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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 어떡해요?’란 말에 곧장 뛰어 들어갔죠.” 7일 오전 7시 12분경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화재 사실을 모르거나 탈출을 망설이고 있었다.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새내기 경찰관 오현준 순경(26·사진)은 곧장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7일 오전 1층 음식점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당시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사람들은 “진짜 불이 난 게 맞냐”며 대피하지 않았고, 일부 거주자들은 탈출을 망설이며 계단에 서 있었다. 오 순경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3, 4층의 여성 전용 고시텔 복도를 뛰어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실제 상황이니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외쳤다. 그는 4분 만에 고시텔 여성 22명을 모두 대피시켰고, 현장은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12월 말 경찰이 된 오 순경은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며 “위험한 일들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신속하고 든든하게 안전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골프 치는 모습을 취재한 CBS 기자가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겨 ‘과잉 대응’ 논란이 일어난 가운데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경호처 측의 강제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기자가 (휴대전화를) 빼앗겼다고 했는데, 경호관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런 강제성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당시 상황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 중이며 현재까지 입건한 대상자는 없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전화 사진이나 영상 삭제도 강요했다’는 주장에 대해 “(경호 과정에서 사법경찰관 직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임의로 요구할 수는 있다”며 “당시 경호관이 경호 구역 내 위해적 요소가 있었다고 판단해 행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앞서 9일 CBS 기자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체력단련장 골프장에서 윤 대통령이 골프 치는 현장을 포착하고 취재하던 중 경호처 직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경호처 직원들은 해당 기자에게 소지품 검사와 임의동행 등을 요청했고 거절당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기자는 지구대로 임의동행해 건조물침입죄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지구대에서 (기자에 대한) 임의동행 보고서가 본서로 들어왔는데, 그때 적용된 것이 건조물침입죄”라고 했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CBS 지부는 15일 성명을 내고 당시 기자가 금지구역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골프장 울타리 밖에서 촬영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며 경호처 직원들이 법적 권한 없이 기자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취조를 했다고 지적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 어떡해요?’란 말에 곧장 뛰어 들어갔죠.”7일 오전 7시 12분경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건물에서 불이 치솟았다. 건물 안의 주민들은 불이 난 줄 모른채 안에서 서성거렸다. 그 모습을 본 ‘새내기 경찰관’ 오현준 순경(26)은 곧장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7일 오전 1층 음식점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신고 접수 약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건물 전체에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건물 안에 있던 주민들은 “진짜 불이 난 게 맞냐”며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일부 주민들은 탈출을 망설이며 계단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오 순경이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후 3, 4층의 여성 전용 고시텔 복도를 뛰어다니며 문을 두드렸다. 그는 “실제 상황이니 빨리 밖으로 나가라”며 “이것저것 챙길 시간 없으니 옷도 최대한 빨리 걸치고 나가라”고 외쳤다. 고시텔의 구조가 복잡해 불이 커지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오 순경은 건물 내부에 진입한 지 4분 만에 여성 22명을 모두 대피시켰다. 그사이 다른 경찰관들은 경찰 통제선을 설치해 추가 피해를 막았다. 그 덕에 현장은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됐다. 오 순경은 “옆에 있었던 시민분이 저 안에 사람들 어떡하냐면서 걱정을 엄청나게 하셨다”며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생각 못 하고 일단 들어갔다”고 말했다.지난해 12월 말 경찰이 된 오 순경은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며 “위험한 일들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신속하고 든든하게 안전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은 대체적으로 평이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만 일부 수험생은 “킬러(초고난도) 문항 없이도 변별력이 있었다”, “헷갈리는 내용이 많아 어려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날 서울 종로구 경복고 수험장에서 시험을 마치고 나온 장충고 3학년 장원준 군(18)은 기자에게 “‘불수능(매우 어려운 수능)’은 아니었다”며 “저는 현역이라 조금 까다로운 문제도 있었지만 재수 이상 N수생 정도의 공부량이었다면 충분히 풀 수 있었던 난이도”라고 말했다. 중앙고 3학년 이도헌 군(18) 역시 “긴장을 많이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변 친구들도 모의고사 보듯 잘 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N수생들의 체감 난도는 더욱 낮았다. 재수생 김호은 씨(19)는 “국수영은 작년보다 확실히 쉬웠다. 특히 국어는 많이 쉬웠고 수학, 영어는 무난했던 수준”이라며 “9월 모의평가에 가까운 난이도”라고 말했다. N수생 박모 씨(20)는 “국어와 수학은 쉽게 느껴졌다”며 “평소 3등급 정도 나오는데 이번에도 비슷하게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국어, 수학, 영어가 쉬운 대신 탐구과목이 다소 까다로웠다는 평가도 있었다. 