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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 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김환기(1913-1974)의 그림은 예술풍수적 감각으로 볼 때 일관된 기운이 느껴진다. 2017년 65억5000만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고요’를 비롯해 ‘붉은 점화’ ‘우주’ 등 그의 유작에는 솟구치는 생명력과 넉넉한 풍요의 기운이 배어 있다. 묘하게도 김환기의 작품 속 기운은 그가 태어난 생가의 기운과도 연결된다. 김환기는 전남 신안군의 섬 안좌도에서 부농(富農)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 유년기까지 보냈던 생가 터는 강력한 지기가 형성된 명당이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목(木)기운과 풍요를 상징하는 토(土)기운이 적절히 조합된 명당 터의 기운은 그의 작품 속 기운의 원천(源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원리로 해석된다. 즉 특정한 터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이가 창작이나 예술 활동을 할 경우 그 작품에서도 같은 기운이 나타난다는 게 예술풍수론이다. 예술사에서 기운이 빼어난 작품을 남긴 작가를 칭찬할 때 ‘인걸지령(人傑地靈;뛰어난 인재는 신령스런 땅에서 태어남)’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령한 땅 기운을 받은 인물은 작품속에 그 기운을 담아 사람들에게 감상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아트,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흔히 작가 정신, 예술혼 등으로 묘사되는 작품 속 기운은 예술풍수론에서는 ‘영기(靈氣)’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중국의 미술전문가 딩시위안(丁羲元)는 저서 ‘예술풍수’에서 “영기가 있는 그림은 보는 이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하면서 이는 작가의 천부적인 기질과 수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천부적인 기질은 타고난 풍수적 혹은 유전적 배경을 가리키며, 수양은 갈고 닦은 예술적 완성도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작가 정신, 혹은 작품 속 영기에 주목한 젊은 작가가 눈에 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에서 ‘디지털 파트너쉽’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공식적으로 등장시킨 김대환(영어명;Jason Kim) 작가다. 그는 지난 9월 ‘프리즈 서울 2023’에서 김환기의 원작과 이를 디지털로 새롭게 구현한 작품을 함께 선보여 주목을 끌었다. 작가는 TV라는 디지털 캔버스를 이용해 김환기의 마지막 작품(7-Ⅶ-74)을 재해석했는데, 원작과의 조화 혹은 괴리 등 여러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무엇보다도 김대환의 파격적 예술 활동은 디지털 아트로까지 예술 풍수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었다. 원작이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했을 경우 원작의 기운 역시 신작으로 전이(轉移)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김대환은 김환기의 에세이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작품의 영감으로 설정했다. 그는 김환기의 작품을 디지털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익숙한 ‘나’가 아닌 ‘작가(김환기)’로 변신하는 게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아집과 성격을 비워놓은 자리에 작가의 정보를 채워넣었다. 당시 작가가 살던 지역, 만났던 이들, 들었던 음악, 자주 가던 카페나 선술집, 읽었던 책, 영감을 받았던 사람들 등에 대한 정보를 컴퓨터 명령어로 입력시킨 후 작가의 원작을 하나하나 글을 읽듯 마음속에서 재구현했다.”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디지털 화면에서 재구성된 김환기의 작품에서도 김환기의 원천적 기운이 여전히 발현되고 있었다. 원작과는 달리 TV스크린이라는 소재, 동적 영상이라는 표현 방법 등으로 미세한 부분에서 기운의 양상이 달리 나타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원작의 기운이 디지털 아트로 곧장 전이된 것으로 느껴졌다. 당시 전시 관계자는 “김환기 작품을 관리하는 환기미술관 쪽에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작가 김대환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등장한 디지털 아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결국 이 모든 행위가 ‘진짜’ 작품이 아닌 디지털로 구현된 스크린의 예술일 뿐이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은 ‘가짜’가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마치 ‘가상 현실’ 세계를 대하는 듯한 작가의 고백은 그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다. 김대환은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과 및 디자인 복수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한 후 2020년 영국 왕립대학으로 유학하면서 미술 기획 연구 및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그러다 코비드(COVID) 사태로 영국에서 고립되는 비대면 시대를 맞았다. 그는 이 기간 멀리 있는 한국의 가족이 그리워 화상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영혼이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또 가족간의 온기가 스크린을 통해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이는 우리가 작품을 감상할 때 받는 감동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차갑고 딱딱한 스크린(평면) 너머로 서로의 온기를 전하고 있으며, 이 온기는 사람의 ‘마음(철학)’을 반영할 때 그 존재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밝힌 온기와 마음의 전달, 스크린을 통한 진짜와 가짜를 넘어선 경계는 풍수에서 중시하는 ‘기운(氣運) 교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그의 독특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 행보는 유럽인들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반 고흐 전시(2019), LG OLED를 아트 디스플레이로 진행하는 전시(The Black Canvas, 2019)를 성공시킨 이후 영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브랜딩 전문 회사인 비자인(BESIGN)의 대표로서 아트 디렉팅(총괄 기획) 및 제작을 하고 있다. 그는 ‘프리즈 런던 2021’ 아트페어에서 영국의 현대 예술가인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전시를 진행했고, 같은 해 겨울에는 런던의 사치 갤러리에서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쿠사마 야요이(일본), 뱅크시(영국), 이우환(한국) 등의 디지털 전시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그는 국내에서 활동중인 한국 화가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지난 10월 세계 3대 경매사 중 하나인 본햄스 런던 본사에서 최초의 한국 화가 초청 개인전(김성희 작가)을 성공시켰던 것.이 전시는 한국 및 아시아 예술 시장에 관심을 가진 유럽 컬렉터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김대환은 이 전시회에서도 김성희 작가(서울대 동양화과 교수)의 원작과 함께 이를 디지털 아트로 해석한 자신의 작품을 대조적으로 배치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원작이 디지털 아트로 변신하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이 전시회에서 김성희 작가는 “디지털 작품에서는 평면 작품에서 유추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기운의 흐름이 보여져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XR(확장현실) 등 신세계가 펼쳐지는 세상에서 젊은 예술가가 주도하는 디지털 아트가 예술풍수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지속 가능한 글로벌 관광도시 광양을 열기 위해 최고, 최대, 최다의 ‘3최 원칙’을 관광 사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전남 광양시가 남해안 남중권의 중심 관광지로 부상하기 위해 과감한 관광 전략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국회의원을 거쳐 제9대 광양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정인화 시장이다. 그는 전남도 관광문화국장을 거쳐 한양대에서 국제관광학(석사 과정)을 전공한 관광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3최 원칙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그동안 광양은 제철도시로만 알려져 관광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고, 최대, 최다의 관광 상품을 개발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게 되면 광양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자연스럽게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정 시장은 그 예로 전남 순천, 여수, 경남 하동, 남해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봉산(해발 473m)에서 봉화산을 잇는 ‘세계 최장 골든 출렁다리 770’ 건설을 꼽았다. 봉수대가 있었던 두 산을 길이 770m 다리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정 시장은 또 16세기에 최대 규모의 한중일 국제 해상 전쟁이 벌어졌던 광양만은 이순신 장군을 ‘킬러 콘텐츠’로 내세워 세계인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관광의 보고라고 밝혔다. ―스토리가 중시되는 관광 문화에서 외형적 ‘3최’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광양은 주변 도시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관광 스토리 또한 적지 않습니다. 경관이 아름다운 섬진강 망덕포구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유고 시집 발간과 관련한 독립운동과 100년 우정의 향취가 밴 곳이고, 백계산 옥룡사지의 동백숲과 도선국사의 풍수 스토리는 광양만이 간직한 전통문화 콘텐츠입니다. 이런 콘텐츠 등을 잘 발굴해 활용하면 위치적으로 광양만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광양이 남해안 남중권의 관광 중심지로도 우뚝 설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관광 산업에 역점을 두는 이유는…. “인구 감소, 지역경제 침체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관광 산업은 이를 해결하는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광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핵심 역할을 하는 미래 성장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정 시장은 적극적인 관광 개발과 관광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실외보다는 실내를 주로 찾기 마련이다. 인체 생리적으로 겨울에는 다른 사람들의 기행문을 읽음으로써 간접 체험하는 ‘와유(臥遊) 여행’이나, 실제 자연물의 기운을 담고 있는 그림, 문자 예술, 조각품 등을 실내 전시장에서 감상하는 ‘와유 풍수’가 활발해진다. 예술작품 속에서 작품에 내재된 기운과 감흥을 하는 행위는 예술 풍수라고도 한다. 올 겨울엔 분야가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 예술풍수적 시각에서 눈길을 끈다. ● 글씨에서 그림을 보다흔히 예술풍수 하면 자연을 묘사한 그림에서 풍수적 느낌을 알아채고 즐기는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예술풍수는 글씨, 조각품, 도자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재료가 무엇이든 작품 속에서 발휘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경지를 느끼는 풍수적 활동이 바로 예술풍수이기 때문이다.글씨 속에서 풍수적 흥취를 즐길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6층(12월 6일~11일)에서 ‘행만리로(行萬里路)’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미당(美堂) 이필숙 작가의 네 번째 서예전이다.작가의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말이 있다. ‘시 속에 그림이 들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소동파가 당나라 때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의 ‘남전연우도’ 그림을 보고 남긴 말이다. 바로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이 이필숙 작가의 ‘화양연화(花樣年華)’다. 영화와 TV 드라마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말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혹은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 작가는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을 글자로 표현했다”는 말처럼, 마치 글씨가 곧 꽃이 되고, 꽃이 글자로 피어나는 듯한 강렬한 흥취를 일으킨다. 예술풍수적 감각으로는 꽃으로 상징되는 화(火)의 기운이 절정에 이른 듯하다. 화의 기운은 흔히 화려함, 예술적 창조성, 종교적 환희 등을 상징한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화의 기운으로 ‘서예의 꽃’을 관객에게 선물한다고나 할까.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도화원기(桃花源記)’를 감상해보자. 중국의 대표적 전원시인 도연명(365~427)의 ‘도화원기’를 작품화한 것인데, 서예 작품에서는 포용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토(土)의 기운이 활성화돼 있다. 서울대 안재원 교수(인문학연구원)는 작가의 작품 자체를 도화원으로 설정한 후,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뜻하는 ‘人(인)’자 글씨들을 찾아서 세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각각의 ‘人’들이 펼쳐 보이는 몸사위를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인’들의 몸사위에서 작가의 붓사위를 만나게 된다. 작품이 곧 작가라는 해석이다. 오랜 세월 추사 김정희의 서화(書畵) 미학을 연구해온 미당 이필숙은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자연 혹은 자연의 도(道)는 서화가의 기운(氣韻), 정신(精神), 풍격(風格) 등과도 일맥상통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작품 속에 작가의 기운이 실려 있다는 예술풍수적 시각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의 기운을 만나 교감을 나누거나, 작가가 작품 속에서 표현해낸 기운을 느낌으로써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게 예술풍수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예전은 문자를 조형화한 예술작품에서 생동하는 기운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작품들이 서로 교감하는 공간 서울 한남동의 ZIP739 2층 아트라운지에서는 공간과 작품이 상호 교감하는 특이한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가나아트가 주관한 이영림 작가의 ‘Unfolded’라는 제목의 개인전이다(2024년 1월7일까지).작가는 비정형의 ‘셰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 즉 기존의 정형화된 사각형 캔버스가 아닌 다양한 형태와 모양을 갖춘 캔버스에서 실험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먼저 작품에서 2차원의 평면적 회화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각형 혹은 비정형으로 잘라진 나무 위에 색채를 올리거나, 화면 위에다 곡선의 철제와 나뭇조각 등을 입히는 등으로 3차원의 입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어찌 보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해체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어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또한 하나의 캔버스가 된다. 작가는 작품이 놓인 자리, 즉 전시 공간 자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상정한다. 그리고 전시 공간과 작품이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자아내는 풍경에 집중한다. 여기서는 작품이 어떤 위치, 어떤 각도에 배치되는가가 중요하다. 작품이 공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활성화되는 중요 변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감상자(보는 이)의 시각이 작품 및 공간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는 인지적 과정을 소중히 여긴다. 작가는 스스로 작품의 범위나 의미를 한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이 놓인 장소, 작품을 대하는 감상자의 시선과 움직임 같은 외적인 행위들까지 자신의 예술 작업으로 포함하고자 한다. 그 결과 감상자는 주체적으로 작품이 놓인 공간에 개입하게 되고, 감상자에 의해 공간 속에 놓인 작품의 의미가 완성된다는 의도다. 작가는 2012년 싱가포르 라셀예술대학교를 졸업한 후 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인지심리학 박사과정(이화여대 심리학과)을 수료한 경력이 있다. 그가 작품 속에서 사람의 ‘인지 과정’을 특히 중요시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사실 작가가 공간과 작품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매우 풍수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감상하는 관객의 인식까지 예술활동 속에 끌어들이는 행위 역시 철저히 풍수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풍수에서는 대상물(혹은 작품)이 공간에서 어떻게 배치돼 있느냐를 매우 중시하며, 그 배치 구도에 따라 보는 이에게 길하거나 흉한 기운을 부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풍수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관객이 이 갤러리에서 작품 감상을 한다고 치자. 관객은 먼저 갤러리 공간에서 범상치 않은 에너지장, 즉 명당 기운이 펼쳐져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를 동양 전통의 목·화·토·금·수 오행(五行)으로 분류해보면 목기(木氣)에 해당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목기운인 나무다. 전시회 한쪽 사이드에 배치한 작가의 작품들의 경우 나무의 결을 깊이 품은 셰이프트 캔버스 위에 색깔을 겹겹이 혹은 섬세하게 입힌 형태다. 색깔 역시 연초록, 짙은 초록, 옅거나 짙은 파랑 등 모두 목기운 일색이다. 