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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는 신간 ‘전쟁’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계속 연락해 왔다고 썼다. 트럼프가 2021년 백악관을 떠난 이래 푸틴과 아마도 7차례 통화했을 것이라는 보좌관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 시민이 정부 승인 없이 분쟁 중인 외국과 교섭하는 무자격 외교는 ‘로건 법’ 위반이다. 물론 트럼프 대선캠프도, 러시아 크렘린궁도 즉각 부인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는 언론 대담에서 즉답을 회피하며 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퇴임 후 푸틴과 통화했는지 ‘예 또는 아니요’로 답해 달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그렇게 했다면 영리한 일(smart th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좋은 것이지 나쁜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기묘한 브로맨스, 특히 늘 푸틴에게 다가가며 절대 험담하지 않는 트럼프의 푸틴 사랑은 미 정보당국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상대를 홀리고 겁주는 스파이 출신 푸틴의 포섭 능력에서, 누군가는 난폭한 킬러에 대한 존경심부터 키워 온 트럼프의 성장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트럼프는 2022년 2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두고도 “천재적이다” “노련하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결코 전쟁은 없었을 것이라며 모든 게 조 바이든 대통령의 무능 탓이라고 했다. 나아가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안에’ ‘전화 한 통으로’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장담해 왔다. 구체적 계획에 대해선 “알려지면 실패한다”고 함구하면서.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강하게 힐난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면 아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고? 푸틴은 (이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을 것이기에. 트럼프는 푸틴을 바로 환영해 맞이했을 것이다. 독재자들에 관한 한 트럼프의 기본 생각은 원하는 대로 뭐든 하도록 놔두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 D 밴스 부통령 후보가 얼마 전 밝힌 구상을 살펴보면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우크라이나엔 재앙이 될 것이다. 현재의 교전선을 기준으로 비무장지대를 조성하고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통해 전쟁을 동결(凍結)한다는 것인데, 빼앗긴 영토의 수복도 포기하고 서방 동맹 가입도 배제되는 그런 방안은 우크라이나에는 항복 문서에 사인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르면 내일 윤곽이 드러날 미국 대선 결과는 향후 세계질서,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를 가를 중대 분기점이다. 설령 트럼프가 당선된다 해도 하루는커녕, 아니 몇 주, 몇 달 안에도 종전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2년 반 넘게 계속된 전쟁이 끝 모를 연장전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종전의 ‘선 긋기’에 앞선 쟁탈전으로 치달을지 이번 미국 대선 결과로 대략 큰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군 파병은 이 결정적 시기를 목전에 두고 벌인 한 판의 도박이다. 막판에 한몫 챙기겠다는 심산에서였을 텐데,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면 그런 계산이 통할 수도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기습 공격으로 한때 자국 영토 쿠르스크 지역에서 서울 면적의 두 배가량을 빼앗겼지만 이제 그 절반을 되찾았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도 우위 속 교착 전세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니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군이 보내질 전장은 한반도의 산악 지형과는 전혀 다른 대평원의 낯선 환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정밀폭격과 드론전, 핵위협과 참호전, 용병전까지 첨단과 구식 전쟁 양태가 온통 뒤엉키면서 점차 총력전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더욱이 병사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러시아식 공세 작전에 북한군은 총알받이가 되기 십상이다. 실려 온 병사의 주검을 본 주민들의 동요가 불러일으킬 체제 불안의 태풍까지 김정은이 염두에 뒀을지는 의문이다. 북한군은 이미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돼 며칠 내로 전선에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실전 참여 시기나 강도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제 와서 발을 빼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쟁은 끝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김정은은 그 전장의 안갯속에 병사들을 던져 놓았다. 김정은이 결행한 비정한 도박의 미래를 가늠할 첫 결과가 곧 나온다. 그걸로 대박이 날지 쪽박을 찰지 당장 판가름 나진 않을 것이다. 특히 ‘조종의 대가’ 푸틴이 트럼프 도박판을 미끼 삼아 파 놓은 함정에 김정은이 빠진 것 아닌지는 두고 볼 문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강도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불이야!” 소리 지르라는 전문가들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전이 걸린 일에 더 귀 기울인다는 건데,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통일, 하지 맙시다” 주장도 스스로 혼란에 빠진 자신의 문제를 엉뚱한 ‘도발적 발제’로 돌려 일단 세간의 시선을 끌려는 심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생 통일운동가를 자처하던 그로서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와 남한의 ‘자유의 북진’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존재론적 위기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는 지나온 삶과는 180도 다른 주장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런 자기부정에 앞서 반성과 성찰은 없었다. 대신 현실론자의 기민한 변신만 두드러졌다. 늘 적정선을 넘는, 그래서 스스로 신뢰를 깎아 먹는 진보좌파의 과잉 부채질 경향을 새삼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한데 그 구설홍보(노이즈 마케팅) 효과는 용산의 자동반사적 대응 탓에 의외로 커졌다. 불순하다고 여겨지는 소리라면 참질 못하는 보수우파는 맹렬하게 반응했다. 특히 대통령실 관계자가 멀리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국무회의에서 반박하고 나섰다. 정부 일각에선 “백수(白手) 정치인의 넋두리에 대꾸할 필요 있느냐”는 얘기가 나왔다지만, 일찍이 윤석열표 통일 구상을 내놓으면서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 ‘반자유 반통일 세력’과의 투쟁을 역설했던 대통령이니 맞대응의 유혹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통일 논쟁은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갈수록 국민 관심이 시들어 가던 문제지만 일단 정치의 풀무질이 더해지자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사실 남북 관계에서 통일은 먼 미래의 기약으로 넘겨둔, 그러면서도 늘 악용을 경계하는 동시에 언제 닥칠지 모를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변수였다. 이런 당위와 현실 간 괴리 때문에 남북 어느 쪽이든 통일을 얘기하면 할수록 상대에 대한 적화통일 또는 흡수통일의 의심은 커진다. 남남(南南) 관계에서 통일은 더욱 난감하고 예민한 문제였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통일론은 진퇴를 되풀이했다. 남북 관계가 괜찮던 시기에는 혹여 북측의 심기를 거스를까 통일 대신 평화를 앞세우며 뒷전으로 밀어놓았지만, 남북 관계에 찬바람이 돌면 대북 공세 차원에서 통일을 전면에 내세우곤 했다. 사실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거나 ‘통일 대박’을 외친 것도 꽉 막힌 남북 관계의 현실에서 나온 궁여지책인 측면이 컸다. 현 정부의 통일 독트린도 마찬가지다. 국내 사상전과 대북 심리전, 국제 여론전이란 3대 전략 아래 내놓은 공세적 통일론은 전임 정부의 ‘가짜 평화’를 공격하기 위한 대내용이기도 하다. 당초 정부는 올해로 30년 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수정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여야 합의로 마련돼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이어진 통일 방안을 대체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강화된 여소야대의 정치 현실 속에선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북한의 선수 치기도 정부의 통일 방안 수정 의지를 꺾는 요인이었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거부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대외 전략의 부산물이다. 북한은 2년 전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고 지난해 핵 보유를 헌법에 명문화한 데 이어 올해 통일 관련 표현을 헌법에서 삭제했다. 동족이 아닌 한국에는 언제든 핵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위협의 신뢰성’을 한층 높이는 북한식 억제전략인 셈이다. 작금의 국제 정세에서 요원해지는 통일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주목할 것은 점점 멀어지는 북한 비핵화의 현실이다. “비핵화는 이미 끝난 문제”라는 러시아나 비핵화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중국은 둘째치더라도 ‘사실상 핵무기 소유 국가’ 북한과의 외교를 강조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문제 제기, 그리고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정강정책에서 사라진 비핵화 문구가 향후 어떻게 드러날지를 더 걱정해야 한다. 통일은 외면할 수도 없지만 집착하면 멀어질 뿐이다. 그간 화해협력의 초입에만 머무르다 번번이 북한에 뒤통수를 맞아온 좌파도, 아예 그 단계도 진입하지 못한 채 요행수로서 통일만 외치는 우파도 마찬가지다. 얄팍한 태세 전환이나 고리타분한 자기최면으론 안 된다. ‘어차피 신 포도일 거야’라고 지레 외면하거나 먹을 수 없는 감을 앞에 두고 심술부리듯 찔러나 보자는 식이어선 번번이 북한에 휘둘리며 우리의 내상(內傷)만 깊게 할 것이다. 때아닌 통일 논쟁에 매달릴 게 아니라 꺼져가는 비핵화를 되살릴 방안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H R 맥매스터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펴낸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13개월간 외교안보 사령탑으로 일하면서 겪은 성취와 실망, 분투의 기록이다. 책에는 성과와 보람, 자부심보다는 좌절과 모욕, 회한이 진하게 배어 있다. 우직한 군인 맥매스터가 일하게 된 백악관은 상상을 뛰어넘는 요지경 전쟁터였다. 매사에 변덕이 죽 끓듯 하고 뭐든 반대로 하기 일쑤인 청개구리 성향의(contrarian) 트럼프를 보스로 모시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터. 