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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플재단(이사장 민병철 중앙대 석좌교수)과 국회선플위원회(공동위원장 김태호 윤관석 홍익표 이채익 국회의원)는 2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다문화 가족과 재한 외국인을 존중합시다’ 캠페인 출범식을 열었다. 민병철 선플재단 이사장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태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상호 이해와 존중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식에는 각국 주한 외국 대사와 부대사 등 총 40개국 외교 사절, 선플 지도교사, 청소년 대표 등이 참석했고 12월까지 범국민 캠페인이 진행된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요즘 건사피장에 푹 빠졌잖아. 들어봤어?’ 지인 A의 낯선 말에 처음엔 ‘피장파장’이나 ‘양장피’를 떠올렸다. 참뜻을 알게 된 것은 포털 사이트 검색 뒤. 걸그룹 하이키의 노래 제목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영케이 작사, 홍지상 작곡 편곡)의 줄임말이었다. 건물 위도 앞도 아닌 사이에서 피어난 장미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노래 제목부터가 시대착오적으로 보였다. 글로벌 케이팝의 세계에서 ‘Ditto’ ‘After LIKE’ ‘ANTIFRAGILE’ 정도는 돼야 트렌디한 것 아닌가? 외려 더 관심이 갔고 재생 버튼을 누른 뒤 ‘일일일건(하루 한 번 건사피장 듣기)’에 빠져버렸다. #1.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제발 살아남아 줬으면/꺾이지 마. 잘 자라줘’(이하 ‘건사피장’ 중에서) 이 노랜 첫 소절부터가 심상치 않다. ‘온몸을 덮고 있는 가시/얼마나 힘이 들었으면/견뎌내 줘서 고마워’ 사람의 애정 속에 자란 장미가 아닌 것 같다. 애매한 곳에서 제힘으로 피어난 꽃을 보며 화자는 자신을 투영한다. 거울이 된 장미에게 ‘견뎌내줘서 고맙다’고 고백한다. ‘예쁘지 않은 꽃은 다들/골라내고 잘라내/예쁘면 또 예쁜 대로 꺾어 언젠가는 시들고’ 아이돌 시장의 그림자를 은유한 걸까. ‘왜 내버려 두지를 못해/그냥 가던 길 좀 가/어렵게 나왔잖아/악착같이 살잖아’ #2. 이 노랜 올해 1월 5일 조용히 디지털 싱글로 발표됐다. 그룹의 음악방송 활동 종료(2월 12일) 이후 오히려 ‘멜론 TOP 100’에 98위로 슬며시 진입했다(2월 24일). 시나브로 역주행해 최근 멜론, 지니 등 주요 차트의 20위권 문턱까지 치고 들어왔다. 하이키는 지난해 1월 5일 데뷔한 신인. 더욱이 중소기획사 출신이다. GLG란 회사가 처음 제작한 아이돌 그룹이다. #3. 역주행 시점이 절묘하다. 하이브-SM의 ‘고래 싸움’에 세간의 이목이 온통 쏠려 있는 동안이다. ‘건사피장’은 조용히 피어났다. 최근 몇 년 새 가요계에서는 ‘대형기획사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공식이 더 굳어졌다. 하이브, SM, YG, JYP는 그간 축적된 고객 소비 패턴 빅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활용해 신인 아이돌 데뷔 초부터 공격적인 마케팅과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 ‘필승의 공식’을 체화해 규모로 승부를 보는 ‘큰 건물’들의 시대다. #4. ‘건사피장’은 생각보다 어려운 노래다. 특히 ‘건물 사이에 피어난’ 하는 첫 소절은 ‘도#-레-레#’으로 반음씩 올라가는 진행이 오묘하다. 이 반음계 상향 진행은 마치 힘겹게 고개 드는 꽃봉오리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한 듯하다. ‘F# 장조’의 곡. 피아노로 연주하면 흰 건반보다 검은 건반을 많이 쳐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장미는 애초에 붉고 화사한 장미가 아닌 검은 장미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5. 가요계에 군림한 ‘대형 건물’ 틈바구니에서 분투하는 중소기획사의 제작자와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이 노래가 화제라고 한다. 얼마 전 만난 B 매니저. “비슷한 처지의 매니저들과 만나 건사피장 이야기로 대동단결했어요. ‘이런 노래가 우리 아이돌에게 왔었다면’ 하고 질투하다가도 이내 ‘이런 노래가 있어줘서 고맙다.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며 함께 끄덕였죠.” #6. ‘내가 원해서 여기서 나왔냐고/원망해 봐도 안 달라져 하나도’ 하이키 멤버 중 절반은 사실 꽤 큰 기획사의 연습생 출신이라고 한다. 이른바 데뷔 직전까지 갔다가 회사의 인수 합병과 그 연쇄 효과로 문턱에서 좌절한 멤버도 있다고. 그렇게 ‘작은 건물’에 모여 만들어진 작은 아이돌이다. #7. ‘건사피장’의 역주행은 노래의 힘, 그 자체가 먼저 가장 큰 엔진이 됐다는 면에서 그간 있었던 EXID, 브레이브걸스 등의 ‘직캠 영상’ 역주행과도 결이 다르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이후 오랜만에 나온 뜻깊은 아이돌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이 될 것 같다. 노래 속 화자는 후렴구에 이르러 다시 한번 장미를 보며 긍정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고갤 들고 버틸게 끝까지/모두가 내 향길 맡고 취해 웃을 때까지’ #8. 바야흐로 꽃 피는 계절이다. 시든 것, 구부러진 것, 가시를 드러낸 것. 이젠 한 송이 한 송이가 달리 보일 것 같다. 깔끔한 동네에 핀 조경용보다 평범한 동네 담벼락 위로 간신히 솟은 한 송이에 더 눈길이 갈지도. 가시를 품어내고 길러낼 때, 살갗 위로 돋아낼 때 얼마나 아팠을까.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도 어떤 날 많이 아파본 적 있기에.임희윤 기자 imi@donga.com}
‘Taiji님이 Deuxism님을 초대했습니다.’ 며칠 전, 1983년생 지인 P는 위와 같은 대화방 초대 알림에 흠칫 놀랐다. 오랜만에 함께 스키장에 다녀온 친구들이 새로 만들어 초대한 ‘단톡방’이었다. 특히나 대화방 제목이 P의 마음 한편을 성에 끼듯 뽀얗게 만들었다. 대화방 제목은,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P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바쁘게 엄지를 움직였고 첫 대화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내 곁에는 니가 있어 ♡’ #1. 20세기를 산 사람이면 반사적으로 멜로디까지 함께 튀어나오는 저 문장. 이현도와 고 김성재(1972∼1995)가 결성한 듀오 ‘듀스’의 1994년 발표곡 ‘여름 안에서’ 가사다. P는 추억을 되살려준 단톡방 친구들에게 화답하듯, 스노보드 타는 영상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1995년 곡 ‘Free Style’ 음악을 붙여 공유했다. ‘Free Style’은 스노보드 장면이 가득한 뮤직비디오로 유명하다. #2. P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 ‘여름 안에서’는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곡이다. 2003년 가수 서연이 재해석한 버전도 원곡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리메이크 릴레이는 계속됐는데 2020년 그룹 ‘싹쓰리’를 거쳐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세 팀의 아이돌 그룹이 ‘여름 안에서’ 리메이크를 발표했다. #3. P 씨와 스키장 친구들은 이번 여행에서 두 가지 공통점을 새삼 발견했다. 첫째, 어린 시절을 보낸 1990년대에 여전히 강한 향수를 갖고 있다는 것. 둘째, 딸뻘에 가까운 신인 그룹 ‘뉴진스’에 푹 빠져 있다는 것. P 씨의 사례에서 요즘 문화계를 꿰뚫는 ‘9000’ 바람을 엿본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의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 말이다. ‘콘서트 7080’이 대변하는 ‘7080’(1970, 80년대) 향수, 음악 주점 ‘밤과 음악 사이’로 대표되는 ‘8090’(1980, 90년대) 향수가 그 바통을 이제 ‘9000’에 넘겨주는 장면이 보인다. #4. 1990년대 ‘X세대’와 2000년대 ‘Y2K’의 코드를 패션과 영상에 대놓고 녹여 넣는 뉴진스는 그 대표주자다. ‘20세기 소년소녀’라면 알아볼 것이다. 그들의 ‘Ditto’(1월 2일 발매) 뮤직비디오에 널린 수많은 추억 코드들을. 서랍에서 VHS 테이프를 찾아 브라운관 TV 아래 놓인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는 도입부부터 숨이 가빠온다. 접이식 캠코더, 세로형 투 도어(two-door) 냉장고, 철제 캐비닛, ‘피크닉 사과맛’ 음료…. 소품뿐 아니다. 수돗가 장면은 1998년 언저리를 소환한다. 그해 개봉한 귀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위대한 유산’, 또는 그해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유명한 수돗가 장면 말이다. 학교를 배경으로 여학생들 간의 우정을 은밀한 분위기로 담아낸 데선 1998년 개봉한 ‘여고괴담’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5. 이런 회귀적 흐름은 몇 년 새 부쩍 가시화됐다. 2021년 에스파는 1998년 S.E.S.의 곡 ‘Dreams Come True’를, 지난해 NCT DREAM은 1996년 H.O.T.의 노래 ‘Candy’를 재해석했다. 가요계 이야기만이 아니다. 1월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1990년대에 생산된 자동차의 가치가 최근 3년간 무려 78%나 상승했다고 한다. 올해 초 넷플릭스는 1995년 여름을 배경으로 한 청춘 시트콤 ‘90년대 쇼(That 90‘s Show)’를 내놨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방영된 인기 시트콤 ‘70년대 쇼(That 70’s Show)’의 후속작이다. 