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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아침, 작고 흰 공간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위아래로 긴 종이들 앞에선 거침이 없었는데, 유독 좌우로 긴 종이 한 장 앞에서 미적거리게 됐다. 정당 추천이 금지돼 후보들이 선거구마다 순서를 달리해 가로로 배치되는 교육감 투표용지였다. 결국 짜증인지 체념인지 모를 감정을 도장에 실어 누르고 나왔지만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교육감이라는 이름을 달기엔 비교육적인 후보들, 교육감의 권한으로는 지킬 수 없는 공염불을 한 후보들 때문이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니 하긴 했다만, 왠지 알면서도 사기 당하는 기분이었다. 동병상련인 이들이 많았나 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무효표와 기권이 전체 선거인의 51%나 됐다. 성심껏 투표소까지 간 사람마저도 절반 넘게 교육감은 포기했다는 뜻이다. 아예 투표를 안 한 사람까지 더하면 교육감 선거는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을 받은 셈이다. 교육감 선거의 특이한 점은 이해 당사자가 적다는 거다. 시민이면 누구나 자신의 생활과 직결되는 여타 지방선거와 달리 교육감 선거는 교직원이나 초중고교생 학부모가 아닌 이상 별 영향이 없다. 자녀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남의 나라 대통령보다 먼 사람일 뿐이다. 반면 교육감이 소수의 이해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내 아이가 기초학력이 떨어지는데 학교가 진단평가를 하고 지도해 줄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예산이나 인력이 제대로 지원될지, 내가 가고 싶은 특목고가 공정한 평가를 받아 유지될 수 있을지가 교육감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이를 결정하는 건 진영에 따라, 혹은 누군지도 모르고 표를 던지는 다수의 유권자다. 교육감 선거의 또 다른 특이점은 유독 못 지킬 공약(公約)이 많다는 거다. 가령 이번 서울시교육감 보수 후보들은 모두 자사고와 특목고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개별 학교 평가와 별개로 체제 자체를 유지하려면 정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 이들이 반대한 고교학점제 역시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둘 다 교육감 권한 밖의 공약(空約)이라는 얘기다. 시장 후보가 전 국민 건강보험료를 낮추겠다고 나서는 격이다. 하지만 교육감에 관심 없는 유권자들이 교육감의 공약에 관심이 있을 리는 더욱 만무하니 선거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과거 임명되거나 간선됐던 교육감이 직선제 대상이 된 건 2007년이다.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자는 취지로 직선제가 실시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과연 그렇게 됐나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정당이 개입하지 않으니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됐다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동안 교육감 선거는 그 자체로 정치판이 됐다. 후보들 사이에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진영 간 대립, 진영 내 단일화 다툼만 커지고 있다. 닳고 닳은 정치인들도 재판 중에는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하는데, 돈이나 채용 문제로 사법기관을 드나들면서도 교육감 선거에 나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명색이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고소 고발을 일삼고 상욕까지 한다. 교육감 선거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일반 유권자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 싸움에 애꿎은 학생과 학부모 등만 터지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교육 수요자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없는데 잃은 것은 너무 많다. 교육자에 대한 신뢰, 교육 정책의 일관성이 특히 그렇다. 모두가 직접 교육감을 뽑아야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는 허상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까.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foryou@donga.com}
1일 실시된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진영 후보들이 약진했다. 2014년 교육감 선거 이후 줄곧 진보 교육감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과 다른 결과다. 하지만 보수 후보들이 단일화에 실패한 서울은 진보 진영인 조희연 현 교육감의 당선이 유력하다. ●서울, 보수 분열에 또 진보 교육감 조희연 후보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3선 교육감이 될 전망이다. 보수 후보들이 자중지란한 탓에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조 후보가 반사 이익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2일 오전 0시 개표 기준 조 후보의 득표율은 40.96%다. 단일화로 갈등을 빚었던 박선영(23.90%) 조영달(6.66%) 조전혁(19.45%)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조 후보의 득표율을 훌쩍 넘는다. 2018년에도 조 후보(46.58%)는 보수 진영의 박 후보(36.15%)와 조영달 후보(17.26%)가 단일화를 하지 못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조 후보가 수도 서울 3선 교육감이 되면 윤석열 정부와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첫 임기 때부터 ‘혁신교육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해온 자율형사립고 폐지 문제를 둘러싸고 크게 대립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2025년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자사고 등을 부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조 후보는 유세 과정에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윤석열 정부는 교육정책 깜깜이 정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 후보의 정책 추진 동력이 이전보다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 후보가 3선에 성공해도 득표율은 재선 때보다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들을 특별채용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기소된 사건의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도 악재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서울시의회에서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되면 조 후보의 주요 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보수 교육감, 소수에서 절반으로 2일 오전 0시 개표 현황과 그간 여론조사 결과 등을 종합하면 8개 시도(부산 대구 대전 경기 강원 충북 경북 제주)에서 보수 교육감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3명에서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이 경우 교육감이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는 지역은 부산 경기 강원 충북 제주다. 특히 전통적으로 진보 교육감이 집권해온 경기와 강원에서 각각 임태희 후보와 신경호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 처음으로 보수 교육감이 탄생하는 점이 눈에 띈다. 전교조 출신의 현직 교육감이 출마했던 충북과 제주도 보수 교육감을 맞게 됐다. ‘묻지마 투표’로 불리는 교육감 선거에서 현직 프리미엄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2018년에는 현직 교육감 12명이 출마해 모두 당선된 바 있다. 이번 선거 결과 전교조 출신 교육감은 6명(인천 도성훈, 울산 노옥희, 세종 최교진, 경남 박종훈, 충남 김지철, 전남 김대중)으로 2018년(10명)보다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그동안의 진보교육 정책에 대한 심판이라고 분석했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혁신교육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학력 저하와 사교육비 폭증 등 문제가 나오니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진 것”이라며 “보수 후보들이 단일화를 잘 이뤘다면 더 많은 지역에서 보수 교육감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보수 교육감이 절반 정도 되는 만큼 현 정부의 정책 추진은 원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최예나 기자 yena@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요즘은 아예 없앤 학교도 있다지만, 예전엔 개근상이 퍽 중요했다. 학생이라면 모름지기 받아야 할 상으로 여겨졌다. 졸업식에서 전 학년 개근상을 받으면 ‘성실의 표상’으로 박수를 받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각도 조퇴도 없이 학교생활에 임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6년(초등학교) 혹은 3년(중고교) 내내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아픈 걸 꾹꾹 참고 학교에 가야 하는 걸까? 나아가 친구들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데도 학교에 가는 게 옳은 걸까? 코로나19를 전후로 이전엔 개근이 정상이었다면, 이제는 아프면 학교에 안 가는 게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20년 상병(傷病)수당 도입을 예고했다.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병이나 부상으로 쉬어도 수당을 지급해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다. 과거 상병수당 논의 과정에선 ‘근면·성실이 중대 가치인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라는 회의론이 컸다. 하지만 제도보다 강력한 게 코로나19였다. 아프면 쉬는 게 정상이라는 걸 경험한 사회적 분위기가 7월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상병수당을 빨리 안착시킬 수도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를 헤쳐오면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게 된 건 여러 가지다. 코로나19 이전엔 점심시간에 혼자 붐비는 식당에 가면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주변에서 흘끔흘끔 쳐다봐 불편하다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요즘은 ‘혼밥’은 물론 ‘혼술’을 할 수 있는 식당도 많아지고, 사람들도 이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내 경우 몇 년 전 여름 목감기가 심해 마스크를 쓰고 외출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미용 시술이라도 했냐”고 물어 마스크를 벗어버린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더라도 감기 기운이 있거나 독감이 유행하면 마스크부터 챙겨 쓰는 이들이 많을 거다. 