게다가 아첨으로 트럼프의 환심을 사고 밀고로 참모진을 이간시키는 모사꾼들, 트럼프의 기벽에 질려 회피와 태업을 일삼는 이른바 ‘어른’ 장관들까지 맥매스터는 책 제목 그대로 내부의 적(敵)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맞서 ‘최대의 압박’ 정책을 펴던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 마치 빨려 들어가듯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것도 그런 내부 분열과 혼란이 한몫한 결과였다. ‘북한 완전 파괴’를 외치던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한미 군사훈련은 도발적”이라는 데 선뜻 동의하며 “돈 낭비”라고 맞장구치고, 국방장관은 대북 군사옵션을 포함한 비상계획에 “우린 전쟁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손사래 치고, 국무장관은 중국을 통한 대화를 모색하며 제3국 제재마저 반대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맥매스터로서는 ‘대통령의 결정에 앞서 최고의 분석과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기 위해,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필요한 얘기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보스의 신뢰를 얻지 못해 불과 1년여 만에 쫓겨난 맥매스터는 실패한 안보보좌관 중 한 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가장 성공적인 안보보좌관의 롤 모델인 헨리 키신저와 비교하면 맥매스터의 실패는 더욱 두드러진다. 키신저 역시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세를 가진 불안정한 성격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아래서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 그 직을 수행했다. 닉슨의 구상을 구체적 성과로 구현하기 위해 때론 아부하고 때론 도전한 결과 키신저는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맥매스터가 실패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지휘 아래 작성된 국가안보전략(NSS) 등 각종 전략문서는 발간 당시엔 트럼프의 좌충우돌 탓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탈냉전 이래 미국 대외전략의 근본적 전환을 예고한 문서로 재평가받았다.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특히 대(對)중국 정책을 ‘관여’에서 ‘경쟁’으로 변경한 대목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새롭게 포장된 정책들로 구체화됐다. 이렇듯 그 성공도 실패도 가볍게 다뤄지지 않는 것은 안보보좌관 자리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에 상응하는 우리의 국가안보실장은 어떤가. 지난달 갑작스러운 외교안보 라인 개편 속에 안보실장도 교체됐다. 윤석열 정부 임기가 절반도 안 지났는데 벌써 네 번째 안보실장이다. 한데 그 사유를 놓고 당초 대통령실은 ‘외교보다 안보를 보강하기 위해서’라더니, 얼마 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리베로 특보가 필요해서’라고 설명했다. 사실 대통령 측근을 국방부 장관에 앉히면서 생겨난 연쇄 인사로 안보실장이 특보로 튕겨나간 것일 터인데, 그 뻔한 이유를 이리저리 돌려 말하다 보니 신설한 ‘리베로 특보’가 매우 중요한 자리이고 ‘붙박이 안보실장’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자리인 것처럼 돼 버렸다. 여기에 어차피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는 안보실의 진짜 실세는 따로 있는데 실장이 누가 되든 달라질 게 있겠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대통령실에선 이제 특보가 ‘상시 특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조직의 생리나 관행상 급조된 자리가 과연 주변과의 마찰이나 잡음 없이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적임자를 적소에 배치하고 필요하다면 새 자리를 만드는 것은 온전히 대통령의 권한이다. 하지만 임시변통의 실험적 용인(用人)이 성공적이었던 예는 드물다. 일찍이 키신저도 “우편함 없는 정부 자리는 받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당장 우편물 받을 변변한 사무실도 없는 고문이나 특보 같은 자리, 결국 끼어들고 참견하는 자리는 맡지 말라는 얘기일 것이다. 맥매스터의 후임이자 또 한 명의 실패한 참모인 존 볼턴이 트럼프가 자신에게 안보보좌관이 아닌 ‘다른 타이틀의 자리는 어떠냐’고 제안하자 거절했다면서 새삼 상기했다는 현실론적 지침이기도 하다.(볼턴의 책 ‘그 일이 일어난 방’)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자못 흥미로워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기 피격 사건 이후 승기를 굳힌 듯하더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격 사퇴하자 그 바통을 넘겨받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예상밖의 선전을 보여주면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하다. 이제 선거전은 ‘이상한 트럼프’ 대 ‘미친 해리스’의 박빙 대결로 바뀌었고, 석 달도 남지 않은 투표까지 또 어떤 충격과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질지 예측불허의 상황이 됐다. 모든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이고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선거 결과 예측이 아니라 그 이후의 대비임을 새삼 확인케 한다. 외교정책 경험이 부족한 해리스로의 후보 교체는 향후 미국 대외정책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지만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그 노선은 ‘바이든 2.0’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향후 대외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부를 ‘트럼프 2.0’의 파괴력에 여전히 주목해야 한다. 최근 대만이 겪은 충격파는 트럼프 2기가 국제사회에 몰고 올 혼란의 예고편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는 피격 며칠 뒤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항해 대만을 방어하겠느냐’는 질문에 “대만은 우리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 대만은 방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린 보험회사와 다를 게 없는데, 대만은 전혀 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만은 미국과 9500마일 떨어져 있는데, 중국에선 68마일이다”라며 방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도 했다. 예전에도 트럼프는 같은 질문에 “내 카드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비슷한 얘기를 늘어놓곤 했지만 그의 백악관 복귀가 굳어져가던 시기여서 발언의 무게는 남달랐다.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기업 TSMC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대만 행정원장이 나서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대만에선 TSMC에 대한 ‘애국 투자’ 열기가 일었고, 라이칭더 정부는 내년도 방위예산을 역대 최대로 편성하는 등 트럼프 리스크 대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군사적 개입 여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견지해 왔고, 트럼프는 그런 노선에 충실한 답변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작 신냉전 대결 속에 이런 ‘전략적 모호성’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바이든이었다. 그는 재임 중 네 차례나 대만을 방어하겠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그렇다”고 즉답했다. 물론 그 뒤엔 늘 백악관 측이 부랴부랴 “우리 정책에 변화는 없다”며 사실상의 실언이라는 식으로 진화하곤 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트럼프의 시각은 유별나다. 전통적 외교 문법에선 지극히 이단적이다. 유럽 학계는 미국 공화당의 정책 분파를 △세계 패권을 유지하자는 미국우월론(primacists) △세계의 경찰이 아닌 국내 문제에 집중하자는 개입자제론(restrainers) △유럽·중동이 아닌 중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우선순위론(prioritisers)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세 그룹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모두에 다리를 걸친 채 필요에 따라 집어들 뿐이다. 사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자유주의의 망토를 걸친 현실주의자’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어떤 레토릭으로도 포장하지 않는 ‘찐 현실주의자’다. 1기 때부터 미국의 패권적 위상을 내세우면서도 군사적 개입엔 몸을 사렸다. 동맹과 우방을 깔보며 독재자들과 어울렸다. 그에겐 어떤 이념도 가치도 없다. 매사를 거래 관계로 보고 경제적 손익계산 아래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트럼프 2기의 위험성도 바로 거기에 있다. 트럼프가 몰고 올 혼란은 대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 반도체 사업을 가져간 부자 나라, 왜 그런 나라를 방어해줘야 하느냐는 주장은 당장 한국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주한미군 철수 압박과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는 불 보듯 뻔하고, 북한과의 직거래 신호는 한반도 정세의 불가측성을 한껏 끌어올릴 것이다. 이제 김정은마저 “대화도 대결도 우리의 선택으로 될 수 있다”며 3년여 만에 직접 ‘대화’를 언급하고 나섰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선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레 호들갑 떨 일도 아니라지만 이렇게 느긋할 일인지 걱정될 정도다. 트럼프 복귀는 예측 가능한 외교의 시대에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가치와 이념을 앞세운 ‘우리 편’ 외교에만 주력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모레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자유·인권을 강조하는 새 통일담론을 제시한다는데, 과연 그 선명한 이념적 언어 안에 냉철한 현실인식과 실천전략은 얼마나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이런저런 선물들을 챙겼다. 60조 원 규모의 나토 군사지원 약속, 패트리엇 등 방공무기와 F-16 전투기 추가 인도, 20여 개국과의 양자 안보협정까지. 하지만 가장 절박한 문제에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푸틴 대통령’이라 소개받고 머쓱해야 했던 수모는 젤렌스키가 느낀 좌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올해도 나토 가입을 위한 구체적 일정표를 받아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나토에 있다’는 작년의 공동성명에 ‘회원국으로 가는 다리(bridge)’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경로’라는 문구가 추가됐지만 여전히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동맹으로서 집단방위의 보호를 받는 나토 회원국 지위는 요원하고 오히려 러시아 침략의 구실이 된 ‘잠재적 회원국’이란 불안정한 처지만 재확인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절실한 군사 현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젤렌스키는 서방이 각종 무기를 지원하면서 내건 제한 사항들, 즉 그 무기들로 러시아 영토 깊숙이 타격해선 안 된다는 조건의 해제를 강하게 요구했다. 러시아는 자국 영토로부터 전방위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내 공격 원점을 때리지 못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바꿔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난색을 표했다. 