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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의료, 연금, 노동, 교육 등 4대 개혁과 관련해 “회의만 말고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부터 빠르게 바꾸라”고 참모와 장관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서 국정 과제의 미진한 성과에 대한 답답함과 국정 지지율 하락에 대한 위기의식이 동시에 읽혔다. 4대 개혁은 하나같이 각 분야의 구조를 뿌리부터 바꿔 내는 작업이다. 4대 개혁을 ‘구조 개혁’으로 일컫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개혁을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추진하는 것은 마땅히 응원할 만하다. 그러나 구조 개혁은 필연적으로 입법이 수반돼야 한다. 개혁의 방향과 목표를 법으로 못 박고 시행해야 개혁 열차가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행령 국정’으로 개혁 추진하는 尹 윤 대통령의 지시는 거야(巨野)의 벽에 막혀 국정 방향에 맞는 입법을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린 고육지책이겠다. 법률 시행에 필요한 세부 규정을 담은 시행령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고 대통령 뜻에 따라 정부가 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개혁까지 가기는 어렵다. 상위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법률적 한계가 분명해서다. 정권이 교체되면 언제든지 원상복구될 수 있어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일정 수준의 개선은 되겠지만 4대 개혁의 본질인 ‘구조 개혁’이 시행령 개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이유다. 노동 개혁만 살펴봐도 그렇다. 얼마나 일했는지 측정이 어려운 연구원 등을 위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재량근로제를 예로 들어보겠다. 노사가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합의했다면, 60시간 일했더라도 40시간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처럼 연구개발(R&D)에 사활을 거는 분야는 재량근로제를 넘어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같은 제도를 원한다. 연구개발자 등 고소득 근로자나 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를 아예 면제시키는 제도로, 일본은 2019년 ‘고도(高度) 프로페셔널’이란 이름으로 노동기준법에 도입했다. 이처럼 개혁은 입법으로 제도를 만들거나 보완해야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법률과 시행령의 위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입법 없는 개혁의 한계를 보수 정권에서 이미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도 노동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주 52시간제와 저(低)성과자 해고를 맞바꾸는 ‘노동 빅딜’을 모색했다. 한국노총을 참여시켜 2015년 노사정 대타협까지 도출했다. 여기까진 노동 개혁에 성공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와 비슷했다. 하지만 법제화하기로 합의했던 저성과자 해고를 시행령도 아닌 정부 지침으로 밀어붙이는 강수를 뒀고 노동계의 합의 파기와 여당의 총선 패배,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개혁 동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저성과자 해고 지침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폐기됐다. 저성과자 해고를 법제화하자는 노사정의 약속도 연기처럼 사라졌다.구조 개혁의 필수 조건은 국회 입법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준비 중인 반도체특별법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넣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대한다. 반도체 업계의 요구를 담아 노동 개혁 열차를 출발시키려면 윤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노동 개혁에 실패했던 박근혜 정부도 야당과 노조를 끊임없이 설득해 공무원연금 개혁 입법에는 성공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윤 대통령도 ‘시행령 국정’에서 벗어나 국회를 집요하게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가 ‘구조 개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관련자인 명태균 씨 때문에 여권이 초긴장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명 씨는 자신을 ‘명 박사’로 불렀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추천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김 여사에겐 “일을 시킬 땐 3명에게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밝히는 등 무차별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여권을 긴장시키는 폭로는 이뿐이 아니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 거래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 씨는 명 씨가 윤 대통령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해주는 대가로 김 전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고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인사 추천이나 정치적 조언이 정말로 이뤄졌다면 국민들의 실망감은 커지겠지만 불법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공천 개입 의혹이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은 사실로 드러난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선거 범죄다. 그 파장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사안인 것이다. 명 씨와 접촉한 것으로 지목된 인사 20여 명이 담긴 ‘명태균 리스트’까지 등장하면서 여권은 날마다 명 씨의 입만 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명 씨가 폭로를 뒷받침하는 ‘스모킹 건’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도 유령처럼 여의도를 떠돈 지 오래다. 명 씨와 접촉한 여권 인사들은 명 씨를 ‘정치 브로커’로 치부하면서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몇 차례 만나긴 했으나 허무맹랑한 얘기를 많이 해 관계를 단절했다는 해명도 이어진다. 윤 대통령도 2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면담에서 명 씨와 접촉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단호하게 잘라냈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권은 명 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고 명 씨가 처벌받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명 씨가 고소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소장까지 써놨다고 밝혔지만 실제 제출하진 않았다.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따르면 본인 등이 적극 말렸다고 한다. 법적 조치를 하면 ‘명태균 이슈’에 매몰돼 계속 뉴스가 이어질 수 있어 말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의 시각은 다르다.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는 것 자체를 여권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본다. 수사가 진행돼 명 씨의 폭로가 일부라도 사실로 밝혀진다면 향후 있을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여권이 명 씨를 고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명 씨와 김 전 의원을 수사 중인 검찰 역시 공교롭게도 더딘 모습이다. 경남선거관리위원회가 수사를 의뢰한 건 지난해 12월, 강 씨가 통화 녹음 파일 4000여 개를 검찰에 제출한 건 올해 초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에야 강제수사에 착수하고 검사 2명도 뒤늦게 파견했다. 검찰은 여론조사 자료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경남 창원의 한 공인중개사무소를 이달 초 압수수색했지만 별다른 자료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명 씨를 고소하지 못하는 여권과 수사에 미적댄 검찰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이 사태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하고 있다. ‘명태균 논란’을 종식하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실체적 진실이 조기에 규명되는 것임을, 여권과 검찰은 이제라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청탁금지법이 지난달 28일로 시행 8년을 맞았다. 청탁금지법은 2014∼2015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용 범위 등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다. 시행 두 달 전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결정했지만 일부 조항이 위헌이란 주장도 여전히 제기된다. 공직자가 아닌 언론사와 사립학교 임직원까지 적용하고, 배우자 금품 수수를 공직자가 신고하지 않을 때 처벌토록 한 조항 등은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배우자 처벌 못 해”… 빈틈 보인 청탁금지법하지만 공직자들의 ‘부패 민감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은 청탁금지법의 성과로 꼽힌다. 