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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중현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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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2024-11-22
칼럼100%
  • [횡설수설/박중현]노노 상속 급증… 부도 늙는다

    노인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규정한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1981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66.1세였다. 20대 초에 결혼했다 해도 그 시절 부모가 타계할 때 자녀들의 나이는 40대 중반을 넘지 않았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826달러. 대대로 재산을 물려받은 극소수 부유층을 제외하면 자녀에게 물려줄 만한 재산이 있는 집도 거의 없었다. ▷지난해 상속세가 부과된 피상속인(사망자) 중 80세 이상인 경우는 1만712건으로 전체 상속 건수의 53.7%였다. 이들이 물려준 재산은 20조32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20조 원이 넘었다. 사망자 연령을 고려할 때 재산을 물려받은 자녀들의 나이는 적어도 50대 중반이 넘을 것이다. 한국인 남성과 여성의 올해 평균 기대수명은 각각 86.3세와 90.7세. ‘노노(老老) 상속’은 이미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됐다. ▷문제는 노인이 돼버린 자녀가 물려받은 재산은 좀처럼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녀 양육 및 교육, 주택 구입 등 제일 돈이 많이 드는 시기가 지나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같은 일을 겪은 일본이 2년 전부터 ‘부(富)의 회춘’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다. 일본은 피상속인 중 80세 이상 비중이 70%가 넘고, 상속인의 52%는 60세 이상이다. ▷생전에 일찌감치 재산을 물려주도록 유도하는 게 일본 정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부모 사망일 7년 이전에 자녀에게 연간 110만 엔(약 985만 원)까지 물려준 재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 준다. 60세 이상 조부모가 18세 이상 손자녀에게 준 교육비는 1500만 엔까지, 결혼·육아비는 1000만 엔까지 세금 면제다. 한 세대를 건너뛰어 젊은이들에게 노인층의 돈이 신속히 전달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높은 세율은 부의 이전을 어렵게 한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50%는 일본(55%)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수입이 적은 청년층은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상속받을 경우 내야 할 수억 원의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고령층이 남긴 재산 중 절반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 등 건물이어서 상속 절차가 복잡해지는 문제도 생긴다. ▷조만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에선 소비 침체가 만성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가구 순자산의 44%를 쥐고 있는 60세 이상 가구주의 지갑은 닫혀 있고, 소비 성향이 강한 청년과 돈 나갈 데 많은 30, 40대는 쓸 돈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만 가능하다면 부의 세대 간 이전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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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덜 하기’에서 ‘더 하기’로… 풍향 바뀌는 ‘일자리’ 시대정신

    “사람 수 많아봐야 소용없어요. 기술 개발 마지막 단계에선 몇몇 핵심 인력이 얼마나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립니다.” 20여 년 전 방문한 한 대기업 연구소의 소장이 들려준 얘기다. ‘시라소니’ 같은 싸움꾼들이 수십 명과의 난투에서 살아남는 비결로 ‘적이 많아도 상대는 결국 주변 4명뿐’이라고 했다던 ‘싸움의 법칙’을 연상시키는 말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국이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리튬이온 배터리, 유기발광다이오드 같은 기술이 모두 이런 식으로 개발됐다. 그 소장은 연구원들이 노닥거리는 시간이 아깝다며 커피 자판기 전원 줄을 가위로 자르고, 추석 연휴에 귀향 중인 연구원 차를 돌리게 해 일 시킨 일화로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지금이라면 ‘갑질 상사’로 낙인찍히고, 주 52시간제 위반으로 고발됐을 것이다.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초격차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로 예전과 달리 핵심 인재들도 필요한 만큼 일할 수 없게 만드는 여건을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신제품 출시가 코앞이어도 주 52시간 규제에 맞춰 오후 6시면 연구실 불을 끄고 퇴근할 수밖에 없어서다. 여야가 입법을 추진 중인 ‘K칩스법’에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넣어 달라고 산업계가 요청하는 이유다. 제조업 강국 독일에선 요즘 근로자의 과도한 ‘병가(病暇)’가 논란거리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독일 공장 직원들이 너무 자주, 그것도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병가를 낸다는 이유로 직원 집을 불시에 찾아 꾀병 여부를 확인한 게 계기였다. “테슬라 공장은 인원이 부족하고, 작업량이 많아 병가가 많은 것”이라고 금속산업노조가 반발하자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경영자(CEO)가 “독일의 높은 병가율은 기업 입장에선 문제”라며 테슬라 역성을 들었다. 독일 근로자의 1인당 평균 연간 병가 일수는 19.4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과도한 병가가 없다면 마이너스 0.3%였던 작년 독일의 경제 성장률이 플러스 0.5%로 높아졌을 거란 분석도 있다. 두 달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의뢰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를 낸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유럽이 뒤처진 이유로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 부족, 낮은 생산성과 함께 노동시간 감소를 꼽았다. 지난달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해 야당과 연정을 통해 간신히 정권을 유지하게 된 일본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요즘 청년, 주부의 알바 근로시간 연장을 가로막는 ‘103만 엔(약 930만 원)의 벽’과 씨름하고 있다. 자신을 다시 총리로 만들어준 연정 파트너 국민민주당의 총선 핵심 공약이 ‘103만 엔 벽 허물기’였기 때문이다. 103만 엔은 일본에서 23세 미만 대학생 자녀가 알바로 돈을 벌었을 때 부모가 부양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연소득의 상한이다. 그 이상 벌면 연말정산 때 공제를 못 받는다. 지금은 150만 엔으로 높아진 배우자 공제 기준도 예전에 103만 엔이었기 때문에 이 선을 직원들의 배우자 수당 지급 기준으로 삼는 기업이 많다. 통상 하루 4∼5시간, 주 3∼4일 일하는 주부, 청년 알바가 근로시간을 늘렸다가 소득이 이 선을 넘으면 가족 전체로 볼 때 경제적으로 손해여서 더 일할 의지를 꺾는 제약이 된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에선 주 5일,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에게 휴일 하루 치 일당을 더 주도록 하는 ‘주휴수당’이 일본의 103만 엔처럼 근로시간 연장 기회를 막는 벽이다. 주휴수당은 근로 여건이 열악하던 1953년 일본의 법을 베껴 만든 제도로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나라에만 남아 있다. 높은 최저임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자영업자가 많아 ‘15시간 미만 초단기 알바’는 한국 파트타임 일자리의 표준이 됐다. 수입이 더 필요한 근로자는 따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은 선진국 중 최장 근로시간의 오명을 벗기 위해 덜 일하고, 더 많은 여가를 제공하는 유럽식 근로 형태를 지향점으로 삼아 왔다. 지금도 야당과 노동계는 ‘주 5일제’로도 부족하다며 ‘주 4.5일제’를 요구한다. 하지만 선진 각국은 다른 나라보다 강한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들은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위해 근로시간을 늘리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의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가 “주 80시간 일할 용의가 있는 초고지능(super high IQ) 혁명가를 모집한다”고 한 건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일자리와 관련한 시대정신이 빠르게 바뀌는데 한국만 다른 길로 가선 곤란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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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이재명이 지나간 자리

    #. 결국 ‘희망 고문’으로 끝났다. 차가 다니는 28개 한강 다리 중 유일하게 통행료를 받는 일산대교 무료화와 관련해 대법원은 이달 10일 경기도에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지사 자리를 던진 2021년 9월 3일 마지막으로 결재한 사안이다. 다리를 자주 이용하는 김포, 고양시 주민들로선 화가 나겠지만 법원은 “통행료 부담 정도가 이용자들의 교통권을 제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일산대교의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한 경기도의 공익처분, 통행료 징수금지 조치가 위법했다는 것이다. 민자 사업으로 건설된 일산대교의 운영권은 국민연금이 100% 갖고 있다. 당시 이 지사는 “보상금액은 2000억 원대”라며 자신의 결정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연금이 7000억 원의 기대수입을 포기해야 했고, 불이익은 국민연금 가입자 2200만 명에게 돌아갈 판이었다. 다리를 이용하지 않는 도민들이 낸 세금을 일부 지역민을 위해 쓰는 게 타당한지도 논란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였는데도 국민연금이 소송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 지난달 말 대법원은 경기 성남시 백현동 ‘옹벽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의 사용승인 신청을 거부한 성남시의 처분이 적법하다며 아파트 시행사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성남시는 2021년 6월 아파트 거주동 사용은 승인하면서도 최고 51m 높이 수직옹벽에 붙여 지은 커뮤니티센터 3∼5층에 대해선 안전성 보완 대책을 마련하라며 승인을 보류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이었을 때 그의 지인인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가 인허가에 간여하고, 알선 대가로 70억 원 넘게 받은 혐의로 올해 8월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그 아파트다. 주민들은 3년 넘게 관련 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파트 전체 준공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많다. 중세 성벽처럼 치솟은 옹벽의 안전성도 문제지만, 주민들은 아파트 가치가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이다. 그렇다고 이 대표가 책임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최근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과거 ‘협박’이라고 했던 표현을 ‘압박’으로 바꾸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 국토교통부의 요구에 떠밀려 토지 용도를 4단계 높여줬을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세금이 안 걷혀 난리인 와중에 경기도는 다른 재정 문제까지 겹쳐 고민이 많다. 