서울 용산고 3학년 신재환 군(18)은 “다른 과목들은 예측 가능한 정도의 난이도였는데 사회문화가 정말 어려웠다”며 “유형이 새로운 건 아니었지만 깊이 물어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기존 수능이 국어, 영어, 수학에 킬러 문항을 넣음으로써 변별하려고 했다면 올해 수능은 사회탐구에서 변별력을 갖춘 것 같다”며 “사탐에서 변별력을 갖추겠다고 하는 의도가 보였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우씨왕후’ 등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송재림 씨(39)가 영면에 들었다. 14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송 씨의 발인이 엄수됐다. 이날 발인은 유족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됐다. 발인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작품을 함께했던 동료와 지인들이 함께했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고인은 12일 낮 12시 반경 서울 성동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송 씨의 친구가 자택을 방문해 송 씨를 발견한 뒤 경찰에 신고했으며, 집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까지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은 없다”고 밝혔다.발인 당일까지도 연예계 동료들과 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그룹 소녀시대 멤버이자 배우 수영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고인의 사진과 함께 “오빠답게 해맑게 잘 지내야 해”라는 게시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배우 정일우 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형 거기서는 행복해야 돼. 미안해. 우리 다시 만나자”라며 고인을 추모했다.팬들은 “따뜻한 곳에서 행복만 하길 바란다”, “늘 먼발치에서 응원하던 배우님 안녕”이라는 글을 남겼다. 앞서 송 씨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송 씨는 2022년 한 인터뷰에서 “내 장례식장에선 (조문객들에게) 샴페인을 먹게 할 거다. 축제 같은 장례식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9년 영화 ‘여배우들’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무사 김제운 역을 맡으면서 주목받았다. 2014년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으며 지난달 폐막한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무대에 오르는 등 최근까지 활동을 해왔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중국인 관광객이 국가정보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9일 중국 국적의 남성 A 씨를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A 씨는 허가 없이 드론을 날려 국정원 건물 일부를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A 씨가 9일 오후 3시경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사적 제194호인 헌인릉을 드론으로 촬영하다가 인근 국정원 건물까지 함께 찍은 것으로 보고 있다. A 씨가 드론을 날린 지역은 군부대 등 보안 시설이 있어 드론 비행이 금지된 곳이다. 현행 항공안전법 제129조 등에 따르면 비행장 반경 9.3km 이내인 곳, 휴전선 인근, 서울 도심 상공 일부 등은 항공안전 및 국방 보안상의 이유로 드론 비행이 금지돼 있다. A 씨는 한국에 입국한 뒤 곧바로 차를 빌려 헌인릉으로 향했고,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드론을 띄워 무단 촬영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청사를 무단 촬영하던 A 씨를 국정원 탐지 시스템으로 적발해 경찰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A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경찰은 대공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범행 경위와 입국 후 동선 등을 조사하고 있다. 앞서 부산에서는 올해 6월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을 두 차례에 걸쳐 드론으로 불법 촬영하던 중국인 유학생 3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순찰하던 군인에게 붙잡혔는데 “호기심에 대형 항공모함을 촬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올해 고등학생인 김태훈(가명·16) 군이 온라인 도박을 시작한 건 호기심 때문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도박 광고 등을 본 뒤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직접 온라인 도박판을 찾아 나섰다. 그는 카드 도박의 일종인 ‘바카라’에 빠져 총 1억9000만 원을 쏟아부었다. 결국 경찰의 특별단속에 적발된 김 군은 올해 9월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이 1년 동안 벌인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에서 검거된 사람의 절반가량이 청소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청소년 도박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특별단속도 1년 연장했다.1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5일부터 올해 10월 31일까지 전국 시도청 사이버범죄수사대를 중심으로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19세 미만 청소년 도박사범 4715명이 검거됐다. 전체 사이버 도박사범(9971명)의 47.2%가 청소년이었던 셈이다. 경찰은 청소년 도박 중독 폐해가 커지자 지난해 단속 대상에 청소년을 포함했다. 검거된 청소년 중 17세가 1763명(38%)으로 가장 많았고, 16세(1241명), 18세(899명), 15세(560명), 14세(206명)가 뒤를 이었다. 초등학생도 9세 1명을 비롯해 12세 8명, 13세 37명이 붙잡혔다. 성별로는 남학생 4595명, 여학생 120명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청소년 검거자의 대다수가 ‘도박 행위자’였다. 성인 도박 행위자는 3820명인 반면 청소년 도박 행위자는 4672명으로 집계됐다. 사이트 운영(16명), 개발관리·도박광고(19명), 대포 물건 제공(8명) 혐의로 단속된 청소년도 있었다. 청소년들은 ‘바카라’(3227명)를 가장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카라는 카드 2장을 더한 수 끝자리가 9에 가까우면 이기는 게임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도박 금액은 총 37억 원으로, 적발된 청소년 1명이 도박에 쓴 금액은 평균 78만 원이었다. 경찰은 검거된 청소년 중 1733명을 당사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등 전문 상담 기관에 연계했다. 경찰은 “청소년 도박이 감소하지 않고 있다”며 도박 특별단속을 내년 10월 31일까지 1년 연장한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올해 고등학생인 김태훈(가명·16) 군이 온라인 도박을 시작한 건 호기심 때문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도박 광고 등을 본 뒤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직접 온라인 도박판을 찾아 나섰다. 그는 카드 도박의 일종인 ‘바카라’에 빠져 총 1억9000만 원을 쏟아부었다. 