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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있어도 기권은 없다

Posted October. 31, 200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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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금메달을 바라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고 했다. 육체의 한계보다는 마음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달린다고 했다.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FG)에서 시각장애인 3명과 척수 및 절단 장애인(휠체어 부문) 12명이 대회 마지막 날인 1일 42.195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다.

정상인도 달리기 힘든 길. 그러나 이들은 애처로운 눈길은 싫다며 정상인과 같은 눈높이로 보아달라고 오히려 주문했다.

아주 희미하게 한가지 물체만 구분할 수 있는 시각장애 2급인 마라토너는 한국의 임성준씨(24)와 일본의 호시나 기요시(55), 카자흐스탄의 세토브 제이놀라(42) 등 3명.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척수 및 절단 장애인은 한국의 이봉호씨(34), 태국의 타나 라와트(25), 뉴질랜드의 넬슨 조너선(19) 등 13명.

시각장애인들은 풀코스를 달리면서 선수 1명당 러닝코치 4명의 가이드를 받는다. 4명의 러닝코치는 10씩 나눠 달리면서 오르막 내리막 오른쪽 왼쪽 등을 외친다. 코스의 상태를 알려주면서 페이스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러닝코치는 절대로 선수보다 앞설 수 없으며 선수와 동일선상이나 뒤에서 달려야 한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은 3시간30분 내외에 풀코스를 주파할 자신감을 보였다. 이 코스는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당시 이봉주 선수와 북한의 함봉실 선수(여)가 2시간14분04초와 2시간33분34초에 달렸던 길. 휠체어 장애인들은 정상 마라토너보다 훨씬 빠른 1시간30분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릴 겁니다.

시각장애인 임성준씨는 그동안 방황했던 자신을 일깨우고 걱정만 끼친 부모님께 보답하기 위해 밤을 새우더라도 완주할 각오다. 그가 국제대회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그는 고교 1학년 때인 96년 시신경 위축으로 시력을 잃었다. 처음엔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어 문 밖을 나서지도 않았다. 그러나 99년 달리기가 그를 세상으로 불러냈다.

훈련시설이 변변치 못한 국내 장애인스포츠의 현실은 그를 몇 번이나 좌절로 몰아넣었다. 가족의 사랑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금메달 등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한 인간, 스포츠인으로 봐 달라는 소박한 희망뿐이다.

5세 때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휠체어 마라토너 이봉호씨는 이번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 참가한 1575명의 장애인 선수 모두가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이씨 역시 89년 일본 고베()의 아태장애인경기대회 마라톤 등 8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 최다 메달리스트가 돼 돌아왔으나 국내에서는 상장 하나 받지 못했다. 그는 장애인에 평등한 사회를 바라며 이번에도 또 달리기에 나섰다.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달리는 장애인들의 평등을 향한 힘찬 도전은 그들의 인생역정만큼이나 눈물겹다.



조용휘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