모든 공직자를 깨끗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부패 방지책으로는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등의 사건에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가 무죄를 받는 것을 지켜본 국민들도 청탁금지법이 ‘형법의 빈틈’을 메워 주리라 기대한다.청탁금지법의 효과는 국민권익위원회가 매년 국민과 공무원, 법조인 등 4000여 명을 상대로 벌이는 ‘부패 인식도’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지난해 조사에선 ‘공직사회가 부패하다’는 인식이 0.3%포인트(일반인)에서 2.1%포인트(전문가)까지 전년보다 감소했다. 한 장관급 공직자는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선물이 올 때마다 난감했는데 ‘고민의 고통’에서 해방돼 거절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었다.그러나 최근 청탁금지법의 빈틈이 노출되면서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사건이 검찰 고발 10개월 만에 무혐의·불기소로 처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배우자 처벌 조항은 ‘과잉 규제’ 우려가 나오면서 법을 처음 만들 때부터 두지 않았다. 특히 검찰은 디올백이 공직자(대통령) 직무와도 무관하다고 판단하면서 김 여사의 알선수재 혐의 등도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최재영 씨가 김 여사의 호의를 얻으려고 건넨 단순한 선물이란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부인이 300만 원 상당의 가방을 선물로 받아도 된다면, 우리 사회의 부패 수준이 권익위 조사처럼 개선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청탁금지법의 허점은 또 있다. 이 법은 공직자가 1회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공직자가 접대 자리에 동료들과 함께 나갔다면 1인당 수수 금액이 얼만지가 중요한 이유다. 각자 머문 시간과 인원까지 고려해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9일 대법원은 라임자산운용의 룸살롱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는 나모 검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룸살롱에 머문 시간과 인원 등을 토대로 나 검사가 93만9000원의 향응을 받은 것으로 본 1, 2심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접대 상황을 더 세분화하면 나 검사의 수수액이 100만 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검찰은 나 검사와 같이 룸살롱에 있었던 다른 검사 2명은 1인당 수수 금액이 100만 원 미만이란 이유로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국회·정부가 ‘청탁금지법 개정’ 응답해야10년 전 청탁금지법의 원안을 만든 김영란 전 대법관은 “우리 사회 공공심(公共心·공공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는 마음)과 신뢰 회복 방안에 대한 근본적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해 왔다. “공공심에 대한 신뢰는 생래적으로는 가질 수가 없고 사회 전반을 업그레이드시켜야 가능하다”고도 했다. 두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면서,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 공공심을 증진시키고 있는지, 정부와 국회는 사회 전반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청탁금지법 개정에 나설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어졌다. 마침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가 응답하길 바란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언론은 오보를 내면 ‘바로잡습니다’ 같은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 초년 기자 시절 사람 이름을 잘못 써 ‘바로잡습니다’를 냈을 때 종일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금도 이름과 숫자 등은 절대 틀리지 않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사도 판결문을 잘못 쓰면 경정(更正·수정) 결정을 통해 수정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잘못된 계산이나 기재’가 확인될 경우 주문(主文·결론)도 수정할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도 오류가 발견돼 한 차례 수정됐다. 하지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 원을 재산분할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문은 바뀌지 않았다.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선고 당시 SK㈜의 모태인 대한텔레콤의 1998년 5월 주식 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판결문에 적었다. 최 회장 측이 “100원이 아니라 1000원”이라고 반발하자 재판부는 이를 수용해 17일 직권으로 판결문을 수정했다. 이에 맞춰 재판부는 최 회장이 기업 가치를 2009년 11월까지 355배 키웠다고 판단했던 부분도 35.6배로 바로잡았다. SK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최종현 선대회장(125배)이 최 회장(35.6배)보다 많은 것으로 역전된 것이다. 주식 가치와 기여도를 잘못 계산한 만큼 재산분할금도 다시 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확산되자 재판부는 18일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2심 변론 종결 시점인 올해 4월 16일의 SK㈜ 주식 가치(16만 원)와 비교하면 최 회장의 기여도(160배)가 최 선대회장(125배)보다 크기 때문에 결론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세기의 이혼소송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판결문을 고친 것도 이례적인데, 재판부가 설명자료까지 배포한 것은 더 이례적이었다. 판결 취지를 이렇게까지 설명하는 모습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없던 내용을 설명자료에 담아 판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 담긴 내용을 애초부터 판결문에 자세히 담았다면, 1000원을 100원으로 잘못 계산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지진 않았을 것 같다. 재판부는 또 판결 경정이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란 입장도 밝혔다. 경정 자체를 이례적으로 보지 말라는 취지였다. 재판부 설명처럼 판결문 수정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사법연감 최신판에 따르면 경정 신청(민사)은 2013∼2022년 연평균 1만8462건 접수됐다. 2022년 한 해만 전국 법원에서 1만4779건이 접수돼 1만1758건이 인용됐다. 서울고법 가사2부처럼 재판부가 스스로 귀책을 인정해 직권으로 수정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판사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헌법이 3심제를 보장하고, 민사소송법이 경정 절차를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원이 매년 1만 건 넘게 ‘바로잡습니다’를 쓰는 상황도 정상적이진 않다. 특히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송이라면 판결의 정당성을 떠나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사법부가 더 이상 오류에 관대하지 않고 작은 팩트조차 틀리지 않는 판결문을 쓰길 기대한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사단법인 아름다운서당은 ‘영리더스아카데미(Young Leaders Academy·YLA)’ 19기 프로그램에 참가할 대학생을 모집한다고 19일 밝혔다.비영리교육기관인 아름다운서당은 2005년 전남대 취업능력함양아카데미를 모델로 설립돼 서울,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9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YLA는 대기업 임원, 금융회사·언론사 간부 등을 역임한 40여 명의 전문가들이 사회 진출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자원봉사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커리큘럼은 인문학 고전과 사회 현실을 함께 분석해 각종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케이스 스터디’로 마련됐다. 저출생 인구감소, 인공지능(AI), 이민, 국론 분열 등 현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이슈를 학생 스스로 탐구하며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교육은 역할극 방식의 토론이나 ‘팀플레이’ 방식으로 진행된다. 25주, 6개월 과정이며 교육 직전 1박 2일 오리엔테이션도 열린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50분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서울 중구 장충단로 서울석유 7층 교실에서 강의가 진행된다. 수강료는 무료다.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소재 대학을 다니는 재학생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전공, 연령, 성별 등도 전혀 상관없지만 2, 3학년을 우대한다. 아름다운서당 홈페이지를 통해 7월 5일까지 지원서를 제출하면 된다. 서류전형 합격자는 7월 13일 개별 통보하며 7월 20일 면접을 거쳐 7월 24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합격자는 8월 12~13일 1박 2일간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에 꼭 참석해야 한다. 개강은 8월 24일이다.