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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03.15
3.15 부정선거 규탄데모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는 최악의 부정과 불법이 난무하는 투표였다. 여당인 자유당은 말단 행정기관과 공무원 친목회 등을 총동원해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이 83%가 되도록 획책했다. 이 날 저녁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유혈 봉기가 경남 마산에서 일어났다.
1960.04.19
4.19 혁명
1960년 4월 11일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숨진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서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4월 19일 대학생 10만 명이 서울시내에서 시위를 벌이고 중고교생이 가세한 시위대는 경무대 앞까지 진출했다. 경찰의 발포가 시작됐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1960.04.25
이승만 대통령 하야
1960년 4월 25일 대학교수 수백 명은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고 무언의 행진을 벌였다. '학생의 흘린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비상계엄령 아래에서 수십만 시민들이 시위에 합세했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발표했다.
1960.06.15
장면 내각 성립
4.19혁명이후 들어선 허정 내각은 헌법개정과 총선을 관장했다. 1960년 6월 15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7월 29일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신구파로 양분돼 장면이 이끄는 신파 정권이 탄생하고 제2공화국이 수립됐다. 구파의 윤보선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61.05.16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육군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가 혁명공약을 내걸고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장도영 참모총장을 의장으로 내세운 군사혁명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7월 3일에는 박정희 소장이 의장에 선출되고, 장도영 전 의장 등 44명은 체포됐다.
1963.12.17
박정희 대통령 취임
내각책임제를 4년 중임의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는 제5차 개헌안이 1962년 12월 17일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됐다.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12월 17일 취임하면서 제3공화국의 막이 올랐다.
1964.06.03
6.3 항쟁
1964년 3월 23일 김종필 공화당 의장과 일본 오히라 외상 간에 한일협정 회담 일정이 합의되자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는 6월 3일 밤 8시를 기해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학교는 휴교에 들어가고, 언론은 사전 검열됐으며, 집회시위는 금지됐다. 비상계엄은 7월 29일 해제됐다.
1965.10.12
베트남전 참전
1965년 2월 공병부대인 비둘기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했다. 같은 해 10월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파월 전투사단 주력인 육군 맹호부대 장병 1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환송식이 거행됐다. 베트남 참전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무려 8년에 걸쳐 이뤄졌다.
1965.12.18
한일 국교 수립
야당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협정 비준동의안이 1965년 8월 14일 공화당만의 ‘1당 국회’가 단독 심의를 강행해 처리됐다. 한일 양국은 12월 18일 서울에서 한일협정비준서를 교환했다. 양국은 1951년 10월 20일 도쿄 예비회담을 시작으로 7차례 회담을 거쳐 14년 만에 정식 국교를 수립했다.
1967.09.06
매몰광부 양창선 극적 구출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광부 양창선(35세. 당시 ‘김창선’으로 불렸다)씨는 1967년 8월 22일 낮 12시 40분 수직 갱도의 받침나무가 무너져 지하 125m 지점 배수장에 갇혔다. 양 씨는 전화로 외부와의 연락을 통해 죽음의 공포와 맞서다 368시간35분(15일8시간35분) 만에 구출됐다. 구조 실황은 언론이 총동원돼 보도됐다.
1968.01.21
1.21 사태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휴전선 서부지역을 넘어 1968년 1월 21일 밤 10시경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내려왔다. 이곳 초소에서 경찰의 검문에 걸리자 이들은 총기를 난사했다. 군경은 소탕전을 펼쳐 29명을 사살했다. 김신조는 생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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