결국 경찰의 특별단속에 적발된 김 군은 올해 9월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이 1년 동안 벌인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에서 검거된 사람의 절반가량이 청소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청소년 도박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특별단속도 1년 연장했다.1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5일부터 올해 10월 31일까지 전국 시·도청 사이버범죄수사대를 중심으로 사이버 도박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19세 미만 청소년 도박사범 4715명이 검거됐다. 전체 사이버 도박사범(9971명)의 47.2%가 청소년이었던 셈이다. 경찰은 청소년 도박 중독 폐해가 커지자 지난해 단속 대상에 청소년을 포함했다. 검거된 청소년 중 17세가 1763명(38%)으로 가장 많았고, 16세(1241명), 18세(899명), 15세(560명), 14세(206명)가 뒤를 이었다. 초등학생도 9세 1명을 비롯해 12세 8명, 13세 37명이 붙잡혔다. 성별로는 남학생 4595명, 여학생 120명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청소년 검거자의 대다수가 ‘도박 행위자’였다. 성인 도박 행위자는 3820명인 반면, 청소년 도박 행위자는 4672명으로 집계됐다. 사이트 운영(16명), 개발관리·도박광고(19명), 대포 물건 제공(8명) 혐의로 단속된 청소년도 있었다.청소년들은 ‘바카라’(3227명)를 가장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카라는 카드 2장을 더한 수 끝자리가 9에 가까우면 이기는 게임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도박금액은 총 37억 원으로 적발된 청소년 1명이 도박에 쓴 금액은 평균 78만 원이었다. 경찰은 검거된 청소년 중 1733명을 당사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등 전문 상담 기관에 연계했다. 경찰은 “청소년 도박이 감소하지 않고 있다”며 도박 특별단속을 내년 10월 31일까지 1년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아빠, 살려줘!” 지난달 중국인 A 씨는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딸이 울면서 소리치는 영상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며칠 전 그의 딸은 제주 여행을 떠났다. 한창 여행 중인 줄 알았던 딸이 좁은 방에서 손발이 테이프로 묶인 채 울며 소리치는 모습을 보자 충격에 빠졌다.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자기들이 딸을 납치했다며 우리 돈으로 8억 원가량을 보내면 풀어준다고 협박했다. A 씨는 제주에 있는 중국영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영사관은 제주경찰청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멀쩡하게 관광을 즐기고 있는 A 씨의 딸을 발견했다. 중국인이 받은 영상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만든 딥페이크(인공지능 이미지 합성) 영상이었다.● AI 기술로 가짜 영상-음성 만들어 사기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자녀의 가짜 영상, 가짜 목소리를 만든 뒤 이를 이용해 부모를 협박한 뒤 금전을 요구하는 신종 사기가 국내외에서 퍼지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올 5월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30대 남성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형 나야, 막냇동생”이라고 한 뒤 사정이 급하니 돈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동생의 목소리와 똑같아 별다른 의심 없이 6000만 원을 송금한 그는 뒤늦게 사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딥보이스’라고 불리는 음성 합성 기술을 통해 동생의 목소리를 재현한 것이었다. 사기범들은 목표물의 주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합성해 가짜 음성을 만든다. 해외에서도 이런 방식의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 2월 홍콩에선 다국적기업 직원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이메일을 받고 회삿돈 약 2500만 달러(약 334억 원)를 송금했다. 갑자기 거금을 보내라는 지시에 처음엔 의심했지만 이메일에 첨부된 영상에 CFO와 자신의 동료들이 나와 있어 의심을 거뒀다. 하지만 이 역시 보이스피싱 일당이 만든 딥페이크 영상이었다.● 인스타에 올린 얼굴 사진, 범죄 악용 경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얼굴 사진, 영상, 음성 등이 사기에 악용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딥페이크 기술은 결과물이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전문가나 수사기관조차 육안만으로는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 피싱 사기에 대한 경찰의 홍보, 국민 인식 증가 등 덕분에 관련 피해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한층 정교한 딥페이크, 딥보이스 사기가 퍼지면 피해 역시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범죄에 악용되는 딥페이크는 실제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며 “시민들의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SNS에 신상 정보를 되도록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인이나 주변 사람이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 일단 전화를 끊고, 상대방의 원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그 사람이 맞는지 신원 확인을 거쳐야 한다”며 “범죄에 악용되는 사진과 영상은 대부분 SNS를 통해 얻는 만큼 계정을 비공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딥페이크 영상물에 워터마크 적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도입해 제작자를 특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서울 강남구의 한 유명 정형외과가 허위 후유장해진단서를 발급해 환자들을 끌어모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를 알고 병원을 이용한 환자들은 허위 진단서를 이용해 보험사 20여 곳에서 총 3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타냈다. 7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의료법 위반과 사기 등의 혐의로 정형외과 원장 A 씨를 비롯해 손해사정사, 환자 등 35명을 지난달 31일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7월경부터 20곳이 넘는 보험사에서 3억 원 상당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이 병원은 지난해 여름부터 환자가 줄어 폐업 위기에 몰리자 환자 유치를 맡을 ‘행정실장’을 고용했다. 행정실장이 환자를 끌어오면 병원은 진료비의 30%를 대가로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병원은 행정실장에게 총 7억8000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실장은 보험사고 발생 시 손해액·보험금을 산정하는 손해사정사를 고용한 뒤 가짜 후유장해진단서를 만들어 환자들을 모았다. 환자들은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에도 ‘장애가 인정된다’는 허위 진단서를 병원에서 받아 보험사에 제출해 돈을 받았다. 이렇게 타낸 보험금 중 일부는 병원 손해사정사에게 지급했다. 