방역당국이 18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제하면서 여기저기서 정상 등교, 정상 근무, 정상 영업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교육부도 5월 1일부터 교육활동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25개월간의 거리 두기 동안 사회 인프라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일상 회복’이라는 이름 아래 단순히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오류는 없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정상적인 등교나 근무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학생과 교사, 교수들이 원격수업을 충분히 경험한 만큼 수업 주제나 프로젝트 방식에 따라 대면수업과 원격수업을 일부 혼용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회사들은 “코로나 끝났으니 사무실로 나오라”고 공지하기 전에 업종이나 업무에 따라 재택근무가 더 효율적인 부분은 없었는지 따져보고 새로운 근무 형태를 고민해볼 일이다. 지난 연말 만난 세종시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예전에는 온라인으로 간단히 논의해도 될 사안들을 굳이 전국팔도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 인근 회의실에 모여 결정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코로나19로 비대면 회의를 해보니까 예전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었다. 며칠 전 이 공무원을 다시 만났더니 “또 KTX 타기 시작했다”며 혀를 찼다. 한 발 앞으로 나가긴 정말 어렵지만 두 발 뒷걸음치는 건 순식간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foryou@donga.com}
여성가족부의 연혁은 ‘2001년 여성부, 2005년 여성가족부, 2008년 여성부, 2010년 여성가족부’로 도돌이표를 그려 왔다. 여성가족부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즉 양성평등가족부다. 그렇다면 예전 여성부 시절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for Women’이었을까. 아니다. 기존 대통령 소속 여성특별위원회(The Presidential Committee on Women‘s Affairs)의 한계를 넘겠다며 만든 여성부의 영어 명칭은 애당초 ‘Ministry of Gender Equality’였다. 국제 명칭에는 일관되게 ‘양성평등’을 쓰면서 국내 명칭에서는 결코 ‘여성’을 놓지 않은 이 부처는 누구를 위해 존재했을까. 여성을 위한 성과가 없진 않겠지만, 이 부처가 대체로 일반 다수 여성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 되레 불합리한 프레임을 씌운 일은 없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적인 예를 들면 여가부 장관 13명은 예외 없이 여자다. 역대 장관들을 보면 초반에는 특정 대학과 여성단체 출신이 주를 이뤘고, 후반에는 부처 관련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정치인이 많았다. 여가부 장관이란 이너서클 여자들끼리 나눠 먹는 자리거나, 아무나 앉혀도 할 수 있는 자리로 추락한 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여가부 장관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피해자에게 ‘고소인’이라고 하거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을 두고 “보궐선거는 성인지 감수성 학습 기회”라 망언을 하는 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여가부가 남녀가 평등한 나라에 기여했는지도 의문이다. ‘여성부’ 시절이던 2004년 이 부처는 영유아 보육 업무를 가져와 몸집을 불렸다. 보육은 여성의 몫이라고 여성부 스스로 선언한 모양새다. 지난해 여가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교육용 영상이 ‘남성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이고, 남성 스스로 나쁜 남성이 아님을 증명하는 게 시민적 의무’라고 한 것을 보면 한숨이 난다. 공정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분노한다. 장관을 비롯한 산하 기관장이 으레 여성 몫인 것뿐만 아니라 위치 문제도 제기한다. 입지가 중요한 외교안보 부처만 빼고 전 부처가 세종시로 갔는데, 여가부는 무슨 이유로 광화문 한복판에 남아 있는지 따진다. 스스로 평등을 지키지 않는데 국민에게 평등을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근자의 여가부 폐지 논의가 이처럼 켜켜이 쌓인 고민과 구조적 문제에서 시작되고 무르익은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다. 그래서 이 글은 여가부 폐지에 대한 찬반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여가부가 스스로 존재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국가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극명히 드러난 대로 지금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은 심각하다. 성별 대립이 더 심해지면 여가부의 업무 영역인 가족 자체가 사라질 판이다. 여가부는 물론이고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도 ‘여성’이라는 부분에 매달리거나 매몰되면 답이 없다. 여가부가 여성 특혜 시비를 부르고, 왜곡된 성역할을 만들고, 약자의 처지에 놓인 여성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위안부 할머니의 등을 친 사건에 침묵하는 행태를 반복한다면 ‘여성을 볼모로 한 이익집단’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자세로는 ‘미래가족부’로 살아남는다 한들 미래가 어둡다. ‘여성청소년가족부’로 연명한다 한들 여성도, 청소년도 반색할 리 없다. 진짜 반성과 양성평등이라는 소명을 위한 각오가 있어야만 다시 일할 기회를 청해 볼 수라도 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여성에게 유해할 수 있다.김희균 정책사회부장 foryou@donga.com}
지난겨울 마주한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명사로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무슨 뜻이냐 했더니 생일 파티를 예로 들었다. 파티 말미에 케이크의 촛불을 불 때 ‘끝’이 아니라 ‘꺼’를 생각하라고. 그러면 다음 생일에 다시 ‘켜’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명사로 생각하면 거기서 멈추지만, 동사로 생각하면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좀 더 쉬운 예시가 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온라인 강의에서 “○○이가 사람을 죽였대”와 “○○이가 살인자래”라는 말을 비교한다. 전자를 들은 사람은 “왜 죽였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래?”라고 이어가는 반면에 후자를 들은 사람은 “이런 나쁜 놈”으로 끝난다. 살인자에 대해 가진 기존 관념을 그냥 붙여 넣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명사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을 안 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인간이 생각의 양을 줄이려고 만든 독특한 품사라는 설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세상 허무한 구호가 ‘좋은 나라 만들자’이다. 좋은 나라란 대체 어떤 나라인가. 실체도, 비전도, 방법도 없다.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이번 대선이 이렇게 치러졌다. 양강 후보 모두 형용사와 명사로 가득한 공약을 내놓았다. 건강, 교육, 일자리, 환경 등 생활에 밀접한 분야를 다루는 부서장인 내가 아무리 뜯어봐도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려나 가늠할 수 없었다. 가령 코로나19 관련 공약은 이런 식이다. 코로나 대응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선진적 대응을 위한 매뉴얼 개편’과 ‘과학에 기반한 코로나 극복’이다. 과연 선진적 대응이란 뭘까? 유럽처럼 하겠다는 건지, 22세기 스타일을 만들어보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과학에 기반하려면 이제 보건복지부 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아야 하는 건지 의아하다. ‘정치적 개입을 차단하고, 의료인 과반의 의결기구를 만들어 위중증 환자 수를 기준으로 방역 단계를 정한다’는 식으로 구체적 행동을 제시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인다는 이재명 후보 공약은 ‘임대료 분담제 도입’과 ‘공정 임대료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임대료를 누가 얼마씩 나눈다는 걸까? 임대인더러 부담하라고 하면 순순히 그러마 할까? 순순치 않은 임대인 때문에 ‘임대료 분담법’을 만든다면 위헌소송감 아닐까? 공정의 척도는 임대인의 자산일까, 임차인의 손실일까? 가이드라인이란 참고하라는 걸까, 강제로 따르라는 걸까? 심지어 양측 모두 대학 등록금·구조조정 문제나 특수목적고 존폐 같은 민감한 과제에 대해선 명사로 된 약속마저 내놓지 않았다. 다시 이어령에게 돌아가자. 그는 스스로에 대해 “일생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느라 따돌림 당하고 외로웠던 아웃사이더”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야만 사실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9일까지 유권자였던 우리는 10일 다시 국민의 자리로 돌아왔다. 선거가 끝났다고 ‘좋은 나라’, 당선인의 표현대로라면 ‘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가만히 앉아 기다릴 자리가 아니다. 공정과 상식은 뭔지, 새로운 나라는 뭔지, 그리하여 어떤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건지에 대해 당선인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9일까지 공약으로 말했던 당선인 역시 스스로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명사가 아닌 동사로 국민에게 답을 해줘야 한다.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foryou@donga.com}
