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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댄스(Trump Dance)가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CNN방송) 처음엔 조롱의 대상이었다.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타운홀 행사. 유세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갑자기 음악을 틀어달라더니 무려 40분 동안 말도 없이 춤을 췄다. 실은 춤이라 부르긴 민망한, 둠칫둠칫 어깨를 들썩이는 수준. 경쟁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조차 X에 “(정신) 건강이 괜찮길 바란다”고 했을 정도였다. 미 음악계에서 이게 댄스인지, 꿈틀거림(wriggling)인지 갑론을박이 오갈 정도로 놀림거리였던 몸짓. 하지만 세상은 모를 일이다. 대선 뒤 트럼프 댄스는 삽시간에 승리의 세리머니로 둔갑했다. 특히 여러 스포츠 선수들이 따라 하며 소셜미디어에 숱한 밈(meme)이 쏟아지고 있다.시작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였다. 10일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대결. 포티나이너스의 닉 보사 선수가 태클 성공 뒤 어정쩡한 춤을 선보였다. 지난달 인터뷰에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썼다가 정치 중립 위반으로 벌금 1만1255달러(약 1565만 원)를 냈던 그였기에 뭘 하는 건지 누구나 알아봤다. 보사는 이후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에 “모두가 내게 트럼프 댄스를 원했을 것”이라며 “그저 호응에 응했을 뿐”이라고 했다. 던져진 불씨는 온 들판에 퍼져갔다. 종합격투기(UFC) 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는 16일 뉴욕 경기 승리 뒤 트럼프 댄스를 춰 현장에서 지켜보던 트럼프 당선인을 흐뭇하게 했다. 이후 NFL의 저데리어스 스미스와 브록 바워스, 캘빈 리들리도 동참했다. 심지어 미국이 자랑하는 축구스타 크리스천 풀리식(AC밀란)까지 18일 국가대표전에서 따라 했다. 보사와 존스 외엔 모두 “정치적 의도 없이 재미 삼아 췄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불길은 활활 타올랐다. 친(親)트럼프 매체 폭스뉴스는 신이 났다. 진행자 제시카 탈로브는 “스포츠 스타들의 솔직한 의견 표명은 환상적”이라며 “트럼프 당선인과 스포츠계의 재결합(reunion)이 시작됐다”고 반가워했다. 사실 트럼프 당선인은 소문난 스포츠 애호가다. 골프광이자 뉴욕 양키스의 열혈 팬이고, 복싱 사이클 레슬링 등 여러 종목을 후원해왔다.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가 강성 트럼프 지지자가 된 건 UFC가 초창기 스포츠계에서 따돌림당할 때 트럼프 당선인이 적극 도와줬던 게 결정적 계기였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첫 재임 동안 스포츠계와 원만하지 않았다.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언동과 정책으로 많은 스타들이 등을 돌렸다. 미국프로농구(NBA)의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픈 커리는 대표적 트럼프 혐오주의자들. 미 프로 스포츠는 우승하면 이듬해 백악관 방문이 관례이나, 상당수 NBA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응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절대 참지 않는’ 트럼프 당선인은 폭언을 퍼부었다. 내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탈로브의 말대로 ‘데탕트(D´etente)’가 이뤄질까. 일단 6월 16년 만에 우승했던 NBA 보스턴 셀틱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고 한다. 농구는 리그 시작이 빨라 이달 2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 프로야구 LA 다저스다. 핵심 멤버인 감독 데이브 로버츠와 슈퍼스타 무키 베츠는 트럼프 초대를 거절한 전력이 있다. 역시나 세상 일은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린 오타니 쇼헤이와 트럼프 당선인의 어깨동무를 볼 수도 있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마음의 응어리는 오래간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그걸 쉽게 잊을 사람이 아니다. 함께 춤을 춰도 언제 발을 밟을지 모른다. 그게 스포츠건 아니건.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가 돌아왔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수정의 밤’은 유대인에겐 잊지 못할 날이다. 1938년 11월 9일 독일. 나치가 유대인 가게와 사원을 습격해 91명이 숨졌다. 그날 밤거리는 부서진 유리창 파편이 수정처럼 반짝였다고 한다. 아픈 역사가 언급된 건 7일(현지 시간)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집단 폭행 때문이다. AFC 아약스와 마카비 텔아비브 FC의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UEL) 경기 뒤 이스라엘 원정팬들이 거리에서 린치를 당했다. 30명 이상 다쳤고 중상인 5명은 병원에 실려갔다. 정황을 보면, 이 사건은 축구 탓이 아니다. 아약스가 5 대 0으로 이겨 홈팀이 열받을 리 없다.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친(親)팔레스타인 아랍계 이민자들”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딕 스호프 네덜란드 총리도 “반유대주의 폭력 행위”로 규정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비열한 짓”이라 성토한 사태. 한데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영국 가디언은 12일 “낌새가 상당했지만 각 정부 당국 등이 간과해 사태를 키웠다”고 전했다. 시간을 되돌려, 어쩌면 이번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3번의 기회’를 살펴보자. ①시합 몇 주 전=네덜란드는 아랍계 이민자가 20만 명이 넘는다. 가자 전쟁 발발 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도 줄기찼다. 이에 일부 이스라엘 극렬팬들은 몇 주 전부터 소셜미디어에 적의를 드러냈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만세”라며 분탕질도 모의했다. 축구는 훌리건(hooligan) 역사가 깊다. 때문에 사고 칠 기미가 보이면 경기장 입장을 막고 24시간 감시한다. 영국 등은 악성 팬을 흉악범 취급해 출국부터 불허한다. 반면 이스라엘 정부는 어떤 조치도 없었다. ②시합 이틀 전=우려는 현실이 됐다. 암스테르담 경찰에 따르면 5일 몇몇 이스라엘 팬들은 “팔레스타인에 죽음을” 등을 외치고 다녔다. 시내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찢고 불태웠다. 여러 아랍계 택시 기사가 손찌검을 당했다. “가자엔 학교가 필요 없지. 아이들이 (죽어서) 없거든”이란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이 틱톡에 올라왔다. 이때 공권력이 강력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심지어 세헤르 칸 암스테르담 시의원은 “이슬람 커뮤니티가 분노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 당국은 “개인적 일탈”로 치부했다. ③시합 날=칸 의원 경고대로 아랍계는 들끓었다. 중동 출신이 많은 택시노조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온라인에선 이슬람 청년들의 보복 맹세가 잇따랐다. 오토바이로 ‘치고 빠지는(hit and run)’ 수법까지 사전 공유됐다. 그런데도 원정팬 보호장치는 헐거웠다. 같은 날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 FC와 갈라타사라이 SK의 UEL 이스탄불 경기는 달랐다. 영국 관중은 축구장에서 10여 km 떨어진 곳에 모여 경찰 호위 아래 전세버스로 이동했다. 출입구와 매점, 화장실도 홈팬들과 따로 썼다. 관람석은 투명 벽으로 차단됐다. 종료 뒤엔 튀르키예 쪽이 다 떠날 때까지 대기시켰다. 이후 버스로 탔던 장소에 내려줬다. 폭력을 옹호할 맘은 없다. 