 한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출산율이 0.65임을 알면 베네트 전 총리가 향후 강연에서 한국 상황을 더 언급할 것이다. 같은 달 23∼27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만난 많은 시민과 정재계 관계자는 묻지 않아도 “자식이 몇 명, 손주는 몇 명”이라며 번창한 후손을 자랑했다. 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의 자금을 유치해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아워크라우드’의 존 메드베데프 CEO는 “네 자녀와 15명의 손주가 있다. 이 중 8명의 손주가 장남 소생”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높은 출산율은 2000년 넘게 떠돌다 간신히 나라를 세우고 아랍국에 둘러싸여 늘 전쟁을 치르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쪽수’에서 밀리면 나라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가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졌다. 다만 이스라엘을 무조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출산율 증가의 주역이 초정통파 유대교도(하레디)인 탓이다. 이들은 평균 6.6명의 자녀를 낳는다. 일반 유대인(2.5명)의 약 세 배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았을 때도 길게 늘어뜨린 구레나룻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쓴 하레디 남편을 따라 7, 8명의 자녀를 데리고 가는 하레디 여성이 많았다. 2009년 75만 명이던 하레디 인구는 2022년 128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인구 945만 명의 13.5%다. 이들의 비중은 2035년 19%로 늘어난다. 잘 알려진 대로 하레디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으며 직업도 없이 정부 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병역과 납세 의무를 지지 않으며 빈곤율도 44%에 달해 사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이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이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폭력 시위를 벌였다. 저출산을 논할 때 늘 등장하는 ‘집값, 사교육비, 일자리, 보육 제도 등을 개선해야 출산율이 오른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모든 정책이 본질적으로 화이트칼라 계층을 겨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보다 양육 환경이 우수하고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이 덜한 북유럽에서도 출산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2013년 1.75였던 핀란드 출산율은 불과 10년 만인 지난해 1.26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즉, 복지제도 확대 같은 정책이 유의미한 인구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제 인구 소멸 위기를 ‘비상사태’로 여기지 말고 상수(常數)로 인정해야 한다. 피해는 어쩔 수 없되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이란 해커들이 최소 70만 건의 이스라엘 의료 기록을 해킹했습니다. 적의 미사일을 막는 ‘아이언돔’뿐 아니라 해킹을 막는 ‘사이버돔’도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정책을 수립하고 관장하는 국가사이버국(INCD·Israel National Cyber Directorate)의 가비 포트노이 국장(55·사진)이 지난해 10월 중동전쟁 발발 후 이란의 사이버 공격이 이스라엘은 물론 이스라엘의 동맹에 대해서도 더 공격적이고 집요해졌다고 경고했다. 그는 31년간 이스라엘군에서 복무한 정보보안 전문가로 2022년 2월부터 INCD 수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24∼27일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사이버위크 2024’ 포럼에서 25일 연설자로 등장한 포트노이 국장은 “지난해 12월 이란의 해킹그룹이 레바논과 인접한 북부 사페드에 위치한 지브 의료센터를 해킹해 70만 건의 의료 기록을 훔쳤다”고 밝혔다. 이어 “각종 국제법과 협약을 완전히 위반했고 무고한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혔다. 인도주의적 한계선을 넘은 행위”라고 분노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 정부기관, 민간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3배 이상 늘었으며 대부분 이란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과 연계된 임페리얼키튼, 머디워터 같은 해킹 조직이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호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오스트리아 등도 공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이런 사이버 공격을 막는 일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며 해결책 또한 국제적이어야 한다”며 각국의 협력을 당부했다. 이번 전쟁에서 위력을 입증한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체계 ‘아이언돔’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공격에 대한 ‘사이버돔’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트노이 국장은 “질병을 막는 백신이 등장할수록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하듯이 사이버 보안 기법을 강화할수록 사이버 공격 수법 또한 더 교묘해진다. 