21세기, 명색이 G20(주요 20개국)이라는 나라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정부가 10일부터 85%에 이르는 일반 코로나19 재택치료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중단하면서 본격적으로 도는 말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제는 국민들이 각자 잘 살아남아야 한다”고 절박하게 당부하고 있다. 정부는 발끈한다. 최종균 중앙사고수습본부 재택치료반장은 10일 “저희는 자율과 협력이라고 하는데 기자들은 방치, 각자도생이라고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1일 “재택 방치, 각자도생 같은 과격한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현실이 얼마나 ‘과격’한지 모르는 얘기다. 근래 코로나19 재택치료자 가운데 보건 당국의 안내를 제대로 받았다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모니터링은 물론 재택치료키트, 생필품 지원, 생활지원금도 속속 줄이고 있다. 온 가족이 확진된 한 지인은 어린 자녀가 연이틀 고열에 시달리는데 보건소 연락이 안 돼 확진자인 남편이 약을 사러 나갔다며 “나라가 범법자를 만든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각자도생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부를 보면서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각자도생이 진행된 지 오래인 걸 모르나 싶어서다. 교육계를 예로 들어보자. 교육당국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에서 명백한 출제 오류를 범하고도 손을 놓고 있었다. 2년 동안 학교를 제대로 못 가 가뜩이나 힘들었던 수험생들은 자비를 들여 소송에 나섰다. 그야말로 ‘도생의 길’이다. 소송에 참여한 한 수험생은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어른들이 해주리라 믿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 때문에 왜 수험생이 법원을 오가며 힘들어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년 내내 방치되다시피 한 초중고교는 어떤가. 코로나19 1년 차에는 온라인 수업 먹통으로, 2년 차에는 수시로 바뀌는 등교 방침으로 학교마다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학교가 알아서 하란다. 교육부는 7일 ‘신규 확진자 비율 3%, 재학생 등교 중지 비율 15%일 경우 학교장이 등교 방식을 정하라’는 의미 없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숫자도 예시에 불과해서 모든 책임을 학교에 넘긴 셈이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이제 학교가 방역당국 대신 코로나도 검사하고 접촉자도 조사하고, 교육부 대신 등교 방침도 정하고 욕도 먹으면 되는 거냐”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도 학교도 각자 살 길을 찾아 헤매던 지난 연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한 신문에 기고를 실었다. 글이 실린 날은 수능 오류 판결 후 닷새가 지나서야 교육부가 재발 방지책을 만들겠다고 해서 신문마다 비판 기사가 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의 글은 수능 복수정답 사태에 대한 사과도, 지난 2년간 교육 현장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해 송구하다는 메시지도, 내년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을 덜어보겠다는 다짐도 아니었다. ‘김근태가 그립다’는, 일기장에 쓰는 게 더 진정성 있을 내용이었다. “교육부 장관이 출마 생각밖에 없다”는 교육계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으니 공공연히 쓸 수 있었을 글이다. ‘시의부적절’한 글에 마음을 베일 학생 학부모 교사보다는 지지 세력에게 손을 흔든 처사다. 각자도생은 어떻게 하는 건지 교육부 수장이 몸소 가르쳐 준 셈이다. 최근까지도 경기도지사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아온 그는 드디어 오늘 거취 표명을 할 예정이다. 청와대가 출마를 극구 말렸다니, 그나마 선거철 민심은 조금 신경 쓰나 싶을 뿐이다.김희균 정책사회부장 foryou@donga.com}
수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준말이다. 말 그대로 대학에서 학문을 수행할 수 있는(수학·修學)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거다. 1994학년도 도입 이후 얼마간은 이 취지가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수능이 올해 뭇매를 맞았다. 직접적 발단은 생명과학Ⅱ 오류지만, 근본 원인은 고질적이다. 교수들이 주축인 출제진이 변별력을 높인다며 문항을 배배 꼬아온 결과다.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정책 목표) 수능(정책 수단)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게,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한다’는 원칙을 어긴 탓이다. 학교 수업에 충실히 임한 수험생들이 틀렸다고 지적하는데,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당국은 기존 정답을 고수했다. 법원은 “이 문제는 대학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기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며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쯤 되면 정부는 수능 문항의 적정성을 판단함에 있어 누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20일로 국내 발생 2년이 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방역정책을 코로나방역능력시험이라 설정해보면 어떨까. 코로나19를 줄이기 위해(정책 목표) 거리 두기와 방역패스 등(정책 수단)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방역지침이 수시로 바뀌고, 방역패스는 법원에서 속속 제동이 걸려 이제는 언제 어디서 뭘 할 수 있는지 헷갈린다. 당장 주변에 몇 가지만 물어보자. “백화점 푸드코트에 방역패스 없이 갈 수 있나?” “백신 미접종자가 혼자 식당에서 밥 먹기, 혼자 영화 보기, 혼자 노래방 가기 중에 할 수 있는 건 뭘까?” “헬스장 트레드밀에서 시속 6km 이상으로 뛰어도 되나?” 일반 국민은 물론 방역 담당자조차 바로바로 대답하기 어려울 거다. 국민을 위한다는 방역지침이 자칫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 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집단발생이 19건(327명) 일어난 대형마트에는 방역패스를 적용해놓고 233건(7491명) 발생한 교회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던 걸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도 없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엔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잘 몰랐기에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 돌아보면 2020년 초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얼마나 되는지, 전파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심지어 공기 중으로 전파가 되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2년 사이 인류는 이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고, 백신과 치료제도 만들었다. 델타와 오미크론처럼 ‘변이’를 거듭하지만 기존 지식과 방역정책을 뒤집어야 할 정도로 ‘변종’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통상 데이터가 쌓이면 정책 일관성이 높아져야 하는데, 방역정책은 거꾸로 간다. 정부 지침을 충실히 따라온 사람들도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밤 9시 이후에 활성화되나?” “4명이 모이면 안 걸리고 5명이 모이면 걸리나?”라고 비아냥댄다. 정부가 방역정책을 결정할 때 과학과 정치 사이에서 갈지자를 그렸거나, ‘방역 전문가’가 아닌 ‘친정부 전문가’의 의견에 쏠렸거나, 실패한 방역정책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렸거나 하는 등의 여러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사이 많은 가게가 망하고,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갔다. 이런 고통을 멈추려면 코로나19 3년 차의 정부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일관된 방역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김희균 정책사회부장 foryou@donga.com}
《한국 사회는 길고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 국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사회·경제적 파장과 정치권의 각종 의혹에 지쳐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쓴소리를 뱉고 바른길로 안내하는 지성(知性)이 사라진 탓은 아닐까. 그러던 차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8)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건강 때문에 미루던 인터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품은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를 기다렸는데 이제 동아일보와 이야기할 시간이 됐다”고 했다.그를 만난 곳은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종로구 평창로 자택 서재.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북한산 위로 쨍하게 뜬 해가 서재 안 깊숙이 파고들었다. 긴 시간 암 투병 중인 그의 육신은 어느 때보다 야위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일본어를 넘나드는 ‘언어술사’의 입담은 여전했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창의적인 생각을 발견하는 르네상스인의 지성 역시 반짝였다. 그는 2시간 동안 거침없이 젊은 세대의 절망과 세대 갈등에 대한 고민, 코로나19가 촉발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펼쳐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서재에서 내가 말하면 자동으로 문자로 변환되는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사용해 작업한다. 환자의 일과는 아픔에서 시작해서 아픔으로 끝난다고 하지만 난 시간이 없어 절박하다. 어쩌면 내일 해를 보지 못한다 생각하니 글쓰기를 미루던 옛 습관이 사라졌다.” ―왜 그렇게 바쁘게 지내나. “이제는 내가 무슨 일만 벌이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마지막 강연, 마지막 인터뷰…. 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제일 싫어한다. 마지막이 어디 있나. 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끌까. 그 다음 해 생일에 촛불을 켜려고 끄는 거다. 난 평생 지적 호기심으로 우물을 판 사람이다. 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물이 궁금해서 판 것이다. 호기심엔 끝이 없다. 지금 글 쓰는 것도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70여 년간 한국 지성의 담론을 좌지우지했다. 할 일이 더 남았을까. “‘한국인 이야기’ ‘메멘토 모리’ 등 내가 계약해두고 아직 출간 못 한 책이 40권에 달한다. 대화집이 20권, 강연집이 20권이다. 이 밖에도 인터뷰나 강연에서 말했지만 책으로 옮기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1955년 서울대 문리대학보에 발표한 ‘이상론’은 지금 읽어도 혁신적이다. “당시 이상론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상(1910∼1937)은 작품에 도시를 담았다. 숭늉 마시던 시골 이야기가 아니라 커피 브랜드 MJB가 나오는 작품을 썼다. 둘째, 한국말을 발전시켰다. 이상 이전의 작가들은 문장투의 말을 써왔다. 셋째, 자아를 발견했다. ‘마이 파더’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나’를 심어줬다. 난해하다고 여긴 이상을 나는 쉽게 풀어 ‘천재 이상’으로 알렸다. 이상이 요즘말로 나한데 ‘한턱 쏴야’ 한다.(웃음)” ―1956년 ‘우상의 파괴’ 비평문으로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는데…. “사람들은 내가 기성 문단을 파괴했다고 오해한다. 우상이 문제가 아니라 우상 옆에 가서 떠받들고, 모시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작가라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라는 취지로 글을 썼다. (카르타고의 정치인) 한니발은 한쪽 눈은 성하고, 다른 눈은 멀었다. 한쪽에선 한니발을 성한 눈의 사내로, 다른 쪽에선 눈이 먼 사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 역시 한쪽에서만 바라봤다. 제대로 평가하려면 정면에서 봐야 한다.” ―한쪽에서만 평가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 아닌가. “맞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눈이 멀거나, 성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누군가를 판단한다.