범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다만 관계 기관들이 미리 대처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아놓고, 남 탓 하는 위정자들은 그만 보고 싶다. 인재(人災)는 언제나 예고편이 쏟아진다. 그걸 묵살한 대가는 선량한 이들이 떠안는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코스트코는 환상(fantasy)을 판다.”(미국 뉴욕타임스·NYT) 이게 무슨 소릴까.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가 고객에게 환상을 선사한다니. 가본 이들은 알지만, 백화점 같은 세련미와는 동떨어진 꾸밈새를 떠올리면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이를 이해하려면, 40년 전인 1984년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개장했던 코스트코 매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83년 창업한 코스트코는 이듬해 앵커리지에서 자신들의 ‘나아갈 길’을 발견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 몇 시간씩 운전해야 식료품 가게를 찾을 수 있던 주민들에게 화려한 장식이 뭔 소용이겠나. 몇 달을 두고 먹을 거대한 양(mammoth quantities)의 땅콩버터와 토마토소스가 필요할 뿐. 픽업트럭 가득히 짐을 싣고 돌아가며 ‘이제 한동안 걱정 없이 살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것. 그게 코스트코가 주는 환상이자 착시다. NYT에 따르면 코스트코의 이런 이미지는 팬데믹 때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전무후무한 비접촉의 시대. 집 앞까지 배달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가장 큰 이득을 챙겼지만, 코스트코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주방 가득 생필품을 채워 둬야 하는 이들에게 코스트코는 머리에 “첫 번째 선택지”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트 나들이는 배달로 충족시킬 수 없는, 콧바람을 쐴 기회로 여겨진 것도 장점이었다. 코스트코가 소비자에게 심은 환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합리적(reasonable) 소비자’란 만족감을 얻는다”고 했다. 단지 저렴하게 구매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10만 원 쓰겠다고 왔다가 20만 원을 썼더라도, 여기서 사면 과소비가 아니란 ‘인식(psyche)’을 갖는 게 중요하다. 미 브랜드 컨설턴트 제러미 스미스는 “코스트코의 상술은 사람을 홀리는 마법 같은 게 아니다”라며 “소비자와 기업이 가치를 공유한다고 믿는 문화를 형성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 코스트코에서 가장 빠른 판매율을 올린 상품은 1온스(약 31.1g) ‘금괴(gold bar)’였다. 생필품도 아닌데 이토록 인기가 많았던 건 ‘코스트코에선 금괴도 합리적으로 판다’는 믿음 덕이었다. 당시 금값이 오른단 보도가 이어졌지만, 막상 일반인들은 어떻게 금에 투자할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다. 하지만 코스트코에선 편하게 장 보듯, 좋은 조건으로 금을 살 수 있단 기대가 소비를 부추겼다. 코스트코도 이제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8월 기준 세계 15개국 890개 매장을 가진 코스트코는 올해 아마존, 월마트에 이어 글로벌 3위의 유통업체로 올라섰다. NYT는 “메이저 빅3로 자리를 굳힐지 갈림길에 섰다”고 평했다. 특히 코스트코 영업이익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회원비를 지난달에 올리며, 견고했던 고객 충성도(loyalty)가 시험대에 올랐단 평가가 나온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됐듯 ‘해외에선 미국과 달리 현지와의 상생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점 등은 개선이 필요하다. 세계 유통업계가 경기 불황으로 비명을 지르는 지금, 코스트코는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환상을 안겨줄까. 코스트코가 1985년 선보인 핫도그 세트는 지금도 가격이 1.5달러(한국에선 2000원) 그대로다. 신뢰는 깨어지기 쉽다. 하지만 지켜낼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김치가 이븐(even)하게 익었네.” 깜짝 놀랐다. 얼마 전 식사 자리. 연배 지긋한 지인이 최신 유행어를 던질 줄이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인기긴 했던 모양이다. 요리 예능이 이리도 남녀노소 입에 오르내리다니. 괜스레 그날 나온 생선회도 이븐하게 싱싱한지 곱씹었다.태평양 건너 미국도 요즘 음식으로 화제 만발인 이가 있다. 이른바 ‘길거리 요리 감별사’ 키스 리(Keith Lee)란 흑인 청년이다.올해 미 대선 경합주 중 하나인 미시간주 출신인 그는 스물일곱 살. 하지만 틱톡 팔로어만 18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레게 머리를 한 그가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면, 다음 날 식당은 수백 명씩 줄을 선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리가 호평한 음식점은 매출이 평균 900%나 늘어난다. 한데 그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평가 영상들은 낯설다 못해 황당하다. 일단 동네 어디나 있음 직한 소탈한 식당을 간다. 가볍게 인사 몇 마디 건네다가 주문한다. 근데 식당에선 먹질 않고 꼭 포장해 나온다. 그대로 차에 탄 뒤 음식을 꺼내 한 입 베어 문다. 그러곤 별 묘사도 없이 맘에 드네 마네 하다가 점수를 매긴다. “10점 만점에 몇 점.” 요식업계는 충격을 넘어 몸서리를 쳤다. 정당한 채점이 아니란 항변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음식 비평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한 호텔 체인 관계자는 롤링스톤스에 “관련 분야에 종사했거나 학교를 나온 뒤 몇 년 이상 글을 실어야 ‘평론가(critic)’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웬 ‘듣보잡’이 생태계를 파괴하니 공분이 치솟았다. 리가 요리에 뿌리가 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감옥에 간 뒤 학교를 6번 옮겨 다닌 문제아였다. 고교 시절 레슬링에 입문해 마음을 잡고서 프로로 데뷔한 종합격투기 선수다. 그러다 ‘카메라 울렁증’을 이겨보겠다고 소셜미디어에 영상을 올린 게 인생을 뒤바꿨다. 팬데믹 시절 경기가 끊겨 배달 일을 했던 경험을 녹인 지금 방식의 음식 평가가 대박이 났다. 사람들이 열광한 건 바로 이 대목이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칼질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에 끼어 앉아 무표정하게 우걱우걱 끼니를 때우는 모습. 그게 우리네 처지랑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비싸지는 팁 탓에 식당에 앉기조차 부담스러운 주머니 사정도 그렇다. 그의 영상에 달린 상당수 댓글은 “나도 맨날 저렇게 먹는데”였다. 게다가 리가 주로 유색인종 가족이 꾸려가는 영세 식당 위주로 가는 게 알려지며 호감이 더 커졌다. 물론 리의 방식을 무조건 편들 순 없다. 음식 따라 먹는 법이 다르건만 자기 스타일만 고수하는 건 문제다. 요리의 일관성이나 서비스도 중요한데, 한 입 먹고 단정 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후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박하게 평가받은 몇몇 식당들은 경영에 곤란을 겪고 있다. 그도 이젠 왕관의 무게를 깨우쳐야 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금 일깨운 진리도 명확하다. 맛있는 건 어찌 먹어도 맛있다. 비싸고 화려한 음식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흑백요리사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우리는 누구나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일지언정 즐겁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건 정성 혹은 공감이 주는 힘이다. 맛이란 각자가 정하는 가치일테니. 행복은 내 혀 끝에 달렸다.