이재명 지사 시절인 2020∼2021년 ‘재난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빌려 쓴 ‘지역개발기금’을 갚아야 할 시기가 닥친 것이다. 당시 경기도는 1차 재난기본소득으로 도민 1인당 10만 원씩 1조3400억 원, 외국인까지 추가한 2차 때 1조4000억 원, 중앙정부 지원금 대상에서 빠진 소득 상위 12%에게 25만 원씩 나눠준 3차에 6300억 원을 썼다. 부족한 재원은 공공투자, 도로 건설 등에 쓰도록 적립해둔 지역개발기금에서 1조5000억 원을 빌렸는데, 올해 1583억 원을 시작으로 계속 상환해야 한다. 당시 이 지사는 “초과세수가 충분하다”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된다”며 재원 문제에 관한 비판을 일축했다. 하지만 세수가 넘쳐나던 부동산 극성기에 문제없을 것 같던 부담이 부동산 경기가 꺼진 지금 경기도의 재정 사정을 압박하고 있다. #. 지난주 10·16 재·보궐선거를 치른 전남 영광군과 곡성군에선 이르면 내년부터 1인당 연 100만 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유세 때 “군민 1인당 예산이 연 1500만 원이 넘는데, 이런저런 예산을 아껴 10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동네가 확 살 것”이라고 했다. 영광의 경우 인구 5만1430명에게 100만 원씩 지급하는 데 한 해 514억3000만 원이 든다. 영광과 곡성의 재정자립도는 경기도, 성남시는 물론이고 전국 평균보다 현저히 낮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 얼마나 오래 지급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얼마 전 ‘국민 배심께 드리는 이재명 무죄 이유서’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11개 혐의로 4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 이유로 ‘사악한 검찰의 잔인한 테러’ 등과 함께 이 대표가 “기록적 행정 성과를 낸 압도적 차기 후보”란 점을 들었다.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것이 유무죄를 가를 이유가 된다는 논리를 납득하기 힘들 뿐 아니라 ‘기록적 행정 성과’가 실제로 있긴 했는지 의문이다. 이 대표가 수장을 맡았던 성남시, 경기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잘 살피면 답이 보일 것도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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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말하는 ‘부자 나라 되는 비결’

    “남북한은 ‘제도(institution)’의 역할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분단 이전 남북한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다른 제도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 격차가 10배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강연 때마다 남쪽은 온통 불야성이고, 북쪽은 암흑천지인 한반도 야경 위성사진을 소개하며 제도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그는 대중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게 하는 ‘포용적 제도’가 소득·권력의 분배를 개선하고 혁신을 일으켜 부유한 나라를 만든다고 했다. 반면 권력자에게만 부가 돌아가는 ‘착취적 제도’는 기술, 산업의 혁신을 저해해 국가를 가난하게 한다. 특히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부국,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이론적 요소가 한반도의 남북 간 차이에 모두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우쭐할 일만은 아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올해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직 군사독재 시절의 관치경제, 부정부패의 잔재가 남아 있어 완전한 포용적 경제 제도를 이루기에 갈 길이 멀다”고 꼬집었다.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같은 대학 사이먼 존슨 교수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한 대표적 국가로 한국을 꼽으면서도 “강력한 제도를 구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금방”이라고 경고했다. ▷애스모글루와 존슨 교수, 시카고대 제임스 로빈슨 교수 등 이번에 함께 상을 받은 제도경제학 분야의 석학 3명은 연구, 저술을 통해 공조해 왔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이들이 국가의 번영과 제도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 냈다”고 평가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1776년 펴낸 ‘국부론’의 원제가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다. ‘어떻게 해야 나라가 부유해질까’라는 경제학의 근원적 질문에 답을 추구해온 이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셈이다. ▷저서 ‘좁은 회랑’에서 애스모글루 교수는 독재적 국가권력을 민주적 사회가 견제하는 것을 구약성서에 나오는 괴수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우는 일로 표현했다. 성공한 국가를 만드는 과정이 그만큼 어렵고 길도 좁다는 의미다. 수상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은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희망컨대 언젠가 더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춘 한국과 통일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문제는 북한 정권이란 리바이어던은 주민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외부의 도전을 차단하느라 콘크리트 담을 높게 쌓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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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50년 시한에 쫓기는 제7광구 한일 공동자원 개발

    “해저 자원을 두 나라 이상이 공동 개발한다는 발상은 1969년 (유럽) 북해 대륙붕 분쟁 사건에 대한 국제사업재판소 판결에 의해 제기된 바 있으나, 실제 실천에 옮기게 되는 것은 한일 간 대륙붕 협정이 처음이다.” 1978년 1월 8일자 동아일보는 ‘세계 최초의 석유 공동개발’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그해 6월 한일공동개발구역(JDZ) 협정 발효로 개발이 시작되는 ‘제7광구’의 의미를 이렇게 소개했다. ▷어제 한일 정부가 JDZ 협정에 따른 6차 한일 공동위원회를 도쿄에서 개최했다. 1985년 5차 회의 때 만난 후 39년 만에 마주 앉은 것이다. 협정은 발효로부터 50년이 지난 2028년 6월에 종료된다. 자동 종료 시점으로부터 역산해서 3년 전인, 내년 6월부터는 양국 중 어느 쪽이라도 종료를 선언할 수 있다. 협력을 계속할 생각이 있다면 양국이 더는 협상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제주도 남쪽 200km 바닷속 7광구가 처음 주목받은 건 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개발위원회가 관련 보고서를 펴내면서였다. 이 보고서는 “한국 서해와 동중국해 대륙붕에 바다 기준 세계 최대 매장량의 석유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듬해 박정희 정부는 발 빠르게 7광구에 대한 영유권을 선포했다. 수심 200m 이내의 대륙 연장부인 대륙붕이 어느 나라 땅에 연결됐느냐에 따라 개발권을 부여하던 당시 국제법은 한국에 유리했다. ▷1973년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 회원국들은 ‘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한 서방을 상대로 석유 금수조치를 개시했다. ‘1차 오일쇼크’다. 배럴당 3달러였던 국제유가가 12달러로 뛰었다. 거리만 보면 한국보다 7광구에 가까운 일본은 마음이 급해져 강하게 권리를 주장했다. 자원을 개발할 기술, 재원이 부족한 한국은 1974년 공동 개발을 결정했다. ▷한국석유공사와 일본석유산업단이 1978∼1987년, 2002년 두 차례 7개 시추공을 뚫는 등 공동 탐사를 벌였지만 경제성 있는 유정을 찾지 못했고, 일본은 소극적 태도로 돌아섰다. 탐사·시추를 공동으로 해야 하는 조항 때문에 한국도 발이 묶였다. 1982년 바뀐 국제해양법이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인정하는 등 거리 중심으로 바뀌면서 7광구 상당 부분이 일본에 귀속될 가능성이 커지자 고의로 개발을 미룬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협정이 종료되더라도 7광구는 한일 대륙붕이 중첩되는 곳이어서 상대국 동의 없는 일방적 개발은 어렵다. 게다가 중국은 한일 협정 초기부터 7광구가 중국에서 뻗은 대륙붕이라는 주장을 펴며 인접 지역에 시추공을 뚫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마음을 열고 7광구를 협력의 장으로 키워 내지 못하면 괜히 주변국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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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커트라인’ 선상의 정치인들, 과거로 회귀하는 정책 시계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입니다.” 2013년 9월 말.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연금 대선 공약을 축소하기로 한 데 대해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모든 어르신들께 20만 원을 지급할 경우 2040년에 157조 원의 재정 소요가 발생해 미래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넘기는 문제가 지적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18대 대선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한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핵심 공약이 기초연금이었다. 하지만 집권 후 재정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박근혜 정부는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10만∼20만 원씩 차등 지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야권의 비판이 쏟아졌고, 대국민 약속 위반에 반발해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하는 ‘항명 파동’까지 벌어졌다. 이달 초 윤석열 정부가 첫 연금개혁안을 공개하면서 현재 최대 월 33만5000원 수준인 기초연금을 단계적으로 4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소득 하위 50% 이하 노인은 2026년에 월 40만 원까지 인상하고, 2027년에는 하위 50∼70% 노인으로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에 ‘기초연금 40만 원’ 대선 공약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5월 21대 국회 막바지에 여야의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이 바짝 접근했을 때 정부가 이를 걷어찬 이유는 ‘국민연금만이 아닌 연금체계 전반의 구조개혁 필요성’이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구조개혁 대상은 고령화 진전에 따라 재정 투입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기초연금이다. 건전 재정, 약자에 대한 선별 지원을 강조하는 보수 정부라면 대상을 하위 50% 이하로 줄여 두텁게 지원하거나, 하위 50∼70%의 지급액을 동결하려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한다. 기초연금 사안에 대한 박 정부와 윤 정부의 결정적 차이는 대통령 지지율이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은 ‘레임덕 커트라인’으로 불리는 20%까지 떨어졌다. 11년 전 60%가 넘던 박 대통령 지지율의 3분의 1 수준이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 끝이 안 보이는 의정 갈등으로 악재가 산적한 현 정부에 지지율을 더 깎아내릴 수 있는 개혁을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과는 종류가 다른 ‘사법 커트라인’에 쫓기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 한두 달 안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가 최종심이 나올 때까지 국회의원직, 당 대표직을 내려놓을 리 없겠지만, 둘 중 하나라도 유죄 판결이 나오면 야권과 지지층의 동요는 불가피하다. 