즉 작품과 공간이 모두 같은 기운으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활성화되고 있다. 관객은 이곳에서 목기운이 주는 생명성, 활동성, 역동성을 느끼는 기운 체험을 하게 된다.전시 공간의 또다른 사이드에서는 화기운이 강한 ‘빨강색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세 작품은 가운데 세 개 점 모양의 작품을 중심으로 상호 교감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전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목 기운을 받아 목생화(木生火)라는 기운생동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이처럼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에서 동양 전통의 오행(五行) 기운을 읽어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보통 자연 풍경이나 구체적 물상은 목·화·토·금·수라는 5가지 특징적 기운을 가지고 있다. 한가지 오행이 강조되거나, 여러 오행 기운이 섞여 표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표현한 예술품 역시 감상자에게도 똑같은 기운이 전달된다는 게 동양화의 기본적 감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행 기운을 동양의 산수화 혹은 정물화가 아닌, 난해하다고 소문난 현대 추상화에서도 체험하고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와유 현장이 이영림 작가의 전시회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철의 도시’ 전남 광양이 역사적 스토리를 품은 문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광양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정유 7년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늘에 목숨을 건 맹세를 한 곳이자,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육필 원고를 보관해온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말 풍수대가인 도선국사의 자취가 담긴 옥룡사지 일대는 현재도 유명인사들을 배출한 명당 터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영롱한 동백숲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겨울 산책 명소로도 인기 높다.● 이순신이 목숨을 담보로 맹세한 바다1598년 12월16일 초겨울 새벽. 전남 광양의 앞바다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 물결과는 달리 조선 판옥선 함대는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하늘에 맹세했다. 이어 일본 함대와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임진·정유 7년 전쟁의 최대 규모 결전이 광양만 바다에서 전개됐던 것이다.해발 473m의 광양시 구봉산 전망대. 425년 전 바로 그때의 광양만 겨울 바다는 물론 순천, 여수, 하동, 남해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숨통을 끊으려 했던 왜장(倭將) 고니시 유키나가 군의 주둔지인 순천왜성,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의 전진 기지였던 묘도와 장도, 저 멀리 남해군 노량대교와 이순신 장군 순국 장소인 관음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순천에서 남해까지 20여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이 전쟁을 ‘광양만 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순천왜성 앞바다에서 일본 군과 전투를 벌인 이후 남해군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사망하기까지 60여일간 지속적으로 이어진 해상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측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협에서 일본함대와 전투을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순천왜성에서 도망할 수 있었던 이 전쟁에 대해서는 패배를 인정한다. 우리가 임진정유 7년전쟁을 ‘이긴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광양만 바다에서의 장군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구봉산 전망대에서는 역사적 장소를 무료 망원경으로 세밀히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출과 일몰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바다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 광양 컨테이너 부두를 오가는 대형 선박 등 이국적인 항구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석양이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하면 전망대의 은빛 메탈아트 봉수대(9.4m)가 빛나고 광양제철소, 이순신대교 등 야경이 황홀하게 펼쳐진다.웅장하게 서 있는 이순신대교(총 연장 2260m)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1545년)을 기려 주탑 사이 거리가 1545m로 건설된 해상 교량이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주탑으로는 세계 최고 높이(270m)라고 한다.● 백두대간 끝에서 부활한 윤동주의 시혼(詩魂)광양에서는 여명의 감동과 노을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또다른 명소가 있다. 550리 섬진강이 마침내 그 유장한 흐름을 마무리짓고 바다로 흘러드는 망덕포구다.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을 만들던 선소였던 이곳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친필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가옥’(1925년 건립)으로도 유명하다.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은 대일항쟁기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정병욱은 선배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며 맡긴 시집 원고를 자기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보관했다. 1945년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후, 광복 후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일제하에서 윤동주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가족 덕분이다.백두대간의 북쪽 끝인 북간도 룽징(龍井) 출신인 윤동주의 시혼(詩魂)이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가옥에서 살아났다는 점이 이채롭다.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버킹엄궁에서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중 낭송했던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 시비도 새겨져 있다.한편 망덕포구 산책로에서 바다쪽으로는 배알도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섬이 있다. 망덕산을 향해 배알하는 형국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오래된 고목, 푸른 잔디가 펼쳐진 배알도 해변의 섬 정원은 물멍과 놀멍 명소로 유명하고, 섬 정상에는 일출과 일몰 및 섬 주변을 감상할 수 있는 해운정이 있다.배알도는 망덕포구에서 섬을 잇는 ‘별헤는 다리’와 섬에서 맞은편 수변공원을 잇는 ‘해맞이 다리’가 독특한 운치를 자랑한다. 2개의 해상보도교는 유려한 곡선미로 눈길을 끈다.● 옥룡사지의 동백숲 산책로백계산(505m)의 옥룡사지 동백숲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 산책로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89호)다.동백숲은 통일신라 말 선승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도선국사에게 따라다니는 ‘비보(裨補)풍수’의 현장인 것이다.비보풍수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화초류 등을 심고 가꿈으로써 활성화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제공하도록 하는 환경적 행위를 가리킨다.기자조선을 세운 기자가 조선의 평양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일화도 그런 예다. 기자는 조선의 풍속이 너무 강하고 모진 것을 보고 평양의 백성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장려했다. 이는 부드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심을 순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평양을 버드나무 유(柳) 자를 써서 ‘류경(柳京)’으로 부르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동백꽃은 지고한 사랑, 생명의 영속성과 순환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이곳에서 동백나무를 심음으로써, 우리나라 지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염원하는 차원에서 동백나무를 심었던 것일까.도선국사는 통일신라때 창건한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한다. 번성했던 사찰은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됐고 당시 심었다는 동백나무만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옥룡사지에서 인근 운암사로 이어지는 동백나무 오솔길은 상쾌한 숲 향기가 마음의 근심을 씻어주는 치유의 산책로다. 겨울철에 걸어보는 동백숲은 또다른 멋이 있다. 붉은 꽃송이 하나 달려 있지 않지만 한낮의 햇빛을 한껏 머금은 동백잎은 대낮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옥룡사지에는 ‘소망의 샘’이라는 샘물이 솟아난다. 이 물을 마신 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는 일화가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명당인 옥룡사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샘물을 마시기도 한다. 여유가 있다면 인근의 옥룡면 명당 마을과 도선국사마을(추산리), 백운산 자연 휴양림도 들러볼 만하다. 특히 옥룡면의 명당 마을은 옥룡사지 기준으로 좌청룡(왼쪽 산자락)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인데 정인화 광양시장, 박찬호 전 지검장 등 정관계 유명 인사들을 한마을에서 집중적으로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도선국사의 풍수 원천지답게 인걸지령(人傑地靈; 영험한 기운이 있는 땅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온다는 뜻)의 현장인 것이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철의 도시’ 전남 광양이 역사적 스토리를 품은 문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광양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정유 7년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늘에 목숨을 건 맹세를 한 곳이자,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육필 원고를 보관해 온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의 자취가 담긴 옥룡사지 동백숲 또한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려 겨울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 정유재란 최후·최대의 전쟁터1598년 12월 16일 초겨울 새벽. 전남 광양의 앞바다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 물결과는 달리 조선 판옥선 함대에는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하늘에 맹세했다. 이어 일본 함대와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임진·정유 7년전쟁의 최대 규모 결전이 광양만 바다에서 전개됐던 것이다. 해발 473m의 광양시 구봉산 전망대. 425년 전 바로 그 광양만 앞바다는 물론이고 순천, 여수, 하동, 남해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숨통을 끊으려 했던 왜장(倭將) 고니시 유키나가 군의 주둔지인 순천왜성, 조선과 명나라 연합수군의 전진 기지였던 묘도와 장도, 저 멀리 남해군 노량대교와 이순신 장군 순국 장소인 관음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순천에서 남해까지 20여 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전쟁을 ‘광양만 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순천왜성 앞바다에서 일본 군과 전투를 벌인 이후 남해군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사망하기까지 60여 일간 지속적으로 이어진 해상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협에서 일본 함대와 전투를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순천왜성에서 도망할 수 있었던 이 전쟁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우리가 임진·정유 7년전쟁을 ‘이긴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광양만에서의 장군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구봉산 전망대에서는 역사적 장소를 무료 망원경으로 세밀히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바다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 광양 컨테이너 부두를 오가는 대형 선박 등 이국적인 항구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석양이 바다를 물들이기 시작하면 전망대의 은빛 메탈아트 봉수대(9.4m)가 금빛으로 빛나고 광양제철소, 이순신대교 등 야경이 황홀하게 펼쳐진다. 웅장하게 서 있는 이순신대교(총 연장 2260m)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1545년)를 기려 주탑 사이 거리가 1545m로 건설된 해상 교량이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주탑으로는 세계 최고 높이(270m)라고 한다. ● 백두대간 끝에서 부활한 윤동주의 시혼(詩魂) 광양에서는 여명의 감동과 노을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550리 섬진강이 마침내 그 유장한 흐름을 마무리 짓고 바다로 흘러드는 망덕포구다. 임진왜란 당시 판옥선을 만들던 선소였던 이곳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친필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가옥’(1925년 건립)으로도 유명하다.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은 대일항쟁기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정병욱은 선배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며 맡긴 시집 원고를 자기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보관했다. 1945년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후, 광복 후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일제하에서 윤동주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가족 덕분이다. 백두대간의 북쪽 끝인 북간도 룽징(龍井) 출신인 윤동주의 시혼(詩魂)이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가옥에서 살아났다는 점이 이채롭다.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버킹엄궁에서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중 낭송했던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 시비도 새겨져 있다. 한편 망덕포구 산책로에서 바다 쪽으로는 배알도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섬이 있다. 망덕산을 향해 배알하는 형국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오래된 고목, 푸른 잔디가 펼쳐진 배알도 해변의 섬 정원은 물멍과 놀멍 명소로 유명하고, 섬 정상에는 일출과 일몰 및 섬 주변을 감상할 수 있는 해운정이 있다. 배알도는 망덕포구에서 섬을 잇는 ‘별헤는 다리’와 섬에서 맞은편 수변공원을 잇는 ‘해맞이 다리’가 독특한 운치를 자랑한다. 2개의 해상보도교는 유려한 곡선미로 눈길을 끈다. ● 옥룡사지의 동백숲 산책로백계산(505m)의 옥룡사지 동백숲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 산책로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89호)다. 동백숲은 통일신라 말 선승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도선국사에게 따라다니는 ‘비보(裨補)풍수’의 현장인 것이다. 비보풍수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화초류 등을 심고 가꿈으로써 활성화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제공하는 환경적 행위를 가리킨다.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가 조선의 평양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일화도 그런 예다. 기자는 조선의 풍속이 너무 강하고 모진 것을 보고 평양의 백성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장려했다. 이는 부드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심을 순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평양을 버드나무 유(柳) 자를 써서 ‘류경(柳京)’으로 부르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동백꽃은 지고한 사랑, 생명의 영속성과 순환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지기가 순환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도록 염원하는 차원에서 동백나무를 심었던 것일까.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한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한다. 번성했던 사찰은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됐고 당시 심었다는 동백나무만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옥룡사지에서 인근 운암사로 이어지는 동백나무 오솔길은 상쾌한 숲 향기가 마음의 근심을 씻어주는 치유의 산책로다. 겨울철에 걸어 보는 동백숲은 또 다른 멋이 있다. 붉은 꽃송이 하나 달려 있지 않지만 한낮의 햇빛을 한껏 머금은 동백잎은 대낮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옥룡사지에는 ‘소망의 샘’이라는 샘물이 솟아난다. 이 물을 마신 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는 일화가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옥룡사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며 샘물을 마시기도 한다. 