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한 주를 마무리하던 일요일 6일 밤(현지 시간). 미국에선 5초짜리 영상 하나로 소셜미디어 틱톡과 X가 난리가 났다. 별다른 설명 없이 해시태그(#) ‘베이루트(Beirut)’가 붙은 동영상엔 레바논 수도의 중심가가 불바다로 뒤덮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밤하늘은 뿌연 잿빛 연기가 자욱했고, 주거용 아파트 단지들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 베이루트는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누가 이런 참사를 일으켰는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1일 레바논 남부에 육군을 투입하며 지상전을 개시했고, 지난달부터 베이루트 일대에 대한 공습을 이어온 이스라엘 소행인 게 틀림없어 보였다. 특히 미 최대 무슬림 단체 ‘미국이슬람관계협의회(CAIR)’가 팔로어 20만 명이 넘는 공식 X에 이 영상을 게재하며 중동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미 CBS방송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몇 시간 만에 조회수 1000만 회를 넘어섰다. 한데 다음 날, 허무하게도 ‘베이루트 불바다’ 영상은 가짜였음이 드러났다. 자칭 “인공지능(AI) 예술가”가 시중에 유통되는 AI 제작 도구로 만든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공군이 베이루트 남부 교외 지역을 폭격하긴 했으나, 위치도 피해 규모도 크게 달랐다. 불과 하루 사이 벌어진 에피소드였지만 파장은 적지 않았다. 아랍권 알자지라 방송은 “거짓 AI 영상으로 인해 레바논은 물론 중동 전역이 혼돈에 빠질 뻔했다”고 전했다. AI가 사람 목숨이 걸린 전쟁까지 혼란을 몰고 온 이런 현실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올 2월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프로젝트명 ‘소라(Sora)’란 AI 프로그램을 공개했을 때부터 우려가 쏟아졌다. 몇 줄 안 되는 문장을 입력하자 선사시대 멸종동물 매머드가 설원 위를 걸어가는 동영상이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장면은 여러 의미로 충격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소라의 작품을 “매우 사실적(photorealistic)”이라 평하며 “이제 경고문이 붙지 않으면 진위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라 걱정했다. 1년도 채 안 돼 AI 영상 기술은 더 큰 진전을 이뤄냈다. 이달 4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소유한 빅테크 메타는 또 다른 AI 프로그램 ‘무비 젠(Movie Gen)’을 선보였다. 이전 AI는 영상만 창조했지만, 무비 젠은 AI로 소리도 만들어낸다. 메타 시연 동영상을 보면 뱀이 밀림을 기어가자 풀 스치는 소리가 스르륵 들려온다. NYT가 비슷한 영상을 만들어 보니 사운드까지 입히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메타 측은 “무비 젠 영상에 꼭 ‘AI 생성(Generated by AI)’ 문구를 넣겠다”고 했으나, NYT 취재 결과 이를 제거하는 것도 가능했다. 논란이 된 베이루트 영상을 다시 보자. 영국 일간 가디언이 AI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 해당 영상은 건물 사이로 불이 이어져 있는 등 결함이 상당했다. CAIR 대변인은 ‘확인 절차만 거쳤어도 가짜로 들통날 영상을 왜 게재했나’라는 CBS 질의에 “명백하고 단순한 실수”라면서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2200여 명을 숨지게 만든 범죄를 저질렀단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사이 소셜미디어에선 여전히 진짜인 줄 믿는 이들이 영상을 퍼나르고 있다. 세상은 실재와 가상의 경계선만 흐릿해지고 있는 게 아니다. 뭐가 본질인진 모르겠으나, 신뢰와 윤리의 영역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거짓과 싸우는 가장 간명한 길은 진실과 함께(with the truth)하는 거죠.” 근사하면서도 씁쓸했다. 11일(현지 시간) 현존하는 ‘원톱’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며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끝내줬다. 딱 하나, 인공지능(AI) 딥페이크로 만든 자신의 가짜 사진에 대한 언급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진실로 거짓과 맞서자. 분명 옳은 말인데, 거대한 벽에 부딪힌 현실이 떠올랐다. 최근 국내에서도 논란인 AI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무서운 건 이런 ‘진위(眞僞)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단 점이다. AI 편집기술로 다른 이 얼굴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드는 순간, 참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누군가는 끔찍한 피해를 본다. 이미 퍼진 뒤 사실이 밝혀진들 그 상처를 어찌 보상할까. 영국 인디펜던트는 이런 AI의 악용을 두고 “어느 여염집에나 있는 토스터가 핵폭탄을 만드는 가공할 병기창(arsenal)이 되는 셈”이라 했다. 설마 그 정도일까. 지난달 독일의 한 정보기술(IT) 웹진에 따르면 AI 딥페이크 성 착취물 제작은 범죄에 쓰일까 봐 구체적 방법은 기술하지 않는 게 민망할 정도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오픈 소프(Open Source) AI 모델만 컴퓨터에 깐 뒤 ‘적당한’ 문구를 입력하면 끝이다. 결과물을 살펴본 IT 전문가는 “어색한 점도 있으나 꼼꼼히 살펴야 알 정도”라며 “별다른 전문지식 없이도(without specialized knowledge) 만들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이라 했다. 최근 미국에서 AI 성 착취물 제작 혐의로 붙잡힌 이들 면면을 봐도 그렇다. 펜타곤에서 근무하는 군인부터 한적한 시골 현직 교사, 10대 초반 중학생까지…. 그저 방구석에 앉아 키보드만 두드려 악질 범죄자가 됐다. 미국 시카고트리뷴은 “그들은 일상에서 인사 건네던 주변 사람부터 일면식도 없는 해외 인플루언서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구 정부나 입법기관 등은 총력전에 나서는 모양새다. 미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이달 초 AI 딥페이크로 아동 성 착취물을 제작·배포·소지한 이들을 모두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오픈AI 등은 11일 백악관에서 딥페이크 성 착취물 방지를 위해 AI 학습데이터에서 나체(nude) 이미지를 제거하기로 서약했다. 유럽연합(EU)도 최근 개발된 AI 모델들이 성 착취물을 양산해 개인 보호 규정을 어겼는지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규제가 기술을 쫓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전방위적 노력 없인 AI가 심각한 재앙 덩어리가 될 것”이라며 규제를 지지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한국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19일 아동, 청소년 대상 AI 딥페이크 성 착취물 등과 관련된 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안들이 여야 합의로 국회 상임위 소위를 통과했다. 실은 지난해 거의 동일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폐기된 걸 떠올리면 이런 늑장 대응이 없다. 하지만 늦었다고 포기할 순 없다. 미 NBC뉴스는 백악관 서약식을 보도하며 “AI 딥페이크 성 착취물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dignity)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들이 국민 존엄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굳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설마가 현실이 됐다. 6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대선 TV토론은 미 정치사에 가장 큰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킨 사건 중 하나로 남으리라. 