사법 리스크 대응에 온통 정신이 팔려서일까. 이 대표의 ‘민생개혁’ 시계는 3년 전에 멈춰 선 느낌이다. 19일 민주당은 이 대표의 대표 정책인 ‘지역화폐법’을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 지원금법’을 뒷받침하는 법안이다. 이 대표가 아무리 지역화폐의 장점을 주장하더라도 지역화폐 할인액을 정부 재정으로 보조해주는 효과는 국가 경제 전체로 볼 때 미미하다는 게 대다수 경제학자의 의견이다. 25만 원법, 지역화폐법은 대선 후보 시절 ‘기본소득 공약’의 변주란 점에서 시간이 지나도 전혀 발전이 없는 재탕, 삼탕 정책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금주 초 취임 두 달을 맞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심리적 커트라인’에 몰리고 있다. 김 여사 문제, 의정 갈등 해법을 놓고 용산 대통령실과의 신경전에 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공략에 뭐든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초조감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그가 요즘 간절히 매달리고 있는 사안이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의 폐지다. 각자 나름의 리스크에 쫓기고 있는 윤 대통령, 이 대표, 한 대표의 이해가 한 점에서 모인 것이 금투세 문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청년층이 다수 포함된 1400만 주식 투자자를 의식해 금투세 폐지를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깎아준 증권거래세를 원상 복구하는 데 대해선 입도 뻥끗 않는다. 물론 지지율에 득이 될 게 없어서다. 이 대표는 ‘부자 과세’ 강행을 주장하는 당내 세력 및 ‘개딸’을 의식하면서도 한편으론 주식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자신에게 몰아칠 사법 리스크 방어를 위해 어느 쪽 하나 포기하기 싫어서다. 민주당이 어제 금투세 문제를 놓고 정책토론까지 벌였지만 이 대표 의중이 ‘유예’ 쪽이어서 결국 시행이 미뤄질 공산이 크다. 2023년 2년 유예에 이은 두 번째다. 금투세 논의는 사실상 2020년 말 법 도입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단 1%의 지지율 하락도 버텨낼 능력이 없는 커트라인 선상의 정치인들 때문에 한국의 정책 시계가 과거를 향해 표류하고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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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한국 좌파, ‘부자와의 공생’ 배울 수 있을까

    1983년 10월 4일 세계적으로 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기업인 시위가 스웨덴에서 발생했다. 10만 명 가까운 스웨덴 기업인들이 열차, 버스, 승용차를 타고 수도에 집결했다. 전국에서 모인 기업인들이 ‘세금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스톡홀름 도심이 마비됐다. 성정이 차분하기로 유명한 스웨덴인, 그중에서도 돈 많은 기업인들이 이런 대규모 집회를 연 건 노조와 집권 사회민주당이 도입을 추진하는 ‘노동자 기금’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노동자 기금 법안은 매년 모든 기업의 순이익 20%를 기금에 적립하도록 의무화하고, 이 돈으로 노조가 기업 지분을 사들여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기업인만 배불리는 부(富)를 노동자가 공유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는데, 20∼30년 뒤면 모든 기업의 최대 주주가 노조가 될 판이었다. 힘들게 번 돈을 뺏어 가는 것도 모자라 이걸 지렛대로 노조와 정부에 기업을 헌납하게 된 기업인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경제계의 반대에도 사민당은 다른 좌파 정당과 손잡고 그해 12월 노동자 기금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3년 뒤 스웨덴의 세계적 가구업체 이케아(IKEA)는 네덜란드로 본사를 옮겼다. 60%의 법인세 최고세율, 70%의 상속세 최고세율과 함께 노동자 기금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테트라팩 등 다른 간판 대기업의 해외 이전도 줄을 이었다. 당연히 일자리가 감소하고 경제는 침체됐다. 금융위기까지 이어지면서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초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1991년 집권한 우파 정부가 노동자 기금을 폐지했을 때 사민당, 노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최근 한국 국회에서 상속세 개편을 둘러싼 여야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수십 년째 바뀌지 않은 상속세 체계를 고쳐 수도권에 집 한 채 정도 가진 이들의 배우자, 자녀 상속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여야가 경쟁적으로 감세안을 내놓고 있다. ‘부자 감세’ 비판을 입에 달고 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내의 일부 반발에도 상속세 감면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 때 0.73%포인트 차로 정권을 잡지 못한 이유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중산층에서 표가 덜 나왔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 폐지엔 여전히 부정적이다. 50%인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고, 실질 상속세 부담을 60%로 늘리는 최대주주 할증을 없애는 건 극소수 부유층에 혜택이 가는 일이라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에선 실질 상속세 부담을 70%로 높이는 법안까지 나왔다. 여당 역시 표와 직결되는 중산층 세 부담 완화에만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최고세율 인하, 할증과세 폐지는 여야의 상속세제 최종 합의안에서 빠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널리 알려진 대로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5%인 일본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상속세 할증은 대기업 최대주주가 주식을 물려줄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과세표준 금액을 20% 늘려 잡는 것이다. 획일적 할증 기준을 적용해 경영권 가치에 세금을 더 물리는 나라는 선진국 중 한국뿐이다. 1980년대 기업 유출 사태를 겪은 후 스웨덴 사민당의 기업 정책 방향은 180도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재집권한 사민당 정부는 대기업 해외 이전에 대해 사과하고,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환경을 악화시킬 정책을 다시는 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장기 집권을 하면서도 약속을 잊지 않았다. 2005년 스웨덴에서 상속세가 폐지된 이유다. 상속세 대신 도입된 자본이득세는 물려받은 주식 등을 처분하는 시점에 내기 때문에 기업 활동을 중단하거나, 지분을 팔기 전에는 피상속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스웨덴 좌파는 노동자 기금 사태와 ‘세금 망명’을 겪으면서 기업의 지분과 오너십을 노동자가 뺏어서 나눠 가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장, 생산설비처럼 사업을 영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스웨덴을 최고의 복지국가로 이끈 사민당은 지금까지도 ‘기업의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란 강령을 유지하고 있다.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하는 ‘친기업 좌파’ 덕에 스웨덴의 선진국 위상은 굳건하다. 스웨덴 인구 중 억만장자 비중은 미국보다도 훨씬 높다. 스웨덴 좌파가 수십 년 전 깨달은 ‘부자와의 공존 방법’을 한국의 좌파가 배우려면 기업인들의 집단시위, 기업들의 세금 망명이라도 겪어봐야 하는 걸까.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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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프랑스에서 체포된 ‘어둠의 메신저’ 텔레그램 창업자

    텔레그램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40)의 별명은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다. 저커버그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이용자가 30억 명인데 텔레그램은 9억5000만 명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자기 메시지가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텔레그램의 인기는 양지의 모든 SNS를 압도한다. ▷‘어둠의 메신저’ 텔레그램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두로프가 지난 주말 파리 외곽 부르제 공항에 자신의 전용기를 착륙시켰다가 프랑스 사법당국에 체포됐다. 프랑스 당국은 각국 정부의 범죄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해온 두로프가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는 마약 밀매, 아동 착취, 테러 등의 범죄를 방조한 것으로 본다. 수배 중인 줄 알면서 입국한 이유가 불분명하지만 장기 징역형이 불가피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메시지 암호화, 대화방 폭파 기능 등을 갖춘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두로프가 사업 초기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각국 정부의 범죄자료 제공 요청을 완강히 거부한 덕에 구린 게 많은 글로벌 범죄자들이 안심하고 머무는 놀이터가 됐다. 러시아에서 메신저 회사를 운영하던 두로프가 10년 전 독일로 망명한 것이나 텔레그램 본사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둔 명분도 개인정보 보호다. ▷한국에선 마약 유통·판매의 70% 이상이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식 사기범들도 텔레그램에 리딩방을 개설해 투자자를 유혹한다. 42년 형을 받은 ‘N번방 사건’ 주범 조주빈의 활동 무대도 텔레그램이었다. 각국 사법당국은 텔레그램의 막대한 운영자금이 어떤 식으로든 범죄 수익과 연관됐을 것으로 의심한다. ▷텔레그램은 정치인들에게도 ‘필수 애플리케이션’이 됐다. 재작년 7월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를 받은 앱도 텔레그램이다. 지난달엔 한동훈 대표 후보자의 김건희 여사 텔레그램 메시지 ‘읽씹’ 논란이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뒤흔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올해 1월 성희롱 논란이 있는 총선 후보의 징계 수위를 테러로 입원 중이던 이재명 대표와 텔레그램으로 상의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텔레그램 측은 이용자 간 대화가 끝난 뒤엔 자사 서버에 메시지가 전혀 남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엄밀하게 검증된 적은 없다. 텔레그램 이용이 많은 만큼 어떤 계기로 메시지의 일부가 공개되기라도 한다면 2010년 미국의 기밀자료가 대거 폭로된 ‘위키리크스 사건’급 충격이 올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두로프 체포로 잠 못 이루는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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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트럼프 집권 2기’를 보는 한국인의 독특한 시각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지난주 사퇴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높았다. 작년 9월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한국인의 바이든 선호도는 52%, 트럼프는 24%였다. 총알이 귀를 스친 뒤 주먹을 흔들며 “파이트”를 외치는 트럼프에게 환호한 한국인이, 트럼프와의 TV토론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후 25일 만에 사퇴한 바이든을 안타깝게 지켜본 이들의 절반에 채 못 미쳤다는 의미다. 