따라서 국제 협동과 학습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INCD가 한국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의 사이버 보안 담당 기관과 긴밀히 협력하며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 또한 특정 국가의 힘만으로는 진화하는 사이버 공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INCD는 남부 네게브 사막의 거점 도시 베르셰바에 ‘컴퓨터긴급대응팀(CERT)’이라는 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세계 최초로 해킹에 대한 긴급 구조 번호도 도입했다. 이스라엘 국민은 스마트폰, PC 등에 대한 해킹 우려가 생길 때 언제 어디서든 ‘119’를 눌러 CERT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이스라엘은 동시에 ‘2개의 전쟁’을 치를 여유가 없습니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도심에서 만난 시민 알론 씨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며 한 말이다.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이 약 9개월째로 접어드는 와중에 최소 15만 기의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한 헤즈볼라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그는 “헤즈볼라와 전면전이 벌어지면 레바논과 가까운 북쪽 국경지대는 물론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전역에 미사일이 날아올 것”으로 우려했다. 같은 달 23∼27일 방문한 텔아비브는 곳곳에 고층 빌딩이 가득하고 밤늦도록 해변가에 인파가 북적이는 대도시였다. 다만 식당, 상점, 버스 정류장 등 어디를 가도 하마스에 납치된 사람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가자지구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쟁으로 최소 3만7718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지고 1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 “이, 2개의 전쟁 치를 여력 안돼”… 인질 가족들은 애타는 反戰시위헤즈볼라, 미사일-로켓 15만기 보유, 이 전역 사정권… 이란 개입 가능성도인질 가족들, 귀환협상 지연 우려… “네타냐후 사퇴, 새 총리가 지휘해야”가자지구 사망자 3만8000명 육박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은 이미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에도 추가 악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시된다. 택시 기사 엘라이 씨는 “전쟁 발발 후 관광객 등이 줄어 수입이 반으로 감소했다. 또 전쟁을 치르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스라엘 재무부에 따르면 정부는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후 올 5월까지 최소 697억 셰켈(약 26조 원)을 썼다. 국방비 급증, 하마스로부터 공격당한 지역의 재건 비용 등을 감안하면 추가로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같은 달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또한 7.2%로 지난해(4.2%)를 큰 폭 웃돌았다. 이에 정부 일각에서 세금 인상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오나 국민 반발이 예상된다.● “헤즈볼라 미사일·로켓에 안전지대 없어” 수니파인 하마스와 달리 헤즈볼라는 종파가 같은 이란으로부터 무기, 자금 등을 직접적으로 지원받고 있다. 스스로도 ‘이란 대리인’을 자처한다. 이런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른다면 이란의 개입을 불러와 전선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 또한 지난달 28일 소셜미디어 ‘X’에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전면 공격하면 ‘말살 전쟁(obliterating war)’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후 북부 국경지대를 소개하고 약 6만 명의 주민을 대피시켰다. 이후 헤즈볼라와는 국지전만 이어 왔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최고위 지도자 탈렙 사미 압둘라 등을 공습으로 사살하고 헤즈볼라 또한 맞보복에 나서면서 전면전 우려가 고조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은 거듭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한다. 이에 미 정보 당국이나 몇몇 유럽국은 향후 며칠 안에 양측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지난달 27일 전했다. 텔아비브와 북부 국경지대의 거리는 약 102km. 이스라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에 따르면 헤즈볼라가 보유한 15만 기의 미사일과 로켓 중 절반이 넘는 8만 기는 최대 사거리 100km의 중장거리 로켓이다. 이들로도 얼마든지 타격이 가능하다. 텔아비브, 예루살렘에 이은 제3도시 하이파는 국경에서 불과 27km 떨어져 헤즈볼라가 보유한 사거리 20km의 단거리 로켓 4만 기로도 위협할 수 있다. 최대 사거리 300km인 장거리 미사일 3만 기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이스라엘 전 국토가 헤즈볼라의 공격 대상인 셈이다.● 인질 가족 “우리는 더 뒷전” 인질 가족은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이 그렇지 않아도 지지부진한 귀환 협상에 타격을 미칠까 우려한다. 하마스는 전쟁 발발 당시 240여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납치했고 절반만 풀어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남아 있는 120여 명 중 70여 명이 이미 숨졌고 50여 명만 생존해 있다.