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

이세형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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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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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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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즈볼라는 ‘작은 이란’… “이스라엘-이란 화해없인 휴전 불가”

    《중동위기, 이-헤즈볼라 충돌 왜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25일(현지 시간) 대규모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중동 정세가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은 전투기 100여 대를 동원해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선제공격했고, 이에 맞서 헤즈볼라는 무인기(드론)와 로켓 320여 발을 발사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에 벌어진 ‘34일 전쟁’ 뒤 가장 큰 규모의 충돌이었다고 분석했다. 비록 전면전으로 확대되진 않았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이란이 개입할 경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최근 가장 자주 발생하고 있는 분쟁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간 충돌이다. 그리고 둘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있을 때 시선은 이란에 집중된다. 25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이 전투기 100여 대를 동원해 헤즈볼라의 주요 거점지를 선제공격했고, 헤즈볼라 역시 무인기(드론)와 로켓 320여 발로 반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도 이번 충돌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프랑스, 영국 등의 외교장관과 최근 전화 통화를 갖고 “이란은 이스라엘의 테러에 대응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는 이란 국영 IRNA통신 보도가 23일 나온 뒤 발생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지난달 31일 자국에서 사망한 것에 대한 보복 의지를 강조해 왔다. 이란이 이번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에 개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선 헤즈볼라가 대규모 공격을 준비 중이라 선제공격을 감행했다는 이스라엘군의 발표를 토대로 “이란이 헤즈볼라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란과 헤즈볼라의 특수한 관계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란과 헤즈볼라는 사실상 ‘일심동체’ 아랍어로 ‘신의 정당’이란 뜻을 지닌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무장투쟁을 지향하며 설립됐다. 헤즈볼라는 이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종파(이슬람 시아파)와 이념(반미, 반이스라엘)이 같고, 헤즈볼라가 설립될 때 이란이 다양한 군사, 재정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 고위 지도자들도 이란의 최고지도자(시아파 성직자)에게 충성을 맹세해 왔다. 레바논, 나아가 중동에서 헤즈볼라는 ‘작은 이란’, ‘이란의 대리인’으로 통한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정규군은 2만∼2만5000명 정도이며, 수만 명이 예비군 형태로 동원될 수 있다. 20만 기 이상의 로켓포와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일부 미사일은 정밀 유도 기능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와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에도 참여해 전투 경험도 풍부하다. 비국가 군사조직 중 가장 무장 수준이 높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같은 헤즈볼라를 이용해 이란은 본국에서 2000km 정도 떨어져 있는 ‘주적’ 이스라엘을 꾸준히 압박해 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헤즈볼라와 이란은 일심동체 관계”라며 “이란이 이스라엘과 화해를 안 한다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화해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란, 무장단체를 주요 안보 전략으로 활용 이란은 헤즈볼라 외에도 여러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에 대규모 기습공격을 가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예멘에서 정부군과 내전 중이며 역시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 후티반군(후티)도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차이점은 후티는 시아파 계열이고, 하마스는 수니파라는 것. 이란이 종파가 다른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유는 하마스가 헤즈볼라 못지않게 이스라엘을 괴롭히기에 적합한 무장단체이기 때문이다. 비록 하마스가 수니파이지만 이스라엘 공격에는 유용한 만큼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가자전쟁’ 발발 뒤 이스라엘이 “실질적인 배후는 이란이다”라고 주장했던 이유다. 1978년 이슬람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신정공화정 체제를 이룬 이란은 반미, 반왕정, 반유대주의 등을 주요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다. 당연히 서방, 친미국가이며 유대교인이 다수인 이스라엘, 수니파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대립을 피하기 어려웠다. 안보적으로 고립돼 있는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처럼 정세가 불안정하며 동시에 시아파 인구가 많은 주변 나라의 무장단체를 활용하는 전략을 취해 왔던 것이다. 쉽게 말해 친이란 성향 무장단체를 이용해 필요시 군사작전을 펼쳐 온 것이다. 중동 국가들 중 많은 수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과 장거리미사일 못지않게 무장단체 지원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친이란 무장단체 위협 막기 위해 가까워져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지역에 나라를 세워 수십 년간 아랍권과 적대 관계였던 이스라엘이 최근 사우디, UAE 등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는 ‘이란 견제’가 꼽힌다. 아랍권과 이스라엘 모두 이란을 큰 안보위협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란 견제 과정에서 핵심 사항으로 여겨지는 것 중 하나는 이란의 무장단체 활용 전략을 억제하는 것이다. 사우디와 UAE, 이스라엘은 이란과 역시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에도 이란의 무장단체 활용 전략을 억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교수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내년에 미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중동 정책도 일정 부분 새로 짜일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사우디, UAE, 이스라엘 등이 가장 관심을 가질 사안 중 하나는 ‘이란의 무장단체 활용 전략 억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세형 국제부장 turtle@donga.com}

    •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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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가장 우려되는 건 헤즈볼라의 이스라엘에 대한 지상전 감행”

    《중동은 지금 ‘시계 제로 상태’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지도자였던 이스마일 하니야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했다. 수도가 ‘주적’에게 뚫린 이란은 격분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곧바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선언했다. 아랍권 나라들이 이란에 “보복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란에선 “전쟁이 나도 상관없다”는 반응이 나왔다.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간 교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6일 하마스는 하니야 후임으로 강경파이며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주도한 야흐야 신와르 하마스 군사지도자를 선출했다. 벌써부터 ‘가자지구 전쟁 휴전 협상은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심지어 이스라엘 측은 “신와르를 제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국내 중동학계의 대표적 중진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을 7일 만나 일촉즉발 위기로 치닫고 있는 중동 정세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달 13∼19일 이스라엘을 다녀온 장 센터장은 “최근 국내외 언론을 통해 접하는 중동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이스라엘 출장 때 방문했던 레바논과의 국경 지대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그대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레바논 국경 지대는 왜 갔었나. “헤즈볼라와의 대치 상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파악하기 위해 갔다. 말 그대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레바논과의 국경으로부터 6km 떨어진 지역까지 갈 수 있었다. 더 가까이는 현지 규정상 갈 수 없다. 이 지역에 살던 이스라엘 주민들은 이미 모두 대피한 상태였다. 헤즈볼라의 로켓이 날아오는 건 물론이고, 헤즈볼라 대원들도 언제든지 대규모로 넘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의 보복 공격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보복을 선언한 이상 어떤 형태로든 공격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올해 4월처럼 이란이 직접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를 이스라엘로 대거 발사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또 이란은 나서지 않은 채 헤즈볼라와 후티가 미사일과 로켓으로 공격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란, 헤즈볼라, 후티가 동시에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할 수도 있다. 방법과 규모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보복 공격 자체는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전이 시작되는 것인가. “그동안 이란은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하면서도 전면전은 피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4월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도 300여 기나 되는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했지만 공격 정보를 흘리고, 속도도 느린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요격이 용이하게 했다. 2020년 1월 당시 이란 혁명수비대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해외작전 담당 정예부대) 사령관이 미군 공격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망한 뒤 보복을 할 때도 공격 시간과 장소를 흘렸다. 이로 인해 당시 이라크 내 2개의 미군 기지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란은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자존심을 세우려 하겠지만 전면전은 피하려 할 것이다.”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한 공격 외에 다른 공격 방법은 없나. “이란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가장 심하게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헤즈볼라가 지상전을 감행하는 것이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침투한 것처럼, 헤즈볼라 대원들이 이스라엘 북부(레바논 남부) 국경을 대거 넘어오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스라엘로서도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헤즈볼라는 2014∼2017년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체적으로 국가를 선포하고 악명을 날릴 때 이란 혁명수비대와 함께 ‘IS 퇴치전’에 참여했다(IS는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해 시아파인 이란과 헤즈볼라를 적으로 여겼음). 이란으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아 무기의 질도 우수하고 전투 경험도 많다. 하마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헤즈볼라와의 대규모 지상전이 펼쳐지면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보다 훨씬 큰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이란의 보복 공격 과정에서 헤즈볼라의 대규모 지상전 감행은 필연적인 것 아닌가. “헤즈볼라의 대규모 지상전 감행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헤즈볼라가 제대로 지상전을 펼칠 경우 이스라엘 역시 보복 과정에서 베이루트(레바논 수도)를 포함한 레바논 전역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 인명 피해는 급증하고, 가뜩이나 열악한 각종 인프라도 크게 파괴될 것이다. 또 경제는 지금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게 분명하다. 이 경우 헤즈볼라의 정치 기반은 완전히 흔들릴 수 있다. 레바논 국민들의 반감이 커지면서 지금처럼 헤즈볼라 소속 인사들이 의회와 정부에 대거 진출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미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가 지나치게 이스라엘과 대립해 나라가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많다. 헤즈볼라의 생존과 영향력 유지를 위해선 이스라엘을 상대로 대규모 지상전을 펼치는 게 쉽지 않다. 또 헤즈볼라의 대대적인 지상전 감행은 이란도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시나리오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대규모 지상전이 벌어지면 이란으로서는 오히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 아닌가. “이란에게 헤즈볼라만큼 가치 있는 ‘안보 자산’도 없다.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아직 개발되지는 않았음)도 있지만 헤즈볼라는 또 다른 차원의 자산이다. 헤즈볼라를 통해 레바논이란 중동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도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다. 사실상 대리전을 치러주며, 이란의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장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직이 헤즈볼라다. 헤즈볼라가 레바논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투 역량도 크게 훼손되는 건 이란에도 치명적이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고위지휘관들을 계속 살해하고 있어 헤즈볼라 내 반이스라엘 감정이 매우 고조돼 있다. 만에 하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대규모 지상전에 들어간다면 파장은 상당할 것이다.” ―이스라엘도 선제공격까지 운운하며 이란의 보복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로서는 이미 테헤란에서 다른 날도 아니고 신임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다음 날 ‘이란의 친구’인 하니야를 암살했다. 과거의 다양한 이란 내 공작 활동을 보면 현지 핵 시설과 군사 시설 등도 다양한 형태로 공격할 수 있다. 무기의 질, 정보 역량, 미국 지원 등을 감안할 때 이스라엘이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도 이란과의 충돌이 격화돼 전면전이 벌어지고 사상자가 늘어나는 건 큰 부담이다. 또 이미 이스라엘 국민들은 하마스와의 전쟁만으로도 매우 지쳐 있기도 하다. ‘전시 내각’을 유지하고, 극우 세력과의 연대를 지향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적당한 긴장이 도움이 되지, 전면전은 아니다.” ―하니야 암살도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생명 연장과 상관있다고 보나. “하니야는 신와르에 비해 온건파일지 몰라도 이스라엘 입장에선 자신들의 안보를 위협해온 또 한 명의 극단주의자일 뿐이다. 하니야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도 당연히 관여했다. 오래전부터 이스라엘군이나 모사드 등은 하니야를 제거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이란에서 그를 제거하기 가장 좋은 기회로 본 것 같다. 결과적으로 하니야의 암살과 이로 인한 긴장 고조를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는 있겠지만, 정치생명 연장을 우선적 목표로 하니야를 암살하진 않았을 것 같다.” ―하니야 암살은 정말 영화 같았다. 적국의 수도에 있는 안가에서 대통령 취임식이란 큰 행사가 치러진 다음 날 정확하게 ‘타깃’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스라엘의 정보력이 뛰어나고, 이란 정부 내에도 반정부 성향 인사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여러 정황상 하니야가 공격을 받은 곳은 혁명수비대가 관할하는 안가다. 삼엄한 경계가 이뤄졌을 것이다. 아주 세부적인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는 성공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고, 가장 사상적으로 검증된 인력들로 구성된 혁명수비대 안에도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인사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사는 단순히 돈으로만 포섭되긴 힘들다. 이스라엘에서 돈도 줬을 수 있겠지만, 현재 이란 체제에 심각한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협력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니야 암살로 이란 내부에서 책임 소재 공방이 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온건, 실용파로 분류되는 마수드 페제슈키안 신임 대통령 측은 혁명수비대가 제대로 경호 및 보안 업무를 하지 못해 이번 사태가 터졌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은 다시 서방과의 대화, 개혁·개방에 나설 수 있을까. “지금처럼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가 최고지도자를 맡는 상황에서는 전면적인 개혁·개방은 힘들 것이다. 다만, 2015년 이란이 서방과의 ‘핵 합의’를 계기로 추진했던 수준의 개혁·개방은 가능하다고 본다. 경제 상황이 안 좋고, 사회적으로도 불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핵 합의를 폐기해 강경파들이 집권하면서 개혁·개방 동력은 꺼졌다. 아마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2015년 핵 합의 때 같은 상황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부통령으로 당시 핵 합의를 주도했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교장관이 임명됐다는 것도 예의 주시해 볼 부분이다.”장지향 센터장△1971년 서울 출생△1994년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 졸업△1997년 한국외국어대 정치학 석사△2005년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2011년∼현재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선임연구위원)△2012년∼현재 외교부·법무부·산업통상자원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2024년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저서 ‘최소한의 중동 수업’(2023년),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2018년) 이세형 국제부장 turtle@donga.com}

    • 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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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에 또 하나의 전운이 감돈다[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중동에 또하나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충돌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꾸준히 충돌해 왔다.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 전쟁’ 중에도 두 진영은 충돌해 왔다. 이미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민간인들을 지난해 10월부터 대피시켰다. 그만큼 헤즈볼라와의 충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다만, 최근 충돌은 규모가 크다. 또 의미도 남다르다. 1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헤즈볼라 최고위급 지휘관 중 한 명인 탈레브 압둘라 등이 사망했다. 헤즈볼라는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뉴욕타임스와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알마나르TV 등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12일과 13일 각각 200여 발과 100여 발의 로켓과 무인기(드론) 등을 이스라엘로 발사했다. 양측 간 공격이 계속되고,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가자 전쟁 같은 또하나의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가자 전쟁 휴전 논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반이스라엘’ 무장정파로서 헤즈볼라가 지니고 있는 특성과 과거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우려를 더욱 키운다.● 헤즈볼라, 2006년 이스라엘과 34일 간 전쟁 헤즈볼라는 아랍어로 ‘신의 정당’을 의미한다. 시아파 무장정파인 만큼 1982년 설립될 때부터 이스라엘의 ‘주적’인 이란의 다양한 지원을 받았다. 사실상 이란이 헤즈볼라 설립에 깊숙이 개입했다. 헤즈볼라는 현재 레바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 세력으로 꼽힌다. 정부와 의회에서 많은 헤즈볼라 관계자들이 활동 중이다. 군사 역량도 상당하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정규군은 2만 명(예비군 포함시 4만5000명)이다. 또 연간 예산은 7억 달러(약 9723억 원)에 이른다. 이란이 헤즈볼라에 대한 재정과 무기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헤즈볼라는 설립 직후부터 이스라엘 공격을 주요 목표로 삼아왔고, 무력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특히 2006년 7월 이스라엘과 34일 간 전쟁을 벌이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헤즈볼라는 국경 지대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을 납치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궤멸’을 선언하고,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하지만 헤즈볼라는 체계적인 게릴라전을 펼치고, 로켓을 대대적으로 이스라엘로 발사하며 강하게 저항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적잖은 인명 피해를 경험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160여 명이 사망했는데,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반이스라엘 무장정파의 공격으로 사망한 게 헤즈볼라와의 전쟁이었다.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명분과 이미지 측면에서도 큰 타격을 봤다. 먼저, 당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레바논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상당수가 민간인이었다(이스라엘 사망자는 다수가 군인). 아랍권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반에서도 “이스라엘이 과도한 공격을 진행했다”는 여론이 강했다. 헤즈볼라에 적대적인 레바논의 마론파(기독교 종파이며 레바논이 건국될 때 레바논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음)들 사이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반면, 아랍권에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에 당당히 맞섰고, 성과도 좋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세계적인 전투력과 첨단무기를 자랑하는 이스라엘군이 일개 무장정파와의 전쟁에서 34일간 고전했다는 것도 큰 화제였다.