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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984.02.27 ~ 1984.10.12
법에 사는 사람들
동아일보는 법을 지키고 바로세우기 위해 애쓴 법조인 17명의 발자취를 그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바람직한 법조인상을 조감해보는 시리즈를 연재했다. 본 시리즈는 1984년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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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에 사는 사람들]〈1〉 金洪燮씨 (1) 「清廉」을 생명처럼
法에 사는 사람들<1>「清廉」을 생명처럼金洪燮 씨①고무신 軍작업복 차림「官用車私用化」비판 波紋部長判事때도 언제나 도시락지참 이땅의 현대 법조사에 빛을 더한 청렴과 용기의 법조인들、법을 세우기위해 고뇌하고 몸부림쳤던 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더듬어 바람직한 오늘의법조인상을 조감해본다。 인물과업적을 평가하기…
1984.02.27
5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2〉 金洪燮씨 (2) 「無常을 넘어서」
法에 사는 사람들<2>「無常을 넘어서」金洪燮 씨②月給털어 册산뒤 점심값없어 곤혹「人間的고뇌」作品에告白 金洪燮판사는 틈틈이 쓴 글을 모아 시집「無明」과 수필집「創世紀抄」「無常을 넘어서」를 내놓기도 했다。그래서 그를「가난한 법조시인」이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金판사는 자신의 수필」夏夜長」에서 사립대학…
1984.02.28
9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3〉 金洪燮씨 (3) 눈물많은 判事
「法에 사는 사람들」<3>눈물많은 判事金洪燮 씨③宣告뒤엔 被告가족찾아 慰勞裁判을 두려워하고 언제나 겸허한 자세 金洪燮판사는 법조인 생활의 대부분을 판사로 지냈으나 변호사와 검사생활을 잠시 하기도 했다。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41년4월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는 일제말기에 단발하라는 강권에도「변호사는자…
1984.02.29
5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4〉 金洪燮씨 (4) 독특한 法哲學者
「法에 사는 사람들」<4>독특한 法哲學者金洪燮 씨④〃人間이 人間을 어떻게 裁判하나〃언제나 懷疑 金洪燮판사는『피고인들은 법관을「상당히 두드러진 존재」로 여기겠지만 법관으로서 피고인앞에 앉아있는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보면 그들의 내심을 꿰뚫어보거나 그들을 승복하게 만드는데「역부족」을 느껴 동요와 불안을 일으…
1984.03.05
5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5〉 金洪燮씨 (5) 死刑囚의 아버지
「法에 사는 사람들」<5>死刑囚의 아버지金洪燮 씨⑤裁判끝낸 뒤엔「代父」로 宗教的구원도 金洪燮판사는 흔히「사형수의 아버지」로불려진다。 그는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실정법에 규정된 대로 어쩔수없이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지만 사형수를 찾아다니며 종교적으로 구원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그는「법복을 입은 …
1984.03.06
9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6〉 崔大敎씨<83·前서울高檢長> (1) 「대쪽」같은 檢事
「法에 사는 사람들」<6>「대쪽」같은 檢事崔大敎 씨<83·前서울高檢長>①自由黨초기 現職長官을 수뢰·詐欺혐의로 전격起訴李博士압력에도 所信껏다룬뒤 辭退 60년10월 추석전날。 4·19학생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명절이되자 권력자들의 집 대문앞에는 선물꾸러미가 줄을 이었다。 이날 서울阿峴洞 허술한 한옥집에 …
1984.03.07
5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7〉 崔大教씨<83·前서울高檢長> (2) 不義에 굽히지않는 信念
「法에 사는 사람들」<7>不義에 굽히지않는 信念崔大教 씨<83·前서울高檢長>②日警의 韓人피의자 拷問致死사건〃起訴말라〃壓力에訴狀과 함께 辭表내 고 裁判회부 49년6월에 발생한 金九선생 암살사건은 그 배후 관계를 둘러싸고 국민들의끝없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崔서울지검장은 사건당일에도 헌병이 삼엄하게 경비를…
1984.03.12
5면 경제
[法에사는 사람들]〈8〉 崔大教씨<83·前서울高檢長> (3) 엄격한 公私구분
「法에 사는 사람들」<8>엄격한 公私구분崔大教 씨<83·前서울高檢長>③通禁검문警官의 지시따르며 끝내 身分 밝히지않아아들 司試응시땐 高試委員職 사퇴 崔씨는 오랜 관직생활동안 부인 崔基孝여사(73)에게 가난한 살림살이를 맡겨놓고 적지않게 고생을 시켰다。 서울지방검사장 시절에도 고향 三箕에서 쌀을 올려다 …
1984.03.13
9면 경제
[法에사는 사람들]〈9〉 鄭求瑛씨 (1) 「大義」의 외로운鬪士
「法에 사는 사람들」<9>「大義」의 외로운鬪士鄭求瑛 씨①3·15不正선거 抗議데모에 死傷者나자 眞相조사〃「民主」도살행위다〃李博士下野촉구 1960년3월。 독재정권의 추종자들은역사와 민심을 거스르기 위한 말기적 몸부림을 쳤다。 3월15일은 차마 선거라고 부르기조차부끄러운 불법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馬山지역에서는「선…
1984.03.14
5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10〉 鄭求瑛씨 (2) 輿論에 逆流한「護憲선언」