미국 대통령으로 바이든을 신뢰한다는 한국인 비율은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재작년 8월 조사 때 70%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취임 첫해인 전년도보다 3% 오른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 무너졌던 한미동맹 복원의 안도감이 우리 대기업들의 투자를 미국으로 빨아들이는 바이든 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넘어선 셈이다. 이에 비해 취임 첫해인 2017년 17%였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2018, 2019년에 각각 44%, 46%까지 치솟았다가 2020년에는 17%로 낮아졌다. 그가 싱가포르, 판문점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면서 한반도 화해 무드가 고조됐을 때 정점을 찍었다가 하노이의 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후 대북 관계가 꼬이면서 원상 복귀했다. 특이한 건 현시점에서 차기 미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트럼프를 우리 사회의 좌우 양극단이 동시에 지지했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 말 광화문 우파 집회에선 김정은의 뒤통수를 친 트럼프를 칭송하는 구호가 자주 들렸다. 다만 작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이 개최한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뒤 그런 구호는 감소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최우선 가치로 보는 좌파 지지층에서는 여전히 트럼프에 대한 선호가 적지 않다. “김정은이 나를 그리워할 것”이란 트럼프의 최근 발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마음이 움직였을 것 같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동맹국을 이익을 챙길 비즈니스 상대로 보는 트럼프를 좌파 세력이 지지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처럼 우파 포퓰리스트나 권위주의 정권의 지도자가 그와 궁합이 맞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집권에 기대가 클 것이다. 한때 ‘장사꾼’ 트럼프가 낫다고 봤던 중국은 “중국 제품에 60∼100% 관세를 물리겠다”는 그를 환영하기 어렵다. 남북 관계를 제외하고 트럼프의 공약, 발언이 한국의 ‘먹고사는 문제’에 미칠 영향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수입품에 ‘10% 보편관세’를 물리겠다는 공약이 실현되면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 대신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한국의 수출은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 수출이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오르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역대 최대로 커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트럼프가 대놓고 문제 삼을 가능성이 커서다.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맞춰 미국에 수십조 원을 투자 중인 우리 반도체·배터리·전기차·태양광 기업에 트럼프 재집권은 재앙이 될 수 있다. “취임 첫날 IRA를 폐기할 것”이란 약속이 실현될 경우 미 정부가 약속했던 보조금, 세제 혜택은 공수표가 된다. 빚에 짓눌려 사는 한국의 중산층, 자영업자, 중소기업에도 악영향이 올 수 있다. 트럼프는 “취임하면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가 집권할 경우 고금리가 더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인세, 소득세를 낮추겠다는 그의 감세정책이 이미 경고음이 켜진 미국의 재정 사정을 악화시켜 미 국채 발행을 늘리고, 이로 인해 미국 국채 값이 하락(국채 금리는 상승)할 것이란 우려다. 보편관세로 발생할 인플레이션까지 고려하면 고물가, 고금리는 트럼프 2.0시대의 ‘노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본질적으로 트럼프는 포퓰리스트다. 그의 공약, 발언에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미래에 벌어질 문제들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돼 있다. 미국 정치 전문가들이 ‘푸틴보다 트럼프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변덕도 심하다. 최근 “대만은 미국 반도체 사업의 100%를 가져갔다. 미국에 방위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돌발 발언으로 세계 반도체 주가를 흔들어놓은 것 같은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이런 트럼프의 2기 집권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 한국의 리더들이 이념 편향에 사로잡혀 냉정한 계산 없이 멋대로 상황을 판단한다면 나라 전체가 낭패를 보게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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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대왕고래’를 보는 두 남자의 다른 시선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의 탐사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처음 알린 게 지난달 3일이다. 탐사 자원량이 최대 140억 배럴로 21세기 최대의 석유개발 사업인 남미 가이아나 광구보다 크다는 해설도 덧붙였다. 이렇게 ‘산유국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뉴스가 한 달도 안 된 지금 국민의 관심권에서 까마득히 멀어졌다. ‘불확실성이 큰 사안인 만큼 냉정해지자’는 신중론이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제대로 먹힌 적이 있었나 싶다. 메신저의 문제가 결정적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원개발 담당 국·실장이나, 한국석유공사 사장같은 실무자나 전문가가 발표하는 게 제격이었다. 그랬다면 자연스럽게 후속 뉴스가 이어지면서 국민의 기대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지율 20%대의 대통령이 마이크를 직접 잡고 이 소식을 전하는 바람에 이 사안은 정치이슈로 변질됐고 메시지는 훼손됐다. 대통령 입을 통해 대왕고래 석유가스전을 발표하는 결정은 대통령 스스로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광구 분석을 맡은 액트지오사에 대한 잇따른 의혹 제기, 대통령이 발표자로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는데도 용산 대통령실, 정부 안에서 누구도 판단 미스로 질책 받지 않았고,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말도 안 나오는 데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윤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모토 아닌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천연가스·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굿 뉴스마저 정치 논쟁으로 폄하되는 현실이 대통령으로선 답답할 수 있다. 정부가 밝힌 최대 추정 매장량을 현재 가치로 따지면 자그마치 1조4000억 달러, 한화 약 1900조 원이다. 부화하지도 않은 달걀을 놓고 병아리 수를 세는 식의 셈법이긴 해도 한국사회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절반 정도인 1000조 원만 돼도 당장 1100조 원을 넘긴 국가채무 대부분을 갚을 수 있다. 1000조 원은 현재 국민연금 기금 총액과도 맞먹는 금액이다. 연금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성세대를 위한 구연금, 미래세대를 위한 신연금으로 계정을 나누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안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600조 원이다. 말로만 연금개혁을 추진한다고 비판 받는 대통령에게 대왕고래는 개혁을 미뤄온 좋은 변명거리가 될 수 있다. ‘중산층 세금’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속세, 종합부동산세를 과감히 깎아주거나, ‘자녀 출생 1인당 1억 원’ 같이 파격적인 저출생 해법을 추진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전혀 다른 의미에서 대왕고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그의 고정 레퍼토리인 ‘기본소득’의 최대 약점인 재원조달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줄 수 있어서다. 지난 대선 때 이 전 대표가 내놨던 기본소득 공약대로 국민 1인당 연간 100만 원, 청년에겐 200만 원씩 나눠주는 데 필요한 금액은 한 해 60조 원이다. 1000조 원이면 이런 기본소득을 17년 동안 나눠줄 수 있다. 선례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 일부를 활용한 영구기금을 만들어 1년 이상 거주 주민에게 많게는 한 해 200만 원 넘는 돈을 나눠준다. 이 전 대표식 기본소득에 가까운 모델이다. 게다가 이 전 대표는 고유가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익이 늘었던 정유회사, 기준금리 상승으로 돈을 번 은행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대왕고래에서 가스, 석유가 쏟아진다면 그야말로 ‘국가적 횡재’다. 문제는 대왕고래 심해유전의 성공 가능성이 긁지 않은 복권과 같다는 점이다.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20% 확률을 뛰어넘어 가스·석유가 대량으로 발견된다 해도 실제 상업 생산이 이뤄지는 건 10여 년 뒤인 2035년 이후다.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 전 대표도 정치권에서 은퇴했을 시점이다. 나랏빚을 늘려서라도 국민 손에 돈을 쥐여주자고 주장해 온 이 전 대표가 “십중팔구 실패할 사안”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인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1969년 노르웨이 앞바다에서 북해 유전이 발견됐을 때 그 나라 정당들은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였다. 결론은 원유, 가스 판매에서 나오는 이익 대부분을 펀드에 넣어 재투자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세운 펀드 운용의 원칙은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되,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침해하지 않는다’였다. 그렇게 노르웨이는 ‘자원의 저주’를 현명하게 피한 나라가 됐다. 자녀·손주 세대를 위한 연금보험률 인상 같이 지극히 당연한 사안도 합의가 안 되는 한국에선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다. 눈앞의 표만 좇는 포퓰리즘, 진영이익 챙기기에 푹 빠진 지금 한국 정치판을 본다면 고개를 내밀려고 하던 대왕고래가 바닷속으로 다시 숨어버릴 것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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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타협 없는 정책 몰아치기, ‘무기력 공무원’만 늘린다

