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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불교 공부는 현실의 학문과 적극적으로 융합될 때 이뤄진다고 믿으니까요.” 지난달 26일 경기 김포시 중앙승가대에서 만난 자현 스님(불교학부 교수·한국불교학회장·사진)은 박사 학위를 7개나 딴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성균관대 동양철학(율장), 고려대 철학(선불교), 동국대 미술사학(건축)·역사교육(한국 고대사)·국어교육(불교 교육)·미술학(고려 불화)·부디스트 비즈니스학 박사인 그는 지금은 심리상담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발표한 논문만 190여 편. 논문 잘 쓰는 법을 담은 ‘스님의 논문법’, 공부 노하우를 담은 ‘스님의 공부법’이란 책까지 냈다. 자현 스님은 “세상과 적극적으로 교류, 융합하지 않고 그들만의 고립된 섬에 갇힌 종교는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쉬운 예로 그 많은 유무형 불교 문화유산이 있음에도 연구·조사·보수·관리 등 이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부를 하는 스님이 많지 않다는 것. 그는 “현대는 융합과 복합의 시대이고 따라서 여러 전공을 공부하며 각각의 연결을 시도하는 사람도 계속 나올 것”이라며 “기존 불교 공부만 해서는 새로운 포교 시장을 개척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원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하나둘 공부 범위를 넓히다 보니 어느새 내년 여름쯤에는 8번째 박사 학위(심리상담)를 따는 데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달콤한 덕담 대신 ‘뼈 때리는 말’을 해주는 멘토로도 유명하다. “지금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어른들이 잘못해서’ ‘사회가 문제지’ 등의 몇 마디 위로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아프더라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줘야지요.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실이 성적순이 아니면 왜 그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물론 그가 젊은이들, 특히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일부러 아프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공부를 잘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 사람은 모두가 다 다르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아프지만 먼저 현실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현 스님은 “이 우주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만의 장점이 없는 사람도 없다”며 “남들이 ‘좋은 것’이라고 규정지은 것, 선호하는 것을 못 가졌다고, 가질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쓰임’이 어떤 것인지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과학 서적이나 과학 유튜브를 탐독하다 보면 처음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정말 신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만물은 원자로 구성돼 있고, 그 원자는 우주가 한 점이 ‘빵(빅뱅)’ 하는 순간에 동시에 똑같이 생겨났다는데, 그러면 그 ‘빵’은 어디서, 왜 발생한 건지. ‘빵’ 한 장소와 ‘빵’ 시킨 원인이 있었다면 ‘시작’이 아니잖아? 그런데 그게 왜 묘하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라’와 닮은 것 같은지…. 20년 넘게 과학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저자가 이런 궁금증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물론 궁극적인 답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이 어떻게 우주를 이루고, 지구와 생명을 탄생시켜 왔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의 몸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게 됐고,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우리 몸에서 변환되는지 등등 그 장대한 여정과 인간의 탐구 과정을 담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자도 말했듯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든 ‘빅뱅(Big Bang)’이란 이름이 사실은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이 팽창우주론(빅뱅 이론의 다른 이름)을 비아냥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라는 점이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빅뱅 가설을 반대하며 “그럼 우주가 크게 ‘빵(bang)!’ 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냐?”라고 비아냥했는데, 이 말이 워낙 유명해져 모두가 쓰는 용어가 됐다. ‘왜?’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 138억여 년 전 빅뱅까지 생각해 내고, 다시 이후 벌어진 많은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지적 능력은 경탄스럽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우주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던 원자들이 중력에 이끌려 회전하면서 태양과 행성이 형성됐다는 걸 펜과 잉크, 계산자로 증명하다니….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거나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될 때 읽으면 상당한 자극이 될 내용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강원 지역 한 사찰의 주지 스님은 요즘 외국인 스님을 상좌(上佐·스승의 대를 잇는 제자)로 받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출가자 급감으로 상좌를 찾지 못하던 중 지인으로부터 “한국에서 재출가를 원하는 스리랑카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 그는 “출가자 자체가 워낙 줄었고, 우리처럼 작은 절에는 오려는 사람이 더 없어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탈종교화 등으로 출가자, 신부 등 종교인 감소가 이어지면서 종교계가 밑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유학 차원을 넘어 외국인 승려를 상좌로 받고, 신학대 폐지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빈 절, 빈 성당은 물론이고 외국인 주지 스님, 사제 수입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남 지역의 한 스님은 몇 년 전 네팔 출신 스님을 상좌로 받았다. 외국인 스님은 통상 유학으로 한국에 오지만, 아예 한국으로 재출가한 것. 네팔 스님을 받아들인 스님은 “인연이 닿아 받았는데, 우려와 달리 우리말도 잘하고 잘 적응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불교계에 따르면 출가자 부족이 더 심각한 작은 종단에서는 한국 불교계로 재출가한 동남아 승려를 상좌로 받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출가자 구인난이 취업 사기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스리랑카 등 상대적으로 경제 상황이 어려운 지역에서 브로커들이 일반인을 ‘위장 스님’으로 만들어 입국시킨 뒤 사라지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취업 비자와 달리 종교 비자는 사찰이나 스님의 초청장만으로도 발급이 가능한 점을 악용한 것. 이 때문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올 7월 전국 사찰에 외국인 스님이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당부하는 공문을 보내고 관련 간담회를 열었다. 총무원 측은 “타 종단에서 출가자 감소 등의 이유로 받은 외국인 스님들이 입국 후 종적을 감추는 일이 종종 발생해 사전 예방 차원에서 외국인 스님을 초청한 20여 개 사찰 주지 스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사제를 양성하는 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은 신입생 부족 등의 이유로 2019학년도부터 폐지됐다. 신학생 중 부산교구 출신은 대구가톨릭대로, 마산 교구 출신은 광주가톨릭대로 보내졌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에 따르면 전국 가톨릭대 신학대 입학생은 2013년 143명, 2018년 130명에서 지난해 81명으로 줄었다. 