서초서 수사8팀은 병원장이 매주 1200만 원씩 행정실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한 사실 등을 파악하고 지난달 이들을 검찰에 넘겼다. 병원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퇴사한 직원(행정실장)이 혼자 임의대로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은 1조1164억 원으로 전년 대비 346억 원(3.2%) 증가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반려견을 훈련시킨다며 목줄에 매달아 벽에 부딪히게 하거나 발로 차는 등 학대 논란을 빚었던 반려견 유튜버가 경찰에 고발됐다.6일 동물권 단체 동물자유연대는 지난달 23일 반려견 행동 교정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브 채널 ‘댕쪽이상담소’ 훈련사 김모 씨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동물자유연대는 고발장에서 “(김 씨는) 훈련이라는 목적으로 줄을 심하게 치거나, 발로 차는 등의 행위를 해왔다”며 “반려견에게 직접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고 하고 이를 영상으로 제작해 송출함으로써 동물보호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16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김 씨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반려견에 대한 의뢰를 받은 후 가정을 방문해 반려견을 훈련하는 콘텐츠를 올려왔다. 최근 올린 영상에는 반려견이 사람을 물려하자 목줄을 강하게 잡아당기면서 허공에 매달리게 하거나, 발로 걷어차는 장면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축구공을 발로 차는 기술인 ‘인사이드킥’, ‘아웃사이드킥’에 빗대기도 했다.해당 영상이 퍼진 뒤 일부 누리꾼들은 ‘동물 학대’라며 김 씨를 비판했다. 그러자 김 씨는 다른 영상에서 “나의 훈련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반려견의 행복과 건강, 보호자들이 꿈꾸는 반려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도움을 드렸던 것이다. 보이는 것만으로 학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김 씨는 최근 한국애견협회로부터 반려견 지도사 자격증을 박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달 4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동물 학대에 대한 양형 기준을 신설하면서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징역 2년까지 권고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20대 무면허 여성 운전자가 대낮에 서울 강남 일대에서 7중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그는 사고 뒤 경찰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고 진술했다. 최근 수면제 등 성분의 약물을 복용한 운전자들이 잇달아 교통사고를 낸 가운데 현행법에는 단속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모차 뺑소니 뒤 7중 추돌 “신경안정제 먹었다”서울 강남경찰서는 2일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혐의로 20대 여성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3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2일 오후 1시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주택가 도로에서 4세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던 30대 어머니를 치어 경상을 입혔다. 운전자 여성은 차를 몰고 그대로 도주하려 했고, 피해자가 “이렇게 가시면 안 된다”며 쫓아가자 “지금 가봐야 한다”고 소리를 지른 뒤 그대로 차를 몰고 달아났다. 약 40분이 지난 오후 1시 42분경 이 여성이 몰던 차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나타났다. 여성은 편도 4차로 중 3개 차로를 이리저리 달리며 자동차 6대, 오토바이 1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역주행까지 했다. 경찰이 도착한 직후에도 여성은 차량에서 버티며 나오지 않았고, 40여 분에 걸친 경찰의 설득 뒤에야 차에서 내렸다. 이 사고로 9명이 경상을 입고 차량 8대가 파손됐다. 가해 여성은 경찰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해 정신이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 가능성은 확실히 배제했고, 마약 투약 여부는 간이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으나 소변 정밀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피의자 진술 등을 바탕으로 약물 복용을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여성의 약 봉투를 확보해 추후 병원 처방전과 대조한 뒤 약 성분의 정밀검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음주운전처럼 “운전 금지 세부 기준 정해야”이 여성처럼 약물을 복용한 뒤 교통사고를 내는 사례가 최근 빈번하다. 올해 7월에는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은 40대 남성이 강남구 언주역 인근과 청담사거리 인근에서 2시간 간격으로 두 차례 교통사고를 냈다.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복용 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례는 2019년 57명에서 지난해 113명으로 크게 뛰었다.제대로 된 단속 기준이나 세부 지침이 없어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교통법 등에 따르면 약물 운전을 금지하고, 적발 시 처벌하는 규정은 있지만 세부 규정이 없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은 혈중알코올농도 수치(%)에 따라 면허 정지, 취소 등 처분이 달라진다. 반면 약물 운전은 운전자가 복용한 약물 성분이나 양 등에 따른 기준이 전무하다. 또 약물 복용 후 최소 몇 시간 뒤에 운전을 할 수 있는지 등 지침도 없다. 신경안정제 등 약물 복용 사실이 오히려 감형받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2016년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졸음운전으로 앞차를 들이받아 전치 2주 경상을 입힌 뒤 도주한 택시 기사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택시 기사가 신경안정제를 복용해 사고를 적극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흥희 남서울대 글로벌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향정신성 의약품의 경우 환각, 졸림, 착각, 보행실조 등 운전에 방해가 될 만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치료용 약물이라도 과다 투여 시 운전을 금지하는 등 구체적인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정신의학, 약학, 임상의학 전문가 등이 모여 치료용 의약품 투약 후 운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천종현 인턴기자 한국외대 영미문학번역학과 졸업}