여유가 있다면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인근의 도선국사마을, 백운산 자연휴양림도 들러볼 만하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경기 양평과 가평은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서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명승지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양평 쪽 남한강과 가평 쪽 북한강이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명소들을 형성한 이곳에서는 풍성한 스토리가 담긴 자연기념물과 21세기 ‘K-명당’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공존하고 있다. 수도권 명당지로 늦가을 여행을 즐겨보자.》 ● 장락지맥에 서린 용봉(龍鳳)의 기운단풍마저 저물어 가는 무렵의 여행은 겉치장 없이 속살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는 맛이 있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열매를 땅에 수북이 뿌려놓은 채 몸매를 드러낸 용문사 은행나무(양평군 용문면)가 바로 그런 곳이다. 키 42m, 뿌리 부분 둘레가 15.2m에 이르는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11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제30호)이자 양평군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노거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약 2∼3가마(350kg)의 열매를 맺는 암나무다. 역사가 오래된 나무이다 보니 따라붙은 사연도 다양하다. 불교의 고승 의상대사, 마의태자 등 신라시대 인물들이 심었다는 전설들이 전한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의 세종대왕이 이 나무의 진가를 알아보고 ‘당상관’이라는 벼슬을 내려주었다. 세조 때 벼슬을 하사받은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보다 이른 시기에 관직에 진출한 나무다. 근대에 들어서는 대일항쟁기인 1907년, 일본군이 정미의병(丁未義兵)의 소굴인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은행나무만은 화마를 피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때부터 화재로 소실된 사천왕전(四天王殿)을 대신하는 천왕목(天王木)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또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때마다 이 나무가 소리로 이를 알렸다는 신령스러운 스토리도 있다. 조선의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고, 8·15 광복과 6·25전쟁 때도 나무가 구슬픈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곳이 풍수적으로 명당 터임을 알려주는 증거다.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은 용문사 경내에서도 가장 기운이 굳센 곳 중 하나다. 이런 기운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명소로 소문나기 마련이다. 이 은행나무는 벼슬을 받은 ‘고귀한 존재’인 만큼 출세나 명예 등의 소원 기도처로 유명했다. 또한 풍성한 은행 열매가 자식 생산을 의미한다고 해서 출산과 풍요의 신목(神木)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오기도 했다. 지금도 은행나무를 보호하는 철책 주변으로는 소원을 빼곡히 담은 종이들이 무수히 걸려 있다. 용문사를 품고 있는 용문산(1157m) 역시 예사로운 산은 아니다. 이름 그대로 ‘용(龍)’이 출입하는 ‘문(門)’이라는 뜻으로 미르(용)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봉황산이라고도 불렸다. 최고의 지존(至尊)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의 뜻을 다 품은 산인 셈이다. 이 산의 지맥은 북쪽으로 봉황의 꼬리인 봉미산을 거쳐 가평 쪽의 보리산과 장락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즐기는 등산객들도 적지 않은데 일명 ‘장락지맥’으로 알려진 코스다.● 소설 ‘풍수전쟁’의 배경인 보리산 청리움먼저 보리산에는 한컴그룹(한글과 컴퓨터)이 설립한 복합 라이프 플랫폼인 ‘청리움’(가평군 설악면)이 있다. ‘맑은 기운이 모이는 공간’임을 의미하는 청리움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가평의 청정 자연에 접목시켜 자연 속에서 스마트 라이프를 구현하려는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재충전 힐링 프로그램으로 관공서와 기업체의 연수 장소로 인기를 끄는 청리움은 사실 소설 ‘풍수전쟁’의 배경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진명이 이곳을 방문한 뒤 영감을 받아 글감으로 썼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보리산과 장락산의 기이한 관계, 보리산 곳곳에 맺힌 구룡혈(九龍穴) 터, 오하산방 등이 모두 이곳에 실재하고 있다. 오하산방의 주인인 ‘오하산인’으로 묘사된 인물 역시 김상철 회장을 가리킨다. 실제로 이곳은 대단한 명당 터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방문한 혜거 스님(동국대 동국역경원 원장)은 황룡농주(黃龍弄珠·황룡이 여의주를 갖고 노닌다는 뜻)의 혈터라고 하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청리움은 유럽의 어느 소도시를 방문한 것 같은 이국적 느낌을 주면서도 철저히 한국적인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400년 수령의 모과나무, 맛이 진한 토종 된장과 간장이 담긴 장독대, 기와집 지붕에 핀 와송(瓦松), 목·화·토·금·수 오행(五行)별로 분류해 놓은 식물과 나무, 심지어 긴 꼬리가 특징인 토종닭까지 진귀한 한국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청리움에서만큼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 것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청리움에서는 저 멀리 건너편으로 장락산이 보인다. 보리산 청리움의 시각에서는 장락산이 복을 불러오는 안산 역할을 하고 있다. 장락산 품에 안긴 백색 건물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돔형 지붕이 마치 미국 국회의사당을 연상케 한다. 바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성전인 ‘천정궁’이다. 통일교 창시자이자 풍수에도 밝았던 고(故) 문선명 총재가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호수와 산야가 조화를 이룬 곳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곳”이라고 자부했던 곳이다. 아쉽게도 장락산 천정궁 일대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멀리서 감상할 수밖에 없다. 보리산과 장락산의 해발 높이가 똑같이 627m라는 점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두 산은 쌍둥이 산으로 비교되곤 한다. 장락산이 대체로 바위로 이뤄진 골산(骨山)이어서 영적 혹은 종교적 감흥을 일으키는 산이라면, 보리산은 흙으로 이뤄진 육산(肉山)으로 풍요와 휴식에 좋은 산이라는 해석이다. 장락산에 종교 시설물이 들어서고, 보리산에 기업체 연수 시설이 들어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강변의 명당 박물관장락산 아래 청평호의 쾌적한 수변 풍경을 즐긴 후 북한강변을 따라 서울 쪽으로 가다 보면 남한강과 합류하는 두물머리(양평군 양수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두물머리의 상징인 느티나무(수령 400년)와 바로 옆 고인돌에서 잠시 쉬면 가평과 양평 쪽 산과 강의 기운을 종합적으로 취기(取氣)하는 느낌이 든다. 이어 본격적으로 한강이 시작되는 강변로에 위치한 서양악기 박물관 ‘프라움악기박물관’(관장 김정실)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4679㎡(약 1415평) 부지에 중세 유럽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박물관은 출입구부터 웅장한 분위기를 준다. 1층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음악과 악기들이 소개돼 있다. 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2층 전시실엔 18∼19세기에 제작된 그랜드 피아노, 하프, 바이올린 등 명품 악기들이 즐비하다. 김정실 관장은 런던, 파리, 빈 등 유럽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경매장을 돌며 진귀한 서양 고전 악기를 수집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을 두루 탐방한 끝에 이곳에 악기박물관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박물관 정원에는 매우 재미있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지기(地氣)는 평균 0.5G(가우스)이나, 이곳은 17G로 생기 터이며 지기가 매우 왕성한 터’임을 증명하는 어느 풍수단체의 팻말이 눈길을 끈다. 그와 함께 강 건너편으로 영험한 검단산을 바라보는 청석 거북도 함께 조성돼 있는데, 거북을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거북 머리가 반질반질할 정도다. 한편 김상철 회장의 부인인 김 관장은 지난해 경기 남양주시의 저소득 홀몸노인을 위해 3000만 원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층을 대상으로 27억 원 넘게 기부해 왔다. 풍요 명당의 진정한 주인은 풍요를 베풀 줄 아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것 같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소설 ‘풍수전쟁’의 무대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이 최근 펴낸 소설 ‘풍수전쟁’에는 흥미로운 장소가 묘사돼 있다. 저주의 주술에 걸린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전국의 유명 도사들이 몰려든 가평의 보리산 오하산방이다. 소설은 이곳을 주 무대로 삼아 일본인들에 의한 우리나라 역사 왜곡 및 풍수 침략 등의 얘기를 풀어가고 있다. 보리산 오하산방으로 직접 가보았다. 소설속 묘사대로 아늑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은 한컴그룹(한글과 컴퓨터)이 복합라이프 플랫폼을 표방하며 세운 ‘청리움’(가평군 설악면)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맑은 기운이 모이는 공간’임을 의미하는 청리움은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청리움은 지자체 및 기업체 연수원으로 쓰이는 본채 건물 위쪽으로 오래된 기와를 머리에 인 오하산방이 들어선 구조다.놀랍게도 오하산방의 ‘오하(梧河)’는 김상철 회장의 호이기도 했다. 그러니 소설에서 오하산방의 주인으로 묘사된 오하산인은 바로 김 회장을 가리키는 셈이다. 실제로 죽장(竹杖)을 짚고서 손님을 맞이하는 김 회장에게서는 기업인이라기보다는 도인의 품격이 물씬 풍겼다. 청리움, 즉 오하산방이 들어선 보리산 일대는 풍수를 모르는 이들도 절로 감탄을 내뱉을 정도로 명승을 자랑하는 명당지다. 이곳을 방문한 혜거스님(동국대 동국역경원 원장)은 신선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 혹은 황룡이 여의주를 갖고 노니는 황룡농주형(黃龍弄珠形) 명당이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구룡혈(九龍穴) 터로 알려진 이곳에는 실제로 최소 9곳 이상의 명당 혈들이 곳곳에 숨은 듯이 포진돼 있다. 그중 한 곳이 맞은편 장락산을 바라보며 세워진 두 마리 거북상이다. 이곳에서 김상철 회장은 이곳 보리산과 건너편 장락산의 묘한 관계를 설명했다. “보리산과 장락산은 해발 높이가 똑같이 627m로 일종의 쌍둥이 산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교 성전인 천정궁이 있는 장락산이 오행(五行)중 화(火) 기운이라면 이곳 청리움이 들어선 보리산은 수(水)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수를 상징하는 거북상이 이곳에 배치된 것도 거센 불기운에 대응하기 위한 비보책이다.” 실제로 청리움에는 용이 물을 만나는 용소(龍沼)들도 곳곳에 포진돼 있다. 원래 있던 작은 연못들을 다듬고 가꿔서 지금의 크기로 조성했다고 한다. 이 역시 용은 물이 있어야 승천한다는 풍수적 조치라고 할 것이다. 통일교 지도자이면서 풍수에도 밝았던 고(故) 문선명 총재도 생전에 보리산의 진가를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통일교 측이 한컴그룹 소유의 보리산에 대한 매입을 진행하다가 문 총재가 사망(2012년)하는 바람에 중단됐다고 한다. 물각유주(物各有主)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천지간의 만물에는 모두 각자의 주인이 있다는 뜻이다. 장락산과 보리산의 관계도 그러한 듯싶다. 장락산은 천기(天氣)가 왕성한 영적인 산이어서 종교적 시설물이 어울리는 곳이고, 보리산은 풍요로운 지기(地氣)가 가득한 곳이어서 기업 혹은 사업체 시설물이 어울리는 곳이다. ●백색 명당토의 정체 ‘청리움’은 유럽의 어느 소도시를 방문한 것 같은 이국적 느낌을 주면서도 철저히 한국적인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400년 수령의 모과나무, 토종 된장과 간장이 맛이 진한 장독대, 오하산방의 기와 지붕에 핀 와송(瓦松), 시골 정서 물씬 풍기는 탐스러운 홍시, 산자락 곳곳에 흩뿌려 놓은 산삼 종자, 심지어 긴꼬리가 특징인 토종 닭 등이 곳곳에 숨은 듯이 자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청리움에서만큼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 것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청리움에서는 진귀한 풍수적 현상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오하산방 바로 인근에는 지름 60cm 안팎 넓이로 둥그렇게 백토(白土)가 형성된 지대가 있다. 풍수에서는 여러 색깔을 띠는 오색토 혹은 하얀 빛깔의 백토는 명당 혈임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땅의 지기에 의해 흙 색깔이 주변과 달라지는 기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곳은 명혈 터답게 터의 기운도 강하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해서 소원을 적어놓을 수 있는 펜과 종이들도 갖춰져 있다. 다음으로 한의학 원리에 의해 식물 및 나무류를 목·화·토·금·수 오행(五行)별로 분류해 심어놓은 지역이다. 보리산자락 한 모퉁이에 오행 별로 구분해 놓은 지역에서는 실제로 독특한 오행의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의 손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에서도 ▲스프링처럼 위로 솟구쳐 오르는 목의 기운 ▲머리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화의 기운 ▲묵직한 모자 혹은 철모를 뒤집어쓴 듯한 토의 기운 ▲아래로 하강하는 금의 기운 ▲뼛속까지 진동을 전해주는 수의 기운 등을 체험해볼 수 있는 게 놀라울 정도다. 이 모두 오하 김상철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처럼 성공한 기업가인 김 회장은 해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 환수 활동, 전통 예술 복원 및 후원, 한글의 세계화 등 우리문화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그는 국제로타리 아치클럼프 소사이어티 멤버이기도 하다. 미화 25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최상위 클럽 회원들에게 주어지는 명예직인데, 풍요 명당인 보리산의 보리심을 실천하는 주인공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조선 제3대 국왕 태종은 중국인들이 금강산에 목매는 이유가 궁금했다. 태종은 1404년 9월 신하들과 정책을 논의하던 중에 “중국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속언에 중국인에게는 ‘고려국에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러한가?’ 하고 물었다. 이때 하륜은 “금강산이 동국(東國, 우리나라)에 있다는 말이 대장경에 실려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금강산은 경전에 언급될 정도로 신비하고도 장엄한 산이었다. 그래서 중국 사신들은 한반도를 찾을 때마다 금강산에 직접 가보기를 원했다. 그게 여의치 못할 경우 금강산 그림이라도 구해 보기를 간절히 바랐다. 고려와 조선 조정이 중국에 금강산도(金剛山圖)를 그려 보내주었다는 기록도 여럿 있을 정도다. 그림을 통해서나마 금강산의 신령한 기운을 느껴보려는 심리는 사실 중국의 ‘와유(臥遊, 누워서 산천을 유람함)’ 전통과 무관치 않다. 와유는 방안에 누운 채 벽에 걸린 그림 속의 산수(山水)를 감상하거나 산수의 기운을 누리며 즐긴다는 뜻이다. 그 연원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화가 종병(宗炳, 375~443)에게서 찾아진다. 종병은 젊은 시절 천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몸이 늙어 더 이상 현장을 찾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대안을 찾아냈다. 자신이 찾아다녔던 산천을 그림으로 묘사해 방에 걸어두고서 마음의 눈으로 유람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와유산수(臥遊山水)는 산수화에서도 자연의 기운이 구현된다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당연히 자연의 기운을 탐색하는 풍수와도 연결되는 논리다. 우리나라에서 금강산의 와유산수를 확실하게 구사한 화가로는 겸재 정선(1676~1759)이 으뜸으로 꼽힌다. 영조 임금의 그림 선생이었던 겸재는 1734년 겨울 ‘금강전도(金剛全圖)’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장엄한 금강산의 전경을 진경(眞景)산수화풍으로 그려낸 것이다. ‘진경’은 마음에서 느낀 그대로를 그린 진짜 경치라는 뜻이다.겸재는 대작(가로 94.5cm, 세로 130.8cm)인 ‘금강전도’를 그리면서 화폭 상단에 ‘일만이천봉의 개골산(겨울 금강산), 뉘라서 그 의미를 담아 참 모습을 그려내리’라고 시작하는 제시(題詩)를 써놓았다. 그만이 금강산을 오롯이 표현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 밴 시구다. ‘금강전도’는 겸재가 노골적으로 자기 자랑을 해도 손색이 없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화성(畵聖)이라고까지 추앙받은 그의 독특한 화풍이 절묘하게 표현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우주관 혹은 세계관까지 작품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겸재는 주역 해설서인 ‘도설경해’라는 책을 쓸 정도로 역학의 대가이기도 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씨(작고)는 사대부 출신이자 도화서 화원인 겸재에 대해 연구한 후 그가 깨달은 주역의 근본 이치 및 태극, 음양, 오행 등의 사상이 ‘금강전도’에 표현돼 있다고 주장했다. 동양 산수화의 감상법 중 하나인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금강전도’를 살펴보자. 겸재는 우선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를 한데 모아 원형으로 집약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중심은 화면 한가운데 만폭동 계곡이다. 금강산 이곳 저곳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들도 모두 만폭동으로 모여든다. 천하 절경을 자랑하는 만폭동의 너럭바위가 화면의 중심이자 기운의 중심이 되는 셈이다. 이곳은 그림 속 기와 외부(화가 혹은 감상가)와의 연결로인 기구(氣口)에 해당하고, 오행으로는 중앙의 토(土)를 상징한다. 만폭동의 토 기운은 계곡의 물길을 따라 화면 아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장안사 입구 무지개다리인 비홍교에 이른다. 이곳은 큰 물을 이룬 곳이다. 오행으로는 수(水)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비홍교 쪽에서 다시 시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옮아가는데 바위로 이루어진 암봉들이 불꽃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까 금강전도의 화면 오른쪽은 화(火)의 영역이다. 