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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975.08.18 ~ 1975.09.29
말 따라 노래 따라 애환 30년
유행어와 유행가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문화 트렌드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시대어다. 동아일보는 해방 후 30년 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빠르고 넓게 스며든 유행어와 유행가를 찾아 당시 시대상을 엮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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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 歸國船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①歸國船光復의歡喜안고恨을 푼血肉상봉 몇代가 줄줄이 겪어도 부족한 事縁들이 가득한「빛」과「그늘」의 30년이었다。 그 明暗은 어느時代나 流行語 流行歌에 민감하게 投影되는 法이기에、流行語와 流行歌를 골라가며 그時代相을엮어보려는게 이連載企劃의 뜻이다。 (編輯者註) 1945년8월15…
1975.08.18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2> 「38따라지」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②「38따라지」壓制피해 맨손越南…反共의 최선봉 38線에 南北이 가로막혔다。 「로스케」가 들어왔다。 그들은 닥치는대로 「다와이」해갔다。 모든것을 파괴해놓고 새로 시작하려고 했다。 그들에겐 識者는 憂患이요、有産階級도 憂患이었다。 그래서 하루아침 갑자기 「無知는 힘」이 되고 …
1975.08.19
4면 문화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3> 「사바사바」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③「사바사바」社會各層에 번진 混亂期의 謀利手段 政治的 空白과 國土分斷의 不安、危機感으로 사람들은 무엇이든 어떤 神通力을 빌어 한판 勝負를 겨뤄보려는 공기가 가독한 때였다。 그런 공기에서「사바사바」는 태어났고 잘만하면 하루아침에 八字가 달라졌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
1975.08.20
4면 문화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4> 驛馬車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④驛馬車急增한 서울人口에 귀염받던「느림보」 光復의 기쁨을 노래하여「해방된 驛馬車」가 골목골목에서 불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곧 무질서와 혼란으로 이어지면서 노랫소리는 어느새 슬그머니 사람 입에서 사라졌다。 해방된 驛馬車에 태극기를 날리며 사랑을 싣고가는 …
1975.08.21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5> 道民證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⑤道民證해학의對象된 어수룩한이의代名詞 우리만큼 신분증명서의效驗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다。 좌익의 파괴가 자심해지던 美軍政의47년2월 처음으로 人民登錄票를 알았고 赤治3개월을 겪고난 50년10월과 11월에 市民證 道民證을 감지덕지 받았으며올진 삼척에 공비출몰이심해지던 6…
1975.08.22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6> 「유우엔師母님」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⑥「유우엔師母님」戰禍의 混亂속에 轉落된 女人의 悲劇 1·4後退로 암담한 세월이 다시 시작되었다。피난서울 釜山은 내일을모르는 퇴폐의 거리였다。피난민 총수는 전국에 5백81만7천12명(51년3월5일)。 어제까지의 대학교수、지식인도 그런 판국에선너무도 생활에 무능했다。한끼의 糧食을 구…
1975.08.23
4면 정치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7> 「헬로우 오우케이」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⑦「헬로우 오우케이」美製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洋風」 國民服에 갇히고 몸뻬에 갇혀 이름도 말도 잃고 숨도 쉬지 못하다가 갑자기 고삐가 풀렸다。自由는 미군과 함께 洋風을 타고 왔다。 『헬로우야。 니 장 다봤나。』 거나하게 취한 갑돌이、갈치 고등어등 간것을 망태에…
1975.08.25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8> 「다이아진」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⑧「다이아진」神話的人氣속 거리를 판친 萬病通治藥 새로운 事物을 받아들이기에 정신없던 현상은 의약계에도 예외일리가 만무했다。 각종 新藥은 미군부대를 통해 쏟아져 나왔으며 당시 실정으로 정식 輸入통관을 거친다는것은 불가능했다。 주사약으로는 페니실린이 나왔고 먹는 약으로…
1975.08.26
4면 경제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9> 渡江派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⑨渡江派〃UN軍과같이行動〃…「功勞」싸고論難도 불길이 하늘높이 치솟았다。 자동차와 사람들이붕 떴다가 열길 스무길아래 강으로 곤두박질했다。爆音과 함께 동강난 철교조각에는 파란 인(燐)이반짝거렸고 난간 여기저기에 살점이 엉겨붙어있었다。 1950年6月28日 새벽2時半。 敵의 漢江渡…