    한국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가장 높은 직업군을 꼽는다면 단연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일 것이다.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든, 영국식 내각책임제든 현재의 단임 대통령제에서 탈피해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를 맞추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많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이 따로 노는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질 때마다 시급한 국가 현안이 정쟁에 휩쓸려 산으로 가는 걸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21대 국회가 문 닫기 직전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당이 주장한) 소득대체율 44%를 받겠다. 이번 국회에서 합의 처리하자”고 했다. 여야 국민연금 개혁안의 소득대체율 차이가 1%포인트로 좁혀지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예상 못 한 파격 카드를 던졌다.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도 “원 포인트 본회의라도 열어 처리하자”고 거들었다. 여당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채 상병 특검법’ 등과 연금개혁을 뒤섞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정략적 꼼수’라며 반발했다. 대통령실 역시 “22대 국회로 넘겨 논의하자”며 발을 뺐다. 이 대표도 예상했을 반응이다. 합의되지 않아도 대결 대신 양보, 타협을 선택하는 지도자 이미지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다른 가능성도 있다. 차기 대통령 자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상황에서 다음 정부의 숙제로 넘어갈 경우 지지층의 반발까지 부를 수 있는 연금개혁을 선심 써가며 부담 없이 털어낼 좋은 기회라는 판단이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이 이 대표 제안을 과감히 받았으면…” 하고 기대한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26년째 9%로 묶인 보험료율을 13%로 높이는 것에 대한 여야 합의는 의미가 작지 않다. 60%였던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낮추기로 한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에 비해 44%가 퇴보라는 걸 공무원들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당초 50%를 주장한 민주당, 같은 진영의 학자들 주장보다는 많이 물러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공무원들이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모수(母數)개혁과 구조개혁의 병행을 주장하며 반대한 여당이나 대통령실보다 덜 개혁적이라고 할 수 없다. 108석으로 쪼그라든 여당을 배경으로 거대 야당과 협상해야 하는 윤 대통령이 임기 내에 더 나은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연금개혁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입 밖에 내놓은 적조차 없다. 이달 들어 윤 대통령은 정책에 대한 열의가 더 강해진 모습이다. 머뭇거리다간 정책 주도권을 야당에 완전히 뺏길 수 있다는 초조함이 묻어난다. 총선 직전 다급하게 진행한 24차례 민생토론회를 고려할 때 지지율 21%, 부정 평가 70%란 성적표를 받아든 지금은 정책 몰아치기가 더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국내외 선례를 봐도 국가수장 개인이나 가족 문제로 지지율이 폭락한 정부가 정책으로 점수를 만회하는 데 성공한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개헌, 탄핵만 빼고 뭐든 원하는 건 밀어붙일 수 있는 거대 야당을 상대하면서는 더 어렵다. 아무리 대통령이 기강을 강조한다 해도 국회만 가면 판판이 정책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무기력증, 복지부동은 더 심해질 것이다. 대통령이 걷어찬 ‘연금개혁 합의 제안’에 탈출의 실마리가 있다. 차기 정권을 노리는 이 대표, 민주당이 이득이 된다고 생각할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민주당은 트라우마가 있다. 1기 신도시 재건축을 비롯한 현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에 무작정 반대하다가, 혹시 차기에 권력을 잡았을 때 ‘부동산 악몽’을 다시 겪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완화 주장이 민주당에서 먼저 제기된 건 수도권 중산층 공략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처리 등 장기 과제는 현 정부 내에 풀지 못하면 차기 정부가 독박을 써야 할 난제다. 이 대표를 윤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연금개혁 합의 거절은 실수였다. 거부권을 행사할 법안과 따로 떼어 대응했어야 했다. 불리한 정치구도 속에서 정부가 정책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야권이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세우고, 면밀한 실행 전략을 통해 성공 사례를 쌓는 게 중요하다. 이런 때 일방적 정책 홍보에 치중한 민생토론회를 계속 열자고 주장하는 공무원은 대통령의 ‘격노’에 민감한 아첨꾼일 가능성이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성과가 나는 것’이란 정책에 대한 인식을 대통령부터 바꾸지 못하면 5년 단임 대통령, 여소야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공무원만 더 늘어나게 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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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1조3800억’ 이혼으로 29년 만에 소환된 ‘노태우 비자금’

    “1991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부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친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측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1조3800억 원 재산 분할’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판결로 29년 전 한국 사회와 재계를 뒤흔들었던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재판부가 ‘상당한 규모의 자금 유입’ 근거로 본 건 노 관장의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과 사진 2장이다. 김 여사는 1998, 1999년에 지인들에게 맡겨둔 비자금 내역도 따로 메모해 뒀다고 한다. 메모에는 ‘선경 300억 원’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동생 노재우 씨 등의 이름과 액수, ‘맡긴 돈 667억+90억’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노 관장 측은 300억 원어치 어음이 돈을 맡기고 받은 일종의 ‘차용증’이라고 설명한다. 또 ‘친정’에서 유입된 300억 원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한 만큼 재산 분할에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은 바 없고, 어음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를 지원하기 위해 건넨 것”이라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과거 비자금 사건 재판 때 밝혀진 내용과 김 여사 메모에 들어 있는 300억 원 외의 기록들이 여럿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노 관장 측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1988∼1993년) 중 대기업 회장들로부터 돈을 걷어 비밀자금을 조성한 사건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예치된 128억2700만 원 계좌의 예금 조회표를 공개하며 ‘4000억 원 비자금설’을 폭로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12·12쿠데타 가담에 대한 수사까지 이어져 징역 17년,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9년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났고, 일가는 이후 추징금을 완납했다. ▷이번 소송을 통해 300억 원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숨겨진 비자금이 더 있었는지 의혹이 제기된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해 불법 자금이란 점을 입증하기 어렵고, 수뢰죄 공소시효도 끝나 처벌, 환수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해도 불법 비자금에서 파생된 재산을 이혼소송으로 분할하는 게 타당한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사돈 간에 오간 ‘부정한 돈’까지 들춰낸 대기업 총수 부부의 이혼 소송은 지켜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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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1조3800억 재산분할+20억 위자료’… 한국 역대 최대 이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에서 최 회장이 재산 1조3800억 원을 노 관장에게 나눠주고, 위자료 20억 원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합계 재산을 총 4조 원으로 보고 재산 형성 기여도 등을 반영해 각각 65%, 35%로 나누라는 게 판결의 핵심이다. 그대로 확정될 경우 한국의 이혼소송 사상 역대 최대의 재산 분할이 된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가 어제 판결한 재산 분할액, 위자료는 1심보다 20배나 많다. 1심 판결은 재산 분할 665억 원, 위자료 1억 원이었다. 재산 분할액이 급증한 이유는 나눌 재산의 범위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1심은 최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회사 SK㈜ 지분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봤는데 2심에서 뒤집혔다. 다만 지급은 지분이 아닌 현금으로 하도록 했다.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이다. 1심은 이 지분이 부친인 고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최 회장이 증여·상속받은 ‘특유재산’이어서 나눌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노 관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노 관장 부친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호막,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SK그룹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했다. ▷2015년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하면서 이혼 의사를 밝힌 최 회장은 2018년 2월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말 이혼을 받아들이는 대신 최 회장 보유 SK㈜ 지분의 절반과 위자료 3억 원을 요구했다. 노 관장 측은 1심에서 패소한 뒤 주식 대신 현금 2조 원과 위자료 30억 원으로 조건을 바꿨다. ▷2심 재판부는 위자료를 20억 원으로 높이면서 “혼인 파탄의 정신적 고통을 보상하기에 1억 원은 너무 적다”고 했다. 근거로 최 회장이 노 관장과 별거 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관계 유지 등에 219억 원 이상을 지출한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소송 과정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상 초유의 이혼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건지가 관심사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와 비상장 계열사인 SK실트론 29.4% 등 2조 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갖고 있다. 현금 1조3800억 원을 마련하려고 일부 지분을 처분할 경우 그룹 지배구조에 구멍이 생길 우려가 있다. 어제 SK㈜ 주식은 경영권 분쟁 가능성 때문에 급등했다. 최 회장 측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 대기업 총수의 이혼소송이 한국 재계 2위 그룹의 미래를 흔들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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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이재명 대표, 이젠 ‘경제 공부’ 해야 한다