현직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를 촉발한 가혹한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됐기 때문이다. 그날 토론은 조 바이든 대통령(82)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과는 별개로, 세상만사는 상대적이란 걸 깨닫게도 해줬다. 바이든 대통령의 멍한 표정은 토론 보름 전쯤 78세 생일이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무척 젊어 보이게 만드는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같은 달 30일 프랑스 정당 대표 3자 TV토론은 또 다른 착시 현상이 두드러졌다. 트럼프보다 마흔 살이나 어린,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정당의 마뉘엘 봉파르 의원이 지긋해 보였다. 집권당 르네상스의 가브리엘 아탈 총리(35)와 극우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29)가 워낙 아이돌처럼 말쑥하게 생긴 탓이 컸다. 그렇다고 해도 대표 셋이 모두 20, 30대인 토론은 참 낯설고도 부러웠다. 흔하진 않지만 아시아에도 주목받는 청년 정치인이 있다. 일본 효고현 아시야시의 다카시마 료스케(高島崚輔) 시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 당선된 그는 1997년생. 재임 1년이 지났는데 스물일곱 살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노인들이 지배하는(gerontocratic) 일본 정치판에 거의 유일하게 맞서는 인물”이라고 불렀다. 유럽 정치계는 풀뿌리 청년 조직이 잘 갖춰져 젊은 정치인의 등장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각광받는 20, 30대 정치인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의 후광보단 자기 힘으로 기반을 다진 자수성가 스타일이 많다. 이민자 출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바르델라 대표는 빈민가에서 생계 곤란을 겪으며 꿈을 키웠다. 요즘 세대답게 소셜미디어 활용에 능숙한 점도 공통분모다. 물론 바이든이나 트럼프도 틱톡은 한다. 하지만 청년 정치인들은 정책 홍보보단 유권자와의 공감대 형성에 주력한다. 올 4월 취임한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총리(37)는 별명이 ‘틱톡 총리’일 정도다. 아일랜드 역대 최연소 총리인 그는 자신의 ‘울퉁불퉁했던’ 10대 이야기를 들려주며 젊은층의 공감을 샀다. 다카시마 시장도 유럽 청년 정치인들과 닮은 점이 많다. 유복한 집안의 ‘엄친아’이지만 계파 정치가 단단한 일본에서 별 뒷배 없이 무소속 신화를 일궈냈다. 그간 일본 청년 정치인들은 거물 아버지의 후광을 입거나 지역구를 물려받은 경우가 다수였다. 소셜미디어 활용도 적극적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다카시마 시장은 “도쿄대와 하버드대 중 어디가 입학이 어렵냐”란 장난 섞인 질문에도 성실하게 자기 경험을 들려줘 화제를 모았다. 구글 입사시험 문제를 풀어보는 영상은 조회 수가 100만 회를 넘었다. 이들의 공통점엔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그들의 ‘접촉’은 온라인에 그치지 않았단 점이다. 곧 물러날 아탈 총리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대화하는 소통 능력”(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이 강점으로 꼽혔다. 그의 유세장은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연령대가 폭넓기로 유명하다. 다카시마 시장은 중고교 교칙 개정안 추진 때 이해당사자들과 수시로 직접 대화했다. 뻔한 공청회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를 따로 만나 속내를 들었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젊은층의 의사가 반영되기 힘든 일본의 상명하복 문화(top-down culture)를 현장에서 발로 뛰어 이겨냈다”고 호평했다. 생물학적 나이가 다는 아니다. 이른바 ‘젊꼰’(젊은 꼰대)도 많고, 중장년층의 경륜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50대 이상만 가득해 기성세대에게 치우친 정치가 미래세대를 얼마나 이해하고 헤아릴까. 최근 개원한 한국의 22대 국회는 20대 의원이 한 명도 없다. 30대도 겨우 4.7%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때아닌 ‘죽음의 블루스크린(Blue Screen Of Death)’이 Y2K(2000년)의 공포를 현실화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 1990년대만 해도 익숙했다. 뜬금없이 컴퓨터 화면이 파래지며 먹통이 됐다. 보통 껐다 켜면 나아졌지만, 답답한 마음에 본체를 탕탕 두드리기도 했다. 그 시절, 2000년이 도래하면 온 세상 컴퓨터가 멈춘다는 ‘밀레니엄 버그’는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별일 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지만. 19일(현지 시간) ‘글로벌 IT(정보기술) 대란’은 서구 사회에선 Y2K가 떠오를 정도로 충격이 컸다. 미국의 한 보안업체가 업데이트 한 번 잘못한 게 세계 곳곳의 전산 장애를 초래한 광경은,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가 장밋빛만 품은 게 아니란 걸 일깨웠다. 무엇보다 병원과 공항, 카페 등에서 벌어진 혼란은 우리 일상이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사태로 경제적 손실만 “10억 달러(약 1조3900억 원) 이상”(미 CNN)이라 한다. 뉴질랜드 시골 마트 계산대까지 멈춰 세울 만치 파장이 컸지만, 딱히 영향을 받지 않은 곳들도 있다. 자체 서버나 국내 클라우드 서비스를 주로 이용한 한국도 비교적 피해가 적었지만, 미국 대도시 대중교통망은 특별한 장애가 없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은 “일부 정보 시스템이 중단됐으나 지하철과 버스 운행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게 자랑스러웠던지, 재노 리버 MTA 사장은 “뉴욕은 전속력(full speed) 운행 중”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의 대중교통도 정상 운영됐다. 이유는 다름 아닌 시대에 뒤처진 ‘노후화’ 때문이었다. 예산 부족으로 낡은 전산 시스템을 그대로 쓰다 보니, 이번 최신 업데이트 대상조차 되질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교통국은 “우리 시스템은 인터넷도 연결돼 있지 않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별 피해를 보지 않은 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의 역설’이 작용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등을 시행한 뒤, 중국 국무원이 해외 소프트웨어를 자국 제품으로 교체하도록 한 덕분”이라고 전했다. 영 BBC방송에 따르면 러시아 역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국제사회와 단절돼 불가피하게 대체 시스템 개발에 주력해왔다. 서방 제재에 가로막혀 글로벌 서비스에서 배제된 게 오히려 이득이 된 셈이다. 지난달 이코노미스트는 ‘왜 여행안내서는 사라지지 않는가’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도태될 듯 보였던 여행 서적이 여전히 많이 팔리는 현상을 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사람들은 인터넷이 불가능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확실성(authenticity)’을 필요로 한다”며 “믿을 만한(trusty) 도구는 어느 시대건 돈을 지불할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여행안내서의 인기는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기술의 진보는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낙후된 설비와 폐쇄적 독재국가가 한번 요행을 누렸다고 정체나 퇴보가 정답일 리도 없다. 다만 서둘러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기본을 버려선 안 된다. 변수에 대비하지 않고 대세만 좇다간 ‘죽음의 블루스크린’ 다음 차례는 우리일 수 있다. 