● 이란과 IS 퇴치전 참여하며 실전 경험 늘려헤즈볼라의 군사력은 2006년과 비교했을 때 훨씬 강해졌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12만~13만여 기의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 전력도 크게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란 최고 군사조직이며 동시에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는 혁명수비대의 ‘쿠드스군’과 함께 2014~2017년 중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직접 참여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테러단체 IS는 2014~2017년 중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국가를 선포하고 맹위를 떨쳤다. 당시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극단주의 수니파 테러단체인 IS의 영향력 확정을 저지하기 위해 최정예 부대로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을 시리아와 이라크에 파병했다. 또 IS와의 지상전을 펼쳤다. 헤즈볼라와 다른 시아파 민병대들은 쿠드스군과 함께 IS와의 다양한 전투에 참여했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교수는 “헤즈볼라는 실전 경험과 무기의 질 등에서 하마스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며 “만약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스라엘이 받게 될 피해도 가자 전쟁 때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헤즈볼라가 이란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이란의 개입과 이에 따른 확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이스라엘과 이란은 4월 서로를 직접 공격한 바 있다. 4월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혁명수비대 고위관계자가 숨졌다. 이란은 4월 13~14일 이스라엘을 향해 300여 기의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그리고 4월 19일 이스라엘은 이란 이스파한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더 이상의 확전은 없었지만, 중동, 나아가 전세계가 두 나라의 충돌에 긴장했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확전은 큰 부담그러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전면전을 감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이스라엘의 경우 발발한지 8개월을 넘은 가자 전쟁만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리 헤즈볼라가 밉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중심으로 한 강경 보수파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안보 위기’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은 부담이 크다.헤즈볼라 입장에서도 전면전 수준의 충돌을 감행할 경우 경제난과 종교 갈등으로 이미 국가 위기 상태인 레바논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레바논 내부에서도 헤즈볼라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하다. 또 미국의 개입 가능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란도 헤즈볼라의 대대적인 이스라엘 공격에는 부담을 느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란도 서방의 제재로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다. 정치도 혼란스럽다.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해 28일 대선을 치러야 한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충돌로 불똥이 튀는 걸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미국 역시 11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중동이 또다시 시끄러워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중동이 불안해지는 건 악재다.다만, 중동에서는 작은 변화 혹은 충돌이 큰 파장을 불러온 경우가 많다. 그리고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충돌은 언제, 어떻게 확대돼도 이상할 게 없는 사안이다. 당분간 국제사회가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국경 지역을 불안한 눈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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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사일부터 게임까지…UAE가 한국에 꽂힌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중동의 금융·물류·교통 ‘허브’, 세계적인 산유국, 파격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나라, 한국이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한국형 원전을 처음 수입한 나라…바로 아랍에미리트(UAE)다.지난달 28~29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하며 UAE는 큰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UAE 측의 300억 달러(약 40조 원) 투자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국이 아랍권 국가와 처음 맺은 CEPA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현준 회장, 구본상 LIG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도 무함마드 대통령을 만나며 UAE에 대한 큰 관심을 나타냈다.하루 평균 약 3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UAE는 글로벌 에너지 업계의 ‘큰 손’이다. 오일달러로 조성된 UAE의 국부펀드들도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언제든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중동 시장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온 한국 기업들이 UAE에 관심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 그렇다면 UAE는 어떤 이유에서 한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잠재적 안보 위협에 노출돼 있는 UAE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또 아부다비(UAE의 수도)와 두바이(UAE의 경제중심지)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모습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UAE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장 큰 문제는 없더라도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은 것.먼저, 인구가 9000만여 명에 이르고, 석유, 천연가스, 대규모 농경지, 전쟁 경험 등을 갖춘 이란은 UAE의 우방이며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이다. 역시 UAE의 우방인 미국과도 이란은 40년 넘게 갈등 중이다.남쪽으로는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정부군과 내전 중인 예멘이 있다. 또 수단, 리비아, 레바논 등 정세가 불안정한 주변 나라에서는 왕정에 부정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정치세력과 무장단체들이 힘을 키우고 목소리를 높인다.왕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석유 판매와 중동의 허브 역할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키워나가길 희망하는 UAE로서는 주변 나라와의 갈등과 정세 불안은 큰 부담이다. 군사 역량을 키우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아크부대’부터 ‘천궁-2’까지…확대되는 군사 협력 이런 UAE에게 한국은 ‘장기적인 군사 협력’을 추구하기 좋은 나라다. 북한과의 크고 작은 충돌을 겪으며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 온 노하우, 미국과의 긴밀한 군사 협력 경험, 각종 첨단 무기 생산 능력 등이 UAE에게는 한국의 특별한 매력으로 여겨진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고, 평화유지군 활동 경험이 많다는 점도 한국의 장점이다.한국 군대(아크부대)가 2011년부터 UAE에 주둔하며 다양한 군사 협력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최근 UAE에서는 한국산 무기 도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히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한국의 방공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UAE는 이란과 친이란 성향 무장단체들의 미사일과 무인기(드론) 공격을 가장 큰 안보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UAE가 2020년 8월 이스라엘과 외교 정상화에 합의했을 때도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의 아이언돔(방공시스템) 기술 도입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이미 UAE는 2022년 1월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천궁-2를 35억 달러(약 4조6000억 원) 규모로 도입했다. 이번 무함마드 대통령의 방한 때도 국방과 방산 분야 관계자들이 동행했고, KAMD를 비롯한 다양한 한국산 무기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류제승 주UAE 대사도 육군 중장 출신이다. UAE와의 군사 협력을 한국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콘텐츠 산업 육성에서도 한국과의 협력에 관심 UAE도 최근 국가 차원에서 ‘탈석유’를 외치는 사우디처럼 비석유 분야 육성에 관심이 많다. 특히 UAE는 중동의 허브란 명성답게 콘텐츠 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무함마드 대통령이 방한 중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K콘텐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만났다는 게 UAE의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K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한국의 관련 기업들이 최근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도 ‘후발 주자’인 UAE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로 꼽힌다.UAE는 특히 게임 산업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2021년에는 ‘아부다비 게이밍 이니셔티브’란 전략도 발표했다. 국가 차원의 게임 산업 육성 전략으로 중동의 게임산업 중심지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 UAE는 아부다비 인근 알 라하 해변 지역에 약 1조 원을 투자해 ‘e스포츠섬’을 개발하고, 콘텐츠 제작 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이슬람 교인)이 다수인 중동에서 게임은 가장 인기 있는 여가활동 중 하나다. 그만큼 중동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으로 여겨진다. UAE는 유명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자국에서 제작할 경우에도 다양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스타트렉’과 ‘미션 임파서블’ 등이 UAE에서 제작된 이유다. 이는 사우디도 공을 들이고 있는 관광 산업 육성과 연관 있다. 자국에서 유명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이 제작될 경우 그 장소는 관광지가 될 수 있고, 자국 내 콘텐츠 기업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스마트팜, 인공지능(AI), 우주산업, 정보기술(IT) 같은 분야에서도 UAE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풍부한 오일달러와 중동의 허브란 이미지를 바탕으로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있고, 자국 기업 육성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도 스마트팜과 클라우드 등의 분야에서 UAE에 진출해 성과를 낸 스타트업들이 있다.● 더 많은 중동 산유국과 관계 강화해야중동 산유국 중에는 UAE와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나라들이 많다. ‘네옴 프로젝트’로 전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사우디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으로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중재를 담당하며 중동의 외교 중심지로도 떠오르고 있는 카타르가 좋은 예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한국경제에 중동 산유국은 다시 한 번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또 중동 산유국들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는 또하나의 이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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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 ‘라파 공격’에 뿔난 가자전쟁 ‘중재자’ 이집트[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에서 미국, 카타르와 함께 중재자 역할을 해온 이집트가 최근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14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이집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주재 중인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것으로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격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가자지구 최남단 지역으로 피란민들이 대거 몰려와 있는 라파에 대한 구호품 전달에도 협력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집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지난해 12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대이스라엘 소송(집단학살 혐의)에 동참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16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33차 아랍연맹(Arab League‧AL) 정상회의에서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을 강하게 비난했다. 당시 시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애매한 행동을 보이고, 휴전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에서 기만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은 광범위한 비판을 받고 있는 라파에 대한 군사작전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팔레스타인 쪽 라파 교차로를 이용해 가자지구 포위를 공고히 하려 한다”고 말했다.● 가자전쟁 ‘중재자’ 역할에 적합한 나라이집트는 라파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랍권 나라 중 가장 먼저 이스라엘과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외교 관계도 맺었다.동시에 이집트는 ‘아랍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가까운 관계다. 여러모로 볼 때, 가자지구 전쟁의 중재자 역할과 구호품 전달을 담당하기 적합한 나라다. 실제로 이집트는 이번 전쟁 중 가자지구 주민을 위한 구호품 반입 창구 역할을 했다. 또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에도 참여했다.● 이스라엘 라파 공격과 국경 통제에 불만이집트가 이스라엘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군이 최근 라파에 대한 공격 강도를 높이고, 대규모 지상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로서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파에서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고, 이 과정에서 하마스와 교전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또 못 마땅하다. 특히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입장 변화에 불만이 많다. 전쟁 초기만 해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라파는 피란민들의 대피 지역이었다. 이스라엘도 라파는 안전한 지역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하지만 전쟁이 계속 진행되면서 이스라엘은 라파에 대한 공격을 늘렸고, 지상전을 감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7일에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쪽 가자지구 국경 검문소를 장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쪽 국경 검문소를 통제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날 이집트 측에 갑작스럽게 전달했다. 그동안 라파 국경의 개방과 폐쇄는 사실상 이집트의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이번 전쟁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는 라파 국경 관리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여겨왔다. 결국 이집트 입장에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쪽 국경 검문소들을 장악하고, 통제에 들어간다는 건 자국의 권한이 축소되는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가자지구 전쟁의 중재자인 자신들을 이스라엘이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자국으로 유입될까 우려라파 상황이 악화되면 팔레스타인 난민이 대거 이집트로 유입될 수도 있다. 이집트가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이집트 경제는 말 그대로 심각한 상황이다. 물가상승, 자국 화폐(이집트파운드) 가치 하락, 부채 증가, 외환 부족 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5년 27.8%였던 이집트의 빈곤율은 2020년 31.9%로 올랐다. 올해 3월과 2022년 12월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이 이집트로 유입되면 경제는 더 망가지고, 국민들의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 또 하마스 구성원들이 난민 속에 섞여 이집트로 넘어 올 수도 있다. 가자지구 전쟁 초기부터 그러나 가자지구에선 지난해 10월7일 이후 이미 3만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식량, 의약품, 물, 연료도 크게 부족하다. 20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머물고 있는 라파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계속 이어진다면 사상자는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 이집트의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중재국 모두 ‘라파 공격’에 부정적이집트는 아랍권 나라 중 이스라엘과 가장 오랫동안 외교 관계를 맺어온 나라다. 사실상 아랍권에서 이스라엘에 가장 우호적인 나라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향력도 크다. 그런 만큼, 이집트와의 관계 악화는 이스라엘에게도 부담이다.또다른 중재자인 카타르도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에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는 14일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경제포럼’에서 “최근 라파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협상을 후퇴시켰다”며 이스라엘군의 라파 공격을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우방국이며 역시 중재자 역할을 해 온 미국도 라파 공격에 부정적이다.그러나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 방침은 확고해 보인다. 이스라엘군의 본격적인 라파 공격이 진행되면 아랍권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온 이집트와 카타르의 입장 변화 가능성도 중요한 변수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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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튀르키예가 ‘이스라엘 압박’에 나선 진짜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튀르키예가 이스라엘과의 교역을 전면 중단했다. 2일(현지 시간) 튀르키예 무역부는 “이스라엘과 관련 있는 모든 물품에 대한 수출과 수입을 중단한다”며 “튀르키예는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에서 충분한 인도적 지원을 할 때까지 엄격하고 단호하게 이번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튀르키예는 그동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원인)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이미 튀르키예는 지난달 9일 이스라엘에 휴전 선언과 인도주의적 지원 허용을 촉구하며 54개 물품에 대한 수출을 제한했다. 이번 조치는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가자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하고, 조만간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대거 밀집해 있는 라파(가자지구 남쪽으로 이집트와의 국경 지대)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감행하려 하는 것에 대한 ‘추가 대응’이다.이스라엘은 당연히 강하게 반발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교부 장관은 X(옛 트위터)에 “에르도안이 (무역) 협정을 깨고 이스라엘에 대한 수입과 수출을 봉쇄했다. 이는 튀르키예 국민과 기업인들의 이익과 국제 무역 협정을 무시하는 독재자의 행동 방식”이라고 밝혔다.중동 주요국, 나아가 전세계 이슬람권의 ‘리더 국가’를 지향하는 나라 중 이란을 제외할 경우 튀르키예의 이번 조치는 가장 강경한 ‘대(對)이스라엘 대응’으로 꼽힌다. 이란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원해 왔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서로 상대의 본토를 공격하는 직접적인 군사 충돌도 벌였다. 특히 이번 튀르키예의 조치는 ‘아랍권의 맹주’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모습과도 크게 구별된다.튀르키예는 왜 이스라엘에 ‘교역 전면 중단’이란 강경한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일까.● 튀르키예,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웠던 이슬람권 국가튀르키예는 원래 이슬람권 주요 국가 중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운 나라였다. 튀르키예는 이스라엘이 건국한 지 2년 뒤인 1950년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승인했다. 이슬람권 국가 중 가장 먼저였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아랍권은 물론이고 이슬람권의 거의 모든 나라로부터 ‘주적’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두 나라는 외교 관계도 정식으로 맺고 있다. 이란은 튀르키예에 이어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인정했고, 외교 관계도 수립했다. 그리고 두 나라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신정공화정 체제를 수립하고 ‘이슬람 근본주의’, ‘반이스라엘’ 성향으로 변했다. 이제 이란과 이스라엘은 각각 서로를 ‘작은 사탄’, ‘테러 지원 국가’로 부른다. 두 나라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도 대표적인 앙숙으로 꼽힌다. 사우디는 아랍의 중심국으로서 같은 아랍인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2017년 6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가 왕세자에 오르고, 권력을 잡으면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많이 개선됐다. 외교 관계 정상화는 이제 시간문제란 평가가 많다. 하지만 아직 두 나라는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사실상 이슬람권 주요국 중 가장 오랜 기간 이스라엘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어온 나라가 튀르키예인 셈이다.