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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은 7일부터 3일동안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3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됐던 대동공장 양곡창고를 활용한 이색 영화제를 열었다. 제1회 숲숲영화제로 이름 붙여진 이번 행사는 지역 청년기업인 ‘숲숲협동조합’이 기획하고 진행했다. 영암 양곡창고가 돌아가선 시대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물론 이곳을 닫힌 철문 건너 폐허로만 알아온 청년들이 모여 과거의 공간이 열린 예술의 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경험을 공유했다. 인근인 전남 함평 출신 관객은 “주변 공간과 영화가 조화롭고 분위기도 신선해서 좋았다”고 만족해 했다. 영암 토박이인 정서진 대표가 이끄는 조합은 올해 초 대동공장 터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청년마을 ‘달빛포레스트’를 출범시켰다. 공장 부지 내 2층 양옥집을 청년마을 본부와 외지 청년들이 머물 공간으로 꾸미고 날 좋은 여름 이곳에서 멋진 영화제를 열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대동공장 터는 정대표의 지인 소유였고, 2층 양옥집은 고모와 고모부가 살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뛰어놀았던 정 대표는 대형 스피커로 안내말씀이 전달되고 인부들이 오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했던 5월 중순 정대표를 비롯한 청년마을 구성원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영암군은 이미 30여 년이나 비어있던 낡은 양곡창고를 폐산업시설로 지정하고 공간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오래된 구조물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엔 안전위험이 우려된다는 판단이 내려진 상태였다. 서 대표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새실’에 청년마을 거점을 마련하고 환경포럼을 여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영암군이 월출산 국화축제와 맞물려 대동창고의 안전지대 일부분에서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서 대표 등이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우선 10월 인근 월출산 도갑사에서 숲숲영화제를 시작했고 7일부터 3일 동안 대동공장 창고안에서 꿈에 그리던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청년작가 생태환경 특별전시와 대동공장 사진전 등도 시작됐다.상영된 영화는 모두 폐허로 남은 공간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방치된 공간이 주민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용도를 찾으며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숲숲협동조합이 지향하는 가치를 다뤘다. 7일 상영된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가’는 전북 등지에서 건축을 통한 지역 공간 활용에 힘쓴 건축가 정기용 씨의 일생을 그렸다. 8일에는 김기성 감독의 ‘봉명주공’, 9일에는 정다운 감독의 ‘땅에 쓰는 시’ 등이 상영됐다.숲숲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청년마을 ‘달빛포레스트’는 “자연을 위한 젊음, 청년(youth for nature)”을 슬로건으로 활동한다. 정 대표는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년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영암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뜻을 같이 하는 청년들이 월출산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자연환경을 체험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 환경을 살려 나가는 공동체를 이뤄나가겠다는 목표다.서 대표를 비롯해 영암의 환경과 생태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일과 시선, 생각을 가진 다섯 명이 함께 참여해 운영하고 있다. 대를 이은 농업인이면서 새실카페를 운영하는 정 대표와 함께 건설업 전문가인 하준호 부대표, 사회복지사인 문세라 회계책임, 영암곤충박물관 부관장인 김여송 대외협력 담당, 김도성 운영선임 등이 그들이다. 모두 영암에서 나고 자란 토박들. 자신을 낳아준 고향을 살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타지 출신들이 운영하는 경우보다 강점이 많다. 일하는 사람도 큰 의미를 가지게 되고 도청과 군청등 지방정부와의 협조도 원활한 편이다. 하준호 부대표는 “태어나 보고 자란 천혜의 환경을 유지하면서 외부 청년들과 공유하고 후대에 전수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서울에서 귀향한 문세라 사회복지사는 “고향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조금 외로웠는데, 조합 멤버들을 만나 외로움에서 벗어났다”고 즐거워했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6·25전쟁 당시 중국의 참전 과정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밀문서집이 한중 학자들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기밀문건 속 한국전쟁’이라는 책으로 김일성과 마오쩌둥, 스탈린 사이의 공개 미공개 전보 등 총 540건의 문서로 구성되었다. 중국 내 6·25전쟁 권위자인 션즈화 화동사범대학 역사학과 종신교수가 편저했고 김동길 중국 북경대 역사학과 종신교수와 이강범 중앙대 명예교수 겸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이 한국어로 번역했다. 션즈화 교수는 머리말을 대신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결정’이라는 논문에서 “중국의 6·25전쟁 파병 결정은 ‘아시아혁명의 지도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잘못은 제 때에 정전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피앤에이월드, 7만2700원.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인구 5000명이 조금 넘는 경북 경주시 감포항 마을엔 16일부터 아침부터 젊은이들이 북적댔다. 내년도 청년마을 지원대상 선정을 위한 행정안전부의 첫 설명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산부족으로 지원대상을 선정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다시 예산이 배정돼 2018년부터 해마다 탄생해 온 청년마을의 ‘대가 끊겼다’는 우려를 지우고 새내기 마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행사는 2022년에 선정된 경주 청년마을인 ‘가자미마을’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마카모디’가 주관했다. 마을과 주식회사 대표인 김미나 이미나 씨는 물론이고 영덕 고흥 강진 예천 완주 등 타 지역 청년마을 ‘선배 대표님’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예비 후배님들에게 정부 지원 청년마을로 선발되는 비법을 전수했다. 김 대표는 “경주 속 숨겨진 작은 항구마을 감포라는 보석을 찾아냈다”며 차별화를 주문했다.행안부 청년마을로 지정되면 3년 동안 6억 원의 사업비가 지원된다. 이 돈으로 사무실과 숙소 등을 마련하고 타지 청년들이 찾아와 쉬고 놀며 사업과 새로운 인생을 구상할 수 있는 일을 돕게 된다. 김 대표가 이끄는 가자미마을은 외지 청년들이 가자미로 유명한 감포항 일대에서 낚시와 관광을 하고, 쉬면서 새로운 일을 구상하는 ‘워케이션’도 하고, 바다 폐기물을 함께 줍는 ‘플로깅’ 봉사도 하고, 지역 주민들과 지역살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마을의 센터이자 이번 행사가 열린 카페 ‘1925감포’는 일제강점기 감포 최초의 공중목욕탕이었던 신천탕을 리모델링해 만든 것이다. 1925는 감포항이 개항한 공식 연도. 지역 주민들과 외지 청년들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기억을 담는 목욕탕 프로젝트’를 시작해 30년 이상 방치됐던 신천탕을 멋진 주민 공유공간으로 만들어냈다.가자미마을은 지역 어르신들과 외지 청년들이 함께 힘을 모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청년마을과 다르다. 어린이집 원장, 외항어선 선주, 체리와인점 사장, 보리밥집 주인 등 지역 어르신 6명과 경주 시내에서 활동하던 청년 주식회사 ‘마카모디’는 4년 전 인구가 줄어가는 감포항 일대를 살리기 위한 주민단체 ‘함께 가는 길’을 만들었다. 어르신들은 신천탕을 사들이고 어린이집 한 층을 비워 청년들에게 무료로 제공했고 이렇게 마련한 활동 공간을 근거로 가자미마을이 탄생한 것이다.“김미나 대표 등이 2021년 행안부 청년마을에 지원했는데 사무실 공간이 없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무상으로 공간을 구해 줄 테니 들어와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했죠.”그렇게 선뜻 해원어린이집 2층을 통째로 내어준 서삼란 씨(69)는 “빈 공간이 주는 무게가 나를 덮칠 판인데 청년들이 사무실로 쓰고 왔다갔다 하니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서 씨는 1987년에 유치원을 시작해 1997년 3층 건물을 지어 어린이집을 열었다. 한 때 원아가 100여 명이 넘었지만 거주 인구가 줄면서 현재는 방과 후 학원으로 10명 정도의 원아들을 돌보고 있다.“인구가 줄어가는 항구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청년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가 청년들이 계속 살 곳은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어요.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떠난 뒤엔 ‘감포가 참 좋았다’고 기억할 수만 있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이렇게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젊은이들은 감포를 떠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김 대표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감포에 들리도록 알리는 역할을 계속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초중고 학교를 모두 경주에서 나온 토박이다. 