대규모 인파 사고 등 재난 상황을 가장 먼저 컨트롤해야 할 서울 지역 각 구청 재난안전상황실(상황실)이 인력 부족, 전담자 부재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용산구 상황실이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 혼자서 상황실 12시간 지켜… ‘2인 1조’ 불가능 핼러윈을 4일 앞둔 27일 취재팀이 찾아간 서울 마포구청 재난안전상황실은 문을 두드리자 근무자 1명이 나왔다. 근무 시스템을 묻자 이 근무자는 “혼자 근무하다 보니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도중 상황실 내부에서 ‘위잉’ 경고음이 울리자 근무자는 급히 들어갔다. 마포구 상황실은 총 4명의 인력이 주간, 야간을 돌며 한 번에 1명씩, 1인당 12시간 근무한다. 지난해 ‘2인 1조 형태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인력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마포구 관내에는 홍익대 거리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번화가가 있고 그만큼 사고 위험도 높다.동아일보가 입수한 서울시 자치구 24시간 재난안전상황실 인력 현황에 따르면 서울 지역 25개 구청 중 11곳(44%)은 상황실 전담 근무자가 4명 이하였다. 4명을 ‘2인 1조’로 돌리려면 한 조가 매일 12시간씩 근무해야 해서 피로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현실적으로 2인 1조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상황실 부실 운영은 이태원 참사 피해가 커진 한 원인으로 지목됐었다. 2022년 10월 29일 당시 용산구 상황실은 서울시로부터 상황전파 메시지를 받았지만 참사 장소를 확인하지 않거나 직원들에게 상황을 전달하지 않았다. 최근 법원은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의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했지만 “(상황실 대응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정종수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근무자의 피로도나 업무 연속성을 고려했을 때 2인 1조로 3교대로 운영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며 “1명이 근무할 경우 (이태원 참사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상황 파악, 관계 부서와의 소통 등을 빠르게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최소 총 6명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8월 지자체 등이 모인 회의에서 상황실 전담 인력을 최소 6명 이상 모집할 것을 제안했다. ‘2인 1조’로 구성된 조가 최소 3개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일은 힘든데 박봉, 지원자 없어 상황실 인력 부족의 원인에는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임금, 예산 부족 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구로구는 올해 7월 1일 재난안전상황실전담요원 1명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올렸지만 지원자가 없어 채용하지 못했다. 약 보름 후 다시 공고를 올려 겨우 모집할 수 있었다. 동대문구는 상황실 근무자 6명 중 2명이 계약이 끝나 현재 4명만 남았다. 6명일 때는 2인 1조로 운영했지만, 현재는 1명씩만 상황실을 지키고 있다. 상황실 근무는 유사시 빠른 판단 능력, 재난 관리 시스템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하다. 보통 24시간 순환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야근이 잦아 피로도도 높다. 하지만 구가 제시하는 급여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도봉구는 이달 18일 상황실 인력 채용 공고를 내면서 ‘주당 35시간 근무, 3교대(하루 8시간 근무), 연봉 2000만∼4000만 원’을 제시했다. 올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시간당 9860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2473만 원이다. 업무는 힘들고 예민한데 제시하는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니 지원자가 드물다. 한 구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해 상황실 전담 인력을 추가로 뽑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실 운영이 지자체마다 제각각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취재팀이 서울 각 구청 재난상황실 21곳을 살펴본 결과 전담 직원이 상주하는 곳은 13곳, 부서 사무실과 병행해 운영하는 곳은 8곳이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 관련 업무는) 별도의 공간에서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게 맞다”며 “부서 사무실 등 여건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곳에서는 모니터링이 등한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지금이라도 정부나 지자체가 안전에 적극적으로 예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김다연 인턴기자 경희대 경영학과 졸업박성배 인턴기자 중앙대 소프트웨어학부 수료}
최근 3년 간 서울대 신입생 611명이 자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퇴생의 30%는 공과대생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의대를 가려고 서울대를 자퇴하는 신입생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27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 서울대 신입생 자퇴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1학기까지 서울대 신입생 중 611명이 자퇴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1년 161명이던 신입생 자퇴생은 2022년 204명, 지난해 235명으로 2년 만에 46%(74명)나 급증했다. 올해 1학기에도 신입생 11명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1학기 기준 자퇴생이 10명을 넘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서울대의 신입생 자퇴는 9월 모의고사 등을 통해 다음 연도 입시를 가늠할 수 있는 2학기에 집중돼 왔었다.단과대별로는 공과대를 다니다 자퇴한 신입생이 187명(30.6%)으로 가장 많았다. 공대 자퇴생은 2021년 61명에서 2023년 71명으로 2년새 16.4% 증가했다. 농업생명과학대학 127명(20.8%), 자연과학대학 76명(12.4%) 등이 뒤를 이었다. 백 의원은 “정부는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이공계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어떻게 사람이 사는 아파트에 철근을 빼고 지을 수 있나.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21일 오전 10시 40분경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나들목 인근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위령탑 앞. 희생자 32명의 이름이 적힌 영정 앞에는 유족들이 피운 향이 피어올랐다. 옆에는 당시 사고로 선생님을 잃은 제자들이 보낸 국화꽃이 보였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30주기 합동위령제가 이날 오전 11시경 열렸다. 위령제는 유가족과 서울 성동구 무학여고 교직원, 학생 대표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유족들은 차례로 묵념하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무학여고 2학년 학생회장 김민윤 양(17)이 추모 시로 ‘가신 이에게’를 낭독하자 현장에선 울음이 터졌다. 