누구보다 바이든이 완강했다. 그는 “만약 그(젤렌스키)가 모스크바를, 크렘린을 타격할 능력을 갖는다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아닐 것이다”고 거부했다. 이런 엄격한 무기 사용 제한은 우크라이나 지원과 확전 방지 사이의 딜레마, 즉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지원하되 러시아와의 직접 대결은 피해야 한다는 미국의 우려에서 비롯됐다. 바이든은 핵 가진 강대국 간 정면 대결이 부를 거대한 재앙을 걱정하며 매우 신중한 지원책으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왔다. 그는 주변에 “젤렌스키가 우리를 제3차 세계대전으로 끌어가려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데이비드 싱어 ‘새로운 냉전들’) 미국은 무기 지원의 수준도 천천히 조금씩 끌어올리는 이른바 ‘개구리 삶기’ 방식을 고수했다. 대전차미사일부터 대공미사일, 고속기동포병로켓(HIMARS), F-16 전투기, 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에 이르기까지 조심스럽게 고성능 장거리로 높여가며 러시아가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했다. 거기에 ‘국경 넘어 사용 금지’ 조건을 붙였으니, 패배는 피하겠지만 승리는 불가능한, 즉 생존만 보장하는 수준 아니냐고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분통을 터뜨리기엔 정작 나토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이번 정상회의를 지배한 것은 ‘트럼프의 유령’, 즉 11월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가 불러올 공포감이었다. 노쇠한 바이든의 인지능력에 대한 언론의 질문 공세에 시달린 유럽 정상들은 그 누구보다 불길한 예감 속에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사실 유럽의 문턱에서 벌어진 전쟁에 맞서 대오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이든 덕분인데, 그가 없는 나토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일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트럼프의 피격 소식.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치켜세워 “싸우자!”고 외치는 트럼프를 보며 유럽 지도자들은 더욱 오싹했을 수 있다. 나토가 나름대로 트럼프 복귀에도 끄떡없는(Trump-proof) 대비 장치를 마련했다지만, 앞으로 트럼프가 얼마나 세계를 흔들어 놓을지 그 충격과 혼란의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젤렌스키로선 원치 않는 휴전협상에 끌려 나갈 미래를 상상하며 경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나토 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아태 파트너 4개국(IP4)의 일원으로 3년 연속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서방 자유진영과의 연대, 북핵에 맞선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의지를 과시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트럼프가 복귀하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김정은과 벌일 위험한 직거래는 우리에겐 동맹의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서늘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돌아왔을까. 북-러의 동맹 부활에 한미 동맹 결속으로 맞서면서 한때 관리 모드에 들어갔던 한-러 간엔 다시 가시 돋친 언사가 오간다. 우리 외교에 동맹, 나아가 서방과의 동행은 필수다. 하지만 한쪽에 묶인 채 협력과 적대를 가르는 이분법적 외교로는, 몇 달 뒤를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외교로는 닥쳐올 혼돈을 헤쳐 나갈 수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대비하는 유연하고 정교한 전략이 절실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6∼17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외신의 관심은 온통 푸틴의 잠재적 다음 행선지, 즉 북한을 깜짝 방문할지에 쏠렸다. 하지만 푸틴은 귀국길에 하얼빈을 들르면서도 가까운 북한 땅을 밟진 않았다. 북-러와 함께 ‘독재의 3각 축’으로 엮이는 것을 꺼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크렘린궁은 서둘러 “북한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 미뤄뒀던 푸틴의 방북이 오늘 이뤄진다. 작년 9월 러시아 극동에서 김정은과 만난 지 9개월 만의 답방 약속 이행이다. 그 사이 북-러 간에는 컨테이너 1만 개가 오가는 ‘위험한 거래’가 진행됐고 ‘전략·전술적 협동’은 긴밀해졌다. 이번에도 위험한 합작은 거창한 이벤트와 화려한 수사에 가려져 있다가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푸틴 방북에도 중국의 견제 그림자는 짙다. 김정은과 시진핑 간 우호의 상징이었던 다롄의 ‘발자국 동판’이 최근 아스팔트로 덮인 것은 북-중 간 이상 냉기류를 보여준다. 최근 북한은 노골적 반발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달 말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겨냥한 북한의 도발은 중국에 대한 섭섭함을 넘어 분노까지 담겨 있는 듯하다. 북한은 3국 정상회의 날 새벽에 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한 뒤 회의가 끝나자마자 야간에 발사 단추를 눌렀다. 2분 만의 공중 폭발로 끝난 위성 발사 실패에선 김정은의 조바심이 드러난다. 북한은 3국 성명에 담긴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대목을 들어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이 동의하진 않았다지만 ‘비핵화’가 거론된 것 자체가 중국의 방조 아니냐는 노여움이었다. 곧 이어진 ‘오물 풍선’ 도발에도 김정은의 초조감이 묻어 있다. 북한이 날린 풍선은 그 시작부터 고약한 두엄 냄새로 세계적 비웃음을 샀다. 상대를 화나게도 겁먹게도 하지 못한 정치심리전의 패배였다. 대북 확성기 재가동이란 강수를 꺼낸 남측이 2시간 방송 뒤 일단 맞대응을 멈추면서 ‘먼저 꼬리를 내린’ 셈이 됐지만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 저급한 도발을 두고 북한이 이겼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저히 정상 국가의 행태로 보기 어려운 북한을 품고 가야 하는 중국으로선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웃 나라의 주권을 난폭하게 짓밟은 러시아까지 함께 엮인 북-중-러 연대에 한사코 손을 내젓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궁극적으로 북-러와 함께 반미(反美)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미국과 대화를 지속하며 경쟁적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대미 안정화 기조 속에서 중국은 가급적 러시아와 북한을 따로따로 관리하고자 한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를 자처하지만 그 전쟁을 서둘러 끝낼 생각은 없는 듯하다. 냉전 초 6·25전쟁을 미국의 군사력을 극동에 묶어두는 수단으로 활용한 소련의 스탈린처럼 시진핑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중국 포위망 집중을 막고 있다고 여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막는 완충지대로 북한이 필요하지만 북핵 도발로 인해 미국과의 갈등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시진핑은 푸틴에게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바꾸기 위해 ‘세기의 변화(百年變局)’을 주도하자고 부추긴다. 김정은에게도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안보상 우려’라고 두둔하며 다독인다. 하지만 정작 불량국가 대열에 끼어 그 맹주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며 뒷전으로 물러선다. 이런 중국의 이중적 태도가 북-러의 두 난폭자에겐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불안정과 혼란, 무질서를 통해 현상 타파를 꾀하는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은 위험하다. 거기에 자신들과 죽이 잘 맞았던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는 이들이 노리는 더 없는 기회일 것이다. 그러니 미국 행정부가 11월 대선을 앞두고 푸틴이 부추기고 김정은이 총대를 멘 고강도 대미 도발,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두 난폭자가 평양에서 만날 때 서울에선 한중 간 2+2 외교안보대화가 9년 만에 열린다. 한중 양국은 그 처지부터 가치, 전략까지 모든 점에서 차이가 분명하다. 그래서 이번 대화에도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신냉전 진영 대결의 격화는 두 나라 모두 바라는 바가 아닌 만큼 적어도 북-러의 모험주의 도발을 막기 위한 협력의 균형점은 찾아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은 즉답 없는 에두르기나 엉뚱한 동문서답으로 채워진 맥 빠진 회견이었다. 그 이유는 기자들의 후속 추가 질문이 사실상 막혔기 때문이다.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진행요원은 마이크를 가져가 버린다. 마이크도 없이 “그걸 물은 게 아니고…”라고 했다간 도어스테핑 중단 같은 사태를 부를 ‘제2의 슬리퍼 기자’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하긴 1년 9개월 만의 회견이니 물을 건 많았고 시간은 짧았다. 그런 한계 속에서도 대통령실의 배려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독점적 질문권을 누린 외신 기자들은 최대 현안인 북한-러시아 간 무기 거래를 두고 이어달리기 식 추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먼저 AFP 기자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 무기 사용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 데 대한 한국의 대응,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할 조건이 뭔지를 물었다. 그간 북-러 무기 거래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혀 온 윤 대통령이다. 그런 만큼 미군의 빈 탄약고를 채워주는 식의 우회 지원을 넘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 같은 단호한 대응 의지를 밝힐 가능성에 외신은 주목했다. 한데 뜻밖에도 윤 대통령 답변의 핵심은 “공격용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방침”이었다. 더욱이 작년 키이우 방문 때 약속한 안보·인도·재건 3대 지원에서 ‘안보’는 뺀 채 “인도, 재건 지원”만 언급했다. BBC 기자의 추가 질문은 더 뾰족했다. 최근 주한 러시아대사의 “비우호국 중 한국이 가장 우호적”이란 발언까지 인용하며 한국이 용인할 수 없는 레드라인(금지선)이 뭔지 물었다. 그에 대한 답변도 의외였다. 윤 대통령은 “러시아와는 사안별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반대할 것은 하면서 관계를 원만하게 잘 관리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BBC 기자는 회견 뒤 후기 영상에서 “그 답변이 놀라웠고 시사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윤 대통령의 말이 최근 신중해졌다. 간간이 거친 말이 튀어나오긴 하지만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 같은 이념적 대결적 언사는 거의 사라졌다. 특히나 외교 분야에서 똑 부러진 직설어법이 줄어든 것은 꽤나 낯설게 느껴진다. 4·10총선 참패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 계기로 늦게나마 지난 2년의 대외정책을 돌아보며 얻은 깨침의 결과라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래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복원을 넘어 주요 7개국(G7),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까지 서방 진영을 향한 외교에 집중했다. 