가톨릭대는 대체로 정원이 40명 안팎이지만 일부는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자 20명 안팎으로 정원을 줄였다. 하지만 대부분 매년 10∼15명만 입학하는 실정이다.매년 사제품을 받는 사제 수도 2017년 185명에서 2020년 113명, 지난해 86명으로 떨어졌다. 입학한 뒤 사제가 되기까지 군 복무 포함 10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아직은 신부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학교 통폐합, 성당 통합도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말들이 나온다. 1999년 532명을 정점으로 2010년 287명, 2020년 131명, 2022년 61명으로 출가자가 급감한 조계종은 은퇴자 출가 연령을 50세 미만에서 65세로 확대하는 ‘은퇴출가자제도’, ‘청소년 출가·단기 출가 제도’ 등 지원책 도입으로 지난해 출가자가 다소(84명) 늘었지만, 추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내부 기류다. 조계종 관계자는 “전국 교구가 25곳인데 지난해 출가자가 84명이면 교구당 2∼4명밖에 배치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그렇다고 출가자를 갑자기 늘릴 방법도 마땅치 않아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관계자도 “아직 본격적인 논의는 없지만 ‘이런 추세가 10여 년 계속되면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등에서 사제를 모셔 오는 일도 생기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많이 넣지 못해 미안합니다’란 쪽지를 보면 마음 한편이 뭉클하지요. 자신도 넉넉지 않을 텐데….” 27일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대한본영에서 만난 김병윤 구세군 제27대 한국군국 사령관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등 국가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일수록 오히려 자선냄비 등을 통한 모금액이 더 늘었다”라며 “우리 국민 마음에 어려울수록 더 힘든 이를 생각하는 DNA가 흐른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구세군대한본영은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24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다음 달 31일까지 전국 300여 곳에서 자선냄비 거리 모금에 나섰다. ―구세군의 역할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엄청난 극빈층이 발생했습니다. 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영국 감리교 윌리엄 부스 목사가 1865년 가난한 소외계층을 돌보는 데만 집중적으로 특화한 신앙 조직을 만들었는데, 그게 구세군(The Salvation Army)입니다. 조직과 계급, 제복 등 모든 게 군대식인 것도 가장 효율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가 군대라 그걸 도입한 거죠. 그래서 목사 대신 대장, 사령관이라고 부르고요.” ―구세군 자선냄비가 100년 가까이 한 해도 안 거르고 이어졌다고요. “6·25전쟁 중에도 중단된 적이 없으니까요. 1928년 흉년과 가뭄, 홍수까지 겹쳐서 수많은 노숙인이 발생하고 도둑질이 난무하자 당시 박준섭 사령관이 성탄절을 중심으로 약 보름간 서울 명동 등에 냄비를 걸고 모금을 한 게 시초지요.” ―국가적으로 어려울 때 모금액이 더 는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때 자선냄비 등 전체 모금액이 2021년 81억 원, 2022년 125억 원, 2023년 138억 원으로 대폭 늘었어요. 모두가 힘들 때인데, 그런 속에서도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자선냄비에 금반지를 넣은 분도 있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돼지저금통을 가져와 그 자리에서 주고 가신 부모님도 계셨지요. 어떤 분은 ‘저도 어려워서 많이 넣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란 쪽지를 기부금과 함께 넣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직은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참고로 구세군 회계연도는 전년 11월 1일∼당해 10월 31일이다. ―자선냄비 앞에서 하루 종일 모금 운동을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2인 1조로 2시간씩 교대하는데, 횟수는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할 수도 있고, 쉬면서 몇 차례를 할 수도 있지요. 겨울에 추운 거리에 있으니 쉽지는 않아요. 구세군 사관들과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는데 전국 300여 곳에, 한 달 동안 연인원 2만 명 정도가 모금 활동을 합니다.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오시는 분은 매년 느는 추세예요.” ―올해도 참 쉽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거리 모금을 하다 보면 우리 국민이 참 정이 많고 따뜻하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것 같아도 단 하루도 빈 통으로 돌아오는 자선냄비가 없어요. 오히려 ‘저기서 했는데요…’라며 마치 또 못해서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분도 있지요. 시대가 변했는데 자선냄비 같은 아날로그적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선냄비가 없는 연말 거리 풍경은 너무 삭막한 것 같아요. 모금 액수와 상관없이 빨간 자선냄비야말로 우리 사회에 나눔과 따뜻함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니까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과 국가유산청이 지난해 10여 년간의 1차 ‘금석문 탁본(拓本) 조사 사업(2013∼2023)’을 마치고 올해 2차 사업(2024∼2028)에 들어갔다. 총괄 책임연구원으로 이 사업을 이끄는 이가 최근 조계종 탁본 명장으로 지정된 흥선 스님(사진)이다.21일 서울 종로구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에서 만난 흥선 스님은 “탁본은 먹과 빛, 바람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인데 과거에 아무렇게나 하다 보니 훼손된 국보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탁본에 천착해 온 그는 불교중앙박물관장, 문화유산 위원 등을 역임하며 국보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충주 고구려비 등 전국의 주요 금석문 수천 점을 채탁(採拓)한 전문가다. ―최근 강의에서 “먹칠로 훼손되는 국보가 더는 없어야 한다”고 하셨더군요. “탁본은 종이를 비석에 먼저 올리고 그 위를 먹 방망이로 두드려 떠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전문가도 없고 또 아무나 하다 보니 거꾸로 먹을 먼저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대서 떠냈어요. 문화재에 먹칠을 한 거죠. 먹은 한번 스며들면 거의 안 지워집니다. 국가유산인 경기 여주 고달사지 승탑, 경북 포항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 등 잘못된 탁본으로 훼손된 문화유산이 많지요.” ―빛과 바람까지 고려해야 한다고요. “바람이 세게 불면 종이를 붙일 수가 없으니까요. 금석문은 거의 모두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은 것이라 글자나 그림이 아주 희미한 게 많습니다. 햇빛이 어디서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지요. 먹의 농도가 잘 배었는지도 다르게 보이고요. 추우면 돌이 얼고, 비가 와도 할 수 없습니다. 습도도 영향을 미치지요. 그래서 1년에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금석문 탁본 조사 사업이 이뤄진 것은 세종대왕 이후 사실상 처음이라고요. “관심 있는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국가 차원에서 한 것은 세종대왕 이후 처음이지요. 금석문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문화유산, 예술품일 뿐만 아니라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더욱이 당대의 명필, 명문장가가 쓰거나 지은 글을 새긴 경우가 많아 서예사적으로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관심 부족으로 제대로 조사, 연구된 것이 많지 않아요. 