● 에르도안, 경제난과 지방선거 패배로 지지층 결집 필요 그런 점에서 튀르키예가 최근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며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건 다소 의외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최근 튀르키예의 강도 높은 이스라엘 압박 움직임에는 원인이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최근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사실상 2033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현재 튀르키예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국민들의 고통은 계속 커지고 있다. 3일 튀르키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튀르키예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월 대비 69.8% 상승했다. 3월에도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 대비 68.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처럼 살인적인 물가 상승은 3월 진행된 튀르키예 지방 선거에서 집권당이 완패한 이유로 꼽힌다. 당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은 수도 앙카라와 경제중심지 이스탄불을 포함해 주요 대도시의 시장 선거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에 승리했다. 결국 튀르키예 안팎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더욱 얻어내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일종의 돌파구 찾기인 것. 과거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튀르키예로부터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반튀르키예 성향 쿠르드족 무장단체에 대한 강경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대응은 ‘지역 영향력 확장 전략’의 일환시리아, 리비아, 아제르바이잔 등 중동과 동유럽에서 군사 활동에 적극 나서고, 현지 ‘친튀르키예’ 세력을 다양한 형태로 지원해 왔다.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사우디의 반발 속에서도 ‘사우디 코 앞’인 카타르에도 군대를 파병하기도 했다. 2021년 11월 튀르크어 계열 언어를 쓰는 동유럽,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튀르크어 사용국가 기구(Organization of Turkic States·OTS)’도 결성했다. 정식 회원국은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다. 헝가리와 투르크메니스탄은 참관국이다. 모두 튀르키예의 전신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지역에 세워진 나라들이다. 지정학과 자원 측면에서 중요한 나라들이란 공통점도 있다. 국내적으로는 보수세력, 국제적으로는 이슬람권 국가들의 더 큰 지지를 이끌어 내려는 시도였다. 원래 아야 소피아는 동로마 제국 시절 대성당으로 세워졌지만 1934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운영돼 왔다.말 그대로, 에르도안 정권은 ‘강한 튀르키예’, ‘지역의 중심국가’, ‘이슬람권의 대표 국가’를 지향해 온 것. 에르도안 대통령이 사실상 ‘오스만 제국의 재건’을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다.이번 이스라엘과의 교역 중단을 놓고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국내 정치 어려움의 돌파구 찾기, 나아가 주변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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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이스라엘 ‘보복의 악순환’ 계속되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이스라엘과 이란이 또한번 충돌했다.이스라엘은 19일(현지 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이스파한의 군사 기지를 공격했다. 이스파한은 이란의 핵 관련 시설을 비롯한 군사 시설이 대거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미국 ABC방송 등은 이스라엘이 현지 목표물을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전했다. 이란 국영TV는 이스파한 상공에서 무인기(드론) 3기가 목격됐고 모두 격추했다고 보도했다.‘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앙숙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공격을 주고받는 ‘보복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이번 공격은 이란이 1일 주시리아 자국 영사관을 이스라엘이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에 대한 재보복이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인식된다.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많은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대규모 지상군도 보유하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인 두 군사강국 간 충돌이 확대될 경우 중동 정세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이스라엘과 이란은 확전, 나아가 전면전에 들어갈까. 이스라엘과는 우방, 이란과는 적대 관계인 미국은 두 나라 간 충돌을 어떻게 바라볼까.● 네타냐후, 확전 은근히 원하지만 미국 눈치도 봐야이스라엘에게 보복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카드였다. 해야만 하는 조치였다. 엿새 전 이란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당시 이란으로부터 날라 온 미사일과 드론의 99%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란으로부터 300여 기나 되는 미사일과 드론이 처음으로 본토를 향해 날라 왔는데 아무 대응도 안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란은 1979년 이후 계속 이스라엘과 앙숙이었던 나라다. 이란의 고위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큰 사탄은 미국을 의미)’, ‘지도에서 지워야 할 나라’로 표현해 왔다. 이란이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에서 다양한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정파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다는 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배후에도 이란이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레바논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로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충돌해 온 헤즈볼라도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다.다시 한 번, 이란에 대한 보복은 이스라엘로서는 꼭 해야 하는 조치였다.특히 현재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의 공격을 제대로 못 막았고, 개인 비리 혐의 등으로 정치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총리직을 유지하려면 연정을 이룬 극우 보수 세력과 협력을 강화해 ‘전시 내각’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또 중도 보수층의 지지도 더 확보해야 한다.이런 상황에서 주적 이란과의 충돌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시 내각, 나아가 정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다. 이란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벌어진 계기였던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에 대한 공격이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과의 갈등이 심해질수록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유리하다.하지만 이스라엘이 이란과의 대규모 확전을 시도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미국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심 우방국이다. 또 이스라엘처럼 이란을 영내 정세를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 국가’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도 “확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안보 면에서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13일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할 때도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 만큼, 이스라엘로서는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이란과의 확전을 추진한다는 건 부담이다. ● 이란, 확전 피하고 싶은 의지 강해이란은 전면전은 물론이고 확전도 피하고 싶어 한다. 13일 이스라엘로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이 99% 요격됐다는 이스라엘 측 발표에도 “목적을 달성했다”며 더 이상의 공격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19일 이스라엘의 이스파한 공격 뒤에는 “공격도 아니었다”고 폄하했다. 현재로서는 추가 대응에 나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다.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중심 국가다. 나아가 전체 이슬람권의 대표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원한다. 1979년 시아파 성직자들이 중심이 돼 일으킨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공화정을 이룩한 이란에게 이스라엘은 반드시 응징해야 할 대상이다. 이슬람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예루살렘을 유대교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다는 건 이란이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작전을 수행하는 엘리트 부대 이름이 ‘쿠드스군(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인 것도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을 잘 보여준다.하지만 이란은 1979년 이후 미국과 서방의 다양한 제재를 경험해 왔다. 1980~1988년에는 당시 아랍권의 대국이었던 이라크와 전쟁도 치렀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더욱 강한 제재에 노출돼 왔다. 이란이 세계적인 석유와 천연가스 보유국이며, 동시에 중동 국가로는 드물게 곡창지대도 갖췄지만 경제난을 겪는 이유다. 아프가니스탄(아프간)과 더불어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한 나라이기도 하다. 경제난과 억압된 사회 분위기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은 커지고 있다. 2022년 이른바 ‘히잡 시위’가 터지며 성난 민심은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왜 다른 나라의 안보와 전쟁에 개입하느냐’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의 심각한 충돌은 정부와 체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오랜 기간 전쟁을 수행하는 것도 어렵다. 또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치룰 경우 승리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재래식 무기가 동원되는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에 비해 공군력이 크게 뒤처지고, 무기도 낙후돼 있어 역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뒤에 있는 미국도 의식해야 한다.이란으로서는 이스라엘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면서, 헤즈볼라 등을 동원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게 더 효과적이다.● 미국, ‘조용한 중동’ 원해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대한 중동이 조용하길 바란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우방이고, 이란이 마음에 안 들어도 ‘불안한 중동’은 큰 악재다. 특히 11월에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중동이 시끄러워질수록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불리하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에서는 불안한 중동 정세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격 포인트로 삼고 있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지구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 그것도 지역 내 최고 군사강국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정면충돌 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한 직후부터 중동과의 거리두기를 나름대로 분명히 해 왔다. 집권한 지 7개월 뒤인 2021년 8월 아프간에서 미군을 전격 철수시킨 게 좋은 예다. 아프간 전쟁의 피로는 전쟁이 시작된 2001년 10월부터 누적돼 왔다. 또 미군의 철수는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그렇게 신속하게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군시킬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미군 철수 뒤 아프간은 완전히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정파인 탈레반에 넘어갔다. 탈레반의 강압적이고 전근대적인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개입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림자 전쟁’ 대신 새로운 갈등 벌어지나현재로선 이스라엘과 이란 간 확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두 나라는 자신의 자존심은 세우고, 상대방에게는 어려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두 나라 사이에 벌어져 온 이른바 ‘그림자 전쟁’ 대신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미국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이런 모습을 계속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볼 것이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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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과 이스라엘, ‘그림자 전쟁’ 접고 ‘전면전’ 들어갈까[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도발로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 6개월 만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으로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혁명수비대(국가 최고지도자의 직속 군사조직)의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준장 등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자헤디는 이란 혁명수비대에서 해외작전과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정예부대 ‘쿠드스군’에서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담당하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2020년 1월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당시 쿠드스 사령관 이후 사살된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위 관계자다.당연히 이란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알라의 증거란 뜻‧이슬람 시아파 최고 지도자에 대한 호칭) 알리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에 대해 “매를 맞게 될 것”이라며 보복 의지를 밝혔다. 이미 이란군에는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내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이번 공격에 직접 대응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CNN은 빠르면 다음주(8~14일) 중 이란의 보복 공격이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그동안 이란과 이스라엘은 ‘앙숙’이지만 전면전을 치르지는 않았다. 대신 두 나라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을 치러왔다.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무장정파들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일으켜 왔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가담한 인사들을 암살해 왔다. 가자지구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이란 영토’나 다름없는 이란 영사관을 공격해 핵심 군 관계자를 살해했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 뿌리 깊은 갈등과 장기간 지속된 ‘그림자 전쟁’두 나라는 서로를 주적으로 여긴다.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이슬람 혁명’을 통해 신정공화정을 수립한 이란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중동 전역에 확대하려고 한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정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좋은 예다. 이런 이란에게 이슬람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하나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는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은 당연히 눈엣가시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무슬림인 팔레스타인인들이 조직적으로 추방됐다는 것도 이란에게는 좌시하기 힘든 부분이다. 수니파가 절대다수임에도 이란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유 중 하나다.이란이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최정예 부대 이름을 쿠드스군으로 지은 것도 ‘반이스라엘 의지’를 담은 조치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즉, 예루살렘 탈환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이란은 만만치 않은 존재다. 시리아와 레바논 같은 주변의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은 내전을 겪으며 나라가 엉망이 됐다. 군사력도 형편없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적수가 못된다. 반면 이란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지만,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대거 개발·생산해 온 군사 강국이다. 드론 역시 러시아가 대거 구입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만큼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 시리아 정부군, 이라크의 다양한 시아파 무장단체를 이용해 언제든지 크고 작은 국지전을 진행할 수 있다. 이른바 ‘저항의 축’ 혹은 ‘시아벨트 전략’이다. 이란은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의 시아파 정치인들을 통해 이 나라들의 외교안보 전략도 이스라엘에 부담 가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하지만 가만히 있을 이스라엘이 아니다. 이스라엘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란을 괴롭혀 왔다. 정보기관 ‘모사드’가 중심이 돼 압도적인 정보력과 은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이란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관련 유력 인사들을 암살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2020년 11월 유명 핵 과학자인 모센 파흐리자데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원격 조종 기관총으로 살해했다. 2010년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 테헤란대 교수(핵물리학), 2011년 테라니 모가담 이란 혁명수비대 장군(미사일 담당), 2012년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 박사(우라늄 농축 업무 담당) 등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네타냐후 정권은 ‘확전’, 이란은 ‘현상 유지’에 더 관심과연 두 나라는 조만간 크게 충돌할까. 누가 더 전면전에 적극적으로 나설까.이스라엘, 정확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대대적으로 반격해 오고, 이를 계기로 전쟁을 확대하는 것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네타냐후 총리는 ‘전시 내각’과 ‘극우세력의 지원’을 통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자지구 전쟁 장기화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석방이 지연되면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불만은 상당하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제2의 도시이며 경제중심지인 텔아비브에서 10만 여 명이 총리 퇴진을 외치며 시위가 펼쳐졌다. 수도 예루살렘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개인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고, 국민들의 지지를 크게 잃은 상태였다. 총리에서 물러나 면책 특권이 사라지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이런 상황에서 하마스, 헤즈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란과의 충돌 상황이 벌어진다면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자연스럽게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또 자신의 지지 세력인 극우 진영의 단합을 다시 한 번 도모하고, 중도 보수층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반면 이란은 ‘국가 체면상’ 이스라엘에 보복을 하는 건 검토하겠지만 전면전 혹은 대규모 충돌은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저항의 축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이란 경제를 더욱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의 불만도 더 키울 수 있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핵심 우방국인 미국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이란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란은 어떻게 보복할까그렇다면 이란이 아예 보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혁명수비대 최고위급 관계자), 장소(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국가 최고지도자의 발언(분명한 보복 의지 표현) 등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이란의 보복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런 점에서, 솔레이마니가 사망했을 때 이란이 보여줬던 모습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당시 이란은 솔레이마니가 사망한지 5일 뒤인 2020년 1월 8일 이라크에 있는 미군기지 2곳(아르빌 기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22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작전의 명칭은 ‘순교자 솔레이마니’였고, 미사일이 발사된 시간은 솔레이마니가 드론 공격을 당한 시간과 같은 오전 1시 20분이었다.말 그대로, 이웃 나라에 있는 미군기지를 초토화시키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미군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이란은 이라크 측에 공격 계획을 비공식적으로 전했고, 이라크가 미국에 이를 알려 미군들은 기지에서 모두 대피했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전면 충돌은 피하면서도 최소한의 체면은 세우는 상징적인 보복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하지만 의도와 방식이 어떻든 간에, 이란이 이스라엘과의 충돌할 경우 중동의 긴장은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또 충돌의 파장은 늘 그렇지만 정확한 예측이 힘들다. 더군다나 중동은 가자지구 전쟁으로 이미 6개월째 혼란스런 상황이다. 다시 한번, 전세계가 중동을 바라보며 긴장하고 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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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반대에도 ‘마이 웨이’ 외치는 이스라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이스라엘과 미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 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으로 촉발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사실상 마지막 남은 피란처인 라파(가자지구 남단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음)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강행하려는 것에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동에서의 전쟁 장기화는 11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인명 피해가 커지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 3만 명 이상(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이 사망했다. 