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지식인이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지식인들은 정치, 경제에 종속됐다. 지식인이 제 역할을 못하니까 편 가르기와 진영 싸움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이 전 장관의 말에 귀 기울여 왔다. “내가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자는 많다. 진보인데 우클릭하고, 보수인데 좌클릭하는 사람들, 인기에 영합해 정치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 말이다. 정치 밖에서 정치를 객관화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나더러 사교적이고, 마당발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고 행동할 때 집단보다 개인에 방점을 두고 살아왔다. 남들과 달랐기 때문에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항상 다수보다는 소수에 속한 사람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과거엔 2030세대가 사회의 미래로 존중받았다. 물리적으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사회적으론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이들을 키워야 미래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한국의 미래를 미래학자들에게 물어보지 마라. 지금 2030세대의 얼굴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쓰여 있다. 2030세대가 절망하는 원인을 파악해 제거해 줘야 한다. 멀리 보지 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라.” ―또 어떤 문제에 주목하고 있나. “세대 갈등이 심하다. 어느 시대든 세대 갈등은 있었지만 지금은 ‘창조적 긴장 관계’가 사라진 게 문제다. 왜 그런가. 젊은이들이 ‘표’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을 ‘표(票)퓰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노년층은 젊은층의 표를 노리며 세대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인들의 영합주의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내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것이 ‘8020’이라는 개념이다. 80대와 20대가 공생해야 좋은 세상이 만들어진다.” ―코로나19를 두고도 우리 사회가 분열됐다는 우려가 있다. “전염병을 계기로 푸코가 말한 ‘바이오폴리틱스(Biopolitics)’, 즉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생명정치 현상이 세계를 덮쳤다. 과거 독재자는 ‘나를 죽이는 사람’이었다. ‘내 말 안 들으면 너를 죽인다’는 식이다. 코로나19가 퍼진 사회에선 ‘내 말 들어야 너를 살려준다’는 식이다. 독재자를 피해선 도망갈 수라도 있지만, 지금은 도망가면 백신도 맞을 수 없다. 국민이 (국가 지도자를) 영웅이라고 떠받들게 된다. 지금의 국가 지도자는 백신을 배급해 생명을 살려주는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할 수가 있다. 여기서 또 지식인이 할 일이 많다. 이런 걸 모르면 감시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에 한정해 말하는 게 아니다. 세계가, 인류 모두가 처한 상황이다.” ―포스트 코로나 세상은 어떨까. “팬데믹 이전엔 모든 국가를 국내총생산(GDP) 수치로 판단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엔 환자 수, 사망자 수가 지표가 됐다. 물질 가치가 ‘생명 가치’로 바뀌고, 인류가 생명 가치를 직접 체험하게 됐다. 어떤 문명이든 코로나19 앞에선 깡그리 붕괴됐다. 마지막까지 남는 건 생명 가치일 것이다. 마이너리티의 역할도 커질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는 터키 이민자 2세 출신의 독일인 부부가 세운 회사다. 그들을 도와 mRNA 기술로 3년 걸리던 혈청제 개발을 한 해 만에 성공한 과학자도 헝가리 난민 출신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이끄는 건 주류가 아니라 보리밭처럼 밟히고 올라온 마이너리티가 될 것이다.” (터키 이민자 2세 출신 독일인 부부는 우구어 자힌과 외즐렘 튀레치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을 함께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 기업을 세운 인물들이다. 부부는 1960년대 독일에서 일하려고 터키에서 건너온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란 이민 2세 ‘흙수저’ 출신이다.)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현실을 어떻게 보나. “앞에서 말한 맥락과 같다. 한국을 보라. 중국과 일본이 못 하는 일을 K컬처가 해내고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버티게 한 건 세계에서 각광받은 한국 문화다. 방탄소년단과 ‘오징어게임’이 세계를 움직였다. 이들과 테스형(가수 나훈아)이 답답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종의) 백신을 놓아준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통령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 제대로 된 문화 정책을 내놓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년 충남 아산시 온양 출생△서울대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 단국대 문학박사△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초대 문화부 장관△대한민국예술원 회원(문학평론)△금관문화훈장 수훈인터뷰=김희균 정책사회부장 foryou@donga.com 정리=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만난 두 사람에게 토씨까지 똑같은 말을 들었다. “지금 우리만 모른다니까요!” 얘기인즉슨 세계 도처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들끓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선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팬데믹으로 국경이 막힌 2년 동안 달궈진 한류 열기가 우리의 가늠을 뛰어넘었다는 말이었다. 이 중 한 명은 한류와 무관한 공학자다. 그는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연구모임에 참석해왔다. 올해 중단된 행사를 내년에 재개하기 위해 최근 온라인 회의를 했는데, 한 미국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에서 하면 어떠냐’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러자 40∼70대에 걸친 외국 학자들이 ‘오징어게임’ 후기, 자녀가 아미(BTS 팬클럽)라는 이야기, 한국 음식 수다를 와글와글 쏟아냈다고 한다. 그는 “20년 전 미국 유학 시절엔 ‘재퍼니즈? 차이니스?’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코리안이라고 하면 아예 모르거나 ‘노스 코리아?’라고 했다. 2년 전 미국에 갔을 때도 그저 ‘아시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들 한국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한국관광공사 임원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성황을 이룬 오징어게임 체험행사 얘기를 하다가 “요즘 해외에서 한국 행사를 한다고 하면 각 정부나 기관이 적극 나서서 다른 나라 행사보다 우선권을 준다. 한류 팬들이 열광적으로 입소문을 내고 참여해 무조건 흥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중동에서도 한국 여행 문의가 폭주한다고 전했다. 트래블버블 협정에 따라 15일 한국에 온 싱가포르 관광단에는 유력 인플루언서들이 포함됐고, 관련 게시물에는 ‘우리는 언제 한국에 입국할 수 있냐’는 각국 사람들의 댓글이 이어진다.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K팝과 드라마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로 사람의 이동길이 막힌 사이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각국에 뿌리내리고, BTS가 빌보드를 비롯한 각국 음악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오징어게임이 메가 히트를 치며 한국 문화는 길을 더욱 넓혔다. ‘믿고 보는 K콘텐츠’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 자가격리 비용까지 부담하며 한국 공연단을 초청하는 나라도 많다. 52년 전통의 미국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첫 아시안 캐릭터로 한국계 미국 여자 어린이 ‘지영’이 등장한다. 영어를 쓰는 지영은 ‘김밥’ ‘찌개’ ‘잡채’를 한국 단어 그대로 말한다. 이처럼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게 만든 건 문화의 힘이다. 한국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우리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국뽕’이라는 비하성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다. 이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담긴 문구를 사랑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여행업계 종사자의 표현을 빌리면 세계적으로 한국 여행에 대한 열망이 “곧 김을 뿜을 압력솥처럼” 꽉꽉 차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실제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면 그제야 우리도 스스로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우리가 해외에 나간다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K팝, 마트나 식당에서 만나는 한국 음식들, 그리고 “한국인이냐?”는 호의 섞인 질문에서도 이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도 알게 될 높은 문화의 힘을 빨리 느끼고 싶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TV를 보는데 교양 프로그램에서 초로의 신사가 “저와 제 아내는 네 살 터울입니다”라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는 여자 연예인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예비 신랑은 금융권에서 일하는 재원으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다. 직업병인지 잘못된 표현들이 귀에 걸렸다. 흔히 나이 차이로 알고 있는 ‘터울’은 ‘한 어머니로부터 먼저 태어난 아이와 그 다음에 태어난 아이의 나이 차이’를 말한다. 형제자매 사이에만 쓸 수 있는 단어를 부부 사이에 쓰면 뜻밖의 패륜이 된다. 뛰어난 사람을 가리킬 때 많이 쓰는 ‘재원(才媛)’은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를 말한다. 위에 언급된 연예인은 졸지에 동성(同性) 결혼을 하는 셈이다. 이처럼 ‘틀린 말’은 화자의 의도와 다르게 이상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몰라서 틀린 거라면 어휘를 배우고 고쳐 쓰면 된다. 국어사전만 들춰봐도 기본은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무심코, 혹은 무의식중에, 또는 숫제 의도적으로 쓰는 ‘나쁜 말’도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욕이 아니고 문장 구조로 따지면 비문이 아니더라도 쌍욕만큼이나 천박한 말들이다. 예를 들어 같은 국회의원에게 나이가 더 적고 여자라는 이유로 “야! 어디서 감히”라고 하거나, 우리 사회 원로의 고언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는 경우다. 