현재 파악된 금석문이 전국에 1만2000점 정도인데, 이 중 꼭 탁본해야 할 것은 8000점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800여 점만 마친 상태지요.” ―전부 조사하려면 100년도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만…. “처음에는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되면 한 15∼20년 정도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예산이 자꾸 깎여서 인건비도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이 아니라 되레 자괴감을 느끼니 안타깝지요.” ―나랏일에 개인적으로 비용을 모아 충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하니까요. 지난해 경기 양평에서 이행원이란 사람의 신도비를 탁본 조사했더니 신필(神筆)이라 불렸던 신라의 김생 글씨를 집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학계에 보고도 되지 않았던 것이죠. 김생의 글씨는 책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고 오직 비석으로만 확인되고 있어요. 이렇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계속 나오는데 어렵다고 멈출 수는 없지요. 탁본 작업과 함께 금석문 전반에 대한 인문학적 교육, 올바른 탁본 방법 등에 대한 교육도 국가 차원에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과 국가유산청이 지난해 10여 년간의 1차 ‘금석문 탁본(拓本) 조사 사업(2013~2023)’을 마치고 올해 2차 사업(2024~2028)에 들어갔다. 총괄 책임연구원으로 이 사업을 이끄는 이가 최근 조계종 탁본 명장으로 지정된 흥선 스님이다. 21일 서울 종로구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에서 만난 흥선 스님은 “탁본은 먹과 빛, 바람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인데 과거에 아무렇게나 하다 보니 훼손된 국보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40여 년 넘게 탁본에 천착해 온 그는 불교중앙박물관장, 문화유산 위원 등을 역임하며 국보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충주 고구려비 등 수천 점이 넘는 전국의 주요 금석문을 채탁(採拓)한 전문가다.―최근 강의에서 “먹칠로 훼손된 국보가 더는 없어야 한다”고 하셨더군요.“탁본은 종이를 비석에 먼저 올리고 그 위를 먹 방망이로 두드려 떠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전문가도 없고 또 아무나 하다 보니 거꾸로 먹을 먼저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대서 떠냈어요. 문화재에 먹칠을 한 거죠. 먹은 한 번 스며들면 거의 안 지워집니다. 국가유산인 경기 여주 고달사지 승탑, 경북 영일 칠포리 암각화군,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 등 잘못된 탁본으로 훼손된 문화유산이 많지요.”―빛과 바람까지 고려해야 한다고요.“바람이 세게 불면 종이를 붙일 수가 없으니까요. 금석문은 거의 모두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은 것이라 글자나 그림이 아주 희미한 게 많습니다. 햇빛이 어디서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지요. 먹의 농도가 잘 배었는지도 다르게 보이고요. 추우면 돌이 얼고, 비가 와도 할 수 없습니다. 습도도 영향을 미치지요. 그래서 1년에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국가 차원에서 금석문 탁본 조사 사업이 이뤄진 것은 세종대왕 이후 사실상 처음이라고요.“관심 있는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국가 차원에서 한 것은 세종대왕 이후 처음이지요. 금석문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문화유산, 예술품일 뿐만 아니라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더욱이 당대의 명필, 명문장가가 쓰거나 지은 글을 새긴 경우가 많아 서예사로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관심 부족으로 제대로 조사, 연구된 것이 많지 않아요. 현재 파악된 금석문이 전국에 약 1만2000점 정도인데, 이 중 꼭 탁본해야 할 것은 약 8000점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800여 점 정도만 마친 상태지요.”―전부 조사하려면 백년도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만.“처음에는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되면 한 15~20년 정도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예산이 자꾸 깎여서 인건비도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이 아니라 되레 자괴감을 느끼니 안타깝지요.”―나랏일에 개인적으로 비용을 모아 충당했다고 들었습니다.“꼭 필요한 일이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하니까요. 지난해 경기 양평에서 이행원이란 사람의 신도비를 탁본 조사했더니 신필(神筆)이라 불렸던 신라의 김생 글씨를 집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학계에 보고도 되지 않았던 것이죠. 김생의 글씨는 책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고 오직 비석으로만 확인되고 있어요. 이렇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계속 나오는데 어렵다고 멈출 수는 없지요. 탁본 작업과 함께 금석문 전반에 대한 인문학적 교육, 올바른 탁본 방법 등에 대한 교육도 국가 차원에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WYD) 상징물인 ‘나무십자가’와 ‘성모성화’가 24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한국대표단에 전달됐다(사진). 나무십자가와 성모성화는 자비와 희생을 나타내는 WYD의 대표 상징물. 이날 전달식은 2023년 개최지였던 포르투갈 리스본의 청년들이 상징물을 한국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전달된 상징물은 올림픽 성화 봉송처럼 전 세계를 순례하며 본대회에 맞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3년간의 상징물 순례는 서울 WYD 조직위가 기획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달식에 앞서 열린 미사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십자가를 아시아로 가져가 오늘날 세상에 더욱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나무십자가와 성모성화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리는 ‘WYD 십자가, 이콘 환영의 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이하 하나님의 교회)가 올해 설립 60주년을 맞았다. 1964년 작은 가정 예배소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교회는 현재 전 세계 175개국, 교회 수 7800여 개(한국은 420여 개), 신자 370만여 명의 글로벌 교회로 성장했다. 이 같은 성장의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펼쳐온 이웃돕기, 교육지원, 재난구호, 환경 보호, 헌혈 등 지속적인 사회공헌이 있다. 1990년 대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온 크고 작은 봉사는 2만 9000회에 달한다. 하나님의 교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봉사에 대한 가치관, 교회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2015년 네팔 대지진 때는 100일간 연인원 1만 5000여 명이 구호 활동을 벌였더군요. “전 세계 성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 하신 가르침을 따라 꾸준히 선행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소규모로 진행되던 봉사활동은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때 무료 급식 봉사에 나선 것을 계기로 본격화됐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17년 포항 지진 등 국내는 물론이고, 2015년 네팔 대지진 때는 현지 성도들이 여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상자 구조와 이재민 구호, 피해 복구에 나섰지요. 