현재 140만여 명의 피란민들이 거주 중인 라파에서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감행하면 인명 피해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아랍계 유권자들과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만을 키울 수 있다. 미국 민주당에서도 최근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네타냐후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는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라파에서도 대규모 지상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22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면담한 뒤에도 성명을 통해 “라파에 진입하지 않으면 남은 하마스 부대를 제거할 수 없다. 미국의 지지 속에 이를 수행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필요하다면 스스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스라엘이 우방국이며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분명한 반대 메시지에도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스라엘이 미국에 큰 소리 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마스 궤멸 없이는 네타냐후의 정치 생명도 끝현재 전쟁을 가장 원하는 사람은 네타냐후 총리란 평가가 많다. 2022년 12월 말 세 번째 임기(첫 번째 임기 1996년 6월~1999년 7월, 두 번째 임기 2009년 3월~2021년 6월)를 시작한 네타냐후 총리는 역대 최장수 이스라엘 총리다.그는 강경한 안보 전략을 바탕으로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다양한 부정부패 혐의로 이스라엘 수사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아왔다. 또 기소도 돼 있는 상태다.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총리에서 물러나면 감옥행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인 것.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가자지구 전쟁을 이유로 최대한 오랜 기간 집권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하고,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라파까지 지상군을 투입해 대규모 전쟁을 벌이려는 가장 큰 이유다”고 말했다.네타냐후 총리는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뒤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과반이 동의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을 마련하는 데도 공을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중동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법치가 보장되는 이스라엘을 후진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네타냐후 총리에 부정적인 진영에서도 일단은 ‘하마스 궤멸’이란 목표에 동의하는 상황이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연정을 이룬 초강경 보수 진영에서는 라파 진격을 포함한 광범위한 공격 확대를 지지한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역시 강경한 대응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네타냐후의 친형, 팔레스타인 테러범과 싸우다 사망네타냐후 총리의 특별한 가족사도 감안해야 한다. 네타냐후 총리의 친형 요나탄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테러범들과 싸우다 사망했기 때문이다. 1976년 7월 특수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요나탄은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에어프랑스 항공기를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에서 납치해 터진 ‘엔테베 작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테러범들과 교전 중 사망했다. 당시 유일한 이스라엘군 사망자가 요나탄이었다.이스라엘이 우간다에서 터진 납치 사건에 특수부대를 파견했던 건 총 260명의 항공기 탑승객 중 이스라엘 국적자와 유대인이 106명이나 됐기 때문이다.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네타냐후 총리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또 형의 죽음으로 테러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성향 역시 더욱 보수적으로 변했다. 많은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람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한 안보관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감의 배경에는 형의 죽음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 미국을 움직이는 이스라엘의 힘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의 반대에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가진 역량도 무시할 수 없다.무엇보다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막강한 유대인 파워가 있다. 금융계를 중심으로 정치, 법조, 행정, 언론, 학계 등에서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 유대인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양하다. 그러나 ‘친이스라엘’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점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다.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미국 내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들, 특히 복음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친이스라엘 성향은 매우 강하다.미국 유대인들의 단체인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선 선거나 중요한 정책 입안을 앞두고 꼭 찾아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단체로 여겨진다. AIPAC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다양한 로비를 펼치는 단체와 인사는 많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입장에선 ‘라파 지상전 정도는 감행해도 이스라엘을 확실히 지지해 줄 세력이 미국 정치권에 충분히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미국과 가장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았고, 동일한 가치(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이스라엘은 특별하다. 특히 미국이 40년 이상 ‘주적’으로 여겨온 이란을 견제하는데 이스라엘은 꼭 필요한 존재다. 사실상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군사 역량도 크게 떨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아랍 왕정 산유국들과 달리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수준의 정보 역량, 방공망, 군사력을 갖췄다.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다.실제로 미국은 중동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할 때 이스라엘의 다양한 도움을 받는다. 2020년 1월 미국이 무인기(드론)을 이용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살해할 때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란 견제는 물론이고 최근 중동에서 커지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도 미국으로서는 확실한 우방국이며 군사 강국인 이스라엘을 소홀히 여길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전쟁,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까 많은 아랍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미국의 버릇없는 자식(Spoiled Child of US)’이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장했고, 멋대로 팔레스타인(나아가, 다른 중동 나라들)을 공격하고 탄압한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식 편을 들 듯, 미국이 결국은 이스라엘 편을 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싸고 갈등에 빠진 미국과 이스라엘. 결국 그들은 금방 다시 화해할까. 아니면 이번 갈등은 오래갈까.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정치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번 가자지구 전쟁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작용할까.가자지구 전쟁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뿐 아니라 미국 정치에도 이미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이 더욱 가자지구 전쟁을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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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만명 숨졌는데…라마단에도 계속되는 ‘가자 비극’[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인사이트>, <중동 라이벌리즘>,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가자지구 전쟁’이 발발 6개월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의 결과는 참담하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에선 3만 명, 이스라엘에선 13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시티를 중심으로 한 가자지구 북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실상 초토화됐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가자지구 남부 라파 일대(이집트와의 국경 인근)에도 이스라엘의 공습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가자지구는 말 그대로 ‘가자지옥’이 됐다. 미국, 카타르, 이집트 등이 중재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도 성과가 없다. 최근에는 이슬람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시기로 여겨지며 동시에 명절이기도 한 ‘라마단’을 앞두고 휴전 협상에 진척이 없다는 점 때문에 실망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너그러운 라마단’라마단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알라(신)’로부터 ‘쿠란(이슬람 경전)’의 계시를 받은 신성한 달(성월·聖月)을 의미한다. 이 시기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철저히 금식(물 마시기 포함)한다. 하지만 밤에는 ‘이프타르’로 불리는 성대한 만찬을 즐긴다. 가족, 친척, 친구, 이웃, 직장 동료 등과 돌아가며 이프타르를 즐기는 게 무슬림의 정서다.올해 라마단은 한국 기준 1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이어진다. 라마단은 나라마다 시차와 달의 모양을 감안해 시작과 종료 시기가 정해진다. 라마단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화해와 평화다. 가족, 이웃 간의 갈등을 피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전쟁도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라마단 기간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인사말 중 하나가 ‘라마단 카림’이다. ‘너그러운 라마단’이란 뜻이다.이런 이유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눈으로 가자지구를 바라본다.● 평화롭지 않았던 팔레스타인의 라마단 가자지구 전쟁 때문에 이번 라마단은 유독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라마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하지만 올해 라마단을 앞두고 팔레스타인에게는 또하나의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3426채의 정착촌을 추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하마스에 비해 온건 성향인 파타 정파가 관할하고 있는 서안에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장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정착촌 확장 정책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주택 단지를 짓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도 정착촌 인근에 배치된다.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영토 늘리기 전략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불법 행위로 간주한다. 아랍권에서도 가장 심각한 팔레스타인 탄압 정책으로 여기다. 한국 외교부도 9일 이스라엘의 신규 정착촌 건설 계획에 우려를 표했다.하지만 극우 성향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정착촌 확장 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는 2022년 12월 취임식에서부터 정착촌 확장 의지를 밝혔다.사실 올해 뿐 아니라 최근 수년간 라마단은 팔레스타인에 유독 가혹했다. 2021년 라마단 중에는 팔레스타인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 방문을 제한했다. 당연히 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도 이어졌다.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2018년 라마단도 팔레스타인에는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란 뜻)’로 남아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라마단 시작 이틀 전인 5월14일(이스라엘 건국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요국들은 이스라엘(유대교)과 이슬람권에서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 대신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삼았고, 대사관 이전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취지에서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했던 것.아랍권에선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5월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된 사건을 나크바로 부른다. 지금도 이스라엘과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때 나크바라고 표현한다.● 가자지구 전쟁에 영향 받을 라마단 민심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하지만 이번 라마단 중 중동에서는 적잖은 긴장감이 감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은 여전히 홍해 일대에서 미국 등 서방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국 등의 보복도 진행되고 있다.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이 심해지고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면 아랍권의 민심은 더욱 격화될 수 있다.라마단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기간이다. 당연히 이프타르 중 진행될 ‘라마단 대화’에서 가자지구 전쟁은 비중 있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해의 라마단 때도 중동 나라들은 ‘라마단 민심’에 긴장한다. 한국 정치권에서 추석과 설 명절 뒤 민심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그런 점에서, 아랍권은 물론이고 미국 등 서방 나아가 이스라엘도 라마단 민심을 어느 정도는 신경 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만약 라마단 기간 중 가자지구 공격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종교 시설 등이 파괴된다면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아랍권, 나아가 이슬람권의 분노 게이지는 급상승할 것이다. 당연히 가자지구 전쟁 휴전을 위한 협상이나 중재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이번 라마단 기간 중 국제사회가 가자지구를 더욱 걱정스럽게 바라볼 이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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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자 전쟁’, ‘사우디와 이란’…새해에도 술렁이는 중동[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가자지구 전쟁’, ‘사우디아라비아의 2030 엑스포 유치’, ‘앙숙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관계 복원’, ‘스트롱맨들의 대통령 선거 승리(튀르키예, 이집트)’, ‘자국민 학살 독재자(시리아)의 국제사회 복귀’…지난해 중동에서는 ‘세계의 화약고’, ‘국제 이슈의 중심지’란 말에 어울리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중동 이슈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또 앞으로도 중동에서는 많은 갈등과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올해 관심 가질 필요가 있는 중동 이슈들을 정리해봤습니다.1. 가자지구 전쟁은 언제 끝나나? 가자지구는 어떻게 될까?말 그대로 끝이 안 보입니다. ‘하마스 궤멸’이란 목표 아래 이스라엘은 대규모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투입했고, 지속적으로 공습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보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7일(현지 시간) 하마스의 도발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으로 2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습니다. 이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적지 않습니다.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서는 120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가 이스라엘의 20배 가까이 되는 상황입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의 보복이 과도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이번 기회에 가자지구를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사실상의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옵니다.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하마스 구성원들이 일반 주민과 섞여 있고,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무기와 지휘 시설 등을 민간인 거주 지역에 배치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가 팔레스타인 영토란 점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권이 어떻게 행사될 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안 하는 혹은 못하는 상황입니다. 요르단강 서안을 기반으로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정파인 ‘파타(하마스에 비해 온건 성향이며 이스라엘과 협력함)’가 가자지구(하마스가 관할했던 지역)도 관리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파타가 그동안 보여 온 무능과 부정부패 등을 감안할 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 의견이 훨씬 강한 상황입니다.가자지구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궤멸될 때까지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끝이 언제일지 또 하마스 궤멸이 가능할지 아직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2.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은 ‘중동 전쟁’으로 확대될까?최근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작은 나라 레바논이 심상치 않습니다. 레바논은 하마스 못지않게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한 무정장파 헤즈볼라가 정치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설립될 때부터 이란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헤즈볼라는 이란이 중심국인 시아파이며, 당연히 친이란 성향입니다. 하마스와도 다양한 협력을 진행해 왔습니다. 헤즈볼라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했을 때부터 이스라엘을 비판해 왔고 국경 지대에서 이스라엘과 충돌해 왔습니다. 다만 전면전으로 확대될만한 조짐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스라엘이 하마스 고위관계자를 가자지구 밖에서 제거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연히 하마스는 물론이고 헤즈볼라와 이란도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언급했습니다.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보유한 무기의 양과 수준 모두 월등합니다. 2014~2017년에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정예부대인 ‘쿠드스군’과 함께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에도 대거 투입됐습니다. 말 그대로 실전 경험도 많고, 역량도 상당한 거죠. 2006년에는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했고,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궤멸’을 외치며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지만 여전히 헤즈볼라는 건재합니다. 또 이스라엘은 군인을 중심으로 160여 명(레바논에선 1000명 이상 사망)이 사망했습니다.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공격전까지는 무장정파와의 충돌로 가장 많은 이스라엘인 사망한 때였습니다.만약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펼치고, 나아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도 이스라엘과 현지 미군기지 등을 공격한다면 중동은 정말 심각한 상황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이스라엘의 우방이며 이란에 적대적인 미국도 개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헤즈볼라에게도, 이란에게도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은 심각한 도박입니다. 미국 역시 중동이 시끄러운 건 큰 부담입니다. 무엇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동 정세가 혼란스러울수록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은 부담입니다. 그러나 부정부패 혐의로 큰 어려움을 겪어 왔고, 이번 하마스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 못해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정국이 안정될 경우 국민들의 비판과 정권 교체 압박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만큼 전시 상황을 최대한 오래 끌고 가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3. 미국 대통령 선거 후 중동은 어떻게 바뀔까?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가장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여부입니다. 말 그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가 되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에 다시 당선될 수 있느냐는 것이죠.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고, 바이든 대통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10개월이나 남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꽤 힘을 얻고 있습니다.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중동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북한 핵 문제, 나아가 한반도 관련 이슈에서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이란과의 ‘핵 합의’ 파기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스라엘 수도인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성지이기도한 점을 감안해 기존에는 경제중심지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설치했었음)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살(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드론을 이용했음)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간의 외교관계 정상화(아브라함 협정) 등을 추진했습니다. 