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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03.25
황석영 문익환 임수경 잇단 방북
1989년 3월 25일 북한 평양방송이 문익환 목사의 평양 도착 소식을 알렸다. 문 목사는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그보다 5일 전 작가 황석영 씨가 북한에 들어갔다. 6월 30일엔 한국외국어대 4학년 임수경 씨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방북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1988.11.02
여소야대 '5共' 청문회 개최
1988년 11월부터 1989년 12월까지 국회에서 '제5공화국 비리 청문회'가 열렸다. 1988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서 5공 비리 청산에 대한 요구가 거셌다.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야당은 일해재단 기금 조성,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언론통폐합 문제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1988.09.17
88서울올림픽 개최
제24회 올림픽이 1988년 9월 17일부터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서울에서 16일간 열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 대부분인 160개국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세계에 과시했다. 1만 3,000여 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한국은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1987.12.16
'1盧3金' 대선에서 노태우 당선
1987년 12월 16일 국민의 직선으로 치러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1盧)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3金)가 각축을 벌인 결과 노 후보가 35.6%를 얻어 당선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2월 25일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역설하며 취임했다. 제6공화국이 공식 출범했다.
1987.11.29
KAL기 북한테러로 공중폭발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편 여객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폭발해 115명과 함께 사라졌다. 바그다드에서 탑승한 북한 특수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이 폭탄을 기내에 설치한 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김현희는 체포됐다.
1987.06.29
6.29 선언
시민들까지 가세한 '독재타도', '호헌철폐' 시위가 계속되자 여당인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은 1987년 6월 29일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권 이양으로,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이었다. 기존 헌법에 따라 선거를 치르겠다는 '4·13 호헌조치' 철회였다.
1987.06.09
6·10 민주항쟁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단이 된 국민의 저항은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 발표로 더욱 확대됐다. '6.10 국민대회' 하루 전인 1987년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최루탄에 맞고 숨졌다. 대학생과 시민들은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며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1987.01.14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에 연행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중 1987년 1월 14일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다. 동아일보는 경찰의 거짓 발표인 '쇼크사'가 아니라 '고문치사'임을 알리는 증언들을 1월 16일 자에 특종 보도했다. 분노한 민심이 국민 저항으로 이어졌다.
1986.09.20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가 1986년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27개국 4,8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렸다. 북한을 비롯해 공산권 국가들이 불참했지만 중국은 참가했다. 한국은 금메달 93개를 획득해 94개의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일본은 3위에 그쳤다.
1986.03.13
신상옥-최은희 북한 탈출
영화감독 신상옥-영화배우 최은희 부부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 지 8년 만인 1986년 3월 13일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한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극적 탈출했다. 두 사람은 1978년 홍콩 방문 중 1월과 7월 차례로 납북됐으며 북한에서 1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85.05.23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서울 5개 대학 대학생 73명이 1985년 5월 23일 서울 미국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주장하며 미 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72시간 만에 자진 해산하고 경찰에 연행됐다.
1984.08.31
한강 대홍수
1984년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190여 명이 생명을 잃고 1,300억여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한강변 폭우로 가옥 2만여 채가 침수되고, 9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북한 적십자사의 수재민 구호물자 제공을 위해 북한 화물선이 인천항에 들어왔다.
1984.05.0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1984년 5월 3일부터 5월 7일까지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고 "순교자의 땅"을 되뇌었다. 교황은 5월 6일 100만 명의 가톨릭 신도가 모인 여의도광장에서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하며 순교자 103인의 시성식을 가졌다.
1983.10.09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 6개국 순방 첫 방문지 버마(지금의 미얀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졌다. 북한이 대통령 암살을 위해 설치한 폭탄으로, 전 대통령은 도착 전이어서 무사했지만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17명이 순직했다.
1983.09.01
소련의 KAL기 격추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을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기가 옛 소련 영토인 사할린 근처에서 소련 방공군 수호이 요격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추락했다. 승객 246명과 승무원 23명 등 269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련은 전 세계적으로 규탄을 받고 제재를 당했다.
1983.06.30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1983년 6월 30일 오후 10시 15분 KBS 1TV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첫 전파를 탔다. 이산가족 찾기는 이날부터 11월 14일까지 모두 138일간 방영됐다. 10만 952건의 신청을 받아 절반인 5만 3,536건이 소개됐고, 1만 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1983.02.25
이웅평 미그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 58분경, 서울 수도권 일원에 갑자기 대공 경계경보 사이렌이 5분간 울렸다. 북한 공군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귀순하겠다는 뜻으로 날개를 흔들었고, 우리 공군은 미그기를 유도해 수원비행장에 착륙시켰다.
1982.03.27
프로야구 출범
프로야구가 1982년 3월 27일 삼성과 MBC의 개막전으로 시작돼 본격적인 스포츠 프로시대가 열렸다.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등 6개 구단으로 출범한 프로야구는 첫해에 150여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원년 챔피언은 OB가 차지했다.
1982.01.05
야간통금 전면해제
전두환 정부는 1982년 1월 6일 자정부터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가 안보와 치안유지 명분으로 1945년 9월 8일 이후 36년 4개월간 지속된 야간통행금지 해제로 야간 활동 인구가 늘어나는 등 국민들의 사회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80.09.01
전두환 대통령 집권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고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이 대통령으로 선출돼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0월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7년 단임제가 주요 내용인 개헌안이 확정되고, 1981년 2월 간접선거에서 전 대통령이 당선돼 3월 3일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제5공화국 정부가 정식 출범했다.
1980.05.18
5·18 민주화운동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1980년 5월 18일 광주 일원에 공수부대가 투입됐다.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에 합류했다.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민 봉기는 무력항쟁으로 전환됐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대대적인 유혈 진압에 나섰다.
1980.02.25
80년 서울의 봄
10·26 사건으로 유신독재가 무너지자 유신헌법 개정과 민주정부 수립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1980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 신군부 퇴진, 비상계엄령 해제를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됐다. 80년 '서울의 봄'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멈춰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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