여기엔 말을 한 사람의 지식, 이념, 가치관, 인성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기 마련이다. 나쁜 말의 특징은 대개 폄하와 혐오가 담겨 있고, 편견과 편 가르기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나쁜 말을 바로잡으려면 어휘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고쳐야 하는지라 간단치 않다. 실은 나부터도 ‘맘충’이나 ‘기레기’라는 말에 발끈하면서부터 나쁜 말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내게 불쾌한 말은 싫어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린이’나 ‘불편러’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걸 반성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쁜 말을 고치려면 인지가 중요하다.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관행들이 ‘갑질’이나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되면서 조금씩 고쳐지는 것처럼 ‘언어 감수성’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내가 나쁜 말에 대해 더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계기는 3년 전 신지영 고려대 교수가 낸 ‘언어의 줄다리기’라는 책을 보면서다. 신 교수는 어떤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고 말한다. 타인과의 줄다리기, 언어 표현들 사이의 줄다리기, 이념의 줄다리기가 벌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게 빠져 있는 함정 등을 생각해보고, 이전까지는 거슬리지 않던 표현들에 마음을 쓰며 언어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였던 각하나 미망인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여교사나 장애우라는 호칭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미혼과 기혼을 넘어 비혼과 돌싱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 등이 일례다. 이미 욕설과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대선이 다가올수록 나쁜 말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인격과 가치관의 발현인 말이 상스럽고 나쁜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될 리 없다. 물론 GSGG처럼 본인은 나쁜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말’을 쓰는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중국 정부가 가사가 음란하거나 민족 단결에 해가 되는 노래를 ‘노래방 금지곡’으로 정해 10월부터 전국 노래방에서 없앨 거란 보도가 최근 나왔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과거에도 ‘나는 대만 여자를 좋아해’ ‘베이징 훌리건’ ‘학교 가기 싫어’ 같은 노래를 금지곡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 기사의 댓글에는 우습다거나 어이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웃고 있을 처지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의 오늘이 중국의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우리의 오늘이 우리의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헌법 기본 원리인 ‘명확성의 원칙’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금지곡 목록이나 과거 우리나라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은 금지 대상이 명확하게 고지됐다. 중국 정부가 금지한 노래는 노래방 기계에서 삭제되므로 ‘한국 남자를 좋아한다는 노래는 불러도 되나?’ ‘워싱턴 훌리건에 대한 노래는 해도 되나?’라는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다. 5공 시절 보도지침은 ‘금일 ○○대학생 시위 중 개헌 요구는 보도하지 말 것’ ‘○○○ 의원 공판 사진은 쓰지 말 것’ ‘필리핀 민주화 시위는 국제면에 작게 쓸 것’처럼 깨알 같았다. 정부가 특정 노래를 금지하는 것도, 언론 보도에 개입하는 것도 모두 반민주적이다. 더욱이 명확한 기준조차 없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건 어떤가?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하고 있는 언론중재법의 문제점 중 하나는 모호함이다. 처벌 대상도, 이유도, 요건도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다. 법 조항에는 명확한 개념 정리가 필수다. 헌법재판소는 명확성의 원칙에 대해 여러 판례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명확성의 원칙은 모든 기본권 제한 입법에 요구된다. 규범의 의미 내용으로부터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수범자가 알 수 없다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확보될 수 없고, 또한 법 집행 당국에 의해 자의적 집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처벌 대상인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말한다’(제2조 17의 3)고 규정하고 있다. 대체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거나 저의를 감추려 할 때 쓰는 동어 반복 화법이다. 처벌 요건 역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보도’ ‘충분하지 않은 검증’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사생활의 핵심 영역 침해’ 등 모호하다. 최근 많은 언론이 주요하게 다룬 뉴스들에 이를 대입해 보았다. 일명 ‘흑석 선생’으로 불리는 고위층이 검찰에서 투기 의혹을 받던 부동산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발표해 이를 종합적으로 보도한 경우 그가 보복적이고 반복적인 보도라고 한다면? 해군 공군 성폭력에 엉망으로 대처한 군이 육군 성폭력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의혹을 제기한 경우 관련자가 충분한 검증을 하지 않은 보도라고 한다면? 이중국적에 의한 병역면제를 비판했던 공인이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해당 사유로 군에 안 갔다는 보도에 대해 사생활의 핵심 영역 침해라고 한다면 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 민주당은 이런 법을 탄생시키려 한다. 법치주의가 사라지는 오늘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내일 우리에게선 또 무엇이 사라질까?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경찰이 경찰청 교통국장이 될 수 있을까? 논문 표절이 드러난 교수가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위원장이 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요즘 같아선 그럴 수도 있다. 편파 방송 이력으로 비판받는 사람이 방송의 공정성을 심사하는 기관의 장이 될 세상이니 말이다. 연초부터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해둔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상식을 뛰어넘은 인선을 강행할 예정이다. 수신료 인상을 추진 중인 KBS 역시 상식에 반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나운서가 뉴스 원고를 정부에 유리하게 마구 고쳐 읽어도, 설 특집 국악 프로그램 무대에 일본 성(城)을 세워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내는 수신료도 아깝다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KBS는 이를 52%나 올리겠다면서도 개전의 정이 없다. KBS의 수신료 조정안을 보면 공정성 회복이나 경영 효율화에 대한 항목은 드물다. 2022년부터 5년간 쓰겠다는 1조9015억 원 가운데 ‘공정·신뢰 저널리즘 구현’에는 가장 적은 265억 원을 배정했다. 예산을 많이 배정한 과제는 대부분 몸집과 서비스를 늘리는 것들이다. 심지어 당초 추진안에서는 평양 지국 개설, 평양 열린음악회, 평양 노래자랑에 수십억 원을 배정했다가 공론조사에서 비판을 받고 지웠다. 수신료 인상 명분이 이런데도 양승동 KBS 사장은 굳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수신료를 올리더라도 광고를 줄일 수 없으며, 수신료 회계도 분리할 수 없노라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수신료를 더 내면 광고라도 좀 덜 봐도 되느냐고 묻는데 안 된단다. (이윤 추구 플랫폼의 대표 격인 유튜브도 월정액을 내면 광고를 아예 안 봐도 된다. 수신료를 올려도 유튜브 월정액보다 싸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콘텐츠의 양과 질이 비교 불가인 건 둘째 치고, 유튜브는 적어도 내가 보지도 않는데 혹은 내 동의 없이 전기료에 돈을 얹어 가진 않는다.) 일반인의 눈높이에선 이해가 안 가는 행태다. 하지만 현직자의 눈높이에서 정권에 충성한 전임자의 행로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노무현 정권 시절 편파 방송에 앞장선 덕분에 십수 년 만에 방심위원장으로 화려한 컴백을 기다리는 전임자. 공보다는 사를, 국민보다는 정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하기에 이보다 좋은 선례는 없다. 이런 선례가 쌓여 공공의 번영(共榮)을 위해 공공이 운영하라고(公營) 만들어 놓은 KBS는 소수가 사욕을 채우는 곳이 되어버렸다. 2020년 KBS가 거둬들인 수신료가 6700억 원인데, 인건비가 이에 맞먹는 5200억 원이다. 직원 4700여 명의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 오죽하면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온다. 이달 1일 내부 게시판 KOBIS에 ‘염치없는 수신료 인상에 반대한다’는 글이 올라오자 당일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 글쓴이는 ‘방만 경영이란 비판보다 아픈 것은 권력의 주구라는 비판이다.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각종 비판 보도가 청와대 반발과 어용 지식인의 한마디에 무너졌다. 수신료 인상에 국민적 공감은커녕 KBS 구성원 상당수의 공감도 없다’고 진단했다. KBS의 꿈대로 수신료를 52% 인상하게 된다면 연간 수신료 수익만 1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 지상파 중간광고까지 허용된 마당에 광고 수익은 또 따로 챙긴다. 이 막대한 돈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게 쓰일 거라 기대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가 1600점 이상 대거 쏟아져나왔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법을 따른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와 1440년대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하기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자 금속활자도 포함됐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세종 시대 과학유산의 부품들도 함께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종로구 인사동 일대에서 항아리에 담긴 채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580여 점과 한자 금속활자 1000여 점을 공개했다. 한글 활자 중에는 15세기에 사용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표기법을 따른 활자들이 포함됐다. 동국정운은 조선 한자음을 정리해 표준음을 정립하기 위해 1448년 간행된 음운서로, 이번 발견은 한글 창제 연구에 주요 사료가 될 전망이다. 