이윽고 화의 공간에서 화면 최상단부로 가면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639m)이 웅장하게 묘사돼 있다. 양명한 기운이 넘쳐나는 영역으로 오행으로는 금(金)에 해당한다. 비로봉이 종(鐘)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는 것도 이곳이 금의 기운임을 표현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풍수에서는 이런 모양의 산을 금성(金星)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비로봉에서 다시 왼편 아래로 내려오면 삼림이 우거진 부드러운 산이 나타난다. 소나무 잣나무 등 수목이 우거진 이곳은 목(木)기운에 해당한다. 이처럼 ‘금강전도’는 하나의 화면 속에 오행의 기운이 골고루 표현돼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런데 오주석의 연구에 의하면 ‘금강전도’는 중앙 토에서 시작해 토극수(土剋水: 토가 수를 이김), 수극화(水剋火; 수가 불을 이김), 화극금(火剋金), 금극목(金剋木)이라는 오행 상극의 이치가 작동하고 있다. 이는 인간 세상에서는 후천(後天) 상극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역의 이치를 표현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뿐만 아니다. 화면 상단의 비로봉과 하단의 비홍교는 음양의 최정점을 암시하고 있다. 불끈 솟은 비로봉과 물이 풍부한 비홍교는 양남음녀(陽男陰女)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곳은 S자 모양의 태극(太極)으로 이어지고 있다. 겸재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설령 (금강산을) 내 발로 직접 밟아보려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어찌 베갯맡에 기대 (내 그림을) 실컷 보는 것만 하겠는가”하고 제시에서 밝혀 놓았다. 금강산을 직접 가보지 않아도 금강산의 겉 모습과 참 뜻을 표현해낸 자신의 그림에서 와유의 묘미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 부족한 기운은 그림으로 보충그림을 통한 와유의 즐거움은 현대에 와서도 누릴 수 있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음양과 오행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했다는 상식을 이해하면 금상첨화다. 옛 사람들은 산의 형태를 금,목,수,화,토의 오행으로 구분해 산의 기운을 이해했다. 중국 오대(五大;907~979년) 시기의 화가인 형호(荊浩)는 ‘필법기’라는 화론서에서 “뾰족한 형상을 봉(峰)이라 하고, 평평한 형상을 정(頂)이라 하며, 둥근 형상을 만(巒)이라 하고, 산과 산이 서로 잇대 있는 형상을 ‘영(領)’이라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산의 형태를 오행으로 분류함을 가리킨다. 날카롭고 뾰족한 봉우리를 이룬 ‘봉’은 화산(火山)에 속하며, 정상이 평평한 산은 토산(土山)에 속한다.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형상은 금산(金山)인데, 봉우리가 둥글면서도 우뚝 치솟은 형태를 하고 있으면 목산(木山)에 해당한다. 또 봉우리와 봉우리가 서로 이어진 듯 물결처럼 보이는 형태의 산은 수산(水山)에 속한다. 여기서 오행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해보자. ▲목산은 목의 기운을 상징한다. 목의 기운은 생명력, 성장과 상승, 창의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봄, 인체로는 간 기능과 관련 깊다. ▲화산은 화의 기운을 상징한다. 화의 기운은 열정, 발전과 확장, 예술성, 종교를 상징한다. 계절로는 여름, 인체로는 심장 기능과 관련 깊다. ▲토산은 토의 기운을 상징한다. 토의 기운은 조화와 중재, 균형, 포용 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환절기, 인체로는 위장 기능과 관련 깊다. ▲금산은 금의 기운을 상징한다. 금의 기운은 결실, 결단력, 용기, 자기 절제 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가을, 인체로는 폐 기능과 관련 깊다. ▲수산은 수의 기운을 상징한다. 수의 기운은 지혜, 융통성, 정신과 영혼 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겨울, 인체로는 신장 기능과 관련 깊다. 이렇게 오행이 강조된 그림에서는 실제로 오행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덕목, 혹은 건강상 도움이 되는 오행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산수화 등 그림 속에서 강조되는 특정 오행을 집안에서 마음의 눈으로 즐기다 보면 절로 부족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 바로 이게 ‘와유’의 진정한 의미이자 적절한 예술 풍수일 것이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충북 단양(丹陽)은 지명에서 신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단양은 불로장생의 핵심인 단(丹)을 연마한다는 ‘연단(鍊丹)’과, 인체 생명력인 양기(陽氣)를 잘 다스린다는 ‘조양(調陽)’에서 한 글자씩 취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단양에는 이름만큼이나 건강해지고 힐링이 되는 명소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전통의 관광도시 단양이 예전보다 더 세련되고 친환경적으로 재무장한 ‘단 명소’들로 가을 나들이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 삼선암 바위에 이름 새긴 속내는?단양에는 ‘단(丹) 여행’을 위한 특별할 길이 있다. 단양군이 조성해놓은 ‘느림보유람길’과 ‘느림보강물길’이다. 이들 길을 걷다 보면 양기 충만한 단 명소들을 차례대로 만날 수 있다. 먼저 느림보유람길은 4개 구간 총 36.6km로 이뤄져 있다. 이 중 1구간(선암골생태유람길·14.8km)과 3구간(사인암숲소리길·9.2km)에서는 신선 세계를 표현하는 글과 전설들을 집중적으로 접할 수 있다. 먼저 선암골생태유람길은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길’로 불린다. 단성면 단성생활체육공원에서 단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선암계곡의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연달아 만나게 된다. 신선이 이 세 곳 암반지대의 절경에 취해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명소들이다. 도락산에서 발원하는 선암계곡의 첫 번째 명소인 하선암(下仙巖)은 30여 개에 이르는 너른 마당바위가 펼쳐진 곳이다. 이 중 3층 구조의 흰색 너럭바위 위로는 둥글고 커다란 암반이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형상이 미륵 같다고 해서 불암(佛巖) 혹은 선암(仙巖)이라고 불린다. 하선암에서는 바위에 새겨진 각자(刻字)들이 여러 개 있다. 이 중 전서체(篆書體)로 ‘명소단조(明紹丹竈)’라는 붉은빛 글씨가 눈길을 끈다. 신선처럼 노닐던 이명(李明), 이소(李紹) 형제가 선약(仙藥)을 굽던 부엌이라고 전해진다. 장생불사의 약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선암은 명당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자 빼어난 경치로도 이름났다.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은 “바위의 사면(四面)에는 봄이면 철쭉꽃이 타는 노을 같고 가을이면 단풍이 찬란한 비단 같으니, 바위는 진실로 기이한 경치 중에서 더욱 기이하다”고 노래했다. 가을빛 물속에 비친 바위가 무지개처럼 영롱해서 ‘홍암(虹巖)’으로도 불리는 하선암을 떠나 계곡을 더 오르면 중선암을 만나게 된다. 순백색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고, 그 위로 옥빛 계곡수가 흘러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선암계곡을 상징하는 삼선구곡(三仙九曲)의 중심인 중선암 옥염대에는 1717년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가 직접 썼다고 하는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水石)’이란 글씨가 암각돼 있다. 단양, 영춘, 제천, 청풍(조선시대 행정구역) 4개 군에서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의 물과 돌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신비로운 풍경에 반한 옛 선인들은 바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깊이 새겨놓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이름만도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단지 방문 기념 삼아 새겨 놓았겠는가. 자신의 이름을 좋은 기운이 서린 바위에 새김으로써 그 기운을 취하려 한 속내까지 읽힌다. 삼선구곡의 세 번째 명소인 상선암은 크고 웅장한 바위와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조화를 이뤄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운치를 더해준다. 옛사람들은 학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이 유람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평가했다.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도록 길다랗게 펼쳐진 어느 바위 위에 앉아 폭포처럼 떨어지는 계곡 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절로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네 번째 명소인 사인암을 만나기 위해선 느림보유람길 3구간(사인암숲소리길)으로 가야 한다. 공중으로 50m 치솟은 기암절벽이 마치 긴 암석을 끼워 맞춘 듯 기이한 자태를 자랑하는 곳이다. 사인암은 고려말의 유학자 우탁이 ‘사인재관’ 벼슬에 있을 때 휴양하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사’에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고 점을 치면 틀림이 없다”고 기록할 만큼 뛰어난 역학자 우탁이 즐겨 찾은 곳이다. 곳곳에 명당 기운이 빼곡하다 보니 조선 선비들의 수토(搜討) 답사 목록 중 우선 순위였다. 선조의 손자 낭원군도 “계유년(1693년) 겨울에 다시 유람을 왔다”는 글씨를 새겨놓았을 만큼 이곳은 당대의 핫플레이스였다. ● ‘느림보 물길’ 따라 펼쳐지는 선경단양 8경 중 으뜸이자 단 명소인 도담삼봉과 석문은 남한강 강변을 따라 걷는 ‘느림보강물길’에서 만날 수 있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한가운데에서 솟은 세 개의 바위가 섬처럼 들어선 곳을 가리킨다. 강원 정선군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깃들어 있고, 호를 ‘삼봉’이라고 지은 정도전의 기지가 담긴 스토리도 전해진다. 삼봉 중 당당한 풍채가 돋보이는 가운데 바위가 장군봉이다. 이곳에는 삼도정으로 불리는 정자가 들어서 있어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명당 기운이 맺힌 곳이어서 조선 선비들이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도담삼봉은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단원 김홍도, 이방운 등이 이곳을 화폭에 담았다. 실경(實景)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순간 그림에서도 실경의 기운(氣運)이 실린다. 이를 동양의 산수화 이론에서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표현한다. 그림을 통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방운은 도담삼봉과 함께 바로 인근의 석문도 화폭에 담았다. 이곳 역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깃든 ‘단 명소’에 해당한다. 석문은 너비 20m에 달하는 무지개 모양의 자연석을 가리킨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 기둥 위로 또 하나의 바위가 가로질러 문의 형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이 빚어낸 뛰어난 조형미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둥그런 석문을 통해서는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가을 햇살로 빛나는 남한강과 그 너머로 마치 신선이 살고 있는 듯한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정겹다. 신령한 기운이 담긴 곳인 만큼 우리나라 창세 신화의 주인공인 ‘마고할미’의 전설이 담긴 동굴도 있다. 도담삼봉과 석문은 남한강 건너편 도담정원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좋다. 도담삼봉과 석문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코스모스와 백일홍, 댑싸리가 가을 정취를 만끽하게 해준다. 특히 석문이 있는 절벽에서는 사람 모습의 바위, 자라바위 등 보물처럼 숨겨진 바위 풍광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아이 등 가족을 동반한 여행이라면 느림보강물길의 시내 쪽 강변에 있는 다누리아쿠아리움을 들러 볼 일이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꼽은 강소형 잠재 관광지인 다누리아쿠아리움은 국내외 민물고기 234종, 총 2만3000여 마리를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 생태관이다. 높이 8m에 달하는 대형 수족관을 비롯해 다양한 모양의 수조 속에서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몸값이 비싼’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물고기들도 사람처럼 명당에서 더 잘 지낸다는 얘기도 있는 걸 보면, 이곳은 ‘물 명당’인 셈이다. 다누리아쿠아리움에서는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비롯해 ‘남한강의 귀족’으로 불리는 황쏘가리, 행운을 불러온다는 중국의 보호 어종 홍룡, 아마존의 거대어 피라루크 등 희귀한 민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전통의 단양 유람선 나들이도 추천 코스다. 빼어난 산수비경으로 제2의 해금강이라고 불려왔던 단양은 수많은 풍류객이 선상 유람을 즐기던 곳이었다. 단양 장회나루에서는 구담봉과 옥순봉 등을 거쳐 청풍나루를 왕복하는 유람선이 있다. 단양팔경에 속하는 구담봉과 옥순봉은 강에서 감상해야 그 운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사)백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이사장 전지명, 이하 ‘사업회’)는 23일 오전 11시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청산리대첩 승전 103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국가 보훈부 주최, 사업회 주관으로 개최하는 이 행사에는 박민식 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정치·경제계, 종교·문화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은 청산리 독립전쟁 기록영화 상영 및 독립군 찬가 공연 등도 곁들여 진행한다.사업회 측은 “백야 김좌진 장군의 국민대통합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통합 실현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여야 정당 대표는 물론 각 분야에서 활동중인 인사들에 대한 초청 범위를 예년보다 확대했다”고 밝혔다. 김좌진 장군 가족대표인 김을동 전의원은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듯이 현재의 후손들도 당면한 세계적 위기 상황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신이 필요하다”며 “청산리대첩을 기념하는 이 행사가 국민 통합의 기초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날 기념식에는 윤석열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김한길 위원장, 이종찬 광복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며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각 정당 대표들도 초청됐다. 한편 이번 행사에서는 백야 장군의 애국정신을 고양하고, 기념사업회의 선양 사업에 기여한 인사들에 대해 공로를 기리는 감사패 수여식도 있다. 감사패는 김영웅 엠젠솔루션그룹 부회장, 이두형 전 양정고등학교 국사과 교사 2명에게 수여할 예정이다.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실내 인테리어로 걸어놓은 그림이 건강이나 장수와 관련 있을까. 이 주제를 처음으로 들고나온 이가 중국 명나라의 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이다. 중국 회화사에서 그림과 ‘양생(養生)의 도’를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산수화를 북종화와 남종화로 구별한 후, 북종화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반면 남종화는 수명을 늘려준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장강(長江, 창장강) 이남 지역에서 수묵 산수화를 즐겨 그려온 남종화가들 중에서는 장수하는 이들이 많았다. 명나라 시대의 문징명(89세), 심주(82세), 진계유(81세) 등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아도 오래 살았다. 동기창 자신도 81세까지 살았다. 반면 채색 산수화를 그려온 북종화가들은 대개 환갑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동기창은 그 이유를 그림 기법에서 찾았다. 북종화는 붓으로 가늘고 긴 선, 짧고 굵은 선 등 윤곽선을 그리고 도끼로 찍어내거나 끌로 파내듯 대상물을 표현하는 구작법(鉤斫法)을 구사한다. 이 기법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세밀해 화가의 심신을 고달프게 하고 결국 수명까지 단축시킨다는 게 동기창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매너리즘적 기교와 정형화된 기법은 그림에서 생동감이 결여되는 단점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 남종화는 묵을 이용해 공간의 여백을 최대한 살려내는 선담법(渲淡法)을 구사한다. 이러한 남종화는 여유를 즐기고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동기창은 남종화가들이 그림 속에서 자연을 즐기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하고 질병이 없이 장수했다고까지 말한다. 이른바 그림에 의지하고 그림으로 낙을 삼는 ‘기화위락(寄畵爲樂)의 경지다. 남종화와 북종화의 이같은 특징은 기운(氣運)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딩시위안(丁羲元)은 저서 ‘예술풍수’에서 “구작법을 구사한 북종화는 선으로 각을 만들 듯 공간의 경계를 확정지음으로써 기(氣)를 안으로 가두거나 흡수하는 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반면 “선담법을 구사한 남종화는 공간의 경계선이 모호해 기가 외부의 공간으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즉 남종화에서는 기운이 열린 공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기운의 유동성을 두고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표현한다. 기운생동은 더 나아가 작품과 감상자에게도 이어진다. 결국 남종화를 즐기거나 가까이 하면 그림과 감응한 감상자의 건강과 장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로 볼 때 그림은 기운을 담고 있는 물상(物像)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를 다루는 풍수 인테리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다. 