나영돈 아름다운서당 이사(현 서울과학기술대 석좌교수)는 “아름다운서당은 대한민국의 내일을 열어갈 전인적인 인재 양성의 요람”이라며 “학벌과 스팩을 넘어서 진정한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받기 원하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탈탈 털어도 탈탈 털 수가 없는 게 인사검증이죠.” 공직기강 업무에 정통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문재인 정부 당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실패 사례가 이어지자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사실상 ‘사찰’에 준하는 검증을 총괄하면서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까지 총동원해도 한 인물의 모든 ‘서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인사검증 실패는 역대 정부 내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고, 이명박(17명), 박근혜(10명), 문재인(34명) 전 대통령 모두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인사를 반복해서 임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과 동시에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인사검증을 맡겼을 때,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교차했다.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미국이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실은) 공직자의 비위 정보 수집하는 건 안 한다”면서 과거 정부마다 불거졌던 민정수석실의 ‘사찰 논란’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대감을 가졌던 이유는 윤 대통령이 자신 있게 모델로 제시한 미국은 인사검증의 역할 분담이 철저해서다. 미국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공직후보자가 백악관의 사전 검증을 통과한 뒤 각종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출하면,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이 이를 넘겨받아 탐문하는 구조다. FBI가 가족과 친척, 이웃과 직장 동료 등을 상대로 교차검증을 한 다음 백악관에 보고하면 최종 판단은 백악관이 내린다. 이 과정에서 FBI는 적합, 부적합 등의 판단이나 의견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검증은 FBI가 하지만 백악관이 인사검증을 주도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철저하게 역할이 분담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은 결국 현실화됐다. 윤 대통령이 2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한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물러났고,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비상장주식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의혹 등으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인사검증 부실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법무부는 “인사검증 자료를 수집해서 대통령실에 넘기는 역할만 수행한다”고 해명해 왔다. 미국처럼 최종 판단은 대통령실이 내린다는 설명이었지만, 민정수석이 없는 대통령실이 최종 판단을 어떻게 내리는지, 법무부가 이 과정에 정말로 개입하지 않았는지 등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인사검증 부실의 책임을 대통령실과 법무부 중 누가 질 것인지도 불분명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7일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며 민정수석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민정수석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인사검증을 법무부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거란 입장이지만, ‘왕수석’이라 불리는 민정수석이 부활한 상황에서 인사검증 역시 대통령실로 무게추가 쏠릴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법무부와 인사검증에 대한 ‘교통정리’부터 확실히 한 다음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부실한 인사검증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일단 책임소재부터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저희들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다기보단, ‘엄마’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부를 수 없는 단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020년 5월 22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 평범해 보이는 30대 남성 구호인 씨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호인 씨는 가수 구하라 씨의 오빠였고, 이날은 이른바 ‘구하라법’의 20대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면서 폐기가 확정된 날이었다. 호인 씨는 “구하라법이 만들어지더라도 우리에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입법청원을 추진한 이유는 ‘구하라’라는 이름처럼 슬픈 삶을 살아왔던 분들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동생의 이름이 우리 사회를 보다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부합하는 곳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며 “21대 국회에선 반드시 통과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낯선 기자들 앞에 호인 씨가 선 것은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남매가 어릴 때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생활비를 벌었고, 할머니와 고모가 남매를 돌봤다. 어릴 때부터 모델로 선발되고 오디션에서 두각을 보였던 하라 씨는 열일곱 살 때 그룹 카라로 데뷔해 ‘1세대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됐다. 호인 씨가 결혼하고 부인이 임신하자 하라 씨는 조카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하라 씨는 끝내 조카를 만나지 못한 채 2019년 11월 24일 2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호인 씨가 국회를 누비는 ‘투사’가 된 것은 이때부터다. 하라 씨의 장례식장에 20여 년 만에 친모가 나타났던 것이다. 친모는 가족들의 저지에도 상주 역할을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발인 후 친모 측 변호사는 ‘유류분’을 주장하며 하라 씨가 남긴 부동산 매각 대금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다. 유류분이란 고인이 유언으로 재산을 남기지 않았어도 자녀 등에게 보장되는 최소한의 상속분이다. 민법상 친모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받을 수 있었다. 급히 이곳저곳 물어보니 친모가 달라면 줘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민법이 그렇다는 이유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호인 씨는 이 사실을 알리고 나섰고, 전 국민적인 공분이 일었다. 호인 씨가 국회에 올린 입법청원에 10만 명이 동참하자 국회의원들이 나서 ‘구하라법’을 발의했다. 부모·자녀를 부양·양육하지 않거나 학대한 이른바 ‘패륜 가족’은 상속권을 박탈하는 내용이었다. 정부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구하라법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모든 법률의 근간이 되는 민법을 개정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행위를 ‘패륜’과 ‘부양’으로 정의하고 어디까지 범주로 설정할 것인지 논란이 이어졌다. 상속권 박탈 기준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사법부가 먼저 응답했다. 헌법재판소는 25일 ‘패륜 가족’은 유류분을 받을 수 없게끔 내년까지 민법을 개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유류분 제도가 47년 만에 처음으로 수술대에 오르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재발의된 구하라법 역시 헌재의 결정으로 헌법적 근거를 갖출 수 있게 됐다. 법조계에선 패륜·부양의 정의와 범주에 대한 이견도 좁혀지고 있다. 이제 국회가 나서 ‘구하라 가족’의 눈물을 닦아줄 차례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현재 ‘공수처장 직무대행의 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진욱 전 처장은 올해 1월 20일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처장 직무대행을 맡은 여운국 전 차장은 8일 후 임기가 끝났고, 공수처법에 따라 김선규 수사1부장이 ‘대행의 대행’을 맡았다. 김 부장검사도 검찰 재직 시절 수사기록을 유출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달 4일 사직서를 제출하자, 송창진 수사2부장이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 됐다. 하지만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으면서 김 부장검사가 20일부터 직무대행으로 복귀한 상태다. 