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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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4-10-22~2024-11-21
문화 일반75%
생활/가정10%
사회일반3%
여행3%
미술3%
인사일반3%
환경3%
  • 잠시 멈췄더니 흔들림이 지나가더라[김선미의 시크릿가든]

    11월의 제주는 제3의 시공간 같았다. 섭씨 20도인 낮에는 양떼구름이 파란 하늘을 초원 가로지르듯 이동했다. 은목서와 꽃댕강나무는 어찌나 향기가 맑은지 무심코 지나친 발길을 되돌리게 했다. 보라색 쑥부쟁이가 흐드러진 낮은 돌담 너머로는 귤나무 군락이 이어졌다. 밤이 내려앉자 오래된 나무들에 걸린 작은 조명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제주는 거대한 생명의 정원이었다.● ‘정령마을에서 잠시 멈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의 ‘하례내창’에 들어서자 소파를 덮은 담요와 각종 소품이 몽골이나 인도 같은 이국의 분위기를 풍겼다. 정면의 네모난 창문으로는 안뜰의 나무들이 숲처럼 내다보였다. 흰 벽면에서는 모닥불 영상이 흘렀다. 군데군데 놓인 캠핑 의자에 몸을 묻고 ‘숲멍’이나 ‘불멍’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이가영 하례1리 체험휴양마을 사무국장이 참가자 일행을 반겼다. “시간 맞춰 오느라 서두르셨죠. 이젠 천천히 여러분만의 속도로 시간을 쓰세요.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함께 해주세요.” 하례내창은 ‘정령마을에서 잠시 멈춤’이라는 이름의 마을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카페다. 13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하례리는 제주도와 환경부 지정 생태관광마을이자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체험휴양마을이며 이곳에 사는 예술인들이 주민들과 협의해 정령(精靈·사물에 깃든 영혼)을 콘셉트로 잡은 예술마을이기도 하다.이 국장이 소파로 안내했다. “이제 ‘나의 정령’을 찾아보는 여행을 떠나실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다’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를 내밀었다. ‘단단하고 평안합니다’,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삶을 여행 중입니다’라는 세 가지 카드 중에서 현재의 마음 상태를 골라보라고 했다.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를 골랐다. 빈칸을 채워야 할 두 번째 카드는 ‘나는 ○○○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였다. 내 마음, 주변 사람들, 우리의 미래 등 5가지 선택지 중 고심 끝에 ‘내 마음’을 골랐다. 내 마음부터 평안해야 주변을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과정으로 ‘판별’받은 ‘나의 정령’은 ‘중심에 좋은 것을 품은 영혼’이었다. 역삼각형 안에 원이 그려진 카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마음이 조금 평온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당신은 원래 마음 중심 단단히 정말 좋은 것을 품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흔들리는 지금의 시간이 곧 흘러가고 다음엔 더 평안한 마음으로 지금의 것들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만든 ‘믿거나 말거나’식 카드점이었지만 의외로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역삼각형처럼 불안정해도 희망은 있다고 확인받은 느낌이랄까. 이 프로그램의 다른 참가자들은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가지를 뻗어가는 영혼’, 우직하게 자신만의 호흡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황소 눈을 가진 영혼’ 등의 정령 카드를 받았다. 주최 측은 각각의 정령에 해당하는 기호를 뺨에 그려주고 그에 맞는 차를 내왔다. 영혼이 환대받는 기분이었다.● 생명이 흐르는 효돈천 트레킹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모집 대상이었다. ‘휴학, 이직, 퇴사, 이별 등 멈춤 사이에 자기 발견이 필요한 성인.’ 구체적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멈춰 나를 찾고 싶었다. 둘째는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서귀포 효돈천 트레킹이 일정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개발한 효돈천 트레킹 프로그램은 해설사 교육을 받은 주민들의 인솔로 진행된다. 풀숲을 헤치고 들어선 그곳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화산이 분출했던 계곡은 조면현무암(얇게 흐르는 용암 위에 쌓인 현무암)이라는 절경을 남겼다. 네발 동물처럼 두 손과 발을 사용해 암벽 등반하듯 계곡을 가로질러 분지 위에 자리 잡았다. 다음부터는 각자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거친 물살에 깎여 매끈해진 크림색 돌 위에 누워 보니 새 소리 합창이 들려왔다. 웅덩이 안 커다란 돌은 혹등고래 형상이었다. 노영심 작곡가가 만들었던 ‘똑바로 해도 거꾸로 해도 우영우’ 음악이 떠올랐다. 돌이 고래로 변신해 솟구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하례리는 효돈천을 사이에 두고 효돈동과 접한다. 한라산에서 쇠소깍에 이르는 13km 길이의 효돈천은 한라산의 비를 흘려보내는 통로이자 다양한 식생이 서식하는 숨은 절경이다. 이 국장은 말했다. “정령이라고 하면 종교색이 있나 오해하는 시선들이 있는데 전혀 아니에요. 누구나 품고 있는 반짝이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해 봤어요. 자연 속 어떤 존재든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마음을 알아봐 주었으면 해서요. 용서해야 할 자신, 인정해야 할 자신 같은 여러 모습의 자신도 만나 보세요.” 카페로 돌아와서는 저마다 작은 나뭇가지를 골라 천연물감을 사용해 새나 물고기 모양으로 색칠해 봤다. 어둠이 깔린 야외 정원에서는 귤나무 장작을 태워 바비큐를 하며 귤과 마시멜로를 구웠다. 어느새 마음이 가까워진 다른 참가자들과 소리 명상 도구인 싱잉볼로 화음을 만들며 생각했다. ‘이렇게 평안함이 스며드는구나.’● 제주를 담은 정원서귀포시 효돈동의 ‘베케’는 하례내창에서 차로 불과 6분 거리다. 효돈도 하례만큼 감귤로 유명한 동네다. 원예 전문가인 김봉찬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약 9900㎡(3000평) 감귤 농장을 탈바꿈시켜 2018년 문을 연 베케는 제주의 오름과 초원을 구현한 ‘한국식 자연주의 정원’이다. 밭에서 나온 돌을 쌓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 베케다. 베케는 통창을 통해 돌무더기와 이끼를 감상할 수 있게 한 카페가 입소문이 나면서 MZ세대, 외국인에게까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김 대표는 올해 5월 새로운 건물을 선보이며 베케의 ‘시즌 2’를 열었다. 주차장이던 땅을 파내 분화구 정원(2300㎡·약 700평)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린 것이다. “정원에 나무만 있는 건 뻔한 경관 아닐까요. 도시와 문명을 정원에 어우러지게 하고 싶었어요. 정원을 거닐며 건축에 들어서는 ‘길의 건축’인 셈이죠. 땅에 심은 노각나무가 콘크리트 건물과 중첩돼 공간에 깊이감을 줘요. 제 꿈은 ‘이렇게 좋은 야생의 분화구에 누가 건물을 지으라고 했냐’는 항의를 받는 거예요. 제주의 자연을 빼닮은 정원이라는 최고의 칭찬일 테니까요.”(김봉찬 대표) 그가 키우는 고양이가 정원에서 따스한 가을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꽃그령은 꽃이 시들어 오히려 몽환적이고, 돌과 흙을 시루떡처럼 쌓은 돌담에 핀 원평소국은 소복이 쌓인 흰 눈 같았다. 김 대표가 말했다. “좀 더 시들고 빛이 바래면 더 아름다워요.” 호텔업계 처음으로 최근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서귀포시 중문 롯데호텔 제주에도 비슷한 종류의 안식이 있었다. 인공적인 화산 분수쇼를 하던 장소가 제주 곶자왈을 형상화한 ‘원생정원’으로 거듭났다. 팽나무와 치자나무 등이 돌담과 어우러진 구불구불한 길은 느린 사유를 이끌었다. 이곳에서 낮에는 석창포차를 마시고, 밤에는 연못에 뜬 별을 만났다. 문득 궁금했다. 제주에서 내 마음은 평안해졌을까. 확실한 건 제주에서 잠시 멈춰 마음의 속도를 늦췄다는 것이다.가볼 만한 다른 정원들①생각하는 정원제주시 한경면에 1992년 문을 연 제주의 제1호 민간정원. 2000여 점의 분재와 1만여 그루의 나무를 설립자인 성범영 원장이 지금도 직접 가꾼다. 한국 정원의 특성을 보고 싶은 해외에서 특히 인지도가 높다②이끼숲소길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 올해 문을 연 2만 평(약 6만6000㎡) 규모의 대형 카페. ‘이끼숲’이 있는 ‘소길공원’이라는 뜻이다. 이끼숲과 풍혈(風穴·바람이 불어나오는 구멍)이 신비롭고 철쭉, 수국, 동백길도 조성돼 있다.글·사진 서귀포·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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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에서 잠시 멈춰 나를 찾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11월의 제주는 제3의 시공간 같았다. 섭씨 20도인 낮에는 양떼구름이 파란 하늘을 초원 가로지르듯 이동했다. 은목서와 꽃댕강나무는 어찌나 향기가 맑은지 무심코 지나친 발길을 되돌리게 했다. 보라색 쑥부쟁이가 흐드러진 낮은 돌담 너머로는 귤나무 군락이 이어졌다. 밤이 내려앉자 오래된 나무들에 걸린 작은 조명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제주는 거대한 생명의 정원이었다.●‘정령마을에서 잠시 멈춤’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의 ‘하례내창’에 들어서자 소파를 덮은 담요와 각종 소품이 몽골이나 인도 같은 이국의 분위기를 풍겼다. 정면의 네모난 창문으로는 안뜰의 나무들이 숲처럼 내다보였다. 흰 벽면에서는 모닥불 영상이 흘렀다. 군데군데 놓인 캠핑 의자에 몸을 묻고 ‘숲멍’이나 ‘불멍’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이가영 하례1리 체험휴양마을 사무국장이 참가자 일행을 반겼다. “시간 맞춰 오느라 서두르셨죠. 이젠 천천히 여러분만의 속도로 시간을 쓰세요.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함께 해주세요.” 하례내창은 ‘정령마을에서 잠시 멈춤’이라는 이름의 마을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카페다. 13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하례리는 제주특별자치도와 환경부 지정 생태관광마을이자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체험휴양마을이며 이곳에 사는 예술인들이 주민들과 협의해 정령(精靈·사물에 깃든 영혼)을 콘셉트로 잡은 예술마을이기도 하다. 이 국장이 소파로 안내했다. “이제 ‘나의 정령’을 찾아보는 여행을 떠나실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OOO다’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를 내밀었다. ‘단단하고 평안합니다’,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삶을 여행 중입니다’라는 세 가지 카드 중에서 현재의 마음 상태를 골라보라고 했다.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를 골랐다. 빈 칸을 채워야 할 두 번째 카드는 ‘나는 OOO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였다. 내 마음, 주변 사람들, 우리의 미래 등 5가지 선택지 중 고심 끝에 ‘내 마음’을 골랐다. 내 마음부터 평안해야 주변을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 과정으로 ‘판별’ 받은 ‘나의 정령’은 ‘중심에 좋은 것을 품은 영혼’이었다. 역삼각형 안에 원이 그려진 카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마음이 조금 평온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당신은 원래 마음 중심 단단히 정말 좋은 것을 품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흔들리는 지금의 시간이 곧 흘러가고 다음엔 더 평안한 마음으로 지금의 것들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마을 주민들이 만든 ‘믿거나 말거나’식 카드점이었지만 의외로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역삼각형처럼 불안정해도 희망은 있다고 확인받은 느낌이랄까. 이 프로그램의 다른 참가자들은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가지를 뻗어가는 영혼’, 우직하게 자신만의 호흡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황소 눈을 가진 영혼’ 등의 정령 카드를 받았다. 주최 측은 각각의 정령에 해당하는 기호를 뺨에 그려주고 그에 맞는 차를 내왔다. 영혼이 환대받는 기분이었다.●생명이 흐르는 효돈천 트레킹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모집 대상이었다. ‘휴학, 이직, 퇴사, 이별 등 멈춤 사이에 자기 발견이 필요한 성인.’ 구체적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멈춰 나를 찾고 싶었다. 둘째는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서귀포 효돈천 트레킹이 일정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마을 주민들이 개발한 효돈천 트레킹 프로그램은 해설사 교육을 받은 주민들의 인솔로 진행된다. 풀숲을 헤치고 들어선 그곳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화산이 분출했던 계곡은 조면현무암(얇게 흐르는 용암 위에 쌓인 현무암)이라는 절경을 남겼다. 네발 동물처럼 두 손과 발을 사용해 암벽 등반하듯 계곡을 가로질러 분지 위에 자리 잡았다. 다음부터는 각자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거친 물살에 깎여 매끈해진 크림색 돌 위에 누워보니 새 소리 합창이 들려왔다. 웅덩이 안 커다란 돌은 흑등고래 형상이었다. 노영심 작곡가가 만들었던 ‘똑바로 해도 거꾸로 해도 우영우’ 음악이 떠올랐다. 돌이 고래로 변신해 솟구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하례리는 효돈천을 사이에 두고 효돈동과 접한다. 한라산에서 쇠소깍에 이르는 13km 길이의 효돈천은 한라산의 비를 흘려보내는 통로이자 다양한 식생이 서식하는 숨은 절경이다. 이 국장은 말했다. “정령이라고 하면 종교색이 있나 오해하는 시선들이 있는데 전혀 아니에요. 누구나 품고 있는 반짝이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해봤어요. 자연 속 어떤 존재든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마음을 알아봐 주었으면 해서요. 용서해야 할 자신, 인정해야 할 자신 같은 여러 모습의 자신도 만나보세요.” 카페로 돌아와서는 저마다 작은 나뭇가지를 골라 천연물감을 사용해 새나 물고기 모양으로 색칠해봤다. 어둠이 깔린 야외 정원에서는 귤나무 장작을 태워 바비큐를 하며 귤과 마시멜로를 구웠다. 어느새 마음이 가까워진 다른 참가자들과 소리 명상도구인 싱잉볼로 화음을 만들며 생각했다. ‘이렇게 평안함이 스며드는구나.’●제주를 담은 정원서귀포시 효돈동의 ‘베케’는 하례내창에서 차로 불과 6분 거리다. 효돈도 하례만큼 감귤로 유명한 동네다. 원예 전문가인 김봉찬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3000평 감귤 농장을 탈바꿈시켜 2018년 문 연 베케는 제주의 오름과 초원을 구현한 ‘한국식 자연주의 정원’이다. 밭에서 나온 돌을 쌓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 베케다. 베케는 통창을 통해 돌무더기와 이끼를 감상할 수 있게 한 카페가 입소문이 나면서 MZ세대, 외국인에게까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김 대표는 올해 5월 새로운 건물을 선보이며 베케의 ‘시즌 2’를 열었다. 주차장이던 땅을 파내 분화구 정원(약 700평)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린 것이다. “정원에 나무만 있는 건 뻔한 경관 아닐까요. 도시와 문명을 정원에 어우러지게 하고 싶었어요. 정원을 거닐며 건축에 들어서는 ‘길의 건축’인 셈이죠. 땅에 심은 노각나무가 콘크리트 건물과 중첩돼 공간에 깊이감을 줘요. 제 꿈은 ‘이렇게 좋은 야생의 분화구에 누가 건물을 지으라고 했냐’는 항의를 받는 거예요. 제주의 자연을 빼닮은 정원이라는 최고의 칭찬일테니까요.” (김봉찬 베케 대표)그가 키우는 고양이가 정원에서 따스한 가을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꽃그령은 꽃이 시들어 오히려 몽환적이고, 돌과 흙을 시루떡처럼 쌓은 돌담에 핀 원평소국은 소복이 쌓인 흰 눈 같았다. 김 대표가 말했다. “좀 더 시들고 빛이 바래면 더 아름다워요.” 호텔업계 처음으로 최근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서귀포시 중문 롯데호텔 제주에도 비슷한 종류의 안식이 있었다. 인공적인 화산 분수쇼를 하던 장소가 제주 곶자왈을 형상화한 ‘원생정원’으로 거듭났다. 