    22대 총선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 한마디 무게가 선거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무거워졌다. 175석의 국회 1당을 이끄는 정치 지도자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과 관련한 발언의 의미도 달라졌다. 이전 발언들이 유력 야당 정치인의 정치적 수사에 그쳤다면, 이젠 정부 여당이 반발하면 ‘처분적 법률’을 만들어서라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 그런데도 그의 경제 관련 발언을 해독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나라 안팎의 경제 사정이 급변해도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체계적 학습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념에 치우친 지식이 뿌리 깊게 입력된 탓으로 보인다. 당장의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인식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민주당은 1호 법안으로 이 대표의 총선 공약인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부터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한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이구동성 반응은 ‘물가가 불안한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심지어 민노총까지 한목소리로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중동 분쟁 등으로 대외 변수가 불안한 상황에서 13조 원을 풀면 물가가 다시 들썩일 거란 예상은 경제의 기초 상식에 속한다. 이 대표는 “소양강 호수에 돌 하나 던졌더니, 수위가 올라가서 댐이 넘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며 슬쩍 피하려 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금리를 높여 통화량을 억누르는 와중에 13조 원을 푸는 건 돌멩이 하나에 견줄 일이 아니다. ‘금리’ 문제로 넘어가면 이 대표의 경제 인식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는 서민을 힘들게 하는 고금리에 극단적 적대감을 내비쳐 온 정치인이다. 2020년에는 최고 금리를 24%에서 20%로 낮추려는 정부에 “적정 수준은 11.3∼15% 정도”라며 ‘적정 이자’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법정이자 상한 때문에 대부업체의 대출도 못 받은 서민들이 불법 사채업의 희생양으로 떠밀린다는 금융 전문가들의 지적이 빗발쳐도 생각을 바꾼 적이 없다. 이 대표가 고집하는 13조 원의 지원금은 시장금리를 높이고, 고금리를 연장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정부가 국채를 더 찍어내면 금융시장에서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반대로 국채 금리는 올라간다. 국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시장 금리 역시 덩달아 높아져 빚을 진 서민과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커지게 된다. 1억 원을 빚진 가구라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한 해 이자로 10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앞에서 받은 지원금이 뒤에서 금융회사 대출이자로 빠져나가게 된다. 환율까지 고려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2%포인트 높아 강달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돈을 풀어 통화량을 늘리면 원화가치는 떨어질 공산이 크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100% 수입하는 원유는 물론이고, 금(金)사과 대신 해외에서 수입하는 바나나 등 서민용 과일 값까지 오른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는 그의 돈 풀기 공약 때문에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의 재정적자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질 거란 지적에 “한국이 곧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란 터무니없는 발언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에게 국제통화 문제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은 과도한 걸까. 경제 작동 원리와 괴리된 남다른 상식의 소유자가 정책 결정권을 가질 때 벌어지는 일을 우리 사회는 이미 경험했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논리’로 비판받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을 급격히 끌어올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몰락을 재촉했다. 정치 지도자가 경제 원리에 배치되는 신념을 가질 때의 해악은 튀르키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자를 죄악시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물가가 오르는데 금리를 낮춰 대응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화정책 후유증으로 튀르키예 국민은 60%대 물가 상승, 리라화 가치 폭락에 신음하고 있다. 이 대표 주변에선 널리 인정받는 출중한 경제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경제원칙에 어긋나는 정책, 주장을 논리적으로 백업할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당 의원 가운데 경제 전문가 숫자도 21대 때보다 줄었다고 한다. 잘못된 경제정책이 추진될 때 바로잡을 이들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대표가 때론 포퓰리스트를 자임하다가, 정부를 비판할 땐 “잘못하면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처럼 될 수 있다”는 식의 이해 못 할 말을 할 때마다 국민은 당혹스럽다. 격상된 정치 위상에 걸맞게 제대로 된 가정교사를 들여 경제 공부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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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 미러클’ 원래 북한경제 가리켰던 말인 것 아세요?”[월요 초대석]

    《“코리안 미러클이란 말에서 ‘코리안’이 지칭한 게 원래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는 거 아십니까?” 한국 사회를 통틀어 윤대희 가천대 석좌교수만큼 ‘한국의 기적’이란 말과 오래 씨름해 온 인물은 찾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그는 최근 ‘코리안 미러클’ 10권이 발간될 때까지 십수 년간 편찬위원으로 모두 참여했다. 최근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나’라는 기사와 관련해 그는 “어쩌다 우리 경제가 이런 소리를 듣게 됐나…. 착잡했다”라고 했다.》● “한국의 기적, 당연히 대한민국 몫” ‘코리안 미러클’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하고, 세계에 알린 인물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조앤 로빈슨(1903∼1983)이다. 사회주의 성향의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그녀는 1960년대 초반 북한을 방문해 놀라운 경제발전상을 보고 영국에 돌아가 ‘한국의 기적에 관한 에세이(An Essay on Korean Miracle)’란 짧은 논문을 썼다. 6·25전쟁 직후 10년간 북한의 공업생산 연평균 증가율은 34.8%였다. 풍부한 수력에서 나오는 전기와 다양한 광물자원, 일제가 한반도 북쪽에 집중적으로 만든 산업시설 등 모든 조건이 남쪽보다 유리했다. 1970년대 초까지도 북한의 경제 사정은 한국보다 나았다. “그 시절 정부 안에서 ‘한국의 기적’이란 말은 금기였어요. 북한이 한국보다 낫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던 거죠.” 2010년 진념 전 경제부총리 발의로 한국 경제성장 주역들의 정책 입안, 실행 과정을 육성 기록으로 남기자는 프로젝트가 출범했을 때 윤 교수는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코리안 미러클’이란 제목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만큼 ‘코리안 미러클’이란 말을 당당히 가져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경제 변화 모르는 낡은 시각” 한국 경제의 미래를 비관한 FT 기사를 윤 교수는 원문까지 찾아 꼼꼼히 읽었다고 했다. “해외 언론이 우리 경제를 이렇게 어둡게 전망하는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잠재성장률은 계속 낮아지고, 국민의 자신감도 떨어진 상황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니 더 마음이 복잡한 거죠.” 다만 몇몇 포인트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국가 주도 자본주의를 답습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300조 원 투자 결정은 한국식 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란 부분이 그랬다고 한다. “아직도 한국 경제가 정부가 ‘투자하라’고 지시하면 기업들이 따르는 수준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움직이는 단계를 한참 전에 지났어요. 배고픔에서 시작된 한국 대기업의 성장 사고가 안주에서 비롯한 현재 유지 사고로 흘러간다고 꼬집었던데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모르는 낡은 시각일 뿐이에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하면서 만난 청년 벤처기업가들의 열정과 눈빛을 생각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는 데 더 동의할 수 없어요.”● “저출산, 방치한 정부 책임 커” 하지만 한국의 저출산 문제 등을 꼬집은 부분은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20여 년 전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이던 2002년에 과장 한 명이 올린 보고서를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전년도 합계출산율이 ‘1.3명’이라고 돼 있는데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죠.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이 2.1명이잖아요.” 급하게 보건복지부와 협의하고, 청와대에 가 있는 선배 관료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 주재 국민경제자문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처음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정부의 공식 의제로 다뤄졌다. 그가 경제수석을 지내던 2006년에는 한국 정부의 첫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나왔다. “지금도 저출산 얘기만 나오면 책임감을 느껴요. 그때 정책을 잘못해서 이리 된 게 아닌가 해서…. 그간 정부가 380조 원을 썼다고 하는데, 실제 저출산 해소에 들어간 게 얼마나 되겠어요. 최근 정부 태도가 전보다 진지해진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출산 대응은 늦었지만, 고령화 대응은 아직 안 늦었어요. 고학력 여성, 은퇴자가 일할 기회를 더 만들어 노동력 부족의 충격파를 줄여야 해요. 인구구조가 달라진 만큼 법을 바꿔서라도 내국세의 20.79%를 쓰게 돼 있는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은 이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도 활용해야 합니다.”● “정부 용기 부족이 부른 연금 개악” 한국의 요즘 정치 상황과 정책 의제들은 그가 청와대에 있던 2005∼2006년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연금 개혁을 마지막으로 실행에 옮긴 게 노무현 정부였는데, 17년 만에 다시 사회적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2개 개혁안을 토의한 500명 시민대표단이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선택한 걸 봤어요. 참여정부는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려고 지지층 반발을 무릅쓰고, 복지부 장관까지 교체하면서 60%였던 소득대체율을 40%로 간신히 낮췄는데 그걸 다시 50%로 올리겠다니, 이게 어떻게 개혁입니까. 정부와 정치권이 책임감을 갖고 용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시민대표단의 56%가 찬성한 ‘보험료율 13%, 소득 대체율 50%안’이 시행될 경우 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에서 불과 6년 늦춰진다. 대신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미래에 소득의 40% 정도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국민연금 재정의 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개악’이라며 차라리 지금대로 놔두는 게 낫다고 한다.● “지지층 반발해도 성장 위해 FTA 추진” 미중의 경제패권 갈등과 글로벌 경제 블록화로 무역·수출 환경이 급변하는 걸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남다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기간 중 경제수석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협상 전 과정에 관여했다. 