고립된 히말라야 산골 마을에 헬기로 14차례나 구호품을 원조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등 국가적·지구적 위기 때마다 절망에 빠진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다 보니 각국 정부, 기관도 우리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지난해 페루에서 벌인 대대적인 나무 심기 활동은 현지 방송과 신문 등에서도 잇따라 보도할 만큼 화제였습니다. “지구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병들어가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류도 위기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지구촌 가족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선물하자는 취지로 전 세계 성도들이 환경문제에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페루는 사막화, 엘니뇨 홍수 등 기후변화 피해를 심각하게 겪고 있어 나무 심기 활동이 매우 필요한 곳이죠. 페루 정부와 지자체들도 이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1년 동안 페루에 심은 나무가 1만 5000그루가 넘지요. 지난 7월 페루 국회가 하나님의 교회에 국회 훈장을 수여한 것도 25년간 환경 보호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평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종교를 가리지 않고 신자 감소는 물론 목사, 출가자 등 종교인도 감소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신자 감소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위안과 안식이 필요한데, 오늘날 사회가 각박해지고 사랑이 식다 보니 종교 영역에서도 위로를 얻지 못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본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교회는 누구도 외롭지 않도록 이웃을 돌보고 지구촌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힘쓸 것입니다. 이런 것이 교회가 세워진 이유요, 공익을 위한 역할이 아니겠습니까.”―이제는 설교도 인공지능(AI)이 맡는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 종교와 종교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첨단과학의 발달로 많은 부분이 기계화되면서 인류의 삶이 급속도로 편리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계와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사랑은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인간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잃지 않도록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 종교가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이 책의 주인공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때 자회사를 통해 D램을 생산했다가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완패해 사업을 접었던 이 회사가 지금은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이 설계한 최첨단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을 독점하면서 이 분야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 기업이 됐으니 말이다. 올 3분기 순이익만 약 3200억 대만달러(약 14조 원)를 거둬들이며 파운드리 분야 세계 점유율 60%를 넘긴 TSMC의 전성기가 아이러니하게도 D램 사업에서 철수한 후에 찾아왔으니,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때 최고경영자(CEO)가 ‘못 먹어도 고’를 외쳤다면? 하이테크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대만 반도체 산업을 30년간 취재해 온 저자가 올해 37주년을 맞은 이 기업의 설립부터 발전, 위기와 극복의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눈여겨볼 대목이 한둘이 아니지만, 2000년 130나노 구리 공정 개발 때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으로 1년 반 동안 가족을 떠나 연구개발에 몰두한 끝에 IBM을 꺾은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또 TSMC가 2016년 10나노 공정 개발 때 연구개발 인력 400여 명에게 ‘기본급 30% 추가, 성과급 50% 지급’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걸고 24시간 3교대로 쉬지 않고 일하게 한 끝에 삼성전자와 인텔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등 기업이 된 요인이야 수없이 많을 테고, 또 운도 작용했겠지만, 강도 높은 근무 환경이 불만스러운 한 미국인 직원에게 마크 류 전 회장이 한 솔직한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야근하기 싫은 사람은 이 업계에서 일하지 말아야 합니다.”(2부 11장, 긴 노동시간, 낙후된 소프트웨어, 인색한 직원 복지 중) 사실 읽다 보면 ‘비밀’이라 할 것도 별로 없다. 남보다 열심히, 더 많이 일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겸손, 인맥이 아닌 실력으로 선택하는 후계자 등 우리가 다 아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더욱 치열해질 반도체 전쟁을 앞두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경북 예천군 보문사에 봉안돼 있다가 도난당해 미국에 건너갔던 불화 ‘신중도’(사진)가 3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대한불교조계종은 21일 미국 시카고대 스마트 미술관이 보유 중인 신중도를 돌려받기로 미술관 측과 합의했다고 21일 밝혔다. 신중도는 1767년 혜잠 스님이 그린 불화로, 화면 좌우에 제석천과 위태천을 크게 배치한 매우 독창적인 구성으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신중도는 보문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아미타불회도, 삼장보살도와 함께 1989년 6월 5일 도난당했다. 이후 신중도를 제외한 두 점은 2014년 국내에 환수됐고, 이번에 신중도까지 보문사로 돌아오게 된 것. 이번 반환은 조계종이 도난품이라는 것을 미술관 측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반환을 요청한 끝에 이뤄졌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앞으로 10년 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정치만 잘하면 1등 국가가 될 텐데….”대표적인 국내 보수 개신교계 원로인 김장환 목사(90·극동방송 이사장)는 15일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녹록지 않은 외부 상황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 머리 위에 검은 먹구름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며 “여야가 국익을 위해서라면 도울 건 도와야 하는데 극단으로만 치닫는 것 같아 큰일”이라고 말했다.김 목사는 6·25전쟁 중 미군 잔심부름을 해주는 ‘하우스 보이’로 시작해 미국 유학을 거쳐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을 지내는 등 세계적인 목회자가 됐다. 미국 개신교계와 정계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그는 한미 관계가 껄끄러울 때마다 양국 간 물밑 채널 역할을 해 왔다. 또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에게 조언과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우리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라니요.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를 맞아 엄청난 파도가 닥칠 거라 누구나 예상하지 않습니까. 이미 우리를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방위비 대폭 증액도 예고하고 있고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대외 여건이 정말 녹녹지 않습니다. 북한은 러시아를 위해 파병까지 했지요. 그런데 우리 내부를 보면… 정말 정치를 이렇게 해도 되나, 경제도 이 상태로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많아요. 물론 교회도 많이 자성해야 하고요.”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만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지요. 처가(그의 아내인 트루디 여사는 미국인이다)도 그렇고, 제가 미국 쪽에 좀 인맥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용산에서 페루와 브라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14∼21일) 이후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 지명자(수지 와일스)에게까지는 우리 요청이 전달됐는데, 쉽지 않아요. 워낙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있으니까요.”