이 중 ‘아브라함 협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동 정세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 기존 미국 대통령들은 추진하지 않았던 과격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다면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옵니다.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어떤 중동 정책이 추진될까요? 바이든 대통령 집권 초에는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했던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려 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또 트럼프 행정부 시절보다 안정적인 중동 정책이 추진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딱히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4. 사우디, 어디까지 얼마나 달라질까?지난해 중동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가자지구 전쟁만 아니었으면 단연 사우디였을 갑니다. 최근 중동 뉴스의 중심지는 확실히 사우디란 생각이 듭니다.‘아랍의 맹주’, ‘이슬람의 성지 수호국(3대 성지인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메카와 메디나가 사우디에 있음)’인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의 지휘아래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 국가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서울의 면적의 44배에 이르는 최첨단 도시를 만드는 ‘네옴 프로젝트’는 그중 핵심입니다. 삼성, 현대, LG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 글로벌 기업들도 네옴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옴 프로젝트와 관련해 변화 내지 새로운 발표가 있을 때마다 관심이 집중 됩니다. ‘2034 월드컵’도 사실상 사우디가 유치 확정 상태입니다. 당초 강력한 경쟁자였던 호주가 경쟁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2034 월드컵 유치전에는 현재 사우디만 뛰고 있는 상황입니다.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2030년 엑스포, 2034년에는 아시안게임(하계)와 월드컵… 사우디는 말 그대로 이제 국제 이벤트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사우디는 글로벌 기업 유치 전략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12월 초 자국으로 중동지역본부를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 소득세를 30년 간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중동지역본부나 거점 연구개발(R&D)센터를 사우디에 만드는 기업에 대해선 정부나 공공기관의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더 많은 혜택을 줄 예정입니다.무함마드 왕세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사우디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또 사우디를 다양한 국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열린 나라’로 만들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이전의 사우디와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죠. 무함마드 왕세자의 ‘새로운 사우디 만들기’ 작업은 올해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우디는 계속 중동 이슈의 중심지로 많은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5. 총선 앞둔 이란에선 어떤 움직임이 나타날까? 가자지구 전쟁,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충돌, 러시아에 대한 무기 공급 등이 좋은 예입니다.이란은 중동에서 사우디, 튀르키예와 함께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나라입니다. 특히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같이 정세가 불안하고 시아파 비중이 큰 나라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종교지도자, 언론 등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며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이른바 ‘시아벨트 전략’이죠.이란은 중동에서 드물게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치루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3월1일 총선이 치러집니다. 물론 이란의 선거는 시아파 최고지도자가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을 모니터링하고, 정치적 발언 등도 제한되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으로 볼 때 ‘자유로운 선거’라고 하기는 어려습니다. 지난해 11월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야당 후보 중 28% 이상이 출마 자격을 잃었고, 많은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이번 총선이 안정적으로 치러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이란 국민들의 정서와 현지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이란 선거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카이로특파원으로 활동하던 2020년에도 이란 총선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신문사들은 테헤란 특파원 외에도 기자를 현지에 파견하며 적극적으로 취재했었습니다.이란에서는 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20대 여성 마사 아미니가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수개월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이란 안팎에선 히잡 착용 의무화로 인한 여성 억압뿐 아니라 경제난과 폐쇄적인 정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지속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또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시위가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이번 이란 총선을 앞두고는 어떤 움직임이 이란에서 나타날지 궁금해집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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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년 집권, 군부 출신 대통령…그 나라에 드리운 먹구름[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압둘팟타흐 시시(69). 이집트 대통령이다. 10~12일(현지 시간) 치러진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서 89.6%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2014년부터 집권 중이며, 이번 선거로 3선에 성공했다. 2030년까지 집권 가능하다. 시시 대통령은 이집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군인 출신이다. 그는 2010년 12월 이웃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으로 이집트에서 30년(1981년 10월~2011년 2월) 간 철권통치를 펼쳤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1928년 5월~2020년 2월)이 2011년 2월 권좌에서 쫓겨난 뒤 권력을 장악했다.정확히는, 당시 이집트에도 잠시나마 ‘카이로의 봄’이 있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뒤 민선 지도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1951년 8월~2019년 6월)이 2012년 6월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종했던 무르시 전 대통령은 보수 이슬람 사상이 담긴 정책을 강조하며 이집트의 뿌리 깊은 세속주의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당연히 국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부정부패와 무능한 국정운영도 국민들의 불만을 키웠다.결국 무르시 전 대통령은 1년 1개월 뒤인 2013년 7월 시시 대통령이 중심이 된 군부에 의해 축출됐다. 사실상 시시 대통령이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이어받은 인물인 것. 시시 대통령을 ‘21세기의 파라오’, ‘이집트의 스트롱맨’으로 부르는 이유다.● 더 이상 ‘아랍의 맹주’가 아닌 이집트국내‧외 언론에서 이번 이집트 대선은 별다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된 5월 튀르키예 대선과 지난해 1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년반 만에 다시 총리로 돌아왔을 때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중동,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이집트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이집트를 이끌던 1950~1960년대 이집트는 아랍의 중심이었다. ‘아랍판 유엔’으로도 불리는 아랍연맹(AL·1945년 설립) 본부도 카이로에 자리 잡고 있다.하지만 이제 아랍의 중심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왕정 산유국들의 정치경제 협의체인 걸프협력회의(GCC‧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국가들이다. 중동의 패권 경쟁 국가에서도 사우디, 이란, 튀르키예를 주로 언급한다. 이집트를 패권 국가로 분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병’에 걸려 있는 이집트 경제3선에 성공했지만 시시 대통령과 이집트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이집트의 경제 사정은 최악을 향해 가고 있다.만성적인 경제난과 이로 인한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심각하다. 이집트파운드화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물가 상승률도 30~40%에 이른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거나, 외국인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이집트인들은 “월급을 달러로 달라”고 강조한다.10월과 지난달에는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모두 이집트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현재 이집트의 신용등급은 ‘투자 부적격’ 상태. 세계은행에 따르면 시시 대통령이 부임한 직후인 2015년 27.8%였던 빈곤율은 2020년 31.9%로 올랐다. 총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 규모다. 하지만 IMF가 요구하는 긴축 재정과 변동환율제 도입 같은 경제구조 개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IMF는 이집트를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다.다양한 기간 사업을 군인 출신들이 독식하는 ‘군부 중심 경제구조’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이집트에선 오래전부터 건설, 물류, 호텔 등 다양한 부문에서 군인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한 기업들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많은 경우 실력이 아닌 특혜 속에서 성장해 왔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도 이집트 경제에 악영향을 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밀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이집트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고대 유적지와 홍해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앞세워 성장해온 관광 산업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카이로 동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지역에 개발 중인 ‘신행정수도(NAC‧New Administrative Capital) 건설 프로젝트’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2015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서울보다 큰 도시를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 정부부처, 공공기관, 이집트 주재 외교공관 등을 모두 옮기는 게 목표다. 현지에서는 시시 대통령의 핵심 국책 사업으로 여겨진다. 일부는 ‘수에즈 운하’ 개발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프로젝트는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당초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을 희망했다. ● 국경 맞대고 있는 이웃국가들은 전쟁 중안보 상황도 안 좋다.가자지구 전쟁, 리비아 내전, 수단 내전 등으로 불안 요소가 산적해 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북동쪽), 리비아(서쪽), 수단(남쪽)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특히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생지옥’이 된 가자지구는 이집트에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대규모 공습이 이어지고 있고, 이집트 국경과 인접한 가자지구 남쪽에는 약 200만 명(이중 피란민은 약 100만 명으로 추정)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머물고 있다.그동안 시시 대통령은 ‘가자지구 난민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선 이미 2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또 식량, 물, 연료 부족도 심각하다. 휴전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이집트로선 가자지구 난민 수용은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고, 동시에 난민 수용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 현재 방침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철권통치와 세속주의 강조하며 영향력 키워이런 위기 상황에서 시시 대통령이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일단은 강압적인 리더십이다. 시시 대통령의 철권통치와 군부의 견제로 이집트에서 야당 정치인의 활동은 매우 제한돼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이번 대선에서 야당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이 원활하지 않았고, 국민들도 자유롭게 야당을 지지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이집트에서는 시위도 사실상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때 아랍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꼽혔던 카이로 도심의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는 평소에도 경찰(사복 경찰 포함)이 많이 배치돼 있다. 2019년 9월20~21일 중 전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동시에 발생했을 땐 약 3주간 타흐리르 광장을 전면 봉쇄했다. 또 이집트 정부에 비판적인 BBC와 미들이스트아이(MEE) 같은 언론의 인터넷 사이트도 차단했다. 인터넷과 통신 기능도 떨어뜨려 소셜미디어 이용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뿌리 깊은 세속주의를 흔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시시 대통령의 장점으로 꼽힌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여성들의 옷차림, 교육, 취업 등을 제한하려고 했었다. 반면 시시 대통령은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이집트 전체 인구(약 1억1000만 명)의 약 10~15%를 차지하는 콥트 기독교(중동에 기반을 둔 고대 기독교 종파) 신자들에 대해서도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행정수도에는 대규모 콥트 기독교 성당도 자리 잡고 있고, 시시 대통령은 이곳을 방문했다. 이슬람이 아닌 종교에 부정적이었던 무르시 전 대통령과는 역시 다른 모습이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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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 살만도 꽂혔다, 사우디판 디즈니월드 ‘키디야’[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키디야(Qiddiya)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찾고 싶은 장소가 될 것이다.”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현재 사우디가 수도 리야드 인근에 개발 중인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 키디야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러냈다. 한국 부산, 이탈리아 로마와 경쟁했던 ‘2030 엑스포’를 유치한지 9일 만이었다.7일(현지 시간) 현지 영문매체인 아랍뉴스와 국영 SPA 통신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키디야는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문화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도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키디야가) 사우디의 경제 성장, 국제 평가, 전략적 지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막 위 서울 절반 크기 엔터테인먼트 도시키디야는 리야드 남서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사막지대에 개발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도시다. 규모는 334km²로 서울시(약 605km²)의 절반을 넘는다.미국 테마파크인 ‘식스플래그’와 대형 워터파크를 중심으로 골프장, 자동차 경주장, 올림픽박물관, 호텔, 공연 시설 등이 키디야에 들어설 예정이다. 2018년에 개발 계획이 발표됐고, 건설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의 중·장기 경제사회 개발 계획인 ‘비전 2030’에도 키디야 개발은 주요 사업으로 포함돼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키디야 개발을 담당하는 ‘키디야 투자회사(Qiddiya Investment Company·QIC)’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한국에서는 ‘네옴 프로젝트’에 가려져 키디야는 유명세를 덜 탔다. 사업 규모로만 보면 사실 상대가 안 된다. 네옴은 사우디 북서부와 홍해 일대에 서울의 44배 크기의 대형 국제도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9월까지만 해도 이슬람 성지순례를 제외한 관광은 사실상 허용하지 않던 사우디에 생기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도시란 점에서 키디야는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한국 기업 중에는 삼성이 가장 적극적이다. 삼성물산은 키디야에 들어설 일부 시설에 대한 건설을 담당하고,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에스원 등도 각각 전자제품, 정보기술(IT) 플랫폼, 보안시스템 등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기도(Pray)가 아닌 즐기는(Play) 도시키디야는 말 그대로 ‘즐기는 도시’를 지향한다. 키디야 인터넷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나오는 브랜드 슬로건은 ‘Play Life(인생을 즐겨라)’다.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로 유명하고, 엄격한 율법과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사우디와 잘 안 어울린다.이런 점을 의식해서일까. 올해 2월 ‘제2회 사우디 미디어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리야드를 찾았을 때 만난 사우디 관광청과 미디어부 관계자들도 키디야가 즐기는 장소임을 강조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영어로 키디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도(Pray)하는 곳이 아니라 즐기는(Play) 곳이다”라고 웃으며 강조했다.QIC에 따르면 식스플래그와 워터파크 공사는 현재 각각 59%와 61% 수준으로 진행됐다. 장기적으로 사우디는 키디야에 총 6만여 개의 건물을 세우고, 60만 명이 거주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문화콘텐츠 인프라 키워 젊은층 민심 잡기사우디가 키디야 개발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자국 내 문화콘텐츠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사우디에는 그동안 대중문화와 콘텐츠 산업 관련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인구 3220만 명(자국민 1880만 명‧2022년 사우디 통계청의 인구조사 기준)에 이르는 세계적인 자원 부국에 디즈니랜드와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가 전혀 없었던 것. 사우디 최초의 테마파크로 리야드에 자리 잡고 있는 ‘블러바드월드’도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쉽게 말해, 이전까지는 공연과 테마파크 같은 ‘기본적인 대중문화 활동’도 사우디 안에선 즐길 수 없었다. 이를 즐기려면 다른 나라로 가야 했다. 사우디와 가깝고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사우디 관광객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특히 사우디 젊은 세대에게 ‘부족한 문화콘텐츠 인프라’는 아쉬운 점, 나아가 정부에 대한 불만이기도 했다. 이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사우디가 대중문화 개방 속도를 높이고, 콘텐츠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올해 38세인 무함마드 왕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과 대중문화를 즐겼고, 개인적으로도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많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한국 콘텐츠 기업에도 파격적으로 투자했다. 올해 초 PIF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약 6000억 원을 투자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게임 기업인 넥슨과 엔씨소프트에 각각 약 2조3000억 원, 약 1조1000억 원을 투자했다.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며 젊은 세대의 지지를 많이 받아왔고,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려면 앞으로도 이들의 지지가 중요하다”며 “젊은 세대의 민심을 중요하게 반영한다는 차원에서도 키디야 프로젝트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 육성에 계속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석유 산업 육성과 해외 투자 유치에도 필요무함마드 왕세자가 강조하는 사우디의 비석유 산업 육성과도 키디야 개발은 관련 있다.비석유 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관광 산업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사우디는 키디야 개발을 통해 32만5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또 키디야에 연간 4800만여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려고 한다. 석유가 아닌 산업에서 대규모 일자리와 성장동력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는 것이다.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에도 문화콘텐츠 산업은 중요하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사회‧문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우수한 인력들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데 있어 한 나라의 콘텐츠 산업 역량은 계속 중요해지고 있다”며 “사우디 같이 오랜 기간 개방적이지 않았던 나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소프트파워 관련 인프라와 산업을 육성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술 없는 관광대국’ 가능할까하지만 키디야 개발, 나아가 사우디 정부가 공 들이고 있는 ‘관광대국으로의 도약’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국내 수요는 어느 정도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과연 사우디가 희망하는 것처럼 대규모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까지 가능하겠냐는 것.