팽나무와 치자나무 등이 돌담과 어우러진 구불구불한 길은 느린 사유를 이끌었다. 이곳에서 낮에는 석창포차를 마시고, 밤에는 연못에 뜬 별을 만났다. 문득 궁금했다. 제주에서 내 마음은 평안해졌을까. 확실한 건 제주에서 잠시 멈춰 마음의 속도를 늦췄다는 것이다.〈가 볼 만한 다른 정원들〉①생각하는 정원제주시 한경면에 1992년 문을 연 제주의 제1호 민간정원. 2000여 점의 분재와 1만여 그루의 나무를 설립자인 성범영 원장이 지금도 직접 가꾼다. 한국 정원의 특성을 보고 싶은 해외에서 특히 인지도가 높다.②이끼숲소길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 올해 문을 연 2만 평 규모의 대형카페. ‘이끼숲’이 있는 ‘소길공원’이라는 뜻이다. 이끼숲과 풍혈(風穴·바람이 불어나오는 구멍)이 신비롭고 철쭉, 수국, 동백길도 조성돼 있다. 서귀포·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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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명태균이 후진타오 친필 휘호 앞에 선 사진 속 장소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최근 언론에 보도된 명태균 사진을 보니 딱 저희 ‘생각하는 정원’의 영빈관이더라고요. 저희 정원에는 각종 기업 행사나 가든파티 때에만 개방하는 시크릿가든이 있는데 여기에 영빈관이 있어요. 아버지나 제가 특별한 일행에게만 열어드리는 곳에 어떻게 명태균이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일행에 끼어 들어온 것 같아요.” (성주엽 제주 ‘생각하는 정원’ 대표)10일 제주시 한경면 ‘생각하는 정원’에서 이 정원의 설립자인 성범영 원장(86)과 그의 아들인 성주엽 대표(60)를 만났다.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명태균 씨가 지난달 언론에 직접 제공한 사진의 배경이 ‘생각하는 정원’ 내 ‘시크릿가든’이라고 확인해주었다. 사진 속 명 씨는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의 친필 휘호 앞에 서 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장소가 대체 어디인지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왔다. 1992년 설립된 ‘생각하는 정원’은 서울에서 와이셔츠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성범영 원장이 1968년부터 제주 중산간 3만6000㎡ 규모의 황무지를 개간해 정원을 조성했다. 1995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 1998년 후진타오 (胡錦濤) 당시 부주석이 찾아오면서 중국 주요 인사들의 방문이 이어져 한국의 정원 외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 때문에 성 원장은 중국 인민교육출판사의 중국 9학년(한국 중학교 3학년에 해당)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 한국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나오고 있을 정도다. 관련기사: 생각하는 정원은 2022년 ‘세계의 정원(Gardens of the World)’, 2023년 ‘론리플래닛-정원을 탐험하는 기쁨(Lonely planet-The Joy of Exploring Gardens)’ 등의 책에 한국 정원으로는 유일하게 소개되는 등 해외에서 특히 인지도가 높다.이 정원에 따르면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은 1998년 4월 30일 생각하는 정원을 방문해 소나무를 기념 식수하고 즉석에서 친필 휘호를 남겼다. “당시 후진타오 국가 부주석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경상북도에서 150년 된 육송 한 주를 옮겨 심었습니다. 후진타오는 당시 방한 일정 중 전용기를 타고 제주로 와서 우리 정원만 들르고 바로 일본으로 갔어요. 온화한 성품과 뛰어난 심미안이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성범영 ‘생각하는 정원’ 원장)후진타오 전 주석이 이 정원에 심은 소나무 앞 식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 있다. ‘중·한 우호 관계가 이 소나무처럼 푸르고 높게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이곳은 중·한 우호의 상징적인 곳입니다. 생각하는 정원에 입장객 100만 명 시대가 곧 오기를 기원합니다.’성 원장, 성 대표와 정원 한편에 있는 ‘시크릿가든’ 문 앞에 섰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성 원장이 굳게 잠겨 있던 문을 열자 연회를 할 수 있는 너른 잔디밭과 제주의 돌무덤, 한국 정자의 풍경이 시야에 펼쳐졌다. “어제도 400명이 참여한 기업 행사를 여기 시크릿가든에서 치렀어요.”(성범영 ‘생각하는 정원’ 원장)생각하는 정원의 시크릿가든에서는 그동안 각종 행사가 열려왔다고 한다. 2008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재무장관 다과회, 2010년 삼성전자 라틴 파트너 익스피어런스, 2011년 한국은행 아시아태평양 중앙은행 총재 회의, 2012년 세계기능올림픽 총회 만찬, 한국타이어 유럽 딜러 만찬, 2013년 아시아 국세청장 만찬 등이다. 설립 32주년이 된 이 정원에 역사교육문화관을 짓고 싶은 건 성 원장의 오랜 꿈이다.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장소가 시크릿가든 내 영빈관이다. 영빈관에는 주로 중국 유명 인사들의 글과 그림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성 원장이 유명 인사들에게 부탁해 받은 방문 기념 즉석 친필 휘호나 그림들이었다. 정원 측에서 “명태균이 사진을 찍은 장소가 확실하다”는 방은 영빈관 2층에 있는 VIP룸이었다. 정면에는 대형 산수화, 뒤쪽에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친필 휘호가 걸려 있었다. 휘호 옆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복도의 작품은 중국 국가미술관 우웨이산(吴为山) 관장의 글이었다. 2000년 이 정원을 방문해 인연을 이어온 그는 성 원장의 이름을 따서 사행시를 지어 서예 작품을 써 주었다. 명 씨가 공개한 사진에도 우웨이산 관장의 작품이 같은 자리에 같은 각도로 걸려 있다. 명 씨는 언제 어떻게 이 방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그는 왜 촬영을 금지하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으며, 왜 이곳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을까. 사진은 실제로 이 방에서 촬영된 것일까, 사진 합성의 가능성은 없을까. 성주엽 ‘생각하는 정원’ 대표는 “후진타오 친필 휘호가 생각하는 정원 내 시크릿가든에 걸려 있는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며 “명태균이 그 휘호 앞에 서 있는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건 자신이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고 과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명 씨는 8, 9일 검찰에 출석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이틀 연속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명 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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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도 지역 주민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도시의 숲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올가을, 가보고 깜짝 놀란 정원이 있어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독자 여러분께 꼭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있는 한독과 제넥신의 정원입니다. 공식 명칭은 ‘한독 퓨처 콤플렉스 & 제넥신 프로젠 바이오 이노베이션 파크’입니다.기업의 정원이지만 누구나 이 정원에 들어설 수 있는데요. 노랗게 잎이 물든 생강나무와 달콤한 향의 계수나무가 계절의 감각을 일깨우면서 신비로운 숲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예. 그러니까 이곳은 숲을 도시에 그대로 옮겨온 숲 정원이에요. 이끼와 양치식물, 누운주름잎 등이 바닥을 깔고 산부추와 쑥부쟁이, 소사나무와 피나무 등이 저마다의 키대로 공간을 채우며 기가 막히게 어우러집니다. 곳곳에 물확이 있어 새가 날아와 목을 축일 수도 있습니다. 아련한 연분홍 철쭉이 꽃을 피울 봄의 정원도 상상해 봅니다. 섬세하고 단아하며 여성적인 느낌입니다.진짜 숲처럼 군데군데 흙 언덕도 있는 이 정원의 바로 밑이 주차장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정원에는 ‘아주 특별한 의자’들도 군데군데 놓여있어요. 이헌정 도예가의 도자 의자는 미적 감각을 일깨우는 한편 누구나 앉아서 쉴 수 있습니다. 숲을 닮은 정원에서 예술 작품을 일상품으로 누리는 경험, 신선합니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자가 반가워 이 도예가에게 연락하니 “너무 딱딱하지 않은 유기적 형태의 조형물이 그 장소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작업했다”고 합니다.이 정원은 한독과 제넥신이 2022년 마곡지구에 신사옥과 연구소를 개발하면서 조성했습니다. 연구원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신약개발에 몰입하도록 정원을 조성한 이 사옥은 지난해 말 대한민국 생태환경건축대상도 받았습니다. 김영진 한독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곳이 바로 이 중정(中庭)이라고 합니다. 도심 속 작은 숲속 콘셉트로 만들어 연구원뿐 아니라 지역 직장인과 주민들의 휴식을 돕고 싶었다고 하네요.예전에 읽었던 ‘수학자들’이란 아름다운 책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세계적 수학자 54명이 쓴 에세이인 이 책에서 부러웠던 게 있습니다.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와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등에는 수학자들이 연구하다가 언제든 거닐며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숲 정원이 있더라고요.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2010년 받은 프랑스 수학자 세드리크 빌라니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상에서의 여유는 정원에서 암탉들에게 모이를 주거나 화초에 물을 주며 찾습니다.”한독& 제넥신 정원을 조성한 권춘희 ‘뜰과숲’ 대표(60)와 함께 정원을 걸었습니다. 부산 F1963과 모모스커피 마린시티점, 서울 국제갤러리, 경기 양평 구하우스 등 멋이 흐르는 문화와 상업공간들의 정원을 만들어온 그는 말합니다.“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정원을 많이 봤잖아요. 그런데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진짜 숲이에요. 지금 하는 조경 작업들은 산에서 본 풍경들을 재현하고 있는 거예요. 숲 정원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에 가서 숲을 찬찬히 관찰하는 겁니다. 산에는 인간이 만든 자연에서 진짜 자연으로 넘어갈 때의 경계 지점이 있거든요. 경계의 식물들은 복잡하고 어지럽지만 진짜 자연 속으로 들어서면 자연의 규칙이 보이기 시작해요. 계곡 주변 습한 곳에는 신나무가 많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조팝나무가 많지요. 이런 걸 적용해 도시에 숲 정원을 만듭니다.”경북 의성 과수원집 딸로 자란 권 대표는 어릴 적 산에서 뛰어놀며 온갖 감각을 접했다고 합니다. 산속 촉촉한 곳에 피어있던 노루귀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요. 성균관대에서 생물학, 고려대 대학원에서 원예학을 공부한 그는 서울 청계천의 헌책방에서 샀던 1980년대 문고판 ‘양화소록’ 이야기를 합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보면 식물 하나하나마다 습성이 다릅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어떻겠어요. 사람을 대할 때도, 자녀를 기를 때도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그러면서 세계적 트렌드로서의 숲 정원을 말합니다. “몇 년 전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에 갔을 때, 전시 주제가 농업과 음식이었어요. 전시장 전체가 먹거리로 채워지고 정원에도 과일나무들이 심어 있었어요. 그중 오스트리아 전시관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ㅁ’자 회랑을 설치하고 가운데 중정을 만들었는데 오스트리아의 작은 숲을 그대로 옮겨놨더라고요. 우리나라 중부지방 숲과 비슷하게 계곡까지 전시장에 옮겨놓은 숲 정원을 보고 세계에서 온 많은 이들이 감동했던 게 기억납니다.” 요즘엔 가정집 정원 조성을 의뢰하는 고객들도 숲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작정 마당에 깔던 잔디를 빼버리고 창을 통해 나무가 보이게 심으면 마당이 바로 작은 숲으로 변신하니까요. 마당에 무조건 심던 소나무와 향나무 대신 피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를 심고 작은 텃밭을 만들면 정원이 ‘모두가 숲속에서 함께 하는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마곡지구에는 성냥갑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한독과 제넥신의 숲 정원을 보고 마곡지구에 대한 전체 인상마저 바뀌었습니다. 이 정원에서 만난 김상진 제넥신 부장도 “연구원들이 틈틈이 들러 호젓하게 걸어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더 많은 기업과 연구소들이 정원이 주는 안식과 치유의 힘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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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수동을 걷다가 詩의 정원을 만난 어느 가을날의 산책[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여름날 서울 성수동에서 봤던 자작나무 그림자가 내내 마음에 저장돼 있었다. 길가의 작은 정원 속 자작나무들이 우란문화재단 건물의 흰 벽면을 배경으로 산들산들 흔들리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곳은 도심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건축물 대지 일부를 공공에 개방한 공개공지였다. 시민들이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쉬는 모습을 보면서 공공 정원이 도시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햇볕도 바람도 온도도 거슬림 없이 딱 좋은 계절, 가을이 찾아오자 그 인상 깊던 자작나무의 안부가 슬슬 궁금해지던 터였다. 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지인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게 된다. “문구 마니아들의 개미지옥, 성수동 포인트오브뷰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팝업 전시가 열리고 있어 다녀왔어요. 매일 시인분들이 상주하면서 책 추천과 사인을 해주세요.” 가을, 나무, 문구, 시(詩)…. 이토록 환상적인 조합이라니.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4번 출구에서 내려 성수동을 걷기 시작했다.우란문화재단의 자작나무는 일부 노랗게 변한 잎사귀가 가을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름꽃인 가우라와 가을꽃인 쑥부쟁이가 공존하는 바로 옆 성수역현대테라스타워의 공개공지 화단을 지나자 물이 흐르는 ‘수생비오톱’이 나왔다. 비오톱은 생물 공동체 서식지를 뜻한다. 나비와 새들이 찾아오도록 횃대와 돌무지를 만들고 수생식물과 나무를 심었다. 과거 쇠퇴한 공장지대에서 젊은이들의 ‘핫플’로 변모한 성수동에서 공공 정원을 만나는 게 고마웠다. 성수동에는 먹고 마시는 팝업스토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세계적 럭셔리그룹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가 2년 전 성수동을 콕 찍어 문을 연 크리스찬디올의 컨셉 스토어 ‘디올 성수’는 정원에서 한창 크리스마스 조경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프랑스 정원을 연상시키는 원뿔형 나무들은 구슬 조명을 두르고 그 아래로는 장미꽃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흰색 가림막 사이로 빼꼼히 정원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인부들이 “며칠 있으면 보게 될 텐데요”라고 했다. 맞은편 탬버린즈 성수 플래그십스토어는 최근 세계적 건축·인테리어 잡지 프레임(FRAME) 어워드에서 건축과 조명의 창의성을 인정받아 ‘올해의 브랜드스토어’로 선정됐다. 빛의 질감과 감각은 공간 경험의 질을 결정한다. 우아한 빛이 도시 경관과 우리 마음을 밝혀주기를….