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이면 이 50여 명의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크다. 지난달 27일 텔아비브 예술미술관 앞 ‘납치자 광장(Kidnapped Square)’에서 만난 군인 인질 님로드 코헨 씨(20)의 아버지 예후다 씨(55)는 “네타냐후 총리가 빨리 사퇴하고 새 총리가 인질 귀환 협상을 지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전쟁 후 매주 토요일 인질 귀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져 일종의 시민 성지(聖地)로 부상했다. 인질 가족을 돕는 각종 단체 또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또 다른 시민 요시 코헨 씨는 “한때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했지만 전쟁 장기화, 부패 의혹 등으로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요시 코헨 전 모사드 국장이 인질 귀환 협상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새 총리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가자 주민 고통도 계속 가자지구 주민의 고통 또한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3만8000여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는 물론이거니와 고질적인 경제난 또한 심화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쟁 전 45.1%였던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79.1%로 치솟았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 전 가자지구 밖에서 건설 근로자 등 육체 노동을 담당했다. 전쟁으로 가자지구를 벗어날 길이 없어지자 꼼짝없이 실업자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지구 내 지상전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29일 WSJ는 네타냐후 정권이 가자지구 북부에 주민들을 격리할 ‘외딴섬’ 같은 구역을 조성하고 남부에서는 하마스 소탕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상전 지속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더 늘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구호품을 받으려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발포, 해외 구호단체 직원에 대한 오폭, 지난달 인질 4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274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상황에서 추가 민간인 희생은 결국 이스라엘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이다. 텔아비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다음 달 4일 영국 총선이 실시된다. 대다수 언론과 여론조사회사는 집권 보수당이 참패하고 제1야당 노동당이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정권을 잡는다고 본다. 승리 정당은 확정됐고 노동당이 하원 650석 중 몇 석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노동당 일각에서는 소속 최장수 총리인 토니 블레어 전 총리(1997∼2007년 재임)를 탄생시킨 1997년 총선의 압승(418석)을 내심 기대한다. 다만 노동당이 승리해도 그 이유는 노동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보수당이 못해서라는 원인 분석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내 실력’이 아니라 ‘상대 헛발질’로 집권했으니 수권(受權) 능력을 입증하라는 요구 또한 빗발칠 것이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62)의 앞날이 녹록하지 않은 이유다. 보수당이 주도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가 2016년 가결된 후 노동당은 내내 집권 기회를 잡았다. 투표 전부터 “값싼 동유럽 인력과 상품 등이 차단되면 교역 비중이 높은 경제에 좋지 않고 수도 런던의 금융 허브 위상도 타격받는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투표를 강행했고, EU와의 이혼 조건을 둘러싼 진통 또한 상당했다. 이를 감안하면 보수당이 이후 전국단위 선거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노동당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2015∼2020년 당을 이끈 제러미 코빈 전 대표, 후임자 스타머 대표 모두 보수당 공격에만 앞장섰을 뿐 유권자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오랫동안 수권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당내 코빈 전 대표를 따르는 강경 좌파 ‘코빈파’와 블레어 전 총리를 추종하는 온건 좌파 ‘블레어파’의 내분도 격화했다. 노조, 영국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불리는 중북부 유권자를 등에 업은 코빈파는 EU 체제가 저소득층 일자리를 뺏었다며 당론에 반하는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브렉시트 후에도 이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블레어파는 경제 악영향을 우려해 브렉시트를 반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등 대도시 젊은이가 블레어파를 지지한다. 이렇듯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던 스타머 대표가 총리 등극의 기회를 잡은 것은 브렉시트 여진이 여전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고물가 고금리 위협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주택 소유자는 과거 보수당의 ‘집토끼’였다. 