대학에서 영상디자인학과를 전공한 뒤 대전에서 짧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4년 동안 인도 배낭여행을 떠나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국제NGO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 경주시내를 근거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람을 모아 재미와 의미를 함께 주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주식회사 ‘마카모디’는 경상도 사투리로 ‘모두 모여라’라는 뜻이다. 공동대표인 이미나 씨도 그러다 만났다. 현재 직원은 모두 10명이다.“재미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ENTP’ 형이에요. 여기저기 다니며 새로운 사람 만나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완성시키는 것에 의미를 두고요. 그래서 직원을 뽑을 때도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며 좋은 일을 해나갈 수 있는지를 봅니다.”두 대표는 2019년 자본금 200만 원으로 창업해 2020년 중기부의 로컬크리에이터 사업자로 선정됐고 재수 끝에 2022년 행안부 청년마을로 승인된 것. 공유주거 사업자로도 선정돼 감포 인근에 청년 주거 공간을 더 마련하게 된다. 이 대표는 “감포항 일대가 지속가능한 마을이 되도록 앵커 조직으로서 사람들과의 연대를 키워가겠다”고 말했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행정안전부가 2018년부터 전국 39개 지역에 조성한 청년마을 대표들이 8월 29일 오후 충북 진천에 모였다. 지방을 살리고 청년들의 활동 공간을 넓히기 위해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날씨보다 더 뜨겁게 펼쳐진 활동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행사를 호스트한 사람은 진천 청년마을 ‘뤁빌리지’ 전태병 대표였다.농업법인 만나CEA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2022년 4월 진천 이월면 진광로 6000여 평에 스마트팜 복합 생활 단지인 ‘뤁빌리지’를 열었다. 수경재배의 일종인 아쿠아포닉스 공법 기술을 토대로 시스템도 개발하고 직접 샐러드 식자재도 재배해 e커버스에 납품하는 것이 본업. 수경재배에 관심이 있는 도시 사람들이 찾아와 먹고 즐기고 잠도 잘 수 있는 복합 체험 관광단지다. 스마트팜 체험농장, 시스템 연구 및 제조 공장은 물론이고 사무실과 컨퍼런스룸, 카페와 식당 등을 갖춘 이곳은 이미 진천의 ‘핫 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다.전 대표는 2008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공학도였다. 지도교수님의 스마트팜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하면서 ‘기술로 한국 농업을 멋지게 변화시키자’는 인생 꿈을 갖게 됐다. 2013년 대학 친구들과 대전에서 만나CEA를 창립했지만 농촌인 이곳 진천에 터전을 잡게 될 줄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스마트팜 시스템 개발 사업을 한다고 하니 누가 ‘너 농사는 지어봤냐’고 하더라구요. 진짜 농사는 안 해 봤잖아요.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고 다짜고자 땅을 알아봤죠. 포털을 검색하다 진천에 1000평 절대 농지를 발견했고 덜컥 계약을 했어요. 여기서 5분 거리 땅인데 거기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진천에 오게 됐지요.”돌아보면 ‘비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국 농업을 스마트하게 변화시키자’는 큰 꿈이 있었기에 작은 선택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서 직접 농사도 짓고 스마트농법도 실험했다. 그래서 생산된 채소들을 직접 유통도 해보고 홈쇼핑에 홍보도 해봤다. 이후 e커머스 배송업체들과 협업하고 직접 가공한 요리 브랜드 ‘옛홈’을 런칭하는 등 유통 분야에도 진출했다. 신선한 채소를 아침 식자재로 전국에 배송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60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니 가히 국민 건강도 크게 이바지했다.그러는 동안 직원이 27명으로 늘어났고, 직원과 가족들이 진천에 거주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먹고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2019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대 이하 리더’로 선정되는 등 언론에 홍보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이 스마트팜과 농업, 지역과 건강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게 됐다.그래서 지금의 터전을 기획했다. ‘뤁빌리지’ 내의 ‘뤁스퀘어’ 중앙에는 ‘컬티베이션 하우스’라고 불리는 복합 문화 공간을 배치했다. 지난해에는 행안부 청년마을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이곳에서 매월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빌리지 내에는 전국의 청년들이 와서 머물며 스마트팜 창업을 구상할 수 있는 주거 공간도 마련됐다. 기술로 시작한 공학도가 농업을 만나고 지역을 만나고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면서 지역에 청년들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굳이 청년마을 사업까지 안 해도 되는 거 아니냐’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젊은 직원과 가족을 위해서 이미 하고 있는 일이에요. 새롭거나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기술에서 시작해 지역 살리기와 국민 건강, 청년의 행복 등 다양한 인문학적 가치로 외연을 확장한 그는 올해부터 다시 본업인 기술에 집중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스마트팜 기술을 개발하고 전국 농촌에 개발하는 사업으로 올해 30억 원의 추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한국 농촌을 스타트하게 변화시키자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그것을 생각하고 실행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올해 6월부터 한반도에 이어지고 있는 아열대성 이상기후는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현실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미래는 지속가능한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전남 영암에서 나고 자란 다섯 명의 청년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정서진 대표가 이끄는 영암 청년마을 ‘달빛포레스트’는 2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다”라는 주제의 환경포럼을 연다. 지역과 청년의 관점에서 기후와 환경, 자연의 문제를 짚어보고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다.첫 날 오후 6시30분부터 영암군 새실마을에 있는 새실오브앰비언스에서 네 명의 청년 연사들이 주제발표를 한다. 쳥년환경단체 김민 빅웨이브 대표, 조미림 ㈜제작소 대표, 김은효 아트앤어스 대표, 이종건 ㈜오롯컴퍼니 대표 등이다. 참가자들은 다음날 조식을 함께 하고 새들과 시냇물의 화이트노이즈를 들으며 새실마을을 돌고 강진군 백운동 정원과 도갑사 계곡을 산책한다.‘달빛포레스트’는 “자연을 위한 젊음, 청년(youth for nature)”을 슬로건으로 활동하는 영암청년단체다. 2024년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 로 선정됐고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행사를 열게 된 것. 정 대표는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년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말했다.“우리가 이날 모여 나누는 이야기들은 청년들이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활동하며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청년이 그리는 지속가능한 미래와 앞으로 살아갈 세대의 역할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행사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과 참여 신청은 인스타그램(moonforest_yeongam)을 참조.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착한 조례 만들기/유상조 지음/314쪽·2만5000원·시간의 물레과도한 사교육 시장이 대한민국 사회에 초래하는 문제를 지방분권이라는 헌법상 권력분점 제도로 해결할 수 있을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인 저자는 “그렇다”고 한다. “사교육의 유지 및 폐지 여부를 법률에서 조례로 위임해 주는 것이다. 대학도 학생 선발의 자유를 주는 등 사교육이 없는 지역에서 보다 많은 학생들이 선발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면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사교육 문제 해결에 천착한 책은 아니다. 저자가 오랫동안 몸담은 입법 분야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방자치의 법률적 수단인 조례가 무엇이며 공동체 다수를 위한 좋은 조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강의하듯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서울 기온이 33도까지 오른 14일 오후 서울숲 가족마당에서는 제2회 전국 청년마을 패스티벌이 이틀간 일정의 막을 올렸다. 행정안전부가 2018년부터 조성한 전국 39개 청년마을과 경상북도 대표들이 형형색색의 부스를 열고 구경온 시민들을 맞았다. 