디올성수를 끼고 골목길로 접어들면 곧 ‘포인트오브뷰’에 도착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시대에 종이와 펜, 심지어 도장의 물성(物性)까지 귀하게 여기는 편집숍이 성수동 한복판에 있는 것도 신기한데, 늘 MZ세대들로 북적이기까지 한다. 젊은 층이 시를 통해 위로를 받으니 시집 팝업 전시까지 열리게 된 것이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고선경 시인이 독자를 만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사서 사인을 요청했더니 ‘무한히 터지는 기포를 담아’라고 써 주었다. 그 짧은 문장에서 톡 쏘는 소다수의 느낌이 확 전해졌다. “정원과 관련한 시를 읽고 싶은데요”라고 했더니 고 시인은 곧바로 안희연 시인의 ‘당근밭 걷기’ 시집을 추천했다. 처음엔 표제작에 나오는 당근밭이 넓은 의미의 정원이라 권했나 싶었는데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자주 멈춰 서는 사람이군요. 당신은 나에게서 안개 숲을 보고 있네요(중략). 그래도 당신의 장면이 마음에 듭니다. 길가에 쪼그려 앉아 눌어붙은 초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당신이.’ -안희연, ‘가는잎향유’ 중에서‘그의 하루를 지켜봅니다. 잠에서 깨어나 상을 차리고 먹다 만 밥을 치우고 티브이를 보다가 다시 잠드는 생활입니다. 그는 좀처럼 외출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에게 발이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주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것 외엔 미동도 없습니다. 물과 햇빛이 필요한 건 오히려 그쪽인 것 같습니다.’-안희연, ‘율마’ 중에서안희연의 시에서 화자(話者)는 인간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식물이 인간을 관찰하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한다. 식물 입장에서 보면 인간도 돌봄과 긍휼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다. 얼마 전 읽었던 ‘식물의 사유’라는 책이 떠올랐다. 자연은 우리가 숨 쉬고, 감각을 통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지만 우리는 자연환경을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일과 생활에 치여 이리저리 돌진하다가 서서히 생명이 사라진다는 구절이 있었다. ‘살아있고 변화하는 것으로서 나무의 존재를 봐야 합니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자작나무에 같은 이름을 부여합니다. 이름은 나무의 형태, 색깔, 소리, 냄새를 가리키는데 이런 감각들은 하루 사이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한 해의 시간이 바뀌면서는 완연히 달라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작나무에 동일한 이름을 부여합니다. 우리는 자작나무를 말하기 위해 늘 같은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자작나무의 생생한 현존(現存)으로부터 자작나무를 지워버립니다. 또 자작나무와 함께 현존으로 들어가려는 우리의 감각을 스스로 박탈합니다.’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의 ‘식물의 사유’ 중에서포인트오브뷰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곳에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건물에 들어서면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안뜰에 작은 온실과 정원이 있다. 지금 문학동네 팝업 전시에서는 이 온실이 ‘시의 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만난 다양한 시가 마음속 정원에 피어나 자리 잡았다. 도시의 정원은 아스팔트 같은 일상에서 때로는 톡 쏘고 때로는 마음 저미고 때로는 환희에 넘치는 저마다의 시를 쓰게 해주는 게 아닐까. 계절을 음미하고 다른 생명체들에 귀 기울이고 누군가를 떠올리면서….‘언젠가 누군가와 남도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기 정말 좋았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요 말하게 되는 그 순간에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지. 나는 너와 소쇄원의 오래된 건물 사이를 걸었을 것이다 나무에 매달린 꽃들에 렌즈를 가까이 들이밀며 소쇄원이 보이지 않는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황인찬,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중에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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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컨셉의 숏폼 실험… 스타일링 제안과 매출을 한 번에

    신세계그룹 패션 플랫폼 W컨셉이 숏폼을 모아보는 신규 서비스 ‘플레이(PLAY)’를 최근 선보였다. 유통업계에서도 숏폼(short-form)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사이즈 추천, 개인화 서비스 강화 등 플랫폼에서 고객 경험을 혁신하고 있어 주목된다.W컨셉이 플레이를 도입한 것은 온라인으로 전달할 수 있는 패션 속성의 한계를 깨고, 고객 콘텐츠 소비 습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패션 상품은 오감 체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재와 마감 등에 따라 착용감과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상품 속성과 브랜드 고유의 아이텐티티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자 숏폼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고객의 콘텐츠 소비 습관의 변화도 한몫했다. 모바일에 친숙한 요즘 세대는 짧은 영상을 통해 ‘출근룩’과 ‘데이트룩’ 등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에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링 정보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숏폼 모아보기 서비스를 제시해 쇼핑 동선을 간소화하고 구매 가능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W컨셉의 이러한 실험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플레이 서비스를 테스트로 선보인 후 이달 20일까지 한 달 만에 상위 70여 개 브랜드 평균 매출이 40% 늘었다. 1분 내외로 편집한 자체 제작 영상, 라이브 방송, 브랜드 룩북 영상 등을 보고 즉시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 고객의 반응을 이끌었다.대표적으로 이바나헬싱키, 망고매니플리즈, 오어, 어그 등 브랜드 감도가 높은 영상 콘텐츠와 맞춤 상품 추천으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 20, 30대 고객은 브랜드 이미지와 감도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데, 영상이 이를 해소시켜준 셈이다.가을·겨울(FW) 시즌 대표 상품인 니트와 겉옷 등 신상품의 착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각도로 촬영한 영상이 조회수가 높았다. 향후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스타일링 팁과 트렌드 정보 등 콘텐츠를 다양화해 브랜드와 동반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한편 플레이에 접속한 고객 5명 중 1명은 VVIP 등급으로 영상에 대한 관심도나 구매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W컨셉 VVIP 등급 고객은 최근 6개월 기준 누적 구매액이 150만원 이상으로, 플랫폼 내에서도 패션에 가장 관심이 높은 그룹이다. 이같은 고객의 긍정적 반응이 브랜드 매출로 이어지면서 플레이는 올해 안에 정식 서비스로 론칭할 예정이다.W컨셉 관계자는 “숏폼 서비스가 초기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순항 중”이라며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플랫폼 내에서 추구하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매출도 확대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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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릇도 음식도 예술, 가을의 정원을 담은 갤러리 로얄의 전시와 아트 다이닝

    욕실 전문기업 로얄앤코(ROYAL&CO.)가 운영 중인 갤러리로얄이 12월12일까지 자연과 시간의 힘을 담아낸 전시 ‘Arts-Acts’를 연다. 도예 작가 이혜진과 홍성일로 구성된 노산도방, 옻칠 작가 한결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노산도방은 정원에 자연스럽게 피어있는 대상들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그 영감과 정서를 접시 위에 재현한다. 백자 달항아리와 차 도구는 복잡한 기교를 덜어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한결 작가는 직접 재배한 10년 이상 자란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을 사용해 자연 재료의 생명력과 본질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의 이미지가 나무의 질감 위에 얹혀 자연의 치유와 빛을 표현한다. 전시 연계 행사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갤러리로얄 2층에서 11월 7∼9일 아트 다이닝 행사도 열린다. 점심은 7코스, 저녁은 8코스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시간이 주는 깊이를 보다 섬세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행사다. 제주의 식재료를 사용한 창의적 메뉴로 구성된 이 특별한 식사는 전시 작가들이 만든 그릇과 다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식사를 하면서 작품을 몰입하며 경험할 수 있다. 회복을 위한 한식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는 제주 오지나, 40여 년간 한국 발효 음식과 차를 연구해 온 부영농장, 제주 무릉외갓집, 서귀포항 어부와 한라 식당, 옥인다실 등과 협업한 미식의 향연이 펼쳐진다.제주 구좌 당근과 가을 사과로 만든 웰컴 웰니스 주스를 시작으로, 제주 오일장 고사리 전과 유기농 청란 차완무시 등 한입 음식, 제주 돌문어와 뿔소라와 성게 등이 어우러진 초회, 옻간장 제주 흑돼지, 제주 동백마을 오일과 양하 등을 곁들인 채끝 등심, 부영농장의 무농약 귤 쥬스, 숯불 제주 갈치구이와 서귀포항 생옥돔 미역국 등이 이어진다. ‘작품’인 그릇도, 음식도 예술이다. 마지막 디저트로는 오메기떡, 제주 바나나 크림 브륄레, 우연못 티가 제공된다. 김세영 갤러리로얄 대표는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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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이꼬이앤스테이의 아침밥상… “아침밥 먹고 살아갈 힘 냅시다”

    “아침밥의 로망을 나흘간 채워줬던 이꼬이(ikkoi), 또 올게요. 나영.” 방송인 김나영이 제주 ‘이꼬이앤스테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제주 이꼬이앤스테이는 서울 용산에서 일본 가정식 식당 ‘이꼬이’를 운영했던 정지원 대표가 2014년 문을 열었다. 이꼬이는 동네 시장에 있던 작은 식당이었지만, 패션·광고업계 종사자 등 세상 멋쟁이들이 모여 하이볼에 우동 샐러드를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날려 보내던 이름난 심야식당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서울의 이꼬이를 추억하는 이들이 제주를 찾으면 묵는 곳이 제주 이꼬이앤스테이다.제주의 다양한 숙박 시설을 제쳐두고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 대표가 직접 차려주는 아침밥 때문. 제주 민속오일장에서 장을 본 제철 채소로 만든 반찬,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짓는 고슬고슬한 솥밥, 무엇보다 1인당 한 마리씩 인심 좋게 구워 나오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생선…. 이 든든한 아침밥상의 환대가 많은 이들의 쓸쓸한 마음을 환하게 채워왔다. 어느덧 만 10주년 된 이곳의 방명록에 채워진 글들이 ‘아침밥의 위로’를 증언한다. “머릿속을 비우고 맛있는 아침밥으로 영혼을 채우고 몸과 마음에 쉼을 주고 갑니다.”“요즘 마음이 허했는데 신기하게 마음까지 배부른 기분이네요. 윤기 나는 솥밥이 하루의 시작을 응원해주는 것 같아 힘이 나요.”“평소에 챙겨 먹지 않던 아침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어요.” 오랜 투병 끝에 홀로 제주 여행을 하면서 식단 관리가 중요했던 한 투숙객은 이런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깔끔한 조식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양희은 님의 ‘네가 있어 참 좋다’라는 노래가 흐른다. 순간 떠오른 느낌, 생각. ‘그래, 여기에 머물고 갈 수 있어 참 좋다’. 여자 혼자 뚜벅이 여행으로 떠나온 열흘 동안 이곳이 있었기에 저녁이면 돌아와 정갈한 잠자리와 음식으로 휴식을 가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다들 ‘셰프님’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본인은 ‘주인장’으로 불리기 원하는 정지원 제주 이꼬이앤스테이 대표를 16일 만났다. 그는 겨울에는 서울 여의도에서 ‘살롱 드 이꼬이’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요리 전문가다. 이날 그는 시금치 깨 소스 무침, 데친 고사리 볶음, 아삭아삭 연근조림, 톳 조림, 전갱이구이, 알배추 양파 된장국, 당근 샐러드, 솥밥으로 아침 밥상을 차리고 디저트로는 무화과 와인 조림을 준비했다. -어떤 기준으로 아침밥상을 차립니까.“100%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합니다. 재료, 조리법, 양념 베이스를 겹치지 않게 해요.간장 조림이 있으면 소금 간을 한 볶음 요리, 깨 소스나 두부로 무친 무침 요리를 곁들이죠. 그러면 식감도 겹치지 않거든요. 가능한 색상도 겹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침밥에 왜 그토록 진심입니까.“그저 재료 하나하나에 집중해 최소의 양념으로 투숙객을 위한 아침밥을 준비했어요.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해주셔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던 아침밥, 그 밥심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이제는 고인이 된 아빠가 늘 일찍 출근하셨기 때문에 저희는 매일 아침밥을 일찍 먹었죠. 아침밥은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에요. 제주 이꼬이앤스테이의 아침밥을 먹고 일상으로 돌아가 힘을 내겠다는 반응들을 보고 ‘아침밥은 그렇게 살아갈 힘을 주는구나’ 깨달았어요.”-지난해 ‘이꼬이에 놀러 왔어요’라는 요리책도 펴내셨습니다.“어느 남자 손님이 따뜻한 아침밥 냄새에 얼굴이 환해지셨어요. 평소 당근을 먹지 않던 꼬마 손님들이 제가 만든 당근 샐러드를 먹고 ‘더 주세요’ 할 때엔 ‘내가 그동안 해 온 일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 싶어 또 하루를 열심히 살게 됩니다. 누구나 집에서 따라 만드실 수 있도록 레시피를 공개하고 제주의 추천 명소들도 소개했어요.”-평소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저녁은 가능하면 충분한 채소를 먹고 탄수화물은 절제하려고 해요. 제주 민속 오일장에서 채소를 6끼니 정도 먹을 분량을 구매한 뒤 손질해 용기에 소분합니다. 샐러드 스피너와 가정용 진공기를 집에 갖춰두면 편리해요. 채소는 물기를 탈탈 털어 키친타월을 깔고 보관하면 사흘 정도 먹을 수 있거든요. 가정용 진공기로 진공 포장해 냉동실에 넣으면 수분 손실이 적어 일반 냉동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저는 비트를 제철에 왕창 사서 오븐에 구운 후 진공시켰다가 먹어요.”-어릴 때부터 아침밥을 지어주신 어머니에게 이제는 아침밥을 해드립니까.“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투병하실 때 엄마가 내내 곁에서 고생하셨어요. 그런 엄마를 위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밥을 차려드리는 것이더라고요. 엄마가 좋아하는 아침 반찬인 톳 조림, 더덕 무침, 감자 샐러드, 일본식 계란말이를 했죠. 최근에서야 엄마가 진미채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돼 진미채 무침을 해드렸더니 따뜻한 흰 밥에 드시면서 행복해하셨어요.”-아침밥에는 정말로 위대한 힘이 있나요.