아무 그림이나 집안에 들여 놓아서는 안된다는 경고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화가의 출세작에 주목해야 풍수 인테리어 측면에서 집에서 걸어놓기에 좋지 않은 그림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오래된 무덤에서 출토되거나 도굴된 것들은 음물(陰物)이라고 해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들여놓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사람이 사는 집은 양기가 충만한 양택(陽宅)이어야 하는데, 죽음과 관련 있는 음기의 물건이 들어올 경우 건강에 해로움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덤에서 출토된 인형, 순장용으로 쓰인 도자기나 토관, 저승세계를 표현한 미술품 등은 아무리 예술성이 빼어나다고 해도 집안의 거실이나 침실 등에 놓아두어서는 삼가야 한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의 백골, 귀신, 도깨비 등 음산하거나 오싹한 느낌이 드는 그림들도 풍수인테리어에서는 꺼리는 대상이다.다음으로 수명이 짧거나 요절한 화가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는 화가와 작품은 서로 기운이 이어져 있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원리가 작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그림을 통해 화가의 건강과 수명 기운이 감상자에게 전달될 수 있으므로, 특히 젊은 층일수록 요절 작가의 작품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화가가 그린 작품의 실제 모델이 병약하거나 요절한 경우에도 이런 기운이 전달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편 남의 그림을 베낀 모작(模作)이나 남의 그림을 위조한 위작(僞作)도 좋지 않다고 본다. 미술 전문가들은 모작을 자주 가까이 하면 안목이 흐려져 기를 상하게 하고, 진위를 가리는 눈마저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19세기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사례로 들어 보자. 37세로 요절한 그는 죽음 직전에 ‘ 가세 박사의 초상’(1890년 작)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가세는 반 고흐의 정신 질환을 치료하던 의사였다. 반 고흐는 파리 근교 오베르에서 자살하기 얼마 전에 이 유화를 그렸는데, 현재 두 가지 판본이 전해진다. 두 작품 모두 의사인 폴 가세 박사가 오른쪽 팔에 머리를 괘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탁자에 기대 앉아 있는 모습이다. 탁자 위로는 박사의 왼손이 ‘디기탈리스’라는 식물을 쥐고 있다. 디기탈리스는 심장 통증을 치료하는 강심제(强心劑) 재료여서 폴 가세 박사와 반 고흐를 이어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기운적인 측면에서는 작품의 기운이 드나드는 기구(氣口)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디기탈리스를 바라보는 폴 가세 박사의 얼굴이 우울한 표정이다. 반 고흐는 “이 의사는 우리 시대의 암울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동생 태호에게 쓴 편지에서는 가세 박사를 가리켜 “나보다 더 중한 환자인지도 모른다”고까지 했다. 반 고흐가 죽은 지 100년이 되던 1990년 ‘ 가세 박사의 초상’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됐다. 이 작품은 일본의 제지회사 회장 사이토 요헤이에게 8250만 달러(약 1000억 원)에 팔려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또 다른 판은 현재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가셰의 유족들이 1950년대에 기증한 작품이다. 두 그림은 배경색이나 구도가 약간의 차이가 난다. 경매에 나온 그림은 노란색 책 두 권이 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데 반해 미술관 소장 작품은 책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동안 위작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예술풍수의 기운생동(氣韻生動) 관점으로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두 작품은 감정 전문가들에 의해 고흐의 진품이라고 판정났지만, 두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서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은 고흐가 그린 다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동일한 작가가 그린 그림들에서는 기법이나 형식이 아무리 달리 구사돼 있어도 작가 고유의 에너지 파동(기운)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의 에너지를 장인의 기운이라고 해서 중국에서는 ‘ 장기(匠氣)’라고 표현한다. 반면 경매에 나온 작품은 반 고흐의 고유한 기운과 좀 다르게 느껴진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기의 파동이 거친 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경매에서 이 작품을 구매한 사이토 요헤이는 3년 후 뇌물 스캔들로 징역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했고,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이 그림은 구매자가 여러번 바뀌면서 현재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어떤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화가의 출세작은 좋다고 본다. 화가가 고난을 겪으면서 성공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창작의 생명 기운이 강하게 담겨 있다. 그런 기운은 소장자나 감상자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와는 달리 성공했던 화가의 절필 작품은 반대 경우에 해당한다. 화가가 기운이 이미 쇠했거나 완전히 쇠하기 전에 잠깐 힘을 내 그린 것이므로 창작의 생명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작품의 희소성 측면에서 보면 마지막 작품이라는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예술 풍수적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소장하는 행위는 작가의 좋은 에너지를 ‘작품 값’이라는 이름으로 구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충북 제천에는 용이 빚어낸 깊고도 넓은 연못들이 있다. 용의 머리를 닮아 용두산(龍頭山·871m)이라고 불리는 산에서 흘러내린 저수지인 의림지와 비룡담이다. 의림지는 우리나라 현존 최고(最古)의 저수지이고, 용이 승천하는 기세인 비룡담은 ‘한방 치유 숲길’로 조성된 이후 주·야간 즐겨 찾는 힐링 명소로 인기가 높다. 또 그 아래쪽 청전뜰에서는 가을의 황금빛 향연(농경문화예술제)이 펼쳐지고 있다. 용두산과 짝이 되는 의림지 남쪽의 비봉산(飛鳳山·531m)에서는 봉황의 날개를 탄 듯한 기분으로 청풍호의 이국적 가을 풍경도 즐길 수 있다.》 ● 의림지의 황금빛 농경 축제 비룡담 저수지(제천시 모산동)는 의림지 위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의 인공 연못이다. 제천의 상징인 의림지보다 규모는 조금 작아 ‘제2 의림지’로 불리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경관과 쾌적한 숲길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곳이다. 최근 비룡담에서 그 위쪽 용두산 산림욕장까지 돌아오는 둘레길이 ‘제천 의림지 한방 치유숲길’로 조성됐다. 물안개길(2.4km), 솔향기길(6.5km), 온새미로길(2km), 솔나무길(0.5km) 등 4개 구간 총 11.4km 거리다. 산림청이 국토 녹화 50주년을 기념해 전국의 걷기 좋은 ‘명품 숲길’로 선정한 곳 중 하나다. 한방 치유 숲길 중 물안개길은 비룡담에서 출발해 한방 생태숲을 돌아 다시 비룡담으로 돌아오는 덱길 코스다. 보행 난도가 최저 수준으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인공으로 만든 성 구조물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낮에는 진초록 물빛의 비룡담에 반영(反影)으로 비치는 성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밤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이국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비룡’이란 이름처럼 승천하는 용이 불길을 뿜어내는 듯한 분위기다. 비룡담 저수지에서 편안한 쉼과 힐링을 맛본 후 의림지 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노송 100여 그루가 솔향기를 뿜어내는 솔밭공원을 만나게 되고, 더 아래쪽으로는 의림지, 청전뜰로 이어진다. 지금 의림지와 청전뜰에서는 황금빛 가을의 풍요로움을 체험할 수 있다. 제천시가 매년 개최하는 ‘의림지 농경문화예술제’(10월 13∼15일)다. 볏짚을 활용한 조형물로 꾸며진 농경 아트 퍼포먼스, 농기구와 농기계를 직접 조작해보는 농경문화 체험, 황금쌀을 받을 수 있는 보물찾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 농경문화를 체험한 후 의림지 역사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의림지의 역사와 구조, 생태 등을 알려주는 전문박물관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비손: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기획전시가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리고 있다. ‘비손’은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비는 행위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기복신앙의 면면을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세와 길일을 점치는 책, 길상과 벽사 무늬가 있는 각종 생활용품, 가정신을 모신 단지와 항아리, 충북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티별신제 옷과 도구 등 100여 점의 유물도 선보이고 있다. ● 청풍호가 빚어낸 녹색 선경 용두산의 용이 토해놓은 곳이 의림지라면, 봉황의 시선으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비봉산 전망대다. 비봉산은 가운데 솟은 봉우리가 봉황의 머리, 양쪽으로 뻗은 능선이 날개에 해당해 봉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양새를 한 산이다. 봉황의 머리인 정상까지는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정상의 전망대에서는 거대한 ‘내륙의 바다’인 청풍호(충주 쪽에서는 충주호)와 주변의 호반마을 등 이국적인 강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마치 하늘에서 지상의 선경(仙境)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다. 청풍호 절경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산과 청풍호를 잇는 총 58km(1∼7코스)의 산책길로 조성된 자드락길을 걷는 것이다. 자드락길은 ‘산기슭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 말이다. 이 중 자드락길 6코스인 괴곡성벽길의 청풍호 전망대에서는 또 다른 경관미를 만날 수 있다. 나선형 구조인 이곳 백봉전망대에 오르면 막힌 곳 없이 펼쳐지는 시원한 전망이 압권이다. 물안개나 낮은 구름이 산 아래로 깔려 전망이 흐려져도 괜찮다. 그 자체로 신비한 선경 세계에 들어선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인근에는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랜드가 있어 문화와 레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청풍문화재단지 내에는 충주댐 건설로 이전해온 한벽루와 석조여래입상(보물), 팔영루, 황석리 고인돌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황석리 고인돌에서는 신장 174cm의 30대 초반 남성의 뼈가 출토됐는데, 현재 한국인의 골격보다 조금 큰 북방계 인종 혹은 백인종으로 추정돼 화제가 된 바 있다. 또 이곳 고인돌 중에는 특이하게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새겨져 있는 것이 있다. 하늘과 별을 숭상하던 우리 민족의 특성을 알려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비보 풍수의 현장 신라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의 전설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덕주사로 가는 길목에는 기이한 모양의 구층석탑이 서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이다. 덕주사에서 약 2km 떨어진 산길 외딴곳에 있어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 탑은 천년 전 ‘사자빈신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있던 터에 세워진 화강암 탑이다. 원래는 9층이었는데 지금은 5층까지만 남았다. 석탑은 2층 기단에 4마리의 사자가 사방을 호위하듯 배치돼 있고, 탑 한가운데에는 머리에 두건을 쓴 비로자나불이 앉아 있다. 각기 다른 얼굴 표정을 짓고 있는 4마리 사자와 부처의 생김새도 이색적이거니와 섬세한 기법의 조각미가 돋보이는 석탑이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 삼층석탑 못지않은 품격을 갖추고 있어서 ‘왜 이런 곳에 방치돼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석탑에는 고려 현종 13년(1022년)에 ‘부처의 힘을 빌려 적을 물리치려는 소망을 담아 9층의 탑을 세운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석탑은 이곳 터의 거센 기운을 진압하기 위한 비보 풍수적 특징도 가지고 있다. 비보 풍수는 기운이 너무 거세거나 반대로 너무 빈약한 곳을 탑이나 돌 등으로 보완하는 장치를 가리킨다. 월악산 자락의 덕주사 역시 비보 풍수의 현장이다. 절 입구에는 남근석 3기가 서 있다. 월악산의 강한 음기(陰氣)를 누르기 위한 풍수적 장치다. 남근석에서 기도를 하면 득남을 한다는 소문이 나서 아이를 원하는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도 한다. 제천 여행의 별미는 미식이다. 제천은 충청·강원·경상 3도의 접경지인 만큼 음식문화가 발달돼 있다. 이 중 조선시대 3대 약령시 중 하나라는 자부심을 살려 ‘약채락(藥菜樂)’이라는 향토음식 브랜드가 주목을 끌고 있다. ‘약이 되는 음식을 먹으니 즐겁다’는 뜻의 약채락은 황기를 넣은 약간장, 당귀를 사용한 약고추장, 뽕잎으로 만든 약초소금 등 ‘약념(藥念)’ 이미지를 담은 양념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 제천시가 인증한 ‘제천맛집’ 등 식도락에 진심인 식당들을 골라 ‘음식 비보’를 즐길 수 있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동양에서 탄생한 산수화는 자연의 기운(氣運)을 화폭에 담아두는 장치이기도 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화가 종병(宗炳·375∼443)은 화론서인 ‘화산수서’에서 ‘산수화는 도(道)를 드러내는 신물(神物)’이라고 평가했다. 화가가 아름다운 산천을 감상하며 자연에 깃든 신령스러움까지 마음으로 깨달아 화폭에 담아내면, 감상자도 그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그림에서 똑같이 취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화론은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풍수의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과도 통한다.원나라 때 산수화가로 명성을 떨친 황공망(黃公望·1269∼1354)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림 속에도 풍수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풍수 명당을 그림에서도 구현해내려고 부단히 애썼다. 또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1023∼1085)는 아예 “산수화도 풍수처럼 발복(發福)한다”고까지 주장했다.사실 동양의 산수화와 풍수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자연을 다루고, 그 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생기(生氣)를 중시한다. 게다가 산수화는 그림 속의 좋은 기운을 집안에 담아두는 풍수 인테리어로서도 인기가 높다. 이처럼 그림, 조각, 도자기 등 예술품을 풍수적 시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행위를 ‘예술풍수’라고 한다. 이때 예술 작품에서 생명이 살아 움직이게끔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 ‘선(線)’이다. 그림 속의 생명력, 생동감 같은 생기는 모두 선의 움직임에 따라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는 동양 예술과 서양 예술을 구분짓는 확실한 기준점이기도 하다. 서양 예술은 선 대신 윤곽을 강조하는 면을 중시하면서, 3차원 공간과 빛의 색깔 위주로 발전해왔다. 반면 동양 예술은 투박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선을 각종 선묘법으로 구사해 ‘사의(寫意)’의 경지로 발전시켰다. 동양화에서 선이란 마치 작가의 호흡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시시각각 그 왕성한 생력력, 즉 기운을 발산하는 매개체가 선이란 뜻이다. ○ 선을 별자리로 표현한 한국화, 우주의 기운까지 담겨 바로 이 선을 찾고 구현하기 위해 예술혼을 쏟아온 한국화가가 있다. 혜명 김성희 작가(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는 “긋는 행위인 선(線)은 그 한순간에 작가의 현재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시간성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하며, 들숨과 날숨, 잠깐의 생각의 들락거림, 의식의 상태가 한 치도 숨김없이 선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한다. 또한 선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선 철학’이다. 방향성을 가진 선은 인간의 지향, 의지, 꿈, 욕망을 상징한다. 선들이 시작되고 끝나는, 혹은 만나는 지점은 하나하나 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며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을 상징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 인간의 꿈과 이상과 욕망이 투영된 별자리 스토리를 탄생시키듯 말이다. 그는 별자리의 선을 통해서 세상을 표현한다. 그래서 사람, 나무, 새 등을 묘사하고 있는 그의 그림에는 모두 별과 선이 등장한다. 별자리를 통해 삶과 만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별난 이야기 1702’를 감상해보자.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 아침 아파트의 작은 화단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목련나무 그림이다. 새들을 품은 나뭇가지 끝에는 새 싹들이 피어나는 모습도 보인다. 아름다운 빛깔의 새들은 생명을 노래하고 있고, 싹들이 피어나는 목련나무 또한 생명의 나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별과 선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예술풍수로 보자면 풍요를 상징하는 목련나무와 생명을 상징하는 새들에서는 충만한 생기가 뿜어져 나온다. 또 별자리를 통해 전달되는 우주적 에너지도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 신령스런 기운, 즉 영기(靈氣)가 있는 그림은 보는 이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작품과 1m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에너지 파장이 느껴질 정도로 중후하면서 생명력 있게 다가온다. 총체적으로 건강과 장수의 기운이 전달되는 그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놀랍게도 그의 작품은 외국인들로부터 더 주목을 끈 듯하다. 