지역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보드타기 체험을 시켜주는 등 다양한 먹거리와 놀거리, 볼거리가 시민들을 즐겁게 했다.서울 등 수도권 주민들에게 전국 청년마을을 알리고 ‘한번 찾아와 주세요’라고 홍보하는 이 행사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두 번째다. 원래 공주와 울산 등에서 성과공유 활동으로 진행되던 이 모임을 서울에서 열자고 주장한 것은 2022년부터 청년마을협의체 회장을 맡고 있는 설동원 경북 영덕 ‘뚜벅이마을’ 대표였다.“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청년들에게 지역을 체험하고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게 청년마을의 취지인데 우리끼리만 지방에서 모이는 게 너무 아쉬워서 제안을 했어요. 서울, 그 중에서도 가장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우리를 알리자는 것이지요.”그렇게 지난해 10월 서울 반포 한강공원에서 첫 패스티벌이 열렸다. 이곳에서 청년마을을 알게 된 서울 청년들이 여름과 가을에 직접 방문할 수 있도록 올해는 6월로 시기를 앞당긴 것. 두 번의 행사 모두 설 대표와 그의 대학 1년 후배 장명석 대표가 이끌고 있는 ‘메이드인피플’ 사가 기획, 준비, 운영 등을 모두 맡아서 했다. 이 회사는 영덕에서는 자연 트레킹에 특화한 ‘뚜벅이마을’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지자체와 대학, 기업 등의 행사 및 마케팅을 수행하는 문화기획사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행사를 기획하고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뭘 하면 재미있을까?’를 궁리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은 뭘 하면 재미있을까?’를 현실로 구현해내는 기획 일이 재밌더라구요. 대학생 때 학생회장을 하면서도 그런 행사들을 많이 기획하고 실행했거든요.”하지만 자신만의 적성을 찾아내 나의 일로 만드는 과정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수학보다 국어를 잘했고, 남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문과성향’이 강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문과를 가게 됐을 때 겪게 될 취업난이 걱정됐던 아버지의 권유로, 2011년 대구에 있는 국립대학의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게 됐다. 본인의 관심은 ‘인간’과 ‘구체적인 경험’에 있지만 전자공학은 ‘사물’과 ‘추상적인 이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군에 다녀오고 졸업을 앞둔 2017년 큰 전자회사 인턴사원이 되어 오리엔테이션까지 갔다가 포기했습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을 보니 다들 진심이더라구요. 저는 그 정도로 진심도 아니고, 실력도 없으니, 코딩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인턴을 취소하고 시간이 남아 산티아고 둘레길에 걸으러 갔습니다. 다시 방황을 하게 된 거죠.”방황과 고민의 결과 ‘자유’와 ‘재미’, ‘성취’와 ‘책임’ 등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충족하는 일을 찾기 위해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2017년 개인사업자로 시작하여 2019년 법인을 설립, 2020년부터 경북 의성의 청춘구 행복동 프로그램으로 처음 로컬 사업에 발을 들였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영감으로 2021년 ‘영덕 뚜벅이마을’이라는 지역 트레킹 프로그램을 착안해 행안부의 청년마을 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나의 길을 가게 되니 나와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곧 결혼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여자친구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처음 만났다. 한 지역 성당에서 단체로 온 한국인들과 동행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길잡이와 통역 등의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일행 중에 여자친구 남매가 있었던 것이다. 사업의 동반자인 장명석 대표와는 학생 캠프 프로그램에서 멘토와 멘티로 알게 되었다. 고민이 많았던 선배로서 후배들의 진로와 인생 상담을 하다 ‘우리 사업해보자’라는 도원결의에 이르렀다.“두 사람 다 저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저는 사람의 심리 같은 미시적인 걸 좋아하고 동적인 사람인데, 여자친구는 우주와 같은 거시적인 걸 좋아하고 늘 평온한 사람입니다. 또, 저는 즉흥적으로 일을 먼저 벌이는 성격이고 장명석 대표는 먼저 꼼꼼하게 따지고 계획해서 하는 스타일이거든요.”14일에도 설동원 대표는 이상민 장관 등 외빈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고, 대신 현장 운영을 챙기는 일은 장명석 대표가 도맡았다. 장 대표는 “언제 어디서든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영역을 나눠 맡아 역할분담을 한다”고 자랑했다.“둘이 똑같으면 위아래가 생기지만 둘이 다르면 위아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과 조직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게 중요하죠.” 이렇게 말하는 설 대표는 지난해 부산의 ‘이바구마을’과 함께 옷을 만드는 청년마을간 연합사업을 시작했다. ‘뚜벅이마을’의 기획력에 ‘이바구마을’의 디자인 및 유통 능력을 접목한 것. ‘뚜벅이마을’의 본업인 트레킹 프로그램은 최대한 시스템화하는 동시에 의류 사업, 행사 기획업으로 확장해 나가는 ‘비관련 다각화’를 시도하는 과정인 셈이다.설 대표와 장 대표는 후배들을 가르치는데도 관심이 많다. 지금도 모교 앞 회사 건물을 창업동아리에 공짜로 빌려주고 기회가 될 때마다 리더십과 창업 강연에 강사로도 나선다. 기획자와 경영자, 소통인, 리더이자 교육자. 적성을 일로 바꿔 삶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영락없는 ‘문과생’이었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충북 보은군 주민들에게 ‘라이더’들은 귀찮은 이방인에 불과했다. 보은과 청주를 연결하는 피반령을 비롯해 말티재, 수리티재, 대청호 둘레길 등에서 자전거나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동네를 그저 지나가는 익명의 존재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라이더들이 지역에 머물며 주민들과 친분도 쌓고, 소비도 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라이더들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5년 전 고향인 회인면에 정착한 이경수 씨가 아이디어를 내자 친구 김한솔 씨가 맞장구를 쳤다. 2017년부터 대전에서 이씨와 함께 문화기획자로 함께 교류해온 김 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바이크를 타던 라이더였다.“그래. 라이더들을 위한 축제도 열고 모토캠핑(모터사이클을 타고 와서 캠핑을 즐기는 야외활동)도 열자. 라이더들도 마을을 즐기고, 마을 주민들은 지역특산물도 팔고 ‘불멍’을 위한 장작도 팔면 좋겠다.”보은군 회인면 일대에 조성된 청년마을 ‘라이더타운회인ㅎo’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이 아이디어를 김씨가 가지고 있던 ‘삶은동네’라는 사업자를 가지고 행정안전부에 제출해 2023년 청년마을 지원사업 에 선정됐다. 라이더들을 위한 카페 ‘라이드&브루’, 자전거와 모터사이클 수리가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 ‘라이더유치원’을 열었다. 청년들이 2박 3일 동안 지역살이를 하며 마을과 라이더문화를 함께 경험하는 ‘금토일캠프’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학교 운동장과 마을 광장을 임대해 지난해 10월 제1회 휠러스 페스티벌을 열었고, 올해는 6월 1일과 2일 1박 2일간 두 번째 축제를 열었다. 행사 협력기관도 지난해 4곳에서 올해 10곳으로 늘었다.페스티벌 첫 날인 1일 현지에서 만난 두 대표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두 번째 해보는 행사라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 자전거대회와 성인 자전거대회에는 전국에서 각각 130팀, 330팀이 참가신청을 했다. 특히 아이들 자전거대회는 부모님을 포함해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오는 경우가 있어 대회 관련 인원수만 약 1000여 명에 달했다. 회인중학교 운동장에는 일찍 도착한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이 텐트를 치고 바이크캠핑을 즐기고 있었다. 모토캠핑 커뮤니티 ‘개미귀신’의 김동욱 대표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와서 합법적으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인만큼 50팀 이상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주민들도 관심이 많았다. 두 대표와 함께 회인면 중앙리 거리를 오가는 동안 주민들이 “행사 잘 준비했냐” “오늘은 뭐를 하냐”며 관심을 나타냈다. 지역 부녀회, 청년회 등은 행사장 주변에 직접 식음료 부스를 열고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회인은 조선시대에 회인현이었을만큼 큰 동네. 지금도 현감이 묵던 숙소인 동헌내아와 객사 등이 남아있다. 하지만 지방 인구 감소로 한때 1만 명이 넘던 주민이 지금의 1700여명으로 줄어들며 겨우 바닥을 친 상황이다. 사직단과 향교에다 풍림정사에 천주교 공소, 일제강점기 천재시인이라 불리던 오장환시인의 기념관 등 다양한 역사와 문화 공간들이 남아있었다. 골목골목을 돌며 마을 역사를 소개하던 이 대표가 곳곳에 세워진 점판암 돌담을 가리키며 말했다.“어릴 때부터 왠지 저 돌담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내도 이곳을 방문했다가 돌담에 푹 빠져서 ‘여기 와서 살자’고 결심을 하게 됐죠.” 