“아침밥을 예찬하는 방명록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아침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음’, ‘따뜻함’, ‘치유’라는 걸 알게 됐어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지은 뒤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마치면 정작 저는 점심에 가까운 늦은 아침을 먹지만, 저의 마음이 아침 밥상에 그대로 전달되는 걸 느끼니 좋은 에너지와 정성을 담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 최인아 씨가 쓴 책에서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란 구절을 읽고 울컥했어요. 그 삶의 태도를 매일 생각합니다.”‘이꼬이’ 추천 아침 밥상 반찬 레시피당근 샐러드재료: 당근 1개(180g 전후), 양파 1/4개, 다진 마늘 1작은술, 포도씨유 약간, 화이트 와인 식초 1큰술, 씨 겨자(홀그레인 머스터드) 1큰술 1. 당근과 양파는 채 친다. 마늘은 칼로 곱게 다진다. 2. ①의 재료를 모두 섞어 전자레인지 용기에 담고 포도씨유를 한 바퀴 두른 뒤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돌린다. 2. ②에 화이트 와인 식초, 씨 겨자를 넣고 잘 섞은 후 한 김 식혀서 보관한다.데친 고사리 볶음 재료: 데친 생고사리 250g, 돼지고기 50g, 다진 생강 약간, 간장 2큰술, 들기름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1. 데친 생고사리는 깨끗하게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후 간장 1큰술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15분 정도 그대로 둔다. 2. 돼지고기는 가늘게 채 친다. 3.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생강을 넣어 볶다가 향이 올라오면 돼지고기를 넣고 볶는다. 4. 돼지고기가 하얗게 변하려고 하면 준비한 ①의 고사리를 넣고 볶는다. 5. 고사리 숨이 죽으면 남은 간장 1큰술과 소금 약간을 넣고 한 번 더 볶은 다음 불을 끄고 후춧가루를 살짝 뿌린다아삭아삭 연근조림재료 : 연근 400g, 마른 홍고추 1개, 포도씨유 약간 조림 소스 간장 4큰술, 설탕 2큰술, 청주 2큰술 1. 연근은 껍질을 벗긴 후 조금 큰 한 입 사이즈로 자른다. 2.①을 찬물에 5분 정도 담갔다가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한다. 3. 조림 팬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홍고추를 볶다가 향이 올라오면 손질한 연근을 넣어 볶는다. 4. ③의 팬에 간장, 설탕, 청주를 넣고 중간 누름 뚜껑을 덮어 센 불에 올린다. 끓어오르면 중약 불로 줄이고 15분간 조린 후 불을 쓰고 조린 팬에서 완전히 식힌다. 중간에 두세 번 위아래를 바꿔준다.글·사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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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 경관을 활용한 ‘아트캉스’ 명소, 워커힐호텔앤리조트

    20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앤리조트(이하 워커힐) 내 ‘포레스트 파크’. 앞쪽에 야외 무대가 설치돼 있고 드넓은 잔디밭에는 캠핑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와인과 햄 , 담요도 마련돼 있었다. 지난해 10월 첫선을 보인 이래 올 가을 3회째 열린 ‘워커힐 파크 콘서트’ 현장이었다. 오후 5시에 시작해 한 시간 반 정도 진행된 이 콘서트에서는 50인조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영화 ‘원스’와 ‘러브레터’ 등 친숙한 O.S.T 음악들을 연주했다. 해질 무렵부터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낭만적 선율이 가을의 정원을 가득 채웠다. 워커힐은 자연 경관을 활용한 도심 속 ‘아트캉스’(아트+호캉스)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파크 콘서트의 경우 그랜드 워커힐 서울, 비스타 워커힐 서울, 더글라스 하우스에서의 숙박과 함께 콘서트 관람을 연계한 패키지도 선보였다. 600여 명의 관객 중 30% 이상이 패키지를 연계해 공연과 투숙을 함께 즐겼다는 설명이다. 봄철 벚꽃 시즌에는 ‘스프링 페스티벌’도 열린다. 워커힐의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와인 페어와 미니 음악회 등을 즐길 수 있는 행사다. 호텔 산책로에서부터 아차산 생태공원까지 1.5km 가량 이어지는 워커힐로는 서울시가 ‘아름다운 서울 벚꽃 길’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다. ‘스프링 와인 페어(Spring Wine Fair) - 구름 위의 산책’과 ‘미니 음악회 - 스프링 이즈 히어(Spring is Here)’ 등 다양한 패키지와 프로모션이 큰 인기를 모았다. 워커힐은 국내 공연과 쇼 문화의 탄생지로 불린다. 루이 암스트롱이 워커힐 개관을 기념해 2주간 내한 공연을 진행했고, 퍼시픽 홀에서 론칭한 ‘하니비쇼’는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춤을 추는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워커힐의 문화 DNA는 ‘빛의 시어터’(티모넷 운영)가 이어받았다. 2022년 5월 새롭게 재 탄생한 빛의 시어터에서는 아날로그 예술과 현대 미디어 아트를 합친 몰입형 예술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전시장 내부에는 100여 개의 프로젝터와 수십 개의 스피커가 있다. 21m의 높은 층고와 약 1000평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빛과 웅장한 음악이 온전한 몰입을 유도한다. 1963년 대극장으로 사용될 당시의 헤리티지와 건축미를 살린 샹들리에와 분장실 콘셉트의 포토존이 방문객들의 재미를 더한다. 비스타 워커힐 서울의 스튜디오 스위트룸과 딜럭스룸 객실에는 NCT DREAM(엔시티 드림)의 꿈과 팬 사랑이 녹아난 콘셉트룸 ‘드림 하우스(DREAM HOUSE)’도 조성됐다. 팬들은 호텔 체크인을 할 때 멤버들의 환영 편지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만든 투어 가이드를 따라 여정을 즐길 수 있다. ‘문화살롱’은 워커힐이 2019년 4월부터 매월 말 ‘최인아책방’과 함께 책, 음악, 아트 등 삶에 영감과 휴식을 주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주제로 삼아 개최하는 문화 콘서트다. 유명 저자와 함께하는 북토크, 고객이 함께 참여하는 클래식&재즈 공연, 드로잉, 캘리그래피 등 다채로운 체험형 프로그램이 구성돼 있다.워커힐 관계자는 “워커힐은 아차산과 한강을 품은 독보적인 경관을 최대한 활용해 워커힐만의 창조적 문화 콘텐츠를 고객에게 제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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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밥 먹고 살아갈 힘 냅시다”

    “아침밥의 로망을 나흘간 채워줬던 이꼬이(ikkoi), 또 올게요. 나영.” 방송인 김나영이 제주 ‘이꼬이앤스테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제주 이꼬이앤스테이는 서울 용산에서 일본 가정식 식당 ‘이꼬이’를 운영했던 정지원 대표가 2014년 문을 열었다. 이꼬이는 동네 시장에 있던 작은 식당이었지만, 패션·광고업계 종사자 등 세상 멋쟁이들이 모여 하이볼에 우동 샐러드를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날려 보내던 이름난 심야식당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서울의 이꼬이를 추억하는 이들이 제주를 찾으면 묵는 곳이 제주 이꼬이앤스테이다.제주의 다양한 숙박 시설을 제쳐두고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 대표가 직접 차려주는 아침밥 때문. 제주 민속오일장에서 장을 본 제철 채소로 만든 반찬,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짓는 고슬고슬한 솥밥, 무엇보다 1인당 한 마리씩 인심 좋게 구워 나오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생선…. 이 든든한 아침밥상의 환대가 많은 이들의 쓸쓸한 마음을 환하게 채워왔다. 어느덧 만 10주년 된 이곳의 방명록에 채워진 글들이 ‘아침밥의 위로’를 증언한다. “머릿속을 비우고 맛있는 아침밥으로 영혼을 채우고 몸과 마음에 쉼을 주고 갑니다.”“요즘 마음이 허했는데 신기하게 마음까지 배부른 기분이네요. 윤기 나는 솥밥이 하루의 시작을 응원해주는 것 같아 힘이 나요.”“평소에 챙겨 먹지 않던 아침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어요.” 오랜 투병 끝에 홀로 제주 여행을 하면서 식단 관리가 중요했던 한 투숙객은 이런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깔끔한 조식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양희은 님의 ‘네가 있어 참 좋다’라는 노래가 흐른다. 순간 떠오른 느낌, 생각. ‘그래, 여기에 머물고 갈 수 있어 참 좋다’. 여자 혼자 뚜벅이 여행으로 떠나온 열흘 동안 이곳이 있었기에 저녁이면 돌아와 정갈한 잠자리와 음식으로 휴식을 가진 것 같다. 감사합니다.”다들 ‘셰프님’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본인은 ‘주인장’으로 불리기 원하는 정지원 제주 이꼬이앤스테이 대표를 16일 만났다. 그는 겨울에는 서울 여의도에서 ‘살롱 드 이꼬이’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요리 전문가다. 이날 그는 시금치 깨 소스 무침, 데친 고사리 볶음, 아삭아삭 연근조림, 톳 조림, 전갱이구이, 알배추 양파 된장국, 당근 샐러드, 솥밥으로 아침 밥상을 차리고 디저트로는 무화과 와인 조림을 준비했다. -어떤 기준으로 아침밥상을 차립니까.“100% 국내산 식재료를 사용합니다. 재료, 조리법, 양념 베이스를 겹치지 않게 해요.간장 조림이 있으면 소금 간을 한 볶음 요리, 깨 소스나 두부로 무친 무침 요리를 곁들이죠. 그러면 식감도 겹치지 않거든요. 가능한 색상도 겹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침밥에 왜 그토록 진심입니까.“그저 재료 하나하나에 집중해 최소의 양념으로 투숙객을 위한 아침밥을 준비했어요.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해주셔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던 아침밥, 그 밥심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이제는 고인이 된 아빠가 늘 일찍 출근하셨기 때문에 저희는 매일 아침밥을 일찍 먹었죠. 아침밥은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에요. 제주 이꼬이앤스테이의 아침밥을 먹고 일상으로 돌아가 힘을 내겠다는 반응들을 보고 ‘아침밥은 그렇게 살아갈 힘을 주는구나’ 깨달았어요.”-지난해 ‘이꼬이에 놀러 왔어요’라는 요리책도 펴내셨습니다.“어느 남자 손님이 따뜻한 아침밥 냄새에 얼굴이 환해지셨어요. 평소 당근을 먹지 않던 꼬마 손님들이 제가 만든 당근 샐러드를 먹고 ‘더 주세요’ 할 때엔 ‘내가 그동안 해 온 일이 틀린 게 아니었구나’ 싶어 또 하루를 열심히 살게 됩니다. 누구나 집에서 따라 만드실 수 있도록 레시피를 공개하고 제주의 추천 명소들도 소개했어요.”-평소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저녁은 가능하면 충분한 채소를 먹고 탄수화물은 절제하려고 해요. 제주 민속 오일장에서 채소를 6끼니 정도 먹을 분량을 구매한 뒤 손질해 용기에 소분합니다. 샐러드 스피너와 가정용 진공기를 집에 갖춰두면 편리해요. 채소는 물기를 탈탈 털어 키친타월을 깔고 보관하면 사흘 정도 먹을 수 있거든요. 가정용 진공기로 진공 포장해 냉동실에 넣으면 수분 손실이 적어 일반 냉동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저는 비트를 제철에 왕창 사서 오븐에 구운 후 진공시켰다가 먹어요.”-어릴 때부터 아침밥을 지어주신 어머니에게 이제는 아침밥을 해드립니까.“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투병하실 때 엄마가 내내 곁에서 고생하셨어요. 그런 엄마를 위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밥을 차려드리는 것이더라고요. 엄마가 좋아하는 아침 반찬인 톳 조림, 더덕 무침, 감자 샐러드, 일본식 계란말이를 했죠. 최근에서야 엄마가 진미채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돼 진미채 무침을 해드렸더니 따뜻한 흰 밥에 드시면서 행복해하셨어요.”-아침밥에는 정말로 위대한 힘이 있나요.“아침밥을 예찬하는 방명록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아침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음’, ‘따뜻함’, ‘치유’라는 걸 알게 됐어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밥을 지은 뒤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마치면 정작 저는 점심에 가까운 늦은 아침을 먹지만, 저의 마음이 아침 밥상에 그대로 전달되는 걸 느끼니 좋은 에너지와 정성을 담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 최인아 씨가 쓴 책에서 ‘애쓰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란 구절을 읽고 울컥했어요. 그 삶의 태도를 매일 생각합니다.”●‘이꼬이’ 추천 아침 밥상 반찬 레시피〈당근 샐러드〉재료: 당근 1개(180g 전후), 양파 1/4개, 다진 마늘 1작은술, 포도씨유 약간, 화이트 와인 식초 1큰술, 씨 겨자(홀그레인 머스터드) 1큰술 1. 당근과 양파는 채 친다. 마늘은 칼로 곱게 다진다. 2. ①의 재료를 모두 섞어 전자레인지 용기에 담고 포도씨유를 한 바퀴 두른 뒤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돌린다. 2. ②에 화이트 와인 식초, 씨 겨자를 넣고 잘 섞은 후 한 김 식혀서 보관한다.〈데친 고사리 볶음〉 재료: 데친 생고사리 250g, 돼지고기 50g, 다진 생강 약간, 간장 2큰술, 들기름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1. 데친 생고사리는 깨끗하게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후 간장 1큰술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15분 정도 그대로 둔다. 2. 돼지고기는 가늘게 채 친다. 3.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생강을 넣어 볶다가 향이 올라오면 돼지고기를 넣고 볶는다. 4. 돼지고기가 하얗게 변하려고 하면 준비한 ①의 고사리를 넣고 볶는다. 5. 고사리 숨이 죽으면 남은 간장 1큰술과 소금 약간을 넣고 한 번 더 볶은 다음 불을 끄고 후춧가루를 살짝 뿌린다〈아삭아삭 연근조림〉재료: 연근 400g, 마른 홍고추 1개, 포도씨유 약간 조림 소스 간장 4큰술, 설탕 2큰술, 청주 2큰술 1. 연근은 껍질을 벗긴 후 조금 큰 한 입 사이즈로 자른다. 2. ①을 찬물에 5분 정도 담갔다가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한다. 3. 조림 팬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홍고추를 볶다가 향이 올라오면 손질한 연근을 넣어 볶는다. 4. ③의 팬에 간장, 설탕, 청주를 넣고 중간 누름 뚜껑을 덮어 센 불에 올린다. 끓어오르면 중약 불로 줄이고 15분간 조린 후 불을 쓰고 조린 팬에서 완전히 식힌다. 중간에 두세 번 위아래를 바꿔준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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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색과 위로의 공간… 3色 가을 정원 여행[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이상한 날씨의 시대입니다. 지구가 뜨거워져 계절의 리듬이 뒤죽박죽됐으니까요. 그래도 가을은 무르익고 있어요. 서울에서 가까운 정원들에서 가을을 보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쑥부쟁이와 곱게 물든 복자기 단풍도 좋았지만 정원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건 더 좋았습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감각과 생각을 일깨우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더군요. 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문화 기업으로 가는 정원정원이 잘 가꿔져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곳은 경기 가평군의 더스테이힐링파크였어요. 입구부터 정갈하게 쌓인 낮은 돌담이 소박하면서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듯했어요. 길 따라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와일드 가든’을 만나게 됩니다. 유럽 수종(樹種)인 측백나뭇과(科) ‘블루엔젤’이 양옆에 심어져 있지요. 연갈색으로 변한 유럽 목수국 ‘핑키윙키’와 수크령은 독일 미술가 안젤름 키퍼의 ‘가을’ 그림 색감을 연상시키는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었어요. 두 식물이 음악을 연주한다면 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중주일 것이라고 상상했어요. 속도는 아다지오(adagio·느리게)…. 정원의 끝에는 돌을 쌓아 지은 유럽풍 건물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정면에 있는 작은 예배당이었어요. 