김 작가는 세계 3대 경매사 중 하나인 영국 경매사 본햄스(Bonhams)의 런던 본사에 초청돼 개인전(10월 7∼13일)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전시 기간은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런던’이 열리는 시기인데, 한국 작가가 본햄스 본사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미술 전문가들은 영국 내에서도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한 메이페어(Mayfair)에서 한국화 초청 전시가 열리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인의 정서와 삶을 한국적 소재로써 표현하는 K아트의 유럽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별 난 이야기’(Constellation Links) 연작과 여기에서 분화된 ‘투명인간’(Transparenter) 연작이 소개된다. 방향성을 가진 선(=Stroke)이 어떻게 별자리를 만드는지, 무수한 별자리들이 연계돼 어떤 형상들이 형성되는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별들과 이 지상의 존재들이 어떻게 동시에 통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신작을 포함해 그동안 작업해 온 대표작들을 소개할 예정”이라면서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술관 관장과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김 작가는 긴 장섬유로 된 한지에 먹과 천연염료를 스미게 하고, 다시 한지 위에 선을 긋거나 채색하는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예술풍수에서는 작가 의식과 예술적 감각 뿐만 아니라 이를 표현해내는 재료인 종이, 먹, 염료 등에서도 다섯가지 오행 기운(목, 화, 토, 금, 수)으로 분류해 기 에너지의 강약과 밀도 등을 감별해낸다. 선을 통해 풍수와도 접목되는 그의 작품들이 유럽 미술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본부는 단기 4356년(2023년) 개천절 기념행사를 3일 오후 1시 서울 독립문역 순국선열사당 앞 광장(독립문역3번 출구)에서 개최한다. 이 행사에서는 ‘국조전건립범국민추진위원회’ 일동 명의로 국조전 건립 선포식을 갖게 된다. 행사준비위원회의 윤승길 사무총장은 “전국에 수천 개의 단군 사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만년 역사의 구심점이며 민족의 시조이신 단군왕검을 기리는 국가적 기념 건물인 국조전(國祖殿)이 없다는 참으로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단군성조 국조전 건립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민족 최대의 선결과제라고 주장했다.국조전건립범국민추진위원회 측은 ‘민족의 기본부터 잡아야 나라가 바로 서고, 분단된 조국과 분열된 민족 구성원들을 하나된 마음과 바른 정신으로 통합하고 단결시켜 국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민족의 기본은 당연히 우리 국조인 단군이므로, 단군을 모시는 국조전 건립은 필수라는 주장이다. 윤 사무총장은 “우리 민족은 남과 북, 여야 정파를 막론하고 단군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국조전 건립은 전 국민적 동참에 호소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단기4356년(2023년) 10월3일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일정● 일시 : 2023년 10월 3일 13시~17시● 장소 : 독립문역 순국선열사당 앞 광장(독립문역3번출구)● 제1부 – 천제봉행식(13:00~14:00)● 제2부 –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기념식(14:00~16:00)● 제3부 – 통일개천 민족화합대축제(16:00~17:00)● 문의 : 사무총장 윤승길 010-7423-3038, 사무국장 송창호 010-5960-3477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시계가 없었던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은 어떻게 출퇴근 시간, 약속 시간 등을 정할 수 있었을까. 물론 세종 때 제작된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물시계인 자격루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런 시계는 사대문 안 궁궐 주위에 그것도 소수만 배치돼 특정 계층에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산의 높은 봉우리에 해가 걸리면 대략 정오, 사대문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를 아침과 저녁의 기준으로 삼아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대일항쟁기 시절 남산공원에서는 매일 대포를 쏘아 정오를 알리는 오포(午砲) 행사를 해왔다. 한양도성 내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알람 시계였다. 이는 남산이 한양에서 ‘시간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최근 ‘시간의 중심’인 남산과 함께 ‘공간의 중심’으로서 탑골공원이 주목받고 있다. 천문학자인 임정규(인하대 융합고고학과), 양홍진(한국천문연구원) 박사 등은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대회’에서 남산과 탑골공원의 천문지리적 관계성을 발표했다( ‘서울의 중심 탑골공원 입지의 융합적 분석’).이에 의하면 남산과 탑골공원은 동일 남북 자오선(子午線) 상에 위치해 있다. 탑골공원 중심부와 그 남쪽의 남산(현재 남산타워 중심부)이 모두 같은 경도선(126.9883)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위치 관계는 시간을 측정할 때 매우 중요하다. 탑골공원에서 바라보았을 때 남산의 높은 봉우리에 해가 걸리는 시각이 가장 정확한 정오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천문, 지리, 역수에 관한 업무를 맡았던 관상감(서울 종로구 원서공원 입구) 역시 이 경도선 상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게다가 탑골공원 내 원각사 십층석탑은 규표(圭表) 역할까지 해줄 수 있었다. 규표는 정오와 정남북 방향을 측정할 수 있는 막대기 같은 도구를 가리킨다. 옛사람들은 막대기를 세워놓은 뒤 해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시각을 정오로 삼았고, 정오 때의 막대기 그림자를 연장해 놓으면 바로 정남북을 가리킨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세조 임금 당시 12m 거대한 높이에 하얀 대리석으로 제작된 원각사 석탑은 백탑(白塔)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탑은 한양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평지 공간에서 가장 눈에 띄었는데, 가장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규표이기도 했던 것이다. 춘분과 추분 때 동대문으로 해가 떠올라 고대 국가에서 도시 혹은 도읍지를 건설할 때 남북 자오선은 방향을 정하는 기준선 기능을 해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대 국가일수록 자오선 방향을 따라 신성한 제단을 건립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간 도로 역시 자오선과 평행하도록 건설했다. 물론 한양의 주요 남북 방향 도로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한양도성 지도인 ‘수선전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수선전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 가로선(수평선) 한가운데 지점이 현재의 탑골공원(수선전도에서는 대사동 혹은 탑동으로 기록)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다시 세로선(수직선), 즉 남북 자오선을 그어 보면 정남쪽으로는 남산 봉우리로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한양도성 북벽 근처 휴암(鵂岩, 부엉이바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북쪽으로 더 멀리 그어 보면 놀랍게도 한양의 진산인 삼각산(북한산)과도 연결된다. 그러니까 탑골공원을 중심점으로 삼을 경우 ‘수선전도’가 전체적으로 남북좌우로 균형을 이룬 한양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이 지도에는 천문풍수적 배경도 녹아 있다. 남산과 탑골공원이 남북 자오선이 되면, 자연스럽게 동쪽의 동대문과 서쪽의 서대문은 춘분과 추분을 알려주는 표식이 된다. 즉 춘분과 추분 때는 정확히 동대문 누각으로 해가 떠오르고, 서대문(궁궐 조성시 지형적 이유로 동서 수평선 상에서 약간 비낀 지점에 설립됐음) 쪽으로 해가 진다는 얘기다. 조선 사람들은 그렇게 탑골공원에서 1년 365일의 계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춘분과 추분, 동지와 하지 때 일출과 일몰 등은 방위를 중시하는 천문풍수에서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 탑골공원은 울림이 큰 명당자리 탑골공원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종묘와 시전을 바로 옆에 두고 있는 등 한양 사람들이면 누구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위치상 민의(民意)가 모이는 중심이기도 하거니와 그 울림도 매우 컸다. 우선 조선 개혁의 목소리도 이곳에서 터져 나왔다. ‘백탑’으로 불리는 십층석탑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모였다고 해서 이른바 ‘백탑파’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들(박지원,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상수 등) 은 중국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주자학설을 버리고 주체의식과 우수한 문명을 받아들여 조선을 부국강병하게 하자고 주창했다. 북학파, 이용후생학파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조선의 개화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19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3.1운동도 남산에서 오포가 울릴 때 이곳 탑골공원에서부터 시작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탑골공원은 천문 풍수가 아닌 지리 풍수로 보아도 한양의 중심점이 되는 곳이다. 풍수에서는 사방의 산을 기준으로 남북축과 동서축이 만나는 중앙 지점을 천심십도(天心十道)라고 해서 명당 혈(穴)이 맺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름난 명당 무덤이나 건물 중 이런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탑골공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옛사람들은 탑골공원의 천문적 위치뿐만 아니라 땅의 지리적 이점까지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원각사 석탑은 에너지 파동이 매우 큰 명당 혈에 자리잡고 있다. 풍수적 시각으로 보면 탑골공원에서의 울림이 큰 것은 이곳의 명당 기운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크게 행사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 도심 속 탑골공원에서 천문과 지리를 체험해보기를 권한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조선의 학자 김일손(1464∼1498)은 지리산 여행기인 ‘두류기행록’에서 지리산은 신선술을 닦는 데 쓰이는 약재인 단사(丹砂)가 풍부한 곳이라고 기록했다. 불사(不死)·불로(不老)의 상징인 단사는 바로 지리산의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도 했다. 그는 또 지리산자락 경남 산청군 단성(丹城)을 ‘단구성(丹丘城·밤낮없이 밝은 신선 세계)’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는 등 산청을 이상향으로 묘사했다. 바로 그 산청에서 지금 ‘불로초 축제’가 한창이다. 현대식 이름으로는 ‘산청 항(抗)노화 엑스포’ 행사다. 지리산국립공원 동쪽, 왕산과 필봉산 자락 해발 400∼700m 고지에는 이색적인 공원이 들어서 있다. 동의보감촌(산청군 금서면)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지리산의 불로초와 허준의 ‘동의보감’ 스토리를 테마로 삼아 조성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한방테마파크다. 지리산자락에서 자라는 1000여 종의 자생 약초를 자랑하는 산청군이 고령토 폐광 지역을 한방공원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곳이다. 백자와 분청사기의 원료로 쓰이는 고령토는 치유 및 제독(制毒)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명당토’라고도 불리는데, 고령토가 나오는 땅은 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약 118만 ㎡ 부지에 조성된 동의보감촌 내 ‘한방기체험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경복궁 근정전을 연상케 하는 한옥 건축물이 웅장하게 들어선 이곳에는 세 개의 신비한 돌이 지맥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 있다. 위에서부터 석경, 귀감석(龜鑑石), 복석정으로 불리는 이 암석들은 터의 영향을 받아 굳세고도 좋은 기운이 뭉쳐 있다고 한다. 단연 주목받는 곳은 가운데 귀감석이다. 동의전 건물 바로 뒤로 숨은 듯이 자리 잡고 있는 귀감석은 무게만 127t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다. 땅의 지력을 돋운다고 해서 응기석(應氣石)으로도 불린다. 풍수 이론을 동원해 귀감석을 설명하는 입간판도 흥미롭다. 한방기체험장 바로 뒤인 왕산의 주맥(主脈)에서 내려오는 석경의 강기(剛氣), 필봉산에서 내려오는 문기(文氣), 그리고 고령토 명당 혈에서 응결된 응기(應氣) 등 세 가지가 기감석의 대표적 기운이라고 한다. 이 바위를 두 팔로 껴안거나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귀감석의 좋은 기운이 몸에 전달된다고 한다. 이곳을 안내한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는 한방에서 체질을 감별할 때 사용하는 오링테스트로 관광객들에게 ‘기운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관광객을 상대로 명당 터에서는 손가락의 악력이 강해지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약해지는 현상을 직접 느끼게 해주자 여기저기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2009년 이곳을 방문한 후 바로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추천받은 독일인 이참 씨의 명당 효험담도 소개돼 있다. 귀감석 위편의 석경(60t)은 돌로 만들어진 거울이다. 나쁜 기운을 내보내고 재생시키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건강을 빌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귀감석 아래편의 복석정은 솥 모양의 돌인데 복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바위 위에 동전을 놓아 두면 복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어 사람들이 동전을 두고 가는데, 산청군은 이 동전을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동의보감촌에서의 기 에너지 체험은 한방기체험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의보감촌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무릉계곡 위를 건너다니도록 한 무릉교(211m)는 기의 순환을 상징하는 곳이다. 오행(물, 나무, 불, 흙, 쇠)의 기운을 상징하는 출입문을 통과해 만나는 무릉교는 매우 이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난간 형태와는 다르게 육각형의 구조물 70개가 터널처럼 연결된 출렁다리 구조다. 이는 귀감석에 거북 등 모양으로 새겨놓은 육각형 도형을 상징한다. 왕산과 필봉산의 기운을 연결시키는 귀감석의 육각형 기운이 이 다리를 통해 다시 순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육각형은 종교의 신성성 혹은 신령함을 상징하는 기호로 많이 사용하는데, 음용수인 물도 육각형의 분자 구조를 이룰 때 인체에 가장 유익하다고 알려져 있다. 무릉교는 왕산 및 필봉산, 동의보감촌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조망 명소이자, 케이블을 따라 조명등을 설치해 야경도 매우 뛰어나다. 관람객의 필수 방문 코스 중 하나다. 무형의 기운이 아닌, 몸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직접 ‘음미하는’ 코스도 있다. 무릉교 아래쪽 ‘동의본가’라고 불리는 한방 체험 한의원이다. 이곳에서는 한의사의 지도 아래 한약인 공진단 만들기 체험과 족욕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공진단 만들기는 미리 준비된 약재를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어 금가루를 입혀 완성시키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몸으로 좋은 약초 기운을 음미하면서 가족 건강을 위한 마음으로 빚은 공진단은 포장지에 담아 선물할 수 있다. 동의보감촌 내 한방미로공원은 산책과 힐링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살균·항균 물질인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 2100그루로 조성된 미로(길이 1480m)가 인기가 높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미로 구조는 마치 인체 해부도와 비슷하다. ‘동의보감’의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남사예담촌에서 힐링하기 왕산을 사이에 두고 동의보감촌 건너편의 구형왕릉(금서면 화계리)은 산청 기 체험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김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제10대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진다.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의 장군분처럼 피라미드 형태의 돌무덤으로 유명한 곳이다. 높이 7.15m의 7층 구조인 구형왕릉 무덤은 보기 드문 명당 터라고 할 수 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기운 충전이 절로 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왕릉의 돌을 헐어버리려고 하자 뇌성벽력이 몰아쳐 왜구가 도망했다는 전설도 있고 칡넝쿨, 낙엽, 심지어 새들도 능 위를 비켜 간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한편 구형왕릉 인근에는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스승인 류의태가 사용했다는 약수터도 잘 정비돼 있다. 조선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로 희생된 성리학자 김일손이 ‘단구성’이라고 노래한 단성면의 남사예담촌도 들러볼 만하다. 남사천 강돌과 황토를 2m 높이로 쌓아 올린 담이 예스러운 멋을 한껏 자아내는 명소다. 남사예담촌은 원래 250여 채의 한옥 마을이었는데 6·25전쟁 때 많이 불타 현재 40여 채만 남았다. 과거급제자, 부자, 학자 등을 배출한 생가들의 모습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준다. 또한 남사예담촌 안에는 잘 차린 한정식집과 분위기 있는 카페가 곳곳에 있는데 터의 기운이 좋아 쉬어가기 좋다. 마을 뒤편 전망대에 오르면 마을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풍수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춘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한방 힐링과 항노화 체험 현재 동의보감촌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2023 산청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9월 15일∼10월 19일)란 이름의 행사다. 2013년에 처음 열린 이후 10년 만에 열리는 국제 축제다. 엑스포주제관, 한의학박물관, 산청약초관, 한방기체험장 등의 상설 전시관과 함께 세계전통의약관, 항노화힐링관, 한방항노화산업관, 혜민서 등 비상설 전시관 등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족 단위로 한방 힐링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혜민서가 있다. 