북핵의 고도화, 미중 간 대결 격화, 러시아의 침략전쟁 같은 신냉전 기류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지만 그런 서방 밀착 행보는 우리 외교의 좌표를 급격하게 이동시켰다. 적지 않은 마찰음도 들려왔지만 그럴수록 정부는 강하게 중-러의 반발을 받아치곤 했다. 그 결과는 중국·러시아와의 거리 두기를 넘어선 긴장과 갈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북-러 간 ‘위험한 거래’는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패널의 임기 연장에 대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북한이 제재를 비웃으며 핵능력을 고도화하는데 최소한의 감시 수단마저 잃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우리 교민을 간첩죄로 구금하는 ‘더러운 게임’까지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동문서답은 적어도 정부가 대러 관계에서 관리 외교에 들어갔다는 뜻으로 읽힌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한-러가 ‘우려의 균형’을 통해 서로 레버리지를 가진 형국”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북한에 군사기술 이전을,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자제하면서 레드라인을 지키자는 공감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직설(直說)과 주한 중국대사의 무례한 언동(言動) 이래 고위급 대화가 끊긴 한중 관계는 여전히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주 베이징을 다녀왔지만 “전반적으로 서로 다름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협력하기로 한 것이 가장 중요한 합의사항이자 성과다”라고 하니 별 소득은 없는 듯하다. 내주 윤 대통령이 주재하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주목하는 이유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은 우리로선 가장 경계해야 할 구도다. 북한이 먼저 그 대결에 재빨리 편승했다곤 하나 우리까지 그 최전선에 나설 일은 아니다. 갈수록 커지는 북핵 위협에다 연말 미국 대선의 예측불가 변수까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절제된 언어 못지않게 우리의 대외전략도 더욱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지난 주말 미국 하원에서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에 대한 안보지원 예산안이 통과됐다. 공화당 강경파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반대로 6개월이나 표류했던 이 예산안은 “연말이면 우크라이나가 패전할 수 있다”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경고 끝에 하원 문턱을 넘었다. 그나마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이 없었다면 기약 없이 미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일단 한숨 돌리게 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5발 쏠 때 고작 1발로 응수하며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군사지원은 우크라이나 생존에 절대적이다. 다른 국가들의 지원액을 다 합해도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은 유럽에는 ‘안보 각성의 시간’이었다. 각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의무복무제 도입도 추진하고 있지만 ‘유럽안보의 유럽화’는 요원하다. 당장 미군이 빠진 200만 유럽 병력은 허울뿐인 ‘포템킨 군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령관은 미군 4성 장군이 맡아왔고, 유럽 군대는 그 지휘 아래 항공 지원과 정보까지 전적으로 의존했다. 유럽이 자체 방위력을 키우는 데는 최소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이런 유럽을 바라보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미일 간 동맹 결속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다. 미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다”고 외쳤다. 지금껏 미국의 일방적 보호(protection)를 받던 일본이 이제 한 축을 맡아 함께 힘을 투사(projection)하게 된다고 미국 측도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으로선 ‘아시아 파트너 1강(强)’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일본의 미국 밀착은 거침없는 군사대국화와 맞물려 있다. 지난 2년간 방위비를 50% 늘린 일본은 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를 달성해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군사비 지출 강국으로 발돋움한다. 토마호크 미사일 400기도 도입해 반격 능력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때부터 걸어온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길을 쾌속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행보는 우리에겐 질시와 불안을 부르는 불편한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도 북핵 위협에 맞서 확장억제 같은 한미동맹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대일관계 개선을 밀어붙인 끝에 한미일 3각 안보 협력도 확고히 했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세계적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하는 터에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노선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쉽고 뻔한 길이었다. 특히 윤 대통령의 행보는 과감했지만 거칠었다. 미국 일변도 외교는 중국의 거센 반발을, 대일관계 급진전은 국내적 반감을 불렀다. 이번 4·10총선에선 야당 대표가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 하면 되지”라는 경박한 언사를 쏟아놓는데도, 민심은 오히려 정부여당에 박절할 만큼 인색했다. 정부가 자랑하는 외교적 성과가 묻힐 만큼 다른 정부 실책들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총선 참패에도 명시적인 공개 사과를 하지 않은 윤 대통령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윤 대통령으로선 무엇보다 뚝심 있는 외교로 이룬 성과를 몰라주는 민심에 섭섭할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외교정책만큼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많다. 하지만 주변을 살피지 않는 직진 외교로는 다가오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특히 연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국 외교는 험난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트럼프에겐 동맹도 돈 계산이 먼저다. 김정은과의 협상도 언제든 꺼내 쓸 와일드카드로 여긴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은 유연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단조로운 음악의 볼륨만 높이는 외교는 피로감을 낳을 뿐이다. 이념 편향적 가치외교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꽉 막힌 중국과의 외교적 소통부터 나서야 한다. 북한발 충돌 위기를 관리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여전한, 오히려 퇴행하는 역사인식에는 할 말을 해야 한다. 일본은 미국과 손잡고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면서도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중일관계’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한다. 당장 성과가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소통 창구를 열어 두고 관리 차원의 접근을 중단하지 않는 일본 외교를 우리 정부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플로리다 마러라고 저택으로 찾아가 만났다. 오르반은 회동 후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매우 상세한 계획을 갖고 있더라”며 이렇게 전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복귀하면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돈을 주지 않으면 유럽도 자금을 대지 못할 것이고 결국 전쟁은 끝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내가 대통령이라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한 트럼프다. 오르반의 전언대로라면 트럼프의 ‘24시간 내 종전’ 마법이란 결국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어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을 강제하는 매우 손쉬운 방법이다. 사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제물로 바치는 이런 트럼프식 해법은 이미 작동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함한 안보예산 패키지가 미국 의회에 묶여 언제 처리될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트럼프는 이미 그의 재집권 가능성만으로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벌써부터 트럼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라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각국이 부산하게 방위비를 늘리고 있지만 그간 사령부 조직과 전력, 정보까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했던 유럽이 단기간에 자체 통합방위를 갖출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런 한편에선 오르반 같은 ‘리틀 트럼프’가 친러시아 행보를 강화하며 유럽 내부의 분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트럼프의 판 흔들기는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트럼프-오르반 회동에 배석했던 프레드 플라이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서실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나와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과의 개인적 외교를 재개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용 무기의 러시아 공급 중단을 설득하면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북한과 러시아 두 독재자를 상대로 ‘3각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트럼프 2기 출범 후 북-미 협상 재개는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5년 전 트럼프와의 거래에서 쓴맛을 봤던 김정은이 쉽게 응할지는 미지수다. 그래선지 북한에 내줄 ‘선물’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VOA에 함께 출연한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은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다. 그런 인정이 모든 논의의 시작점이다”라고 했다.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 같은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함으로써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논의는 트럼프 2기 국방장관 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이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북핵 현실론과 맞닿아 있다. 