현재 빌보드 싱글차트 상위권에 12주째 자리한 프로듀서 ‘메트로 부민’의 곡 ‘Creepin‘’(현재 4위)은 마리오 와이넌스의 2004년 히트곡 ‘I Don’t Wanna Know’를 뼈대로 만들었다. #6.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대중문화 폭발기였다. 무선호출기, 휴대전화, PC통신, 싸이월드가 등장하며 취향 공동체와 팬덤이 개화했다. 마음 맞는 이들끼리 텍스트를 넘어 음성과 이미지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된 덕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네트워크만 고도화됐을 뿐. 뉴진스는 팬 소통 앱 ‘포닝’에 PC통신 감성을 담았다. 그 시절을 살지 않은 10, 20대에게도 ‘9000 감성’은 특별하다. 조금 촌스러워 만만하기까지 한, ‘어딘지 낯익은 신세계’다. 그래서일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도 시간이 흐르며 그 연령대가 내려가고 있다. #7. 그러고 보니 사반세기가 훌쩍 갔다. 추억의 편린은 시간의 동그란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고, 오래전 그날 학교 매점에 떨어뜨렸던 배지처럼 문득 손안으로 다시 돌아왔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난 지키고 있을게, 촛불의 약속/괜찮아. 너는 잠시 잊어도 돼/널 맡긴 거야. 이 세상은 잠시뿐인걸∼’―1992년 윤종신 ‘너의 결혼식’ 중 그 시절, 우리에게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란 없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 아니라 언제나 최소 두 번. 적어도 발라드의 세계관 안에서는, 목에 핏대 세우던 노래방 안에서는 그랬다. 돌아보면 그땐 왜 그리 ‘우리 다음 생에서…’ 유의 가사가 많았는지. 전 여자친구 결혼하는 데까지 가서 혼자 비장한 상상의 나래나 펼치고 오던 지고지순한 순정파들은 지금쯤 어디서 뭐 하며 (누구랑) 살까. #1. ‘널 사랑했다는 이유로/저 다른 세상 힘에 겨워도/후회하진 않을 거야∼’―1998년 조성모 ‘불멸의 사랑’ 중 1990년대엔 댄스건 발라드건 감정 과잉이 먹혔다. 그러니 ‘전사의 후예’(1996년 H.O.T.)를 자처하거나 ‘애국심’(1998년 O.P.P.A)까지 들먹였겠지. 어쨌든 이정현이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이제 잔소리 말고 내게로 다시 와줘 와줘!’(1999년 ‘와’)라 포효하기 전까지, 이별 노래 가사는 주로 이승에서 안 풀리는 이야기였다. 작사가들은 내세를 기약하다 수틀리면 상대방까지 저 위로 보내버렸다(1998년 조성모 ‘To Heaven’, 1996년 신승훈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한(恨) 많은 우리 가요사에 단장(斷腸)의 이별 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진주의 ‘난 괜찮아(I Will Survive)’를 보자. ‘그대가 나의 전부일 거란 생각은 마’라 일갈하는 이 곡은 사실 미국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의 1978년 명곡 ‘I Will Survive’에 대한 재해석이다. #2. ‘보여줄게 너보다 행복한 나/너 없이도 슬프지 않아/무너지지 않아’―2012년 에일리 ‘보여줄게’ 중 예나 지금이나 떠나간 이에게 최고의 복수는 그놈들보다 더 잘 살아내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를 휩쓸고 있는 ‘브레이크업 앤섬(break-up anthem·제창할 만큼 매혹적인 이별 노래)’ 열풍이 반갑다. 4주째 정상을 질주 중인 마일리 사이러스의 ‘Flowers’, 2위에 버티고 선 SZA(시저)의 ‘Kill Bill’, 9위까지 찍은 샤키라의 ‘Shakira: Bzrp Music Sessions, Vol. 53’…. 이 댄스곡들은 슬픔의 축구공을 저 멀리 차버린다. 호쾌함, 그 이상이다. 간담을 서늘케 할 살벌한 가사 몇 줄을 일필휘지로 흩뿌린다. #3. ‘댄스파티엔 내 발로 가면 돼/내 손은 내가 잡아주면 돼/너보다 내가 더 날 잘 사랑해’―2023년 마일리 사이러스 ‘Flowers’ 중 마일리 사이러스의 분노 마일리지가 천천히 쌓여서 이제야 폭발한 모양이다. 2년여 전 이혼한 전남편이자 유명 배우 리엄 헴즈워스에게 보내는 이 ‘노래 편지’는 특별하다. 분노의 노래 활화산이 분출한 신곡 발표일, 디데이가 엄청나다. 바로 전남편의 생신 당일이다. 악당의 생일상 걷어차듯, 이 노래의 분당 박자 수(BPM·beat per minute)는 보무도 당당한 117. 클래식으로 치면 비발디의 상큼한 알레그로쯤. 킬힐 신고 슬픔의 런웨이 밖으로 걸어 나가듯 단호한 비트가 요란하게 또각댄다.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exyBack’의 바로 그 템포다. 멜로디도 친숙하다. 스웨덴 그룹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히트곡 ‘Beautiful Life’(1995년)를 연상시키는 중독적 단조 선율. 이 이별 댄스곡은 한마디로 걸작이다.#4. ‘혼자가 되느니 지옥에 가는 게 낫겠지’―2023년 SZA ‘Kill Bill’ 중 샤키라의 신곡은 저격용 라이플을 달았다. 타깃은 11년간 함께한 전 연인이자 축구 스타 헤라르드 피케의 여성 편력. ‘티케(-tique)’ ‘피케(-pique)’로 운율을 맞춘 역동적인 랩은 이별 유경험자들의 속에 청각적 해장국을 들이붓는다. SZA는 아예 독한 영화 ‘킬빌’에서 신곡의 모티프를 가져왔다. 그러니 우리 질질 짜지 말자. 아픈 이별도 음악을 만나면 곪은 상처 위에 멋진 무늬가 된다. 음악가는 우릴 위한 죽이는 타투이스트가 기꺼이 돼준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쯤 없으면 어떤가. ‘이별, 그거 별거 아니다’ 하고 속삭이는 3분짜리 팝의 매혹에 오늘도 몸을 맡긴다. 고막을 때리는 요란한 비트의 귓속말에 계속해 귀 기울인다. ‘구질구질 다음 생까지 가지 말자. 이 노래 들리는 이 순간. 현재라는 파티를 그냥 즐겨!’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어쩌다 보니 한 살 또 나이를 먹었지만 귀는 다행히 나이를 안 먹었나 보다. 새로운 노래가 좋다. 지난해 데뷔한 여성그룹 뉴진스의 신곡 ‘Ditto’와 ‘OMG’에 빠졌다. 멤버 중 막내 혜인이 만 14세. 평균연령 16.6세. 지적 성장판 아닌 실제 성장판이 활짝 열린 아이돌이다. 특히나 애타는 짝사랑을 다룬 ‘Ditto’는 들어도, 들어도 안 물린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몽글몽글한 신시사이저 화성. 그 밑그림 위로 ‘Woo woo woo woo ooh∼’ 하는 도입부가 스피커에 흩뿌려질 때면 열 몇 살 때 이후 차갑게 식었던 이 내 ‘심장’이 아찔하게 되살아나는 듯하다. 어떤 노래가 대책 없이 좋아지면 그 노랫말을 실생활에서 내뱉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얼마 전 영국 출신 케이팝 작곡가 샘 카터가 기나긴 영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취지의 말을 건네기에 쿨하게 ‘Ditto(마찬가지)!’라고 받아줬다. #1. 호모 사피엔스의 육체적 성장판에는 기한이 있지만, 문화적 인간인 호모 루덴스의 지적 성장판, 감성적 성장판에는 그런 것 따위 없나 보다. 지난해 우린 적잖은 나이에도 아직 그것이 닫히지 않은 아티스트 몇 명을 재확인했다. 나훈아는 판타지 게임 주인공 같은 뮤직비디오 연기로 파격했고, 조용필과 최백호는 공교롭게도 나란히 ‘찰나’라는 제목을 화두로 국내외의 젊은 케이팝 아티스트나 작곡가들과 협업해 컴백했다. #2. 음악계에서 지난해 파격을 감행한 또 한 명의 ‘성장판 미(未)폐쇄’의 아티스트를 알고 있다. 작년 초 11집 ‘Waking World’를 낸 나윤선. 프랑스를 기반으로 유럽을 일찌감치 ‘접수’했던 이 세계적 재즈 보컬은 신작에서 손수 편곡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 기이한 ‘일렉트로닉 팝’의 소리 풍경을 펼쳤다. 2001년생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를 데뷔 때부터 눈여겨봤다던 그가 아예 아일리시의 작법을 연구하며 신작의 소릿결을 벼렸다고. #3. 최근 만난 나 씨는 난생처음 머리카락을 탈색하고 새빨간 뾰족 안경테를 쓰는 시각적 변신도 감행한 상태였다. “그저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제 멘토가 계신데,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 보며 평생 안 해본 세 가지를 적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자기 전까지 그중에 사소한 것 한 가지라도 이루려고 노력해 보라고…. 요즘 그 말이 머리를 울려요. 희윤 씨도 이참에 머리 한번 샛노랗게… 어때요?” #4.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캐럴, 팝, 재즈를 부르던 1934년생 미국 팝가수 팻 분은 1997년,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광기를 폭발시켰다. ‘In a Metal Mood: No More Mr. Nice Guy’라는 앨범에서 민소매에 근육질 상체를 보여주며 주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의 곡을 재해석한 것. 1949년생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2012년 앨범 ‘Wrecking Ball’에 격렬한 랩 메탈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를 참여시켰다. #5. 음악성과 나이는 반비례할까, 정비례할까. 모르긴 몰라도 ‘정답!’ ‘별 상관없다’에 한 표! 2011년, 미국 리코딩 아카데미는 블루스 피아니스트 파인톱 퍼킨스에게 그래미 트로피를 수여했다. 퍼킨스의 나이, 97세였다. 그래미 최고령 수상자다. 퍼킨스의 아성에 도전한 이가 있으니 1926년생 토니 베넷. 팝 아이콘 레이디 가가와의 듀엣 앨범으로 지난해 그래미를 받았다. 95세였다. #6. 별난 성장판 이야기는 예술계, 별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은 다 함께 귀를 좀 더 열어 보는 해로 삼으면 어떨까. 각종 음원 서비스, 유튜브 덕에 지구상 거의 모든 음악을 거의 공짜로 들어 볼 수 있는 지금은 바야흐로 ‘듣기’의 골든 에이지(황금시대)니까. #7. 임종 때 주의사항으로 회자되는 흔한 상식(?) 하나. 