※김 목사는 미국 내 인맥을 통해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되는데 힘을 보탠 바 있다. 그는 1973년 방한한 세계적인 전도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맡은 뒤 두터운 친분을 쌓았는데,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트럼프 1기 캠프의 핵심 참모였다. ―트럼프 측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굉장히 급한가 봐요. 벌써 세 번이나 회동을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급하기는 마찬가지고요. 트럼프 쪽에서는 만나줘야 할 사람은 워낙 많은데 한번 물꼬가 터지면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안 만나고 하기가 힘드니까 신중한 것 같습니다.” ―트럼프 2기는 어떨 것 같습니까. “내각을 전부 강성 중의 강성으로 임명하고 있어서…. 제가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만큼 미국에도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인데, 저렇게 가면 안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상원 원내대표에 완전한 ‘트럼프 충성파’는 아닌 듯한 인물(존 순)이 당선돼 다행 아닌가 싶습니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 해도 모든 걸 다 통과시켜 주지는 않을 사람으로 보여요. 삼권 분립이 이뤄지도록 어느 정도의 견제는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2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직접 설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안일하게 지내도 괜찮은지, 모두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모든 분야가 다 각성해야겠지만… 정치도 이렇게 해서는 안 돼요.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상태가 지금 이렇게 가면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하지요.” ―협치와 소통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 감옥에 갔지요. 그런데 저는,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보다 그 사람들이 과연 정말 죄가 더 많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수라고 해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안 되지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위험한 일입니다.” ―윤 대통령과도 자주 연락하신다고요. “검찰총장을 사퇴한 뒤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찾아오고 싶다고, 한번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전에는 서로 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기자들 안 따라오면 만나겠습니다’라고 했지요. 하하하. 그때가 윤 대통령이 워낙 주목받던 때였잖아요. 혼자 오더군요. 목사가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성경 한 권 주고 로마서 12장 15, 16절을 읽어줬지요. 혹시 앞으로 정치를 하려고 생각한다면, 이 말대로만 하면 성공할 거라고 했지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그 뒤로도 종종 만나 성경 구절도 읽고, 함께 기도도 드리고 합니다.” ―외람되지만 성경 말씀을 혹 잊으신 건 아닐까요. “음… 그런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용산에 갔어요. 거기서 똑같은 구절을 다시 읽어드렸지요. 처음 만났을 때 읽어 드렸던 말이 이건데 잊어버리지 말라고.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읽어드린다고….” ―대통령 앞에서도 쓴소리를 하시는군요.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밥이나 같이 먹으면서 기도도 좀 해주고 할 얘기가 있으면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래서 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와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지요. 그때가 아들 현철 씨 문제로 정국이 요동을 칠 때였는데, 구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어요. 점심을 먹고 여담을 하는데 조 목사가 말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본 YS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라고 하더군요.” ―뭐라고 하셨던가요. “비유를 하나 들었는데… 중국에서 밀밭을 짓밟아 농사를 망치게 하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황제가 범인을 잡으면 두 눈을 파내도록 했어요. 그런데 잡고 보니 범인이 황제의 아들이었던 거죠. 신하들이 어떻게 처리할 수 없어서 황제에게 데려왔더니, 황제가 고민 끝에 아들 눈 하나, 그리고 자신의 눈 하나를 파냈다고…. 그러면서 ‘지금 여론이 아드님 구속하라는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말에 거침이 없는 분이라….” ―YS 반응은 어땠습니까. “아, 그 소리를 들은 YS가 아무 말 없이 창밖으로 그냥 먼 산만 바라보더군요. 한참 동안 답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어색하게 청와대를 나왔는데, 나중에 안기부장이 전화해서 ‘목사님들이 성경이나 읽고, 기도나 하지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라고 해요. 그리고 얼마 후 현철 씨가 구속됐지요. YS는 참 품이 큰 인물이에요.” ―목사님은 어떤 얘기를 해주셨습니까. “조 목사가 그렇게 세게 얘기하다 보니 저는 좀 우회적으로 다윗 왕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꾀했다가 정부군의 창에 찔려 죽자, 아버지인 다윗 왕은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더라면… 하고 상심에 빠졌지요. 하지만 다윗왕은 곧 심기일전해 나라를 잘 이끌었습니다’라고요.” ―한국 교회도 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비대해지다 보니 베풀고 나누려는 초심을 잃은 건 아닌지…. 목사가 최고급 대형차를 타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요. 옛날에 한 독지가가 미제 캐딜락을 사준 적이 있습니다. 사준 사람 면이 있어서 한두 번 타기는 했는데, 내릴 때 부끄러워서 더는 못 타겠더군요. 그래서 해외에서 손님들 오면 모시는 의전용으로 돌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여유가 있고 풍족해지면 그것을 더 없는 이웃, 더 작은 교회와 나누고 베푸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인터뷰 도중 전화가 왔는데, 그의 휴대전화는 폴더폰이었다. ―이제 연말인데, 올해도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 모두 자신부터 생각을 바꾸는 개혁을 했으면 합니다. 그게 덕담이라고 생각하지요. 정치인, 경제인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도 자기 모습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장애인 등 신체적으로 불편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더 배려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질서를 지키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김장환 목사△ 1934년 경기 수원 출생△ 1958년 미국 밥 존스 신학대 졸업△ 1960년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1970년 아세아방송 설립 준비위원장△ 1975년 미국 트리니티대 명예 신학박사△ 1977년 극동방송 사장△ 1992년 아시아침례교연맹 회장△ 2000년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 2024년 현재 극동방송 이사장.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 목사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이사야서 두루마리, 파피루스 52, 구텐베르크 성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개교 127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에 흩어진 희귀 기독교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 유물 특별전 ‘영감(Inspiration), 흔적(Traces), 숭실(Soongsil)’을 다음 달 30일까지 개최한다. 