「法에 사는 사람들」<10>輿論에 逆流한「護憲선언」鄭求瑛 씨②「反民主인사 斷罪」遡及法제정위한 改憲강행에 맞서〃法精神저버린 暴擧〃毅然히 반대 1960년10월。 4·19혁명의 여파가 여전히 드높을때였다。 「反民主元兇」들이 속속 역사의 심판대에 올랐고 7·29총선으로 권력구조개편도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너무도 …
1984.03.16
5면 정치
[法에 사는 사람들]〈11〉 鄭求瑛씨 (3) 「3選改憲」반대
「法에 사는 사람들」<11>「3選改憲」반대鄭求瑛 씨③〃改憲 관철안되면 물러나겠다니 무슨얘기냐〃朴大統領과 마주 앉아 따져 법조인 鄭求瑛씨는 60이 훨씬넘어 뒤늦게 政治에 뛰어들었다。그러나 그의 정치생활은 성공적인 것이 되지 못했다。 鄭求瑛변호사는 5·16후인 63년 共和黨에 입당、총재와 당의장을 맡게된…
1984.03.17
9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12〉 鄭求瑛씨 (4) 共和黨과의 결별
「法에 사는 사람들」<12>共和黨과의 결별鄭求瑛 씨④3選改憲이어 維新憲法까지 등장하자 政治에 환멸〃法治무시하면 獨裁로〃감연히脫黨 평생을 법조인으로만 지낼줄 알았던 鄭求瑛변호사가 共和黨에 몸담게된 계기에대해서는 여러갈래의 설이있다。 고陸英修여사의 부친과 잘알아 5·16주체세력과접촉하게 됐다는 말도 있고 金鍾…
1984.03.19
5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13〉 鄭求瑛씨 (5) 담백한 辯護士
「法에 사는 사람들」<13>담백한 辯護士鄭求瑛 씨⑤徐珉濠씨 銃擊사건맡아 8시간「마라톤辯論」日帝때부터 正鵠찌르기로 名聲 鄭求瑛변호사가 맡았던 유명한 사건중의 하나가 52년4월26일의 徐珉濠씨 총격사건이다。 徐씨는 당시 현역의원으로서 順天의 여관에서 육군대위 徐昌善이 권총을 뽑아들고 대들자 자신의 총을 …
1984.03.20
9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14〉 鄭求瑛씨 (6) 쓸쓸한「黃昏」
「法에 사는 사람들」<14>쓸쓸한「黃昏」鄭求瑛 씨⑥病苦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緊急措置남발」批判權力·金力타협않고 平生을 곧게 「鄭求瑛。 서울北阿峴洞 비탈길 골목사이로 초라하게 서있는 한옥 대문에 문패가 붙어있다。 낡고 빛바랜 손바닥만한 송판위의 鄭求瑛이란 이름 석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초인종도 없는 대…
1984.03.21
5면 경제
[法에 사는사람들]〈15〉 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 (1) 6·3事態와 投獄수난
「法에 사는사람들」<15>6·3事態와 投獄수난李丙璘 씨<前대 한변협회장·73세>①〃非常戒嚴선포 違法이다〃辯協명의 建議文배포「布告令위반」에 令狀없이 전격拘束 공화당정권시절、바른말을 하다가 시련을 겪은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지만 李丙璘변호사도 두번이나 구속되는등 갖은고초를 겪었다。 共和黨정권서 拘束 두번 대한변협…
1984.03.23
5면 문화
[法에 사는 사람들]〈16〉 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 (2) 격동기 辯協회장 重任
「法에 사는 사람들」<16>격동기 辯協회장 重任李丙璘 씨<前대한변협회장·73세>②64년「武裝軍人들 法院亂入사건」관련자嚴重處斷 촉구事態때마다「司法權수호」最先鋒 李丙璘변호사는 6·3사태가 있었던 64년과 3선개헌을 앞두고 있던 68년에 각각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역임했다。 정치적격동기였거나 격동이 예상되는 시기에 변협을…
1984.03.26
5면 사회
[法에 사는 사람들]〈17〉 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 (3) 民主守護의 험한길
「法에 사는 사람들」<17>民主守護의 험한길李丙璘 씨<前대한변협회장·73세>③「국민協議會」代表로 公明선거 앞장 李丙璘변호사는 70년대로 접어들면서법조계의 울타리를 넘어 재야지도자들과손잡고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李변호사는 71년4월19일 결성된 民主守護國民協議會(약칭 民守協)의 공동대표가 되면서 민주화…
1984.03.27
5면 문화
[法에 사는 사람들]〈18〉 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 (4) 「民主守護協」代表職사임
「法에 사는 사람들」<18>「民主守護協」代表職사임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④「維新」후 禁忌로 된「改憲」과 감히 擧論 민주수호국민협의회가 잇달아 수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대표위원이었던 李丙璘변호사도 심한 박해를 받을수 밖에 없었다。 71년12월6일 朴正熙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달 27일에는 국…
1984.03.29
5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19〉 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 (5) 타협 모르는 氣概
「法에 사는 사람들」<19>타협 모르는 氣概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⑤搜査當局의 連行·감시·彈壓속에서도 언제나「우뚝」「民主守護·法治主義」신념一貫 민주수호국민협의회는 본부사무실 하나마련할 돈이 없어 자주 사무실을 옮겨야 됐다。 대표위원이었던 李丙璘변호사의사무실에서 모임을 가질때가 많았고 한동안 본부를 그곳에 …
1984.03.30
5면 경제
[法에 사는 사람들]〈20〉 李丙璘씨〈前대한변협회장·73세〉 (6) 「民主인사」辯論앞장
「法에 사는 사람들」<20>「民主인사」辯論앞장李丙璘 씨<前대한변협회장·73세>⑥法廷에서도 드높인「正義의 목소리」 李丙璘변호사는 재야인사들과 손잡고 민주화운동을 벌이던때에도 뜻을 같이하는사람들이 구속되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변론에 나섰다。 74년7월15일 姜信玉변호사가 법정에서의 변론이 문제가 돼 구속되자 李변…
1984.03.31
5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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