심장은 정지해도 청각은 당분간 살아 있으니 고인 곁에서 험담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청각이야말로 가장 늦게 늙고 가장 늦게 닫히는, 젊음의 감각이 아닐까. 그러니 내 곁의 그대, 부디 말해 달라. 나와 함께 늙어가겠다고. 새 청바지를 사러 함께 외출하겠다고. 나와 함께 2033년에도, 2043년에도, 2083년에도 신곡을 듣고 ‘개똥 평론’을 나누겠다고…. 지금 당신께 듣고픈 말이 있으니 그것은 단 하나. ‘Ditto(나도 그럴게)!’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최근 이른바 백지 시위, 백지 혁명이 중국 대륙을 뜨겁게 달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은 알았지만, 저마다 치켜든 새하얀 백지 한 장이 중국 정부의 ‘얼굴’을 백지장처럼 질리게 만드는 것을 이번에 봤다. 가벼운 백지의 무거운 힘을 느꼈다. 때론 한 글자의 말줄임표가, 1초의 침묵이 ‘벽돌책’이나 장광설보다 뜨겁게 웅변한다. #1. 음악계에는 한자로 풀면 백지 아닌 백집(白集)쯤 되는 게 있다. ‘화이트 앨범’이다. 영국의 전설적 밴드 비틀스가 1968년 발표한 9집 앨범 ‘The Beatles’를 통칭한다. 앨범 표지가 새하얗기 때문. 완전한 공란은 아니고 자세히 보면 작은 글씨로 ‘The BEATLES’라 적혀 있다. 초면의 ‘비틀마니아(비틀스 마니아)’들이 안부 묻고 통성명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대개 “비틀스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인데 대표적 대답 중 하나가 이 음반이다. 비틀스 최고의 명작으로는 순회공연 활동을 중단하고 스튜디오 작업에 매진한 1966년 이후의 후기 작품들이 보통 꼽히는데 ‘Revolver’(1966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년), 화이트 앨범, ‘Abbey Road’(1969년)가 그것이다. #2. 1960년대 영국 음악계가 ‘백집(白集)’을 낳았다면 1990년대 미국 음악계는 ‘흑집(黑集)’으로 화답했다.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가 1991년 내놓은 5집 앨범 ‘Metallica’, 일명 블랙 앨범이다. 커버는 마치 두꺼운 성서의 겉장처럼 새까만데 자세히 보면 보일 듯 말 듯한 회색 선으로 ‘METALLICA’라는 글씨와 똬리 튼 뱀 그림이 새겨져 있다. 화이트 앨범만큼이나 ‘과묵한’ 커버다. 흥미롭게도 메탈리카 팬들의 ‘최고 명반’ 설전은 비틀스와 반대로 밴드의 초기 앨범들이 소재다. 1983년 데뷔작 ‘Kill ’Em All’부터 ‘Ride the Lightning’(1984년), ‘Master of Puppets’(1986년), ‘…And Justice for All’(1988년) 그리고 블랙 앨범이다. #3. 블랙 앨범과 화이트 앨범이 보는 이, 듣는 이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유사하다. ‘이 앨범은 말이 필요 없어. 색채도 그다지 필요 없지. 어서 그냥 틀어보라니까. 어때, 죽이지?’ 마치 이런 말을 묵언으로 속삭이는 듯하다. 판촉을 위한 과장된 포즈, 화려한 색채, 예술적 표현의 격전장에서 한 발짝 떨어져 통념을 역주행한다. 비틀스는 ‘Ob-La-Di, Ob-La-Da’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Blackbird’ ‘Helter Skelter’를 비롯한 숱한 명곡을 그들 커리어에서 유일한 정규 더블(두 장짜리) 앨범인 이 역작에 담았다. 23일 넷플릭스 공개를 앞둔 추리 영화 기대작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의 제목도 이 앨범 수록곡 ‘Glass Onion’에서 따온 것. 메탈리카는 ‘Enter Sandman’ ‘Sad but True’ ‘The Unforgiven’ ‘Nothing Else Matters’ 등의 명곡들을 블랙 앨범에 포진해 화력을 뿜었다. 과연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아니 백지(또는 흑지)가 ‘불여일청(不如一聽)’이랄까. #4. 화이트 앨범이나 블랙 앨범의 명성에 못잖은, ‘준(準)화이트’, ‘준블랙’ 앨범도 있다. 미국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1967년)는 새하얀 바탕에 밴드 이름도 생략했다. 그저 바나나 한 개만 덩그러니 그려둔 표지로 유명하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 중국의 백지 혁명 과정에서 일부 시위자가 백지 위에 ‘시진핑 하야’와 발음이 비슷한 ‘바나나 껍질 새우 이끼’라 적어놓은 것이 떠오른다. 앨범의 초판은 바나나 그림을 스티커로 제작해 껍질처럼 벗겨내면 분홍색 속살이 나오게끔 만들었다. ‘준블랙’ 앨범은 호주 록 밴드 AC/DC의 1980년 7집 ‘Back in Black’(QR코드)이다. 시커먼 커버에 얇은 회색 선으로 밴드명과 앨범 제목만 써넣은 작품. 전 보컬 본 스콧의 요절을 추모하는 뜻에서 까만 표지를 택했다. 제목은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온다는 뜻. 우리의 수의(壽衣)가 흰색이라면 서구권의 수의는 검정이므로 이는 망자의 세계에서 부활해 귀환함을 의미한다. #5. 백지 시위는 일단 중국 정부의 일보 후퇴로 멈췄다. 그러나 정부가 민의를 또 한번 거스른다면? 어쩌면 성난 군중은 ‘껍질’을 벗고 거리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검은 옷을 입은 채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베이커 선생님’은 1960년대,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당시 인종차별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무리하게 아르바이트 여러 개를 하다 장학금을 놓쳤고 결국 학비가 없어 학교를 그만뒀다. 생계를 위해 이삿짐 운반 일에 뛰어들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이삿짐 사이에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커다란 피아노를 혼자서 번쩍 들었다 내려놓는 순간, 피아노 안에 들어있던 무언가가 음향판을 때렸다. 피아노 현을 몇 개 건드렸다. 정확히는 네 개의 현. 그것은 못 이긴 듯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음을 토해냈다. #1. ‘파-라♭-도-레…’ 이삿짐 사이에 섞인 검은 피아노 안에서 우연히도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Fm6’ 코드가 울려나왔다. 그 순간 베이커 선생님의 머리에는 그 다음 연주할 코드가 떠올랐다. 그 다음, 또 그 다음…. 뇌리에 연상되는 코드의 연쇄. 그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자리에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길바닥 연주를 시작했다. 몇 분간 뚫어지게 바라보던 동료 짐꾼이 말을 건넸다. “여긴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네. 어서 학교로 돌아가라고. 이렇게 젊음을 낭비하면 안 되지.” #2. 음악 에세이 ‘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에 담긴 일화다. 저자 김현준 씨(재즈평론가)는 책에 ‘한세영’이라는 가상의 피아니스트를 등장시켜 그와의 ‘가상 인터뷰’로 재즈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베이커 선생님’의 이야기만은 실화라고 했다. “제가 미국 시카고에 유학하던 시절, 그 도시의 음악계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이야기예요. 던 베이커였던가…. 풀 네임조차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돌아가신 건지, 그의 소식조차 이젠 전혀 찾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김현준 평론가) #3. ‘베이커 선생님’은 동료의 말처럼 학교로 돌아갔고 장학금을 독차지하며 촉망받는 연주자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모친의 사망, 그 이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스타 연주자의 길을 포기했다. 결국 평생을 교육자로 살았다고 한다. ‘베이커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16일,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 기타리스트 믹 구드릭이 떠올랐다. #4. 올 3월, 버클리음대 취재를 위해 미국 보스턴에 갔다. 보면서도 나의 눈과 귀를 의심케 만든 ‘슈퍼 콘서트’가 현지에서 있었다. 명기타리스트 볼프강 무트슈필, 줄리언 라지가 무대에 올랐다. 원격 영상으로 팻 메시니, 존 스코필드, 빌 프리셀, 마이크 스턴, 게리 버턴이 출연했다. 가히 재즈계 꿈의 콘서트다. 공연명은 ‘믹 구드릭 레거시(유산·遺産) 콘서트’. #5. 구드릭은 웬만한 음악 팬에게도 낯설 법한 이름이다. 독일 명가 ECM레코드에서 솔로 음반을 냈고 찰리 헤이든, 게리 버턴, 스티브 스왈로, 잭 디조넷 등의 음반에 연주자로 참여했지만 ‘무관의 제왕’ ‘어둠의 스타’다. 무대 위에서 갈채를 받기보다 어두운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땀을 흘렸다. 버클리음대를 졸업해 교수로 줄곧 활약한 그의 제자가 프리셀, 스코필드, 무트슈필, 라지 등 현대 재즈 기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구드릭이 연주자로서 스타가 되지 못한 데에는 괴팍한 성격이 한몫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할 테면 하고 아니면 때려치워!” 하며 끝없이 학생들을 괴롭혔다는 대목에서는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J K 시먼스 분)도 떠오른다. #6.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작곡가를 만났다. 그는 20세기를 산 한국인이라면 비 오는 날 한 번쯤 우수에 잠겨 들어봤을 명발라드를 지은 이다. 본인 이름으로 종종 음악을 내긴 했지만 “먹고살기 위해” 교단을 지키느라 음악 활동에 더 매진하지는 못한 것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 그러나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참 행복해요. 