뒤늦게 컴퓨터를 때려본들 손만 아플 뿐이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프랑사프리크(Fran¤afrique·프랑스와 아프리카)는 이젠 사라져 가는 과거의 유물이 돼 버렸다.”(AFP통신)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어는 친숙한 말 중 하나다.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나라는 23곳. 영어와 더불어 가장 많다. 프랑스어가 유일 공용어인 나라는 11개국으로 영어(8개국)를 앞선다. 10여 년 전 아프리카 출장 때, 한국인이 더듬더듬 뱉은 영어를 벨기에 출신 가이드가 프랑스어로 통역하니 이라크계 공무원이 아랍어로 현지인에게 물어봐 주던 희한한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온 프랑스의 아프리카 영향력은 그만큼 질기고 뿌리 깊었다. 하나 요즘 파리의 입김이 예년 같지 않다. 솔직하게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지경이다. 지난해부터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에선 줄줄이 쿠데타가 벌어졌고, 프랑스에 반기를 들고 주둔군을 몰아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네갈 등 그나마 안정적인 국가조차 반(反)프랑스 물결이 거세다”며 “과거 식민지였던 20여 개국 중 상당수가 연을 끊으려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프랑스가 자초했다는 게 중론이다. 현지 치안을 등한시한 병력 주둔은 자국의 군사적 이익만 좇았다. 투자 역시 자원 개발에 치중해 부당한 경제 수탈로 읽혔다. 한참 전부터 경고음이 났건만 프랑스 정부는 안일했다. 민심을 잃은 정권 편만 들어 시민사회도 등을 돌렸다. 프랑스의 마르크 메미에 전 아프리카 특별고문은 WSJ에 “현지의 부패한 집권세력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존 정책을 고집했다”고 했다. 그럼 프랑스가 밀려난 ‘빈자리’는 누가 채우고 있을까.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마저 아시아태평양에 치중하며 소홀한 틈을 타 러시아와 중국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나라의 접근법은 다소 다르다. 러시아는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을 통한 군사 지원이 중점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경제 원조에 집중한다. 이리 정성을 쏟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프리카를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 대항할 교두보로 삼으려 한다. 물론 프랑스가 팔짱만 끼고 있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프랑스는 최근 수직적이던 전통적 관계를 버리고 동등한 눈높이에서 협력하는 ‘파트너십’으로 외교노선을 바꿨다. 대표적인 나라가 르완다다. 1994년 수십만 명이 숨진 르완다 대학살 뒤 사이가 냉랭했던 두 나라는 최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섰다. 4월 학살 30주년 추도식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의지가 부족해 희생을 막지 못했다”며 사과 영상을 보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NYT는 “프랑스의 영향력 강화와 르완다의 빈곤 퇴치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새로운 ‘데탕트(D´etente·긴장 완화)’의 문을 열고자 한다”고 평했다. 다만 앞길에 붉은 주단만 깔려 있진 않다. NYT에 따르면 르완다 대학살은 여전히 갈등의 불씨다. 르완다는 프랑스에 머무는 관련자 인도를 요구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 결정적인 건, 양국 화해를 주도적으로 이끈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대패하며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다는 점이다. 승기를 잡은 극우 세력은 자국우선주의를 강조해 왔다. 프랑스의 아프리카 입지 축소는 그저 한 시대의 종언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WSJ는 “불량 정권들이 ‘힘의 공백(power vacuum)’을 메우고 있는 상황은 결국 아프리카의 서방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 국제질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산이 변하면 꽃이 지는 건 순리다. 프랑스가 떠난 뒤 러시아나 중국은 아프리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까. 돌고 돌아도 검은 대륙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만 같다. 세상 어디도 편할 날이 없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저의 미인대회 출전은 나이나 인종, 생김새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은 동등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올해부터 나이 제한이 철폐된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 일흔이 넘은 미국인 여성이 출사표를 냈다. 미인대회 참가자 중 역대 최고령이다. 미 일간 USA투데이는 “21일(현지 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힐턴휴스턴포스트오크호텔에서 개막한 미스 텍사스 선발대회에 머리사 테이요 씨(71)가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미스 텍사스 본선은 25∼29일 열리며, 우승자 등은 미스 USA에 진출해 국제대회인 미스 유니버스 참가권을 놓고 겨룬다. 1952년부터 시작된 미스 유니버스는 지난해까지 18∼28세만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관련 규정을 없애면서 결혼했거나 임신한 여성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 1일 열린 미스 메릴랜드 선발대회에선 미국에서 처음으로 31세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우승했다. 테이요 씨는 평소 운동과 댄스 등으로 꾸준하게 건강을 관리해 왔다고 한다. 구체적인 가족 관계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미혼으로 알려졌다. 테이요 씨는 지역매체 엘패소타임스 인터뷰에서 “꿈을 좇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며 “누구라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서도 변호사이자 기자인 알레한드라 로드리게스 씨(60)가 미인대회에 출전해 큰 관심을 받았다. 4월 미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승한 그는 지난달 미스 아르헨티나 선발대회에 출전해 ‘최고의 얼굴’로 뽑히며 입상했다. 우승 왕관을 차지한 코르도바 출신 배우 마갈리 베나젬(29)도 지난해였다면 나이 제한에 걸려 출전이 불가능했다. 로드리게스 씨는 대회 당시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란 소감을 밝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저의 미인대회 출전은 나이나 인종, 생김새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은 동등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믿습니다.”올해부터 나이 제한이 철폐된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 일흔이 넘은 미국인 여성이 출사표를 던졌다. 미인대회 참가자 중 역대 최고령이다.미 일간 USA투데이는 “21일(현지 시간)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힐튼휴스턴포스트오크호텔에서 개막한 미스 텍사스 선발대회에 마리사 테이요 씨(71)가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미스 텍사스 본선은 25∼29일 열리며, 우승자 등은 미스 USA에 진출해 국제대회인 미스 유니버스 참가권을 놓고 겨룬다.1952년부터 시작된 미스 유니버스는 지난해까지 18∼28세만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관련 규정을 없애면서 결혼했거나 임신한 여성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 1일 열린 미스 메릴랜드 선발대회에선 미국에서 처음으로 31세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우승했다.