그리고 지금 그는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고향을 살리겠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바로 인근에 회인IC가 있고 2028년에 피반령 터널이 뚫려 청주와 이어지게 되면 교통 환경이 개선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적 유산들이 시너지를 내면 ‘아웃도어타운 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자유롭게 이동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아 모터사이클을 탔던 김 대표는 지난해 로얄 엔필드 사가 만든 ‘클래식350’을 사서 회인면 거리를 누비고 있다. “취미가 일이 되어 좋습니다. 아내가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을 반대했는데, 청년마을 사업을 하면서 다시 타는 것을 동의했어요. 이제는 일로서, 취향으로서 존중받고 있습니다.” 남편이 파트너인 아내와 함께 고향에 정착하고 이들이 또 친구와 친구의 아내를 불러들여 파트너가 되었다. 두 부부를 제외한 동료 네 명 중 두 명은 보은 주민이고, 다른 둘 역시 조만간 주민이 될 예정이다. 행안부는 회인을 공유주거 시범단지로도 지정해 청년들이 머물 숙소 건축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숙소가 늘어나면 축제를 보러 온 청년 및 라이더들이 한 달 살이를 넘어 아예 이곳에서 창업도 하는 선순환의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는 것이 두 대표의 기대다. 취미를 일로 만든 행복한 사람 김 대표는 또 다른 청년 파트너들을 불러들일 행복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마음이 아픈 두 청년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요리하기를 좋아했던 장중한 씨. 고향인 부산에서 관련 사업을 하던 중 심장에 이상 신호가 왔다. 10년 전 어머니가 귀촌해 있던 전남 고흥으로 지난해 휴양을 왔다가 포두면 신촌마을 이장이던 정지영 씨를 만났다. “모자와 문화예술 관련 활동을 함께 하면서 그의 성실함과 기획력, 사고의 유연함에 매력을 느끼게 됐습니다.” 마침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지원 사업에 응모하려던 정 이장은 장 씨를 기획팀장으로 전격 채용했다. 호남 최남단 고흥에 자리잡은 청년마을 ‘신촌꿈이룸마을’의 기획서가 탄생했고 최종 선정됐다. 정 이장의 선발 능력이 귀한 인연을 이룬 사례다.‘신촌꿈이룸마을’의 눈과 귀, 목소리를 담당하는 홍보팀장 김진우 씨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 방송일을 하던 그는 직장 상사와의 마찰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그로 인한 대인기피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전국의 청년마을 일곱 곳을 차례로 방문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마을이 바로 정 이장과 장 팀장이 막 런칭한 ‘신촌꿈이룸마을’이었다. 김 씨의 사진촬영감각과 영상편집 능력을 캐치한 정 이장이 함께 일할 것을 제의했던 것.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능력 뒤편이 있는 아픔을 알게 되었고, 활동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5월 18일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 준 장 팀장과 김 팀장은 얼굴에 건강이 넘쳐흘렀다. 표정과 말 속에는 나로호 발사장으로 유명해진 땅끝 고흥의 건강한 자연이 흠씬 묻어났다. 마복산과 비봉산, 고흥 바다에 둘러싸인 조용한 촌마을이 주는 아늑함. 자신의 재능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자기 효능감, 누군가 나의 내면을 알아보고 소통해준다는 안정감 등이 두 청년의 마음을 치유했던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소임을 주는 일. 청년마을을 이끌어가는 정 대표의 ‘인재 채용 리더십’이다. 정 대표 또한 험한 도시와 해외 생활을 뒤로 하고 2015년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11년 동안 일본에서 관광 등 서비스업종에서 일했다. 한국와 일본 도시의 빌딩, 자동차, 네온사인…. 반복되는 일상에 번아웃이 찾아왔음을 느낀 그는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일가가 있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기 시작했다. 농사작업원, 태양광 공사장 일용직, 오이상하차, 농막 수리 등 다양한 일거리를 전전하면서 지방에서도 충분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온 청년들과 마을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필요한 사람을 찾아내고 내 편으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고향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외지 청년들을 불러들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콘텐츠 기획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의 농사, 취미, 공동작업 활동 등을 사진으로 남겨 외지에 사는 가족들이 찾는 명절에 마을 사진전을 열고 사진이 담긴 앨범과 달력을 가족에게 전달했다. 앵무새 체험장, 마굿간, 서핑스쿨 등 동료 정착 주민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묶었다. 지자체의 공동체 사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마을 편백숲 쉼터 조성, 신촌꿈이룸센터 건축 등 유무형의 마을 자산을 창출했다. 신촌마을 주민들은 이런 노력을 인정해 정 대표를 고흥에서 가장 어린 이장님(2022∼2023년) 으로 만들어 주었다.행안부가 2018년부터 조성한 전국 39개 청년마을 대표 가운데 최고령인 그는 동생 조카뻘인 20, 30대 대표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멘토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외부 협력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어떤 마을의 운영진은 어머니가 저보다 어렸어요. 처음엔 이질감도 많이 느꼈지만 젊은 에너지와 사업수완에 감탄하며 한편으론 뒤지지 않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로컬 생활을 미리 경험한 삼촌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니 상담자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 관계자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나와 사업을 어떻게 잘 어필할 수 있는 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들어주어서 감사해요’ ‘주위에 선배님 같은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고흥 지역의 다른 청년단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자체와의 협력 방안을 찾아 지역적 시너지를 내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그는 고흥군의 청년 공동체 지원사업 심사에 참여한 뒤 저녁 식사 자리에 합류했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들어 운영하는 ‘관광두레’ PD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 고흥 지역사회의 중요 인물이 됐다. “어떤 것이 청년을 부르고 어떤 것이 떠나가게 하느냐”는 질문에 “사람”이라고 답했다.“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힘든 줄 모르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청년들은 아직 경험이 적을 뿐이지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로컬에서 꿈을 이루고 살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관계를 통해 전달되는 응원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저녁 식사 자리 내내 정 대표와 장 팀장, 김 팀장 등은 최근 유명한 서울대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주제로 청년 체류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지 토론을 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를 외치는 그들은 지역살이를 통한 청년들의 힐링을 넘어 정신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영적인 리더십’을 키워가는 것으로 보였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모진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20대 초반 내내 자신만의 ‘북극성’을 잃어버린 채 수많은 날들을 헤맨 청년이 있었다. 전남 땅끝 강진에서 청년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전지윤 대표. 부산에서 나고 자라는 내내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선망했고 바라던 데로 입학도 했지만, 학부 생활은 시작부터 방황의 연속이었다. 어디에서도 지지 않고 잘해 내보이겠다는 일념으로 전공 공부부터 동아리 활동, 대외 활동 등 어느 것 빠지지 않고 열심을 다했지만 그럴수록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겉보기엔 누구보다 외향적이고 활발하게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듯했지만 알 수 없는 마음이 늘 따라다녔다. 낯선 풍경밖에 없는 서울은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았고 처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생활도 생소하고 서툴기만 했다.“학업에서도 인생에서도 내 인생의 좌표를 잃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정말 주체적으로 10대를 보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토록 바라던 서울로, 대학으로 왔는데 오히려 방향을 잃은 것만 같았어요. 쉼 없이 선택하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어려웠던 때이기도 했어요. 그 시기에 나만의 ‘북극성’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강의 시간에 해외 시장 조사를 하다가 소위 어떤 시장에서든 큰손으로 유명한 중국 상인들의 취향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던 순간은 전 씨의 이후 진로를 확연하게 바꾸어 놓았다. 