기존에 발굴된 한글 금속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능엄경언해본(1461년)에 쓰인 활자였다. 한자 금속활자 중 최소 6개는 1434년에 만든 ‘갑인자(甲寅字)’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나온 한자 금속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현종실록(1677년) 인쇄에 쓰인 것이었다. 갑인자 추정 활자가 추후 연구를 통해 최종 확인된다면 세종 재위 기간(1418~1450년)에 만들어진 금속활자의 최초 실물이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앞선 것이 된다. 이번 발견은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수준의 금속활자를 발견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은 갑인자 추정 활자를 두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 40여 종 가운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하다”며 “세종, 세조 시대 문화 황금기를 이끈 데 영향이 컸던 조선 활자 인쇄술 규명에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동국정운식 표기가 실물 활자로 확인된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 ‘ㅱ, ㅸ, ㆆ, ㆅ’ 등 동국정운식 표기는 인쇄본으로는 여러 책이 있지만 활자로는 전해진 것이 없었다.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현재 실물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ㅱ, ㆆ, ㆅ 글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글자는 1480년대까지만 사용됐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한글 활자가 확실히 가장 오래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활자 중에는 한문 사이에 쓰는 한글 토씨인 ‘이며’ ‘이고’ 등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있다. 이번 발굴은 수도문물연구원이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종로구 인사동 79번지)’ 발굴조사 중에 이뤄졌다. 이곳은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중심부였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출토지역에 관한 조선 전·후기 기록을 찾아본 결과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다”며 “건물터 형태를 보면 양반도 살았겠지만 시장에서 살았던 중인, 관악의 아속들이 주로 거주했던 집의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속활자는 해당 장소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에 있는 도기 항아리 안에서 발견됐다. 항아리에는 주전(籌箭·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 물시계의 시보 장치를 작동시키는 부속품)도 함께 있었다. 문화재청은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도 이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항아리 바깥쪽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유물들이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가 부품 형태로 출토된 것. 이는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했던 기계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 세종이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물은 전무했다. 이 외에도 동종(銅鐘), 동판(銅板), 총통(銃筒) 등도 함께 발견됐다. 이처럼 귀한 유물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이 곳에 대거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재청 및 수도문물연구원의 입장이다. 발굴 유물 중에 15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소승자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588년 이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각종 동제 유물 출토에 대해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성분분석 전이지만 색깔을 봤을 때 순동에 가깝다”며 “조선시대에 동 자체가 귀한 재료라 수습한 유물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고 나중에 녹여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며 “이 곳에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15일 새벽, 바다 건너의 일전(一戰)은 적어도 나에겐 세기의 승부였다. 마치 1998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H.O.T.와 젝스키스가 맞붙던 날처럼,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겨루던 날처럼,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가 승부를 벼리던 날처럼 말이다. 꼭두새벽부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아… 나의 차애캐가 최애캐를 이겼구나’라고 짧은 한숨을 쉬었다. 63회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상은 방탄소년단이 아닌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돌아갔다. 하긴, 최정상 디바 둘이 만나 비처럼 내리는 칼을 맞으며 ‘Rain on Me’를 열창했으니(뮤직비디오 콘셉트),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매일 출근길엔 가가를, 퇴근길엔 방탄소년단을 듣는 나로서는 하필 둘이 맞붙는 구도가 반갑지 않았다. 한국 대중가수 최초의 그래미 수상이 불발된 것이 너무나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가의 수상곡이 고난을 이겨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 위안이 된다. 계속 비를 맞으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난 드라이한 게 좋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다(I‘d rather be dry, but at least I’m alive)”라고 말하는 꿋꿋함. 그래서인지 이 노래 감상평에는 ‘코로나로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견딜 수는 있다’는 반응이 많다. 이런 위로와 용기는 레이디 가가라는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힘이기도 하다. 그를 잘 모르는 이들은 생고기 드레스를 입는 기인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드라마틱한 고난들을 견뎌낸 과정들을 보면 달리 보게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천재성을 보여 예술대에 조기 입학하지만 왕따로 자퇴한다. 스트립 댄서 등으로 전전하다 마약에도 손을 대지만 결국 음악적 재능으로 일어선다. 화려하게만 보이던 그는 2017년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을 통해 민낯과 심신의 병마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실연의 상처, 심각한 만성 통증으로 신음하면서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최고로 만들어내는 일상이 담겨 있다. 당시 가가는 트위터에 “나는 섬유근육통과 싸우고 있다. 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같은 환자들을 돕고 싶다”고 썼다. 다음 해에는 19세 때 성폭행당했던 걸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피하고 살았다”고 털어놓으며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155cm의 작은 키로 팝의 거인이 된 것은 이처럼 자신의 약점과 아픔을 드러내고, 나아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이는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평균 19세의 연습생들은 대형 기획사의 뒷받침 없이, 말 그대로 ‘피 땀 눈물’(2016년 곡)을 쏟아 데뷔 8년 만에 그래미 단독 무대에 섰다. 이들에게 강력한 팬덤이 따르는 이유 중 하나는 각자의 고민과 상처를 드러내고, 공유하며, 위로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속에 발표한 ‘병’(2020년 곡) 가사는 코로나로 학교도 일자리도 잃은 청춘들에게 그대로 꽂힌다. ‘몸 부서져라 뭘 해야 할 거 같은데 마냥 삼시 세끼 다 먹는 나란 새끼… 절뚝거려 인생 걸음… 차분하게 모두 치료해 보자고 나의 병, 겁.’ 나도 실은 힘들지만 견뎌내고 있다고, 아프지만 괜찮다고, 너희들도 그럴 거라고 진정성 있게 말하는 것. 자신의 성공만을 향해 달리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각하는 것. 만약 ‘셀럽’도 직업이라 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직업윤리의 표상 아닐까.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에 보내는 탐사 로버(이동형 탐사로봇)들의 이름은 미국 초중고교생이 짓는다. 1997년 첫발을 디딘 소저너부터 지난주 터치다운에 성공한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인내)까지 모두 그렇다. 미국은 미래 세대가 우주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름을 공모해왔다. 미국 곳곳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바라는 이름과 그 이름이 담은 의미를 고심해 ‘로버의 이름’이라는 에세이 콘테스트에 제출한다. 내가 지은 이름이 로버에 새겨져 우주로 솟구치는 꿈을 꾸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화성 탐사에 도전한 아랍에미리트(UAE)도 10일 탐사선 아말(아랍어로 희망)을 궤도에 안착시켰다. 석유자원만으로도 충분히 부유한 UAE는 화상 탐사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로 ‘미래 세대에게 도전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를 들었다. 호기심과 도전 정신은 인류 진보의 핵심 동력이었다. 퍼시비어런스에 앞서 2012년 화성에 간 탐사 로버의 이름이 큐리오시티(curiocity·호기심)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물론 호기심과 도전만으로는 역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동력’이 필요하다. 지난해 NASA의 화성 탐사 로버 이름 공모에는 약 2만8000건이 접수됐다. 후보로 압축된 이름 9개 중 3개가 역경에 굴하지 않고 견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듀어런스(Endurance), 테너시티(Tenacity), 퍼시비어런스가 그것이다. 이 중 퍼시비어런스라는 이름을 제출해 최종 선택을 받은 중학생 알렉산더 매더의 말은 ‘또 다른 동력’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준다. “큐리오시티, 인사이트(통찰력), 스피릿(정신), 오퍼튜니티(기회). 이전 화성 탐사 로버들의 이름은 인간이 가진 역량들이다. 우리는 항상 호기심을 갖고 기회를 찾는다. 달과 화성, 그리고 그 너머까지 탐색하려는 정신과 통찰력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걸 놓쳤다. 바로 인내다. 인류는 어떤 혹독한 상황도 견딜 수 있도록 발전해왔다. 화성으로 가는 길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늘 미래를 향해 인내하며 나아갈 것이다.”