하지만 생활비와 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난 이들이 노동당 지지자로 변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다만 스타머 대표의 앞날이 순탄하진 않다. 국제 통계사이트 ‘슈타티스타’의 지난달 조사에서 영국인의 55%는 “브렉시트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올바른 결정’(31%)보다 훨씬 많았다. 브렉시트를 되돌릴 길이 없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그 후폭풍을 완전히 없애고 경제 성장에 매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보여준다. 당내 화합 또한 쉽지 않다. 코빈파와 블레어파는 애초에 반(反)보수당 외에는 접점이 없다. 대(對)이스라엘 정책도 다르다. 특히 코빈 전 대표는 과거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지지 집회에 참석했고 여러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이 여파 등으로 2020년 10월 제명됐다. 당시엔 곧 복귀했지만 지난달 24일 재차 제명됐다. 일부 코빈파는 제명을 주도한 스타머 대표에게 적개심을 보인다. 14년 만의 집권 기회를 잡았지만 경제는 어렵고 당내외 반대 세력 또한 상존하는 상황. 스타머 대표가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까. 그는 최근 “집권 시 핵잠수함 추가 도입” 같은 ‘우클릭’ 공약을 내놓고 있다. 그가 성장과 분배를 결합한 ‘제3의 길’로 장기집권한 블레어 전 총리에 필적할 지도력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고뭉치’ 아들 헌터(54)가 과거 불법으로 권총을 구매하고 소지했다는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이 3일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추문 입막음’ 형사재판에서 지난달 30일 유죄 평결을 받은 지 4일 만에 바이든 대통령 측의 사법 위험이 불거졌다. 이르면 9월부터 헌터의 탈세 혐의 재판도 시작된다. 야당 공화당은 마약, 외국 기업과의 결탁 의혹, 난잡한 사생활 등으로 오래전부터 물의를 일으켰던 헌터가 부친의 후광으로 감옥에 가지 않았다고 공격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헌터의 추가 의혹이 드러나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하다. 11월 대선에서 맞붙는 두 후보가 본인이나 가족의 재판에 휩싸이면서 선거 불확실성도 커졌고, 양 지지층 간 대립도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바이든 “무한 신뢰”, 재판 지켜본 질 여사 헌터는 2018년 10월 바이든 일가의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의 한 총기 상점에서 불법으로 권총을 구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헌터는 마약 중독 이력이 있어 델라웨어주에서 총기를 살 수 없는데도 샀고, 이를 위해 구매 당시 서류에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고 허위로 기재했으며 11일간 불법으로 총을 소지한 후 버렸다는 3개 혐의를 받고 있다. 델라웨어주 윌밍턴 연방법원은 재판 시작 첫날인 3일 이 사건의 유무죄를 평결할 12명의 배심원단을 선정했다. 이후 검찰, 헌터 변호인, 증인 등의 진술이 이어진다. 재판에는 2, 3주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총기 불법 소유는 중범죄다. 3개 혐의 모두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25년의 징역형에 더해 75만 달러(약 10억1250만 원)의 벌금까지 내야 한다. 다만 전과가 없는 초범이어서 실제 징역형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아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갖고 있다”고 헌터를 두둔했다. “나는 대통령이지만 아버지이기도 하다”며 동정론도 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이자 헌터의 의붓어머니인 질 여사는 이날 법정에 직접 나와 재판을 방청했다. 올 9월부터는 헌터가 2016∼2019년 4년간 최소 140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재판도 시작된다. 이 사건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시절 헌터가 ‘아버지의 후광’으로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부리스마의 임원을 지내며 고액 연봉을 받았다는 의혹과 맞물려 있다. 바이든의 대선 가도에는 총기 소유보다 이 사건이 위협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바이든 “트럼프는 유죄 평결 범죄자” 바이든 대통령은 3일 코네티컷주 모금 행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유죄 평결을 받은 중범죄자(convicted felon)’라고 공격했다. 바이든 대선 캠프는 그간 수차례 트럼프를 범죄자로 규정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는 것은 처음이다. NBC 뉴스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4일 불법 이민자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은 불법 이민자가 일 2500명을 넘으면 국경을 폐쇄하고 1500명 이하로 떨어질 때 개방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일 불법 이민자 수는 4000명대여서 사실상 11월 대선 전까지 국경을 폐쇄하겠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재임 시 국경장벽 건설을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맞서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양측의 사법 위험에도 두 후보의 지지율은 초접전 양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평결 직후인 지난달 31일∼이달 2일 모닝컨설트 조사에서 ‘오늘 대선이 치러지면 누구를 뽑겠느냐’란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44%를 얻어 바이든 대통령(43%)을 1%포인트 앞섰다. 