미술품은 그중 하나였는데 태어나서 예체능 쪽은 전혀 연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그는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 분야는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남을 수 있겠구나.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책임이 주어지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전 씨는 청담동 아트센터에서 도슨트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스펙 쌓기의 연장선으로 시작한 도슨트 활동은 전 씨에게 오히려 경쟁에서 벗어나 새롭게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자유로웠고, 때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 비교적 적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삶의 속도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 공부를 해야겠다!’ 미술사 전공 석사과정을 18학번으로 시작했다. 학사 때와는 달리 석사 과정은 즐거웠다.2020년 2월 졸업 무렵 코로나19가 번졌고, 작가가 가진 트라우마와 작품에 관해 연구하던 전 씨는 자연스럽게 인문학과 예술 작품을 매개로 한 사람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여러 제약에 갇혀버리게 된 환경. 그 안에서 예술이 그가 경험했듯 사람들에게 숨을 틔우는 한구석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치유 워크숍이라는 아이템으로 ‘넥스트 로컬’이라는 서울시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전남 강진을 처음 방문했고 2021년에는 강진에서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예술치유 지도사 전문가 양성 과정과 예술 주간을 기획, 운영했다. 그렇게 지역에서 기반을 쌓기 시작하여 2022년에는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 사업에 선정되었고 지금의 ‘어나더랜드’를 만들게 되었다. 조금은 늦지만 자신의 북극성을 찾아 차근차근 그 빛을 따라 부산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강진으로 떠났다. 그 과정에서 정부, 지자체와 협력하며 스스로 커리어를 개척해 온 케이스다.“자신만의 북극성을 찾고 있는 청년들이 강진에서 지역살이를 하며 스스로 삶의 기준을 정하고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다시금 매핑(mapping) 해보는 작업을 돕습니다. 어나더랜드의 운영진은 모두 인증 자격을 갖춘 코치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과 좌표를 찾아가는 과정을 진심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중간중간에는 강진 고유의 문화, 역사 자원들을 새롭게 풀어낸 지역 경험 콘텐츠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진은 청자의 고장이고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북쪽 ‘개성상인’만큼 유명하고 기세가 대단했던 ‘병영상인’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습니다.”2022년 강진 청년마을 어나더랜드(구 병영창작상단)가 조성된 이후 5,000여 명이 다양한 기회로 방문했고, 100여 명의 청년 창작자들이 강진에서 체류하며 지역을 새롭게 만나고 더불어 교류했다. 참가자들은 따로 또 함께 자신만의 작업을 직접 기획하고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지역과 어우러지는 동안 흐릿하게나마 자신들만의 북극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중 강진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던 친구들이나, 좀 더 이곳에 머물며 삶의 다음 단계를 고민해 보고 싶었던 친구들은 강진에 남아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진짜 프로젝트들에도 도전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강진 읍내에 있는 ‘남상객잔’이라는 숙소에 머물렀는데, 동시 거주 인원이 8명에 불과했다.‘프로그램이 끝나고 강진에서 살아보기에 진심이 된 친구들이 좀 더 이곳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들려온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공유주거 조성사업 공모사업 소식에 강진군과 함께 도전했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의 응원까지 힘입어 선정되었던 사업이 작년 한 해 내내 부지런히 추진되었다. 그리고 올해 봄, 마침내 전라병영성 바로 앞에 ‘성하객잔’이 문을 열었다. 은하수 꼬리가 지나가는 전라병영성 앞에 위치해서 ‘별 아래 객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공유 주거 공간은 연고와 상관없이 이 마을과 사랑에 빠져 좀 더 긴 호흡으로 이곳에 머물러보고자 하는 청년들이 마을과 함께 수많은 접점을 경험하고 찾아나갈 터전이기도 하다.2022년 강진과 강원 영월, 경북 영덕 등 3곳에서 시작해 강원 홍천, 충북 보은, 경북 경주, 경남 의령과 함양 등 8곳으로 확대된 공유주거 시범사업 가운데 실제 건물이 준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준공식에 참석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공유주거 공간이 단순한 청년 주거 공간을 넘어 창업 등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주민과의 상생과 교류의 장이자 젊은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어나더랜드에 대한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3년차가 되는 올해로 끝나게 돼 전 대표는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일부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거나 타깃을 바꾸어 제안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전 대표는 “어나더랜드는 지지 기반의 연결감으로 청년기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곳입니다. 독립된 성인기로 이행하는 시기인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어나더랜드를 꼭 찾아주세요!”라고 말했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5월 5일 일요일 어린이날 정오 경남 함양군 삼휴마을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의 어버이날 잔치가 열렸다. 전체 25가구의 작은 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마을주민 2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엔 특별한 손님이 함께했다. 손녀뻘 되는 ‘숲속언니들’ 농업회사법인 박세원 대표(29) 등 직원 4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2022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함양군 수동면, 병곡면 등 4개의 마을에서 활동했지만 ‘마을의 일원’으로서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을 이장님은 이참에 “어르신들게 사업을 소개해보라”고 기회를 줬다.“저희는 도시 청년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로컬, 음식, 휴식을 경험하도록 돕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은 지역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로컬푸드와 식문화를 알아가고, 진정한 쉼을 찾아가죠. 앞으로 많은 청년이 마을에 방문해 하루에서 사흘 정도 머물 예정이에요. 인사도 잘 받아주시고 손녀처럼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박 대표가 이끄는 ‘숲속언니들’은 함양 할머니들의 음식 레시피를 활용한 지역살이로 출범했다. 이후 함양 삼휴마을 단양댁 할머니, 진해댁 할머니, 도천댁 할머니, 대천댁 할머니의 대대로 물려받은 레시피를 전수받아 향토 음식 만들기 교육이나 팝업식당 운영, 밀키트 기획 및 배송 등의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시켰다. 2년 동안 할머니와 청년 여성들이 협업한 결과 향토 음식 사업만으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결국 3년차인 올해 도시 청년들의 지역살이 프로그램으로 사업의 큰 방향을 다시 돌렸다. 군에서 빌려 쓰던 읍내 사무실을 정리하고 삼휴마을 내에 새 사무실과 도시 청년을 위한 숙소를 마련했다. 손실댁 할머니와 진해댁 할머니가 개인 사정으로 빈집이 된 자신들의 집 한 채씩을 저렴한 세로 내주었다. 사무실과 텃밭을 손보고 숙소를 리모델링해 5월 15일 부처님오신날을 시작으로 손님맞이를 시작했다.‘숲속언니들’은 지역살이로 식사를 뜻하는 먹(食)과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의 합성어인 ‘먹(食)케이션’을 내세웠다. 휴가지에서 로컬, 음식, 휴식을 경험할 수 있는 시즌별 프로그램 ‘먹케이션 - 봄 이야기’는 5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운영된다. 1인당 하루 8만 원의 숙박비이며 현재 6월까지 총 50여 명이 SNS 등을 보고 예약했다.방문객은 숙소와 함께 함양 할매 레시피로 만든 요리와 직접 키우고 수확한 제철 식재료로 가득 찬 아침 식사를 제공 받았다. 그 외 다양한 유료 프로그램들도 시골살이의 맛을 느끼게 해줬다. 할머니가 가꾸는 텃밭에서 제철 채소 ‘서리’하기, 할머니댁에서 요가 배우기, 시골 마을 풍경 그리기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을 신청해 즐겼다.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 조모 씨는 “숙소도 너무 좋고, 푹 쉬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킬포(킬링포인트)가 많아서 뭐가 제일 좋았는지 쓰기도 어렵네요! 고마워, 할매 먹케이션이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함양 지역 향토 음식뿐만 아니라 로컬, 휴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확장시켰습니다. 