학생들이 괜찮은 음악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후회는 없어요. 저, 이 정도면 정말 잘 산 거 같아요.” 2차로 간 LP바의 사장님이 ‘웰컴 송’으로 그가 지은 노래를 틀었다. 스피커를 우렁차게 때리는 그 노래를 들으며 창밖에 혹시 비가 오진 않나 내다봤다. 그리고 음악을 가르쳐준, 지금은 멀리 있는 나만의 ‘베이커 선생님’ ‘구드릭 선생님’을 떠올렸다. ‘지금 거기에도 음악의 비가 내리나요? 고마워요. 당신은 내 맘속에 늘 북극성처럼 끄떡없는 슈퍼스타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때 디자이너를 꿈꾼 적 있다. 패션 디자이너도, 헤어 디자이너도 아니고 사운드 디자이너다. 2000년대 초반, 브라질 음악가 아몽 토빙, 영국 음악가 러스트모드의 실험적 작품들을 접하며 받은 충격이 사운드 디자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유학까지 알아봤었다. 어려운 말 같지만 한국어로 옮기면 그저 ‘소리 설계’다. 청자의 귀에 들리는 모든 음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그 결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다듬는 장인이 사운드 디자이너다. #1. 어떤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다수의 대중이 열광하는 음악적 요소들에 되레 냉담한 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동요 ‘학교 종이 땡땡땡’을 예로 들자. 주선율에 해당하는 ‘솔-솔-라-라-솔-솔-미’, 화성에 속하는 ‘도미솔-파라도-솔시레’…. 이런 것들은 토빙과 러스트모드에게 ‘학교 종이…’의 리메이크를 맡긴다면 관심 밖으로 밀려날 거다. 디테일에 사족을 못 쓰는 그들이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기도 전에 할 일은 필시 전국의 학교 종소리를 채록하러 떠나는 것일 것. ‘자, 이제 얼추 100개교의 종소리가 준비됐으니 설계를 시작해볼까? 흠…. 우선, 리라초등학교의 종소리를 왼쪽 스피커의 10시 방향에 넣되 1.5배 증폭해 왜곡하고 메아리 효과를 2.3만큼 줘야지.’ ‘좋아. 성지초등학교 종소리는 오른쪽 스피커, 1시 방향에 심는데….’ 내 맘대로 짠 토빙과 러스트모드의 가상 대화다. #2. 일부 실험음악가의 편집증처럼 느껴지는 사운드 디자인은 요새 좀 더 폭넓은 각광을 받는다. 올라퓌르 아르날즈(아이슬란드), 닐스 프람(독일) 같은 음악가는 지극히 아름다운 선율 사이로 굳이 낡은 피아노의 페달 밟는 소리를 적나라하게 넣는다. 듣다 보면 삐걱대고 서걱거리는 그 음향에 빠져든다. 모닥불 타는 소리, 귀지 파는 소리도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콘텐츠라며 인기를 얻는 트렌드와 일맥상통할까. #3. 서걱거림의 사운드 디자인에 제대로 꽂히면 급기야 더한 걸 찾게 된다. 러스트모드의 1994년 앨범 ‘The Place Where the Black Stars Hang’. 동명의 75분 48초짜리 곡 하나로 구성됐다. 먼 옛날, 이 음반을 국내에선 도저히 구할 수 없어 어둠의 경로로 내려받았다. 재생 버튼을 누른 지 1분…. 에러 난 파일을 잘못 받은 게 아닌지 미간이 상하도록 고민했다. 75분 48초 동안 그냥 휑한 바람 소리만 들렸으니까. ‘히아데스성단의 알데바란’ 같은 부제라도 붙어 있었기에 망정이다. ‘이건 천체의 운행을 표현한 심오한 소리에 틀림없음!’이라 결론 내며 열띤 감상을 이어갔다. #4. 급기야 피아노 페달 밟는 소리, 바람 소리마저 사치라 느껴진다면 해독제는 하나다. 미국 실험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의 곡 ‘4′33″’. 2015년 가을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서 처음 접한 이 곡의 실황이 잊히지 않는다. 각황전 앞 특설무대에 천천히 걸어 나온 연주자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손목시계를 보면대에 풀어 놓은 뒤 정확히 4분 33초 동안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안 했다. 그대, 무(無)에서 유(有)를 본 적 있는가! #5. 너무 극단까지 갔다. 기묘한 꿈에서 살짝만 깨자. 며칠 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앰비언트 뮤직 콘서트―그대에게’를 봤다. 앰비언트 뮤직(ambient music)은 생활 잡음, 공업 소음도 녹취해 음악 재료로 쓴다. 전국에서 채록된 빗소리, 파도 소리, 숲의 소리가 스피커로 흘렀다. 압권은 마포 관내 전통시장에서 채집한 발걸음 소리와 웅성거림. 소음 차단용 이어폰을 끼고 사는 음악 팬 입장에서는 그간 놓친 생활 소음을 공연장의 커다란 음량으로 듣는 것 자체가 ‘반전 매력’, 뜻밖의 귀 호강이었다. 멜로디는 줄 수 없는 감동이 있다. #7.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2017년 앨범 ‘async’의 첫 곡 ‘andata’를 특별한 피아노로 연주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침수된 피아노다. 바흐의 미사곡처럼 비장한 건반 선율 위에는 평균율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노이즈를 얹었다. “교회가 바다에 집어삼켜지는 광경을 상상하며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 인터뷰 때 그가 전한 말이다. 사카모토의 화룡점정은 소음이었던 셈. 우리 사회 어느 분야든 백색소음처럼 지나치기 쉬운 작은 디테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 ‘1데시벨’의 외침에 누군가는 귀 기울이고 다른 이는 귀를 닫는다. 때로는 소음까지 제자리에 놓이고 인정받을 때 그 온전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멜로디야말로 전제군주라고 생각했던 음악의 세계마저 그럴진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여러분, 제가 정신건강의 날에 공연을 하게 되다니, 이것도 기막힌 운명이네요. 오늘이 정신건강의 날인 거, 다들 아셨어요?” 10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특설무대.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3일 차) 공연 중반, 촉촉한 팝의 감성에 젖은 1만 명의 관객들을 향해 미국 팝 싱어송라이터 라우브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저 한글날(10월 9일) 대체 휴일에 보는 콘서트가 꿀맛이라는 생각이나 하던 차에 뒤통수 한 대 맞았다. 객석도 조금 조용해졌다. 잠시 후 무대 뒤편 스크린에 독특한 알파벳과 숫자 조합 한 줄이 띄워졌다. ‘762-CLB-LAUV’ “제가 개설한 ‘라우브 명상 클럽’ 핫라인 전화번호예요. 힘들 땐 언제든 이쪽으로 전화하세요. 제가 수년간 지독한 우울증을 앓으면서 여러 치료를 해봤지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게 명상이었거든요. 이젠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께 뭔가를 나눠드리고 싶어서요.” #1. ‘슬픔에 관한 노래가 많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는 언제였는지요. 그때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2년 전 라우브와 인터뷰를 나누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Sad Forever’ ‘Modern Loneliness’ 같은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에게 꼭 묻고 싶어서다. “2019년 1월요. 우울증과 강박장애 진단을 받았죠. 여러 치료와 명상의 도움을 받았고, 이젠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날 지배하게 내버려두기보다 제가 그 생각들을 잘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라우브는 자신의 우울함을 있는 그대로 응시할 뿐 아니라 노래에 가감 없이 녹여낸다. 마음을 휘젓는 우울함을 들여다보다 핀셋으로 가만히 몇 개의 단어, 몇 개의 음표를 건져 올린 뒤 찻잎처럼 우려낸 노래. 그것이 마음에 바르는 약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그 음표 모양의 알약이 자신은 물론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까지 치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봤다. #2. “극복하지 못했다. 고통은 나이 들지 않는다.” 6년 전 미국 텍사스주에서 만난 드러머 겸 작곡가 요시키(일본 밴드 엑스저팬 리더). “당신 삶에는 고통이 많았는데 어떻게 극복했나”라고 묻자 저렇게 답했다. 유치원 시절 집 안에서 자결한 부친의 모습을 본 뒤 어린 요시키는 충격 속에 끝없이 자살 시도를 했고 모친은 자해하는 대신 북을 두드리라며 드럼 세트를 사줬다. 엑스저팬의 발라드 명곡 ‘Endless Rain’은 요시키가 부친을 생각하며 만든, 그치지 않는 비에 관한 노래다. 여전히 비 오는 날, 마음이 아픈 날이면 수많은 음악 팬이 이 곡을 재생한 뒤 지그시 눈감는다. #3.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말이다. 오늘은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이울치울(以鬱治鬱). 우울함을 우울한 노래로 다스린다. 왜 가끔 슬플 때면 슬픈 노래를 듣고 싶어질까. 그 노래를 듣다 보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우산도 없이 소나기를 흠뻑 맞는 것 같다. 천상의 멜로디가 만든 큰 강물이 고막 안에 굽이쳐 들어오면 나의 눈물은 갑자기 왜성(矮星)처럼 졸아든다. 그 왜성을 뒤덮고 삼키며 거대한 노래의 은하수는 나의 소우주를 관통한다. 우울과 슬픔의 강에 몸 담근 나는 이상한 카타르시스에 휩싸인다. #4. “슬프고 괴로운 밤에는 조용히 차 키를 챙겨 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요.” 얼마 전 술자리에서 개그맨 B가 털어놨다. 