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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규슈 남부의 가고시마현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이 많다고 한다. 지인도 이곳에 다녀왔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쓰마번(가고시마현 일대)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가 주요 여행 테마다. 하급무사 출신으로 개혁가이자 사상가, 또 사업가였던 사카모토는 일본의 막부 체제를 끝내고 일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를 세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카모토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도쿄 미나토구 소프트뱅크그룹 본사에는 사카모토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풍운아 사카모토의 삶에 푹 빠진 지인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기리시마(霧島)에서 온천욕도 즐겼다고 했다. 에도 막부 말기인 1866년 사카모토가 부인 나가사키 료(楢崎龍)와 함께 허니문으로 다녀간 기리시마 온천은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여행담과 함께 가고시마에서 유명하다는 ‘이모조추’(고구마 소주)에 대해서도 듣다 보니 언젠가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매혹적인 스토리텔링에 이끌려 외국인도 찾는 기리시마 온천과 달리 대전 유성온천은 내국인들에게도 외면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처음 개발해 1913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유성온천은 1970년대 국내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각종 유흥시설이 난립하면서 휴양의 이미지는 퇴색됐고, 발길을 이끌 만한 스토리텔링도 부족했다. 결국 손님이 점점 줄면서 대표적인 숙박시설인 유성호텔마저 올해 3월 109년 만에 폐업하기에 이르렀다.지역 경제를 살리고 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줄 지역축제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역으로 갈수록 더 심각한 저출생, 고령화 때문이다. 1997년부터 열린 부산 ‘기장멸치축제’와 2009년부터 이어온 강원 속초시 ‘상도문마을 벚꽃 축제’는 올해 열리지 않았다. 관람객을 맞이할 마을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명맥이 끊긴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올해 8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주민의 지역축제 참가율은 2019년 대비 9.6% 줄었다. 같은 기간 외부 관광객의 1인당 소비액도 12.7% 감소했다.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지키고 알리던 주민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방 소멸은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단절시키고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애향심도 퇴색시킨다. 지역적 특색이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지자체가 과연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지역 소멸에 대응해 행정 통합이 이뤄지고 초광역권이 형성되면 지방 소도시의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최근 경북 김천시는 설문조사 결과 김천이라는 지명이 ‘김밥천국’의 줄임말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시가 주도해 ‘김천김밥축제’를 기획했다. MZ세대들이 호응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한편으론 서글프다. 지역의 존재감을 특산물도 명소도 아닌 이름(지명)으로 규정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의 제안처럼 경남 진주시에서는 주얼리(보석), 충북 청주시에서는 청주(술) 축제를 여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김 한 장 나오지 않는 내륙도시 김천에서 족보 없는 김밥을 먹는 것보다 더 값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지역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요즘 국내 지방에선 찾기 힘든 관광객들이 왜 이름도 생소한 일본 소도시를 찾아다니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2년 전 가을, 스웨덴의 연금개혁 사례를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스웨덴 연금 수급자들을 만나러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서쪽으로 50km가량 떨어진 그네스타의 노인회관 ‘파워후세트’를 찾아갔다. 경로당에 가보는 건 30여 년 만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한 탓에 초등학교를 마치면 늘 경로당에 있는 할머니에게 가서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민화투나 점당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소일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봤다. 옆에서 종일 할머니가 화투 놀이하는 걸 지켜보는 게 어린 마음엔 지겹기도 했다. 노인 복지 강국이라는 스웨덴의 경로당은 무엇이 다를까 궁금했다.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건 똑같았지만 손에 든 건 화투장이 아니라 뜨개바늘이었다. 시설도 훨씬 크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경로당 주변 1km짜리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매주 금요일에는 디지털로부터 격리된 노인들에게 모바일과 컴퓨터 교육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경로당 운영 주체였다. 파워후세트는 스웨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인 조직인 스웨덴연금수급자단체(PRO)와 스웨덴노인협회(SPF)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PRO는 사회민주당 계열의 비영리조직이고, SPF는 사민당을 제외한 연합 조직이다. 연금 수급자 단체는 경로당만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PRO는 1986년 여행사인 ‘그랜드 투어’를 설립해 회원 연령대에 맞춘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성인 평생교육 시설인 공민학교(folkh¨Ogskola)도 운영한다. 심지어 복권 사업도 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연금 수급자 단체가 5곳이나 있다. 파워후세트에서 만난 마가레타 베리달 PRO 그네스타 지부 대표(72)는 “연금 수급자 단체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우리의 목적은 노년의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라며 “노인들의 활동과 만남을 주선하고 갈등은 중재하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한다”고 설명했다. 불현듯 스웨덴 경로당에서 취재한 기억이 떠오른 건 올해 초복인 7월 15일 경북 봉화의 한 경로당에서 발생한 ‘농약 커피’ 사건의 씁쓸한 뒷맛 때문일 거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숨진 80대 여성 A 씨를 피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지난달 30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경로당에서 주로 화투 놀이를 했는데 A 씨와 다른 회원들 사이 갈등과 불화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인했다”고 했다.