저절로 기도를 부릅니다. 이 정원은 둘러볼수록 으스대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어떤 정원들은 ‘이런 철학으로 정원을 만들었노라’며 감상을 강요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 좋았습니다. 정원은 자랑과 설교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하고 나누는 곳이었으면 해요. 자작나무는 똑같은 두께를 일렬로 심은 게 아니라 굵고 가녀린 나무를 다양한 간격으로 섞어 심었습니다. ‘포레스트’라는 이름의 복층 숙박 시설은 숲의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지었기 때문에 나무와 건물이 어우러진 트리 하우스 같습니다. 내부에서 밖을 내다보면 가을의 계절감이 오롯이 시야에 들어와요. 동물원 가는 수국길에는 미국낙상홍이 목수국의 커다란 얼굴 뒤로 빨간 열매를 배경처럼 드리웁니다. 야간에 조명을 밝힌다는 ‘별빛 정원’은 어쩔 수 없이 인공적 느낌이 있지만, 그곳에서 본 포도주 빛깔의 해당화 열매가 마음에 여운을 남깁니다. 이 같은 ‘자연 교향시’의 지휘자는 구두 브랜드 ‘소다(SODA)’로 잘 알려진 DFD그룹의 박근식 회장입니다. 1976년 구두 제조로 시작한 이 기업은 2017년 사명을 ‘DFD LIFE. CULTURE’로 바꾸고 ‘의(衣), 식(食), 주(住), 휴(休), 미(美), 낙(樂)이 어우러지는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제안하는 기업’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평 보리산 기슭에 문을 연 곳이 더스테이힐링파크입니다. 굳이 숙박하지 않더라도 파크 안 ‘나인블럭’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면서 6만 평의 정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원은 제조업에서 시작한 기업의 방향을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로 확장시켰습니다.건축가 최시영을 살린 정원경기 광주시에 있는 최시영 건축가(68)의 정원 ‘파머스 대디’에 도착했을 때, 최 건축가는 정원을 돌보고 있었습니다.“이 정원에서 조만간 한국인-프랑스인 지인 커플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거든요. 프랑스에서 하객들이 오니 한국 정원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잘 정비해야죠.” 이곳은 그의 감각과 경험이 직조된 정원입니다. 고추와 가지를 키우는 텃밭, 수세미와 으름덩굴, 허수아비도 있어요.그는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와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등 고급 주거공간을 지어 온 스타 건축가입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2000평의 밭을 농장형 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한 건 2010년. “저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니까 밭도 디자인한 거죠. 손님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려니 미안해서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밭으로 입장료 받은 사람은 제가 처음일 걸요?”(웃음) 그는 뾰족지붕에 창문까지 있는 비닐온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차를 팔고 해외 정원잡지를 소개하며 정원문화 전도사 역할을 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정원을 상시 개방하지는 않지만 필요에 따라 대관하거나 열고 있습니다. 그에게 정원은 어떤 의미일까요.“일에 치여 바쁘게 살다 보니 한동안 정신이 무너졌어요. 그런 저를 위로해준 게 정원이었어요. 정원에서의 시간은 ‘빨리빨리’인 세상의 속도와 정반대로 느리게 흘러요. 건축 설계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 버리면 되지만 식물은 잘못 심었어도 살아 있는 생명이니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해요. 그게 달라요. 그렇게 위로받으면서 희망의 신비로운 에너지를 느꼈어요.”정원에 빠져든 그는 어느 날 선언합니다. “앞으로는 정원과 관련된 건축 설계만 하며 살겠다.” 그중 하나가 2017년에 문을 연 경기 이천시의 에덴낙원 메모리얼 리조트입니다. 그는 전체 1만5000평 중 3000여 평을 정원으로 조성해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산 자를 위한 봉안당(납골당)을 만들었습니다. 호텔, 카페, 레스토랑이 있어 추모의 공간에서 결혼식도 열리는, 삶과 죽음이 정원에서 만나는 ‘창조적 혁신’의 공간입니다. 이 정원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옵니다.3년 전 에덴낙원에서 가족과 하룻밤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정원을 산책하는데, 마침 떠오르던 해가 직사각형 연못을 비추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이토록 축복이구나.’ 그 에덴낙원을 낳게 한 최 건축가의 ‘파머스 대디’에도 작은 직사각형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 옆 소박한 의자에 앉아 그가 말했습니다. “사색과 위로의 공간인 정원이 저를 살렸습니다.”정원사를 길러내는 정원경기 광주시 ‘세븐시즌스’는 정원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입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20여 년간 꽃 농장을 운영하면서 가드닝 수업을 해 오던 김재용 대표(60)가 3년 전 이곳에 3000여 평의 땅을 매입해 가꾼 초지형 정원입니다.주로 조부모 부모 손주 등 3대 가족 손님들이 찾아와 몇 시간씩 정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국화과(科) 아스타와 여러해살이풀들이 흐드러져 한창 가을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정원을 함께 걸으면서 김 대표가 말합니다.“절기가 참 신기하죠. 곧 상강(霜降)이 되어 서리가 내리면 풀들의 녹색물이 죄다 빠지고 온통 갈색으로 바뀌게 돼요. 가을은 봄 여름에 꽃을 피워냈던 식물들이 씨 송이를 맺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억새의 동적인 요소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계절이에요.”그의 말을 들으면서 흔들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식물뿐만 아니라 흔들리니까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지만 잎을 떨구고 흔들리고 떠나기도 하는 쓸쓸한 계절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가을의 중턱에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신구대 원예학과를 나와 꽃 농사를 짓던 중 농업후계자로 선발돼 보름간 원예 선진국들을 둘러봤습니다. 식물만 키우던 제게 그들의 여유로운 정원문화는 충격이었어요. 48세에 신구대 컬러디자인학과 3학년에 편입해 디자인을 배운 뒤 정원 설계 일을 했습니다.그런데 언제까지 남의 집 정원들만 디자인해 주며 살 건가 싶더라고요. 대출을 받아 이곳을 마련한 뒤 정원을 가꾸길 원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정원 조성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카페나 레스토랑도 예쁜 정원이 딸려 있어야 손님을 모으니까요. 정원에서 제 삶도 새로운 길이 열렸어요.”세븐시즌스는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원사이자 작가였던 카를 푀르스터(1874∼1970)가 고안한 ‘일곱 계절의 정원’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붙인 이름입니다. 푀르스터는 1년을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의 일곱 계절로 분류하고 각각의 계절이 지닌 정원의 아름다움에 주목했습니다. 늦가을이나 겨울 정원마저 아름답게 보인다면, 정원 식물뿐만 아니라 정원의 시간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아름다운 거겠죠.계절의 순환은 탄생, 성장, 성숙, 죽음 같은 인간의 삶을 모든 모습으로 비춰 줍니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가을이 내려앉은 가까운 정원들을 여행하면서 삶의 방향을 한 번쯤 점검해 보면 어떨까요.글·사진 가평·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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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에서 길을 찾다…세 가지 빛깔 가을 정원 여행[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이상한 날씨의 시대입니다. 지구가 뜨거워져 계절의 리듬이 뒤죽박죽됐으니까요. 그래도 가을은 무르익고 있어요. 서울에서 가까운 정원들에서 가을을 보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쑥부쟁이와 곱게 물든 복자기 단풍도 좋았지만, 정원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건 더 좋았습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감각과 생각을 일깨우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더군요. 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문화 기업으로 가는 정원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곳은 경기 가평군의 더스테이힐링파크였어요. 입구에서부터 정갈하게 쌓아진 낮은 돌담이 소박하면서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듯했어요. 길 따라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와일드 가든’을 만나게 됩니다. 유럽 수종(樹種)인 측백나무과(科) ‘블루엔젤’이 양옆에 심어 있지요. 연갈색으로 변한 유럽 목수국 ‘핑키윙키’와 수크렁은 독일 미술가 안젤름 키퍼의 ‘가을’ 그림 색감을 연상시키는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었어요. 두 식물이 음악을 연주한다면 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중주일 것이라고 상상했어요. 속도는 아다지오(adagio·느리게)…. 정원의 끝에는 돌을 쌓아 지은 유럽풍 건물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정면에 있는 작은 예배당이었어요. 저절로 기도를 부릅니다. 이 정원은 둘러볼수록 으스대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어떤 정원들은 ‘이런 철학으로 정원을 만들었노라’며 감상을 강요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 좋았습니다. 정원은 자랑과 설교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하고 나누는 곳이었으면 해요. 자작나무는 똑같은 두께를 일렬로 심은 게 아니라 굵고 가녀린 나무가 다양한 간격으로 섞어 심어 있습니다. ‘포레스트’라는 이름의 복층 숙박 시설은 숲의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지었기 때문에 나무와 건물이 어우러진 트리 하우스 같습니다. 내부에서 밖을 내다보면 가을의 계절감이 오롯이 시야에 들어와요. 동물원 가는 수국길에는 미국낙상홍이 목수국의 커다란 얼굴 뒤로 빨간 열매를 배경처럼 드리웁니다. 야간에 조명을 밝힌다는 ‘별빛 정원’은 어쩔 수 없이 인공적 느낌이 있지만, 그곳에서 본 포도주 빛깔의 해당화 열매가 마음에 여운을 남깁니다.이 같은 ‘자연 교향시’의 지휘자는 구두 브랜드 ‘소다(SODA)’로 잘 알려진 DFD그룹의 박근식 회장입니다. 1976년 구두 제조로 시작한 이 기업은 2017년 사명을 ‘DFD LIFE. CULTURE’로 바꾸고 ‘의(衣), 식(食), 주(住), 휴(休), 미(美), 락(樂)이 어우러지는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제안하는 기업’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평 보리산 기슭에 문을 연 곳이 더스테이힐링파크입니다. 굳이 숙박하지 않더라도 파크 안 ‘나인 블럭’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면서 6만 평 정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원은 제조업에서 시작한 기업의 방향을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로 확장시켰습니다.●건축가 최시영을 살린 정원경기 광주시에 있는 최시영 건축가(68)의 정원 ‘파머스 대디’에 도착했을 때, 최 건축가는 정원을 돌보는 중이었습니다. “이 정원에서 조만간 한국인-프랑스인 지인 커플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거든요. 프랑스에서 하객들이 오니 한국 정원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잘 정비해야죠.” 이곳은 그의 감각과 경험이 직조된 정원입니다. 고추와 가지를 키우는 텃밭, 수세미와 으름덩굴, 허수아비도 있어요. 그는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와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등 고급 주거공간을 지어온 스타 건축가입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2000평 밭을 농장형 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한 건 2010년. “저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니까 밭도 디자인한 거죠. 손님들에게 입장료 받으려니 미안해서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밭으로 입장료 받은 사람은 제가 처음일걸요?(웃음)” 그는 뾰족지붕에 창문까지 있는 비닐온실을 만들어 그곳에서 차를 팔고 해외 정원잡지를 소개하며 정원문화 전도사 역할을 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정원을 상시 개방하지는 않지만, 필요에 따라 대관하거나 열고 있습니다. 그에게 정원은 어떤 의미일까요.“일에 치여 바쁘게 살다 보니 한동안 정신이 무너졌어요. 그런 저를 위로해준 게 정원이었어요. 정원에서의 시간은 ‘빨리빨리’인 세상의 속도와 정반대로 느리게 흘러요. 건축 설계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면 되지만, 식물은 잘못 심었어도 살아있는 생명이니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해요. 그게 달라요. 그렇게 위로받으면서 희망의 신비로운 에너지를 느꼈어요.” 정원에 빠져든 그는 어느 날 선언합니다. “앞으로는 정원과 관련된 건축 설계만 하며 살겠다.” 그중 하나가 2017년에 문을 연 경기 이천의 에덴낙원 메모리얼 리조트입니다. 그는 전체 1만5000평 중 3000여 평을 정원으로 조성해 죽은 자뿐 아니라 산 자를 위한 봉안당(납골당)을 만들었습니다. 호텔, 카페, 레스토랑이 있어 추모의 공간에서 결혼식도 열리는, 삶과 죽음이 정원에서 만나는 ‘창조적 혁신’의 공간입니다. 이 정원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옵니다.3년 전 에덴낙원에서 가족과 하룻밤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정원을 산책하는데, 마침 떠오르던 해가 직사각형 연못을 비추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이토록 축복이구나’. 그 에덴낙원을 낳게 한 최 건축가의 ‘파머스 대디’에도 작은 직사각형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 옆 소박한 의자에 앉아 그가 말했습니다. “사색과 위로의 공간인 정원이 저를 살렸습니다.”●정원사를 길러내는 정원경기 광주시 ‘세븐시즌스’는 정원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입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20여 년간 꽃 농장을 운영하면서 가드닝 수업을 해오던 김재용 대표(60)가 3년 전 이곳에 3000여 평 땅을 매입해 가꾼 초지형 정원입니다. 주로 조부모 부모 손주 등 3대 가족 손님들이 찾아와 몇 시간씩 정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국화과(科) 아스타와 여러해살이풀들이 흐드러져 한창 가을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정원을 함께 걸으면서 김 대표가 말합니다.“절기가 참 신기하죠. 곧 상강(霜降)이 되어 서리가 내리면 풀들의 녹색물이 죄다 빠지고 온통 갈색으로 바뀌게 돼요. 가을은 봄 여름에 꽃을 피워냈던 식물들이 씨 송이를 맺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억새의 동적인 요소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계절이에요.”그의 말을 들으면서 흔들림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식물뿐 아니라 흔들리니까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지만 잎을 떨구고 흔들리고 떠나기도 하는 쓸쓸한 계절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가을의 중턱에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신구대 원예학과를 나와 꽃 농사를 짓던 중 농업후계자로 선발돼 보름간 원예 선진국들을 둘러봤습니다. 