늘 호탕한 웃음과 장난기 어린 유머로 좌중을 휘어잡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혼자 운전석에 앉아 음악을 틀어요. 말도 안 되는 볼륨으로 크게…. 그러곤 꺼이꺼이 목 놓아 울죠. 그러고 나면 다시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5. ‘늦은 밤 속삭임/그 목소리들은 날 잠 못 들게 해/내게 포기하라 말하지/요즘 난 삶의 뒷자리에 앉아 있고/운전대를 잡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어’(‘Sad Forever’ 중) 우리는 화려한 팝 세계의 왕좌, 그 뒤편 커튼 속 내실에 감춰둔 우울함을 오직 노래에만 녹여내는 가수들을 알고 있다. 10대 시절 성폭력 피해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은 레이디 가가,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는 빌리 아일리시…. 어쩌면 우린 모두 번드르르한 사회인이란 왕좌 뒤편, 내실(內室)에 기괴한 눈물의 화분을 키우는 괴짜들일지도…. 반짝이는 눈물의 열매로 만든 노래에 물 주는…. 그러고 보니 ‘우린 사실 모두가 하나의 별’이라는 가사를 지닌 노래가, 정말 많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21일 밤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8만여 개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29)가 한국 여성 솔로 가수 최초로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연 역사적 콘서트. 최고의 시간을 뜻하는 공연 제목 ‘더 골든아워’처럼 아이유는 화려한 연출, 완벽에 가까운 가창으로 높은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냈다. “(오늘은) 제가 너무 사랑하는 곡의 졸업식이기도 해요.”(아이유) 공연 중 건넨 아이유의 이 말은 어쩌면 공연보다 더 여운이 남은 선언이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 살 된 데뷔 14년 차 가수가 대표곡 ‘팔레트’와 ‘좋은 날’을 앞으로 정식 세트리스트(set list·공연 곡목)에서 보기 힘들 것이라고 공언한 것이다. ‘팔레트’는 “스물다섯 살의 지은이(본명 이지은)에게 남겨주고 싶다”고, ‘좋은 날’은 “3단 고음을 부른 뒤 퇴장해 쉬어야 하기에 전체 공연 구성이 비슷해지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1. 세트리스트. 공연의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의 순서를 정하는 이것은 공연의 기승전결, 드라마적 성격을 결정하는 불가결한 요소다. 따라서 때로 첫 곡에 앞서는 ‘0번 곡’마저도 기막힌 연출이 된다. 메탈리카는 무대에 등장할 때 늘 ‘Ecstasy of Gold’를 튼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주제곡. 이탈리아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이 장중한 스파게티 웨스턴의 명곡을 배경으로 마치 미국 프로레슬러들처럼 거들먹거리며 등장할 때 객석은 초장부터 들끓는다. #2. 메탈리카가 ‘0번 곡’ 추가라는 덧셈의 미학을 파고든다면 뺄셈의 미학도 존재한다. 미래의 아이유 콘서트가 그러할 것이다. 특히 ‘좋은 날’은 현장에서 듣기 힘들어지면서 국가 행사나 정말 특별히 좋은 날만 부르는 곡, 이른바 ‘레전드 넘버(number·곡)’로 값어치가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의도했든 아니든. 영국의 세계적 밴드 라디오헤드는 최대 히트곡 ‘Creep’을 7년간 전혀 부르지 않았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과 함께 1990년대 청춘을 대변한 역사적 명곡인데 2009년을 마지막으로 돌연 연주를 그만뒀다. 2016년 초, 그들이 다시 ‘Creep’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라디오헤드의 모든 공연은 ‘광속’으로 매진되기 시작했다. #3. 감동적인 곡 ‘Silence Is Easy’로 유명한 영국 그룹 ‘스타세일러’는 꽁꽁 아껴뒀다가 한국 공연에만 오면 푸는 곡이 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수백 회의 공연을 했지만 22년의 밴드 역사상 단 8번만 무대에 올린 노래, ‘Bring My Love’다. 그 8번 중 3번을 서울에서 연주했다. 박찬욱 감독 영화 ‘올드보이’ 예고편에 실린 인연 때문. 2007년 내한 때는 객석에서 박 감독이 흐뭇하게 이 곡을 감상하는 것을 목격했다. #4. ‘백조의 노래’처럼 평생 단 한 번만 무대에 오르는 곡도 존재한다. 얼마 전 영국 여왕 서거 때문에 고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비극적 죽음도 재조명되며 생각났다. ‘Candle in the Wind 1987.’ 엘턴 존의 1973년 명반 ‘Goodbye Yellow Brick Road’에 실린 원곡 ‘Candle in the Wind’는 배우 매릴린 먼로에 대한 헌사였지만 다이애나 빈의 비극적 죽음 직후 존이 개사해 ‘Goodbye England‘s rose(안녕히, 잉글랜드의 장미)’로 시작하는 노래다. 존은 이 버전을 단 한 번 라이브로 불렀는데 다이애나 빈의 장례식 때였다. #5. 어떤 노래는, 누군가의 평생에 걸쳐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영국의 전설적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1978년 곡 ‘Before the Dawn’. ‘Metal Gods(메탈 신)’라는 별칭처럼 징 박힌 가죽 재킷을 입고 모터사이클을 탄 채 엔진 굉음을 뿌리며 무대에 등장하는 난폭하고 마초적인 로커, 보컬 롭 핼퍼드는 1998년 어떤 고백을 한다. 실은 성소수자였다는 커밍아웃. 40대 후반 로커의 고해는 당시 음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 뒤 무려 20년 묵은 곡 ‘Before the Dawn’에 대한 스토리도 밝혀졌다. 핼퍼드가 미국 순회공연 때 만난 한 남성에 대한 애타는 연가였다는…. ‘동 트기 전, 당신의 속삭임을 들었지/“아침이 그를 데려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1990년 ‘Painkiller’라는 강렬한 음악적 진통제를 만들었던 핼퍼드도 ‘Before the Dawn’에 봉인한 상흔만은 치유할 진통제를 구하지 못한 것일까. 달콤한 속삭임만 남긴 채, 동이 트면 반드시 떠나야만 했던 그이는 누구였을까. 죽기 전, 이 멜로디를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을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대한경제 ▽편집국 △총괄 부국장 겸 산업1부장 신정운 △정치사회부장 김정석 △경제부장 봉승권 △금융부장 이주엽 △부동산부장 김국진 △건설산업부장 박경남 △문화출판부장 한상준 △온라인부장 정병진 △디지털개발부장 곽형균 △정치사회부 전문기자 이경택 권혁식 △문화출판부 전문기자 박성만}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보여준 손에 잡힐 듯한 천체 풍경,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 발사, 50년 만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인 미국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어린 시절부터 손꼽아 기다린 우주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미래의 어느 날, 지구 같은 천체를 발견해 거기 사는 외계인과 소통이나 문화 교류 따위를 해야 할 때 지구인 대표 음악가를 딱 하나 정해 파견해야 한다면? 중차대한 미션을 짊어질 주인공으로 우린 누굴 뽑아야 할 것인가. #1. 가장 유력한 첫 번째 후보는 단연 비틀스다. ‘Yesterday’ ‘Let It Be’…. 숱한 명곡으로 인류를 울린 이른바 우주 대스타. 그들은 이미 여러 차례 우주 공간에 노래를 날려본 전력까지 있다. 1967년 사상 최초로 우주 위성을 동원한 지구촌 생중계 이벤트였던 ‘우리의 세계(Our World)’에 출연했다. 2008년에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 음성 파일을 431광년 떨어진 북극성을 향해 쐈다. 이 노래는 아직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중이다. 가는 길에 어쩌면 알파 센타우리 어딘가에 닿아 이미 유행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우리도 모르는 새 북한의 인기가요가 돼 있듯…. 문제는 나이다. 생존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올해 80세, 링고 스타가 82세다. 탐사 일정을 재촉하고 싶을 뿐이다. #2. 만시지탄. 두 번째 유력 후보는 안타깝게도 이미 사망했다. 영국의 신비로운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1947∼2016). 로켓 발사와 우주 미아 이야기를 다룬 ‘Space Oddity’를 필두로 영화 ‘마션’(2015년)에도 들어간 ‘Starman’, 난해한 가사의 명곡 ‘Life on Mars?’, 죽음을 예견한 신비로운 유작 ‘★(Blackstar)’까지…. 생전 가장 외계인 같은 팝스타로 꼽힌 그는 어쩐지 100광년 바깥의 외계인과도 친구처럼 바로 대화를 나눌 것만 같다. 그러나 그는 지금 지구상에 없다. 음악 마니아들이 화성 탐사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보위는 어쩐지 죽지 않고 오늘도 화성 크레이터 그늘에 몸을 기대고 지구를 내려다보며 기타를 퉁기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3. 세 번째 유력 후보는 다행히 아직 살아 있다. 올해 75세. 영국의 전설적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다. 천체물리학자 출신. 퀸 시절부터 끊임없이 독특하고 우주적인 곡을 써왔다. 2019년 미국 탐사선 뉴허라이즌스호가 태양계 밖 소행성 울티마 툴레를 지날 때는 축하곡인 ‘New Horizons(Ultima Thule Mix)’도 헌정했다. #4. 간과한 사실이 있다. 외계인은 우리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것. 