법조계에선 이런 공수처를 두고 “‘좀비’가 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가뜩이나 수사 역량이 떨어지는 공수처가 수사를 지휘하고 외압을 막을 처장도 없이 난파선처럼 표류하면서,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라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장은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가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계속 파행을 빚던 추천위는 지난달 29일에서야 검사 출신 이명순 변호사와 판사 출신 오동운 변호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한 달이 지나도록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공수처가 입건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하면서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지난해 8월 이 전 장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올해 1월 출국금지를 해놓고도 여태껏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여당에서도 공수처가 총선에 임박한 시점에 이 전 장관 사건을 쟁점화하면서 ‘정치 공작’에 나섰다고 보는 이가 많다. 이 때문에 출국 11일 만에 귀국한 이 전 장관은 공수처를 향해 “하루빨리 불러 조사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공수처가 “당장 조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결국 29일 호주대사직을 사퇴했다. 공수처는 현재 압수한 휴대전화 등의 증거 분석과 국방부·해병대의 실무자 조사도 끝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장과 차장 없이 ‘대행의 대행’ 체제가 계속되면서 수사를 지휘할 사람이 없고 조직 운영조차 어려운 처지다. 여당과 이 전 장관이 아무리 ‘신속 수사’를 촉구해도 지금의 공수처가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평가다. 채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은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에 계속 부담이 될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철저히 규명되길 바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친정권 성향이란 비판을 받던 공수처에 대해 “대통령 권력과 커넥트(연결)돼 있기 때문에 무리한 일을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권력과 연결이 안 되게 하고 법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무리한 일을) 못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공수처장을 조속히 임명하고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법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순리 아닐까. 그것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가장 빠르게 규명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조희대 대법원’이 직면한 당면 과제는 재판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고법 부장판사 폐지 등 이른바 ‘사법 민주화’ 정책으로 재판 지연 문제가 심해지면서,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곳곳에서 침해당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재판 속도 향상 방안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이다. 조 대법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정보통신 강국의 이점을 살려 신속히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각종 절차를 개선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한 법관 인사에서 법원행정처의 정보화 관련 조직을 ‘사법정보화실’로 통합하고 고법판사를 실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일반직 공무원이 맡아온 정보화 조직을 법관이 책임지도록 해 IT 활용과 AI 도입을 촉진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조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한 천대엽 대법관도 취임사에서 △AI 활용 △사법 전산 시스템 고도화 등을 재판 속도를 높이는 방안으로 제시했다. 법원행정처는 각종 재판 절차와 민원 업무에 AI를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재판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법부가 이렇게 ‘정보화’를 전면에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한국의 전자소송·전자정부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AI를 도입하려면 일단 그 자신감부터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사법부 전산망이 불안한 징후를 계속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법원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해 전국 법원에서 재판 차질이 속출하자 법원행정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최근엔 북한이 사법부 자료를 해킹으로 탈취해 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야 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에 따르면 북한 정찰총국 해킹부대 ‘라자루스’는 3년여 전부터 사법부 전산망에 드나들면서 무려 335GB(기가바이트) 분량의 서류 등을 탈취해 갔다. 법원행정처는 개인회생 사건 관련 주민등록초본 등 26건의 문서가 유출된 것을 확인했지만, 이 외에 또 어떤 자료가 유출됐는지 등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부의 늑장 대응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2월 악성코드를 처음으로 인지하고 삭제에 나섰다. 하지만 국정원과 경찰에는 알리지 않다가 지난해 12월에야 수사기관과 공조를 시작했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많아 수사 의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법원행정처가 신속히 대응했다면 해킹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법부 전산망은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부)부터 부동산·법인 등기와 소송 서류까지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국가 보안 시설이다. 재판 속도를 높이기 위해 AI를 도입하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AI가 활동할 전산망이 보안에 취약하다면 재판 지연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 세력이 침입해 판결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AI를 도입하려면 전산망 보안부터 강화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법원행정처가 인식하길 바란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지난달 24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법정.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가 이른바 ‘무자본 갭투기’로 전세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는 50대 여성 최모 씨에 대한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최 씨는 오피스텔 등 건물 9채를 사들여 세입자 229명에게 보증금 180억 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사기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판사는 먼저 “선고 내용이 길다”며 공지한 뒤 피해자 40여 명이 제출한 탄원서를 하나하나 요약해 읽어갔다. 40대 중반에 전세금을 마련해 독립했다가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것 같다”고 자책했고, 결혼을 앞둔 피해자는 상견례 전날 파혼을 당했다. 부모님이 전세금에 보태라고 준 16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린 딸도 있었다. 박 판사가 탄원서를 읽는 동안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탄원서를 다 소개한 박 판사는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고 최 씨를 꾸짖으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보다 2년 더 많은 형이었다. 최 씨를 법정에서 내보낸 박 판사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들에게 “잠깐 할 말이 있으니 그대로 계셔 달라”며 이렇게 당부했다. “절대로 여러분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지극히 평범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입니다.” 박 판사의 당부는 한동안 계속됐다. 박 판사는 “한 개인의 욕망과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이 여러분과 같은 선량한 피해자를 만든 것”이라며 “결코 여러분이 뭔가 부족해서 피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달라”고 했다. 이어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나날이겠지만, 빛과 어둠이 교차하듯 암흑 같은 시절도 다 지나갈 것”이라며 “여러분의 마음가짐과 의지에 따라서는 이 시련이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더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엄중한 모습으로만 생각했던 판사의 위로와 당부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서던 한 피해자는 “형량보다도, 우리의 잘못이 아니란 걸 인정받았다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박 판사의 진심 어린 위로와 당부가 피해자들이 눈물을 닦을 수 있는 힘이 돼 준 것이다. 박 판사는 지난해 12월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50대 노숙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어머니 산소에 꼭 가보라”며 현금 10만 원과 중국 작가 위화의 대표작 ‘인생’을 선물하기도 했다. 