로이터통신과 입소스가 같은 질문으로 지난달 30, 31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41%로 트럼프 전 대통령(39%)을 2%포인트 격차로 눌렀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위워크 코리아(WeWork Korea)가 한국 내 임대 관련 협상을 마무리하고 부동산 포트폴리오 조정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조정으로 을지로 지점은 오는 9월 13일 운영을 종료한다. 이에 따라 위워크 코리아 전국 지점은 총 18개(서울 16개, 부산 2개)가 된다.위워크 코리아는 2023년 기준 매출 1225억 원을 달성해 순수 공유오피스 매출 기준 국내 1위를 고수했다. 위워크 본사 또한 지난달 30일(미국 동부 현지 시간) 미국 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 최종승인을 받아 오는 6월 중순 파산보호신청을 통한 기업회생 절차(Chapter 11)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파산보호를 신청한 위워크는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포트폴리오 조정을 진행, 이를 통해 임대료를 총 120억 달러 이상 절감하게 됐다. 또 4억 달러의 신규투자를 유치했고 미 자산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야디(Yardi)를 최대 주주로 맞았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대기업과 부유한 사람은 ‘정당한 몫(세금)’을 내야 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전 계층에 대규모 감세를 하겠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11월 미국 대선에서 맞붙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세금정책이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도입한 감세 조치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유층과 대기업의 세금을 올려 서민을 지원하겠다고 맞섰다. 미 최대 도시 뉴욕의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펜실베이니아주 탄광촌 스크랜턴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바이든 대통령은 세금을 보는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도한 세금이 기업 활동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부자 증세’로 학자금 대출 탕감 같은 무상복지를 펴는 것은 ‘매표 행위’라고 비판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감세론자가 주장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즉 부유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활력을 늘린다는 주장은 허구라고 반박한다.● 트럼프 ‘감세’ vs 바이든 ‘증세’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일 대선 유세에서 “바이든의 세금 인상 정책을 대신해 중산층, 상위층, 하위층, 비즈니스 계층에 대규모 감세를 하겠다”며 전 계층에 대한 감세를 선언했다. 그는 집권 첫해인 201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고, 유산세(Estate Tax·한국의 상속세 형태) 감면 등 여러 감세 정책을 시행했다. 이것이 팬데믹 이전인 2018, 2019년 미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하며 주요 치적으로 꼽는다. 2025년 말 만료되는 개인 소득세 감면 정책도 연장할 뜻을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 2월 유세에서도 “이전에 본 적 없는 추가 감세를 하겠다”며 새로운 ‘트럼프식 호황’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낮춘 법인세율을 다시 28%로 올리고, 자산 1억 달러(약 1300억 원) 이상의 부유층에 소득세 최저세율 25%를 적용하는 일종의 ‘부유세’를 도입할 뜻을 수차례 밝혔다. 그는 3월 국정연설에서 “억만장자들이 연방정부에 내는 세율이 대다수 미국인보다 훨씬 낮은 8.2%에 그친다. 이를 25%로 높이겠다”며 “억만장자가 교사, 청소부, 간호사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아선 안 된다”고 부유세 도입 의지를 강조했다. 유세 때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가 플로리다주 대저택 마러라고 리조트임을 겨냥해 “나는 마러라고가 아닌 스크랜턴의 눈으로 경제를 본다”고 외친다.● 이코노미스트 “둘 중 누가 돼도 정부부채 ↑” 두 사람은 상대방의 세금정책을 강하게 비판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자 증세로 학자금 대출 탕감 같은 현금복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표 행위’라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현금복지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낙수 효과가 없을뿐더러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자이기 때문에 부유층 위주의 감세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공격한다. 