사우디는 이슬람 종주국답게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술과 돼지고기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사우디 영공에서는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도 원칙적으로 주류 서비스를 해서는 안 될 정도다.카타르, UAE, 바레인 같은 주변 나라들이 외국인에게는 술과 돼지고기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격함이다. 이집트, 모로코, 튀르키예 같이 고대 유적지와 리조트 같은 관광 인프라를 이미 갖추고 있고 술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나라들과는 처음부터 비교가 어렵다. 사우디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한 기업인은 “정부가 육성에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개발 계획으로 사우디의 관광 산업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지금처럼 술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질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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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마스와 전쟁 중에 ‘네타냐후 총리 퇴진’ 외친 이스라엘 시민들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본다. 하마스의 로켓이 우리 집(예루살렘 인근)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도 날아왔다. 하마스의 도발에 강력히 대응해야겠지만, 안보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사법부 권한 축소 같은 사안에 집중한 정부 책임도 크다.”(이스라엘 전직 공무원)10월 7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직후 현지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들은 얘기다. 사태 발발 두 달을 앞둔 현재 가자지구에는 대규모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돼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장비와 인력 면에서 이스라엘군의 압도적 우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말 그대로 아직은 갈 길이 먼 상황.이처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여론은 심상치 않다. 민간인을 중심으로 1200여 명이 사망할 만큼 무자비하게 선제공격을 한 하마스를 소탕하기 위한 전쟁은 당연히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현재 이스라엘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끓어오르고 있다.전후 선거 실시 여론 고조로이터 등에 따르면 11월 4일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과 경제 중심지 텔아비브에서는 이스라엘 국민 수천 명이 ‘네타냐후 총리 퇴진’을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네타냐후 정부의 안보 무능, 인질 석방 지연, 총리 개인 비리 문제 등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현지 매체인 채널13 방송이 11월 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6%가 ‘네타냐후 총리는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쟁 뒤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64%나 됐다. 반면 ‘전쟁 뒤에도 현 정권이 집권해야 한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현 내각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무엇보다 네타냐후 정부는 ‘안보 실패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은 현지에서 ‘이스라엘판 9·11테러’로 표현될 정도로 큰 충격을 안겼다. 이스라엘 역사상 무장정파와 무력 충돌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숨진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특히 사태 초기 세계적인 역량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방공망과 정보망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하마스 구성원이 대거 이스라엘 영토로 들어와 대규모 시가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웠다. 외교 소식통은 “지금 당장은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하마스 궤멸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앞서겠지만,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안보 시스템이 완전히 뚫린 데 대한 ‘정부 책임론’이 강하게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스라엘은 2006년 7~8월 레바논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하마스보다 전투력이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가 많음)와 34일간 전쟁을 벌였다. 이때 이스라엘에선 군인을 중심으로 160명만 사망했다(레바논에선 민간인을 중심으로 1200~1300여 명 사망).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내에서는 “일개 무장정파와 무력 충돌로 너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비판 여론이 적잖았다.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 국민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네타냐후 ‘정치생명 연장’을 중심에 둔 정책‘사법부 권한 축소’ ‘극우 인사 중용’ 정책도 네타냐후 총리와 현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를 키우는 중요 원인으로 꼽힌다. 네타냐후 총리는 “크네세트(이스라엘의 단원제 의회)에서 과반이 동의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사법부 조정안을 적극 추진해왔다. 네타냐후 총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는 과거 사업가들로부터 고급 양복과 가족 해외여행 비용 등을 받은 혐의로 이스라엘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또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최악의 경우 구속될 수도 있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강경 보수 내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대법원의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강경 보수 내각 구성 과정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을 임명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를 온건 보수파로 보이게 할 정도로 강경한 성향을 지녔다.벤그비르 장관은 1월 3일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사원)가 위치한 동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ain)’을 방문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머리에 키파(유대인 남성이 쓰는 납작한 모자)까지 쓴 채 돌아다녔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이 그동안 아랍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지역을 거의 방문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당연히 벤그리브 장관은 아랍권에서 ‘국민 밉상’ ‘점령군 이미지’로 각인됐다.스모트리히 장관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는 식의 망언을 자주 해왔다. 이스라엘 영토 넓히기이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영토 줄이기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확장 정책’의 주무 장관이기도 하다. 한 아랍 국가 외교관은 “네타냐후 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차지한 극우 인사와 이들의 언행도 하마스를 자극한 부분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네타냐후 정부는 ‘하마스 궤멸’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가 사라진 가자지구, 즉 ‘포스트 하마스 가자지구’에 대한 계획은 뚜렷하지 않다. 또 가자지구 전쟁을 어느 선에서 종료할지에 대한 계획도 불분명하다.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가자지구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하마스와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이스라엘이 상당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네타냐후 총리와 현 정부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세형 채널A 정책기획팀장·전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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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까지 간다’…한국만큼 엑스포에 진심인 사우디[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결전이 임박했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가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결정된다. 2030 엑스포 개최지 경쟁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온 나라는 단연 사우디다. 오랜 기간 ‘보수 이슬람 종주국’으로 통했던 무겁고 딱딱한 이미지의 나라가 엑스포 같은 개방적인 국제 행사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롭게 여겨지는 것. 지금까지 ‘사우디=국제적인 행사’는 성립되기 어려운 공식이었다.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진심이란 건 여러 부분에서 이미 드러났다. 6월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 때는 왕실 인사인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교부 장관(왕자)과 리마 빈트 반다르 알 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공주)를 중심으로 칼리드 알 팔레 투자부 장관, 이브라힘 알 술탄 리야드 시장 등 ‘실세 인사’들이 대거 발표자로 나섰다. 당시 한 중동 전문가는 “사우디 왕실에서 가장 글로벌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2030 엑스포 유치에 앞장선 모양새”라고 평가했다.최근에도 사우디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대규모 개발 차관과 원조 기금을 제시하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물론 한국에선 부산이 개최지로 선정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강하다. 한국 정부와 재계도 상대적으로 늦게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2030 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하지만 ‘석유의 나라’, ‘이슬람 성지’란 폐쇄적인 이미지 덕분에(?) 2030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사우디를 향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 왕세자의 ‘관심 프로젝트’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공을 들여온 배경에는 차기 사우디 국왕이며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있다.무함마드 왕세자는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을 통해 현재 석유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 경제의 체질 개선을 2030년까지 이루겠다고 강조해 왔다.‘사막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 설립, 네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의 대대적인 개발, 일반 관광객을 위한 관광 비자 도입,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등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 실세’가 된 뒤 시도한 정책들이다. 하나 같이 사우디의 비석유 산업 육성과 관련 있는 조치들이기도하다. 2030 엑스포 유치도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2030 엑스포는 시기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추진해 온 개혁·개방의 결과물을 대내·외로 과시하는, 즉 ‘비전 2030의 성공’을 보여주는 이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30 엑스포가 사우디에서 열리게 되면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왕으로 이 행사에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의미 있는 대목. 무함마드 왕세자의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은 현재 88세다. ● 기업·투자 유치에 필요한 매력 자산2030 엑스포 개최만으로 사우디가 대단한 경제 효과를 누리기는 어렵다.하지만 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인식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엑스포 개최는 이런 국가 브랜드를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과거처럼 ‘석유를 판매한 돈으로 필요할 때 외국 기업에서 기술, 시설, 인력을 사오겠다(혹은 프로젝트를 발주하겠다)’는 전략을 바꾸고 있는 것. 여기에는 기업과 투자 유치를 통해 해외 우수 인력의 자국 내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자국민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그러나 술은 물론이고 대중문화와 국제적인 이벤트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답답한 분위기’의 사우디에서 장기간 기업 활동을 한다는 건 아직 잘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수한 해외 인력을 유치하는 데 지금의 사우디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다.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사우디가 경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기업과 투자 유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매력 자산을 늘려야 한다”며 “엑스포를 포함한 국제적인 행사 개최는 국가 브랜드와 문화 수준을 높이고, 나아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사우디는 2030 엑스포 외에도 국제적인 이벤트를 대거 유치했다.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을 이미 유치했다. 2034년에는 사우디에서 월드컵도 열릴 예정이다. ● 2019년 시동 건 관광산업 육성에 호재네옴시티와 서부 개발 프로젝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 산업 육성에도 2030 엑스포 유치는 의미 있는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전세계 무슬림을 대상으로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방문을 허용하는 ‘성지순례용 관광 비자’만 있었다.사우디의 관광 개방은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며 힘을 잃었다. 그러나 사우디는 과거 무슬림만 방문 가능했던 메디나를 비무슬림도 갈 수 있게 제도를 완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메카는 여전히 무슬림만 방문 가능). 또 고대 유적지가 있는 알울라 지역과 휴양지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홍해 일대에 대한 개발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해왔다.사우디가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대규모 콘서트를 각각 2019년과 올해 허용했고, 지난해 11월 리야드에 서양식 테마파크인 ‘블러바드 월드’를 개발한 배경에도 관광산업 육성 의지가 담겨 있다.사우디 관광청 관계자는 “사우디 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계속 추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30 엑스포와 2034년 월드컵은 사우디 관광의 매력을 대대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권문제 부각 등 우려와 과제도 많아일각에선 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국제 인권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온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낮은 인권의식, 외국인 노동자 차별, 정책 불안정성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중동 국가 최초로 2022년에 월드컵을 유치했던 카타르, 다양한 메가 개발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아랍에미리트(UAE)도 그동안 인권, 외국인 차별 등의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앞으로 2030 엑스포를 포함해 사우디가 다양한 국제 행사를 개최한다고 해도 이전처럼 ‘외국 기술과 인력’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못 벗어난다면 소프트웨어 역량 키우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단순 개최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질적인 역량 쌓기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보여주기 이벤트’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다.이 소장은 “사우디가 개혁과 개방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고자 한다면 자국 인력들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며 “국제 행사 개최의 경우 기획과 운영 등의 과정에서 인력과 제도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도록 체계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turtle@donga.com}

    •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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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구 안 보이는 ‘가자 전쟁’, 왜 카타르를 주목하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가자지구 전쟁’ 발발(10월7일) 한 달을 앞둔 11월4일(현지 시간) 오후 5시. 카타르 수도 도하의 복합 문화·공연 단지인 ‘카타라’ 내 극장에선 팔레스타인 영화제가 한창이었다. 이날 행사에선 이스라엘군을 공격하다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청소년을 도와 준 팔레스타인 여성 교사가 8년(약 3000일) 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이야기를 다룬 영화 ‘3000일의 밤’이 상영됐다. 행사를 주관한 카타르의 영화진흥기관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 관계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며 제작진과 배우들 모두 가자지구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는 것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1시 도하 도심의 전통시장인 수크 와키프의 베이커리 카페에는 작은 팔레스타인 깃발이 걸려 있었다. 카페 종업원은 어깨에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상징하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체크무늬가 들어간 ‘케피예’(keffiyeh · 중동 남성들의 전통 두건)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 체크무늬가 들어간 흰색 케피예는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남성이 많이 두른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분쟁이 시작된 뒤부터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나타내는 아이템으로 여겨진다.가게 점원은 “나는 모로코 출신이지만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요즘 워낙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팔레스타인 스타일 케피예를 둘렀다”며 “팔레스타인 지역의 전통 디저트로 유명한 쿠나파(Kunafah·치즈가 들어 있는 단맛의 페스추리 형태의 구운 빵)도 평소보다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도하 시내 건물과 전광판에서도 팔레스타인 깃발과 지지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인질 석방과 휴전 협상의 무대같은 아랍 국가로서 심정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카타르에서 가자지구 전쟁의 긴박함과 불안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카타르의 화려한 마천루와 깨끗한 거리에서 가자 지구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하지만 카타르에선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된 움직임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 각각 이들의 후원 세력으로 꼽히는 미국과 이란과는 또다른 이유로 국제사회는 카타르를 주목하고 있다. 바로 중재 외교다.카타르에선 이번 가자지구 전쟁의 인질 석방과 휴전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9일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 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교부 장관의 중재 아래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다비드 바르니아 이스라엘 모사드(정보기관) 국장이 만나 추가 인질 석방과 휴전 가능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달 12일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카타르를 방문해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국왕을 만나 이번 사태 해결을 논의했다. 작지만 성과도 있었다. 현재 하마스는 242명의 인질을 억류 중인데, 지난달 20일과 23일 각각 2명(총 4명)의 인질을 풀어줬다. 이들 모두 카타르의 중재를 통해 풀려났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관련 성명에 ‘카타르에 대한 감사’ 메시지도 담았다. ● 탈레반, 이란 관련 중재 경험도 풍부가자지구에서 멀리 떨여져 있는 카타르는 어떻게 이번 사태의 중재자가 된 것일까. 일반인들 사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카타르는 그동안 중동의 외교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일단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카타르는 이해 당사자인 하마스, 이스라엘, 미국, 이란과 모두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엇보다 도하에는 하마스의 정치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다. 2012년 문을 연 하마스 정치사무소는 하마스와의 대외창구 역할을 해 왔다. 쉽게 말해, 하마스와 가장 공식적이면서도 체계적인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 카타르인 것.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가 카타르에 자주 머물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마스 정치사무소는 하마스와의 소통 채널이 필요한 미국과 서방, 중동의 외교 중심지가 되고 싶은 카타르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문을 열게 됐다.카타르에는 아프가니스탄을 통치 중인 무장정파 탈레반의 정치사무소도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탈레반 정치사무소 역시 탈레반과의 협상 창구 구축을 위해 설립됐다. 하마스 정치사무소처럼 미국과 서방도 탈레반 정치사무소가 도하에 문을 여는 것에 동의했다. 실제로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위한 탈레반과의 협상도 도하에서 주로 진행됐다. 특히 2019년 2월25일부터 3월12일까지 2주 넘게 진행된 이 도하에서 진행됐다. 2021년 8월 미국과 서방 인력들이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는 카타르 정부의 도움을 받았고, 대거 도하를 경유했다. 카타르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카타르는 하마스와 탈레반 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카타르에 있는 미 공군의 알 우데이드 기지는 미군의 중동 내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미국 본토 밖의 공군기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서 천연가스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카타르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스라엘과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과 달리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진 않았다. 하지만 두 나라 관계는 원만한 편이다. 카타르는 1996년 이스라엘과 무역대표부를 개설하기도 했다. 