보호관찰소가 재판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피고인이 평소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는 게 취미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과 판결이 도덕적일 필요는 없다. 법을 해석하고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법관이 감정과 도덕에 휘둘린다면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하지만 법관은 범죄 피해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기대고 의지하는 버팀목이다. 가해자를 엄단하면서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박 판사 같은 법관이 많아진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형사소송법상 고소와 고발은 명확히 구분된다. 고소는 범죄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법정대리인 등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범죄 사실을 알리고 범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의사표시다. 고발은 고소권자가 아닌 제3자가 범죄를 신고하고, 범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행위다. 범인의 처벌을 적극 요구한다는 점에서 112 같은 단순 신고와는 구분된다. 범죄자를 구속하거나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검찰엔 매일 수백 개의 고발장이 접수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5만3846건의 고발장이 접수됐고, 7만3470명이 고발을 당했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 평균 147건이 접수되며 201명이 고발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고발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논란이 큰 사건은 시민단체가 나서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내기도 한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이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헬기 이송 특혜 의혹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라면 더 그렇다. 검찰이 수사해서 기소하면 고발당한 진영이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는 이런 ‘고발 활동’에 적극적이다. 실제 두 사건 모두 시민단체와 유튜버 채널 등이 고발장을 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고발이라는 사법적 행위의 이 같은 성격을 감안한다면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고발 사주’ 의혹은 형사사법체계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고발을 받아야 하는 검찰이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라서다. 고발장에 적시된 피해자가 당시 검찰총장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고, 피고발인은 최강욱 전 의원과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당시 여권 정치인이었기에 특히 더 그렇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검찰권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장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고발장의 작성, 검토를 비롯해 고발장 내용의 바탕이 된 수사 정보의 생성·수집에 관여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검찰권을 남용’하는 과정에 수반된 것이란 측면에서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 또한 무겁다”고 꾸짖었다. 사실상 고발 사주 의혹의 실체를 인정하고 선거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선거 관련 사건이나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엄중 수사’와 ‘실체적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 역시 두 원칙으로 대응해야 했지만, 검찰은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손 검사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김웅 의원을 불기소처분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 검찰총장 인사말에 적어놓은 ‘국민을 섬기는 검찰’이 무엇인지, 국민 모두가 아는데 검찰만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총선이 8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의 ‘정책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도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건강보험료 감면 등 유권자들의 귀가 솔깃해질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역 표심을 자극하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계획도 속속 등장했다. 최근 서울 유권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SOC는 ‘도심철도 지하화’ 사업이다. 경인선, 경원선, 경의중앙선 등 서울 곳곳의 지상철을 지하로 넣겠다는 것이다. 지상철 지하화는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단골처럼 내놓았던 공약이다. 철도 주변 지역이 갈수록 낙후되고 있는 데다 소음과 분진 피해가 심각해서다. 지상철이 지역을 단절시킨다는 비판도 많다. 현재 서울에만 약 100km에 달하는 지상철이 도심을 운행 중이다. 철도가 지하로 들어가면 인근 지역은 대대적으로 개선된다. 경의중앙선 일부를 지하화하면서 서울시가 조성한 ‘경의선 숲길’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돈이다. 서울시가 추산한 결과 서울의 지상철을 모두 지하로 넣으려면 40조 원이 든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으로 공사비가 급등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부산, 대구, 대전 등 지방 도심의 지상철까지 지하화하려면 60조 원이 넘게 필요하다. 여야는 9일 본회의에서 ‘철도지하화 및 철도 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1월 여야 의원들이 특별법을 발의한 지 2개월 만이다. 특별법은 철도 부지를 민간이 개발토록 허용해 지하화에 필요한 사업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했다. SOC 사업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도 면제가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약속한 사업으로 국토교통부가 노선 등 기본계획을 마련 중이다. 여야정이 모처럼 한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때도 선거마다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나면서 치러진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도 그랬다. 민주당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밀어붙여 예타를 면제시켜줬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까지 선거 직전 신공항 부지를 직접 방문해 부산 표심을 자극했다. 정부와 여당이 총선 승리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선거에서 완패했다. 가덕도에 10조 원 이상을 쏟아붓고 공항을 조기에 완공시키겠다는 청사진에도 부산 유권자들은 표를 주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 시장의 범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민주당 심판론’이 대세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우리 유권자들이 이제는 장밋빛 SOC 따위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선거이기도 했다. 도심철도 지하화 사업을 바라보는 서울 유권자 마음도 그때와 비슷한 것 같다. SOC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동산 커뮤니티조차 “그 돈으로 지하철을 더 놓는 게 낫다” “이번엔 안 속는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유권자들이 진짜로 관심을 갖는 건 선심성 정책이나 무분별한 SOC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와 복지 등 삶과 직면한 문제라는 것을, 여야와 정부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우리 헌법에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조항이 3개 있다. 5조 2항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7조 2항과 31조 4항은 공무원과 교육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을 통해 보장토록 하고 있다. 헌법이 이 3개를 콕 집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것은 군, 공무원, 교육이 정치적으로 치우칠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파장과 폐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군과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던 사례를 현대사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군인이 국토 방위를 소홀히 하고 정치에 나섰을 때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영화 ‘서울의 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3·15부정선거처럼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해 민의가 왜곡됐던 사례도 권위주의 정권에서 경험했다. 