그는 북핵을 이미 ‘호리병 밖으로 빠져나온 지니’에 비유하며 “이젠 기대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핵 동결-제재 완화’ 협상론에 대해 “검토할 만하다”고 했고, 북핵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군축협상론에도 “난 ‘왜 안 되느냐’에 찬성하는 쪽”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이미 ‘트럼프 태풍’ 영향권에 들어섰다. 트럼프 1기를 돌아보면 그가 불쑥불쑥 던진 무모한 발상들이 실현된 것은 정작 많지 않다. 진짜 괴로운 것은 트럼프의 변덕과 기행, 예측 불가의 불확실성이었다. 트럼프 2기는 난폭한 질서 파괴, 극심한 가치 전복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는 우리로선 원칙과 가치 못지않게 냉정한 현실 인식 아래 유연성과 민첩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미국 대선은 7개월 남았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북한 김정은의 대남 ‘제1의 적대국가’ 선언 이후 그 배경을 놓고 국내외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 쏟아졌다. 자체 핵·미사일 개발 진전과 러시아와의 밀착에 따른 모험주의 발동, 내부 불만과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체제 결속용, 나아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내다본 전술적 카드 등 저마다 해석이 다양하다. 사실 그 모든 요인이 계산된, 자신감과 위기감 사이 어디쯤에서 내려진 전략적 선택일 테지만 뭔가 충분치 않다. 이런 분분한 논의 속에 북한의 노선 변경을 생존의 핵전략 차원에서 짚은 동아시아연구원(EAI) 하영선 이사장과 김양규 수석연구원의 이슈 브리핑 ‘북한의 대남 노선전환 바로 읽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 글은 미국이 북핵 위협에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경고하며 맞춤형 확장억제 전략을 강화하는데도 그에 맞설 실질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북한이 선택한 차선의 대응책이 바로 “대한민국의 궤멸”을 내세운 ‘북한식 맞춤형 핵위협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했다지만 보유 핵탄두가 미국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기술적 한계도 분명한 처지에서 ‘공포의 균형’을 통한 상호 억제는 이뤄질 수 없다. 더욱이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F-35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는 신형(B61-12)으로 교체하는 등 한층 첨단화한 억제력을 구축했다. 그러니 대미 억제라는 북한 핵무기의 ‘제1사명’은 작동 불가능해졌고, 결국 ‘제2사명’에 매달리며 동족을 적국으로 겨냥했다는 진단이다. 사실 이런 대남 위협 전략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미 30년 전 미국의 외과수술식 정밀타격 위협에 맞서 휴전선 일대에 밀집 배치된 장사정포를 들먹이며 “서울 불바다”를 위협했던 북한이다. 특히 김정은이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수십 년 통일 노선까지 폐기한 것은 제아무리 핵무기로 무장해도 정권 생존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군사적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위기감이 전부는 아니다. 날로 격화하는 신냉전 기류에서 지금이야말로 판을 흔들 절호의 기회라는 호기로운 계산도 엿보인다. 나아가 한미 동맹을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 빠뜨리려는 이간책도 숨어 있다. 연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일수록 한국에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불신이, 미국에선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협상론이 고개를 들 수 있는 수상한 시절이니 더욱 그렇다. 당장 김정은의 거친 협박에서 ‘전쟁하겠다는 결심’을 읽었다는 미국 전문가도 있지만 그런 무모한 공멸(共滅)의 길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무력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래선지 요즘 미국에선 한국의 과도한 대응이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한국의 ‘몇 배 응징’을 말리되 조심스럽게 설득할 것을 주문하는 전문가도 있다. 올 한 해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 아슬아슬한 위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세운 기념물마저 “꼴불견”이라며 철거를 지시한 김정은의 불경스러운 언사도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EAI 보고서 진단대로 북한은 스스로 미국의 압도적 억제력 앞에 무력함을 드러냈다. 정권 종말의 위기감을 대남 인질 위협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 한계도 곧 깨달을 것이다. 경찰 총에 조준된 강도보다 칼부림을 협박당하는 인질의 처지가 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북한 위협의 칼끝에 있지만 그럴수록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자체 핵무장론에 흔들리며 우리 내부, 나아가 동맹 간 균열을 내기보다는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더욱 강화하고,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되 절제된 대응으로 긴장을 관리해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KBS 대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할 가능성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방한했던 미국 상원의원단 얘기를 꺼냈다. 미 의원들이 ‘대통령은 바뀌어도 의회는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며 “미국의 대외 기조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동맹을 더 강화하고 더 업그레이드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지 큰 저기(차이)는 없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맹국의 9개월 뒤 대선 이후를 거론하는 부담을 가급적 피하면서 나름의 기대를 담아 모범 답안을 내놓은 것이리라. 다만 그 답변은 대통령 탄핵의 혼란 속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트럼프 1기를 맞았던 7년 전의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도 미국 하원 방한단의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미 의원들이 “선거 땐 말이 거칠어지는 법”이라며 별일 없을 거라고, 심지어 한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를 잘 가르칠(educate) 테니 염려 말라” 했다고. 하지만 트럼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트럼프의 한마디 한마디에 세계가 화들짝 놀랐다. 동맹국 정상들은 트럼프의 막말과 변덕, 기행에 혀를 찼다. 트럼프 재집권 경보에 벌써 국제사회가 긴장하는 이유다. 이미 겪어봤다지만 결코 익숙해지기 어려운 트럼프의 2기는 더욱 끔찍할지 모른다. 1기 때만 해도 참모진의 난색과 사보타주로 미뤄진 경우도 있었지만 충성파 참모들로 채워질 2기 땐 브레이크도 없이 폭주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가 ‘방위비를 체납한 동맹국은 러시아의 처분에 맡기겠다’며 유럽 국가들을 협박하는 것은 그 예고편일 뿐이다. 트럼프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미국을 벗겨먹는’ 동맹국 대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같은 스트롱맨과의 담판을 즐기며 국제 정치판을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복귀한다면 한반도 정세에도 격변을 불러올 것이다. 트럼프 2기 국무장관 1순위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에도 최대치의 제재를 가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북 ‘최대 압박과 관여’의 재가동, 즉 전쟁 일보 직전의 ‘분노와 화염’ 공세에 이어 김정은과의 브로맨스 외교 쇼를 다시 연출할 수 있다는 기대인 것이다. 트럼프는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24시간 내 종결’을 장담해 왔다. 푸틴과는 우크라이나 휴전을 거래하면서 북-러 무기 거래를 끊게 하고, 중국에는 관세 폭탄을 퍼부으며 시진핑에게 대북 압박을 종용하고, 김정은에겐 거친 말 폭탄과 함께 옛 러브레터를 꺼내 들고 손짓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김정은이 협상에 나온다면 한때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한국은 철저히 소외되는 북-미 직거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한국의 동맹 비용을 놓고도 주판알을 튕길 것이다. 이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을 요구했던 트럼프다. 그에겐 한국도 만성 체납국 중 하나일 뿐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물론이고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나아가 대북 핵우산 전력 유지 비용까지 청구서 항목에 포함시키려 할 것이다. 트럼프가 몰고 올 혼란은 이미 우리 문 앞에 닥친 야수와 같다. 트럼프 한마디에 공화당 의원들이 초당적 ‘안보 패키지’ 법안을 좌초시켰고, 친트럼프 방송인이 푸틴에게 침략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게 멍석을 깔아줬다. 많은 나라가 안보에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자강(自强)의 노력, 운신의 폭을 넓히는 전방위 완충외교로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동맹만 바라보는 관성적 사고부터 벗어나야 전략과 방책이 보인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요즘 북한 대외매체의 보도에서 ‘남조선’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자리에 ‘대한민국’이 들어섰다. 김정은이 작년 세밑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고 ‘대남 노선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천명한 직후부터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정은은 남조선을 주로 썼고 대한민국을 언급한 것은 한두 차례뿐이었다. 하지만 새해 들어서자마자 모든 매체에서 남조선이 싹 지워졌다. 그 시작은 6개월 전이었다. 김여정이 작년 7월 미군 정찰기의 북한 EEZ 상공 비행을 비난하는 담화에서 난데없이 남측을 겹화살괄호(≪ ≫)에 씌워 대한민국이라 부르면서다.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김여정 명의의 담화에만 등장했고, 편의에 따라 남조선을 섞어 쓰기도 했다. 이후 서서히 시동이 걸리듯 대한민국이 하나둘씩 남조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단어 하나 바꾸는 문제가 아니었다. 금기어였던 대한민국을 사용하는 것은 당장 거부감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주민들이 받아들일 정서적 혼란은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경멸과 조롱의 의미를 담기 위해 대한민국 뒤엔 늘 ‘족속들’ ‘것들’ ‘놈들’을 붙였고, ‘외세의 특등주구인’ 같은 수식어도 필요했다. 작년 10월 아시안게임 남북 축구경기 중계에선 차마 대한민국을 쓰기 어려웠는지 ‘조선 대 괴뢰’로 표기하기도 했다. 일단 시작하면 적당히 끝낼 수도 없다. 내처 김정은은 연초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헌법에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하고, 역사에서 통일·화해·동족 개념도 완전히 제거할 것을 지시했다. 