인간의 평균율 음계에 기반한 비틀스, 보위, 퀸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어쩌면 그들에겐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할지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미지와의 조우’(1977년)를 보라. 난해한 프리 재즈를 사랑하는, 외계인의 괴팍한 음악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린 가장 뜻밖의 해답을 찾아나서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머리를 쥐어뜯을 미래 인류를 위해 미친 척하고 한국 헤비메탈 밴드 ‘로스 오브 인펙션’을 추천한다. 우주 공간에서 만난 미지의 공포가 세계에 전이되는 기괴한 과정을 앰비언트, 성악, 신시사이저, 극단적 저음의 8현 기타 연주를 동원해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독특한 팀. 영화로 치면 존 카펜터의 ‘괴물’(1982년), 폴 앤더슨의 ‘이벤트 호라이즌’(1997년) 같은 스페이스 호러물인 셈이다. 이 과격한 음악에 대한 외계인의 반응은 모 아니면 도이리라. 바흐의 선율보다 아름답게 느끼든,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든…. #5. 결국 낯선 이와 소통할 때 중요한 것은 선의와 메시지다. 다시 1967년 비틀스로 돌아간다. 당시 비틀스 멤버들은 지구촌 생중계 테마곡 작곡을 의뢰받고 긴급회의에 돌입했다. ‘이 시점에서 인류 모두에게 전파할 가장 간절한 단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렇게 만들어져 위성 전파로 처음 공개된 신곡이 ‘All You Need is Love’였다. 55년이 흐른 지금도, 어쩌면 550년이 지난 미래에도 답은 같을지 모르겠다. 외계인에게도, 지구인에게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것. 전쟁이 아닌, 서로를 향한 사랑 아닐까?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스칸디나비아 취재를 세 차례 다녀온 이후, 북유럽 뉴스 검색하는 재미에 산다. ‘스웨덴’ ‘스톡홀름’ ‘헬싱키’부터 ‘페로제도’ ‘토르스하운’까지…. 포털 검색창에 온갖 북구 관련 키워드를 넣고 튀어나오는 기사를 닥치는 대로 보는 게 삶의 낙이다. #1. ‘허준이 교수 한국계 최초 필즈상 수상’ 기사를 봐도 대수기하학이나 로타 추측 같은 말보다 수상 지역인 북유럽의 핀란드, 헬싱키에 더 눈이 간다. 그러고 보니 필즈상을 일컬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한다. 역시 북유럽인 스웨덴이 낳은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수학을 싫어했을까. 왜 ‘노벨 수학상’은 없을까. 실제로 ‘노벨이 수학에 관심이 없어서’라는 설도 있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를 두루 아우르는 놀라운 스펙트럼의 노벨이…. 위대한 발명가도 수학에 관심이 없었다니 ‘수포자(수학 포기자)’의 하나로서 위안이 된다. #2. 그러고 보니 ‘노벨 건축상’도 없지 않나? 프리츠커상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아뿔싸! 중요한 게 또 빠졌다. ‘노벨 음악상’이다. 음악을 경시하는 위인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노벨 음악상은 제정될 뻔한 적이 있다. 스웨덴이 낳은 위대한 팝 그룹 아바. 그들의 매니저이자 작사가였던 스티그 안데르손이 왕실에 노벨 음악상 제정을 강력하게 건의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안데르손은 씩씩거리며 결국 1989년, 사비를 털어 ‘폴라 음악상’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아바로 떼돈을 번 자신의 음반사 ‘폴라 뮤직’을 수백만 달러에 매각한 돈을 쏟아부었다. #3. 초여름 볕이 조도를 높이던 6월, 서울을 찾은 두 명의 스웨덴 여성을 만났다. 스톡홀름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듀오 루이스 프리크 스벤(28)과 마리아 마르쿠스(42)다. 마르쿠스와는 5년 만의 재회다. 2017년 스웨덴 음악진흥원 초청으로 현지 음악 산업 현장을 취재할 때 처음 만났다. 조용필의 ‘Hello’, 레드벨벳의 ‘7월 7일’을 작곡해 한국 시장에 이름을 알리던 때였다. 같은 작곡가 회사에서 마르쿠스의 후배이자 인턴 작곡가로 출발한 스벤은 ‘폭풍 성장’해 마르쿠스와 어엿한 콤비가 돼 있었다. 방탄소년단 정국, 트와이스, 엑소 등의 곡을 둘이서 합작했다. #4. 곡을 만들어 영국, 호주, 일본 시장에 주로 팔던 마르쿠스는 케이팝을 만나 꽃을 피웠다. 신세대 주자로서 좀 더 어릴 때부터 케이팝을 접한 스벤은 “아예 한국에 이주해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구 반대편 스웨덴의 전형적인 20대 후반 청년인 그가 “한국의 문화와 생활 방식 모두가 너무너무 맘에 든다. 실제로 영주할 곳을 알아보기도 했다”며 눈을 반짝일 때는 가벼운 소름마저 돋았다. #5. 필자는 문화부 기자 몇 명과 함께 2013년, ‘세계는 지금 케이팝 조립 중’이라는 시리즈 취재를 했다. 당시 이미 샤이니의 춤, 소녀시대의 노래가 미국의 안무가나 노르웨이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국내 SM, YG, JYP 3사의 가수를 위해 곡을 쓰는 작곡가가 당시에 이미 317명에 이르렀다. 케이팝이 글로벌 대표 장르 중 하나로 올라선 지금은 거의 모든 케이팝 그룹이 해외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Dynamite’도 영국 작곡가 두 명의 작품이다. 사실 그 협업의 역사는 오래됐다. 1998년 S.E.S.의 ‘Dreams Come True’는 핀란드 작곡가 리스토 아시카이넨의 작품, 2002년 보아의 ‘No. 1’은 노르웨이 작곡가 시구르 헤임달 뢰스네스의 곡이었다. 20년 이상 된 일이다. #6. 이만하면 이제 이른바 선진국에서 주는 상을 받으려 아등바등할 필요 없지 않을까. 가칭 ‘케이팝 작곡상’ 제정을 제안한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가수들에게만 트로피와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지 말고 그 뒤에 숨은 진짜 주인공, 전 세계의 작곡가들을 한국에 불러 한바탕 잔치를 열고 상도 좀 폼 나게 뿌려 보자는 거다. #7. 2013년 스톡홀름에서 참석했던 폴라 음악상 시상식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브 16세가 직접 건넨 트로피를 받은 인물은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와 세네갈의 음악가이자 문화관광부 장관인 유수 은두르. 수상자의 작품은 시상식 무대에서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제정자인 안데르손의 딸 마리 레딘의 저택에서 펼친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는 전 세계의 언론과 음악계 관계자들이 몰려와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8. 안데르손처럼 사재는 못 털어도 뒤풀이 장소를 제공할 용의는 있다. 일단 집값을 모으는 중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전설의 고향.’ 전설, 고향. 두 단어를 떼놓으면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 심지어 된장찌개가 생각나는 구수하고 정감 있는 말들. 근데 왜 어린 시절 TV에서 해주는 ‘전설의 고향’은 하나같이 그리 무서웠을까. ‘내 다리 내놔라∼!’의 전율부터 ‘삼년고개’의 반전까지…. 한반도 굽이굽이에 서린 전설 이야기에 매년 여름밤이 기다려졌다. 1994년 MBC TV 미니시리즈 ‘M’은 또 어땠고…. ‘나는 널 몰라∼’의 상향 선율이 선연한, 안지홍 작곡가가 만든 주제가는 지금 들어도 ‘이런 곡을 지상파에 매주 틀다니!’란 생각이 드는 희대의 ‘괴곡(怪曲)’이 따로 없다. #1. 납량특집…. 지구 온난화는 덜했다고 해도 옛날 여름은 에어컨이 없어 더 더웠다. 갈색 나무 서랍에서 꺼낸 빨간 사인펜을 들고 앉아 신문을 펼치면 TV 편성표 면에 저런 단어가 드문드문 보였다. 납량(納(량,양))이란 말부터가 퍽 매력적.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기운을 느낌’이란 뜻인데 그 생김새와 어감이 압권이다. 피서(避暑)처럼 받침도 매가리도 없는 단어보다 어딘지 더 어둡고 음습하며 ‘나쁜’ 느낌을 풍겼다. 납량의 매혹에 이끌려 납량특집 드라마는 빠지지 않고 보려 했다. #2. 15일 저녁, 국립극장 주최 ‘여우락 페스티벌’ 일환으로 열린 ‘PAKK X EERU’의 ‘고요한 씻김’이란 공연은 제대로 된 납량이었다. 록 밴드 팎(PAKK)과 국악인 겸 로커 이일우(EERU)의 합작 콘서트. 먼저 팎이 대박이다. 2017년 첫 미니앨범 제목이 ‘곡소리’. 그해 정규 1집 타이틀은 ‘살풀이’다. 지난해 낸 2집 간판은 ‘칠가살(七可殺)’. 하드록과 헤비메탈을 오가는 거친 음악을 펼치는데 그 소재가 주로 한국적 한과 분노다. 장르로 치면 살풀이 록이랄까. 이일우는 해금, 피리, 거문고를 록과 결합한 밴드 ‘잠비나이’의 리더다. 그러니 저 공연 타이틀의 ‘고요한’은 속된 말로 뻥이었다. #3. 3인조 팎이 지글지글 끓여대는 100℃의 록에 이일우는 이따금 피리와 태평소를 불어넣어 한기(寒氣)를 더했다. 팎의 멤버들은 곡이 끝날 때마다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동동동∼’ 울리는 대신 ‘뚜다따땅!’ 튕겨대는 슬랩(slap) 주법의 베이스기타, 현(絃)을 갈아낼 듯 동분서주하는 전기기타, 북과 심벌을 통타하며 영화 ‘매드맥스’의 추격대처럼 전진하는 드럼…. 이쯤 되면 관객 입장에서 국립극장의 고상한 객석에 편하게 앉아 듣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위장크림을 바르고 소총을 들고 나가 산악 기동이라도 하며 들어야 할 듯 아드레날린이 체내에 솟구친 것이다. #4. 관객들은 아닌 게 아니라 들썩들썩했다. 앉은 채로 헤드뱅잉을 하거나 몸을 흔드는 이들도 여럿. 무대 위 걸작은 스크린에서도 뿜어져 나왔다. 팎의 리더 김대인(보컬, 기타)이 직접 디자인한 앨범 표지, 서호성 뮤직비디오 감독이 만든 영상 속의 지옥도가 라지웅 비디오 아티스트의 손길을 만나 생동했다. 저승에 끌려온 것으로 보이는 인간 군상을 도깨비가 내려쳐 펄펄 끓는 냄비 속으로 처박거나 이름 모를 동식물이 기괴한 모습으로 펄럭이는 모습들…. 