교육 분야가 정치적 중립을 상실한다면 국가의 백년지대계가 쉽게 흔들릴 것 역시 자명하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하나회 등 군 사조직이 금지되면서 군부 쿠데타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김대중 정부 때 교원노조가 합법화되며 전교조 등이 활동하고 있지만, 교사의 정치 활동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으로 공무원의 정치 활동도 규제하면서 과거와 같은 부정선거가 재현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러나 일부 검사는 정치적 중립성을 헌신짝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격노해 감찰을 지시한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이던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 “지역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국정감사에서 이런 사실이 공개되고 대검이 진상조사에 나서자 김 검사는 “총선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해명했고, 대검은 ‘검사장 경고’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김 검사는 곧바로 사직서를 내며 총선 출마 의지를 밝혔고, 페이스북에 출판기념회 개최를 알렸다가 지웠다. 이에 대검은 김 검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대전고검 검사로 보낸 뒤 추가 감찰을 진행 중이다. 박대범 마산지청장도 총선과 관련해 외부 인사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져 광주고검으로 전보됐고, 감찰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이성윤,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사실상 총선 행보를 걷고 있다. 두 검사는 각각 ‘김학의 긴급출금 사건’과 ‘한동훈 녹취록 오보’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라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연구위원은 9일 전북 전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신 연구위원은 10일 전남 순천에서 북콘서트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표를 낸 검사들은 총선까지 사표가 수리되지 않아도 출마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상 퇴직 기한(선거일 90일 전) 전에 사표를 냈기 때문에 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출마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 덕분이다. 그러나 현직 검사들의 정치 행보를 두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공무원도 입법을 통해 출마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1년 9월부터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퇴임한 올해 9월까지 사법부를 지켜본 국민들은 상당한 피로감을 겪어야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이른바 ‘사법 농단’ 사태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란 민주주의 원칙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재판 지연’이 만연한 김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국민들은 헌법이 보장한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까지 무색해졌다. 무엇보다 12년 동안 대한민국 사법부가 과연 국민을 대표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됐다. 사법부가 국민이 아니라 진영을 대표한다는 의심을 사면서 국민들도 반으로 갈라졌다. 진보 진영에선 양 전 대법원장 체제가 보수 정권과 결탁해 사법 농단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보수 진영에선 김 전 대법원장이 야권 성향의 이른바 ‘정치 판사’를 요직에 앉히고 야당 인사들의 재판을 줄줄이 지연시켰다고 본다. 민주주의 원리를 따져볼 때 엄밀하게 말하면 사법부는 국민을 직접 대표하진 않는다. 입법 사법 행정 중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지만,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사법부는 국민을 대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곳이자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미 연방대법관들을 판사(Judge)가 아니라 ‘Justice’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들이 ‘정의(Justice)의 화신’ 역할을 하도록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어서다. 사법부가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면 입법과 행정이 아무리 잘 작동해도 민주주의는 금세 무너진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법부만 국민이 선출하지 않도록 한 것은 법관에게 필수적인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이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는 전 세계 곳곳에서 숱하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에 사법부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더 갖춰야 하고 국민을 더 많이 대표하고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사법부의 역설이자 국민이 기대하는 사회적·역사적 책무다. 8일 국회 인준을 받은 조희대 대법원장은 진영을 넘어 12년의 피로감을 해결해 줄 적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보수 성향’이라며 검증에 나선 야당 의원들조차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청렴성과 도덕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흠결이 없다”는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본회의 인준 표결 역시 반대가 18표에 불과할 정도로 야당이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지난날 서슬 퍼런 권력이 겁박할 때 사법부는 국민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고 밝혔고, “평등의 원칙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빈부 간에 심한 차별을 느끼게 했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선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만 옹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거란 분석이 나왔다. 조 대법원장이 지금의 초심을 유지하면서 진영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사법부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수원지검 이정화 부장검사의 실명과 사진을 ‘좌표’로 찍고 “김건희 여사 일가를 치외법권으로 만든 ‘호위검사’”라고 공격하고 있다. 이 검사가 여주지청 형사부장일 때 ‘양평 공흥지구 특혜 의혹’ 사건을 맡아 윤석열 대통령의 처남이자 김 여사의 오빠인 김모 씨(53)에 대해 ‘봐주기 기소’를 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77)는 2005년 시행사 ESI&D를 설립했고 김 씨는 최 씨의 뒤를 이어 2014년 대표가 됐다. ESI&D는 2011∼2016년 공흥지구에 아파트를 짓고 8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양평군은 개발부담금 17억 원을 부과했는데, ESI&D가 이의를 제기하자 ‘0원’으로 변경했다. 대선 정국에서 윤 대통령이 야권 주자로 부상하면서 특혜 의혹이 제기됐고, 양평군은 개발부담금을 1억8700만 원으로 다시 정정했다. ESI&D는 지난해 5월 이를 완납했다. 경찰은 김 씨가 개발부담금을 낮추려고 공사비를 부풀린 서류를 제출한 혐의(사문서 위조 등)로 올 5월 여주지청에 송치했고, 검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김 씨를 7월 불구속 기소했다. 불구속 기소 당시 검찰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추가했다. 김 씨가 위조서류를 제출해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문서 위조와 공무집행 방해는 각각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두 혐의가 다 인정되면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 검사는 경찰이 신청한 영장이 부실하다고 판단되자 보완해 청구했고, 경찰이 적용하지 않은 공무집행 방해 혐의도 적극 입증했다고 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도 “대통령 처가 수사라 부담이 많았을 텐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디테일’은 외면한 채 이 검사의 좌표를 찍고 공세를 펴고 있다.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에 따르면 이 검사는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있을 때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처벌받은 피해자들을 위해 재심 법정에 나와 증언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정화 검사를 사법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준 ‘진짜 검사’로 생각한다”며 “사람을 함부로 조리돌림하지 말고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또 “이 검사는 사회적 약자, 호소할 곳 없는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며 “세력의 힘으로 ‘정당한’ 권위와 사명감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개인의 평가인 만큼 박 변호사의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민주당의 주장이 설사 일부 맞다고 하더라도 검찰의 처분은 검사 개인이 홀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검찰 조직의 판단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표현처럼 ‘행정부 외청 공무원’에 불과한 검사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며 ‘조리돌림’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파시스트적 행태다.