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는데 한국의 경로당 문화는 수십 년째 화투 놀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인 간 세대 갈등이 커지고 고독과 빈곤,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이 늘면서 사소한 갈등이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5년 7월 경북 상주시 ‘농약 사이다’, 2016년 청송군 ‘농약 소주’, 2018년 4월 포항시 ‘농약 고등어탕’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의 경로당 6만8000여 곳의 운영을 사실상 독점하는 대한노인회가 초고령사회 노인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도 노인 공동체 서비스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인지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홍콩은 51년 전인 1973년 외국인 가사관리사(헬퍼) 제도를 도입했다. 가정에 입주해 보통 주 6일 근무하는 이들에겐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월 100만 원 안팎이면 고용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 덕분에 맞벌이 부부들의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홍콩의 맞벌이 부부들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선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가 최근 홍콩 현지에서 만난 켈빈 우 씨(35)는 외국인 헬퍼를 고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로펌에 다니는 아내가 출산 후 육아를 위해 회사에 재택근무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께 신세를 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우 씨 부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지 대신 돌봐줄 사람은 아니었다. 돌봄 서비스 이용 가격이 아무리 낮다 해도 가족도 아닌 낯선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홍콩의 이런 사례를 보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오히려 자녀 양육의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장시간 근로를 정당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비용에 돌봄을 외주화할 수 있다면 회사는 직원들의 육아 참여를 장려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굳이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유연근무를 허용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는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명확했다. 홍콩에선 1990년대 중산층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고용이 10년 새 3배로 증가했다. 그 결과 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5%포인트 이상 늘었다. 하지만 2012년 1.28명이었던 홍콩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 0.88명으로 1명 밑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5명까지 추락했다. 합계출산율 세계 꼴찌인 한국(0.72명)과 큰 차이가 없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한 싱가포르(0.97명)와 대만(0.87명) 등도 지난해 역대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한국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 같다. 인구 소멸의 위기를 함께 맞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의 말처럼 영감(inspiration)이 아닌 땀(perspiration)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전히 장시간 근로가 미덕으로 여겨지고, 또한 회사 내 지위와 승진과도 연결된다. 한국도 불필요하게 너무 오래 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1901시간으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칠레 다음으로 길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9.4달러로 1위인 아일랜드(155.5달러)의 32.8% 수준에 불과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자녀를 맡기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과 비용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본질적인 지향점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처럼 근무 효율을 높이고 자녀에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구원투수’가 한국에 왔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4주간의 특화교육을 받은 뒤 다음 달 3일부터 국내 돌봄리그에 본격적으로 등판한다. 필리핀 이모들의 활약으로 합계출산율 0.6명대 초저출산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이들이 합숙한다는 장소에 눈길이 간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들은 시범사업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인근 공동 숙소에서 생활한다. 1인당 월세는 1인실 43만∼49만 원, 2인실 38만∼40만 원 수준이다. 왜 하필 서울에서도 땅값 비싼 강남일까 궁금했다. 서울시는 25개 구 가운데 강남구가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필리핀 이모들의 비싼 몸값이 떠오르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대부분 강남에서 일하게 될 분들이 아닌가. 필리핀 이모들의 시급은 최저임금(9860원)에 4대 보험료 등을 반영한 1만3700원꼴이다. 주 5일 8시간씩 일하면 월급으로 238만 원을 받는다. 지난해 기준 30대 가구의 중위소득이 509만 원인 걸 감안하면 소득의 절반가량 써야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가사와 돌봄을 부담할 시간은 없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가구가 필리핀 이모들을 독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나 ‘4세 고시’라고 불리는 영어유치원 입학 레벨테스트를 준비하거나 영유에 다니는 자녀를 둔 강남 부모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영어 교육까지 겸할 수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매력적일 수 있다. 이번 시범사업에 총 751가구가 신청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부모, 다자녀, 맞벌이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이용 가구를 선정하겠지만 그 전에 표본인 신청 가구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같은 일부 지역에 신청이 쏠리진 않았는지, 또 월평균 소득은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말이다. 필리핀 이모들이 고소득층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필리핀 이모들의 월급을 대폭 깎아야 할 수도 있다. 홍콩과 대만, 싱가포르에선 개별 가구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사적 계약 방식으로 직접 고용한다. 