머지않아 노동당 규약에 있는 ‘남조선’ ‘평화통일’도 걷어낼 것이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남북관계의 틀을 완전히 부정하며 법과 규범, 주민의식까지 뜯어고치는 이데올로기 상부구조의 전면 개편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김여정의 수령을 향한 끊임없는 인정투쟁, 그리고 그가 이끄는 선전선동팀의 대내 사상투쟁 끝에 나온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의 굴욕을 겪은 뒤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이끌며 온갖 험구로 대남 분풀이의 선봉에 섰던 김여정이다. 이젠 정권의 이데올로그 역할까지 자임하며 오빠를 설득해 추인까지 받아낸 것이다. 때마침 러시아와 위험한 거래를 성사시킨 뒤 대남 긴장 수위를 더욱 올릴 필요가 있다는 김정은의 계산과 맞아떨어졌을 수 있다. 40년의 냉전, 30년의 탈냉전을 거치며 도발과 좌절, 도전과 시련의 세월을 겪은 북한으로선 격화되는 신냉전 기류에 재빨리 올라타 호기를 잡았다고 여기는 터다. 연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복귀를 기다리면서 호전성을 과시해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속셈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얼치기 이데올로그는 당장 눈앞의 편리를 위해 현실을 무시한 논리적 비약의 늪에 빠져든다. 그 결과가 체제경쟁의 실패를 자인하는 수세적 노선으로의 전환이었다. 결국 독재체제 유지와 김씨 세습정권 보존이 유일한 목표인 북한의 군색한 현실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북한의 행보는 옛 동독의 ‘2민족 2국가’ 노선과 판박이다. 1970년대 에리히 호네커 정권은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 민족’을 지우고 분단 극복과 통일 노력 조항까지 삭제했다. 통일을 염원하는 가사가 거슬린다며 국가(國歌) 제창조차 못 하도록 했다. 그렇게 독자적 정권임을 과시했다지만 결국엔 서독에 흡수되고 말았다. 김씨 남매의 무지한 대담성이 불러올 파장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그처럼 그악스럽고 허풍스러운 표현들을 대체 어디서 찾아내는지 섬뜩함과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북한처럼 국제질서의 파괴와 혼란만이 살길인 구제불능의 현상타파 국가로선 공갈과 허세 가득한 불량배 언사가 어쩌면 필수 선택지일 것이다. 겁먹은 개가 더 요란한 법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수사적 과잉을 걷어내고 보다 긴 흐름에서 살펴보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엿볼 수 있다. 작년 세밑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에는 김정은의 기세등등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그는 2023년이 ‘위대한 전환의 해, 위대한 변혁의 해’였다며 으스댔다.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대응”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도 지시했다. 새해 들어선 어린 딸의 볼에 입을 맞추는 모습까지 연출하며 4대 세습을 통한 권력의 공고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런 기고만장에는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고체연료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잇단 실패 끝에 쏘아올린 군사정찰위성 같은 성과를 앞세운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런 김정은을 두고 일부 외신은 ‘권력의 절정기’라거나 ‘놀라운 회복력’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북한 주장대로 ‘자력갱생, 견인불발의 투쟁으로 이룬 경이로운 승리’일까. 2019년 북-미 간 협상 결렬로 씁쓸한 좌절을 맛본 이래 김정은은 긴 시련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당장 남측에 분풀이를 해댔지만 한미 정상과 나란히 국제무대에 섰던 호시절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갈수록 여건은 불리해졌다. 코로나19로 3년 넘게 국경을 꽁꽁 틀어막은 상태에서 달갑지 않은 미국과 한국의 정권교체를 목도해야 했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 때만 해도 김정은은 새로 출범할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기대를 거는 것처럼 보였다. 남측을 향해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태도 여하에 따라 봄날로 돌아갈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미국을 향해선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으로 상대하겠다”며 북-미 담판을 압박했다. 하지만 새로운 ‘실용적 접근법’을 내세워 톱다운식 협상을 거부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실망은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머뭇거렸다. 그해 말 전원회의에서 “다사다변한 국제정세”만 거론한 채 대외정책 방향에 대해선 침묵했다. 이듬해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한미의 대북 강경 기조는 결국 북한의 선택지를 제한했다. 달리 대안이 없는 외길, 즉 핵무력 증강과 도발만 남은 것이다. 한편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선명해진 신냉전 대결 기류는 북한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줬다. 김정은은 2022년 말 전원회의에서 “국제관계 구도가 ‘신랭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반(反)서방 진영 가담을 천명했다. 그 결과 김정은은 러시아에 구식 포탄을 제공하고 첨단무기 기술을 이전받는 거래를 텄고 러시아 방문으로 외교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정세의 변화를 재빨리 포착하고 그 기류에 올라타는 것은 약자의 숙명적 생존방식이다. 분쟁과 갈등, 불안정은 북한 같은 도발자가 노리는 도박판이다. 새해엔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도 앞두고 있다. 김정은은 “변천하는 국제정세에 맞게 미국과 서방의 패권전략에 반기를 드는 나라들과의 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키겠다”며 ‘반제 공동투쟁’도 내세웠다. 더욱 현란한 대외 공세를 예고한 것이다. 그에 따른 파장과 부담은 곧바로 한국이 감당해야 한다. 면밀한 경계와 기민한 대응, 특히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유연한 전략이 절실하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영화 ‘나폴레옹’을 두고 프랑스에선 격한 불만이 쏟아졌다고 한다. ‘전쟁의 신’으로 불린 천재적 전략가이자 ‘나폴레옹 법전’ 같은 근대 유럽의 법과 제도를 만든 영웅을 한낱 여인의 치마폭에 휘둘리는 시시한 남성으로 그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거기엔 유럽 전역을 혼란과 공포로 몰아갔던 격변의 시기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영국적 시각이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쪽에서 “영국인 감독의 반(反)프랑스 복수극”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밖에 없고 나폴레옹을 ‘위대한 영웅’과 ‘하찮은 괴물’ 사이의 존재로 보는 냉소적 시각도 어쩌면 온전한 평가를 위한 보완적 해석일 수 있다. 얼마 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에 대해서도 ‘외교의 전설’ ‘세기의 경세가’란 칭송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키신저 생전에 이미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중소 갈등을 기회 삼아 중국의 문을 열고 소련과의 데탕트 시대를 이끈 ‘3각 외교’는 베트남전쟁의 늪에 빠져 있던 미국의 입지를 반전시킨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파로부턴 약소국 인권을 짓밟은 ‘냉혹한 전범’이라는, 우파로부턴 동유럽을 소련 영향권으로 넘겨준 ‘유화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키신저의 개인적 삶도 많은 키신저학(Kissingerology) 연구자와 전기 작가들의 해부 대상이었다. 나치 치하 독일을 떠나온 유대인 소년은 자기 능력을 한껏 발휘할 제2의 조국 미국에서도 억센 독일 악센트를 떨치지 못한 경계인이었다. 2차 대전 말 고향 땅에서 보여준 나치 색출 능력, 명석함과 집요함으로 이룬 학문적 명성, 끊임없이 권력을 좇은 끝에 얻은 최고위 외교관 자리까지 그는 내면의 불안을 지적 자존심과 인정 욕구로 채웠다. 키신저는 정의와 질서 가운데 늘 질서를 선택한 보수적 현실주의자였다. 학자로서 천착한 주제도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 외교였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교묘한 외교 책략으로 40년 평화를 주도한 메테르니히와 철저한 현실정치(realpolitik) 외교로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는 키신저 외교의 롤 모델이었다. 그런 탓에 그의 외교 협상엔 과도한 비밀주의, 진실의 절반만 얘기하는 속임수, 매력과 위선을 넘나드는 음모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카멜레온 같은 처신은 그의 생존 비결이었고, 아부는 만능의 언어였다. 그의 유려한 찬사에 누구든 귀를 열었다. 대통령 앞에선 ‘매파 중의 매파’였지만 리버럴 명사들과 만나선 ‘비둘기’가 되곤 했다. 사교계 모임에도 빠지지 않았고 미녀 스타와 함께 사진 찍히길 즐겼다. 반면 약자에겐 냉혹했다. 남베트남 대통령의 평화협정 거부를 두고 “무례는 약자의 갑옷”이라고 조롱했다. 부하 직원에게 서류를 내던지고 길길이 뛰며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키신저는 퇴임 이후에도 자서전 집필과 정부 자문, 미디어 출연으로 명성을 유지했고, 기업인들을 상대로 지정학 컨설팅을 하며 상당한 재산도 모았다. 전 세계 권력과 부의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영향력을 토대로 모든 이들이 그의 의견을 묻는 현자(賢者)로서의 후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의 마키아벨리적 처세는 말년까지 변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의 한 대목은 그런 키신저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안보동맹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독일 측에 키신저는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실세인 재러드 쿠슈너를 만나라고 조언한다. 물론 쿠슈너에겐 “동맹의 불안을 이용해야 한다. 계속 안절부절못하게 하라”고 미리 얘기해 둔 터였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잔혹한 이반’ ‘이반 뇌제’로 불린 이반 4세를 칭송하곤 했다. 이반 4세는 말년에 아들을 몽둥이로 살해할 만큼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은 폭군이지만 시베리아로 영토를 넓히고 전제왕권을 확립한 러시아 최초의 차르. 스탈린은 그의 공포정치에 특히 주목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반 뇌제는 보야르(특권 귀족)를 너무 적게 죽였다. 그들을 전부 죽였어야 한다. 그랬다면 통합되고 강력한 러시아를 더 일찍 만들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대선 출마 요청에 화답하는 형식이었다. 그로선 다섯 번째 출마다. 최근 여론조사 지지도가 78.5%나 되는 상황에서 선거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71세인 그는 2020년 개헌으로 두 차례 더 6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내년 5선에 이어 2030년 6선까지 성공하면 84세까지 집권할 수 있다. 30년 가까이 권력을 유지한 ‘20세기 차르’ 스탈린을 능가하는 ‘21세기 차르’로 최장수 크렘린궁 지도자 자리를 예약한 셈이다. ▷푸틴은 안팎의 분쟁과 위기로 막강 권력을 키웠다. 