비록 2008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가자지구 공습 뒤 무역대표부가 폐쇄됐지만 특별히 두 나라 관계가 악화되진 않았다. 2007년 1월에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가 카타르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과 관련된 중재 경험도 있다. 올해 8월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60억 달러를 해제하던 때였다. 당초 해당 자금은 카타르의 금융기관을 거쳐 이란으로 전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자금은 카타르 금융기관에 계속 동결돼 있다.● 중재 외교와 다양한 진영과의 우호 관계 형성에 ‘올인’카타르가 다양한 진영과의 우호 관계 구축, 나아가 중재 외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지정학적 위치가 크게 작용했다.카타르는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며 이슬람 종파, 정치체제,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사우디아라바이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나라 크기는 한국의 경기도 정도다. 자국민도 2021년 기준 33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카타르 총 거주자 수는 약 260만 명).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에서 각각 세계 3위와 14위(영국 에너지기업 BP의 2020년 통계)에 오를 만큼 자원 강국이지만 안보적으로는 언제든지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런 안보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카타르는 사실상 모든 진영과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진영 간의 중재를 적극 진행해 왔다. 사우디가 중심이 돼 구성한 아랍, 수니파, 왕정 산유국 정치경제 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회원국은 사우디, 카타르, UAE,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국가들이 시아파 종주국이며 왕정을 무너뜨리고 신정 공화정을 세운 이란과 거리를 둬 온 것과 달리 카타르는 이란과도 적극적으로 우호 관계를 구축해 왔다. 여기에는 세계 최대 해상 천연가스 유전(카타르령 노스돔, 이란령 사우스파)을 이란과 공유한다는 이유도 있다.아랍 왕정에 부정적이며 근본주의 이슬람 사상을 전파해온 정치단체 ‘무슬림 형제단’의 활동을 사우디, UAE, 바레인 등은 금지해 왔다. 반면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 구성원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는 등 중립적 자세를 취해왔다. 사우디가 잠재적 패권 경쟁자로 생각해 거리를 둬온 오스만제국의 후예 튀르키예와도 카타르는 가깝다. 이처럼 진영을 넘나드는 외교안보 전략으로 한때 카타르는 사우디, UAE, 바레인 등으로부터 외교와 무역 관계가 끊기고, 영해와 영공도 폐쇄되는 ‘카타르 단교 사태’를 겪기도 했다. 당시 단교 주도국들은 카타르가 이란, 튀르키예, 무슬림 형제단 등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단교 이유로 지적했다. 단교 사태는 2017년 6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이어졌다. ● ‘중재 외교’ 부담도 커져…하마스 관계 설정도 골칫거리단교 사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카타르는 천연가스와 석유 판매를 통해 얻은 막대한 오일머니로 비교적 위기를 안정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 숙원 사업이던 ‘2022 월드컵’도 잘 치렀다. 그리고 카타르는 가자지구 전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국제사회의 시선은 카타르에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의 진영을 넘나드는 외교 전략과 중재자 역할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중립을 지향하던 스웨덴, 핀란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서둘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지금 같은 양극화 시대에 지속적으로 모든 진영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건 쉽지 않다. 중재국 역할과 관련해서도 성공했다고 결론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김은비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중재국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건 협상뿐 아니라 협상 뒤 이행해야 할 사항을 관리하는 것도 포함된다”며 “카타르가 협상 뒤에도 이 같은 역할을 안정적으로 잘 해 낼 수 있는 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하마스와의 관계 재설정도 카타르에게 내려진 숙제다. 지금까지 카타르는 하마스에 우호적이었고, 미국과 이스라엘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번 가자지구 전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카타르가 지금까지 하마스에 보여온 우호적인 스탠스를 인정할지는 미지수다.지난달 워싱턴포스트(WP)와 로이터는 카타르가 하마스에 납치돼 있는 인질 석방 문제가 해결되면 하마스와의 관계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카타르가 하마스와 지금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큰 압박이 따를 것”이라며 “다만 향후 가자지구 복구와 현지 거주 민간인 지원 등에는 적극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도하=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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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면전’을 선언하지 않는 것일까[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7일(현지 시간) “전쟁이 2단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군대(이스라엘군)가 그 땅(가자지구 북부)에 주둔 중이고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있다고 말했다.7일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 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습을 감행했다. 23일에는 보병부대와 탱크를 가자지구 안으로 처음 투입했다. 가자지구 안에 이스라엘 군대가 진입해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 이번 하마스와의 전쟁 중 처음 발생한 것이다.이스라엘은 25일부터 매일 가자지구로 지상군을 투입했다. 현지 언론과 외신들에 따르면 공격 범위가 넓어지고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가자지구에 주둔하며 지상전이 확대되고 있다.다만, 이스라엘은 아직 ‘전면전’이란 표현은 안 쓴다.이제 가자지구 안팎에서는 전면적인 지상전이 벌어지는 시점이 언제일지에 주목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이 1400여 명이나 자국민이 사망한 이번 전쟁에서 지상전을 16일 뒤에나 시작했고, 여전히 ‘전면적 지상전 개시’는 선언하지 않는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하마스 궤멸보다 인질 석방에 관심 많은 미국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궤멸 시키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지상전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인질과 미국이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 ‘인질 석방을 위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지상전 연기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곧바로 “사람들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국지적인 임시 휴전이 가자에서 인질들을 석방하는 데 필요하다면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실상 미국은 지상전을 통한 하마스 궤멸보다 인질 석방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하마스에 대한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보복도 중요하지만 이스라엘로서는 세계 최강국으로 중동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의 메시지도 무시할 수 없다.27일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규모 지상전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대규모 지상전 대신 항공기, 특수부대 등을 이용한 정밀타격형 공격을 통해 하마스를 공격할 것을 이스라엘에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 자국민 안전에 대한 우려 커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지상전 개시를 우려하는 배경에는 자국민에 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깔려 있다.당장 하마스에 억류돼 있는 220여 명의 인질 중 미국 국적자는 1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인 인질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 비난은 당연히 바이든 행정부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이라크, 시리아, 카타르, 바레인 등에 주둔 중인 미군의 안전도 역시 중요한 문제다. 중동 주둔 미군은 이란군 또는 친이란 무장단체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라크와 시리아에 주둔 중인 미군은 이번 사태로 인해 집중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두 나라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 무장단체들이 대거 활동 중이다. 시리아에선 이란 혁명수비대가 직접 군사 작전도 진행한다. 실제로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친이란 무장단체의 현지 주둔 미군을 겨냥한 공격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군 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는 분명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인질이든 군인이든 자국민이 희생되는 건 큰 부담”이라며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이 1년 밖에 안 남은 상황이라 더욱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외교 정상화 추진을 포함해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번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만으로도 내년 대선에 심각한 악재다. 미국인 사상자 발생과 중동 정세가 더 혼란스러워지는 건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 하는 추가 악재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민간인 모두 피해 클 수밖에 없어현재 이스라엘에선 하마스에 대한 증오가 넘쳐난다. 30만 명 정도의 지상군을 가자지구 인근에 배치했을 만큼 준비도 돼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끔찍한 시가전’과 ‘대규모 민간인 피해’는 피할 수 없다. 하마스 보건부에 따르면 이미 이번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선 6747명(26일 기준)이 숨졌다.무엇보다 가자지구는 인구 밀도가 높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건물들은 촘촘하게 들어서 있고, 지하에는 480km 길이의 땅굴이 조성돼 있다. 아무리 이스라엘군이 세계 정상급의 역량을 갖춘 군대라고 해도 이런 지역에서 전면적인 지상전이 펼쳐진다면 대규모 사상자 발생은 피하기 어렵다. 미국도 과거 이라크 전쟁에서 대규모 시가전이 펼쳐졌던 ‘팔루자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팔루자와 달리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은 지하 땅굴에서도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하마스의 ‘인간 방패 전략’과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격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민간인과 하마스 대원을 구별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과 어린이 사상자가 늘어나면 아랍권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체적으로도 반이스라엘 여론이 빠르고 강하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는 것은 2020년 8월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간의 외교 관계 정상화)’을 계기로 모멘텀이 만들어진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해빙 무드가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카타르의 싱크탱크인 아랍조사정책연구원(Arab Center for Research and Policy Studies·ACRPS)이 지난해 아랍권 14개 나라에서 3만3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4%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8%에 그쳤다. 또 76%가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 전체의 문제다’라고 답했다. 이번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화해 분위기를 파괴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이스라엘로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아랍권의 반이스라엘 정서가 강해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무시한다는 건, 하마스가 파놓은 함정에 그대로 빠지는 꼴이다.이스마일 하니예를 비롯한 하마스의 최고 지휘부가 이미 카타르로 피신해 있다는 점도 이스라엘로서는 부담이다. 하마스 궤멸에 필요한 최고 지휘부 제거가 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적인 지상전으로는 이미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하마스보다 강한 헤즈볼라의 참전 가능성도 부담하마스와는 차원이 다른 무장정파인 헤즈볼라가 본격적으로 참전할 경우 이스라엘로서는 서부(하마스)와 북부(헤즈볼라)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파격적인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미 20만여 기의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헤즈볼라는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 등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 정예부대인 ‘쿠드스군’과 공동으로 작전을 수행한 적도 많다. 그만큼 제대로된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는 뜻이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이란은 이스라엘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뜻에서 해외작전과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최정예 자국 군대의 명칭을 쿠드스군으로 정했다.헤즈볼라는 2006년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며, 이스라엘을 곤혹스럽게 만든 경험도 있다. 당시 100명 이상의 이스라엘군이 사망했다. 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궤멸시키겠다’고 강조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에서는 1000여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연히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은 큰 비난을 받았다.사우디 싱크탱크인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이스라엘이 전면적인 지상전에 못 나서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헤즈볼라의 참전 가능성 때문”이라며 “헤즈볼라가 정식으로 참전할 경우 미국의 지원이 있더라도 이스라엘로서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전면전은 피하기 어려워그렇다면 가자지구에서 전면적인 지상전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많은 중동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전면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답한다. ‘이스라엘판 9‧11 테러’로 불릴 만큼 피해가 큰 상황에서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 30만여 명의 군대를 가자지구 인근에 집결시켜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적인 지상전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다만,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완전히 장악한다고 해도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자지구를 장악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예측이 어렵다.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적인 지상전이 펼쳐지고 헤즈볼라, 나아가 이란의 직접적인 참전과 미국의 군사 조치까지 이어질 경우 중동 정세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것이다.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9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압박하지만 그들은 계속 이스라엘에 광범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도 27일 블룸버그TV에 “미국이 지금처럼 계속 행동한다면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전세계가 가자지구를 불안한 눈으로 예의주시하는 상황도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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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서 이란이 주목받는 이유[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우리는 팔레스타인의 대응에 관여돼 있지 않다. 순전히 팔레스타인이 스스로 한 것이다.” 8일(현지 시간)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전날 대규모로 진행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자신들은 상관없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공격 직후 다양한 채널에서 제기된 ‘이란 개입 의혹’에 대한 반박이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선 하마스와 헤즈볼라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이 공격 작전을 승인했다’, ‘이란과 하마스가 이번 공격에 대해 논의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이란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개입은 부정하면서도, 목소리는 높이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분명한 하마스 지지 메시지를 내고 있다.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부 장관은 14일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수행한다면 이란 또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유엔 이란 대표부도 ‘X’(옛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 측의 전쟁 범죄가 중단되지 않으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져 있고, 국경도 맞대고 있지 않은 이란은 왜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일까. 나아가, 왜 주요 이해 당사자로 거론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란의 이번 사태 개입 여부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일까.● ‘시아벨트 전략’으로 주변국에 개입“한국은 이란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선 이란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중동 나라들에게 이란은 안보 측면에서 많은 위협을 주는 나라다.” (이스라엘 외교부 관계자) 이란은 영토, 자원,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꾸준히 그리고 자주 발생해온 중동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해온 나라다. 미사일, 무인기(드론), 지상군 같은 군사력은 기본이다. 핵무기는 아직 개발 못 했지만 우라늄 농축을 비롯한 주요 기술을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엇보다 이란은 주변국의 정치와 안보에 다양한 형태로 개입해 오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란과 많은 갈등을 빚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이란은 주변국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수니파 종주국은 사우디)인 것을 앞세운다.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정한 중동 나라의 시아파 무장정파와 종교지도자 등에게 자금, 무기, 인력을 지원하는 것. 필요할 경우 이란은 자국의 최고 군사조직으로 ‘정부 위의 정부’로도 인식되는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 쿠드스군은 이란군의 해외작전을 전문적으로 담당)’을 파견하기도 한다. 이런 이란의 전략을 중동 안팎에서는 ‘시아벨트 전략’으로 부른다.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이 시아벨트 전략의 주무대다. 헤즈볼라(레바논), 카타입헤즈볼라(이라크), 후티 반군(예멘) 같은 영향력이 큰 무장정파들은 오래전부터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충돌할 때마다,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석유 관련 시설을 공격할 때마다 ‘이란 배후설’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라크에선 카타입헤즈볼라의 미군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마다 이란을 의심했다. ● 가자지구도 이란의 영향력 행사 지역얼핏 보면 가자지구는 이란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다. 하마스는 수니파 무장정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은 종파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하마스도 적극 지원해 왔다. 가자지구도 이란의 영향력 확장 지대에 속하는 것이다. 하마스에 대한 다양한 자금과 무기 지원이 오랜 기간 이어졌다. 또 이란은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을 ‘쿠드스의 날’로 정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기 위한 문화적, 종교적 조치였다.하마스 입장에선 고립돼 있는 자신들에게 무기와 자금 지원을 해주는 이란은 꼭 필요한 존재다. 당연히 협조적이다. 그러다보니 ‘이번 사태의 배후에 이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란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안보 실패, 심지어 ‘이스라엘판 9‧11 사태’란 말이 나올 만큼 이번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큰 것도 의심을 키운다. 14일 기준 이스라엘서는 1300여 명이 사망했다.한 마디로, 하마스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공격으로는 이렇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 미사일과 드론 강국이면 시아벨트 지역에서 다양한 지상군 전력을 운용해온 이란이 어떤 형태로든 배후에서 무엇인가를 했을 것이란 뜻이다. ● 고립 뚫기 위해 주변국에 개입그렇다면 이란은 왜 무장정파를 이용해 주변국의 정치와 안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복잡하고, 위험한 전략을 펼치는 것일까. 이란은 1979년부터 미국과 척을 졌다. 사우디 등 주변국들과도 관계가 악화됐다. 시아파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세속주의와 친서방을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면서부터다. 혁명을 통해 이란은 시아파 종교지도자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독특한 ‘신정 공화정’을 구축했다. 근본주의 이슬람을 강조했고 서방과는 분명한 거리를 뒀다. 이때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크고 작은 경제 제재에 노출돼 왔고, 1980~1988년에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경험했다. 이란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큰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수니파 아랍 왕정 산유국들은 아예 이란 대응이 주목적 중 하나인 정치‧경제 연합체 걸프협력회의(GCC)까지 1981년에 구성했다. GCC 국가들은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의 ‘혁명 경험’이 자국에 영향을 주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이처럼 고립된 상황 속에서 이란은 시아벨트 전략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던 것. 