고용주가 이들에게 식사와 주거를 제공해야 하지만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시간당 평균 임금은 홍콩 2800원, 대만 2500원, 싱가포르 1700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지난해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을 대상으로 업무 만족도를 설문한 결과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홍콩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고용이 급증한 1990∼2000년 0∼5세 자녀를 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5%포인트 넘게 올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면 한국은 2022년 기준 20, 30대 여성의 82%가 월급이 가사 및 육아 도우미 비용의 120%(약 300만 원)에 미치지 못해 퇴직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한국도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사적 계약을 허용하고, 별도의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 인권 침해나 불법 이탈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 이모의 최저임금을 지키는 것보다 한국 젊은이들이 엄마 아빠가 되는 기회비용을 줄여주는 게 더 시급하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인생을 바꿀 기회는 누구에게나 세 번 주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 배우자로 누굴 만나느냐, 그 배우자와 어떤 아이를 낳느냐. 이 중에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배우자 한 명뿐이다. 주로 기혼 꼰대들은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그만큼 결혼 상대가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똘똘한 한 채’가 답이 돼 버린 요즘 세상에는 같은 아파트 입주민 중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지난해 8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초고가 아파트 얘기다. 이곳 입주민들은 올해 4월 결혼정보회를 결성해 첫 정기모임을 가졌다. 입주민 당사자와 자녀 등 가족을 대상으로 가입비 10만 원에 연회비 30만 원을 받고 맞선을 주선해준다고 한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반포동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입주민끼리 사돈을 맺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된다. 이곳 전용 84㎡는 올해 4월 42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요즘같이 초저출산 시대에 이곳에 사는 외동딸과 외동아들이 만난다면 어떨까. 이들이 양가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게 될 수십 년 뒤 ‘똘똘한 두 채’는 얼마가 돼 있을까.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이달 첫째 주까지 15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전셋값이 치솟는 가운데 하반기(7∼12월)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전면 개편 카드를 꺼내들면서 핵심 입지 부동산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 진입장벽이 낮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 반면 가격 회복세가 더딘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수도권 및 지방 아파트는 침체가 지속되면서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결국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로맨스를 믿고 있지만, 강남 아파트 입주민과 결혼하는 시골 청년은 가뭄에 콩 나듯 할 것 같다. 개천에 나는 용보다 드물지 않을까. 청년들의 로맨스를 파괴하고 있는 건 정부의 똘똘치 못한 정책이라고 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문재인 정부 때 가만히 있다가 벼락거지가 된 청년들은 또다시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에 ‘영끌’ 매수에 나서고 있다. 말려도 모자랄 판국에 정부는 ‘빚내서 집을 사라’며 판까지 깔아줬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올해 4∼6월 석 달간 15조 원 넘게 늘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버팀목 대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 1%대 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신생아 특례대출은 출시 5개월 만에 6조 원 가까이 신청이 몰렸다. 이런 상황에 금융당국은 대출 한도를 수천만 원씩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2단계 시행(7→9월)을 불과 엿새 앞두고 두 달 연기했다. 정부는 소상공인 연착륙을 위한 조정이었다고 해명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혼란을 자초한 실책을 반성해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
전세사기 피해자가 주택 구입 목적으로 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의 규제를 완화해 주는 조치가 1년간 연장된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정례회의에서 ‘은행업 감독규정’ 등 5개 규정의 일부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안정 지원을 위해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조치를 내년 6월 말까지 1년 연장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거주 주택을 낙찰받거나 신규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완화된 LTV·DSR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LTV는 비규제지역에 한해 60~70%에서 80%까지 완화된다. 4억 원 한도 내에서 주담대에 대한 DSR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적용하지 않는다. DSR은 연소득 대비 연간 원리금 상환액 비율로 대출액이 1억 원을 넘으면 차주당 40%로 규제되고 있다. DTI는 연소득 대비 주담대 원리금 비중을 나타내는 수치로 DSR와 달리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이 포함되지 않는다. 금융위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한 규제를 적용해왔다. 다만 전세사기 여파가 이어지고 있어 피해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이같은 지원 조치를 연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지난달 한국 증시는 국제적인 왕따로 전락했다. 글로벌 주요 증시의 상승 랠리 속에서 유독 한국만 소외됐다. 미국 나스닥지수(6.88%)는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의 ‘깜짝 실적’에 힘입어 역대 최초로 1만7000 선을 넘어섰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2.30%)는 사상 처음으로 4만 선을 돌파했다. 지난달 대만 자취안지수(3.81%)와 홍콩 항셍지수(1.78%), 일본 닛케이평균주가(0.21%) 등도 상승세를 탔지만 코스피(―2.06%)만 홀로 추락했다. 글로벌 훈풍을 거스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에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건 악재가 아니라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내놓은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맹탕’이란 비판 속에 시장의 회의론만 키웠다. 