사고로 딸을 잃은 한 유족은 김 양을 껴안고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최근 문제가 된 ‘아파트 부실 시공’을 거론하며 바뀐 것이 없다고 한탄했다. 성수대교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경 무너졌다. 다리 상부가 무너지며 당시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 8명을 포함해 시민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당시 이원종 서울시장은 사고 발생 7시간 만에 경질됐고 동아건설의 부실 시공과 정부의 안전 관리 미비가 드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는 1997년 10월 21일 위령탑을 건립했다. 참사로 형을 떠나보낸 김학윤 씨(58)는 추모사에서 “조금만 더 기본에 충실했다면 다른 유족들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위령탑은) 역사의 장이자 교육의 장이며, 고인들의 값진 희생이 절대 헛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위령탑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토로했다. 위령탑은 강변북로 도로 사이 화단에 건립됐는데 차량 없이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막냇동생을 잃은 유가족 대표 김양수 씨(64)는 “행사가 열리거나 유족들이 올 때가 아니면 아무도 관심 없는 곳이 됐다”며 “시민들이 산책하며 ‘이런 곳이 있다’고 기억하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올 8월 초 충북 영동의 한 군부대 교회 여자 화장실에서 초소형 카메라 3대가 발견됐다. 교회는 부대 바깥에 있어 민간인들도 이용하는 곳이었다. 부대에서 자체 조사가 시작되자 군종 목사인 A 소령이 자신이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실토했다.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 촬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9월까지 이뤄진 초소형 카메라 수입이 이미 지난해 1년 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촬영을 근절하기 위해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관세청이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초소형 카메라 수입액은 401만7000달러(약 55억 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수입액(299만 달러)보다 34.3% 많은 규모다. 3년째 증가세를 이어 가고 있는 초소형 카메라 수입액은 초소형 카메라 수출입 통계를 처음으로 집계하기 시작한 2022년(242만2000달러)과 비교하면 1.7배 늘었다. 올해 해외에서 수입된 초소형 카메라 중 76%는 중국산이었다. 중국산 초소형 카메라 수입 비중은 2022년 42%에서 2023년 61%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불법 촬영 범죄 예방 등을 위해 2022년부터 초소형 특수카메라의 품목 코드를 신설하고 별도로 수입·수출 통계를 집계하고 있다. 초소형 카메라 수입이 늘면서 이를 이용한 범죄도 이어지고 있다. 올 7월 대전지법은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상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뒤 115회에 걸쳐 피해자들을 촬영한 10대 남학생에 대해 1심에서 징역 단기 1년, 장기 2년을 선고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대전 지역의 다른 상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수개월 동안 불특정 다수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이 유치원 교사를 불법 촬영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그는 3월 28일 오후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한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여성의 치마 속을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초소형 카메라 장비를 손에 낀 채 불법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을 했다가 적발된 건수는 5323건으로 하루 평균 19.4건꼴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 요청 건수는 2020년 15만6000건에서 2022년 20만6000건, 지난해 24만4000건 등으로 늘었다.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21일 오전 10시 40분경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나들목 인근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위령탑 앞. 희생자 32명의 이름이 적힌 영정 앞에는 유족들이 피운 향이 피어올랐다. 위령탑 옆에는 사고로 선생님을 잃은 제자들이 보낸 국화꽃 등이 자리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30주기 합동위령제가 이날 오전 11시경 열렸다. 위령제는 유가족과 무학여고 교직원, 학생 대표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유족들은 차례로 묵념하고 추모사를 낭독했다. 무학여고 2학년 학생회장인 김민윤 양(17)이 추모 시로 위령성월 ‘가신 이에게’를 낭독하자 현장에선 얕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고로 딸을 잃은 한 유족은 김 양을 껴안은 채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수대교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경 무너졌다. 다리 상부가 무너지며 당시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 8명을 포함해 시민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당시 동아건설의 부실시공과 정부의 안전 관리 미비가 드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는 1997년 10월 21일 위령탑을 건립했다. 참사로 형을 떠나보낸 김학윤 씨(58)는 추모사에서 “조금만 더 기본에 충실했다면 다른 유족들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위령탑은) 역사의 장이자 교육의 장이며 고인들의 값진 희생이 절대 헛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위령탑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토로했다. 위령탑은 강변북로 도로 사이 화단에 설립됐는데 차량 없이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막내 동생을 잃은 유가족 대표 김양수 씨(64)는 “행사가 열리거나 유족들이 올 때가 아니면 아무도 관심 없는 곳이 됐다”며 “시민들이 산책하며 ‘이런 곳이 있다’면서 기억하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위령제는 성동구청과 함께 진행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10년 전 20주기 위령제부터 성동구가 함께 해오면서 사죄의 마음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며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은 사고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송(문과라 죄송)합니다’ 사용 금지”라는 반응이 나오는 등 인문학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들은 “노벨 문학상 수상이 인문학 위기에서 벗어날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도 “투자 및 지원자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만 제2의 한강이 배출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교수 10명 중 5명 “인문학 위기 탈출 가능”동아일보 취재팀은 14, 15일 국어국문학과 교수 10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강 신드롬’이 ‘인문학 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들여다봤다. 