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미군의 면책특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또 다시 충돌하고 있다.
최초의 상설 국제법정인 ICC는 대량학살과 전쟁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지난달 1일자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창설됐다. 미국은 ICC 창설조약의 비준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군의 면책특권을 확보하기 위해 유엔평화유지활동 중단협박이라는 초강수로 1년간 한시적 면책특권을 얻어냈다.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군을 ICC에 인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쌍무협정을 개별국가와 체결하고 있는 중. 미국은 8일 쌍무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경우 해당국가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미군보호법을 발효시켰다. 이 법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과 한국 일본 이스라엘 이집트 호주 등 긴밀한 동맹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에 적용된다.
이에 루마니아가 이스라엘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과 쌍무협정을 체결하자 EU가 발끈하고 나선 것.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은 12일 성명을 발표, EU 가입을 원하는 국가는 미군에 면책권을 주는 협정에 서명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EU 가입희망 또는 대상국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헝가리 등 구소련 소속 10개국과 키프로스 몰타 등 12개국. 미국의 군사지원 중단 압력에 EU는 EU가입을 무기로 맞서고 있는 양상.
그러자 미 국무부가 12일 EU에 대해 부적절하며, 제3국과의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주권국의 권리를 짓밟는 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스페인을 방문 중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2일 우리가 쌍무협정에 서명하도록 협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우리는 계속 쌍무협정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과 스위스 외에 유고와 캐나다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등은 이미 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미국의 의도가 얼마나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휴먼라이트워치 등 인권단체들도 미국의 쌍무협정 추진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홍은택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