1975.08.27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0> 「하꼬방」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⑩「하꼬방」서울의解放村이 시초…戰亂뒤엔 마치「빌딩의 숲」 해방후 서울 남산기슭에 생겨난「해방촌」이「하꼬방경제」「하꼬방문화」의효시였다。 수많은 歸國同胞와 월남인들이 하나둘 그곳에모여들면서「하꼬방」은 취락을 이루고 새동네로 커갔다。 日人소유 敵産家屋은 20만채。 物價가 年90여배…
1975.08.28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1> 「백」과「국물」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⑪「백」과「국물」「사바사바」의改良種…한땐能力의 저울대로 美軍政에서「사바사바」의 힘에 놀란 사람들은「코아래進上」이 과연 제1급의 교묘한 手段임을알았다。 그리고는 1949년 그 改良種으로「백」과「국물」을 알게되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 비빈다」면서 어떻게든 좋은 연줄을 …
1975.08.29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2> 戰時學生證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⑫戰時學生證徵集保留에 너도나도…「避難大學」再起의轉機 6·25前에 서울에서 입학 在學했던 대학생은 戰線이 밀고 밀리면서 다시는 학교에 돌아오지못한 얼굴들이 많다。 戰時學生證 소리도 들어보지못하고 戰場에서 스러져간 얼굴들이 있다는것을 알고있다。 소리는 들었어도 그때는 이미 …
1975.09.01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3> 渡江證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⑬渡江證서울살이〃먼저 자리잡자〃…「야미」나룻배 盛業 戰亂3년은 피난민의 역사이다。 피난민이 오르내리는 길에는 渡江證이 苦行길의 道標처럼 서있었다。 지금은 세월에 묻혀그것도 가물가물 잊혀져간다。 1952년 초봄、서울은 군인의 都市였고 일반인은 아직 들어가지못하는 제한된禁域…
1975.09.02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4> 離別의 釜山停車場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⑭離別의 釜山停車場避難의 설움과人情을 안고惜別의還都길 피난생활의 설움에서도제법 경상도 사투리가 귀에 구수해질무렵 戰亂은멎었다。 1953년7월27일、38전 대신에 이제는休戰線이 생기고 8월15일 정부는 서울로 환도했다。 피난민은 지친 몸을 끌고 폐허가 된 서울로 돌아가기 …
1975.09.03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5> 「鍾三이」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⑮「鍾三이」戰後의生活難…一時에 돋아난赤線地帶 남들보다도 인생의 패 (覇)감을 못가져서 일찌감치 패배한 여자들이 都市의 뒷골목에 모여들었다가 버린 몸이 되었다。 그런 群像이 서로 和答하며 삼삼오오 어른의 놀이터를 만들자 서울에는 전쟁후 새로운 名所가 好事家의 호기심…
1975.09.04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 哀歡 30年]<16> 「치맛바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⑯「치맛바람」教權을 멋대로 흔든「一流病」의執念 50년대 후반기에 들면서전국 유명 국민학교에는치맛바람이 강하게 불기시작했다。 어머니、언니、누나가 학교에 나타나 교정에서、교무실에서、수업중인 교실에서까지 담임선생과 귓속말을 속삭이고 그것이 자녀의 성적에 크게 영향을 주는 기현상을…
1975.09.05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7> 「아다라시」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⑰「아다라시」過渡期混亂속에 갈피못잡은 性道德 『정조라고해서 다 法이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價値가 있고 보호할社會的利益이 있을 때 限하여 法은 그정조를 보호하는것이다。 』55년 7월22일 희대의 엽색한 朴仁秀사건에 대한 당시 서울地法 權純永판사의 無罪宣告는 헐렁한 女…
1975.09.06
4면 경제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8> 「귀하신몸」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30年⑱「귀하신몸」吏道의恥部드러낸權力아첨의作風 유행어 치고선「귀하신몸」만큼 절묘한 사연속에서 태어나보기도 힘들다。 한마디로 배꼽을잡는 요절복통이고 기상천외의 착상이었다。 1950년대 自由黨政權시대。 벼슬아치의 사돈네8촌을 엇비슷하게 알기만하여도 으스대던 사회풍조를 배경으로 삼아嶺南의 …
1975.09.08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19> 契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⑲契숱한喜悲속에 목돈 안겨준「女子金融」 契는 戰時 인플레의불안 속에서 여자들이궁리해낸 생활의 지혜다。 그래서 계는 여자들의 特許이고 그 곗돈은 여자의 돈이라서 利子를 위해서만 구르는 앙칼진 데가 있다。 여자들은 피난생활 속에서 11인조의 番號契를먼저 알더니 곧 …
1975.09.10
4면 사회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20> 과외공부
말 따라 노래 따라…哀歡 30年⑳과외공부父母의「一流病」등쌀에 힘겨운苦行 어린이가 걸어가는게 아니라 책가방이 걸어갔다。 「고생보따리」로 알면서도 놓지못하고 질질 끌려서 어린이가 나란히 걸어갔다。 一流病에 몸살났던 過去있는 어른들은 극성스럽던 제 畵像을 아마도 알고있다。 『이제 학교만 들어가봐라。 고생…
1975.09.11
4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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