이것은 매우 음악적인 ‘전설의 고향’이 아닐 수 없었다! #5. 올해 들은 가장 인상적인 케이팝 아이돌 노래를 떠올려 본다. 메탈 곡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한 에스파의 ‘Girls’, ‘미친×이라 말해’의 가사가 돋보인 (여자)아이들의 ‘TOMBOY’도 있지만 킹덤의 ‘승천’도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인트로부터 소름 돋았다. 그윽한 피리의 추성(推聲·음을 위로 밀어 올리는 시김새)이 섬뜩한데 마치 텅 비어 좀비 소굴이 된 대궐 문을 삐걱 여는 듯한 느낌이다. ‘거역한 자들아/혈루에 잠겨 죽으리라’ ‘단죄의 칼/내 어명을 잊지 말지어라’의 노랫말에 상응하는 한국적 선율과 해금, 가야금의 진격은 한국적 공포를 케이팝과 엮은 뜻밖의 쾌작을 완성했다. #6. 전통 문화, 그중에서도 민간 설화에 기반한 한국 음악이 더 많아지기를 은근히 바라본다. 한국적 공포의 진경은 넷플릭스 ‘킹덤’ 같은 영상 작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 화면은 손바닥만 하지만 청각적 공포 음악은 눈을 감는 순간 무한대의 스크린으로 확장된다. ‘PAKK X EERU’의 공연을 기획한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준말이다. 여기 우리 납량이 있다! 자, 이제 ‘납량특집! 케이팝 대제전’ 따위의 기괴하고 전설적인 음악 축제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끼이이익…!’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한국직업능력연구원(원장 류장수)이 개원 25주년을 맞아 14일부터 광역권별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번 지역 순회 심포지엄은 ‘지역 인재로 새로운 미래를’이란 슬로건 아래 지역 기반의 미래인재 양성 전략을 주제로 열린다. 14일 부·울·경권(부산광역시청)을 시작으로, 내달 23일 호남권(김대중컨벤션센터), 9월 2일 충청권(대전컨벤션센터), 같은달 15일 대·경권(엑스코)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9월 27일 서울(은행회관)에서 이를 종합·정리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14일 부산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서는 부울경 지역의 지역 인재 양성 방안을 놓고 김형균 부산테크노파크 원장이 지산학 협력기반의 인재육성 방안을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다. 안우진 부연구위원, 정은진 지역·산업HRD연구센터장, 김종한 경성대 교수 순으로 주제발표에 나선다. 이어서 류장수 한국직업능력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아 지역인재의 확보와 양성 및 활용방안에 대해 부울경 지역의 전문가들과 종합 토론을 연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이것은 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다. 4개월만 지나도 골동품 취급받는 ‘광속’ 유행의 시대에 40∼50년 묵은 노래들이 스크린을 타고 귀환한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 4, 영국 채널4 ‘잇츠 어 신’(국내 방영 ‘왓챠’), 영화 ‘탑건: 매버릭’…. 이 작품들이 자극한 기묘한 향수가 무려 두 세기에 걸친 광활한 세월을 가로질렀다. 4차원 입구 같은 초월적 청각 교차로를 생성해냈다. 좋은 음악은 죽지 않는다. 보석이나 화석처럼 조용히 묻혀 기약 없는 발굴을 기다릴 뿐이다. #1. 지난달 넷플릭스가 공개한 공상과학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 4가 촉발한 대(大)발굴의 주인공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시. 그의 1985년 노래 ‘Running Up That Hill(A Deal with God)’은 발표 당시엔 영국 싱글차트 3위에 머물렀던 노래다. 인기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에 삽입된 덕에 최근 차트 1위에, 그것도 2주 연속 올랐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도 3주 연속 10위권(최고 4위)에 올랐으니 미국에서도 돌풍이다. #2. 44년 만에 차트 정상에 다시 선 가수. 그리고 정부의 비밀 실험 대상이 된 초능력 소녀. 실제 가수 케이트 부시와 극중 인물 ‘엘’(‘기묘한 이야기’ 주인공)은 슈퍼파워가 서로 닮았다. 부시는 11세에 작곡을 시작한 음악 신동. 천재적 재능이 16세 때 영국의 전설적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 데이비드 길모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길모어는 부시의 집을 찾았고 기재(奇才)를 직접 확인한 뒤 데뷔를 도왔다. 20세에 낸 곡 ‘Wuthering Heights’로 부시는 역사를 썼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직접 쓴 곡을 차트 1위에 올린 여가수가 된 것. #3. 약관의 나이에 작사, 작곡, 연주, 편곡, 안무 제작을 총지휘한 부시의 재능과 담력은 ‘엘’의 염력만큼이나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부시는 무대에서 무선 마이크를 착용한 최초의 가수다. 부시를 보고 마돈나, 재닛 잭슨이 이 신기술을 차용했고 이후 모든 댄스 가수가 부시의 자장 안에 들어왔다. 멀리 케이팝도 부시에게 빚이 있는 셈. 부시는 직접 구성한 현대무용을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 무선 마이크를 도입했다. ‘Running Up That Hill’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독특한 예술관을 볼 수 있다. #4. 영국에서는 지난해 청춘 드라마 ‘잇츠 어 신’이 20세기를 소환했다. 198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성소수자 청년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 영국 공영방송 BBC는 에이즈와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잇츠 어 신’의 각본에 부담을 느끼고 편성을 거부했다. 결국 채널4가 편성한 것이 ‘대박’으로 이어졌다. 음악 팬들은 드라마 제목만 들어도 눈이 빛난다. 영국 신스팝 듀오 펫 숍 보이스의 1987년 명곡 ‘It‘s a Sin’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이 곡 외에도 조이 디비전, 컬처 클럽, 이레이저, 퀸 등 1980년대 영국 음악의 진수가 먼지 털고 나와 영상을 수놓는다. #5. 세월의 크레바스를 음악으로 메우는 불꽃놀이는 최근 화제인 ‘탑건: 매버릭’도 해내고 만다. 첫 공중전 훈련 장면을 장식한 영국 밴드 ‘더 후’의 ‘Won’t Get Fooled Again’은 특히나 상징적. F-18 전폭기의 엔진 파열음에 뒤지지 않는 폭발적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 사운드는 1962년생 교관 톰 크루즈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가 삼킨 건 대충 이런 독백 아니었을까. ‘일렉트로닉 팝? 힙합? 새파란 생도들아, 1971년산 로큰롤은 아나? 20세기 파일럿 맛 좀 볼 테냐고.’ #6. “(파일럿은 드론 앞에) 어차피 멸종될 운명이라네.”(케인 제독) 시간은 빛나는 왕좌에 앉아 개인에게 퇴장을 명한다. 유행의 첨단 미사일을 맞고 퇴격한 줄 알았던 노래의 생환 비행 역시 그래서 더 눈물겹다. 매버릭이 스스로를 교관도 대령도 아닌 그저 천생 파일럿으로 여기듯, 아티스트도 업종이 아니라 차라리 인종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예술은 불멸한다며 생떼 쓰는 종족. 이들 예술가, 몽상가, 비행사의 황소고집은 세월의 제독에게 이런 말로 하극상을 저지른다. “그럴지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매버릭) 다음과 같이 유치찬란하며 위풍당당한 선언까지 해버리고 만다. “비행사는 제 직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란 인간 그 자체죠.”(매버릭) 누군가는 이해 못 할 이것은 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Z세대의 대중문화 아이콘인 미국 슈퍼스타 팝가수 빌리 아일리시(21·사진)가 8월 내한공연을 연다. 현대카드는 8월 15일 오후 8시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를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아일리시의 내한 무대는 2018년 광복절 이후 4년 만이다. 2015년, 14세에 데뷔한 아일리시는 호러물을 방불케 하는 기이한 세계관, 독특한 패션과 언행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폴 매카트니, 비욘세, 레이디 가가, 에미넴, 켄드릭 라마 등의 내한 무대를 열어온 슈퍼콘서트는 2020년 영국의 전설적 밴드 퀸을 마지막으로 팬데믹 탓에 멈췄다가 2년 7개월 만에 다시 열리게 됐다. 현대카드 소지자는 다음 달 5일 낮 12시, 일반 예매자는 이튿날 낮 12시부터 인터파크와 예스24에서 예매할 수 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2015년 고 신해철(1968∼2014) 1주기에 맞춰 석정현 작가가 올린 그림 한 장이 인터넷을 달궜다. ‘마왕 근황’이란 제목의 그림은 신해철이 마이클 잭슨, 지미 헨드릭스, 프레디 머큐리 등 먼저 세상을 떠난 음악가들과 하늘나라에서 즐겁게 어울리는 상상도였다. 이런 몽상이 기타 연주로나마 간접적으로 이뤄졌다. 한국인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호주 출신 미국인 기타 연주자 오리안시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실린 명곡 ‘Over the Rainbow’를 이중주로 재해석해 최근 디지털 싱글(사진)로 내놨다. 김세황은 신해철이 이끈 그룹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오리안시는 잭슨이 기용한 마지막 기타리스트다. “해철 형과 함께 차 안에서 잭슨 형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곧잘 즐겼던 게 생생합니다. 