미국 비영리 기독교 문화전시재단인 인스파이어드 전시회 측과 함께한 이번 특별전은 1, 2부는 해외 희귀 기독교 유물 130여 점을, 3부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 80여 점이 선보인다.‘대이사야서’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52는 성서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유물. 대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사해 사본 중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단어의 순서, 철자 등을 제외하면 현대 히브리어본과 99%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피루스 52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파편으로 알려졌으며, 예수가 빌라도와 나눈 진리에 관한 대화가 기록돼 있다. 구텐베르크가 1455년 인쇄한 성경 중 일부와 헨델의 메시아 악보(1767년 초판)도 볼 수 있다. 전시된 구텐베르크 성서는 이사야서 중 한 페이지를 고품질의 면화지에 인쇄한 것인데, 상단 제목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각 문장의 첫 글자는 빨간색으로 돼 있다. 메시아 악보를 편집한 찰스 제넨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보고 “나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밖에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전서’, 숭실대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 베어드(한국 이름 배위량)가 사용한 ‘베어드 갓’ 등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전파 과정이 담긴 유물이 전시된다. 관람은 매일 오전 10시∼오후 4시 반(공휴일 및 주말 개관, 화요일 휴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이사야서 두루마리, 파피루스 52, 구텐베르크 성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개교 127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에 흩어진 희귀 기독교 유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 유물 특별전 ‘영감(Inspiration), 흔적(Traces), 숭실(Soongsil)’을 다음 달 30일까지 개최한다. 미국 비영리 기독교 문화전시재단인 인스파이어드 전시회 측과 함께 한 이번 특별전은 1, 2부는 해외 희귀 기독교 유물 130여 점을, 3부는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 80여 점이 선보인다. ‘대이사야서’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52는 성서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유물. 대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사해 사본 중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단어의 순서, 철자 등을 제외하면 현대 히브리어본과 99%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피루스 52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파편으로 알려졌으며, 예수가 빌라도와 나눈 진리에 관한 대화가 기록돼 있다. 구텐베르크가 1455년 인쇄한 성경 중 일부와 헨델의 메시아 악보(1767년 초판)도 볼 수 있다. 전시된 구텐베르크 성서는 이사야서 중 한 페이지를 고품질의 면화지에 인쇄한 것인데, 상단 제목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각 문장의 첫 글자는 빨간색으로 돼 있다. 메시아 악보를 편집한 찰스 제넨스는 할렐루야 합창곡을 보고 “나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밖에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전서’, 숭실대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 베어드(한국 이름 배위량)가 사용한 ‘베어드 갓’ 등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전파 과정이 담긴 유물이 전시된다. 관람은 매일 오전 10~오후 4시 반(공휴일 및 주말 개관, 화요일 휴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반려동물 1500만 시대. 그만큼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추모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강릉 현덕사(주지 현종 스님)에서 열린 ‘동식물 천도재’에서 ‘개도 불성(佛性·중생이 본래 가진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이 있는가’란 주제로 법문을 한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사진)은 “반려동물의 명복을 빌며 49재 천도재를 지내는 곳이 과거보다 확실히 더 많아진 것 같다”며 “참석자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에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법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덕사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국내 최초로 2000년부터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 ‘동식물 천도재’를 열고 있다. 현덕사처럼 정기적으로는 아니지만 반려동물을 위한 천도재를 지내는 사찰도 점차 느는 추세다. 14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만난 원철 스님은 “사람처럼 개도 불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불성이 ‘없다’라고도 하고, ‘있다’라고도 한다”고 선문답처럼 말했다. “천도재를 치르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것을 자식을 잃은 것처럼 느껴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심하는 분도 많지요. 이런 자리에서 반려동물을 사람과 같은 존재로 동일시하면 슬픔과 아픔이 더 커지기에 동물과 사람 사이에 분별을 갖고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뜻에서 불성이 없다고 말해줍니다.” 상심에 빠져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별할 수 있게 마음 정리를 하는 게 천도재인데, 그 자리에서 마치 사람처럼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동물을 학대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며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소중히 다뤄 달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그는 “당나라 때 유명한 선승인 조주(趙州) 스님(778∼897)이 ‘개도 불성이 있는가’란 화두에 때론 ‘있다’, 때론 ‘없다’라고 한 건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분별심을 가지라는 뜻”이라며 “그래서 조주 스님도 개만 끼고 사는 사람에게는 불성이 ‘없다’라고, 반대 경우에는 ‘있다’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동물에게 정말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분별심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철 스님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다는 것은 너무 큰 아픔이기에 적절한 위로의 말을 해주기가 쉽지 않다”며 “단지 떠난 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슬픔에 빠져 있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기에 쉽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슬픔을 최소화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얘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40여년간 선(禪)의 세계를 그려온 한국 선서화(禪書畫)의 대가 성각 스님 특별초대전 ‘희망을 품고 꿈을 현실로’가 부산교육청 주최로 19~12월 21일까지 부산 학생문화예술회관 갤러리 예문에서 열린다. 성각 스님은 국내에서 유일한 선서화 부문 무형문화재(부산시 무형유산 선화 제작 기능보유자). 