식물만 키우던 제게 그들의 여유로운 정원문화는 충격이었어요. 48세에 신구대 컬러디자인학과 3학년에 편입해 디자인을 배운 뒤 정원설계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남의 집 정원들 디자인만 해 주며 살 건가 싶더라고요. 대출을 받아 이곳을 마련한 뒤, 정원을 가꾸기 원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정원조성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카페나 레스토랑도 예쁜 정원이 딸려 있어야 손님을 모으니까요. 정원에서 제 삶도 새로운 길이 열렸어요.”세븐시즌스는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원사이자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1874~1970)가 고안한 ‘일곱 계절의 정원’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붙인 이름입니다. 칼은 1년을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의 일곱 계절로 분류하고 각각의 계절이 지닌 정원의 아름다움에 주목했습니다. 늦가을이나 겨울 정원마저 아름답게 보인다면, 정원 식물뿐 아니라 정원의 시간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아름다운 거겠죠.계절의 순환은 탄생, 성장, 성숙, 죽음 같은 인간의 삶을 모든 모습으로 비추어줍니다.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가을이 내려앉은 가까운 정원들을 여행하면서 삶의 방향을 한 번쯤 점검해보면 어떨까요.가평·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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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다빈치’ 정약용, 21세기 정원문화에 깃들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경기도가 2010년 국내 처음으로 정원박람회를 시작하면서 ‘정원문화’ 박람회를 표방한 건 놀랍도록 선구적인 일이다.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다산중앙공원 일대에서 3일 시작해 6일까지 진행되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서 바로 그 정원문화가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2010년 시흥시에서 시작된 이 박람회는 경기도 내 시·군을 공모 선정해 열린다. 2회까지는 격년으로 열리다가 3회(2015년)부터 매년 성남, 부천, 파주, 오산시 등에서 열려왔다. 남양주시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박람회는 12회째다.이번 박람회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다산 정약용(1762~1836)이라는 지역의 인물이 현대 감각으로 잘 스토리텔링됐다. 고층 아파트가 숲처럼 둘러싼 다산신도시에 한국의 천재 정원가 다산의 자연관이 여러 형태로 구현됐다. 20, 30대 젊은 정원 작가들은 “다산이 남긴 옛 문헌들을 참조해 우리 조상들이 정원을 가꾸고 감상했던 방식을 익혔다”고 말했다. 다산이 어린 시절 뛰어놀던 남양주시 예빈산의 ‘너덜겅’(돌이 많이 깔린 비탈)을 파라메트릭(parametric·수학 계산으로 만든 패턴) 구조로 구현하고(전문정원 ‘너덜겅-다산의 웅기’), 다산이 바윗돌 위에서 차를 끓이던 다산초당의 모습을 고즈넉하게 표현(LH의 기업정원-‘다산칠정’)한 식이다. 젊은 작가들은 흔히 차폐 용도로 쓰이는 회양목을 근사한 조경수로 연출하고, 푸른빛이 도는 무궁화 묘목을 나무 담벼락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정원조성에 담긴 열정과 진심이 느껴졌다.둘째, ‘정원 산책’이라는 이번 박람회의 주제에 맞게 다산신도시를 산책하듯 박람회를 즐길 수 있게 한 관람 동선이다. 다산중앙공원, 선형공원, 수변공원으로 이어지는 1.4km 길이의 박람회 구간 양쪽에는 아파트와 상가들이 있어 인근 주민들의 일상 속에 정원이 들어서게 됐다. 기다란 동선을 따라 체험 부스와 장터 부스가 자리 잡으니 관람객들이 구경하기에 집중도가 있으면서 편안했다. 길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아파트 단지 입구의 아파트 정원 세 곳도 공동체 정원의 미래를 제시했다. 일례로 다산 1동 e편한세상 아파트 입구 정원은 정원 교육기관인 푸르네정원문화센터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정원조성을 교육하며 함께 가꾼 정원이다. 기업정원은 LH, GH, 빙그레가 참여했는데 특히 바나나우유와 메로나 등 빙그레 제품을 형상화한 정원이 시민들의 미소를 자아냈다.셋째, 시민 참여다. 남양주시는 이번 박람회를 준비하며 올해 5월 시민추진단 200명을 발족시켰다. 정원조성, 정원홍보, 자원봉사, 시민정원사 봉사 등 분야에 따라 정원에 관심이 있는 시민을 모집하고 정원 소양 교육도 시켰다. 이들이 이번 박람회 기간에 각 정원 구역의 해설과 안내를 맡고 있다. 정원지원센터 부근에 있는 ‘내 손으로 만드는 정원’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였다. 각종 식물이 심어진 작은 화분들을 여럿 준비해 원하는 대로 ‘나만의 정원’을 만들도록 했다. 꼬마정원사 정원에서는 정원 교육을 받은 봉사자들이 어린이들에게 기후위기 시대 정원의 역할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도로변에 설치된 시민 정원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경기도 내 대학들의 참여도 빛났다. 우수한 정원 교육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신구대와 중부대가 정원을 조성하고 계원예술대는 문화전시 정원을 꾸몄다. 앞으로 국내 정원박람회가 좀 더 업그레이드되려면 어떤 점이 필요할까. 여러 의견을 들어봤다. 우선 초청작가 정원이 다양해지기를 바란다. 누구든 인기 작가를 ‘모시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원문화 발전을 위해 좀 더 다양한 작가들이 각 지역을 깊이 고민하고 정원을 만들면 어떨까.작가들을 심사하는 과정도 보다 엄격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 시상의 권위와 지속성을 위해서는 대부분의 권위 있는 상이 하고 있듯, 최상 점수와 최하 점수를 걸러내는 등의 과학 기술적인 심사 보완 장치도 필요하다.정원박람회는 잔치처럼 시끌벅적해야 한다는 선입견도 버릴 필요가 있다. 높은 데시벨의 공연은 정원을 조용하게 감상하려는 사람들에게 소음이 될 수도 있다. 지금보다는 좀 더 정적으로 정원을 느끼고 사색하는 박람회도 필요할 것 같다. 각 지자체가 정원박람회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느라 정작 정원의 의미를 놓치지는 않을까 미리 염려해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원이 시민의 일상 영역으로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정원이 돌봄의 자세를 생각하는 성찰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남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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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타이어 마제스티 X로 프리미엄 시장 주도

    금호타이어의 최고급 프리미엄 컴포트 타이어 ‘마제스티 X SOLUS(이하 마제스티 X)’가 꾸준히 입소문이 나며 프리미엄 타이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마제스티 X는 2010년 금호타이어 창립 50주년 기념작으로 선보였던 금호타이어의 프리미엄 타이어인 ‘마제스티 솔루스(Majesty SOLUS)’ 의 명맥을 잇는 최상위 럭셔리 제품으로, 최고급 세단과 수입차 등 고성능 프리미엄 시장에서 뛰어난 정숙성과 주행 성능으로 정평이 났다. 마제스티 X는 승차감과 제동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분산 정밀 실리카가 적용된 컴파운드를 사용했다. 자사 기존 제품 대비 주행 성능, 정숙성, 핸들링, 마모 성능, 눈길 제동력도 대폭 업그레이드시켰다. 특히 타이어 홈에서 발생되는소음을 특수 딤플 설계로 분산시키는 ‘패턴소음 저감기술’을 적용해 주행 중 발생하는고주파 소음, 노면 소음, 공명음을 집중 개선시켰다.3D 연동 사이프 입체 설계 기술을 반영해 트레드 블록의 강성 극대화로 제동력을 높이고 눈길에서도 조정 안정성을 향상시킨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공기저항 최소화를 위한 프로파일 설계, 고분산 정밀 실리카 적용을 통해 회전저항 성능을 향상시키고 연비효율을 극대화했다. 입체아이콘으로 트레드의 마모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마모 모니터링 기술’을 적용해 소비자가 아이콘를 눈으로 확인하고 타이어 성능 저감 상황과 교체 시기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공명음 저감 타이어를 옵션사항으로 마련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넓혔다. 공명음 저감타이어는 타이어 내부에 폴리우레탄 폼 재질의 흡음재를 부착해 타이어 바닥면과 도로 노면이 접촉하면서 타이어 내부 공기 진동으로 발생하는 소음(공명음)을 감소시킨저소음 타이어다. 금호타이어의 타이어 소음 저감 신기술도 적용했다. 송대규 금호타이어 한국영업담당 상무는 “국내 고급 세단 및 수입차의 승차감과 성능, 안정성이 대폭 강화되고있는 트렌드에 맞춰 성능을 대폭 개선해 소비자들에게 최고급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고 있다”며 “마제스티 솔루스의 명성을 마제스티 X가 이어가는 만큼 금호타이어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집중시켰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는 프리미엄 제품 공급, 글로벌 유통 확대, 브랜드 인지도 강화 등을 통해 국내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의 입지 강화에 힘쓰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올해 목표 매출액을 4조 5600억원으로 설정하고 18인치 고인치 제품 판매 비중을 42% 달성한다는 목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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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 스파로 명절 증후군, 굿바이!

    《추석 명절 기간 동안 음식 장만과 장거리 여행 등으로 쌓인 피로를 온전한 휴식을 통해 풀면 좋겠다.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몸과 마음에 균형을 되찾아줄 호텔들의 스파 패키지와 웰니스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둘만의 휴식이 필요한 모녀를 위해 30일까지 ‘엄마, 단둘이 호캉스 갈래?’ 패키지를 선보인다.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의 스위트 객실 1박 △파크카페 조식뷔페 2인 △호텔 타월 세트 △마스크 팩 2매 △메리어트 직영 수 스파 15% 할인 쿠폰 등으로 구성됐다.호텔 앞에 위치한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산책과 더불어 수 스파에서 마사지와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 인근 더현대 서울에서 함께 하는 쇼핑의 즐거움은 덤이다.쉐라톤 그랜드 인천 호텔‘잇츠 스파케이션’ 패키지에는 클럽 라운지 입장 혜택과 조식 뷔페가 포함된 클럽 파크뷰 객실에서의 1박이 포함돼 있다. ‘더 스파 하스타’에서 제공하는 70분간의 전신 스파 트리트먼트 ‘하스타지’ 성인 1인 이용 혜택도 제공된다. 호텔의 시그니처 타월 세트와 아로마테라피 배스밤이 제공된다. 위(WE) 호텔 제주제주 서귀포시 한라산 중산간에 위치한 위(WE)호텔제주는 WE호텔과 WE병원을 융합한 헬스리조트다. 웰니스센터에서 제공되는 수(水)치료 프로그램 ‘해암하이드로’는 부유기를 이용해 몸을 물 위에 띄운 상태에서 스트레칭과 지압 관리를 해준다.메디컬 스파센터에서는 적외선 체열 진단기로 촬영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 통증 부위나 질병 부위를 판별하고 전문의 진단을 통해 고객 맞춤형 스파 테라피를 제공한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센스 오브 레주버네이션’ 패키지는 안락한 객실에서의 1박과 반얀트리 스파 트리트먼트 60분 및 원기 회복 30분 2인,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에서의 조식 2인, 실내 수영장과 피트니스 무료 입장으로 구성돼 있다. 객실 내 릴랙세이션 풀에 몸을 담근 채 가을로 접어드는 남산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반얀트리 스파의 개별 트리트먼트 룸에서 딥 티슈 전신 마사지를 받으며 뭉친 근육과 피로를 풀 수 있다.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 편백나무 스파 객실 이용이 포함된 ’프라이빗 스파’ 패키지를 10월 31일까지 선보인다. △스파 객실 1박 △조식 뷔페(2인) △다기 세트 대여 △하동 케이블카 할인권 1매로 구성됐다. 수령 100년 이상 편백 나무를 사용한 욕조 위에는 트레이를 설치해 스파를 하면서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게 했다. 욕조 주변은 대나무로 장식해 자연 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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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고의 세월 품은 우리 목가구가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입니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둥치가 거적을 덮어쓴 채 마당에 있었다. 이 목재는 장차 어떤 가구가 될까. 어떤 무늬를 품고 있을까. 경기 용인시 공방에서 만난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小木匠) 전승교육사(62)는 말했다. “켜보지 않으면 나무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축적되는 안목으로 나뭇결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이 나무가 쓰일 적합한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창고에는 대패로 켠 목재 판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무들이 품은 나이를 합치면 억겁의 세월일 것이다.“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 걸렸다”공방에 들어서자 그가 만든 의걸이장의 위용이 대단했다. 참죽나무 틀에 끼워 맞춘 느티나무 문에서 나뭇결이 춤추고 있었다. 한국의 산과 계곡이 등고선 형태로 꿈틀대는 듯한 강렬한 춤사위였다. 내부 상단에 횟대를 가로질러 옷을 구김 없이 걸게 한 조선 시대 의걸이장을 그는 현대에 맞게 풀어냈다. 서양 가구들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세련된 감각이었다.“한 폭의 그림이 나무에 앉은 것 같죠? 나무가 수십 년 돼도 이렇게 나이테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경남 합천 해인사 부근에서 사들인 800년 넘은 고사목으로, 사람으로 치면 수양 끝에 진리를 터득하고 죽을 둥 살 둥 하던 노인이었어요. 전체의 10%밖에 남지 않은 나무의 성한 부분을 살려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 주름과 상처가 생기듯 나무도 무늬가 드라마틱해집니다. 이런 나무는 가구의 얼굴 격인 전면부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얼굴 감’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이 걸렸네요.”그는 1979년 17세 나이에 고 강대규 국가무형유산 소목장의 공방에 들어가 10년 동안 도제식으로 사사했다. 1989년 독립해 자신의 공방을 세운 뒤 1996년 국가무형유산 제55호 소목장 전승교육사로 지정됐다. 전수생, 이수자, 전승교육사를 거쳐 소목장이 된다. 국내에 소목장은 3명, 전승교육사는 그를 포함해 단 2명이다.공방의 벽면에는 대패가 가득 걸려있었다. 1998년 강 소목장이 타계한 뒤로 스승의 맥을 잇도록 물려받은 대패들이다. “진정한 목수는 대패를 내 손처럼 쓸 수 있어야 하지요.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해낼 수 없는 영역이 대패에 있습니다. 목공을 하는 날은 명상하듯 몸풀기 대패질을 하면 좋겠습니다.”그는 2010년부터는 국가유산진흥원 평생교육원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 과정 등을 통해 1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2021년부터는 이수자 교육도 시작했다. 제자들과 함께 지금까지 6차례 전시를 열었던 그가 28일부터 10월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장인의 외길을 걸어오며 만든 30여 점을 선보이는 제1회 조화신 소목전 ‘소목장, 나무를 닮다’이다.“손바닥으로 수백 번 쓸고 깎고 문지르다 보면 어느새 나무와 함께 숨 쉬면서 하나가 돼요. 