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어제로 창간 81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동아일보가 걸어온 길은 한국의 현대사가 걸어야 했던 험난한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에 일격을 가한 31운동의 소중한 불씨를 지켜나간다는 일념에서 그 이듬해 동아일보는 민족 민주 문화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출범했다. 그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나라 잃은 민중의 정신적 기둥으로 버텼고, 광복 직후 좌우투쟁기에는 자유민주주의의 노선에 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주춧돌을 놓았으며, 건국 이후에는 반독재 민주화의 횃불을 높이 든 가운데 산업화와 통일, 그리고 국제평화의 길을 밝히는 데 힘을 모았다.
동아일보는 이처럼 민족의 대표적 정론지로 자리잡기까지 숱한 속박에 시달려야 했다. 일제가 가장 미워했기에 발행인이 구속되기도 하고 네 차례에 걸친 무기정간 끝에 마침내 강제폐간을 당해야 했으며, 건국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발행인으로부터 일선기자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연행 구금됐고 언론사상 유례없는 백지광고사태에 직면하기도 했으며 동아방송을 빼앗기기조차 했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국민의 격려가 있었기에 그 모진 압제에 맞설 수 있었다.
국민 격려로 압제에 맞서
그렇다고 해서 어둡고 힘든 폭압의 시기에 언론의 소임을 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욕이 교차하는 가운데 통한의 굴절도 있었음을 진솔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세기의 첫 창간기념일을 맞아 새로 태어나는 자세로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키고 언론의 바른 길을 걷는 데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새삼 다짐하는 까닭도 뼈아픈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에 바탕한다.
그렇다면 새롭게 거듭날 것을 다짐하는 동아일보의 출발점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창간의 그날 민족앞에 밝혔던 사시()이니, 민족 민주 문화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감도는 시대적 조류에는 민족의 생존과 민주주의의 발전 및 문화주의의 신장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가세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치 광복 이후 3년의 공간이 좌우 이념 투쟁의 장()으로 변모함으로써 국민이 사상적 혼란에 빠졌듯, 지난 몇 해 사이 조성된 상황은 제2의 이념적 갈등 시대를 연상케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더 창간사시의 봉화를 높이 들어 나라가 바르게 가야 할 길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모든 판단의 근거가 우리가 이미 81년 전에 내걸었던 민주주의, 곧 자유민주주의여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동안 인류는 신()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교도민주주의 민족민주주의 개발민주주의 등 민주주의를 위장한 사이비 민주주의의 폐해와 압제를 수없이 겪었으며, 그 역사적 실험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이외의 그 어떤 민주주의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며 자유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교훈을 얻었다. 우리 겨레가 지향하는 민족의 평화통일도 인권이 철저히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가 전제될 때 가치있는 것이 될 것이고, 문화주의도 다양성이 소중히 여겨지는 자유민주주의와 짝을 이룰 때 생명을 갖게 될 것이다.
폭력-대중영합주의 배격
새로운 세기는 자유민주주의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국내외의 석학들은 내다본다. 자유민주주의의 새로운 흥륭 아래 인간은 개성과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함으로써 지식기반사회를 이룩하게 될 것이며 경제를 크게 발전시킴으로써 복지를 증진시키게 되고 평화를 정착시키리라는 믿음이 세계 사조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우는 어떠한가. 민주주의를 위장한 폭력적 군중노선과 반의회적 사회주의 사상이, 민주주의로 포장된 획일적 평등주의와 대중영합주의 이념이, 그리고 민족을 내세운 감상주의적 평화와 통일의 관념이 세를 몰아가려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자신만이 깨끗하고 정의로우며 상대방은 부도덕하고 불의하다는 독선적이면서 흑백논리적인 잣대로, 상대방이 매우 어려운 여건에서도 피땀흘려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역사와 민족 앞에 이바지한 업적마저 매도하는 파괴적 운동이 공간을 확대시켜 가고 있지 아니한가.
어떤 압력에도 꿋꿋하게
그리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기강이 해이됨은 물론 질서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정부의 국정운영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좌우되어 법치주의와 시장경제원리가 깨어짐으로써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렇기에 말없는 다수의 국민 사이에서는 나라의 앞날에, 다음 세대의 미래에 확신을 잃어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국가적 위기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동아일보는 따라서 국가적 위기의 해소를 위한 첫걸음을 자유민주주의의 확립에서 찾고자 한다. 극우의 논리도, 극좌의 이념도 배격하고, 오직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법치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구현함으로써 21세기에 국가의 중흥과 민족의 평화통일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그러한 취지에서, 동아일보는 어떠한 외부의 압력과 비방 또는 회유에 대해서도 꿋꿋하게 맞서면서 창간사시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의 수호 발전을 위해 불편부당, 시시비비의 정론직필로 싸울 것임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