테이요 씨는 평소 운동과 댄스 등으로 꾸준하게 건강을 관리해왔다고 한다. 구체적인 가족 관계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미혼으로 알려졌다. 테이요 씨는 지역매체 엘파소타임스 인터뷰에서 “꿈을 좇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며 “누구라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최근 아르헨티나에서도 변호사이자 기자인 알레한드라 로드리게스 씨(60)가 미인대회에 출전해 큰 관심을 받았다. 4월 미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우승한 그는 지난달 미스 아르헨티나 선발대회에 출전해 ‘최고의 얼굴’로 뽑히며 입상했다. 우승 왕관을 차지한 코르도바 출신 배우 마갈리 베나젬(29)도 지난해였다면 나이 제한에 걸려 출전이 불가능했다. 로드리게스 씨는 대회 당시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란 소감을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현실에서 도망치려 한 적도 있죠. 그런데 불가능하단 걸 아시잖아요?”(라얀 하루다·26) 한국에선 요즘 청년들을 MZ세대라 묶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분명 Z세대는 또 다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출생을 일컫는 그들은 지금 딱 20대쯤 된다. Z세대 눈엔 30대에 들어선 밀레니얼(M)세대 역시 그저 ‘좀 젊은 아저씨’일지도. 세대 규정에 동의하진 않지만, Z세대를 거론할 때 한결같이 꼽는 특징이 있다. 그들 다수는 “모바일 디지털 월드가 없는 세상”(미국 뉴욕타임스·NYT)을 살아본 적이 없다. 어디서나 손에 쥔 휴대전화로 ‘접속’이 가능한 삶. 역시 날 때부터 존재했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관계를 형성하는 건, 그들에겐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했다. NYT에 따르면 Z세대는 정치 성향도 소셜미디어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최근 주목받은 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유대계가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미국은 오랜 세월 이스라엘의 절대적 우방이었다. 지난해 10월 막 전쟁이 터졌을 때, 미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이스라엘을 지지했을 정도다. 하지만 Z세대는 달랐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지난달 “미국인 18∼29세 가운데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을 든 건 14%뿐”이란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2배가 넘는 33%는 팔레스타인을 응원한다고 했다. 실제로 미 Z세대가 선호하는 틱톡 게시물 조회수를 비교하면, 친(親)팔레스타인 게시물이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영상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러셀 앨런 씨(23)는 한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이스라엘 지지를 일종의 ‘검열(censors)’로 여긴다”며 “소셜미디어에 드러난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고통에 훨씬 공감 간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은 Z세대가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중위연령(median age)이 22세로, 15∼29세가 인구의 30%를 넘는다. 이스라엘은 중위연령이 43세로 한국(46세)과 엇비슷하다. Z세대에겐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라본 팔레스타인 동년배의 고통이 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실제로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Z세대가 느끼는 절망은 탈출구가 없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이들은 1993년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으로 그나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적 공존을 꾀하던 시기를 모른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생 분쟁밖에 겪지 못한 그들은 평화적 공존은 불가능하단 인식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현 전쟁이 언젠가 끝을 맺어도, 위험천만한 불씨는 그대로 남을 거란 어두운 관측도 나온다. 주변 사람들이 일상처럼 희생당한 경험은 청년들에게 총이란 선택지만 남겨줄 거란 전망이다. 라얀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의 고리를 끊고 싶지만, 가족을 잃은 친구가 무장세력에 가담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악순환은 소셜미디어에서 더 넓게 번져 나간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미 대학가 반전시위를 예로 들며 “Z세대의 절망에 대한 공감이, 폭력에 대한 수긍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소셜미디어는 인생의 낭비라지만, 이미 그 ‘문(frame)’을 통해 보고 듣는 시대는 되돌릴 수 없다. 프레임 너머 다른 세상을 알려주지 못한 어른들 책임이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에리카 모스카텔로 씨는 행복을 찾았다고 믿었다. 고향 아르헨티나의 삶은 곤궁했다. 정치는 둘째 치고 경제가 뒤숭숭했다. 지난해만 인플레이션이 211%. 1년 새 물가가 3배 넘게 뛰었단 소리다. 탈출을 꿈꾸던 그에게 달콤한 유혹이 찾아왔다. 모스카텔로 씨의 먼 이탈리아 친척이 남부 시칠리아주 무소멜리를 추천했다. 지방소멸 위기에 빠진 소도시는 외지인에게 빈집을 1유로(약 1460원)에 내주고 있었다. 고민 끝에 택한 이민은 만족스러웠다. 유럽 선진국다운 안정감이 좋았다. 할머니는 “뿌리를 찾아 귀향했다”며 반색했다. 이웃 주민은 정다웠고, 아이 학교도 맘에 들었다. 더 바랄 게 없어 보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2022년 갑작스레 아이가 아팠다. 치료가 시급했지만 동네에 ‘의사’가 없었다. 소아과는 모두 문을 닫아, 몇 시간을 운전해 대도시에서 진료받았다. 그때야 알았다. 소아과뿐이 아니었다. 산부인과도 없고, 하나 남은 외과도 곧 폐업할 참이었다. 이탈리아는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예전만 못하다지만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한국 13위). 주요 7개국(G7) 멤버인 이탈리아에 뭔 일이 생긴 걸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 민낯이 드러났던, 부실한 공공의료체계가 자아낸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만 해도 이탈리아 공공의료는 양적, 질적으로 우수하단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뒤 정부 재정적자가 심해지며 의료 투자가 줄어들었다. 지난해 관련 정부 지출은 GDP의 8.9%로 유럽연합(EU) 밑바닥 수준. 최근 5년 동안 주요 의료기관 800여 곳이 간판을 내렸다. 상황이 나빠지자 의료진의 엑소더스가 잇따랐다. 원래도 공무원급 처우가 불만이던 의사들은 높은 연봉을 안겨주는 다른 유럽 국가들로 떠나갔다. 후폭풍은 지방부터 몰아쳤다. 부유한 북부보다 남부가 심각했다. 특히 시칠리아 등 남부의 ‘의료 공백’은 지자체도 속수무책. 밀라노 국립의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3만 명 넘게 의사가 부족하다. “산소호흡기(oxygen respirator)를 단 의료 시스템”(유로TV)에 단비를 뿌려준 건, 다름 아닌 ‘외국인 노동자’였다. 코로나19 때 쿠바에서 파견한 의료진 도움이 컸던 이탈리아는 당시 인연을 계기로 쿠바 정부에 간청했다. 드디어 올해 1월부터 의사 약 500명이 한시적 계약을 맺고 남부로 오고 있다. 