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검찰의 엉터리 수사 때문에 강도 살인범으로 몰려 1심에서 징역 15년 등의 중형을 선고받은 청소년이 구속 10개월 만에 항소심에서 누명을 벗었다.
서울고법 형사2부(이성룡 부장판사)는 14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윤모군(19)과 장기 7년, 단기 5년을 선고받은 장모씨(20)에 대해 증거가 없고 피의자 자백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1심 법원의 판결과정은 수사 및 사법기관에 의해 빚어지는 인권침해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발단중국집에서 배달원으로 일했던 윤군과 친구 사이인 장씨는 올 1월 10일 일을 마친 뒤 동네 PC방에서 채팅을 하던 중 장난으로 사람을 죽였어 내 손으로라고 글을 띄웠다가 이를 본 PC방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부천경찰서는 이들을 지난해 12월 23일 인천 남동구 간석오거리에서 일어난 강도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했다. 장씨는 조사과정에서 친구 윤군과 함께 아리랑치기를 했고 윤군이 반항하는 시민을 흉기로 찔러 죽였다고 거짓 자백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담당한 인천지법은 인천지검의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여 올 7월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부실수사그러나 이날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며 밝힌 사건의 전모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을 만큼 부실했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윤군은 경찰수사 당시 일하던 중국집에서 칼을 훔쳐 범행에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끝이 뾰족한 칼에 찔려 숨졌다. 또 중국집 주인은 칼을 도둑맞은 일도 없고 가게에는 모두 크고 네모난 칼만 있다고 증언했다.
장씨는 PC방에서 채팅을 하면서 부평동에서 살인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장씨와 윤군을 간석동에서 일어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했다. 또 감정결과 윤군이 범행 당시 입고 있었다고 진술한 잠바에서는 혈흔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다.
재판과정이들은 항소심 재판 도중 검찰이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싶지 않으면 사실대로 말하라고 해서 자백했다면서 경찰서에서 형사가 머리와 어깨, 허벅지를 찌르고 무릎을 꿇린 상태에서 발바닥 등을 때렸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1심 재판과정에서도 검찰과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 등 강압 수사가 있었다는 사실과 자신들이 억울함을 알리는 수십통의 탄원서를 재판부에 냈으나 판사들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항소심에서 이 사건을 맡은 송우섭() 국선 변호사는 처음 윤군을 접견할 때 윤군이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며 미성년자가 완벽하지 못한 수사로 인해 인권침해를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무리한 기소 등 잘못된 수사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이 중국집에서 음식을 배달하고 받은 돈 12만여원을 횡령하고 오토바이(70만원 상당)를 훔친 혐의는 인정해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씩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길진균 leon@donga.com