소련 붕괴 이후 술통에 빠져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하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눈에 든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야심가 푸틴은 1999년 47세에 일약 제2인자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해 체첸 사태 때 대규모 공습 강행으로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과시하며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와중엔 크림반도를 병합함으로써 지지도 90%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푸틴의 정치적 입지가 커갈수록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야당 인사에 대한 구금과 암살이 판치면서 권력자와 주변 세력이 국가 재산을 훔쳐 끼리끼리 배 불리는 도둑정치가 횡행했다. 커지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푸틴은 국민의 눈을 바깥으로 돌렸다. 영토 확장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환상을 심는 전형적 독재자 수법이었다. 작년 우크라이나 침공도 자신의 종신 집권을 위한 ‘피의 꽃길’ 깔기였을 것이다. ▷푸틴은 최근 암 수술설, 초기 파킨슨병 진단설 등 건강 이상설에 시달렸다. 과거 곰과 싸우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상의를 벗고 말을 타며 ‘마초 카리스마’를 뽐낸 것과 대조적이다. 푸틴의 롤 모델은 표트르 대제.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도 표트르 대제의 북방전쟁에 빗대며 “빼앗는 게 아니라 되찾는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런 푸틴을 두고선 서구화 개혁을 상징하는 표트르 대제가 아닌, 잔혹과 광기를 남기고 떠난 이반 뇌제와 겹쳐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우크라이나군은 지난주 남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작지만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 치열한 교전 경계선이던 드니프로강 건너 동쪽으로 진출해 러시아군을 밀어내고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군이 거둔 가장 뚜렷한 성과이자 미국과 서방을 향해 전쟁 비관론은 섣부르다는 점을 주장할 수 있는 소중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6월 초부터 5개월 넘게 계속된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작전은 답답할 정도로 더뎠고 성과는 미미했다. 반격 작전 이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의 마을 몇 곳을 탈환했지만 전반적으로 양측 간 전선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서방의 무기 지원 지연 탓도 크다지만 ‘기대 이하를 넘어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까지 포함해 그간 잃은 모든 영토를 회복한다는 목표지만 지뢰밭과 참호, 함정, 요새로 겹겹이 쌓은 러시아군 방어선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군 총사령관까지 이런 상황을 제1차 세계대전의 교착 국면에 비유하며 “돌파구가 마련될 것 같지 않다”고 밝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제 그 반격 작전도 계절의 절벽에 다다르게 된다. 우크라이나 흑토지대가 진흙탕으로 변하는 가을 우기로 접어들고 곧이어 혹독한 겨울 추위가 다가오면 이 전쟁은 공세에서 수비로 바뀔 수밖에 없다. 드론을 이용한 양측 간 원거리 폭격은 이어지겠지만 당분간 ‘진흙장군’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선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젤렌스키도 최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초조감을 드러냈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더 큰 전쟁은 국제사회를 향한 무관심과의 싸움이다. 중동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10월 초까지 CNN방송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는 전체의 약 8%를 차지했지만 하마스의 10·7 기습공격 이후 1%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헤드라인에서 사라지면서 서방세계, 특히 미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피로감은 한층 커지는 분위기다. 서방 외교가와 싱크탱크에선 이제 우크라이나가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반격 작전의 초라한 성과야말로 실지(失地) 회복이라는 전쟁 목표를 가까운 시일 내엔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만큼 지금의 고강도 공세 전략을 접고 휴전 협상과 함께 장기 방어전 태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도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그 수단과 함께 전략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썼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미국 내 논란이 거세지고 유럽 일부 국가마저 동요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손절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기 전에 서둘러 전략 변경에 나서라는 권고다. 국가의 생존전략이 의지와 목표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스스로의 역량과 동원 가능한 외부 지원, 그리고 상대와의 엄정한 힘의 비교를 토대로 냉철한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그런 현실적 선택을 한 뒤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으로 궁극적 승리를 기약하라는 서방의 압박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쓰디쓴 약을 받아든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우리로선 남 일 같지 않다. 70여 년 전 6·25전쟁 와중에 원치 않는 휴전 협상에 직면했던 한국이기에.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평양의 전보는 나로서도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주스웨덴 북한) 대사와 내가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 극비리에 미사일 거래 협상을 진행하라는 지시였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회의원은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로 근무하던 시절인 1999년 1월 그곳 이스라엘 대사와 만나 협상을 벌인 일화를 소개했다. 평양의 지시에 따라 “우리 미사일 기술에 이란 등 중동 국가의 관심이 많다. 이스라엘이 현금 10억 달러를 주면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지 않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측은 현금 대신 물자를 제공할 뜻을 밝혔으나 북한이 끝내 현금을 고집하면서 협상은 실패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스라엘과의 협상은 이미 6, 7년 전 진행됐던 프로젝트였음을 태 의원은 몰랐던 듯하다. 이란이 북한 노동미사일을 구매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먼저 접근한 쪽은 이스라엘이었다. 협상은 1992년 10월 이스라엘 관계자의 평양 방문으로 시작됐고, 이후 이스라엘과 유대계 기업들의 10억 달러 투자와 광업 기술지원 같은 제안이 활발히 오갔다. 하지만 은밀하게 진행되던 협상은 미국이 개입하면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뉴욕타임스 1993년 6월 20일자) 그럼에도 이스라엘식 거래 구상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판매를 포기하면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 인공위성을 대신 쏴주고 매년 10억 달러어치 식량을 3년간 제공한다는 2000년 북-미 미사일 협상안의 큰 틀로 이어졌다. 태 의원이 했던 역할은 미국 측에 과거 북한과 이스라엘의 ‘10억 달러’ 거래를 상기시키려는 일종의 밑밥 깔기였던 셈이다.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던 북-미 미사일 협상이 결국 실패로 끝난 뒤에도 이스라엘은 북한의 중동 무기 판매가 자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특히 남북 간에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는가 싶으면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이 중동 이슬람 국가나 무장단체에 무기를 팔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곤 했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지칠 줄 모르는 후츠파(당돌한 대담성) 정신”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스라엘은 흔히 골리앗 국가들에 포위돼 외롭게 싸우는 다윗 국가로 묘사된다. 이스라엘은 늘 이런 지정학적 불안을 호소하며 자국 안보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월등한 재래식 전력에다 핵무기까지 보유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대국이다. 위기 때면 언제든 달려와 주는 미국도 있다. 그런 힘과 뒷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주변 세력의 위협을 감지하기 무섭게 그 싹부터 잘라버리는 예방전쟁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이스라엘이 무장세력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공격에 맥없이 당한 뒤 가자지구에 대한 본격 지상전에 들어갔다. 인도주의적 재앙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도, 이란 등 주변국이 참전하면서 중동 전역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스라엘 정부엔 통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아온 안보 신화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테러 집단에 몇 배 가혹한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을 미국조차 말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종결 협상자였던 헨리 키신저는 “정규전은 이기지 않으면 지지만, 게릴라전은 지지 않으면 이긴다”고 했다. 이 전쟁은 하마스엔 전멸을 피하며 버티는 투쟁이지만 이스라엘엔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결전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장악한다 해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평화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더 깊은 분쟁의 늪일 가능성이 크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재선의 도널드 트럼프는 영화 ‘터미네이터’ 2편의 사이보그 암살자 같을 것이다.” 대니얼 드레즈너 터프츠대 교수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2기 행정부 탄생 가능성에 전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전한 유럽 외교관의 말이다. 1편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정교한 킬러로봇이 등장한 터미네이터 2편처럼 ‘트럼프 2.0’은 한층 독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보수우파 진영의 트럼프 2기 준비는 빠르고 꼼꼼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장관이나 고위직으로 일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와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 같은 그룹들이 벌써 차기 공화당 정부의 비전과 어젠다, 정부 운영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제2의 로널드 레이건 보수혁명’을 외치며 우파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미국 사회의 전면 개조를 다짐한다. 