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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06.26
백범 김구 피살
백범 김구 선생이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됐다.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평생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했다. 암살범 안두희는 그 해 8월 5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징역 15년으로 감형됐고, 6.25전쟁 중 군에 복귀했다가 전역했다.
1948.10.19
여수·순천 반란사건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사건 진압 출병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켜 여수 순천 등 전남 동부 지역을 장악했다. 정부는 여수·순천 일대에 대규모 진압군을 보냈으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수천 명이 희생됐다.
1948.09.22
반민특위 재판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을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이 1948년 9월 22일 제헌국회에서 통과되고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10월에 구성됐다. 치안확립이 시급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비협조로 반민특위는 682건의 친일행위 조사에 그쳤고 단 12명만 재판에 회부되어 실형 선고를 받았다.
1948.09.09
북한정권 수립
소련 군정체제의 북한은 1948년 8월 2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했다. 9월 9일에는 사회주의 헌법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하고 정부를 수립했다.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이 북한 정부 초대 수상이 됐다.
1948.08.15
대한민국 수립 선포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대통령선거를 실시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이승만이 당선됐다.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당선됐다. 이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임명 동의 등의 절차를 거쳐 8월 15일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대내외에 널리 선포했다.
1948.05.10
첫 국회의원 선거
북한의 거부로 끝내 남한에서만 1948년 5월 10일 첫 총선이 실시됐다. 4·3사건에 휩싸인 제주도 2개구와 북한 지역을 제외한 198개구에서 198명의 국회의원이 뽑혔다. 총선 20일만인 1948년 5월 31일 국회가 문을 열어 이승만 국회의장과 신익희 김동원 부의장을 뽑고, 7월 17일 헌법을 제정했다.
1948.04.03
제주 4.3 사건
제주지역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 시가행진을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한 사건으로 민심이 악화됐다. 남로당의 선동으로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 투쟁으로 발전했다.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7년간 무장 투쟁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계속 희생됐다.
1946.10.01
대구 10월 사건
1946년 10월 1일, 대구시청 앞에서 미군정의 강압적인 식량 공출에 분노한 시민들이 식량배급을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발포로 시민들이 사망하면서 대구는 물론 남한 대부분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됐으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식량난과 미곡 수집령, 토지개혁 지연이 원인이었다.
1945.12.28
신탁통치 반대운동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은 국제질서 주도권을 놓고 대립했다. 새로운 국가 건설 희망에 부풀었던 국내 정세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한반도 문제 신탁통치 결정에 부딪쳤다. 우익 세력의 신탁 반대와 좌익의 3상 결정 지지로 나뉘어 갈등이 점점 고조됐다.
1945.08.15
일본 항복. 조선 해방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35년간의 일본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됐다.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독립이 확정된 한반도에 미국과 소련이 각각 승전국으로 들어왔다. 남쪽에서는 9월 7일 미 군정기가 시작됐고 외국에 살던 실향민들과 임시정부 요인들도 속속 귀국했다.
1942.10.00
조선어학회 사건
중·일전쟁(1937년) 이후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은 더욱 노골화됐다. 일제는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학술단체 성격의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억지 조작해 1942년 10월부터 조선어학회 핵심 회원과 조선어사전 편찬 후원 회원을 대대적으로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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