방문하는 분들은 바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마을과 어르신들은 고령화로 비어있는 집들을 활용하면서 도시 청년들과 소통할 기회를 갖게 되는 거지요.” (박 대표)‘숲속언니들’이라는 회사 이름처럼 박 대표가 이끄는 사업의 참여자들은 모두 여성이다. 4명의 회사 직원도, 여기에 참여하는 함양 어르신들도, 지역살이 체험 대상자도 49세 이하 여성들로 제한된다. 박 대표가 이 길로 뛰어든 것도 전통장류기능보유자인 어머니 김청희 씨의 힘이 컸다. 창원에서 태어나 문화콘텐츠학과를 전공한 박 대표는 2020년 함양에 사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전통장류를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것부터 함께 사업을 키워나갔다.“할머니들과 어머니, 그리고 손녀이자 딸뻘인 청년들이 서로 협업하며 지역을 살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1인 가구 시대에 3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경험이기도 하구요.”무엇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할머니들의 도시 손녀 손자들이 고마워한다. 홍보담당인 김승현 씨는 “사업을 홍보하는 SNS에 단양댁 할머니와 함께 하는 사진과 글을 올렸더니 타지에 사는 친손녀가 ‘손주들이 해야 할 일인데 대신 함께 해주셔서 고마워요’라는 댓글을 달았을 때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그들의 사무실 로비엔 책이 가득했다. 2014년부터 만 10년 동안 해 온 지방 도시 재생사업의 순간들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 벌써 15권이 넘는다. 박은진 공유를위한창조 대표는 “2019년 회사를 부산에서 거제로 옮길 당시를 기록한 ‘그냥 살아보자, 조그만 바닷가 동네에서’가 가장 아끼는 기록”이라고 소개했다.박 대표와 박정일 본부장 등은 당시 옥포대우조선소(현 한화오션)의 배후 주거지가 있는 경남 거제 장승포 1구 골목에 지금의 사무실을 냈다. 조선소가 경영 위기를 겪는 사이 마을과 골목 상권이 타격을 받았고 사람들이 떠나 거리에 차와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2층짜리 단독주택 건물을 매입해 청년들이 머물며 일도 하고 쉴 수도 있는 ‘아웃도어아일랜드’를 열었다. ‘outdoor’의 순우리말을 찾아 ‘밗’이라는 건물 이름도 지었다. 도시의 청년들이 찾아와 쉬고 놀고 일할 수 있는 공간. 지금까지 200여 명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지역살이와 워케이션을 체험하고 돌아갔다.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사연을 글과 사진으로 받아 또 여러 권의 책을 지었다.“우리는 과정 중심적으로 일합니다. 이 일을 왜 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바로바로 기록합니다. 거제를 경험하고 간 청년들에게도 멋진 인생 기록이 되겠죠?” 이렇게 말하는 손유진 프로젝트 팀장을 합해 거제에 상주하는 직원은 모두 7명이다. 2021년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로 지정되면서 해양수산부와 거제시의 사업도 이어나가게 되었다. 인근에 공간 세 곳을 더 임대, 매입하여 ‘여가’와 ‘거가’ 등의 순우리말 이름으로 숙소와 식당, 공방과 회의공간 등을 추가로 마련했다. 청년들이 거제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놀고 사색하고 회의하고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골목 자체를 바꿔나가고 있는 셈이다. 밀양에 직원 11명을 따로 두고 폐교된 밀양대학교 재생사업도 진행하고 있다.장승포의 공동화는 대한민국 지방 소멸의 생생한 사례다. 한 때 5만에 달했던 인구는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5000명 이하로 줄었다. 젊은 조선인들이 떠나면서 인구 고령화가 심화됐다. 공동화 현상으로 집과 상가가 남아돌았다. 1년 이상 빈집이 전체의 30%에 육박했다.‘이곳에 청년들을 오게 하자. 캠핑과 낚시를 하고 사색과 힐링을 하며 지역살이를 체험하게 하자. 그렇게 늙고 침체된 항구도시 장승포의 골목을 살리자.’ 박 대표와 박 본부장이 부산 초량에서의 도시재생사업을 뒤로 하고 거제로 오게 된 이유다.“2008년에 대학에 입학해 도시계획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아일랜드에 살면서 커뮤니티 사업을 경험했고 한국에서 실천해보리라 결심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회사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2014년에 같은 생각을 가진 박 본부장님과 회사를 만들었어요.”박 대표는 자신 스스로를 ‘퍼스트 펭귄’이라고 말한다. 다들 주저하는 새로운 일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부딪히고 경험하며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 ‘지방소멸’과 ‘인구절벽’이라는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에 ‘청년의 로컬 라이프’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겠다고 남보다 먼저 뛰어든 셈이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 지원금 매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윤을 내는 영리사업은 아직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돈을 버는데 신경을 쓸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속도대로 천천히 생각을 펼쳐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 재생 사업의 성공적인 전형을 먼저 만들고 싶어요.”75년생인 박 본부장도 후배들과 동고동락하며 ‘퍼스트 퍼스트 펭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회사로 밀양 주재 사원 세 명이 연휴를 즐기러 내려왔는데 박 본부장은 시장에서 사온 해산물로 손수 훌륭한 저녁 만찬을 준비해 청년 사원들을 대접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외부에서 온 청년과 활동가들이 뜻을 펼 수 있도록 리더로 대우해 주는 게 지역 재생 사업 성공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큰 행정구역이 아니라 마을이나 골목 단위로 한 가지 특색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몸은 중장년이지만 마음은 청년인 도시의 시니어들이 은퇴 후 지방에 내려와 청년들과 힘을 합치는 ‘브론즈 타운’도 꿈꾼다. 이들의 꿈이 또 어떤 책으로 엮여 나올지 기대된다.동아닷컴은 연중기획으로 지방에 터를 잡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살리기에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도 좋고 이웃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간단한 사연과 연락처를 이메일(kyle@donga.com)로 보내주세요.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한국연합회 평신도실업인협회 산하 비영리법인 좋은이웃봉사회(회장 김만장)는 가정의달과 어버이날을 맞아 3일 경기서부하나센터(센터장 김성남) 교육관에서 경로 한마당을 열었다.경기서부하나센터는 과천, 광명, 부천, 시흥, 안양 등 경기서부권 5개 도시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2020년 좋은이웃봉사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상호 발전을 위한 교류협력 사업을 펼치고 있다.‘어르신 건강하세효(孝)’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북한이탈주민 독거노인과 탈북민 가족 60여 명이 자리를 같이했다. 좋은이웃봉사회 회원들은 참석자들에게 발마사지를 봉사했다. 김성남 센터장은 “봉사회는 그 이름처럼 탈북민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고 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봉사회는 매년 겨울 김장김치를 담아주시고, 5월에는 경로잔치를 열어왔다. 북한이탈주민의 집을 청소하고, 20여 명의 단원이 정착도우미로 봉사하고 있다.김만장 회장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유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 회복은 물론, 남한 땅에서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 작으나마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경기서부하나센터에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다.좋은이웃봉사회는 오는 8월 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훈련원(원장 정성용)을 방문해 현지 선교사들을 위한 발마사지 교육을 하는 등 해외선교에 나선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전국 39개 지역 ‘청년마을’ 대표들이 25, 26일 충남 아산에서 워크숍을 열고 올해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6월 14일 서울숲공원에서 ‘제2회 청년마을 페스티벌’을 열고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에게 자신들만의 다양한 경험과 콘텐츠, 서비스를 소개하고 초대장을 전한다.‘청년마을’ 사업은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전국 각 지역에서 자신만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청년들을 돕기 위해 2018년부터 시작됐다. 지역살이 탐색, 일거리 실험, 지역사회와 관계 맺기 등의 활동에 지난해 말까지 5105명이 참여해 638명이 정착하는 성과를 거뒀다. 뜻있는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수도권 국민들을 불러들여 ‘생활인구’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상황에 대응하는 교두보가 되고 있다는 게 자체 평가다.청년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내 ‘청년마을’로 선정되면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비를 받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서 자문과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행안부는 올해부터 새마을금고중앙회와 협력해 청년 활동 공간조성과 사업 자금으로 5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해마다 새로운 마을이 런칭됐지만 올해는 안전과 디지털 분야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기존 마을에 대한 지원만 이뤄진다.