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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고향 등지겠습니까

Posted September. 09, 200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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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논과 과수원, 가축을 잃은 최진호씨(28강원 양양군 서면 용천리)는 다른 이재민과 달리 복구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5년 전부터 용천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최씨는 더 이상 농촌에 미련을 두지 않고 도시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수해로 논 6000여평 중 3000여평이 자갈밭으로 변했고 1000평 크기의 과수원에 있던 과실수와 닭 100마리, 화물차, 경운기 등 농기구가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가 최씨는 1억여원의 피해를 봤다.

최씨는 지난 5년간 젊음을 바쳤는데 남은 것은 빚 6000만원이 전부라며 허탈해했다. 최씨의 부인 손해영씨(27)는 도시로 나가 일용노동자가 되더라도 여기에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이 농촌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연령의 구별이 없다.

젊은 사람들은 농토가 자갈밭으로 변하고 집이 물에 휩쓸리는 등 재기가 힘들어져 도시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식이 외지로 나가 농촌에서 홀로 또는 부부끼리 살던 노인들은 집을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이 가까운 시내나 읍내에 집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과 크게 차이가 없어 농촌을 떠나려고 한다.

도시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하다 2년 전 농촌에 정착한 남상국씨(42양양군 서면 수리)도 농촌생활을 접기로 했다. 건강원을 하기 위해 부인이 식당 일을 해 번 돈까지 모두 투자했지만 이번 수해로 키우던 개 200마리와 개집이 모두 물에 떠내려갔다.

남씨는 내년이면 그 동안의 고생이 빛을 볼 것 같았는데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며 이제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제방을 뚫고 나온 물이 집을 덮쳐 기둥과 지붕만 남은 마호상씨(65양양군 서면 수상리)는 가재도구만 정리할 뿐 집수리는 하지 않고 있다. 자식을 모두 외지로 보내고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마씨는 인근 양양읍내로 나가 살 계획이다.

마씨는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르는데 여기다 다시 집을 지어서 뭐하겠느냐고 말했다.

수상리 이장 이철규씨(61)는 새로 집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이 3000만4000만원인데 양양읍내 25평 아파트가 4500만원, 속초시내는 4000만원 정도면 살 수 있기 때문에 동네를 떠나려는 사람이 많다며 수상리 전체 90여 가구 중 5, 6가구는 이미 이사를 결정했고 그 외 대여섯 가구도 이사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양양군 관계자는 복구비 지원을 받더라도 재기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농촌을 떠날 결심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이번 수해로 농민들의 이농현상이 가속화돼 농촌의 공동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진영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