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중순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으로 떠난 장기호(60사진) 대사. 부임 직전 그는 스스로를 억세게 운 좋은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런 만큼 내가 대사로 가면 이라크도 곧 안정될 것이라고 농담 삼아 말했다.
부임 후 두 달 남짓, 24일 장 대사가 서울에 다시 나타났다.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잠시 들른 것이다. 정말 이라크가 안정됐느냐는 물음에 그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라크 총선(1월 30일) 이후 치안이 안정돼 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라크행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30여 년 전 첫 부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당시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이틀 만에 사우디행을 결심했다(웃음). 하지만 이번에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이라크와 같은 분쟁지역은 외교와 군사를 모두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최고참 대사가 주로 간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이라크대사직을 제의했을 때도 그 의미를 강조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제의받은 지 이틀 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라크 정국 상황은 어떤가.
총선을 계기로 저항세력의 움직임이 둔화되고 있다. 8월경 영구헌법 초안이 마련되면 더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 후 시아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안정을 위해 이제 수니파를 끌어안아야 한다. 종파 간 타협은 이라크 정국 안정에 필수요건이다.
이라크 전체 치안 상황이 안정됐다는 의미인가.
그건 아니다. 저항세력들이 바그다드 티그리스강 맞은편에서 그린 존(안전지대)으로 박격포를 쏘면 포탄이 우리 대사관 위로 날아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박격포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부임 첫날에는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심하게 흔들렸다. 옆에 있던 직원이 이건 차량 폭탄 터지는 소리라고 말해 줬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떤가.
매우 협력적이다. 존 네그로폰테 미국 대사를 두 달 동안 세 번이나 만났다. 서로 각별하게 예우를 갖춘다. 며칠 전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니 자기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러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알고 보니 국가정보국장(DNI) 지명 건으로 간 것이었다.
한국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1월 2일 만난 알 야와르 과도정부 대통령은 이라크는 한국을 발전 모델로 꼽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염두에 두는 것 같았다. 한국 건설업체가 1980년대에 이라크에서 활약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한국에 대해 낯설지 않다.
김영식 박형준 spear@donga.com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