최근 발간된 ‘코리안 미러클’ 10권의 주제도 마침 ‘한미 FTA’다. 그새 중국은 많은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잡아 대중무역이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올해 2월 이후 3개월째 한국의 대미 수출은 대중 수출을 넘어섰다. 한미 FTA가 없었다면 우리 경제는 지금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을 벌이는 중에 당시 보수 진영에선 ‘음모설’이 돌았어요. 진보 지지층이 쌍수 들고 반대하는 협상을 추진하는 건 다른 속셈이 있어서란 거죠. 막판에 미국이 못 받아들일 조건을 내걸어 판을 깨고, 지지층을 단번에 결집해 차기 대선에 이용하려 한다는 겁니다. ‘이런 말도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국가 차원의 문제를 정략으로 이용하는 그런 수준의 대통령으로 나를 보는 거냐’며 섭섭해합디다. 그래도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에 개방이 꼭 필요하다는 노 대통령의 소신이 확고해 결국 한미 FTA를 타결할 수 있었습니다.”●“한국의 기적, 여야 모두 이어갈 책임” 여소야대를 만든 22대 총선 결과를 놓고 FT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리더십이 분열돼 차기 대선까지 3년 이상 정국이 교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노무현 정부 초기 2년간은 여소야대였고 중간에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여권과 지지층의 반발로 결국 대통령은 탈당까지 해야 했다.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민주화의 결과물인 ‘87년 체제’의 효용성이 다해 가고 있어요.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선 정권 교체 후 업무 파악에만 6개월, 1년이 지나가요. 정책과제를 정해 입법, 시행하는 데 평균 35개월이 걸립니다. 중간에 선거로 여소야대가 되면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이번에 다수당이 된 야당은 앞으로 3년간 국가 경영과 관련해 결과까지 책임질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적’이 좌파, 우파 어느 쪽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경제 기적을 계속 이어갈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는 겁니다.”● 에필로그 경제부처 출신 관료들의 모임인 ‘재경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함께 추진한 코리안 미러클 프로젝트에 대한 참가자들의 애정과 자부심은 각별하다. 2016년 하반기에 ‘외환위기편’이 나왔을 때 박근혜 정부의 탄핵 정국 때문에 발간식이 늦어지는 일이 있었다.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사방에 전화해 식을 빨리 열자고 심하게 채근했다. 우여곡절 끝에 발간식을 연 두 달 뒤 서두른 이유가 밝혀졌다. 지병이 악화돼 강 전 장관이 타계한 것이다. 그의 유언은 “내 관에 코리안 미러클을 넣어 달라”였다.윤대희 교수는 1949년 인천 출생. 1975년 행정고시 17회에 합격했고, 이후 경제기획원 재정계획과장, 제네바 대표부 경제참사관,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대통령경제정책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2006년 경제수석비서관, 2007년에 12대 국무조정실장으로 국민연금 개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깊이 관여했다. 2018∼2022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거쳐 현재 가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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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현 칼럼]케이크를 먹게도, 갖게도 해준다는 달콤한 거짓말

    ‘케이크를 갖고 있기도 하고, 먹기도 할 수는 없다(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맛있어 보인다고 입에 냉큼 넣어버리면 케이크는 없어진다. 아끼고 남겨두려면 먹어치워선 안 된다. 상충하는 인간의 욕심을 동시에 만족 시킬 방법은 없다는 교훈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게 ‘종특’인 직업군이 있는데,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실현 불가능한 정치 공약(空約)을 ‘케이키즘(Cakeism)’이라고 한다. 전쟁과 이상기후, 코로나19로 풀린 돈 때문에 세계는 3년 넘게 인플레이션과 전쟁 중이다. 금리를 높여 통화량을 줄이고,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억제하는 게 답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나만의 해법이 있다’고 자신한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 재임 땐 인플레가 없었다”고 한다. 자기 사인을 넣은 수표를 미국 전 가정에 돌려 인플레를 유발한 그가 하긴 낯 뜨거운 말이다. 재선되면 모든 수입품 관세를 10%포인트 올리겠다는데, 틀림없이 물가가 오를 것이다. 그래도 미국 유권자 절반이 지지한다. 실현할 수 없는 거짓 약속은 언젠가 탈이 난다. ‘물가를 낮추려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황당한 지론을 펴던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결국 올해 3월 기준금리를 연 50%까지 올렸지만 70%에 육박하는 물가 상승 때문에 이달 초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래도 11개월 전 튀르키예 유권자들은 저금리를 고집하고, 현금을 집어주던 그에게 표를 던져 정권을 연장시켰으니 그로선 남는 장사였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한국에선 금(金)사과를 둘러싼 케이키즘이 기승을 부렸다. 수입을 막아 놓은 상태에서 이상기온, 병충해로 수확량이 30% 감소한 사과 공급을 당장 늘릴 순 없다. 그럼 수요라도 줄이거나, 분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 투입해 값을 낮추게 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생활필수품 부가가치세를 한시 인하하자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인당 25만 원씩 13조 원의 지원금을 나눠줘 돈 없는 사람도 사과를 사먹게 하자는 쪽이다. 정부 안정자금, 여당의 부가세 인하는 잠깐은 값을 끌어내릴 순 있어도 사과를 챙겨먹지 않던 이들까지 사먹게 만들어 결국 가격을 다시 높인다. 야당 지원금은 사과뿐 아니라 다른 물가까지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국민은 결국 자기 세금이 듬뿍 들어간 사과를 먹게 된다. 여야 정치권이 표가 떨어질까 봐 총선 공약에서 빼버린 국민연금 개혁도 케이키즘이 자주 끼어드는 사안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을 12∼13%로 올리면서 40%인 소득대체율을 놔두거나, 50%로 높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2055년인 연금고갈 시기를 고작 7∼8년 늦춰 개혁안이라 하기도 민망하다. 이미 국민 대다수는 지금 20대 청년이 60대가 됐을 때 연금이 바닥나는 걸 안다. 개혁에 실패하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월급의 40%를 부모, 조부모 세대에 나눠줘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야는 보험료는 조금 올리고, 받는 돈은 안 줄이고, 연금고갈도 막을 수 있는 신통한 수라도 있는 양 결정을 미뤄왔다. 요즘 정치권 탓만 하기 힘든 게, 지난 정부 때 문재인 대통령도 보험료율 인상안이 담긴 개혁안에 퇴짜를 놨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는데 실은 그저 정치인들의 눈높이였을 뿐이다. 더욱이 여소야대가 예상되는 이번 총선의 판세를 고려할 때 여야가 쏟아낸 수많은 약속들은 앞으로 3년간 먹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떡이 될 공산이 커졌다. 한 위원장은 “여당인 우리 정책은 현금이고, 민주당 정책은 약속어음”이라 하지만, 과반 의석을 못 얻고, 야당과 타협도 할 수 없으면 입법이 필요한 공약은 모두 공염불이 된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이 불가능할 것이란 당내 비판에 “나는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 그라도 예산권과 법안 거부권을 가진 정부를 상대하면서 돈 풀기 공약을 실현할 방법은 없다. “케이크를 갖는 것도, 먹는 것도 지지한다”는 말을 했던 정치인이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옹호하던 그는 EU 탈퇴와 영국 경제의 번영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지금 영국인의 다수는 8년 전 브렉시트 투표에 찬성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오늘 총선에서 우리 유권자들은 떡을 먹게도, 갖게도 해준다는 정치권의 거짓 약속을 꿰뚫어보고, 나중에 가슴 치며 후회할 선택을 피해갈 수 있을까.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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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불안정한 세계가 밀어올린 역대 최고 金값

    “세상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을 때만 가격이 오르는 자산에 투자하는 건 괴상한 짓이다.” 작년 11월 99세로 타계한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2011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회사 주주총회에서 금 투자에 관한 의견을 묻는 주주에게 이렇게 답했다. 수십 년간 워런 버핏 회장의 조언자이자 파트너였던 멍거 부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한 투자자의 자세를 잃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사상 처음 트로이온스(31.1g)당 2300달러 선을 뛰어넘은 요즘 금값을 본다면 뭐라고 조언할까. ▷3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가 2315달러를 찍었다. 지난달 4일 2100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한 달 만에 10% 상승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최근 “올해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섣부른 금리 인하 기대를 경계했는데, 시장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표현보다 ‘인하’에 주목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떨어지면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달러의 대체 안전자산인 금은 가격이 오른다. ▷금값 급등에 미중 패권전쟁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몇 년 새 지속적으로 미국 국채를 팔고 금을 사들이고 있다. 작년 말 현재 보유한 금이 2235.3t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 제재로 러시아 자산거래가 동결되는 걸 지켜본 중국이 언젠가 닥칠 미국과의 정면충돌에 대비해 금 보유를 늘린다는 거다. 최근엔 위안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자 1g짜리 ‘금콩’에 투자하는 중국 청년들까지 늘었다고 한다. ▷미국의 재정적자 폭증에 대한 우려도 금값을 자극하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작년 말 97%였던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2029년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역대 최대치였던 116%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30년 뒤엔 166%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대전 때 진 빚은 호황과 인구 증가에 힘입어 갚았지만, 지금 늘어나는 빚은 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감당하기 대단히 어렵다. 결국 달러를 더 찍어 내는 수밖에 없어 금의 가치가 오를 거란 전망이다. ▷국내 금값도 천정부지다. g당 10만 원을 돌파했고, 세공비 포함 한 돈(3.75g)짜리 돌반지는 45만 원을 넘었다. 