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 위원회(위원장 오충일 목사)가 선정한 조사대상 사건 7건 중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이 정치권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의 비공식 라인이 개입한 납치 살인의 개연성이 있고 사건 발생 장소도 외국(프랑스 파리)이라는 점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경우 폭발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건의 관련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박종규() 전 대통령경호실장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만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김형욱에 대한 납치나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부친의 부채와 자산을 모두 인수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나타난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엇갈리는 발언으로 미뤄볼 때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나 당시 정권의 직접적인 납치 살해 여부가 명쾌하게 밝혀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 체류 중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4일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에 관련 문서가 있었다면 내가 읽었을 텐데 못 읽었다고 말했다.
당시 중정 총무국장이었던 이 전 원장은 김형욱은 갱단에 의해 죽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추측을 내놓았다. 그는 추측의 근거를 묻자 박종규가 워낙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서라고 말해 박 전 경호실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는 중정 해외담당 차장이었던 윤일균() 씨가 1998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형욱과 관련해) 정상계선 조직에선 지시를 받은 바도 없고 지시를 내린 일도 없다며 중정 해외파트 차원의 공작 가능성을 부인한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윤 씨는 해외공작을 하려면 우리 해외 거점 파견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해외 정보업무는 나를 통해 지시가 나가는데 (당시에는) 나간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관련자들의 발언은 진실규명위가 국정원만을 조사대상으로 삼아서는 새로운 정보나 결정적인 단서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더욱이 사건의 내막을 전해 들었거나 실종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송진섭() 경기 안산시장, 이상열() 전 주이란 대사 등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송 시장은 1979년 서대문구치소에 투옥 중 옆방에 투옥된 박선호 전 중정 의전과장(사형)과 통방(벽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누는 것)을 하던 중 대통령경호실 간부들이 김형욱을 살해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 전 대사는 당시 중정 소속의 프랑스 공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실종사건의 진상에 가깝게 다가서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최호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