혜민서는 조선시대에 백성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의료시설이었다. 그런 애민 정신을 구현하는 뜻으로 이곳 혜민서에서도 의사로부터 무료로 질환 및 체질에 맞는 한방 시술과 투약 처방 등을 받을 수 있다. 무료로 침, 뜸, 부항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전통의학 체험, 현대화한 스마트 치료 체험, 어린이 한방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2023 산청 엑스포가 열리는 35일간 150여 회의 공연·이벤트가 열린다. 산청군이 강조하는 표어처럼 ‘생기 한방’, ‘유쾌 한방’, ‘인생 한방’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산청=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히말라야 산맥 빙하지대에서 발원해 인도 북부 평원을 가로로 적시며 흘러가는 야무나강은 갠지스강의 최대 지류이자 인도의 신성한 7강 중 하나로 꼽힌다. 인도 수도 델리, 무굴제국의 고도(古都) 아그라 등을 옆에 끼고서 영웅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역사의 강’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도, 델리의 무용담도 이 강을 따라 펼쳐진다.● 타지마할, 지상으로 내려온 천상의 정원붉은 사암으로 빚어낸 아치형 출입 정문을 통과하니 대리석으로 만든 수로가 직선으로 펼쳐진다. 남북으로 약 280m 길이의 수로 중심에는 물이 솟아나는 인공 연못이 조성돼 있고, 수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순백의 대리석 건물이 시선을 압도해온다. 무굴제국 황제가 숨진 아내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지은 영묘(靈廟) 타지마할이다. 무굴제국의 옛 수도 아그라의 야무나 강을 배경으로 삼아 세운 건축물이다.타지마할은 1983년 ‘이슬람 예술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007년에는 세계의 경이적인 문화유산 7개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인공으로 만든 기단 위에 67m 높이의 양파 돔과 40m 높이의 4개 첨탑, 그리고 아치형 벽감으로 온 몸을 치장하고 있는 영묘는 천상의 궁궐을 표현해놓은 듯하다.영묘는 무굴제국의 5대 황제인 샤 자한(1592~1666)이 출산 중에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것이다. 그가 정복전쟁 원정길에도 늘 함께했을 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만든 기념물이다. 타지마할은 1632년 공사를 시작해 약 20여 년에 걸쳐 완공됐다. 세계 곳곳의 뛰어난 건축가 및 기술자 수천 명이 투입되고 2만여 명의 인부들이 동원됐다고 한다.영묘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위해 수로를 따라 인공 연못으로 다가갔다. 수로 한가운데의 네모반듯한 연못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따라 만든 ‘생명의 수원(水原)’이다. 천국 혹은 낙원에 있다는 4개의 수로(물, 젖, 꿀, 포도주)를 표현한 것으로,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또 이 신성한 공간을 중심으로 4개의 정사각형 구역으로 나뉜 정원은 ‘사분정원(四分庭園; 차르바그· Char Bagh)’이라고 불린다. 기하학적 모습의 정원 역시 천국을 본딴 것이다. 이 연못에서는 타지마할의 반영(反影)을 감상할 수 있다. 물빛에 반사돼 나타나는 타지마할은 건물의 상하 및 좌우의 완벽한 대칭성과 함께 조화미를 보여준다.더욱 신비한 것은 수로가 시작되는 지점인 출입구, 수로의 중간 지점인 인공 연못, 그리고 수로의 끝 지점인 영묘가 풍수적으로 모두 명당 혈(穴)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타지마할을 상징하는 3곳의 핵심 건축물이 각각 명당 혈에 배치돼 있을 뿐만 아니라, 풍요와 생명을 상징하는 수로를 통해 한 묶음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은 매우 의도적인 표현이다. 이는 타지마할의 건축가가 풍수적 안목으로 건축 설계를 했음을 보여준다.연못을 거쳐 영묘 본당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8각형 방을 중심으로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고 지하 납골당에 진짜 석관이 있다고 한다. 신성한 공간이라고 해서 신발캡을 덧씌워야 입장할 수 있고 내부 사진 촬영도 엄격히 금지돼 있다.타지마할은 일출과 일몰, 달이 뜨는 보름 등 시간에 따라 빛깔과 자태가 변한다. 주요 자재로 쓰인 대리석이 빛을 투과시키거나 굴절시키는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를 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이렇게 지켰던 것이다.하지만 황제는 그 대가를 치렀다. 황제가 아버지에게서 권력을 빼앗았듯, 그 자신도 아들 손에 폐위되고 만다. 다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 아우랑제브가 타지마할을 짓는데 국고를 탕진했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를 아그라 성의 감옥(포로의 탑)에 유배했다. 성벽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으로 불리는 이곳의 감옥은 야무나 강변을 따라 타지마할과는 약 2km 떨어져 있다. 샤 자한은 8년 동안 아내의 묘만 바라보며 살다가 숨을 거뒀다. 아들은 시신만큼은 아내 옆에 있도록 해주었다.● 노예 왕이 세운 꾸뜹 미나르무굴제국의 아그라처럼 인도의 수도 델리도 야무나 강을 끼고 있다.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델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인도 제국의 옛 수도 지역은 올드델리, 20세기 영국 식민시대에 개발된 지역은 뉴델리로 불린다. 올드델리에는 ‘쿠트브미나르 유적군’이 있다. 델리에서 부침했던 영웅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델리 술탄국’을 건국한 쿠트브 아이바크(1150~1210)다. 이 왕조는 미천한 노예 출신이 세웠다고 해서 노예왕조(1206~1290)로 불리기도 하는데, 향후 600년간 이어지는 북인도 이슬람 제국의 기반을 마련한 왕조로 평가받고 있다.쿠트브 아이바크는 종교적 열정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지도자 술탄이 되기 전인 1192년 북인도 지역을 점령한 뒤 맨 먼저 ‘쿠와트 알 이슬람(이슬람의 힘)’ 모스크를 건설했고, 이듬해인 1193년에는 쿠트브미나르라는 둥그란 탑을 조성했다. 이 모스크와 탑은 원래 있던 27개 힌두교와 자이나교 사원 등을 코끼리를 동원해 무너뜨린 후 지어졌다. 인도 전통 종교에 대한 이슬람의 승전을 상징하는 조치였다.쿠트브미나르의 위용은 대단하다. 원래 이 탑은 2층 규모의 벽돌탑이었는데, 그의 후계자에 의해 3층을 더해 5층짜리 탑으로 완성됐다. 높이 73m인 이 탑은 아래 지름 14.32m, 위쪽 지름 2.75m로, 아래에서 위로 줄어드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탑 안쪽으로는 379개의 원형 계단이 있는데 일반 관광객에게는 개방되지 않는다.모스크인 쿠와트 알 이슬람은 다양한 종교의 양식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1205년에 완성된 이 모스크는 동서 43m, 남북 32.4m 규모의 회랑형 사각 구조다. 현재는 정면에 세웠던 석조 아치 벽과 안뜰의 회랑 등 일부만이 남았다. 회랑에 세워진 열주들은 힌두교 사원들을 파괴해 얻은 석재를 그대로 사용했기에 힌두교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모스크 뜰에는 굽타 왕조 때 만들어진 철주도 눈에 띈다. 높이 7.2m에 무게 10t인 이 철기둥은 402년 찬드라굽타 2세가 비슈누 사원에 세웠던 것을 10세기경 힌두교 사원을 신축할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찬드라굽타 2세는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굽타 제국을 이끈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는 영웅이다. 그는 힌두교의 최고신중 하나인 비쉬누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고, 비쉬누 신전을 지으면서 이 쇠기둥을 세웠다고 한다.이 철기둥은 순도가 매우 높아 16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지상 부분이 녹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현재 철주가 있는 자리는 대단한 에너지가 감돌고 있는 명당 터다. 영헝한 철주로 소문나 많은 사람들이 철주를 껴안는 바람에 접근을 금지하는 철책까지 만들었다고 한다.199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꾸뜹 미나르 유적군은 이외에 이슬람문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알라이 다르와자 문, 미완성 탑인 알라이 미나르, 일투트미쉬왕의 무덤 등이 있다.한편 뉴델리에도 빼놓으면 서운한 명소들이 적지 않다. 붉은 사암 벽돌로 주변을 두르고 108개에 달하는 계단이 땅 밑으로 뻗어 있는 계단형 우물인 아그라센 키 바올리는 인도 젊은이들의 데이크 코스로 유명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으로 꼽히는 스와미나라얀 악샤르담, 책에서나 보았던 인도 예술의 진품들이 진열된 인도 국립박물관 등은 눈을 풍요롭게 해준다.여행 정보인도는 최근 몽골과 더불어 우리나라 MZ세대들 사이에서 ‘독특한 체험 명소’로 부상하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아고라, 델리, 바라나시 등 인부 북부는 힌두교와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과 예술품으로 여행객들의 인기를 끄는 지역이다. 이에 따라 국내 해외여행 전문업체들이 인도 각 도시를 순례하는 여행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 뿐만 아니라 이웃한 부탄, 네팔의 독특한 불교 건축 여행까지 연계한 패키지 상품도 출시됐다. 인도-부탄, 인도-네팔 패키지는 힐링과 명상까지 고려한 특수 여행 상품이어서 코다투어, 호경관광여행사 등 불교세가 강한 영남 지역의 여행업체들이 주로 다루고 있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히말라야산맥 빙하지대에서 발원해 인도 북부 평원을 가로로 적시며 흘러가는 야무나강은 갠지스강의 최대 지류이자 인도의 신성한 7강 중 하나로 꼽힌다. 인도 수도 델리, 무굴제국의 고도(古都) 아그라 등을 옆에 끼고서 영웅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역사의 강’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도, 델리의 무용담도 이 강을 따라 펼쳐진다. ● 타지마할, 지상으로 내려온 천상의 정원아치형 출입문을 통과하니 대리석으로 만든 수로가 직선으로 펼쳐진다. 남북으로 약 280m 길이의 수로 중심에는 물이 솟아나는 인공 연못이 조성돼 있고, 수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순백의 대리석 건물이 시선을 압도해 온다. 무굴제국 황제가 숨진 아내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지은 영묘(靈廟) 타지마할이다. 무굴제국의 옛 수도 아그라의 야무나강을 배경으로 삼아 세운 건축물이다. 타지마할은 1983년 ‘이슬람 예술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007년에는 세계의 경이적인 문화유산 7개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인공으로 만든 기단 위에 67m 높이의 양파 돔과 40m 높이의 4개 첨탑, 그리고 아치형 벽감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는 영묘는 천상의 궁궐을 표현해 놓은 듯하다. 영묘는 무굴제국의 5대 황제인 샤자한(1592∼ 1666)이 출산 중에 세상을 떠난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것이다. 그가 정복 전쟁 원정길에도 늘 함께했을 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만든 기념물이다. 타지마할은 1632년 공사를 시작해 20여 년에 걸쳐 완공됐다. 세계 곳곳의 뛰어난 건축가 및 기술자 수천 명이 투입되고 2만여 명의 인부가 동원됐다고 한다. 영묘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위해 수로를 따라 인공 연못으로 다가갔다. 수로 한가운데의 네모반듯한 연못은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따라 만든 ‘생명의 수원(水源)’이다. 천국 혹은 낙원에 있다는 4개의 수로(물, 젖, 꿀, 포도주)를 표현한 것으로,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또 이 신성한 공간을 중심으로 4개의 정사각형 구역으로 나뉜 정원은 ‘사분정원(四分庭園·차르바그)’이라고 불린다. 기하학적 모습의 정원 역시 천국을 본뜬 것이다. 이 연못에서는 타지마할의 반영(反影)을 감상할 수 있다. 물빛에 반사돼 나타나는 타지마할은 건물의 상하 및 좌우의 완벽한 대칭성과 함께 조화미를 보여준다. 더욱 신비한 것은 수로가 시작되는 지점인 출입구, 수로의 중간 지점인 인공 연못, 그리고 수로의 끝 지점인 영묘가 풍수적으로 모두 명당 혈(穴)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타지마할을 상징하는 3곳의 핵심 건축물이 각각 명당 혈에 배치돼 있을 뿐만 아니라 풍요와 생명을 상징하는 수로를 통해 한 묶음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은 매우 의도적인 표현이다. 이는 타지마할의 건축가가 풍수적 안목으로 건축 설계를 했음을 보여준다. 연못을 거쳐 영묘 본당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8각형 방을 중심으로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고 지하 납골당에 진짜 석관이 있다고 한다. 신성한 공간이라고 해서 덧신을 신어야 입장할 수 있고 내부 사진 촬영도 엄격히 금지돼 있다. 타지마할은 일출과 일몰, 달이 뜨는 보름 등 시간에 따라 빛깔과 자태가 변한다. 주요 자재로 쓰인 대리석이 빛을 투과시키거나 굴절시키는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를 지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이렇게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그 대가를 치렀다. 황제가 아버지에게서 권력을 빼앗았듯, 그 자신도 아들 손에 폐위되고 만다. 다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 아우랑제브가 타지마할을 짓는 데 국고를 탕진했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를 아그라 성의 감옥(포로의 탑)에 유배했다. 성벽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으로 불리는 이곳의 감옥은 야무나 강변을 따라 타지마할과는 약 2km 떨어져 있다. 샤자한은 8년 동안 아내의 묘만 바라보며 살다가 숨을 거뒀다. 아들은 시신만큼은 아내 옆에 있도록 해주었다. ● 노예 왕이 세운 쿠트브미나르무굴제국의 아그라처럼 인도의 수도 델리도 야무나강을 끼고 있다. 델리는 17∼19세기경 인도의 옛 수도 지역을 올드델리, 20세기 영국 식민시대에 개발된 곳을 뉴델리로 구분 짓기도 한다. 올드델리에는 ‘쿠트브미나르 유적군’이 있다. 델리에서 부침했던 영웅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델리 술탄국’을 건국한 쿠트브 아이바크(1150∼1210)이다. 이 왕조는 미천한 노예 출신이 세웠다고 해서 노예왕조(1206∼1290)로 불리기도 하는데, 향후 600년간 이어지는 북인도 이슬람 제국의 기반을 마련한 왕조로 평가받고 있다. 쿠트브 아이바크는 종교적 열정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지도자 술탄이 되기 전인 1192년 북인도 지역을 점령한 뒤 맨 먼저 ‘쿠와트 알 이슬람’(이슬람의 힘) 모스크를 건설했고, 이듬해인 1193년에는 쿠트브미나르라는 둥그런 탑을 조성했다. 이 모스크와 탑은 원래 있던 27개 힌두교와 자이나교 사원 등을 무너뜨리고 지어졌다. 인도 전통 종교에 대한 이슬람의 승전을 상징하는 조치였다. 쿠트브미나르의 위용은 대단하다. 원래 이 탑은 2층 규모의 벽돌탑이었는데, 그의 후계자에 의해 3층을 더해 5층짜리 탑으로 완성됐다. 높이 73m인 이 탑은 아래 지름 14.32m, 위쪽 지름 2.75m로, 위로 갈수록 줄어드는 형태를 띠고 있다. 탑 안쪽으로는 379개의 원형 계단이 있는데 일반 관광객에게는 개방되지 않는다. 모스크인 쿠와트 알 이슬람은 다양한 종교의 양식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1205년에 완성된 이 모스크는 동서 43m, 남북 32.4m 규모의 회랑형 사각 구조다. 현재는 정면에 세웠던 석조 아치 벽과 안뜰의 회랑 등 일부만이 남았다. 회랑에 세워진 열주들은 힌두교 사원들을 파괴해 얻은 석재를 그대로 사용했기에 힌두교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모스크 뜰에는 굽타 왕조 때 만들어진 철주가 눈에 띈다. 높이 7.2m에 무게 10t인 이 철기둥은 402년 찬드라굽타 2세가 비슈누 사원에 세웠던 것을 10세기경 힌두교 사원을 신축할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찬드라굽타 2세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굽타제국을 이끈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는 영웅이다. 그는 힌두교의 최고 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고, 비슈누 신전을 지으면서 이 쇠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이 철기둥은 순도가 매우 높아 1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상 부분이 녹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철주가 있는 자리는 대단한 에너지가 감돌고 있는 명당 터다. 영험한 철주로 소문나 많은 사람들이 철주를 껴안는 바람에 접근을 금지하는 철책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199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쿠트브미나르 유적군에는 이 외에도 이슬람 문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알라이 다르와자 문, 미완성 탑인 알라이 미나르, 일투트미시 왕의 무덤 등이 있다. 한편 뉴델리에도 빼놓으면 서운한 명소들이 적지 않다. 붉은 사암 벽돌로 주변을 두르고 108개에 달하는 계단이 땅 밑으로 뻗어 있는 계단형 우물인 아그라센 키 바올리는 인도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으로 꼽히는 스와미나라얀 악샤르담, 책에서나 보았던 인도 예술의 진품들이 진열된 인도 국립박물관 등은 눈을 풍요롭게 해준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스스로는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나라, 탄소배출량 제로인 탄소중립을 넘어서서 배출보다 흡수가 많은 ‘탄소흡수국’을 실현한 나라. 인도와 중국 사이에 낀 히말라야의 소왕국 부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탄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몽골반점을 가지고 있고, 남자가 혼인하면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고구려식 데릴사위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왠지 낯설지 않은 기시감(旣視感)까지 들게 하는 이 신비한 나라로의 여행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탐험이다.부탄은 입국에서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해발 2241m 협곡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파로 국제공항은 시계비행으로만 짧은 활주로에 착륙해야 한다. 비행기가 산에 부딪혀 추락할 것만 같은 아찔한 곡예의 순간을 거쳐 활주로에 바퀴가 닿아서야 비로소 멈췄던 숨이 쉬어질 정도다.한반도 5분의 1 면적(3만8816㎢)에 인구 약 75만 명의 작은 왕국인 부탄은 눈이 닿는 곳마다 무성한 녹색 계곡, 구름과 눈으로 살짝 가려진 우뚝한 산봉우리, 히말라야 설산(雪山)에서 발원한 투명하고도 깨끗한 강이 펼쳐진다.‘천둥 용의 땅’이라고 불리는 부탄은 불교 문화가 융성한 나라다. ‘종(Dzong)’이라고 불리는 전통 사원이 문화유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종은 대체로 언덕 위 혹은 산비탈에 요새처럼 조성돼 있는 형태다. 