그렇게 미치지 않으면 나무를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지금에서야 개인전을 여는 걸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목재들이 가구가 됐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실용성과 심미성이 만난 우리 목가구그가 만드는 책갑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쓰인다. 무겁고 단단하며 결이 아름다워 목재 중 으뜸으로 꼽히는 느티나무, 가볍고 잘 틀어지지 않는 오동나무, 휘거나 뒤틀리지 않아 가구의 뼈대로 쓰이는 참죽나무, 감나무가 부분적으로 검게 돼 그윽한 멋을 풍기는 먹감나무, 단단하고 탄력 있는 소나무….“우리 조상들이 책갑을 사용한 이유는 귀한 책을 소중하게 다루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나무의 자연색이 주는 다채로운 매력에 반해 책갑 만드는 작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이런 가구에는 잡동사니를 아무렇게나 넣을 리 없다. 꼭 필요한 물건만 담고 살도록 삶의 태도가 단정해질 것이다. 목가구는 어떤 장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화려해지기도 간결해지기도 한다. 금속 장석을 붙인 예쁘장한 함(函)에 귀한 것을 보관하고, 화장기 없는 듯 맑은 느낌의 서안에서 책을 읽는 삶. 그것이 ‘퍼펙트 데이’를 이루는 행복 아닐까.그는 말한다. “처음에 쌈박하고 예쁜 나무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멋스러워지는 나무도 있습니다. 사람과 똑같아요. 세월의 묵은 색이 입혀지면 품위가 생겨나죠. 나무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고 기다리는 게 장인의 일입니다.”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나무의 나이테가 뚜렷하고 단단한 물성인데도 매끄럽다고 한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넘어 제게 온 후 눈과 비를 맞으며 강한 성질을 죽여 좋은 목재로 숙성해 갑니다. 그런 목재로 만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우아합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지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우리 목가구가 언젠가 한 번쯤은 상처받았을 당신의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줄 것입니다.”21세기 장인의 역할을 생각하다이번 전시에는 서울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현해 만든 삼층장도 선보인다. “앞선 세대가 잘 만들어 놓은 ‘우리다운 것’을 따라 해보는 것이죠. 요즘은 뭘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다들 ‘빨리빨리’ 사느라 애국(愛國)이나 가문을 일으키는 일 같이 큰일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고 강대규 소목장은 그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많이 만들어 보라. 내일 당장 그만두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해 만들어라.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연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스승에게 배운 대로 그는 제자들에게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숨만 쉬어도 대패가 깎일 정도로 대패 날을 갈아서 많은 연습을 해라. 대패, 끌, 톱질은 목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제자들은 ‘스승 조화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현대에서 전통 가구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십니다. 대물림되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목재부터 깊게 이해하라고 하시죠. 본질과 깊이, 두 단어가 제자들의 작업에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장인의 존재 가치를 깨우쳐주십니다.”스마트와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우리 전통 문화는 계속 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정성 들여 만든 우리 목가구를 향유하는 문화가 삶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글·사진 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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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 와인, 음악이 어우러진 호텔의 가을 정취

    《징그럽게 덥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호텔들이 미식, 와인, 음악이 어우러진 행사들을 준비해 가을 낭만을 더한다. 》서울 워커힐 호텔앤리조트28일부터 10월13일까지 3주 간 주말마다 ‘피자힐 가을 페스티벌’을 연다. 아차산의 가을을 감상할 수 있는 피자힐 일대에서 음식과 와인, 맥주, 공연 등이 펼쳐진다. 페스티벌의 첫 문을 여는 ‘비어 스트리트’는 28일과 29일 이틀간 열린다. 독일 전통의 풍미를 자랑하는 슈바인스학세가 포함된 플래터와 함께 스텔라 아르투아, 호가든, 모카 스타우트 등 생맥주 3종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1인 9만 원이며 네이버 예약 결제 고객에게는 10월 첫째 주와 둘째 주 주말 진행되는 와인 페어 ‘구름 위의 산책’ 입장권과 리델 글라스 교환권이 증정된다.워커힐의 시그니처 이벤트인 와인페어 ‘구름 위의 산책’에는 최대 20여 개의 와인 업체가 참여해 총 800여 종에 달하는 각국의 와인을 마셔볼 수 있다. 샤퀴테리아, 소시지, 미니 카프레제 컵 등으로 구성된 존쿡의 푸드존과 푸드트럭, 두 차례의 기타와 재즈 공연까지 마련돼 미식과 예술이 결합된 특별한 경험이 가능하다. 입장권, 푸드 교환권 2매, 리델 와인잔과 칠링백이 제공되는 와인페어 입장권은 1인 5만원. 존쿡 델리미트의 스페셜 메뉴가 포함된 입장권은 7만 5천원이다. 테라스 세미 와인 뷔페에서는 스파클링, 화이트, 레드, 스위트 등 총 4종의 와인과 5종의 신선한 샐러드, 2종의 피자힐 피자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BBQ 5종 플래터가 함께 제공돼 미식의 즐거움을 높인다.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총 3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인 11만 원. 워커힐은 가을 페스티벌과 투숙을 연계한 상품도 선보였다. 10월 13일까지 비스타 워커힐 딜럭스룸과 와인 페어 입장권 2매를 제공하는 기본 구성과 르 파사쥬의 콤비네이션 피자가 추가된 패키지 2종을 준비해 보다 여유롭게 와인 페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24만 7000원부터다.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호텔의 레스토랑 ‘페스타 바이 민구’의 야외 정원에서 미식과 라이브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시크릿 가든’ 프로모션을 26일과 27일에 연다. 강민구 셰프가 만드는 미식, 음악, 자연 세 가지를 한 자리에서 모두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다. 메뉴로는 ‘푸아그라 테린과 트러플 아스픽’, ‘샤퀴테리와 시저 샐러드, 페스타 브레드’, ‘숯불에 구운 한우와 랍스터, 전복구이’, ‘셰프가 엄선한 오늘의 디저트’를 제공한다. 풍성한 가을 식재료를 활용한 ‘시크릿 메뉴’도 준비된다. 소믈리에가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고,잔디 위 무대에서는 니나파크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져 선선한 가을날의 낭만을 더할 예정이다. 28일과 29일에는 이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오아시스 선셋 와인 마켓’도 열린다. 프리미엄 와인 수입사가 고른 150여종의 와인을 직접 시음하고 선선한 가을 날씨 속 온수풀로 운영되는 야외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노을진 저녁에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팝 & 재즈라이브 공연과 DJ 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1인 3만3000원, 와인 시음 및 야외 수영장 입수 포함 입장권은 1인 6만5000원이다.메이필드호텔 서울10월 5일과 6일 이틀에 설쳐 벨타워 가든에서 ‘디오니소스 와인페어’를 연다. 야외 정원과 유러피안 종탑 풍경을 눈에 담으며 와인과 음식, 음악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서울 호텔 3대 와인페어로 꼽히는 디오니소스 와인페어는 이 호텔을 대표하는 행사다. 매 행사마다 1000여 명의 인파가 몰린다. 올해에는 국내 와인 수입사 16곳이 참여해 180여 종의 다채로운 와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와인을 시음하고 호텔 소믈리에와 각 와인 수입사 전문가로부터 와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와인을 구매할 수도 있다.와인과 매칭해 즐길 음식도 눈길을 끈다. 현장에서 셰프가 직접 조리하는 야외 푸드 키친에는 버섯과 하몽, 새우와 전복,갈비구이 등의 세트 메뉴가 선보인다. 이밖에도 그릴에 구운 문어와 으깬 감자 요리, 모듬 그릴 소시지 등 와인의 풍미를 더해줄 다양한 메뉴가 준비된다. 라이브 퍼포먼스 뮤직 공연도 기대를 모은다. 입장권은 1인 4만 원이며 2인 입장권과 시그니처 디시 3종으로 구성된 2인 고메 세트는 16만 원이다. 디오니소스 와인페어는 올해 20회를 맞아 모빌리티 플랫폼 차란차와 협업해 ‘VIP 의전 서비스’도 선보인다. 자택에서 와인페어 현장까지 픽업&샌딩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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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는 만큼 자란다… 어느 老식물학자의 사랑 이야기[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여기에서 폴짝, 저기에서 폴짝. 태어나서 지금껏 본 것보다 많은 수의 개구리를 단 하루 만에 본 것 같다. 부채로 부지런히 내몰아 보려 했던 한낮 모기의 기세도 대단했다. 오죽하면 명아주 앞에 ‘모기 물린 데에 잎을 짓이겨 즙을 내 바르세요’라는 팻말까지 있을까. 곤충을 위한 유토피아, 즉 인섹토피아(insectopia)가 있다면 이곳일 것이다. 꾀꼬리와 소쩍새 등 온갖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는 도시가 재(再)야생화되는 과정의 어디쯤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세대 사립 식물원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의 기청산식물원. 청하(淸河)는 맑은 물이란 뜻의 지명이다. 설립자 이삼우 원장(83)의 딸인 이은실 부원장(56)이 말했다. “이건 천남성이에요. 원래 무성했던 잎은 열매가 익으면서 쓰러지고 있어요. 꽃은 코브라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실제로 독성이 많아요. 옛날에 임금님이 사약을 내릴 때 쓰였죠. 지금은 연구 끝에 약재로 사용되고 있어요. 천남성이 기본 종(種)이라면 울릉도에만 자라는 섬남성도 있어요. 열매를 옮기는 게 새인지 들짐승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식물원 곳곳에서 자라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람이 자연을 흉내 낸 ‘생태 조경’을 했지만, 그다음부터는 새와 벌들이 그려가고 있어요. 참 기특하죠.”기청산식물원은 서울대 임학과를 나온 이삼우 원장이 기존의 과수원을 야생의 숲 같은 식물원으로 바꾼 곳이다. 한국 식물학계의 아버지로 통하는 고 이창복 교수(1919∼2003)의 제자인 그는 우리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았다. 1960년대 중반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와 모감주나무와 참느릅나무 등을 심으면서 식물원의 기초를 닦았다. 살충제를 쓰지 않는 자연 농법을 도입했더니 곤충이 몰려들어 숲 생태계가 되살아났다. 그간 정성껏 심어 키운 우리 자생식물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기청산식물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세대 사립 식물원이자 식물학도들에겐 교과서 같은 장소가 됐다. 2만여 평 부지에 2000여 종의 자생식물이 사는데, 이 중 800여 종이 희귀·특산 식물이다. ● 국내 희귀·멸종위기 식물의 지킴터 이 식물원의 설립 취지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목적으로 한 홍익인간 세상을 열어가는 데 식물학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대표적 활동이 국내 희귀·멸종위기 식물의 서식지 외 보전이다.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본래의 서식지에서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을 체계적으로 보전, 증식해 생물 다양성을 유지한다. 포항에서 가까운 울릉도의 멸종위기 식물들을 보전하는 게 대표적이다. 일례로 섬개야광나무는 전 세계에서 울릉도에만 자생한다. 절벽에 자라면서 생존력이 매우 약한 이 식물을 전문 인력들이 주기적으로 울릉도에 가서 모니터링하고 기청산식물원으로 수집해 와서는 대량 증식을 통해 보전한다. 식물의 이력을 철저하게 관리해 국가식물종관리시스템에 등록해야 산림생명자원 관리가 제대로 되고 수입 식물이 종종 자생종으로 둔갑해 유통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목원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 삶의 자세를 가르쳐주는 나무들기청산식물원을 걷다 보면 썩어 쓰러진 나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자체를 자연의 순환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로 만든 생울타리도 이곳에서 처음 봤다. 이 원장이 참느릅나무 앞에 섰다.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 등장하는 이 나무를 제가 참 좋아합니다. 1년의 절반은 잎이 거의 없는 상태로 살아요. 잎이 무성해 그늘을 드리우면 다른 식물이 잘 자랄 수 없으니 태양 에너지를 양보하는 것이죠. 나무의 세계는 우리 인간들이 배울 게 참 많아요.”이 식물원에서 ‘대왕나무’(King Tree)로 불리는 높이 15m, 둘레 350cm의 낙우송도 꼭 봐야 한다. 호흡근이 발달해 마치 오백나한이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몰려오는 정경 같다는 평이다. “원래 이 나무가 있던 자리는 우리 식물원 소유가 아니었어요. 주택단지를 조성하려고 대형 굴착기가 들어오는 걸 보고 당장 멈추게 하고 융자를 받아 주변 토지를 사들였어요. 이자 갚느라 너무 힘들어 어느 날 나무에게 넋두리했는데 그걸 알아들었으려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무가 방송에 소개되면서 1년 치 이자를 갚을 수 있었어요. 은혜를 보답하는 의리 있는 나무라 해마다 막걸리를 한 말씩 대접합니다.” ● ‘K에코 투어리즘’의 가능성기청산식물원의 9월은 석산(꽃무릇)의 계절이다. 예년에는 붉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등 각종 상사화가 여름에 피고 난 후 9월 중순부터 석산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더위로 인해 21일부터 10월 초까지 만개가 예상된다. 석산은 ‘이룰 수 없는 사랑’(꽃말)의 슬픔을 애써 숨기려 빨간 립스틱을 바른 걸까. 반세기에 걸친 기청산식물원의 노력도 어느 1세대 사립 식물원장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지 않기를 염원한다. 이 식물원은 부원장인 딸에 이어 손자까지 삼대(三代)가 식물원에서 일하지만 새로 생겨나는 국공립 식물원들에 비하면 시설이 낡고 투자 여력도 없는 형편이다. 식물원 업계에서는 “기청산식물원은 국내 1세대 사립 수목원의 자존심과 사명으로 지금껏 유지된 것”이라며 “선진국일수록 다양한 형태의 식물원을 갖추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국공립과 사립 식물원이 공존할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다행히도 기청산식물원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에코 투어리즘’(환경 보호와 지역 발전을 목표로 하는 여행)의 가능성이 큰 곳이다. 이 식물원의 울릉도 희귀·특산식물 보전과 ESG 활동을 세계 식물원들이 주목하고 있다.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식물을 보기 위해, 그 식물이 초대한 새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밀려드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주변 가볼 만한 곳● 월광회집찐’ 포항 사람들이 찾는 월포해수욕장 맛집. 이곳의 물회는 살얼음 뜬 육수를 붓지 않는다. 신선한 참가자미회에 물은 그저 한 숟가락 정도 넣고 비벼 먹는 게 포항 스타일. 함께 나오는 얼큰한 경상도식 매운탕도 일품이다.● 청하공진시장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촬영지. 1일과 6일에 오일장이 선다.