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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05.23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서울 5개 대학 대학생 73명이 1985년 5월 23일 서울 미국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주장하며 미 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72시간 만에 자진 해산하고 경찰에 연행됐다.
1984.08.31
한강 대홍수
1984년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중부지방에 폭우가 쏟아져 190여 명이 생명을 잃고 1,300억여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한강변 폭우로 가옥 2만여 채가 침수되고, 9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북한 적십자사의 수재민 구호물자 제공을 위해 북한 화물선이 인천항에 들어왔다.
1984.05.0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1984년 5월 3일부터 5월 7일까지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고 "순교자의 땅"을 되뇌었다. 교황은 5월 6일 100만 명의 가톨릭 신도가 모인 여의도광장에서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하며 순교자 103인의 시성식을 가졌다.
1983.10.09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 6개국 순방 첫 방문지 버마(지금의 미얀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졌다. 북한이 대통령 암살을 위해 설치한 폭탄으로, 전 대통령은 도착 전이어서 무사했지만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17명이 순직했다.
1983.09.01
소련의 KAL기 격추
1983년 9월 1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을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기가 옛 소련 영토인 사할린 근처에서 소련 방공군 수호이 요격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추락했다. 승객 246명과 승무원 23명 등 269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련은 전 세계적으로 규탄을 받고 제재를 당했다.
1983.06.30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1983년 6월 30일 오후 10시 15분 KBS 1TV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첫 전파를 탔다. 이산가족 찾기는 이날부터 11월 14일까지 모두 138일간 방영됐다. 10만 952건의 신청을 받아 절반인 5만 3,536건이 소개됐고, 1만 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1983.02.25
이웅평 미그기 몰고 귀순
1983년 2월 25일 오전 10시 58분경, 서울 수도권 일원에 갑자기 대공 경계경보 사이렌이 5분간 울렸다. 북한 공군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귀순하겠다는 뜻으로 날개를 흔들었고, 우리 공군은 미그기를 유도해 수원비행장에 착륙시켰다.
1982.03.27
프로야구 출범
프로야구가 1982년 3월 27일 삼성과 MBC의 개막전으로 시작돼 본격적인 스포츠 프로시대가 열렸다.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등 6개 구단으로 출범한 프로야구는 첫해에 150여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원년 챔피언은 OB가 차지했다.
1982.01.05
야간통금 전면해제
전두환 정부는 1982년 1월 6일 자정부터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국가 안보와 치안유지 명분으로 1945년 9월 8일 이후 36년 4개월간 지속된 야간통행금지 해제로 야간 활동 인구가 늘어나는 등 국민들의 사회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80.09.01
전두환 대통령 집권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고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이 대통령으로 선출돼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0월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7년 단임제가 주요 내용인 개헌안이 확정되고, 1981년 2월 간접선거에서 전 대통령이 당선돼 3월 3일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제5공화국 정부가 정식 출범했다.
1980.05.18
5·18 민주화운동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1980년 5월 18일 광주 일원에 공수부대가 투입됐다.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에 합류했다.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민 봉기는 무력항쟁으로 전환됐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대대적인 유혈 진압에 나섰다.
1980.02.25
80년 서울의 봄
10·26 사건으로 유신독재가 무너지자 유신헌법 개정과 민주정부 수립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1980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 신군부 퇴진, 비상계엄령 해제를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됐다. 80년 '서울의 봄'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멈춰야만 했다.
1979.12.12
12.12군사반란
10.26 사건 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를 이끌던 전두환 소장의 지시로 1979년 12월 12일 저녁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공관에서 강제연행됐다. 13일 새벽에는 정 총장을 구출하려는 반격 작전도 제어됐다. 전 소장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 총장 체포 재가를 받은 것도 새벽 4시반이었다.
1979.10.26
박정희 대통령서거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30분경, 청와대 인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부장 등이 박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있었다. 차지철 실장도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김재규 부장은 사형을 받았다.
1979.10.16
부마 민주항쟁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시위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 및 마산 지역에서 전개됐다.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국회에서의 제명 조치는 그의 연고지인 부산에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유발했고 정부는 비상계엄령 선포, 위수령 발동 등 강경진압으로 맞섰다.
1979.08.09
YH무역 농성사건
YH무역의 일방적인 폐업에 항의하는 여성노동자 187명이 1979년 8월 9일 신민당사 에서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에 들어갔다. 8월 11일 새벽 2시경, 경찰 1000여 명이 신민당사에 들이닥쳐 강제연행에 나섰고 진압 과정에서 노동자 1명이 추락사했다.
1977.11.11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사고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북 이리 역(현 익산 역)에 정차된 화약열차가 폭발해 59명이 사망하고 14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40t의 고성능 화약을 실은 열차에서 촛불을 켜둔 채 잠을 자다 일어난 사고였다. 주변 500m안에 있던 건물은 모두 무너졌고, 반경 4km까지 피해를 입었다.
1977.09.15
고상돈 에베레스트 정복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현지시간),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산꼭대기에 한국 원정대 고상돈 대원이 우뚝 섰다. 무전기를 든 고상돈은 “여기는 정상입니다.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라고 외쳤다. 국가로는 세계 8번째였다. 1971년 네팔 외교부에서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를 받은 지 6년 만이었다.
1976.10.24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1976년 10월 24일자 워싱턴포스트지는 ‘한국인 실업가 박동선 씨와 한국 정보부원들이 미국 의회 의원들에게 매년 수십만 달러의 뇌물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하원 청문회에서 로비자금 은행 예치 주선을 주장했다. 이 사건은 1979년 중반 봉합됐다.
1976.08.18
북한의 판문점 도끼만행
북한군 30여 명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유엔군 측 경비병들을 공격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했다. 미군은 미루나무를 베어내는 작전을 감행하며 항모와 전폭기를 대기시켰다. 김일성이 미국에 유감 친서를 전달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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