종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군사 및 행정 기능까지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신정일치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부탄 여행은 각 지역에 산재한 종으로의 ‘탐험’이 핵심이다. 독특한 지형적 특색을 갖춘 종은 성스러운 에너지가 감도는 명당일 뿐만 아니라, 종과 관련돼 전해지는 기이한 전설이나 일화는 부탄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왕이 진심으로 존경받는 나라파로 공항에서 파로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의 소도시 규모인 팀푸에서부터 부탄의 대표적인 종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먼저 찾은 곳이 높이 51.5m의 청동 불상인 도르덴마상이다. 팀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세워진 이 불상은 세계 최대 높이를 자랑한다. 이 불상은 팀푸 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바라보이는데, 팀푸 시민들의 정신적 의지처가 된다. 마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르코바두 언덕에 세워진 초대형 그리스도상을 보는 듯하다.도르덴마상 내부로 들어서면 12만5000기에 달하는 소규모 불상들이 사방으로 빽빽이 들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신앙심 깊은 부탄 사람들이 불상을 가져와 이곳에 모셔 놓은 것이라고 한다. 불상 터의 기운을 살펴보니 나무랄 데 없는 명당이다. 풍수적으로 권력과 부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부탄인 현지 가이드는 “원래 이 땅은 부탄의 장관 등 고급 관리들이 살던 관사 터였다”고 설명했다.팀푸 시내로 내려와 부탄의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재위 1952~1972년)를 기리는 국립추모탑(National Memorial Chorten)을 찾았다. 불경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거나, 추모탑을 돌면서 부처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3대 국왕을 위해 그의 어머니가 1974년에 조성한 탑이라고 한다.이 추모탑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왜 진정으로 국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절대왕정국가였던 부탄에서 제3대 국왕은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국회(국민의회)를 설립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졌다. 왕위를 이어받은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재위 1972~2006년)도 아버지의 노선을 따랐다. 4대 국왕은 또 “GNP(국민총생산)보다 GNH(국민총행복)가 더 중요하다”며 정부 기구로 ‘국민행복청’을 설치했다. 그는 2년마다 국민총행복지수를 조사 발표하며 민생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현재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한발 더 나아가 2008년 절대군주제를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왕이 스스로 결단해 권좌에서 내려온 것은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두물머리 명당의 푸나카 종수도 팀푸를 중심으로 동쪽 권역으로는 푸나카 종과 치미랑카 종이 중요 포인트다. 먼저 1637년에 건설된 푸나카 종은 부탄에서 가장 웅장하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새 중 하나다. 이 종은 푸나카가 부탄의 수도였던 1955년까지 부탄 행정 및 종교의 중심 기능을 수행했다.강 위로 놓인 사다리 문을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는 푸나카 종은 모추강(어머니강)과 포추강(아버지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천연 요새이기도 하다. 종 아래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실제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양수리(두물머리)처럼 두 강이 합수되는 명당 터에 있는 이곳은 풍수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푸나카 종은 새하얀 외벽의 불그스름한 건물이 옥색 물빛과 어우러져 마치 아름다운 연꽃처럼 보인다.이 사원은 부탄의 초대 국왕 대관식이 열린 곳이자, 국회가 최초로 개원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2011년 현재의 5대 국왕이 평민 출신의 여성과 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사원은 행복 궁전으로도 불린다.푸나카 종에서 강을 따라 남쪽으로 6.5km 떨어진 곳의 치미라캉 사원은 ‘득자(得子·자식을 얻음)’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사원 입구 쪽 마을에는 집집마다 기묘한 형상의 남근(男根)이 그려져 있는데, 역시 자식 생산의 의미가 담겨 있다.이 사원은 15세기 때 고승인 람 둑파퀸리(1455~1570)의 기이한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히말라야의 걸승’으로 기행을 일삼았던 그는 5000명의 여자와 섹스를 통한 탄트라 수행을 해왔고, 입적할 때는 자신의 남근을 잘라 나무에 봉인했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많은 부부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절벽에 세워진 호랑이 둥지 수도원팀푸 서쪽 권역으로는 탁상 사원이 있다. 해발 3120m 절벽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붙어 있는 탁상 사원은 부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명승지다.이 사원은 ‘호랑이 둥지’라고 불린다. 8세기경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티베트 불교의 전설적인 인물인 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내려와 사원을 건립했다는 얘기에 따른 것이다.호랑이 둥지로의 여행은 만만치 않은 트레킹 코스다. 고지대라서 숨이 쉽게 가빠지는 데다,비탈진 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아찔한 절벽 사이로 난 길을 한참 오르면 중간 휴게소 격인 카페테리아에 닿는다. 입구에서 이곳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돈을 내면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말을 타고 산비탈 길을 오르고 나면 말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냥 속 편하게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카페테리아에서 또다시 1시간 정도 호흡을 조절하며 오르면 사원에 도착한다. 사원은 바라만 보아도 신성한 기운이 절로 배어나는 듯하다. 파드마 삼바바가 이곳에 머물며 명상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발자국이 아직도 동굴 중 하나에 남아 있다고 한다.이곳은 1998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다. 옛 사람들은 영험한 기운이 밴 장소를 호랑이, 용, 코끼리 등 동물을 끌어들여 상징적으로 묘사했는데, 이곳 역시 호랑이 둥지 터라고 해서 명당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실 절벽 위에 새 둥지처럼 지어진 탁상 사원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건설했는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이 외에도 ‘보석 위의 요새’라는 뜻의 파로 종, 불교 사원이자 정부청사 역할을 하고 있는 타시초 종, 요괴를 바위 밑에 가두고 세웠다는 심토카 종 등도 들러 볼 만하다.부탄으로 가려면●교통=한국에서 부탄으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태국 방콕이나 인도 델리, 네팔 카트만두를 경유해야 한다. 부탄 국영항공사 드루크 에어(Druk Air)가 취항하고 있다.●부대 조건=부탄에서는 배낭여행 등 개별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여행객은 반드시 부탄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지속가능한 발전 비용(SDF)’ 명목으로 하루 1인당 200달러씩 여행 세금을 내야 한다. 부탄 당국은 SDF로 확보한 자금은 자연, 문화 전통 보호, 관광 인프라 구축 사업 등에 사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부탄 여행은 이런 부대 조건을 감안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 투어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현재 인도·부탄·네팔 전문 여행사인 ‘다이너스티 코리아’가 부탄과 인도 여행을 결합한 패키지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부탄 정보=부탄 사람들은 부탄어인 ‘종카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서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부탄의 사원으로 들어가려면 깃이 있는 티셔츠와 긴 바지가 필요하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 외에 부탄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부탄 외교부가 공식 승인한 한국부탄우호협회(회장 김민경) 홈페이지(www.koreabhutan.com)를 이용하면 된다.안영배 기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스스로는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나라, 탄소배출량 제로인 탄소중립을 넘어서서 배출보다 흡수가 많은 ‘탄소흡수국’을 실현한 나라. 인도와 중국 사이에 낀 히말라야의 소왕국 부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탄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몽골반점을 가지고 있고, 남자가 혼인하면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고구려식 데릴사위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왠지 낯설지 않은 기시감(旣視感)까지 들게 하는 이 신비한 나라로의 여행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탐험이다. 부탄은 입국에서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해발 2241m 협곡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파로 국제공항은 시계비행으로만 짧은 활주로에 착륙해야 한다. 비행기가 산에 부딪혀 추락할 것만 같은 아찔한 곡예의 순간을 거쳐 활주로에 바퀴가 닿아서야 비로소 멈췄던 숨이 쉬어질 정도다. 한반도 5분의 1 면적(3만8816㎢)에 인구 약 75만 명의 작은 왕국인 부탄은 눈이 닿는 곳마다 무성한 녹색 계곡, 구름과 눈으로 살짝 가려진 우뚝한 산봉우리, 히말라야 설산(雪山)에서 발원한 투명하고도 깨끗한 강이 펼쳐진다. ‘천둥 용의 땅’이라고 불리는 부탄은 불교 문화가 융성한 나라다. ‘종(Dzong)’이라고 불리는 전통 사원이 문화유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종은 대체로 언덕 위 혹은 산비탈에 요새처럼 조성돼 있는 형태다. 종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군사 및 행정 기능까지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신정일치제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탄 여행은 각 지역에 산재한 종으로의 ‘탐험’이 핵심이다. 독특한 지형적 특색을 갖춘 종은 성스러운 에너지가 감도는 명당일 뿐만 아니라 종과 관련돼 전해지는 기이한 전설이나 일화는 부탄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 왕이 진심으로 존경받는 나라 파로 공항에서 파로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한다. 우리나라의 소도시 규모인 팀푸에서부터 부탄의 대표적인 종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먼저 찾은 곳이 높이 51.5m의 황금 불상인 도르덴마상이다. 팀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세워진 이 불상은 세계 최대 높이를 자랑한다. 도르덴마상 내부로 들어서면 12만5000기에 달하는 소규모 불상들이 사방으로 빽빽이 들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신앙심 깊은 부탄 사람들이 불상을 가져와 이곳에 모셔 놓은 것이라고 한다. 불상 터의 기운을 살펴보니 나무랄 데 없는 명당이다. 풍수적으로 권력과 부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부탄인 현지 가이드는 “원래 이 땅은 부탄의 장관 등 고급 관리들이 살던 관사 터였다”고 설명했다. 팀푸 시내로 내려와 부탄의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재위 1952∼1972년)를 기리는 국립추모탑을 찾았다. 불경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거나, 추모탑을 돌면서 부처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추모탑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왜 진정으로 국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절대왕정국가였던 부탄에서 제3대 국왕은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국회(국민의회)를 설립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왕위를 이어받은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재위 1972∼2006년)도 아버지의 노선을 따랐다. 4대 국왕은 또 “GNP(국민총생산)보다 GNH(국민총행복)가 더 중요하다”며 정부 기구로 ‘국민행복청’을 설치했다. 그는 2년마다 국민총행복지수를 조사 발표하며 민생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현재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한발 더 나아가 2008년 절대군주제를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왕이 스스로 결단해 권좌에서 내려온 것은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 두물머리 명당의 푸나카 종 수도 팀푸를 중심으로 동쪽 권역으로는 푸나카 종과 치미라캉 종이 중요 포인트다. 먼저 1637년에 건설된 푸나카 종은 부탄에서 가장 웅장하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요새 중 하나다. 이 종은 푸나카가 부탄의 수도였던 1955년까지 부탄 행정 및 종교의 중심 기능을 수행했다. 강 위로 놓인 사다리 문을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는 푸나카 종은 모추강(어머니강)과 포추강(아버지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천연 요새이기도 하다. 종 아래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실제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양수리(두물머리)처럼 두 강이 합수되는 명당 터에 있는 이곳은 풍수적으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푸나카 종은 새하얀 외벽의 불그스름한 건물이 옥색 물빛과 어우러져 마치 백색의 아름다운 연꽃처럼 보인다. 이 사원은 부탄의 초대 국왕 대관식이 열린 곳이자, 국회가 최초로 개원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2011년 현재의 5대 국왕이 평민 출신의 여성과 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사원은 행복 궁전으로도 불린다. 푸나카 종에서 강을 따라 남쪽으로 6.5km 떨어진 곳의 치미라캉 종은 ‘득자(得子·자식을 얻음)’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사원 입구 쪽 마을에는 집집마다 기묘한 형상의 남근(男根)이 그려져 있는데, 역시 자식 생산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사원은 15세기 때 고승인 람 둑파퀸리(1455∼1570)의 기이한 사연으로도 유명하다. ‘히말라야의 걸승’으로 기행을 일삼았던 그는 5000명의 여자와 섹스를 통한 탄트라 수행을 해왔고, 입적할 때는 자신의 남근을 잘라 나무에 봉인했다고 한다.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많은 부부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절벽에 세워진 호랑이 둥지 수도원팀푸 서쪽 권역으로는 탁상 사원이 있다. 해발 3120m 절벽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붙어 있는 탁상 사원은 부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명승지다. 이 사원은 ‘호랑이 둥지’라고 불린다. 8세기경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티베트 불교의 전설적인 인물인 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내려와 사원을 건립했다는 얘기에 따른 것이다. 호랑이 둥지는 바라만 보아도 신성한 기운이 절로 배어나는 듯하다. 파드마 삼바바가 이곳에 머물며 명상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발자국이 아직도 동굴 중 하나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은 1998년 화재로 소실됐지만 복원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옛 사람들은 영험한 기운이 밴 장소를 호랑이, 용, 코끼리 등 동물을 끌어들여 상징적으로 묘사했는데, 이곳 역시 호랑이 둥지 터라고 해서 명당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실 절벽 위에 새 둥지처럼 지어진 탁상 사원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건설했는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외에도 ‘보석 위의 요새’라는 뜻의 파로 종, 불교 사원이자 정부청사 역할을 하고 있는 타시초 종, 요괴를 바위 밑에 가두고 세웠다는 심토카 종 등도 들러 볼 만하다. 부탄으로 가려면교통 한국에서 부탄으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태국 방콕이나 인도 델리, 네팔 카트만두를 경유해야 한다. 부탄 국영항공사 드루크 에어(Druk Air)가 취항하고 있다. 부대 조건 부탄에서는 배낭여행 등 개별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여행객은 반드시 부탄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게다가 ‘지속가능한 발전 비용(SDF)’ 명목으로 하루 1인당 200달러씩 여행 세금을 내야 한다. 부탄 당국은 SDF로 확보한 자금은 자연, 문화 전통 보호와 관광 인프라 구축 사업에 사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부탄 여행은 이런 부대 조건을 감안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 투어로 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현재 인도·부탄·네팔 전문 여행사인 ‘다이너스티 코리아’가 부탄과 인도 여행을 결합한 패키지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부탄 여행 팁 부탄 사람들은 부탄어인 ‘종카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서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부탄의 사원으로 들어가려면깃이 있는 티셔츠와 긴 바지가 필요하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 외에 부탄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부탄 외교부가 공식 승인한 한국부탄우호협회(회장 김민경)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