강제성이 없어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세제 인센티브가 불확실한 탓에 기업들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한국 증시를 불확실성 속에 절뚝이도록 만든 책임이 적지 않다. 지난달 K증시 홍보차 미국 뉴욕을 찾은 그는 “개인적인 욕심이나 계획은 6월 중 공매도를 일부 재개하는 것”이라고 했다가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투자 기법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민생토론회에서 “확실한 부작용 차단 조치가 구축되지 않으면 (공매도를) 재개할 뜻이 전혀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는 듯한 이 원장의 발언에 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대통령실은 “이 원장의 개인적인 희망일 뿐”이라며 ‘6월 공매도 일부 재개’ 가능성을 일축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전면 금지된 공매도 재개 시점에 대해 ‘정책 엇박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하락했다. 이 원장은 이후 수차례 해명했지만 그마저도 모호했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인적 욕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단계적으로 일부 공매도 재개가 가능한지 검토가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의 공매도 전면 금지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공매도 재개는 필요하다. 하지만 금융시장을 감독하는 수장의 발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개인적 희망’을 전제로 운을 띄울 일은 결코 아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갖는 공직자의 사견은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나 정책 변경 가능성 등과는 명확하게 구분돼야 한다. 특히나 공식 석상에서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는 사견은 삼가는 게 맞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경제 페르소나’로 불린 이 원장은 정권 초기 ‘관치’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대표적인 실세 관료로 금융권에 상생 금융을 밀어붙였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으면서도 다선 국회의원에 대한 라임 펀드의 특혜성 환매 의혹을 제기하고, 총선 과정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양문석 의원(경기 안산갑)의 새마을금고 편법 대출 의혹 검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독립기관인 금감원에 대한 신뢰는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 원장도 레임덕(lame duck)을 걱정해야 할 때다.박민우 경제부 차장 minwoo@donga.com}
“남들 금(金) 사재기할 때 뭐 하셨습니까? 11년 넘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올해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게 이런 질책이 쏟아질 것 같다. 금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022년 11월 온스당 1618.3달러였던 금 선물 가격은 이달 12일(현지 시간) 2448.8달러까지 올랐다. 1년 5개월여 만에 51% 넘게 오른 셈이다. 실제로 이 기간 각국 중앙은행들은 공격적으로 금을 사들였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1082t(역대 최대), 1037t의 금을 사들였다. 2016∼2021년 연평균 매입량(457t)의 두 배 이상을 매년 사모은 것이다. 특히 중국은 2022년 11월 이후 17개월 연속 금을 매입하고 있다. 이 기간 사들인 금만 314t에 달한다. 이런 신(新)골드러시를 한은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픈 기억 때문이다. 2010년 국회 국감에서 김중수 한은 총재는 13년 넘게 그대로인 금 보유량(39.4t)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하면서 금값이 치솟던 시점이었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했다. 이후 한은은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금 90t을 집중 매입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국감장에서 ‘금을 사랑한 총재’로 불린 김 전 총재는 ‘뒷북 투자’를 했다며 또 한 번 탈탈 털렸다. 한은의 금 투자 이후 금값이 급락하면서 약 1조2000억 원의 평가손실(―21.5%)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한은이 금 가격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국가적 손실을 입혔다”고 몰아붙였다. 김 전 총재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10년 후를 보고 고민한 것”이라고 했다. 정말 수년이 흐르고 금값이 오르자 당시 한은의 금 투자가 재평가받긴 했다. 그렇지만 그때 입은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현재 한은의 금 보유량은 104.4t으로 11년째 그대로다.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1.52%에 불과하다. 중국(2235.4t)과 일본(846.0t)은 각각 4.33%, 4.37%이고, 경제 규모가 비슷한 대만(423.6t)도 4.32%에 달한다. 이런 탓에 작년부터 금 보유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그런데도 한은 외자운용원은 작년 6월 발표한 ‘보유 금 관리 현황 및 향후 운용 방향’에서 “금 보유 확대보다는 미 달러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며 듣지 않았다. 당시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 수준으로 전 고점에 근접해 향후 상승 여력이 불확실하다던 한은의 전망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게 오래된 트라우마 탓이 아니라면 부족한 실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자산 다각화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금 보유 비중을 일정 수준까지 확대해 환율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향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와 미 대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기조 강화 가능성, 그에 따른 달러화 평가 절하까지 고려해야 한다. 뒤늦게 금 사재기 행렬에 뛰어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격 변동성이 큰 만큼 전처럼 상투를 잡으면 트라우마만 더 악화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금 투자 원칙과 방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금 가격 흐름을 좀 더 정교하게 예측하고, 전략적으로 매입 시점을 판단해야 한다. 박민우 경제부 차장 minwoo@donga.com}