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26일 온양관광호텔에서 열린 ‘청년마을’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방시대를 이끌어 가는 청년 리더의 열정과 에너지가 지역소멸 위기 극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도에는 기존 마을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새로운 마을이 지원을 받아 탄생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대표들의 요청에 화답한 것이다. ‘청년마을협의체’ 회장으로 경북 영덕의 ‘뚜벅이’ 마을을 이끌고 있는 설동원 메이드인피플 대표는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동생 좀 낳아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 전국 39개 마을간 협업 비즈니스가 늘어나는 등 ‘청년마을’ 전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단일 생태계로 심화 발전되고 있는 형국이다.이날 간담회에서 강원 강릉시 ‘강릉살자’ 마을 최지백 대표와 경북 의성군 ‘나만의-성’ 마을 권기효 대표가 기업과 대학 및 Z세대와의 연계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이 장관은 정부 지원이 종료된 후에도 3년 넘게 자립해 마을을 운영 하고있는 전남 목포시 ‘괜찮아’ 마을 홍동우 대표와 충북 괴산군 ‘뭐하농’ 마을 이지현 대표 등 14개 마을 대표들에 인증현판을 수여했다. 충남 아산시 ‘DOGO온천’ 마을 최낙원 대표, 전남 고흥군 ‘신촌꿈이룸’ 마을 정지영 대표 등 24개 마을 대표들에게는 지정현판이 전달됐다. 6월 14일 페스티벌을 직접 기획 진행하는 설동원 대표는 “꼭 참석해 달라”며 티켓 두 장을 이 장관에게 선물했다. 동아닷컴은 연중 기획으로 ‘청년과 마을’ 코너를 열고 ‘청년마을’ 가족을 포함해 각 지역에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청년들의 경험과 고민, 미래 비전 등을 독자들에게 전할 예정이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유상조 국회 행정안전위윈회 수석전문위원과 윤여문 최한슬 입법조사관이 ‘2024년 지방세 이렇게 달라진다(박영사)’를 펴냈다. 국회 내에서 벌어진 지방세 개정 논의과정과 결과를 꼼꼼하게 전달하면서 지방세 제도에 대해 알린다. 법조문을 비교하고 분석한 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세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책은 아니다. 다만, 입법 관료인 저자들이 국회와 정부가 제출한 지방세 개정안을 검토하고 논의한 지난한 직의 기록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고 선언하고 주요 이슈에 ‘선보생각’이라고 하여 저자들의 개인적인 의견을 밝힌 점이 이채롭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디지털타임스는 22일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박학용(사진) 대표이사 사장을 재선임했다. 박 대표이사 사장은 문화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2018년 취임했다.신석호 전무 kyle@donga.com}
● 역사를 바꾼 100책 (EBS 독서진흥 자문위원회·EBS BOOKS)‘3000년 인류사의 전환점이 된 고전들-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사조의 전환을 일으킨 위대한 책.’ 거창한 부제에 걸맞게 분야별 대한민국의 대표 지식인들이 힘을 모아 펴낸 책.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등 10명이 참여한 EBS 독서진흥 자문위원회가 철학과 과학 문학 사회학 경제학 예술 역사 심리학 등 8개 분야에서 동서고금을 오가며 100개의 고전과 명작을 가려 뽑았다. 짧지만 함축적인 책 소개를 위해 강상진 서울대 철학과 교수 등 추가로 30명의 공동 집필진이 가세했다. 시대순으로 편집되어 작자 미상의 ‘우파니샤드’ 이후 우리 인류가 어떤 깨달음과 지혜를 축적하며 역사를 빚어 왔는지 알 수 있다. 학생과 성인을 막론하고 아직 읽지 못한 고전과 명작에 도전하기 위한 입문서로 적합하다. 수준 높은 독자라면 ‘그 책은 왜 명단에서 빠졌을까’, ‘이 책을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한 그 내용은 왜 언급되지 않았을까’하는 지적 의구심도 느낄 수 있게 한다.● 현자들의 죽음-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고미숙 지음·EBS BOOKS)고전문학 박사이자 고전평론가인 저자가 소크라테스와 장자, 마하트마 간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사리뿟따, 붓다 등 여덟 명의 동서고금 현자들에게서 죽음의 철학과 지혜를 찾아내 전한다. 인간 누구에게나 평등한 죽음, 두려움에 피하기보다 적극적인 앎을 통해 삶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안병억 지음·페이퍼로드)통신사와 방송사 기자로 근무하다 유럽에 빠져 대학교수가 되는 동안 공부한 2000년 독일 역사를 주요한 사건 순서로 풀어놓은 책. 쉬운 글쓰기에 다양한 사진과 표가 돋보인다. 1, 2차 세계대전 도발과 패전, 분단의 참화를 딛고 유럽연합의 핵심으로 떠오른 독일의 진면목을 하루 만에 섭렵할 수 있다.신석호 전무 kyle@donga.com}
“과연 우리 인간이 이 지구에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까요?”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펴낸 ‘최재천의 곤충사회(열림원, 280쪽)’ 1부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생물학자들이 가끔 하는 부질없는 내기 형식을 빌린 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온 25만년만큼을 절대 더 못 살 것이라는데 한 표를 건다. 우리는 “스스로 갈 길을 재촉하는, 스스로 자기 수명을 재촉하는, 스스로 자기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면서 사는” 어리석은 동물이기 때문이다.평생 동물세계를 연구하며 생각을 빚고 나눠온 그는 지구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로 악화되고 있는 기후변화, 벌을 비롯한 곤충이 사라져가는 지구적 위기의 근원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의한 지구적 다양성의 말살’에서 찾는다. DNA의 존재까지 알아버린 유일한 종인 이기적인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면서 산 파국적인 결과라는 것이다.최 교수는 자신이 일생을 바쳐 공부한 곤충, 동물, 자연에서 대안을 찾는다. 2부와 3부에서는 우리 인간이 수천만 년의 자연선택이라는 혹독한 검증을 거친 곤충사회, 자연의 탁월한 아이디어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자고 주장한다. ‘생태적인 전환’을 통해 다른 모든 생명과 이 지구를 공유하는 공생인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민벌레, 개미, 벌 등 동물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협력, 양심과 공정을 설파하며 인간에게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고 가르친다.2013년부터 10년 동안의 강의와 인터뷰로 만들어진 이 책은 의대를 낙방하고 동물학을 전공한 뒤 유학을 떠나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로서의 인간을 탐구하기에 이른 ‘공부 인생 회고록’으로도 읽힌다. 남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해야 1등이 될 수 있다 등등의 조언은 막 공부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교훈을 던진다.신석호 전무 kyle@donga.com}
최근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으로 남기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글감이 되는 인생의 자료를 잘 모아두어야 합니다. 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을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이 소개합니다.지난해 말 동아닷컴 디지털뉴스본부로 한 권의 특별한 ‘일대기’가 배달됐다. ‘최초는 두렵지 않다-구지은, 아버지 구자학을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책은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이 구자학 명예회장의 1주기를 맞아 펴낸 아버지의 인생 기록이다. 막내딸인 구 부회장은 서문에서 “1주기를 맞아 아버지의 기록을 찾고 정리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비로소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렸다”고 고백했다.책 속에는 LG그룹 창업주 가문에서 태어나 삼성그룹 창업주 가문의 사위가 되고, 두 그룹의 다양한 회사를 거치며 한국 경제의 부흥을 주도한 구 명예회장의 삶이 가업을 이어받은 구 회장의 애정어린 시선으로 펼쳐진다. 담백한 글과 다량의 사진으로 구성돼 단숨에 술술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자원도, 돈도, 기술도 없던 시절 아이디어와 의지만으로 맨땅을 일군” 한 기업가의 일대기는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일대기의 구성상 이 책에는 특별한 부분이 있다. 주인공의 일생을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과 교직해 만든 연표다. 서문 뒤에 붙은 네 쪽짜리 ‘구자학 타임라인 in history’은 구 명예회장이 태어난 1930년부터 별세한 2022년까지를 가로축으로 위쪽에는 개인의 일생이, 아래쪽에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 장면들이 기록됐다. “1980-럭키 대표이사 사장(개인), 1981-수출 200억 달러 돌파(역사), 1986-금성사 대표이사 사장(개인)-서울아시안게임(역사), 1999-아워홈 회장(개인)-반도체 빅딜(역사)’ 등등으로 이어지는 개인과 역사의 장단은 해방과 분단, 전쟁의 폐허 위에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큰 흐름을 묵묵히 걸어나간 한 기업가의 일생을 드러낸다.