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2차대전 중 미군의 진급과 사기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 가운데 꽤 흥미로운 내용을 본 일이 있다. 공군 병사의 진급률이 평균 47%로 헌병대의 진급률 24%보다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공군 병사들이 자신의 진급 가능성에 대해 헌병보다 월등 비관적으로 보고 있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객관적 상황이 어떠하든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이 나아질수록 기대감이 커지게 마련이며 그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일종의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의 문제다.
미국의 군인(The American Soldier)이라는 제목의 꽤 오래된 책에 나온 위 사례는 진급 희망자 4명 중 1명만 승진하고 다수가 탈락하는 경우라면 오히려 불만이 없을 수 있지만, 거의 절반이 승진하는데도 자신이 제외된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려우므로 결국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의 이론은 프랑스혁명에 관한 명저를 남긴 토크빌이 높은 발전을 이룩한 지역에서 대중의 불만이 더 높았다고 지적한, 이른바 토크빌의 패러독스를 설명하는 근거로도 자주 원용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은 객관적 상황의 호전을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상대적인 느낌이므로 항상 정당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연령 지역 또는 사회적 신분으로 보아 누릴 만큼 누렸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나 주변 사람들을 기준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연유했다고 보이는 불만을 함부로 표출한다면 그 자체로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한때의 동지가 적이 되고 지지자가 적극적 비판자로 뒤바뀌는 정치판의 모습을 보면서도 다수 국민이 이를 정치이념의 차이라기보다 기대와 배분의 괴리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널리 민심을 다스리고 국정을 한 차원 높게 이끌어가야 할 입장이 되면 사정은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갈등의 치유가 정치의 중요한 한 측면이라면 비록 상대적인 박탈감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도록 가끔은 전화도 하고 한번씩 만나보기도 하면서 이를 여유 있게 아우르는 것이 코드의 접합 못지않게 국리민복()을 위하는 피할 수 없는 길이 아니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정 성 진 객원논설위원국민대 총장법학 sjchung@kookmin.ac.kr
김순덕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