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동부 아프리카 해역에서 해적에 납치될 뻔했던 북한 화물선이 미국 구축함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에 따라 이번 구조작전이 북-미 관계 개선의 전기가 될지 관심을 끈다.
그러나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나는 그런 질문에 대해 답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납치에서 구출까지=미군 당국의 설명 및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인도를 출발한 북한 화물선 대홍단 호는 29일 오전 선원 22명(추정)을 태운 채 소말리아의 모가디슈를 향하고 있었다. 화물은 설탕으로 전해졌다.
이 선박은 2001년 한국 해군의 저지를 뚫고 제주 북방해협을 무단 통과한 북한 선박 4척 중 하나다. 당시의 활약 등에 힘입어 선장이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유명한 배다.
대홍단 호가 소말리아 수도인 모가디슈에서 북동쪽 60해리(111km)지점을 항해하고 있을 때 해적선이 나타났다. 올 봄 한국 선원 4명이 붙잡힌 마부노 1,2호 피랍도 이 부근 해역에서 발생했다.
해적은 불과 7명(추정)에 불과했지만 순식간에 대홍단 호의 갑판을 장악했다. 수적으로 우월했던 북한 선원들은 조타실과 엔진실은 내주지 않은 채 대치했다.
북한 선원은 전화로 긴급구조요청(SOS)을 했다. 이 신고는 케냐의 선원구조프로그램(SAP) 동아프리카 지부에 접수됐고, 말레이시아 소재 국제해사국(IMB)으로 즉각 중계됐다.
5대양의 해적 관련사건 통제센터 격인 국제해사국은 바레인에 주둔 중인 미 연합함대사령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함대사령부는 때마침 화물선에서 불과 50해리(92km) 떨어져 있던 구축함 제임스 윌리엄스 호에 즉각 대응을 지시했다.
구축함에서 헬기 1대가 납치 현장으로 출동해 북한 선박 납치를 확인했다. 윌리엄스 호는 소말리아 정부에 해적 진압을 위해 영해로 진입한다고 통보한 뒤 이날 정오를 전후해 현장에 도착, 무전으로 즉각 투항을 요구했다.
갑작스런 미 구축함의 출현에 해적단은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틈타 북한 선원들은 숨겨뒀던 총기로 총격 끝에 해적을 물리쳤다. 10년 이상 복무한 제대군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북한의 외항 선원들에겐 각각 AK-47 자동소총 1정씩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전 결과는 해적 2명 사살, 5명 생포. 북한 선원 3명도 중상을 입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은 북한 선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무장 상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달 28일 중국 해안에서 침몰됐던 북한 화물선의 선원 23명 가운데 20명은 해안까지 7km가 넘는 거리를 헤엄쳐 나왔다.
북한 선원의 미 구축함 승선=실제 교전상황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미 해군은 사후 조치를 주도했다. 북한 선원들은 배를 되찾은 뒤 무전으로 의료지원을 요청했다.
윌리엄스 호의 수병 3명은 대홍단 호에 올라가 부상자의 응급조치를 맡았다. 총상이 심한 북한 선원 3명은 구축함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그동안 북한 선박이 대량살상무기(WMD)의 제3국 수출이나 위조달러 마약 등과 관련해 미국의 감시를 받아왔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리디아 로버트슨 제5함대 대변인은 구조신호를 받으면 우리는 지원한다는 짤막한 논평만 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김승련 주성하 srkim@donga.com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