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사막에서 호박을 길러야 했던 열다섯 살 소년이 있었다. 중국 문화대혁명 바람에 하방()된 6년간, 공부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고되게 일하고도 밤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미국의 소리(VOA)방송에 귀 기울여가며 영어도 익혔다. 웨이젠산(51), 그는 지금 알아주는 자산운용사인 뉴브리지캐피털의 전무이사다. 금융후진국 중국에 선진투자기법을 옮겨 심는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뛴다. 내가 준비돼 있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했을 것인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를 중국의 인내심 많은 십자군이라고 표현했다.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출신의 전도양양한 정치지도원이었던 후진타오(국가주석)는 문혁 와중에 노동개조대로 보내져 화장실 청소를 했다. 칭화대 무선전전자학과 학생이던 우방궈(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다른 4세대 지도자들도 비슷하게 내팽개쳐졌다. 지식인을 공격하고 자본주의적 물질주의를 타파한다는 문혁이었지만, 지식과 자본주의를 죽이지는 못했다. 중국을 이끈 9명의 공산당 정치국 상임위원이 전원 이공계 엔지니어 출신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다이내믹 코리아이어서인가. 문혁도 우리나라에 오면 다이내믹 문혁이 된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이미 문혁을 반()인륜적이라고 평가했는데, 우리나라의 자칭 민주화세력 일부에는 아직도 정신적 지주다. 한물간 이데올로기에 매달릴 만큼 지적으로 게으르고, 아는 것도 많지 않은 집단이 세계화시대에 맞는 경륜이 있을 리 없다.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적()으로 모는 문혁적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물론 공산독재를 동력으로 삼아 성장하는 중국 모델을 우리의 모델과 비교할 수는 없다. 조화로운 사회라는 명목으로 정치적 반대를 억압하는 신()레닌주의 중국이 얼마나 뻗어나갈지도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중국은 지식과 실용주의로 문혁에 등 돌린 지 오래인데, 우리 일부가 반()지식, 친()문혁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