이란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란은 시아벨트 전략을 통해 자국 영토가 공격받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중동 전역에 행사하고자 했다”며 “특히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이 활동하는 동안 이 전략이 크게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쿠드스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던 솔레이마니는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솔레이마니 사살 작전은 미국, 나아가 이스라엘, 사우디, UAE 등 친미, 반이란 성향 국가들이 이란의 주변국 개입을 얼마나 위협적으로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으로 사례로 꼽힌다. ● 아랍-이스라엘 ‘해빙 무드’ 깨지면 이란에 수혜이번 사태로 최근 조성돼 왔던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의 화해 분위기가 깨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도 이란의 개입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부분이다. 최근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외교 정상화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었다. 2020년 9월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UAE, 바레인과 수교했다. 그 뒤에는 모로코, 수단과도 수교했다. 이스라엘이 과거 앙숙이었던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이뤄내는 건 아랍과 이스라엘 모두와 사이가 나쁜 이란 입장에선 또다른 고립을 의미한다. 특히 ‘아랍의 맹주’ 사우디까지 이스라엘이 수교하는 건 더욱 심각한 변화다. 이란으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아랍-이스라엘 해빙 무드’를 흔드는 게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고,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하루 아침에 아랍권과 이스라엘 사이의 형성돼 오던 화해 분위기가 깨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보복 공격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외교 정상화 움직임에 이번 사태가 큰 악재가 될 것이란 전망은 벌써부터 나온다.결과적으로 이란으로서는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란 부담스런 변화가 최소한 연기될 수 있는 여건을 맞이한 것이다.● 헤즈볼라 참전은 사실상 이란의 참전그렇다면 이란은 하마스의 이번 공격에 개입한 것일까. 증거는 없다. 이란을 40년 넘게 직·간접적으로 제재해 왔고, 이스라엘 지지를 선언한 미국도 ‘이란이 개입한 게 분명하다’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아직 이스라엘 정부도 이란의 개입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다.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이란이 자신들을 더욱 ‘왕따’로 만들 대규모 무력 도발을 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은비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이란은 핵 합의가 깨지면서 다시 강화된 경제 제재를 풀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불만도 많은 상황”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하마스를 이용한 대규모 무력 도발을 일으켜 고립을 가중시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반면, 오래전부터 이란이 하마스에 대한 무기와 자금 지원은 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개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보복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란은 다시 한번 많은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최근에도 이스라엘을 향해 수차례 박격포 등을 이용해 도발했다. 또 강경한 하마스 지지, 이스라엘 비판 메시지를 내고 있다.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에 헤즈볼라가 본격 개입할 경우 사실상 이란과의 전쟁이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즈볼라는 설립됐을 때부터 이란과 긴밀했고, 하마스보다 훨씬 더 많은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헤즈볼라가 참전할 경우 지금도 혼돈에 빠져 있는 중동 정세는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칠 것이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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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이 하면 사우디도”…빈 살만 ‘핵무장’ 발언에 중동 패권 경쟁 재주목[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이며 차기 국왕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진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 안보상 이유이며 힘의 균형을 위해서다”고 말했다.당장 벌어질 일은 아니다. 언젠가는 발생할 일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치열하게 패권 경쟁을 펼치는 사우디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건 지역 안보와 국제 정세를 요동치게 할 대형 사건이다. 당연히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번 핵무기 발언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 관계, 특히 사우디의 뿌리 깊은 이란에 대한 경계심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로도 여겨졌다.● 7년 만에 ‘화해’ 했어도 여전히 불편한 관계‘앙숙 관계’인 사우디와 이란은 3월 10일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2016년 1월 ‘심각한 종파 갈등(사우디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을 경험하며 단교했다.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고위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일부는 사형시키자, 이란에선 강경 시아파 세력이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한 게 단교의 원인이었다. 중국의 중재 아래 사우디와 이란은 베이징에서 일단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했다고 평가하는 중동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더 이상의 심각한 갈등’을 지양하기 위해 일단 를 도모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무엇보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 나아가 갈등의 뿌리가 너무 깊다. 하나 같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냉랭한 두 나라 관계는 40년 이상 지속돼 왔다.● 왕정 붕괴시킨 이란의 혁명 경험이 기분 나쁜 사우디사우디 입장에서 이란에 대해 가장 기분 나쁘고, 긴장이 되는 부분은 정치 체제의 차이다. 사우디는 국왕이 중심이 되는 왕정 체제다. 반면 이란은 시아파 최고지도자(알라의 증거라는 의미를 지닌 아야톨라로 호칭)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독특한 형식의 신정공화정 체제다.중요한 건, 이란도 원래 왕정 국가였다는 점이다. 1979년 시아파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중심이 돼 친미,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렸다. 이른바 ‘이란 이슬람 혁명’ 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정공화정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사우디는 걸프만이란 좁은 바다 건너 편에 있는 다른 종파의 종주국에서 혁명을 통해 왕정이 무너졌다는 게 불편하다. 쉽게 말해, 부패한 왕정을 종교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나서서 무너뜨린 ‘혁명 경험’이 자국에도 전파될까 불안하다.1981년 5월 사우디가 앞장서서 같은 문화(아랍), 정치(왕정), 경제(석유와 천연가스 중심), 종파(수니파) 체제를 지닌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종파상으로는 수니파, 시아파와 또다른 이바디파다.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상으로는 사우디, UAE 등과 유사하며 수니파와도 특별한 갈등이 없었다)과 정치‧경제 연합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한 것도 ‘이란 견제’가 가장 큰 목적이다. 다른 GCC 국가들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이란에 대한 경계심은 컸다. 이들도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이란으로 인해 자신들의 왕정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경계한다. 바레인과 UAE는 이란과 직접적인 영토 갈등도 경험했다. UAE는 1971년 연방이 구성될 때 어수선한 과정에서 3개 섬(소툰브, 대툰브, 아부무사)을 이란에게 점령당했다. 바레인은 왕실은 수니파이지만 국민 다수는 시아파다. 그리고 이란이 “바레인은 원래 우리 영토다”라고 주장해 온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이란의 영향력 확장 전략으로 인한 두려움다른 종파도 정치 체제 만큼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다. 특히, 이란이 시아파 종주국이란 특성을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것을 사우디는 우려한다. 이란은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같은 사우디 인근 나라의 정치와 안보에 적극 개입해 왔다. 현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언론사, 종교 지도자 등을 지원하며 해당 나라의 정치와 안보 여건을 이란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전략을 펼쳐왔다. 필요에 따라선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해 무력 충돌도 시도해 왔다. 이란의 영향력 확장 전략에서 사우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우디 국영 에너지 기업인 아람코의 본사와 각종 생산시설, 연구개발 단지가 자리 잡고 있는 다란과 담맘은 사우디의 대표적인 시아파 거주 지역이다. 사우디 국부의 원천인 원유와 천연가스가 주로 생산되는 사우디 동부 지역이 시아파가 많이 사는 지역인 것이다. 또 사우디 동부는 이란과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이란으로서는 사우디에서 ‘2등 국민’ 혹은 ‘비주류’ 취급을 받으면서 각종 사회적 차별을 받아온 동부의 시아파들을 자극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우디 내부의 갈등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후티 반군(사우디는 예멘 정부군 지원)은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2019년 9월 아람코의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 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이 한동안 평소 수준의 절반으로 줄었다. 사우디 내부적으로는 “이란과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면 아람코의 주요 시설이 대거 파괴될 것”이란 공포감도 커졌다.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사우디가 네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을 적극 개발하는 배경에는 새로운 경제 거점을 이란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주요 무기 개발 경험, 이란은 있고 사우디는 없어이란과 사우디의 차이는 무기 개발 경험에서도 나타난다.이란의 경우 무기 개발 역량이 이미 확인됐다. 사실상 1979년부터 진행돼 온 각종 크고, 작은 미국의 경제 제재 속에서도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미사일을 대거 개발했다. 중동에서 가장 미사일 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꼽힌다. 드론은 러시아가 수입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사용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도 통하는 정예군 혁명수비대는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물론 이란은 핵무기는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 등 주요 기술에 대한 노하우는 축적돼 있다. 이스라엘 ‘모사드(정보부)’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과학자들을 여러 명 암살했다. 또 이란 내 핵 개발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도 진행했다. 모사드의 집요한 공작은 이란이 자체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상당 부분 갖췄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반면 사우디는 지금까지 거의 전적으로 ‘미국산 무기 수입’에 의존해 왔다. 사실상 안보 자체를 미국에 의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자체적으로 중요한 무기를 개발한 경험도 없다.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서도 일부 에너지 분야를 제외하고는 역량이 축적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사우디가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경우 핵 기술이 발전한 나라의 인력을 수입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핵무기는커녕 일반적인 원자력 발전소(원전)도 사우디가 자체적으로 개발 및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은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발언처럼 ‘위기 상황’이 와도 정작 사우디가 핵무기를 쉽게 개발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많다는 뜻이다.사우디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한 플랜트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사우디는 일반 석유화학 플랜트의 개발과 운용도 외국 인력과 기술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보다 기술 수준도 높고 복잡한 원전의 경우에도 당연히 개발과 운용 과정에서 모두 외국 인력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원전 같이 민감한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는 건 당연히 안정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혼란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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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방’ 바레인 손 꽉 잡는 미국…‘탈중동 노선’ 바뀌나[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걸프만(이란에서는 페르시아만, 아랍권에서는 아라비아만으로 호칭)의 작은 섬나라 바레인이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바레인은 아랍 수니파 왕정 산유국의 정치‧경제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중 가장 작은 나라다. GCC 국가 중 석유 생산량도 가장 적다. UAE와 카타르처럼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를 취한다거나, 월드컵과 엑스포 같은 대형 국제 행사를 유치하는 것과도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바레인은 이웃 나라들에 비해 유독 ‘조용한 나라’로 여겨져 왔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됐던 적은 드물다. 최근 바레인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두 나라는 13일(현지 시간) ‘전략적 안보 경제 협정’을 체결했다.● 바레인, 미국과의 안보 협력 수준 높여이번에 바레인과 미국이 체결한 협정에는 ‘바레인이 공격을 당하면 미국은 바레인 정부와 해당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상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안보 협력, 정보교류, 군사시설 이용 등을 확대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전에도 바레인과 미국은 가까운 사이였다. 미 해군의 제5함대가 바레인에 주둔하고 있다. 제5함대의 사령부 역시 바레인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제5함대를 통해 중동에서 발생하는 분쟁에서 해군력을 신속히 투입할 수 있다. 또 과거에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이슬람국가(IS) 등을 공격할 때도 제5함대를 활용할 수 있었다. 현재 제5함대는 카타르에 있는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미 공군의 해외기지 중 가장 큰 규모)와 함께 미국의 중동 내 핵심 군사 전력으로 여겨진다. 결국 바레인과 미국이 맺은 협정은 안보 협력 및 보장 수준을 더욱 높이는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두 나라는 1년간 이번 협정에 대해 협의해 왔다. 워싱턴에서 진행된 협정 서명식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왕세자겸 총리가 참석했다.● 미국의 탈중동 정책과는 반대되는 조치무엇보다, 이번에 바레인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협정을 놓고 미국의 ‘탈중동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최근 미국은 정권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중동에서의 역할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셰일가스의 발굴 및 기술 발전으로 미국의 중동산 석유와 천연가스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또 크고 작은 중동 내 전쟁에서 미군 사상자가 꾸준히 발생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이 과정에서 미국의 탈중동 정책이 본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터졌다. 바로 2021년 8월 이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901/109025373/1)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9‧11 테러)’ 직후 미국은 ‘극단주의 세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명분아래 아프간을 공격했다. 당시 아프간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무장 정치단체 탈레반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탈레반은 9‧11 테러의 기획자이며 테러단체 알카에다를 만든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었다. 탈레반과 20년간 전쟁(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벌여온 미국이 탈레반과 협상을 통해 아프간에서 전격 철수했던 것을 감안하면 바레인과의 이번 협정은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다.물론 사우디와 UAE 같이 영향력이 큰 나라와의 안보 협력 강화 협정이라면 더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사우디, UAE와 많은 지향점을 공유하는 GCC 국가인 바레인과 높은 수준의 안보 협력을 지향하는 협정을 맺었다는 건 큰 의미를 지닌다.● GCC 국가들, 미국의 탈중동 정책에 불만 커사우디와 UAE 같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했던 나라들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 뒤 상대적으로 중국, 러시아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과거보다 ‘미국의 경쟁자’들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인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발생한 에너지난을 해결하는 데도 사우디와 UAE는 미국에 비협조적이었다. 미국의 증산 요청에 두 나라 모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도 두 나라는 참여하지 않았다. 사우디와 UAE가 미국에 보인 냉랭함의 배경에는 탈중동 정책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바레인과의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이는 미국의 움직임은 탈중동 정책에 불만이 컸던 다른 GCC 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호재다. 특히 바레인은 GCC 나라들이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이란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가장 심하게 노출돼 있다. 이란은 지금도 바레인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한다. 또 바레인은 왕실은 이슬람 수니파지만, 일반 국민의 다수는 시아파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영향력 확장에 더 취약한 구조다. 반면 사우디, 카타르, UAE 등은 왕실과 국민 다수가 모두 수니파다. 또 바레인은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발발해 2011년과 2012년 확산됐던 ‘아랍의 봄(아랍권의 민주화 운동)’ 때 GCC 국가 중 가장 심각한 반정부 시위를 경험했다. 당시에도 이란이 바레인의 시아파 종교자들과 주요 가문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만큼 왕실과 정부가 취약한 것. 바레인은 GCC 국가 중 석유 생산량도 가장 적다보니 경제 여건도 어려운 편이다. 아랍의 봄 당시 바레인은 사우디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반정부 시위를 진압했다.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GCC 중 가장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는 바레인과 미국이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인다는 건 향후 사우디나 UAE 달래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말했다.실제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미국은 바레인과의 이번 조약이 다른 GCC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GCC 달래기’, 사우디-이스라엘 수교와 중‧러 견제에도 필요‘GCC 국가 달래기’, 특히 ‘사우디 달래기’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UAE와 바레인은 2020년 9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미국은 중동의 핵심 우방국인 이스라엘과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가 자국의 중동내 영향력 유지와 이란 견제에 꼭 필요하다고 본다.특히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장에선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는 자랑할 수 있는 큰 외교 성과다. 이를 위해선 사우디의 불만인 탈중동 정책 노선이 바뀔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이 나라들이 GCC 국가들과 계속 긴밀한 관계를 맺는 건 막아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아무리 중동의 중요성이 과거보다는 줄었다고 해도 러시아와 중국이 중동에 계속 진출하는 걸 그냥 두고 보는 건 어렵다. 를 중심으로 그동안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계속 키워왔다.(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513/119276766/1)중국도 3월 7년간 단교 상태였던 를 이끌어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312/118286632/1)중동 국가 대사를 지낸 전직 외교관은 “미국 입장에선 에너지 자립 수준이 높아졌어도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건 또다른 부담”이라며 “GCC 국가들과 계속 안보, 경제 협력을 유지하며 어떤 형태로든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한계 많은 조약이란 평가도 나와미국과 바레인의 이번 협정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이는 내용임에도 GCC 국가들이 원하는 높은 수준의 안보 보장을 약속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GCC 국가들은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헌장 제5조(나토 가입국에 대한 공격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 수준의 안보 협력을 자신들과 맺길 희망한다.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알터만 중동팀장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바레인 협정은 이웃국가들(사우디, UAE 등 의미)이 원하는 수준에 크게 못미친다”고 평가했다.하지만 미국과 GCC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이번 바레인 협정은 계속 화제가 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 나라들 간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계속 거론될 것이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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