형도 이번 작업을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요.”(김세황)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는 김세황과 오리안시를 16일 화상으로 만났다. 두 사람은 “미리 긴 시간 맞춰볼 것도 없이 우리 각자의 음악적 배경이 ‘Over the Rainbow’의 선율을 토대로 자연스레 흘러나와 조화를 이뤘다. 마법 같은 녹음이었다”고 돌아봤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아주 높이/들어본 적 있는 땅/언젠가 자장가 속에서….’ 이런 가사는 들리지 않는 연주곡 버전이지만 선율만은 우리 귀에 친숙하다. 두 사람은 “이번 작업은 기나긴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친 인류에게 곡 제목처럼 무지개 너머 희망이 보인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명곡 ‘Over the Rainbow’를 둘은 전기기타의 오색 도감으로 새로 칠했다. 여러 음계를 오가며 뿜어내는 화려한 속주와 다양한 연주 기술이 압권. 녹음은 비치 보이스, 롤링 스톤스, 도어스 등이 녹음한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스튜디오 ‘선셋 사운드’에서 진행했다. “미스터 김(세황)은 정말이지 놀라운 기타리스트예요. 음 하나하나의 선택이 사려 깊고 수많은 연주자의 스타일을 합친 듯 다채로운 기술을 융합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소리를 내죠.”(오리안시) 김세황은 “실용음악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오리안시의 연주를 교범처럼 보여주곤 했는데 함께 해보니 그는 과연 ‘전기기타의 여왕’다웠다”고 말했다. 오리안시는 “20대 초반 잭슨과의 만남이 연주자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잭슨과 명곡 ‘Wanna Be Startin‘ Somethin’’ ‘Black or White’를 연주하던 즐거운 기억이 생생하다. 잭슨은 춤을 추다 말고 연주자들에게 다가와 음 한두 개를 바꾸라거나 앰프 볼륨을 0.5 올리라고 조언했다. 실로 놀라운 귀를 지녔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두 사람의 보스이자 영웅, 신해철과 잭슨은 지금 세상에 없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의료사고로 별세했다. 누구보다 기타를 사랑했던 팝스타들. 신해철은 밴드 ‘무한궤도’로 데뷔해 넥스트를 통해 헤비메탈까지 추구했다. 잭슨은 팝 스타였지만 명곡 ‘Beat It’에 희대의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을 기용했다. 오리안시는 잭슨이 자신과 함께 마지막 월드투어 ‘디스 이즈 잇’을 준비하다 갑작스레 하늘로 간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오리안시는 이후 카를로스 산타나, 스티브 바이, 앨리스 쿠퍼 등 여러 록 스타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레드 제플린, 프린스도 작업한 ‘선셋’에서 세황 씨와 녹음하며 형언하기 힘든 경건함마저 느꼈습니다. 기타의 시대가 지고 있다지만, 저희 같은 연주자들이 화학반응으로 빚어낸 명작은 영원히 남을 거예요.”(오리안시)임희윤 기자 imi@donga.com}
2015년, 고 신해철 씨(1968~2014) 1주기에 맞춰 석정현 작가가 올린 그림 한 장이 인터넷 공간을 달궜다. ‘마왕 근황’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신 씨가 마이클 잭슨, 지미 헨드릭스, 프레디 머큐리 등 먼저 돌아간 음악가들과 하늘나라에서 즐겁게 어울리는 상상도였다. 이런 몽상이 기타 연주로나마 간접적으로 이뤄졌다. 한국인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호주 출신 미국인 기타연주자 오리안시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실린 명곡 ‘Over the Rainbow’를 이중주로 재해석해 최근 디지털 싱글로 내놨다. 김 씨는 고 신해철이 이끈 그룹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오리안시는 고 마이클 잭슨(1958~2009)이 기용한 마지막 기타리스트다. “해철이 형과 함께 차 안에서 잭슨 형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곧잘 즐겼던 게 생생합니다. 형도 이번 작업을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요.”(김세황)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는 김 씨와 오리안시를 16일 국제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두 사람은 “미리 긴 시간 맞춰볼 것도 없이 우리 각자의 음악적 배경이 ‘Over the Rainbow’의 선율을 토대로 자연스레 흘러나와 조화를 이뤘다. 마법 같은 녹음이었다”고 돌아봤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아주 높이/들어본 적 있는 땅/언젠가 자장가 속에서…’ 이런 가사는 들리지 않는 연주곡 버전이지만 선율만은 우리 귀에 친숙하다. 두 사람은 “이번 작업은 기나긴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친 인류에게 곡 제목처럼 무지개 너머 희망이 보인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명곡 ‘Over the Rainbow’를 둘은 전기기타의 오색 도감으로 새로 칠했다. 여러 음계를 오가며 뿜어내는 화려한 속주와 다양한 연주 기술이 압권. 두 사람은 마치 기타를 든 채 듣는 이의 거실 스피커를 찢고 나오려는 듯하다. 녹음은 비치 보이스, 롤링 스톤스, 도어스 등이 녹음한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스튜디오 ‘선셋 사운드’에서 진행했다. “미스터 김(세황)은 정말이지 놀라운 기타리스트예요. 음(音) 하나하나의 선택이 사려 깊고 수많은 연주자의 스타일을 합친 듯 다채로운 기술을 융합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소리를 내죠.”(오리안시) 김 씨는 “실용음악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오리안시의 연주를 교범처럼 보여주곤 했는데 함께 해보니 그는 과연 ‘전기기타의 여왕’다웠다”고 말했다. 오리안시는 “20대 초반 마이클 잭슨과의 만남이 연주자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잭슨과 명곡 ‘Wanna Be Startin’ Somethin‘’ ‘Dirty Diana’ ‘Black or White’를 연주할 때 매우 즐거웠다. 잭슨은 춤을 추다 말고 연주자들에게 다가와 음 한두 개를 바꾸라거나 앰프 볼륨을 0.5 올리라고 조언하는 등 놀라운 귀를 지녔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두 사람의 보스이자 영웅, 신해철과 잭슨은 지금 세상에 없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2009년과 2014년 각각 의료사고로 별세했다. 누구보다 기타를 사랑했던 팝스타들이다. 신해철은 밴드 ‘무한궤도’로 데뷔해 넥스트를 통해 헤비메탈까지 추구했다. 잭슨은 팝 스타였지만 명곡 ‘Beat It’에 희대의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을 기용하는 등 평생 연주자들의 역할을 존중했다. 잭슨이 오리안시와 함께 마지막 월드 투어 ‘디스 이즈 잇’을 준비하다 갑작스레 하늘로 간 날을 오리안시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오리안시는 이후 카를로스 산타나, 스티브 바이, 앨리스 쿠퍼 등 여러 록 스타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레드 제플린, 프린스가 녹음한 공간에서 세황 씨와 녹음하며 형언하기 힘든 경건함마저 느꼈습니다. 기타의 시대가 지고 있다고 하지만 핑크 플로이드, 산타나 등이 만든 명작은 영원히 남을 거예요.”(오리안시)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사진)이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여섯 번째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빌보드는 19일(현지 시간) 홈페이지에 게시한 차트 예고 기사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Proof’(10일 발표)가 이달 25일자 ‘빌보드 200’(종합 앨범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빌보드에 따르면 ‘Proof’는 발매 첫 주에 31만4000장 상당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빌보드는 CD, LP 등 손에 잡히는 물리적 앨범 판매량은 물론이고 디지털 음원의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횟수 등 여러 지표를 반영해 순위를 정한다. 빌보드는 “‘Proof’의 판매량 대부분은 CD가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로써 2018년 6월 ‘Love Yourself: 轉 ‘Tear’’로 이 차트의 정상을 처음 밟은 이래 ‘Love Yourself: 結 Answer’ ‘Map of the Soul: Persona’ ‘Map of the Soul: 7’ ‘BE’를 포함해 총 여섯 장의 음반을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리게 됐다. 앨범 타이틀 곡 ‘Yet To Come (The Most Beautiful Moment)’도 인기가 높다. 이 곡은 15∼19일 국내 주요 가요 차트 프로그램에서 모두 정상을 차지했다. ‘Yet To Come’의 뮤직비디오는 20일 오후 유튜브에서 조회수 1억 건을 돌파했다. 방탄소년단은 앞서 14일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단체 음악활동의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