이번 전시는 전통 회화를 깊이 이해하고, 다원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 및 소통, 공감의 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해 마련됐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시선을 담아 다채로운 색상으로 확장되고 있는 선화 40여 점이 선보인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개인적으로 우리 교육에서 이것만큼은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 시, 음악, 그림 등 예술 분야를 시험 문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문제를 내고 풀기 위해 정육점에서 고기를 해체하듯 시를 이리저리 뜯고 분석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난도질이 따로 없다. 갈가리 찢어진 소와 양의 살과 피를 다시 붙여 놓고, “전원의 아름다움을 그려보라”라고 한다면 느낌이 날까. 더 큰 문제는 시험문제가 됨으로써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아닌 교육부, 교육청이 정한 ‘정답 해석’이 강요된다는 점이다. 다양성이 생명인 예술을 10년 넘게 획일적으로 가르쳐 놓고, 창조적 인재 양성을 외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닐지. 20대 신진부터 80대 원로까지 시인 30명이 각자 자신만의 해석과 감상으로 미당 서정주의 시 30편을 이야기했다. 거인의 작품에서 누구는 오래 헤어졌던 그리운 사람을, 누구는 어머니를, 또 어떤 사람은 내용보다 제목을 더 아끼고 좋아한다고 솔직히 말한다. 황야를 헤매던 봉두난발의 ‘리어왕’이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고, 가수 송창식의 ‘푸르른 날’을 말하는 이도 있다. 단지 어떤 시인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미당의 시를 말하고 있을 뿐인데, 왠지 답답한 속에 활명수를 마신 듯한 느낌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느끼고 감상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해서….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 ‘푸르른 날’ 중) 한 시인은 “이 작품이 왜 절창인지 한마디 해야겠다”라며 “우리가 모두 ‘푸르른 날’ 느끼는 감정과 욕망을, 그리움의 밀도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이라고 그 이상 더 잘 쓸 수 없게 노래해서 사람을 까무러치게 한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해석과 ‘나는 그런 날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상상해 보며 읽으면 미당의 시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스님만 의지해서는 불교에 미래가 없어요. 그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 의지처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12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이중표 전남대 명예교수(71·철학)는 16년이나 걸려 최초의 한글 불경인 ‘불경(佛經·SUTTA·사진)’을 출간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불경’은 수많은 불교 경전 중 붓다가 직접 설법한 가르침이 담긴 ‘니까야’와 ‘아함경’을 한글로 편역한 것. 그는 “대부분 종교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을 갖고 있는데, 불교는 불경 없이 불상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금강경, 화엄경 등 많은 경전이 있는데 ‘불경이 없다’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붓다의 말씀 또는 가르침을 적은 경장(經藏), 계율을 담은 율장(律藏), 붓다의 제자들이 경장과 율장에 대해 논한 논장(論藏)을 삼장(三藏)이라 말하지요. 붓다 열반 후 논장을 체계화, 이론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논서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불교의 참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대승불교 운동이 생겨나지요. 그로 인해 수많은 해석과 설명, 주석이 담긴 책이 또 나왔는데, 금강경 등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경전이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그 모든 것을 모두 모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라고요. “앞서 말한 그 모든 것, 심지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관련 문헌까지 집대성한 게 바로 팔만대장경이지요. 그러다 보니 서로 중복된 것이 너무 많고, 같은 내용을 다르게 해석한 것도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평생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걸 사람들, 특히 일반 신자들이 읽는 경전으로 삼을 수는 없지요.” ―많은 경전 중에 ‘니까야’와 ‘아함경’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붓다는 제자들에게 항상 ‘가르침(法)을 등불과 귀의처로 삼을 뿐,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붓다 사후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구전되다가 후세에 기록됐지요. 그런데 불교 교단이 분열하면서 남방에서 팔리어로 기록된 것은 니까야, 북부에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것이 한자로 번역돼 남겨진 것을 아함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 내용은 거의 같지요. 붓다 열반 이후 만들어진 대승 경전은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니기에 모두에게 공통의 불경이 되기는 어렵다고 봤지요.” ―한국불교는 선종 영향으로 깨달음을 강조하는 면이 더 많은데요. “한국불교가 당나라 때 선승인 육조 혜능의 법을 잇다 보니 깨달음의 신비적인 모습만 너무 주목받은 면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경전 공부는 선을 하기 위한 일종의 전 단계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요. 더욱이 우리 불교가 대승불교라 아함경은 소승불교라고 공부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저는 공부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요. 육조 혜능도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분인데 그런 부분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게 안타깝지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자 경전을 읊는다고 무슨 수행이 되겠습니까.” ―올 1월 다시 출가했습니다. “19세 때 출가했는데, 불교를 학문적으로 더 공부하고 싶어서 20대 후반에 환속했지요. 절에 있으면 공부만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번에 책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이 ‘불경’을 활용한 법회를 열고, 신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여러 일을 할 계획인데, 승려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해 다시 출가하고 ‘중각’이란 법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거죠. 하하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스님만 의지해서는 불교에 미래가 없어요. 그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 의지처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12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이중표 전남대 명예교수(71·철학)는 16년이나 걸려 최초의 한글 불경인 ‘불경(佛經·SUTTA)’을 출간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불경’은 수많은 불교 경전 중 붓다가 직접 설법한 가르침이 담긴 ‘니까야’와 ‘아함경’을 한글로 편역한 것. 그는 “대부분 종교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을 갖고 있는데, 불교는 불경 없이 불상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금강경, 화엄경 등 많은 경전이 있는데 ‘불경이 없다’라고 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붓다의 말씀 또는 가르침을 적은 경장(經藏), 계율을 담은 율장(律藏), 붓다의 제자들이 경장과 율장에 대해 논한 논장(論藏)을 삼장(三藏)이라 말하지요. 붓다 열반 후 논장을 체계화, 이론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논서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불교의 참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대승불교 운동이 생겨나지요. 