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창세기에는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살인기록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범죄의 역사라고 할 만큼 범죄는 인간과 함께해 왔다. 죄()에 벌()이 따르는 건 당연지사. 범죄를 처벌하고 사회적 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4000여년 전의 수메르법전에는 특정 범죄에 대한 처벌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중국 한서()에 3개 항목이 소개돼 있는 고조선의 8조금법도 살인과 폭력, 절도에 대한 처벌 내용이다.
엊그제 경찰청은 범죄유형별 발생 시차를 보여주는 범죄시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9시간 30분마다 살인사건이 한 건, 1시간30분마다 강도사건이 한 건씩 발생했다. 강간사건은 1시간30분으로 지난해 1시간18분보다 다소 호전됐으나 방화사건은 6시간12분으로 1999년 8시간에서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 범죄시계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내는 연례보고서를 본떠 만든 것인데, 인구 10만명당 전체 범죄발생률로 보면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아직은 안전한 사회라는 게 전문가들의 총평이다.
범죄는 사회에 따라 유형과 특징을 달리 한다. 예를 들어 살인강도강간자동차절도중()폭행주거침입절도 등 미 FBI가 규정하고 있는 7대 범죄유형 중 자동차절도나 주거침입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항목들이다. 우리의 경우 예의 주시해야 할 부분은 최근 들어 폭행상해강도성범죄 등 폭력범죄의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고 있다는 사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최인섭 박사는 외환위기 때에 폭증했던 경제범죄의 증가율은 안정세로 돌아선 데 비해 폭력범죄는 마치 외환위기를 계기로 탄력을 받은 것처럼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우려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속설은 우리 사회에선 아직 진실에 가깝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 같은 폭력범죄의 폭발적 증가추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매우 미흡하다는 점이다. 넓게 보면 날마다 폭력물을 쏟아내는 텔레비전 방송과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조급증 문화도 폭력범죄 증가의 원인이 되겠지만, 이런 추세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할 책임은 아무래도 공권력 쪽에 있다. 국민이 세금을 꼬박꼬박 내가면서 국가에 거는 최소한의 기대가 바로 안전한 사회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다가올 대선에서 선택될 새 정부는 범죄시계를 뒤로 늦추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