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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질극

Posted October. 25, 200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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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절 워싱턴이 주연인 영화 존 큐는 심장병으로 죽어 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얘기를 그리고 있다. 아버지 존 큐는 어느 날 아들 마이크가 야구게임 도중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달려간 병원에서는 당장 심장이식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백방으로 돈을 마련해 보지만 선금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아버지는 결국 총을 들고 병원을 점거하고 만다. 요구사항은 아들을 수술대기자 명단에 빨리 올려달라는 것.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경찰의 진압작전이 펼쳐지면서 인질극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경우 인질범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영화가 개봉되면서 유무죄 논란이 미국을 달구었지만 가장 공감을 얻은 결론은 바로 주인공 덴절 워싱턴이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이었다고 한다. 존 큐는 유죄이나, 아버지는 무죄다. 내가 그런 경우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인질극 하면 공포감부터 떠오르지만 세상에는 이처럼 동정심이 일어나는 인질극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인터넷사이트에서 어떨 때 인질극이라도 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을 던져본 일이 있다. 그때 한 네티즌은 결혼에 반대하는 애인의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인질극 흉내라도 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내용의 답변을 했다던가.

하지만 요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은 이런 모습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폭력 살상 등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인질극은 유괴나 납치처럼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어느 범죄보다 죄질이 나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 새 인질들의 석방에 노하우를 지닌 협상전문가까지 생겨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주 활동무대는 에콰도르 콜롬비아 나이지리아 예멘 체첸 등. 돈으로 죽은 목숨을 살릴 수도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할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인질극이 테러, 저격사건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지구촌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고 있다. 기관단총 등으로 무장한 체첸인들이 뮤지컬 공연장을 점거, 수백명의 관객과 배우들을 인질로 삼고 체첸전 즉각 중지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공연장에 갔다가 졸지에 인질이 된 사람들과 그들의 무사를 비는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 갈까. 그러나 체첸인들은 또 그들대로 이를 애국적 행동으로 믿고 있을 테니 이를 어쩔 것인가. 어쩌면 이런 인질극은 테러 납치 등과 함께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굴레일지 모른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