아바나 출신 오스벨 디아스 외과의(38)는 현지 매체에 “우린 돈이 아니라 인류의 연대(solidarity)를 위해 여기 왔다”고 했다. 또 다른 물꼬는 아르헨티나에서 트였다.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62.5%가 이탈리아계다. 낮은 임금과 미친 물가에 허덕이던 의사들에게 이탈리아는 선조의 나라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의사 100여 명이 시칠리아로 넘어왔다. 이를 중개한 주축 중 한 명이 모스카텔로 씨. 그는 “부에노아이레스 지원자만 수천 명”이라며 “이들은 이탈리아를 구하는 영웅(superhero)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드라마라면 이쯤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련만…. 현실은 넘을 산이 쌔고 쌨다. 겨우 숨통만 트였을 뿐, 의사 수는 여전히 너무 모자라다. 더구나 쿠바 의료진은 몇 년 뒤엔 돌아간다. 현 정권이 반(反)이민 정책으로 기울고 있는 대목도 불안하다. 가디언은 “아르헨티나 의사들의 면허가 만료되는 2028년 전후에도 쉽사리 갱신해줄지 미지수”라고 짚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의사들이 그랬듯, 앞으론 더 조건 좋은 타국으로 갈 수 있다. 시칠리아의 의료 현실은 자명한 이치를 일깨운다. 이탈리아 라이라디오1은 “공들여 쌓은 의료체계라도 자칫 금이 가면 속절없이 무너진다”며 “더 큰 문제는 재건이 수십 배는 힘들다는 점”이라고 한탄했다. 이게 남의 나라라고 불구경해도 되는 걸까. 엉덩이 타는 냄새가 물씬 풍겨 온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미국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61·사진)가 러시아 사교계의 유명 인사인 엘시나 카이로바(36)와 3개월 만에 결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야후뉴스 등은 27일(현지 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카이로바가 이별을 요구해 두 사람이 헤어졌다”며 “크루즈가 서둘러 결혼을 원하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처음 만나 사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델 출신인 카이로바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유력 정치인의 딸로 알려져 있다. 다이아몬드 무역으로 유명한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드미트리 츠벳코프와 결혼했다가 11년 만인 2022년 이혼했다. 카이로바는 영국에 2200만 파운드(약 375억 원)의 대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하다고 한다. 크루즈는 지금까지 세 번 결혼했다. 배우 미미 로저스와 니콜 키드먼, 케이티 홈스와 차례로 부부가 됐으나 헤어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61·사진)가 러시아 사교계 유명인사인 엘시나 카이로바(36)와 3개월 만에 결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야후뉴스 등은 27일(현지 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카이로바가 이별을 요구해 두 사람이 헤어졌다”며 “크루즈가 서둘러 결혼을 원하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처음 만나 사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루즈는 지난달 윌리엄 영국 왕세자도 참석한 자선단체 모금행사에 카이로바와 동행하기도 했다.모델 출신인 카이로바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유력 정치인의 딸로 알려져 있다. 다이아몬드 무역으로 유명한 러시아 울리가르히(신흥재벌) 드미트리 체츠코프와 결혼했다가 11년 만인 2022년 이혼했다. 카이로바는 영국에 2200만 파운드(약 375억 원) 대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하다고 한다.크루즈는 지금까지 3번 결혼했다. 배우 미미 로저스와 니콜 키드먼, 케이티 홈즈와 차례로 부부가 됐으나 헤어졌다. 현재 영국에서 영화 ‘미션 임파서블8’을 촬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등 세계적인 빅테크 거물들이 올해 들어 수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술주(株)들이 주도해온 미국 증시의 상승세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 시간) 기업 임원이나 주요 주주 등의 거래를 추적하는 기업인 베리티LLC를 인용해 “올해 1분기(1∼3월) 기업 내부자들의 매수 주식 대비 매도 주식 비율이 2021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온라인결제서비스 페이팔과 빅데이터 분석회사인 팰런티어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다. 그는 이달에만 팰런티어 주식 1억7500만 달러(약 2340억 원)어치를 팔았다. 베이조스 창업자도 지난달 85억 달러 규모의 아마존 주식 5000만 주를 매각했으며,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올해 211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달 1억3500만 달러 주식을 팔아 2011년 1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원래 1분기 주식 매도는 연초 세금 신고 등을 고려해 일반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FT는 “특히 지난해는 기업 가치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주식 매도를 주저해 더 많은 수요가 억눌려 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최근 움직임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이 이끌던 증시 활황이 조만간 멈출 수 있다는 신호라고 경고했다. 델라웨어대 기업지배구조센터의 찰스 엘슨 소장은 “빅테크 고위 경영진의 자사주 대량 매각은 더 나은 투자처를 찾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데이터 클라우드 기업인 스노플레이크는 프랭크 슬루트먼 CEO가 지난달 주식을 대량 매각한 뒤에 이달 초 바로 사임해 버리자 주가가 29%나 뚝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베리티LLC의 벤 실버먼 부사장은 “빅테크에서 이례적인 내부자 거래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부정적 신호”라고 지적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등 세계적인 빅테크 거물들이 올해 들어 수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술주(株)들이 주도해온 미국 증시의 상승세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 시간) 기업 임원이나 주요 주주 등의 거래를 추적하는 기업인 베리티LLC를 인용해 “올해 1분기(1~3월) 기업 내부자들의 매수 주식 대비 매도 주식 비율이 2021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온라인결제서비스 페이팔과 빅데이터 분석회사인 팰런티어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다. 그는 이달에만 팰런티어 주식 1억7500만 달러(약 2340억 원)어치를 팔았다.베이조스 창업자도 지난달 85억 달러 규모의 아마존 주식 5000만 주를 매각했으며,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올해 211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달 1억3500만 달러 주식을 팔아 2011년 1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원래 1분기 주식 매도는 연초 세금 신고 등을 고려해 일반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FT는 “특히 지난해는 기업가치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주식 매도를 주저해 더 많은 수요가 억눌려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최근 움직임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이 이끌던 증시 활황이 조만간 멈출 수 있다는 신호라고 경고했다. 