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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06.25
6.25 전쟁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남한 적화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선전포고도 없이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워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개시했다. 북한의 병력은 20만명을 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행위를 침략으로 규정했고, 16개국 군대로 유엔군을 편성했다.
1950.09.16
인천상륙작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켰다. 9월 28일 북한 인민군 치하의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돌파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19일 평양을 탈환하고 압록강 주변까지 북진했다.
1951.01.04
1.4후퇴
북한 인민군이 밀리자 1950년 10월 19일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어와 6·25전쟁에 개입했다. 중국의 대규모 군대 파병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해야만 했다. 1951년 1월 4일 수도 서울이 다시 공산군에게 빼앗기자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 속에 피난길에 나섰다.
1951.02.10
거창 양민 학살사건
1951년 2월 '공비(共匪)' 토벌을 위해 경남 거창에 투입된 국군 제11사단 소속 군인들이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해 주민 수백 명을 집단 학살했다. 국회조사단은 '공비'로 위장한 군인들의 총격을 받아 되돌아왔다. 재조사를 거쳐 관련자 3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특별사면으로 모두 풀려났다.
1952.05.25
부산정치파동
대통령선거는 국회 간선제였다. 장기집권을 위해 이승만 정부는 ‘공비(共匪)’소탕 명목으로 1952년 5월 25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하루 뒤 26일 야당 국회의원들을 대거 체포했다. 김성수 부통령은 29일 사임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1953.07.27
휴전협정 조인
1951년 6월 소련이 먼저 유엔에 휴전을 제안한 이후 군사분계선 설정과 포로송환 등을 두고 휴전 회담은 2년 가까이 계속됐다. 휴전에 반대한 이승만 정부의 반공포로 2만7000명 석방으로 협정 막판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1959.09.17
태풍 사라호 엄습
1959년 9월 17일 추석에 태풍 ‘사라’ 가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전쟁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이라 피해가 심각했다. 사라는 A급 태풍으로 당시 사망-실종자가 800명을 넘었고 이재민이 37만여 명이었다. 정부 재정이 빈약해 구호자금을 국민 의연금에 의존했다.
1959.12.14
재일교포 북송
1959년 12월 14일 일본 니가타항에서 재일교포 975명을 실은 소련 수송선 2척이 해양경비선의 호위를 받으며 북한의 청진으로 향했다.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은 북송 반대 가두시위를 벌였다. 앞서 8월 13일 북한과 일본의 적십자사는 인도에서 재일조선인 송환협정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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