그로 인해 수많은 해석과 설명, 주석이 담긴 책이 또 나왔는데, 금강경 등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경전이 그렇게 생겨났습니다.”―그 모든 것을 모두 모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라고요.“앞서 말한 그 모든 것, 심지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관련 문헌까지 집대성한 게 바로 팔만대장경이지요. 그러다 보니 서로 중복된 것이 너무 많고, 같은 내용을 다르게 해석한 것도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평생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걸 사람들, 특히 일반 신자들이 읽는 경전으로 삼을 수는 없지요.”―많은 경전 중에 ‘니까야’와 ‘아함경’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붓다는 제자들에게 항상 ‘가르침(法)을 등불과 귀의처로 삼을 뿐,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붓다 사후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구전되다가 후세에 기록됐지요. 그런데 불교 교단이 분열하면서 남방에서 팔리어로 기록된 것은 니까야, 북부에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것이 한자로 번역돼 남겨진 것을 아함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 내용은 거의 같지요. 붓다 열반 이후 만들어진 대승 경전은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니기에 모두에게 공통의 불경이 되기는 어렵다고 봤지요.”―한국불교는 선종 영향으로 깨달음을 강조하는 면이 더 많은데요.“한국불교가 당나라 때 선승인 육조 혜능의 법을 잇다 보니 깨달음의 신비적인 모습만 너무 주목받은 면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경전 공부는 선을 하기 위한 일종의 전 단계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요. 더욱이 우리 불교가 대승불교라 아함경은 소승불교라고 공부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저는 공부 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요. 육조 혜능도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분인데 그런 부분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게 안타깝지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자 경전을 읊는다고 무슨 수행이 되겠습니까.”―올 1월 다시 출가했습니다.“19살 때 출가했는데, 불교를 학문적으로 더 공부하고 싶어서 20대 후반에 환속했지요. 절에 있으면 공부만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이번에 책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이 ‘불경’을 활용한 법회를 열고, 신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여러 일을 할 계획인데, 승려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해 다시 출가하고 ‘중각’이란 법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거죠. 하하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혜일 스님)가 150여 년 만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직접 인경(印經)에 나섰다. 인경은 인쇄경(印刷經)의 준말로 경판에 먹을 입혀 한지에 인쇄하는 전통 기술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연구원장 경암 스님)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년)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인경돼 전국 사찰 등에 봉안됐다. 하지만 많은 인경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1383년 본’(고려 우왕 9년 인경·일본 교토 오타니대 소장) ‘1458년 본’(조선 세조) ‘1865년 본’(해인사 인경) ‘1899년 본’ ‘1915년 본’ ‘1968년 본’ 등 6종만 남아있다. 이 중 국가나 왕실의 후원 없이 해인사가 직접 인경한 것은 159년 전인 고종 2년 해명장웅 스님 주도로 간행한 ‘1865년 본’뿐이다. 그나마 6종 모두 일부 경전이 없거나, 경전 중 권 또는 장이 없는 등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상태다. 인경이 중요한 것은 경판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 하지만 팔만대장경 인경은 비용과 인력, 기술 등에서 막대한 공력이 필요한 대불사다. 연구원은 “팔만대장경 인경은 현대의 일반 종이가 아닌 특수제작한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지 값만 20억 원이 넘게 드는 대불사”라며 “이 때문에 고려, 조선 시대에 인경을 해도 대량으로 만들기 힘들었고, 왕실이 후원한 ‘세조 본’도 50질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인경에 필요한 인쇄술을 가르치고 마렵(馬鬣) 등 인경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렵은 조선 시대 사용한 말갈기로 만든 인쇄용 솔로, 먹을 바른 경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먹이 묻어나도록 문지르는 도구다. 연구원은 “경판 인경 작업은 대부분 스님들이 맡았는데, 현대에 들어 새로운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전통 방식의 인경 기술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150여 년 만의 해인사 직접 인경을 위해 사찰 내에 인경 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조성과 인경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뤄져 왔다”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지금 팔만대장경 인경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혜일 스님)가 150여 년 만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직접 인경(印經)에 나섰다. 인경은 인쇄경(印刷經)의 준말로 경판에 먹을 입혀 한지에 인쇄하는 전통 기술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연구원장 경암 스님)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인경돼 전국 사찰 등에 봉안됐다. 하지만 많은 인경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1383년 본(고려 우왕 9년 인경·일본 교토 오타니대 소장)’ ‘1458년 본(조선 세조)’ ‘1865년 본(해인사 인경)’ ‘1899년 본’ ‘1915년 본’ ‘1968년 본’ 등 6종만 남아있다. 이 중 국가나 왕실의 후원 없이 해인사가 직접 인경한 것은 159년 전인 고종 2년 해명장웅 스님 주도로 간행한 ‘1865년 본’뿐이다. 그나마 6종 모두 일부 경전이 없거나, 경전 중 권 또는 장이 없는 등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는 상태다. 인경이 중요한 것은 경판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 하지만 팔만대장경 인경은 비용과 인력, 기술 등에서 막대한 공력이 필요한 대불사다. 연구원은 “팔만대장경 인경은 현대의 일반 종이가 아닌 특수제작한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지 값만 20억여 원이 넘게 드는 대불사”라며 “이 때문에 고려, 조선 시대에 인경을 해도 대량으로 만들기 힘들었고, 왕실이 후원한‘세조 본’도 50질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인경에 필요한 인쇄술을 가르치고 마렵(馬鬣) 등 인경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렵은 조선 시대 사용한 말갈기로 만든 인쇄용 솔로, 먹을 바른 경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먹이 묻어나도록 문지르는 도구다. 연구원은 “경판 인경 작업은 대부분 스님들이 맡았는데, 현대에 들어 새로운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전통 방식의 인경 기술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150여 년 만의 해인사 직접 인경을 위해 사찰 내에 인경 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조성과 인경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뤄져 왔다”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지금 팔만대장경 인경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