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이 채소와 생선 등을 판다. K드라마를 보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송에 나왔던 ‘보라슈퍼’ 등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숲마을 정원포항시 민간정원 1호(경상북도 6호). 포항시산림조합이 2017년 조성한 산림 복합문화공간이다. 포항 지역 농산물과 임산물이 제공되는 숲마을 뷔페는 1인당 8000원. 그야말로 속이 편안해지는 건강밥상이다. 온실에서 각종 식물을 살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숲카페는 힐링의 장소다.글·사진 포항=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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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비의 기개로 일군 야생의 경관… 경북 포항 기청산식물원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여기에서 폴짝, 저기에서 폴짝. 태어나서 지금껏 본 것보다 많은 수의 개구리를 단 하루 만에 본 것 같다. 부채로 부지런히 내몰아 보려 했던 한낮 모기의 기세도 대단했다. 오죽하면 명아주 앞에 ‘모기 물린 데에 잎을 짓이겨 즙을 내 바르세요’라는 팻말까지 있을까. 곤충을 위한 유토피아, 즉 인섹토피아(insectopia)가 있다면 이곳일 것이다. 꾀꼬리와 소쩍새 등 온갖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는 도시가 재(再) 야생화되는 과정의 어디쯤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세대 사립식물원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의 기청산식물원. 청하(淸河)는 맑은 물이란 뜻의 지명이다. 설립자 이삼우 원장(83)의 딸인 이은실 부원장(56)이 말했다.“이건 천남성이에요. 원래 무성했던 잎은 열매가 익으면서 쓰러지고 있어요. 꽃은 코브라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실제로 독성이 많아요. 옛날에 임금님이 사약을 내릴 때 쓰였죠. 지금은 연구 끝에 약재로 사용되고 있어요. 천남성이 기본 종(種)이라면 울릉도에만 자라는 섬남성도 있어요. 잎에는 줄무늬가 있고 초록색이던 열매는 익으면서 빨간색이 돼요. 이 열매를 옮기는 게 새인지 들짐승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식물원 곳곳에서 자라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람이 자연을 흉내낸 ‘생태 조경’을 했지만, 그다음부터는 새와 벌들이 그려가고 있어요. 참 기특하죠.”기청산식물원은 서울대 임학과를 나온 이삼우 원장이 부친이 운영하던 과수원을 야생의 숲 같은 식물원으로 바꾼 곳이다. 한국 식물학계의 아버지로 통하는 고 이창복 교수(1919~2003)의 제자인 그는 우리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일찍 깨달았다. 1960년대 중반 고향인 포항으로 내려와 모감주나무와 참느릅나무 등을 심으면서 식물원의 기초를 닦았다.살충제를 쓰지 않는 자연 농법을 도입해 곤충들의 천국이 되느라 과실수는 벌레를 먹었지만, 그간 정성껏 심어 키운 우리 자생식물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기청산식물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세대 사립식물원이자 식물학도들에겐 교과서 같은 장소가 됐다. 2만여 평 부지에 2000여 종의 자생식물이 사는데, 이 중 800여 종이 희귀특산식물이다. ●국내 희귀·멸종위기 식물의 지킴터 이 식물원의 설립 취지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목적으로 한 홍익인간 세상을 열어가는 데 식물학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대표적 활동이 국내 희귀·멸종 위기 식물의 서식지 외 보전이다.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해 본래의 서식지에서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을 체계적으로 보전, 증식해 생물 다양성을 유지한다. 특히 포항에서 가까운 울릉도의 멸종위기 식물들을 보전하고 있다. 일례로 섬개야광나무는 전 세계에서 울릉도에만 자생한다. 절벽에 자라면서 결실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생존력이 매우 약한 이 식물을 기청산식물원의 전문 인력들이 주기적으로 울릉도에 가서 모니터링한다. 서식지외보전기관인 기청산식물원으로 채취 혹은 수집해 오면 인공증식 연구 및 대량증식을 통해 보전하는 방식이다. 식물의 이력을 철저하게 관리해 국가식물종관리시스템에 등록해야 산림생명자원 관리가 제대로 되고 수입 식물이 종종 자생종으로 둔갑해 유통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목원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삶의 자세를 가르쳐주는 나무들기청산식물원을 걷다 보면 썩어 쓰러진 나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자체를 자연의 순환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로 만든 생울타리도 이곳에서 처음 봤다. 이 원장이 참느릅나무 앞에 섰다. “이 나무는 참 대단해요. 1년의 절반은 잎이 거의 없는 상태로 살아요. 잎이 무성해 그늘을 드리우면 다른 식물이 잘 자랄 수 없으니 태양 에너지를 양보하는 것이죠. 나무의 세계는 우리 인간들이 배울 게 참 많아요.”‘대왕 나무’(King Tree)로 불리는 높이 15m, 가슴둘레 350cm의 낙우송도 꼭 봐야 한다. 호흡근이 발달해 마치 오백나한이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몰려오는 정경 같다는 평이다. 이 원장은 말한다. “은혜를 보답하는 의리 있는 나무라 해마다 막걸리를 한 말씩 대접합니다.”이게 무슨 말인가. “원래 이 나무가 있던 자리는 우리 식물원 소유가 아니었어요. 10여 년 전 어느 날, 나무 근처에 갔는데 주택단지를 조성하려고 대형 굴삭기가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당장 멈추게 하고 융자를 받아 주변 토지를 사느라 이자 부담으로 오랫동안 고생했어요. 어느 날, 나무 앞에서 ‘의리상 네가 이자라도 좀 물어 줘야 할 것 아니냐’고 넋두리를 했는데 그 후 열흘이 못 돼 방송사에서 이 나무를 주제로 한 특집 프로그램 제안이 왔어요. 방송 후 전국에서 관람객이 몰려와 1년 치 이자를 갚을 수 있었죠. 이 나무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인 50세 되던 해였어요.” ●‘K-에코 투어리즘’의 가능성기청산식물원의 9월은 석산(꽃무릇)의 계절이다. 붉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등 각종 상사화가 여름에 피고 난 후 9월 중순부터 볼 수 있는데, 올해는 더위로 인해 21일 이후 개화가 예상된다. 개인적으로는 석산을 볼 때마다 ‘이루지 못한 사랑’(꽃말)의 슬픔을 숨기려 빨간 립스틱을 바른 것 같아 애달픈 심정이 든다. 식물학계와 관련 업계는 기청산식물원을 두고 “자존심과 사명 없이는 개인이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존경심을 보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부원장인 딸에 이어 손자까지 삼대(三代)가 식물원에서 일하며 힘을 더하지만 새로 생겨나는 국공립 식물원들에 비하면 시설이 낡고 투자 여력도 없다. 야생의 자연과 우리 자생식물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보석 같은 장소이지만 반짝거리는 시설과 전시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밋밋한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청산식물원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에코 투어리즘’(eco tourism·환경 보호와 지역 발전을 목표로 하는 여행)의 가능성이 큰 곳이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식물원총회에서 기청산식물원이 울릉도 희귀특산식물 보전 활동을 소개하자 각국의 관계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야생 동·식물 관광은 요즘 ‘뜨는’ 분야다.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식물을 보기 위해, 그 식물이 초대한 새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관광객들이 밀려드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그에 앞서 우리 국민부터 우리 식물의 진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기를, 국내 사립식물원들도 창업 정신과 전통은 지켜나가되 필요하다면 시대 흐름에 맞게 변신할 용기를 갖기를, 기업과 식물원이 더 많이 협력하기를, 무엇보다 사회 지도층이 한국의 특산식물이 미래세대의 소중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포항=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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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고의 세월 품은 우리 목가구가 마음 어루만져줄 것”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둥치가 거적을 덮어쓴 채 마당에 있었다. 이 목재는 장차 어떤 가구가 될까. 어떤 무늬를 품고 있을까. 경기 용인시 공방에서 만난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小木匠) 전승교육사(62)는 말했다. “켜보지 않으면 나무 속을 알 수 없습니다. 오랜 경험으로 축적되는 안목으로 나뭇결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이 나무가 쓰일 적합한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창고에는 대패로 켠 목재 판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무들이 품은 나이를 합치면 억겁의 세월일 것이다.●“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 걸렸다”공방에 들어서자 그가 만든 의걸이장의 위용이 대단했다. 참죽나무 틀에 끼워 맞춘 느티나무 문에서 나뭇결이 춤추고 있었다. 한국의 산과 계곡이 등고선 형태로 꿈틀대는 듯한 강렬한 춤사위였다. 내부 상단에 횟대를 가로질러 옷을 구김 없이 걸게 한 조선 시대 의걸이장을 그는 현대에 맞게 풀어냈다. 서양 가구들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세련된 감각이었다.“한 폭의 그림이 나무에 앉은 것 같죠? 나무가 수십 년 돼도 이렇게 나이테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경남 합천 해인사 부근에서 사들인 800년 넘은 고사목으로, 사람으로 치면 수양 끝에 진리를 터득하고 죽을 둥 살 둥 하던 노인이었어요. 전체의 10%밖에 남지 않은 나무의 성한 부분을 살려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 주름과 상처가 생기듯 나무도 무늬가 드라마틱해집니다. 이런 나무는 가구의 얼굴 격인 전면부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얼굴 감’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이 걸렸네요.” 그는 1979년 17세 나이에 고 강대규 국가무형유산 소목장의 공방에 들어가 10년 동안 도제식으로 사사했다. 1989년 독립해 자신의 공방을 세운 뒤 1996년 국가무형유산 제55호 소목장 전승교육사로 지정됐다. 전수생, 이수자, 전승교육사를 거쳐 소목장이 된다. 국내에 소목장은 3명, 전승교육사는 그를 포함해 단 2명이다. 공방의 벽면에는 대패가 가득 걸려있었다. 1998년 강 소목장이 타계한 뒤로 스승의 맥을 잇도록 물려받은 대패들이다. “진정한 목수는 대패를 내 손처럼 쓸 수 있어야 하지요.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해낼 수 없는 영역이 대패에 있습니다. 목공을 하는 날은 명상하듯 몸풀기 대패질을 하면 좋겠습니다.”그는 2010년부터는 국가유산진흥원 평생교육원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목 과정 등을 통해 1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2021년부터는 이수자 교육도 시작했다. 제자들과 함께 지금까지 6차례 전시를 열었던 그가 28일부터 10월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장인의 외길을 걸어오며 만든 30여 점을 선보이는 제1회 조화신 소목전 ‘소목장, 나무를 닮다’이다. “손바닥으로 수백 번 쓸고 깎고 문지르다 보면 어느새 함께 숨 쉬면서 나무와 하나가 돼요. 그렇게 미치지 않으면 나무를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지금에서야 개인전을 여는 걸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목재들이 가구가 됐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실용성과 심미성이 만난 우리 목가구그가 만드는 책갑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쓰인다. 무겁고 단단하며 결이 아름다워 목재 중 으뜸으로 꼽히는 느티나무, 가볍고 잘 틀어지지 않는 오동나무, 휘거나 뒤틀리지 않아 가구의 뼈대로 쓰이는 참죽나무, 감나무가 부분적으로 검게 돼 그윽한 멋을 풍기는 먹감나무, 단단하고 탄력 있는 소나무…. “우리 조상들이 책갑을 사용한 이유는 귀한 책을 소중하게 다루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나무의 자연색이 주는 다채로운 매력에 반해 책갑 만드는 작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런 가구에는 잡동사니를 아무렇게나 넣을 리 없다. 꼭 필요한 물건만 담고 살도록 삶의 태도가 단정해질 것이다. 목가구는 어떤 장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화려해지기도 간결해지기도 한다. 금속 장석을 붙인 예쁘장한 함(函)에 귀한 것을 보관하고, 화장기 없는 듯 맑은 느낌의 서안에서 책을 읽는 삶. 그것이 ‘퍼펙트 데이’를 이루는 행복 아닐까. 그는 말한다. “처음에 쌈박하고 예쁜 나무가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멋스러워지는 나무도 있습니다. 사람과 똑같아요. 세월의 묵은 색이 입혀지면 품위가 생겨나죠. 나무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고 기다리는 게 장인의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나무의 나이테가 뚜렷하고 단단한 물성인데도 매끄럽다고 한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넘어 제게 온 후 눈과 비를 맞으며 강한 성질을 죽여 좋은 목재로 숙성해 갑니다. 그런 목재로 만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우아합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지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우리 목가구가 언젠가 한 번쯤은 상처받았을 당신의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줄 것입니다.” ●21세기 장인의 역할을 생각하다이번 전시에는 서울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현해 만든 삼층장도 선보인다. “앞선 세대가 잘 만들어 놓은 ‘우리다운 것’을 따라 해보는 것이죠. 요즘은 뭘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다들 ‘빨리빨리’ 사느라 애국(愛國)이나 가문을 일으키는 일 같이 큰일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고 강대규 소목장은 그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많이 만들어 보라. 내일 당장 그만두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해 만들어라.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연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스승에게 배운 대로 그는 제자들에게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숨만 쉬어도 대패가 깎일 정도로 대패 날을 갈아서 많은 연습을 해라. 대패, 끌, 톱질은 목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제자들은 ‘스승 조화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현대에서 전통 가구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십니다. 대물림되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목재부터 깊게 이해하라고 하시죠. 본질과 깊이, 두 단어가 제자들의 작업에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장인의 존재 가치를 깨우쳐주십니다.”스마트와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우리 전통 문화는 계속 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정성 들여 만든 우리 목가구를 향유하는 문화가 삶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 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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