카카오페이가 추진해온 미국 종합증권사 ‘시버트’에 대한 경영권 인수가 최종 무산됐다. 카카오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해외 인수합병(M&A) 계획이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19일 양 사 간 합의에 따라 시버트 지분 인수를 위한 2차 거래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20일 계약 변경사항을 공시했다. 카카오페이는 올해 4월 시버트 지분 51.0%를 두 차례에 걸쳐 약 1039억 원에 사들이기로 계약을 맺고, 5월 지분 19.9%를 취득하는 1차 거래를 마쳤다. 나머지 지분에 대한 거래는 내년 중 2차 거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었다. 카카오페이가 시버트 경영권 인수를 포기한 건 모기업 카카오에 대한 사법 리스크로 2차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주식 시세 조종 의혹으로 올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CIO)가 구속된 데 이어 김범수 창업자(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와 홍은택 당시 총괄 대표까지 같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카카오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자 시버트는 지난달 “2차 거래를 종결하기 어려운 ‘중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는 서신을 카카오페이에 보내왔다. 2차 거래를 위해서는 먼저 시버트 주주총회 승인과 미국 규제 당국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선행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카카오페이의 시버트 인수 계획이 좌초하면서 유럽 최대 차량 호출·택시 플랫폼 ‘프리나우’ 인수를 추진하는 카카오모빌리티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경영진뿐만 아니라 법인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돼 기존에 보유한 카카오뱅크의 1대 주주 지위도 위태로운 상황이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현대차그룹 금융 계열사 현대커머셜이 투자금융 시장 진출 4년 만에 자산 규모 6000억 원을 눈앞에 뒀다. 내부수익률(IRR)은 14.3%, 누적 투자수익은 1200억 원을 넘어섰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9월 말 기준 현대커머셜의 투자금융 자산은 5939억 원으로 집계됐다. 현대커머셜은 2019년 상반기(1∼6월) 투자금융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사모펀드(PEF)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기업투자를 취급하는 투자금융실을 신설했다. 당시 투자금융 자산은 30억 원 수준이었지만 전문가를 영입해 조직을 키우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4년 만에 6000억 원가량을 불렸다. 현대커머셜은 안정적 분산을 통한 수익률 11%+알파(α)를 투자 원칙으로 세웠다. 또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적극적인 글로벌 분산 투자전략을 수립했다. 투자 실적이 검증된 글로벌 운용사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해외투자 비중을 늘렸다. 국내에서 해외투자 비중이 절반을 넘는 여신전문금융사는 현대커머셜이 유일하다. 안정적인 현금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사모신용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수익률 보강과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기업인수와 성장자금 투자전략을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형 부동산 운용사(GP)와도 협업을 시작했다. 해외 유수의 자문사로부터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 전략에 대해 검증을 받으며 리스크 관리 수준도 높이고 있다. 현대커머셜 관계자는 “적극적인 글로벌 분산을 통한 차별화된 투자전략으로 시장에 다소 늦게 진입했는데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글로벌 운용사와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글로벌 공동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통제된 리스크하에서 수익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도록 투자금융 사업을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신한금융지주는 18일 신한금융의 핵심 서비스를 한곳에 모은 모바일 앱 ‘신한 슈퍼 솔(SOL)’을 선보인다. 이 앱은 신한금융의 은행·카드·증권·라이프(보험)·저축은행 등 5개 계열사 앱의 핵심 기능을 융합한 통합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출 또는 투자 금액을 입력하면 신한 계열사의 최적 상품과 금리·한도 등을 추천받아 상품 가입까지 할 수 있다. 신한금융 통합 멤버십 서비스(신한플러스)의 할인·제휴 혜택도 그대로 신한 슈퍼 솔 앱에서 받을 수 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이 법정관리로 가기 전 신속하게 자율적 회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제도를 2026년까지 3년 연장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채권단 75% 이상 동의로 일시적 유동성을 겪는 기업에 만기 연장과 자금 지원 등을 해주는 워크아웃 제도의 근거가 담긴 기촉법은 지난달 15일 5년 일몰 기한이 도래해 실효(失效)됐다. 기촉법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돼 실효와 재재정을 거쳐 6차례 운영됐다. 최근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국면에서 기촉법이 사라지면 한계기업들의 회생이 어려워져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정부·여당은 일몰 연장을 위한 재입법을 촉구해왔다.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자에 대한 재산권 침해 등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여야는 이날 극적으로 일몰 연장에 합의했다.정무위 법안소위는 기촉법 일몰 기한을 2026년 10월로 정했다. 다만 기촉법 반대 의견을 고려해 기존 발의안보다 기간은 단축하고, 기업 회생 과정에서 법원의 역할을 확대하는 개편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부대의견으로 넣었다. 기촉법 개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야 합의가 이뤄진만큼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9일 이전에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부로 이관돼 윤석열 대통령을 재가를 거쳐 이르면 연내 기촉법이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은퇴 후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가 약 370만 원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가계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실제 마련할 수 있는 액수는 212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하길 희망하는 연령도 평균 65세였지만 현실은 10년이나 빠른 55세로 차이가 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6일 이런 내용을 담은 ‘노후 준비 진단과 거주지 선택 조건’ 보고서를 공개했다. 올해 1월 3∼27일 전국 20∼79세 남녀 3000명(가구 내 금융의사 결정자)을 설문조사한 결과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에 여행과 여가활동을 즐기고 손자녀 용돈 등을 줄 수 있는 ‘적정 생활비’는 월 369만 원으로 조사됐다. 노후의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만을 위한 ‘최소 생활비’는 월 251만 원이었다. 그러나 현재 가구의 소득과 지출, 저축 여력 등을 고려할 때 준비할 수 있는 노후 생활비는 최소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월 212만 원으로 적정 생활비의 57.6% 수준이었다. 희망 은퇴 시기도 현실과 괴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은퇴하지 않은 응답자 2477명이 원하는 퇴직 연령은 평균 65세였지만 이미 은퇴한 409명의 실제 퇴직 연령은 평균 55세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는 30∼50대는 60대 초중반에 은퇴하길 희망했지만 60대는 70세, 70대는 77세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은퇴 시기를 늦추고 싶어 했다. 