그제 한꺼번에 몰린 투자자들로 인해 한국 금거래소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일까지 있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올해 말 트로이온스당 2500달러, 씨티그룹은 12∼18개월 내에 3000달러까지 금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 세계의 큰손들은 세상이 더 불안정하고, 어지러워지는 쪽으로 강하게 베팅하고 있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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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日 ‘금리 있는 세계’로 복귀하나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오늘부터 이틀간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중단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은 버블 붕괴에서 시작된 30여 년의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단기금리를 ―0.1%로 유지해 왔다. 이달 결정되지 않더라도 BOJ의 마이너스 금리 종료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BOJ는 2007년 2월 이후 금리를 계속 낮췄다.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 2016년 2월에는 결국 금리가 바닥을 뚫고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손해가 나니 대신 더 투자하고, 더 쓰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버블 붕괴 시절 자산가치 폭락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새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성장률도 바닥을 헤매면서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던 일본이 달라졌다. 작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3.1%로 41년 만에 최고로 높아졌다. 성장률도 1.7%로 1.4%인 한국보다 높았다. 디플레 늪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잇따르면서 일본 정부와 BOJ는 마이너스 금리 중단을 위한 ‘마지막 시금석’으로 임금 상승률에 주목해 왔다. 근로자들의 임금이 물가 이상으로 오르지 않으면 결국 소비만 위축돼 경제가 다시 고꾸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최대 노조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이 올해 기업들과의 임금협상(춘투·春鬪) 결과를 중간 집계해 내놓은 평균 임금 인상률은 5.28%. 1991년 이후 처음 등장한 5%대 인상률이다. ‘관제 춘투’란 말이 나올 만큼 정부는 임금 대폭 상승을 독려했고, 엔저로 인한 수출 호조와 사업구조 개선으로 실적이 나아진 일본 기업들이 적극 호응했기 때문이다. ▷8년여 만에 일본이 ‘금리 있는 세계’로 복귀하는 건 경제가 정상화된다는 신호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피치 못할 부작용도 생긴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60%나 되는 국가부채가 제일 큰 문제다. 일본 정부 한 해 예산의 4분의 1에 이르는 국채 이자 부담이 금리 인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BOJ가 금리를 올리더라도 수준은 0∼0.1%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이유다. ▷미국, 유럽연합(EU)이 이르면 올해 6월부터 기준금리를 낮추고, 일본은 반대로 금리를 높인다면 일본으로 글로벌 자금이 몰리면서 달러, 유로에 비해 엔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엔화와 비교한 원화 가치도 약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기업과 해외에서 경합하는 한국 수출 기업엔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일본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씀씀이를 좀 줄여서 계획을 짤 필요가 있겠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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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중현]노인·청년 연금 ‘일국양제’가 필요해진 나라

    지난달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는 상당한 화제가 된 데 비해 흥행이 별로였다.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근(近)미래 일본에서 노인 빈곤, 청년층의 노인 혐오 범죄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앞장서서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20여 년 전 나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선 이보다 5세 적은 70세 이상 노인이 대상이었다. 노인 복지비 폭증으로 청년층 불만이 커지자 소설 속 정부는 노인의 약값, 치료비를 제한해 사망을 유도한다. 노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산속에 요새를 만들고 저항해 보지만 헬기로 독감바이러스를 뿌리자 간단히 진압된다. 고령화로 인한 세대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인간의 수명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는 문학,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진 주제다.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90여 년 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수명이 60세로 제한된 미래사회를 그렸다. 이곳에서 인간은 노화 방지 약물로 20대의 젊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다가 60세가 되는 해에 화려한 예식을 거쳐 자연 원소로 돌아간다. 한국은 역사상 최단기간에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는 선진국이자, 초유의 0.7명대 출산율을 기록한 나라다.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노인의 연령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정할 때 평균 기대수명은 약 65세였다. 올해 초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인 남성 평균수명은 86.3세, 여성은 90.7세다. 노인을 위해 부담하는 비용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 가까이가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는 데 동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을 심화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역대 정부가 개혁에 손대는 시늉만 하다가 땜질하는 바람에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개혁을 공약했던 윤석열 정부도 20개가 넘는 시나리오만 국회에 넘겼다. 이를 토의해온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최근 개혁안을 2개로 추렸다. 현재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40%인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게 1안, 보험료율을 12%로 조금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는 게 2안이다. 둘 다 당초 2055년인 연금 고갈 시점을 7∼8년 늦추는 효과밖에 없다. 지금 25세 청년이 65세가 되는 2064년쯤이면 기금은 여지없이 바닥난다. 국회는 500인 시민 패널을 뽑아 이들이 토론을 통해 하나를 고르게 하겠다고 한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우리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 노후는 당신들이 책임져라’라고 하는 청년들이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국회 안보다 오히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신구 연금 분리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성세대가 쌓은 보험료는 구연금, 앞으로 청년이 쌓을 보험료는 신연금으로 계정을 따로 떼어내자는 방안이다. 평생 보험료를 내도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할 거란 청년층의 불안을 잠재우려면 이 정도의 파격적 조치가 필요해졌다는 의미다. 정부와 국회의 연금개혁이 지금 논의 수준에서 결론 난다면 세대 간 갈등 격화는 피하기 어렵다. 언젠가 청년들이 한 나라 안에서 세대를 갈라 칸막이를 세운 일국양제(一國兩制) 연금제도를 요구하거나, 기성세대에 대한 적대감을 보이며 ‘연금파업’에 나서지 말란 법도 없다. 사회 구성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황은 피해야 한다.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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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중현]안전·위험자산 동시에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과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 위험자산의 대표인 주식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고 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이 함께 오르는 이른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ly)’다. 글로벌 자금시장에서 도는 돈이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에선 돈이 밀물처럼 빠져나가 가격이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이례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그제 4월 인도분 금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3.10달러 상승한 트로이온스(31.1g)당 2188.60달러로 거래돼 사상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장중 한때 2200달러 선까지 육박했다. 중국 등이 달러 의존을 줄이려고 금을 사들이는 데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금값은 천정부지다. 금리가 내려 달러 가치가 떨어질까 봐 글로벌 투자자들이 금을 사서 위험을 분산하기 때문이다. ▷한국 가상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 값은 개당 1억 원을 처음 넘어섰다.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돼 금처럼 희소성이 있고, 미국 금융당국이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해 제도권에 진입한 뒤 가격 움직임이 더욱 금을 닮아가고 있다. 채굴량이 절반으로 주는 반감기가 다음 달 돌아오는 만큼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글로벌 증시는 갈수록 끓어오르고 있다. 미국, 일본, 대만 증시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사상 최고치 경신 소식이 전해진다. 인공지능(AI) 혁명의 영향이 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등을 보유한 미국,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TSMC가 있는 대만, 세계 굴지의 반도체 장비·소재 업체가 즐비한 일본 증시로 번지고 있다. ▷금, 비트코인 값 상승의 근저에는 달러화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선을 넘어 100일마다 1조 달러(약 1310조 원)씩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이 악화되면 결국 돈을 더 찍어낼 수밖에 없고, 안전자산인 달러화 가치가 흔들릴 수 있어 대신 금 등을 사들인다는 거다. ▷이번 랠리에서 한국 경제는 멀찍이 떨어져 소외된 느낌이다. AI 열풍의 영향은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그친다. 한국은행 자산 중 금 비중은 1% 정도이고, 11년째 금을 사지 않고 있어 값이 올라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다만 일부 청년층 사이에선 비트코인 계좌를 인증하며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게 다 오르는 시장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다는 점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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