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실체로 이어지려면 지난한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성취하려는 꿈이 클수록 인내의 강도도 세기 마련이다. 퍼시비어런스가 204일 동안 4억6800km를 날아 화성 대기권에 진입한 뒤 1300도의 고온을 견디며 마침내 화성 표면에 내려앉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호기심이나 인내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가령 매일 밤 화성에 가는 꿈을 꿀 정도로 우주와 사랑에 빠진 어린이라도 미국 초중고교생이 아닌 이상 NASA에 로버 이름을 낼 수 없다. 도전할 만한 대상이 얼마나 펼쳐져 있는가, 이를 위해 인내를 발휘할 여건이 얼마나 뒷받침되는가는 개인과 국가의 미래를 가르는 큰 변수다. 플러스를 위한 인내의 기회라면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마이너스 상황을 겨우 견디는, 인내가 아닌 인고를 겪는 청춘이 적지 않다. 미래 세대가 성취를 위한 도전과 인내를 거쳐 ‘터치다운’을 외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시급한 과제다. UAE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이끈 사라 빈트 유세프 알 아미리 첨단과학기술부 장관(34)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열두 살 때 은하수를 보며 처음 우주 탐사를 상상했을 때만 해도 UAE에서는 꿈에 불과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며 “나는 화상 탐사선을 발사했지만 내 아이들은 목성 탐사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부러운 이유다.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2000년대 이전만 해도 표절이란 주로 학계나 문화계의 논란거리였다. ‘누가 어떤 논문 절반을 베꼈다더라’ ‘누가 누구 그림의 모티브를 교묘하게 따다 썼더라’ 같은 말들이 오가는 영역은 일반인의 영역과 따로 존재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한때 가장 골칫거리였던 논문 표절은 표절 판정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학교나 학회의 처벌 규정이 강화되면서 많이 줄었다. 반면 온라인에 모든 콘텐츠가 떠다니면서 표절은 모두의 일상 영역으로 들어왔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Ctrl C’와 ‘Ctrl V’의 막강한 조합으로 베끼지 못할 것이 없다. 최근 한 일반인이 소설, 가사, 사진 등 온갖 것을 베껴 각종 상과 상금을 휩쓴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육군사관학교의 표어를 살짝 틀어 국정원 표어 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면 가히 표절계의 능력자라 할 수 있다. 이 일이 공분을 사자 정부는 전수조사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먼저 남의 문학상 수상작을 도용해 5개의 문학상을 받은 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문학상 현황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리포트 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보고서를 표절해 특허청장상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 시행하는 공모전 실태를 전수조사하겠다고 했다. 한숨이 나온다. 각 공모전의 개최 현황, 심사·검증 절차, 수상 취소 사례 등을 모두 조사하겠다는데, 과연 이런 방대한 전수조사가 가능키나 할지부터가 의문이다. 지난 한 해 전국에서 열린 문학상만 800개가 넘는다. 나아가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드는 전수조사란 조사 과정에서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을 때 효율적인 수단이다. 아동학대 의심 가정을 조사해 피해 아동을 구조하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발생지를 조사해 무증상 감염자를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정부 기관이 각종 공모전을 전수조사한들 ‘표절 심사를 잘하라’고 권고하는 것 외에 무슨 효과를 거둘 거라 기대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반짝 조사로는 표절을 막을 수 없다. 정부가 가만있을 순 없으니 뭐라도 해야겠다면 표절에 대한 기준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표절은 정말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표절로 치러야 할 대가가 무시무시하다는 실례와 정의를 보여주는 게 낫다. 정부가 제 갈 길을 찾는 동안, 갈수록 표절의 덫에 빠지기 쉬워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어쩌면 ‘질문’에 있을지 모른다. 표절을 하게 되는 일차원적 이유는 자신만의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는 이유는 좀처럼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력이나 창의력마저도 학원에서 훈련받느라 당최 뭔가 궁금할 겨를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표절에 더욱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나 윤리·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겨도 검색 한 방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한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쯤 유료 리포트 사이트를 뒤져 과제를 해본 이라면, SNS에서 본 문장이나 사진들을 오려다가 그럴싸한 게시물을 만들어본 이라면, 인터넷 댓글을 이리저리 조립해 마치 내 생각인 양 써본 이라면 스스로 물어보자. ‘표절이란 무엇인가?’ 내가 한 일이 표절이었던가? 겨우 이 정도를 표절이라고 하는 건 적절한가? 만약 표절이라면 대가는 어느 정도 치르는 것이 적정한가? 자문자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을 정도로 질문하는 힘이 생긴다면 표절 백신을 맞은 셈이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사랑하는 남녀가 있다. 교통사고가 남자를 앗아간다. 슬픔에 빠진 여자를 위해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가 한 서비스에 등록시킨다. 서비스 업체는 죽은 이가 디지털 세상에 남긴 흔적들로 그의 말투를 고스란히 살려 마치 그인 양 채팅을 해준다. 한 번 망자를 느낀 이상 남겨진 자는 멈추기 어렵다. 이메일, 동영상 등 사적 기록들을 더 넘기니 이제는 통화까지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리움이 커지는, 산 자의 최종 선택은 죽은 자를 되돌리는 것. 업체가 보낸 인형은 연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그인 듯 그가 아닌, 사람인 듯 사람이 아닌 ‘무언가’와 함께하는 삶은 해피엔딩일까.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2 중 ‘Be Right Back(돌아올게)’의 전반부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나온 2013년만 해도 공상과학처럼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2019년 마지막 날 열린 일본 NHK 연말 음악방송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 어두운 무대 중앙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등장했다. 30년 전 세상을 떠난 일본의 국민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 최신 기술로 구현된 그는 옛 노래가 아닌 신곡을 불렀다. NHK와 야마하, ‘미소라 히바리 프로덕션’ 등이 1년 이상 그의 육성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킨 결과물이었다. 애잔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객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최근 우리 방송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SBS는 1996년 고인이 된 김광석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해 후배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을 예고하고 있다. 엠넷은 지난해 12월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을 방송했다. 2008년 사망한 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홀로그램으로 멤버들과 한 무대에서 노래를 했고, 1990년 숨진 김현식은 하모니카를 불며 그만의 독특한 창법을 쏟아냈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유족들,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터뜨리는 관객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몇 년 사이 AI가 엄청난 속도로 발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감동을 순수한 감동으로 남기기 위한 고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당장 AI를 통해 탄생한 노래의 주인공은 과연 목소리를 준 가수인지, 음성을 복원해낸 기계인지, 프로젝트를 꾸린 기획자인지 명확히 가르기 어렵다. ‘다시 한번’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일회성 프로젝트로 음원 발매 등을 안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되살린 고인들을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무수한 분쟁이 뒤따를 것이다. ‘과연 고인은 이렇게 되살아나기를 원했을까’라는 원초적 물음부터 산 자의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죽은 자를 불러오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윤리적 고민에 이르기까지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도 많다. 미소라 히바리가 등장했을 때도 일본에서는 찬사도 많았지만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고인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음성, 동작, 춤, 말투 등을 활용하기 위한 동의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받을 것인가, 상업적으로 활용해 발생한 수익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같은 법적 난제도 수두룩하다. 개인이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처럼 이제는 ‘사후 소환’ 거부 의사도 미리 밝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논의의 대상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만큼 전후사방에 놓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제도화하는 속도도 따라붙어야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감동 대신 새드엔딩만 남을 수 있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려 보자. 지난해 바로 이날 아침, 나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누군가는 인파에 묻혀 일출의 감동을 만끽한 뒤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을 거다. 누군가는 가족 친지와 둘러앉아 따듯한 말과 밥을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식당에서, 마트에서, PC방에서 저마다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했을 테다. 이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자. 십중팔구는 설레는 여행지 대신 익숙하다 못해 지겨워지려 하는 집 안이 보일 것이다. 