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잇겠다는 민주당이 ‘파시즘 정당’ 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법조인들은 시대에 가장 뒤떨어진 법률로 근로기준법을 꼽는다. 근로기준법은 1953년 일본의 노동기준법을 거의 그대로 들여와 제정됐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한국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본은 2006년 노동기준법과 별개로 노동계약법을 제정했고, 2018년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내세우며 노동관련법 30여 개를 정비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연장근로는 탄력적으로 허용하는 한편, 미국 제도인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을 모방해 고소득 전문직은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하는 ‘고도(高度)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의 노동개혁은 공장 근로자에게 초점을 맞췄던 노동기준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면서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 등 새로 등장한 직종에 대한 법적 기반을 갖춰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조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 규정만 봐도 시대에 한참 뒤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합해 주 52시간까지 허용한다. 연장근로 12시간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70년째 그대로다. 70년 전 입법자들은 연장근로 한도를 왜 12시간으로 정했을까. 당시만 해도 일요일만 쉬는 주 6일제(주 48시간)다 보니 하루 2시간씩 총 12시간만 허용한 것으로 법조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후 노동시간은 1989년 44시간, 2003년 40시간으로 단축됐다. 주 5일제를 도입했다면 토요일 연장근로 2시간을 함께 없애 연장근로 한도도 10시간으로 줄이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연장근로 한도는 지금도 12시간이다. 전체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노동계와 노동시간 단축을 최소화하려는 경영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지만 12시간이란 수치가 기형적이란 사실은 양측 모두 부인하지 않는다. 정부는 올 3월 노동시간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가 ‘주 69시간’ 논란으로 역풍을 맞았다. 이후 대규모 설문조사 등을 거쳐 13일 개편 방향을 다시 발표한다. 하지만 벌써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69시간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여소야대 국면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세련되게 디자인하더라도 노동시간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선 일단 연장근로 한도를 10시간으로 줄여 주 50시간으로 운영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연장근로 한도를 2시간 줄이는 것에서 출발해 일부 직종은 더 일할 수 있게 한다면 노동시간 개편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는 취지다. 박근혜 정부 당시 노동개혁 일선에 있었던 정지원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도 “연장근로를 한 달에 8시간, 1년에 96시간 줄일 수 있어 국민과 MZ세대의 수용도를 높일 수 있다”며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탰다. 국회에는 “여야 합의보다 노동법 개정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기발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수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정부와 국회는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13일 내놓을 개편 방향에도 ‘연장근로 10시간’처럼 새롭고 파격적인 방안이 담기길 기대한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지난해 6월 법무부는 인사정보관리단을 만들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하던 공직자 인사검증 업무를 법무부가 맡은 것이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맡는 게 적절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미국이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에도 인사검증 기능을 내각으로 옮긴 것은 과거 청와대가 인사검증을 하면서 사찰 논란 등 부작용이 컸고, 청와대 권력도 비대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의 대통령실은) 옛날의 특별감찰반과 같이 공직자의 비위 정보 수집하는 건 안 한다”고도 했다. 인사 추천은 대통령실, 인사 검증은 법무부로 나눠 상호 견제와 교차 검증을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미국의 경우 인사검증은 백악관이 주관하지만, 실제 검증은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이 한다. 백악관의 1차 검증을 통과한 공직 후보자가 국가안보직위질문서를 제출하면 FBI가 이를 넘겨받아 탐문한다. 이웃과 친척, 직장 동료 등을 직접 인터뷰해 후보자가 제출한 서류와 틀린 내용이 없는지 확인하고, 이들로부터 다른 인물을 추천받아 중복 검증하는 방식이다. FBI는 이렇게 수집한 ‘인사정보’를 백악관에 서면으로 보고한다. FBI는 보고서에 인사정보만 기록할 뿐 적합, 부적합 등의 의견이나 판단은 전혀 적지 않는다고 한다. 수집한 인사정보는 법무부 장관에게도 보고하지 않는다. 검증과 조사는 FBI가 독립적으로 하되 최종 판단은 백악관이 하는 구조인 셈이다. 윤 대통령이 법무부에 인사검증 업무를 맡기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인사정보관리단 설치 직후 FBI를 방문한 것은 미국의 이런 방식이 가장 민주적이면서도 효과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아들 학교폭력 논란으로 물러나고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는 과정을 보면 현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인사정보관리단은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징계 취소 소송을 파악하지 못했고, 김행 후보자가 창업한 언론사가 성범죄 2차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제목 장사’를 했던 것 역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비상장 주식 취득 및 미신고 역시 인사정보관리단이 파악했어야 할 필수적 인사정보였다. 국감에서 이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한 장관은 “객관적인 자료 수집 업무를 통상적으로 했다”고만 답했다. 후보자에 대한 가부 판단 역시 미국처럼 법무부가 아닌 대통령실이 했다는 게 한 장관의 국감 답변이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이들 후보자와 관련해 논란이 됐던 내용을 몰랐다면 부실 인사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고, 파악해서 보고했음에도 대통령실이 지명을 강행했다면 인사정보관리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선진 시스템이라도 부실하게 운영한다면 기대했던 효과를 낼 수 없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인사정보를 부실하게 수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포함해 현행 인사검증 시스템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인사검증의 기초는 미국이 그렇듯 필수적인 인사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해 활용하는 것이다.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2010년 12월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법정. 건설시행사 한신건영 대표 한만호 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1심 2차 공판이 열렸다. 당시 법조팀 소속이었던 필자는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을 법정에서 취재했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 대표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 질문에 “어떤 정치자금도 제공한 적 없다”며 검찰 조사 진술을 뒤집었다. 법정은 발칵 뒤집혔다. 한 전 총리 측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고, 한 전 총리의 측근으로 함께 기소된 김모 씨는 피고인석에서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갔다. 재판장이 몇 번 호통을 치고 나서야 법정은 다시 조용해졌다.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이 나서 “8개월이 지나 왜 진술을 바꿨느냐”고 물었다. 