지난달 16일 고향 스크랜턴 유세에서도 “트럼프는 부자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상속이라는 걸 배웠다”고 날을 세웠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감세를 주장하는 트럼프, 사회복지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바이든 누가 대선에서 승리해도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연방정부 지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인과 장애인 대상 공공 의료보험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코노미스트는 “노인 의료보험 및 연금 지출을 해결하지 못하면 35조 달러(약 4경8000조 원)에 달하는 미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한국의 경기 회복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 성장세가 북한과의 긴장 고조, K팝 등 한류의 문화적 성공에 가려져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진단했다. 대니얼 모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8일(현지 시간)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저평가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진단했다.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산업 등에서 거둔 한국 경제의 성과보다 북한 평양과의 긴장 고조, 문화 산업의 성공 등으로만 주목 받는다며 한국이 중국,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간과되고 있다고 했다.그는 많은 이가 한국을 떠올릴 때 방탄소년단(BTS), 뉴진스 등 아이돌 그룹만 생각한다며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 칩, 최신 전자기기 등은 한국이 보유한 자산이다. 한국 경제에는 문화 수출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모스 컬럼니스트는 한국의 올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3.4%로 집계돼 전망치를 상회했고, 건설업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경기 호조의 증거로 들었다. 특히 4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 넘게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레이먼 마체코 팔도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국제관계학 교수 겸 벨기에자유대 한국 석좌교수, 로빈 클링어 비드라 영국 킹스비즈니스스쿨 교수 또한 7일 미 외교매체 포린어페어스(FA)에 ‘한국과 일본의 혁신 비결’이라는 공동 기고를 게재했다. 두 교수는 “한국 정부가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협력을 장려해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다”며 두 나라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협력이 경쟁력 향상에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민관 합동의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조성했다고 호평했다. 한국의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으로 국가 전체의 혁신성을 개선한 사례라고 지목했다.이어 “한국과 일본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선박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이 역시 정부, 대기업, 스타트업 간 협력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딥스테이트’의 방해로 억울하게 쫓겨났다.”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지난달 1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49일 집권한 영국 최단명 총리인 그는 재무부, 중앙은행, 예산처 등 주요 부처 곳곳에 좌파 인사가 포진해 비밀관료 집단 ‘딥스테이트(deep state)’ 일원으로 활동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애국자인 자신의 감세 정책을 훼방 놓아 뜻을 펼 수 없었다고 했다. 트러스 전 총리가 집권한 2022년 9, 10월 영국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나들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원래 나랏빚이 많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심화한 고물가 고금리로 국채 이자 또한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깎으면 빚은 늘고 물가는 더 오른다. 즉, 애초에 감세를 하면 안 되는데 무리하게 고집해 파운드화 가치를 급락시킨 것이 사퇴 원인이다. 그는 명문 옥스퍼드대에서도 최상위 학생만 입학하는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했다. 34세에 의원이 됐고 외교, 법무, 국제통상, 환경 등 주요 부처 수장을 지냈다. 47세엔 총리에 올랐다. 엘리트 코스만 밟으며 출세 가도를 달린 그가 실체도 불분명한 몇몇 인사의 공작에 당했다고? 전 세계 4분의 1을 지배했고, 지금도 6위 경제대국인 조국을 욕보이는 일이다. 진짜 목적은 그가 지난달 출간한 저서 ‘서구를 구하기 위한 10년’을 홍보하려는 ‘노이즈마케팅’ 성격이 짙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는 책에서 범세계적인 보수주의 부활이 필요하며 좌파, 환경단체 등은 일종의 사회악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주의에 장애물인 유엔,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도 해체하자고 외친다. 또 자신과 노선이 비슷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을 위해 선거 운동원처럼 뛰고 있다. 올 2월 미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에 참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은 각국 전현직 지도자는 많아도 유세장에 나타난 사람은 트러스가 유일하다. 