또 조사 대상자의 절반이 넘는 52.5%가 “아직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를 시작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노후 대비를 시작한 경우 그 시기는 평균 45세로 조사됐다. 부부 가구의 노후생활 준비 정도(1∼7점)를 살펴보면 ‘자녀가 있는 부부 가구’가 3.89점으로 ‘자녀가 없는 부부 가구’(3.48점)보다 높았다. 은퇴하지 않은 가구가 꼽은 노후 거주지의 첫 번째 요건은 ‘의료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65.7%)이었다. 반면 은퇴한 가구는 ‘은퇴 전 거주지에서 계속 거주’(42.6%)하는 것을 가장 크게 고려해 병원이나 마트 등 근린시설보다 익숙한 환경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유연하게 변화하는 유목민처럼 빠르게 업계를 선도합시다.” 한화생명은 2019년 3월 주주총회에서 여승주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격주로 열린 ‘노마드(NOMAD) 회의’가 24일로 100회를 맞았다고 26일 밝혔다. 노마드 회의는 한화생명이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끝장토론의 장’이다. 여 부회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된 날 본사 영업과 상품개발, 리스크, 보험심사 등 주요 팀장 6명을 대표이사실로 소집해 첫 회의를 주재했다. 취임 일성으로 “보험업의 틀을 깨자”며 ‘브레이크 더 프레임(Break the frame)’을 선언한 그는 100번의 노마드 회의에서 총 340개 의제를 다뤘다. 특히 전속 설계사 중심의 보험 영업에서 탈피해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의 변신을 주도하는 등 업계에서 도전하지 않던 주제와 현안들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금융소비자가 찾아가지 않은 금융자산 규모가 1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숨은 금융자산’을 쉽게 조회해 찾아갈 수 있도록 전 금융권이 대대적인 캠페인을 실시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전 금융권과 함께 13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6주간 ‘숨은 금융자산 찾아주기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 숨은 금융자산은 금융소비자가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찾아가지 않은 금융자산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휴면금융자산’이나 3년 이상 거래하지 않은 ‘장기 미거래 금융자산’, 미사용 ‘카드포인트’ 등이 포함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17조9138억 원이 숨은 금융자산으로 집계됐다. 자산별로는 예·적금이 7조283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보험금(6조6054억 원), 카드포인트(2조6489억 원), 증권(1조2758억 원), 신탁(1007억 원) 등의 순이었다. 이번 캠페인은 기존의 은행,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저축은행 외 상호금융권으로 참여 회사를 확대하고 예·적금과 보험금, 카드포인트 외 증권계좌에 남아 있는 장기 미거래 투자자 예탁금도 대상에 추가했다. 숨은 금융자산은 금융소비자 정보포털또는 ‘어카운트인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간편하게 조회하고 환급받을 수 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국내 9개 종합금융투자사(자기자본 3조 원 이상 증권사)가 최근 4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당 임직원에게 8500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들이 최근 부동산 PF 부실화 국면에서도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 부실이 확정될 경우 이미 지급한 성과급을 일부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메리츠·한국투자·미래에셋·KB·키움·NH투자·신한투자·삼성·하나증권 등 9개 종투사가 2019∼2022년 지급한 부동산 PF 관련 성과급은 851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급 규모가 가장 큰 회사는 메리츠증권으로 4년간 총 3554억 원을 내줬다. 메리츠증권의 부동산 PF 담당 인력은 4년간 평균 223명으로 45∼172명 수준인 다른 증권사보다 많아 성과급 지급 규모도 컸다. 이어 한국투자증권(1411억 원), 미래에셋증권(840억 원), KB증권(824억 원), 키움증권(596억 원), NH투자증권(518억 원), 신한투자증권(374억 원), 삼성증권(240억 원), 하나증권(158억 원) 순이었다. 증권사들은 저금리와 부동산 호황 국면에 앞다퉈 부동산 PF 사업에 뛰어들어 성과급을 챙겼지만 최근 금리 인상기를 맞아 진행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면서 개발·분양 실패로 사업이 부실화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위기 국면에서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키웠던 증권사 임직원들이 수년간 과도한 성과급을 챙겨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 임직원은 성과보수의 40% 이상을 3년 동안 나눠서(이연)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의원은 “부동산 PF 부실 여부에 따라 향후 책임 있는 임직원에 대해 철저한 성과급 환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소득이 높을수록 암 사망률이 낮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5000만 원 이상의 암 진단보험금을 수령한 경우에도 암 진단보험금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률이 절반 이하로 낮게 나타났다. 한화생명은 자사 빅데이터 전문가 그룹인 데이터랩(DataLAB)에서 2008∼2022년 암 보험급 지급 고객을 대상으로 소득수준에 따른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2일 밝혔다. 한화생명에 따르면 암 진단보험금 수령 고객의 5년 이내 사망률은 소득 1분위(하위 20%)가 31.8%로 가장 높았다. 소득 2분위 29.9%, 3분위 28.4%, 4분위 26.8%, 5분위 20.7% 등으로 집계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낮아졌다. 1분위 사망률은 5분위의 약 1.5배였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올해 9배 넘게 폭등했던 영풍제지가 돌연 하한가로 추락하자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가능성을 의심해 18일 매매 거래를 정지시켰다. 검찰도 경기 평택 영풍제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영풍제지와 모기업인 대양금속 두 종목에 대해 “신속한 거래 질서 정립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매매 거래 정지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의심되는 종목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혐의가 적발될 시에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풍제지는 이날 장 시작과 동시에 하한가로 추락하며 3만3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초 5829원이었던 영풍제지 주가는 8월 5만 원대까지 올랐다. 거래소는 영풍제지를 올해 7, 8월 두 차례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한 바 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고금리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은행 빚을 제때 갚지 못한 가계와 기업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올해 국내 은행이 장부에서 털어낸 부실 채권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 이상으로 불었다. 