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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08.01
청일전쟁
1894년 4월말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시키자 조선조정은 청에 진압병력을 요청했고 일본정부도 텐진조약에 따라 군대를 파견했다. 동학농민군 해산으로 주둔명분이 없어지자 청군은 철수를 제안했으나 일본군은 거부했다. 일본군의 선전포고로 청일전쟁이 발발한다.
1894.07.27
갑오개혁
1894년 6월 김홍집이 영의정에 임명되고 군국기무처가 설치돼 개혁이 추진됐다. 관제를 개혁하고 개국기원(開國紀元)을 사용해 고종 31년이 개국 503년이 됐다. 문벌과 신분의 차별을 철폐하는 사회개혁안과 은본위제 등 재정경제개혁안도 공포됐다.
1894.03.21
동학농민운동
1894년 1월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저항해 농민들이 동학접주 전봉준의 영도로 항쟁했다. 그해 3월 21일 동학농민군이 재봉기해 4대 강령을 발표하면서 이들의 항쟁은 농민혁명적 성격을 띠게 됐다. 동학농민군은 같은 해 4월 말 전주성을 함락시켰다.
1884.12.04
갑신정변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는 1884년 12월 4일(양력) 우정국 낙성식을 계기로 정권을 잡으려했다. 위안스카이의 청군은 궁궐을 포위해 정변세력을 몰아내고 고종을 확보했다. 돕기로 했던 일본군은 철병하고 일본 공사는 일본으로 도망갔다. 개화파 인사들도 일본으로 망명했다.
1882.06.09
임오군란
개화로 방향을 튼 조선조정에서는 1881년 4월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했으나 구식군대의 불만이 쌓여갔다. 이들은 1882년 6월(음력) 오랜만에 급료로 나누어준 양곡에 모래가 섞인 것을 보고 불만이 폭발해 일본공사관과 창덕궁을 기습했다. 임오군란은 청을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
1882.04.06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강화도조약에 이어 조선은 1882년 4월 6일(음력)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조미수호통상조약 마무리를 위해 1883년 루셔스 하우드 푸트를 파견했다. 조선도 조약체결을 계기로 1883년 미국에 정부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했다.
1876.02.02
강화도조약 체결
미일통상조약으로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1875년 가을 근대식 증기군함 운요호를 앞세우고 강화도 해상에서 조선에 개항을 요구했다. 1876년 1월 강화도에서 양측의 협상이 시작돼 그해 2월(음력)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국제조약인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됐다.
1871.04.03
신미양요
철종시기 후반부터 유럽의 상선이나 군함이 빈번히 조선에 와서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고, 1864년 집권한 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병인양요는 1866년, 신미양요는 1871년 일어났다.두 차례의 전쟁으로 배외주의는 한층 고양됐고, 위정척사파들은 전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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