한동안 못 만나 더욱 그리운 이들은 여전히 손에 닿지 않을 거다. 새해 첫날이면 으레 북적이던 목욕탕과 영화관도 괴괴할 것이다. 잠시 150년 전 미국 시카고로 떠나 보자. 바다처럼 광활한 미시간 호수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윈디 시티’ 시카고가 1871년 10월 불의 도시로 변했다. 시카고 대화재(The Great Chicago Fire)다. 토요일 밤 농가에서 발생한 불길은 강풍을 타고 도심으로 무섭게 번졌다. 꼬박 이틀 넘게 도시가 타오르면서 시내 건물 3분의 1이 전소됐다. 약 300명이 숨졌고 10만여 명이 살 곳을 잃었다. 예기치 못한 대재앙 앞에 사람도 건물도 일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인류란 그리 만만한 종(種)이 아니다. 잿더미 속에 모인 시카고 시민들은 참사를 극복할 수 있다고 외쳤다. 세계적인 건축 명장들이 도시 재건을 위해 모여들었다. 기존에 없는 건축 방식들을 시도한 결과 1885년 세계 최초의 근대식 고층건물 ‘홈 인슈어런스 빌딩’을 비롯한 빌딩숲이 형성됐다. 오늘날의 시카고는 ‘건축의 박물관’으로 불린다.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마천루를 보면 양식도, 재질도, 높이도 제각각이지만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시카고 대화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순식간에 퍼지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는 것뿐이다. 지난해 우리에게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와 닮았다. 어디서 어떻게 퍼졌는지 명확히 모르지만 우리의 1년을 송두리째 삼켜 버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시카고 대화재는 국지적인 사고였던 반면 코로나19는 팬데믹, 즉 세계가 함께 앓았다는 것이다. 밀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너나없이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이 정도로 전 지구인이 공통된 감정을 가져본 것은 인류사에 전례가 없을 것이다. 어두운 터널에 갇힌 듯했지만 백신의 등장과 함께 이제는 출구가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재앙을 함께 극복한 인류에게 주어질 대가는 개인위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진일보한 의료 기술, 신종 감염병 발생을 가속화하는 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각성 등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다 같이 연대하며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실증해 낸다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2021년을 맞아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얘기한 각계 22인의 이야기도 이와 같다. “가족, 친구, 동료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낯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잘 넘겨 전보다 더 강해질 우리의 모습”(김연아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내년 첫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 속에 3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다. 당초 일정보다 2주일 미뤄지며 사상 첫 ‘12월 수능’으로 치러진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논술 등 대학별고사도 이어져 수능 이후에도 방역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일 현재 수능 지원자 중 확진자는 35명, 자가격리자는 404명이다. 확진자는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 자가격리자는 일반 수험생과 떨어진 별도 시험장에 배치돼 수능을 치를 예정이다. 교육부는 수능 당일 새벽에 확진 판정을 받거나 자가격리 대상을 통보받아도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했다. 교육부는 확진자 205명, 자가격리자 377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험실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걱정은 여전하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탓에 일반 시험실에 무증상 감염자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3차 대유행이 시작 후 수험생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가 급증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수험생 확진자는 21명, 자가격리자는 144명이었다. 불과 5일 만인 1일 확진자는 37명, 자가격리자는 430명으로 증가했다. 무증상 감염자 역시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수능을 치르다 감염될 경우 곧바로 이어지는 수시모집 대학별 고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번 주말 시작되는 대학별고사에선 수능과 달리 대부분 확진자 응시가 제한된다. 자가격리자의 경우 교육부가 전국 8개 권역별로 고사장을 마련했다. 각 대학이 지원자가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고사장으로 찾아가 시험을 실시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대학도 논술이나 면접은 자가격리자에게도 응시기회를 줄 방침이다. 그러나 수능과 달리 정해진 기한 내에 자가격리 사실을 학교 측에 통보했을 경우에만 대부분 응시기회가 주어진다. 일정을 갑자기 변경하는 것이 힘들고 고사장 파견 인력도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실기시험의 경우 장소가 당락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별도 고사장에서 응시할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대학이 많다. 수시모집의 경우 대학별고사를 응시하지 못하면 수능 점수와 관계없이 합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수능을 치르는 과정에서 감염되거나 자가격리 대상이 돼 대학별 고사에 응시하지 못하게 될 경우 국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에 대한 구제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렀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2일 수능 준비 상황을 브리핑하며 “수능 시험장에서 감염돼 확진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여러 가지 예방 조치를 하는 것”이라며 “만약 그런 경우에도 확진자가 생겼다면 일반 원칙에 따라서 똑같이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로 대학별고사를 치르게 하는 등 별도 구제책을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박 차관은 “수능 직후인 12월 첫째 주와 둘째 주에는 수도권 대학에 전국의 수험생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대학별고사가 지역 감염의 요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수험생은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유의해주시고, 국민도 부모의 마음으로 생활방역 수칙 준수와 거리 두기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최예나 기자 yena@donga.com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망언 하루 뒤 공식 사과를 했다. 5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비용에 대해 국민의 성인지 집단학습 비용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6일 입을 뗀 것이다. 하지만 사과를 들어보면 되레 화가 난다. 그는 “당초 저의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상처를 드리게 된 것”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잘못된 사과의 요건을 고루 갖췄다. 일단 ‘내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한 자락 깐 뒤 명백한 잘못을 결과론으로 퉁쳤다. 본인이 잘못했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지 못할 때 주로 튀어나오는 유체이탈 화법(‘것 같다’)까지 구사했다. 흔히 이런 사과를 두고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라고 한다.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는 비판이다. 그런데 사과를 해야 할 상황에서 아예 사과를 안 한다면 상대방은 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한술 더 떠 숫제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 싶다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최근 처사를 보면 된다. 유 장관의 역점 사업을 위해 교육부로 파견 온 연구사가 2년 가까이 장관 관사를 쓴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장관에게 업무 잘하라고 세금으로 지원하는 관사를 난데없이 다른 사람에게 쓰게 했다는 건 공직 윤리에 어긋난 일이다. 장관이 관사를 본인 사유물로 여기지 않은 이상 있을 수 없는 잘못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이를 지적받은 유 장관은 “연구사가 관사를 사용하기는 했으나 특권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 발언을 두고 과거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연예인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고 했다. 아니다. 그 연예인은 적어도 음주운전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반면 유 장관은 관사를 남에게 준 것이 잘못이라는 점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혹은 모른 척하고 있다. 후자가 더 나쁘다. 돌아보면 유 장관은 이전에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6월 초 충남 천안시에서 9세 남자아이가 여행가방에 갇혔다가 숨을 거두고, 경남 창녕군에서 9세 여자아이가 옥상 지붕을 타고 목숨 건 탈출을 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사회부총리인 유 장관은 6월 12일 열린 7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며 범부처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7월 29일 열린 11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유관기관 협력을 통한 현장 발굴 강화, 부처 간 정보연계 강화, 학대발생가정 사후관리 강화 등을 담은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수년째 말뿐인 대책들을 재탕한 게 많았다. 한 달여 뒤 배곯은 어린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 또 가슴 아픈 일을 당했다. 저 대책들 중 한두 개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제대로 된 사과란 ‘다시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행동이 필수다. 진심으로 미안했다면…, 그래서 단 하루라도 빨리 대책이 실효성을 갖도록 힘을 쏟았다면…, 참사를 막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동 학대 참사가 잇달아 터져도 현장을 찾아가지 않은 사회부총리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게 무리인가 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