은행이 강도 높은 건전성 관리에 나섰지만 연체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달 말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에 대한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된 가운데 15일 부실기업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마저 일몰되면서 한계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민간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가 4900조 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부채 재조정을 통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은행 부실 채권 규모 작년의 두 배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올해 1∼9월 3조2201억 원어치 부실 채권을 상각·매각했다. 이는 전년 동기(1조5406억 원)는 물론이고 연간 규모(2조2711억 원)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은행들은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여신(부실 채권)을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면 아예 장부에서 지워버리거나(상각)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식으로 처리한다. 상각 대상에는 주로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채권이 많고, 매각은 주택담보대출 채권 중심으로 이뤄진다. 5대 은행은 올해 3분기(7∼9월)에만 1조73억 원어치 부실 채권을 털어냈다. 직전 분기(1조3560억 원)보다 다소 줄었지만 전년 동기(5501억 원)의 1.83배에 달한다. 올해 3조 원이 넘는 ‘부실 채권 털어내기’로 5대 은행의 9월 말 기준 연체율은 0.31%로 한 달 새 0.03%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1년 전(0.18%)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새로운 부실 채권 증감 추이가 드러나는 신규 연체율은 평균 0.09%로 변동이 없었다. 특히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는 데다 지난달 말 대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 코로나19 관련 금융 지원책이 종료되면서 은행권은 연체율이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기촉법 일몰에 한계기업 줄도산 우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날 5년 한시법인 기촉법이 일몰로 효력을 상실하면서 한계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옛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한계기업 비중을 분석한 결과 작년 말 기준 국내 상장사 중 17.5%가 한계기업으로 조사됐다. 5곳 중 1곳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기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도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034건으로 지난해 전체 파산 신청 건수(1004건)를 벌써 넘어섰다. 올해 8월까지 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공적 공제 제도인 ‘노란우산’의 폐업 공제금 지급 규모도 894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2% 늘었다. 노란우산 공제는 소상공인이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다가 폐업이나 고령 등으로 사업을 접을 때 돌려받는 제도다. 그만큼 한계 상황에 몰린 자영업자가 많다는 의미다. 앞으로 부실기업의 대한 구조조정은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법정관리(회생절차)만 남게 됐다. 자칫 생산성이 높지만 유동성 위기에 몰린 일부 기업이 흑자도산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촉법 일몰로 회생 가능한 기업까지 도산할 경우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기 침체 위험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고금리에 코로나19 후유증이 남은 상태에서 일몰 상태가 지속되면 금융 부실까지 연결될 수 있다”며 “산에서 내려올 때도 질서 있는 기업구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기촉법 재입법을 추진하면서 채권금융기관들의 자율협약을 통해 입법 공백기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중국의 부동산 유동성 위기로 올해 부동산 고정자산투자가 5% 감소하고, 경제성장률은 최대 0.6∼0.7%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 부동산 위기는 중국 정부를 재정 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다.”글로벌 리서치 분야에서 35년 가까이 경력을 쌓은 조이스 창 JP모건 글로벌 리서치 총괄(57)의 경고다. 창 총괄은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라며 “부동산 위기로 중국의 경기 침체가 발생한다면 한국의 실질 수출과 제조업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둔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발 부동산 악재로 최악의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사상 처음으로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2년 연속 1%대에 머물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시나리오는 이미 올해 8월부터 나왔다.》국제통화기금(IMF)은 13일(현지 시간) 자체 블로그에 올린 아시아 전망에서 “단기적으로 부채가 많은 중국 부동산 부문의 급격한 조정과 이로 인한 경제 활동의 둔화가 특히 중국과 밀접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는 상품 수출국들에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IMF는 이달 업데이트한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중국의 성장률을 올해 5.0%, 내년 4.2%로 7월 전망보다 각각 0.2%포인트, 0.3%포인트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정부 목표치인 5%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중국발 부동산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놓인 중국 1위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은 10일(현지 시간) 홍콩 증시에 미국 표시 채권뿐 아니라 상환 기한이나 유예 기한이 도래하는 모든 역외 채무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공시했다. 사실상 디폴트를 선언한 셈이다. 2021년 말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에 이어 비구이위안까지 무너지면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냉각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창 총괄은 이달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주택 시장은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며 “비구이위안 사태로 중국 주택 시장이 ‘더블딥’(경기 침체 후 일시적 반등이 나타났다 다시 침체가 나타나는 현상)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 부동산 위기는 글로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국 정부는 주택 시장 조정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재정적 위험을 훨씬 더 우려하게 됐다. 