취재팀과 인터뷰한 국문학자 10명 중 5명은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인문학이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소설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 송민호 홍익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학에 관심이 떨어져) 웹소설 아니면 청년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대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사회적 역할, 인문학의 중요성을 가르쳐 줄 기회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최동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책방이나 독서 모임들이 늘어나는 등 사회적으로 문학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다”며 “다른 작가들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열풍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부정적으로 응답한 국문학자들은 ‘인문학 경시’ 현상을 바로 잡아야 제2 한강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소속의 한 교수는 “지난해 (한국문학 관련) 석사 과정 대학원생 6명 전부 외국인이었고 올해도 한국인 지원자는 없었다”며 “한국 학생들을 훌륭한 연구자로 키우고 싶지만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남훈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지방은 인문학 소멸 위기가 더 심각하다”면서 “10년 전과 비교를 해보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1년에 20여 명 남짓했지만, 현재는 아예 없다”고 전했다. ● 국민 독서량도 줄어 “인문학 투자 확대해야”근본적으로 한국인의 독서량이 줄어들면서 인문학이 설 자리가 줄었다는 진단도 나왔다. 정명교 연세대 국어국문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독자들과 서양의 독자들과 독서 수준 차이가 있다”면서 “한강의 책도 (한국 독자들은) 다들 어렵다고만 하지만 외국 후기를 보거나 평론을 들어보면 서양에서는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 한 명이 1년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은 17.2권으로 2014년(21.9권)보다 21.5%나 줄어들었다. 이에 국문학자들은 “정부의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한 국문학자 10명 모두 ‘정부의 인문학 인프라 투자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매우 부족하다”(8명), “부족하다”(2명)고 답했다. 투자가 확대되지 않으면 ‘제2의 한강’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재봉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 문학관에서 1년에 500만 원 나오던 지원금조차 올해부터 중단됐다”고 토로했다. 부산 금정구에 있는 이 문학관은 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을 받아왔지만 올해부터 예산이 끊겼다. 문학관 관계자는 “지역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업을 운영했지만,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돼 중단됐다”고 말했다. 인문·사회 연구에 대한 내년 정부 예산은 더욱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의 ‘최근 10년간 국가 연구개발 예산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문학 연구자를 지원하는 ‘인문학진흥’의 2025년 예산안은 281억2100만 원으로, 올해 374억8600만 원보다 약 25% 줄었다.국문학자들은 ‘한강 신드롬’이 제2의 한강을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국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충남대에서) 필수 글쓰기 수업은 단 2학점에 불과한데, 4학점으로 늘리는 등 인문 교양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글쓰기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확대되는 자율 전공제는 실용적인 학문에만 학생이 몰리도록 한다”며 “글쓰기 소양이나 문해력을 기르기 어려운 대학교 교육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노벨상 소식 이후 사흘간 1분도 안 쉬고 계속 인쇄기를 돌리는 중입니다.” 13일 오후 3시경 경기 파주시 천광인쇄사 입구에는 이제 막 인쇄된 소설가 한강(54)의 책이 높이 150cm 넘게 쌓여 있었다. 안에서는 쉴 새 없이 인쇄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한 직원 20명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표지를 찍어내느라 바빴다. 두 대의 인쇄기는 사흘간 24시간 ‘풀가동’ 중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신드롬’이 계속되고 있다. 한강의 저서 중 양장본이나 초판본, 친필 사인본은 정가의 수십 배 가격에 중고 거래됐다. 연세대 등 한강의 모교는 축하 메시지를 냈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독서,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인쇄소는 사흘간 풀가동 ‘즐거운 비명’ 한강 저서 품귀 현상에 인쇄소들은 비상이 걸렸다. 기자가 찾아간 천광인쇄사는 이날 하루 동안 한강의 책 2만5000부를 찍었다. 인쇄소 관계자는 “이번 주 찍은 한강 책만 7만 부가 넘는다”고 했다. 한때 종이 공급이 인쇄 물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인쇄소 관계자는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하고 있다”면서도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보문고와 예스24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책들은 10일 오후 8시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후 13일 오후 2시까지 사흘간 약 53만 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책은 ‘소년이 온다’(창비) ‘채식주의자’(창비)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순으로 판매량이 많았다. 한강의 모교 연세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한강 수상은) 연세대의 자랑이며 보람인 동시에 한국을 넘어 전 인류가 공유하는 긍지와 성취”라고 밝혔다. 이어 “윤동주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연세 문학인의 감수성인 동시에 140년 가까이 이어온 연세 교육의 지표”라고 축하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안연진 씨(20)는 “(한강의 수상이) 후배로서 열심히 공부할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배모 씨(22)는 “문학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의 모교인 서울 강남구 풍문고도 교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풍문고의 자랑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시민들 독서 열풍, 중고 거래선 ‘노벨상 프리미엄’ 시민들 사이에서도 독서,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야외도서관 광화문책마당’에서는 한강의 책이 진열된 곳에 시민들이 길게 줄 섰다. 