전직 총리가 대서양을 오가며 논란을 야기할 언행으로 일관하는 것은 먹고살기 힘든 영국 서민의 짜증 지수를 높이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영국의 소비자물가 전망치는 2.7%로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높다. 성장률 예상치 또한 0.4%로 독일을 제외하면 가장 낮다. 이런 트러스의 반대편에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있다. 현직 때는 오일쇼크에 따른 경제난, 이란 혁명세력의 미 대사관 점거 및 인질 억류 등으로 인기가 없었다. 재선에 실패했지만 퇴임 후 각국 저소득층에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봉사, 기아 퇴치 운동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탔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지난해 2월부터 암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 카터 전 대통령이 호스피스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확산시켰다고 호평했다. 많은 미국인이 호스피스 치료를 아예 안 받거나, 너무 늦을 때까지 미루는데 초고령 환자인 그가 15개월 넘게 생존해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꿨다는 것이다. 1924년 10월 1일 생인 카터 전 대통령은 다섯 달 후 100세가 된다. 퇴임 후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권력자가 흔치 않은 시대. 그가 꼭 생일을 맞았으면 좋겠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미국 경제는 내수가 이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기준 개인의 소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68%를 차지했다. 즉, 미 소비자의 편익이 커져야 경제가 성장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미국산에 비해 값싼 해외 상품이 넘쳐나는 게 좋다. 문제는 미 생산자, 특히 백인 노동자 계층이 이 명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데 있다. 그들 또한 한편으론 소비자다. 그러나 이들은 “실업자가 될 판인데 싼 물건이 있어도 살 돈이 없다. 무슨 소용이냐”고 항변한다. 미 제조업 메카였지만 자유무역과 세계화 여파로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벨트’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직접 겪은 현실이기에 경제학적 사실을 거론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종의 ‘확신범’이다.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집권 시 통상 정책을 관할할 것이 확실시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주 애슈터뷸라에서 나고 자랐다. 철강업이 발달했던 애슈터뷸라는 1960년대 2만4000여 명이던 인구가 약 3분의 2에 불과한 1만7000여 명으로 줄었다. 본인은 의사 부친을 둔 덕에 평탄한 삶을 살았지만 고향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이웃과 지인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생생히 목격했다. 이런 그는 자유무역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개념이며 중국은 미국의 적(敵)이라고 확신한다. 헐값에 과잉생산된 중국산 제품이 넘쳐날수록 미 노동자의 삶은 나빠지고 이런 식으로 중국 경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미 민주주의 또한 위협받는다는 신념이 투철하다. 저렴한 가격, 자원의 효율적 배분, 규모의 경제 달성 같은 자유무역의 이점은 경제 원서에 나오지 현실은 다르다는 게 한결같은 그의 주장이다. 그가 트럼프의 재집권 시 1985년 ‘플라자합의’를 다시 추진할 것이란 보도가 잇따른다. 당시 일본, 옛 서독 등에 대한 무역적자로 신음하던 미국은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호텔에서 엔화, 마르크화 등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라고 압박해 관철시켰다. 특히 USTR의 ‘젊은 피’였던 38세의 혈기 왕성한 공무원 라이트하이저는 일본 측 관계자가 초기에 제시한 협상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해당 문건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이 관계자의 면전에 날렸다. 그에게 ‘미사일 맨’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한국은 플라자합의 당시 의도하지 않은 수혜를 누렸다. 일본과의 수출 경쟁 품목이 많은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상승해 상대적으로 한국산 수출품의 가격이 싸진 덕이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이 ‘제2 플라자합의’를 추진한다면 패권 갈등 및 무역 전쟁 중인 중국, 엔화 가치가 연일 하락 중인 일본은 물론이고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 또한 거센 원화 절상 압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 “내가 해 봐서 아는데…”를 시전하는 이다. 경제적 위용만 놓고 보면 39년 전 일본의 위상은 지금의 중국 못지않았다. 이런 일본을 굴복시켰던 그다. 한국을 얼마나 몰아붙일지 벌써부터 오금이 저린다. 싫든 좋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착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사정 또한 봐주지 않을 게 뻔하다. 극한 갈등과 분열에 빠진 한국이 이런 라이트하이저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지 암담할 뿐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