개인의 일생을 역사와 교직한 일대기의 형태를 강조한 것은 ‘내손자 3회’에서 소개한 미국의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언론인이자 지식인인 고 다치바나 다카시 역시 생전인 2013년 펴낸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2018, 바다출판사)’의 부제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삶을 기록하는 방법’이라고 달았다. 한 개인의 삶은 그가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 즉 역사와 교직될 때 더 가치가 커진다고 본 점에서 니어링과 같다.그는 언론계를 은퇴한 뒤인 2008년 일본 릿쿄대가 개설한 ‘세컨 스테이지 대학교’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시니어 학생들을 상대로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라는 강의를 진행했다. ‘자기 역사를 실제로 쓰는’ 즉, 자서전을 쓰도록 코칭하는 실무 교육이었다. 그는 교수로서의 경험과 결과물을 모아 묶은 이 책의 서문에서 강의 제목에 ‘현대사 속에서’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이제부터 써내려갈 자기 역사에서 단순히 ‘성공과정’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대가 어떠한 시대였는지를 의식하면서 자기 역사를 써보도록 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자기 역사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동시대의 구체적인 역사를 실마리로 삼아 돌이켜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사라고 할 수 있다(9페이지).”개인의 삶을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되짚어 본다는 의미도 크지만 자서전을 쉽게 쓰는 효과적인 하나의 방법론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기억은 연상 기억 방식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조그마한 실마리만 제공해도 바로 되살아나는 법이다. 기억을 되살리는 가장 좋은 실마리는 그때그때 일어났던 커다란 사회적 사건”이라고 했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자기 역사를 쓸 때 가장 먼저 요구한 작업이 ‘자기 역사 연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이 연표에는 반드시 시대배경을 별도의 틀로 만들어 기입하도록 했다.구 부회장이 이 책을 참고했는지는 모르나, 제대로 정확하게 다치바나의 지도를 따른 셈이다. 다만 구회장도 아버지의 자서전을 쓰는 과정에 좋은 일대기를 쓰기 위한 생전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하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구 회장은 서문에서 “그간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당신을 보내는 상가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이 책을 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책을 마치는 ‘감사의 글’에서는 “군더더기 없이 살고자 했던 분이라 당신 스스로 남긴 기록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분들의 증언을 들어야 했다. 어떤 일은 너무 오랜 기억이라 흐릿했고, 기억을 가진 분들이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기록될만한 삶을 살라. 그리고 그 삶을 미리미리 기록으로 남기라’는 충고가 새삼 강조되는 사례다.※ 을 방문하여 당신의 특별한 오늘을 사진과 글로 동아일보 1면 톱에 기록해보세요. 훗날 멋진 인생기록이 됩니다.myhistory@donga.com으로 본인이나 지인의 자서전과 인생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검토하여 소개해 드립니다.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최근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으로 남기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글감이 되는 인생의 자료를 잘 모아두어야 합니다. 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을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이 소개합니다. “인간 실존의 기본 구조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 갖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실존적 인간은 고독하지요. 실존적 고독은 어떠한 상호 교제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습니다. 진리 역시 그러하여 나와의 관계 속에서만이 진리인 것입니다.”1990년 봄학기 고려대 철학과 교양 선택과목인 ‘현대 철학 사상’ 강의실. 표재명 교수가 ‘실존주의’의 핵심인 개인의 고독과 진리의 주체성에 대해 역설했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로 불리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어 권위자인 그는 ‘신 앞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홀로 서 있는 존재’라는 키에르케고어의 인간관을 ‘단독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표 교수 자신도 ‘단독자’로서의 실존적 고독을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이겨냈다. 그 해 8월 약혼자와 혼인을 앞둔 작은 아들 신익 씨를 돌연사로 잃었다. 원인 규명을 위한 부검을 거절한 뒤 오랜 시간 슬픔에 빠졌지만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 은퇴 후 명예교수로 지내던 70대 초반 파킨슨씨병을 얻었으나 역시 종교적 믿음으로 극복했다. 그러다 2016년 11월 요양병원에서 갑작스러운 폐렴을 만나 작고했다. 향년 83세였다.1996년 학술 저서 ‘키에르케고어 연구’로 열암학술상을 수상하는 등 10여 권의 철학서를 펴냈지만 그의 인생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어 나온 것은 5주기인 2021년 11월이었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드림디자인)’라는 이름의 책이다. 고인이 생전에 키에그케고어를 공부하기 위해 덴마크에 갔던 경험을 모은 글, 대학신문과 잡지, 교회 등에 기고한 글들, 그를 추모하는 지인들이 쓴 글들 등을 모아 인생 연표와 함께 엮은 책이다.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에는 보통의 추모서적과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 표 교수가 45세이던 1978년 7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교수로 단신 부임하는 동안 부인 안준실 씨(2023년 작고)와 큰 아들 신중 씨(2019년 작고), 딸 신희 씨, 작은 아들 신익 씨(1990년 작고)에게 보낸 수백 통의 엽서 편지들이다. 책의 2장에는 모두 83편의 엽서 편지 내용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1978년 12월 발신된 성탄절과 새해 인사의 내용은 이렇다.“첫 사랑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철없었던 때의 꿈이, 그리고 철들면서 품었던 삶에서의 꿈이 어떻게 저렇게 변모하면서 한 사람의 삶을 이끌고 전개시켜 나간다는 생각이. 착하고 꾿꾿하고 아름다운 꿈을 오는 성탄과 새해에 품기를 바란다. 1978.12 아빠가.”40여 년 전 덴마크에서 서울로 날아온 엽서 편지가 본인 사후 5년만에 인생 기록으로 일반에 공개된 것은 며느리인 박정원 이화여대 연구교수의 힘이 컸다. 12일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박 교수는 “결혼해서 남편이 보관하고 있던 엽서 편지를 보고 오래 전 먼 곳에서 가족을 챙기려는 한 인간으로서의 시아버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엽서들 속에 들어 있던 한 가족의 삶은, 며느리로서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삶의 고단함을 겪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위안이 되어주고, 초연하고 객관적인 마음을 갖게 해주기도 했었다”고 회고했다.표 교수 작고 후 남편 신중 씨와 박 교수는 5주기에 이 엽서들로 작고 아름다운 책을 내어 기념모임을 마련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신중 씨 역시 3년 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박 교수는 시어머니와 올케 신희 씨 부부, 표 교수의 제자와 교회 지인 등의 도움으로 끝내 남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딸 신희 씨가 쓴 에필로그로 끝맺는 이 책에는 한 개인의 인생 기록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장르’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전 본인이 쓴 글과 사진, 그와 함께 했던 가족과 지인들이 쓴 글로 서술된 표 교수의 일생은 마지막 5장, ‘표재명의 삶과 저서’라는 제목의 16쪽짜리 연표로 깔끔하게 시각화된다. 남겨진 가족이 쓴 것이므로 표 교수의 삶을 함께 했던 가족의 생각도 은연중에 드러난다. 61세(1994년)를 다룬 연표 문단 중 “아들 표신중 내외의 뒤늦은 학업과 창업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은 이후 부모에게 염려의 대상이 된다”는 표현에는 시부모에 대한 박 교수의 죄송스러움이 묻어있다.태어나서 현재까지 나의 삶을 연표로 정리하는 것은 자서전을 쓰는 작업의 기본이기도 하다. 인생 연표를 어떻게 쓸 것인가.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 5회는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을 방문하여 당신의 특별한 오늘을 사진과 글로 동아일보 1면 톱에 기록해보세요. 훗날 멋진 인생기록이 됩니다.myhistory@donga.com으로 본인이나 지인의 자서전과 인생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검토하여 소개해 드립니다.신석호 부국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