한 씨는 “내 허위 진술로 존경의 대상이었던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고 기소까지 당했다. 죄책감에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지만 이대로 죽으면 한 전 총리의 누명을 벗길 수 없다고 생각해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며 울먹였다. 한 씨의 진술 번복으로 한 전 총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한 씨의 ‘법정 진술’보다 ‘검찰 조서’가 사실관계에 더 부합한다는 점을 법정에서 입증해 나갔고, 한 씨를 위증죄로 기소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한 씨의 진술이 번복됐더라도 다른 증거들에 의해 혐의가 인정된다”며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재판에선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 전 부지사는 검찰 조사에서 대북송금 사실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검찰로부터 지속적 압박을 받으면서 이 대표가 관련된 것처럼 일부 허위 진술을 했다. 이 대표에게 어떠한 보고도 한 적이 없다”고 번복했다. 이 전 부지사가 번복한 진술을 유지할 경우 검찰 조서는 휴지 조각이 된다. 과거엔 피고인이 검찰 조서를 재판에서 부인하더라도 적법 절차 등 일정한 요건만 갖췄다면 증거로 인정됐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피고인이 재판에서 인정할 때만 증거로 채택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은 이 대표 측이 조서를 무력화하고 이 대표를 겨냥한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이 전 부지사를 회유하고 ‘사법 방해’를 시도했다고 보고 있다. 아내와의 갈등과 변호인 선임 문제로 한 달 이상 공전됐던 대북송금 재판은 진술 번복과 사법 방해 논란이 이어지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올 3월 이 전 부지사가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기소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사건 규명이 제자리걸음인 이유다. 법정 진술을 최우선시하고 공판 중심주의를 구현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검찰 조서가 이렇게 쉽게 증거 능력을 상실한다면 재판은 한없이 길어지고 실체적 진실 규명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시행 2년이 돼 가는 만큼 제도적 보완 방안은 없는지 국회와 정부가 머리를 맞댈 시점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우리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재판이 길어지면 비용 등 소송 당사자의 부담이 커지고 범죄 피해자 구제도 늦어질 수 있는 만큼 법원에 ‘신속히 재판할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신속 재판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도 여럿 있다. 먼저 민사소송법은 소 제기 5개월 이내에 선고토록 하고 있다. 1981년 시행된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형사소송 1심은 기소일부터 6개월 이내, 항소심과 상고심은 재판부가 기록을 송부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하지만 사법 현장에선 이들 규정이 오래전부터 사문화되며 재판이 지연돼 왔다. 판사가 재판을 느릿느릿 진행해도 별다른 제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선언적 규정인 탓에 원피고와 피고인들은 신속 재판을 강제할 권리도, 재판 지연을 배상받을 방법도 없다. 헌법재판소마저 1999년 민사소송법 5개월 선고 조항을 강제성이 없는 ‘훈시 규정’으로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에는 “판결의 선고는 변론을 종결한 기일에 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따로 선고기일을 지정할 수 있다”(318조의 4)는 규정도 있다. ‘즉일선고’ 원칙을 담은 조항으로 변론 종결과 검찰 구형이 이뤄지는 결심공판 때 가급적 판결까지 내리라는 취지다. 즉일선고를 할 땐 유무죄 여부와 형량만 선고하고 판결문은 나중에 작성해도 된다. 하지만 즉일선고 원칙 역시 거의 구현되지 않는다. 별도 기일을 잡아 판결하는 걸 형사소송법은 ‘특별한 사정’으로 국한했지만, 현장에선 어느새 관행처럼 정착됐다.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1심 판결 피고인 23만3490명 가운데 즉일선고를 받은 이는 1만1202명에 불과했다. 피고인 100명 중 5명 정도만 즉일선고를 받은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취임한 이후 재판 지연은 더 심각해졌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폐지 등 이른바 ‘사법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판사에게 동기를 부여할 요인이 사라졌고, 유능한 법관들이 속속 떠났기 때문이다. 민사합의부의 1심 처리 기간은 2014년 252.3일에서 2021년 364.1일로 늘었고, 1년 이상 미제 사건은 12만 건(2021년 기준)에 육박한다. 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비판을 우려해 재판 지연을 바로잡지 못하고, 판사들 사이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확산된 것도 재판 지연 만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법조인들은 ‘김명수 체제’의 부작용 때문에 재판 지연 문제가 한층 심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대법원장이 바뀌더라도 지금처럼 신속 재판을 강제하는 법이 없으면 재판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긴 힘들 것이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도 독일과 일본처럼 재판 지연을 규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뜻을 주변에 밝혀 왔다고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듯 신속 재판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정부와 국회도 차기 대법원장과 협력하며 신속 재판 관련 입법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최근 방영된 한국 드라마 ‘형사록’은 총기 사용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룬다. 흉악범을 검거하고도 총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은 경찰관. 그리고 딸의 목에 칼을 겨눈 인질범에게 선뜻 총을 쏘지 못하는 주인공 김택록 형사의 모습은 대한민국 경찰의 오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지난달 21일 조선(33)이 서울 신림역에서 흉기 난동을 벌여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2주 넘는 동안 대한민국은 ‘살인 예고’ 공포에 휩싸였다. 3일 분당 서현역에서 최원종(22)이 차량과 흉기 난동으로 14명의 사상자를 냈고, 국민들은 번화가와 백화점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다니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됐을까. ‘형사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동료가 죽을 위기에서 총을 사용해도 징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흉악범을 검거한 ‘공로’보다 흉악범이 다치지 않아야 할 ‘인권’이 더 중시되는 상황.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동료가 위험에 처한 상황을 목격하고도 총을 쏴야 하는지 경찰끼리 언쟁을 벌이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딸을 붙잡은 인질범에게도 선뜻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주인공까지. ‘형사록’은 공권력을 행사할 때 고려하고 감수할 게 너무 많은 한국 경찰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공권력이 이렇게 고민하고 머뭇대는 사이 한국은 ‘묻지 마 범죄’와 살인 예고가 난무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흉기난동에 대해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총기를 적극 활용하라”고 일선에 지시했다. 법무부는 살인 예고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공중 장소에서 흉기 소지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폭력사범 검거 과정에서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할 때 정당방위를 적극 적용하라”고 대검찰청에 지시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공권력 행사를 적극 보장하고, 살인 예고와 흉기 난동을 예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여전히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다. 정부만 믿고 선뜻 물리력을 행사했다가 피의자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형사 처벌을 받거나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에 따르면 법원이 공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했다고 인정해 경찰관을 처벌하거나 민사 책임을 지게 한 판례가 10건이나 있다고 한다. 경찰이 정당한 물리력 행사에 ‘면책권’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과도한 공권력 행사는 분명 제어해야 한다. 피의자의 인권도 소중하다. 하지만 소송과 처벌이 두려워 긴급 상황에도 물리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경찰의 호소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가 난무하는 사회를 막으려면 공권력부터 바로 서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김택록’들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