자녀를 ‘글쓰기 학원’에 보내야겠다는 부모들이 늘며 교육계도 들썩였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김모 씨(38)는 “아이에게 글쓰기를 꼭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부터 글쓰기 학원을 보내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논술학원들도 ‘한강처럼 글 쓰는 법’ 등의 문구를 내걸며 홍보에 나섰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는 ‘소년이 온다’를 30만 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원가(1만3000원)의 20배를 넘는 가격이다. ‘소년이 온다’ 저자 서명본은 40만 원에 사겠다는 글도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초판 1쇄를 20만 원에 구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한강의 부친 한승원 작가(86)가 살고 있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선 이날 주민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주민들은 한 작가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한 작가는 고마운 마음만 표현하며 참석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한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딸을 둔 아버지 역할이 너무 어렵다”며 “딸에게 (주민들이) 마을 잔치를 열려고 한다는 소식을 알리자 ‘잔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혀 왔다”고 전했다. 이에 한 작가가 딸에게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잔치를 개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못 하게 하느냐”고 답변했다고 한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장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노벨상 소식 이후 사흘간 1분도 안 쉬고 계속 인쇄기를 돌리는 중입니다.”13일 오후 3시경 경기 파주시 천광인쇄사 입구에는 이제 막 인쇄된 소설가 한강(54)의 책이 높이 150cm 넘게 쌓여 있었다. 안에서는 쉴 새 없이 인쇄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한 직원 20명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표지를 찍어내느라 바빴다. 두 대의 인쇄기는 사흘간 24시간 ‘풀가동’ 중이었다.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신드롬’이 계속되고 있다. 한강의 저서 중 양장본이나 초판본, 친필 사인본은 정가의 수십 배 가격에 중고 거래됐다. 연세대 등 한강의 모교는 축하 메시지를 냈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독서,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인쇄소는 사흘간 풀가동 ‘즐거운 비명’한강 저서 품귀 현상에 인쇄소들은 비상이 걸렸다. 기자가 찾아간 천광인쇄사는 이날 하루 동안 한강의 책 2만 부를 찍었다. 인쇄소 관계자는 “내일은 3만 부, 모레는 2만 부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한때 종이 공급이 인쇄 물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인쇄소 관계자는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하고 있다”면서도 “몸은 힘들지만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한강의 모교 연세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한강 수상은) 연세대의 자랑이며 보람인 동시에 한국을 넘어 전 인류가 공유하는 긍지와 성취”라고 밝혔다. 이어 “윤동주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연세 문학인의 감수성인 동시에 140년 가까이 이어온 연세 교육의 지표”라고 축하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안연진 씨(20)는 “(한강의 수상이) 후배로서 열심히 공부할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배모 씨(22)는 “문학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의 모교인 서울 강남구 풍문고도 교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풍문고의 자랑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시민들 독서 열풍, 중고 거래선 ‘노벨상 프리미엄’시민들 사이에서도 독서, 글쓰기 열풍이 불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야외도서관 광화문책마당’에서는 한강의 책이 진열된 곳에 시민들이 길게 줄 섰다. 자녀를 ‘글쓰기 학원’에 보내야겠다는 부모들이 늘며 교육계도 들썩였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김모 씨(38)는 “아이에게 글쓰기를 꼭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부터 글쓰기 학원을 보내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논술학원들도 ‘한강처럼 글 쓰는 법’ 등의 문구를 내걸며 홍보에 나섰다.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는 ‘소년이 온다’를 30만 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원가(1만3000원)의 20배를 넘는 가격이다. ‘소년이 온다’ 저자 서명본은 40만 원에 사겠다는 글도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초판 1쇄를 20만 원에 구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한강이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밝힌 악동뮤지션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음원차트 30위권에서 10위권으로 ‘역주행’했다.한강의 부친 한승원 작가(86)가 살고 있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선 이날 주민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주민들은 한 작가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한 작가는 고마운 마음만 표현하며 참석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한 작가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딸을 둔 아버지 역할이 너무 어렵다”며 “딸에게 (주민들이) 마을 잔치를 열려고 한다는 소식을 알리자 ‘잔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혀 왔다”고 전했다. 이에 한 작가가 딸에게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잔치를 개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못 하게 하느냐”고 답변했다고 한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장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