특히 이들은 좌파 기득권층의 소굴이 됐다는 관료조직의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무너뜨리고 보수의 전사들로 채워 넣기 위해 인력 발굴과 훈련, 검증이라는 야심 찬 프로그램까지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대통령 취임 첫날 ‘행정 국가’에 대한 철거용 쇳덩이의 일격을 보게 될 것”이라고 외친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임기 말 자신의 국정기조에 반발하는 공무원들을 솎아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했던 행정명령 ‘스케줄 F’를 되살리겠다고 한다. 전례 없는 행정부 개조 계획은 트럼프 1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준다. 트럼프 자신조차 긴가민가했던 대통령 당선, 요직 인사들의 낙마와 이탈, 트럼프의 변덕에 맞선 안팎의 저항…. 그런 트럼프 1기와는 차원이 다른 정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차기 행정부엔 앤서니 파우치 박사 같은 ‘영웅’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같은 ‘어른’도 없을 것이라고 트럼프 충성파들은 공공연히 말한다.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급진적 공무원 숙청 구상이 뜻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히려 트럼프 1기 때보다 더 큰 혼란과 마비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아무리 충성심이 높아도 예측불허 인사권자의 독단을 버텨낼 인물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보수혁명은 스스로를 잡아먹는 괴물이 될 것”이란 전문가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 트럼프 2기가 불러올 충격파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특히 미국의 동맹과 우방이 트럼프의 재등장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당장 ‘프로젝트 2025’의 정책 제언서는 “비용 분담을 국방전략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며 재래식 방위에 대한 동맹국의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한국에도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은 핵 억제력 확충에 집중하고 나머지 지역 방위 책임은 동맹국들에 지우겠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은 아직 1년 넘게 남아 있다. 그 결과는 온전히 미국인의 선택에 맡겨져 있고, 국제사회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도리 없이 감당해야 할 미래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예산을 둘러싸고 초유의 하원의장 해임 사태까지 낳은 미국 정치의 분열과 갈등은 다가올 ‘트럼프 쓰나미’의 예고편일지 모른다. 더욱이 트럼프의 복귀를 바라는 독재자들의 준동, 특히 북한의 도발은 어느 때보다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제 앞가림에 바쁜 조 바이든 행정부에 동맹의 역할을 크게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앞으로 1년, 한국엔 군사적으로 더욱 자강(自强)에 힘쓰면서 외교적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 전략적 고투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2000년대 중반 북핵 6자회담이 열리던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각국 대표들이 잇단 양자 협의와 정보 수집에 분주한 와중에도 러시아 대표단만은 구경꾼처럼 유유자적했다. 러시아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러시아 측도 애써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러시아 대표 중엔 아예 넓은 휴게실에 자리 잡고 앉아 종일 TV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회담이 교착에 빠질 때면 쓱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킬 아이디어를 제시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런 러시아를 당시 미국 측 차석대표는 ‘단역배우’에 비유했다.(빅터 차 ‘불가사의한 국가’) 냉전 종식 이래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선 불쑥 나타났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엑스트라에 가까웠다. 그러던 러시아가 지축을 흔들 만큼 요란하게 한반도 무대로 깊숙이 들어왔다. 러시아 극동에서 이뤄진 김정은과 푸틴 두 독재자의 만남은 그 자체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 결과로 나올 ‘위험한 거래’에 국제사회는 벌써 긴장하고 있다. 사실 이번 만남은 푸틴이 오랫동안 준비한 기획 이벤트일 가능성이 높다. 3년 넘게 ‘코로나 자폐(自閉)’에 들어갔던 김정은 정권이 국경을 다시 열기 무섭게 국방장관을 북한 열병식에 보냈고 이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까지 끌어냈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재고가 바닥나 가는 포탄과 로켓이 절실한 형편에서 북한을 향해 식량과 에너지, 거기에 첨단 군사기술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유혹한 결과일 것이다. 1990년 한-소 수교 이래 북-러 관계는 10년간 사실상 단절됐다. 러시아는 시종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북한은 본격 핵 개발에 나섰다. 그 냉각기를 끝낸 것이 푸틴의 2000년 평양 방문이었다. 러시아 지도자로선 첫 북한 방문이었고, 김정일은 이듬해 장장 24일에 걸친 러시아 방문으로 화답했다. 푸틴의 환대에 김정일은 “흔히 동반자(partner)란 말을 쓰는데, 우리에겐 그런 용어가 필요 없다. 친구를 동반자라고 하지 않는다”며 신뢰를 나타냈다. 푸틴은 과거에도 남-북-러를 잇는 철도·가스관 연결 프로젝트나 미국·러시아가 북한 위성을 대신 쏴주는 제안 같은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주변국을 혹하게 만드는 재주를 보였다. 이번엔 김정은을 만나 위성 개발을 비롯한 전방위 군사협력을 약속하고 각종 전략무기까지 두루 보여줬다. 유엔 제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뭐든 내줄 수 있다는 듯. 그러면서 푸틴은 “우리는 무엇도 위반하지 않았고 그럴 의도도 없다. 일정한 제한이 있지만 이를 준수하면서 협의가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 앞뒤가 다른 얘기를 했다. 역풍을 부를 노골적 제재 위반은 피하면서 우회 방안을 찾겠다는 뜻일 텐데, 실컷 눈요기 쇼핑을 즐긴 김정은으로선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가적 총력전이 아닌 변방의 제한전으로 묶어두려는 푸틴으로선 북한 무기 조달도 최대한 은밀한 방식을 찾으려 할 것이다. 김정은과 푸틴은 어떻게든 지금의 국제질서를 흔들려 한다. 적어도 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복귀한다면 세계정치의 판이 바뀔 것으로 본다. 이미 트럼프는 자신이 재선됐더라면 북핵 문제는 합의됐을 것이고,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도 24시간 내 끝내겠다고 장담한 터. 두 평화 교란자로선 기대를 걸 만하다. 앞으로 미국 대선까지 400여 일, 두 난봉꾼의 칼춤은 더욱 현란하고 교묘해질 것이다. 국제사회가 뾰족한 대책을 찾긴 쉽지 않다. 하지만 북-러가 아무리 은밀히 거래해도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발뺌 못 할 결정적 증거(스모킹건)를 찾아내 검은 거래를 틀어막는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국제공조를 단단히 다지면서.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제길, 하필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입니다.(Damn it, I happen to love this country.)”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원자폭탄 개발의 주역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거 좌익 활동 전력 때문에 비공개 청문회에 불려가 자신의 삶 전부가 발가벗겨진 오펜하이머에게 아인슈타인이 “자네는 자넬 사랑하지 않는 여인(미국 정부)을 쫓고 있네”라며 이제 미련을 버리라고 충고하자 한 말이다. 사실 이 장면은 외교관 출신으로 동갑내기 친구였던 조지 케넌이 훗날 오펜하이머 추도식에서 회고한 둘의 대화 내용을 아인슈타인의 당시 의견과 함께 엮어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런 수모를 당하느니 외국 대학으로 갈 생각은 없느냐고 묻는 케넌에게 오펜하이머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케넌은 8000단어의 ‘긴 전문’과 익명의 ‘X 논문’으로 대소련 봉쇄정책을 기초한 인물. 한때 미국 외교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자신이 주창한 봉쇄정책이 외교를 배제하고 군사 일변도로 흐르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몽상가”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정책 결정 라인에서 밀려났다. 오펜하이머는 그런 그를 위해 프린스턴고등연구소에 안식처를 마련해줬다. 케넌은 반유대주의적 편견을 가진 앵글로색슨계였지만 유대계인 오펜하이머와는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은 냉전 초기 핵무기 정보 공유와 국제적 통제, 수소폭탄 개발 반대, 그리고 20년 뒤에나 시동을 거는 핵군비통제까지 거의 모든 생각에 공감했다. 그런 케넌도 뛰어난 전략가로서 짧은 각광을 받은 뒤엔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뜰 때까지 긴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 케넌은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지 않는다. 수많은 과학자와 군인, 정치인이 나오는 터라 케넌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플롯은 ‘유대인 대 유대인’의 대결 구도로 짜여 있다. 원폭이 초래한 비극을 보고 그 1000배 위력의 수폭 개발에 반대하는 오펜하이머의 대척점엔 유대인 보수주의자 루이스 스트로스가 있다. 이 둘의 뒤편에서 오펜하이머를 동정하는 아인슈타인도, 수폭 개발에 매달리는 에드워드 텔러도 모두 유대인이다. 사실 원폭 개발 자체가 ‘유대인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유수의 물리학자 중 유대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데다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 나온 유대인 과학자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시작된 것이 맨해튼 프로젝트다. 오펜하이머를 파멸로 이끈 스트로스도 한때 유대계 물리학자의 연구를 지원한 후원자였다. 영화는 이런 유대인 간 대결을 통해 과학과 정치의 충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오펜하이머는 핵폭발이 세계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거의 0(near zero)’임에도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 그런 그에게 대통령은 소련이 언제쯤 원폭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는 ‘모른다’는 대답에 “나는 안다. 결코 못 만든다”고 자신하고, 얼마 뒤 소련이 원폭을 개발하자 내부 간첩부터 의심하는 정부 실력자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으로 오펜하이머를 몰아넣는다. 놀런 감독이 각각 핵분열(fission·원폭)과 핵융합(fusion·수폭)이란 이름을 붙여 컬러와 흑백을 교차시킨 것은 시간대를 오가는 혼란스러운 극 전개에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기술적 장치로 보인다. 한편으로 컬러와 흑백의 대비는 지식인과 권력자 간의 격렬한 부딪침으로도 다가온다. 인공지능(AI) 무한경쟁과 기후변화 위기의 시대, 핵폭탄을 둘러싼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