중국 시장에서 외국인의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고려할 때 부동산 위기가 글로벌 금융 시장으로 파급될 위험은 여전히 낮다. 다만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세계 성장률은 약 0.2%포인트 하락한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미국이나 유럽에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신흥국 경제에는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주택 시장이 되살아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은데…. “중국 정부는 주택 가격을 보호하기 위해 금리 인하와 규제 완화 등으로 거래량을 대폭 조정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앞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일반 주택 가격은 올해 1분기(1∼3월) 일시적으로 회복됐다가 최근 몇 달 새 일부 도시에서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일반 주택 가격이 신규 분양 주택 가격보다 더 낮아질 경우 상호 가격 하락을 부추기면서 거시적 재정적 위험을 확대시킬 수 있다.” ―부동산 위기가 정부의 재정 위기로 번질까. “중국 지방정부 재정의 약 40%를 부동산 부문이 책임졌다. 부동산 개발 업체에 국유 토지 사용권을 매각해 재원을 확보해 온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침체하면서 올해 연간 국유 토지 매각 수입이 20% 감소해 재정난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구이위안 사태와 같은 유동성 위기가 다른 민간·국영 개발업체에도 전이될 수 있다. JP모건은 올해 중국의 주택 매매 거래액이 전년 대비 10% 감소하고, 신규 주택 착공도 23.7%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에 한국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라 한국 제조업체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중국의 성장 둔화에 따른 민감도가 낮아졌을 수 있다. 한국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1%대에 머물더라도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는다. 이는 팬데믹 이후 경기 반등에 따른 연착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성장 둔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중국의 성장세 둔화는 한국의 대외 수요에 대한 순풍이 쇠퇴함을 의미한다. 또 한국의 급격한 고령화 추세는 생산 측면의 노동 투입 증가율 둔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장기적인 추세에 대처하는 열쇠는 경제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이 ‘세계의 공장’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아시아 전역을 살펴보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들은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위험을 완화하려는 다국적 기업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해외 직접투자 증가로 인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인도의 인구 급증은 인구 배당 효과를 창출해 경제 발전을 진전시킬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만들었다.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배터리 관련 공급량 증가와 관련해 이익을 보고 있다. 다만 중국은 전 세계 120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로 남아 있으며 탈세계화에 대한 두려움은 과장됐다고 본다.” ―미국의 호시절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미국 경제는 올해도 계속 예외적인 흐름을 보이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공세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견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 주식 시장은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고 달러화도 다른 선진국 통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지긴 했지만, 2024년에는 여전히 경기 침체 가능성이 더 높다.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경기 확장세 지속과 동시에 정책 완화를 예상해 연착륙보다 더 나은 전망을 주가에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주식 시장이 새로운 고점을 경신할 것으로 보지 않으며 단기 우량 신용 및 7%의 수익을 제공하는 유동화 자산 등 다른 합리적인 대안들에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자산은 무엇인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로 지정학적 위험이 여전히 높아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대해 방어적 입장이다. 시장 변동성이 지속될 경우 S&P500지수에 대한 자금 흐름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10년물 미국 국채 실질 수익률은 2%를 넘어 중기 목표인 2.5%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과도한 재정 적자와 연방정부의 이자비용 증가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감안하면 미국 국채 금리의 오버슈팅(단기 급등) 가능성도 있다. 미 국채 금리는 지난해 초부터 상승했고 평균 만기는 약 6년이지만 이자비용은 지난해 4760억 달러에서 6630억 달러로 급증했고, 2033년에는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미 우량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미 국채와의 금리 차)는 대부분의 다른 자산군보다 우수했고, 지난달 마이너스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강한 자금 유입세가 나타났다.” ―투자자에게 추천할 자산 배분 전략은…. “올해 주식 시장의 강세와 채권 매도세는 장기 투자자의 향후 채권 수익률은 개선되고 주식 수익률은 하락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JP모건 예측 모델에 따르면 미국 종합채권시장의 수익률은 올해 초 전망한 4.6%에서 5%로 상향 조정되는 반면 S&P500지수 수익률은 8.2%에서 7.0%로 하향 조정됐다. 앞으로 10년 후 S&P500지수 수익률이 미국 종합채권시장 수익률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확률은 94%에서 81%로 하락했다. 2030년대 초반까지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미국 시장 장기 투자자라면 이 두 자산군의 가격 재조정을 활용해 채권에 대한 전략적 비중을 늘릴 수 있다.”조이스 창1966년 미국 아이오와주 녹스빌에서 태어났다. 아시아계 미국인인 그는 11세 때 지역 일간지 디모인레지스터(Des Moines Register)를 배달하며 장학금을 받아 명문 사립기숙학교(보딩스쿨)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이후 컬럼비아대 학사, 프린스턴대 석사 학위를 받고 1989년 미 월가에 처음 발을 들였다. 살로몬브러더스와 메릴린치를 거쳐 1999년 JP모건에 합류한 그는 30년 넘게 글로벌 리서치 분야에 몸담고 있다. 미 금융 전문 매체 ‘아메리칸뱅커’와 투자 전문 매체 ‘배런스’ 등은 그를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 중 한 명으로 꼽았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