델라웨어대학 기업지배구조센터의 찰스 엘슨 소장은 “빅테크 고위 경영진의 주식 대량 매각은 더 나은 투자처를 찾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데이터 클라우드 기업인 스노우플레이크는 프랭크 슬루트만 CEO가 지난달 주식을 대량 매각한 뒤에 이달 초 바로 사임해 버리자 주가가 29%나 뚝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베리티LLC의 벤 실버먼 부사장은 “빅테크에서 이례적인 내부자 거래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부정적 신호”라고 지적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모든 분들에게 ‘우린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영화 ‘타이타닉’ 주제가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을 부른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56)이 자신처럼 난치병을 앓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디옹은 2022년 12월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지는 신경질환인 ‘전신근육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SPS)’에 걸려 투병 중인 사실을 공개했다. 디옹은 15일(현지 시간) 인스타그램에 세 아들과 찍은 사진과 함께 “오늘은 ‘국제 SPS 관심의 날’이다. SPS로 고통받는 세계 모든 이들에게 격려를 전한다”며 “여러분은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고 썼다. 세계적인 디바로 사랑받아 온 그는 “이 질환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이지만, 언젠가 무대로 돌아가고 평범한 삶을 되찾겠단 결심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모든 분들에게 ‘우린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영화 ‘타이타닉’ 주제가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을 부른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56)이 자신처럼 난치병을 앓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디옹은 2022년 12월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지는 신경질환인 ‘전신근육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SPS)’에 걸려 투병 중인 사실을 공개했다.디옹은 15일(현지 시간) 인스타그램에 세 아들과 찍은 사진과 함께 “오늘은 ‘국제 SPS 관심의 날’이다. SPS로 고통받는 세계 모든 이들에게 격려를 전한다”며 “여러분은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고 썼다. 세계적인 디바로 사랑받아온 그는 “이 질환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이지만, 언젠가 무대로 돌아가고 평범한 삶을 되찾겠단 결심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디옹이 큰아들 르네-찰스(23)와 쌍둥이 넬슨, 에디(13) 사진을 게재한 건 “내 아이들과 가족, 모두의 사랑에 감사하고 싶어서”였다. 투병 고백 뒤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던 디옹은 지난해 11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경기를 관람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4일엔 66회 그래미시상식에 장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올해의 앨범’ 깜짝 시상자로 등장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상은 당대 최고의 디바 테일러 스위프트가 받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유치원을 제일 좋아해요. 하지만, 이젠 가기 싫어요.” 아이는 고모 소매를 움켜쥐었다. 놓치는 순간 사라질까 봐. 퀭하니 움츠린 눈망울. 꼬마는 오른손에 힘을 꽉 줬다. 잃어버린 왼손은 옷자락에 감춘 채. 겨우 네 살배기. 오마르 아부 쿠와이크는 활달한 아이였다. 언제든 깔깔거렸고, 누구 품에나 덥석 안겼다. 다정한 엄마 아빠, 두 살 터울 누이 야스민과 하루하루 행복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기 전까진. AP통신에 따르면 오마르 가족은 전쟁 2개월 전쯤 경사를 맞았다. 아빠 하젬과 엄마 아즈하르가 어렵사리 가자지구 시영아파트를 장만했다. “넉넉하진 않아도 착실한 부부였어요. 첫 자가라며 기뻐했는데….” 고모 마하는 울음을 삼켰다. 이젠 잔해만 남은 아파트를 떠올리며. 그래도 그땐, 신이 보살폈다 여겼다. 폭격 몇 분 전 방공호에 숨어 참화를 피했다. 오마르네는 남쪽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이웃에 살던 고모 일가는 서쪽 친지에게 의탁했다.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 마하는 그게 남동생과 나눈 마지막 말일 줄 몰랐다. 12월 6일. 불길한 전화벨. “오마르가 위독합니다.” 망가진 심장을 부여잡고 뛰어간 응급실. 꽃처럼 환하던 아이 얼굴이 짓이겨져 있었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가 사라졌다. 손끝이 다 찢어진 낯선 사내는 되레 미안해했다. “그 집에 미사일이 떨어졌어요. 삽이 없어 다들 손으로 파냈지만, 다른 생존자는 없더군요.” 오마르의 세 식구와 할아버지 집안 5명은 그렇게 떠나버렸다. 현지 매체는 “오마르가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했다. 지금 가자 병원엔 간단한 열상(裂傷)조차 치료할 의약품이 없다. 느릿느릿 부기는 가라앉았으나, 이마와 뺨은 흉터로 뒤덮였다. 네 살짜리가 뭘 알까마는…. 간호사들은 아이를 토닥거렸다. “얼굴에 멋진 별자리(zodiac sign)가 생겼구나.” 다행히 하늘이 끝까지 외면하진 않았다. 미국 자선단체 세계의료구호기금(GMRF)이 손길을 내밀었다. 25년 이상 전쟁 피해 아동을 도와온 단체는 항공료와 수술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엘리사 몬탄티 GMRF 부회장은 “오마르는 이번 전쟁 뒤 가자에서 온 첫 번째 팔레스타인 어린이”라고 전했다. 돈이 생겼어도 여정은 가팔랐다. 아픈 아이를 홀로 보낼 수야 없는 노릇. 하지만 마하도 세 아이의 엄마다. 굶주리는 난민촌에 자식을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겠나. “아이들이 먼저 떠밀었어요. ‘엄마, 우린 걱정 말아요. 오마르는 엄마가 필요해요’라며.” 밤새 베개를 적신 고모는 조카를 안고 미국으로 갔다. 올 1월 17일 뉴욕에 닿은 뒤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낯설어하던 의수(義手)도 잘 적응했다. 오마르도 가끔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문제는 ‘귀향’이다. 인도 매체 더힌두는 “이스라엘이 미국행도 ‘이유 불문 출국금지’라며 한 달을 가로막았다”고 했다. 가자 재입국도 몇 주째 답이 없다. 현재 이집트 보호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마하로선 가슴이 찢어진다. “통신 상태가 나빠 드문드문 전화로 아이들 생사만 확인해요. 먹질 못했는지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에선 6일 기준 아사(餓死)만 100명이 넘었다. 젖먹이 포함 어린이도 18명이나 된다. 이러니 다시 간들 고민이다. 절망이 시커멓게 드리운 땅에 오마르를 데려가는 게 맞는 걸까. “저야 죽더라도 가족과 있어야겠지만, 이 아이는 무슨 죄인가요.” 오마르는 아직 죽음을 모른다. 더는 누나를 볼 수 없단 걸 어렴풋이 느낄 뿐. 그의 ‘멀고 험한 길(long and winding road)’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커서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사람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갈 수 있잖아요.” 눈가에 새겨진 별자리는 아이를 어디로 인도할지. 기왕이면 꿋꿋이 걸어가는 황소자리이길. 시린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본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